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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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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2 댓글:  조회:122  추천:0  2019-10-24
상상의 세계와 시적 창조 ​ 홍문표 ​ (1) 상상의 이해 ① 상상과 예술과 인생 시,또는 문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전하려는(telling)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방법으로 감동시키려는 세계라고 했다. 그러기에 추상적인언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의 표현이 생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물 표현의 보다 효과적인 방법에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사물이나 사건으로 보여주는(showing) 방법이 최상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예술의 행위는 바로 어떤 생각이나 심정을 구체적인 어떤 사물이나 사건으로 예를 들어 보여 주는 작업이 된다. 이때 예를 들어 보여 주는 그 사물, 비유적 상관물을 이미지(image)라 하고 이러한 사고를 상상(imagination)이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간은 사물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며 풍요로운 세상을 만든다. ​ ② 상상의 개념 상상(想像)을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과거의 경험으로 얻어진 기억의 심상(心像 image 기억 에 남아 있는 상)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정신작용이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생각해 내는 것이므로 상상이라고는 하지 않으며, 사고(思考)는 과거의 경험을 추상적 으로 유추하는 것으로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과는 구별된다. 또한 상상의 내용이 물리적 현실에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이것을 공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달 여행은 공상이었지만 점차 상상으로 발전되더니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망상(忘想)이나 환각(幻覺)은 있지도 않은 것을 현실로 생각해 낸다는 데서 상상과는 구별된다. ​ (2) 상상의 탄생 ① 상상의 원리 체험의 재구성-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것. 제임스- 상상은 과거에 보고 듣고 느꼈던 원물(原物)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것. 예술적 창조- 과거 경험했던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 ② 시대와 상상 르네상스 이전-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은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이상심리로 간주하였다. 특히 플라톤은 이것을 비합리적 세계라 하여 위험시하였고 진리와 실재의 발견에 저해되는 기능으로 보았다. 문학예술 경멸, 시인 추방설 칸트 이후- 그러나 이성과 상상의 대등한 위치, 칸트(Kant)는 진(순수이성비판), 선(실천이성비판), 미(판단력비판)를 구분, 진과 선은 이성적 영역, 미는 감성적, 상상적 영역으로 인정. 한편 급진적인 낭만주의자들은 상상과 이성의 대등한 관계나 상호 보조적 관계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참다운 인생이나 예술에서는 이성을 아주 제외하던가 극히 부차적인 역할만을 맡기고자 하였다. 시인 블레이크(Blake)는 상상만이 본질적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뛰어난 상상력을 천재성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예술지상주의 ​ ③ 체험의 재구성 방법 ​ 골짝물이 이렇게 조잘대며 흐르는데 ​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 산나리가 이렇게 예쁘게 웃어주는데 ​ 나무들에게도 정말은 눈이 있을 꺼야 ​ 상상- 바위들에게도 귀가 있을꺼야, 현실+상상, 바위(광물)+귀(생명체) 상상과 인생- 우리의 삶이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이듯이 상상은 현실을 미래로, 풍요로, 가능성으로 이끌어 주는 영원한 깃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상상이 없다면 미래도 없고, 초월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삶의 확장도 없다. ​ 우두커니 서서 뒤뜰을 지키던 오동나무 보랏빛 향기 산으로 불어 보내면 ​ 발정한 수캐처럼 부리나케 내달려 오는 밤꽃 냄새. ​ 목하(目下) 산천은 온갖 교성(嬌聲)으로 들끓는다. ​ 덩달아 헐떡이는 나무들, 그 곁에 기대어 서면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가슴. ―김승봉의「자연(自然)」전문 ​ ④ 직관과 영감 현대에 와서 상상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한 사람으로, 크로세(Croce)는 예술을 직관(intuition)이라 하였는데 이는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심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전에는 직관이나 영감의 놀라운 상상력을 음악의 신인 뮤즈(muse)의 특별한 신통력, 즉 접신(接神)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이나 무당이나 사제들은 시를 쓰거나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뮤즈의 이름을 불러 강신(降神)을 청하는 초령(evocation)의 행사를 벌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직관이나 영감도 잠복되었던 과거 경험의 이미지가 갑자기 드러나는 상상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 (3) 심상사고와 무심상 사고 ① 존재의 두 세계 물질의 세계 , 정신의 세계 (산, 밥, 돈/사랑 진실 영원) 물질의 세계, 의미의 세계 (산-의지, 밥-목숨, 돈-생활), ② 언어의 두 세계 물질적인 언어, 비물질적인 언어 감각적인 언어, 관념적인 언어 이미지가 있는 언어(장미, 달, 강), 이미지가 없는 언어(진리, 생명, 계속) ③ 심상 사고(image thinking) 무심상 사고(imageless thinking) 이렇게 인간의 의식이나 사고에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물질이나 형상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의 세계도 있다. 언어에도 물질적 이미지가 있는 언어가 있고 전혀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 언어도 있다. ‘사과’나 ‘장미’는 물질적 이미지의 언어지만 ‘성실’이니 ‘민족’이니 하는 언어에는 물질적 이미지가 없다. 이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언어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적 언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바로 과학적 언어와 시적인 언어, 과학자와 시인의 사고의 차이 이기도 하다. ​ ④ 심상사고와 시인 이미지를 지닌 언어는 모양과 부피와 무게가 있고 빛깔과 냄새와 움직임이 있어 사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하고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없는 관념적인 언어는 이성적인 판단을 통하여 추상적으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그러기에 시인은 바로 이미지를 지닌 언어를 사용하여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물질적인 세계는 물론 비물질적인 관념의 세계까지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존재를 증명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한다. 헬렌켈러와 사랑(love)의 교육. ​ ⑤ 작품 보기 ​ 1) 닫힌 창고가 열리고 2) 하나의 현실을 세우기 위하여 3) 굳은 열매가 쪼개지고, 지금 4) 아직도 이루지 못할 통일을 위하여 5) 철조망의 가시가 붉게 붉게 녹이 슬고 있다. 6) 열 두 시가 되기 위하여 시계는 열 시를 지나 열 한 시로 가고 7) 우리는 죽음의 자유를 위하여 건강한 육체를 키운다. 박남수의「무제」 행 무심상사고 (추상) 심상사고 (구체) (1) (2) (3) (4) (5) (6) (7) (부자유, 고통, 분단) 현실 (분단, 자유, 통일) 통일 (분단, 휴전선) (통일 접근) (국력신장) 닫힌 창고 쪼개지는 열매 철조망의 가시 열한시, 열두시 건강한 육체   ​ 1)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2) 저 안에 태풍 몇 개 3) 저 안에 천둥 몇 개 4) 저 안에 벼락 몇 개 5)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6)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7)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8)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의 ‘대추 한 알’ ​ 행 무심상사고 심상사고 (1) (2) (3) (4) (5) (6) (7) (8) 대추의 붉음 저 안에 저 안에 저 안에 대추의 둥금 저안에 저안에 저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무서리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   ⑥ 무심상사고와 심상사고의 혼합 그러나 시인이라고 해서 순전히 심상사고만으로 시종할 수는 없다. 심상사고는 의식이 가장 집중될 때만 가능한데 그러한 집중적인 상태로만 오래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의 정신은 고도의 심상세계로 올라갔다가 다시 일반적인 개념의 세계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또 시인의 상상이 심상세계를 비상(飛翔)하는 경우일지라도 그러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통일된 서술(discourse)을 확보하는 고리는 전치사와 접속사 등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관계사와 추상적인 언어다. 따라서 시인은 과학자에 비하여 보다 사물을 상상적으로, 즉 심상을 통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이고, 과학자는 보다 무심상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보려는 입장이다. ​ 삼월의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시각의 촉각적 심상)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 퇴색한 성교당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시각의 청각적이미지) 김광균의 “외인촌”에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시적 상상의 세 유형 ​ 홍문표 ​ (1) 상상의 분류 ① 제임스(W. James) 그는 상상을 과거에 느꼈던 원물의 이미지를 재생하는 능력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말하면서 상상을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과 생산적 상상(productive imagination)으로 나누었는데, 전자는 과거 감각의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고, 후자는 여러 원물들에서 축출된 요소들이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상력이란 무한한 창조의 능력이 아니라 과거 체험을 기본으로 하여 보다 새로운 이미지와 관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② 윈체스터(Winchester) 창조적 상상(creative imagination)-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요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전일체를 만들어 낸다. 이 결합이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 그 기능을 공상(fancy)이라 부른다. 연상적 상상(associative imagination)- 물체, 관념 혹은 정서에다 정서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들을 연합한다. 그러한 연합이 정서적 친근성 위에 기초를 두지 않을 때에 그 과정을 공상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해석적 상상(interpretative imagination)- 정신적 가치 혹은 의미를 지각하여 그러한 정신적 가치가 들어 있는 부분 또는 성질을 가지고 대상을 표현한다. ​ (2) 연상적 상상 ① 유사성의 재구성 연상적 상상은 우리가 일상적 경험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지(旣知)의 유사성에 근거한 상상이며 창조적 상상은 시인의 비상한 직관에 의해서 전혀 유사성이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강철이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강인한 체력을 강철에 견주어서 표현한 연상적 상상이지만 “그 사람은 놋쇠 항아리다”라는 말은 분명 상상력에 의한 진술이지만 사람과 놋쇠항아리 사이에는 전혀 예상을 뛰어넘는 이질성을 느끼게 하는 창조적 상상이다. ​ ② 길과 넥타이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 김광균 「추일서정」에서 ​ ③ 빵과 쨈과 과수원 ​ 이 창가에서 들어요 둘이서만 만난 오붓한 자리 빵에는 쨈을 바르지요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서 먹어요 - 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 이야기」에서 ​ ④ 겨울나무와 악기 ​ 잎이 지면 겨울 나무들은 이내 악기가 된다. 하늘에 걸린 음표에 맞춰 바람의 손끝에서 우는 악기. ​ 나무만은 아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보아라. 얼음장 밑으로 공명하면서 바위에 부딪혀 흐르는 물도 음악이다. ​ 윗가지에는 고음이. 아랫가지에서는 저음이 울리는 나무는 현악기. 큰 바위에서는 강음이 작은 바위에서는 약음이 울리는 계곡은 관악기. ​ 오늘처럼 천지에 흰 눈이 하얗게 내려 그리운 이의 모습이 지워진 날은 창가에 기대어 음악을 듣자. ​ 감동은 눈으로 오기보다 귀로 오는 것. 겨울은 청각으로 떠오르는 무지개다. - 오세영의 「음악」 ​ (3) 창조적 상상 ① 비유사성의 상상 앞서 인용한 시들은 모두 물질적 소재와 물질적 이미지의 상상적 연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균의 「추일서정」에서 낙엽이 지폐로 되거나 전봉건의 작품에서 쨈이 과수원으로 되거나 돌이 연꽃으로 되는 일은 모두가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를 1:1로 단순 대비한 유사성과 비유사성의 관계다. 그러나 물질과 물질의 이미지나 관념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비유사성으로 결합하는 경우가 있다. ​ ② 돌과 연꽃 ​ 내가 돌이 되면 ​ 돌은 연꽃이 되고 ​ 연꽃은 호수가 되고 -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 나(인가)와 돌(광물)- 비유사성 돌(광물)과 연꽃(식물)- 비유사성 연꽃(식물)과 호수(광물)- 비유사성 ③ 나와 위험한 짐승 ​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 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그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 ④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 ​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 (4) 해석적 상상 우리는 사물에 직면하게 될 때 먼저 객관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게 되고, 연상작용을 통하여 인식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나와 인생과 세계와 어떤 관계, 어떤 의미가 있는 가를 주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이를 이미지로 표현한다. ​ ①당신과 눈송이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 김현승의 “절대신앙” ​ ②손의 상상적 해석 ​ 물상(物像)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왔을까. ​ 잠깐씩 가져보는 허무의 체적(體積). ​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왔을까. ​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박남수의 “손” ​ ③ 나무의 상상적 해석 ​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나무의 꿈」   에덴의 상실과 회복 시정신을 찾아서1 ​ 홍문표 ​ (1) 에덴의 상실 ① 에덴의 특징 영원한 시간, 무시간의 세계 거리가 없는 무한한 공간 생로병사가 없는 곳 완전한 행복, 욕망, 결핍이 없는 곳 인간과 타자가 공존하는 세계, 이성보다 감성의 세계 ② 에덴의 상실 성서적 설화, 금단의 열매 선악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적 사고의 상징물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지혜(이성)의 욕구 이성적 욕망의 선택과 감성적 삶의 상실 이성(지혜)의 선택은 인간중심주의로의 전환(신중심에서) 신, 인간, 자연의 공존질서 붕괴, 죽음과 저주, 신과 단절, 진리의 부재 치열한 투쟁의 세계, 카인과 아벨 시간 공간의 유한한 세계내 존재(하이데거),허무, 절망 ③ 이성의 타락과 인간의 절망 이성의 두 얼굴- 하나님 말씀 같은 logos적 보편적 이성과 이성,양심 물질적, 인간적 욕망을 계산하는 도구적 이성 이성의 타락- ‘말씀’같은 보편적 지혜인 logos 보다 물신주의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 이성의 도구화, 이성의 물화(物化), 폭력화 폭력화된 이성, 인간성 상실, 주체와 타자의 분리, 물신주의, 빈부 격차, 불평불만, 방그라데시의 행복 지수 서열주의, 개인마저 소멸, 절망의 실존상 ​ 나무도 없는 산정이다 여윈 등성이 한줄기 바람 고목의 가지가 바르르 떤다 ​ 허공을 향한 무위한 응시 영겁을 더듬다 지쳐버린 침묵 사나운 부리가 언덕을 치닫는다 마지막 심장마저 노리는 두려운 대낮 벼랑에 매달린 아슬한 절망이다. - 자작시 「산정에서」에서이상, 거울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없을것이오 ​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귀가있소 ​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거울때문에나는거울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의 “거울” ​ (2) 에덴의 회복 ― 구원의 길 ① 구원의 본질적 구조 실낙원 → 복락원 지상(인간) → 천당(신) 유한한 시간 → 영원한 시간 분리된 공간 →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 죽음 →영생 불안 → 평화 절망 → 희망 신과의 회복, 진리의 회복, 참 존재와의 만남, 구도의 길 ② 인간으로서 구원은 불가 불교-제행무상, 기독교-죄의 값은 사망 키에르케고르- 실존의 세 단계 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종교적 실존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초월은 신의 영역(인간의 영역이 아님) ③ 인간으로서 가능한 길 불교-참선수행, 기독교-신의 은총과 믿음으로 상상을 통하여 분리된 공간에서 너와 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느끼는 사고 물화(物化)- 내가 네가 되는 것(인간의 사물화․ 신격화) 육화(肉化)- 네가 내가 되는 것(사물의 인격화, 신의 인격화) 이성 → 감성(동일시, 상상, 시적 구원의 가능성) ​ 그렇게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면 산다고 뭉쳐서 덩어리져서 푸르딩딩 버티면 산으로 남으면 산다고 산은 말하고 있었다 뭉치자고 덩어리지자고 이렇게 웅크리고 잔뜩 웅크리고 버티자고 산은 산들에게 산은 산 것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박의상 「산 1」에서 ​ 아무도 안데려오고 무엇 하나 들고오지 않은 봄아, 해마다 해마다 혼자서 빈손으로만 다녀가는 봄아, 오십년 살고나서 바라보니 맨손 맨발에 포스스한 맨머리결 정녕 그뿐인데도 참 어여쁘게 잘도 생겼구나 봄아, - 김남조 「봄에게」에서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시조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 먼 별에서 별에로의 깊섶 위에 떨꿔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박두진의 “꽃”     존재탐구와 시적 구원 시정신을 찾아서2 ​ 홍문표 ​ (1) 자아의 존재인식 ① 인간의 길 인간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인간의 정체성)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나의 정체성) 자연, 세상 등 존재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자연과학적․인습적 참모습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깨닫고 느끼는 실존적 참모습은 무엇인 가 인간은 삶의 정당한 것, 궁극적인 것, 가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는 존재 ② 나(인간)는 어떤 존재인가 불교- 인연의 존재, 무상의 존재 유교- 음양오행의 운명적 존재 기독교- 피조물, 타락한 죄인의 존재 프로이드- 욕망의 존재(이드, 이고, 슈퍼이고) 사르트르- 인간(대자), 자연(즉자)의 부조리한 존재 하이데거- 인간은 존재 망각의 과정 ③ 불완전한 결핍의 존재 ​ 흘러도 흘러도 바다를 향한 춘향의 丹心 ​ 하루도 열두 때 걸신들린 갈증이게 하소서. ​ 분화구로 치솟는 불만의 식욕이기에 강물은 늘 들녘을 적시고 시간을 적시고 서러움을 적시고 이 바스락거리는 목숨을 적시고 ​ 정갈한 낮이면 하늘 언저리 순진한 감색자락 입에 물고 찝질한 사랑가도 불러 봅니다.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2」에서 ​ (2) 참존재는 어디 있는가 ① 존재의 은폐성 이러한 질문은 참모습, 참진리가 은폐되었다는 것이 전제된다. 종교적 은폐성- 본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요 1:18) 하나님, 절대자의 은폐성 ② 존재의 가변성 모든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변함, 참모습의 변질(본질의 상실, 변질) 골드만의 「숨은신」- 보편성의 상실 니이체- 신은 죽었다 ​ 신을 찾는 것 본질을 찾는 것 진실을 찾는 것 가치를 찾는 것     5 참을 밝히려는 노력       ​ ③ 시인의 길, 시의 궁극적인 목표, 가치 ​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별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꽃밭의 독백」 ​ (3) 참존재와의 만남 ① 존재와의 만남은 불가능한가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낙관주의) 과학- 물질적인 존재발견(가설과 증명) 철학- 우주와 인생의 존재발견(사유) 종교- 신앙생활(득도, 체험) 불가능하다(허무주의) ② 만남의 방법과 조건 만남의 조건- 소통이 가능해야 함. 소통을 위해서는 소통의 통로 코드(code), 계시물, 중개자필요. 전열기와 전선 무당 신(신의 코드)과 인간(인간의 코드)의 근본적 단절(코드가 다름) 천상과 지상, 참존재와 현실 소통 불가능은 코드가 다르기 때문 코드를 일치시킬 수 있다면 소통이 가능- 만남, 깨달음, 득도, 구원 일반종교 : 인간의 노력으로 신적 코드 가능(상향적) 불교 유교 기독교 : 신의 사랑에 의한 하향적 코드(인자, 육화) 시의 원리- 상상과 이미지에 의한 코드의 발견과 소통 ③ 소통과 만남의 원리 주체 - 코드 - 객체 화자 - 메시지 - 청자 신 - 계시물 - 인간 하나님 - 예수 - 인간 시 - 이미지 - 시적 진실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 ④ 존재증명의 유일한 수단 하이데거- 은폐된 존재를 발굴하는 유일한 수단은 언어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 그런데 참다운 존재는 이성적 언어, 산문적 언어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휠더린의 시, 반 고호의 회화가 오히려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시적인 언어). 직관과 영감- 직관이란 논리적인 유추를 통해서 사물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 에 잠재되었던 체험이나 이미지가 돌발적으로 노출되면서 놀랍게 사물의 존재성을 발견하 는 방식이다. 이를 달리 영감(inspiration)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이것을 시신(詩神)이 접 신 되어 작용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 (3) 시적 구원의 길 ① 종교적 구원 불교- 종교적 구원이란 불교의 경우, 번뇌와 무상의 사바에서 벗어나 성불이 되는 경지다. 이러한 과정에는 고행이 있고, 깨달음의 과정에 법열이 있고, 마침내 아트만(atman), 즉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경지와 해탈이 있다. 기독교- 아담의 원죄는 에덴의 타락, 신과의 단절, 죽음인데 신의 사랑으로 예수의 현현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를 믿음으로 구원된다. 이 과정에 성령의 역사하심, 충만함, 영혼의 자유, 영생이 있다. ② 구원의 본질 ― 영혼과 육체의 치유 불완전에서 완전, 유한에서 무한, 무지에서 깨달음, 절망에서 희망, 구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감정, 인식- 삼매경, 법열, 입신, 엑스타시(extacy) 신명, 충만함, 카타르시스, 영혼의 치유, 육체의 치유(대체의학, 마음이 육신을 지배하고 치유한다) ③ 시적 구원 물아일체, 깨달음, 초월의 경지, 새로운 명명, 새로운 세계의 창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과 기쁨, 해탈, 자유. ​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고 너는 내 욕망의 무지개가 되어 내 손에 가득한 장미가 되어 흐르적거리는 육질의 껍질을 벗고 날마다 비상하는 오월이 되어 육자배기로 돌아가는 자유가 되어 현재로 자족하는 서정시가 되어 아스라히 펄럭이는 깃발이 되어 ​ 존재의 뿌리가 되어 존재의 가지가 되어 존재의 존재가 되어 - 자작시 「늘 푸른 강물이듯이 17」에서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고요 바람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힌 새들, 졸음에 겨운 황금빛 맹수 진실처럼 무정한 수정 숲속의 환한 빈터에 찾아온 가을,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곳 아침이면 샛별같이 눈에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맛 없는 거짓 이승의 거울, 저승의 문 한낱 바다의 조용한 맥박 깜박거리는 절대 사막   - 옥따비오 빠스 「너의 눈동자」  
1027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1 댓글:  조회:122  추천:0  2019-10-24
1. 시학의 길 ​ ​ 홍문표 ​ (1) 시학의 개념 ① 시학의 의미 시학(poetics)이란 시에 대한 학문이다. 법학이 법에 대한 학문인 것처럼, 시학은 시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이며 객관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거기엔 엄격한 이성의 사고와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② 시학의 어려움 그러나 시는 과학의 대상처럼 고정적인 물질이거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제작된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논리나 이성을 초월한 상상과 정서를 통하여 표현된 창조적 산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논리적인 대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떤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③ 인생관과 시관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논리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시인들도 시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마다 시적인 체험과 인식을 토대로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의 정의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엘리어트는 시의 정의에 대한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고 지적하면서, 시의 정의를 논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④ 시학의 정당성 그러나 인생관이 분명하지 않은 자의 삶이 무가치, 무책임한 것처럼 시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신념과 비젼이 없을 때 그는 다만 언어를 희롱할 위험이 있다. 시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분명한 시관이 있고서야 전문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2) 시학의 방법 ① 종합주의와 다원주의 산 밑에 있을 때는 자기가 오르려는 산봉우리 아니면 몇 그루의 나무만 보인다. 그러나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이고 여러 개의 산이 있음도 알게 된다. 학문의 길, 시학의 길도 보다 많이, 보다 높게 산에 오른 자가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시를 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의 길도 그렇다. ​ 발치엔 질퍽하게 밟히는 아카시아향 중턱엔 천년 침묵의 속살을 후벼대는 쑥국새 정수리에 오르니 하늘문이 열리네. ​ 무질근한 일상을 털고 신발끈 조여매고 허위허위 오른 산길 엉클어진 호흡을 내뱉으며 한 시간을 버틴 결심 팔각정에 앉으니 하늘 복판에 내가 있네. ​ 손 끝에 잡히는 새하얀 낮달 싱싱한 햇살 몇 두룸 소나무 잔가지에 걸어 놓고 눈을 감으니 사르르한 이브의 눈짓 세상이 온통 꽃밭이네 - 자작시「날마다 산에 올라․5」 ​ ② 장님과 코끼리 시의 이성적 접근 방식으로 인도에서 전해지고 있는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일화를 들고 싶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구경한 소감은 경험한 조건에 따라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시학이나 문학비평에 다양한 이론과 논쟁은 결국 어느 한 편만을 보고 주장한 편견의 역사다. 그러나 그들의 소감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본다면 어느 정도 코끼리에 근사한 모습을 추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에 몽타주라는 수법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부분적인 인상을 들어서 이를 종합하여 실물과 유사한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다. 시학이란 결국 시적 체험들의 논리적 종합이고, 시적 인식들의 객관적 몽타주이다. 거기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론들의 종합적인 정리가 있어야 하고 작품 속에 나타난 구조의 원리를 발견해야 하는 분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광범위한 시론의 정리와 작품의 분석을 통한 끝없는 모색과 논의가 가장 정직한 시학의 접근 방식이다. 흄은 보편적 지식의 유일한 토대는 경험과 관찰이라고 했다. 물질적 영역은 실증주의, 정신적 영역은 경험주의다. ​ (3) 에이브럼스의「거울과 등불」 ① 문학의 기본적인 구성조건 시학에의 접근방식은 물론 관점에 따라 무수히 열려질 수 있는 세계다. 그러나 아무리 시학의 영역을 확대한다 하여도 그 기본 문제는 작품 그 자체에 관한 것, 작품을 창조한 시인, 작품을 읽는 독자, 그리고 작품과 시인과 독자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세계, 즉 우주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에이브럼스는 그의 문학 이론서인「거울과 등불(The Mirror and The Lamp)」에서 예술 작품을 형성하는 네 요소를 들어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술 작품이란 소재와 사건 또는 환경적인 요인이 될 수 있는 우주(universe), 예술가(artist), 그리고 청중(audience)이 삼각을 이룬다고 하였다. ​ 우주(모방론) 작품 (존재론) 예술가(표현론) 청중(효용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작품과 그 대상인 우주와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모방론(mimetic theory), 작품과 독자와의 실제적 효용관계에서 전개되는 실용론(pragmatic theory), 작가의 내면적 정신, 영혼, 상상, 정서 등의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는 표현론(expressive theory), 작품을 어떤 외부적 사항과 독립시켜 오직 작품 그 자체만의 객관적 존재로 논의되는 존재론(objective theory)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이해나 해석을 작품 외적인 조건과의 총체적인 관계성에서 파악하려는 자세와,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는 입장은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 (4)모방론의 시관 ① 모방론의 의미 거울의 시학- 모방론이란 거울처럼 우주, 자연,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을 거울처럼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에이브럼스는 거울의 시학이라고 했다. 무엇에 대한 시학-따라서 시나 예술이 작가에 의하여 표현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부분이 바로 무엇(object)을 표현하느냐 하는 문제다. 오랜 전통- 모방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라든지 플라톤이 “지상의 모든 현상은 본질(idea)의 모방”이라는 고대의 문학관에서 시작하여, 고전주의나 근대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력한 문학의 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② 모방론의 유형 플라톤의 모방론- 플라톤의 견해처럼 모방이란 진리나 본질과는 무관하고 무가치한 현상을 흉내내는 정말 거짓의 모조품(imitation)이란 생각이다. 현상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술은 바로 진리의 그림자인 현상만을 흉내낸다는 데 모방의 부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은 그의 철인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추방설을 제기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이란 모든 예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또한 즐거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방은 관념의 세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세상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진실을 삶의 현실에 내재한 것으로 보았다. 모범에 대한 모방- 모방은 문학적 모범에 대한 모방을 뜻했다. 이것은 작가의 글쓰는 훈련을 강조한 로마시대 이래 지속되는 개념이다. 이른바 고전이 후배 작가의 모범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믿어지고 있다. 고전주의나 복고주의도 그러한 발상이다. 재현과 반영- 근대에는 모방론이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이는 우주적 본질의 모방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말이다. 이는 특히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발전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근대문학은 인간의 본질, 실재보다도 눈에 보이는 사실의 표면을 충실히 보여주는 일에 주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재현은 다시 반영이란 말로 바뀌었다. 반영의 경우에는 사실의 반영보다 현실의 반영에 주안점을 두었고, 현실은 또한 역사적 현실이나 모순된 현실 등 비판적 관점에서 비판적 사실주의 계급주의에서는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제기된다. ​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5) 효용론의 시관 ① 효용론의 의미 문학의 존재이유- 문학도 인간의 것이라고 할 때 작품은 필연적으로 작가는 물론 독자와도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기 마련이다. 즉 작품은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작품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서 생각할 때 문학은 독자에게 어떤 효과를 준다는 효용성이 제기된다. 심리적 효과와 교훈적 효과- 독자에 대한 효과는 크게 보아 독자의 감정을 움직인다는 심리적 효과와 삶에 유익한 지식이나 도리를 알려준다는 교훈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다. 끝없는 논쟁- 문학의 존재성을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 심리적인 것인가. 윤리적인 것인가. 오락적인 것인가. 교훈적인 것인가.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문학의 존재이유는 늘 논쟁거리가 된다. ② 효용론의 전개 시인추방설과 시적 카타르시스- 일찍이 플라톤은 시인이란 본질(idea)을 추구하지 않고 본질의 그림자인 현실을 모방하고 쾌락을 조장하는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유익한 교훈적인 시만은 인정한다고 했다. 교훈설의 선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행복의 속성이라 했고, 유덕한 생활이 바로 쾌락이라고 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도 쾌락이라 했다. 그러나 비극시에서 보듯이 모순되는 두 정서, 공포와 연민을 통해 마침내 평형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그는 쾌락이란 말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란 심리적 정화작용이다.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닲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한일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 독자중심의 문학론- 그동안의 문학은 작가가 독자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하는 작가 중심적 문학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작품의 존재성을 독자가 결정하는 논리로 전환했다. 이는 오늘날의 상품은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같다. ​ (6) 표현론의 시관 ① 표현론의 의미 등불의 시학- 모방적 시관이 시는 자연을 반영하는 거울로 설명되고, 효용론적 시관이 시는 독자에게 어떤 실제적 효과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표현론의 시관은 시인의 내면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입장이다. 예술 작품이란 근본적으로 내면 세계의 구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과정은 시인의 지각이나 사상, 감정 등이 결합하여 구체화된다. 따라서 표현론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는 등불의 시학이 된다. 낭만적 시관- 표현론의 중심은 물론 낭만주의이겠지만 고대에는 시인의 창조적 기능을 신비적인 영감의 산물로 보려 하였고, 근대에 와서 워즈워드의 정서의 자발성이나 코울리지의 상상설이 대표적이며 동양에서는 詩言志나 詩氣論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② 표현론의 전개 영감과 창조- 표현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근대 낭만주의시대이지만 시가 시인의 내면적인 특성으로 창조된다는 생각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플라톤은 시를 특별한 영감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인이란 신령한 힘에 접신된 상태에서 그의 입을 통하여 말, 즉 시를 토해내는 것이라 하였다.「대화편」이온에서는 그것을 시신(muses)이 준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시의 영감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시는 영감을 받은 물건이라든지 시의 기술이라는 것은 천부의 재주를 가진 자 또는 광기가 있는 자가 가질 물건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후대의 천재론과 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영감론을 비판하고 문학이란 후천적 연마의 소산이라는 기술(art)론을 제기하였다. 로마의 실용적 사고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다. 워즈워드의 자발성- 시신의 영감을 받아서 시를 쓴다거나, 시인은 보통 사람과 달리 특별한 재능을 지닌 천재라는 논의는 마침내 문학의 보편적인 법칙성을 극복하고 창조적 개성이니 독창성이니 하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워즈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란 감정의 자발성(spontaneity)에 의한 흘러 넘침(over flow)이라고 했다. .코울리지의 상상력- 내면의 표현은 결국 상상력으로 구체화된다. 해즐리트는 시는 오직 상상의 언어라고 했고, 코울리지는 상상은 시적 능력이고, 시적 능력은 곧 시인이라고 하였다. ​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때를 날려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 (7) 존재론의 시관 ① 존재론의 의미 존재의 의미- 한 사물이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드러날 때 이를 존재(being)라고 한다. 물론 존재의 본질적 개념은 비유(非有)나 무에 대한 대립 개념이며 상징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을 점하고 있는 실재물이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의 존재란 작품 그 자체라는 의미이며, 이는 객관적(objective) 또는 형식적(formal) 관점에서의 인식이기도 하다. 존재론의 문학관- 문학 작품이 작가에 의하여 제작되고 독자에 의하여 인정된다 하더라도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지니며 독특한 미학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작품의 고유한 존재 양식의 구조를 통해서 문학을 인식하려는 것이 존재론(objective theory)의 관점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존재론은 작가가 한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 설명된 내용(paraphrasable content), 즉 이야기 되어진 무엇(what)이 아니고 어떠한 방법(why)으로 이야기 되었는가 하는 표현방식이 문제가 된다. 형식화와 형상화- 작가는 작품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작품 제작이라는 커다란 종합화, 즉 형식화의 과정을 충족시키는 부분들이다. 작품 속에서의 사상 감정이란 다양한 의미 구조일 뿐이며 그것이 형식화되지 않으면 작품이란 전체 속에 참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상과 감정은 형식을 통해 형상화된다. ② 존재론의 전개 처음․중간․끝-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완전한 전체는 처음, 중간, 끝이 있는 것이다. 처음은 필연적으로 그 앞에 아무것도 따르지 않되, 그 뒤에는 다른 것이 자연히 따르는 것을 말하고, 끝은 그와 반대로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것을 따르되 그 뒤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중간은 무엇을 따르고 동시에 뒤에 무엇이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플롯을 엮는 사람은 아무데서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다. 유기적 형식- 낭만주의 시대 문학관은 다양성과 통일성, 생명적, 역동적인 형식을 말했는데 쉴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형식만이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움의 최고 이념은 ‘사실과 형식의 완전한 결합과 균형’이라고 했다. 여기서 유기적 형식이란 전체와 부분이 생명체와 같이 긴밀한 조화를 갖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형식- 현대에 와서는 형식이란 말보다 구조라는 말을 사용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영미 신비평, 프랑스 구조주의 등 일련의 형식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하는 내적 질서로 본다. 내적 질서에 대한 용어로는 랑그(lange), 아이러니(irony), 역설(paradox), 긴장(tension), 낯설게 만들기, 전경화 등의 말들을 사용한다. ​ 한 개의 원이 굴러간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 꽃잎들...... 금빛의 수밀도만한 세 개의 원이 천 개의 원이 굴러간다. ​ 신의 눈알들이다. 어떤 눈알은 모가 서서 삼각형이 되어 쓰러진다. 어떤 눈알은 가로 누운 불기둥이 되어 뻗는다. 한 개의 원이 8월 한가위의 달만큼 자라서 굴러간다. 문덕수의 「원에 관한 소묘」     사물 인식의 두 방법 ​ 홍문표 ​ 1. 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 (1) 국화와 누님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시인의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인식과 언어적 표현이란 말은 결코 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도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진리를 언어로 기술하는 점에서 시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시가 구분되고 철학과 시가 구분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다음 두 글을 보자. ​ ㉠ 국화 : 명. 식물. 엉거시과에 속하는 식물. 줄기는 나무질화 하며 잎은 대개가 깊이 찢어지고 품종이 다양함. 꽃의 빛깔이나 모양도 여러 가지여서 대국. 중국. 소국으로 나눠지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누기도 함. - 현문사「한국어 대사전」에서 ​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국화 옆에서」 ​ ㉠의 문장 :국화에 대한 객관적, 사전적, 학술적 서술 국화의 생태, 종류, 특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 ㉡의 문장 : 국화에 대한 시인 자신의 주관적 견해, 비과학적 서술 국화꽃과 소쩍새, 국화와 누님, 과학적으로 전혀 무관 그러나 시인은 모든 현상들이 유기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 주관적 인식 ​ (2) 주관과 객관 ① 인간의 의식 작용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이란 언제나 움직이는 에너지다. 만일 의식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어 있거나 잠자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이고, 깨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의식의 움직임은 밖으로 나아가려는 원심력과 안으로 들어가려는 구심력으로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이렇게 의식이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 원심력은 기존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인식이고 구심력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준에 의한 인식이 된다. 이를 객관과 주관이라 한다. ② 과학자의 의식 작용 : 원심적, 객관적, 사회적, 역사적, 물질적, 실증적, 추상적, 합리적 ③ 시인의 의식 작용 : 구심적, 주관적, 개인적, 개별적, 정신적, 구체적, 정서적, 심정적 ④ 객관적 인식의 특징 : 일회적, 지적, 현실적, 실용적, 물질적, 침묵적 ㉠의 문장 ⑤ 주관적 인식의 특징 : 생명력, 영원성, 충만함, 행복감, 감동적 ㉡의 문장 ​ 2.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1) 감성과 이성의 본질 인간은 근원적으로 이성(logos)과 감성(pathos)을 공유한 존재다. 그런데도 문명사는 이성, 지혜, 지식, 합리성, 과학성의 우월성만을 강조, 이성만능주의, “아는 것이 힘이다” 감성적 기능을 경시 (2) 좌뇌와 우뇌 최근의 뇌과학- 좌뇌와 우뇌의 기능분석, 좌뇌-이성적 기능, 우뇌-감성적 기능. 두뇌의 좌측을 상한 사람은 이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우측을 상한 사람은 감성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좌뇌를 상하면 수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뇌를 상하면 눈물이나 웃음을 모르는 목석 같은 인간이 된다. 좌뇌는 사물을 판단하고 계산하고 추상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우뇌는 척추신경과 더불어 느끼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즐거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근의 천재교육- 우뇌를 키워라,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이는 것 (3) 현대인 비극 신은 우리에게 좌뇌와 우뇌를 균형있게 개발하여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삶을 향유하도록 축복하셨다. 그런데 인간들은 좌뇌만 개발하여 이성적 사고, 이성의 문화에만 치중한 정신의 반신불수, 불구자의 삶을 살게 된다. 지식, 기술, 이성만을 중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인간의 물질적, 기술적, 지적, 권력 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목적으로만 수행되어질 때, 세상은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을 만듦.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음. (4) 시는 감성적, 주관적 세계 인식 시란 이성 중심에서 감성 중심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하여 이성중심의 불균형의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균형적 삶을 회복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로 불 밝혀 가야 하는 땅이 보인다. 세상을 다 받아들고도 비어 있는 손 잠들지 못하는 나라 산맥이 일어서고 골짜기가 깊다. 강물이 꿈을 꾼다. 바다가 깨어 있다. 미래의 내 음성이 들리는 곳 손바닥 깊이 들어가면 고요하다. 이 고요한 길속에 길이 엇갈려져 끝이 없다. 혼돈과 창조의 거센 바람소리 우주의 숨소리 밤하늘 별의 운행이 화안히 비친다. 모두가 죽어 여기 돌아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항시 침묵으로만 말하는 내 미지의 손이여. 이 깊은 신비의 기슭에서 누군가 밤마다 내 영혼을 향하여 활을 쏘고 있다. - 이성선「손의 명상」 ​ 3. 과학적 진실과 시적 진실 (1) 과학적 진리에 대한 우상 과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에 이성중심의 인간들은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나 지식의 세계는 개개의 구체적인 실존이나 리얼리티를 무시하고 이들의 공통된 속성만을 축출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추상화한다. 그것은 존재의 다양성이나 존재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평균적인 것이며 산술적인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0세라 한다. 이는 매우 과학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꼭 80세, 일 분 일 초도 틀리지 않는 만 80세 정각에 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평균 수치로 그러한 결론을 추상할 뿐이다. 이처럼 개개의 존재들에 대한 실체가 사멸되고 추상화된 기호만 남는다는 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망각’이며 릴케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개의 사물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의 세계는 개별성, 특수성, 내면성, 영혼의 세계가 무시된 한 쪽만의 세계일 뿐이다. (2) 진리와 패러다임 최근에는 같은 과학이라도 관점이나 구성방식, 해석과정에 따라 그 진실성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인 요소들의 의미는 그 전체의 방향과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쿤은 이와 같이 개별적인 구성요소의 의미를 결정하는 전체적 관점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하였다. 가장 분명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전기를 파장(波長)으로 보지만 화학에서는 미립자(微粒子)로 보는 것이다. 즉 어떤 패러다임이냐에 따라 과학에서조차 진실은 천의 얼굴을 갖게 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패러다임조차 애당초 존재한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지식만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지닐 수 없으며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이며 오히려 주관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만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일정한 패러다임이라는 범주 내에서 논리성을 지녔다는 뜻일 뿐이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바뀔 경우 객관성이나 논리성은 함께 상실되거나 변하는 것이 과학적 진리의 서글픈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3) 시적 진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진리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즉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고, 종교적 진실은 종교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며, 시적 진실은 시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 아니라 종교적 진실도, 시적 진실도 각각 그들 나름의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 마다 달이 지는데 ​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 조지훈「승무」에서 ​ 우리의 전통무용 중에 승무(僧舞)라는 춤이 있다. 고깔 쓰고, 장삼 입고, 때로는 법고를 두드리며 춤을 춘다. 명칭 그대로 승무는 불가의 승려들이 추는 춤이다. 그런데 실제로 나이든 남승들이 추는 승무를 보면 좀 투박하고 지루한 느낌이다. 그런데 조지훈의 시「승무」를 읽노라면 승무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춤사위에 사로잡힐 뿐만 아니라 세사에 시달린 우리들의 번뇌마저 벗어나는 듯한 황홀경에 빠지게 된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승무가 대수롭지 않은 춤인데 감성적으로 표현된 시「승무」를 통해 보면 황홀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성적 사고 속에 매몰되어 있던 승무의 의미가 이처럼 시인의 감성적 언어를 통하여 이른 봄의 개나리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꽃의 향기를 구부려 꿀을 만들고 잎을 구부려 지붕을 만들고 머나먼 비단길을 구부려 낙타 등을 만들어 타고 가고 입 벌린 나팔꽃을 구부려 비비 꼬인 숨통과 식도를 만들고 검게 익어가는 포도의 혀끝을 구부려 죽음의 단맛을 내게 하고 여자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만드는 동안 곧은 약속을 구부려 반지를 만들고 - 송찬호,에서 ​ 구부리다라는 단순한 낱말이 이처럼 낯설게 사용되어 우리 정서를 얼마나 세련되게 하며 공간과 시간 또 다른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고 확장하여 정신의 깊이와 폭을 넓혀가고 있는가? 또한 개념적인 낱말들이 구부리다라는 한 시어 속에 들어가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얼마나 폭 넓은 감동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가? 정보 언어와 유통언어에 물든 관습적인 기존 가치 세계를 뒤집고 한 번도 여행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끝없는 상상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가?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 홍문표 ​ 1. 시는 감성 감정 정서의 세계 (1) 미묘한 감정 감성 감정 정서 마음 등의 용어들을 실질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오감을 통해 느끼는 순간적 감각적 인식이다. 이성의 세계, 지식의 세계는 한 번 습득하면 영구적이지만 감성의 세계는 순간 느꼈다 사라지는 감각이다. 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순간순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늘 변할 수 있는 예민하고 미묘한 세계다. ​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김광섭「마음」 ​ (2) 감정과 카타르시스 이원론과 서열주의- 플라톤이래 본질과 현상,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이원화하여 본질, 정신, 이성 등에 우월한 것으로만 서열화하여 감성적 예술, 시 경멸했다. 그러나 감정은 해방감. 행복감, 만족감, 충만함을 주는데 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자극을 받는가에 따라 신체의 각 기관이 다양하게 반응하고 이에 따라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라움, 그리움, 사랑스러움 등의 정서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시끄러운 소리는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는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짜증스런 기분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나 경쾌한 리듬은 소화기능을 돕고, 즐겁고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카타르시스는 바로 스트레스 해소 육체적 건강에 지대한 효과- 시치료, 문학치료(대체의학)의 원인이 됨 ​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 줄 쓰고 싶다. ​ 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심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 ​ 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이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 ​ 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 순리를 씹으며 고독을 씹으며 풋내를 씹으며 ​ 바람처럼 살다가 강물처럼 살다가 청산에 붙어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자작시「나무가 되고 싶다」 ​ (3) 가슴의 세계 정서는 지성적인 사고와 지식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머리의 세계가 아니라 충격과 놀라움과 뜨거움으로 느끼는 가슴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가슴의 세계란 비유적 표현이고 과학적으로는 뇌와 중추 신경의 작용이다.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은 칸트의 혈관에는 이성이라는 맹물이 흐른다는 말을 했다. 드퀸시는 지식의 문학과 힘의 문학을 구분한 바가 있다. 지식의 문학은 가르치는 것(to teach)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힘의 문학은 감동시키는 것(to move)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지식의 문학은 언제나 유용성을 따지고 논리를 따지고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살피며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힘의 문학, 즉 시의 세계는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모든 것을 품는다. 그리움과 슬픔과 사랑과 황홀함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며는 내 가슴은 뛰누나 내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고 늙어서도 그렇기를 바라노니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리. - 워즈워드의「내 가슴은 뛰누나」에서 ​ (4) 정서의 훈련 정서의 의미- 리쳐즈는 정서를 일종의 유기적 혹은 전신적 감각이라고 하였다. 제임스는 자극이 되는 사실을 지각한 뒤를 따라 신체적 변화들이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의식이 곧 정서라고 하였다. 시인과 예술가와 악기- 정서란 악기와 같은 것이다. 특히 예민한 현악기와 같은 것이다. 가야금이나 바이올린은 반드시 그 예민한 줄을 자극했을 때만 소리가 난다. 뿐만 아니라 악기는 잘 다루면 다룰수록 그 소리가 더욱 예민하고 예술적이다. 명기(名器)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장인이 만든 소리가 뛰어난 악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명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기도 같아서 잘만 길들인다면 좋은 명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은행나무 그늘엔 노오란 음부(音符)들이 떨어진다. ​ 은행 이파리들에다 내 귀여운 어휘들을 적어 본다. ​ 적어 놓은 어휘들은 제법 노오란 발음들을 한다. - 양명문「은행나무 산조」에서 ​ 2. 감정의 구체적 표현 (1) 사랑의 묘약 ① 감정의 구체성 감정은 순간순간의 느낌이기에 보다 구체적일 때 보다 효과적인 속성이 있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란 너무나 미묘하고, 어떠한 경우도 동일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랑의 실존이고 진실이다. 따라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추상적으로 또는 막연한 언어로 기술한다면 이는 사랑을 느끼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 ② 춘향전이 위대한 이유 ― 구체적 표현 ​ 월하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옥란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南倉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옥장(銀藏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떠 노는 사랑, 년년 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양귀비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 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 「춘향전」에서 ​ ​ ③ 사랑의 묘약 감정은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어서 한 가지 대상에 대해서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감정은 가장 주관적이며 개별적인 것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주관적이란 말은 사물을 공통된 것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특성을 구별하여 보는 것이며 이는 개별적인 존재성을 중시하는 시적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 윤동주 「소년」에서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라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 김수영 「사랑」에서 ​ (2) 사물의 구체화 ① 시간의 구체화 봄 - 이른 봄 - 이른 봄날 - 이른 봄날 아침 - 이른 봄날 아침 동트는 시각 ② 공간의 구체화 무덤 -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할머니 무덤 - 망우리 언덕 사철나무 아래 할머니 무덤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김소월 「금잔디」 ​ 공간 - 잔디 → 금잔디 → 심심산천 →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시간 - 봄 → 봄빛 → 버드나무 끝 → 실가지 봄 → 봄빛 → 봄날 → 심심산천 → 금잔디 ​ ③ 예수와 바울 ― 구체화와 감동 바울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예수 :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 (3) 시의 원근법 ① 원근법의 표현 ​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 두 구비를 ​ 청노루 맑은 눈에 ​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 머언 산 → 청운사 → 느릅나무 → 청노루 → 맑은 눈 → 도는 구름 (최원경) (원경) (중경) (근경) (최근경) (심경) ​ ② 구체적 공간과 시간 ​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성삼문 「이 몸이 죽어가서」 ​ 죽음의 공간화 - 봉래산 - 제일봉 - 낙락장송 죽음의 시간과 공간 - 백설(겨울 시간) - 만건곤(공간) - 독야청청(의미공간)   감정과 지성의 조화 홍문표 ​ (1) 지나친 감정 표현 ① 감정의 여러 모습 미묘한 정서는 시시각각으로, 분위기에 따라서 무수히 변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상황이나 대상의 변화에 따라 정서는 천태만상이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일곱 가지 정서, 즉 칠정(七情)이라 하여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이라는 정서의 유형을 말한 바가 있고, 러스킨(J. Ruskin)은 사랑(love), 존경(venernation), 찬탄(admiration), 기쁨(joy)과 이에 대응하는 미움(hate), 분노(indignation), 공포(horror), 슬픔(grief) 등 여덟 가지 정서를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시인은 상황에 따라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늘 한가지 감정만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지나칠 경우는 센티멘탈리즘이 되지만 적절할 경우는 시인의 독득한 개성이 된다. ② 1920년대 센티멘탈리즘 1920년대 「백조」, 「장미촌」 등의 동인지를 중심으로 감정이 중시되는 낭만주의 사조가 유행하였는데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3․1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세기말 사상 등으로 이 시대 낭만주의 시들은 실망, 좌절, 허무, 이별 등 어두운 감정을 주로 하는 경향이었다. 이를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한다 ​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아 - 밑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아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말세의 희탄」 ​ 바람아, 오― 폭풍아 흑풍아 그 불꽃을 불어 날려라 쓸어 헤치라 몰아 무찔러라 ​ 오, 위대한 폭풍아 세계에 충만한 그 불꽃을 오, 그리고 한없고 끝없는 허무에 춤추어 비치라. - 오상순 「허무혼의 선언 ​ (2) 1930년대 ‘시문학파’의 밝은 감정 그러나 1930년대는 싱싱한 자연을 발견하면서 다시 순수하고 깨끗한 정서로 어두움이 극복되고 밝은 하늘과 자연 속에 속삭이는 심정의 순수함을 보게 된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3) 1970년대 ‘민중시’의 부정적인 감정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게 되었고, 소외계층의 불만은 가진 자, 지배자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정서로 팽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자각은 민중의식이라는 이념과 행동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러한 의식에서 제작된 시를 민중시, 실천시 등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들 시의 공통점은 권력과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철저한 비판, 부정 개혁이었다. ​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정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상 두려운 하늘이다 ​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 박노해 「하늘」 ​ (4) 뜨거운 감정의 시 ​ 정서가 고정화될 때 정조가 되고 정조가 불건전할 때 센티멘탈리즘에 빠진다고 하였는데 감정이 지극하면서도 뜨겁게 타는 경지를 열정이라고 한다. 원래 열정을 영어로 패션(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통을 받는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고통을 감수하고 고통을 내재한 언어야말로 가장 값진 시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지는 사건을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즉 패션으로 표기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달게 받는 사랑의 경지야말로 열정의 최고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5) 절제된 감정 ① 모더니즘시의 실험 서구 문학사에서 낭만주의가 세기말 사상과 결탁하여 침울하고 병적인 퇴폐주의(decadanism)로 후퇴하였을 때 감정보다는 지성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가 발생했는데 이미지즘과 더불어 이를 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이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 감정을 감각적인 이미지 즉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내고자 했다. ​ ② 사물의 객관화 ​ 바다는 뿔뿔이 달아 날려고 했다 ​ 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 발렀다 ​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 흰 발톱에 찢긴 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 정지용 「바다」에서 ​ ③ 지나친 지성 그런데 모더니즘 시의 경우도 지나치게 지성적이어서 감동보다는 난해성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 ELEVTER FOR AMERICA 세마리의닭은사문석의층계이다.룸펜과모포 빌딩이토해내는신문배달부의무리.도시계획의암시 둘째번의정오싸이렌 비누거품에씻기어가지고있는닭.개아미집에모여서콩크리트를먹고있다. - 이상의 ‘대낮’ ​ (6) 감정과 지성의 등가 현대시의 두드러진 경향은 과거의 규칙적인 음성적 리듬의 시에서 개성적인 리듬의 시로, 과거의 지나친 주정적인 시에서 주지적인 경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주지적이라고해서 감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감성과 이성을 균형있게 배열한 감정과 지성의 등가(等價)의 시를 말한다. 엘리어트는 시란 감정과 지성의 등가물(等價物)이라고 하였다. ​ 가장 깊은 부리에서 아슴히 높은 정수리까지의 내 외로움을 사람아 너에게 드릴밖에 없다 동쪽 비롯함에서 서녘 끝 너메까지 한 솔기에 둘러 낀 하늘 가락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이 마음을 - 김남조 「雅歌」 ​ 새양철 지붕위로 쏟아지는 쇠못이여 쇠못같은 빗줄기여 내 어린날 지새우던 한밤이 아니래도 놀다 가거라 ​ 잔디 위에 흐느끼는 빗줄기여 늬맘 내 다 안다 ​ 늬맘 내 다 안다 내 어린날 첫사랑 몸져눕던 담요짝 잔디밭에 가서 잠시 놀다 오너라 - 조정권의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1’에서 ​ 몇 트럭씩 논밭으로 실려 나가는 묶인 고뇌와 고장난 시간들 ​ 지나다 보면 낯이 선 사투리들이 발길에 툭툭 채였다.   - 노향림의 ‘K읍 기행’에서  
1026    시詩를 잃어버린 아이들 /권정생 댓글:  조회:204  추천:0  2019-09-20
시詩를 잃어버린 아이들 권정생 (1937∼2007 아동문학가) 옥이네가 살던 절안골 외딴 곳에는 고만고만한 초가집이 네 집이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논밭에서 부지런히 농사지어 때 묻지 않고 착하게 살았다. 감자밥 보리밥이 그다지 싫지 않고 뭣이나 맛이 있고 따뜻했다. 옥이네 삼촌 내외만 빼놓고는 모두 삼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었다. 닭들이 울타리를 넘나들며 봄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고 개들이 텃밭을 뛰어다니고, 송아지도 함께 장난치며 다녔다.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들이 집 뒤꼍에서 무성히 자라고 맛있는 과일을 달아주었다. 십 리길이 넘는 장터에 장이 서면 아버지들은 올망졸망 장거리를 짊어지고 갔다. 해질녘이면 외딴집 아이들은 산모롱이까지 아버지 마중을 가서 갖가지 사온 물건들을 받아들고 깡충깡충 달려왔다. 이날 저녁은 모든 집에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나고 저녁상 앞에서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바깥세상 얘기에 정신이 팔린다. 호롱불 밑에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는 저절로 정신이 홈빡 빠지게 마련이다. 날라리 약장수 이야기, 동동구리무 분장수 이야기, 야바위꾼 이야기, 장터에서 일어나는 얘기는 밤이 깊도록 들어도 재미가 있다. 봄이면 온산에 진달래꽃이 피고 여름엔 산나리꽃이 피었다. 이쪽저쪽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깨끗해서 그냥 퍼마시고 미역도 감았다. 가재도 잡고 버들치도 잡고 쟁개미도 잡았다. 가을엔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열리고 여름엔 눈이 내리고 노루랑 토끼들이 집 마당까지 먹을 것을 찾아 내려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움 속에 묻어둔 배추뿌리도 깎아먹고 날무도 깎아먹었다. 좀 가난하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외딴집 마을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절안골 외딴집들이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그곳 아이들 말대로 하면 “대통령 아버지가 전깃불도 넣어주고 텔레비전도 넣어준댔어요.” 이렇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외딴집 아이들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에 국민 학교만 마친 채 도회지의 공장으로 뿔뿔이 떠났다. 개울 건너편으로 자동차 길이 뚫리고 못골 옆에 난 데서 온 사람이 목장을 만들었다. 옥이네 삼촌도 도회지로 떠나고 탄광 갔던 인수네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고 할머니만 남았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지금은 절안골 외딴집 네 집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 논밭들이 높은 값에 팔려나가자 근방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객지로 떠났다. 수정처럼 깨끗하던 골짝 물은 구정물로 바뀌어 지고 버들치도 쟁개미도 가재도 모두 사라졌다. 이용가치가 없는 골짜기 따비밭이나 다락논들은 가꾸는 사람이 없어 쑥대밭이 되었다. 베틀가나 물레노래를 부르며 길쌈을 하던 할머니도 없고 논매기 노래와 밭매기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할아버지 아저씨도 없다. 장날이면 술 취한 장꾼을 골탕 먹인다는 톳제비(도깨비)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외딴집 아이들은 뿔뿔이 헤어져 어디서 어느 기업체 사장님 밑에서 공장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더러는 원하지도 않는 어둔 뒷골목에서 타락해버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아버지가 약속했던 꿈같은 행복은 이렇게 절안골 아이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농촌에 아이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타의든 자의든 젊은이는 농촌을 마다하고 떠나갔고 아이들도 끌려갔다.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 오래 전에 여름 뒷산에 뻐꾸기도 울지 않고 꾀꼬리 소리도 듣기 어려워졌다. 산에는 새가 날아오지 않고 강물엔 물고기가 없고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노인들만 남아서도시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균제, 제초제—제초제가 아니라 살균제—를 뿌려 가꾼 쌀과 고추와 양파와 온갖 채소를 만들어낸다.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죽을 날짜를 세면서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농촌이다. 아이들은 시인이라는데 그 아이들을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게 하는 슬픈 현실은 무엇 때문이며 누구 때문인가. 아이들이 시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아이들을 시인이 되게 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새소리를 듣고 흰 구름을 보고,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짐승들과 벌레들과 어울려 땀 흘리는 고통을 배우고 따뜻한 생명들과 살을 비비는 삶이 있어야 한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과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마 비도 알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도 배우고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도 체험해야 한다. 시인은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져 가는 오늘날의 도시환경은 ‘죽은 시인의 사회’ 그대로다. 일회용품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아이들도 그 기계가 되기도 하고 일회용 싸구려 상품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책가방을 메고 똑같은 학교에 가서 똑같은 선생님께 똑 같은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똑같은 텔레비전에 똑같은 쇼를 구경하면서 크는 아이들은, 개성도 없고 하나같이 똑같다. 시를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죽은 인간으로 키워져 사고력도 행동도 획일적으로 되어버린다. 행여나 다른 아이와 다르게 될까봐 오히려 불안한 지경이다. 앞집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면 우리집 아이도 배워야 하고, 옆집 아이가 태권도를 하면 우리 아이도 태권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콘크리트로 된 똑 같은 집에 살며 친구보다 기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덩치만 크고 가슴은 그야말로 옹졸하기 그지없다. 가까운 친구를 사랑하기보다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평생 적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무슨 시심(詩心)을 키울 수 있겠는가. 자연에서 격리당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구태여 몇 줄의 노래를 읊어내는 시인만이 시인이 아니다. 농촌의 농부들은 모두가 시인이다. 그들은 생명을 만드는 온갖 것을 몸과 마음을 쏟아 부어 키워내기 때문이다. 씨 한 톨 심어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마음, 어미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기를 기다리는 마음, 보리 이삭이 패고 그 이삭이 알이 영글어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이런 마음만이 건강하고 힘찬 시를 낳을 수 있다. 자연스런 것은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만드는 것은 어쨌거나 만든 것이며 인위라는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계에서 해방시키고 콘크리트 벽속에서 풀려나야 된다. 흙냄새 거름냄새 풀냄새를 맡게 하고 새들과 짐승들과 얘기를 하도록 하자. 괭이질을 하고 지게를 지며 땀 흘리는 농군이 되게 하자. 그래서 시인으로 살게 하자. 똑같은 것을 흉내만 내는 인간이 되어 일생을 시체로 살게 버려두는 건 죄악이다.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시인으로 키우고 생명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살충제, 살균제, 살초제 같은 농약을 버리고, 두엄을 만들고 김을 매고 지게를 지는 튼튼한 농사꾼으로 크면, 강물도 살아나고 들판도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가 살고 새들도 날아오고 온갖 벌레들이 살아나면 도덕도 함께 살아난다. 도시의 물질문명과 기계 문명은 영혼을 망가뜨리고 온 몸뚱이의 기능마저 퇴화시킨다. 도시 아이들은 좌변기 말고는 똥도 못 눈다. 뜀박질은커녕 재대로 십 리길도 걷지 못한다. 장애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온갖 일을 기계에다 의존 않고는 못하는 게 지금 도시 사람들이지 않는가. 손으로 옷에 단추 하나 못 달면서 어머니 노릇한다는 건 말이 아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다. 어머니가 기워준 옷을 입고 자란 아이는 사물을 보는 눈에 사랑이 담기기 마련이다. 기계적인 감각에서 손의 감각과 대자연의 감각으로 뻗어나가면 결국 하늘을 발견하고 그 속에 아이도 하늘이 된다. 겨울의 눈보라와 여름 비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인간만이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 될 수 있다. ([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엮은이 김 훈 ‧ 안도현) |작법공부| 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절안골 사람들은 가난하였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후 절안골 사람들은 어떻게 황폐화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세 번째 부분은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독자는 굳이 작가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안골 사람들이 어떻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가를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주고, 새마을운동 이후 황폐한 절안골 사람 이야기도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눈에 선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너무도 절절한 이야기로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감동 먹기 때문이다. 논리적 전개를 아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정생 작가의 작법을 보라. 논리로 논리를 펴지 않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혹은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라는 질문 형의 문장,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같은 작가의 불같은 분노가 타오르는 문장을 섞어 넣고 다시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작법의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조연현 교수가 말한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 되는 현대수필에세이’의 이다. 이태동 교수는 “훌륭한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많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⑩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이 작품이야 말로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하는 작법의 작품이 아닌가. 필자가 사는 동네는 80년대 식 다가구 3층 벽돌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 변두리 동네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 앞에는 어김없이,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갖가지 저주들이 씌어져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3대가 망한다.’는 문구도 본 일이 있다. 그런 모양들을 10년 넘게 보면서 ‘이 민족은 쓰레기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낼 줄 모르는 구나!’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백 년 동안 ‘신변잡기’ 비난을 들어오고 있는 수필계 지도자들이야 말로 ‘쓰레기(신변잡기) 하나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나라 수필계 지도자들이 피천득의 대신 권정생 작가의 같은 작품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진즉에 ‘신변잡기’에서 벗어날 방법도 찾아내었을 것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특별히 똑똑하게 태어나는 아이 가 있다는 말이 잘못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과학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뛰어난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소설문단만 해도 젊은 여성작가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여성 소설가들은 타고나서 소설작가가 되었고 3천 5백여 수필가들은 그렇지 않아서 ‘신변잡기’ 작가가 되었는가? 아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을 선택하면 ‘신변잡기’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다.  
1025    갇힌 사자獅子의 눈동자 /정현종 댓글:  조회:193  추천:0  2019-09-20
갇힌 사자獅子의 눈동자 정현종 (시인) 지금으로부터 한3년 전 일이다.(라는 말은 좀 우스운 감이 있으나 그냥 쓰기로 한다.) 하기는 말이 3년이지, 지난 3년을 정확히(!) 말하라고 한다면 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말이 정확하다니! 이건 필경 필자가 역사의식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신화적인 역사의식! 그러고 보면 실제 역사는 역사적이 아닌데 역사의식만 항상 역사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나마,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역사의식도 실지 역사가 허용되지 않으면 뜨내기나 다름없게 된다. 하기는 이 경우 뜨내기도 상팔자일 법하다. 얘기가 잠깐 빗나갔는데, 하여간 3년 전쯤 나는 어떤 농원의 사자우리에 가서 사자와 눈싸움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자우리 속으로 통로를 만들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사자들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데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는 잘 설명 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사자와 눈을 맞춰보고 싶어져서, 얼굴을 철책에 바싹 대고 사자를 불렀다. 사자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서 두 앞다리를 들어 올려 철책을 턱 집고 직립(直立)해서는 나의 얼굴을 바싹 마주 댔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 느낌은 사자가 나를 아주 맛있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서로 바라보는 동안 나는 갇혀있는 사자의 눈동자 속에서 아프리카의 밀림과 초원을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자의 고향이며 살아야 할 곳인 밀림과 초원의 파노라마를 보았다. 그 광활한 밀림과 초원의 전개는 아주 선명했으며, 그래서 갇혀 있는 그의 눈동자는 그다지도 깊고 머나멀게 넓었다. 나는, 갇힌 맹수를 보면 늘 그렇듯이, 깊고 광활한 슬픔과도 같은 연민을 느꼈다. 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 생각해 보면 사실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흔히 자신을 가두는 우리가 된다. 우리는 마음 안팎의 여러 가지에 스스로 가두며 또 서로를 가두려고 한다. 그래서 장 그르니예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인간들은 남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 만물 중에서 오로지 나는 새에 대해 거의 열등감을 느끼는 심리적 동기도 위의 문맥과 상관이 있을 법하다. 그리고 앞에서 갇힌 사자의 눈동자 얘기를 했지만, 또한 를 생각해 본다.(1981) (정현종 –삶과 詩에 관한 에세이 [생명의 황홀]) |작법 공부| 정현종 시인, 나에게 이 너무도 유명한 시인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틀림없이 든든하게 잠그고 나온 내 마음의 아랫도리 지퍼가 열렸다고 느닷없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시인이다. 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을 읽으며 필자는 똑 같은 경기를 느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산문이 아니고 詩작품이다. 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 서두문장에서 라는 표현과 는 표현에 대한 시인의 언어에 관한 걱정은 무엇을 말 해 주는가? 시인은 말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일상어는 말이 아닌 말도 무수히 사용한다. 그러나 詩에는 ‘말이 아닌 말의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산문의 기반은 일상어에 있다. 시인은 지금 운문이 아닌 산문을 쓰면서 산문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언어의 비언어성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종결어 ‘또한 를 생각해 본다.’가 서두와 연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만약에 정현종 시인이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 초원만 발견하고 말았다면, -그래도 ‘隨筆’보다는 훨씬 창조적인 글이었겠지만- 시적 창조 글까지는 못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창조’ 곧 가 빠졌을 테니까. (죄송하다. 대 시인의 글을 ‘신변잡기’에 비하다니!) 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이 운문으로 쓸 것을 산문으로 형상화한 ‘시적 산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의 창조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사실은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이하의 문장이 아닐까? 시인은 우리에 갇혀 사는 자사의 눈 속에서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인간의 열린 지퍼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붓 가는 대로 隨筆’이 만약에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라도 발견하는 글을 썼다면 처음부터 ‘신변잡기’ 혹평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지퍼 속까지 발견 할 줄 아는 문학이 되었다면 오늘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완전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가 되었겠는가?
1024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이관희 댓글:  조회:201  추천:0  2019-09-20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이관희   저녁 먹는 자리였다. 낙지볶음이 먹음직스럽다. 수저를 들기 전에, “소주 한 잔 할까…….” 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 “선생님도 술 생각나실 때가 있으세요?” 그런다. “글쎄, 나도 뜻밖이네. 그러니까 이 현상이 무슨 의미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래 요놈이 범인이었던 거야. 요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 술꾼 쳐놓고 요놈 앞에서 소주 한 잔 유혹에 안 넘어갈 자 있는가? 술꾼이 아닌 나도 소주 생각이 나는데……. 이게 바로 작법인 게야.” “선생님 또 18번 나오시네요.” 그래서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간 호 지상 작법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예작법은 본능에서 시작된다. 을 보면 [저것]이 생각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본능이다.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은 전혀 천재적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는 에 근거한 이론이다. 모방론뿐만 아니다. 문학개론서를 펼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것이 문학 발생설이다. 모방(模倣)본능설, 유희(遊戲)본능설, 흡인(吸引)본능설, 자기표현본능설 등 이 네 가지 기본 문학발생설 모두가 에 근거한다. 오늘 이 짧은 에서 다른 것은 다 옆으로 밀쳐두고 딱 한마디만 기억하도록 하자. 는 말이다. 문학 발생설이 모두 본능에 근거한다는 것은 ‘본능이 곧 작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 해 준다. 본능 : ①생물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동작이나 운동 ②동물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내는 통일적인 심신의 반응형식(에센스국어사전) 이 낱말의 뜻에서 작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는 말이다. 내가 지난 14년 동안 조사하고 실제 맞부딪치며 경험한 수필가들은 불행하게도 공부를 할 기회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수필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 글이나 한 편 써 가지고 돈 백만 원만 들고 가면 신인 당선작으로 발표해 주었으니 문학을 學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필가가 만약에 자신의 본능만이라도 일깨운다면 ‘신변잡기’는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 국어사전의 낱말 뜻이다. 다시 한 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자.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고 했다. 수필계 지도자들이 아무리 문학공부를 안 한 신인장사 장사꾼들이라 해도 그 밑에서 수필공부를 한 수필가가 본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도 적어도 ‘신변잡기’는 안 쓰게 된다는 뜻 아닌가? 금호에 작품이 게재된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 이분들을 필자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 말을 그대로 詩로 썼다고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견물생심이 무슨 뜻인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물건 을 보면 가지고 싶다 [저것] 생각이 난다】 이것이 바로 작법인 것이다. 수필가들도 [입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금은방 [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고,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고, 다이야반지를 보면 끼고 싶다면, 진정으로 그런 ‘견물생심’이 저절로 생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라는 소재를 보고 [저것]이라는 다른 생각이 안 날 수 있는가? 더 이상 수필교실 선생이 가르쳐 준 일 없다고 하지 말라. 더 이상 문학이 어렵다는 말도 하지 말라. 예술창작의 기본은 을 가지고 [저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대로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날 술 마실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저녁식사를 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을 보자 저절로 [소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의 본능에 의한 것이다. 바로【이라는 ‘낙지볶음’을 보자 [저것]이라는 ‘소주’】생각이 났던 것이다. 바로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기본 작법인 소재에 대한 비유창작, 가 되지 않는가.(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가 될 수도 있다.) 隨筆이 망한 까닭은 처음부터 만 썼기 때문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백날 라고 써도 문학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중얼거리면 ‘저 사람 미쳤나보다’ 한다. 실제로 만 썼더니 ‘신변잡기’라고 하지 않는가! ‘낙지볶음은 소주다’라고 써야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이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만 쓰는 것은 문학(창작)도 아니고, 예술(창조)도 아니다. 에서 [저것]을 발견하여 그 [저것]을 써야 비로소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된다. 그런데 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능만 발동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본능설이 최초의 문학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인 것이다. 필자가 작법강의를 시작한 첫 시간부터 모든 예술의 기본 작법은【을 [저것]으로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한 말은 무슨 굉장한 이론 연구 결과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의 본능론일 뿐이다. 작법 : 소재 ‘낙지볶음’ ➜ 작품 [저것] ‘소주’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1023    동시에 또는 끝없이 다 말하기 / 황현산 댓글:  조회:294  추천:0  2019-09-19
동시에 또는 끝없이 다 말하기 / 황현산           1         이지도르 뒤카스, 일명 로트레아몽은 1846년 4월 4일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원래 타르브 출신인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 영사관 일등서기관으로 이 남미의 도시에 파견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시인이 태어난 지 20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뒤카스는 1859년에 프랑스에 들어와서 1862년까지 타르브와 포의 리세에서 기숙생으로 수학했다. 그는 1865년 포를 떠났다. 우루과이로 되돌아간 것일까? 그러나 그는 1866년 파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보르도의 시 경연대회에 참여하게 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대회에 의 를 제출했다. 이 는 1869년 초, 당시 대회를 주관했던 에바리스트 카랑스의 잡지 에 수록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문학적 재능을 눈치채고 있었을까. 아니면 뒤카스의 건강상태가 정규 교육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생활비을 대주며 비교적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준 것일까. 말도로르의 는 1868년 저자의 이름 대신 '***'로 표시되어 출판되었다. 여섯 개 전체를 인쇄한 것은 브뤼셀의 라크르아 출판사이며, 책은 로트레아몽이란 이름으로 서명되었다. 그러나 라크르아는 검열을 두려워하여 감히 책을 판매하지는 못했다. 이지도르 뒤카스는 이듬해인 1870년 그의 의 원고를 파리의 한 출판사에 맡겼으며, 출판사는 이 원고로 5월과 6월에 소책자 두 권을 인쇄했다. 로트레아몽은 1870년 11월 24일 파리에서 죽었으며, 그 죽음의 정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떤 증언도 확보되지 않았다. 당시 파리는 프로이센군에 포위된 상태였다.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생애, 기발하고 미완성 상태의 작품, 이 두 사실, 또는 사실 없음은 온갖 종류의 추측과 가정을 불러내고, 1930년대에 그린 살바도르 달리의 '편집증 비평' 삽화에 이르기까지 그것들 사이에 온갖 병합을 가능하게 한다. 는 끊임없이 독자들을 의아하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상이한 열정들을 퍼붓게 했다. 천재인가 광기인가, 아니면 그 둘의 동시 발생이거나 논리적 교체발생인가. 착란의 낭만주의인가 극한의 명석함인가, 비범하고 예외적인 즉흥의 산물인가, 준비되고 계산된 작품인가. 재능의 조숙한 폭팔인가. 아이로니컬한 의식의 조건없는 극단화인가, 비의주의의 고백인가, 모든 주장이 제시되었고 방어논리를 만들어내기에 성공했지만, 이들 논의에는 진정한 발전이 없었다. 한 논의가 다른 논의보다 앞설 수도, 서로 간에 이해의 깊이를 줄 수도 없었으며, 종합적 발전이 시도될 수도 없었다. 오직 만이 어떤 심리적이거나 전기적 지침이 없이 여전히 덩그렇게 그러나 요란하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면, 로트레아몽은 낭만주의의 모든 유산을 그 두뇌 속에 끌어안고 그것들을 즉각적인 방식으로 이용하며 한편으로는 재검토했다는 점이다. 우선 로망 누아르의 작가들, 바이런, 미츠키에비치, 보들레르 등이 그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영감을 주었다. 그는 외젠 쉬의 작품에서 '로트레아몽'이라는 필명의 착상을 얻었으며, 동시대 작가인 퐁송 뒤 테라유를 읽었으며, 1870년에 발간된 아폴리트 텐의 을 읽고 인용하였다. 장샤를 슈뉘 박사의 에서 몇 개의 문단을 문자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당연히 비슬레를 읽고 에 그 흔적을 남겼다. 로암 누아르는 그에게 주제나 이미지보다 그 시대의 문학에 유례가 없는 어떤 개성적인 작품, 문학의 개념 자체를 문제삼는 새로운 착상의 문학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에서 19세기 말은 그에 합당한 시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인성, 패륜, 유혈 취향, 꿈과 강박관념의 악용 등이 때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때로는 서투르고 황당하게 작품 속에 끼어들어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의 중심에는 하나의 드라마, 심리적이기보다는 윤리적이고, 윤리적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인 드라마가 들어 있어서, 인간 존재를 신에게 연결시키고, 창조물들을 창조주에게 연결시키는 관계 하나를 만들어낸다. 특히 로트레아몽은 창조주의 본질 속에서 악을 발견하며, 고통과 타락에 빠진 세계의 부조리와 공포에 저항하지만, 선과 정의의 미명으로 고통을 생산해내는 자에 대항하는 이 싸움이 무기력할 뿐임을 매번 의식한다. 로트레아몽이라는 이 신비로운 인물은 파우스트, 맨트레드, 카인같은 낭만주의적 반항자들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창설된 "질서"에 저항하여 그가 일으키는 반란은 논리적인 토론의 말로 번역되지 않는다. 강력한 분노는 과장과 비논리로 치닫고, 급기야는 창조된 인간 존재들의 태생적 결함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뒤카스가 사납고 악취나고 점액질에 덮인 동물 군상들을 자신의 동류로 삼으려 할 때, 그 정신은 변신 그 자체가 반역의 한 방식인 세계의 초상을 강조한다. 변신하는 자는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 집단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하는 자이다. 그는 이렇게 변신으로 반역자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내부 성향 변질을 시도한다.   이지도르 뒤카스는 로트레아몽의 얼굴을 둘러쓰고,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인격을 자신의 인격으로 확보한다. 이 과정은 두번째 번혁으로 이어진다. 말도로르는 냉소적이고 용납하기 어려운 주의력을 사용하여 지속적인 관찰을 할 때 그 자신이 동물이나 사물의 모습을 둘러쓰고, 그 모습의 동물이나 사물로 변화한다. 이 몸과 의식의 대체는 뒤카스의 동급생이었던 다제가 첫 버전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바로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서로 교환될 수 없다 하더라도 변신이 가장 중요한 서사가 되는 한 세계가 구축된다. 이 의 끝에서 머빈은 팡테옹의 돔 위에 내던져지나 마침내 시체 이상의 어떤 것이 된다.     바슐라르는 의 이미지들이 운동과 속도와 직접성을 특징으로 삼는다는 점을 통찰했다. 이 점에서 랭보의 시적 운동감과 전혀 다른 로트레아몽의 시적 박자는 그렇다고 해서 밀도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의 박자는 자주 웅변에 이르고, 웅변은 학술용어의 나열과 반복을 이용한다. 그것은 마치 강박증이 어떤 간결성을 요구하고 고정관념이그 반대급부로 풍요로운 지각으로 환화된 표현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완화된 표현은 정열의 거침없는 분출에서 생겨난 것이어서 어떤 단일한 형식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창조주에게 던지는 분노는 신비논리와 양면감정을 요구한다. 악은 선과 분리될 수 없으며, 미와 그 세련의 개념은 추악함과 혐오의 현실과 균형을 맞추며, 불면의 강박증은 명철성에의 예찬과 짝을 이룬다. 의식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예민한 의식은 당연히 고통을 빚어내기에 의식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거의 지속적인 긴장이 생겨나고, 폭력과 자주 냉소적인 위로의 교차운동이 성립하여, 우아함과 미에 대한 무서운 관상으로 연결된다.     로트레아몽은 시 본래의 기능이 말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을 감염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퇴고한 흔적들을 살펴보면 너무 명백한 것들을 지우고, 한층 내적인 드라마를 지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 도덕적 가치의 코드가 무너지는 것을 느끼는 한 청년의 비극이 드러나는 이들 문단은 독서의 잔영들을 닦고 있으며, 모든 시적 인습을 완전히 청산하고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모든 갈등 가운데 가장 강력한 문단들이다.     로트레아몽은 이후 을 쓰면서, 그 어조와 의도에 믿기 어려운 변화를 드러냈다. 깊고 광범위한 사디즘은 냉정하고 계산된 유희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어떤 연구자들은 시적 혈맥이 고갈되는 기미를 보고, 또다른 연구자들은 정신병의 영향이 커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는 하나의 시 형식이 다른 형식으로 전화된 것일 뿐일까. 뒤카스는 에서 잠언의 형식을 빌려 말한다.         나는 우울을 용기로, 의혹을 확신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악의를 선으로, 한탄을 의무로, 회의주의를 신념으로, 궤변을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오만을 겸손으로 대체했다.         그는 모든 불안과 저항의 시를 거부하고, 장자크 루소, 보들레르, 앨런 포를 배척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위대한 물렁머리들"을 탄핵하고 새로운 사상의 지도에 자리를 잡는다. "감정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불완전한 추론의 형식이다." 그는 1870년 2월 한 출판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는 제 과거를 부인합니다. 저는 이제 희망만을 노래합니다."      이 모든 것이 유희나 연출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 두번째 책자는 정확한 계산에 전념하면서, 단테, 보브나르그, 라로슈푸고, 파스칼 등의 명구에 손질을 하고 이를 적당히 변형하고 꿰어 맞춘다. 그렇더라도 수수께끼는 여전히 남아 있다. 로트레아몽은 자신의 "저주받은" 시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부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마침내 과학적 정신이 승리하는 성숙과 절제의 시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그가 신앙과 선과 겸손에서 착상을 얻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이라는 명명 자체가 냉소적인 것은 아닐까. 미래의 책에 붙일 프롤로그로서 은 깊은 모호성을 지키고 있다. 의 아포리즘은 유명해진 저자들의 텍스트를 은밀하고 성상파괴적인 기쁨으로 다시 손질하는 어떤 재치처럼 거꾸로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경우건 은 냉정하고 지성적인 말도로르의 출현을 말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체는 문학에 절대적으로 새로운 어조를 가져왔다. 신비의 인물 뒤카스-로트레아몽-말도로르는 그 유혈 낭자한 독신(瀆神)의 말과 함께, 낭만주의를 과장하고 새롭게 하는 방식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적 사고의 양식 하나를 빚어내고 그 비전들을 세분하여 그 하나하나에 자율성과 고유의 힘을 남겨둠으로써 낭만주의가 낳은 가장 피상적인 마스크 아래에서까지 그 깊이를 측장했던 것이다.           2         로트레아몽의 글쓰기 방식에 관해 특별히 말해야 한다. 는 여섯 편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노래들은 다시 산문시 혹은 '절'로 나뉜다. 각각의 절은 독립적인 '산문시'로서, 즉 시가 지닐 법한 치밀함과 풍부함을 보여주지만 시가 지니는 형식상 특징은 전혀 없다. 게다가 시적 기법 역시 다양하다. 첫번째 노래부터 세번째 노래까지, 개개의 절은 각기 개별적인 서사를 이루지만,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와 반복되는 테마를 갖추고 있다. 이와는 달리, 네번째 노래와 다섯번째 노래는 일견 의미에 닿지 않는 헛소리, 중간에서 잘린 이야기들, 의사(擬似) 과학적인 여담들, 시에 대한 견해들로 점철되어, 요컨대 횡설수설로 빠져든다. 마지막 여섯번 째 노래는 앞의 다섯 노래들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삼십쪽짜리 짧은 소설"이 이어질 것을 약속한다. 그런 다음 사악한 인물이 한 사춘기 소년을 유혹하는 이야기가 신문 연재소설, 특히 외젠 쉬가 유행시킨 스타일로 펼쳐진다(사실 뒤카스는 자신의 가명을 이젠 쉬의 한 인물, 라트레오몽에서 빌려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서사는 또 무너지면서 일견 종잡을 수 없는 여담들이 들어서고, 다시금 이야기가 개시될 때에는 거기 광적인 속도가 붙어 마치 초안용 개요처럼 읽힌다. 결말부에서 말도로르의 마지막 희생자인 청년 머빈은 손에 화환을 부여잡은 채, 프랑스의 저명한 인사들이 묻혀 있는 팡테옹의 돔에 매달려 죽는다. 로트레아몽은 이렇게 자신이 창조물인 머빈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프랑스 문학의 거장들 사이에 올려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요소가 여섯 편의 노래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중 하나는 말도로르로서, 화자와 종종 동일시되는 이 기이한 주인공은 신과 인간에 대항하는 전투를 이어가면서, 신 혹은 신의 사자들과 일련의 유혈 낭자한 시합을 벌인다. 한계가 없어 보이는 그의 잔인성에 필적할 만한 것은 창조자의 잔인성뿐일 것이다(가령 그는 신이 인간의 몸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발각한다). 잡종 생물들 간의 기이한 싸움이, 마찬가지로 기이한 짝짓기(말도로르와 암컷 상어, 블독과 소녀)와 갈마든다. 인물들은 동물로, 심지어 괴물로 변신하고, 이 변신들이 서사를 구획짓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통일적 요소는 이 노래들이 자체의 문학적 상황을 끊임없이 돌아본다는 점이다. 는 문학의 역사 및 전통 수사학에 대한 성찰이 된다. 작품 첫 절부터 그 형세가 잡힌다.        하늘의 뜻이 다르지 않아, 독자는 부디 제가 읽는 글처럼 대담해지고 별안간 사나워져서, 방향을 잃지 말고, 이 음울하고 독이 가득찬 페이지들의 황량한 늪을 가로질러, 가파르고 황무한 제 길을 찾아내야 할지니, 이는 그가 제 독서에 엄혹한 논리와 적어도 제 의혹에 비견할 정신의 긴장을 바치지 않는 한,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듯이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가 그 영혼에 젖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고전적 토포스(하늘에 대한 기원)로 말문을 열면서, 는 스스로를 '시'로 규정한다. 마치 독자의 옷깃을 달기며, "이봐, 나도 시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절의 나머지 부분 역시 두 차원에서 작동하여, '이야기' 혹은 '시'를 구성하는 동시에 이야기와 시에 대해, 특히 당대에 퍼진 시들에 대해 논평한다. 예를 들어, 서두용 기원문은 이미 그 자체로 시다. 그와 동시에, 이 기원문은 그 시적 속성을 독자에게 알리고("사납고" "음울하고" "독이 가득한" 지도 없는 영역으로서, 요컨대 위험하다). 독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의 목록을 작성하는 한편("대담"해질 것, "제가 읽는 글처럼 대담해지고 별안간 사나워"질 것. "엄연한 논리"와 "정신의 긴장"을 지닐 것). 우회 및 위반의 능력이 없는 "소심한 영혼"을 독자 대열로부터 제외시킨다("뒤이어지는 페이지들을 모든 사람이 다 읽는 것은 좋치 않다") 게다가, 이 기원문은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강령을 세운다. 읽기에 착수한다는 것은 황무하고 위험한 지대에서 길을 찾는 일에 가깝다. 소심한 독자를 이동중인 철새에, 즉 폭풍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고 경로를 벗어나 "철학적이며 더욱 확실한 또하나의 길"로 접어드는 저 "추위 타는 두루미"에 빗대는 긴 비유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우회 및 방향전환 작전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의 메타시학적 의미를 보여준다. (두루미가 폭풍을 피하는 식으로 불길한 텍스트를 피하지 않고) 읽기의 위험한 속성에 대한 경고를 실제로 읽음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소심한 영혼"(읽지 않는 자)에 반대되는 존재로, 즉 독자로 규정한다.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면서, 독자는 자신이 "읽는 글만큼 대담해지고 또 별안간 사나워"지는데, 그러한 성질이 텍스트 특유의 것이어서라기보다는 '읽기'가 텍스트와의 관계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 관게가 마음을 녹이는 시의 힘에 수동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대담함과 사나움을 만들어낸다(그렇지 않으면 "마치 물이 설탕에 젖어들듯이 책이 뿜어내는 치명적인 독기가 그 여혼에 젖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도입절은 '텍스트'와 '독자'만을 언급하며, 이때 시인 자신, 서정적 자아의 부재가 눈에 띈다.에서 시의 소통은 '저자'를 거치지 않고 텍스트와 읽기 행위의 독특한 마주침으로 이루어진다. 읽기 행위는 그토록 사납고 대담해져 전통적으로 시인에게 속해 있다고 간주되던 힘을 찬탈한 것이다. 낭만주의 전통에서 시를 읽는 독자는 영감을 받은 '나'의 행로를 따르게 되어 있었던 반면, 로트레아몽은 이 시적 자아의 우선권 및 지배권을 무너뜨린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바, 여기에서 뒤카스는 "이 세기의 시적 신음소리들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맹렬한 비판에 착수한다.     간단히 말해, 로트레아몽은 낭만주의 명사 인명록에 폭탄을 던진다. 그뿐만 아니라, 고전주의와 결별한 낭만주의가 시인 개인의 영감, 달리 말하면 독창성을 떠받들었던 반면, 는 뻔뻔스럽게 다른 작가들에 의해 전범이 되다시피 한 테마, 상황 설정, 문체 등을 차용한다. 보들레르, 단테, 괴테, 위고, 라마르틴, 사드, 스콧, 세익스피어, 쉬 등의 텍스트가 누가 봐도 빤할 정도로 비쳐 있다. 게다가 로트레아몽이 제공하는 상호텍스트의 풍경은 엄밀한 의미의 문학 바깥까지 뻗어나간다. 그는 과학 텍스트들에서 - 특히 장샤를 슈뉘의 (1850~1861)에서 - 단락 전체를 그대로 옮겨온다. 현대문학의 절묘한 묘기 중 하나로 인정되는 단락을 예로 들자면, 로트레아몽은 슈뉘 박사에게 '빌려온' 찌르레기떼에 대한 긴 묘사로 다섯번째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들의 복잡한 비행 방식이 교묘하게도 의 작법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되어, 시적 음성의 고유성 및 권위를 무너뜨린다.         찌르레기 군단은 그들 나름의 비행 방식이 있어서, 일사분란하고 규칙적인 어떤 전술을 따르기라도 하는 것 같은데, 오직 대장 한 사람의 목소리에 정확하게 복종하는 훈련된 군대의 전술이 그럴 터이다. 찌르레기들이 복종하는 것은 본능의 목소리인 바, 비행 속도는 끊임없이 새들을 바깥쪽으로 끌어가는 나머지, 자성(磁性)을 띤 동일한 한 점을 향하려는 공통된 경향으로 결속된 이 새들의 집단은 쉴새없이 오고가고 온갖 방향으로 순환하고 교차하는 가운데, 일종의 매우 격렬한 소용돌이를 형성하니, 그 덩어리의 총체는 명확한 방향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그 자기를 돌며 자전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그 각 부분이 저마다 순환운동을 하는 결과인지라, 그 중심은 끝없이 확산되려는 경향을 지니면서도, 그 주변을 옥죄는 대열의 반동에 의해 끊임없이 압박받고 제한되어, 이들 대열 가운데 어떤 대열보다 밀도가 높으며, 주변 대열들도 중심에 가까울수록 그만큼 더 밀도가 높다. 이런 소용돌이치기의 기이한 방법에도 불구하고, 찌르레기들은 보기 드문 속력으로 주변 공기를 찢고, 그들 피로의 종점과 그들 순례의 목적지를 향해 매초마다 한 뼘씩 소중한 비행공간을 뚜렷하게 정복한다. 그대도, 마찬가지로, 이 장절들 하나하나 노래하는 나의 기이한 방법에 마음쓰지 말라.         찌르레기의 비행도, 로트레아몽의 글쓰기도 얼핏 방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찌르레기들도, 그의 문장들도 각기 제가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이제 글쓰기에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한다는 강령은 없다. 찌르레기 한 마리 한 마리가 동시에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듯이, 뒤카스의 글쓰기는 그의 모든 욕망이 동시에 제가 원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찌르레기는 로트레아몽에게도 비행과 글쓰기에는 그들 원하는 방향이 있다. 글의 목표를 위해 순간을, 그 순간의 욕망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브르통이 특히 에서 '무결점의 선배'라고 말하던 뒤카스의 초현실주의적 글쓰기가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에서는 한 인간의 모든 기억과 욕망이 모든 방향에서 한꺼번에 말한다.   끝  
1022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끝) 댓글:  조회:215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끝)           여섯번째 노래(2)       8.       수면유도 콩뜨의 골수를 기계적으로 구축하려면, 어리석음을 해부하고 독자의 지성을 거듭되는 동일 처방으로 강력하게 둔화시켜, 피곤이라는 확실한 법칙으로 남은 생애 내내 그 능력을 마비상태에 빠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기에 더해서, 동물자기유체를 주입하여, 독자를 몽유병자의 동작불능상태에 빠뜨리면서,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여 독자의 눈을 그 본성에 거슬러 강제로 흐려지게 해야 한다. 나를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가장 통절한 화음을 통해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고 신경에 거슬리기도 하는 내 생각을 전개하기 위해서일 뿐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정한 목표에 도착하기 위해 자연의 일반적인 발걸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며 그 유해한 숨결이 절대적인 진리조차 전복시킬 것 같은 시를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잘 성찰하면, 적어도 미학적 규칙에 일치하는) 그와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말하고 싶었던 바다. 내 온갖 노력을 다하여 거기에 이르려는 까닭이 이것이다! 내 어깨에 달려 내 문학적 깁스를 음울하게 깨부수는 데 사용되는 긴 두 팔의 환상적인 메마름을 죽음이 정지시킨다면, 나는 최소한 독자가 상복을 입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는 나를 아주 바보로 만들었다. 그가 더 오래 살 수 있었다면, 무슨 짓을 하지 않았으랴!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휼륭한 최면술 교사였다!" 이 몇 마디 말이 내 무덤의 대리석 위에 새겨질 것이며, 구멍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물고기 꼬리 하나가 있다. 이렇게 자문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물고기가 어디 있지? 움직이는 꼬리밖에 보이지 않는데." 정확히 말해서,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고 암묵적으로 고백한 이상, 사실상 물고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모래에 파인 깔때기형 구덩이 바닥에 물을 몇 방울 남겨둔 것이다. 뒷굽이 망가진 장화에 관해 말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때 이후로 그것이 고의적인 유기의 탓이라고 생각해왔다. 갈색 대게는 신력(神力)에 의해서 분해된 원자로부터 재생하게 되어 있었다. 내게는 우물에서 물고기 고리를 끌어내어, 만일 창조주에게 그 수임자가 말도로르 바다의 성난 파도를 진압할 수 없게 되었다고 전갈해준다면, 잃어버린 몸뚱이를 붙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대게가 알바트로스의 날개 두 개를 빌려주자 꼬리는 날아올랐다. 그러나 꼬리는 배교자의 처소 쪽으러 날아갔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에게 고자질을 하여 갈색 대게를 배신할 판이었다. 대게는 스파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세번째 날이 끝을 맞기 전에, 독화살로 물고기 꼬리를 꿰뚫었다. 스파이의 목구멍은 약한 외마디 소리를 내 질렀으며, 그것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내쉰 그의 마지막 숨결이었다. 그때에, 성관(城館)의 지붕 꼭대기에 놓였던 백 년 묵은 대들보가 그 자리에서 뛰어올라 신장을 다해 우뚝 서서, 큰 소리로 복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코뿔소로 둔갑한 전능한 자는 그 죽음이 마땅한 죽음임을 코뿔소에게 가르쳤다. 대들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성관 깊은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본래의 수평 자세로 눕더니, 놀란 거미들을 불러 옛날처럼 구석구석에 계속해서 줄을 치게 했다. 유황빛 입술을 가진 남자는 제 동맹자의 허약함을 알았으니, 이것이 바로 관을 쓴 광인에게 대들보를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리라고 명령한 까닭이다. 아곤은 이 엄명을 수행했다. 그는 외쳤다. "그대의 말에 따르면, 그때가 왔나니. 나는 돌 밑에 묻어두었던 반지를 다시 꺼내려 여기에 왔으며, 그것을 밧줄의 한 끝에 묶었다. 그것이 그 꾸러미다." 그리고 그는 서리서리 감은 육십 미터 길이의 굵은 밧줄을 내보였다. 그의 주인은 열네 자루 단검이 무슨 일을 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단검들이 여전히 충성스러우며, 필요할 시 모든 사태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도형수는 만족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곤이 덧붙이는 말에 놀라운, 불안하기까지 한 기색을 보였는데, 그 말인즉 수탉 한 마리가 부리로 샹들리에를 두 쪽으로 가르고 그 부분 하나하나에 차례차례 시선을 담그더니, 열광적인 몸짓으로 날개를 치며 이렇게 소리지르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패가(街)에서 팡태옹 광장까지는 생각하는 만큼 멀지 않다. 머지않아, 그에 대한 비통한 증거를 볼게 될 것이다." 갈색 대게는 사나운 말 위에 올라타고, 문신한 팔에 의한 곤봉 투척의 목격자이자 물에 상륙한 첫날의 은신처인 암초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렸다. 순례자들의 단체가 그날 이후 고결한 죽음으로 성지가 된 이 장소를 방문하려고 행진중이었다. 대게는 그들을 따라잡아, 준비중에 있는 음모,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음모에 맞서 긴급한 조력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대는 몇 줄 뒤에서 내 얼음 같은 침묵의 도움을 받아, 대게가 시간 맞춰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밤의 축축한 이슬로 여전히 젖어 있는 카루젤 다리가 아침 일찍 갑자기 나타나 제 석회질 난간에 부딪친 이십면체 자루의 리드미컬한 반죽 이기기에 놀라 동심원을 겹겹이 그리며 어지럽게 넓어지는 제 생각의 지평선을 보며 공포를 느끼던 날, 건축중인 가옥 옆의 비계 뒤에 숨어 있던 한 넝마주이가 보고했던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되리라! 대게가 이 에피소드의 추억으로 그들의 동정심을 선동하기 전에, 그들은 자시들 안에서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편이 잘한 일일 터--- 그대의 게으름을 깨뜨리려면, 선한 의지의 자원을 활용하시고, 나와 나란히 걸으며, 그 미치광이를 시야에서 놓치지 마시라. 머리에 요강을 쓰고, 내가 수고롭게 주의를 촉구하며 머빈이라고 발음되는 낱말을 그대의 귀에 불러주지 않으면 그대가 알아보는 데 고생께나 해야 할 그 소년을 곤봉으로 무장한 손으로 앞으로 밀고 나가는 그자를. 소년은 얼마나 변했는가! 양손이 등뒤로 묶인 채,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교수대로 가는 꼬락서니지만, 그러나 그는 어떤 중죄도 저지른 적이 없다. 그들은 방돔 광장의 원형 내부에 도착했다. 육중한 원주의 전망대 위, 지상 오십 미터도 넘는 높이에서, 정방형 난간에 기대어, 한 사내가 밧줄을 던져 굴리니, 그 끝이 아녹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땅바닥까지 늘어진다. 습관이 붙으면 일을 재빨리 처리한다. 그런데 나는 아곤이 밧줄 끝으로 머빈의 두발을 묶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코뿔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땀을 뒤집어쓰고, 그는 카스틸리온가 모퉁이에 헐떡이며 나타났다. 그는 싸움을 거는 만족감조차 없었다. 원주 꼭대기에서 주변을 살펴보는 인간은 리볼비에 탄환을 장전하고 신중하게 조준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아들의 광기라고 생각되는 것이 시작된 날 이래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함대사령관과 극도로 창백한 얼굴빛 탓에 백설소녀라 불렸던 어머니는 코뿔소를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헛수고. 총알은 나사송곳처럼 피부를 뚫었다. 논리의 겉보기를 따른다면, 죽음이 착오 없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 후피동물(厚皮動物) 속에 주의 실체가 들어가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슬픈 마음으로 물러났다. 그가 제 피조물 하나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원주 위의 사내를 동정했으리라! 사내는 손목을 거칠게 움직여 그렇게 짐이 실린 밧줄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다. 밧줄이 수직선을 벗어난 탓에, 그 진동은 머리가 아래쪽을 향한 머빈을 흔들어댄다. 소년은 제 이마가 부딪치는 최대의 두 인접각을 연결시티는 에델바이스의 긴 꽃줄을 급하게 움겨잡는다. 그는 고정상태가 아닌 그것을 제 몸과 함께 공중으로 가져간다. 머빈이 청동 오벨리스크의 중간 높이에 걸려 있도록, 밧줄 대부분을 중첩된 타원형으로 제 발끝에 쌓은 다음, 그 탈옥 도형수는 오른손으로 소년에게 원주의 축과 평행한 면에서 회전하는 등가속 운동을 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밧줄을 뱀처럼 감아올려 제 발끝에 눕힌다. 투석기가 공중에서 휘파람을 분다. 머빈의 몸은 어디에나 그걸 따라가며, 언제나 구심력에 의해 중심에서 멀어지고, 언제나 물질에서 독립된 공중 원주의 형태로 이동하면서도 등거리를 벗어나지 않는 제 위치를 유지한다. 문명화된 야만인은 자칫 강철봉으로 착각할 것을, 굳센 장골로 붙들고 있는 다른 쪽 끝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조금씩 풀어놓는다. 그는 한쪽 손으로 난간에 달라붙어서, 그 주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이 작전은 밧줄의 최초 회전면을 바꾸어, 벌써 괄목할 만한 그 장력을 한층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제부터, 그는 감지할 수 없는 발걸음으로 여러 경사면을 가로 질러 차례차례 통과한 뒤, 밧줄을 위엄 있게 수평면으로 돌린다. 원주와 식물성 섬유로 만들어진 직가은 두 변의 길이가 동일하다! 배교자의 팔과 살인 도구는 암실을 투과하는 빛살의 원자 요소처럼 단일 직선으로 용해된다. 역학의 정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한다. 아아! 하나의 힘이 또 하나의 힘에 첨가되면 최초 두 힘으로 이루어진 합력을 낳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직선의 밧줄은 격투기 장사의 완력이 없었어도, 질 좋은 대마가 없었어도, 벌써 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누가 주장하는가? 금빛 머리칼의 해적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동시에 확보된 속력을 멈추고 손을 펴 밧줄을 놓아버린다. 앞의 조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 조작의 반동은 난간의 연결부를 삐걱거리게 했다. 머빈은 뒤에 줄이 달려, 불타는 꼬리를 뒤에 끌고 가는 혜성을 닮는다. 조여 자기매듭의 쇠고리는 햇살에 번쩍거리며 저 자신에게 환각을 완성하라고 촉구한다. 포물선을 그리는 행로에서, 사형수는 대기를 가르고 강의 좌안까지 이르러, 내가 무한하다고 가정하는 추진력의 도움으로 강변을 넘어서고, 그의 몸이 팡테옹의 돔을 때리려는데, 밧줄 일부가 그 꿈틀거림으로 거대한 원형 천장의 상부 벽을 휘감는다. 모양만 오렌지를 닮은 그 볼록꼴 구형의 표면에는 하루 내내 말라빠진 해골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바람이 해골을 흔들 때, 라탱 지구의 학생들은 그와 같은 운명이 두려워 짧은 기도를 올린다고들 이야기한다. 믿을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소리지만, 오직 어린애들을 겁주기에는 그만이다. 해골은 그 오그라진 손에 오래된 노란 꽃으로 엮인 커다란 리본 같은 것을 쥐고 있다. 거리를 고려해야 하나. 어느 누구도, 시력이 좋다는 보증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말로 내가 말했던, 그리고 새 오페라좌 옆에서 벌어진 불평등한 싸움이 거대한 좌대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목도했던 그 에델바이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초승달 모양의 모직물들이 이제 더이상 4배수에서그 결정적 대칭성의 표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내 말을 믿기 싫으면 직접 가서 보시라.     여섯번째 노래 끝   말도로드의 노래 끝  
1021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9) 댓글:  조회:206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9)           여섯번째 노래(2)       7       금빛 머리칼의 해적은 머빈의 답장을 받았다. 그는 이 기이한 서면에서 자신이 꾀한 교사(敎唆)의 연약한 힘에 굴복하여 그것을 쓴 자가 지적으로 흔들린 흔적을 따라간다. 그 젊은이는 낯모르는 사람의 우정에 답하기 전에 자기 부모와 상의하는 것이 훨씬 더 나았을 터이다. 이런 수상쩍은 술책에 주역으로 엮여보아야 그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엮이기를 바랐다. 지정된 시각에, 머빈은 자기 집 문에서부터 생미셸 분수까지, 세바스토폴 대로를 따라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그는 그랑조귀스텡 강변로에 들어서서 콩타 강변로를 가로지른다. 그가 말라케 강변로를 지나는 순간, 루브르 강변로로 자신의 진행 방향과 평행하게, 자루 하나를 팔 밑에 끼고 걸어가는 한 인물이 보이는데, 그 사람이 자기를 주의깊게 살피는 것 같았다. 아침안개가 흩어졌다. 두 행인이 동시에 카루젤 다리 양쪽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서로 알아보았더라! 정말이지, 나이로 갈라져 있는 이 두 존재가 감정의 위대함으로 자기들의 두 혼을 접근시키는 모습은 감동스러웠다. 적어도 이것은 한둘이 아닌 사람들이, 수학적 정신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을 이 광경 앞에 멈춰 섰던 자들의 의견이었을 것이다. 머빈은 미래의 역경에서 귀중한 지지자가 될 사람을, 말하자면, 인생의 초입에서, 만났다고 생각하며 얼굴이 눈물에 젖었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믿으시라. 그가 한 짓은 이런 것이다. 그는 들고 있던 자루를 펼치고 아귀를 벌리더니, 소년의 머리를 붙잡아 몸뚱이 전체를 그 포대 속에 밀어넣었다, 그는 입구로 사용되는 끝부분을 손수건으로 묶었다. 머빈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으므로. 그는 자루를 속옷 꾸러미처럼 뜰어올려 그것으로 다리 난간을 여러 차례 내리쳤다. 그러자, 수형자는 자기 뼈가 부서지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어떤 소설가도 다시 보지 못할 유례없는 장면! 푸주한 한 사람이 짐수레의 살코기 위에 올라타고 지나갔다. 한 인물이 그에게 달려와서 수레를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 "개 한 마리를 이 자루 속에 묶어놓았어요. 옴 걸린 개입니다. 어서 빨리 죽여버리세요." 불림은 받은 자는 친절한 태도다. 불러 세운 자는 멀어지면서 누더기를 입고 자기에게 손을 내미는 한 소녀를 본다. 도대체 그의 오만과 불신의 절정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가 적선을 하다니! 몇 시간 뒤에 외딴 도살장 문으로 그대를 안내해주기 바란다면 말씀하시라. 푸주한은 돌아가, 짐을 땅바닥에 던지며, 자기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 옴 걸린 개를 서둘러 죽이세." 그들은 네 명인데, 각자 손에 익은 망치를 집어든다. 그렇지만 그들은 주저했다. 자루가 격렬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를 휘어잡는 이 감정은 무엇인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팔을 천천히 내리면서 외쳤다. "이 개는 꼭 어린애처럼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지르는구먼". 다른 사람이 말한다. "어떤 운명이 자기를 기다리는 지 알고 있는 것 같아." "이게 그 녀석들 버릇이야". 세번째 사내가 대답했다. " 이 경우처럼 병들지 않았을 때도 놈들의 주인이 며칠간 집만 비워도 정말로 견디기 힘든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단 말일세" "멈춰---멈춰!---멈춰!----" 네번째 사내가 소리질렀다.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자루를 내리치려고 팔들이 일제히 박자 맞춰 올려지기 전이다. "멈추라고 하잖아, 여기엔 우리가 모르는 어떤사연이 있다고 이 천 속에 개를 가두었다고 말한 게 누구지? 확인해봐야겠어." 그러고는 동료들의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포대를 풀고는, 하나씩 하나씩 머빈의 사지를 거기서 끌어내지 않았던가! 머빈은 빛을 보자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생존의 신호를 보냈다. 구제자가 말했다. "다음에는 능숙한 입에서도 신중하게 처신하는 걸 배우게들. 이런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란 사실을 하마터면 몸으로 깨달을 뻔하지 않았나." 푸주한들은 도망쳤다. 머빈은 가슴이 조여들고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차서 집으로 돌아와 자기 방에 틀어 박혔다. 내가 이 점을 더 붙들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아! 누가 이미 끝나버린 이런 따위 사건들을 통탄하지 않을 것인가! 훨씬 더 엄격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결말을 기디리지. 대단원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으며, 어떤 쟝르가 되었던, 일단 정렬이 주어지면, 그 정렬이 어떤 장애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 길을 열어나가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그림물감 접시 하나에 진부한 사백 페이지의 고무풀을 녹일 필요가 없다. 반 다스의 장절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하고, 그다음은 침묵해야 한다.
1020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8) 댓글:  조회:217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8)           여섯번째 노래(2)       6       전능한 자는 대천사들 가운데 하나를 지상에 보내 소년을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구하려 한 적이 있었다. 끝내는 자기 자신이 내려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아직 그 부분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는데, 내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할 수 없는 이상에는, 입을 다물어야 할 의무가 있다. 효과를 노리는 트럭들은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에 나타날 것이며. 그때 이 픽션의 짜임은 어떤 불편함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대천사는 이마만큼이 큰 대개의 모습으로 둔갑했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 바위 꼭대기에 서서, 해안으로 내려가기에 유리한 물때를 기다렸다. 벽옥빛 입술을 가진 사내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바닷가의 굴곡에 숨어서 그를 노렸다. 이 두 존재의 생각 속을 읽고 싶어 안달한 게 누구였을까? 전자는 자신이 수행하기 어려운 사명을 띠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어찌 성공한다는 말인가?" 그는 외쳤다. "점점 더 커지는 파도가 내 주인님의 임시 거처를 난타할 때 주인님마저도 자신의 힘과 용기가 좌절하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던 저곳에서. 나는 유한한 물질일 뿐인데, 상대자로 말하면, 그가 어디서 오고 그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이름에 천사 군단이 떨며, 내가 떠나온 대대에서는 악의 화신 사탄이라 해도 이렇게 무섭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후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는데, 이 생각들은 하늘빛 궁륭에까지 메아리를 하나씩 울려 그 궁륭을 더럽혔다: "영락없는 경험 부족이 꼬락서니로구나. 놈에게 재빨리 갚을 것을 갚아야지. 필경 높은 곳에서 왔는데, 몸소 오는 게 겁나는 자가 보냈으렸다! 일하는 품새로, 거들먹거리는 그만큼 대단하지 어쩐지 어디 보자. 이 세상 살구씨1)의 주민은 아니다. 초점이 없고 흐릿한 눈을 보니 치품천사 출신인 것을 알겠다." 얼마 전부터 해안의 가없은 공간을 시선으로 더듬던 갈색 대게는 우리의 주인공을 알아보고(그는 이때 헤라클레스의 키 높이를 우뚝 세워 일어섰다). 다음과 같은 말로 호통을 쳤다" "싸움하려 들지 말고 항복해라. 우리 둘 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나를 보내셨으니, 너를 사슬로 묶어 내 생각의 공범인 두 팔다리를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태에 가두기 위함이다. 손에 단검과 비수를 쥐는 일은 이제 내게 금지되어야 하니, 내 말을 믿으라. 이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못지않게 너의 이익을 위해서다. 죽여서건 살려서건 너를 붙잡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살려서 테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내가 빌려온 힘을 어쩔 수 없이 휘둘러야 할 상황에 나를 밀어붙이지 마라. 나는 소심스럽게 행동할 것이니 네 편에서도 어떤 식으로건 저항하지 마라. 나는 이처럼 네가 후회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음을 알게 되면 흔쾌하고도 기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심히 코믹한 맛에 절어든 이 장광설을 들었을 때, 볕에 탄 얼굴의 거친 표정에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느라고 고생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을 내가 덧붙여도 아무도 놀라지 않으리라. 그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 심술을 부리는 뜻도 아니었던 것! 갈색 대게한테서 비난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은 분명코 아니었다! 폭소를 물리치기 위해 그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 납작한 대화상대자를 모욕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그는 얼마나 여러 번 위아랫입술을 앙다물었던가! 불행하게도 그의 성격은 인간의 본성을 띠어서, 암양이 웃듯이 웃었다! 마침내 그는 멈추었다! 하마터면! 그는 숨이 막힐 뻔했다! 바람이 이런 대담을 암초의 대천사에게 전했다: "너의 주인이 더는 나에게 달팽이들과 가재들을 보내 제 일을 처리하려 하지 않을 때, 그가 직접 나와 담판을 하실 때, 내가 장담한다. 타협의 방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아주 정당하게 말했듯이, 나는 너를 보낸 자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화해라는 생각은 시기상조고, 망상의 결과만 낳기 십상이라고 본다. 나는 네 음절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이치를 추호도 오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목소리를 삼 킬로미터나 달려가게 하려다보니 쓸데없이 목소리가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 네가 그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내려와 단단한 땅에 헤엄쳐 닿는다면, 그야말로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한결 편하게 항복의 조건을 논의할 수 있을텐데, 항복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결국 불쾌한 전망으로 연결된다." 이런 선의를 기대하지 않았던 대천사는 바위틈 깊은 곳에서 머리를 한 매듭 내밀고 대답했다: "오 말도로르야, 너의 가증스러운 본능들아, 저들 자신을 영벌(永罰)로 끌고 갈 그 정당화할 수 없는 오만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보게 될 날이 마침내 도래한 것인가! 그러니까 바로 내가 이 치하해야 할 변화를 지품천사 군단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하게 된 터인데, 천사들은 자기들의 일원을 다시 만나 기뻐할 것이다. 내가 우리 가운데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고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너의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날아다녔고, 지금으로서는 우리들이 나누는 고독한 대화의 주제다. 이리 오너라, 어서--- 어서 와서 네 옛 주인과 오래 지속될 평화를 쌓아라. 주인은 너를 길 잃은 아들처럼 받아들일 테고, 인디언들이 큰사슴뿔로 쌓아올린 산처럼 네가 네 마음에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양의 죄는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말하고, 어두운 바위들 밑바닥에서 제 몸의 온갖 부분을 끌어낸다. 그가 암초의 표면에 그 빛살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길 잃은 양을 인도한다고 확신할 때의 종교 사제처럼 그는 물에 뛰어들어 , 그 죄 사함 받은 자를 향해 헤엄쳐서 나아간다. 그러나 사파이어색 입술을 가진 자는 미리 오랫동안 음흉한 공격을 궁리했다. 그의 곤봉이 힘차게 내던져져서 파도 위에서 여러 번 물수제비를 타다가 선한 대천사의 머리를 쳤다. 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물속에 떨어졌다. 조수가 이 떠다니는 표류물을 해안으로 실어간다. 게는 더 쉽게 상륙하려고 밀물이 차오르기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밀물이 차올라서, 노래로 감싸 그를 흔들다가, 부드럽게 바닷가에 내려놓았다. 게는 이제 흡족하지 않을까?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말도로르는 해변의 모래밭에 몸을 기울여 파도의 우연에 의해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된 두 친구를 품 안에 거두어들였다. 대게의 시체와 살인 곤봉을! 그는 외쳤다, "내 솜씨가 아직 무뎌지지 않았구나. 사용해주기만 바라는구나. 내 팔은 여전히 힘이 있고, 눈은 정확하구나." 그는 생기 잃은 동물을 바라본다. 유혈의 책임추궁을 당하지나 않을까 겁을 낸다. 대천사를 어디에 숨길 것인가? 그런데 동시에, 그 죽음이 즉사였는지 아닌지 속으로 생각해본다. 그는 등에 모루와 시체를 짊어지고, 넓은 늪지를 향해 가는데, 그 물기슭이 온통 키 큰 동심초로 무성하게 덮여 있어서 고립된 섬 같기도 하다. 그는 처음에 망치를 쥘 생각이었으나, 그것은 넘 가벼운 연장이다. 더 무거운 물건이라면, 시체가 살아 있는 기미라도 보일 때, 땅에 내려놓고 모루로 쳐서 가루를 내버릴 것이다. 그의 팔에 힘이라면 모자라지 않다. 가자, 그의 장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다. 호수가 시야에 들어오는 자리에 도착해보니, 백조들이 가득하다. 그는 이 호수가 자기에게 믿을 만한 은신처라고 생각하고, 둔갑술의 도움을 받아, 짐을 버리지 않고 다른 새때들 속에 섞여든다 섭리가 없다고 여기고 싶은 곳에서 그 손길을 알아보시고, 내가 지금 말하려는 기적을 이용하시라. 까마귀의 날개처럼 검은 그는, 세 차례 빛나는 흰빛의 물갈퀴 새들 사이로 헤엄쳤다. 세 차례, 그는 자신을 석탄덩어리로 여길 수도 있을 그 눈에 뜨이는 색깔을 유지했다. 그것은 신이 자신의 정의를 행함에 그의 교활함이 백조때를 속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눈에 훤히 드러나게 호수 안에 머무를 수 있었으나. 저마다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으며, 어떤 새도 그 더러운 깃털에 가까이 가서 그를 동무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는 자신의 잠수를 늪지의 끝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만에 가두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혼자였듯이. 하늘의 주민들 사이에서도 홀로이! 바로 이렇게 해서 그는 방돔 광장의 믿을 수 없는 사건에 전주곡을 연주하였더라!       1) 프랑스에서 '살구씨(abricot)'는 여성 성기를 속되게 지칭하기도 한다.
10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7) 댓글:  조회:181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7)           여섯번째 노래(2)       5       팔레루아얄의 왼편, 연못에서 멀지 않은 곳의 한 벤치로, 리볼리가에서 빠져나온 한 작자가 와서 앉았다. 그의 머리카락은 형클어졌고, 그의 옷차림은 길고 긴 궁핍의 부식작용을 드러냈다. 그는 뾰족한 나뭇조각으로 땅에 구멍을 파고는, 장심 오목한 곳을 흙으로 채웠다. 그는 이 식량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가, 황급히 내던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벤치에 머리를 박고는, 두 다리가 허공을 걷게 했다. 그런데, 이 곡예 장면은, 무게중심을 지배하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기에, 몸이 벤치 위로 육중하게 떨어지면서, 두 팔은 늘어지고, 얼굴 반쪽이 챙모자에 가려졌으며, 두 다리는 균형을 잡지 못해 점점 불안정해지는 상태에서 자갈밭을 때렸다. 그는 오랫동안 이 자세 그대로 있다. 북쪽 중앙 입구 가까이, 카페가 있는 원형 건물 앞에서, 우리의 주인공이 철책에 팔을 괴고 있다. 그의 시선은, 그 어떤 광경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정방형 표면을 훑고 달린다. 탐사를 마친 후, 두 눈이 그들 자신들을 향해 되돌아오는데, 그는 정원 한가운데에서, 벤치를 붙들고 비틀비틀 체조를 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힘과 재주의 기적을 발휘하여, 그 벤취 위에서 제 자세를 고정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로운 이유에 복무케 하려고 가져온 최상의 의도라 한들 정신착란이라는 고장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는 광인을 향하여 다가가, 친절하게 그를 도와 그의 품위를 정상적인 자세로 되돌려 놓고, 그에게 손을 내밀고, 그 옆에 앉았다. 그는 광기가 간헐적일 뿐이라는 것을 유념한다. 발작은 사라지자. 대화상대자는 모든 질문에 조리 있게 대답한다. 그 말들의 의미를 전할 필요가 있을까? 왜 인간들의 비참함을 담은 이절판을 어느 페이지가 되었건 신성모독적으로 열심히 다시 열어야 할까? 어느 것이든 더 풍부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에 들려줄 실제 사건이 하나도 없을 때라도, 나는 여러분들의 뇌에 옮겨 부을 만한 상상의 일화를 지어낼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환자가 된 것이 아니며, 그가 보고하는 것들의 성실성은 독자의 우직함과 기적에 가깝도록 일치한다. 이야기를 듣는 자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혐오스러운 이론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 새로운 예에 지지를 보낸다. 마치 오래전에 술에 취했던 한 남자를 빌미로, 인류 전체를 비난할 권리가 있다는 듯이, 적어도 그가 자기 정신 속에 끌어들이려는 역설적인 고찰이 바로 이것이지만, 이 고찰이 심각한 경험에서 나오는 중요한 교훈을 정신에서 몰아낼 수는 없다. 그는 가장된 동정으로 광인을 위로하고 자신의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는 광인을 식당으로 데려가서, 둘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그들은 고급 양복점으로 가서, 피보호자는 왕족같이 옷을 입는다. 그들은 생토노래가에 있는 대저택 수위실 문을 두드리고, 광인은 부유한 사층 아파트에 입주한다. 악당은 자기 지갑을 강제로 떠맡기고, 침대 밑의 요강을 들어 아곤의 머리에 올려놓는다. "나는 그대를 지성의 왕으로 대관(戴冠)하노라." 그는 미리 계획된 강세를 넣어 외쳤다. "작은 부름만 있어도 나는 달려갈 것이니, 내 금고에서 두 손 가득 꺼내어 쓰라. 육체도 혼도, 나는 너의 것이다. 밤이면 너는 석고관을 평소의 자리에 되돌려놓고, 허락을 받아서만 사용할 것이나, 낮에는, 여명이 도시를 비추자마자, 그 관을 권력의 상징으로 네 머리에 올려놓아라. 세 마르그리크가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니, 내가 너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자 광인은 모욕적인 악몽의 희생이라도 된 듯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슬픔으로 주름진 그의 얼굴에 행복의 선이 그어졌다. 그는 복종심으로 가득차서 보호자의 발끝에 무릎을 꿇었다. 관을 쓴 광인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독처럼 스며들었도다! 그는 말하고자 하였으며 그의 혀는 멈췄다. 그는 몸을 앞으로 굽히다가, 타일 바닥에 넘어졌다. 청동 입술을 가진 자는 물러난다. 그의 목표는 무엇이었던가? 가장 하찮은 명령에도 복종할 만큼 순진한, 어떤 시련도 견디어낼 친구를 하나 얻는 것이다. 그 이상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없었으니, 우연이 그를 도운 것이다. 그가 찾아낸 자, 벤치에 누워 있던 자는 젊은 시절에 겪은 사건 이후, 선악을 더는 구분하지 못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곤, 바로 그 사람이다.
1018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6) 댓글:  조회:194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6)       여섯번째 노래(2)       4       알고보니 나는 이마 한가운데에 달랑 눈 하나가 박혀 있을 뿐이구나! 오, 현관의 장식판자에 박혀 있는 은거울이여, 너는 네 반사의 힘으로 내게 그리도 많은 봉사를 해주지 않았던가! 알코올 가득한 탱크에 내가 제 새끼들을 넣고 끓였다고, 앙고라 고양이가 갑자기 내 등에 뛰어올라와 두개골을 뜷는 천공기처럼 내 정수리 마루뼈를 한 시간 동안이나 갉아댄 그날 이후, 나는 끊임없이 고통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 쏘아왔다. 오늘날, 때로는 내 탄생의 숙명 탓에, 때로는 나 자신의 잘못으로, 여러 가지 정황에서 내 몸이 입게 된 상처들의 영향 아래, 내 도덕적 추락의 결과들에 짓눌리며(어떤 결과들은 실현되었지만, 다른 결과들은 누가 예견할 것인가?), 지금 말하고 있는 자의 건막(腱膜)과 지성을 장식하는 후천적이거나 선천적인 괴물성의 냉정한 관찰자로서 나는 나를 구성하는 이중성에 오래오래 흡족한 시선을 던지며--- 내가 아름다운 것을 알겠다! 아름답다, 요도관의 상대적 짧음과 내벽의 분열이나 부재로 이루어진, 그래서 그 요도관이 귀두로부터 일정치 않은 거리에, 음경 밑으로 노출되는, 인간의 성적 기관의 선천적 기형처럼 아름답고, 또는 칠면조의 윗부리 기저에 돋아난, 자못 깊은 가로주름살로 고랑이 진 고깔형 군살 벼슬처럼 아름답고, 또는 차라리 "음계와 선법, 그리고 그 화음연속 체계는 불변의 자연법칙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류의 단계적 진보와 함께 변하는, 그리고 또다시 변하게 될 미학적 원리의 결과이다"라는 진리처럼 아름답고, 그리고 특히 포탑이설치된 장갑코르벳함처럼 아름답다! 그렇다, 나는 내 단언의 정확함을 주장한다. 나는 오만한 환상이 없으며, 나는 자부한다. 거짓말에서 어떤 이득도 찾지 않을 것이니,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다. 그대는 내 말을 믿는데 어떤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왜 내가 나의 양심에서 우러나온 천사 가득한 증언 앞에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두려움을 불어넣을 것인가? 나는 창조주에게 부러워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그는 내게 점점 증가하는 일련의 영예로운 범죄를 통해서 운명의 강을 따라 내려가게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온갖 장애로 화난 시선을 그의 이마 높이로 치켜세우고, 나는 그가 우주의 유일한 주인은 아니며, 사물의 본성에 대한 한결 깊은 지식에 직접 근거하는 여러 현상이 반대의견에 유리한 증언을 하고 있으며, 단일 권력의 생존자능성에 맞서 단호한 반박을 내세우고 있음을 납득시킬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눈꺼풀의 속눈썹을 들여다보는 두 존재이기 때문이며, 너도 보다시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내 입술 없는 입에서 승리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잘 가라, 이름 높은 전사여, 불행 속에서도 너의 용기는 가장 악착스러운 너의 적에게 존경심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말도로르는 머지않아 너를 다시 만나 머빈이라 불리는 희생물을 두고 너와 다투리라. 따라서 그가 샹들리에 깊은 바닥에서 미래를 엿보았을 때, 수탉의 예언은 실현되리라. 하늘의 뜻이 다르지 않아 대게가 늦지 않게 순레자들의 카라반을 쫓악, 클리낭쿠르 넝마주이의 구슬을 몇 마디 말로 그들에게 알려주기를!
1017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5) 댓글:  조회:190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5)           여섯번째 노래(2)       3       머빈이 자기 방에 있다. 그는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편지를 썼단 말인가? 그는 혼란스러워 배달부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봉투에는 검정 테가 둘러져 있고, 전언은 서둘러 쓴 글씨체였다. 그는 이 편지를 자기 아버지에게 들고 갈 것인가? 그런데 서명자가 일부러 그러지 말라고 금한 것이라면? 불안으로 가득차서, 그는 창을 열어 바깥 공기 냄새를 들이마시고, 햇살이 프리즘으로 분광된 듯 아롱진 빛을 베네치아산 유리와 다마스산 커튼 위로 반사한다. 그는 한옆으로, 학습용 책상의 표면을 덮고 있는 돋을무늬 압착세공 가죽 위로 흩어져 있는, 책머리를 금박한 책들과 자개 표지를 입힌 앨범들 사이로 편지를 내팽개친다. 그는 피아노를 열고, 날씬한 손가락을 상아 건반 위로 달리게 한다. 황동 현이 전혀 울리지 않는다. 이 간접 경고가 그에게 독피지 편지를 다시 집어들게 했으나, 독피지는 수신인의 망설임에 감정이 상하기나 한 듯 뒤로 물러났다. 이 덫에, 머빈의 궁금증이 더 커져서, 그는 벌써 읽으려고 했던 종잇장을 펴들었다. 그는 이제껏 저 자신의 필적밖에은 본 적이 없었다. "젊은이, 나는 그대에게 관심이 많소.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소. 그대를 길동무로 삼아서, 우리는 오세아니아의 섬에서 긴 편력을 하게 될 것이오. 머빈, 자네도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그걸 자네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네. 자네는 내게 우정을 바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믿네. 자네가 나를 더 많이 알게 될 때, 자네는 자네가 내게 보여주게 될 그 신뢰감을 후회할 일은 없을 걸세. 나는 자네의 형제가 될 것이고, 좋은 충고를 아끼지 않겠네. 좀더 긴 설명을 들으려면, 모레 아침 다섯시에, 카루젤 다리 위로 나오게. 만약 내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기다리게. 그러나 나도 정시에 당도하기를 바라네만, 자네도 그래야지. 영국인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볼 기회를 허투로 놓치지는 않을 것이네. 젊은이, 그럼 안녕, 곧 만나세. 아무에게도 이 편지를 보이지 말게." - "서명을 대신해서 별 세 개". 머빈은 외친다. "편지 말미에 핏자국이라니!" 그의 두 눈이 집어삼킨, 그러자 그의 정신에 불확실하고도 새로운 지평의 무한한 영역을 열어주는 기이한 문장들 위로, 푸짐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에게 (편지 읽기를 막 끝내고 나서부터의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엄격하고, 어머니는 너무 기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제 아우들이 이제는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 이유, 내 앎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따라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전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이 편지를 제 가슴에 숨긴다. 그의 선생들은 이날 그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의 눈이 굉장히 흐려졌고, 과도한 생각의 베일이 안과 주변부에 내려앉았다. 선생들은 저마다 제 학생의 지적 수준에 이르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얼굴을 붉혀왔지만, 학생은 처음으로 숙제를 소홀리 했고,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저녁, 가족들은 옛날의 초상화들로 장식된 식당에 모였다. 머빈은 살과 즙이 많은 고기와 향기로운 과일을 가득 담은 접시에 감탄하면서도 먹지 않는다. 라인란트 포도주와 다색 광채와 샴페인의 거품 이는 루비빛이 좁고 높은 보헤미아 수정잔에 담겨 있으나, 그의 시선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는 식탁에 제 팔꿈치를 괴고, 몽유병자처럼 제 생각에 빠져 있다. 바다의 포말에 얼굴이 탄 함대사령관이 제 아내의 귀에 몸을 기울린다. "큰 아이가 발작이 일어난 날 이후로 성격이 변했소. 전에도 벌써 터무니없는 생각에 너무 기울어져 있었소만, 오늘은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몽상에 빠져 있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소.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말이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시오. 물질적인건 정신적이건, 효과적인 처방이 바로 여기서 어렵잖게 제 용처를 찾을 것이오. 머빈아, 여행과 박물학 서적들의 독서에 취미가 있는 너이지만, 네 마음에 들지 않을 이야기 하나를 읽어주겠다. 모두들 주의깊게 듣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먼저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아. 너희들이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너희 문체의 틀을 세련시키고, 한 작가의 가장 사소한 의도까지 이해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라." 한 배에서 난 이 사랑스런 아이들이 그게 바로 수사학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그가 말을 하고, 그의 손짓에 따라, 형제들 중 하나가 아버지의 서재로 걸어가서 팔 밑에 책 한 권을 끼고 돌아온다. 그동안에, 식기와 은그릇은 치워졌고, 아버지는 책을 집어든다. 여행이라는 전기를 띤 명사에서, 머빈은 고개를 들고, 시기적절치 않은 명상을 끝내려고 애썼다. 책은 가운데 부분이 펼쳐졌고, 함대사령관의 금속성 목소리는 그가 아직도 저 영광스러운 젊은 날과 마찬가지로 사나이들과 폭풍우의 광란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증명한다. 이 낭독이 끝나기 훨씬 전에, 머빈은 단계적으로 지나가는 문장들의 논리적 전개와 으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은유의 비누화1)를 더는 따라갈 수 없어서, 다시 팔꿈치 위로 늘어졌다. 아버지가 외친다: "이건 아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구나, 다른 것을 읽자, 읽으시오, 부인 우리 아들의 나날에서 비애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나보다 당신이 더 적절할 것이오." 어머니는 더이상 희망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책을 집어들었고, 그녀의 소프라노 목소리가 그 회임의 산물인 자식의 귀에 낭랑하게 울린다. 그러나 몇 마디 후에, 실망이 그녀를 엄습하고, 그녀은 문학작품의 연주를 스스로 멈춘다. 첫째 아이가 외친다. "저는 자러 가겠습니다." 그는 차갑게 고정된 시선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자리를 뜬다. 개가 불길하게 짖기 시작하는데, 이 행위가 자연스럽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바깥의 바람은 창문에 세로로 난 작은 틈으로 고르지 않게 들이치면서, 장미색 크리스털 원형 갓 두 개가 씌워진 청동 램프의 불꽃을 흔든다. 어머니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아버지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올린다. 아이들은 늙은 해군에게 놀란 시선을 던진다. 머빈은 방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그의 손은 종이 위에서 재빠르게 달린다: "저는 정오에 귀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답장을 기다리시게 하였다면 용서하십시오. 저는 귀하를 개인적으로 알게 될 영예를 누리지 못해서, 귀하의 편지를 써야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안에 무례가 몸 붙일 수는 없기 때문에, 저는 펜을 잡고, 귀하가 낯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관심에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귀하가 저에게 넘치게 베풀어주신 호의에 대해 사의를 표하지 않는다면 신이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미숙함을 알고 있기에, 더는 오만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연장자의 우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면, 우리의 성격이 같지 않다는 것도 그분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온당합니다. 사실, 귀하가 저를 젊은이라고 불렀으니 저보다 나이가 더 많다고 보지만, 저는 귀하의 실제 나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귀하의 삼단논법의 냉정함과 거기에서 발산되는 열정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가 태어난 장소를 버리고 귀하를 따라 먼 나라로 가지는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저의 생애를 만드신 분들께 미리 허락을 구하고 애타게 그 대답을 기다려야 한다는 조건으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하가 제게 정신적으로 난해한 이 일에 대해 비밀을 (이 단어의 입체적인 의미에서) 지키라고 엄명하셨으니, 귀하의 명백한 지혜에 열심히 따를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 지혜는 빛의 밝음에 기꺼이 맞서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귀하의 인간됨 자체를 신뢰하는 것이 귀하의 바람이라고 생각되니(과람한 것이 아닌 이 희망을, 저는 고백하는 것이 기쁩니다). 부디 호의를 베풀어 저에게도 동일한 신뢰를 보여주시고, 귀하와 의견의 차이가 큰 탓에, 모레 아침, 지정된 시각에, 제가 약속 장소에 어김없이 가 있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말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정원의 철문이 닫혀 있을 터이니, 저는 담벼락을뛰어넘을 것이고, 아무도 제가 떠나는 것을 목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귀하를 위해 제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귀하가 보여주신 설명할 수 없는 애착이 능히 신속하게 드러나 저의 두 눈은 부시고, 특히 제가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 확실한, 그런 선의의 증거에 특히 휘둥그레졌습니다. 저는 귀하를 알지못했으니까요. 이제 귀하를 압니다. 카루젤 다리 위에서 거닐고 있겠다고 제게 해주신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제가 그곳을 지나 갈 경우, 귀하를 만나 그 손을 만질 것이라는 확신을, 어디에도 비할 데 없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어제까지만 해도, 정숙(貞淑)의 제단 앞에 조아리고 있던 한 소년의 이 순정한 의사표현이 존경 어린 무람없음으로 귀하에게 무례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조건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람없음도, 타락이 심각하고 확실할 때에, 어떤 강력하고 뜨거운 친밀성이 있는 경우라면,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바로 귀하께 묻자 하니, 모레, 비가 오건 아니건, 다섯시가 쳤을 때, 제가 지나가면서 귀하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해서, 어떤 경우라도, 나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귀하께서도, 신사님, 제가 이 편지를 구상한 솜씨를 높게 보실 터인데, 잃어버리기 십상인 낱장 종이에, 더 많은 말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요. 종이 하단에 있는 귀하의 주소는 일종의 수수께끼입니다. 그것을 판독하는 데 거의 사반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귀하가 거기에 현미경적인 방식으로 단어들을 적어둔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에게 스스로 서명을 면제해주기로 하며, 그로써 당신을 본받으려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상궤를 벗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건 일순간도 놀랍지 않습니다. 나는 내 얼음 같은 부동성이, 내 권태로운 시간의 더러운 납골당인, 긴 칸막이처럼 늘어선 공허한 방들에 둘러싸여, 거주하는 이 장소를 귀하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할까요? 귀하를 생각할 때, 내 가슴은 요동치며, 퇴폐기 제국의 붕괴처럼 울리니, 귀하의 사랑의 그림자가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미소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그리도 어렴풋하고, 그리도 구불거리며 비늘을 꿈틀대지요! 내 맹렬한 감정을, 완전히 새롭고, 치명적 접촉으로부터 아직 오염되지 않은 이 대리석 판을, 귀하의 두 손에 맡깁니다. 아침 어스름의 첫 미광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귀하의 역병 들린 두 팔의 흉측한 교착(交錯)에 나를 던질 순간을 기다리는 가운데, 나는 겸허히 몸을 숙여 그 무릎을 끌어안습니다." 이 죄 많은 편지를 쓰고 나서, 머빈은 그것을 우체통에 던지고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거기서 수호천사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마시라. 물고기 꼬리가 사흘 동안만 날아다닐 것이며,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슬프다! 대들보는 그럼에도 불타버릴 것이고, 첨단원통형 탄환이, 백설처녀와 거지의 뜻도 아랑곳없이, 코뿔소의 가족을 뚫으리라! 왕관 쓴 광인이 열네 자루 단검의 충성스러움에 대해 진실을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화학에서 지방질을 비누로 만드는 과정. 여기서는 억지로 쓴 비츄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상태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1016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4) 댓글:  조회:197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4)           여섯번째 노래(2)       2        그가 구리 손잡이를 당기자, 현대식 저택의 정문이 돌쩌귀를 타고 돌아간다. 그는 가는 모래가 뿌려진 안마당을 성큼성큼 걸어가 층계의 여덟 계단을 뛰어오른다. 귀족 빌라의 수위처럼 오른쪽과 왼쪽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조각상이 그의 통행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섭리, 사랑, 이상, 모든 것을 부정하고 오직 자기만을 생각했던 남자는 앞서가는 발걸음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자못 조심하였다. 그는 소년이 홍옥수 판석을 두른 넓은 일층 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가족의 아들은 소파에 몸을 던지고, 감정이 그의 말을 막는다. 바닥에 끌리는 긴 드레스를 입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달래며 팔로 끌어안는다. 그보다 나이가 어린 그의 아우들은 그의 몸이 실린 소파 주위에 모여 있다. 아우들은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에 대해 명백한 개념을 가질 만큼 삶을 충분하게 알지 못한다. 마침내 아버지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권위 가득한 시선을 낮추어 참석자들을 내려다본다. 그는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손목으로 짚고 일어나, 제 평상시의 좌석에서 멀어져, 첫 자식의 움직이지 않는 몸을 향해, 비록 늙어 힘이 빠졌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나아간다. 그는 외국어로 말하고 저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듣는다. "누가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안개 낀 템스강은 내 힘이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괄목할 만한 양의 진흙을 여전히 실어 나르리라.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이 나라에는 범죄예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범인을 안다면, 놈이 내 완력을 알게 되련만, 내 비록 은퇴하여 해전(海戰)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벽에 걸려 있는 내 함대사령관의 칼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게다가 날을 갈아 다시 세우기는 어렵지 않다. 머빈아, 마음을 놓아라. 내 하인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제부터 내가 찾고 있는 그놈의 족적을 발견할 것이고, 내 손으로 놈을 죽일 것이다. 부인, 거기서 떨어져 구석에 웅크리시오. 당신의 눈이 나를 나약하게 하니, 그 눈물샘의 누도를 닫는 게 나을 것이오. 아들아, 제발 부탁이니,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을 알아보거라, 네 아버지가 네게 말한다--- " 어머니는 한옆으로 비켜나, 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제 자궁으로 낳은 아이에게 닥친 위험을 앞에 두고, 태연하려고 애쓴다. "얘들아, 공원에 가서 놀아라, 그런데 백조의 헤엄에 감탄하다가, 물웅덩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우들은 두 손을 늘어뜨리고 말없이 서 있다. 하나같이, 카롤린산 쏙독새의 날개에서 뽑은 깃털 하나를 올린 기수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벨벳 바지에 빨간색 명주 양말을 신은 아우들은, 서로 손을 잡고, 흑단 마루판을 발끝으로 밟으려고 애쓰면서 거실에서 물러난다. 나는 그들이 즐겁게 뛰노는 게 아니라, 플라타너스 오솔길에서 심각한 얼굴로 산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의 지성은 조숙하다. 그들에게는 잘된 일이다." --- 쓸데 없는 보살핌인가, 너를 팔에 안고 달래는데, 너는 내 애원에 무감각하구나. 고개를 들어보지 않겠느냐? 내 무릎을 안아야 한다면 안을 텐데, 아니다---- 머리가 무기력하게 떨어지는구나." --- "내 친절하신 주인, 당신이 이 노예에게 허락하신다면, 내 방에 올라가 테레빈유 에센스 약병을 찾아보겠어요. 그 약병은 극장에서 돌아온 뒤나, 우리 조상들의 기사도 이야기를 적은 브리태니카 연감에 기고된 감동적인 서술의 독서가 꿈결 같은 생각을 졸음의 이탄(泥炭) 지대에 던질 때, 습관적으로 사용해왔지요." --- "부인, 내가 당신에게 발언권을 준 적이 없으니, 당신은 발언할 권리가 없었소. 우리의 합법적인 결합 이래로, 구름 한 점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어온 적이 없소. 나는 당신에게 만족하고, 당신을 비난해야 할 일이 한 번도 없었으며, 이 점은 상호 동일하오. 당신의 방으로 테레빈유 에센스 약병을 찾아 오시오. 그게 당신 서랍장의 한 서랍 속에 들어 있는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 그것을 나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소. 어서 나선형 층계의 계단을 뛰어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와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보시오." 그러나 민감한 런던 여인은 층계의 첫 계단 몇 개를 오르자마자(그녀는 하층계급 사람만큼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벌써 화장 담당 하녀 하나가 두 빰이 땀에 붉게 물들어서, 아마도 수정벽 안에 생명수을 담고 있는 약병을 들고 이층에서 내려온다. 하녀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가져온 것을 내밀고, 어머니는 왕녀와 같은 걸음걸이로, 자신의 애정을 사로잡는 유일한 대상, 소파의 가를 두른 술을  향해 나아간다. 함대사령관은 거만하지만 반가워하는 동작으로 아내의 손에 든 약병을 받는다. 인도산 스카프가 그것에 적셔지고, 머빈의 머리가 비단의 환상(環狀) 굴곡에 둘려싸인다. 그가 각성제를 흡입한다   . 한쪽 팔을 움직인다. 순환이 되살아나고, 창틀에 앉아 있던 필리핀산 앵무새의 기쁨에 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거기 누구요?--- 나를 붙잡지 마세요--- 여기가 어딘가? 무덤이 내 무거운 사지를 받치고 있는 것인가? 널판이 푹신한 것 같다.--- 어머니의 초상화를 넣어둔 로켓이 아직도 내 목에 걸려 있는가?--- 물러서라, 머리칼이 헝크러진 악당아. 놈은 너를 붙잡을 수 없었고, 나는 그의 손가락에 내 윗저고리 한 자락을 남겨 두었다. 블도그의 사슬을 푸세요. 오늘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도둑이 불법으로 침입할 수 있는데, 그동안에 우리는 잠에 빠져 있을 것이오.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알아볼 수 있겠어요. 베풀어주신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내 동생들을 불러주세요, 아우들을 위해 제가 프랄린 과자를 사왔어요. 아우들을 안아보고 싶어요." 여기까지 말을 하고, 그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화급하게 불러들인 의사는, 두 손을 비비며 외친다: "위기는 넘겼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내일 당신네 아들은 거뜬하게 일어날 것이오. 모두들, 각자의 잠자리로 가시오. 명령입니다. 여명이 돋고 밤 꾀꼬리의 노래가 들릴 때까지 환자의 곁에 저 혼자 남을 수 있도록. "말도로르는, 문 뒤에 숨어서,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이제는 저택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는 머빈이 어디 사는지 알았고, 더이상의 것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수첩에 길의 이름과 건물의 번지수를 적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것들을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는 하이에나처럼 눈에 띄지 않고 나아가, 안마당의 측면을 따라간다. 그는 철책을 민첩하게 타고 오르다가, 쇠살 끝에서 잠시 어려움을 겪는다. 한 번의 도약에, 그는 도로 위에 있다. 그는 늑대 걸음으로 멀어지면 외친다: "놈이 나를 악당으로 여겼지. 멍청한 놈이야. 그 병자가 내게 던진 비난에서 면제된 사람이 있으면 만나보고 싶구나. 나는 놈이 말한 것처럼, 윗저고리 한 자락을 찢어낸 적이 없다.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반수면상태의 단순한 환각이야. 내 의도는 오늘 놈을 납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이 겁 많은 소년에게 후일의 다른 계획이 있으니까." 백조들의 호수가 있는 쪽으로 가시라. 그러면 조금 후에, 왜 무리 중에 완전히 까만 한 마리가, 갈색 대게의 부패중인 시체를 싣고 있는 모두를 떠받치고 서서, 다른 수생(水生) 동지들에게 정당하게 불신을 부추기는지 알려 주겠다.  
1015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3) 댓글:  조회:172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3)           여섯번째 노래(2)       1       비비엔가의 상점들이 그 재물들을 경탄하는 눈들 앞에 펼쳐놓는다. 수많은 가스가로등으로 밝혀진. 마오가니 상자들과 금시계들의 진열장 너머로 눈부신 빛다발을 퍼뜨린다. 증권거래소의 시계가 여덟시를 쳤다. 늦지 않았다! 종을 치는 마지막 망치질이 들려오자마자, 이미 이름이 언급된 그 거리가 술렁이기 시작하며, 제 지반을 루아얄 광장으로부터 몽마르트 대로까지 뒤흔든다. 산책자들은 걸음을 재촉하고, 생각에 잠겨 제 집으로 피신한다. 한 여인이 기절해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다. 아무도 그녀를 일으켜 세워 주지 않는다. 저마다 어서 그 근처에서 벗어나려고 서두른다 덧창들이 맹렬히 닫히고, 주민들은 자기네 지붕 아래에 처박힌다. 아시아 흑사병이 그 출현을 알린 것만 같다. 이렇게, 도시의 대부분이 밤의 제전의 환희 속에서 헤엄칠 준비를 하는 동안, 비비엔가는 갑자기 일종의 석화(石化)작용으로 얼어붙는다. 사랑하기를 그친 마음처럼, 거리는 자신의 생명이 꺼진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이 기이한 사건을 전하는 소식이 여러 다른 계층의 주민들에게 퍼지고, 침울한 침묵이 이 엄숙한 수도 위로 떠오른다. 가스등의 화구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사랑을 파는 여자들은 무엇이 되었나? 아무것도 --- 고독과 어둠! 직선 방향으로 날아가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올빼미 하나가, 마들렌 성당 위를 지나, 트론 성문을 향해 비상하면서, 외친다. "불행이 준비되었다." 나의 펜이(나의 공범자 노릇을 하는 이 진정한 친구가) 방금 신비롭게 그려낸 이 장소에서, 만약 그대가 콜베르가가 비비엔가로 이어지는 쪽을 바라본다면, 이 두 길의 교차로 생겨난 모퉁이에서 한 인물이 그 실루엣을 드러내고, 가벼운 발걸음을 대로 쪽으로 옮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 가까이, 이 행인의 주의를 끌지 않으면서 다가가면, 우리는 유쾌한 놀라움을 느끼며 알아차리게 된다. 그는 어리다! 멀리서는 사실 그를 성인(成人)으로 여겼을 테니까. 진지한 인물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일이라면, 살아온 날수의 총합은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내가 능히 이마의 관상학적 주름에서 나이를 읽어낼 줄 아는바, 그늘 열여섯하고도 사 개월이다! 그는 아름답다. 맹금들의 발톱이 지닌 수축성처럼, 혹은 더 나아가서, 후두부터 연한 부분에 난 상처 속 근육운동의 불확실함처럼, 혹은 차라리, 저 영원한 쥐덪, 동물이 잡힐 때마다 언제나 다시 놓여지고, 그것 하나만으로 설치류들을 수없이 잡을 수 있으며, 지푸라기 밑에 숨겨놓아도 제 기능을 다하는 저 뒤덪처럼. 그리고 특히 해부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머빈1), 이 금발의 영국의 아들이 선생의 집에서 검술 교습을 이제 마치고, 스콜틀랜드산 타탄체크 옷을 두르고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여덟시 반이며, 그는 자기 집에 아홉시에 도착하리라 생각한다. 미래를 안다고 확신하는 척하는 것은 그의 편의 크나큰 오만이다. 어떤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그의 길을 방해할 수는 없을까? 또 그런 상황은 지극히 빈도가 낮아서, 예외로 여겨야 마땅할까? 왜 그는 지금까지 누렸던 아무 걱정이 없다고 느낄, 다시 말해서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을 오히려 비정상적 사태로 여기지 않는가? 대체 무슨 권리로 자신이 무사히 거처까지 다다르기를 바라는가. 누군가를 몰래 그를 제 미래의 먹잇감 삼아 노리고 뒤따라가고 있는데도?( 내가 이제 막 끝마치려는 문장이 곧바로 따라붙게 되는 이 한정의문문들이라도 최소한 앞세우진 않는다면, 그것은 선정적인 작가라는 자기 직업에 대해 별로 아는바가 없다는 것이리라.) 그대라 알아본 인물은 오래전부터 그 개성의 압력으로 내 불행한 지성을 깨부순 상상의 주인공! 어떤 때는 말도로르는 머빈에게 다가가 그 소년의 모습을 제 기억에 새기는가 하면, 어떤 때는 몸을 뒤로 젖히고, 그 궤적의 제2기에 들어선 오스트레이리아 부메랑처럼, 또는 폭탄처럼 제가 왔던 길을 따라 물러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주저하며, 그러나 그의 양심은 그대가 잘못 추측한 것처럼 가장 배발생적(胚發生的) 감정의 징후조차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일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한에 짓눌렸던 것인가? 그러나 그는 새로운 집념으로 발걸음을 되짚어 돌아왔다. 머빈은 관자놀이의 동맥이 왜 힘차게 뛰는지 알지 못한 채, 그와 그대가 이유를 찾으려 하나 헛일인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을 재촉한다. 수수께끼를 풀려는 그의 열의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는 왜 뒤돌아보지 않는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텐데. 불안한 상황을 중지시킬 가장 간단한 방법을 인간들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가? 성문밖길을 배회하는 자가 샐러드 대접 하나 분량의 백포도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며, 누더기가 된 작업복을 입고, 교외의 변두리를 가로지르다가, 경계석 구석에서, 우리 아버지들이 목도했던 여러 혁명들과 시대를 같이했던 근육질의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든 들판 위로 쏟아지는 달빛을 우울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띄면, 그는 굽어진 길로 꼬불꼬불 나아가며, 한 마리 안짱다리 개에게 신호를 보내고, 개는 서두른다. 고양잇과의 고결한 동물은 용감하게 적을 기다리며, 목숨을 비싸게 걸고 싸운다. 내일, 어느 넝마주이가 전기를 띤 가죽 한 장을 살 것이다. 녀석은 왜 달아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쉬운 일이었는데. 그러나 지금 우리를 걱정하게 만드는 이 사간에서, 머빈은 그 무지 탓에 위험에 더욱 깊이 얽힌다. 그에게는 정말이지 극도로 드물긴 하지만 얼마큼의 빛 같은 것이 있는데, 나는 그 빛을 가리는 모호함을 멈추지 않고 밝힐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현실을 내다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예언자가 아니며, 나는 반대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예언자의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대동맥 도로에 이르러, 그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푸아소니에르 대로와 본누벨 대로를 횡단한다. 그 지점에서, 포부르생드니가로 들어서서 스트라스부르 철도역을 뒤에 두고, 높은 정문 앞에 멈추었다가, 라파예트가의 중첩수직교차로에 도착한다. 이 대목에서 제1절을 마무리하라고 그대가 권유를 하니, 이번은 그대의 희망에 흔쾌히 따르겠다. 그대는 아시는가, 어느 편집증 환자2)의 손이 바위 밑에 숨겨둔 강철 고리를 생각할 때면, 물리칠 수 없는 선율이 내 머리카락을 타고 지나간다는 것을?       1) '머빈'의 로마자 철자 Mervyn을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메리뱅'이 된다. 머빈은 역사 소설가 월터 스콧의 소설 (1815)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2) 이 편집증 환자는 다른 쪽에서는 '아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014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2) 댓글:  조회:186  추천:0  2019-09-19
  여섯번째 노래(2)       (2)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 옆에 열린 잉크병 하나와 풀기가 적은 종이 몇 장을 반드시 놓아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본다.(내가 틀렸다면, 저마다 내 말에 동의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투로, 어서 생산하고 싶은 일련의 교훈적인 시편들을 이 여섯번째 노래로부터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가차없는 유용성의 극적인 에피소드들이여!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동굴을 드나들고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피난처로 삼는 가운데, 논리의 법칙을 위반하고 순환논법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독과 유리의 보상으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며, 좁아든 시야를 왜소한 관목과 가시덤불과 머루덩쿨 사이에 수동적으로 제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활동이 그 사악한 본능이라는 미노타우로스를 부양할 만한 어떤 양식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완전히 준비된 수많은 희생자들 중에서, 자신의 갖가지 정념이 만족할 만한 대상을 넉넉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인간들의 주거단지에 접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경찰, 이 문명의 방패가 여러 해 전부터 끈질기게 자기를 찾고 있으며, 일개 사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경찰과 밀정이 지속적으로 자기를 쫓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만나기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만큼 놀라자빠지게 하는 그의 재주가 성공의 관점에서 한 점 이론의 여지도 없는 계략과 가장 교묘한 궁리에서 나온 명령을 최고로 멋지게 따돌렸던 것이다. 그는 숙련된 눈으로도 알아보기 어렵게 형태를 바꾸는 특수능력이 있었다. 예술가로서 말을 한다면, 뛰어난 변장! 내가 도덕을 염두에 두고 볼 때는, 진짜로 허름한 인상의 차림새. 이 점에서 그는 거의 천재에 버금갔다. 그대는 파리의 하수구에서, 움직임이 기민한 한 마리 예쁜 귀뚜라미의 섬세함을 눈여겨본 적이 없는가? 그 사람밖에 없다. 말도로르였다! 꽃 피는 여러 수도들에 유독성 유체로 동물자기최면술을 걸어서, 적절한 자기감시가 불가능한 일종의 마비상태에 그 도시들을 몰아 넣는다. 그가 의심을 받지 않기에 그만큼 더 위험한 상태, 오늘은 마드리드에 있는대, 내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을 것이며, 어제는 베이징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시적인 로캉볼1)의 활약이 지금 공포로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장소를 정확하게 단정한다는 것은 내 둔한 추론능력을 넘어서는 작업이다. 이 강도는 어쩌면 이 나라에서 칠백 리 밖에 있으며, 어쩌면 그대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다. 인간을 모두 전멸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엄연히 법이 있다. 그러나 인간 개미들은 끈질기게 하나씩 하나씩 처치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내 탄생일 이후로, 우리 종족의 첫 조상들과 함께, 내 매복의 긴장 속에서 여전히 미숙한 상태로 살면서, 역사 저편에 자리잡은 태고의 시대 이후로, 정교한 변신을 통해서, 다양한 시대에, 정복과 살육으로 지구의 여러 나라를 휩쓸고, 시민들 한가운데 내전을 퍼뜨리면서, 나는 벌써 그 무수한 숫자를 떠올리기도 어려울 만치 모든 세대를 한 명씩 한 명씩 혹은 집단적으로 내 발꿈치로 밟아 짓이기지 않았던가? 빛나는 과거는 미래에 눈부신 약속을 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 내 문장을 그러모으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방법을 사용할 것이며, 야만인들에게까지 거슬러올라가 그들에게서 교훈을 얻을 것이다. 소박하고 위엄 있는 신사들, 그들의 우아한 입은 문신을 한 그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고결하게 한다. 나는 이 별에 있는 어느 것도 가소롭지 않다는 것을 방금 입증했다. 웃기는, 그러나 아름다운 별, 어떤 사람들은 순진하다고 여길 (그토록 심오할 때도) 문제를 움켜잡아, 나는 어쩌면 불행하게도 거창하게 보이지는 않을 생각들을 해설하는 데 사용하리라! 바로 그것으로, 일상 대화의 경박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또한 거들먹거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진지하게--- 내가 말하려고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하겠는데, 문장의 시작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오리의 얼굴을 지닌 인간의 미소, 어리석게도 빈정대며 짓는 미소가 없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발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우선 코를 풀고 싶기 때문에 코를 풀겠으며, 그 다음에는 내 손의 강력한 도움을 받아, 손가락이 떨어뜨린 펜대를 다시 잡을 것이다. 파리의 카루젤 다리는 자루가 내지르는 것만 같은 가슴 찢는 비명을 들었을 때, 어떻게 의연히 그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1) 피에르 퐁송 뒤 테라유(1829~1871)의 신문연재소설 의 주인공. 이름 난 악당이었으나 개과천선하고 변두리 사회에서 정의의 수호자로 활약하는 인물.
1013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1) 댓글:  조회:185  추천:0  2019-09-19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51)           여섯번째 노래(1)       (1) 부럽기도 한 그 침착함이 얼굴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나 쓰일 그대여, 아직까지도 14행이나 15행 장절에서 제4학급1) 학생처럼, 적절치 못하다고 여겨질 감탄사들과, 조금만 수고를 해도 괴상하다고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괴상한 코친친2) 암탉의 우렁찬 꾸룩꾸룩 소리를 내질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러나 명제들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하는 편이 더 낫다. 그대는 내가 설명 가능한 과장법으로 인간과 창조주와 나 자신을 장난치듯이 모욕했다고 해서, 내 임무가 완수되었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 직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행해야 할 과제처럼,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부터 내 소설의 끈은 앞에서 이름을 말했던 세 등장인물을 조종할 것이다. 덜 추상적인 힘이 저들에게 전달되리라. 저들의 생명력은 그 순환기의 급류에 장엄하게 퍼질 것이며, 그대는 이제까지 순수 사변의 영역에 속하는 막연한 물질관념밖에 보지 못했다고 믿었던 곳, 그 한쪽에서 신경의 잔가지들과 그 점막이 있는 신체조직을, 다른 한쪽에서 육체의 심리적 기능이 자리잡은 정신적 원리를 만나고 얼마나 놀랄지 알게 될 것이다. 저들은 활기찬 생명을 타고난 존재들로, 팔짱을 끼고 가슴을 멈추고, 그대의 얼굴 앞에, 그대에게 단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산문적으로 (그러나 효과는 매우 시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세를 취함으로써, 태양 광선이 우선 지붕의 기와들과 굴뚝 덮개를 때리고, 이윽고 저들의 지상적이고 질료적인 모발에 내려와 눈에 띄게 반사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이제 웃음을 유발하는 특기의 소유자들, 저주받은 자들이 아닐 것이다. 저자의 두뇌 속에 남아 있도록 만들어졌을 가공의 인물들이거나 일반적인 삶의 너무 위에 자리잡음 악몽들. 바로 그 때문에, 내 시가 더욱 아름다우리라는 점에 주목하시라. 그대는 두 손으로 오름대 동맥과 부신 피막을, 그러고는 감정을 만지리라! 처음 다섯 개의 이야기는 무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내 작품의 현관이요, 건축의 기초요, 내 미래 시학의 예비 설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가방을 잠그고 상상의 나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문학의 진지한 애호자들에게, 분명하고도 정확한 개괄의 간략한 초안으로, 내가 추구하기로 결심한 목적을 알려야 할 의무를 스스로 짊어졌다. 결과적으로, 이제 내 작품의 종합적인 부분이 완전하며, 충분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바로 그 종합 부분을 통해 그대는 내가 인간과 인간을 창조한 그자를 공격하자고 제안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리고 향후로도, 그대가 더 많이 알 필요는 없다! 새로운 고찰은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데, 그런 고찰이, 정말이지, 더욱 광범하다곤 해도 결국 동일한 또하나의 형식 아래, 오늘의 끝이 그 첫번째 전개를 보게 될 명제의 진술을 되풀이하게 할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소견으로부터, 내 의도는 이제부터 분석적 부분에 착수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점은 매우 진실이어서, 단지 몇 분 전에 나는 그대가 내 피부의 땀샘에 갇혀서, 사정을 숙지하는 가운데, 내가 주장하는 바의 성실성을 확인하라고 열렬한 소망을 표명하였다. 내 정리(定理)에 포함되어 있는 입론을 떠받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 증거는 존재하며, 중대한 이유가 없이는 내가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도 알지 않은가! 나 자신이 그 일원이기도 한 (이 점만 지적해도 내 말의 정당성이 확보되리라!) 인류와 섭리에 대향해서 내가 가혹한 비난을 퍼뜨리고 있다고 그대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나는 목구멍을 크게 열고 웃는다. 나는 내 말을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내 말을 정당화하는 것은, 진실 이외의 다른 야심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늘, 나는 삼십 쪽짜리 짧은 소설을 지으려 한다. 이 분량은 이후에도 거의 그대로 늘지도 줄지도 않을 것이다. 내 여러 이론이 공인되어 어느 날이나 다른 날에 이런저런 문학형식이 받아들이는 것을 조속하게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나는 얼마큼 모색을 한 뒤 결정적인 표현형식을 발견하였다고 믿는다. 최고의 형식이다.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혼종성 서문은 우선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지 별로 잘 알지 못하는 독자를, 말하자면, 놀라게 한다는 점에서, 별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제시되었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런 주목할 만한 당혹감은 책이나 소책자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느끼지 않게 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마땅한테. 나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사실 내 선의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덜한 것을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나중에, 몇몇 소설이 출판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대는 매연빛 얼굴을 지닌 배교자의 서문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리세는 제6학급에서 시작하여 수사학급으로 끝나는 6년제 학교로, 제4학급은 한국의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한다.       2) 현재 베트남 남부의 델타와 메콩 지역에 해당하는 지방을 부르던 지명으로, 19세기에는 관용적으로 프랑스령 베트남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1012    睡不着 文/顾红干 댓글:  조회:174  추천:0  2019-09-19
睡不着 文/顾红干     夏天的夜晚 花儿热闹了一天累了 扭着小腰打起哈欠 香喷喷的多诱人呀 风忍不住过来拥抱 亲亲花的小脸蛋说: 宝贝 晚安 花儿便害羞地侧过脸看着我 低声说: 可是可是没人陪我睡不着     夏天的夜晚 小星星调皮得很 笑眯眯地摆着手朝我喊: 我要抱抱 我要抱抱 今晚你还没和我说晚安     云朵听到了连忙给她拉好被子 揪着星星的小耳朵说: 小孩子家别闹 赶快睡觉去再踢被子打屁股 小星星噘着嘴嘀咕道: 可是可是没说晚安我睡不着     夏天的夜晚 我屏住呼吸蹑手蹑脚地 躲进小草垛听蟋蟀们说悄悄话 “咿咿呀 ”“叽叽吧 ”“ 爱我吧” 我忍不住笑出声来 这时 萤火虫一个个在圆屁股后 点亮小灯笼出来值班 领头的大声叫:快来呀 我逮到了那只偷吃果实的大青虫 “唉吆喂”耳朵揪疼了 你们找错人啦 “唉”这一痛我也一夜没睡着  
1011    其实我是一条鱼 / 金波 댓글:  조회:192  추천:0  2019-09-19
其实我是一条鱼 金波     其实,我是一条鱼, 当我跃入水里, 自由地畅游时, 我想这样告诉你。     其实,我是一只鸟。 当我攀上山顶, 有云从耳边拂过, 我想这样告诉你。     其实,我是一棵树。 当我走进大森林, 享受着自由的呼吸, 我想这样告诉你。 在心海游荡  
1010    书 文/苟念成 댓글:  조회:196  추천:0  2019-09-19
书 文/苟念成     书是一栋窗 打开窗扇 飘动着墨香     书是一扇门 轻轻拉开 照进束束光     书是一只鸟 扇动翅膀 在心空飞翔     书是一条鱼 吐出泡泡  
1009    一片阳光躺在草叶上 / 丁云 댓글:  조회:205  추천:0  2019-09-19
一片阳光躺在草叶上 丁云     一片阳光躺在草叶上 轻轻摇 轻轻晃 让蟋蟀好一阵紧张       一片阳光躺在草叶上 慢慢移 慢慢荡 让夏天的眼睛闪闪发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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