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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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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    제1강 상징계 댓글:  조회:220  추천:0  2019-03-18
◆ 욕망의 주체와 무의식의 주체 ㅡ라캉의 주체는 욕망의 주체이자 무의식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은 53년부터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프로이트의 새로운 계승자를 자처하게 되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빠져 있는 언어와 주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게 된다.  ▲ 강의개요 및 구성 ㅡ강의는 총8강으로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 시간에는 상징계와 시니피앙이 라캉이론에서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가를 공부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으로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공부한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론으로, 아이가 성적인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겪게 되는 복합적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의 핵으로 설명한다. 라캉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라캉은 이것을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말하는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으로 설명 한다. 제2강의 부재는 ‘오이디푸스, 성적 주체의 탄생’이다.  ㅡ3강은 ‘거울단계와 의식’이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 전통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아심리학으로 해설했던 미국의 정신분석을 비판하고, 또한 철학에서 말하는 의식적 주체, 데카르트적 사유주체를 비판한다. 이는 라캉이 의식을 거울에 비친 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소외이자, 타자성에 지배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거울단계는 라캉이 왜 자아심리학을 비판하고 상징계 이론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ㅡ4강에서는 욕망의 시니피앙인 남근(phallus)과 결여 (manque)에 대해 공부한다. 남근이란 성적인 차원의 모든 의미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기표이며 결여와 연관된다. 욕망의 본성은 결여자체이지 대상의 결핍이 아니다. 그리고 결여는 무엇보다도 존재결여이다.  ㅡ5강에서는 환상대상 a (오브제 a)와 부분대상의 개념들에 대해 공부한다. 환상대상이야말로 욕망하는 주체가 보이는 가장 능동적인 모습이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결여에서 비롯되는데 결여는 어떠한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이다. 그래서 ‘순수결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오브제 a’는 결여자체를 주체로 하여금 감당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주체의 공백과 언어의 심급으로서 대타자가 갖는 공백 부분을 채우는 것이 환상대상 a이기 때문에 주체가 가지는 욕망의 능동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라캉에게 있어 주체의 욕망개념은 결여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 이런 입장은 들뢰즈가 욕망을 해석하는 입장과는 차이가 나는데 들뢰즈는 결여로서 욕망을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고 욕망의 충만성, 능동성과 힘 자체를 강조한다. 하지만 라캉은 수동성이나 결여로부터 욕망의 능동성을 가져온다. 결여가 이야기되는 것은 상징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라캉의 욕망이론은 상징계에 대한 복종의 측면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의 또 다른 측면을 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6강에서는 ‘물’(Ding)에 대해 공부한다. ‘물’이라는 것은 욕망의 대상으로서 특히 실재계에 속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라캉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상징계가 아니라 실재계를 겨냥하는 데서 영원성이 있게 된다. 욕망은 결국 충족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욕망 자체가 실재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계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에서 배제되면서도 상징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핵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는 불가능성이다. 이 불가능성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징화된 접근방법으로는 실재 자체에 다가갈 수 없는 게 실재의 모습이기 때문에 불가능성이라고 지칭된다. 라캉은 이 부분을 욕망의 윤리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에 윤리가 있다면 그 근저에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욕망이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ㅡ7강에서는 언어와 욕망에 대해 공부한다. 언어를 떠나서는 욕망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욕망은 상식적으로는 대상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로 생각되지만 라캉의 욕망개념은 이와는 다르다. 말하는 주체가 가지는 결여가 그 근본특성이기 때문에 비록 대상적인 것을 지향을 하긴 하지만 대상관계로서 욕망이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미끼의 역할일 뿐이고 근원적으로 욕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존재이다. 이 존재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ㅡ8강에서는 주체와 ‘주이상스jouissance’에 대해 공부한다. 주이상스는 고통 속의 쾌락 같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쾌락이기도 하고 법률적 의미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고 향유하는 측면을 뜻하기도 한다. 내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잠시 누리며 향유하는 측면을 말한다. 성적인 의미로는 사정,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도 주이상스에 들어간다.  주이상스야말로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이자 궁극적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원칙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주이상스인데 쾌락원칙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이다. 상징계 자체가 주체를 현실적인 쾌락의 충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체는 상징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너머로 가보려 하는데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들이다. 바로 이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의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것이다.  ▲ 라캉의 연표 ㅡ프로이트가 신경과 의사로서 자기의 경력을 출발했듯이 라캉도 정신과의사로 시작한다.  ㅡ1932년 ‘인격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라는 의학박사논문을 씀 → 정신병은 크게 (1)편집증과 (2)정신분열증이 있다. 편집증은 과대망상, 극단적인 동일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박해한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이나 과대망상적인 경향이 있다.  ㅡ‘에메(가칭)’는 편집증에 걸렸던 여성인데 라캉은 그녀를 대상으로 어떻게 편집증이 인격적인 구조와 연관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체적 이상에서 정신병을 설명하는 당시 학계의 주류 흐름과의 차별화된 입장을 보여준다. 라캉은 선천적이고 유전적/신체적 이상으로부터 정신병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를 하면서 주체가 가진 역사 속에서 인격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ㅡ1934년에는 SPP(파리정신분석학회)에 정식으로 가입 ㅡ1953년에는 SPP에서 분리해 나오게 되고 SFP(정신분석프랑스학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게 된다. 이 단체의 창립선언문 형태로 발표한 글이 에크리의 유명한 '로마담론'이다.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루이 알튀세르의 주선으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를 시작.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세미나의 내용도 철학적이면서 사상적인 면이 강화가 됨 ㅡ1963년 계획되어 있었던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는 라캉의 SFP 제명 소식과 함께 한번의 강의를 끝으로 취소된다. 대신 라캉은 ‘정신분석의 4대 기본개념’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한다.  ㅡ1966년 『에크리Ecrits』를 출간한다. 라캉 자신은 에크리를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라캉 자신이 무의식의 기본 개념을 풀어서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 라캉은 글을 배포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은 무의식의 과정이기 때문에 이중적이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속성들이 있게 된다. 에크리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의식적으로 지향되기 때문에 말장난이나 모호한 의미들이 많이 등장해서 읽기가 굉장히 어렵다.  ㅡ1964년 파리프로이트학교가 창설된다. 1980년에 해체가 되면서 프로이트주의파, 81년 또 이름이 프로이트주의학교로 또 이름이 바뀐다.  →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는 후기까지 이어지는 프로이트의 전체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의 프로이트, 그러니까 1900년 출판된 『꿈의 해석』, 그리고 『무의식과 농담의 관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의 프로이트를 말한다.  → 프로이트는 언어적 현상인 망각, 말실수, 말장난, 농담 같은 것들이 무의식의 억압된 매카니즘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고 본다. 꿈도 마찬가지인데 왜곡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지만 무의식의 잠재된 생각들을 잘 보여준다. 라캉이 주목하는 프로이트는 바로 이러한 프로이트이다.    ▲ 상징계 ㅡ프로이트의 인격구조모델은 메타심리학, 즉 경제적economic 관점, 역동적dynamic 관점, 공간론적 관점 등에 의해 설명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관점이다.  →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면서 그것이 긴장되어 있을 때는 해소하려 하고 한 곳에 집중되는 리비도 집중, 대상선택 등에 대해 설명한다.  → 라캉은 이것들을 언어학적 설명과 구조로 바꾼다. 에너지의 흐름이 아니라 언어적인 관계에서 무의식을 해설한다.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ㅡ대타자는 타자적인 차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만날 때 A가 주체라면 B는 A에게 있어 ‘타자’로서 이해된다. 그러나 라캉의 대타자는 A와 B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가정할 수 있는 제3의 장소, 즉 언어가 기원하는 곳이 대타자이다.  ㅡ일반적인 의미의 타자는 라캉의 체계에서는 ‘소타자’라고 한다. 소타자는 상상계적인 이미지이다.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관계는 단순히 주체와 주체의 만남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주체가 만들어낸 자아상과 타자의 상이 만나는 상상계적인 작용이다. 그래서 이것은 왜곡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분석의 관계는 자아심리학에서 말하듯이 자아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분석가의 목표가 된다.  ㅡ분석가의 조건 중 하나는 상징계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대타자는 언어의 장소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타자는 아니지만 점유될 수 있는 공간이다. 분석가는 여기서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설명이 되는데, 즉 대타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주체로 성장하게 될 때는 어머니/아버지가 대타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대타자는 언어가 기원하는 장소이다.    Wo Es war, soll ich werden. (그것이 있던 곳으로 내가 되어 가야 한다.) Where the id was, there the ego shall be. (정통프로이트주의자들의 해석) Le moi doit deloger le ca. (라캉의 해석) La ou fut ca, il me faut advenir.    → 프로이트 후기 이론에 의하면 이드/자아/초자아가 있다. 1) 이드id ㅡ성적인 에너지, 리비도가 나오게 되는 저장고 같은 곳.  ㅡ쾌락원칙의 지배를 받음. 즉각적이고 제한 없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이드의 본성이다.  2) 자아ego ㅡ대상관계에서 확립이 됨. 외부세계와의 접촉에서 생겨남.  ㅡ현실원칙의 지배를 받음. 만족에 대해 지연시키는 역할을 함 ㅡ이드와 초자아의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자아는 두 마리 말을 몰고 가는 마부에 비유된다. 3) 초자아super ego ㅡ도덕과 종교의 기원. 억제하는 양심의 형태로 자리 잡음. → 부모의 명령, 도덕적 요구들이 주체에 내면화되면서 욕망을 억제하고 양심으로서 기능 ㅡ때때로 초자아는 다른 방식으로 이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는데 이드는 공격성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 반면 초자아는 도덕적이지만 때때로 도덕의 이름으로 공격성이 표출되기도 한다.  예) 중세의 종교 재판→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고문하고 처형한다.  ㅡ도덕이라는 명분으로 승화된 형태의 공격성을 표출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자아심리학에 의하면 정신적으로 사람의 자아는 현실원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두 가지 요구, 즉 이드로부터 오는 욕망의 원초적 차원과 초자아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억제, 도덕적 요구를 적당히 조절하고 통제해준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이드가 있던 자리를 에고가 차지하게 된다.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해석은 ‘자아가 이드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라캉은 ‘그것이 있던 곳으로 내가 돌아가야 한다’고 해석한다.  ㅡ분석가의 역할은 환자의 불완전한 자아를 교정해주고 모범을 보여주는 선생님과 같은 것인데 이 관계는 라캉에 의하면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상상계적인 만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분석은 이런 것들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체의 진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대타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 라캉이론은 상징계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이 상징계가 라캉 이론의 전부이거나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징계는 라캉의 고유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에서 60년대 이후 구조주의 사상이 나오면서 상징계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제3의 질서로서 언어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어가 인간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의 지배를 당하는 이러한 발견 자체가 현대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들뢰즈 역시 ‘구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구조주의의 7가지 특성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그 중 첫 번째가 상징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면에서 라캉이 구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만 강조되면 라캉의 주체라는 것이 상징계의 또 하나의 효과처럼 소극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 시니피앙의 역할 ㅡ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시니피앙/시니피에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ㅡ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사회관계의 기본적 토대로서의 상징계 개념이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ㅡ로만야콥슨의 은유/환유 개념도 라캉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ㅡ전치 평소에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던 하찮은 이미지들이 꿈속에서 많이 부각되는데 그것이 무의식적 표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표상이 여러 대상으로 옮겨 다니는 것이 전치이고 압축은 하나의 표상에 여러 가지 것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 야콥슨은 이것을 은유/환유의 언어학적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ㅡ라캉은 데카르트의 주체를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 결합 시킨다. 데카르트의 주체는 원래 의심하는 주체로서 의심을 통해 확실한 것을 추구하는 방법적 회의의 주체인데 라캉은 바로 이 의심하는 상태 자체가 무의식과 같다고 본다. 데카르트의 오류는 의심에서 확실성으로 넘어간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유하는 주체가 사유의 행위로부터 입증이 되는 것이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ㅡ소쉬르에 의하면 언어는 기호들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기의(개념/의미)와 기표(청각적 이미지/언어의 질료적 차원)로 이루어지는데 기의에 해당하는 것이  고 기표에 해당하는 것이 (2)시니피앙signifiant이다. 기의, 기표는 자의적이지만 일단 결합이 되면 떨어지지 않는다.  ㅡ각각의 기호들은 떨어져 있지 않고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이렇게 기호들끼리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소쉬르는 체계system라고 설명한다. 각각의 기호들끼리 연결되는 관계를 변별적 관계라고 말하며 기호 간의 이러한 관계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ㅡ소쉬르는 공시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한 내부적인 체계를 분석하고 다루는 것이 언어학의 임무이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언어가 변천하면서 발달해왔으며 의미들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소쉬르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예) 냇물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면 우선 냇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강과 시내와 내의 의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가운데 냇물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ㅡ언어는 어휘들의 집합이 아니라 기호와 기호들이 변별적으로 맺어진 관계의 체계가 된다. 소쉬르의 기호 이론은 라캉의 상징계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여기서 상징계를 상징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은유화시키는 것이 상징인데, 예를 들어 어떤 배에 단 깃발의 해골 그림은 그것만으로 해적선임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라캉의 상징계 이론에서 상징계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체 이전에 존재하면서 주체에 영향을 미치고 구성하는 제3의 질서를 의미한다.  → 언어를 떠나서는 무의식, 욕망, 주체 등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라캉의 입장이다.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있는 게 아니라 언어가 먼저 있고 나서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 라캉의 입장이다. 주체는 상징계로 들어갈 때만 주체가 된다.  ㅡ상징계의 기본적 토대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인데 소쉬르는 이것들이 안정적으로 붙어 다니는 관계로 설명하는데 라캉은 이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형을 시킨다.  S/s ㅡ주체의 연산식/무의식의 연산식 ㅡ대문자 ‘S’는 시니피앙으로서,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질료가 된다.  ㅡ시니피앙이 시니피에 위에서 일방적인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ㅡ소쉬르의 기호에서는 라캉의 연산식과는 반대로 설명된다. s/S  → 소쉬르에게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체계가 기호라면 라캉에게는 기호가 아니라 시니피앙이다. 라캉에게 있어 시니피앙은 순수차이의 질료이고 의미(시니피에)가 배제되어 있다. 의미는 이차적으로 결정이 된다. 소쉬르가 기호들 상호간의 변별적 관계에서 의미가 파생된다고 설명하듯이 라캉도 변별적 관계에서 의미가 파생된다고 설명하는데 그 기초는 기호가 아니라 시니피앙들이다.  ㅡ주체는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가 될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  예) 하나의 이름이라는 것은 의미도 물론 있지만 의미보다는 나와 너를 구별시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표식역할을 하게 된다.  ㅡ라캉은 초기에는 기호와 시니피앙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다가 나중에는 바뀐 입장을 취한다.  1) 초기→ ‘누군가를 대신해 어떤 것을 대리해서 표상시켜 주는 것’을 기호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즉 기호는 부재하는 사물들을 지시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과’라고 하면 곧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떠올릴 텐데 ‘사과’라는 말로써 우리는 표상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2) 초기 이후→ 하나의 시니피앙(S1)은 또 다른 시니피앙(S2)을 위해서 주체를 대리한다. 초기에는 기호의 의미가 사물을 대리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서는 주체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시니피앙의 역할이 된다. 주체는 시니피앙의 효과로 설명이 된다. 시니피앙 자체가 주체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시니피앙의 고유한 정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라캉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다.  ㅡ단순히 언어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주체를 드러내주는 모든 것들이 시니피앙의 차원에 속하게 된다.  예) 무의식의 증상, 몸짓  ㅡ시니피앙과 시니피앙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주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주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하나의 효과로서 주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고정된 주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ㅡ철학에서 주체는 모든 것의 출발점을 이룬다. 주체가 있어야 인식이 가능하고 대상관계들이 가능해지는데 고정된 실체로서의 주체, 기원을 이루는 주체는 반드시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동일성을 지닌 주체라는 개념은 라캉의 체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 실체로서 주체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ㅡ라캉은 주체를 분열된 주체로 설명하는데 한쪽에서는 상징계에 의해서 주체들이 드러나게 되고 드러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한다. 주체는 (1)언표행위를 하는 주체와 (2)언표된 주체로 갈라지게 된다.  ㅡ라캉은 스스로를 언어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시니피앙/시니피에, 은유/환유, 상징계 등의 개념들을 언어학에서 빌려와 쓰기는 하는데 내용들을 많이 바꾸다보니 언어학적 입장에서 보면 왜곡된 부분이 있게 된다.  예) ‘저 여인은 한 떨기 장미꽃이다.’ →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꽃과 여인의 유사성 때문인데 라캉은 의미적 차원을 제외하고 은유/환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라캉이 언어학적 모델을 주체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학적 전제들에 충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linguistique(언어학)→ linguistrie(라캉의 신조어. 언어를 판매하고 상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장 같은 뉘앙스를 준다.) ㅡ라캉은 상형문자를 시니피앙의 예로 설명한다.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판이 발견이 될 때 그것은 분명히 의미를 가진 것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의미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시니피앙도 마찬가지이다. 시니피앙은 의미들을 이차적으로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의미가 유보되어 있다.  ㅡ가장 물질적 차원이면서 동시에 공시적 구조가 시니피앙에 귀속된다. 시니피에는 의미적 차원이기 때문에 역사의 차원, 통시적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 누빔점(佛 point de caption 고정점, 英 quilting point 누빔점)   ㅡ주체의 원초적 차원은 언어로 구조화되기 이전에, 즉 상징화되기 이전에는 알 수가 없고 반드시 시니피앙의 사슬을 관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ㅡ누빔점은 원래 소파 안의 쿠션들을 고정시켜주는 단추를 말하는데 라캉은 이 개념으로 시니피앙의 관계들을 설명한다. 시니피앙은 순수차이로서 시니피앙들 사이에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데 의미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지점에선가 거는 지점들이 있어야 한다. 거는 지점이 바로 누빔점이고 나중에 라캉은 거는 지점을 대타자로 설명을 한다.  ㅡ누빔점은 사후작용의 개념과 연관이 된다. 하나의 사건은 뒤의 사건들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이 사후작용의 뜻이다. 대표적인 것이 환상설이다.  → 초기의 프로이트는 신경증, 특히 히스테리를 설명하면서 유아기 때의 성적 경험들이 히스테리의 기원을 이룬다고 설명을 했다. 프로이트는 나중에는 이런 입장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제기하는데 유아가 성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어렸을 때 기억들을 거꾸로 대입시켜 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 때 투영되는 기억은 순수기억이라기 보다는 주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환상적인 틀이다. 유아성욕은 유아가 자기의 경험을 사후적으로 투영하는 성적인 환상에 관계된다. 이것은 유혹설과는 관계가 없다. 직접적으로 성적 유혹을 당하거나 성적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치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ㅡ주체는 사후작용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원초적 차원은 언어적인 것을 거쳤을 때 비로소 주체가 된다. 주체가 구성되었을 때 원초적 차원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원초적인 어떤 상태가 있고 그 다음에 주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언어적으로 구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과거의 원초적 욕구의 차원에 의미들이 부여가 된다.  → 사후작용의 논리는 주체구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ㅡ시니피앙은 반드시 주체를 필요로 한다. 주체가 있어야만 의미적 차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체 역시도 시니피앙에 의해 대리가 될 때에만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다.  → 프로이트는 원초적 차원을 전제한다. 무의식(성적 욕망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음)이라는 원초적인 공간이 있는 것인데 무의식은 신체적 증상이나 강박증 같은 증상들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ㅡ신경증은 두 가지로 나누게 되는데 (1)히스테리와 (2)신경증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강박신경증이 중요하다. 강박신경증은 어떤 생각, 기억, 표상들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행동들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하는 증상을 말한다.  예) 손을 병적일 정도로 자주 씻는 증상이나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계속 주우려 하는 증상  ㅡ꿈은 무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무의식의 극장이다. 그것을 통해 무의식적인 욕망들이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은 꿈과 꿈꾸기 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자유연상을 통해 주체에게 이야기하게 한다. 그 중에서 저항에 의해 떠오르지 않는 부분이 주체의 감추어진 욕망을 잘 드러낸다.  ㅡ히스테리는 신경성 마비와 같이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ㅡ라캉에게 무의식은 언어에 의해 설명이 된다. 언어가 없이는 무의식도 없다. 언어에서 벗어나 있는 원초적인 상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어적인 것이 주체에게 구조화되면서 그로부터 빠져나가는 부분이 있게 된다. 물론 이 부분도 언어적인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지만 거기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개념으로 정식화된다. 실재 개념은 반드시 언어와의 관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원초적 상태라고 설명할 수 없다.  1) 선재성→ 주체보다 먼저 있다 2) 대타자→ 주체와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제3의 공간 → A라는 주체와 B라는 주체가 상호 의사소통을 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대타자이다. 대타자가 배제가 된다면 A와 B의 만남은 A의 자아와 B의 자아간의 상상계적임 만남에 불과한 것으로 떨어지게 된다. 특히 분석관계에서 자아가 강조되면 분석가와 자아의 관계만이 남게 된다. 라캉은 상징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대타자의 묙망이다.”  →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1)언어적으로 욕망이 설명이 된다는 것이고 (2)욕망은 언제나 나의 욕망이 아니라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주체는 대타자의 욕망을 알고자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대타자에 견주어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욕망의 대상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욕망 자체이다.  ㅡ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존의 질서인 언어들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주체에게 상징계라는 개념이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행동들은 상징계에 의해서 조직화가 되어야 한다. 갓난아이는 언어를 말할 수 없지만 욕구를 가진다. 그 욕구들을 울음으로 표현하게 되면 그것을 해석해주는 것은 항상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중에 아이는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야함을 배우게 된다.  ▲ 욕구/요구/욕망 1) 욕구 need 아이가 바라는 것, 생물학적 욕구 2) 요구 demand 원초적인 욕구가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것 3) 욕망 desire 끝내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의 불가능성 ㅡ욕구와 요구는 일치할 수 없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대상적인 욕구도 있지만 대상이 없는 절대적인 욕구 자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적 욕구는 엄마가 채워줄 수 있지만 무조건적인 절대적 욕구는 충족시킬 수 없다.  → 대타자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 한계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 욕망이다. 그래서 욕망은 사실 불가능성이다. 욕구가 요구로 충족이 안 되기 때문에 욕망이 생기므로 욕망은 불가능성을 자신의 운명처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항상 환상적으로 주체를 유혹한다. 욕망은 빈 공간을 채우는 환유적인 유희이기 때문에 절대로 빈 공간 자체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 결과적으로 라캉의 상징계는 주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이론이 된다.  ㅡ주체는 언표된 주체와 언표행위의 주체로 분열되며 또한 소외된다. 주체는 언어적인 상징계로 들어가면서 존재성을 얻게 되지만 그 대가는 자신의 원초적인 차원을 상실하는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존재인 이상 소외는 극복되지 않는다.  → 그래서 고전적인 주체를 라캉은 인정하지 않는다. 라캉은 우리의 모든 철학적 작업은 데카르트로부터 기원되는 자기동일성의 주체,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를 거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의 주체야말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주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 라캉연표 1901 파리에서 출생. 1919 스타니스라스(Stanislas) 중학교를 졸업. 1916년부터 의학도를 지망. 스피노자를 읽고, 다다이즘과 빈학파의 이론과 자신이 만났던 샤를르 모라스(Charles Maurras)의 생각에 관심을 가짐. 1920 의학 공부. 1926 셍 탄느(Sainte-Anne) 병원의 앙리 클로드(Henri Claude)-정신질환 및 뇌 전문과 과장- 밑에서 정신과 인턴과정 수련. 공저로 다수의 논문을 출판함. 1928 클레랑보(Clerambault)의 지도하에 경찰청 정신병원 특별 의무실에 1년 동안 근무함. 1930 초현실주의자들-크르벨(Crevel), 브르통(Breton)-을 만남. 편집증에 대해  달리(Dali)와 의견교환. 1932 의학박사 논문 발표. 뤼돌프 뢰벤슈타인(Rudolf Lœwenstein)과 함께 수련분석을 시작.  《인격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 De la psychose paranoi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nalite》 1933 코제브(Kojeve)의 세미나 시작. 1934 파리정신분석학회(Societe Psychanalytique de Paris-이하 SPP)에 가입.  외과 의사이며 그의 친구인 실뱅 블롱댕(Sylvain Blondin)의 누이 마리 루이즈 블롱댕 (Marie-Louise Blondin)과 결혼.  1934, 1939 그리고 1940년에 둘 사이에서 세 아이 출생. 1936 정신 병원 의사로 임명됨. 셍 탄느(Sainte-Anne)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봄. 개인병원 개업. 처음으로 마리엔바트(Marienbad)에서 있었던 국제 정신분석협회 (Association Psychanalytique Internationale-이하 IPA)의 회의에 참가하여 거울 단계에 대한 짧은 보고를 하지만 의장-존스(Jones)-에 의해 중단. 텍스트는 분실. 1938 SPP의 정식 회원으로 선출 됨. 그 직후 뢰벤슈타인(Rudolf Lœwenstein)과의 분 석을 중단. 1939 1933년에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와 헤어진 실비아 막클레스-바타이유(Sylvia Mackles-Bataille)를 만남. 징집. 1941 실비아와 쟈크 라캉의 딸 주디트 바타이유(Judith Bataille) 출생. 마리 루이즈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 헤어짐.  파리로 돌아와 셍 탄느(Sainte-Anne) 병원에서 얼마간 활동을 한 후 자신의 개인 환자들에 주력함. 집필 중단. 유태인 친구들에게 체류증을 얻어주기 위해 힘씀. 1942 릴(Lille) 거리 5번지에 있는 아파트에 정착하여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게 됨. 1947 런던 여행. 1949 SPP의 새 정관 만들어짐(정관규약은 라캉에 의해 작성됨). 1951 SPP의 부회장. 내부적인 재조직화. 자신의 아파트에서의 첫번째 개인 세미나. 1953 SPP로부터 분리. 대립적인 두 경향을 나타내는 라가쉬(Lagache)와 라캉에 의해 추진된 정신분석 프랑스학회(Societe Francaise de Psychanalyse-이하 SFP) 창설. 선언문 형태를 띤 로마강연.(『에크리』참조. p. 237) 실비아 막클레스-바타이유 (Sylvia Mackles-Bataille)와 결혼.  1953년부터 1963년까지 장 들레(Jean Delay)를 통해서 빌린 셍 탄느  (Sainte-Anne) 병원의 대강당에서 세미나가 공개적으로 진행됨.  1963 SFP와 IPA의 교육법 전문가의 명단에서 제명됨. 세미나는 셍 탄느(Sainte-Anne) 를 떠나서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의 주선에 의해 윌름(Ulm) 거리의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에서 재개.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는 고등교육 실천학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에서 강의함.  쇠이유(Seuil)출판사의 프랑스와 발(Francois Wahl)과 출판계약을 맺음. 1964 파리 프로이트학교(Ecole Freudienne de Paris-이하 EFP) 창설.  1969 윌름(Ulm)거리의 고등사범학교 강의실이 학교장 로베르 플라슬리에르(Robert Flaceliere)에 의해 회수됨. 세미나는 팡테옹(Pantheon)의 법학부로 옮겨짐. 1971 수학소 (Matheme)라는 개념 창안. 1980 마지막 세미나. EFP의 해체. 프로이트주의파(Cause freudienne) 창설. 1981 프로이트주의학교(Ecole de la Cause Freudienne-이하 ECF)가 프로이트주의파 를 계승함. 9월 9일 라캉 사망. * 세미나의 청중들 첫 번째 시기 : 51-63 분석가들을 대상 두 번째 시기 : 64-69 모두를 대상 세 번째 시기 : 70-79 대타자 혹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
864    제14강 절대적 탈영토화로서의 철학 댓글:  조회:288  추천:0  2019-03-17
▶ 들뢰즈와 가타리는 ‘절대적 탈영토화’로서의 철학에 정치적 과제를 부과한다.(『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새로운 민중’과 ‘새로운 대지’의 구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철학의 ‘절대적 탈영토화’와 자본의 ‘상대적 탈영토화’가 구분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주체와 대상’은 사유의 빈곤한 근사치일 뿐이다. 사유는 영토(territory)와 대지(earth)의 관계를 포함해야 한다. 이 관계에서 일차적인 것은 대지 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탈영토화의 운동들이다.(영토는 대지 위에서 일정한 형태를 취한다) 탈영토화를 상대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지가 영토의 운동들과 맺는 관계가 역사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에 있다. 대지가 특정한 역사적 규정들에 제약되지 않는 ‘순수 내재면’으로 이행할 때, 그리고 ‘무한한 디아그람적 운동들’을 포함하는 존재와 자연에 대한 사유의 내재성에 들어갈 수 있을 때 탈영토화는 ‘절대적’이 된다.  1) 내재면 위에서의 탈영토화는 (형식들, 기능들, 감응들의) 재영토화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새로운 대지의 창조’에 입각해 재영토화를 정립한다.  2) 절대적 탈영토화는 “상대적 탈영토화와의 여전히 규정되어야 할 관계들에 관련해서 파악되고 작동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절대적’이란 사회와 역사의 초월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극복을 이끄는 개념이다.(베르그송의 지속과 비교)   ▶ 근현대 철학과 자본의 관계는 단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근현대의 철학들은 사회적-역사적 규정을 하나의 무한점(無限點)에까지 밀어붙여 다른 어떤 차원으로 넘어가곤 했다. 들뢰즈/가타리에게 철학은 그 고유의 교환가치를 띤 ‘정신의 부드러운 상업행위’도 아니고 ‘서구의 민주주의적 대화’에 고유한 순수한(disinterested) 사교성도 아니다. 그것은 영토들 및 인구들(개체군들)의 운동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져 왔다. 즉 소통, 교환, 합의, 의견에 복종하지 않는 것, 통념과 명제에 속하지 않는 ‘para-doxa’의 추구가 철학이며, 때문에 새로운 대지와 새로운 민중을 지향하는 철학은 늘 탈시대적 성격을 띤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은 유토피아적이다. 즉 철학은 자기 시대에 대한 비판을 극점(極點)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정치적 행위이다.  문제는 단지 자아도취적일 뿐인 비판이나 강도론적 방법의 무능함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철학이 (절대적 탈영토화의 구축을 통해) 정치적이 될 수 있는가이다. 들뢰즈의 사건론에는 이런 물음이 깃들어 있다. 사건을 위해 산다는 것(“사건의 자식이 되라”)이 중요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 현재에 관련되는 대목은 부끄러움이라고 본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시대 바깥에 있지 않다는 것, 그것과 부끄러운 제휴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다음 물음을 야기시킨다: 내재면은 생명/삶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에 예속시키는가?   ▶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철학은 현재에의 저항(resistance to the present)이며, 따라서 철학은 끝없이 스스로를 초월해야 한다. 이 점에서 들뢰즈는 베르그송을 이어받고 있다. 따라서 사유는 (개념의) 철학과 ‘현재의 환경=매트릭스(present milieu)’의 교차로에서 성립하며, 이것이 곧 정치철학 또는 정치적 철학이다. 철학의 사건은 역사의 선형적이고 진보주의적인 개념과는 관련이 없다. 철학은 오로지 그 (비물체적인, 잠재적인, 배아적인=싹트는, …) 사건의 개념을 가지고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the lived)’에 관계할 뿐이다. 사건을 사유함에 있어 철학은 현실의 삶의 모든 것을 탐사한다. 그것은 일종의 사변적 생기론이다. 장래의 사건은 현실의 사태를 엔트로피적 힘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생성/되기’와 ‘역사’가 구분된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런 철학관이 함축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철학을 개념의 ‘자기조직적(autopoietic)’ 창조로 보는 것은 그것에 거짓된 독립성을 주는 것이다. 철학의 역사적 결정을 거부함으로써 들뢰즈는 사유의 사건과 철학의 과제들을 비결정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현대 사상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곤경들에서 벗어나 내재면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념 위에서 출몰하는 문제들은 사건과 역사적 현실성 및 경험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 점에서 철학적 생성/되기는 역사적 규정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사건과 사태는 존재의 전혀 다른 질서임을 강조한다. 혁명은 역사의 계기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서, 개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즉 역사의 연대기에 저장될 계기가 아니라 생성/되기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성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와의 투쟁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건은 역사에 구속되지는 않지만 역사를 디디고서 발생하게 된다. 아도르노는 베르그송주의는 생명의 미분화적 물결 속에서 변증법적 소금이 씻겨 내려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즉 베르그송주의는 비합리적인 직접성의 컬트를 통해서 내재성의 자유와 역사적 현실의 사실성 사이의 이산(離散)=선언(選言)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들뢰즈의 새로운 베르그송주의는 아도르노의 이런 거친 비판을 논박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개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개념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생성/되기의 리듬과 함께 하는 개념들의 창조이다. ▶ 에릭 알리에즈는 들뢰즈의 베르그송이 함축하는 철학사적 의미를 칸트로부터 후설에 이르는 흐름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존재론적 일원론과 유물론을 제시한 점에서 찾는다. 베르그송주의는 존재를 ‘순수 긍정의 대상’으로 봄으로써 내재성에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방향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을 제공한 점에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강조하듯이, 실존의 양태와 삶의 가능성은 어떤 초월적 원리나 가치에도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유일한 규준은 실존의 성격, 삶의 강화(intensification)이다.   
863    제13강 기억을 넘어선 되기들 Ⅱ 댓글:  조회:281  추천:0  2019-03-17
▶ 그러나 『테스』를 반드시 이렇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테스가 리좀이, 탈주선이 되는 특이점들이 존재한다. 테스는 짙은 어두움 한가운데에서 모든 사람들과 떨어져 있다. 그 때에는 자연도 그녀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내부는 선별된 외부이고 외부는 투영된 내부인 시점이 도래한다. 거기에서 테스는 모든 것들과 격리되어 야생 동물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속에서 ‘희망찬 삶의 맥놀이’가 뛰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그 어떤 기억도 없는 외딴 곳을 꿈꾼다. 그렇다면 테스가 알렉 더버빌을 죽이는 장면은 운명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테스의 한계를 뜻하는가, 아니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여인으로 탄생하는 되기를 뜻하는가? 후자로 읽는 것은 하디를 배치들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인물들을 그린 작가로 보는 것이고, 그것은 곧 ‘되기의 블록’이라는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 들뢰즈/가타리에게 글쓰기란 되기이다. 그것은 재현의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선/삶의 선의 창조이다. 탈기표적, 탈주체적 창조, 얼굴 없는 창조. “모든 사람들처럼 되기.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그 누구도 아닌 사람, 어떤 사람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되기이다. 회색 위에 회색을 덧칠하면서 스스로를 그리기.” ▶ 베르그송의 전통에 따라 들뢰즈와 가타리는 ‘souvenir’와 ‘memory’를 구분한다. “우리는 어릴 적 기억을 가지고서 쓰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아이-되기인 아이와의 블록을 통해서 쓴다.” 사건에 실존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을 시원이나 기억으로 흡수시키는 대신 그것을 특이점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곧 사유와 감응의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이런 글쓰기는 정치적 함축을 띤다. 즉 그것은 소수 문학이며 ‘도래할 민중의 씨앗들’을 뿌리는 작업이다. 소수 문학은 한 몰적 집단은 민족학도 아니고 사적 관심사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분자적 개체군들에 주목한다.  
862    제12강 기억을 넘어선 되기들 I 댓글:  조회:164  추천:0  2019-03-17
▶ 『천의 고원』에서 바이스만의 생식질 개념은 탈기관체 개념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요한 윤리학적 함축이 깃든다. 탈기관체는 하나의 알(卵)로서, 이것은 강도=0의 순수 잠재성이다. 탈기관체는 하나의 자아가 자신의 되기를 실험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탈기관체가 층화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다. 탈기관체는 층화와 함께 있다. 탈기관체에의 추구는 기원에로의 되돌아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조건의 자발적 변이일 뿐이다. 탈기관체는 유기체적 차원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기표화와 주체화를 변이시켜 가는 것 또한 탈기관체를 통해서이다. 탈기관체는 탈아적(脫我的) 알(卵)이다. 그것은 타자성(alterity)의 장소이다. 그것은 창조적 첩화의 장소이다. 탈기관체는 ‘intense germen’(강도적 유아幼芽)이다. 그러나 이는 기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생성/되기의 잠재성을 가리킨다. 기계적 이질생성과 리좀적 배치들에는 이런 생성/되기들이 항상 함축되어 있다. ▶ 일직선적인 계보학적 기억들로부터 창조적 되기로의 이런 이행을 예시하기 위해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 家의 테스』를 생각해 보자. 테스는 유전자 결정론을 깔고 있는 비관주의적 소설이다. 여주인공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식질’의 또 하나의 예이며, 하디는 철저한 다윈주의에 입각해 테스나 주드 같은 부적응자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도태되는가를 그린다. 주인공들은 “잔혹한 자연법칙이 그들에게 떨어뜨린 감정(emotion)의 무게에 눌려” 신음한다. 모이라와 하마르치아는 본능과 유전형질(inheritance)로 바뀐다. 테스는 여섯 명의 데비필드 아이들을 보면서 맬서스를 생각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자연의 도안의 결과들일 뿐이다. 노도처럼 닥쳐오는 산업사회라는 객관적 환경, (에인젤 클레어를 실망하게 했던) 도덕적-문화적 환경 또한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힘이다.    ▶ 로렌스는 하디와 다른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분석한다. 로렌스에게 생명이란 잉여이며 넘침이다. 약동이 없는 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계속 약동이 있다는 것이다. 로렌스에게 생명은 탄력적인(elastic) 것이고 불연속적인(discontinuous) 것이다. 로렌스는 하디의 소설들이 언제나 같은 결론으로 치닫는다고 본다. 자연과 사회에 의한 개인의 압살. 로렌스는 이 점에서 근대의 비극에는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에게도 볼 수 있는 위반(transgression)의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맥락에서 그렇다) 하디의 소설에서 여성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법(칙)을 인식하고 사랑 안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강조하는 로렌스는 하디의 소설에서 사랑은 늘 법(칙)과 그것이 가져오는 죽음이라는 결과에 의해 으깨어진다고 본다. 기억이 있을 뿐 생성/되기는 없다. DNA를 물신화(物神化)하는 도킨스의 생각도 바이스만-하디의 연장선상에 있다.  
861    제11강 동물-되기 댓글:  조회:273  추천:0  2019-03-17
▶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는 층화와 공재면/탈기관체가 밀고 당기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생명체는 층화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가타리는 ‘인간의 비인간적 되기들’이 존재함을 역설한다. 모든 되기는 분자적이다. 이는 곧 생명체를 본질=종을 넘어 개체군으로 보는 것이고, 나아가 개체군으로 통계처리를 할 수 없는 ‘분자’의 차원에서 봄을 뜻한다. 의식적인 동물-되기는 인간에게서만 성립하지만, 자연세계에서도 동물-되기는 성립한다. 말벌의 양란-되기와 양란의 말벌-되기가 그 좋은 예이다.     양란 (tropical orchid)     ▶ 행동학적 접근에서 신체는 기관들과 기능들, 종과 유로 규정되기보다는 ‘감응(感應)’(스피노자의 ‘affectus’)하는 신체는 해부학이나 분류학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동물들에 감응하고 스스로의 특이성들과 강도들의 장, 즉 ‘氣’를 변화시켜 자신의 존재 여건을 자발적으로 바꾸어가는 존재이다. 감응하는 신체의 감각은 식별 불가능 또는 규정 불가능의 지대(地帶)를 통과한다. 한 개별화된 배치의 부분을 형성하는 동물의 능동적/수동적 감응들에 대한 윅스퀼의 논의는 스피노자와 연결될 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진드기의 예에서 중요한 것은 생리학적 특성들이 아니라 관계, 정도, 그리고 속도의 리듬이다. ▶ 동물-되기는 태초의 시원으로 돌아가려는 융적인 시도가 아니라 차라리 층화가 더욱더 무너지고 공재면이 두드러질 미래를 염두에 둔 논의이다. 동물-되기는 인간적 욕망을 오이디푸스 삼각형에 가두어 이해하는 정신분석학과 대립한다. 동물-되기는 표상/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감응의 문제이다. 꼬마 한스와 말의 관계는 주관적 몽상의 관계가 아니다. 동물-되기의 감응은 실재적인(real) 것이다. 분자-되기는 종과 유라는 몰적 질서를 일탈한다. ▶ 표상/재현은 인간적 형식과 질서를 절대시하는 문화주의와 도덕주의를 은폐하고 있다. 동물-되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표상의 함정에 빠지는 것, 즉 신체를 기관들과 기능들의 질서로 국한시키는 것이다. 첩화에 있어 동물의 왕국은 강도와 근접성(진동들과 운동들)의 지대들에 의해 정의되는 탈기관체로 화한다. 여기에서 꼬마와 동물은 ‘주체들’이 아니라 복잡한 배치들에서의 ‘사건들’로 화한다. 배치들은 환경과 얽혀 있다. 시공간적 관계들은 사물의 술어들이 아니라 배치들 또는 복수성들의 차원들이다. 동물들은 공생적 복합체들에 들어가 활동한다.(포식 동물의 시공간)   ▶ 둔스 스코투스는 ‘이것’ 즉 개체화하는 차이 개념을 제시했다.(라이프니츠의 ‘완전 개념’과 비교) ‘이것’은 기존의 분류 방식을 깨는 무수한 ‘entities’들이다. 그것은 분자들/입자들 사이의 운동과 정리라는 경도적 관계들과 감응을 주고받는 위도적 능력들에 관련된다. 그것은 전통적인 실체도 주체도 아닌 어떤 개체이다. 주체들은 이 속도의 경도들과 감응의 위도들의 카르토그라피 내의 개체군들로서 존재한다. 자연은 집단적 배치들로 존재하며 이는 ‘탈주체적 개체화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속도들과 역능들/감응들을 통해 진화한다.  중요한 것은 몰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을 단순히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몰적 구성체는 분자적 무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되기는 언제나 몰적 외연을 포함한다. 정신분석학은 되기들을 하나의 콤플렉스에, 몰적 규정의 콤플렉스(오이디푸스, 거세)로 환원시킨다. 프로이트가 늑대 인간의 여러 늑대들을 하나 즉 아버지로 환원시킨 것이 그 예이다.  ▶ 분열분석 또는 리좀학의 목적은 인종, 혈족, 종, 유 등과 같은 몰적 구분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이 덩어리진 현상들의 선험적 환상을 폭로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맥락에서 이것은 미시물리적 차원과 생물학적 차원이 별개가 아님을 말한다. 이 차원에서는 열역학조차도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배치는 통계학이 무너지는 탈주선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의 생성은 분열생성(schizogenesis)이며, 횡단적 소통, 포함적 선언들(inclusive disjunctions), 다성적(多聲的) 연언들(polyvocal conjunctions)을 통한 생성이다.  ▶ 몰적 구성체들은 분자적 힘들의 통합이자 총체화이다. 분자적 무질서의 부분적 대상들이 결핍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욕망은 결핍으로 파악된다. 예컨대 정신분석학은 분자적 복수성의 적극적 산포가 아니라 (신경증이나 거세 유형들에서 볼 수 있는) 거시적 규정성들의 주체들만을 다룬다. 욕망을 결핍으로 봄으로써 사람들은 욕망을 개인적인 것이든 집단적인 것이든 특정한 목적, 목표, 의도에 연관시킨다. 이로써 욕망은 생산의 실제 과정에서 유리되어 표상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860    제10강 ‘behaviour’의 행동학에서 배치들의 행동학으로 Ⅱ 댓글:  조회:263  추천:0  2019-03-17
▶ 배치들의 관계는 선형적인 인과관계들이 아니라 횡단적 소통들에 의한 영토화와 탈영토화에 있다. 로렌츠나 틴버겐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은 본능이 학습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해 왔다. 예컨대 ‘반사(reflex)’ 같은 개념은 중추신경 같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 초점을 맞추어 자극-반응의 메커니즘을 연구한다. 로렌츠는 본능적 행동은 해부학적 구조만큼이나 항상적이고 고정적이라고 말한다. 보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본능적 복잡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로렌츠나 틴버겐은 이 메커니즘에 근거해서 종, 유, 나아가 문(phylum)까지도 분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환원주의와 실체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최근의 행동학은 행동의 패턴을 행위의 강도 조절, 시간 조절, 속도 조절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Thorpe, Merleau-Ponty) 더 중요한 것은 환원주의와 실체주의를 벗어나 동물과 환경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점이다. 선천성과 후천성을 둘러싼 게으른 논쟁에서 벗어나 하나의 행동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항목이 환경적으로 안정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다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동물들의 적응(adaptation) 자체가 학습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도 강조되고 있다.(McFarland) 가변성과 유연성이 중요하다. 관계는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자기가 자기를 완벽하게 안다 가정해도 타자가 어떻게 나올지는 시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최근의 행동학은 이런 존재론적 진리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 모든 영토는 다른 종들의 영토들을 포괄하거나 가로질러 간다. 로렌츠가 말한 것처럼 공격성이 영토성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영토성이 공격성을 낳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윅스퀼을 따라, 이런 구도에서의 자연을 음악적으로 파악한다. 즉 자연에 대한 선율적인, 다성음악적인, 대위법적인 파악이다. 새들의 노래, 거미의 집짓기, 연체동물(예컨대 소라)의 껍질, 진드기 등이 그 예이다. 연체동물의 죽음은 소라게의 거주지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목적론적 자연 개념에서 선율적 자연 개념으로의 이행을 함축한다. 여기에서 자연의 기예(技藝)와 인간의 기예는 날카롭게 구분되지 않는다. 연체동물의 껍질과 게 사이에는 대위법적 관계가 성립하며, 여기에서 성립하는 되기에는 기능적인 요소들(성, 생식, 출산, 양육 등)만이 아니라 ‘sensibilia’도 포함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진화의 이 창조적 양태를 ‘art=기예’라 부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윅스퀼의 분석을 더 밀고 나아가, 동물-되기는 적응의 대상들(traits)의 선별만이 아니라 물리-화학적 강도들과 근접성의 영역들(zones of proximity)의 작용까지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것들이 퓔룸적 혈통들을 가로지르며, 따라서 생명은 음악적인 ‘생성/되기’를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본능과 학습을 둘러싼 논의가 아니라 ‘공재성(consistance)’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재성에 주목했을 때 리좀적 배치를 탐구할 수 있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행동을 중심들과 활동(activation) 사이의 선형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들로 모형화할 수 없다고 본다. 생물학적-행동적 기계학(machinique)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선천적인 것은 탈코드화되고 획득된 것은 영토화된다. 행동에서 배치로. 어떤 국소적 작용도 다른 것들과 얽혀 있고(coordinated) 중심적 주체가 없이 거대한 결과가 현실화된다/동시화된다. 여왕개미는 없다. 이는 곧 창발성(emergence)의 논리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뇌들, 신체들, 분자들, 세계들(이들 모두는 서로의 영토들과 겹치면서 존재한다)을 포괄하는 ‘산포된 지능(distributed intelligence)’을 통해 행동이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카우프만이 강조했던 자기촉매작용은 하나의 유기체 내에서가 아니라 배치들 전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탄생도 특정한 메커니즘의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산포의 결과일 뿐이다. 지연된 발생(예컨대 幼生生殖), 기관들의 특별한 탈영토화(예컨대 손과 발), 그리고 특히 환경의 상관적인 탈영토화(숲에서 초원으로). ‘잃어버린 고리’는 하나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배치의 변환인 것이다.
859    제9강 ‘behaviour’의 행동학에서 배치들의 행동학으로 I 댓글:  조회:275  추천:0  2019-03-17
▶ 지능에 대한 보다 역동적인 이해를 추구한 선구적인 인물로서 폰 윅스퀼이 거론된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들뢰즈 등이 모두 윅스퀼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윅스퀼 (1864~1944) 독일의 동물학자, 비교심리학자 인간이 아닌 동물을 중심으로 동물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동물과 그 동물이 속해 있는 환경과의 관계를 '기능환(機能環)'으로 표현하고, 각 동물은 다시 넓은 자연 속에서 그 종(種 )의 독특한 환경 세계를 주체적으로 만든다는 이른바 '환경세계론'을 제창하였다. 그의 환경 세계론은 새로운 생물행동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생물행동학자인 로렌츠나 틴버겐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클라크 같은 사람도 마음을 ‘a leaky organ’으로 규정하면서 행동주체(agent)의 표상주의적 개념화들을 벗어난 심신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입장들에 따르면 지능은 상이한 물질적 공재(共在)들에 입각해 이해되어야 한다. 즉 지능은 행동의 다각도의 측면들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하며, 행동은 개체들을 관통하는 복잡한 물질적 체계들(배치들) 및 계통적 혈통들과 유기체의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리좀들에 입각해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적 진화는 되기의 블록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행동학(ethology)’은 행동주체의 ‘behaviour’에 대한 관한 담론에서 배치들의 운동에 대한 담론이 된다. 배치들의 관계는 선형적인 인과관계들이 아니라 횡단적 소통들에 의한 영토화와 탈영토화에 있다.  
858    제8강 자기조직화와 기계적 이질생성 댓글:  조회:260  추천:0  2019-03-17
※ 지금까지 배운 내용 복습 ▶ ‘기계적 이질생성(machinic heterogenesis)’이라는 가타리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기조직화 이론은 현대 사상의 중요한 한 요소이고 들뢰즈/가타리에 의해서도 수용되지만(이 이론은 ‘센트럴 도그마’로 대변되는 환원주의와 결정론을 논박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동시에 들뢰즈/가타리의 시각에서 볼 때 일정한 한계를 노정한다. 이는 진화의 ‘기계적’ 성격과 관련된다. ▶ ‘횡단적 소통’은 진화에서의 계통수들(genealogical trees)을 뒤섞는다. 물론 이 뒤섞임의 개념은 계통수들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러나 뒤섞임까지 포함한 전체적 지형도를 볼 필요가 있다. 계통적 계열들은 그보다 근본적인 기계적 퓔룸을 전제한다. 기계적 퓔룸은 여러 계통들을 낳지만 동시에 물질적 힘들의 횡단적 움직임들을 통해 새로운 생성들을 낳는다. 계통수들은 덜 분화된 것에서 더 분화된 것으로 진행되며, 친자관계/分岐(filiations)에 입각해 진행된다. 그러나 새로운 생성들은 새로운 결연들(alliances)을 통해 진행된다. 생성의 선은 특정한 매듭들을 가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오로지 ‘중간(middle)’만이 있다. 이 중간을 통해서 생명은 ‘운동의 절대 속도’를 향유한다. 들뢰즈/가타리에게 ‘사이(entre=in-between)’ 개념은 중요하다. 모든 것은 사이에서 벌어진다. 사이는 카오스이다. 카오스는 생성의 장이다. 카오스를 통해서 개체들의 코스모스가 생성한다. 이러한 생성이 도태압을 무너뜨린다. 물론 도태압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도태압은 그것에 대응하는/응답하는 유기체들의 활동을 고려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들은 곧 행동학적 배치들(ethological assemblages)을 함축하고 있다. ▶ 기계적 배치들에의 주목은 ‘창조적 진화’의 이해를 위해 중요하다. 자기조직화와의 비교를 통해 계방계들로서의 생명계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기 때문이다. 자기조직화 개념은 생명체란 자기차이성(自己差異性)을 보여주는 존재임을 잘 설명해 준다. 이는 곧 생명체가 계방계임을 말해 준다. 자기조직적 유기체 즉 ‘기계’(= 신체)의 기능은 그것의 특수한 유전적 구조 또는 조성(composition)으로 환원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계의 구성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들이다. 자기조직적 존재들은 스스로의 조직화와 경계들을 만들어낸다. 즉 그것들은 “조직화를 통해 닫힌” 존재들이다. 따라서 자기조직적 존재들의 진화는 차이들의 와류에서 계속 메타동일성들을 만들어내는 과정들로 이해된다.(이케다 기요히코) 그런 동일성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해체(disintegration)가 발생한다. 따라서 자기조직화 이론은 자기동일성을 지키려는 개체들의 속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진화 전체의 창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문적 사실의 문제를 넘어 삶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련된다. ▶ 기계적 진화는 이질생성들을 종합하며 또 ‘공재(共在=consistency)’의 형성을 포함한다. 기계적 배치들은 포텐셜 장들과 잠재적 요소들을 통해서 場을 만들어나가며, 종과 유의 구조를 넘어 기술적-존재론적 문턱들을 가로지른다. 자기조직화가 있다면 그것은 이 장 위에서이다. 이것은 기계적 자기조직화를 기계적 이질생성으로 봄을 뜻하며, 자기조직화라는 모델에 창조적 진화의 이해를 위한 비평형 개념을 도입함을 뜻한다. 여기에서 타자성(alterity)은 보다 넓은 경지에서는 창조적 진화를 위한 조건으로서 이해된다. 이는 배치들의 행동학과 관련된다.  
857    제7강 공재면, 창조적 첩화 Ⅱ 댓글:  조회:268  추천:0  2019-03-17
▶ 들뢰즈 사유의 구도는 결국 고대의 본질철학과 근대의 주체철학에 대립한다. 또 철학을 언어철학이나 사회철학, … 등으로 환원시키려는 경향들과도 대조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사유하지만 그러나 경험주의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 자연과학과의 연관성, 예술과의 연관성, 종합적-횡단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 ▶ 창조적 첩화  들뢰즈와 가타리는 진화를 일체의 목적론적 함축을 배제하고서 사유하고자 한다. 발생의 정도, 복잡성에 입각한 위계를 비롯해 일체의 일방향적 사고는 배제된다. 횡단적 소통에 의한 ‘괴물들’의 탄생, 분자적 층위에서의 탈영토화, 퓔룸이라는 물질적 바탕에서의 새로운 존재들의 생성이 사유된다. 횡단적 소통들은 창조적 첩화를 가능케 한다. 리좀의 개념. 베르그송에 여전히 함축되어 있는 진화의 방향성조차 거부된다. 창조적 첩화는 ‘동물-되기’와도 관련된다. 동물-되기는 인간의 의식적 되기의 맥락과 생명철학적 맥락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경우 동물-되기는 횡단적 소통을 통한 창조적 첩화를 뜻하며, 횡단적 소통은 또한 ‘되기의 블록’, ‘생성의 블록’과 관련된다.  첩화는 퇴행이 아니다. 예컨대 프로이트에게서 나타나는 퇴행은 창조적 첩화와는 대극적인 사유이다. 또 들뢰즈/가타리에게서 중요한 것은 분화(differenciation)가 아니라 블록들의 생성이다.  다윈주의자들이 볼 때, 또 결정론적 태도를 가진 과학자들이 볼 때 리좀적 생성을 무조건 강조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말해 주는 바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조금 완화된 결정론자들의 경우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는 법칙의 복잡성이나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에 비해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는 훨씬 급진적이며, 실증적 연구들의 통해 이런 대립이 해결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 들뢰즈/가타리의 가설을 받쳐 주는 요소들 중 하나는 진화에서의 전염성, 유행성 변화이다. 이는 리좀적 방식의 진화를 뒷받침해 주는 좋은 예이며, 도킨스 같은 유전자 결정론자조차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루스=바이러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질적인 존재들(인간, 동물, 박테리아, 비루스, 분자, 미세기관들, …) 사이에서의 전염과 유행은 분명 진화를 복잡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도킨스는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유전자 결정론과 다위니즘을 견지한다. 캠피스는 이 점을 비판하면서 도킨스의 ‘extended phenotype’을 보다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들뢰즈/가타리의 생각은 매걸리스가 『세포 진화에서의 공생』에서 전개한 논의와 매우 가깝다. 진화에서 도태의 역할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신다윈주의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진화에서의 진정 새로운 변화는 상이한 퓔룸들을 가로지르면서 나타나는 합병, 연합을 통해서이다. 합병과 연합을 통해서 유전자 자체에서의 큰 변화가 나타난다. 따라서 유전자에 입각한 일방향적 인과나 유전자를 항구적인 동일성으로 보려는 생각들은 거부된다. 더 나아가 개체군의 사유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개체들 이하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중층결정.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개방계적 연구방식(open systems approach)’을 선취하고 있다 하겠다.  
856    제6강 공재면, 창조적 첩화 I 댓글:  조회:254  추천:0  2019-03-17
▶ 공재면으로서의 자연 조프루아 쌩-틸레르의 ‘추상동물’은 퀴비에가 그어놓은 경계선들을 무너뜨린다. 기관과 기능, 구조와 발생 유형들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젖힘으로써 속도와 강도에 기반하는 자연의 보편적인 면(面)을 발견했다. 조직화의 도안(조직면)은 무한히 유연한 추상기계로 화한다. 그것은 모든 것이 거기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내재면이고, 또 모든 것에 대해 같은 의미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의성의 면(일의면)이다. 이는 곧 스피노자의 자연이며, 장횡거의 태허(太虛)이다. 이 개념을 통해 개체화된 현실성의 세계로부터 전개체적-비인칭적 잠재성의 세계로 사유를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명계에서의 비정상적 결연, 창조적 첩화, 횡단적 소통들이 사유될 수 있다. * 태허(太虛): 중국 사상의 기본적 개념의 하나로 우주의 본체 또는 기(氣)의 본체. 장자에게 있어 도는 일체의 것, 전체 공간(空間)에 확산되고 명칭도 표현도 초월한 실재(實在)이므로 이를 ‘태허’라 불렀다. ‘태허’가 기의 본체를 가리킨다고 한 사람은 송(宋)의 장횡거(張橫渠)로 그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입장에서 ‘태허즉기(太虛卽氣)’라 하고 기는 태허에서 생기고 모여서 만물을 생성하며 기가 흩어지면 함께 만물은 소멸하나 기는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즉, 기가 흩어진 모습이 태허라고 설명하였다. ▲ 공존면: 현실화된 존재들의 공존 / 공재면: 잠재적 차원에서 모든 것들이 공존. ▲ 일자성과 일의성의 차이 ▲ 장자의 제동(齊同)의 의미 ▲ 공재면 자체의 생성 (베르그송적 차이를 사유하기) ▲ 차이와 동일성  
855    제5강 복수성: 베르그송과 다윈 Ⅱ 댓글:  조회:270  추천:0  2019-03-17
▶ 베르그송-들뢰즈에 의해 ‘복수성’이라는 말은 실사(實辭)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실체들을 셈으로써 성립하는 서술어로서 ‘많음’이 아니라 그 자체 하나의 실사인 ‘다양체’가 되었다. 다양체가 포함하는 차이들은 ‘크기들(magnitudes)’이 아니라 ‘거리들(distances)’이다. 크기들은 등질적 공간에서 성립하고, 거리들은 연속적 변이가 발생하는 다질적 공간에서 성립한다. 전자에서 성립하는 수는 ‘소산적 수’이고 후자에서 성립하는 수는 ‘능산적 수’이다. 능산적 수는 곧 잠재적 수이다.  다양체는 강도들을 통해 측정된다. 강도는 크기들이 아니다. 20도와 20도를 합친다고 40도의 날씨가 되지는 않는다. 시속 60킬로로 10킬로를 두 번 달리는 것과 시속 120킬로로 10킬로를 달리는 것은 같지 않다. 단순한 양이 성립하는 것은 등질적 공간에서이다. 세계를 강도로 볼 때 수학적 환원주의는 거부된다. ‘intensity’는 ‘intension’과 통한다.(우리말 ‘강도’와 ‘내포’가 잘 결합되지 않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intension’을 ‘내포도’ 또는 ‘內含度’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다양체는 선들과 차원을 가진다. 다양체는 계열들로 형성된다. 다양체가 함축하는 질적 복수성은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차원이 달라지는 것은 (재)영토화와 탈영토화 때문이다. 다양체는 늘 생성한다. 접속, 영토화/탈영토화, 탈주선, ‘코드의 잉여가치’, 리좀, 창조적 첩화 등이 모두 이와 연관해서 이해된다.    생명체/주체 또한 다양체이다. 들뢰즈에게서 ‘균열된 나  ’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진화’는 다양체의 생성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다양체들의 생성은 곧 복합적인 형태의 소통을 함축한다. 이것은 매걸리스의 ‘공생적 발생(symbiogenesis)’ 개념과 통한다. 이는 리좀적 진화로서 기존의 분류학적-계보학적 틀을 깨는 횡단적 배치들(transversal assemblages)을 통해 진화를 이해한다. DNA는 작은 레플리콘들(복제 단위들) ― 플라스미드들(자기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유전인자), 비루스들, 트랜스포손들(레플리콘들 사이에서 전이되는 유전자군) 등 ― 의 형태로 쉽게 돌아다닌다. 리좀 형태의 횡단적 소통들은 창조적 첩화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계열들의 속도와 방향이다. 때문에 리좀학은 ‘반계보학’이며 라마르크적인 방향성은 거부된다.  베르그송과 다윈은 공히 개체군들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복수성의 사상가들이다. 특히 신다윈주의는 발생을 속도, 비율, 계수들, 미분적 관계 등으로 파악한다. 발생은 미리 접혀 있는 것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발생의 정도는 증가하는 완전도, 또는 분화, 부분들의 복잡성의 증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태압, 촉매작용, 전파 속도, 성장비, 진화, 돌연변이 등과 같은 미분적 관계들과 계수들에 의해 측정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개체군을 몰적으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분자적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대수의 법칙에 근간하는 통계학, 그리고 이에 근거하는 고전적 다윈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리좀적 차원에 주목하는 것은 곧 분자적 운동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는 개체들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며, 사유의 수준을 개념적 유기성의 차원에서 구체적 지각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것에 해당한다. 이는 곧 가장 구체적인 차이의 운동들에 주목하는 경험주의적 태도를 함축한다.    
854    제4강 복수성: 베르그송과 다윈 I 댓글:  조회:277  추천:0  2019-03-17
▶ 베르그송은 두 종류의 복수성(multiplicite)을 구분: ①수적, 공간적, 현실적 복수성과 ②질적, 시간적, 잠재적 복수성. → 이 구분은 과학적 사유와 형이상학적 사유, 물질과 생명을 구분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질적 복수성을 ‘다양체’로 부를 수 있다. 전통 사유가 일자와 다자의 조각그림-오려-맞추기의 사유(樹木型 사유)를 펼쳤다면, 베르그송-들뢰즈에게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성하는 다양체이다. ▶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차이 1) 들뢰즈에게는 베르그송적인 급진적인 연속주의는 함축되지 않는다. 2) 들뢰즈에게는 물체와 생명체의 날카로운 구분보다는 이들이 함께 형성하는 배치가 문제가 된다. 3) ‘진화’의 뉘앙스가 훨씬 복잡하게 된다. (리좀, ‘산종(散種)’, ‘창조적 첩화’.) 4) 베르그송: 氣가 물질성과 생명성으로 이원화되는 구도 / 들뢰즈: 氣가 리좀 상태로 탈주하는 방향과 층화되고 석화되는 방향으로 이원화되는 구도.  
853    제3강 탈기관체와 유기체 댓글:  조회:279  추천:0  2019-03-17
▲ 들뢰즈/가타리는 분자 수준과 단백질 수준을 내용과 표현으로 파악.  ▲ 내용으로부터 표현이 연역되는 것이 아니다. → 일방향적 설명(환원주의), 유전자 결정론을 비판. ▲ ‘번역’이 아니라 코드의 잉여가치.  ▲ 다윈주의는 대수(大數) 개념에 입각한 통계적 덩어리들을 다루는 몰적 사유.  ▲ ‘비정상적인’ 동물-되기들.  ▲ 탈영토화 개념이 코드의 잉여가치에서 자연스럽게 도출. (탈주선의 일차성도 상기.) 이로써 바이스만의 생식질 개념(동일성의 사유)에서 벗어난다. ▲ ‘진화’라는 개념의 뉘앙스 자체를 비판적으로 볼 것.  ▲ 단지 이행, 다리 놓기, 턴넬 뚫기가 있음. creative involution! 퇴행도 점진도 아닌 되기가 있을 뿐.   ▶ 들뢰즈와 가타리는 층화(stratification)의 세 양태로서 유기체화, 기표화, 주체화를 든다. 유기체화로부터의 탈주는 탈기관체(corps sans organes) 개념에 응축되어 있다. 유기체는 하나의 통일성을 보존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투라나와 바렐라가 지적했듯이 그 부분들은 그것들이 유기체를 위해 존재하는 한에서 극소의 자율성만을 가진다. 지구라는 탈기관체는 ‘자유 강도들’과 ‘유목적 특이성들’을 나른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또한 층화가 발생한다. 층들의 체계는 코드화와 영토화를 통해 강도들과 특이성들을 ‘포획’한다. 유기체적 층화는 자유 강도들과 유목적 특이성들로 구성된 ‘체(corps)’를 ‘유기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유기층에서 유기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유기체와 탈기관체 사이에서의 ‘윤리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아르토에게서 유래한 탈기관체 개념을 자신들의 체계로 흡수해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탈기관체는 내재적 장이다. 그것은 강도들을 산출하고 분배하는 ‘욕망’(의 장)이다. 탈기관체는 유기체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달리 말해 유기체들이 탈기관체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탈기관체는 유기체와 함께 있으며 늘 일정한 과정 속에 있다. 탈기관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탈기관체는 한 유기체의 구성에 포함되어 있는 접힘들, 침전들, 엉김들의 발생의 터가 되는 ‘초저속의(얼음 같은) 실재’를 구성한다. 그에 비해 유기체는 이 체 위에 존재하는, 그것에 형식들, 기능들, 위계적 조직화들, 초월성들을 주는/부과하는 층(stratum)을 구성한다. 그러나 유기체와 탈기관체가 불연속적 타자로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1) 탈기관체는 층들 속에서 작동하기도 하고 또 탈층화된 공재면 위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즉 하나의 층으로 간주되는 유기체에 (기관들의 견고한 조직화에 대립하는) 탈기관체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유기체의 층에 속하는 그것[유기체]의 탈기관체가 존재하기도 한다. 즉 유기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기체를 힘들, 강도들, 지속들의 보다 넓은 장 속에 위치시켜 보자는 것이다. 이 장 안에서 탈유기적 생명과 층화된 생명의 끝없는 상추(相推)가 계속된다. 베르그송 및 기학과 비교. 2) 탈기관체들의 ‘되기’는 ‘이것-임’/특이성을 통한 개체화, 그리고 영도(零度)에서 시작하는 강도들의 산출을 포함한다. 이는 구분되는 계통들을 가로지르는 횡단성(橫斷性)을 낳는다. 결국 들뢰즈/가타리가 비판하는 유기체 개념은 위계화되고 초월화된 조직화로 이해된 유기체이다. 들뢰즈/가타리는 분자적 층위 또는 리좀적 층위를 선험적 장으로 제시함으로써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얽히는 카오스모스의 자연철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탈기관체 개념은 자연철학만이 아니라 윤리학적 함축을 띠기도 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신체=‘기계’에는 무한한 잠재성이 내재해 있다. 신체의 잠재성을 이끌어내는 것, 다른 신체들과의 좋은 만남을 이루는 것, 새로운 변양과 감응을 시도하는 것, 의미 있는 배치를 만들어내는 것, …이 중요하다. 이것은 들뢰즈/가타리와 기학을 함께 사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친 탈층화는 오히려 불행한 결과들을 낳기도 한다. 강도 높은 신체가 되는 것, 유기체로서 탈영토화의 운동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852    제2강 복잡성과 유기체 댓글:  조회:260  추천:0  2019-03-17
▶ 들뢰즈/가타리의 주요 개념은 ‘creative involution’이다. 이 개념은 들뢰즈/가타리를 다윈뿐만 아니라 베르그송과도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우리를 이끈다.(『스피노자와 실천철학』에서 「스피노자와 우리」 참조)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기계적 배치의 한 요소로서의 인간이다. 이제 인간의 ‘진화’가 논의된다면 자연 및 생명체들과의 관련 하에서의 진화보다 기계들과의 관련 하에서의 진화가 더 중요하다. ‘환경’의 의미 자체가 바뀌었다. ‘기계적 퓔룸(machinic phylum)’의 개념이 중요하다. 퓔룸은 연속적 변이(정도의 사유, 베르그송주의)의 바탕/주체로서 특이성을 실어 나른다. 퓔룸의 차원에서는 인간과 自然이 통합된다. 퓔룸은 디아그람과 쌍을 이루어 추상기계를 형성한다. 추상기계가 구체적인 형상을 띠게 되면 배치가 된다.(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  메카닉들은 인간-주체의 발명품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배치로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이 메카닉에 흡수된 비관적 현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메카닉, 그리고 동식물들 등이 함께 형성하는 기계적 배치가 문제될 뿐이다. 아울러 언표적 배치가 함께 고려되면서 문화의 차원이 함께 다루어진다.   ‘공재면’, ‘내재면’은 카오스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개념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구조-섬들 아래에 또는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장, 구조-섬들이 거기에서 개별화되어 나오고 또 그리로 돌아가는 기(氣)가 공재면, 내재면이다. 태허(太虛)에 해당한다. 氣, 太虛는 또한 스토아학파와 스피노자적 의미에서의 실체=자연=신이기도 하다. 같은 논리가 보다 구체적인 여러 층차들에서 적용될 때 ‘탈기관체’ 개념이 성립한다.   ▶ 들뢰즈/가타리는 다윈, 바이스만, 베르그송으로 이어지는 한 생각을 이어받고 있다. 유기체보다 그 아래에서 지속되고 있는 ‘생식질’(바이스만)에 중점을 두고서 사유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몽동으로 대변되는) 개체화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것은 구조주의와는 다른 성격의 탈주체주의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타리는 이런 생각의 한 급진화인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유전이나 진화는 생물학에서보다는 더 복잡하고 넓은 함의를 띠기 때문이다. 들뢰즈/가타리는 현재 주류 이론인 신다윈주의, 유전학, 분자생물학을 흡수하지만 그 테두리에 갇히지는 않는다.   바이스만의 생물학과 더불어 복잡성 이론 및 자기조직화 이론 또한 중요하다. 여기에서 복잡성 이론은 물리학적 맥락보다는 생물학적 맥락을 가리킨다. ‘complexity’는 글자 구성 그대로 “함께-접혀-있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곧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의 이론이다. 자연도태의 주인공은 환경이고 생명체는 도태/생존의 순서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생명체와 환경은 연속적이며, 생명체는 개방계(open system)을 구성한다. 생명체는 단지 삶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에 응답하는(repliquer) 것이다.(베르그송)  굿윈의 말처럼 생명체는 단순한 내적(유전자 수준에서의) 변이의 결과가 아니며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갖춘 존재이며, 또 캠피스의 말처럼 적응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그 자체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과정과 산물들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도 이런 구도에서 이해해야 한다) 바렐라에 따르면 생명체와 환경은 ‘상호 종화’와 ‘공결정(codetermination)’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보다 발달한 생명체일수록 이런 연계성의 복잡성도 커진다. 이 생각은 ‘탈영토화’ 개념으로 이어진다.   철저한 다윈주의자인 모노에게도 이런 생각은 나타나 있다. ‘도태압(淘汰壓=selective pressures)’은 유사한 생태권들(ecological niches) 내에서 살아가는 상이한 유기체들 사이에서의 종적(種的) 상호작용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기체는 이 과정에서 ‘선별적인’ 역할을 하며, 유기체가 더 발달될수록 자율성은 점점 더 커진다.   ▶ 들뢰즈/가타리의 사유가 ‘기계’와 ‘메카닉’을 구분하며, 모든 기계들을 내재면에 놓고서 생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부는 단지 선별된 외부이며, 외부는 단지 투영된 내부일 뿐이다.” 이는 윅스켈과 메를로-퐁티를 거쳐 들뢰즈/가타리로 이어지는 생각이다(메를로-퐁티와 들뢰즈/가타리의 차이도 음미). 그리고 생명체의 자율성은 배치와 탈영토화에 관련해 이해되며 자기조직화도 이런 개념틀 속에서 이해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칸트로부터 오늘날의 자기조직화 이론에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통일성, 안정성, 동일성의 개념은 비판된다(그러나 이케다가 강조하는 동일성의 역할도 음미).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유는 유전자 결정론과 대립한다. 최근의 생물학은 생명 현상을 더 이상 물질적 구조의 부대현상(epiphenomenon)으로 보지 않으려는 입장을 다듬어 왔다. 유기체의 생명은 비선형적인 피드백 공정들을 포함하는, 복잡한 자기조직계들(autopoietic systems)의 창발성(創發性)으로 이해된다. 유기체들은 자기조직 및 자기조절(self-regulation) 능력을 가진다. 생명은 DNA가 아니다. 분자들의 활동, 유전자들의 활동, 형태발생적 맥락 등은 단순한 연역관계를 맺지 않는다. 로버트 로젠은 바이스만의 생각을 전복시킨다. 체세포와 유기체가 중요한 것이다. 생명이란 형태발생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복잡계들의 창발적 현상이다. 진화 없이 생명을 생각할 수는 있어도, 생명 없이 진화를 생각할 수는 없다. 생명체들은 단지 진화 과정의 매듭들인 것이 아니다. 생명체의 활동이 진화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851    제1강 들뢰즈/가타리 사유 개관 댓글:  조회:260  추천:0  2019-03-17
▶ 이 강의는 『천의 고원』 중 「변신」 장을 생명철학적으로 심화시켜 이해하려는 강의이다. 피어슨의 저작(Pearson, Germinal Life, Routledge, 1999)을 따라 강의할 것이다. 마누엘 데란다의 저작(Manuel DeLanda, Intensive Science & Virtual Philosophy, Continuum, 2002)이 들뢰즈 사유의 자연과학적 이해/확장에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브라이언 마수미의 저작들(Brian Massimi, A User's Guide to Capitalism & Schizophrenia, MIT Press, 1992; Parables for the Virtual, Duke Uni. Press, 2002) 또한 뛰어나다. 군지-페기오 유키오의 『生成する生命』도 들뢰즈를 기초적인 원천으로 삼고 있다. ▶ 변신에 대한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베르그송, 둔스 스코투스, 스피노자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다.  개별화된 존재들, 개체들은 카오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과도 같다. 그러나 카오스는 단순한 암흑이나 무질서가 아니라 개체들이 거기에서 나와 거기에로 돌아가는 근원적 氣, 太虛와도 같은 것이다. 이를 ‘공재면(plan de consistance)’이라 부른다. 따라서 개체화되어 있는 차원을 근거로 하는 사유들은 적어도 이런 관점에서는 피상적이다. “배경(ground)을 일깨우고 형태[피겨]를 와해시키는 것보다 더 큰 죄(sin)는 없다.”(『차이와 반복』) 그러나 피상적 차원이 소홀히 되는 것은 아니다. ‘superficial’의 차원, 즉 표면의 차원은 깊이의 차원과 대등하게 중요하다. 『차이와 반복』이 잠재성과 강도 개념을 중심으로 한 깊이의 철학이라면, 『의미의 논리』는 사건과 계열화 개념을 중심으로 한 표면의 철학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는 베르그송적 구도를 띤다. 형상들은 물질-생명의 운동에서 파생하는, 그것도 우발적으로 파생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시간이 우주의 근본 주재자가 된다. 전개체적-비인칭적 차원을 염두에 두고서 ‘존재론’(전통적 의미)을 생각할 때 ‘이것(haecceitas)’에 관한 둔스 스코투스의 생각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기존의 존재론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존재들(entities)을 우리 시야에 펼쳐 주는 존재론. 이 존재론은 또한 ‘이것들’의 잠재적 장으로서의 ‘탈기관체(corps sans organes)’를 설정하게 만든다. (공재면은 궁극적 탈기관체이다)    개체화된 존재들 ― ‘기계들’(이 말에는 스토아,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부터 현대적 맥락까지 다양한 맥락이 스며들어 있다) ― 사이에서는 한편으로 영토화/탈영토화의 과정이 발생하고, 그와 더불어 감응(affectus)에서의 변화도 발생한다. 이로부터 갖가지 윤리적-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창조적 행동학(ethology)을 구상한다.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리즘의 詩     심상운(시인, 문학평론)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주지주의)은 시의 예술적인 면에서 풍성한 암시와 반짝이는 상상의 언어세계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잃어버렸던 신화를 되돌려주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중세의 허풍장이기사騎士에 머물지 않고 현재까지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상상 속에 살아 있는 것은 그의 비현실적인 꿈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 때문이다. 모더니즘도 우리들의 시에 언어의 꿈을 담아주었기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의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이어온 것이다. 만약 시인들이 현실과 역사의 진보에만 매달려서 싸웠다면 시인들은 전사戰史에 기록될 수 있는 영웅은 되었을지 몰라도 예술의 세계에서는 상상력이 고갈된 허수아비 같은 존재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주권을 일제日帝에 침탈당한 국권상실시대에 일제에 직접 저항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1930년대 이육사李陸史의 시편들 속에서 발견되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아름다운 만남이 명징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北方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絶頂」전문   이 시의 끝 구절 에서 강철+무지개가 던져주는 죽음을 초월하는 희망의 경이로운 상상과 암시는 지금도 생생한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더니즘의 이미지, 즉물적卽物的 감각이 우리의 현대시에 수놓은 금싸라기 같은 수사의 미학을 귀중한 재산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더니즘이 시인과 독자들을 자연발생적인 시들의 고식적인 감상感傷과 영탄성詠嘆性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딱딱한 관념어의 굴레에서 시를 해방시켰다는 공적만이 아니라,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더니즘의 긍정적인 생명력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현실과의 관계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꽃을 피우던 일은 그만두고 인제는 한 개 벽돌이나 되겠다. 이 살덩이를 흙가루로 빻고 썩기 전에 이 피로 곱게 물들여 1천도의 시뻘건 불 속에서 다시 벽돌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하여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여 백 층이나 삼백 층의 빌딩이 되거나 반월형半月形 의 만리장성이 되거나 원수의 포탄이 우박처럼 박혀도 끄덕도 않는........ 구름을 피우던 일은 그만두고 인제는 단단한 벽돌이나 되겠다. --문덕수의「벽돌」전문      이 시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쓰인 과 , 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또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 또 사물어事物語의 쓰임이 이 시에서 어떤 시적 효과를 나타내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어디까지 자극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 시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980년대의 사나운 현실 속에서 이 시가 보여주고 있는 모더니즘 언어의 바른 자세와 당당함이다. 이 시의 앞부분 는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정신과 함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시 속에서 결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예술)과 리얼리즘(현실)의 이런 아름다운 만남은 더 이상 넓게 확산되지 못 했다. 대부분의 모더니즘 시들이 현실의 뒤쪽으로 물러서서 스스로 존재영역의 범위를 축소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몇 가지 면에서 더 검토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모더니즘 시가 안고 있는 언어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신뢰(언어주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지나친 신뢰는 시작과정詩作過程에서 시인의 관심을 현실(사실)보다 시인의 고정관념과 언어에 치중하게 하였으며, 비유, 상징, 이미지 등의 언어의 조직을 시의 궁극인 양 내세워 모더니즘의 시를 언어의 시라고까지 명명命名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 모더니즘의 시인들이 현실과 예술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언어의 건강한 긴장감과 조화를 깨뜨리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생동하는 이미지나 환상과 상징을 잃어버린 극단적인 언어주의 시로 변질되면서 모더니즘 시의 한계가 노정露呈된 것이다. 그것을 간단히 압축하면 모더니즘 시의 극단적 언어주의는 모더니즘 시의 함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과 꿈을 담은 시의 탄생을 기다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병든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치유하고 개혁해야하는 당위성의 원천이 된 것이다.   모더니즘의 시를 언어의 시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시인의 순수한 정서에 의해서 시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는 시인의 수공업적인 언어 작업에(의식적 방법) 의해서 시가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 수공업적인 언어작업은 어떤 관념을 중심에 두고 환상적 이미지와 감각을 중시하면서 시인의 감정까지 감각적인 언어로 만들어 지성(의도성과 논리성)이 시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시의 기법으로 발전한다.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서정 시인들은 이러한 시의 기법에 익숙하고 그것을 정통적인 시의 기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시인은 아주 엄밀하고 냉랭하게 계산된 논리적인 비유, 상징의 언어(관념, 고정관념)를 시의 중심에 넣고 감정까지도 객관화하여 독자들의 반응을 계산하면서 시를 제작한다. 이 때 시인은 현실(현장)에서 벗어나서 시라는 무대에 올라가 연기하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에서 시인의 자기 노출은 무대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난 해질 무렵 몽상가 소부르주아 시인 세상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의자, 작은 방, 개미, 염소   피와 이슬로 된 술 난 현실 따윈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난 현실을 모르는 국문과 교수 허리띠를 헐렁하게 매고 거울을 연구하는 교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감기엔 맥을 못 춥니다 30년 전부터 어디론지 떠나고 싶었지만   --이승훈 「오토바이」 전문   이러한 시들은 비록 시인의 관념이 시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지만 시인과 독자들이 갈구하는 낯설음, 새로운 기법의 언어, 경쾌한 감각의 현대성을 충족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 등의 언어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존재의 탐구에만 전념하는 시인의 모습을 통해서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대한 의식적인 외면과 환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강한 집착이 모더니즘 시의 원형인 것처럼 독자들을 유인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때, 생동하는 시의 실체는 언어(관념)의 감옥 속에 갇혀버리고 시인의 언어유희가 독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있던 자리에 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 여름에 본 물새는 죽어 있었다. 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 --김춘수 「처용단장 제1부의 Ⅳ」에서     나 는 통념적인 의미의 세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인의 몸부림이 개척한 의미단절의 언어세계다. 그것은 '있음/없음'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인의 의식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언어세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춘수의 시에서) 후속 시행에 의한 선행 시행의 차단”(문덕수 「인식의 혁명」에서)은 시의 의미를 무화無化시켜서 시를 응고된 틀에 갇히게 한다. 이런 무의미의 시는 내재적인 모순에 의해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언어에 염증을 느끼고 절망하고 탈출하는 이유를 만든다. 그래서 그것은 모더니즘 시의 한계로 드러나는 지나친 현실 외면(도피), 시의 관념화(도식화, 논리화), 의미의 단절, 단순 이미지의 나열, 언어유희(무의미)에 대한 성찰의 근거가 되고 시에 대한 정의를 다시 찾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극단적인 모더니즘(언어주의) 시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현실(현장) 속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향기 나는 생명체를 모셔놓은 언어의 집이라는 시의 정체성을 다시 찾게 한 것이다. 따라서 시에서 관념이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과 영혼(생명)이라는 것. 그 마음과 영혼은 시인의 환상과 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만약 관념에 의해서 영혼이 만들어진다면 그 영혼은 가짜의 영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그래서 오히려 모더니즘의 언어예술로서의 시보다 자연발생적인 서정시가 더 본래적인 시에 가깝게 인식되는 것이다.   비오는 날 묵밭에 소를 먹이고 있으면 어디서 깊은 소리가 들리네.   온 天地가 共同墓地같은데  오동나무만  저승의 길잡이처럼 서 있네.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도 푹 빠졌을까. 안개사이로 인업이 꼭 걸어올 것만 같네.   喪輿를 놓고 그렇게 울던 곳. 그 곳엔 이상한 불빛이 서려 있었네. --이성교「비오는 날(1)」 전문   자연발생적인 서정은 시인의 언어조직만으로는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자연스런 서정의 시에는 이성(지성)보다 감성이 주류를 이루어서 때로는 원시적인 야성의 감성이 시의 생명력을 키워내는 원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에서 관념과 비유, 상징을 떨쳐버리고 직관의 눈으로 직접 대상과 만나자는(의식→대상→이미지) 디지털리즘의 시 운동은(오진현) 시의 현장성과 내재적인 생명성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인 서정시와 연결된다. 그것은 디지털리즘의 시가 극단적인 모더니즘의 시(관념의 시, 언어유희의 시)보다 시의 원래 모습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지털리즘의 시는 이성(지성)보다는 감각(감성)이 시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비가 오락가락, 찜통 더위 속 , 땀을 흘리고 확 터진 능선에 올랐다. 앞에 서 있는 봉우리들 얇은 구름이 그림이다. 주저앉아 상상하며 가슴쯤 산의 옷을 벗기면서, 이렇게 시에 빠져들고 있는데, 한 시인이한다. 나는 내색을 못하고 하고 이성理性을 말했다. 그 때 지나가는 등산객이 했다. 멍! 모두 몽둥이로 한 대씩 맞은 기분이었다.   이 날 산행은 흰수염을 휘날리고 아슬히 바윗서리에 걸터앉은 내가 희죽이 웃으며, 리모콘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비밀한 얇은 비단을 밀어 올리고, --오남구「산행」전문    이 시는 때 묻은 감각과 지식을 뛰어 넘는 디지털 시대의 감각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그것을 수용하는 맑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떤 관념도 미리 들어가 있지 않은 탈관념의 빈 마음은 새로운 감각이 모여드는 맑은 못이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 새로운 감각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열린 마음이 디지털시대의 시인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숨을 쉬고 지느러미를 펄떡이면서 움직이는 자기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직관(초논리超論理, 비논리非論理)의 눈이 언어 카메라로 찍어내는 디지털 감각(염사念寫, 접사接寫)의 이미지 시와 어떤 관념을 솟대같이 중심에 세워놓고 언어의 조직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모더니즘의 이미지 시의 차이를 선명하게 구분 짓게 한다.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깊게 몸 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오남구「밤비」전문    오진현의 디지털리즘의 실험시에 전류처럼 흐르는 알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의 에너지는 어떤 관념도 의도意圖도 들어 갈 틈을 남겨주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의 자동기술과도 구별된다. 다만 마음의 눈이 마음에 비친 의식의 영상을 사진 찍듯이 찍어서 시각적 영상으로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디지털리즘의 시인은 시의 주체이면서도 객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리즘의 시는 또 문명적 사고(객관적이며 추상적인 과학적 사고)와 대립되는 문명이전의 야생의 사고(구체적 사고)에 맥이 닿는다. 문명이전의 야생의 사고는 구체적이고 주술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는 다른 표현으로 신화적 사고라고 한다. “신화적 사고는 표상(image)에 묶인 채 지각(percept)과 개념(concept)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우리에게는 표상으로밖에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나름으로는 과학적일 수 있다고 레비-스트로스는 주장한다.” 이런 면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 디지털리즘의 시는 비인간적인 기계의 시가 아니라 언어적인 면에서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미지와 감각도 포함하는 매우 인간적인 직관과 감성에 의해서 탄생하는 탈관념의 새로운 감각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리즘의 시는 사실, 생명, 현장을 바탕으로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을 중시하는 21세기적인 감수성(디지털 감각)과 인간의 내면에 잠겨 있는 야성적 감각이 만나서 순수 직관의 이미지(탈관념, 시공간 초월), 즉 신화적인 언어 표상(image)으로 탄생되는 시라고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디지털리즘의 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뛰어넘는 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문명적인 면에서 볼 때, 과학적 사고(문명)와 야생의 사고(문명이전)의 융합이다. 그러나 디지털리즘의 시는 시인의 사유와 감각과 언어의 수사修辭에 의해서 제작되는 모더니즘의 시에 비해서 시의 일반화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디지털리즘의 시는 탈관념의 의식이 전제가 되고 이제까지 사용된 익숙해진 언어(비유, 상징)로부터 벗어나서 때 묻지 않은 원초적 언어와 디지털 감각(염사, 접사)의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모더니즘 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리즘 시의 “새로운 신화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도정이 예상된다. 그러나 21세기는 도처에서 새로운 변화(IT, DNA 등)의 구름을 계속 몰아오고 있어서 시인들도 그것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13)   데이빗 개스코인(David Gascoyne)   겨울의 정원   계절의 분노와 격한 선풍(旋風)*과 얼음이 사라졌다. 묵묵한 정원사가 재를 뿌려놓    은 길도 말끔히 치워졌다.                *선풍: 회오리바람   하늘의 냉혹한 궤도도 폭풍우도 마멸하여 버렸다. 그러자 이 정원에는 이제 투쟁이 없다. 겨울의 칼날은 땅에 매장되고, 바람이 몰아쳐 새도 없는 나무가지를 울부짖음은 순수한 음악. 꽃은 다시 소생하지 않고. 연못의 파아란 응시(凝視)는 눈이 멀었다.   축축히 젖은 잔디를 가로지르며 아침의 방황을 하는 낯선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눈물에 젖어 시들했고, 그의    가슴 속에선 잔인한 태양이 그 속에 감추어진 날을 소    진시킨다.   (황운헌 번역)    이 사람을 보라   부란(腐爛)*한 살점, 빛이 바랬고, 껍질이 벗기    어져,                                                      *부란: 썩어문드러짐. 파리가 파먹고, 태양에 끄슬러 붙은 자 무서운 얼굴은 누구일까? 형관(荊冠)*이 머리에 박히고 창(槍)이 옆을 찔렀고,   *형관: 가시면류관 붉게 엷은 막(膜)이 깔린 이 공허한 눈은 누    구일까? 이 사람을 보라. 그는 인류의 아들.   비겁과 이기심을 만들어 내고 용서 못할 적을 벗으로 삼게 하고 주(主)의 상처가 말하는 쓰라린 진실을 숨기    게 하는 전설과 젊잖은 을 찢어발겨 망각(忘却)에    묻어 두자. 이제 더 위대한 치욕을 위장할 수 없는    것. 주(主)는 세계의 종말까지 격(激)한 고통을 겪는    다.   우리도 그때까지 잠들어서는 안된다! 지금 主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고 우리는 죄(罪)에 묻혀 우러러본다, 主의 완만(緩慢)한 고통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살    아온 무감각한 사람들. 여기 主가 뿌린 피로 공포 속에 만들어진    언덕이 있다.   그가 아직도 매어달려 고통을 겪을 때 보라. 군대의 대장은 승마화와 검은 와 와 뾰족한 모자를 걸    치고 서로 손을 치켜들어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눈은 냉혹하고 입술은 미소를 잃    었다. 그러나 이들 主의 형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고 있다.   主의 한 옆에는 또 하나의 시체가 매달려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거나 직공 또는 를 당한 유대인이 아니면 흑인이거나 갈색인 또는 쿨리(중국노동자), 인(人), 애    란인(愛蘭人)*,                                                  *애란인: 아일랜드인 서반아인(西班牙人)*이 아니면 독일의 민주주의자들.  *서반아인: 스페인인   주의 늘어진 머리 뒤에선 하늘이 불의 분류(奔流)*처럼 번쩍거린다.      *분류: 세차게 흐름 신념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십자군과 의 전사들이 主의 이름으로 범한 2천년의 학살로 붉게 물들어.   主의 못박힌 손 아래 벌판에는 죄에 젖은 오점처럼 씻을 수 없는 어두움    이 배어나오고 장례식처럼 음산한 공기가 떠돌아 유사(流沙)에 묻혀 땅 사태에 찢기어 폭격받고 버림받은 도시들이 서 있다.   을 위하여 눈물흘린 主는 지금 그의 예언이 시계의 커다란 도시들    에 번지어가는 것을 본다. 죄에 물들어 낭패해진 이성(理性)도 막을 수 없    다. 주가 예언한 것처럼 모든것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그리고 主는 이 가 종식할 때까    지 지켜보아야 한다.   때로 일컬어졌지만 主는 그의 발 밑 암흑의 왕국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곳에선 모든것이 주의 말을 모멸(侮蔑)하고 모든 사람이 공통의 죄를 짊어졌고 눈가림으로 운명을 따라가고 공포와 식욕의 주권자(主權者).   역사의 전환점이 반드시 온다. 자만하고 고만(高慢)한 자 그리고 착취(搾取) 또는 목숨을 빼앗는 자는 거    부(拒否)될 것이다 - 혁명과 시(詩)의 그리스도 당신의 정신의 피로 만들어진 부활과 생명.   궤변(詭辯)에 열중한 검은 옷의 승려와 고결한 사람은 전복(顚覆)된 진실에 부딛쳐 침묵을 지키게 되    고, 혁명과 시(詩)의 그리스도, 거부되고 비난을 받던 자가 신(神)의 행위자가 된다.   은제(銀製)의 현시대(顯示臺)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의 수목(樹木)으로부터 불모의 비참이 복상(服償)된다. 혁명과 시(詩)의 그리스도, 밤을 통하는 인간의 긴 여정은 공허하게 지나치지 않으리.   (황운헌 번역)      전시(戰時)의 꿈   노오란 전구(電球)의 응시 속에 무디어진 자정(子正)은 멀리 넘어섰어도 잠은 여전히 먼 시간 묵은 상념이 풀어진 이녕(泥濘,진창)으로부터 하얀 김이 서려올 것 같은빈 두개골을    이고 진흙 속에 잠기는 조개처럼 시선(視線)은 안구(眼球)안에 묻힐 때까지 --- 시린 스위치를 찾아 손은 벽을 더듬고 신경이 끊어진 암흑은 이윽고 온 방안을    흔든다 조용히 누우면 --- 움칠거리는 수족 움직이지 못하는 것의 아련한 아픔이 도    져오고 시간은 한동안 쉰다 공간은 온    통 까매진다.   그러나 귓속 깊이 파헤친 벨벳 폭탄의    자리 한 가락 돌연히 자극을 일으킨 소     리는 있어 두 번 세 번째의 새소리 그리고 훨씬 힘찬 또한 새소리에 대답하    는 지저귐이 일어나고 사방에서 밀려든    소음은 약하나 가늘게 날을 세운 손톱    으로 청각의 현(絃)을 뜯는다 순간 주의 수마일 상공에 잠을 깬 모든 새    들은 방 밖으로 번쩍이는 모래알같이 음    률도 없는 노래 앞뒤와 목적이 없이 눈    먼 그 목통에 차오르는 내처 뿌    린다.   따끔거리는 손으로 커텐을 열어제껴라 등화관제의 검은 포(布)을 풀러라 그리고 음산한 첫새벽 빛을 창으로 맞으라 모든 것은 아직 어제의 썩어가는 죽음 속    에 반쯤 잠겨 있고 습기 머금은 텅빈 하늘 아래 벙어리 귀머    거리의 입안처럼 침침히 움직일 줄 모    른다 창 밖에 탄 잿빛 벽에 기대어 회색으로 창    백해진 하얀 배꽃이 하나의 응시처럼 어    른거리고 비에 젖은 저켠 지붕들이 약    하게 반짝이는 그 너머에 외로운 군용    전구(軍用電球)가 맥없이 걸려 있다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이 새벽을 흐르지    않는 물의 수심(水深)으로 무겁게 누른다 -    생각이 뜨지 않은 긴 명상 - 도시 모르는 곳으로부터 길을 잘못 잡아    든 한 오리 미풍이 대지에서 강렬한 체    취를 자아 일으키고 수즙(樹汁)의 단맛 맨흙    의 향기 돌냄새 자갈웅덩이의 아린 입    김 이런 것들로 차 있을 듣지 못할 한숨    을 불러 일으킬 때까지. 가까운 정원의 풀과 나무 생각에 잠긴    녹색이며 움직이지 않고 납작한 푸른    입들 멀리 떨어진 라일락의 신기루들이    더해지는 날빛으로 밝아오다가 한층 선    명해진다   서서히 진군하는 아침 앞에 이제 더러는 베개 속으로 후퇴하고 (잠결 따뜻한 입구 잘 닫히지 않는 뚜껑    뒤에 들리는 듯 마는 듯 빈병들이 부딪치는    흰 음향 - 우유차 바퀴 끌려가는 소리    - 그리고 머지 않아 신문배달 소년의    자전거가 이웃집 평화로운 계단에 어젯    밤 전투소식을 나누어 놓고 달리는 휘    파람소리) 마침내 잠이 든다   그 무렵 노르웨이의 얼굴이 없는 군대들이    상륙하는 추운 해안에는 이른 포격이 다    시 불을 뿜고 전쟁의 하루는 다시 모든 곳에서 막을 연    다.   (황운헌 번역)  
848    스크랩] 세계의 명시 댓글:  조회:252  추천:0  2019-03-16
  [스크랩] 세계의 명시      세계의 명시              발행처:국일미디어   발행:1985년 3월 5일                차례       머리말       영국편     스펜서:그의 사랑에게   셰익스피어: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던: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밀턴:실락원   블레이크:호랑이   번즈:붉고 붉은 장미여   워즈워드:뻐꾸기에게, 초원의 빛   코울리지:쿠빌라이 칸   무어:늦게 핀 여름의 장미   바이런: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서른 여섯 살이 되는 날에   셸리:제인에게, 시풍의 노래   키츠:나일팅게일에게 부쳐서,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   클레어:마리   테니슨:울려라, 힘찬 종이여, 모랫벌을 건너며   E.브라우닝:밀회, 평생의 사랑   아놀드:마거리트에게   로제티:생일날, 노래   브리지스: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스티븐슨:진혼곡   하우스먼:팔리지 않는 꽃   브론테:추억   스윈번:걸음마   홉킨즈:평화   시먼즈:사랑한 뒤에   다우슨:시나라   예이츠:이니스프리 호수섬, 쿨 호수의 백조   조이스: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노래   스티븐즈:꽃이 핀 숲   브룩:노래   D.H.로렌스:봄날 아침   메이스필드:그리운 바다   홉:부두 위, 가을   T.S.엘리어트:황무지       미국편     포우:에너벨 리, 엘도라도, 헬렌에게   모리스:나무꾼이여, 나무를 베지 말라   에머슨:자제심, 로도라꽃   롱펠로우:인생 찬가, 화살과 노래, 잃어버린 청춘   휘트먼:풀잎, 나는 루이지아나에서 떡갈나무가,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디킨슨: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됩니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로빈슨:리처드 코리   크레인:사막에서, 붉은 악마들   A.로웰:라일락꽃   R.프로스트:밤에 익숙해지며, 창가의 나무,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가지 않는 길   와일리:벨베트 신발   H.D:과수원, 산의 정   커밍즈:내가 아직 가 본 일 없는 곳에서   티즈데일:잊어 버립시다, 5월 바람   파운드:부도덕, 소녀   샌드버그:시카고, 안개   오든: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보라, 길손이여       프랑스편     비용:옛 미녀를 노래하는 발라드, 회한   롱사르:마리의 사랑   라 퐁테느:노인과 세 청년   라마르틴:호수   비니:늑대의 죽음   네르발:환상   위고:올랭피오의 슬픔   뮈세:회상   고티에:화분, 바닷가에서   르콩트 드 릴:정오   보들레르:가을의 노래, 신천옹, 교감, 이방인, 우울, 취하라   프뤼돔:눈, 사랑의 가장 좋은 순간   말라르메:바다의 산들바람, 백조, 시현   베를렌느:네버모어,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어느 여인에게   랭보:감각, 모음, 지옥의 계절   구르몽:낙엽, 눈   잠:나는 당나귀가 좋아    발레리:해변의 묘지   아폴리네르:미라보 다리   엘뤼아르:자유   브르통:자유 결합   프레베르:고엽, 바르바라       독일편     클롭스토크:봄의 축제   괴테:프로메테우스, 5월의 노래 (1), 들장미, 마왕,   쉴러:동경, 순례자   휠더린:고향, 운명의 여신에게   노발리스:밤의 찬가   아이헨도르프:밤의 꽃, 상쾌한 여행   하이네:로렐라이, 근위병, 노래의 날개   슈토름:해안   게오르게: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노래   호프만시탈:이른 봄, 여행의 노래   릴케:가을날, 표범, 오오 주여, 어느 사람에게나, 최후의 시   헤세:안개 속, 흰 구름, 방랑, 눈 속의 나그네   카롯사:옛샘   벤:아름다운 청춘   트라클:유럽이여       러시아, 기타편     푸쉬킨: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인   튜체프:바다 위의 꿈   레르몬토프:시인의 죽음   네끄라소프:고향   부닌:샛별   블로끄:머리말   아흐마또바:이별   파스테르나크:행복   마야코프스키:결론   예세닌: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단테:신곡   페트라르카:라우라에게 바치는 시   레오파르디:고독한 새   다눈치오:숲에 내리는 비   콰지모도:아무도 없으니   공고라:단시   에스프론세다:첫송이 장미   캄포아모르:두 가지 즐거움   베케르:카스타에게   마차도:여행   히메네스:십자가의 아침   로르카:부정한 유부녀   알베르티:바다의 밭   프로딩:온종일   뵈른손:나는 생각하기를   외베르랑:그리니에게 보내는 편지   요르겐센:열한시   라쿠르:너와의 한 때   에미네스쿠:호수   엔드레:홀로 해변에서   네루다:나는 생각한다   발라:슬픔   다리오:미아 내 것, 가을의 시   미스트랄:발라드   네루다:여자의 육체   생고르:내 너를 데려왔다   타고르:바닷가에, 동방의 등불       중국, 일본편     굴원:회사   도연명:귀전원기, 음수   사령운:석벽정사   왕발:산중, 산방의 밤   진자앙:감우   고적:봉구현   잠삼:주마천행   왕유:송별, 잡시, 소년행, 청계   맹호연:세모에 남산으로 돌아가며, 친구의 농장에 들러   이백:촉도난, 장진주, 장간행, 소년행, 파주문월, 월하독작, 정야사, 추포가, 자견, 아미산월가, 산중대작, 망여산폭포, 산중문답, 새하곡, 등금릉봉황대, 자야오가, 강상음   두보:병거, 북정, 강촌, 무가별, 추흥, 촉상, 등악양루, 등고   원결:춘릉행   장적:이부   백거이:장한가, 매화   원진:직부사   한유:산석   유종원:강설   이하:머리 빗는 여인, 가을바람에 부치는 감상, 신현곡, 가을이 오다, 안문태수행   두목:산행, 청명   이상은:금슬, 곡강, 상아, 교아시, 매미   매요신:전가어   소식:자유와 작별하며, 자유의 시에 화답하며, 서호의 아침 해, 해회사에 묵으며, 교외에서 봄을 맞으며   황정견:청명, 쾌각루에 올라   육유:산남행, 한중에서 묵으며, 검문의 가랑비   원호문:기양, 외가남사   고계:청구자가   오위업:원원곡   황준헌:감회   유대백:원   호적:한번 웃음   안사이 히도시:꽃과 마을   미요시 도요이찌로오:애정   마루야마 가오루:가버린 님   오까자끼 세이이찌로:벚꽃   다까무라 고오따로오:알몸과 심장, 기다리고 있네   노무라 히데오:기도   아유가와 노부오:깊은 밤에   사까모도 료오:연인   이또오 세이:사과밭의 6월   나가세 기요꼬:속삭여요 살며시   사사자와 요시야끼:국화   노마 히로시:그대의 눈물   후지시마 우다이:석양의 소녀   무라노 시로오:여인의 방   다무라 류우이찌:다시 만나면   에마 아끼꼬:서글픈 약속   쓰보다 하야꼬:젊은 시절의 추억   다께나까 이꾸:심장처럼 빨갛게         머리말     이 책은 "한국의  명시"와 자매편으로 편집된 것으로 동서고금의 유명한  시인의 대표작을 엄선하여 수록하고 해설하였다. 이 책의 특색은 역시  "한국의 명시"와 마찬가지로 해설과 역주에 있다 하겠다. 해설은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면서도 농도 짙게 하였고, 역주 역시 가능한 한 요점을 간결하게  풀이하기에 힘썼다.   책의 체제는 편의상 세계 시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나라들을 각 편으로  하여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기타' 그리고 우리와 한 문화권에  드는 '중국, 일본' 등 여섯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시인의 수록 순서는 가급적  태어난 순서로 정했으나 작품 발표 연대를 많이 참조하여 조정하였다.   문학은 다른 모든 예술 위에 군림하는 왕자라고 볼 수 있고, 시는 문학의  꽃으로 간주되어 온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동서양의 여러 성현 가운데서 시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인정한  분은 아마 공자일 것이다. 그는 '논어'에서 이런 뜻의 말을 하고 있다.   "시를 읽으면 품성이 도야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세상물정에 통달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은 마치 바람벽을 대하는 것과 같다."   그 외의 시의 효용성을 논한 사람이 어찌 한 둘이겠는가. 현대를 흔히  에고이즘과 황금만능시대라고 부른다. 그럴수록 우리는 시를 가까이 하여 그  향기에 젖어서 드라이한 생활에 윤기를 더해야 할 줄로 믿는다.   1984년 2월         영국편         스펜서       그의 사랑에게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백사장에 썼으나   파도가 몰려와 씻어 버리고 말았네.   나는 또다시 그 이름을 모래 위에 썼으나   다시금 내 수고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네.   그녀는 말하기를 우쭐대는 분, 헛된 짓을 말아요.   언젠가 죽을 운명인데 불멸의 것으로 하지 말아요.   나 자신도 언젠가는 파멸되어 이 모래처럼 되고   내 이름 또한 그처럼 씻겨 지워지겠지요.   나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소. 천한 것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당신은 명성에 의해 계속 살게 되오리다.   내 노래는 비할 바 없는 당신의 미덕을 길이 전하고   당신의 빛나는 이름을 하늘에 새길 것이오.   아아, 설령 죽음이 온 세계를 다스려도   우리 사랑은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오리다.     *엘리자베스 조의 대표적 시인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1552__99)가 뒷날 아내로 맞은 엘리자베스 보일(Elizabeth Boyle)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소네트 연작 '아모레티' (Amoretti 전, 89편)중에 수록된 것이다.   그의 시집으로는 '양치기의 달력', '요정의 여왕' 등이 있다.         셰익스피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것!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지 그게 문제지.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이 무참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 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 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상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한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 빼려 하겠는가.   사후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온 일 없는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흐르게 하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할 저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하여 미혹은 늘 우리를 겁장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스러운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햄릿'에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__1616)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에서 너무도 유명한 햄릿의 독백.   괴테, 슐레겔, 코울리지, 투르게네프 등 많은 사람들이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 편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점에서 자기 자신과 유사한 햄릿이라는 인문을 창조함에 있어서, 그를 자기 자신과 완전히 분리시켜 천부적인 창조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한 결과 그 불명확성으로 인해 영원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햄릿이라는 형상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이 형상을 창조해 낸 영혼은 북부인의 영혼이며, 고통스럽고 음울하며, 조화와 맑은 색채를 상실한 영혼이며 우아하고 때로는 섬세하기 조차한 외형을 한 결코 원만하지 않을 영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혼은 깊고, 강렬하고 다양하며, 독립적이고도 지도자적인 영혼인 것이다...'.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지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기도문'중에서)     *던(John Donne:1572__1631).   영국 최대의 형이상학과 시인으로 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성폴교회의 부감독으로 있었다. 그의 성격은 무척 복잡 특이하였으며 생애는 영육과의 고투이었다. 단의 시는 기발한 상념이 넘쳐 종종 극도로 난해한 것이었으나 막힘없는 직감력과 불 같은 감정, 간결하고 강인한 표현은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요 시집' '유령' '기념일의 시'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이 시는 마지막 대목에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n the bell tolls)'라는 구절이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인용되면서 한층 유명해졌다. 깊은 신앙으로 점철된 명시이다.         밀턴       실락원     인류 최초의 불순종, 그리고 금단의 나무열매여,   그 너무나 기막힌 맛으로 해서   죽음과 더불어 온갖 슬픔이 이 땅에 오게 하였나니   에덴을 잃자 이윽고 더욱 거룩한 한 어른 있어   우리를 들이켜 주시고 또한 복된 자리를   다시금 찾게끔 하여 주셨나니   하늘에 있는 뮤즈여 노래하라.   그대 호렙산이나 시내산 은밀한 정상에서   저 목자의 영혼을 일깨우시어   선민에게 처음으로 태초에 천지가   혼돈으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나이까.   아니, 또한 시온 언덕이 그리고 또한   성전 아주 가까이 흘러 내리고 있는    실로암 시냇물이 당신 마음에 드셨다면   이 몸 또한 당신에게 간청하오니   내 모험의 노래를 북돋아 주소서,   이오니아 산을 넘어서 높이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이 노래이니   이는 일찍이 노래에서나 또 글에서나 아직   누구나 감히 뜻하여 본 일조차 없는 바를 모색함이라.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대 아 성령이여,   어느 궁전보다 앞서   깨끗하고 곧은 마음씨를 좋아하셨으매, 당신이여   지시하시라, 당신은 알고 계시지 않으시나이까.   처음부터 당신은 임석하시어 거창한 날개를 펴고   비둘기와 같이 넓은 심연을 덮고 앉으사   이를 품어 태어나게 하셨나이다. 내게 날개편 어두움을   밝히소서, 낮은 것을 높이고 또 받들어 주소서,   이는 내 시의 대주제의 높이에까지   영원한 섭리를 밝히고자 함이요, 또한    뭇사람에게 하느님의 도리를 옳게 전하고자 함이라.   '서시'에서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불후의 종교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밀턴(John Milton:1608__74)의 '실락원(Paradise Lost)'은 전 12권의 대장편이다. 눈이 먼 뒤에 딸에게 구술하여 완성된 대작으로 20년에 걸쳐 구성하였으며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취재하였다.   이야기는 사탄 및 인간의 반역과 몰락이며 하느님과 그리스도, 아담과 이브, 천사와 타락한 천사, 특히 사탄의 비극적이며 영웅적 성격을 공상의 세계에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악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 하느님이 창조하여 낙원에 살게 한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키려하는 사탄의 복수 인류의 시조와 그 인과. 속죄의 희망 등을 지옥과 천국과 지상의 대무대에 전개시킨다.   작자 자신이 말하듯 '영원한 섭리를 말하고 신의 인간에 대한 도리가 옳은 것임을 밝히려는 것'에 그 모랄이 있으며 이것이 작품 전체에 시종 명확히 의식되어 있다 하겠다.        블레이크       호랑이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존재여,   그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   네 그 두려운 존재를 만들었는가?   그 어느 멀고먼 바다나 또는 하늘에서 네 눈의 불꽃은 타오르고 있었는가?   어떤 날개로 하늘을 날아서   어떤 손으로 그 불꽃을 붙들었는가?   그 어떤 힘과 그 어떤 기술로써   네 심장의 힘줄을 비틀 수 있었는가?   네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을 때   어떤 두려운 손이? 두려운 발이?   어떤 망치가? 어떤 쇠사슬이?   그 어떤 용광로에서 네 두뇌는 만들어졌는가?   어떤 철판으로 단련되어 가공할 만한 손아귀가   그 견딜 수 없는 공포를 움켜 쥐었던가?   별들이 그 창을 내던지고   눈물로 하늘을 적셨을 때   신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보고 미소 지었던가?   어린 양을 창조한 신이 너를 만드셨는가?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것이여   그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   네 그 두려운 균형을 만들었는가?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__1828)는 번즈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대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일찍부터 시를 써서 1783년에 최초의 시집 '시적 스케치(Poetical Sketches)'를 출판하였고, 6년 뒤에 '순진한 노래'를 간행, 1794년에는 '경험의 노래(Song of  Experience)'를 출판하였다. 두 권의 시집은 블레이크의 독특한 그림을 곁들여 인쇄하여 한 권으로 합친 형태로 된 것도 있다.   신비주의자인 그의 시는 난해한 점이 많지만, 장엄한 스타일과 순수한 정열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호랑이(The Tiger)'는 불타듯 번쩍이는 호랑이의 눈빛과 위압하듯 당당한 그 자태 그리고 아름답게 균형 잡힌 그 늠름한 모습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번즈       붉고 붉은 장미여     오오 내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니   유월에 막 피어난 신선한 장미여라.   오오 내 사랑은 아름다운 곡조로   감미롭게 연주되는 노래이어라.   귀여운 사람아, 네가 귀엽기에   나는 무척이나 너를 좋아하노라.   바닷물이 모두 말라 비려도   나는 너를 사랑하리, 그리운 이여.   진정 바닷물이 모조리 말라 버리고   바윗돌이 햇빛에 녹아 버린다 해도   내 생명이 붙어 있는 한에는   진정 나는 너를 사랑하리라.   마음은 쓰라려도 이제 헤어져야 하나니   그러나 잠시 동안의 헤어짐이니.   나는 반드시 돌아오리라   비록 천 리 만 리나 된다 하여도     *번즈(Robert Burns:1759__96)는 질박한 전원 서정시를 많이 썼다. 그는 '스코틀랜드방언 시집'(1786)을 출판하여 하루 아침에 일류 시인이 되어 에딘버러에 나가 일류문인들과 사귀게 되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15세의 소년이었던 윌터 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골뜨기 냄새가 났으나 경우에 어긋나는 면은 없었다. 눈이 아주 크고 검게 빛났는데 이야기할 때는 번쩍번쩍 빛나곤 했다.'   한평생 사랑한 스코틀랜드 서민생활의 감정을 번즈만큼 실감있게 표현한 시인은 없겠다.         워즈워드       뻐꾸기에게     오오 쾌활한 새 손님이여! 옛날 일찍이 들은 바 있는   그 소리 이제 듣고 나는 기뻐한다.   오오 뻐꾸기여! 너를 새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방황하는 소리라고 부를 것인가.   풀밭 위에 누워 듣고 있노라면   너의 두 갈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것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동시에 울려   언덕에서 언덕으로 건너가는 듯하다.   너는 골짜기를 향하여 햇빛과 꽃 이야기를   다만 재잘거리면서 말하고 있을 뿐이지만   내게 가져다 주는 것은   꿈 많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로다.   잘 와 주셨다 봄철의 귀염둥이여!   지금도 역시 너는 내게 있어서   새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하나의 신비로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 귀를 기울였던   그것과 같은 소리. 그 소리를 찾아서   나는 사방 팔방을 둘러 보았었지.   숲과 나무와 그리고 하늘을.   너를 찾느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숲과 풀밭을 헤매었었다.   너는 언제나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다.   언제나 그리움이었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네 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   들판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어느 덧 꿈 많고 행복스러웠던 소년 시절이   나에게 다시금 되돌아온다.   오오 행복스러운 새여!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대지가    다시금 멋진 꿈나라가 되고   네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되는 듯하구나.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__1850)는 영국 낭만주의의 중심적 시인이며, 그의 시집 Lyrical Ballads(초판1708, 개정판 1800)의 서문은 고전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선언으로 유명하다. 쉬운 언어로 감동을 전하려고 한 그에게는 자연을 솔직하게 노래한 작품이 많다. 무지개나 수선화나 뻐꾸기를 노래하고 순진한 어린이와 노래하는 아가씨 및 풍경 등 얼핏 생각하기에 감동의 대상이 되지 않을 듯한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느끼고 감동하는 것이다.   흔히 워즈워드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환상으로 바뀐 것으로 극히 인공적인 자연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원의 빛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짐을 따라   그대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마름해 버리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 때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     *나탈리 우드 주연의 '초원의 빛'이란 영화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시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겠다.         코울리지       쿠빌라이 칸     재너두에 쿠빌라이 칸은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거기에는 거룩한 강 알프가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동굴을 통하여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고 흘러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5마일의 두 배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는   성벽과 탑이 허리띠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굽이 쳐 흐르는 시냇물에 비쳐 반짝이는 정원도 있었으며,   향긋한 과일을 열매 맺는 나무들이 꽃피어 있었다.   숲은 언덕만큼이나 오래 묵었고   양지바른 녹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호!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초록 언덕을   비스듬히 기울어진 크나큰 신비를 지닌 대지의 균열이여!   황량한 곳이로다! 창백한 달빛 아래 요괴인 애인을 그리워하여 우는 여인이 출몰한 장소와도 같이   신성하면서 마력을 지닌 장소다!   마치 대지가 가쁜 숨을 쉬며 헐떡이듯이   이 틈새로부터 계속 소란스럽게 용솟음치면서   거대한 분수가 시시각각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빠르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분출의 한 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우박과 같이, 또는 도리깨를   맞고 흩어지는 곡식단의 낱알처럼   춤추듯 튀고 있는 바위 속에서 단번에 그리고 끊임없이   거룩한 강으로 물을 계속 흘러 내고 있었다.   마치 미로와 같이 구불구불한 5마일을   이 거룩한 강은 숲과 골짜기를 흘러서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동굴에 이르러   생명 없는 대양으로 소란하게 가라앉았다.   그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쿠빌라이 칸은   전쟁을 예언하는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다.   환락의 궁전 건물의 그림자는   물결 한가운데 떠서 흘렀고,   거기 솟아나는 샘물과 동굴로부터   뒤섞인 가락이 들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진귀스러운 취향의 기적이었다.   얼음의 동굴이 있는 햇빛 쨍쨍 비치는 환락의 궁전!   거문고를 든 아가씨를 나는 일찍이 환상에서 보았다.   그것은 이비시니아의 소녀였었다.   그 소녀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아보라 산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그 소녀의    음악과 노래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너무 크나큰 환희에 이끌려   드높고 기나긴 음악 소리를 듣고서   공중에 저 궁전을 건설할 것이리니   바로 그 햇빛 쨍쨍 비치는 궁전! 그 얼음 동굴!   음악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크게 외치리라, 주의하라! 주의하라!   그의 불타듯 번쩍이는 눈, 그의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의 주위를 세 차례 들고서   성스러운 두려움을 느끼며 눈을 감아라!   그는 꿀이슬을 먹었고   낙원의 밀크를 마시고 자라났느니라.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1772__1834)는 1798년 워즈워드와 더불어 공동 시집 '서정시집'을 출판하여 영국 낭만파의 기수로 떠올랐다.  당시로서는 과감하다 할 정도로 구어체 시어를 사용하였고 또한 시적 표현의 영역을 확대한 작품으로 현대 시인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시 '쿠빌라이 칸'은 코울리지의 꿈의 소산이다.   1797년 여름 어느날 코울리지는 엑스무어 변방에 있는 한 농장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은 뒤 사무엘 퍼차스 목사가 쓴 여행기를 읽게 되었는데 쿠빌라이 칸이 지었다는 어느 궁전 이야기에서 그만 잠에 떨어졌다.   쿠빌라이 칸이라면 마르코 폴로 덕분에 유럽에까지 유명해진 황제다.  코울리지의 꿈에 우연히 읽은 그 귀절들이 되살아나더니 복잡하게 뒤얽히기 시작하였다. 잠자던 시인이 일련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모두 말로 형상화된 이미지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고 난 시인은 자신이 틀림없이 3백여 귀절의 시를 썼거나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귀절들을 이상할만큼 기억할 수 있었고 또 몇 귀절은 실제작품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뜻밖의 방문객이 있어서 잠깐 붓을 놓았는데 그 나머지 부분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적잖이 당황하고 억울했던 것은 대략적인 이미지는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여덟 아홉 줄의 산만한 귀절 밖에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강물  표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이미지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정말 애석한 것은 그 마지막 귀절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코울리지의 술회다.   하여튼 이 작품을 두고 스윈번은 그렇게 기억해서 써낸 부분이 '영어 운율의 최상의 표현'이라 했으며, 키츠는 '메타포를 써서 그 부분을 분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지개를 따올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까지 말했다.         무어       늦게 핀 여름의 장미     오직 한 송이 피어남아 있는    늦게 핀 여름의 장미여,    아름다운 벗들은 모두 다   빛 바래어 떨어지고 이제는 없다.   붉고 수줍은 빛깔을 비추면서   서로 한숨을 나누고 있다.   벗이 되어 주는 꽃도 없고   옆에 봉오리진 장미조차 없다.   쓸쓸하게 줄기 위해서   시들고 말아서야 될 노릇이랴.   아름다운 벗들 모두 잠들었으매   가서 너도 그들과 함께 자거라.   그러기 위해 너의 잎을 잠자리에   나는 정성껏 뿌려 주리라.   너의 벗들이 향내조차 없이   누워 있는 그 근방에다.   네 뒤를 따라 나 또한 곧 가리니   벗들과의 사귐도 바래지고   빛나는 사랑의 귀한 굴레로부터   구슬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사라질 때   진실된 사람들 숨져 눕고   사랑하는 사람들 덧없이 사라질 때,   침울한 세상에 오직 혼자서   아아! 누가 길이 살 수 있으랴?     *무어(Thomas Moore:1779__1852)는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시인 바이런과의 친교는 '바이런 전기'로 발표되어 남아 있다.   그의 시집'Irish Melodies'는 아일랜드의 민요를 널리 모은 위대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쓸쓸하게 홀로 남아 피어 있는 아름다운 장미를 노래하면서 인생의 무상감을 노래한 것이다. 친구나 연인 등 육신의 사랑에 에워싸여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잠시 동안의 일로서, 인생의 황혼에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이별의 슬픔을 감상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아름다운 멜러디와 더불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유명한 가요이다.         바이런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대는 울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 다오.   그러나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은 슬프고 희망은 사라졌다.   가슴에 흐르는 피는 싸느랗게 바뀌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너만이   내가 잠든 곳에 서서 한숨을 쉬어 주리라.   그러나 나는 괴로움의 구름 사이를 누비며   한 줄기 평안의 빛이 빛나듯이 느껴진다.   그러면 슬픔은 잠시 사라지게 되나니   그대 마음이 날 위해 탄식해 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여, 네 눈물에 축복이 있으라.   울 수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그것은 부어진다.   좀처럼 눈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 눈물 방울이 가슴에 한껏 스미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도 지난 날에 따뜻했고   느낌 또한 네 마음처럼 부드러웠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조차도 나를 진정케 못하고   한숨짓기 위해서만 창조된 가련한 사나이다.   그런데도 내가 맥없이 있을 때 너는 눈물을 흘려주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다오.   하지만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셸리, 키츠와 더불어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바이런(George Gordon Byron:1788__1824)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었으나 우아한 얼굴 모습과 뛰어난 시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열렬한 사랑을 하였다.   남부 유럽과 근동을 여행하여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를 써서 혁신적인 정견을 발표하기도 했고, 질투와 일신상의 문제도 생기게 되자 런던 사교계는 바이런에 대해 차갑게 대했다.   결국 그는 1816년에 영국을 떠나게 되었고 그 뒤로 두 번 다시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걸작을 발표하였다.       서른 여섯 살이 되는 날에     청춘을 뉘우치면서 왜 생명을 오래 지니려는가?   여기는 영예로운 죽음을 이룰 수 있는 나라 이러니.   자, 어서 전선으로 달려가   생애를 끝맺음하도록 하라.   병사의 무덤을 구할지니   그것이 내게는 최상의 것이다.   구하지 않고 쓰러지는 사람도 많다.   둘러보고 적당한 땅을 찾아 휴식하도록 하라.     *바이런은 1823년에 그리스 독립 의용군에 참가하고, 다음 해에 열병 때문에 미솔롱기에서 다감한 생애를 바쳤다. 의용군은 바이런의 나이와 같은 36발의 예포로 이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바이런의 죽음으로 문학사상 낭만주의 시대는 끝나는데, 그는 이 시를 쓴지 5개월 뒤에 죽었다.         셸리     제인에게   별의 반짝임을 그지없이 해맑고   그런 속에 아름다운 달이 떠올랐다.   그리운 제인이여,   기타 소리는 계속 울렸으나   네가 노래하기까지는 그 가락조차도   즐겁지가 않았다.   달의 부드러운 달빛이   하늘의 흐릿하며 싸늘한 별빛에   던져지는 것처럼   그대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때 혼을 지니고 있지 않는 현에다   스스로의 혼을 주었다.   오늘밤 조금 후에   달은 잠들고 말겠지만   별들은 눈뜨고 있으리라.   네 노래의 가락이 기쁨의 이슬을   뿌리는 동안   나뭇잎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 울림소리는 나를 쳐부수지만   마음속 스며드는 네 그 목소리로   노래 한 곡 다시 한번 불러 달라.   우리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것   거기서는 음악과 햇빛과 감정이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겠지.   *셸리(Percy Bysshe Shelley:1792__1822)는 1811년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무신론의 옹호'라는 팜플렛을 간행하여 퇴학처분을 당했고, 그해에 열  여섯 살의 소녀 해리에트 웨스트브룩과 경솔한 결혼을 했다.   결국 그 결혼은 실패로 끝나고 말아 해리에트는 자살하고 셸리는  무신론자이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는 윌리엄 고드윈의 딸 마리와  재혼하게 되었다.   바이런과 친교를 맺어 함께 스위스에 머물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에 가 살며,  에스테, 베니스, 로마, 피사 등지를 오락가락하며 자유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는 스페티아 만에 위치한 레리치에 주거를 정하고, 레그혼에 사는 시인  리 헌트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애용하던 요트 에어리엘 호가 폭풍을  만나 전복하게 되어, 1822년 7월 8일 30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 시의 영감이 된 여성은 제인 윌리엄으로서 피사에서 알게 된 셸리의  친구이다. 사랑이라기보다 존경의 감이 짙은 감미로운 작품이다.     서풍의 노래   1   오, 거센 서풍--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네게서 죽음 잎사귀들은   마술사를 피하는 유령처럼 쫓기는구나.   누렇고, 검고, 창백하고, 또한 새빨간   질병에 고통받는 잎들을, 오 그대는   시꺼먼, 겨울의 침상으로 마구 몰아가,   날개 달린 씨앗을 싣고 가면, 그것들은   무덤 속 시체처럼 싸늘하게 누워 있다가   봄의 파란 동생이 꿈꾸는 대지 위에,   나팔을 크게 불어 향기로운 꽃봉오리를   풀 뜯는 양떼처럼 공중으로 휘몰아서   산과 들을 생기로 가득 차게 만든다.   거센 정신이여, 너는 어디서나 움직인다.   파괴자며 보존자여, 들어라, 오 들어라!   2   네가 흘러가면 험한 하늘의 소란 가운데   헐거운 구름은 하늘과 대양의 가지에서   대지의 썩은 잎처럼 흔들려 떨어진다.   비와 번개의 사자들, 네 가벼운 물결의   파란 표면 위에 어느 사납기 짝없는   미내드의 머리로부터 위로 나부끼는   빛나는 머리칼처럼, 지평선의 희미로운   가장자리에서 하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다가오는 폭풍우의 머리칼이 흩어진다.   너, 저무는 해의 만가여, 어둠의 이 밤   네가 증기의 모든 힘으로써 이룬   둥근 천정과 돔의 큰 무덤이 될 것이며,   짙은 대기를 뚫고 내리는 검은 비와   번개 우박이 쏟아져 내리리. 오, 들어라!   3   베이이 만 경석의 섬 가에서   수정 같은 조류의 손길로 잠이 들어   상상만 해도 감각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름다움 하늘색 이끼와 꽃들로 뒤덮인   옛날의 궁전과 높은 탑들이 파도에   더욱 반짝이는 햇빛 속에 떨고 있음을   꿈에 보고 있는 푸른 지중해 바다를   그의 여름 꿈에서 일깨운 너! 너의   앞길을 위해 대서양의 잔잔한 세력들은   갈라져 틈이 나고, 훨씬 아래에서는   바다꽃과 바다의 물기 없는 잎을 가진   습기에 찬 숲이 네 목소리를 알고서   겁에 질려 별안간 창백해지면서   온몸을 떨며 잎이 진다. 오, 들어라!   4   만일 내가 휘날리는 한 잎 낙엽이라면   만일 내가 한 점의 빠른 구름이라면   네 힘에 눌려, 충동을 같이 할 수 있고   한 이랑의 파도라면, 물론 너만큼   자유롭진 못하나, 억제할 수 없는 자,   만일 내가 내 어릴 적 시절과 같다면   하늘을 방랑하는 네 벗이 되었으련만   너의 하늘에서의 속력을 이겨 내는 것이   결코 공상만이 아닌 그 때 같기만 하면   나는 이렇듯 기도하며 겨루지 않았으리.   오, 나를 파도나 잎과 구름처럼 일으켜라.   나는 인생의 가시에 쓰러져 피 흘린다.   시간의 중압이 사슬로 묶고 굴복시켰다.   멋대로며, 빠르고, 거만하여 너 같은 나를.   5   나로 너의 거문고가 되게 하라, 저 숲처럼   내 잎새가 숲처럼 떨어진들 어떠랴!   너의 힘찬 조화의 난동이 우리에게서   슬프지만 달콤한 가락을 얻으리라.   너 거센 정신이여, 내 정신이 되어라!   네가 내가 되어라, 강렬한 자여!   내 꺼져 가는 사상을 온 우주에 몰아라.   새 생명을 재촉하는 시든 잎사귀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에 의하여   꺼지지 않는 화로의 재와 불꽃처럼   인류에게 내 말을 널리 퍼뜨려라.   내 입술을 통하여 잠깨지 않는 대지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즉,  '겨울이 오면 봄이 오나니!'라는 이 시의 끝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 시는 그 마지막 구절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명시이다.   이 시는 별로 어려운 대목이 없다. 그 대강 뜻을 각 장마다 나누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제 1장-- 땅에 부는 서풍, 즉 가을바람을 향해서 말한다.   제 2장-- 앞에서는 땅에 부는 서풍을 부른데 대하여 이번에는 하늘에 부는  서풍을 부르고 있다.   제 3장-- 바다에 부는 서풍을 향해 말한 것으로서 "베이이 만"은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에 이는 샛강이다.   작자는 1818년 그의 나이 26세 때부터 이탈리아에 살았는데, 이 시는  1820년에 피렌체에서 쓴 것이다. 즉, 이 장에서는 우선 베이이 샛강의 경석의  섬에서 본지중해의 바람 잔잔하고 잠든 듯한 정경을 말한 뒤 바람을 향해  말하고 있다.   제 4장-- 시인의 현재 상태를 말하고 왜 서풍더러 자기의 말을 들어  달라고 하는지 까닭을 말하고 있다.   제 5장-- 그런 서풍에 대해서 시인의 수원을 격렬하고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고 있다.   작자가 서풍을 향해서 인류사이에 살포해 달라고 하는 '나의 사상, 나의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이다'라는 것이며 '인간  해방'의 외침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구절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라고 하는 말은  단순하게 계절적으로 봄이 온다고 하는 뜻만은 아니다. 인류에게 있어서의 봄  즉 전인류가 자유로운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쳐서   내 가슴은 아프고, 잠을 청하는 마비가   나의 감각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마치 독약을 삼키고   또는 둔하게 만드는 아편을 찌꺼기까지 마셔 버리고   이윽고 망각의 강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네 행운을 시샘해서가 아니라   네 행복에 접하고 나는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날개조차 가볍게 날아다니는 너의 숲의 정령.   초록색 가지 편 너도밤나무 숲 그 짙은 녹음에서   울림도 아름답게 목청도 좋게 너는 여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아아!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싶구나.   깊이 파진 땅 속에서 여러 해 냉각되고   꽃내음과 전원의 초록과 댄스와 남국의 노래   그리고 햇빛 가득히 쬔 환락의 맛이 나는 술을.   아아! 그 잔에 따뜻한 남구의 멋진 술 넘치며   진실과 시의 붉은 샘물을 기리는 것이다.   잔 주둥이에까지 구슬진 방울이 떠돌고   마시는 입은 보라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 술을 마셔 사람 몰래 이 세상에서 떠나   너와 함께 어슴푸레한 숲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멀리 사라져서 녹고 말아 잊혀지고 싶다.   나무 잎새 사이에 사는 네가 결코 모르는 것   권태로움과 열병과 번뇌를 잊고 싶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앉아 탄식하기만 하고   중풍든 노인은 몇 개 안 남은 백발을 슬퍼하며   젊은이는 창백하게 유령처럼 야위어 죽는다. 생각하기만 하여도 슬픔과   헤어날 길 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서   미인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간직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랑은 내일을 지나서 그 눈동자를 그리워 할 수 없다.   가거라! 술, 바커스와 그 표범이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 시의 보이지 않는 날개를 타고   너 있는 곳으로 날아 가리라.   둔한 머리는 머뭇거리게 하고 더디게 했으나   이제는 이미 너와 함께 있다. 밤은 포근하고   여왕인 달도 그 자리에 앉고   별들이 시중을 들고 있나니.   그러나 여기에는 빛이 없다.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과 굽은 이끼낀 길에   산들바람 불 때 스미는 하늘에서의 빛이 있을 뿐.   밭 아래 피어 있는 것이 무슨 꽃인지 나는 모르고   나뭇가지에 어리는 향긋한 냄새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향기 찬 어두움에서 그 냄새를 짐작컨대   5월이 내린 떨기와 풀과 야성의 과일나무 냄새   하얀 아가위에 목장의 들장미   나무 그늘 아래 핀 생명 짧은 오랑캐 꽃   그리고 5월 중순의 맏이인   아직은 봉오리진 사향장미에다 여름철 저녁때   달콤한 꽃꿀이 이슬처럼 맺혀   붕붕거리는 날벌레들이 몰려온다.   어둠 속에서 나는 듣는다. 여러 차례에 걸쳐   편안스러운 "죽음"을 나는 거의 사랑하듯 바라고   수많은 명상시에 있는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고 공중에 고요히 숨을 거두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죽기에 행복스러운 듯하여   이 한밤에 고통 없이 죽고 싶어라.   그 사이에 너는 이렇듯이 황홀하게   영혼을 기울여 노래를 부르누나!   너는 계속해 노래하나, 나 이미 듣지 못하리--   네 숭고한 진혼가에 나는 싸늘한 흙이 되리니.   너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불멸의 새여! 굶주림과 고뇌의 시대가 너를   멸하게 하지는 못하리라.   깊어 가는 이 밤에 듣는 네 노래소리는   옛날에 황제도 또 농부도 들었다.   모름지기 같은 노래는 이국의 밭에서 고향 그리워   눈물 젖은 룻의 가슴을 에이게 했으리라.   같은 노래는 또한 때로 마술의 창문을 매혹하나니   "쓸쓸한" 신선 나라의 물결 출렁이는 거친 바다에   열려진 있는 그 창문을--   쓸쓸하다! 이 말이 종소리같이 울려서   너로부터 나에게로 되울려 부르고 있구나!   잘 가거라! 공상은 소문난 정도만큼 교묘하게   속이지 못하도다. 배반의 요정이여!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네 슬픈 노래 사라진다.   가까운 목장을 지나, 고요한 시내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 지금은 맞은편 골짜기 사이에   깊이 묻히고 말았나니   그것은 환상이었던가, 아니면 백일몽이었던가?   노래는 사라졌다-- 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   *키츠(John Keats:1795__1821)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셸리와 더불어 유명하다.   키츠는 런던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집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고, 의사가 되려 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작에 열중하게 되었다.   시인으로서는 야심작 '엔디미온'(1818)외에 뛰어난 Ode를 많이 남겼다.   예술 지상주의자였던 키츠는 철저한 미의 탐구자였다. 그리스 철인의  말처럼 '만물은 유전한다'는 이 세상에서 단 한가지 '유전'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바로 미인 것이며 그런 성격을 지닌 미이기에 'Beauty is truth'(Ode  on a Grecian Urn에서) 인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진실된 것으로서의  truth가 오직 하나의 가치인 beauty와 결부되는 곳에 키츠의 미에 대한  신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19년 7월에 'Annals of the Fine Arts'에 발표된 것으로서  각 연은 10행으로 되어 있다.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 소리에 이 세상의 슬픈 현실을 생각하고 환상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우수에 찬 노래도 '쓸쓸하다'는 한 마디  말로 문득 현실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노래는 사라졌다-- 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라는 구절로 끝맺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의 침잠을 동경하면서도 항상 현실과의 대결을 재촉받고 있는  인생이라 한다면 이 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사회적인 정세(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와 키츠 자신의  신변문제 등도 포함하여 이 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너는 더럽혀지지 않은 고요한 신부   너는 침묵과 기나긴 세월 속에 자란 양자   너는 숲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노래보다 묘하게   꽃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이렇듯 말해 전할 수 있나니--.   네 둘레에 감도는 것은 그 어떤 전설인가.   그것은 템페의 골짜기인가, 아니면 알카디아 언덕의   신들의 일인가, 사람들의 일인가, 또는 신과 사람의 일인가?   그것은 무슨 사람일까, 어떤 신일까, 도망치려 하는 것은 어떤 소녀일까?   그 얼마나 미친 듯한 구애인가, 또한 도망치려 하는 몸부림인가?   그 어떤 피리며 또 어떤 북인가? 그리고 얼마나 미친 듯한 환희인가?   귀에 들려오는 선율은 아름다우나, 이를 울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자, 네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가 불지 말고 좀더 친밀히   영혼을 향해 소리 없는 노래를 불러라.   나무 그늘에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여, 네 노래는   멈추어지는 일 없고, 이 나무들의 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여, 너는 결코 입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 가까이 닿긴 해도-- 하지만 슬퍼 말아라.  비록 크나큰 기쁨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 바래는 일 없으니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아아 너무나 행복한 나뭇가지들이여!   잎은 지는 일 없고, 봄에 이별을 고하는 일도 없다.   또한 행복한 연주자여, 그대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영원히 연주할지니   더욱 행복스러운 사랑이여! 너무나 행복한 사랑이여!   언제나 따스하고 영원히 즐거워라.   언제까지나 불타듯 추구하고 언제까지나 젊도다.   살아 있는 인간의 정열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여 가슴은 슬픔으로 넘치고   이마는 불타며 혀는 타올라 네 사랑에 미치는 것이 아닐지니.   이 희생 의식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오오! 신비로운 사제여, 비단과 같은 몸에다   화환을 장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우는 송아지를   어떤 초록빛 제단으로 데리고 가는가.   이 거룩한 아침,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남겨 두고 온 것은   강변의 어느 작은 마을이던가, 바닷가의 마을이던가?   조그마한 마을이여 네 거리는 영원히   조용해질 것이리라. 그리고 한 사람도   돌아와 황폐해진 까닭을 말하는 사람 없으리니.   오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모습이여!   대리석 남자와 여자가 조각되어 있고   숲의 나뭇가지와 짓밟힌 풀들도 그려져 있다.   너는 침묵의 모습, 영원히 시키는 것처럼   우리를 사고의 저쪽으로 몰아낸다. 차가운 목가!   늙음이 지금의 사람들을 멸하게 할 때   너는 인간의 친구가 되어   지금 고뇌와 다른 괴로움 속에 남아 인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세상에서 인간이 알고 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러니.   *ode란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한시의 '송'이나 '부'에 속한다. 특징으로는  부름의 형식을 취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지니며 시인의 주관적 색채가 짙다.   이 작품은 시인의 나이 24세 때인 1819년의 작품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대 항아리에 그려진 모양을 보고 지난날의 영화로운 그리스를 생각하면서,  예술작품으로서의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의문문과 감탄문을 많이 사용하면서  영탄조로 노래하여 마침내 미의 영원성과 절대성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항아리는 물론 그리스 문화의 소산이다. 이 항아리를 통해 "Beauty is  truth, truth beauty"라는 말까지 한 키츠의 시는 예술 지상주의적 빛깔이  짙고, 미의 탐구자로서 중세와 그리스의 먼 옛날의 세계를 동경하고 자유를  노래하고 혁명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유미주의자가 아니요  깊고 조용하게 인생을 관조하고 거기서부터 영원한 것을 동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   내 일찍이 황금의 영토를 끝없이 여행하였고   수많은 황홀한 나라와 왕국들을 보았었지.   시인들이 아폴로 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많은 서쪽 나라들도 돌아다녔고.   가끔 이마 훤한 호머가 다스렸던   한 넓은 땅 이야기도 들은 바 있었다.   그러나 채프먼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는   그 땅의 순수한 공기를 맛보지 못했으니.   비로소 나는 느꼈다-- 천체의 감지자가   시계 안에 새 유성이 헤엄침을 본 듯.   또는 용감한 코르테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에서   태평양을 응시하고, 그의 부하들은   온갖 억측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듯.   *그리스어를 해독하지 못했던 키츠가 채프먼이 영어로 번역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고서 그 감동을 노래한 시다.     클레어     마리   저녁 한 때   삼라만상이 고요하기 그지없고   초승달이 그 얼굴을   하늘과 더불어 강에 비춘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밀리면서도   등심초 나란히 줄지은 호수는 거울처럼 해맑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여,   거닐고 있는 나에게   한없이 즐거운 환상을 속삭이는 것이여,   이제 걸음을 멈추고 나와 더불어   이 고요한 때에 핀 아름다운 꽃을 꺾어   집에 가져 가자꾸나, 반짝이는 이슬도 떨치지 않으리.   마리, 네 착한 마음이여,   내일 밝은 해가 빛날 때에   네 까만 눈동자는 이 꽃을 보리니   내가 슬픔 속에서 모은 것   정처 없이 오직 혼자서 거니는 고요한 한때지만   너와 함께 거닐고 싶어라.   *존 클레어(John Clare:1793__1864)는 영국 중부에 위치한 노댐프톤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열의로 존은 다섯살 때 마을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2년 뒤에는  2마일 가량 떨어진 글링톤 교회 안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여 열 두살 될  때까지 다니게 되었다.   그때 그 학교 친구 가운데 마리 조이스라는 여학생이 있어 곧 친하게  되었다. 클레어는 그녀에게 플라토닉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었고, 그 감정은  일생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이다.   이 시는 바로 그 마리를 향한 사모의 마음을 노래한 소품이다.     테니슨     울려라, 힘찬 종이여     --'인 메머리엄'에서   울려라 힘찬 종이여, 거친 창공에   날아 가는 구름에, 싸늘한 빛에.   오늘 밤으로 이 해는 지나가 버린다.   울려라 힘찬 종이여, 이해를 가게 하여라.   낡은 것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 울려 맞이하라.   울려라 기쁜 종소리여, 흰눈 저 너머.   해는 이제 저무노니, 이 해를 울려 보내라.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을 울려 맞으라.   울려 보내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가슴에 번지는 이 슬픔을.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반목을 울려 보내고   만민의 구제를 울려 맞아라.   울려 보내라, 이윽고 사라질 주장을   당파의 나쁜 습성인 그 다툼을   울려 맞아라, 보다 드높은 삶의 방법을   보다 아름다운 예절, 보다 깨끗한 도덕을 지켜라.   울려 보내라, 이 세상의 결핍과 고뇌와 죄악을   그리고 싸늘한 불신의 마음을.   울려라 울려 퍼져라, 내 애도의 노래를.   울려 맞아라, 보다 교묘한 노래를.   울려 보내라, 좋은 가문과 지나친 신념을.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의 중상과 모략을.   울려 맞아라, 진실과 정의의 사랑을.   울려 맞아라, 한없이 선한 사랑을.   울려 보내라, 세상에 있는 고질병 전부를.   울려 보내라, 마음에 꽉 찬 황금의 욕망을.   울려 보내라, 지나간 수천 차례의 전쟁을.   울려 맞아라, 영원한 평화를.   울려 맞이하라, 용기와 자유의 사람   보다 관대한 마음과 보다 자비 넘치는 손을.   이 나라의 어두움을 울려 보내라.   울려라,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비가 '인 메머리엄' 은 1850년에 발표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__92)의 시집이다.  테니슨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시절에 친구 아더 핼럼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수재로서 테니슨의 누이동생 에밀리아와 약혼했으나 1833년에  급사하였다. 그 죽음은 테니슨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이어서 그는  인생무상을 느껴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궁핍속에서 10년 동안 그는 괴로움에 빠져 있었으나 이윽고 시작도 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한때 심했던 정신적 불안도 안정을 찾아서 친구 핼럼의  죽음을 애도하여 '인 메머리엄'을 노래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나오던 해에  테니슨은 워즈워드의 뒤를 이어 계관 시인이 되었고 1884년에  빅토리아여왕은 그에게의 칭호 Lord를 내렸다.   이 작품은 영문학사상 유명한 elegy(비가)로서, 밀턴의 Lycidas, 셸리의  Adonais, 그레이의 Elegy와 더불어 4대 비가로 일컬어진다.     모랫벌을 건너며   해는 지고 저녁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내 멀리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랫벌아, 구슬피 울지 말아라.   끝없는 바다로부터 왔던 이 몸이   다시금 고향 향해 돌아갈 때에   움직여도 잔잔해서 거품이 없는   잠든 듯한 밀물이 되어 다오.   황혼에 울리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찾아드는 어두움이여!   내가 배에 올라탈 때   이별의 슬픔도 없게 해 다오   이 세상의 경계선인 때와 장소를 넘어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간다 하여도   나는 바라노라, 모랫벌을 건넌 뒤에   길잡이를 만나서 마주 보게 되기를.   *워즈워드를 뒤이어 42년 동안 계관 시인의 자리에 있었고, 1884년에는  남작의 지위를 얻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84세의 나이로 죽은 테니슨이 죽음을  앞둔 때 지은 작품이다.     E.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헤아려 보죠.   비록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 이를 수 있는   그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사랑합니다.   태양 밑에서나 또는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부름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엘리자베드 브라우닝(Elizabeth Browning:1806__61)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부인이다. 조숙한 천재로서 여덟살 때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그리스 원어로 읽었고, 14세 때 서사시 '마라톤의 전쟁'을 써서 인쇄하였다.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그 당시 아직 무명 시인에 지나지 않았던 로버트와  서신 연락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청혼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이탈리아로 가서 결혼생활을 했다.  로제티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다.     브라우닝     밀회   회색 바다, 한없이 캄캄한 언덕,   금방 지려 하는 크고 노란 반달.   잔 물결은 잠에서 깨어나   둥근 고리 이루며 불꽃처럼 흩어진다.   나는 조각배를 몰아 샛강을 흘러서   물에 젖은 갯벌에서 배를 멈춘다.   바다 향기 그윽한 따스한 갯벌을 지나고   들판을 세 번 건너 농가에 이른다.   가벼이 창을 두드리면, 이어 성냥 켜는 소리.   타오르는 파란 불꽃.   목소리는 두 사람의 심장 합친 소리보다 낮고   기쁨과 두려움으로 마냥 설레이는구나.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__89)은 독학에 의해 역사와 고금의  문학을 탐구한 주지적인 시인이었다. 그는 이상한 신텍스와 풍부한 어휘로써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밀회의 상대는 뒷날 아내가 된 엘리자베드이다.  엘리자베드의 부친은 그들의 결혼을 적극 반대하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자기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밤에 한 사나이가 배를 타고 들을  건너서 연인을 찾아가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기에 마음 태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평생의 사랑   우리 둘이 살고 있는 집   방에서 방으로   나는 그녀를 찾아 샅샅이 둘러본다.   내 마음아 불안해 마라, 이제 곧 찾게 된다.   이번엔 찾았다! 하지만 커튼에 남겨진   그녀의 고뇌, 잠자리에 감도는 향수 내음!   그녀의 손이 닿은 벽의 장식 꽃송이는 향기 뿜고   저 거울은 그녀의 매무새 비치며 밝게 빛난다.   *'밀회'나 마찬가지로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두 사람의 관계와 고뇌를  날카롭게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연인이며 아내인 상대자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말아  사나이는 애타게 그녀를 찾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놀드     마거리트에게   그렇다, 삶의 바다 속에서 섬이 되어 서로의 사이에는 물결치는 소리  들리는 해협이 있고   기슭 없는 물의 황야에 점점이 위치하여   우리들 무수한 인간은 고독하게 산다.   섬들은 각기 에워싼 물의 흐름을 느끼고   더욱이 끝없이 넓은 세계를 느낀다.   그러나 달이 그들의 골짜기를 비추고   화사한 봄바람이 그 위를 불어 지나가   별이 반짝이는 밤에 섬의 골짜기에서   밤새가 소리 높이 노래하여   그 아름다운 가락이 기슭에서 기슭으로   해협을 건너 물목을 건너서 울려퍼지면   아아, 그 때 절망과도 비슷한 동경이   머나먼 동굴에까지 이르게 된다.   왜냐면 확실히 그들 역시 자기네가 일찍이   오직 하나의 대륙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네 주위에는 대양이 펼쳐져 있다--   아아, 우리의 기슭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그들의 갈망의 불꽃이   타오르고서 즉시 꺼져 싸느다랗게 만든 것은   누가 그들의 깊은 바람을 공허하게 하는가.   또한 하나하나의 기슭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소금을 지녀 사이를 가르는 바다를 놓도록 지시하라.   *아놀드(Matthew Arnold:1822__88)는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를  역임하며 영국 문단을 이끈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이 시는 인간의 고독과 그 마음에 솟아오르는 우애에 희망을 걸면서, 신에  의해 단절된 굴레를 탄식하는 작품이다. 이 시인의 또 다른 대표작 Cover  Beach('도버 해변')와 마찬가지로 이 시인 특유의 부드러운 정감이 넘쳐  있다.     로제티     생일날   내 마음은   파릇한 나무가지에 둥지 짓고 노래하는 새와 같다.   내 마음은 가지가 휘 듯 열매 달린 사과나무와 같다.   내 마음은   잔잔한 바다에서 놀고 있는 보라빛 조개 같다.   내 마음이   그보다 더 설레임은 그이가 오기 때문이다.   날 위해 명주와 솜털의 단을 세우고   그 단의 모피와 자주색 옷을 걸쳐 다오.   거기에다 비둘기와 석류   백개의 눈을 가진 공작을 조각하고   금빛 은빛 포도송이와   잎과 백합화를 수놓아 다오   내 생애의 생일날이 왔고   내 사랑하는 이가 내게 왔으니.   *로제티(Christina Georgia Rossetti:1830__94)는 런던에서 태어나 병약한  몸으로 노모를 돌보면서 은둔자처럼 고요하게 살았다. 그러나 단테 로제티의  누이동생이며 종교적인 깊은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여 엘리자베드  브라우닝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앵글로 가톨릭의  열렬한 신도였던 로제티는 그 고독한 명상을 끊임없이 죽음의 감미로운  생각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미 열두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조숙성과 미끈한 시의  리듬은 음악적인 이탈리아어의 영향에 의한 것이리라. 기질도 솔직했던  듯하다. 사랑을 하고 있는 여성의 기쁨을 노래한 이 시가 그것을 증명한다.     노래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셔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셔요.   내 위에 푸른 잔디를 퍼지게 하여   비와 이슬에 젖게 해 주셔요.   그리고 마음이 내키시면 기억해 주셔요.   아니, 잊으셔도 좋습니다.   나는 사물의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리다.   슬픔에 잠긴 양 계속해서 울고 있는   나이팅게일의 울음 소리도 듣지 못하리다.   날이 새거나 날이 저무는 일 없는   희미한 어두움 속에서 꿈꾸며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겠지요.   아니, 잊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두 차례에 걸친 불행한 사랑을 경험한 뒤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은자와 같은 생활을 보냈다. 그녀는 신비스런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계속 병상에 누워 있던 것과 언니인 프란체스카가 수녀가 된 사실도 그녀가  세속을 피하게 된 이유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말은 이 세상 저쪽에  존재해 있는 것에 사용하는 말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만년에 암의 수술을 받아 잠시 건강을 되찾았으나, 어느날 기도 드리는  도중에 숨졌다고 한다.     브리지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네, 모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찾으며 또한 숭배하느니   신인들 그보다 더 찬미할 게 무엇이랴.   사람은 그 바쁜 나날 속에서도   아름다움으로 해서 영예로운 것.   나 또한 무엇인가를 창조하여   아름다움의 창조를 즐기려 하느니   그 아름다움이 비록 내일 오게 되어   잠을 깬 뒤에 기억에만 남아 있는   한낱 꿈 속의 빈 말 같다고 해도.   *1913년 이래로 계관 시인이었던 브리지스(Robert Bridges:1844__1930)는  새로운 고전주의를 제창하여 운율과 언어와 철자 등의 실험을 줄곧  시도하였다. 그 실천 가운데 한 결과가 철학적 장시 '미의 유언'이다.     스티븐슨     진혼곡   별빛 아름다운 넓은 하늘 아래   무덤 파고 거기에 나를 눕혀 다오.   즐겁게 살았고 또 즐겁게 죽으니   즐거이 또한 이 몸 눕노라.   묘비에 새길 싯구는 이렇게 써 다오.   오래 바라던 곳에 그는 누워 있느니   바다에 갔던 뱃사람 집으로 돌아오다.   산으로 갔던 사냥꾼 집으로 돌아오다.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등 소설가로 유명한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onson:1850__94)의 시. 이것은 시인이 죽는 날 이런 심정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이리라.     하우스먼     팔리지 않는 꽃   나는 땅을 갈아 도랑을 파고 잡초를 뽑고   그리고 활짝 핀 꽃을 시장에 가져갔다.   그러나 아무도 사는 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지만   그 빛깔 너무 찬란하여 몸에 치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꽃씨를 뿌렸나니   내가 죽어 그 아래 묻히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혀지고 말았을 때   나와 같은 젊은이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씨앗은 새가 쪼아 먹었고   어떤 것은 계절의 매움에 상처받았으나   그래도 이윽고 여기저기에   고독한 별들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잎을 지닌 봄이 올 때마다   매해 빠짐없이 꽃을 보여 줄 것이며   그리고 내가 죽어 이미 사라지고 만 뒤에   불행한 젊은이가 몸에 장식할 수 있게 되리라.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1860__1936)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고전학자로 전문적인 업적도 많은 20세기의 대표적인 학자시인이다.  그의 시는 고전적인 간결한 표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브론테     추억   흙 속은 차갑고, 네 위에는 깊은 눈이 쌓여 있다.   저 먼 곳 쓸쓸한 무덤 속에 차갑게 묻힌 그대   하나뿐인 사람아,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의 물결로   떼어져 나는 사랑을 잊고 만 것일까?   홀로 남게 된 내 생각은   산봉우리들을 날고, 앙고라의 기슭을 방황한다.   지금 날개 접고 쉬는 곳은 히드풀과 양치기 잎이   네 고고한 마음을 항시 덮고 있는 근방이다.   흙 속은 차가운데 열 다섯 차례의 어두운 섣달이   이 갈색 언덕에서 어느새 봄날의 물이 되었다.   변모와 고뇌의 세월을 겪어 왔으나   아직 잊지 못할 마음은 너를 배반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그리운 사람아, 혹시 세파에 시달려   너를 잊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거센 욕망과 어두운 소망이 나를 괴롭히나   그 소망은 너 생각하는 마음을 해치지는 않았다.   너 말고 달리 내 하늘에 빛나는 태양은 없었다.   나를 비추는 별도 역시 달리 없었다.   내 생애의 행복은 모두 네 생명에서 비롯되었고   그 행복은 너와 함께 무덤에 깊이 묻혀 있다.   그러나 황금의 꿈꾸던 나날은 사라지고   절망조차 힘이 빠져 파괴력을 잃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기쁨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이루고 강해지고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정열의 눈물을 억제하고   네 영혼을 사모하는 내 어린 영혼을 일깨워   나와는 관계 없는 무덤에   서둘러 가려 하는 열망을 호되게 물리쳤다.   때문에 지금 내 영혼을 시들게 하려 하지 않고   추억의 달콤한 아픔에 잠기려 하지 않는다.   깨끗한 고뇌의 잔을 모두 마신 지금에   왜 다시 헛된 세계의 일을 추구하리오.   *소설 '폭풍의 언덕'의 작자인 브론테(Emily Jans Bronte:1818__48)는  무척 격정적이고 정열적인 시인이었다.   브론테의 세자매(나이 순으로 샤롯트, 에밀리, 앤)는 서로 협력하여 자비로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그런데 그 작자는 세 명의 남자 이름으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무도 천재적인 이 세자매가 간행한 시집이라는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다.   브론테의 집 어린이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일찍 요절하는 데, 에밀리도  결핵에 걸려 30세의 나이로 죽는다.   언니인 샤롯트에 의하면 '남자보다 강했고, 어린이보다 단순했다'고 한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왕진을 받을 때도 반드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 의사를 맞이했다고 한다.   불타는 듯한 열정이 있는 한편 이런 금욕적인 결벽성의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추억'과 같은 시가 창작되었을 것이다.     스윈번     걸음마   아장아장 걸음마, 아름다운 꽃 활짝 핀   5월의 들길보다 부드럽고 예쁘게   우리 아기 걸음마는 비틀거린다.   아장아장 걸음마   새벽 하늘 같은 맑은 눈으로   엄마의 눈만 향해 마주 바라보며   노래하듯 즐거워.   황금빛 봄날을 반기듯 즐거운 얼굴   그 첫날의 한 토막 놀이런가.   사랑과 웃음으로 귀여운 다리 끌며   아장아장 걸음마.   *스윈번(Algermon Charles Swinburne:1837__1909)의 시세계는 테니슨과  마찬가지로 기교파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대상이든 음악으로 만들고 마는 한  줄기 갈대피리'라고 테니슨이 그를 평한 바와 같이 그의 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아름다운 리듬이 흐르고 그 서정성이 그의 문체에 풍부하게 넘치고  있다.     홉킨즈     평화   평화, 너 낯선 산비둘기여, 너 언제나 그 놀라기 잘하는 날개 접어   이 이상 더 내 주위를 방황 말고, 내 나무 그늘에 쉬려는가?   평화여, 언제나 너는 평화로우려나? 나는 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위선자가  되지는 않으련다.   어느 때든지 네가 오기를 기다리마.   그러나 겉치레한 평화는 어리석은 것. 어느 순수로운 평화가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을 굴복시키고, 전쟁의 끝장을 가져 오려나?   오오, 내 주는 정녕 평화를 빼앗는 대신   얼마간 보류하는 것-- 훗날 평화를 자랑하기 위해   주는 심한 인내를 점지하신다. 그리하여 평화가 여기   자리잡을 때, 주는 일거리를 가지고 온다.   소근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내려와 앉아 생각에 잠긴다.   *목사였던 홉킨즈(Gerard Manley Hopkins:1844__89)의 시는 생전에 전혀  이해되지 못했다. 현대 영국시는 그에게서 비롯된다고 했지만 그 당시 그의  새로운 리듬과 신선하고 개성적인 언어는 이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시에는 인류 평화에 대한 염원이 짙게 배어 있다.     시먼즈     사랑한 뒤에   이제 헤어지다니, 이제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다니.   영원히 끝나다니, 나와 그대,   기쁨을 가지고, 또 슬픔을 지니고,   인제 우리 서로 사랑해서 안 된다면   만남은 너무나, 너무나도 괴로운 일,   지금까지는 만남이 즐거움이었으나   그 즐거움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리 사랑 인제 모두 끝났으면   만사를 끝내자, 아주 끝내자.   나, 지금까지 그대의 애인이었으면   새삼 친구로 굽힐 수야 없지 않는가.   *시먼즈(Arthur Symons:1865__1945)는 영국에서의 상징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에 의하면 참다운 문학정서는 인생의 윤리도덕과  관계없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순수하게 예술을 주장하였고 감각적이며  순간적인 착상이야말로 귀중한 것이라 하였다. 시집으로 '런던 밤  경치'(1895)가 있다.     다우슨     시나라   --지금의 나는 사랑스러운 시나라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아니다.   지난 밤, 아 어젯밤에 그녀와의 입술 사이에   시나라여! 그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그대 숨결이 입술 사이와 내 영혼에 내려왔었지.   하여 나는 쓸쓸해지며, 옛 사랑이 괴로와서   그래, 나는 쓸쓸해져 머리 숙였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내 가슴 위에서 밤새껏 그녀의 가슴은 고동쳤고,   내 품 안에 밤새껏 그녀는 누워 있었느니라.   돈으로 산 그녀의 키스는 정녕 달콤했었으나   그래도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괴로웠다.   내가 잠 깨어 먼 동이 트는 것을 볼 무렵.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나는 잊었다, 시나라!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백합을 기억에서 지우려 춤추며   남 따라 야단스러이 장미를, 장미꽃을 던졌으나   그래도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래, 춤에 빠져서 나는 마냥 고민했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나는 자극스런 음악과 독한 술을 원했으나   향연이 끝나고 램프가 꺼지면   그대 그림자 진다, 시나라여! 밤은 그대의 것.   하여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괴로워서   그래, 내 연인의 입술을 갈망했었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다우슨(Ernest Dowson:1867__1900)은 20세기에 들어서는 해에 서른 두  살로 죽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시인 클럽'에 가입했으나, 그 무렵  종교적인 구원을 추구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레스토랑의 아가씨에게 사랑을 원했으나 실연을 당했다.   다우슨은 더욱더 술과 방탕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도 가까스로 시를 쓰는  일만은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세기말의 절창 '시나라'가 창작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는 달콤한 센티멘탈과 관능의 소용돌이밖에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나라'는 동시에 기품이 넘치고 있고, 겨우  20여행 밖에 안되는 시속에서 시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이 시에서 따온 것이 M. 미첼의 그 유명한 소설 제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예이츠     이니스프리 호수섬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라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도, 회색 포장길에 선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이 시는 예이츠의 서정시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서  1890년에 창작되어 'The Countes Kathleen and Various Legends and  Lyics'(1892)에 발표된 것이다.   시인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슬라이고우(Sligo)지방의 경치가 깊이 시인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시로 이니스프리 호수섬이 있는 고향이 대도회지  런던의 현대적인 생활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시인의 마음을 받쳐 주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언어의 사용 방법이 아주 교묘하고 또한 주의 깊으며, 작자의 심리상태를  묘사해낸 리드미컬한 시이다.     쿨 호수의 백조   나무들은 아름답게 가을 단장을 하고   숲 사이의 오솔길은 메마른데   10월의 황혼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춘다.   바위 사이로 치런히 넘치는 물 위에   떠노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   내가 처음 세어 보았을 때로부터   열 아홉 번째 가을이 찾아왔구나.   그 때는 내가 미쳐 다 세기도 전에   모두들 갑자기 치솟아 올라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날개 소리도 요란히 흩어졌던 것을.   저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노라면,   내 가슴은 쓰라려진다.   모든 것은 변해 버렸나니   맨 처음 이 기슭에서 황혼에   머리 위에 요란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걸은 그 날 뒤로,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자기 짝끼리   그것들은 차가운 정든 물결을   헤엄치거나 공중을 날아가나니   그들의 마음은 늙지 않았다.   어디를 헤맨든지 그들에게는   정열과 패기가 항상 따른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고요히 물 위를 떠간다.   신비롭게, 또 아름답게   어느 동심초 사이에 둥우리를 짓고   어느 호숫가 또는 물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내 언제 잠깨어 그들이 날아가 버렸음을 깨달을 때.   *이 시는 1916년에 창작되어 'Little Review'(June, 1917)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__1939)는 더블린에서 태어나 에이레  문예부흥에 적극 힘썼다. 192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 최고의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조이스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 보라   너를 사랑하는 자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으면   사나이는 슬픔을 지니게 마련이다.   사나이는 그때 알게 마련이니   친구들에게 성실함은 없고   약간의 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은 헛되다는 사실을   하지만 한 사람이 살며시   사나이에게 가까이 다가와   정겹게 그의 마음을 구하나니   온갖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면서   사나이의 손은 더듬게 되나니   그녀의 부드럽고 포근한 가슴을   이리하여 슬픔에 잠겼던 사나이도   마음의 평안을 얻게 마련이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1882__1941)라고 하면 '율리시즈'라든지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의 소설, 특히 거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식의 흐름'의  수법을 사용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조이스의 문학자로서의 출발은 1907년에 출판된 '실내악(Chamber  Music)'이라는 작은 시집이었다. 16세기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의 가요를  모방한 듯한 수법으로써 소박하고 감미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된 36편의  서정시를 모은 것으로서 발표 당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노래   아아, 도니카아니 근방에 갔을 그때   박쥐가 나무에서 나무를 날아다닐 무렵   사랑하는 이와 나는 거닐었나니   그녀의 말은 사랑에 겨웠다.   여름날의 바람은 우리들과 함께   속삭이며 지나갔다--무척이나 즐겁게!   그러나 여름날의 산들바람보다도   그녀가 준 입맞춤이 부드러웠다.   *시집 '실내악'에 수록되어 있다.   행복에 겨운 추억이 산뜻하게 노래되고 있다.     스티븐즈     꽃이 핀 숲   꽃이 핀 숲속으로 갔나니   다른 사람과 함께 간 것이 아니라.   여러 시간 혼자서 거기 있었다.   그렇듯 행복했던 일이 있었으랴   꽃이 핀 숲속에서.   대지에는 초록색 풀   나무에는 초록색 잎   바람은 소리를 내면서   명랑하게 지껄이고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   무척이나 행복스러웠다.   꽃이 핀 숲속에서.   *시는 뜻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요 느껴야 하는 것임을 이 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시는 중간에 자연묘사를 두고 그 앞뒤가 상징화되어 있어 대자연과 꿈의  균형이 미묘하고도 아름답게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 그림처럼 이상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브룩     노래   부는 바람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   당산사나무는 초록빛 싹에 힘을 얻고   내 가슴에는 괴로움의 싹이 움튼다.   겨우내 내 가슴은 기운을 잃고 병들었고   대지 또한 죽은 듯이 얼어 있었기에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봄이 오리라고는   내 가슴이 자리에서 일어나리라고는.   하지만 겨울은 끝나 대지는 눈뜨고   새들은 다시금 왁자지껄 지저귄다.   당산사나무 생울타리는 움트고   내 가슴에는 괴로움의 싹이 움튼다.   *브룩(Rupert Brooke:1887__1915)은 학생 시대부터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소질이 인정되어 크게 기대를 받았으나, 세계 제 1차 대전 때 전쟁에서  부상당하여 요절하였다.     D. H 로렌스     봄날 아침   아아, 열려진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먼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보라빛과 청색 사이   하늘과 꽃 사이에   참새 한 마리가 날개치고 있다.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제는 정말 봄! --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나?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 쓰지 말지나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 --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 생각한다--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그 얼마나 호화로운가.   *D. H 로렌스란 이름을 들으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아들과 연인'의  소설을 연상하면서, 제임즈 조이스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우선 소설가로 서의  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시를 써서, 최초의 소설 '흰 공작' (The White  Peacock, 1911년)을 간행한지 2년 뒤에 시집 '사랑의 시기타'(Love Poems  and Others, 1913년)를 간행하였다.   그 뒤에도 소설과 평론 등 산문에 의한 작업을 하는 한편 계속해서 시를  썼고, 중요한 시집만도 여러 권을 출판하였다.   이 '봄날 아침'은 1917년에 간행된 '보라,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Look! We Have Come Through!)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전 해에 영국 남서쪽 끝인 콘웰에서 쓴 작품이다.     메이스필드     그리운 바다   내 다시 바다로 가리,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가리.   큼직한 배 한 척과 지향할 별 한 떨기 있으면 그뿐,   박차고 가는 바퀴, 바람의 노래,   흔들리는 흰 돛대와   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트는 새벽이면 그뿐이니.   내 다시 바다로 가리, 달리는 물결이 날 부르는 소리   거역하지 못할 거칠고 맑은 부름 소리 내게 들리고   흰 구름 나부끼며 바람 부는 하루와 흩날리는 눈보라   휘날리는 거품과 울어대는 갈매기 있으면 그뿐이니.   내 다시 바다로 가리, 정처 없는 집시처럼.   바람 새파란 칼날 같은 갈매기와 고래의 길로   쾌활하게 웃어대는 친구의 즐거운 끝없는 이야기와   지루함이 다한 뒤의 조용한 잠과 아름다운 꿈만 있으면 그뿐이니.   *시집 '바다 조수의 민요(Sat--Water Ballads)'속에 수록되어 있는  걸작으로서 1930년에 브리지스의 뒤를 이어 계관 시인이 된 메이스필드(John  Masefield:1878__1967)의 시 가운데서 가장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바다의 풍경, 조수 냄새, 선원의 생활이 생생하게 노래되고 있다.   시사에 이른바 이미지즘의 사란 것이 있다. '음악보다 조각에 귀보다 눈에  호소하는 시'를 주장했는데, 이 시는 바로 그런 작품 가운데 한 대표작이다.     흄     부두 위   한밤중 고요한 부두 위   밧줄 드리운 높은 돛대 끝에   달리 걸렸고, 그렇게 먼 것은   놀다 잊은 어린아이의 풍선뿐이다.     가을   가을 밤의 싸늘한 감촉--   나는 밖으로 나갔다.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 보고 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로   사방의 별들은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기어 있었다.   *이미지즘 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자신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흄(Thomas Ernest Hulme:1883__1917)이 남긴 시험작 5편 가운데서 뽑은  두 편이다. 아무 기이한 면이 없는 듯하지만 정서적인 표현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미지만을 포착하고 있다.     T. S 엘리어트      황무지1)   정말 쿠마에서 나는 한 무녀가 항아리 속에 달려 있는 것을   똑똑히 내 눈으로 보았다. 애들이, '무녀야, 넌 무얼 원하니?'   물었을 때, 무녀는 대답했다. '난 죽고 싶어.'2)   *전쟁은 살인과 파괴에 의해 외부 세계를 황폐하게 하듯이 인간의 내부  세계에도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이 내부의 전쟁체험에 의해 비로소 전쟁의  황폐의 의미와 평화의 가면과 참다운 평화의 의미를 헤아릴 수가 있다.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1888__1965)의 '황무지'는 제 1차 세계  대전 후의 유럽의 황폐를 유럽 사람의 정신적인 황폐에 의해서 조명하려 하는  강렬한 이미지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자의 시체에서 어떤 문명의 싹이 트기 시작하고 어떤 꽃이 뭘  것인지는 유럽 문명의 과거의 전통을 지켜 보고 절망하면서 움직이는  인간들의 회화나 유희 또는 비지니스나 전설 그리고 미신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엘리어트는 이 '황무지'안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엘리어트는 20세기 전반의 영, 미시의 방향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든 시인,  극작가, 비평가이다. 미국 미주리 주의 센트루이스에서 태어나 하버드,  소르본느, 옥스퍼드 등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학생 시대부터 전통적인 시를 썼으나 아더 시먼즈의 '문학에서의 상징주의  운동'(1892)을 읽고, 프랑스의 상징과 시인들, 특히 베를렌, 라포르그,  콜비에르 등을 알게 되었고, 또한 단테, 보들레르, 단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때까지의 취향을 뒤집는 듯한 혁신적인 시를 발표하게 되었다.   1911년에 'J. 알프레드 프루프로그의 연가'로 충격적인 등장을 한 이래로  계속 제일선에 서서, 그의 발언은 끊임없는 문제를 던지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드 교회가 힘을 지니는 이상사회를 꿈꾸면서  '황무지'(1922)에서 현대의 지옥을 펼쳐 보였다.   런던에 정주하면서 작업을 해온 이 미국의 시인은 1928년에 영국에  귀화하여 '종교에 있어서는 영국국교회, 정치에 있어서는 왕당파, 문학에  있어서는 고전파'라는 유명한 선언을 피력하였다. 우리는 그의 시를 가리켜  주지시란 말로 표현한다.   *역주 1)이 시의 제목뿐만 아니라 설계와 많은 부수적인 상징은 성배전설에  관한 제시 L. 웨스튼 여사의 저서 "제식으로부터 기사 이야기로(From Ritual  To Romance)"(케임브리지 대학출판부 1920)에 의해 시사되었다 정말  너무나 깊이 나는 힘입었으며, 웨스튼 여사의 저서는 이 시의 난해를 나의  주보다 훨씬 더 잘 해명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저서를(저서 그 자체의  큰 흥미는 별도로 하고) 그러한 시의 해명을 수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는 인류학의 또하나의 저서, 즉 우리들의 세대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저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 전반적으로  힘입었다. 나는 특히 '아도니스, 아티스, 오시리스'의 두 권을 사용했다. 이  저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시 속에 식물제에의 약간의 언급들을  즉시 알아차릴 것이다.--(엘리어트)   웨스튼 여사의 저서는 성배전설의 기원과 변천을 다루면서 옛날의  풍요제식(Fertility ritual)이 그리스도교화하여 기사들의 성배탐색 이야기로  발전했음을 말해준다. 이 전설에 의하면 어부와의 성적 불능으로 인해 국토에  불모의 저주가 내려 비는 오지 않고, 강은 마르고 식물은 시들고 동물은  생식을 그친다. 이 저주는 왕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제거될 수 없고 왕과  나라를 구하려면 마음이 순결한 기사가 육체와 정신의 위협을 무릅쓰고  성배(최후의 만찬 때 쓰였고 후에 십자가에서 예수가 창에 찔려 흘린 피를  받았다고 하는 잔)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한 기사가 성배를 찾으러  황무지의 한 복판에 있는 성배성에서 그의 용기와 순결에 대한 가장  무시무시한 테스트를 받는다. 이것에 성공하면 성배를 찾을 수 있고 성배의  힘으로 어부왕을 낫게 하고 국토에 풍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 풍요제식과  후기의 성배전설의 중심적 의미는 새로운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엘리어트가 이 시에서 현대세계를 정신적으로 메마르고 불모인  선악의 지식을 잃고 그들의 삶이 일종의 죽음인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황무지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이 에피그라프는 로마 네로 황제 때의 궁정시인이었던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의 풍자중 가장 중요한 에피소우드인 48장 '트리말키오의  향연'에서의 인용. 이 향연을 베푼 벼락부자 트라말키오가 손님 아가멤논에게  한 이야기. 쿠마에의 무녀는 젊었을 때 아폴로신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힘을  얻었다. 또한 주먹 안에 있는 모래알 '"황무지" 30행'만큼 오랜 생명을  얻었으나 어리석게도 영원한 청춘을 요구하길 잊었다. 그 결과 그녀는 늙어  몸이 오므라들어 작은 항아리 속에 넣어져 이곳저곳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다.  동네 소년들이 '무녀야, 너 뭘 원하니?'하고 조롱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죽고 싶어'--이런 상태에 있기 보다 오히려 죽어 재생을 바라는  염원에서.   여기서 '쿠마에'는 이탈리아 캄파티아주의 고대도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그리스식민지로 나폴리 서쪽 12마일의 고대항구. 무녀로 유명했던 곳.   3)단테의 연옥편 XXVI. 27행에서 인용. 기도 기니첼리가 프로방스 시인인  아르노 다니엘을 가리키며 쓴 말을 엘리어트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감사하며  쓴 것. 왜냐하면 1921년 엘리어트가 건강이 나빠졌을 때 파운드가 모금하여  그를 스위스에 휴양보냈을 뿐만 아니라, "황무지"의 원고를 반으로 간추려  현재의 이 시를 만드는데 도왔기 때문이다.   I. 사자의 매장4)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마른 구근을 가진   작은 생명을 길러 주며5)   여름이 우리를 급습해왔다, 시타른베르게르제호6)를 넘어   소낙비를 가져와 우리는 회랑에 머물렀다가   햇볕이 나자 호프카르텐7)으로 가서   코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이나 이야기했지.   나는 러시아인이 아니고, 리투아니아 출신의 순수한 독일인이에요.   어릴적 내가 사촌 대공8) 집에   머물렀을 때 사촌이 날 썰매에 태워줬었는데   나는 겁이 났어요. 마리, 사촌이 소리쳤죠,   마리9). 꼭 붙들어. 그리곤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산에서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나는 밤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으로 가요.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무슨 가지가   이 돌투성이 쓰레기 속에서 자라나는가? 인간의 아들아,10)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너는 다만   부서진 우상더미만 알기 때문에, 거기엔 해가 내리쬐고,   죽은 나무는 아무런 피난처도, 귀뚜라미는 아무런 위안도11)   주지 않고, 메마른 들엔 물소리도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밑에 그늘이 있다,   (이 붉은 바위 그늘 밑으로 들어오라)12)   그럼 나는 아침에 너의 등뒤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네 그림자나, 저녁때 너를 마중나오는 그림자와도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나는 너에게 한줌의 재 속에서 공포를 보여주리라.   바람은 선선히   고향으로 부는데   아일란드의 우리님은   어디 있느뇨?13)   '일 년전 처음으로 당신이 내게 히아신드를 줬기에, 사람들이 날 히아신드  소녀라 불렀어요.'   --그러나 네가 팔에 꽃을 한아름 안고, 늦게,   머리칼이 젖은 채, 같이 히아신드 정원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말할 수도 없고 눈은 안 보여, 나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빛의 핵심, 정적을 들여다보았다.14)   바다는 황량하고 쓸쓸하구나.15)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도 그래도   사악한 트럼프 한 벌을 가진   유럽 제일가는 여자 점장이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16)   당신 카아드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예요,17)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보세요!)18)   이건 벨라돈나, 암석의 부인,   부정한 여인이에요.   이건 세 막대기를 가진 남자, 그리고 이건 바퀴,19)   이건 눈이 하나인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그려진20)   이 카아드는 이 상인의 등뒤에 집어진   무엇인데 내가 못 보게 되어 있어.   그 교살된 남자를 못 찾겠는데요. 익사를 조심하세요.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것이 내게 보여요.   감사해요, 혹시 에퀴튼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내가 직접 가져간다고 말해 주세요.   요즘은 무척 조심 않으면 안 돼요.   유령 같은 도시,21)   겨울 새벽 갈색 안개 속을   런던 브리지 위로 사람들이 흘러갔다. 이렇게 많이,   이렇게도 많은 사람을 죽음이 파멸시켰으리라 나는   결코 생각 못했다.22)   짧은 한숨을 이따금 내쉬며23)   각자 자기 발앞을 주시하면서.   언덕을 올라가서 킹 윌리엄 가24)로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드 교회25)가 죽은 소리로 아홉 시의   마지막 일타를 울려 시간을 알리는 곳으로.26)   거기서 나는 친구를 하나 발견하곤 '스텟슨!'27)하고 소리쳐 그를 멈추게  했다.   '자네 밀라에 해전 때28). 나하고 같은 배에 타고 있었지!   작년 자네가 정원에 심었던 그 시체가29)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에는 꽃이 필까?   혹은 갑작스런 서리가 묘목을 망쳤나?   오 인간에게 친구인 '개'를 멀리 하게,   그렇잖으면 그놈이 발톱으로 다시 파헤칠거야!33)   그대! 윈시적 독자여!--나의 동포--나의 형제여!'31)   *역주 4)풍요신화에 있어 신의 매장은 그의 부활의 서곡이었으나 이 부의  분위기는 재생의 희망이 없는 주검이다. 엘리어트는 현대 런던을 황무지의  심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황무지의 주민은 죽음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며 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으로부터 자신을 각성시키기 싫어하며, 생명을  불어넣는 재생의 봄을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재생의 달, 4월은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달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달이다. 별안간 시인은 우리의  국토와 생명의 불모지를 지적하며 우리들에게 황폐를 경고한다 황무지에서의  사랑은 모두 좌절한다. 또 타락한 점장이인 소소스트리스 부인은  태로우(Tarot) 카아드의 본래의 사명(홍수의 증감을 점치는 것)을 망각하고  저속한 문명점에 열중하고 있다. 그 다음에 엘리어트는 보들레르의 일파들이  우글거리는 파리와 단테의 림보와 현대의 황무지인 런던을 연결시킨다.  스텟슨의 이야기는 식물체에의 언급이며 미 부의 제목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엘리어트의 주는 (E)로 표시함.   5)봄은 희망과 재생의 계절이지만 황무지의 주민들은 겨울의 평화로운  주검과 망각의 잠을 오히려 좋아하고 부활을 위한 꿈틀거림을 싫어한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겐 4월은 오히려 귀찮고 잔인하다. 초오서의 기쁨과 재생의  봄과 충격적인 대조를 이룬다. '캔터베리 이야기'에선 사람들이 순교자를 찾아  성지순례 떠나지만, 황무지의 주민은 쾌락의 여행을 떠난다. (참조8__18행).   6)독일 뮌헨 근처의 작은 휴양지 호수.   7)뮌헨에 있는 동물원과 많은 사이드윌크 카페가 있는 공원.   8)마리 라리쉬 백작부인은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드 조카딸로서  황태자인 루돌프 대공(1858__1899)과 그의 정부 마리베트세라와 중매노릇을  했다. 그들은 비인에 가까운 마이얼링에서 1899년 1월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2중자살 인 듯하나, 그들의 죽음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마리  라리쉬의 집은 시타른베르게르제호 ('황무지'8행)에 있었다.   9)마리는 여러 사촌 대공을 가졌으나 루돌프가 그녀의 맏사촌이었다.  마리는 '겨울에 남쪽'(18행), 특히 망통으로 갔고 더구나 산에서만 자유를  느낀다(17행)고 자주 말했다. 마이얼링 참변 후 비난이 그녀에게 쏠리자  그녀는 영원히 산으로 은퇴했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그녀가 소녀였을 때  유우머러스한 랑데부를 한 적이 있다 이 시에서 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 나온다. 참조 마리 라리쉬 '나의 과거'(1916).   10)참조 '에스겔' 2장 1절(E)   11)참조 '진도서' 12장 5절 (E)   12)여기서 바위는 성배.   13)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I. 5__8(E). 이 말은 아일랜드의  이졸데를 코온월로 싣고 가는 배의 수부의 노래.   14)참조. '버언트 노오튼' I, IV.   15)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 24행에서 망루자가 이졸데의 배가  보이지 않음을 병들어 누운 트리스탄에게 알리는 말. 불행하게 끝난 사랑.   16)'나는 태로우 카아드 한 벌의 정확한 구성을 잘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의  편의에 맞추기 위해 분명히 그 구성에서 벗어났다. 전통적 카아드 짝의  하나인 '교살된 남자'는 두 가지로 내 목적에 맞는다. 첫째 그는 내 마음속에  프레이저의 '교살된 신'과 연결되며, 둘째로 나는 그를 제5부의 에마우스로  가는 제자들의 구절에서 두건 쓴 인물과 연결된다. '페니키아 수부'와 '상인'은  뒤에 나타난다. 또한 '군상'도, . '익사'는 제 4부에서 일어난다. '세 막대기  가진 남자' (태로우 카아드의 순종의 하나)를 나는 멋대로 '어부와' 자신과  연결시킨다.'(E)   점장이에 의해 사용된 태로우 카아드는 대단히 오래고 불명확한 기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고대식물체의 일부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카아드 중 컵, 창, 칼, 접시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성배전설 자체에서도  발견되는 심볼이다.   17)여름의 죽음을 상징하기 위해 그 모상이 매년 바다에 던져지는 풍요신의  한 전형.   18)'폭풍우' I. ii.369행 참조.   19)목적이 없는 단조로운 생활의 회전의 상징이며, 제 4부에서는 '물매미'를  말한다.   20)카아드에 그려진 얼굴이 측면이기 때문에.   21)참조. 보들레르 '악의 꽃'중 '7인의 노인'첫 구절.   '우글우글한 도시, 꿈으로 가득 찬 도시, 여기선 유령들이 대낮에도 행인을  끌어당긴다.'(E)   22)참조, 단테 '지옥편' III, 55__57.   '죽음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을 행렬했으리라 내가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기나긴 사람들의 행렬.'(E)   런던 브리지 위로 직장을 향해 흘러가는 수많은 군중들을 보고 시인은  이들을 지옥의 행렬로 본다. 왜냐하면 황무지의 이 주민들은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23)'지옥편' IV25__27행.   '여기선 아무런 울음소리도 없고 들리는 건 오직 영원한 공기를 떨리게  하는 한숨뿐'(E)   24)런던 중심부에 있으며, 금융 및 상업지구.   25)킹 윌리엄가와 롬바드가 모퉁이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 '황무지'전체를  통해 여러 교회에 대한 언급은 마지막 제 5부에 나오는 '위험성당'에의  언급이다.   26)'내가 자주 주목한 현상'(E) 관청은 9시에서 시무한다.   27)아마 보통 사업가의 상징. 스텟슨은 유명한 미국 모자 이름으로, 괜찮은  실업가들이 자주 썼기 때문에 이렇게 인물 이름을 지었으리라.   28)이탈리아의 시실리섬 동북방에 있는 밀라쪼항의 옛이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인과 카르타고인이 싸운 곳. 포에니 전쟁이나 1차 대전이나 다  상업적 경제적 전쟁이며, 모든 전쟁은 한 전쟁이다.   29)제1부의 제목은 여기서 나왔고, 조롱하듯 언급된 시체는 풍요신이다.   30)참조. 존 웹스터의 '백귀' 중의 만가. 개가 땅에 묻은 풍요신을 파헤쳐  재생을 방해할 것이므로 개를 멀리 하라는 뜻일 것이다.   31)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서시 '독자에게'의 최후의 행. 이 말로서  엘리어트는 별안간 독자를 공격하면서 독자도 자기와 같은 입장에 있음을 즉,  황무지의 인간임을 인정케 한다.   II. 체스놀이32)   그녀가 앉은 의자는 찬란한 왕자처럼33)   대리석 위에서 빛났다. 그곳엔 거울이   열매 주렁주렁한 포도덩굴이 새겨진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그 덩굴 사이에서 황금빛 큐우핏이 하나 빠끔히 내다봤다.   (또 하나는 날개 뒤에 눈을 가리고 있고)   거울은 칠지촉대의 타오르는 불길을 이중으로 하여   새틴상자 속에서 화려히 넘쳐 흐르는 그녀의 보석들의 광채와   만나 테이블 위에 빛을 반사했다.   마개 뽑힌 상아와 색유리의 향수병 속엔   그녀의 연골, 분, 액체향수   이상한 인조 합성 향료들이 들어 있어   감각을 향내 속에 어지럽히고 혼란시키고   익사시키고, 창문으로 선선히 불어오는 공기에 향내는 흔들리어   위로 올라가 길게 늘여진 촉대의 불을 살찌게 태우며   촛불연기를 우물반자34) 속으로 불어올려   격자천정 무늬를 어른거리게 했다.   구리못이 박힌 큰 바다 표목은35)   빛깔 있는 대리석으로 테두리지워져   초록빛과 오렌지빛으로 타오르고   그 슬픈 빛 속을 돌고래 조각이 헤엄치고 있었다.   고풍의 벽난로 선반 위엔   마치 삼림경치가 내다보이는 창문처럼,36)   저 야만적인 왕에게 난폭히도 능욕된37)   필로멜의 변신 그림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이팅게일은38)   침범할 수 없는 목소리로 온 황야를 채웠다.   그리고 여전히 울었고, 여전히 세상은 추격한다.39)   '작 작'40) 더러운 귀에.   시간의 많은 시든 토막들이 벽에   그려져 있어, 빤히 노려보는 인물들이   상체를 밖으로 내밀어 기대면 닫힌 방을 조용케 했다.   계단에서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화로 빛을 받아, 빗질한 그녀의 머리칼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뾰족히 되어   작열해서 말이 되었다가, 다시 소름끼치게 고요해졌다.   '오늘밤 내 신경이 이상해요, 정말 그래요, 같이 있어 주세요.41)   내게 말해 봐요, 왜 도무지 말도 안 해요, 말해 봐요.   당신은 무얼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생각을? 무얼?   나는 당신이 무얼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생각해 봐요.'   나는 생각해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뼈를 잃은 쥐의 골목에42) 있다고.   '저 소리는 뭐예요?'   도어 밑을 지나는 바람.43)   '지금 저 소리는 뭐예요? 바람이 뭘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당신은 몰라요? 아무것도 못봐요? 아무것도 당신은 기억못해요?'   나는 기억해   그의 눈이 진주로 변한 것을.   '당신은 살았어요, 죽었어요? 당신 머릿속엔 아무것도 안들었나요?'   들어 있는 건 고작   오오오오 저 셰익스피어의 재즈__44)   그것 참 우아하면서   참 지적인 팝송가사뿐이야.   '나는 지금 뭘 할까요, 도대체 나는 뭘해야 할까요?   이렇게 머리칼을 풀어뜨린 채 밖으로 뛰어나가   거리를 헤맬 테야, 내일은 우리 뭘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열 시에 더운 물.   비가 오면, 네 시에 세단차.   그리고 체스나 한판 두지,   자지 않고 눈을 말똥거리며 도어에 노크를 기다리면서.45)   릴의 남편이 제대했을 때, 나는 말했지--   노골적으로 나 자신 릴에게 말했지,   여보세요 문닫을 시간됐어요   이제 앨버트가 돌아오니 좀 스마아트하게 몸치장해.   앨버트는 이를 해박으라고 너한테 준 돈으로 네가   뭘했는지 물을거야. 앨버트가 말할 때 내가 거기 있었지.   릴, 이를 다 뽑고 좋은 이를 해박어.   앨버트는 말했어, 정말이야, 너를 차마 볼 수 없다고.   그래 나도 그렇다고 말했지. 가엾은 앨버트를 생각해봐,   4년이나 군대에 있었잖아, 재미를 보고 싶을 거야,   네가 재미를 못 주면, 다른 여자들이 줄거야, 나는 말했지.   오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고 릴은 말했지. 있을 거야, 나는 말했지.   그럼 그게 누군지 알겠어, 릴은 말하면서 날 쏘아보았지.   여보세요 문닫을 시간됐어요46)   그게 싫어도 그냥 참아야지, 나는 말했지.   네가 할 수 없다면 딴 여자들이 골라 잡을 거야.   그렇지만 혹시 앨버트가 도망간다면, 내가 말 안해서 그런건 아냐.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그렇게 늙어 보이는 게, 이렇게 나는 말했지.   (그런데 릴은 아직 서른 한 살)   할 수 없지, 릴은 말하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   애길 없애려고 먹은 피임약 때문이야, 릴은 말했다.   (벌써 애가 다섯, 막내동이 조지를 낳을 땐 죽을 뻔했다)   약국 사람은 괜찮을 거라 했지만, 그 뒤론 전과 같지 않아.   너는 정말 바보로구나, 나는 말했지,   그래, 앨버트가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면 별수없지,   어린애가 싫다면 넌 무엇 때문에 결혼했니?   여보세요 문닫을 시간됐어요   앨버트가 돌아온 일요일 그들은 더욱 베이컨 요리를 차려놓고   맛있게 뜨거운 걸 먹도록 만찬에 나를 청했었지--   여보세요 문닫을 시간됐어요   여보세요 문닫을 시간됐어요   빌 안녕. 루 안녕. 메이 안녕. 안녕.   타 타.47) 안녕히, 안녕히.   안녕히 부인들. 안녕히 사랑스런 부인들. 안녕히, 안녕히.48)   *역주 32)미들튼의 극 "여자는 여자를 경계하라"의 2막 2장에서  체스놀이는 며느리가 겁탈당하는 동안 보호자인 시어머니의 주의를 빼앗기  위해 사용되어 있다. 이부에서는 두 장면으로 구성되어 사람이 없는 화려함을  나타내는 상류사회와 런던 술집에서 두 여자가 지껄이는 낙태에 관한  이야기로 불모의 황무지의 테마를 반복하는 하류계급이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성관계가 모두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33)참조.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II. i,190에서 이노아버스는 어떻게  처음에 클레오파트가 안토니를 만났고, 관능적 매력으로 그를 압도했는가를  말한다.   34)네모의 움에 들어간 격자세공의 로마식 천정 참고. 버어질의  "아이네이스" I. 726.   '황금의 우물반자에 불켜진 등불이 걸려 있고 횃불은 불길로 밤을  정복한다.'(E)   35)녹이 슬지 않게 구리못을 박아 만든 배가 파선 당해 표류해 다니는  나무조각. 이것을 말려 태우면 초록 빛 오렌지 빛으로 탄다.   36)참고. 밀턴 "실락원" IV, 40(E)   37)참고. 오비드 "변신" IV, 필로멜라. (E)   38)참조. 제 3부 204행. (E)   39)세인은 분명히 야만적인 왕 테레우스가 행한 행위를 같이 하고 있으며,  아직도 계속 그 행위를 하고 있다.   40)속인의 귀엔 나이팅게일의 소리가 온 황야를 채웠던 침범할 수 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다만 '작 작'이란 더러운 소리로 들린다.   41)아마 벨라돈나와 주인공이 지금 비참한 대화를 하고 있다.   42)참조. 제 3부 195행.(E)   43)참조. 웹스터:'아직도 바람이 저 도어에 있나?' (E)   44)셰익스피어의 시가 현대에 이르러 타락하여 재즈가 된 것을 풍자한 말.  1912년의 히트송을 약간 변경한 것.   45)미들튼의 "여자는 여자를 경계하라" II, ii에서 리비아는 비앙까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비앙까가 능욕당할 동안) 체스놀이를 한다--보호자인  시어머니의 주의를 빼앗기 위해.   46)영국 술집에서 종업시간을 알리는 말.   47)(소아) 안녕 빠이빠이.   48)참고. "햄릿" IV, V, 72. 미친 오필리어의 작별인사. 또 하나의 '익사'의  전주곡.   III. 불의 설교49)   강의 천막은 찢겨졌다.50) 손가락 같은 마지막 잎새들이   젖은 둑을 움켜쥐며 갈아앉는다. 바람은   소리없이 갈색 땅을 지나간다. 님프들은 떠나갔다.   아름다운 템즈여, 고요히 흘러라, 내 노래 끝마칠 때까지.   강물 위엔 아무것도 없다. 빈 병도, 샌드위치 종이도,   실크 행커치프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 꽁초도,   혹은 여름밤의 다른 증거품도. 님프들은 떠나갔다.   또 그들의 동무들, 도시 중역의 빈들거리는 자식들도   떠나갔다, 주소도 남기지 않고.   레만 호수가에 나는 앉아 울었다.51)   아름다운 템즈여, 고요히 흘러라, 내 노래 끝마칠 때까지,   아름다운 템즈여, 고요히 흘러라, 큰소리로 길게도 말 않을 테니.   그러나 등뒤의 일진냉풍 속에 나는 듣는다,   뼈들의 덜커덕 소리와 입이 찢어지게 웃는 낄낄 웃음을.   쥐 한 마리가 둑 위에서 흙투성이 배를 질질 끌면서   풀 숲속으로 살살 기어갔다,   어느 겨울 저녁 내가 가스 탱크 뒤를 돌아   음산한 운하에서 낚시질하며   왕의 난파와   그 먼저 죽은 부왕의 생각에 잠겨 있을 동안에.52)   흰 뼈다귀들은 습기찬 낮은 땅 속에,   뼈들은 작고 메마른 나지막한 다락방에 버려져 있어   해마다 다만 쥐의 밭에 채여 덜커덕거렸다.   그러나 등 뒤에서 나는 때때로 듣는다.53)   경적과 자동차소리, 그것은54)   스위니를55)샘에 있는 포오터부인에게 태우고 가리라   오 포오터 부인과56)   그녀의 딸 위에 훤히 비친 달이여   모녀는 소오다수로 발을 씻는다.   그리고 오 둥근 천정 속에서 합창하는 소년 성가대의 목소리여!57)   툇 툇 툇   작 작 작 작 작 작   참 난폭하게도 능욕당했네   테류   유령 같은 도시   안개 낀 겨울 정오   스밀나 상인,58) 수염도 깎지 않은   유게니디즈씨는 포킷에 건포도59)   보험료 및 운임 포함 런던 도착 가격, 일람불 증서를 가득히   넣고 비속한 프랑스어로   캐논가 호텔에서,60) 런치,   위크엔드를 메트로풀 호텔에서61) 보내자고 나를 청했다.   보라빛 시간에, 눈과 등이   책상을 떠나 위로 향하고, 인간엔진이,   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는 택시처럼 고동칠 때에,   나 티레지어스,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 고동치는62)   주름살진 여자의 젖이 달린 늙은 남자일망정   보라빛 시간에, 사람을 재촉하며,   바다로부터 수부를 집으로 데려오는 저녁시간에, 볼 수 있다.63)   티이 타임에 집으로 돌아온 타이피스트가 조반을 치우고   스토우브에 불을 피워 깡통에 든 음식을 늘어 놓는 것을.   창 밖으로 위태로이 널린 그녀의 콤비네이션이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마르고 있고   긴의자 위엔 (밤엔 그녀의 침대가 된다)   양말, 슬리퍼, 하의, 코르셋이 쌓여 있다.   나 티레지어스, 주름살진 젖이 달린 노인은   이 장면을 보고 나머지를 예언했다--   나도 또한 여기 놀러올 손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도착했다. 여드름 투성이의 청년   조그마한 가옥 알선업자의 서기, 당돌하게 노려보는   마치 무례가, 브래드포오드64) 백만장자의   머리에 얹힌 실크 해트처럼, 앉아 있는 하류계급의 자식.   지금이 호기다, 그의 짐작엔,   식사가 끝나 그녀는 지루하고 노곤하다,   그녀를 애무하려 든다   그래도 그녀는 나무라지도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얼굴을 붉히며 결심하고, 그는 단숨에 덥친다.   더듬는 두 손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는다.   그의 허영심은 여자의 반응을 바라지 않고   여자의 무관심을 오히려 환영으로 여긴다.   (나 티레지어스는 이 긴의자 혹은 침대 위에서   행해진 모든 것을 이미 경험했다.   테베시의65) 성벽 아래 앉았었던 그리고   지옥의 사자 사이를 걸었던 나)   그는 그녀에게 오히려 은인인 채 마지막 키스를 해 주곤   길을 더듬으며 내려간다, 계단에 불이 안켜져 있으므로.   여자는 돌아서서 잠시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애인이 떠나간 줄 거의 깨닫지도 못하고.   그녀의 머릿속엔 한가닥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일이 이제 끝났으니, 아이 좋아.'   사랑스런 여인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홀로 다시 방안을 거닐며   자동적인 손으로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레코드 한 장을 들어 축음기에 건다.55)   '이 음악이 물결을 타고 내 곁으로 기어와'67)   스트랜드를68) 따라 퀸 빅토리아 가로 사라졌다.   오 도시여,69) 나는 때때로 들을 수 있다.   로우어 텝즈가의70) 어느 대중 술집 옆에서 만돌린의 아름답고 슬픈  울음소리와   또 낮에 생선장수들이 빈들거리는 곳에서71)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떠들어대는 소리를, 거기에는   매그너스 마아터 교회의72) 벽이   이오니아풍의73) 흰색과 금빛의 말할 수 없는 화려함을 지니고 있다.   강은 기름과 타아르의74)   땀을 흘리며   짐배들은 변하는 조류를 따라   떠돌고 있다   붉은 돛들은    활짝   바람부는 쪽을 향해   육중한 돛대에서 펄럭거리며   짐배들은 아일 오브 도그즈를75) 지나   그리니지 하구로76)   표류하는 통나무를 흐르게 한다.   웨이아랄라 레이아   왈랄라 레이아랄라77)   엘리자베드 여왕과 레스터 백작78)   철썩대는 노   선미는   금빛 조개껍질   빨강과 황금색   거품이는 물결은   양안에 철썩이며   남서풍은 하류로 흘려 보낸다.   종소리를   하얀 탑들79)   웨이아랄라 레이아   왈랄라 레이아랄라   '전차와 먼지투성이 나무들.   하이버리가 나를 낳고 리치먼드와 큐우가80)   나를 망쳤네. 리치먼드 가에서81) 나는 무릎을 치켜올려   좁은 카누우 바닥에 드러누웠었지.'   '내 발은 무어계이트에,82) 내 마음은   나의 발밑에.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울었지.   그는 새 출발을 약속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했어. 무엇을 내 원망하랴?'   '마아게이트 백사장에서83)   무와 무를   나는 연결할 수 있었다.   더러운 손들의 찢겨진 손톱.   내 집안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비천한 사람들.'   라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84)   탄다 탄다 탄다 탄다85)   오 주여 당신이 나를 건지시나이다86)   오 주여 당신 건지시나이다   탄다   *역주 49)템즈강과 런던 시가 이 부를 지배하며 다시 성관계의 타락이  테마로 되어 있다. 스펜서의 "축혼가"에서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템즈강에  나오는 님프들과 현대 희사중역들의 노리개감인 님프들이 충격적인 대조를  이룬다. '사자의 매장'의 주테마는 성의 좌절이었는데, '불의 설교'에서는  사랑이 없는 성의 결합이다.   이 부는 '물'과 '불'의 심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은 사모의 정을 상징하며,  템즈강, 레만호 운하 등 여러가지로 나타나는 물은 성배전설에 있어서의  바닷가에 위치한 어부왕의 성과 고대의 풍요 심볼인 물고기와 관련이 있다.   50)템즈 강변을 천막처럼 덮었던 나뭇잎이 늦가을이 되어 다 떨어짐을  말함. 동시에 이 부의 뒤에 나오는 템즈 처녀들의 처녀성 상실을 암시한다.   51)참조 '시편' 137:'바빌론의 강가에 우리는 앉아 울었다.'레만호는  스위스에 있음. 엘리어트는 이 호수 가에 있는 로잔느에서 이 시의 일부를  썼다.   52)참조. '폭풍우'   53)참조. 마아블의 "수줍은 연인에게".   54)참조. 데이의 "별들의 회의":'갑자기 귀를 기울이면 당신은 들으리  각적과 사냥소리 그것은 악테온을 샘에 있는 다이애너에게 데려가리라.  거리서 모두들 그녀의 벌거벗은 살결을 보리라.'   55)저속한 부르조아 전형.   56)'나는 이 시행이 발췌된 민요의 출처를 잘 모른다. 그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로부터 내게 보고되었다.'(E)   57)참조. 베를렌느의 소네트 "파르시팔"의 마지막 행. (E) 파르시팔은  탐색을 성취하여 성배를 발견한다. 그리고 황금색 법의를 입고 영광스런 상징,  참다운 피(즉 그리스도의)가 빛을 발하는 깨끗한 그릇에 예배한다. 그때  성배성당의 둥근 천정에서 합창하는 소년 성가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58)소소스트리스 부인이 예언했던 상인. 시리아 상인은 성배전설의 옛  비교를 전파했었지만, 그들의 후손인 현대의 유게니디즈는 많이 타락했다.  그리이스어로 '고상한 사람'이란 뜻이나 실은 그 반대이다. 스밀나는 터어키  이즈미르항의 옛명칭. 에게해에 면해 있다. 현재 터어키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의 하나.   59)한때 런던의 로이드은행 외환과에 근무했던 엘리어트는 다음 주를  붙였다:'건포도는 런던까지 운임과 보험료 포함 가격으로 지불되었다. 그리고  선하증권 등은 일람불 수표를 지불해야 매주에게 교부되었다.'(E)   60)런던 중심 캐논 가 역에 부속된 호텔로서 그 당시 외국 실업가들과 영국  고객들의 단골 회합소.   61)영국 동남해안 븐라이튼에 있는 고급 호텔.   62)티레지어스는 비록 단순한 방관자이고 등장인물은 아니나. 이 시에  있어서 다른 모든 사람을 통합시키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마치 건포도  판매인인 일안상인이 페니키아 상인을 융화하고 또 후자는 나폴리 왕자  퍼어디넌드와 전적으로 별개의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여자는 한 여자이며,  두 성은 티레지어스 속에서 만난다. 티레지어스가 '보는 것'이 사실 이 시의  실질이다. 오비드로부터의 전구절은 대단한 인류학적 흥미가 있다.   ...조우브(주피터)가 술에 취해 유쾌해져 근심을 잊고 한가로이 주노(그의  처)와 농담할 때 그는 사랑의 쾌감은 당신들 여신이 우리 남신보다 크다고  말했다. 여신은 그 반대의 견해를 가졌었다. 그래서 그들은 현명한  티레지어스에게 묻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그는 양성의 쾌감을 잘 알기  때문에 한때 그는 푸른 숲 속에서 교미하고 있는 큰뱀을 보고 지팡이로  때려줬더니, 그는 놀랍게도 여자로 변해 있었다. 그 모양으로 그는 7년을  보냈다. 3년째 되던 해 그는 다시 같은 뱀들을 발견하고서 말했다. '너희들은  때리면 때리는 사람의 성을 다른 성으로 바꾸는 이상한 마력을 가졌으니 한  번 더 너희들을 때려야겠어.'이렇게 말하며 때려줬더니 그는 전모양대로  회복되어 남자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신들의 이 재미나는 심판을  맡았을 때 그는 조우브편을 들었다. 그러자 새터니아(주노)는 필요이상으로 그  일이 요구하는 이상으로 몹시 분개하여 이 심판관을 영원한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능한 아버지신(조우브)은 (신은 다른 신이 한 것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시력의 상실에 대신해서 미래를 알 수 있는 힘을 주어 이  명예로서 처벌을 경감했다. (E)   그 후 그는 테베시에서 매우 유명한 예언가가 되어 일곱 세대나 살았다.  그리고 테베시가 전쟁으로 멸망했을 때 그는 살해되었다. 그의 혼은 지옥으로  내려갔으나 거기서도 예언하는 힘을 가져 율리시이즈가 충고받으러 그를  방문한 일이 있다.   63)이 행은 사포(그리이스 여류시인)의 시행과 꼭 같지는 않으나, 나는 내  마음속에 '긴 해안' 또는 저녁 때 돌아오는 평지선 어부를 생각한다. (E)   64)요크셔어에 있는 공업도시로 일차대전중 전쟁 계약으로 많은 벼락부자를  보다.   65)고대 희랍1도시. 아테네 동북방에 위치. 티레지어스는 성벽 밑의  시장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점을 쳤다.   66)참고. 골드스미드 '웨이크필드의 목사'중의 노래. 24장. (E)   67)참고. '폭풍우' 동상.   68)런던의 중심부 템즈강과 평행하는 거리.   69)'유령 같은 도시'와 구별된다.   70)런던 브리지의 바로 옆. 수세기에 걸쳐 유명한 런던의 어물시장,  빌링즈게이트가 여기 있다. 물고기는 매우 오래된 생명의 심볼이다.   71)만돌린의 노래는, 의심할 바 없이, 런던 술집 안팎에서 연주하는 순회  악사들이나 배우에의 언급이다. fishmen은 어부가 아니라 빌링즈게이트  시장에서 고기를 운반하는 사람.   72)성 매그너스 마아터 교회의 내부는 내 마음에 렌이 건축한 내부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런던시내의 19교회의 파괴제의"P. S. 킹 and  산사'(E) 1676년 건축됨.   73)원주의 양식이다.   74)'(셋)템즈 처녀들의 노래가 여기서 시작된다. 292행부터 306행까지  그들이 교대로 말한다. 보라 '신들의 황혼'III, 라인 처녀들'(E) 신화에서  "황무지"에 내린 저주는 어부왕의 궁전에서 몇 처녀들이 능욕당한 후다. 라인  처녀들은 능욕당하고 그들의 황금반지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라인강의 아름다움이 사라졌음을 탄식한다. 엘리어트는 강의 능욕('강의  천막은 찢겨졌다')과 처녀성의 상실과 합치시킨다.   75)런던 동쪽에 있는 한 구로 섬이 아니라 삼 면이 강으로 감싸여 있으며  대개 도크가 차지하고 있는 지구.   76)한때 왕궁이 있어, 엘리자베드 여왕은 거기서 레스터 백작을 접견했다.   77)바그너의 '라인 처녀들'의 노래 후렴.   78)참고. 프로드의 "엘리자베드" 1권 4장, 스페인왕에게 보낸 데  쿠아드라의 편지:'오후에 우리는 호화선을 타고 강 위의 놀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왕은) 로버트경(레스터 백작을 말함)과 나와 같이  선미누갑판에 있었는데, 그들은 동남을 시작하여 나중에는 너무 지나쳐  로버트경이 내가(쿠아드라는 승정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행할 자격이  있었다)현장에 있으니, 만일 여왕이 원하신다면, 그들이 결혼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E)   79)런던탑의.   80)참조. '연옥편' V 133.   '라 삐아인 나를 기억해 주세요   시엔나가 나를 낳고 마렘마가 나를 죽였어요.'(E)   시엔나, 마렘마, 둘다 이탈리아 지명.   81)하이버리:런던 시내 동북부에 있는 중류 계급 주택지.   리치먼드:한 때 왕의 저택이 있었던 자리.   큐우:런던 서쪽에 있으며 식물원으로 유명.   82)런던의 금융 중심지. 관청 건물과 빈민 주택으로 차 있다.   83)템즈강 입구에 있는 해변 휴양지.   84)참고. 성 어거스틴 "참회록" III 첫 구절.   '카르타고로 그때 내가 오니 거기서는 한 가마의 사악한 사랑들이 모두 내  귓전에서 노래했다.'(E)   85)이 말을 뽑아온 불타의 '불의 설교'의 완전한 본문은(그것은 중요성에  있어 예수의 산상수훈에 해당한다)고 헨리 클라아크 워런의 "번역된  불교"(하버드 동양학총서)에 번역되어 있다. 위런씨는 서양의 불타연구의  위대한 개척가의 한 사람이다.(E)   86)'다시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으로부터 이 시의 이 부의 절정으로서  동서양 금욕주의의 두 대표자의 병치는 우연이 아니다.'(E)   IV. 익사87)   페니키아인 플레버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의 울부짖음도, 깊은 바다 물결도   이익도 손실도 잊었다.   바다밑 조류가   그의 뼈를 살랑거리며 추렸다. 떴다가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단계를 지나   물 여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이방인이거나 유대인이거나   오 키를 돌리며 바람쪽을 바라보는 그대여   한때 그대만큼 미남이었고 키 크던 플레버스를 생각하라.   *역주 87)소소스트리스 부인이 제 1부에서 예언했던 페니키아 수부의  익사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플레버스는 풍요제식의 익사한 신인 동시에  상인이다. 이 부에 대해 비평가들은 해석을 달리하고 있는데, 조오지  윌리엄슨은 주인공이 실제로 리언스 브룩스와 엘리자베드 드루는 재생하기  위해 그가 풍요신처럼 죽는다고 한다.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익사한 주인공이  재생할 때까지 그가 통과해야 할 정신적 상태를 나타내는 메타포이게 된다.  이것은 이 시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어부왕으로 다시 나타나는 잇점을 갖고  있다.   V. 천둥이 한 말88)   땀에 젖은 얼굴들을 붉게 비춘 햇불 뒤에   정원의 서리 같은 정적   바위땅의 고민   아우성과 울음소리   감옥과 궁전과 먼 산을 넘어오는   봄의 뇌성의 반향   살았었던 그는 지금 죽었고89)   살았었던 우리는 지금 죽어간다90)   약간 인내하면서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91)   바위만 있고 물이 없다 그리고 모랫길   길은 산 사이로 꾸불꾸불 돌아 오르는데   그 산들도 물이 없는 바위만의 산   물이 있다면 우리는 멈춰 마실 것을   바위 사이에선 사람들이 멈추어 생각할 수도 없다.   땀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빠져   바위 사이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뱉는 이빨이 ㅆ은 죽은 산의 아가리   여기서는 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한다.   산 속엔 정적조차 없다   오직 메마른 불모의 뇌성뿐   산 속엔 고독조차 없다   오직 갈라진 토벽 집 문에서   빨간 성난 얼굴들이 냉소하여 으르렁거릴뿐92)   물이 있고   바위가 없다면   바위가 있고   또 물이 있다면   물이   샘물이   바위 사이에 웅덩이라도 있다면   오직 물소리만이라도 들린다면   그곳 솔숲 속에 노래하는 은둔--티티새 소리라도 있다면   드립 드롭 드립 드롭 드롭 드롭 드롭93)   그러나 물은 없다   당신 옆에 언제나 걷고 있는 사람은 누구요?94)   내가 헤아려 보면 당신과 나뿐   그런데 내가 하얀 앞 길을 바라보면   당신 옆엔 언제나 낯선 사람이   갈색 망토에 싸여 미끄러지듯 걷고 있어, 두건을 쓰고 있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난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당신 저편에 있는 저 분은 누구요?95)   공중 높이 들리는 저 소리는 무엇인가   저 어머니의 비탄 같은 흐느낌은96)   평탄한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갈라진 땅 위를 비틀거리며   끝없는 벌판을 넘어 몰려오는   저 두건쓴 무리들은 누구냐   저 산 너머 보랏빛 하늘에   깨어지고 개조하고 폭발하는 저 도시는 무엇인가   무너지는 탑들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런던   허망하구나97)   한 여자가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칼을 잡아당기어   그 현 위에 나지막이 음악을 켰다98)   보랏빛 속에 어린애 얼굴을 한 박쥐들이   휘파람 불며 날개치며   머리를 거꾸로 하여 시커먼 벽을 따라 기어내려갔다.   공중엔 탑들이99) 거꾸로 되어 있고   시간을 알렸던 종소리는100) 다만 추억 속의 종   그리고 목소리는 빈 물통과 물이 마른 샘에서 노래 부른다.101)   산 속의 이 황폐한 골짜기에서102)   희미한 달빛 아래 풀 울음 소리가   예배당 주위의 뒹굴어진 무덤들 위에서103)   거기에 있는건 다만 텅빈 예배당, 바람의 집뿐.   창문도 없고 문은 흔들거린다,   마른 뼈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오직 수탉 한 마리가 용마루 나무 위에서 운다   꼬 꼬 리꼬 꼬 꼬 리꼬   번쩍하는 번개 속에. 그러자 별안간 비를 몰아오는   한바탕의 습한 바람.   강가강은104) 바짝 마르고 맥을 잃은 나무들은   비를 기다렸다, 한편 먹구름이 일었다   저 멀리 히마봔트산에105)   밀림은 쭈그리고 등을 굽혔다, 침묵을 지키며.   그때 천중이 말했다.   다   다타(주라).106) 우리는 무엇을 주었던가?   벗이여, 내 마음을 흔드는 피   한 시대의 사려분별로도 철회할 수 없는   한 순간에 항복하는 무서운 대담   이것으로 오직 이것만으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망광고에도   자비스런 거미가 짜는 유방에서도 찾을 수 없다.107)   혹은 텅빈 방에서 여윈 변호사가 개봉하는   유언장에도 남지 않는다   다   다야드보암(공감하라). 나는 일찍이 한 번 꼭 한 번 도어를 잠그는  열쇠소리를 들었다108)   우리는 열쇠를 생각한다 각자의 감방에서,   열쇠를 생각함으로써 각자 감방임을 확인한다.   다만 해가 질 때 천상의 풍문이   잠시 몰락한 코리오라누스를109) 회상시킨다   다   담야타(제어하라). 보우트는 경쾌히110)   응했다, 돛과 노에 숙력된 사람의 손에   바다는 잔잔했다, 당신의 마음도 경쾌히   응했으리라, 초청받았을 때, 제어하는 손에   순종하여 침로를 바꾸면서.   나는 해안에 앉아   낚시질했다. 등 뒤에 메마른 벌판을 두고.111)   적어도 내 땅만이라도 정돈해 볼까?   런던 브리지가 무너진다 무너진다 무너진다.112)   그리곤 그는 정화하는 불길속으로 뛰어 들었다113)   언제 나는 제비가 될 것인가114)--오 제비, 제비여   폐탑 속의 아키테느 왕자115)   이 단편들로 나는 나의 붕괴를 지탱해 왔다   그럼 그렇게 해 드리죠.116) 히에로니모가 또 미쳤어.   다타. 다야드보암.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117)   *역주 88)'제 5부의 첫 부분에 세 테마가 사용되었다. 에마우스로의 여행,  위험성당에의 접근(참고. 웨스튼 여사의 저서)과 현재 동부 유럽의 퇴폐'(E)   322__65행 이 황무지를 통과하는 여행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환멸과  절망에까지 이르는 사건들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리아가 '부활'을  알려주었으나 제자들은 믿을 수 없는 헛소리라 생각하고 그들 중 두 사람이  에마우스로의 여행을 출발한다. 예수가 나타나도 그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저녁때 그들에게 말하며 빵을 나눠 축복하고 사라질 때까지. 참고. '누가'  22__24장.   89)게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민,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사건들이 시사되어 있다--또한 다름 교살된 신들도 포함하여.   90)삶 속의 죽음(death in life)의 테마가 다시 도입된다. (참조. 제 1부,  62__5행).   91)황무지의 불모의 테마가 다시 도입된다.   92)장면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티벳으로 바뀌어 진다.   93)'이것은 학명으로 툴두스 아오나라쉬카에 팔라시이며, 퀴벡주(캐나다  동부의 주)에서 내가들은 적이 있는 은둔티티새이다. 채프먼은 "동부  아메리카 조류편람"에서 말한다. '이 새는 조용한 삼림과 숲이 우거진 벽지에  가장 많이 서식한다. 그 노래는 다양성과 음량이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되지만,  소리의 깨끗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절묘한 전조에 있어서 이 새들을 필적할만  한 새는 없다. 이 새의 '물방울 듣는 노래'는 당연히 칭찬받고 있다.'(E)   94)그리스도와 그의 두 제자와의 엠마우스까지 여행 도중에 참고. '누가'  24장 1__32절.   95)'다음 수행은 한 남극탐험대의 보고에 의해 고무된 것이다(어느 것인지  잊어버렸으나 아마 색클튼의 것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그 보고서엔  탐험가들의 일행이 기진맥진할 때에 실제로 헤아릴 수 있는 것보다 한 대원이  더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갖는다는 이야기가 있다.'(E)   96)참조. '마태'2:17,18 또 '누가'23:27__31. 그리스도 혹은 어쩌면 아도니스  식물신을 슬퍼하며 우는 여자들.   97)참조. 헤르만 헤세의 "혼돈에의 일성":'이미 유럽의 반이 적어도 이미  동구의 반이 혼돈에의 도중에 있으며 성스런 망상에 취하여 심연을  따라가면서 이것을 축하하며 노래 부른다. 마치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카라마조프 형제들"중의)가 노래 부르는 것처럼 술에 취한  찬송을 부른다. 이 노래를 듣고 시민들은 눈물 흘리며 듣는다.'   98)아마 벨라돈나로 생각된다. 혹은 '전도서'12장에 나오는 '음악의  딸들'중의 하나.   99)제 3부에 나오는 런던탑.   100)제 1부에서 아홉시를 친 성메어리 울노드 교회의 종. 그리고 제 3부에  나오는 종소리.   101)엘리어트는 이 구절의 이미지가 부분적으로 제롬(or Hieronymus)  보슈(1460__1516)파의 한 그림에 의해 그에게 시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악몽의 구절은 이미 이 시에 나타났거나 언급된 인물,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전구절은 엘리어트가 제 1부 23행과 관련시켜 주에 언급했던 '전도서' 12장을  배경으로 투사되어 있다.   102)위험성당에의 접근. 성배전설에 의하면 성배기사는 위험성당에서  공포의 하룻밤을 지내야한다. 귀신들로 가득 찬 묘지와 성당안의 사체,  들어오는 자는 누구나 다 죽여버리는 검은 손--움직이는 초자연적 사악한 힘,  이것은 기사가 다음날에 수행할 성배의 탐색을 성취할 수 있는가 여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밤새도록 천둥치는 폭풍우가 몰아친다.   103)실패한 기사들의.   391__92행. 수탉의 울음소리는 일반적으로 마귀를 물리치는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참고 "햄릿" I, ii158.   104)갠지즈강'인도'.   105)히말라야 산맥 중의 한 봉우리. '눈이 덮인 산'이란 뜻.   106)401, 411, 417행. 천둥의 교훈. '주라, 공감하라, 제어하라.'이 천둥의  의미의 이야기는 '부리하다라니아가 우파니샤드' 5:1에 있다. 번역은 도이쎈의  '베다의 우파니샤드 60편' 489면 (E)   107)참조. 웹스터 "백귀" V, vi, 156__8   '그들(마누라들)은 재혼하리라, 벌레가 너희들의 수의를 뚫기도 전에 거미가  너희들의 비명에 엷은 그물을 치기도 전에.'(E)   108)참조. '지옥편' XIII 46.   '그리고 나는 들었다 밑에서 무서운 탑의 도어가 닫히는 것을.'(E)   이 말은 자기 도시에 대한 반역죄로 지옥의 최하권에 떨어진 우골리노  백작이 단테에게 한 말. 어느날 밤 예언적 꿈을 꾼 뒤 새벽에 잠을 깨어 그는  그와 그의 아들을 가둔 탑 도어가 닫히는 것을 듣는다(굶어 죽도록 열쇠는  아르노강 속에 내던져지고). 엘리어트는 이것을 F. B. 브래들리가 표현한  인간독립의 실재와 관련시킨다. '나의 외적 감각은 나의 생각이나 또는 나의  감정에 못지 않게 나 자신에게 사적이다. 어느 경우나 나의 경험은 나 자신의  원, 외계에 닫혀진 원속에서 체험된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은 그것을 둘러싼 다른 권들에게 불투명하다. 요컨대, 정신에  나타나는 한 존재로 간주되므로 전 세계는 각자에게 있어 그 정신에게만  특이한 것이며 사적이다.'(E)   109)이기주의와 오만 때문에 자신을 망친 로마장군. 그도 우골리노  백작처럼 자기 도시의 반역자.   110)엘리어트는 젊었을 때 요트 조종에 능숙하고 열렬한 아마추어였다.  이런 전기적 사실은 그가 쓰기 좋아하는 바다 이미지와 관계가 없지 않다.   11)참고. 웨스튼: '제식에서 기사이야기로'의 어부왕에 관한 장. (E)주인공은  비록 황무지를 벗어나지 못했어도 적어도 황무지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   426__9행. 모두 희망, 재건, 정화, 위로에 관한 내용이다.   112)널리 알려진 영국민요. 런던 브리지가 무너지니 철봉으로 세우자는  제검의 내용.   113)참고. 단테 '연옥편' XXVI. 148.   ' '이 층계 꼭대기까지 그대로 데려다 준 저 권능을 믿고 나 이제 그대에게  청하노니 때때로 내 고통을 기억해다오.'   그리곤 정화하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옥에서 단테는 육욕에 탐닉했던 자들과 만난다. 그들 중에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자진하여 고통을 받으려는 프로방스 시인 아르노 다니엘이  있었다.   114)서기 2, 3세기경의 작자미상의 라틴시 '비너스의 철야제'로부터의 인용.  정열적 연애의 가장 완전한 표현인 사랑과 봄에의 찬가. 이 시에서는  비너스의 밤에 온 자연이 즐거워 하고, 나이팅게일까지도 마치 그 몸서리치는  기억을 잊은 듯 노래한다--시인을 빼놓고는. 그러나 그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끝난다. 모든 생물이 부르는 이 시의 후렴은:   '사랑 안 했던 사람도 사랑했던 사람도 내일은 사랑할 것을.'   참조. 제 2 및 3부에 나오는 필로멜라.(E)   115)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1808__55)의 소네트 "폐적자"로부터.  (E)시인은 자신을 남불의 중세 아키테느 왕국의 몰락한 자손으로 간주하고  있다. '나는 탑 속의 아키테느 왕자', 그리고 위로를 기원한다. 주인공은 그의  전통을 회복하고 재건하려고 결심하고 있다.   폐적자   나는 우울한 사람--홀아비--위안없는자,   폐탑 속의 아키테느 왕자   내 유일한 별은 죽었다--별들이 박혀있는 내 비파엔   우울의 검은 태양이 새겨져 있다.   무덤의 한밤중에, 나를 위로해 준 너,   내게 들려다오 뽀질리쁘의 언덕과 이탈리아의 바다,   상처난 내 마음을 몹시 기쁘게 해 주던 꽃   그리고 포도가지가 장미와 맺힌 포도시렁을.   나는 사랑의 신인가 태양신인가 ㄹ지냥인가 비론공인가?   내 이마는 아직도 여왕의 입맞춤으로 불그스름하다.   인어가 헤엄치는 동굴 속에서 나는 꿈꾸었다...   그래서 나는 두번 정복자처럼 지옥의 강을 건넜다.   올페우스의 칠현금에 차례차례 성녀의   한숨과 요정의 훌쩍 울음을 실으면서.   116)토머스 키드 "스페인 비극" IV, 1, 16, 히에로니모는 햄릿처럼, 살인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미친 체한다. 궁전의 환락을 위해 극을 쓸 것을  부탁받았을 때 히에로니모는 대답한다. '그럼 그렇게 해 드리죠.'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결실이 없는 시에 열중했을 때 쓴 비극이 있다고 말한다. 이 극은  이 시의 마지막처럼 여러 외국어 즉 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불어  등으로 씌어 있다. 실제 그의 시는 결실을 맺는다. 마치 시인(엘리어트)이  방금 인용한 단편들이 그의 진상(truth)의 모색에 결실을 맺듯이 비록 다른  사람들에겐 미친 것으로 보이겠지만. '히에로니모가 또 미쳤어'는 "스페인  비극" 부제다.   117)여기 반복된 바와 같이 우파니샤드에서도 형식적 결어로 씌어 있다.  '이해를 초월한 평화'가 이 말에 대한 우리의(영어)뜻이다.'(E) @ff     미국편 @ff     포우     애너벨 리   오래고 또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여러분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사랑하니   그 밖에는 아무 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였고 그녀도 아이였으나,   바닷가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했으나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날개 돋친 하늘의 천사조차도   샘낼 만큼 그렇게 사랑하였다.   분명 그것으로 해서 오랜 옛날   바닷가 이 왕국에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사늘하게 하여   그녀의 훌륭한 친척들이 몰려와   내게서 그녀를 데려가 버렸고   바닷가 이 왕국 안에 자리한   무덤 속에 가두고 말았다.   우리의 절반도 행복을 못 가진 천사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샘낸 것이었다.   아무렴!--그것이 이유였었다.   (바닷가 이 왕국에선 모두가 아시다시피)   밤 사이에 바람이 구름에서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인 것은.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훨씬 강했다.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로 해서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밑에 웅크린 악마들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내 영혼을 갈라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달빛이 비칠 때면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게 되고   별빛이 떠오를 때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동자를 느낀다.   하여,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눕노니   거기 바닷가 무덤 안에    물결 치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곁에.   *E.A. 포우(1809__49)는 언어가 지닌 미묘한 뉘앙스를 추구한 시인이다.   포우는 '관념은 음악이 결여되면 그 명확성으로 말미암아 산문이 되고  만다'고 말 한 일이 있다.  그 이유는 시의 필요조건이 애매 모호성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너벨 리'를 읽고 그 의미를 음악의 상태에까지 환원할 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포우가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포우는 '시란  음악을 통해서 영원을 살펴보는 것이다' 라고 말한 일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184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죽은 아내 버지니아 클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엘도라도   화려하게 장식한    씩씩한 기사   햇빛을 쐬고 그림자를 지나   기나긴 여로를 계속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엘도라도를 찾아서.   그러나 점차 늙게 된   이 씩씩한 기사.   그리고 그 검은 가슴 위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었다. 오직 하나의   토지도 보지 못한 채   엘도라도라고 생각되는 곳.   이윽고 그 기력도   모두 쇠해 버리고 말았을 때   기사는 술례의 그림자를 만났다.   "그림자여" 하고 그는 말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 엘도라도 나라는".   "저 달이 비치는   산과 산을 넘어서     그림자진 골짜기를 내려가   계속 겁내지 말고 말을 몰아라."   그 그림자는 대답하였다.   "만일 엘도라도를 찾는다면."   *포우는 어릴 때에 부모를 잃고 부유한 상인의 손에 길러졌으나  그 성격  때문에 이별했다. 어린 종매와의 결혼 생활을 빈곤 속에서 보내면서 창작에  몰두했으나 젊은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술로 몸을 망쳐  비참히 생을 끝냈다.   짧고 불행한 생이였지만 시인으로서는 미의 창조가 시의 창조라 여겨  '갈가미귀' '펠렌에게' 등에서 죽음, 미, 우수를 테마로 하는 극히 음악적인  서정시를 지었다.   소설가로서는 단편에서 전적으로 단일적 효과를 노려 '검은 고양이'  '아서가의 몰락' 등의 명작을 발표했으며 비평가로서는 '호오손론'에서 단편  소설의 이론을 정립하고,'시의 원리'에서는 시를 사회적인 효용에서 해방시켜  순수한 시혼을 부르짖었다.   한 마디로 포우처럼 날카로운 분석적 두뇌를 가지고 오로지 미의 세계를  추구한 문학가도 드물 것이다. 이 '엘도라도' (ElDorado)는 스페인어로서  '황금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현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의 슬픈  운명을 노래한 작품이다.   헬렌에게   헬렌이여, 그대의 아름다움은 마치도   옛 니케아의 돛배와 같구나,   향기로운 저 바다 위로 조용하게   나그넷길에 지친 피곤한 방랑자를    고국의 바닷가에 실어다 준 것처럼.   오랫동안 헤매던 거칠은 바다 위로   그대의 까만 머리와 고전적인 얼굴,   물의 요정 같은 자태는 나를 이끌었나니,   그리스의 영광으로    로마의 장엄스러움으로.   보라! 저 빛나는 창 모서리에    그대는 조각처럼 서 있나니,   손에는 마노 램프를 들었구나!   사이키로다!   *183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제1연의 "니케아의 돛배"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영어로는 율리시즈)가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때 탄 배이다.   즉,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니케아의 돛배로 운반된 것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였던 것과 같이 황량한 바다를 유랑하는 '나', 곧 괴로운  인생을 방랑하는 '나'를 동경의 땅 그리스와 로마로 이끄는 것은 헬렌 너의  우아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헬렌이여 네가 나를 영의 나라, 예술의 나라로 인도하는구나.  영적인 여성이여. --이런 뜻이다.   포우를 좋아하지 않았던 헉슬리조차 이 작품만은 격찬하였다.     모리스     나무꾼이여, 나무를 베지 말라   나무꾼이여, 나무를 베지 말라!   그 가지에조차 손대지 말아라!   그 나무는 어린 나를 보호해 주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보호해야 한다.   그 나무는 나의 할아버지의 손으로   할아버지의 집 근처에 심었던 나무다.   그러니 나무꾼이여, 그 나무는 그대로 둘지니   도끼로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저 그리운 고목이 지니고 있는   그 영광과 명성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너는 잘라 쓰러뜨리려 하는가?   대지에 결부된 굴레를 끊지 말라.   자, 저 떡갈나무 고목만은   이제 하늘에 솟아 있는 저 나무만은 그대로 두라!   내가 아직 어린이였을 무렵   그 나무에서 고마운 그늘을 찾았고   우러나오는 기쁨에 젖어 여기서 놀았고,   누이동생들 역시 여기서 놀았었다.   어머니가 입맞춤해 준 것도 여기요   아버지가 나의 손을 힘껏 쥐며...   어리석게도 옛날을 생각하며 이렇게 눈물 흘린다.   어쨌든 저 고목 떡갈나무만은 그대로 두라!   내 마음의 실은 나무껍질처럼   옛 친구여, 내게 얼키어 있다.   여기서 새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고   네 가지를 에워싸게 하자.   고목이여! 계속 용감하게 폭풍과 맞서라.   그리고 나무꾼아, 거기에서 떠나라!   내 구원의 손이 있는 한에는   네 도끼로 상처내게 하지는 않으련다.   *모리스(George Perkins Morris:1802__64)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 밀러'지의 편집일에 종사하면서 서정시를 발표하였다.     에머슨     자제심   그대는 새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그것을 총으로 쏜 일이 없는가?   들장미를 기르면서 장난삼아 꺾었던 일은 없는가?   돈 많은 명문집을 방문하여 오직 빵과 콩을 먹을 뿐이었는가?   신뢰의 마음만 지니고 맨손으로 위험과 맞섰는가?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의 기품 있는 행위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기품 있게 보답하기 위해   함부로 칭찬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벗이 되고, 자네 벗이 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게!   *이 시는 친구인 도로우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로우는 도시 생활과 기계문명을 피하여 자신이 직접 땅을 갈아 일해서  먹고, 곡식이 없으면 굶기를 피하지 않은 평화주의자요 초절주의자였다.   에머슨은 기술을 통해 정신과 직각에 의해 살아야 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를 가리켜 '초절주의'라 한다.     로도라꽃   5월, 바닷바람이 우리 사는 벽지에 불어들 무렵   나는 숲에서 갓 피어난 로도라꽃을 보았나니   습지의 한 구석에 그 잎 없는 꽃을 많이 피워   들판과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에 기쁨을 주고 있다.   웅덩이에 떨어진 보라색 꽃잎은   시커먼 물을 그 예쁜 빛깔로 환하게 하였다.   여기에는 붉은 새가 깃을 식히러 와서   새의 차림을 무색케 하는 그 꽃을 사모하리라.   로도라꽃이여, 만일 세상의 현자들이 네게   왜 이런 아름다움을 땅과 하늘에 낭비하는가 하면   이렇게 말하라--만일 눈이 보라고 만들어졌다면   아름다움은 그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라고.   왜 여기에 피었느냐, 오오 장미의 경쟁자여   나는 그 질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오직 단순한 무지로 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에 나를 생기게 만든 힘이 너를 생겨나게 했을 것이다 라고.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03__82)은 '초절 주의'란 도덕적  이상주의를 주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시인이다. 시인으로서는  낭만적인 낙천 사상에 바탕을 두고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로도라꽃은 잎이 트기 전에 장미색 꽃이 핀다. 이 시의 주제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단순히 자연 현상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에머슨 자신도 '아름다움으로 보여지고  느껴지는 자연의 미는 가장 작은 역할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롱펠로우     인생 찬가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략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느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느님이 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느니라.   그 발자취는 뒷날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1838년의 작품으로 'Voices of the Night(1839)'에 발표되었다.   이 '인생 찬가'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쓴 작품으로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롱펠로우는 낙천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 바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감상적인 면을 주저함 없이 표현한 시도 많이 있고 더구나 사상도  명확하지 못하나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화살과 노래   나는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재빨리도 날아가는 화살의 그 자취,   그 누가 빠름을 뒤따를 수 있으랴.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렀으나,   노래는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그 누가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어   날아가는 그 노래를 따를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 밑둥에   그 화살은 성한 채 꽂혀 있었고,   그 노래는 처음에서 끝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 속에 숨어 있었다.   *'The Belfry of Brges and other Poems'에 발표된 1845년의 작품으로  롱펠로우의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소박스러운 교훈시이다. 약간  감상적이긴 하지만 건강하고 아주 매력적이다.     잃어버린 청춘   가끔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을 생각하노니   가끔 그 그리운 길거리가   내 추억 속을 오락가락 하게 되고   그때 내 청춘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랩 사람들의 옛 노래 가사 한 대목이   언제나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노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그 마을 나무들의 어렴풋한 선들이 보이고   갑작스러운 섬광 속에   저 멀리 에워싼 바다의 광선과   내 어린 날의 꿈의 낙원이었던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럴 때면 그 옛 노래의 후렴구가   아직도 응얼거리며 속삭이나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그 검은 부두와 또 선창과   자유로이 넘실거리는 조수와   입가에 수염을 키운 스페인 선원들과   아름답고 신비로운 배들의 모습과   바다의 마력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 멋진 노래의 음성은   지금도 여전히 노래하며 말하노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바다 기슭의 방파제와   그 언덕의 성채와   해가 뜰 무렵 대포의 공허로운 함성과   계속해서 되풀이되던 북소리와   시끄럽고 날카롭던 나팔소리가 생각난다.   그 옛 노래의 음악 역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동치고 있노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물결 위에 요란했던   먼 곳의 해전과   조용한 만이 내려다뵈는   묘지에 누워 있는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실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지붕과   디어링 숲 속의 그림자와   해묵은 우정과 그리고 옛날의 사랑은   인근의 조용한 비둘기 소리처럼   안식일의 음향과 더불어 돌아온다.   그럴 때면 그 달콤한 옛 노래의 가사는   아직도 가슴 두근거리게 중얼거리노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학생의 머리 속을   내딛고 있는 그 밝음과 어두움   마음 속의 노래와 침묵을 기억하노니   그 반은 예언이요 또한 반은   터무니없는 갈망이다.   그러면 그 변덕스러운 노래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조용할 줄 모르나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사물들이 있고   죽지 않는 꿈들이 있으며   굳은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두 뺨을 창백하게 하며   눈에 안개를 끼게 하는 신념이 있다.   그럴 때면 그 치명적인 노래 가사는   오한처럼 오싹 나를 덮나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옛 마을을 다시 찾으면 이제는   만나는 형상들이 기이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이곳 공기는 맑고 감미로우며   정겨운 거리마다 그늘 드리운 나무들은   몸을 아래 위로 가누면서 그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아직도 한숨 쉬며 속삭이나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디어링의 숲은 차선하고 아름다우며   내 마음은 너무 기쁜 나머지   쓰라린 심정으로 그곳을 헤매면서  지난 날들의 꿈속에서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게 된다.   그럴 때면 숲들은 아직도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되풀이해 부르나니   "소년의 마음은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젊은이는 언제나 한 가지만 생각한다."   *미국의 가장 인기 있던 시인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__82)는 미국 메인 주의 포틀랜드에서 출생하였다. 보드윈  대학 재학 때는 '주홍 글씨'의 작자인 소설가 나다니엘 호오돈과 동창이었고,  뒷날 명문 하바드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롱펠로우는 조숙한 천재 시인으로서 13세 때 이미 그 지방 신문에 시를  게재하였고, 온 세계에 수많은 열렬한 팬을 확보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애창할 만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그의 생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 '마일즈  스텐디쉬의 청혼(1858)'이 출판되었을 때에는 보스턴에서만 그 첫 날에 1만  5천 부가 팔렸다.   이런 인기가 있기 때문에 그는 죽은 뒤에 대서양 건너 영국의 그 유명한  웨스트 민스터 성당에 있는 시인의 묘지(Poet`s Corner)에 흉상까지  건립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현실 인식의 힘과 깊이 및 복잡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자들이 평가하고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시가 현실인식이나 시상적 탐구의 언어인 동시에 노래이며 위로의  말인 한, 영시 애호가는 때로 롱펠로우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 소개한 '잃어버린 청춘'은 1855년 그의 나이 40대 후반에 창작된  시이다.   이 시에서 '해변의 도시'란 작자의 고향 포틀랜드를 가리킨다. 거기에는  시인이 탄생한 집이 보존되어 있고, 광장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시인상이  건립되어 있다.     휘트먼     풀잎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 어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나,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로운  기념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풀은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일지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받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 있는 깎지 않은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 너를 고이 다루나니 너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를 일이요.   내 만일 그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너는 노인들이나, 생후에 곧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게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것,   자, 그리고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이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 머리로부터 나온 것치고는 너무나도 검으니,   노인의 빛 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연분홍 입천장에서 나온 것으로 치더라도  너무나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하나니,   그 발언들이 아무런 뜻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죽은 남녀에 관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어 내 갓난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풀어냈으면 싶다.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 살아 잘 지내고 있을 터이고,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일지니,    만일에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진하는 것이지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전진할 뿐 죽는 것은 없고, 죽음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행복한 것이다.    *휘트먼은 그의 나이 36세였던 1855년에 미국에서는 처음 고는 개성적인  12편의 시를 수록한 조그만 책자 '풀잎'의 초판을 발행하였다. 이 책은 그의  위대한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흙에 뿌리를 내린 미국 문학의 위대한  선구적 작품이며, 이 시집이 전세계의 후대 문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풀잎'은 형식이나 내용이나 당시로서는 너무  독창적이며 대담하고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에머슨이 여기에 '인간이  탄생했다'고 격찬한 것 말고는 부도덕한 표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쨌든 초판에서 12편을 수록한 작은 시집이 판을 거듭함에 따라 새로운  시를 추가하여 추후에 자신의 손으로 정리한 제 12판,1892년의 이른바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음운과 각운을 무시한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스타일, 종교적인 도덕 의식을  염두에 두지 않는 대담하고 소박한 인간관, 자기를 예사 인간으로 알면서 그  예사 인간의 상징이라고 하는 신념, 민주주의적 평등과 사회의 제약에 대한  개인의 반역, 남성에 대한 힘찬 예찬 등이 그의 시의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루이지아나에서 떡갈나무가   나는 루이지아나에서 떡갈나무가 무성함을 보나니   홀로 우뚝 솟아 가지에서 이끼가 드리워 있었다.    친구도 없이 쑥쑥 뻗어 흑갈색 입을 나부끼나니    그 거친 불굴의 힘찬 모습에 나 자신을 생각한다.   친구나 연인도 없이 흑갈색 잎을 나부끼는 일을   나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몇 개 잎이 달린 가지를 꺾어 주위에 이끼를 얽히게 하고는   집에 가져다 방안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다.   그 가지를 본다 해서 나는 친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   ...이 가지가 이상한 기념이 되어 가지를 보면 언제나 우정을 생각케 한다.   정녕 그렇지만 이 떡갈나무가 루이지아나의 넓은 들판에서 홀로 태양빛을  받으며   말라 죽는 날까지 곁에 친구도 연인도 없는데 기쁨의 잎사귀를 무성하게  나부끼고 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런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는 미국 남부 루이지아나주의 초원에 우뚝 솟아 있는 한 그루  떡갈나무를 보고 느낀 인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 떡갈나무를 소재로 하여 휘트먼은 대자연의 위대함을 예찬하고,  대자연으로부터 고독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배운 것이다.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내 여기 앉아 세상의 모든 슬픔과 모든 욕된 모욕을 바라보노라.   나는 젊은 사나이들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뉘우쳐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가난하여 자식에게 학대받는 어머니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을 본다.   나는 남편에게 학대받는 아내를 보고 젊은 여인을 유혹하는 사나이를 본다.   나는 질투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민과 그 일들이 남몰래  이루어짐을 주목한다--나는 그 모든 일들을 땅 위에서 본다.   나는 전투와 질병과 학정을 보고--순교자와 죄수들을 본다.   나는 바다의 굶주림을 관찰한다--남은 사람들의 연명을 위해 누가 죽을  것이냐 제비 뽑는 선원들을 관찰한다.   나는 노동자와 가난한 이와 흑인들에게 던져지는 오만한 사람들이 모욕을  본다.   이 모든 끝없는 더러움을 나는 바라본다.   보고 들으나 앉은 채 가만히 있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휘트먼의 자기 확대 또는 자기 확산의  스케일의 크기는 전무후무한 것이어서,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어느  시대에도 독자의 의식을 거세게 흔들어 놓고 있다. 그것은 자연의 원시적인  것에서 본질을 찾고, 평범한 것에서 미를 발견하는 멋진 역설적 인식에  넘치는 세계이다.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무서운 항해는 끝났다.   배는 온갖 난관을 헤치고, 찾던 불치도 획득하였다.   항구는 가깝다. 종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들린다.   바라보면 우람한 용골돌기, 엄숙하고 웅장한 배.   그러나 오오 선장이여! 선장이여! 선장이여!   오오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여,   싸늘하게 죽어 누워 있는   우리 선장의 쓰러진 갑판 위.   오오 선장, 나의 선장이여! 일어나 종소리 들으시오,   일어나시라--깃발은 당신 위해 펄럭이고--   나팔은 당신 위해 울리고 있다.   꽃다발과 리본으로 장식한 화한도 당신을 위함이요--당신 위해 해안에  모여든 무리.   그들은 당신을 부르며, 동요하는 무리의 진지한 얼굴과 얼굴   자, 선장이여! 사랑하는 아버지여!   내 팔을 당신의 머리 아래 놓으시오.   이것은 꿈이리라. 갑판 위에   당신이 싸늘하게 죽어 쓰러지시다니   우리 선장은 대답이 없고, 그 입술은   창백하여 닫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내 팔을 느끼지 못하고, 맥박도 뛰지 않고 의지도 없으시다.   배는 안전하게 단단히 닻을 내렸고, 항해는 끝났다.   무서운 항해에서 승리의 배는 쟁취한 전리품을 싣고 돌아온다.   환희하라, 오오 해안이여! 울려라, 오오 종이여!   그러나 나는 슬픔겨운 발걸음으로   싸늘하게 죽어 쓰러져 있는   우리 선장이 잠든 갑판을 밟는다.   *미국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을 선장에 비유하여, 암살에 의한  죽음을 슬퍼하며 그 공적을 기린 시. 나라를 배에 비유한다면 대통령이  선장이라는 비유는 아주 타당하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하면서 높은 교양을 몸에 지니고 대시인이 된  그는 링컨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던 듯하다.     디킨슨     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됩니다   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인생이란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인생은 저쪽   선반 뒤에 있습니다.   무덤지기가 열쇠를 가지고   돌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마치 자기의 도자기처럼   낡아 버리고 말거나 깨지거나 하여   주부가 버린 주전자처럼--   그에게는 좀더 새로운 고급 도자기가 어울려서   낡은 도자기는 깨지고 말 뿐입니다--   당신과 함께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상대편의 눈을 감게 하기 위하여   한쪽 편이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기에   그런 일은 당신에게 무리입니다--   하지만 나로서야 어찌 당신이   싸느랗게 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의 특권이--   그 서릿발의 권리가 내게 없기에--   당신과는 함께 다시 살 수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우고 말기에--   이윽고 그 새로운 은혜도   나의 옛 그리운 눈에는   한갓 서먹서먹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내 곁에서 비쳐 줄 따름입니다--   세상에서는 두 사람을 어떻게 볼까요   당신은 천국을 위해 봉사한 분이라고   모름지기 그렇게 원해 오셨음을 알지만   나로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내 시야를 모두 가리고 말아   나로서는 천국과 같은   더럽혀진 영광을   더 이상 바라볼 눈이 없기에   만일 당신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나와 마찬가지   아무리 내 이름이   천국의 명성에   드높이 울려 퍼진다 하더라도--   만일 당신이 구원을 받고   당신이 안 계신 곳에   나만 높여 있다면   그런 신세야말로 지옥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서로 헤어져 있습시다   당신은 거기에 나는 여기에   그저 문만을 열어 놓은 채   여러 바다를 사이에 두고 기도만 드릴 뿐   거기에 절망이라고 하는   그 하얀 생의 양식만으로--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때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시를 쓰고  있던 여류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1839__86)이다.    아마스트 마을에 살면서 그 근처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디킨슨은  명랑하고 재치 넘치는 학생이었다고 친구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순박하고 엄격한"부친의 감독 밑에 부자유한 생활을  보냈다.   당시 그녀의 집에서 변호사 실습을 하던 청년 벤자민 뉴턴(1821__1852)은  그녀에게 몰래 에머슨 시집을 건네주기도 하고, 그녀의 시를 읽어주던 '단 한  명의 독자'였다. 그러나 이윽고 고향에 돌아가 폐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또한 레오나드 험프리도 디킨슨이 존경하던 아마스트의 친구였고 시를  사랑하던 사람이었으나 일찍 죽었고, 디킨슨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찰즈  워즈워드(Wasworth,1814__1882)목사와는 생이별하게 된다. 그때 디킨슨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공포'라고 그와의 슬픔을 아쉬워한다.   이 무렵 그녀는 비평가 하긴스에게 시를 보내며 '내 시가 살아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며, 마치 수녀처럼 지내다가 오티스(Otis  Lord,1812__1884)와 친구로 지내다가 죽는다.   이 시에 노래되고 있는 내용이 묘하게 비뚤어진 것은 그녀의 이런 삶이  원인일 것이다. 솔직하게 두 사람의 사랑의 찬가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좌절의 심리를 미묘하게 고백한 것이다.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물면서   언어 없는 가락을 노래하며   결코 중지하는 일이 없다.   거센 바람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이 작은 새를 괴롭힌 일로 해서   폭풍우도 괴로움을 느낄 것이니   새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녹여 주었기에.   꽁꽁 얼 듯이 추운 나라와   먼 바다 기슭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괴로움 속에 있으나 한 번이라도   빵 조각을 구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겨우 두세 편이 인쇄되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죽은 뒤에 유고가 정리되어 1890년에 115편이 수록된  시집이 출판되었고, 1896년에 이르기까지 제3시집이 간행되었다.   그 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단되었다가 1945년에 약 600편이 수록된 것이  간행되었고, 1955년에 T.H. 존슨이 엮은 정본시집이 3권으로 간행되었는데,  거기에는 무려 1,77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 수록한 작품의 주제인 '희망'은 생명, 죽음, 아름다움, 진리, 성공 등과  함께 이 시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낱말이다.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또는 한 괴로움을 달래거나   또는 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여류 시인다운 촉감으로 선량한 심정이 따뜻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낄 때, 이 여류시인과 같이 인간 사회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선의로 돌아가 안심하고 싶은 것이다. 소박한 기도와 같은 이 시는 깊은  사색에서 생겨났다 할 것이다.     로빈슨     리처드 코리   언제나 리처드 코리가 시내에 나갈 때면   보도 위의 우리 서민들은 잠자코 그를 지켜 보았다.   그는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신사였고 말쑥한 용모에다 또한 보기 좋게  말랐다.   그는 언제나 점잖은 옷차림을 하고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인간미가 넘쳤다.   그러나 그가 걸어갈 때는 얼굴이 달아 올랐고   "안녕하세요"할 때는 가슴이 떨렸다.   무엇보다 그는 부자--왕보다 부자였다.   그리고 온갖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입장을 부러워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일하며 그처럼 되기를 기다렸고   절약하여 고기도 먹지 않고 빵도 저주했다.   그런데 어느 고요한 여름날 밤 리처드 코리는   집에 돌아가서 제 손으로 머리에 총을 쏘아 죽었다.   *로빈슨(Edwin Arlington Robinson:1869__1935)은 자기 고향인  뉴잉글랜드 메인주에 있는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하여 가공 인물들의 이야기를  썼다.   로빈슨의 시의 특징은 이른바 낭만적 스타일의 감정을 억제하고,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 3자의 눈을 통해서 본 객관적인 에피소드로서의 인물을  이야기하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로빈슨은 미국 현대시의 선구자이다. 그의 시집 '밤의  자식들(1897)'은 상실된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데, 이 면에서도  현대시의 효시를 이루고 있다.     크레인     사막에서   사막에서    짐승 같은 알몸 생물을 만났나니   땅 위에 웅크리고   손에 자기 심장을 들고는   그것을 먹고 있기에   "맛이 있나"물었더니   "쓰지 쓰지만   쓰기 때문에   그리고 내 심장이기 때문에   좋아하지"하고 대답했다.   *감정이 완전히 거세된 이상한 이 작품은 '거리의 여인 매기'와 '붉은 무공  훈장'등 일련의 소설을 쓴 자연주의 작가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s:1870__1900)이 19세기 말에 간행한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19세기 마지막 해에 죽은 그는 이미 20세기의 운명이라 할 삶의 저주와  절망을 예감하고 있었다.   어느 비평가는 '미국 추초의 저주받는 시인'으로 포우가 아닌 크레인을 꼽고  있다.     붉은 악마들   붉은 악마들이 내 심장에서   책의 페이지 위에 뛰어 나왔다.   책으로 눌러 죽일 수 있을 만큼   작은 존재이다.   잉크를 뒤집어쓰고 허위적거리는 것들이 많았다.   내 심장에서 생겨난   이 붉은 오물이 섞인 액체로 글을 쓴다는 것은   개운치 않은 느낌이었다.   *크레인은 28세 때 결핵으로 죽은 것을 미루어 '붉은 악마들'은 토한 혈액  방울을 의미하고 있고, 그것을 인간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죄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크레인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시의 선구자, 이미지스트의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시인이다.     A. 로웰     라일락꽃   여기 뉴잉글랜드의 오월은 라일락꽃   오월은 물푸레나무 가지에서 "해야 떠라"   지저귀는 티티새   오월은 소나무 뒤에 떠다니는 풍선 같은 흰 구름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서 느릿하게 흐르는 흰구름   *로웰(Amy Lowell:1874__1925)은 미국 출신의 여류시인으로서 런던으로  건너가 이미지즘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에즈라파운드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시인들을 가리켜 농담 섞인 말로 '에이미지스트'라 부를 정도로 열성적인  이미지즘의 시인이었다.     R. 프로스트     밤에 익숙해지며   나는 어느 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비 속을 홀로 거닐다 비 속에 되돌아왔다.   거리끝 불빛 없는 곳까지 거닐다 왔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순시하는 야경이 곁을 스쳐 지나쳐도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체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멀리서부터 들려와 다른 길거리를 통해   짐들은 건너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나를 부르기 위해서도 아니요 이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멀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높다란 곳에   빛나는 큰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어   지금 시대가 나쁘지도 또 좋지도 않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프로스트는 의식적으로 모더니즘 스타일의 시를 쓰는 것을 회피하였고,  또한 도시생활을 소재로 다루지 않았다. 그가 다룬 것은 주로 전원으로서 이  시에서도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음율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 '시가 만들어 내는 표상'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유시라 네트를 사용하지 않고 테니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운율의  가치는 테니스에 있어서의 네트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     창가의 나무   내 창가에 서 있는 나무, 창가의 나무여   밤이 오면 창틀은 내리게 마련이지만   너와 나 사이의   커튼은 결코 치지 않으련다.   대지에서 치솟은 몽롱한 꿈의 머리   구름에 이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   네가 소리내어 말하는 가벼운 말이   모두 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무여, 바람에 흔들리는 네 모습을 보았다.   만일 너도 잠든 내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자유를 잃고 밀려 흘러가   거의 절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운명의 여신이 우리 머리를 자주 보게 한 그 날   그녀의 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네 머리는 바깥 날씨에 많이 관련되고   내 머리는 마음 속 날씨에 관련되어 있으니.   *프로스트(Robert Lee Frost:1876__1963)는 미국 뉴잉글랜드의 시인이라  일컬어지지만,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샌프란시스코였다.   로버트가 열 살 때 그의 부친이 결핵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자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뒤로 프로스트는 3년 동안(1912__15)의 영국 거주 이외에는 뉴햄프셔와  버몬트에서 살게 된다.   프로스트의 초기 두 권의 시집인 '소년의 의지(A Boy`s Will,1913)'와  '보스턴의 북쪽'(North of Boston,1914년)은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간 프로스트는 뛰어난 시인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 뒤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져 여러 차례 상을 받았으며, 국민적인  시인으로서 존경을 받게 되었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과 얼어 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이 시는 프로스트의 시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으로써 그의 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고향인 뉴잉글랜드의 겨울 시골 풍경, 고독한 나그네,  마지막 싯구에 나타난 책임감과 인생에 대해서의 의무의 수행 등 엄격한 생활  태도, 특히 마지막 시행은 반복하여 노래함으로 해서 강조되어 있고, 이 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바로 퓨리턴의 땅 뉴잉글랜드태생의 시인다운  진지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가지 않는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 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렵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었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소박한 숲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서두에서부터 마지막  줄의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 인생의 고백에 이르기까지의 전개는 사실(풍경)과  암시(인생 항로)를 평행시키면서 일종의 격조를 지속시켜 주고 있다. 단조로운  묘사 속에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이 숨겨져 있고, 선택한 자기 인생에 대한  회한과 자랑 등 숙명과도 같은 길에 대한 사고 방식이 느껴진다.     와일리      벨베트 신발   하얀 눈 속을 걸으리   소리조차 없는 근방을    고요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마음 고요히 발을 옮기면   내리는 눈은 하얀 레이스의 베일   나는 비단신을 신고 걸으리    그대는 털신을 신으시라.   우유빛 같은 하얀 빛깔   더욱더 아름답구나   갈매기의 가슴털보다   우리는 지나가리라   바람 없는 아늑하고 고요한 거리를.   우리는 밟고 가리라 휜 털을.   털실보다 양털보다 부드러운 그 위를   우리는 신고 걸으리 벨베트 신발.   걸어 가노라면   고요함은 이슬과 같이    하얀 무늬에 떨어지리.   우리는 눈 위를 걸으리라.   *여류 시인 와일리(Elinor Wyilie:1885__1982)의 대표적인 시.   나와 당신은 벨베트 신발을 신고 고요히 내리는 흰 눈의 베일에 싸여  보드러운 눈 위를 걷고 싶다, 말없이 고요하게 천천히 거닐고 싶다는 것이 이  시의 뜻이다. 이 시에는 어쩐지 깨어지기 쉬운 소녀의 무지개 샅은 덧없는  희망이 어려 있는 것 같다.     H.D     과수원   처음 열린 배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금빛 무늬가 있고, 꿀을 찾고 있는    저 누런 꿀벌떼도    나보다 덧없지는 않았다.   (우리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나는 맥없이 쓰러져   외쳤다.   당신은 우리들에게서    당신의 꽃을 빼앗아 버리셨습니다.   과일나무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꿀을 찾는 작업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공기는 그들의 노래로 떠들썩했고   그리고 나는 홀로 엎드려 있었다.   오오 과수원의    조잡스럽게 새겨진 신이여   나는 당신에게 예물을 드립니다--   당신에게 바칩니다.  혼자만 아름답지 않은    신의 아들이여    우리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지 마십시오.   초록 껍질로부터 갓 튀어난    떨어진 개암나무 열매,   보라색 포도   술에 담가진    그 열매.   나는 당신에게 선물로 바칩니다.   *이 시의 작자 H.D는 Hilda Doolittle의 머리글자를 필명으로 하고 있는  미국의 여류시인이다. 그녀는 1886년에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뒤에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외국에서 생활하다 1961년에 죽었다.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에 여성적인 감상을 초월한 생생한 실감이 있다.     산의 정    소용돌이쳐 올라라, 바다여--   네 날카로운 소나무를 소영돌이치게 할지니    네 큰 소나무로   바다 위에서 물거품을 올리게 하라   네 초록색을 우리 위에다 뿌려라   네 물 안개로 우리를 덮으라.   *이 시를 읽고서 "H.D. 이미지스트"라고 명명하여 미국의 '포이트리'잡지에  보낸 것은 에즈라 파운드였다.   그는 '객관적이고--적설적이고--엄선된 은유, 그것은 그리스 사람들처럼  호소 있게 말하고 있다'고 했다.     커밍즈     내가 아직 가 본 일 없는 곳에서   내가 아직 가 본 일 없는 어는 멋진 곳에서    경험을 초월한 거기서 그대 눈은 침묵을 지킨다.   그대의 귀여운 동작에는 나를 감싸는 것이 있고   그보다도 너무 가까워 내가 손 닿지 못함이 있으니   그대의 가냘픈 눈짓도 나를 나른케 만들고   아무리 손가락처럼 자기를 폐쇄하고 있어도    마치 봄이 교묘히 닿아서 이상하게 이른   장미를 열게 하듯이   한 개 한 개 나를 열게 하는 것이다.   그보다도 그대의 바람이 나를 닫는 것이라면   나뿐 아니라 내 인생도 아름답게 갑자기 닫히리니   마치 꽃가루가 주위에 살며시 내리는    저 눈을 느낄 수 있음과 같이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대의 거센 약함의 힘을 이길 수가 없나니   그 느낌은 아름다운 전원 빛깔로 내 마음을 붙잡고   숨쉴 때마다 죽음과 영원을 교대로 주며   (그대의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내 마음의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그대 눈의 소리가 모든 장미보다 깊음을)   그 무엇이나 비조차도 이런 예쁜 손은 아니다.   *세계 제1차 대전 후 미국에는 중요한 시인 두 명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거트루드스타인(1874__1946)이고, 다른 한 명은 커밍즈(Edward Estlin  Commings:1894__1962)이다.    커밍즈는 스타인과 마찬가지로 제1차 대전 후에 헤밍웨이 등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 그 자유롭고 낙관적인 문화적 분위기를 몸에 익히고  귀국하였다.   그의 초기 시집 '튜울립과 굴뚝'(1923)은 그 결과 생겨난 산물로서,  거기에는 프랑스어의 타이틀과 수법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는 영어의 구문법을 해체하여 의식적으로 외국어처럼 시를 쓰고있는데,  이것은 커밍즈의 공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시의 내용을 말한다면 커밍즈의 세계는 의외로 단순한 서정시로서, 이  시에서도 연인의 온화한 소네트에서처럼 찬양하고 있을 뿐이다.     티즈데일     잊어 버립시다   꽃을 잊는 것처럼 잊어 버립시다.   한 때 세차게 타오르던 불을 잊듯이   영원히 영원히 아주 잊어 버립시다.   세월은 고맙게도 우리를 늙게 하오.   누가 만일 물으면 이렇게 말합시다.   그건 벌써 오래 전에 잊었노라고.   꽃처럼 불처럼, 또는 옛날 잊고 만   눈 속에 사라진 발자국처럼 잊었다고.   *미국의 여류 시인인 치즈데일(Sera Teasdale:1884__1933)의 시세계는  일상 생활을 애수 어린 시어로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는 데  있다.     5월 바람   열린 문을 굳게 닫아 버리듯   나는 내 가슴의 문을 닫았다,   사랑이 그 안에서 굶주리어   나를 더 성가시게 굴지 못하게.   이윽고 저 지붕 너머에서   5월의 따사로운 바람 불어오고,   거리에서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난간으로 한 곡조 불리어 왔다.   내 방은 해 비쳐 밝고 밝은데   사랑은 내 안에서 소리 지른다.   "나는 아직 튼튼해, 놓아 주지 않으면   그대의 가슴을 쳐부시고 말 테야."   *퓰리처상 수상자인 티즈데일은 아름다운 무드의 서정 시인으로서 뛰어난  기법으로 수많은 시집을 간행하였으나 고독에 못이겨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파운드     부도덕   사랑과 게으름을 노래하느니   그밖에 가질 것은 없느니라.   내 비록 여러 나라에 살아봤지만,   사는 데 다른 것은 없느니라.   장미꽃 잎은 슬픔에도 시든다지만   나는 애인이나 차지하겠노라.   만인이 믿지 못할 위대한 짓을   항아리 같은 데서 하기보다는.   *파운드(Ezra Pound:1885__1971)는 뛰어나고 민감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시를 순수하게 언어의 예술로 추구하였다. 그 표현에서 곧잘 고전에의 암시나  비유 또는 패러디가 미묘하게 얽혀져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도 엘리어트가  그를 가리켜 '아주 뛰어난 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와 같이 정확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기교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한다.     소녀   나무가 내 두 손으로 들어갔다.   나무 액이 내 두 팔로 올라갔다.   나무가 내 젖가슴 속에 자란다--   아래쪽으로,   나무가지가 나로부터 뻗친다. 두 팔처럼.   너는 나무,   너는 이끼,   너는 바람이 머리 위로 부는 오랑캐꽃.   한 어린애--아주 키 큰--너는,   세상은 이 모두를 어리석게 본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연애시로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또는 기묘한 의인법에  의한 자연시로 읽어도 괜찮겠다. 어쨌든 소녀와 식물이 겹쳐지는 이  그리스적인 메타모르포제의 이미지는 그 경쾌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상스러울 만큼 강렬한 감각적 효과를 내고 있다.     샌드버그     시카고   세계를 위한 돼지 도살자,   연장의 제작자, 밀을 쌓아 올리는 자,   철도 도박사, 온 나라의 화물 취급자.   떠들썩하고 꺼칠한 목소리에 왁자지껄한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도시.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악의 도시라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짙은  화장을 한 너의 여인들이 가스등 밑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흉악한 도시라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갱이  사람을 죽이고, 또한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석방되어 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잔인하다고 하고, 나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부녀자와  어린이들의 얼굴에 심한 굶주림이 깃들여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나의 이 도시를 비웃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비웃음을 돌린 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잔뜩 고개를 쳐들고, 활발하면서 조잡하며 그리고 교활하다는  사실을 이렇듯 자랑스럽게 노래하고 있는 도시가 달리 있다면 어서 내게 보여  다오.   일에 뒤이어 일이 겹치는 고역 속에서 매력있는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조그맣고 연약한 다른 도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키 큰 강타자가 여기에  있다.   공격을 하려고 혀를 날름거리는 개와도 같애 사납고, 황야와 투쟁하고 있는  야만인처럼 교묘하게   맨 대가리고   삽질을 하며   파괴하고   계획하고   건설하고, 부수고, 다시 건설하고   매연에 싸여 입에는 온통 먼지 투성이가 된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고,   운명의 가혹한 무거운 집 아래서 청년처럼 웃으며 전쟁에 패해 본 일이  없는 어수룩한 전사들처럼 웃고 있으며,   그 손목 아래에는 국민의 맥박이 있고, 자기 늑골 아래에는 국민의 심장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껄껄거린다!   반나체로 땀을 흘리면서, 돼지의 도살자이며, 연장의 제작자, 밀을 쌓아  올리는 자, 철도 도박사, 온 나라의 화물 취급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청년과 같이 떠들썩하게 꺼칠한 목소리로 웃고 있다.   *이 시는 '시카고 시집(Chicago Poems)(1916)'의 중심이 되는 작품으로서,  샌드버그(Carl Sandburg:1878__1967)는 이 시집에 의하여 미국 시인 중  현대시의 일류 시인으로서의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14년 H. 먼토가 주재하는 시잡지 'Poetry:A Magazine  of Verse'에 다른 아홉 편의 그의 작품과 함께였는데, 당시 문단에 크나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모더니즘의 새로운 시였다.   거칠고 거대한 신흥 도시를 건장한 사나이에다 비유하면서 그 조잡한  면이나 야만스러운 면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아름다운 도시'로 찬미한 이  힘찬 시는 지금까지의 시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린 것이다.   샌드버그는 휘트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유시 속에다 은어를 사용하면서  민중을 노래했고, 미국 중서부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지난 날의 시가  지녔던 개념을 무시하였으며, 주제도 사용하는 언어도 모두 일상적인 것에서  골랐다.     안개   안개가 내린다   작은 고양이 발에.   안개는 조용히 앉아   말없이 항구와 도시를   허리 굽혀 바라보다가   어디론지 떠나간다.   *고요히 어디에서부터인지 모르게 찾아오는 안개를 작은 고양이에다  의인화한 기교에 이미지스트다운 면이 드러나 있다. 그에게는 많은 자연시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 있는데, 이 시는 작자 회심의 주옥편이다. 거칠기  짝없는 속어(슬랭)를 분방하게 사용한 '시카고'의 작자가 쓴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섬세한 묘사이다.     오든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브리스틀 거리를 거닐었을 때   포도 위의 군중들은   수확철의 밀밭이었다.   넘칠 듯한 강물 가를 거닐었을 때   한 애인이 철로 아치 아래서   노래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사랑은 영원하여라.   그대여, 나는 그대를 사랑, 사랑하리라.   중국과 아프리카가 합쳐질 때까지   강이 산을 뛰어 넘고   연어가 거리에서 노래할 때까지   나는 사랑하리라, 바다가   겹쳐서 매달려 마를 때까지   그리고 일곱 별들이 하늘을 회전하며   거위처럼 꺼억꺼억 울게 될 때까지   세월은 토끼처럼 뛸 것이다.   내 두 팔 안에 세월의 꽃과   세계의 첫 사랑이   안기어 있으니.   그러나 거리의 시계들은 모두가   윌 하고 돌면서 울리기 시작한다--   아, 시간에 속지 말지니라.   너희는 시간을 정복할 수가 없다.   공정이 드러나 있는   악몽의 흙더미 속에서   시간은 그늘에서 바라보며   너희가 키스할 때 기침을 한다.   두통과 근심 속에서   생명은 부지중에 새어 나간다.   그리고 시간은 망상을 한다.   내일이니 오늘이니.   여러 푸른 골짜기에   무섭게 눈이 뒤덮인다.   시간은 얽힌 춤을 부수고   잠수부의 빛나는 몸을 부순다.   아, 너의 손을 물 속에 잠그라.   두손을 손목까지 잠그라.   들여다 보라. 그 물그릇을 들여다 보라,   그리고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라.   빙하가 찬장에서 덜컹덜컹 울고   사막이 침대에서 한숨 짓는다.   차주전자의 터짐 금은   죽음의 나라고 가는 입구이다.   거기서는 거지가 지폐를 걸고   거인은 잭을 홀리게 한다.   백설 소년이 큰 소리로 외치고   질은 누워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아아, 그 거울을 들여다 보라   거기 비친 네 불행을 들여다 보라   사람에게 축복은 줄 수 없어도   살고 있다는 것은 역시 행복되다.   아아, 어서 창문 가에 서 보아라.   흐르는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릴 때   그대의 그 비뚤어진 마음이   비뚤어진 이웃을 사랑할 때이다.   이미 밤도 아주 깊어 버렸고   연인들도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시계도 이제는 울기를 멈추었고   강물은 깊숙하게 변함없이 흐른다.   *오든(Wystan Hugh Auden:1907__)은 미국에 귀화한 영국 태생의  시인으로 T.S. 엘리어트 이후 최대의 작품. Spears는 Auden 자신의 말로  'pastiche of folksong'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오든의 발라드 가운데서 최고  걸작이라 평하고 있다.     보라, 길손이여   보라, 길손이여, 도약하는 빛이 지금   그대 기쁨 위해 드러내 주는 이 섬을   여기 굳건히 서서   말 없이 있으라.   그래서 귀의 채널을 통해   바다의 흔들리는 소리가   강물처럼 헤매어 들어오도록,   여기 작은 들판 끝에 정지하라,   그 곳엔 백악 절벽이 물거품 속에 떨어져있고 높은 바위 선반이   조수의 끌어당김과   타격을 물리치고,   또 조약돌이 빨아 들이키는   파도 위로 딸려 가고, 그리고 갈매기 잠시   가파른 파도 위에 머문다.   저 멀리 떠도는 씨앗처럼 배들이   긴급스러운 자발적인 일들로 헤어져 간다.   그리고 이 전경은   정말 기억 속에 들어가 움직이리라.   마치 항구 겨울을 지나가는 그리고 여름 내내   물 위를 헤매는 이 구름들이   지금 움직이고 있듯이.   *영국 남해안에 가까운 화이트 섬의 여름 풍경을 노래한 시. 일종의 담백한  스케치이지만 마치 파도 소리가 들려오듯 명쾌한 시이다. @ff     프랑스편 @ff     비용     옛 미녀를 노래하는 발라드   내게 말하라 어느 나라 들판에   로마의 미녀 플로라1)는 있는가   아르키피아데스2)와 또한 타이스3)는   그 아름다움에서 한 핏줄의 자매니라.   강물의 언저리나 연못 가에서   부르면 대답하는 메아리 에코4)   그렇게 아름다운 것 세상에 없느니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어디 있는가 지성 높은 엘로이즈5)   그녀 탓에 아벨라르는 남성을 잃고6)   생드니에서 수도승이 되었나니   사랑 탓에 당해야 했던 괴로움이어라.   지금 어디 있는가 뷔리당7)을    자루에 집어넣고 센 강에다   던지라고 명령한 여왕님은8)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어 같은 목소리로 기막히게 노래하던   백합 같은 흰 얼굴의 블랑슈 태후9)   발이 큰 베르트 공주,10) 비에트리스11) 그리고 알리스12)   멘느 고을 다스리던 아랑뷔르지스   루앙에서 영국인이 화형에 처한   로렌의 위엄있는 잔느,13) 이 여인들은   지금 어디 계신가, 성모님은 아시는가   오 옛 미인들은 어디 있는가.   노래하는 그대여,14)내가 말한 미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말아라.   가락 없이 후렴만 되풀이하자   오오 옛 미인들은 어디 있는가.   역주 1)아름다왔던 여인만 해도 세 명씩이나 된다. 첫째가 꽃의 여인,  둘째가 폼페이우스가 사랑했던 창녀, 세째가 풍자시(유베나리스 지음)에  나오는 아름다운 창녀임.   2)소포클레스가 사랑했던 아르키파인 듯.   3)아테네의 유명한 창녀가 알렉산더의 정부. 혹은 이집트의 창녀로 원래가  창녀였던 여자(이 여인에 관해서는 아나톨 프랑스가 소설화 했음.)   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의 요정인 님프.   5)스승 아벨라르와 깊은 사랑에 빠졌던 미녀. 뒤에 수녀로 평생을 지냈다.   6)아벨라르는 원수의 습격을 받아 성기를 잃고 말았다.   7)Buridan(1315__58)철학자. 음탕한 여왕을 골려 주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8)젊은 사나이를 유혹한 뒤 결국 죽었다는 전설상의 여왕은 그 수가 많아  누군지 분명하지 않다.   9)루이 6세의 어머니.   10)샤를마뉴 대왕의 전설적인 어머니.   11)루이 8세의 아들인 샤를르의 처.   12)루이 7세의 세 번째 아내.   13)잔느 다르크(1412__31).   14)발라드형식은 후렴구에 이 낱말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유럽 중세 말기의 비참과 혼란속에 파리에서 태어나, 괴로움에 단련되어  인간 사회의 모습과 자기 내부를 노래한 시인이  비용(Francois:1431__63)이다.   백년 전쟁 말기의 프랑스는 비참과 혼란의 시대였고, 비용이 그 시정신의  불가사의한 빛으로써 그 혼탁한 사회를 비추어도 거기에 어두움이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어두움 속에 있었기에 자기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뉘우침과 인간으로서의 자학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약함으로까지  고양되어 우리에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유언서'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자진해서 질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마음의 자화상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얼굴이 죽음을  응시할 때 우리는 특히 그 시선에서 엄격스러움을 읽게 된다.   그의 생애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이어서 절도와 감옥 생활, 방랑과 굶주림,  나중에는 교수형 선고를 받는다. 사형은 마지막 순간에 면했으나 10년 동안의  파리 추방령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1463년 1월 이후 그의 소식은  묘연해지고 만다.   그의 걸작 '유언서'는 1462년 파리에서 완성되었는데, 전편이 2,023행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작품이다. 그 외에 단장시 16편이 전해지고 있다.     회한   늙음의 입구에 서기까지   남달리 즐겨왔던 나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떠남을 숨겼던 나의 젊은 시절을,   나는 슬퍼한다.   그 시절은 걸어서 가버린 것도   말을 타고 가버린 것도 아니니 도대체 어떻게 가버렸단 말인가?   결국 느닷없이 날아가 버린 채   나에게 남겨준 것 아무 것도 없어라.   그 시절은 가버리고,   나는 세금도 연금도 가진 것도 하나 없이   슬프고 막막하여 검은 오디 열매보다도 더욱 암담한 모습으로   이곳에 머물러 있다.   사실 말이지만, 친척 가운데 가장 하찮은 자가   내 수중에 몇 푼의 돈이 없다 하여   당연한 의무를 망각하고   나를 모른 체하기에 급급하니.   아, 한심하도다. 미친 듯한 내 젊은 시절에,   배움에 열중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였다면,   나도 지금쯤은 집도 푹신한 침대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건만,   허나 어떠했는가! 마치 악동처럼   나는 학교를 등지고 떠났으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아라.   그 옛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토록 노래 잘하고 말 잘하며   언어와 행동이 그토록 유쾌하던   우아하고 상냥한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몇몇은 죽어 차디차게 굳어버렸으니   그들에게서 남은 것 이제는 아무 것도 없어라.   천국의 안식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자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 몇몇은 다행히도 대영주나 기사가 되기도 하였으나,   또 몇몇은 온통 헐벗은 채 걸식하며   창문을 통해서나 음식을 구경할 뿐이고,   또 몇몇은   굴 따는 사람처럼 각반 차고 장화 신고   셀레스텡이나 샤르트뢰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신분 다양도 하지 않은고?     롱사르     마리의 사랑   일어나라, 요 귀여운 게으름뱅이,   종달새 노래 벌써 하늘에 높고,   찔레꽃 위에 앉아 꾀꼴새도,   지절대고 있지 않니 정다운 노래를.   자! 일어나 진주 맺힌 풀을 보러 가자,   봉오리 관을 인 장미나무랑,   엊저녁에 정성스런 손으로 물 준   예쁜 내 패랭이꽃들을 보러 가자.   어젯밤 잠잘 땐 오늘 아침에,   나보다 먼저 깬다고 맹세했었지.   허나 예쁜 소녀에겐 곤한 새벽잠   거슴츠레한 눈엔 아직도 단잠.   자아, 자! 네가 어서 일어나도록   눈이랑 젖꼭지에 뽀뽀해 주마.   롱사르(Pierre de Ronsard:1524__85)는 프랑스 르네상스 최대의 시인이다.  젊은 롱사르는 중세 말기의 쇠약해진 시를 혁신하여 프랑스의 시를 혁신한  공로자이다.   롱사르는 18세 때 통풍으로 반벙어리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신앙과 문필  생활에 들어갔다. 한 때는 프랑스의 '시왕'으로 숭앙되기도 했으나, 만년에는  생 콤투르의 수도원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롱사르와 엘렌의 관계는 1570년 이후 겨우 몇 해에 걸쳐서였는데,  '엘렌에게 보내는 소네트'가 발표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끝장난 뒤였다고 한다. 그러나 엘렌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소네트는 가을의  우수와 네오플라토니즘의 투명한 서정에 싸여 롱사르의 이름을 영원한 것이  되게 하였다.   프랑스의 현대 시인 레이몽쿠노는 이 롱사르의 작품에서 구절을 따다가  '만일 네가 바란다면'이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J. 코스마에 의해 작곡되어,  가수 그레코의 18번 샹송이 되었었다.   "자, 어서 꺾어라 꺾어.   장미를, 장미꽃을,   생명의 장미꽃을."     라 퐁테느     노인과 세 청년   여든 살 노인이 나무를 심었다.   '집을 짓는다면 몰라도, 그 나이에 나무를 심다니.'   이웃의 세 청년이 말했다.   정말 노인은 노망이 들었다.   '왜냐하면, 제발 너희들이 해보지,    이 수고의 어느 열매를 너희들이 거둘 수 있을까?   족장만큼이나 너희들이 늙어야 할 텐데   인생을 너희 것도 아닌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부터는 예전의 과오밖에는 생각하지 말라.   그 오랜 희망과 막연한 생각을 거침없이 버리라.   이것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   너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지.'   노인은 다시 일을 계속했다. 이룸은   늦게 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운명의 여신은 창백한 손으로   너와 나의 앞날을 똑같이 가지고 논다.   우리의 종말은 짧다는 점으로 비슷해   우리들 중의 그 누가 맨마지막으로   창공의 광명을 즐길 수 있을까?   단 일초라도 너희 것이라고 보장해 주는 순간이 있을까?   내 자손들이 즐길 이 나무 그늘은 내 덕분이지.   그래, 너희들은 현인이 남들의 즐거움을 배려해주는 것을 금하고 있지.   이것도 오늘 맛보는 과일이야.   내일도 난 그걸 즐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렇지.   나는 이제 너희들 무덤 위에 바치는 새벽빛을 샐 수 있어.'   노인은 옳았다. 세 청년 중 하나는   아메리카로 가다가 항구에서 익사하고,   다른 하나는 출세하기 위해   공화국 군대에 입대했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었다.   세 번째 청년은 그 자신이 접목하려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리석 위에 새겨 놓았다.   지금의 이 이야기를.   *퐁테느(Jean de La Fontaine:1621__1695)는 프랑스인이면 누구나 다  국민학교 때부터 애독하는 우화시 240편을 남긴 고전주의 시대의 이채로운  존재다. 유복한 부르조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관직과 아내를 버리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려고 파리로 나와, 문학에 심취하여 불후의 명작  "우화시집(Les Fables)"을 내놓았다. 그는 생애를 통해 어떤 의무도 지기  싫어하는 에고이스트였으며, 그의 에고이즘은 타산에서 온 게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의 우정과 관대를 얻을 수 있었다.     라마르틴     호수   이렇게 늘 새로운 기슭으로 밀리며   영원한 밤 속에 실려 가 돌아오지 못하고   우리, 단 하루라도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닻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오오 호수여! 세월은 한 해의 운행조차 못했는데   그녀가 다시 보아야만 할 정다운 이 물가에   보라, 그녀가 전에 앉아 있던 이 돌 위에   나 홀로 앉아 있노라!   그 때 너는 바위 밑에서 흐느끼었고   그 때도 너는 바위에 부딪쳐 갈라지면서   그 때도 너는 물거품을 내던지고 있었다.   사랑스런 그녀의 발에.   그 날 저녁의 일을 그대 기억하는가.   우리 말없이 배를 저을 때 들리는 것이란   이 지상에서 오직 조화있게 물결 가르는   우리의 노 젓는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이 세상의 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가   먼 둔덕 기슭으로부터 울려 왔느니   물결은 갑자기 고요해지고 그윽한 소리는   내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오 시간이여 운행을 멈추고   너 행복한 시절이여 흐름을 멈추라!   우리네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로   덧없는 기쁨이나마 맛보게 하라.   수많은 불행한 이들이 너를 기다리느니   시간이여 그들을 위해 빨리 가거라.   그들의 불행도 시간과 함께 앗아가고   행복한 사람일랑 잊어 버려 다오."   이 잠시의 유예나마 바람은 쓸데 없는 일   시간은 나를 비껴 자꾸만 달아나고   나는 밤을 향해 "천천히 밝아라"말했으나   새벽은 서둘러 와 밤을 쫓는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덧없는 시간이니   이 짧은 시간을 어서 즐겨야지.   사람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에 기슭이 없나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사라지네!"   시샘 많은 시간이여, 사랑겨운 이 순간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이 도취의 순간도   저 불행의 날처럼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리 날아 가야만 하는 것인가?   뭐! 도취의 흔적조차 남겨 둘 수 없다고?   뭐, 영원히 갔어? 뭐라고! 사라졌다고?   도취를 주었던 이 시간, 또 지우는 이 시간이   다시는 돌려 지지 않을 것인가?   영원, 허무, 과거, 또한 어두운 심연이여,   너희가 삼킨 날들을 어찌하려 하는가?   말하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지상의 도취를   언제면 우리에게 돌려 주려나?   오 호수, 말없는 바위, 동굴, 검은 숲이여!   때에 따라 변치 않고 다시 젊어지는 그대들이여   이 밤을 간직하라,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추억만이라도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그대의 휴식이든 폭풍 속이든   또한 그대의 미소짓는 언덕의 모습에서든   검은 전나무나 또한 바위 위에 뾰족 솟은   이 거치른 바위 속에서든 간에!   살랑살랑 부는 산들바람 속에서든지   메아리치는 호수가의 그 노래 속에서든지   그대 수면을 부드러운 빛에서 희게 물들이는   은빛 이마의 별 속에든지!   흐느끼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호수의 향긋한 가벼운 향기   듣고 보고 숨쉬는 모든 것이 속삭이리니   "그들은 서로 사랑하였느니라!"   *라마르틴(Alphonsc de Lamartine:1790__1869)은 부르고뉴의 미콩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애정어린 보살핌으로 행복한 유년시대와 소년 시대를  보냈다.   리용과 베레에서 학교를 마친 뒤 1811년 이탈리아에 여행하여 나폴리의  아가씨 안토니에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1819년 엑스 레방 온천장에 가서 "검은 머리와 아름다운 눈을 지닌"여성  줄리 샤를르 부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인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으며  다음 해에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부인은 폐병으로 중태에 빠져  있었고, 그해 겨울에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줄리 샤를르 부인에 대한 정열적인 그리움과 씻을 길 없는 우수는  라마르틴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그 감정을  '호수''고독''골짜기''가을''저녁'등 24편의 시에 노래하였다. 그것이 처녀  시집인 '명상시집(1820)'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낭만적인 가락을 사용하여 오래 잊혀져 있던 서정을  프랑스 시에다 다시금 불러 들였고, 낭만주의의 막이 오르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명상 시집'의 대성공에 확신을 얻은 그는 1820년부터 10년 동안에 걸친  이탈리아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보내면서 시작생활을 계속하여 '신  명상시집(1823)' '소크라테스의 죽음(1823)' '해롤드의 순례의 마지막  노래(1825)' '종교시집(1830)'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최후의 서정 시집인 '정관시집(1839)'을 출판한 뒤에는 정치에 전념하여  1848년의 2월 혁명에서는 임시 정부의 외무장관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뒤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에게 크게 패하여 1851년의  제2제정의 출현이 그의 정치 생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만년에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펜의 노예'가 되어 원고를 쓰게  되었고, 수많은 산문의 명작을 창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피곤에  지쳐 실의 속에 이 세상을 떠났다.   1816년 10월. 사보와의 온천지 엑스 레방에서 요양하고 있던 26세의  시인은 늙은 과학자의 젊은 부인인 줄리 샤를르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다음 해 파리에서 다시 만났으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고, 10월에 시인이  '엘비르'라고 부르던 그 여자는 병사하고 만다.   젊은 날의 그 덧없는 사랑의 회상을 자연의 정감과 무한에 대한 기원 속에  노래한'명상시집'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이 한 편이다. 호수는 상베리에서  가까운 르브루제 호수이다.   이 시는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한 편으로 애송되고  있다.     비니     늑대의 죽음   1   훨훨 타오르는 불길 위로 번져가는 연기처럼   구름이 불덩이 같은 달을 감싸면서 흐르고 있었고,   숲은 아득한 지평선 끝까지 검기만 하였다.   우리는 아무말도 없이, 축축한 풀밭 위로   깊은 숲속 키큰 히이드가 우거진 황야를 걷고 있었다.   그때, 랑드지방의 전나무 숲 같은 속에서   우리가 추적해온 방랑자 늑대의 커다란 발톱자국을 보았다.   숨을 죽이고, 발을 멈춘 채   우리는 들어보았다. --숲도 들판도 아무런 한숨소리를 허공에 토해 놓지  않고 있었다.   다만    검은 바람개비만이 창공을 향해 윙윙 소리내고 있었다.   땅 위에서 높이 떠돌고 있는 바람은   여기저기 외롭게 떨어져 있는 망루들만을 겨우 스쳐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망루 밑의 참나무들은, 비스듬한 바위에,   팔꿈치를 고인 채 잠들어 누워 있는 듯하였다.   아무 소리도 들릴 리가 없었다. 그때, 머리 숙여   살펴보고 있던 사냥꾼들 중에 제일 늙은이가   바싹 몸을 엎드리면서 모래를 내려다보았다.   곧 이어   이런 일에 한 번도 실수한 일 없는 그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 생생한  자국들은   두 마리 큰 늑대와 두 마리 새끼 늑대의 힘찬 발톱자국들임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우리 모두는 칼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총과 흰 섬광을 내는 칼을 숨기면서   나뭇가지를 헤치면서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세 명이 우뚝 멈춰 섰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보고 그러는가 하고  두리번대다가,   갑자기 불 뿜는 두 개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그 넘어로 네 개의 민첩한 형상들이   숲 한가운데에서 달빛을 받으며 너울너울 춤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매일 주인이 돌아올 때마다   큰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사냥개의 모습 같았다.   그들의 생김새와 춤추는 모습이 사냥개와 흡사했다.   그러나 새끼 늑대들은 그들이 적인 사람들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반쯤 잠든  채 누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조용조용히 춤추고 있었다.   아비늑대는 서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어미늑대는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털이 잔뜩 난 옆구리로   반신반인 레뮈와 로밀뤼스를 품어 주고 있던 그 옛날의 로마인들이  찬양하던 대리석 암늑대의 모습 같았다.   아비늑대가 와서 앉았다. 두 발을 똑바로 뻗어   갈퀴모양의 발톱을 모래에 폭 박았다.   기습을 당했으니 도망칠 길은 막혀버렸고,   모든 길이 막혀버렸으니 이제 끝장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때 그는 불타는 입을 벌려   가장 크고 대담한 사냥개의 헐떡이는 목을 꽉 물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쏜 총알이 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도   우리의 예리한 칼이 집개처럼   그의 넓은 내장을 이리저리 찢어 휘둘러대도   목 물린 개가 그보다 훨씬 먼저 죽어서   그의 발 밑에 굴러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강철과 같은 턱을 풀어 놓지 않고 있었다.   그때, 늑대는 개를 풀어버리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허리에 손잡이까지 찔러 박힌 칼들은 피로 흠뻑 물들은 풀밭에 그를  못박은 것 같았다.   우리의 총들이 무시무시하게 그를 빙 둘러쌌다.   우리를 다시 한 번 노려보고 나서, 늑대는   입가에 흘러 퍼지는 피를 핥으면서 다시 누웠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죽는가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큰 눈을 감으며, 외마디소리도 지르지 않고서 죽어갔다.   2   나는 화약 없는 총대에 이마를 기대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미늑대와 새끼들을   추적할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 셋은   아비늑대를 기다렸을 것이다. 나의 생각대로라면,   아름답고 슬픈 어미늑대는 두 마리 새끼만 없었다면,   아비늑대 혼자서 그 뼈아픈 시련을 겪도록 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어미늑대의 의무는, 새끼들을 구해   배고픔을 참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했고,   잠자리를 얻기 위하여 인간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숲과 바위를 최초에 소유한 늑대들을 몰아내고 있는   비굴한 짐승인 개들과 인간이 함께 맺은   도시의 계략에 결코 빠져들지 않도록 가르쳐야 했다.   3   아! 인간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우리는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약하며,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생명과 고난을 어떻게 마무리져야 하는가를   고귀한 동물이여, 너만은 아는구나.   땅 위에 살면서 거기에다 우리가 남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침묵만이 위대하고, 그밖의 모든 것은 연약할 뿐이다.   --아, 야생의 여행자여, 나는 너를 잘 이해하겠다.   너의 마지막 시선은 나의 심장에까지 와 닿았다.   너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근면하고 깊이 사색해서   이 드높고 고결한 스토아적인 경지에 이르게 하라.   숲에서 태어난 나는 쉽사리 그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   신음하고, 울고, 기도함은 모두 비겁하다.   운명이 너를 인도해가는 길에서,   힘차게 너의 길고 무거운 삶의 과업을 수행해 가라,   그리고 나서, 나처럼 시련을 견디며 말없이 죽어가라.   *비니(Alfred de Vigny:1797__1863)는 귀족 출신으로 군인으로서  출세하려던 그의 야망이 좌절당하고 나서, 살롱의 권유로 문단에 데뷔하여  조금씩 성공을 하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불행하고 환멸에 찬 인생을 보냈다.  그의 작품으로는 "근고시집(Poemesantiques et modernes)"과  "운명시집(Les Destinees)"의 두 권의 시집이 있으며, 산문 빛 소설도 많다.  그의 작품에는, 그의 운명을 지배한 프랑스 혁명에 의해 몰락한 귀족으로서의  울분과, 또 철학적인 사색가로서의 천성을 보여주며, 지적으로 우위에 있던  인간의 어느 것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결백성을 엿볼 수 있다.     네르발     환상   그 곳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버리리니   롯시니도 모짜르트도 그리고 베버도.   활기 없고 아주 오래 된 그 곡은   내게만은 은밀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 곡을 들을 때마다   나의 혼은 200년씩이나 젊어진다.   루이 13세 시대... 내게는 보이는 듯하다   석양이 황금빛으로 물들인 푸른 언덕이 펼쳐지는 것을.   그리고 돌로 둘레를 쌓은 벽돌 성벽,   붉은 색깔로 물든 스테인드 글래스의 창,   커다란 공원으로 둘러싸여 성의 발목을 적시며   시냇물은 꽃들 사이를 흘러 간다.   그리고 한 귀부인이 높다란 창가에   금발에다 검은 눈동자로 옛날 의상을 걸치고 있다.   모름지기 전생에서 내가 이미 보았고   지금 내 회상 속에 되살아난 여인이어라!   *네르발(Gerard de Nerval:1808__1855)은 오랫동안 프랑스문단에서  묵살되어 왔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제 1의 서정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로티에서 프로스트에 이르는 문학계열에 깊은 영향을 준 작가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정신착란과 표류와 방황의 일생을 보냈고, 종래는  거리에서 목매어 죽었다. 해서 그는, 낭만정신의 화신이라고까지 불리운다.   시집으로는 12편의 소네트로 구성되어 있는 '환상 시편(1854)'이 있다. 이  12편의 시편은 어느 것이나 주옥같은 절창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네르발의 유명한 말에 '꿈은 제2의 인생'이란 것이 있는데 그는 '환상 시편'  헌사에서도 '이 소네트는 독일 사람들이 말하는 초자연주의적인 몽상상태에서  창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고     올랭피오의 슬픔   어두운 들은 아니었다, 암울한 하늘은 아니었다.   아니, 아침 해는 빛나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에   누워 있는 대지에.   하늘은 향기로 목장은 초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찍이 정열이 그렇듯 마음을 상처네 주던 여기에   내가 다시 찾아왔을 때에!   가을은 미소짓고 있었다. 언덕은 평지를 향하여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숲을 기울고 있었다.   하늘은 황금빛이었다.   새들은 만물이 사모하여 부르는 하느님을 향해   모름지기 인간이 무슨 말인지 말하며 노래한   거룩한 가락에 맞춰 노래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보고 싶었다.   숲 속의 샘과 주머니 털어 적선하던 그 오두막집   가지 숙인 이 늙은 물푸레나무   숲 속의 눈에 띄지 않는 사랑의 은신처   일체를 잊고 두 영혼이 용해될 때까지 그 속에서   입맞추던 나무구멍을!   그는 찾았다, 마당을 또 외딴 집을.   오솔길을 내려다보는 문의 철책과   경사진 과수원을   그는 창백하게 걷는다--무겁게 딛는 발자취 따라   그는 본다, 아아! 하나하나의 나무에서 일어나는   지나간 날의 망령들!   그는 듣는다, 숲에서 그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이고   바람은 마음 속의 모든 것을 떨게 하면서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떡갈나무를 뒤흔들며 장미를 스쳐   하나하나의 사물 위에 깃들려 하는   만물의 혼인가 여겨진다!   쓸쓸한 숲에 떨어지고 있는 나뭇잎은   그의 발 밑에서 땅으로부터 날아 오르려고   마당 한가운데를 달린다.   우리의 추억 역시 그와 같이 때에 따라 혼이 침잠하게 될 때   상한 날개로 한 차례 날아 오르고서는   즉시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는 오래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들판에 자연이   장엄한 형태로서 나타나 있는 것을   그는 저녁 때까지 꿈에 잠겼다.   하루 종일 그는 방황했다, 골짜기의 물을 따라   하늘의 숭고한 얼굴과 호수의 맑은 거울을   하나하나 모두 찬미하면서!   아아! 생각나는 감미로운 사랑의 모험.   천한 종처럼 들어가지도 못하고 울타리 너머로   모양을 살펴보면서   그는 온종일 방황했다. 밤이 날개펼 무렵   그는 느꼈다, 무덤과 같이 쓸쓸한 마음을   그리고 외쳤다--   "오오, 이 서글픔! 혼의 착란. 나는 알려했다.   정열의 액은 어느 만큼 아직 이 병에 남았는지.   나는 보려 했다, 내 마음이 여기에 남긴 것들을   이 행복의 골짜기가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실로 짧은 세월로 족하다!   신선한 표정의 자연, 어찌 너는 빨리 잊고 마는가!   그 탈바꿈 사이사이에 왜 무참히 자르는가   우리의 마음이 맺어져 있는 신비의 실을!   우리 둘이 묵던 나뭇잎 방은 숲이 되었다!   우리 둘의 머리글자를 새긴 나무는 말라 버렸는가 쓰러졌는가?   우리 둘이 키운 정원의 장미는 도랑을 넘어   놀러 오는 아이들 발굽에 망가지고 말았다.   샘은 돌담에 싸였다. 무더운 오후 숲에서 내려와   장난스럽게 그녀가 마시던 샘물   손바닥에 물을 떴었지, 아아 귀여운 요정이여,   그리고 흘렀지, 손가락 사이로 예쁜 진주를!   길은 험해져 울퉁불퉁 돌이 삐졌다. 지난 날에는   깨끗한 모래길이었다--거기 또렷이 박힌   그녀의 작은 발이 그것보다 너무나 큰 대조를   귀엽게 웃는 듯 보였다. 내 발과 나란히 서서!   헬 수 없는 세월을 겪은 길가의 바위   일찍이 나를 기다리기 위해 그녀가 앉았던 곳   그 돌 역시 닳아졌다, 저녁 길에   삐걱거리며 굴러 가는 수레바퀴에,   우리 둘의 것이었던 모든 것에서 살아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불이 꺼져 싸느랗게 된 잿더미처럼   수많은 회상은 바람따라 흩어진다!   우리 둘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의 때는 지나갔는가?   오고가는 그 때는 아무리 소리쳐도 헛되단 말인가?   내가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바람은 나뭇가지와 희롱하고   집은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둘이 있던 곳에는 다른 사람이 머물리라.   우리 둘이 오던 여기에 이제 다른 사람이 오리라.   일찍이 우리 둘의 혼이 꾸기 시작한 꿈을   이제는 그들이 보리라, 영원히!   아무도 이 세상에서는 모두 다 볼 수 없는 것이니.   인간의 가장 나쁜 점도 가장 좋은 사람처럼   우리 모두는 같은 곳에서 꿈을 깨어난다.   모든 것은 이 세계에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저쪽에서 끝난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 흠없는 남녀가 찾아 오리라.   이 행복하고 한적한 매혹의 안식처에서   호젓한 사랑에 섞여지는 자연 풍물의   몽상과 장엄 모든 것을 길어 올리리라!   우리의 들과 오솔길과 은신처를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리라.   내 사랑하는 이여, 네 숲은 낯선 남녀의 것이 되리라.   체면을 모르는 여자들이 목욕하러 와서   네 맨발이 닿은 깨끗한 물결을 흐리게 하리라.   그래! 여기서의 우리 사랑은 헛되었었단 말인가!   꽃 피는 이 언덕, 정열의 불꽃을 섞으며   우리 두 존재가 하나 된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무감각한 자연은 재빨리 모든 것을 빼앗았다.   오오! 말하라 골짜기여, 찬 시내여, 익은 포도여,   새둥지 가득한 가지여, 동굴이여, 숲이여, 딸기여   너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속삭이는가?   다른 사람을 향해 노래하는가?   우리는 너희를 친절하고 주의 깊고 엄격하게 이해하였고   우리의 메아리는 깊이 너희 소리 속에 융해되었다!   우리는 아주 열심히 귀 기울였다. 너희 비밀을 범하지 않고   너희들이 이따금 말하는 심원한 말에!   대답하라 해맑은 골짜기여, 대답하라 쓸쓸한 땅이여,   아아, 마을에서 이 떨어진 아름다운 장소에 깃든 자연이여,   무덤의 모양이 영원한 명상으로 돌아간 죽은 자들로 하여금 취하게 하는   그 모습으로 우리 둘이 잠에 빠질 때에도   그대는 계속해서 무감동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그 사랑과 더불어 죽어 누워 있는 우리를   그대의 평화로운 즐거움에 계속하면서   여전히 미소지으며 여전히 노래할 것인가?   그대의 산이나 숲이 즉시 분별해 주는 망령의 모습으로   그대의 은신처에서 방황하는 두 사람을 알아 보고   그대는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인가,   재회한 옛 친구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은밀한 사실들을?   그대는 슬픔과 탄식조차 없이 볼 수 있는가,   일찍이 거닐던 곳에 우리 옛 그림자가 방황함을.   또한 눈물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샘물가로   사뿐히 껴안으며 나를 인도하던 그녀의 모습을?   눈뜬 사물 하나 없는 어두움 속에 사랑하는 남녀가   그 도취를 은밀히 그대의 꽃그늘에 기대어 있다면   그 귀에 그대는 속삭이러 가지 않겠는가--   "너희들 살아 있는 자여, 죽은 자를 생각하라!"   신은 잠시 동안 우리에게 목장과 샘과   소근대는 넓은 숲과 깊은 부동의 바위굴과   푸른 하늘과 호수와 평야를 주시고,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마음과 꿈과 사랑을 안겨 주신다.   이윽고 모든 것을 거두어 가고, 신은 우리의 불꽃을 불어 끄신다.   우리가 불빛 밝히는 동굴을 신은 어두움 속에 잠기게 한다.   신은 우리 혼이 새겨진 계곡을 향해 우리의   흔적을 지우고 우리 이름을 잊으라고 하신다.   그래라! 우리를 잊어라, 집이여 마당이여 나무 그늘이여!   풀이여, 우리 문을 황폐하게 하라! 가시 덤불이여, 우리 발자국을 가려라!   새들아 노래하라! 시내여 흘러라! 나뭇잎이여 울창하라!   너희는 잊더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못한다.   너희는 우리 사랑의 반영 그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행 도중에 만나는 오아시스이다!   오오 골짜기여, 너는 최상의 은신처,   네 속에서 우리는 마주 손잡고 울었었다!   정열은 나이와 더불어 사라지고, 그 어떤 것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어떤 것은 비극의 칼을 늘어뜨리고서   유랑악단의 떠들썩한 한 패거리처럼   그 무리는 언덕 너머로 멀리 사라져 간다.   그러나 사랑이여, 아무것도 매혹스러운 너를 지을 수는 없다!   흐릿한 안개 속에 빛나는 너, 타오르는 횃불, 계속 불타는 등불   너는 기쁨으로 또 특히 눈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젊은 때는 너를 저주하고, 나이 들면 너를 찬양한다.   세월의 무게에 머리가 힘없이 수그려지는 날,   인간이란 계획도 목적도 환상도 없고   이제 자기가 묻힐 묘석밖에 없고   그 아래 덕의 힘도 사랑의 환상도 모두 묻혀지는 것을 느끼는 날,   우리 혼이 꿈꾸며 우리 존재의 깊숙이 내려가   드디어 얼음으로 화한 우리 마음 안에   흡사 전장에서 시체를 세듯 하나 또 하나   쇠퇴한 고뇌와 사라진 몽상을 셀 때,   현실의 대상, 활짝 웃는 세계에서 멀리   마치 등불을 손에 들고 탐구하는 사람처럼   그 혼은 어두운 언덕길을 지나 느릿한 걸음으로   내부의 심연에 내동댕이쳐진 쓸쓸한 곳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 어떤 빛도 비치지 않는 칠흑 속   모든 것이 다해진 것처럼 생각되는 곳에서 혼은 느낀다,   아직 무엇인가 베일에 가려 숨쉬고 있음을--   바로 그것은 어둠 속에 잠자는 그대이러니, 오오 거룩한 회상이여!   *올랭피오는 올리포스 산의 뜻으로 위고가 시집 '내심의 소리'(1837)이래고  사용한 자칭으로서 세상 평판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로 불투명한 세계를  내려다보는 위고의 사상과 예술의 상징적 분신이다.   이 시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자연은 파리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인 비에브르  골짜기라고 일컬어지는 지방으로 위고는 가족과 함께 1834년과 35년 가을을  그 근처에 있는 친구의 소유지에서 보냈다. 애인인 줄리에트 도루에도 이  지방의 레머스라는 마을의 농가를 세내어 살면서, 두 사람은 그 농가를  중심하여 부근의 숲과 언덕에서 매일 뜨거운 정열을 불태웠다. 올랭피오라는  분신이 탄생한 것은 그 때 그 자연 속에서이다.   위고는 1837년 가을에 혼자서 이 땅을 방문하였다. 농가의 주인은 부재여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자연은 회상에 충실치 못했고,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모든 것이 돌변한 사실을 느끼고, 그 인상을 사랑의 회상과 비애하고  하는 주제로 하여 거기 머무는 동안에 즉시 작품화한 것이 이 작품이다.   자필 원고에는 제목이 없고, '나의 줄리에트를 위하여, 1837년 10월,  비에브르 골짜기를 방문하여 짓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시는 단순히 낭만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시 가운데서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라마르틴의 '호수'와 뮈세의 '회상'과 더불어 낭만파  대시인의 3대 애정시로 꼽히고 있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__85)는 모름지기 프랑스의 모든 시인들  중에서 가장 웅변적인 시인이다. 이 낭만파의 거장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을  부친으로 브장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보낸  뒤 파리에 정착하였다.   20세 때 벌써 최초의 시집을 출판하였고, 희곡 '크롬웨(1827)' 서문에서는  낭만주의 선언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설로는 '노트르담 드 파리(1831)'이  유명하다.   시집으로는 서사시 '제세기의 전설'을 비롯하여 서정 시집'빛과  그림자(1840)등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인류의 교화자요, 예언자로의 사명을 타고 났으며, 국민의  지도자, 우주의 음향, 신의 통역자임을 자처하면서 하류 계급, 피압박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그의 작품 도처에 표현했다.     뮈세     회상   보면 눈물이 흐를 것을 알면서 나는 여기 왔노니.   영원히 성스러울 장소여, 괴로움을 각오했는데도   오오, 더할 나위 없이 그립고 또한 은밀하게    회상을 자아내는 그리운 곳이여!   그대들은 왜 이 고독을 만류했는가   친구들이여, 왜 내 손을 잡으며 만류했는가   정겨운 오랜 습관이 이 길을 걸어 가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때에?1)   여기였다, 이 언덕, 이 꽃 피는 히드의 풀밭   말없는 모래밭에 남아 있는 은빛으로 빛나는 발자취   사랑어린 오솔길, 속삭임이 넘쳤고 그녀의 팔은    힘껏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여기였다, 이 초록색 잎사귀 우거진 떡갈나무숲,   굽이굽이 굽이쳐 있는 이 깊은 협곡2)   이 야생의 친구들, 옛날 그들의 속삭임에    마음 하느작이던 아름다운 나날.   여기였다, 이 숲속, 지금도 걸으면 청춘은  발자욱소리 따라 한 떼의 새처럼 계속 노래한다.   매혹의 땅이여, 아름다운 황야, 연인들의 산책길이여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아아!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아직 상처 고쳐지지 않은 마음에서 솟아 오르는 이 눈물!   사정 보지 말고 그대로 멈추게 하라, 나의 눈에   옛날을 숨겨 주는 이 너울!   내 행복을 지켜보는 이 숲의 메아리 속에   애석한 마음을 외치려 온 것은 아니다.   아름답게도 고요히 있는 이 숲이 자랑스러울 때   내 마음 역시 자랑스러운 것이다.   견디기 힘든 슬픔에 몸과 마음을 맡길지니   친구의 무덤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는 모든 것이 생기 있고, 여기에는 피어나지 않는다,   묘지에 피는 꽃 따위는.   보라, 저 숲 그늘을 비추며 달이 떠오른다.   눈동자는 아직 떨린다, 아름다운 밤의 여왕이여   그러나 이미 어두컴컴한 지평에서 그대는 떠나   그리고 그대는 꽃 핀다.   그와 같이 이 지상에서 아직 비도 마르지 않는다.   그대의 빛을 쐬며 하루의 향기는 솟아 오른다.   그와 같이 고요하고 순수하게 뿌듯한 마음으로 가득 찬    지난 날의 나의 사랑.   인생의 온갖 고뇌는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나를 늙게 만들던 모든 것은 이제 사라지고   이 사랑어린 골짜기를 바라보면 이미 내 맘은   소년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오오 때의 힘이여! 오오 가벼이 날아가는 세월이여!   그대들은 내 눈물과 외침과 뉘우침을 실어간다,   하지만 그대들도 동정심에서 그대로 지나친다,   빛 바랜 우리의 꽃은.   위로의 신의 자비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듯 크나큰 상처에 이렇게 괴로워하고   그 상처를 만지는 것이 상쾌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다, 헛된 말과 씁쓰레한 마음의 생각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간 사랑에   언제나 이러쿵저러쿵 늘어 놓고 있는    하찮은 고뇌의 경박함 따위는!   단테여, 왜 당신은 고뇌의 나날에 행복했던 날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비참이라 말했었는가?3)   그 어떤 고통이 그 쓰디쓴 말과 그 불행에 대한   뉘우침의 말을 말하게 했던가?   빛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던가?   밤이 되는 순간부터 빛을 잊어야만 하는가?   당신이었던가, 몹시 슬픈 위대한 혼, 그 말을    말한 것은 바로 당신이었던가?   아니다, 찬란하게 나를 비추는 이 밝은 달에 맹세코   그 숭고한 모독은 당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행복한 날에 대한 회상은 모름지기 이 세상의   행복보다도 진실된 것이다.   아니! 불행한 사랑이 그 고뇌가 잠든 채    뜨겁게 불타는 재 속에서 문뜩 반짝이는 불꽃을 보고   그 불길을 붙들어 그 불길 위에다   멍청하게 눈길을 주고 있을 때   그 잃어진 과거 속에 영혼도 빠져 버려   그 깨진 거울을 앞에 두고 눈물 흘리며 꿈꿀 때   그것이 미혹이라고 당신은 말하는가, 그 달콤한 기쁨은    두려운 가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더구나 당신의 프란체스카,4) 그 영광스러운   천사의 잎을 통해 그런 말을 하게 하는가,   영원한 입맞춤 속에 띄엄띄엄 자기 신세를    말하고 있는 그녀의 입을 통해!   정의로운 신이여, 사람 마음의 생각이란 뭔가?   누가 진리를 사랑하랴? 누구도 의심치 않는   그 정당하고 그 확실한 기쁨과 또한 고뇌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면.   기이한 사람들이여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대들은 웃고 노래하고 대담하게 걸어 다닌다.   하늘과 그 아름다움에도, 세계와 그 더러움에도   마음 흐트러지지 않는 그대들은.   그러나 그대들 역시 문득 운명의 손에 희롱되어   그 어느 잊은 사랑의 기념비 쪽으로 다가갈 때는   그 장애에 걸음이 저지되고 거기에 쓰러져   그대들은 아픔을 느낀다.   그 때 그대들은 인생을 한낱 꿈이라 외친다.   짐에서 깬 것처럼 팔짱을 끼는 것이다.   그대들은 아쉬워하는 것이다, 그 즐거운 거짓됨이   잠시 동안에 끝나고 말았음을.   불행한 사람들   아! 그 한 순간에, 그대들의 둔한 혼이 이 지상에 끌고 가는 쇠사슬을 흔든   그 덧없는 한 순간에 전체 인생이 있었나니   더 이상 뉘우치지 말아라!   그대들을 지상에 매어두는 무감각을 후회말지며   흙탕이 되고 피범벅이 그대들의 허우적임과   희망 없는 밤과 빛 없는 낮을 후회 말지라,   그것이야말로 허무이기에!   그대들의 싸느다란 주의로부터 과연 무엇을 얻으며   옮겨지는 그 뉘우침은 하늘에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때의 발자국 걸음걸음에, 그때 자신의 폐허 위에   무슨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그렇다,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현대는 크나큰 꿈이다.   길을 갈 때 우리 앞에 나타나는 하찮은 행복   그 한 줄기 갈대 잎을 손에 쥐었다 느껴지는 순간   바람이 그것을 앗아가 버린다.   그랬었다. 최초의 입맞춤과 맹세의 말을   이윽고 죽을 두 사람이 주고 받은 것은    부는 바람에 잎이 떨어지는 나무 밑, 먼지로 흩어지는   바위 위에서의 일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기쁨, 그 증인이 된 것은   언제나 구름에 덮여 어둠으로 바뀌는 하늘이었다.   자신의 빛 때문에 시시각각 파 먹혀 가는    이름조차 모르는 별들이었다.   모든 것은 두 사람 주위에서 죽어 있었다,   나무의 새도 손에 든 꽃도 밭 아래 기던 벌레도.   모습을 비춰 주며 어름거리던 그 샘도 이제는 말라   모습조차 있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잔해 위에 그 여린 손을 모으고   쾌락의 순간의 번개에 매혹되었던 그들 두 사람은   죽음을 관장하는 그 부동의 존재로부터   도피하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리석다!"고 현자는 말하고, "행복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슬픈 사랑을 마음에 지니셨는가,   물결 소리에조차 심란해지고, 가슴 설레는 그대   바람 소리에조차 겁먹는 그대는?   나는 본 석이다, 나뭇잎도 아니요 물방울도 아닌   것들이 햇빛 속에 떨어지는 것을.   장미꽃 향기도 아니요 새들의 노래도 아닌   것들인 사라져 가는 것을.   내 눈은 지켜본 것이다, 무덤 밑에 생명을 끊은   줄리에트보다 더욱 마음 아픈 것들을.   암흑계의 천사들을 향하여 로미오가 든 건배보다   더욱 무서운 것들은.   나는 본 것이다, 둘도 없는 연인, 영원히 사랑하여   마지 않는 연인이 하나의 흰 무덤으로 변하는 것을   살아 있으면서 묘혈에 재가 되어 표류하는 것은   죽고 만 가장 사랑하는 것.   우리의 가련한 사랑이었다, 깊은 밤 우리 가슴에   끌어안고 정답게 흔들던 그 사랑이었다!   생명보다 더 존귀한 것, 아아! 우주였다.   이제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그렇다, 더욱 젊고 아름다워 옛날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5)옛날처럼 그 눈은 빛나고   그 입에 보조개가 파졌고, 그것은 미소였다,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 부드러운 말은 아니었다,   내 눈동자 속에 녹아 들던 그 정다운 눈동자는 아니었다,   내 마음은 계속 사모감에 넘쳐 그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그 모습은 이미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때 그녀의 옆에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공허한 얼음같이 차가운 가슴을 나의 팔에 끌어안고   외칠 수도 있었으리라, "웬 일이냐, 나의 여인아   어떻게 되었는가, 그 과거는?"   그러나 소리치지 않았다, 마치 낯선 여자가   그 목소리에 그 눈매를 하고 있는 듯했기에.   나는 말없이 전송하였다, 그 싸느다란 조각을   없는 편으로 시선을 던져서.   그것으로 족하다, 쓰디쓴 괴로움은 지나간 것이다,   죽은 듯한 마음을 지닌 사람의 웃음 머금은   고별은.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오오 자연이여, 어머니여!   지난 날의 사랑에 변화가 있으랴?   이미 이제는 천둥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 회상을 내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   폭풍으로 파산된 뱃사공과 같이   나는 매달린다, 이 회상에.   무엇 하나 알고 싶지 않다. 들에 꽃이 피어 있는지도,   헛된 인간의 환상으로부터 도대체 무엇이 생겨나는가 하는 것도,   그 광막한 하늘이 지금은 숨기고 있는 것을   내일은 펼쳐 보여 주는가 하는 것도.   나는 오직 마음에게 말한다, 이 시각에 여기서   어느 날 사랑했고 사랑받았니라. 그녀는 아름다웠다.   나는 이 보물을 불멸의 혼 깊이 지니고서   가려 한다, 하느님의 품으로!   역주 1)'친구들은 그 순례행을 그를 위해서 말렸다. 그러나 뮈세는 걱정과는  반대되는 인상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그 자신도 두려워한 그  과거의 환기는 오히려 마음 편한 것이었다고 뒷날 그는 우리에게  말하였다'(생트뵈브, '월요 한담')에서.   2)프랑샤르의 협곡 폰테느브로의 숲 가운데서도 가장 황량한 장소 가운데  한 군데이다.   3)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5장 121__3행. '불행스러운 나날에 있어  행복했던 날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쓰라린 고뇌는 달리 또 없다.'   4)단테가 '신곡' 지옥편 제 5장에서 노래하고 있는 13세기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로 마라테스타 사이의 슬픈 사랑.   5)뮈세의 형 폴 드 뮈세의 회상록 '그와 그녀'에 의하면 시인은  폰테느브로의 숲을 방문하고 나서 5개월 뒤인 1841년 2월의 어느 날 밤  파리의 극장 이탈리아의 복도에서 뜻하지 않게 조르쥐 상드와 만나게 되었고,  그 날 밤 안으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이 시는 뮈세(Altred de Musset:1810__57)와 여류 작가 조르쥐 상드와의  유명한 연애에 조종을 울리는 것이다. 1833년 6월, 시인이 스물 세 살 때  시작된 사랑은 다음해 봄이 되자 일찌감치 파국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시인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곱 해 뒤, 그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마차로 안제르빌에 가는  도중 회상어린 폰테느브로의 숲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때의 느낌을 중심하여  지어진 것이 이 시이며, 또 라마르틴의 '호수'와 위고의 '올랭피오의 슬픔'과  더불어 낭만파를 대표하는 대시인인 세 사람이 같은 '사랑의 회상'이라고 하는  주제를 제각기 노래한 것인 바 뮈세의 이 시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고티에     화분   아이가 씨앗을 하나 보았지요.   아이는 고운 그 빛깔에 끌려,   청룡과 야릇한 꽃 아로새긴 사기분에   무심코 그것을 심었겠지요.   아이가 떠난 뒤 뿌리는 뻗어나,   흙 위에 꽃 피고 나무를 이루었소.   가닥 많은 발이 하루하루 파고 들어   마침내 그릇 한복판을 터뜨렸지요.   아이는 돌아와 보고 놀랐지요.   기름진 식물이 푸른 주먹을 화분 조각 위에 내두르고 있겠지요.   아이는 뽑으려 했으나 줄기가 단단해    손가락만 가시에 피투성이가 되었지요.   사랑도 이처럼 내 맘속에 몰래 피어났더라오.   한송이 봄꽃밖엔 심은 것이 없건만,   이제 보니 크나큰 노회나무,   뿌리가 고운 무늬 사기분을 깨뜨려버렸소.   *고티에(Theophile Gautier: 1811__1872)는 샤를마뉴 고교에서 네르발과  동창이었다. 화가가 되려 했으나 낭만파 시인들과 접촉을 하다가 종래에는  시에 열의를 갖게 됨. 특히 그는 정이나 영혼의 움직임을 무시하고, 사물과  현상의 회화미를 시로 표현했음. 초기의 낭만주의적 시작을 떠나, 예술적  사실주의와 객관성에 입각한 작품들을 가지고 고답파의 선구를 이루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달은 높은 하늘에서   손에 들었던 금부채를    바다의 그 새파아란    융단 위에 떨어뜨렸네.   주워 올리려고 엎드려   은빛 팔을 펴지만   그 흰 손아귀를 빠져서   부채는 물결 따라 흘러가네.   천 길 물 속에 이 몸을 던져   부채를 돌려 주랴, 빛나는 달이여,   그대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나는 하늘로 올라가리라.   *고티에의 시는 회화저인 시각미를 존중한다.'바닷가에서'는 스페인의  바닷가에서 시상을 얻은 소품인데, 형식과 색채를 존중한 고티에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르콩트 드 릴     정 오   들판에 펼쳐진 여름의 왕인 정오,   저 높은 푸른 하늘로부터 은빛 열기를 퍼붓고 있다.   모든 것이 침묵만을 지킨다, 대기는 훨훨 불타 바람결 하나 없이 타오른다.   대지는 그 불타는 옷을 입은 채 꿈꾸듯 졸고 있다.   광활한 들판에 그림자 한 점 없고,   양떼들이 물 마시던 샘은 말라 붙었다.   저 멀리 떨어진 숲은 기슭이 어둡게 물들은 채,   무거운 휴식 속에 꼼짝 않고 잠들고 있다.   키 크게 자라난 밀만이, 금빛 바다물결처럼   저 멀리 펼쳐지고 있어, 낮잠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성스러운 대지의 평화로운 결실인 밀은   아무 두려움 없이 태양을 퍼마시고 있다.   때때로, 잘익어서 무거운 이삭들이 속삭이는 가운데에서 새어 나오는   불타는 영혼의 한숨 같은    느리고 의젓한 파동이   일어나, 저 아득한 지평선에까지 퍼져가곤 한다.   멀지 않은 곳 풀밭에 몇 마리의 흰 황소가 누워,   두껍게 살이 찐 목에다 느릿느릿 침을 흘리면서,   힘없는 느긋한 눈으로 끝없는   내면의 꿈을 쫓고 있다.   인간이여, 만일 당신이 가슴 깊숙이 기쁨이나 슬픔을 안고서   정오 때 빛나는 들판을 지나간다면,   그것을 피하시오! 자연은 텅 비어 있고, 그리고 태양은 불타오르니!   아무것도 여기에서는 살 수 없으며,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없기 마련이오.   그러나 만약에 눈물과 웃음을 깨우치고,   이 소란스런 세상을 잊어버리려고 번민하면서,    용서와 저주를 잊은 당신이,   나른한 최고의 관능을 맛보려거든,   오시오! 태양은 숭고한 언어로 당신에게 말하리라.   가차 없는 그 불길 속으로 끝없이 당신을 몰입시키시오.   그리고 신성한 무의 세계에 일곱 번 젖어든 마음으로 보잘것 없는 도시로  천천히 발길을 돌리시오.   *르콩트 드 릴(C. Leconte de Lile:1818__94)은 라뤼니옹 섬에서 출생한  고답파 시인의 중진으로서, 처음에는 푸리에주의자로 활약한 일도 있으나  이윽고 정치에 실망하고 시작에 전념하였다.   우선 '고대 시집(1852)'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의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였고 뒤이어 '이적 시집(1862)'에서 먼 이국의 정취를 동경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짙은 염세주의적 인생관이 흐르고 있다.   그는 이 시집들을 통하여 무감각과 몰개성, 그리고 객관성에 철저한  고답파의 시풍을 확립하였다.     보들레르     가을의 노래   1   이윽고 우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차디찬 어두움 속으로,   너무나도 짧은 우리의 여름날, 그 강렬한 밝음이여 안녕히!   불길스러운 충격을 전하며 안마당 돌 브로크 위에   던져지고 있는 모닥불 타는 소리를 나는 벌써 듣는다.1)   이윽고 겨울 그것이 내 존재에 돌아오리니, 분노와 증오와   전율과 공포와 강제된 쓰라린 노고   그리고 북극의 지축에 걸린 태양과 같이   나의 심장은 이제 언 붉은 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되리라.   던져지며 떨어지는 장작더미 하나하나를 나는 떨면서 듣노니   세워진 단두대의 울음조차 이렇듯 둔탁하지 않다.   나의 정신은 성문을 파괴하는 무거운 쇠망치를 얻어 맞고   허물어지는 성탑과도 같아라.   이 단조로운 충격에 내 몸은 흔들리어   어디선가 관에다 서둘러 못질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를 위하여?--어제는 여름이었으나 이제는 가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는 어디엔가 문밖에 나서기를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2   나는 사랑한다, 네 길다란 눈, 그 초록빛 띤 빛을.   상냥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제 내게는 모든 것이 흥미 없다.   그 어떤 것도, 그대의 사랑도 침실도 또 난로도   해변에 빛나는 태양보다 낫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상냥스러운 사람이여! 역시 나를 사랑해 주오.2)   비록 내가 은혜를 모르는 자요 심술장이라도 내 어머니가 되어 다오.   연인이면서 누이동생이기도 한 사람이여, 비록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하더라도   석양의 상냥스러움, 빛나는 가을의 상냥스러움이 되어 다오.3)   얼마 남지 않는 노력! 무덤이 기다리고 있나니, 탐욕스러운 무덤이다!   아아! 당신의 무릎에 이마를 기댄 채 나로 하여금   한껏 잠기게 해 다오. 백열의 여름을 그리워하며   만추의 날 그 상냥스러운 황색 광선 속에서!   역주 1)당시 파리 생활에서는 10월이, 다가오는 겨울이 대비해서 장작을  저장하는 준비의 달이었다. 수레에 실린 장작이 안마당 들 브로크 위에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2)초록눈의 미인으로서 여기에 노래되고 있는 것은 보들레르가 그 무렵  누이동생처럼 또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있던 여배우 마리 도브랑이다.   3)바다에 비치는 태양이나 석양의 아름다움에 그 무렵 보들레르가 빠져 든  것은 그의 어머니가 머물고 있던 영국 해협의 웅프루르 해안에서이다.   *이 시는 '악의 꽃 재판(1861)'에 수록되어 있는데, '처녀의 같은 순진성'을  지닌 여배우 마리 브뤼노에게 바쳐진 작품이다.   '악의 꽃'에는 3명의 중요한 연인이 등장한다. 혼혈 여성인 잔느 뒤발,  보들레르가 플라토닉한 사랑을 바친 사바티에 부인, 그리고 여배우 마리  브뤼노이다.   마리 브뤼노는 예명을 마리 도브랑이라고 했다. 1854년에 보들레르가  만났을 때는 무명이었으나 뒷날 환상극의 주역을 맡고부터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다.   고뇌에 빠져 죽음의 공포에 떨던 보들레르는 '나의 수호 천사, 뮤즈,  마돈나가 되어 주오'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는 보들레르의  친구인 시인 방빌의 품에 안기게 되어 사랑은 슬프게 끝난다.     신천옹   흔히 뱃사공들은 장난삼아서   크나큰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에 미끄러져 가는 배를 뒤쫓는   이 새는 나그네의 한가로운 벗이라.   갑판 위에 한번 몸이 높여지면   이 창공의 왕은 서투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마치도 옆구리에 노처럼 질질 끈다.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어색하고 기죽었는가!   멋지던 모습 어디 가고, 이리 우습고 초라한가!   어떤 이는 파이프로 그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름절름 날지 못하는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 또한 이 구름의 왕자와 비슷한 존재,   폭풍 속을 넘나들고 포수를 비웃지만   땅 위에 추방되면 놀리는 함성 속에   그 크나큰 날개는 오히려 걸음을 막고 만다.   *제목인 '신천옹'은 새 이름으로 몸은 크고 날개와 꼬리는 검다. 원어론  그대로 알바트로스(Albatross)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는 뛰어난 예술상의 재능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세술이 서툴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시인을 붙들린 신천옹새에다 비겨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작자의 시집 '악의 꽃'재판(1861)에 수록되어 있는데, 1857년에  간행된 '악의 꽃' 초판은 세상의 비난을 받고 벌금형에 처해진 일이 있어 그  때의 감회를 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감   자연은 신전, 그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 어렴풋한 말들이 새어 나오고,   사람은 상징의 숲들을 거쳐 거기를 지나가고,   숲은 다정한 눈매로 사람을 지켜본다.   멀리서 아련히 어울리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광명처럼 한없이 드넓은   어둡고도 깊은 조화의 품안에서   향기와 색채와 음향은 서로 화합한다.   어린애의 살결처럼 신선스럽고   오보에처럼 보들하며, 목장처럼 푸른 향기어리고   --또 한 편엔 썩고 푸짐한 승리의 향기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번져 나가서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이 시에는 보들레르 미학의 본질적인 관념들이 내포되어 있다.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는 서로 교감하는 바, 물질 세계는 상징을 제공하며, 그것을  통해 정신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은  혼합되어 자연의 신비를 알아내려고 서로 교감하는 것이다. 때문에 신인이  해야 할 사명은 '모호한 말들'을 분명하게 해석하는 일이다.     이방인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수수께끼와 같은 사람아 말하여 보라.  너의 아버지냐, 또는 형제 자매이냐?   --내게는 부모도 형제 자매도 있지 않다.   --그러면 너의 친구냐?   --지금 너는 뜻조차 알 수 없는 어휘를 쓰고 있다.   --그러면 너의 조국이냐?   --그것이 어느 위도에 자리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이냐?   --아아, 만일 불사의 여신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도 있으련만.   --그러면 돈이냐?   --나는 그것을 가장 싫어한다. 마치 네가 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에뜨랑제여!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저 유유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몽롱한 구름을.     우울   얕고 무거운 하늘이 뚜껑처럼   오랜 권태에 시달려 신음하는 마음을 짓누르고,   둥그런 원을 금그은 지평선으로부터   밤보다도 더 슬픈 어두운 빛을 쏟을 때.   땅이 지적지적한 토굴로 바뀌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와도 같이,   겁먹은 날개로 이 벽 저 벽을 치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사라질 때.   비가 끝없는 발을 펼치어   널따란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창피스런 거미들의 말없는 떨거지가   우리 골 한복판에 그물을 치러 올 때,   종들이 난데없이 성이 나 펄쩍 뛰며   무섭게 울부짖는다 하늘을 향해,   악찬스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나라 없이 떠도는 망령처럼.   --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이, 긴 영구차가   천천히 내 넋 속을 줄지어 간다.   희망은 져서 울고, 포학한 고뇌가,   내 숙여진 머리통에 검은 기를 세운다.     취하라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것만이 문제다. 어깨를  억눌러 당신을 땅으로 궁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다만 취하기만  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풀위에서나, 당신 방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취기가 이미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울부짖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몇 시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주겠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구박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노상 취해 있으라!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보들레르(Pierre Charles Baudelaire:1821__67)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부친이 죽고, 젊은 모친이 재혼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중학 졸업 후, 의부의 희망을 배반하고 문학을 지망, 방종한 생활에  젖었으므로 노여움을 사 1841년에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1842년에 파리에  돌아와 망부의 유산을 상속, 그 대부분을 혼혈녀 잔드 뒤발이나 문단의  보헤미안들과의 교우에 탕진했다.   1845년, 미술평론가로 등단한 보들레르는 포우에 마음이 쏠려 이 천재를  알리기 위해 프랑스어 번역을 시작했다.   1857년에 처음이요 마지막 시집인 '악의 꽃'을 출판했는데 미풍양속을  헤치는 것으로 벌금이 과해졌다. 그후로는 병과 빚에 시달리는 생활에  쫓기다가 비참히 일생을 마쳤다.   위고는 그를 '프랑스시에 새로운 공포를 도입한 시인'이라고 불렀거니와,  이것은 그의 신비적인 종교성, 통렬한 비평정신, 파리에서 쾌락을 구할 때의  그의 이상적인 후각, 미각, 촉각을 한 마디로 갈파한 평이라 하겠다.   문학사상 보들레르의 지위는 '악의 꽃' 한 권으로 산문에서의 플로베르와  비견되며, 또 베를렌느, 말라르메와 더불어 19세기 3대 서정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영향이 상징주의로 거쳐 현대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악의 꽃'은 1857년에 출판되었다. 처음 제목은 '명부(Linbes)'로 풍속 괴란,  신의 모독의 혐의로 기소되어 '레스보스' 이하 6편이 삭제되었다.   전체는 6부로 나뉘는데 제 1부 '우수와 이상'에서 시인의 현세의  존재방식을 노래하고 있다. 검은 비너스 또는 사바띠에 부인을 둘러싼 연가가  그 태반을 점하고 있다.   파리의 동경과 비밀 신비를 노래한 제 2부 '파리 풍경'은 인간의 숲으로의  도피이며, 제 3부 '포도주'는 인공 낙원에의 도피이다.   제 4부 '악의 꽃'은 절망적 명석성을 지닌 악이며, 무지와 가면의 악을  거부하는 마왕 사탄은 제 5부 '반항'에서 출현하여, 이윽고 명부에서  인간계로의 탈출인 제 6부 '죽음'으로 끝난다.   이 시집이 뚜렷한 의도에 입각한 구성을 가짐은 시인이 방빌에게 부친 서한  등에서 증명되고 있다.     프뤼돔     눈   사랑받던 고운 눈, 파란 눈 까만 눈,   무수한 눈들이 새벽빛을 보았다.   이제 그 눈들은 무덤 깊이 잠들었지만,   태양은 여전히 솟아오른다.   낮보다도 더욱 다정한 밤들이,   무수한 눈들을 호렸었다.   별은 지금도 밤하늘에 반짝이지만,   눈들은 어둠에 가득 차 있다.   오! 그 많은 눈들이 멀었다니,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을 일!   그 눈들은 다만 그 어느 딴 곳   안 보이는 세계로 돌려졌겠지.   그래서 지는 별들이 우리의 눈을   떠나서도 그냥 하늘에 머무르듯이,   눈동자들도 비록 어딘가로 져갔으나,   죽었다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   사랑받던 고운 눈, 파란 눈 까만 눈,   감겨진 눈들이 지금도 사뭇,   무덤 저쪽에서 그지없이 큰   새벽빛에 다시 떠서 보고 있다.   *프뤼돔(Sully Prudhomme:1839__1907)은 우아하고 분석적인 수법으로  내면생활에 파고 들어 같은 고답파 시인들 중에서도 이색적이다. 그의 시는  특히 애가(Elegie)에 있어서 순수하고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시련(Les Epreuves)' '고독(Les Soletudes)' '헛된 애정(Les Vaines  Tendresses)' 등의 시집을 통하여, 우주와 인생의 수수께끼를 품어보고자 한  자신의 괴로움과 비애를 노래했다.     사랑의 가장 좋은 순간   사랑의 가장 좋은 순간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 때는 아니다.   그것은 어느 날이고 깨뜨리다 만   침묵 바로 그 속에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의 잽싸고도 남모를   은근한 슬기 속에 깃들인 것.     말라르메     바다의 산들바람   육체는 슬프구나, 아아 나는 모든 책을 읽었다.   도망치자! 멀리 도망치자! 나는 미지의 물거품과1)   하늘 사이에서의 새들의 도취를 느낀다!   눈에 비치는 오랜 정원도 그 아무것도   바다에 잠긴 이 마음을 붙잡지 못하리니   오오 밤이여,2) 순백색이 지키는 텅 빈 종이를   흐릿하게 비치는 내 등불의 쓸쓸한 빛도   젓 먹이는 젊은 여인도3) 나를 붙잡지 못하리.   나는 떠나리라! 돛대를 흔드는 커다란 배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서 닻을 거둬 올려라.   '권태'는 가혹스러운 희망으로 해서 번민하며4)   지금도 계속 손수건의 마지막 이별을 생각한다!   모름지기 돛대는 폭풍을 불러 들여   바람에 쓰러지고 난파된 배 위에 그대로 무너지리니   배는 가라앉고, 돛대는 숨고, 돛대는 사라지고, 또한 풍요로운 섬도...   하지만 나의 마음이여, 저 사공의 노래를 들어라!   역주 1)하늘과 바다고 상징되는 절대미의 세계가 예상된다.   2)시를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는 고민의 밤을 뜻하는 것 같다.   3)외동딸을 안고 있는 아내 마리의 모습이겠으나, 백지를 앞에 놓고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시인은 고독하다.   4)'권태'란 말은 원시에서는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즉, 일반적인 인생적  권태가 아니라 시쓰는 것을 고뇌로 생각하는 시인의 절망적인 권태인 것이다.   *말라르메의 초기 시들 중에서 명작으로 알려져 있는 이 한 편은 시인의  이상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다.     백조   순결하고 생기 있어라, 더욱 아름다운 오늘이여,   사나운 날개짓으로 단번에 깨뜨려 버릴 것인가.   쌀쌀하기 그지없는 호수의 두꺼운 얼음.   날지 못하는 날개 비치는 그 두꺼운 얼음을.   백조는 가만히 지나간 날을 생각한다. 그토록 영화롭던 지난 날의 추억이여,   지금 여기를 헤어나지 못함은 생명이 넘치는   하늘 나라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벌이런가.   이 추운 겨울날에 근심만 짙어진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잊은 죄로 해서   길이 지워진 고민의 멍에로부터 백조의   목을 놓아라, 땅은 그 날개를 놓지 않으리라.   그 맑은 빛을 이 곳에 맡긴 그림자의 몸이여   세상을 멸시하던 싸늘한 꿈 속에 날며,   유형의 날에 백조는 용의 옷을 입도다.   *흔히 '백조의 소네트'라 불려지며 애송되고 있는 걸작. 그러나 백조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시를 쓰지 못하는 고뇌로 괴로워하는 시인의 내부의 혼을  백조에다 상징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행의 '오늘'은 의인화된 주격으로서 그것이 '오늘의 백조'를 말한다는 것은  5행의 '지난 날의 백조'에 의해 알 수 있다.     시현   달빛이 슬피 나리더라.   꽃핀 요정들 꿈에 젖어,   어렴풋한 꽃들의 고요 속.   손끝에 활을 골라잡고   빈사의 현을 쓸어내니   하얀 흐느낌이 창공의 꽃잎들 위로 번지더라.   --그때는 너의 첫번 입맞춤으로 축복받은 날이었지.   가슴 깊이 저미던 나의 몽상도   얌전히 취하더라, 슬픔의 향기에   꺾은 꿈이 가슴 속에   회한도 환멸도 없이 남기는   슬픔의 향기에.   내 그렇게, 해묵은 포석 위에 눈을 깔고   방황하노라면,   머리카락에 햇빛 가득 담고, 거리에,   저녁 속으로 너는 웃으며 나타나더라.   내, 그래 빛의 모자를 쓴 선녀를   보는가 여겼더라.   귀염둥이 아기 시절 내 고운 잠 위로 지나가며,   언제나 반쯤 열린 그의 속에서   향기어린 별들의 하얀 꽃다발   눈 내리게 하던 옛 선녀를 보는가 여겼더라.   *말라르메(Stepgane Mallarme:1842__1898)는 20세 때에 영어를 배우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을 읽기 위해 영국에 건너가, 거기서 독일인  여교사가 결혼하였다. 이 시기에 초기의 걸작 '창공(L`Aaszur)'과 '바다의  미풍(Brisemarine)'을 쓰고, '에로디아드'와 '목신의 오후(L`Apres--midi  d`un faune)'에 착수한다. 이 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발레리의 "젊은  빠르끄"와 더불어 프랑스 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순전히  유추(analogie'에 의해서 서로 암시하고 환기하다 이미지들을 쌓아가는데,  이러한 상징적 수법은 후기 작품에 이를수록 더욱 강조되었고, 프랑스 시작의  정화로 해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베를렌느     네버모어   추억이여 추억이여 어쩌자는 거냐 가을은   느른한 대기 속을 지빠귀새가 날으게 하고   태양은 북풍이 울부짖는 단풍숲 위에 단조로운 햇빛을 던지는데   그때 우리들은 단둘이서 꿈꾸듯 걸어갔었지   그녀와 나, 머리털과 생각을 바람에 휘날리며.   갑자기 그녀는 감동스런 눈초리를 나를 향해 던지더니   어떤 날이 가장 좋아요, 그녀의 생생한 금빛 목소리   신선한 천사 같은 음색의 부드럽고 낭랑한 목소리   신중한 미소가 그녀에게 대답했지   오 나는 헌신적으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네   오! 처음 피는 꽃들이라 향내가 어떠했던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처음의 예스   정말 매혹적인 울림으로 소리를 내네.   *'그 누구보다도 교묘하게 운율학을 이용하였고, 정형시를 다시 젊게 하려고  시도했던 시인'(위스망'이라고 평을 듣는 베를렌느는 무엇보다도 음악을  노래했고, 다채로운 기교를 구사하여 음영을 구했다.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마을에 조용히 비가 내리네(랭보)   내 가슴에 조용히 비가 내리네   마을에 비가 내리듯   내 가슴 속에 스며드는   이 우울함은 무엇일까   땅과 지붕 위에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우울한 가슴에 울리는   오 비의 노래여   병든 이 가슴에   공연히 비가 내리네   오 뭐라고, 배반이 아니라고   이 슬픔은 이유가 없네   이유를 모르는 건   가장 나쁜 고통   사랑도 증오도 없지만   내 가슴은 고통투성이네   *이 시는 1872년에서 다음 해에 걸쳐 친교를 맺어 온 나이 어린 소년 시인  랭보와 더불어 영국과 벨기에 각지를 유랑하는 동안에 쓰여진 것. 1874년에  작자가 권총으로 랭보를 쏘아 부상 입힌 사건으로 해서 벨기에의 몽스 감옥에  갇혔을 때 간행된 시집인 '언어없는 연가'에 수록되어 있다.     어느 여인에게   네게 이 노래, 부드러운 꿈이 웃고 우는   네 큰 눈의 마음 달래는 우아함으로 해서   순결하고 선량한 영혼으로 해서   내 격렬한 비탄에서 우러나온 이 시를 비친다.   아아, 나를 계속 사로잡는 불길한 악몽은   끊임없이 분노하고 발광하고 질투한다.   이리의 행렬처럼 갈수록 수가 늘면서   피로 물들인 내 운명에 매달리느니.   오! 이 괴로움, 몸서리치는 이 괴로움   에덴에서 추방된 최초의 인간의 첫 신음소리도   내게 비하면 한갓 목가일 뿐이라.   그리고 네게 수심이 있다면 그것은   --내 사랑아, 서늘한 9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오후의 하늘을 날고 있는 제비와도 같다 할지니.   *베를렌느(Paul Verjaine:1844__96)는 멧스에서 태어나 7세 때 파리로  이사하였다. 그리고 1866년에 처녀 시집 '사튀르니앙 시집'을 간행하였다.  마틸드 모테를 사랑하여 1870년에 그녀와 결혼했으나, 과음과 천재 소년  랭보와의 교제로 가정 생활을 파탄으로 몰아 넣었다.   끝내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영국과 벨기에 등지를 방랑하다가  1973년에 권총으로 랭보를 쏘고 몬스 감옥에서 2년 동안 복역하였다. 그  영창생활중에 가톨릭으로 귀의하여 그의 생애의 걸작이라 하는  '예지'(1881)의 시상을 얻었다. 만년에는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  가난과 류마티스로 고생하다가 매춘부였던 정부의 불결한 방에서 죽었다.   이 시는 베를렌느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마틸드 모테와의 연애 시절에  창작된 것이다. 그는 생애에 20권이 넘는 시집을 간행했는데, 그 사랑의  추억은 제 3시집 '좋은 노래'(1872)에 수록되어 있다.     랭보     감각   여름 아청빛 저녁, 보리가 쿡쿡 찔러대는   오솔길 걸어가며 잔풀을 내리밟으면,   꿈꾸던 나도 발 뭐에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내 맨머리를 씻겨 주리니.   아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래도 한없는 사랑 넋 속에 올라오리니   방랑객처럼, 내 멀리, 멀리 가리라.   계집 데리고 자듯 행복에 겨워, 자연 속으로.   *랭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시는 16세 때의 작품이다.   1871년 돔니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온갖 감각의 깊고 제한이 없으며  더구나 논리적인 착란'에 의해 '미지의 것'에 도달함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썼다.   베를렌느는 이것을 보고 '오라 위대한 영혼이여, 모두가 너를 기대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모음   A는 흑색, E는 백색, I는 홍색, U는 녹색, O는 남색.   모음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아), 악취 냄새 나는 둘레를 소리내어 나르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세트.   그늘진 항구, E(으),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왕자, 꽃 모습의 떨림.   I(이), 주홍색,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런가.   U(우), 천체의 주기, 한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이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주름살.   O(오),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이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묵.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라빛 광선.   *16세의 나이에 이미 시인으로서 일가를 이루었고, 19세 때에는 붓을 꺾어  버린 천재 시인 랭보--그는 이 유명한 시에서 음에다 색채를 입혔다. 랭보는  이 시에서 음향과 색채와 향기 사이의 이론 체계를 세우려 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일찍이 보들레르가 그의 작품 '교감(Correspondences)'에서 시도했던  바였다. 이 시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랭보는 감각미를, 보들레르는  인공미를, 말라르메는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지옥의 계절   지난 날의 내 기억에 의하면, 나의 생활은 모든 마음이 활짝 열려 있고,  온갖 포도주가 넘쳐 흐르는 하나의 향연이었다.   어느 저녁, 나는 무릎 위에 미를 앉혔다. 때문에 나는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정의를 향하여 무장하였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함이여,   오 증오여, 너희들에게 나는 나의 보물을 맡겨 놓았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모든 인간적인 희망을 지우기에 이르렀다. 목매어  죽이기 위해 모든 환락을 향하여, 나는 맹수처럼 소리없이 덤벼 들었다.   *랭보(Arthur Rimbaud:1854__1891)는 아르덴느의 샤를르빌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미모의 천재이며 악동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으나 방랑벽 때문에 학업을 집어치우고 16__19세까지 불과  3년간의 문학생활을 통해 두 편의 시집 '취한 배'와 '지옥의 계절'로 불멸의  영예를 차지했다. 그후 시필을 집어 던지고 베를렌느의 말대로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로 18년을 방랑하다가 병들어 마르세이유에서 죽고 말았다. 그는  가시의 세계 저 너머에 있는 심오한 우주의 신비를 발견하고, 그 섬광을 옮겨  놓을 새로운 언어를 모색함으로써 인간 능력을 넘어선 듯싶은 완전한 계시의  표현을 창조하고, 잠재의식의 세계를 시에 도입하였다.     구르몽     낙엽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 시의 효과는 역시 후렴처럼 반복되는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에 있다. 그 말 속에는 그야말로 못 다한 사연이 숨어 있다.   구르몽(Romy Gourmant:1858__1915)은 노르망디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곰보가 되어 사교계에 나가지 않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상징주의의 옹호자로서 활약하였고, 소설, 비평 등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눈   시몬, 눈은 그대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그대 무릎처럼 희다.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다.   시몬, 그대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을 받아 녹는다.   그대 마음은 이별의 입맞춤에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서 슬프다.   그대 이마는 밤색 머리칼 아래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 잠잔다.   시몬, 그대는 나의 눈, 또한 내 사랑이다.   *구르몽은 1892년 나이 34세 때 '시몬'이라는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 시는  그 중의 한 편. 여성에 대한 작자의 강한 정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잠     나는 당나귀가 좋아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우물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빌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내 소녀야,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 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아 먹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 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보고   이렇게 전해 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꽃핀 길을 걸어 가고 있을 것이다.   *친구인 앙드레 지드와의 북 아프리카 여행과 서너 차례의 파리 나들이를  제외하고는 잠(Francis Jammes:1868__1938)은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서  떠난 일이 없었다. 그는 오트 피레네의 투르네에서 출생하여 그 옆 마을인  바스 피레네의 아스파렝에서 작고하였다.   토지 공증인 사무소에서 견습으로 일하고 있을 때 최초의 시집을 파리의  친구들, 그가 존경하던 말라르메와 지이드에게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그들과  평생의 우정을 맺게 되었다.   '새벽의 안젤류스에서 저녁의 안젤류스까지(1898)' '벗나무 조상의  슬픔(1902)'등의 시집 외에 '클라라 델레ㅂ즈(1891)' '산토끼 이야기(1903)'  등의 산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06년경을 경계로 하여 그의 작업은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띠게 되었다.  '하늘 속의 빈터(1906)', '기독교적 농경시(1912)' 등에는 열렬한 카톨릭 시인  클로렐에 의한 영향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시든지 산문이든지 간에 잠의  초기 작품에는 태어난 고향의 흙냄새와 먼 타향에 대한 꿈이 기묘하게  감미로운 우수를 지니고 혼합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은 자연인 것이며,  그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시인의 사랑의 표시인  것이다. 후년에 그가 '시로써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 태도에는 항상 세상과 화해하고 있는 소박스러운 경건감이 있었다.  빛깔과 냄새가 깨끗한 이런 시작 태도에 의하여 잠은 상징주의 말기의 프랑스  시세게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다.   프랑시스 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진실이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이며, 시가 깨끗하기 위해서는 시 속에서 진신을 노래해야만 한다.  또한 유파는 오직 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며, 그것은 가능한한 정확하게  아름다운 글자를 배우려 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아름다운 새나 꽃이나  매력적인 다리와 보기 좋은 가슴을 지닌 소녀 등을 시인들이 의식적으로  묘사하는 유파이다. 그것을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    내 넋이여, 영생을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파고 들라.    --핀다로스 "승리의 축가"3   비둘기들이 걷는, 저 조용한 지붕이,   소나무들 사이, 무덤들 사이에 꿈틀거리고,   올바름인 정오가 거기서 불꽃들 가지고   바다를 만든다, 노상 되시작하는 바다를!   오, 신들의 고요에 쏠린 얼마나 오랜 시선   한 줄기 생각 끝에 오는 보수!   잘다란 섬광들의 얼마나 순수한 노력이   자디잔 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태워 없애는가,   또 얼마나 아늑한 평화가 잉태되는 것 같은가!   하나의 태양이 심연 위에 쉴 때는,   영구 원인이 낳은 두 가지 순수 작품,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바로 인식.   굳건한 보배여, 미네르바의 조용한 신전이여,   고요의 더미여, 눈에도 보이는 저장이여,   눈살 찌푸린 물이여, 불꽃의 베일 아래   그 많은 잠을 속에 간직하는 눈이여,   오, 나의 침묵!... 넋 속의 건축이여,   그러나 기왓장도 무수한 황금의 꼭대기, 지붕이여!   단 하나의 한숨으로 줄어드는, 시간의 신전이여,   이 순수한 지점에 나는 올라가 익숙해진다,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시선에만 둘러싸여서,   그리고 신들에게 바치는 나의 최고의 재물인 양,   맑은 반짝임이 더할 나위 없는 경멸을   바다 깊이 뿌려댄다.   과일이 즐거움 되어 녹아들듯이,   제 모습이 죽어가는 어느 입 속에서   과일이 제 부재를 기쁨으로 바꾸듯이,   나는 여기서 미래의 내 연기를 들이마시고,   하늘은 타 없어진 넋에 노래해 준다.   웅성대는 해변들의 변화를.   아름다운 하늘, 참된 하늘아, 변하는 나를 보라!   그 숱한 자만 끝에, 이상야릇하면서도   능력이 넘치는 그 숱한 무위 끝에 나는,   미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고,   내 그림자는 죽은 이들의 집과 집을 지나가며   제 가냘픈 움직임에 나를 길들인다.   넋은 중천의 횃불에다 내맡기고 나는,   너를 지탱한다, 사정 없는 화살들 지닌   빛의 탄복할 만한 올바름이여!   나는 너를 깨끗이 물려 준다, 너의 첫 자리로,   너 자신을 바라보라!... 한데 빛을 돌려주면   그림자의 어두운 반쪽도 따르게 마련.   오, 나만을 위해, 나에게만, 나 자신 속에서,   하나의 마음 곁에서, 시의 샘물들에서,   공허한 순수 결말 사이에서,   나는 기다린다, 나의 위대한 내면의 메아리를,   노상 미래인 빈 속을 넋 속에서 울리는,   씁쓸하고 어둡고 소리 잘 나는 우물을!   너는 아는가, 잎가지들의 가짜 포로여,   이 앙상한 철책을 갉아먹는 물굽이여,   감겨진 내 눈 위의 눈부신 비밀들이여,   어떤 육신이 저 게으른 종말로 나를 끌고 가는가를,   어떤 이마가 그 육신을 이 피투성이 땅으로 끌어당기는가를?   한 가닥 섬광이 거기서 나의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물질 없는 그런 불로 가득 차, 빛에 바쳐진,   막히고, 거룩한, 대지의 조각, 횃불들이 다스리는 곳,   금빛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이루어지고,   숱한 대리석이 숱한 그림자들 위에서 띠는 이곳,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든다.   충실한 바다가 여기서 잔다, 내 무덤들 위에서.   찬란한 암캐여, 우상 숭배자를 멀리하라!   목동의 미소 지닌 내가 외로이,   신비의 양들을, 나의 고요한 무덤들의 흰 양떼를   오래오래 먹이고 있을 때는,   멀리하라 조심스러운 비둘기들을,  헛된 꿈들을, 호기심 많은 천사들을!   여기에만 오면, 미래는 게으름.   산뜻한 곤충은 메마름을 긁어대고.   모두가 타고, 허물어져 대기 속에 흡수된다   뭔지 모를 가혹한 에센스 되어...,,   부재에 도취하면 삶은 한없이 드넓고,   쓴맛이 달고, 정신은 맑다.   죽은 이들은 숨겨져 바로 이 땅 속에 있고   땅은 그들을 다시 데워 그들의 신비를 말린다.   정오는 저 높은 데서, 정오는 움직이지도 않고   자신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에 흡족하니...   완전한 머리와 완벽한 왕관이여,   당신 속에 있는 나는 은밀한 변화.   당신의 걱정들을 감당해 내는 것은 나 하나뿐!   나의 뉘우침이며 의혹이며 속박들은   당신의 커다란 금강석의 흠집이고...  그러나 나무뿌리를 아래 희미한 백성들은,   대리석들로 무거워진 어둠 속에서   이미 서서히 당신에게 가담했다.   그들은 두꺼운 부재 속으로 녹아들었고,   붉은 찰흙은 흰 종족을 마셔 버렸고,   삶의 선물은 꽃들 속으로 옮아갔으니!   죽은 이들의 그 단골 말투들이며, 저마다의 재치,   그 독특한 마음씨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눈물 생겨나던 그곳엔 지금 구더기가 기어 다닌다.   간지럼 먹은 처녀들의 킬킬거림,   그 눈들이며 이빨들이며 젖은 눈까풀들,   불꽃과 희롱하는 매혹의 젖가슴,   응하는 입술들에 반짝거리는 핏발,   마지막 선물들, 그것을 감싸는 손가락들,   모두가 땅밑으로 가 윤희 생사로 돌아간다!   위대한 넋이여, 너는 그래도 바라겠는가   물결과 금빛이 여기서 육신의 눈앞에 빚어내는   이 거짓 빛깔들을 갖지 않을 그러한 꿈을?   네 몸이 안개가 되어도 노래할 생각인가?   아! 모두가 도망친다! 나의 존재는 잔 구멍투성이,   거룩한 조바심 또한 죽어가고!   검고 금빛인 파리한 영생이여,   죽음을 엄마의 젖가슴으로 삼는,   끔찍스레도 월계관을 쓴 위안자여,   아름다운 거짓말, 경건한 속임수여!   이 텅 빈 머리통과 이 영원한 웃음을   누가 알지 못하고 누가 거부하지 않으랴!   그 숱한 삽질의 흙무게 아래서,   흙이 되어 우리의 발걸음도 분간 못하는,   깊은 곳의 조상들, 텅 빈 머리들이여,   정말로 좀먹는 자, 어쩔 도리 없는 벌레는   묘석 아래 잠든 당신들 위해 있지는 않아,   생명을 먹고 살고,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면 미움인가?   그 숨은 이빨은 바로 내 가까이에 있어   온갖 이름이 다 어울릴 수 있을 정도!   상관 없어! 그 벌레는 보고, 바라고, 꿈꾸고, 만지고!   내 살을 좋아하니, 내 잠자리에서까지도,   나는 이 생물에 딸려 살고 있는 걸!   제논! 잔인한 제논!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 바르르 떠는, 날면서도 날지 않는   날개 돋친 화살로 너는 나를 꿰뚫었는가!   그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인다!   아! 태양... 잰걸음에도 꼼짝 않는 아킬레스,   이 넋에 이 무슨 거북 그림자!   아니다!... 서라! 잇닿은 시대 속에서!   깨뜨리라, 나의 육체여, 이 생각하는 형체를!   마시라, 나의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발산하는 시원한 기운이, 나에게   내 넋을 돌려 준다... 오, 짭짤한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힘차게 솟구쳐 오르자!   그렇다! 광란을 타고난 크나큰 바다여,   태양의 무수한 그림자들로 얼룩진   희랍 망토여, 표범의 털가죽이여,   침묵을 닮은 야단법석 속에서   번쩍이는 제 꼬리를 물어뜯고,   제 푸른 살에 도취해, 날뛰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아보도록 해야지!   대기가 내 책을 열었다간 다시 닫고,   박살난 파도가 바위들로부터 마구 솟구치니,   날아가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아!   파도여 부수라! 흥겨운 물결들로 부수라   삼각돛들이 모이 쪼던 저 조용한 지붕을!   *발레리(Paul Valery:1871__1945)는 한때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해서  괴로워했던 때가 있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 문득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젊은  빠르끄'를 쓰게 되었을 때 그 작업은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정신의 연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발레리는 말하고 있다. '실신 상태에서 흥분하여  무엇인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걸작을 창조해 내기보다는 완전히 의식된  상태에서 제 정신으로 무엇인가 약한 것을 써내는 것이 나로서는 바람직하다.'   그의 시는 시혼과 비판적 지성과의 회유한 결합을 보여주었으며, 프랑스의  시가의 하나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작품은 종종  난해하거니와, 그의 일반적 명성은 주로 그 산문에서 유래한다. 시인적 직관과  실증적 사고방식을 갖춰 고차적인 명지와 적확 자재한 표현, 격조 높은  문장은 그 제목이 인간 정신의 여러 사상에 미치는 그의 산문이, 20세기 서구  문화의 최고의 한 표현임을 나타낸다.   클랑세는 발레리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의  엄격함이 발레리를 시적 창조로부터 동떨어지게 하려 하지만 그는 시인인  것이다. 모름지기 그의 이성보다도 강한 것이다. 때문에 그 부르는 소리와  재능은 그의 이론이나 그가 인정하려 하는 유일한 지적인 수단이 가능하게  하기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여러 편의 시를 그로 하여금 쓰게 한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사랑은 흘러 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__1918)의 이름은 20세기의  새로운 예술의 탄생과 자를래야 자를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위치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은 '에스프리 누보(새 정신)'라는 구호와 함께 등장했는데 이  에스프리 누보의 고취자가 아폴리네르였고 또한 그것을 멋지게 꽃피게 한  것도 아폴리네르였다. 지난 세기의 시정신의 결정체인 상징주의가 바야흐로  막을 닫으려 할 때에 아폴리네르는 드물게 보는 단순하고 소박한 수법으로  마치 휘파람이라도 불듯이 시단에 등장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현대시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그는 피카소가 그린 초상을 표지화로 한 시집 '알콜'을 들고서,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13년에 등장한 것은 실로 '프랑스 시의 방향을  결정한'(필립 수포) 중요한 사건이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시는 4개의 불규칙형 4행시와 '밤이여 오라...'의  반복에 의해 구성되었고, 감미롭고 애수띤 울림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랑에 실연한 남자의 탄식으로서 시인이  사랑을 호소하고 있는 여성은 유명한 여류화가 마리로랑생이다. 이 시는  샹송으로 작곡되어 불리워 불멸의 명시가 되고 있다.     엘뤼아르     자유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   공백인 모든 책장 위에   돌, 피, 종이나 재 위에도1)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들 위에2)   전사들의 무기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 둥지에도 금송화에도   내 어린 날의 메아리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과 밤의 기적 위에   날마다의 흰 빵 위에   약혼의 계절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하늘색 누더기 옷들에   곰팡난 해가 비친 못 위에   달빛 생생한 호수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림자들의 방앗간 위에3)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는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또 배들 위에   넋을 잃은 멧부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구름들의 뭉게거품 위에   소낙비의 땀방울들 위에   굵은 또 김빠진 빗방울들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형상들 위에   온갖 빛깔의 종들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4)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깨어난 오솔길들 위에   뻗어나가는 길들 위에   사람 넘쳐나는 광장들 위에5)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켜지는 램프 불 위에   꺼지는 램프 불 위에   모여앉은 내 집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거울의 또 내 방의   둘로 쪼개진 과실 위에   속 빈 조가비인 내 침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주접떠나 귀여운 내 개 위에   그 쫑긋 세운 양쪽 귀 위에   그 서투른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6)   내 문턱의 발판 위에   정든 가구들 위에   축복 받은 넘실대는 불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사이좋은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내미는 손과 손마디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란 얼굴들의 유리창 위에   침묵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있는 입술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은신처들 위에   허물어진 내 등대들 위에   내 권태의 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도 없는 부재7)위에   벌거숭이인 고독 위에   죽음의 걸음과 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다시 돌아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없어   나는 내 삶을 되시작하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 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   역주 1)앞줄의 '공백인 책상'을 열거함인 듯.   2)이 연은 어릴 때 읽은 이야기책의 삽화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3)빛과 그림자가 어울리며 돌아가는 이미지.   4)이미지들의 연속에 의해 앞의 연들에서 전개된 자연의 진리.   5)자연에서 인간으로의 이행.   6)그의 동물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다.   7)마음의 부재, 방심, 허탈.   *엘뤼아르(Paul Eluard:1895__1952)는 스페인 동란 이후 뒤늦게 정치적  움직임에 참여한 시인으로, 브르통이나 아라공보다는 훨씬 온건하며, 순수한  시인으로서의 기질과 천분을 가졌다. 정치참여 이전의 시는 대개가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가 태양처럼 비춰 주는 내면 세계를  응시하며, 부부가 한덩어리고 융합되어 영원히 이데아를 그리는 듯한 신앙과  기도와 같은 사랑의 노래이다.   엘뤼아르에게 있어 하나의 전기가 된 것은 스페인 전쟁의 시기라 할  것이다. 쉬르리얼리즘 시인으로서의 엘뤼아르의 시는 의지에 구속되지 않은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그에게는 수많은  독자들이 쉽게 친할 수 있는 리듬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 성격은 후기의  시작에 있어서도 더욱 뚜렷이 볼 수가 있고, 그의 인간애와 자유에 대한  사랑을 프랑스시의 전통적인 서정성과 결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두 시기에 있어서의 엘뤼아르는 실로 하나의 시인인  것이며, 그가 노래한 최초의 시로부터 그 최후에 이르기까지 비록 심화되고  확대된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1936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르리얼리즘은 사상이 만인 공동  소유의 것임을 밝혀주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브르통     자유 결합   불붙은 나뭇개비 같은 머리의 내 아내   여름의 소리없는 번개 같은 생각들 지닌   모래 시계의 동체 지닌   호랑이 이빨에 물린 수달의 동체 지닌 내 아내   리번의 꽃매듭 같은 별들의 마지막 꽃불 같은 입 가진 내 아내   눈 위의 새앙쥐 발자국 같은 이빨 가진 내 아내 호박 같은 닦은 유리 같은  혀   칼로 찌른 성체 빵 같은 혀를 가진 내 아내   눈을 떴다 감았다하는 인형 같은 혀   믿어지지 않는 보석 같은 혀   아이의 막대기 글씨 같은 속눈썹의 내 아내   제비 보금자리의 언저리 같은 눈썹   온실 지붕의 슬레이트 같은 유리창의 김 같은   관자놀이의 내 아내   얼음장 같은 돌고래의 머리 있는 샘 같은   샴페인 아래 어깨 지닌 내 아내   성냥개비처럼 가느다란 손목의 내 아내   마음의 우연과 주사위의 그 손가락   자른 건초 같은 손가락 지닌 내 아내   담비 같고--성 요한 축일1)밤의   너도밤나무 열매 같은 겨드랑이   쥐똥나무 같고 조개집 같은 겨드랑이의 내 아내   바다와 수문의 물거품 같은   밀과 방앗간의 범벅 같은 두 팔   물레가락 같은 다리 가진 내 아내   시계점과 절망의 동작을 가진   말오줌나무의 속살 같은 종아리의 내 아내   열쇠 꾸러미 같은 발, 술 마시는 배의 틈막이 직공들의 발을 가진   찧지 않은 보리 같은 목 가진 내 아내   바로 영울 바닥에서 랑데뷰하는   황금 계곡 같은 목구멍 가진 내 아내   밤 같은 젖가슴 가진   바다의 두더지 집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루비 도가니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이슬 맞은 장미꽃의 스펙트럼 같은 젖가슴의 내 아내   펼친 부채 같은 배 가진   거인의 발톱 같은 배 가진 내 아내   수직으로 도망치는 새 같은 등 가진 내 아내   수은 같은 등   빛과 같은 등   굴러 떨어지는 돌 같고 젖은 백묵같고   금방 마신 유리컵이 떨어지는 것 같은 목덜미 가진   곤돌라 같은 허리 가진 내 아내   산데리야 같고 화살의 깃털 같고   흰 공작의 날개죽지 같은   움직이지 않는 천평 같은 그 허리   사암과 석면의 엉덩이 가진 내 아내   백조의 등 같은 엉덩이의 내 아내   글라디오라스의 성기 가진   금광석과 오리 너구리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태초와 옛날 봉봉과자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거울 같은 성기 지닌 내 아내   보라빛 갑주 같은 자침 같은 그 눈   사바나2)같은 눈 가진 내 아내   감옥에서 마실 물 같은 눈 가진 내 아내   노상 도끼 아래 있는 나무 같은 눈의 내 아내   물 공기 땅 불과 같은 높이의 눈 가진.   역주 1)카톨릭의 축일로 6월 2일.   2)비 젖은 열대 지방에 있는 나무없는 대초원.   *브르통(Andre Brefon:1896__1970)은 탕쉬브레에서 출생하여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의 영향을 받고 시의 세계로 들어갔다. 특히 폴  발레리와는 1913년 경부터 친교를 맺었다.   파리 대학 의학부에서 공부한 뒤 1915년에 동원되어 육군병원에서  근무하는 한편 프로이드의 저서를 탐독했고, 1916년에 낭트에서 자크 바세를  만나 그의 영향을 받았다.   아라공 그리고 수포와 함께 창간한 시잡지 '문학'은 1919년부터 21년에  걸친 다다이즘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1924년에 '쉬르레알리즘 제 1선언'을 세상에 보냈고, 기관지 '쉬르알리즘  혁명'을 발간하여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제 2차 대전 당시는 동원되었으나 그 뒤 미국에 망명하여 뉴욕에서  에른스트와 잡지 '삼중의 V'를 발행하여 쉬르레알리즘 운동을 계속하다가  1946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제 2차 쉬르레알리즘 국제전을 개최하는 등  생애를 그 운동에 바쳤다.   이 시는 여자를 찬양하는 시인데 여체의 각각 다른 부분들이 연상되게 하는  긴 일련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한 개의  이미지 이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미지를 깜짝 놀란 만한 것이며, 그 이미지들의  다양성 속에 온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쉬르레알리즘의 수법으로서는 자동 기술법이  있는데,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 곧 '마음의 순수한 자동 현상'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브르통은 '제1설언'에서 쉬르레알리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쉬르레알리즘, 마음의 순수한 자동 현상, 그것에 의하여 구술에 의하든  필기에 의하든 또 다른 그 어떤 방법에 의하든 관계 없지만, 사고의 참다운  작용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또한 이성의 어떠한 감독도 받지 않고  심미적이며 또는 심리적인 배려를 완전히 떠난 사고의 구술이기도 하다.     프레베르     고엽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스런 나날을.   그 때 태양은 훨씬 더 뜨거웠고   인생은 훨씬 더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   마른 잎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다.   나는 그 나날들을 잊을 수 없어...   마른 입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다.   모든 추억도 또 모든 뉘우침도 함께   북풍은 그 모든 것을 싣고 가느니   망각의 춥고 추운 밤 저편으로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었지.   네가 불러 준 그 노랫소리   그런 우리 마음 그대로의 노래였고   너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너를 사랑했고   우리 둘은 언제나 함께 살았었다.   하지만 인생은 남 몰래 소리도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 놓는다.   그리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모래에 남긴 발자취를 물결이 지운다.   *프레베르(Jacques Preverf:1900__)는 시인으로서의 출발은 쉬르리얼리즘  운동에의 참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기묘한 것의 대명사이기조차 한 이 운동에서 전후 프랑스 시인 중 가장  인기를 누린 시인이 나왔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바르바라   기억해보렴 바르바라여   그 날 브레스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   너는 미소를 띠고   활짝 개인 기쁨의 얼굴로 미끄러지듯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지.   브레스트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가 너를 마주친 곳은 시암거리였어.   네가 웃음을 짓자   나도 같이 웃게 되었지.   기억해보렴 바르바라여   내가 모르고 있었던 너   나를 모르고 있었던 너   기억해보렴   그날을 그래도 기억해보렴   잊지 말아다오.   어느 집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한 남자를.   그가 너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   바르바라   너는 비를 맞으며 그를 향해 달려갔지   미끄러지듯 기쁨에 넘쳐서   너는 그의 품에 뛰어 들었지.   기억해보렴 바르바라여   내가 반말을 한다고 해서   서운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나는 한 번밖에 못 본 사람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라고 부르고   서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모르면서도   너라고 부른단다.   기억해보렴 바르바라여   잊지 말아다오   정결하고 행복하게 내리던 비를.   너의 행복한 얼굴 위에   그 행복한 도시 위에   바다 위에   해군기지 위에   웨쌍의 선박 위에 내리던 비를.   오, 바르바라여   전쟁이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칼의 빗줄기 속에서   너는 이제 어떻게 되었는가.   품속에 사랑스러운 너를   껴안고 있었던 남자는,   그는 죽었는가 사라졌는가   아니면 아직 살아 있는가.   오, 바르바라여   지금도 브레스트에는   전에 내리던 비처럼   끊임없이 비가 내리건만   비는 전과 같지 않아.   모든 것은 다 부서져 버렸어.   무섭고 슬픈 죽음의 비만 내리고   칼과 강철과 피의 폭풍우도 사라져   다만 개처럼 쓰러지는 구름들 뿐.   브레스트에 내리는 빗줄기 따라   사라져버려   브레스트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 죽어 썩으면   흔적도 남지 않는 그런 개들처럼.   *20세기에 있어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시인을 말하라면 우선 프레베르가  꼽힐 수밖에 없다. 그는 '고엽' 등 수많은 샹송을 작곡자 코스마와 협력하여  작사하기도 하고, 영화의 시나리오나 대사를 쓰기도 하였다. 일반 대중과  접촉한 점에서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   제2차 대전 후에 시집 '말(1948)'이 발표됨으로써 프레베르는 미쇼, 샤르,  퐁쥐 등과 함께 전후의 가장 중요한 시인이 되었다. '바르바라'와 '고엽' 등  샹송 작가로서도 유명한 그는 쉬운 일상어를 교묘하게 구사하여 작품을 쓰기  때문에 예외적인 인기를 차지하여 '말'은 10년 동안에 56만 부나 팔렸다. @ff     독일편 @ff     클롭스토크     봄의 축제   세계의 모든 대양 속으로   나는 뛰어들지 않으리라. 첫번째 피조자들이   광명의 아들들의 환희의 합창을 찬송하는, 높이 찬송하는 곳 근방을   떠돌면서 기쁨에 겨워 죽어가지 않으리라!   다만 두레박 주위의 물방울을,   다만 지구를, 나는 떠돌며 찬미하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두레박 주위의 물방울도   하느님의 손에서 흘러나왔거늘!   하느님의 손에서   보다 큰 지구들이 솟아난 까닭에!   광선의 흐름은 출렁거렸고, 프레야드 성좌들은 형성되었다.   그때에 물방울이여, 그대는 하느님의 손에서 흘러내렸다!   물방울들에 거주하던, 수천에 수천을 곱한 사람들,   그 수억의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창조하는 자여 할렐루야! 그는 솟아나는  지구들보다 낫고,   광선으로 뭉쳐진 프레야드 성좌보다도 낫다.   녹색 낀 황금빛을 하고 나의 옆에서 노는   그대 봄의 곤충이여,   그대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대는 아마   아! 영생을 하지는 못하리라!   나는 찬미하러 나갔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다니? 용서하라, 용서하라,   이 눈물도 유일한 자를 위한 것이리,   오, 당신은 당신은 존재하리라!   당신은 저와 모든 의혹을 풀어 주시리라.   오, 당신은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저를 인도 하시리라, 그때면   저는 그 황금빛 곤충이 영혼을 가졌는지 알리라.   네가 비록 형상화된 먼지요   5월의 산물이라고 하고   또다시 날아가는 먼지가 될지라도   영원한 이가 원하는 대로 되라!   또다시 눈물지누나, 나의 눈으로!   기쁨의 눈물을!   그대, 나의 거문고여   주님을 찬송하라!   또다시 종려수로 나의 거문고는 장식되었고,   나는 주님을 위해 노래한다!   여기 나는 있다. 나의 주위의   모든 것은 만능이요 경이이다!      깊은 경외감으로 나는 창조주를 본다.   당신께서   이름없는 자, 당신께서   그것을 창조하신 까닭에!   나를 에워싸고 불어오며, 포근한 냉기를   나의 달아오른 얼굴에 불어 주는 바람,   그대들, 놀라운 비바람들도   무한한 분인, 주님이 보내신 것!   그러나 이제 바람은 잔다. 거의 숨소리도 내지 않고.   아침 햇살이 무더워진다!   구름이 흐르며 피어 오른다!   영원한 이가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바람은 나부끼고 설렁이며 소용돌이친다!   숲은 얼마나 몸을 굽히며, 물결은 또한 높게 이는가!   인간이 그런 것처럼 볼 수 있게,   당신이 보입니다, 무한한 이여!   숲은 몸을 굽히고 물결은 도주한다.   나는 얼굴을 땅에 대지 않는가?   인자하고 자비로운 주여! 신이시여!   가까이 계신 당신이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밤이 당신의 의복인 까닭에   잔노하셨나이까?   이 밤은 대지의 축복이오니,   아버지시여,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밤은 성장하는 풀줄기 위에   신선함을 뿌려 주러 왔나이다!   즐거움을 주는 포도 위에도!   아버지시여,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가까이 있는 분인 당신이시여, 모든 것은 당신 앞에서 침묵하나이다.   주위의 모든 것은 조용합니다.   금빛으로 뒤덮인 벌레도 보살피소서!   그것도 영혼이 있고, 죽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요?   주여, 제가 갈구하는 대로 당신을 찬송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점점 더 찬란하게 당신은 저에게 나타나십니다!   당신 주위의 밤은 더욱더 어두워지며,   더욱더 축복으로 가득해집니다.   당신들은 가까이 계신 분의 증거인 번뜩이는 광선을 봅니까?   당신들은 여호와의 천둥소리를 듣습니까?   당신들은 그것을 듣습니까, 듣습니까,   주님의 진동하는 천둥소리를?   주여, 주여, 하느님이시여!   자비로우시며, 긍휼하옵소서!   당신의 찬연한 이름이   기도되고 찬송받게 하소서!   그런데 저 비바람은? 그것은 천둥을 수반한다!   비바람은 얼마나 설렁거리는가! 얼마나 굽이치며 숲을 휩쓰는가!   그런데 이게 비바람도 잔다. 천천히   검은 구름은 흘러간다.   그대들은 그 가까이 계신 분의 증거인 날아   가는 광선을 보는가?   그대들은 저 위 구름 속에 주님의 천둥소리를 듣는가?   천둥은 여호와, 여호와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울창한 숲에 김이 서린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거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주님께선   자신의 형리에게 명하셨다.   우리들의 주거들을 지나갈 것을!   아! 벌써, 벌써 하늘과 땅은   자비로운 비에 설렁거리고 있다!   그 어둡던 대지도 이제 활기를 띤다!   풍성한 축복의 하늘이 짐을 푼다!   보라! 이제 여호와께선 폭풍우 속에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포근한 설레임 속에서   여호와께서 오시고 있다.   그분 아래서 평화의 무지개는 몸을 굽힌다!      *클롭스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1724__1803)는  크베트링부르크에서 태어나 예나와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수학 중 종교서사시  "메시아스"를 발표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독일적 심정을 그리스풍의  시형에 담은 것은 프랑스 시법과 계몽사조에 쏠려 있던 당시의 독일 문단에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독일 근대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독일어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자유운율의 시작을 시도하여 괴테, 쉴러, 휠데를린에 이르러 큰  결실을 보았으며, 그가 개척한 심포닉한 시세계의 영향은 릴케를 비롯한 현대  시인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본 작품 '봄의 환가'도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세기의 유럽을 풍미했던  경건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명품이다.     괴테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여, 그대의 하늘을   구름의 너울로 덮어라!   그리고 엉겅퀴의 목을 치는   어린이처럼   참나무나 산정들과 힘을 겨뤄라!   그러나 나의 대지여,   그대가 짓지 않은,   나의 집이며,   불길 때문에 그대가 나를 질투하는   나의 화덕을   그대는 나에게 남겨둬야 한다.   나는 태양 아래에서   신들인 그대들조차 가엾은 자를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겨우   제물과   기도의 숨결로 살아간다.   전하들이여   그리고 만일  어린이들과 걸인들이   희망에 부푼 바보들이 아니었던들   그대들은 굶어 죽었을 것을.   내가 어린이였고,   들고 날 곳을 몰랐을 때에,   나의 방황하던 시선은   태양을 향했었다. 마치 저 하늘에,   나의 탄식을 들어 줄 귀가 있고,   압박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다는 듯이.   그러나 누가 거인족의 오만에 대해서   나를 도왔으며,   누가 죽음과   노예상태에서 나를 구했던가?   거룩하게 불타는 마음이여,   그대가 이 모든 것을 만들지 않았던가?   그리고 젊고 선량한데도,   기만당하고도, 구원에 감사하며   천상에서 잠든 자를 열애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대를 존경하라고? 왜?   그대는 이전에 한 번이라도   짐을 진 자들의 고통을 덜어 준 일이 있는가?   그대는 이전에 한 번이라도   겁먹은 자들의 눈물을 씻어 준 일이 있는가?   나의 주이며, 그대의 주인   만능의 시간과   영원한 운명이   나를 사나이로 단련하지 않았던가?   소년의 꽃 같은 아침의 꿈이 모두   성숙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삶을 증오하고,   황야로 도주해야 한다고   그대는 환상하는가?   나는 여기에 앉아, 나의 모습에 따라,   인간들을 형성한다.   슬퍼하고, 울며,   향락하고 즐기며,   나와 같이   그대를 존경하지 않는   나를 닮은 족속을.   *젊은 괴테의 이상주의 정신 및 천재 정신이 낡은 인습과 전통을 깨뜨리고  자유로운 휴머니즘을 동경하는 이른바 슈트룸 운트 드랑(질풍 노도)시대의  대표적인 시.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신들이  사는 천계에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불을 주었다. 그 불로 해서 인간은  지위가 격상되게 된 것이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신에게 반역한 이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사스 지방  스큐티아 해변의 바위산에 결박하고, 한 마리 매로 하여금 산 채로 그 간을  쪼아먹게 하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괴테의 프로메테우스는 이 신화를 소재로 하여 창작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개인 감정을 표출했다기 보다도 프로메테우스의 목소리를 빌어 시인의  광대한 감정 영역을 표현하고 있다.   즉, 고대 거인의 의상을 자기 몸에 맞게 재단하여 이 힘찬 서사시를  창작했다고 할 수 있다.   참된 인간은 종교적 미신의 대상인 신을 거역하고 그것을 모욕하며, 자기  자신의 법칙에 따라 자기를 발전시키고 무한한 창조를 영위한다고 하는  거대한 인간 에너지의 찬가라 할 수 있다.     5월의 노래(1)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괴테가 시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배우던 시절(1771)에 지은 작품이다.  소녀 프리테리케와의 행복스러운 목가적인 연애 체험이 시작의 동기가  되었다.   그 때까지의 시는 대개가 당시의 독일 시단을 풍미하고 있던 아나크레온  시풍의 모방이든가 놀이의 향락적인 기교시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5월의 노래'는 옛 시범을 깨뜨려 버리고 자기의 순수한 감정을 간결한  시행으로 솔직히 노래하여, 독일 시에 새로운 생명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의 배경에는 알자스의 밝은 자연 경치가 걸려 있다. 또한 5월이라고  하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노래한 것으로, 자연의 놀라운 조화와  사랑의 한없는 생명을 파동을 융합시켜 우주의 조화적 리듬을 전하고 있다.     들장미   어린이는 한 떨기 장미 보았네.   들에 피어 있는 장미   피어난 향긋한 아침의 향기   달러가 떨기 속을 바라보았네.   웃음 머금은 장미.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피어 있는 장미.   어린이는 말했네. 나는 꺾겠다   들에 피어 있는 장미   장미꽃은 말했네, 너를 찌르리.   두고 두고 나를 기억해 다오.   그대로 꺾이고 싶지는 않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피어 있는 장미.   개구장이 어린이는 꺾고 말았네   들에 피어 있는 장미   장미는 가시로 어린이를 찌르고   꺾이지 않으려 몸부림쳤으나   끝내 꺾이고 말았네.   장미 장미 붉은 장미   들에 피어 있는 장미.   *너무나 유명한 '들장미'는 괴테의 프리데리케 체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1771년에 씌어진 듯하다.   그레트헨과 케트헨과의 사랑에서 실연한 괴테는 스물 한 살인 1770년  10월에 제젠하임의 모사관에서 브론드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 프리데리케  브리온(1752__1813)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이 밝으면서 자연 그대로인 순박한 소녀와의 연애로 해서 괴테는 멋진  서정시를 쓰고 있다.   그러나 괴테는 프리데리케와의 사랑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여 죄없는  소녀를 버리게 된다.   이 시에서 아름답고 신선한 들장미는 청순한 소녀를 말하고 있는데, 그  들장미는 거칠기 짝없는 소년에게 꺾이게 된다. 들장미는 아름답기 때문에  꺾이게 되는 것이다.   괴테는 여기서 프리데리케에 대한 죄를 참회하고 있다.     마왕   어둠과 바람 속에 이렇듯 밤 늦게 말을 모는 것이 누군가?   저것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아버지라네.   아버지는 아들을 팔에다 안고 있네.   힘껏 안고 있고, 따뜻하게 감싸고 있네.--   아들아, 왜 그리 무서워하며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저 마왕이 보이지 않으셔요?   관을 쓰고 소매를 끄는 마왕이 안 보이셔요?--   아들아, 저것은 안개의 흐름이다.--   '귀여운 아이야, 오라 나와 함께 가자꾸나!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너와 놀아 주마.   예쁜 꽃이 아주 많이 해변에 피어 있단다.   우리 엄마는 황금옷을 무척 많이 가지고 계시단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에게는 들리지 않나요?   마왕은 내게 살짝 약속하고 있어요.--   조용해, 조용히 있어라 착한 아이야!   마른 잎에 바람이 불고 있는 소리다.--   '귀여운 아이야,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련?   딸들에게 너와 놀아 주라고 말해 주마.   딸들은 앞장서서 밤의 춤을 추면서   얼르고 춤추고 노래해서 너를 잠자게 해 줄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 저 어두운 곳에   마왕의 딸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아요?--   아들아, 아들아, 아주 잘 보이지.   오래 된 버드나무가 저렇게 회색으로 보인단다.--   '나는 네가 좋단다. 네 귀여운 모습을 좋아한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데려갈 테다.'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를 붙잡아요!   마왕이 나를 유괴하려 해요!   아버지는 오싹해져 서둘러 말을 모네.   신음하고 있는 아이를 양팔에 안고서   가까스로 자기 집에 도착해 보니   팔 안에서 아이는 숨져 있었네.   *'마왕'은 1782년의 작품. 처음에 오페라 가사 속에 삽입되었으나 우리에겐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더욱 유명하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__1832)와 같이 만능의 재능을  천부적으로 지니고 있어서 문예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가, 기나긴 생애를 변화와 발전의 끊임없는 생명의 길을 걸어간 인간  전체를 몇 마디로 요약해 말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대체로 괴테는 자기 자신의 체험을 고백하는 자가로 자기가 겪은 것이  아니고서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 점은 상상의 천재인  셰익스피어와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이 그의 모든 시작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슈트라스부르크 시대의 애인 프리데리케, 또는 베쓰러 시대의  샬롯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롯테의 모델)', 그리고 약혼까지  하였다가(1775)실패한 리리 등은 그의 생활과 예술활동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괴테라면 뭐니뭐니 해도 "파우스트"인데 이 대작이 완성된 것은  1831년 8월이었다. 약관 23세의 괴테가 초고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한 이래  무려 59년의 긴 세월을 두고 창작된 것이며, 그 속에는 괴테 자신의 일생  동안의 전 체험, 전 사상이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괴테는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를 완성한 다음 불과 반년후인 1832년 3월 28일 83세의 고령으로  조용히 운명하였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보다 많은 광명을...'이었다고  한다.   생전 생후를 통해서 그처럼 영광을 입은 작가는 도이취 문학사상에서 찾아  볼 수 없으며 전 세계, 고금을 통해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남겨진 저서만  해도 봐이마르의 전집판으로 순문학작품 63권, 자연과학 연구 14권, 일기  16권, 서한집 50권, 합계 143권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자서전  외에도, 그의 충실한 제자 엑커만에 의한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의 생활과  사상을 알기 위하여 귀중헌이 되어 있다.     실러     동경   차디찬 안개가 짓누르고 있는   아, 이 골짜기의 바닥으로부터,   출구를 찾을 수 있다면야,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영원히 젊고도 영원히 푸른   그곳의 아름다운 언덕을 본다.   죽지나 깃을 가졌다면   그 언덕에 갈 수 있으련만!   울려오는 조화를 나는 듣는다.   천국의 안식의 감미로운 소리들을   가벼운 바람은 나에게로   감미로운 향내음을 실어온다.   짙은 녹음 사이에 하늘거리며   불타는 황금빛 과일을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는 꽃들은   겨울철에도 남아 있다.   그곳, 영원한 햇빛 속은   살기에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저 언덕 위의 그 바람은   또한 얼마나 활기를 줄까!   그러나 미친 듯 그 사이에 굽이치는   강물의 노도가 나를 막는다.   강물의 파도는 넘실거린다.   나의 영혼은 겁을 낸다.   흔들리는 배 한 척을 보았으나,   아! 그러나 사공이 없다.   주저말고 용기내어 타고 보자!   돛은 이제 펼쳐졌다.   그대는 믿고 또 모험해야 한다.   신들은 담보를 받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놀라움만이 그대를   아름다운 그의 나라로 데려간다.   *실러(Friedrich von Schiller:1759__1805)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러나 괴테가 현상 속에서 진실의 전형을  추구한 대신 실러는 현실 속에서 이상의 관념을 추구하려고 했다.   이 시는 이러한 실러의 후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의 고매한 정신과  강력한 의지를 관념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제 3연과 제 4연에는 청년 시대에 그가 참여한 슈트룸 운트 드랑(질풍  노도)의 힘찬 휴머니즘이 강하게 배어 있다.   1802작.     순례자   인생의 봄에 벌써   나는 방랑의 길에 올랐다.   청춘의 아름다운 춤들일랑   아버지의 집에 남겨둔 채로   유산과 소유의 모든 것을   즐겁게 믿으며 버려 버렸다.   가벼운 순례자의 지팡이를 들고   어린이의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길은 열려 있다. 방랑하라   언제나 상승을 추구하라는,   거대한 희망이 나를 휘몰고,   어두운 믿음의 말이 들린 때문에.   황금빛 대문에 이를 때까지,   그 문 속으로 들어가라고,   그곳에서는 현세적인 것이   거룩하고도 무상하지 않으리라.   저녁이 되고 또 아침이 와도,   나는 한 번도 멈춘 일이 없다.   그러나 내가 찾고 원하던 것은   나타난 일이 도무지 없다.   산들이 행로를 가로막았고   강들이 발걸음을 얽매었으나,   협곡 위에는 작은 길을 내고   거친 물살 위엔 다리를 놓았다.   그리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어떤 강기슭으로 나는 왔다.   강의 길을 즐거이 믿으면서   나는 강의 품속에 몸을 맡겼다.   그 강의 유희하는 물결은   나를 큰 바다로 이끌어 갔다.   내 앞에 드넓은 허공만 있고,   목적지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어떤 길도 그곳으론 가지를 않고,   나의 머리 위의 저 하늘도   땅과는 한 번도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은 결코 이곳일 수 없다.   *실러의 생가는 독일 네카르강 언덕 마르바하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1759년 생으로서 괴테보다 10년 늦게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신학을 배워 성직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르바하는 카알  오이겐 공이 지배하는 군소 절대 전제국으로서, 뛰어난 인재를 찾아내어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려는 군국주의 정책 때문에 실러는 카알 학원 학생이  되었다.   학교 생활이 시작됨과 더불어 실러는 곧 감금 생활, 군국주의, 예속 제도,  귀족의 자세와 소시민 자세 사이의 차별 등으로 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환경이었기에 그 억압 속에서 자유 시인 실러는 힘차게 자라나게  된다.   이윽고 희곡 '군도'가 창작되고 1782년에 만하임에서 상연되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슈트룸 운트 드랑(질풍 노도)시대에 있어서 그의 최대의 작품인  것이다.   실러는 원래 사상가이며 극작가여서 '빌헬름 텔'을 비롯하여 수많은 뛰어난  극작품과 미학상의 논문 등을 발표하였다.   시의 분야에서는 사상시와 극적 발라드 등에 뛰어났고, 그 수사는  웅장하기조차 하다. 특히 베토벤의 제 9교향곡 합창 가사가 된 '환희의  찬가'는 널리 알려져 있다.     휠더린     고향   뱃사람은 즐거이 고향의 고요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고기잡이를 마치고서 머나먼 섬들로부터.   그처럼 나도 고향에 돌아갈지니,   내가 만일 슬픔과 같은 양의 보물을 얻을진대.   지난날 나를 반기어 주던 그리운 해안이여,   아아 이 사랑의 슬픔을 달래 줄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내 숲이여 내게 약속할 수 있을까,   내가 돌아가면 다시 그 안식을 주겠노라고.   지난날 내가 물결치는 것을 보던 서늘한 강가에   지난날 내가 떠 가는 배를 보던 흐름의 강가에   이제 곧 나는 서게 되리니 일찍이 나를   지켜 주던 그리운 산과 들이여, 내 고향의   오오 아늑한 울타리에 에워싸인 어머니의 집이여   그리운 동포의 포옹이여 이제 곧 나는   인사하게 될지니, 너희들은 나를 안고서   따뜻하게 내 마음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진심을 주는 이들이여,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안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 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하늘의 불을 주는 신들이   우리에게 신성한 슬픔도 보내 주셨나니,   하여 슬픔은 그대로 있거라, 지상의 자식인 나는   모름지기 사랑하기 위해 또 슬퍼하기 위해 태어나라.   *휠더린(Friedrich Holderlin:1770__1843)만큼 참된 고향과 향토와 조국에  깊숙이 그 영혼의 뿌리를 내린 시인은 달리 없다. 그 시작의 계기가 어떤  것이든 간에 작자는 피 흐르는 아픔을 귀향의 값싼 감상에 의해 달래려  하지는 않는다.   고향 곧 조국의 신의 시련에 의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치기보다는 그것을  철저하게 마음에 새기고,   아울러 그 동일한 신에게서 사랑의 기쁨을 몸으로 느끼려 하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에게   권능을 지닌 자, 그대들이여, 다만 한 여름과 한 가을을   저의 성숙한 노래를 위해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감미로운 유희에 포만하여,   저의 마음이 온유해져서 죽게 하소서!   삶에서 거룩한 권리가 부여되지 못한 영혼은   저 하계의 명부에서도 쉬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 땐가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거룩한 것, 시가 완성되면,   환영하리다, 오, 음영의 세계의 적막이여!   비록 나의 현악이 나를 배웅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리다. 나는 한 번 신들처럼 살았으니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리다.   *휠더린은 1806년 이래로 죽을 때까지 36년 동안 정신병자로 지내게 된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에 깃들여 있는 우울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발리스     밤의 찬가   생명이 있고,   감성이 있는 어떤 자가,   그를 에워싼 넓은 공간의   놀라운 현상들 중에 무엇보다도   광선과 광파   빛깔들,   낮 동안의 온화한 편재를 지닌   가장 즐거운 빛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빛의 푸른 대양에서 헤엄치는   쉴 줄 모르는 성좌들의   거대한 세계는 빛을   가장 내면의 영혼으로 호흡하며,   빛나는 돌도   조용한 식물도   삶의 다양한   언제나 움직이는 힘과 같이   동물들의 힘도   빛을 호흡한다--   다채로운 구름들과   그리고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려 깊은 시선과   경쾌한 발걸음   그리고 음악적인 입을 가진   찬연한 이방인도 빛을 숨쉰다.   현세의 자연의   임금님과 같이   빛은 모든 힘을   무수한 변천으로 불러내며,   빛의 현존만이   현세의 경이로운 찬란함을   제시한다.   거룩하고 말할 수 없고,   신비에 가득 찬 밤을 향해   나는 아래쪽으로 몸을 돌린다--   깊은 묘혈 속에 침몰된 듯이   세계는 저 멀리 놓여 있다.   세계의 위치는 얼마나 황폐하며 쓸쓸한가!   깊은 애수가   심금을 울린다.   회상의 머나먼,   청춘의 소망들,   소년시절의 꿈들,   기나긴 인생의   짧은 기쁨들   그리고 하염없는 희망들이   회색의 옷을 입고,   일몰 이후의 저녁 안개처럼   다가온다.   다채로운 향락과 함께   세계는 저 멀리 놓여 있다.   다른 공간에서   빛은   즐거운 천막을 쳤다.   빛은 이제 그의 성실한 아이들에게   그의 정원으로   그의 찬란한 집으로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서늘하게 활기를 주며,   이렇게 예감이 차서   가슴에서 솟아나   애수의 포근한 공기를   마시는 것일까?   어두운 밤이여   그대도 인간적인   마음을 지닌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고 힘차게   나의 영혼을 동요시키는   무엇을 그대는   그대의 외투 밑에 지니고 있는가?   그대는 다만 무섭게만 보이는구나--   고귀한 향내는   그대의 손과   양귀비 다발에서 방울져 떨어진다.   감미로운 도취 속에서 그대는   장의의 무거운 날개를 펴고   우리들에게 어둡고 형언할 수 없으며,   그대 자신과도 같이 정다운   기쁨을 선사하라.   우리들로 하여금 천국을 예감케 하는   그 기쁨을.   다채로운 사물들을 지닌   빛이 이제 나에게는   얼마나 빈약하고 치졸하게 생각되며,   작별의 이   얼마나 즐겁고 축복을 주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밤이 그대로부터   봉사하는 자들을 빼앗아간   바로 그 때문에   빛이여, 그대는   드넓은 공간 속에   빛나는 공들을   씨뿌렸으니,   그대가 멀리 떠난 시대에   그대의 회귀를   그대의 만능을 창도하기 위함이라.   저 머나먼 곳의   빛나는 별들보다도   밤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눈뜨게 한   그 무한한 눈이 더 거룩하게 생각된다.   내심의 눈은   저 무수한 성군의 가장 창백한 것들보다   더 멀리 본다.   빛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내심의 눈은   사랑하는 심정의   깊은 곳을 투시하며   형언할 수 없는 열락으로   고귀한 공간을 채우는 것을 꿰뚫어본다.   거룩한 세계의   고귀한 예고자며,   복된 사랑의 양육자인   세계의 여왕인 밤이여 찬송 받으라.   연인이여, 그대가 온다--   밤은 왔다--   나의 영혼은 광희한다--   현세의 낮은 지나고,   그대는 또다시 나의 것.   나는 그대의 깊고 검은 눈을 본다.   그리고 사랑과 행복 이외의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우리는 밤의 제단에 무릎을 꿇는다.   포근한 침상 위에--   껍질은 벗겨지고,   뜨거운 포옹으로 불이 붙은 채,   감미로운 희생의   밝은 불길은 솟아오른다--   *한낮의 빛보다는, 한밤의 어두움을 노해했고, 생의 현실보다는 죽음의  몽한을 사랑하여 그것을 노래한 독일 낭만파 초기의 대표적 시인  노발리스(Novalis:1772__1801)의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라  한다.   노발리스는 예나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수많은 낭만주의자들, 그 중에도  피히테, 실레겔 형제, 밀러 등과 깊이 사귀게 되었다.   바이센페르스에서 그는 13세 소녀 조피폰 퀸을 알게 되어 약혼했으나, 2년  뒤에 그녀는 죽고 만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게 된 시인의 괴로움과  죽음의 세계까지라도 그녀를 찾아가리라는 결의의 표현으로 시집 '밤의  찬가(1800)'를 썼다.   노발리스에게 있어서 죽은 조피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스스로 빛의 나라를  떠나서 어두움의 세계를 동경하는 것이며,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있는  천국으로 가려 하는 경건한 심정이 된다.   그러나 그의 최대의 작품은 중세기의 기사 시인을 소재로 한 '하인리히 폰  오프티딩겐'으로서, 1979년에 착수하여 '기대'라고 타이틀을 붙인 전편은  완성하였는데 '실현'이라고 하는 후편은 처음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주인공이 꿈에 '푸른 꽃'을 보고서 이 꽃을 찾아 방황하는 점에서 이 책의  별명을 '푸른 꽃'이라고 부른다. 또 이 꽃은 무한을 동경하는 낭만파의 본질의  상징도 되었다. 원래 그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시사에 의하여 두  종류의 발전소설로서의 작품을 쓴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은  괴테의 세계관과 노발리스의 그것과의 상이점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자주  비교 되어진다.     아이헨도르프     밤의 꽃   밤은 고요한 바다와 같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의 고뇌가   얼기설기 뒤엉켜 느릿느릿하게   물결치고 있다.   온갖 희망은 구름과 같이   고요히 하늘을 흘러 가는데   그것이 회상인지 또는 꿈인지   여린 바람 속에서 그 누가 알랴.   별들을 향하여 하소연하고 싶다.   가슴과 입을 막아 버려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희미하게   잔잔한 물결 소리가 남아 있다.     상쾌한 여행   초록빛 산들바람 부드러이 흘러오니   봄이다 정녕 봄이다   숲에는 뿔피리 소리가 흐르고 있고   힘찬 눈동자는 밝게 빛나며   여러 가지 모양의 소용돌이는   이상스러운 물줄기를 이룬다.   그 흐르는 물의 눈짓이 그대를   아름다운 아래 쪽 세계로 가자 청하니   나는 아무 것에도 거역하지 않으련다   바람은 너희에게서 나를 멀리 나른다.   기분좋게 햇빛에 취하며   물줄기를 타고 나는 여행하리라.   수천의 목소리가 울려 내 마음을 부추기고   하늘 높이 오로라가 불타며 흘러가누나.   여행길에 나서련다, 나는 그 여행길이   어디서 끝나느냐고 묻지 않으련다.   *독일의 유서 깊은 무보비치 성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낭만파 시인인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1788__1857)는 행복한 유년 시대를  보내고, 할레와 하이텔베르그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많은 시인들과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 중에는 브렌타노가 있다.   그는 순수한 독일의 서정 시인으로서 음악적이고 쉬운 시어로 독일적인  인물과 풍경을 노래한 음유 시인풍의 가요 작가이다.   그 제작의 내면에는 깊은 애정과 종교적 정감이 스며 있는데, 여기 실은  '밤의 꽃' 역시 그런 작품이다.   흔히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가리켜 노래하기에 쉬우며, 무조건 아름다운  민요풍이라고 평한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몽상을 주제로 하는 그의  시에는 아주 경건함이 감돌며, 때로는 신비로운 감정까지 베어 있다고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헨도르프는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의 증거를 찾아보고  있으며, 그가 "고향"이라고 할 때 그 말 속에는 짙은 종교적인 동경을 느끼게  된다.   한편 아이헨도르프는 유랑과 향수의 시인이기도 했는데, 이 시는 그의 그런  면을 말해주는 가작이다.   끝없는 여행에 대한 아늑한 그리움, 무한에 대한 동경 등이 회화적이면서도  음악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는 그의 시 세계를 단적으로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하이네     로렐라이   왜 그런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슬퍼지나니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내 마음에 자꾸만 메아리친다.   쌀쌀한 바람 불고 해거름 드리운   라인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데   지는 해의 저녁놀을 받고서   바위는 반짝이며 우뚝 솟아 있다.   이상스럽구나 그 바위 위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가만히 앉아서   빛나는 황금빗으로   황금빛 머리를 빗고 있다.   황금빗으로 머리를 손질하면서   부르고 있는 노래 소리   그 멜러디는 이상스러워   그 노래의 힘은 마음에 스민다.   배 젓고 있는 사공의 마음에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기만 하여   뒤돌아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강 속의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무참하게도 강 물결은 마침내   배와 사공을 삼키고 말았나니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로렐라이의   노래로 말미암은 이상한 일이여.   *하이네의 가장 유명한 시로 로렐라이란 '마의 바위'란 뜻이다.   로렐라이의 전설은 이미 선배 시인 브렌타노와 아이헨도르프에 의해 시로  작품화된 바 있었다. 브렌타노는 라인 강에 투신하여 죽는 운명의 마녀를  이야기 시로 노래했고, 아이헨도르프는 라인 성에 사는 숲의 요정을 소곡으로  노래하였다.   하이네는 두 시인의 작품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더 깊이 주목한  것은 레벤 백작이 쓴 '로렌라이의 바위'였다. 이 작품은 오늘날 이미 잊혀지고  있다.   하이네의 작품과 레벤의 작품은 외형과 내용에서 비슷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 두 작품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레벤의 작품 배경은 달빛 비치는 라인 강인 반면, 하이네의 것은 해지는  절박한 순간의 라인 강이다. 레벤의 시에서는 바위에 앉아 있는 마녀만 나올  뿐이요 라인 강의 풍경은 묘사되어 있지 않으나, 하이네는 그 풍경도  분위기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근위병   프랑스로 돌아가는 두 근위병   그들은 러시아의 포로였었다.   독일의 병영에 막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고개를 떨구었다.   거기에서 슬픈 소문을 듣게 되었나니   프랑스는 전쟁에 패배하였고   대군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황제께서, 황제께서 잡히셨단다.   두 사람은 서로 힘껏 끌어 안으며   슬픈 소식에 함께 울었다.   하나가 말하기를 너무너무 슬퍼지니   나의 옛 상처가 다시 쑤신다.   다른 병사 말하기를 끝장 난 거야,   너와 함께 그대로 죽고 싶지만,   집에는 처자가 기다리고 있다네.   나 없으면 그들은 굶어 죽는다네--.     아내와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게는 그보다 큰 열망이 있나니,   처자야 굶주리면 동냥이나 다니라지,   황제께서, 황제께서 잡혀 가지 않았는가!   전우여, 내 부탁을 들어 주게나,   내가 이제 여기서 죽게 된다면   내 시체를 프랑스로 가지고 가서   조국의 땅 속에 나를 묻어 다오.   빨강 리본이 달린 십자훈장은   내 가슴 위에다 매달아 다오   내 손에는 반드시 총을 쥐여 주고   허리에는 군도를 차게 해 다오.   준비를 갖춘 뒤에 무덤 속에 누워서   보초처럼 숨 죽이고 귀 기울이리니.   언젠가 대포소리 천지를 뒤흔들고   말굽소리 우렁차게 들려오리라.   황제께서 내 위로 말을 달리시며   수많은 창검이 철컥대며 번쩍이면   나는 무장하고 무덤에서 다시 나와   황제를, 황제를 호위하리라.   *철학자 헤겔이 1831년에 죽고 시성 괴테가 1832년에 죽게 되자 독일은  그때까지 정신계에 군림하고 있던 지상권이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긴급하고  피할 길 없는 정치, 사회, 경제 문제가 크게 클로즈업하게 되었다.   문예 사조상으로는 낭만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사실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주의의 특징은 시대의 정세를 반영한 강한 정치 의식에 있다.   이 시기의 이데올로기적 문학을 일괄하여 흔히 '청년 독일파'이라 일컫고  있는데, 그 일파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아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__1856)이다.   하이네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출생이 문제가 되어 독일에서 본인이  원하는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으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고, 1830년에는 실의 속에 파리를 방문한다. 파리에서 그는 살롱에  출입하면서 수많은 저명 인사들과 친교를 나누게 되고 결국 거기에 영주하게  된다.   만년에는 중한 척추병에 걸려 8년에 걸친 병고를 겪은 뒤 1856년에 파란  많던 생애를 마친다.   '근위병'은 혁명가 하이네의 피끓는 정열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명작이다.   독일 국적의 하이네가 프랑스인의 애국심을 북돋는 이 시를 썼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리라.     노래의 날개   노래의 날개 위에 우리 올라 타고   함께 갑시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간지스 강 그 기슭 푸르 푸밭에   우리 둘이 갈 만한 곳이 있다오.   환한 꽃 동산에 고요히 떠오를 때   빨갛게 활짝 피어 아름다운 꽃동산   잔잔한 호수에 웃음짓는 연꽃들은   아름다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오.   꽃들은 서로서로 웃음을 머금고   하늘의 별을 향하여 소근거리고   장미는 서로서로 넝쿨을 겨루어   달콤한 밀어 속삭이며 뺨을 부비오.   깡충깡충 뛰어나와 귀를 쫑긋거리는   귀여운 염소의 평화로운 모습이 있고   해맑은 시냇물의 하느작이는 소리   멀리멀리 아스라이 울려 퍼지는 곳.   그 아름다운 꽃동산 종려나무 그늘에   사랑하는 그대와 나 함께 누워서   사랑의 온갖 즐거움을 서로 나누면서   아름다운 꿈을 꿈꾸며 살아갑시다.   *하이네로 대표되는 '청년 독일파'는 7월 혁명(1830)의 영향 밑에서 근대적,  자유주의적 제 이념을 구취한 작가군의 총칭으로 도이취 사실주의의 집합체로  간주되고 있다. 이 말은 먼저 본바르크가 그의 강의 '미학적 출진(1834)'  속에서 사용한 데서부터 유래하고 있는데, 1835년에 연방의회가 하이네,  본바르크, 라우베, 굿쓰코 빛 문트 등 5인의 저작을 발금한 이래 이 말은  널리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1830년부터 1848년에 이르는 동안 정치적인 시인,  작가를 이렇게 부르는 일이 많았으나 그 범위는 반드시 일정한 것은 아니고  주로 저널리즘이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슈토름     해안   갈매기는 지금 해안 호수로 날아가고   저녁 어스름이 드리우며   개울의 물웅덩이에는   저녁 해가 비치고 있다.   회색빛 새가   수면에 닿을 듯이 날아가고   바다를 흐르는 안개 속에   섬들이 꿈처럼 둥둥 떠 있다.   거품 이는 흙탕에서   아주 이상스러이 중얼거리는 소리 들리고   쓸쓸한 새의 울음소리 들리나니   언제나 이런 상태이다.   다시금 바람은 고요히 불고   그리고는 소리없이 잠드나니   바다 가운데 쪽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온다.   *슈토름(Theodor Storm:1817__88)은 소설 '호반 백마의 기사'의 작자로서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실레스비히 홀스타인의 서해안 도시 후즘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법률을 전공하였고, 고향으로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   1853년에 고향 땅이 덴마크 영토가 되자 그는 추방당하여 포츠담과  하이리겐슈타트에서 살았다.   고향 주민들이 덴마크의 학정에 대해 저항의 깃발을 들자 슈토름도  조국애에 불타는 작품을 쓰는 한편, 아이헨도르프와 뫼리케 등 문인들과  친교를 가졌다.   이 시는 고향의 해안이 지닌 신비감을 잘 묘사하고 있는 그의 대표작 중  한편으로 그 배우에는 어떤 체념이 감돌고 있다.     게오르게     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너는 날렵하고 청순하여 불꽃 같고   너는 상냥하고 밝아서 아침 같고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같고   너는 조용히 솟은 깨끗한 샘물 같다.   양지바른 들판으로 나를 따르고   저녁놀 진 안개에 나를 잠기게 하며   그늘 속에 내 앞을 비추어 주는   너는 차가운 바람, 너는 뜨거운 입김.   너는 내 소원이며 내 추억이니   숨결마다 나는 너를 호흡하며   숨을 들여쉴 때마다 너를 들여마시면서   나는 내게 입맞춤한다.   너는 고고한 나무의 꽃가지   너는 조용히 솟는 깨끗한 샘물   너는 날렵하고 청순한 불꽃   너는 상냥하고 밝은 아침.   *이 시는 얼핏 볼 때 어떤 여성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하지만  대상은 소년이다. 게오르게는 막시민이란 일찍 죽은 소년을 대상으로 많은  시를 썼다.   이 작품에서 '너'가 꼭 막시민이라고 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시에서  노래됨으로 해서 인간의 신성을 얻게 된 소년의 속성이 불꽃이라든가 샘 등  순수한 것에 비교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기교 넘치는 형식미를 이루고 있다.     노래   시냇가   홀로 일찍 피어난   개암나무 꽃.   서늘한 풀밭에   지저귀는 새.   포근히 우리를 따뜻이 하여 주고   번득이다 바래는   스쳐가는 빛.   빈밭   회색인 수목...   봄은 우리를 뒤쫓아   꽃을 뿌릴 것 같다.   *게오르게(Stephan George:1868__1933)는 라인강 연안의 뤼데스하임에서  태어나, 다룸시타트 고교를 졸업 후 파리에서 말라르메를 알게 된 것이  그에게 시인의 자각을 비로소 갖게 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 밑에  당시의 독일 문학의 자연주의적 경향이나 사회의 실증주의적 풍조에 반발.  일상성을 탈피한 순수한 언어 예술로서의 문학을 지향함으로써 엄격한 척도와  단련에 의해 시의 신성을 찾으려 했다. 현대 독일 서정시의 효시로 인정 받는  그의 작품집으로는 '제1시집'등이 있다.     호프만시탈     이른 봄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 간다.   흐느껴 우는 소리 나는 곳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고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아가씨의 흩어진 머리칼에서   봄바람은 몸을 흔들었다.   아카시아나무를 흔들어   아카시아꽃을 떨어뜨리고,   숨결 뜨겁게 내몰아 쉬고 있는   두 연인을 싸느다랗게 했다.   소리내어 웃고 있는 아가씨의   입술을 살짝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봄날에 눈을 뜬 들판을   여기저기 찾아 다닌 것이다.   목동이 부는 피리 속을 빠져 나와   흐느껴 우는 소리와도 같이   새벽놀 붉게 물든 곳을   훨훨 날아 지나온 것이다.   연인들이 속삭이고 있는 방을 빠져서   봄바람은 말없이 날았다.   그리고 희미한 낚시 불빛을   허리를 굽히면서 끄고 온 것이다.   봄바람이 달려 간다.   잎사귀 없는 가로수 사이를   이상한 힘을 지닌   봄바람이 달려 간다.   벌거숭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면서   봄바람의 입김은   창백한 그림자를 뒤따른다.   지난 밤부터 불고 있는   이른 봄날의 오솔바람은   향긋한 냄새를 지니고   이 마을에 찾아 왔다.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고 바람 역시 싸늘하여 가로수들 역시 아직  싹이 트지 않았으나 시인의 마음 속에는 이미 봄이 왔다. 그리고 봄과 함께  지난 날의 여러 추억에 잠기는 것이다.     여행의 노래   물은 굽이쳐 흘러 우리를 삼킬 듯하고   바위는 굴러 우리는 쓰러질 듯한데   날새 또한 빠르고 세차게 날개치며   날아와 우리를 채어 갈 듯하다.   하지만 저 아래쪽에 발이 끝없이--끝없이 펼쳐져 있고   연륜을 알 수 없는 호수에는   과일이 무수하게 그림자지고 있다.   대리석 현관과 정원의 샘이   흐드러지게 핀 꽃동산 속에 떠오르고   그리고 가쁜한 바람이 불고 있다.   *게오르게가 신고전주의를 형성해 가고 있을 때 유태 계통의 유서있는  가정에서 출생한 호프만시탈(Hugo von Hofmansthal:1874__1929)은 빈에서  신낭만파의 중심이 되어 자연주의와 투쟁하게 된다.   이 시에서 호프만시탈은 산뜻한 시어를 사용하여 선명하게 한 동화의  세계를 그려 내고 있다. 남쪽 나라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이 내면적인 여행  체험에 뒷받침되어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가 떠오르는 것이다.     릴케     가을날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그것들에게 또한 보다 따뜻한 이틀을 주시옵소서.   그것들을 완성으로 몰아가시어   강한 포도주에 마지막 감미를 넣으시옵소서.   지금 집없는 자는 어떤 집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외로운 자는, 오랫동안 외로이 머무를 것입니다.   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잎이 지면 가로수 길을   볼안스레 이곳저곳 헤맬 것입니다.   *'형상 시집'이전의 릴케는 젊은 낭만주의적인 꿈의 분위기 비슷한 것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신시집'시기의 시인에게서는 사물을 분명히  관찰하려 하는 노력과 현실 세계 안에 살려고 하는 결의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릴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인 '가을날'은 1902년 9월  21일에 창작되었다.     표범     --파리의 식물원에서   그의 시선은 지나가는 쇠창살들로   너무나 지쳐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다.   그 시선에는 수천의 창살들만이 있고   그 창살들 뒤에는 세계가 없는 듯.   유연하고 힘찬 발걸음의 포근한 행로는   아주 작은 원을 이루어 맴을 도는데,   거대한 의지가 그 속에 마비되어 있는   중심을 맴도는 춤과도 같다.   다만 가끔 동공의 포장이 소리없이 걷혀지며--   어떤 영상이 그 곳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사지를 긴장된 고요가 훑어간다--   그리고 심장 속에서 존재하기를 끝낸다.   *릴케는 파리에서 조각가 로댕에게 사사하여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물"을 추구하여 그 핵심을 포착함으로써 예술 창조의  계기로 삼으려 노력하였다.   이 시는 첫머리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파리 식물원에 있는 표범을  하나의 사물로 충분히 관찰한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다. 1903년에 완성된 이  시는 1907년에 간행된 시집 '신시집'에 수록되었다. 조각가 로댕에게서  사물을 보고 형성하는 방법을 배운 뒤에 씌어진 작품이니만큼 묘사된 대상은  동과 정 속에 조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오 주여, 어느 사람에게나   오오 주여, 어느 사람에게나 그 사람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죽음, 그것은 그가 사랑을 알고, 의미와 위기가 부여되어 있던   저 생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과일의 껍질과 나뭇잎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나 내부에 품고 있는 위대한 죽음   그 누구나가 모든 중심인 과일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이 과일을 위하여 소녀들은 나무와 같이   하나의 거문고 속에서 나타나 나오고   소년들은 그녀를 간구하여 어른이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리고 여자들은 성장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밖의   그 누구에게도 인수되지 않는 불안에 익숙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과일을 위하여 한 번 본 것이, 설령 그것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것인 양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무엇인가를 조립하고 있는 누구인가가   그 과일을 싸는 세계가 되고, 그리고 얼고 또한 녹아서   그리고 그것에 바람이 되어 불고, 햇빛이 되어 비쳤던 것입니다.   이 과일 속에 마음의 모든 열과   두뇌의 백열이 들어가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사들은 새떼처럼 날아와   이 과일이 전부 아직 익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릴케(Rainer Moria Rilke:1875__1926)는 그 생애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 새삼스레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시적 전기는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 여행이 있다.   특히 루 살로메와의 러시아 여행을 통해 우주에 있어서 신은 어디나  존재한다고 하는 범신론을 체험하게 되고, 화가들이 모여 사는 볼프스베테에  살면서 신의 성숙과 생명 성장의 일체를 체험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체험이 기조가 되어 형성된 것이 이 작품이다.     최후의 시     --1926년 12월 ㅂ몽에서   오라, 내가 아는 그대, 마지막 자여   육신의 옷을 걸친 불치의 고통이여!   나는 얼마나 정신 속에서 불탔던가, 보라, 나는 불타고 있다.   그대 속에서--오랫동안 나무는 그대가 불붙이던   불꽃에 대한 동의를 거부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대에게 다가가서 그대 속에서 불타고 있다.   나의 현세의 평온한 삶은 그대의 분노 속에서   현세의 것이 아닌 지옥의 분노가 된다.   아주 순수히,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헝클어진 고뇌의 화형용 나무더미에서   이제는 저장했던 것이 침묵한 이 마음을 위해   아무데서도 아무런 미래의 것도 구하지 않으려고 상승한다.   여기 알아볼 수 없게 타고 있는 자가 나 자신인가?   나는 회상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오, 삶은 저 국외적 존재.   그리고 나는 불길 속에 있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한다...   *릴케는 생전에 '두이노 비가(1923)'와 '올포이스에의 소네트(1923)' 등  대작을 써서 발표하고 1926년에 작고했는데, 그의 생전에 시집 속에 수록되지  못했던 후기의 시들이 1934년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 시는 거기 수록되어  있다.   릴케가 도달한, 생사를 초월한, 순수한 창조의 밝은 경지가 이미 완성의  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     헤세     안개 속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않으니   모두를 다 혼자다.   나의 삶이 밝던 그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이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그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나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이다.   *이 시는 헤세의 수많은 시 가운데서 가장 많이 애송되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여러 해 전에 독일의 어느 출판사에서 애송하는 독일의 현대시에  대한 앙케트를 했더니, 카롯사의 '옛샘', 헤세의 '안개속', 릴케의 '가을날'의  순위로 결과가 나타났다. 만년에 실명한 헤세의 부친도그 무엇보다 이 시를  특별히 애송했다고 한다.   이 시는 원래 헤세의 소설 '가을날의 도보 여행'마지막 장 "안개"를 끝맺는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1906년, 헤세의 나이 29세 때였다.     흰구름   오오 보라, 흰 구름은 다시금   잊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희미한 멜로디처럼   푸른 하늘 저쪽으로 흘러간다!   기나긴 나그네길을 통해서   방랑과 슬픔과 기쁨을   한껏 맛본 자가 아니고는   저 구름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이 같이   하얀 것 정처없는 것을 좋아하나니   그것들은 고향 떠난 나그네의   자매이며 천사이기 때문이다.   *이 시 마지막 연에서 노래하고 있는 바와 같이 헤세는 구름을 좋아하였다.  그의 심정은 이 시에 잘 노래되어 있다.   구름을 좋아했기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향수'에서는 구름을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청춘 시집'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1902년, 헤세의 나이 25세 때 지은 작품이다.     방랑    --크눌프에 대한 기념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밤이 온다.   그 때 우리는 창백한 들판을 넘어   싸늘한 달의 미소를 보게 될 것이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때가 온다.   그 때 우리는 안식하며 우리 십자가는   해맑은 길섶에 나란히 서게 되고,   그 위에 비 오고 눈이 내리리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오고 또 가리라.   *헤세의 시는 시간 속에서 옮겨지고 멸해져 가는 것에 대한 애석함이  이윽고 하나의 체념으로 변한다. 그 애석함은 그의 서정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꽃피우게 하면서, 그와 아울러 체념은 시 안에 세계에의 예지의 빛을 비춘다.     눈 속의 나그네   한밤 자정에 시계소리 산골을 울리고   달은 헐벗고 하늘을 헤매고 있다.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얼마나 많은 푸른 봄길을 나는 걸었으며   또 타오르는 여름날의 해를 나는 보았던가!   내 발길은 지쳤고 내 머리는 회색이 되었나니   아무도 예전의 내 모습을 알지 못한다.   지쳐서 가냘픈 내 그림자 이제 걸음을 멈추나니--   언젠가는 나그네길로 끝이 나리라.   세상 화려한 곳에 나를 이끌던 꿈도 사라지나니   꿈이 나를 속인 것을 이제 알겠다.   시계소리 산골에서 자정을 울리고   오, 달은 저 하늘에서 차갑게 웃고 있다!   흰 눈은 내 이마와 가슴을 차갑게 안아 준다!   죽음은 내가 알던 것보다는 무척 깨끗하다.   *헤세(Hermann Hesse:1877__1962)는 남부 독일 시바벤의 카르프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코스모폴리리턴적인 평화주의에의 지향과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현대 신로맨티시즘 문학의 완성자로서 그는 체험과 생활을  아름답고 원숙한 필치로 조형시켜 구름, 산천, 바람, 바다 등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평화스런 인간의 생활을 동경하고, 내면생활의 변화의 성장을  깊이 표현하여 예술적 향기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헤세는 최후의 대작 '유리알 유희(1943)'에서 오늘날의 역사의 혼란에  대비시켜 미래의 인간 정신의 조화적인 유토피아와 인류 사회를 개혁함에  즈음한 고귀한 정신의 역할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이 시인은 동시에 또한 현실에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경고를 내리기를 잊지 않았고, 세계  제1차 대전 당시에는 평화를 주장하여 완전히 고립되었다.   뒷날 스위스에서 국적을 얻어 이탈리아에서 가까운 루가 노에서  작고하였다. 194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카롯사     옛 샘   등불을 끄고 자거라! 줄곧 일어난 채   언제까지나 울리는 것은 오직 옛 샘의 물줄기 소리   하지만 내 지붕 아래 손님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곧 이 소리에 익숙해진다.   네가 꿈에 흠뻑 배어 있을 무렵 어쩌면   집 근방에서 이상스런 소리가 들릴는지 모른다.   거친 발소리에 샘 근방 자갈소리가 나며   기분 좋은 물소리는 딱 그치나니,   그러면 너는 눈을 뜬다--하지만 놀라지 마라!   별이란 별은 모두 땅 위에 퍼지고   나그네 한 사람이 대리석 샘가로 다가가서   손바닥을 그릇삼아 솟는 물을 뜨고 있다.   그 사람은 곧 떠난다. 다시 물줄기소리 들리나니   아아 기뻐하여라, 여기에 너는 혼자 있지 않으니.   먼 별빛 속에 수많은 나그네가 길을 가고   그리고 또 다시 네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카롯사(Hans Corossa:1878__1956)는 독일 바이에른의 테르츠에서  출생하여 뮌헨 의과대학을 나와 부친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어서 생애에 거의  그 지방을 떠났던 적이 없었다.   한때 나치스 한림원에 초대되었다가 사퇴한 일도 있는데, 이처럼 그는  세상의 명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의사로서의 다망한 생활의 여가를  창작에 바쳤을 뿐이다. 주옥과 같은 소수의 작품은 긴 세월의 결정으로서,  드물게 보는 순수하고 진실한 혼의 기록이며 참 도이취의 소리가 울려지고  있다.   이 시는 그의 초기 서정시의 대표작으로서 '옛 샘'은 고요하고 영원한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벤     아름다운 청춘   갈대밭에 오래 누워 있던 처녀의 입은   그렇게도 갈가먹힌 듯이 보였다.   흉부를 해부하자 식도에는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었다.   마침내 횡경막 아래 옹달진 곳에서   어린 들쥐들의 둥지가 발견됐다.   조그마한 새끼암쥐 한 마리는 죽어 있었다.   다른 쥐들은 췌장과 신장을 먹고 살았으며,   차가운 피를 마시고,   여기에서 아름다운 청춘을 지냈던 것.   그러나 아름답고 재빠르게 쥐들의 죽음도 다가왔으니,   쥐들은 무더기로 물속에 던져졌다.   아, 얼마나 그 작은 주둥아리들이 끽끽거리던가!   *벤(Gottfried Benn:1886__1956)은 만스펠트에서 태어나 의학을 배우고 1,  2차 대전에 군의관을 참전했으며, 만년까지 피부과, 성병과의 개업의였다.  문학가로서는 니이체의 영향을 받고 출발, 1912년 첫 시집 '시체 공시소'를  발표. 해부학적 표현주의에 바탕을 둔 그의 시는 한때 나치스의 민족주의에  협력한 적도 있으나 전후 다시 문단에 복귀하여 젊은층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트라클     유럽이여     --엘제 라스커--쉴러를 존경하며   1   파란 동굴에서 죽은 것이   나오는 듯한 달.   바위 위 오솔길에 진   수많은 꽃들.   저녁의 늪 옆에   은빛으로 울고 있는 병든 것,   검은 조각배 타고   건너며 죽은 여인들.   어쩌면 참나무 아래에서 반향됨은   히아신드가 핀   숲속을 지나가는 엘리스의   발자국 소리일까.   수정의 눈물과   밤의 그림자로 빚어진   오, 그 소녀의 모습.   싹트는 언덕 가에   봄철 폭풍우 울리던,   언제나 싸늘한   그 정수리를 예각의 번개는 비춰 준다.   2   우리의 고향의   푸른 숲들은 그렇게도 적막하고,   퇴락한 담벼락 옆으로 밀려드는   수정 같은 물결,   우리는 잠을 자며 울었거니.   주저하는 걸음으로   가시 울타리 곁을 거닐었으며   멀리 반영하는 포도원의   거룩한 안식 속의   늦여름의 가인이었거니.   이제 밤의 서늘한 품속에   깃든 음영, 슬퍼하는 솔개.   달빛 같은 광선이 소리도 없이   우수의 빨간 흉터를 덮는다.   3   그대들 큰 도시들은   평야 속에   돌로 지어졌다!   고향이 없는 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어두운 이마를 하고 바람을 따라간다.   언덕에 선 나목.   어슴푸레 멀리도 뻗친 가을이여!   폭풍우 속에   무서운 저녁 노을은   몹시도 공포에 질려 있다.   죽어가는 민족들이여!   밤의 기슭에서 헤어지는   창백한 물결   떨어지는 별.   *트라클(Georg Trakl:1887__1914)은 잘츠부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마약 중독으로 일생을 불행하게 살다 죽었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뼈를 깎는 듯한 묘사로써 독자들을 전율시키는 시를 썼다. 그의 작품은  생전에 출간된 '시집'과 사후에 나온 '꿈 속의 세바스티안(Sebastion in  Traum)'이 있다.   트라클은 일찍부터 프랑스 상징파와 퇴폐주의 계열의 작품에 사사했기  때문에 그가 노래하는 세계는 깊은 우울에 잠긴 쇠망의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ff     러시아, 기타편 @ff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아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푸쉬킨의 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소품이다. 달관된  위치에서 인생을 말하고 있는 듯하나 그 속에 배어 있는 우울감은 숨길 수  없다.     시인   아폴로 신이 신성한 희생자로   시인을 불러내기 전에는   그는 부질없는 세상의 번민 속에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의 성스러운 거문고는 울리지 않고   영혼은 얼어붙은 꿈을 먹는다.   이 세상 보잘 것 없는 아이들 가운데   아마도 그는 가장 미미하리라.   그러나 신의 음성이   예민한 청각에 와 닿기만 하면   시인의 영혼은 잠을 깬 독수리처럼 약동한다.   그는 이 세상의 위안 속에서 괴로워하고   사람들의 소문을 멀리 한다.   민중에게 숭배받는 것의 발치에   자랑스런 머리를 숙이지는 않는다.   야심적이고 엄숙한 그는   소리와 혼돈에 가득 차   황량한 바닷가로,   또 넓게 술렁이는 떡갈나무 숲속으로 달려간다.   *푸쉬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1799__1837)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서구문학을 모방한 좁은 범위의 귀족문학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진실한 러시아 정신, 러시아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러시아에 국민문학을 창시한 것은 바로 이 푸쉬킨인 것이다. 그는 협의의  고전주의 문학을 청산하고 낭만주의를 거쳐 종국에는 순러시아적인  사실주의의 기초를 쌓았다. 그리고 러시아어의 문학어와 독자적인 예술  형식을 후세에 남겨놓은 공적은 불멸하다.     튜체프     바다 위의 꿈   바다도 폭풍우도 우리들의 통나무배를 흔들었다.   잠자던 나는 물결의 온갖 변덕에 몸을 맡겼다.   두 무한이 내 내부에 있어,   나를 멋대로 가지고 놀았다.   내 둘레에서 심벌즈처럼 바위가 울리고,   바람은 서로 불러대며 파도가 노래를 불렀다.   나는 소리의 혼돈 속에 귀가 멀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소리의 혼돈 위를 내 꿈은 날고 있었다.   아프게 밝고 주술에 걸린 듯 입을 다문,   꿈은 우르릉거리는 어둠 위에 가벼이 잠들고 있었다.   열병의 빛 속에 그 세계를 펼쳤다--   대지는 녹색으로 덮이고 하늘은 빛나며,   미궁의 뜰, 궁전 누각,   그리고 말없는 군중의 대군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낯선 많은 얼굴들을 알아보았다.   마법의 생물, 신비로운 새들을 보았다,   생물의 정수리를 밟고 신처럼 나는 걸었다,   그러자 부동의 세계는 내 밑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런 모든 환상을 꿰뚫고 마술사의 퉁소처럼,   나에게 바다 밑의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조용한 환상과 꿈의 영역 속에도   포효하는 파도의 포말이 끼어들었다.   *튜체프(Fedor Tyutchev:1803__73)귀족 출신의 외교관으로 국외에서  22년 동안이나 지냈다. 러시아 고전주의와 독일 낭만파적 정신의 소유자로  철학적 서정시를 써 러시아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가 되었다.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 많으며, 그 작품을 꿰뚫고 있는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으로 이미지의  풍부함, 스타일의 장중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의 첫 전집은 그가 죽고 난  1900년에야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레르몬토프     시인의 죽음   명예의 노예--시인이 죽었다!   소문의 비방을 받아--쓰러졌다.   복수의 적개심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자랑스런 얼굴을 숙이면서!   시인의 영혼은   사소한 모욕의 불명예를 참지 못하고   전처럼 홀로 세상의 소문에 대항해   분명히 일어섰다--그리고 죽었다!   죽은 것이다...   불필요하고 가슴 아픈 칭송이 공허한 찬미의 흐느낌과 변명을   이제 무엇으로 형상화하겠는가!   운명의 심판은 행해졌다!   우선 그토록 악의있게   그의 자유 분망하고 대담한 재능을 몰아세울 수 없지 않았는가?   그리고 도대체 장난으로   보호받는 불을 끌 수 있었는가?   뭐라고? 즐거워하라...   그는 뒤따르는 고통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훌륭한 천재는 램프처럼 꺼졌고   엄숙한 화관처럼 시들었다.   살인자는 냉정하게   일격을 가해서...소생은 불가능했고   그의 가슴은 정상적으로 뛰고   손에 들고 있는 총은 떨리지도 않았다.   놀랄 만한 게 무엇이 있는가?   운명의 의지로 우리에겐   행복과 지위를 노리는 먼 곳에서 온   약 백 명의 도망자들 비슷한 자가 있었다.   웃으면서 그는 대담하게   다른 나라의 언어와 습관을 비웃었고   그는 우리의 명예에 관대할 수 없었고   피 흘리는 그 순간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죽었다--그리고 묘지로 옮겨졌다,   마치 알려지진 않아도 사랑스럽고 막연한 시샘의 포로인,   아주 멋진 능력으로 그에게서 칭찬을 받았고,   '그 시인처럼' 무자비하게 파멸 당한   그 가수처럼.   왜 그는 평화스런 안락과 소박한 우정을 버리고   자유 분망한 마음, 불타는 정열을 위해   시기심 많고 지겨운 이 세상에 투신했는가?   왜 불필요한 비웃음에 악수를 했는가,   왜 거짓말과 거짓 포옹을 믿었는가,   그는 젊은 시절부터 포옹력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는 옛날에 화관을 벗어 버리고 대신   월계수로 장식된 자두나무 화관을 썼다.   그러나 숨겨진 바늘들이 가혹하게도   영광스런 이마를 찔렀도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조롱하기 좋아하는 무식장이들의 음침한 흉계에 의해   독으로 가득찼고,   그리고 죽었다--   허무한 복수의 열망과 함께.   기만된 희망의 은밀한 걱정과 함께.   기적의 노래소리는 잠잠해졌고   그에겐 다시 들리지 않는다.   시인의 안식처는 음침하고 협소해   입술은 꽉 다물어 있다.   너희들, 알려진 비열한 행위로   이름을 떨칠 조상의 오만한 자손들이여.   운명의 장난으로 모욕당한 가문을   비굴한 발뒤꿈치로 짓밟은 쓰레기여!   너희들, 왕좌 옆에 탐욕스런 무리를 이루고서 있는   자유와 천재와 영광을 사형에 처하는 망나니들이여!   너희들은 법의 그늘 밑에 숨어 있어   너희들 앞에서는 심판도 정의도--모두 침묵을 지키는구나!   그러나 타락의 아첨자들이여, 신의 심판이 있도다!   추상 같은 심판--그것이 기다리고 있도다.   그것은 황금의 빛도 다가오게 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생각이고 행동이고 그것은 벌써 알고 있다.   그때 너희들이 중상에 매달려도 헛된 것이다.   중상도 이제 너희들을 돕지는 않는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모든 검은 피를 가지고도   시인의 올바른 피를 씻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레르몬토프(Mikhall Lermontov:1814__1841)는 푸쉬킨과 함께 러시아  낭만주의 최대의 시인이다. 모스크바 대학을 중퇴한 뒤 페쩨르부르그  근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근위기병연대에서 복무하던 중 푸쉬킨이 결투로  죽은 것에 분개하여 쓴 시, '시인의 죽음'이 화가 되어 까프까즈로 추방당한  뒤 결투사건, 황족에 대한 불경 등으로 세 번째의 까프까즈 추방 중 궁정에서  꾸민 결투로 죽었다. 그의 시의 기조는 니콜라이1세 치하의 젊은이들의  항의와 부정이 담긴 반역의 정신이자 행동에 대한 갈망, 조국과 민중에 대한  애정이다. 백 편 남짓의 서정시 외에 서사시 "상인 깔라시니꼬프의 노래".  "악마", 장편소설 "현대의 영웅" 등의 작품이 있다.     네끄라소프     고향   여기에 또다시, 낯익은 여러 곳,   내 선조들의 무익하고 공허한 생활이   술판과 무의미한 오만과   더러운 방탕과 비열한 포학 사이에서 흘렀던 곳.   짓눌리며 떠는 노예 무리가   지주의 보잘것없는 고캐들의 생활을 부러워했던 곳,   내가 세상을 보도록 운명지워졌던 곳,   참고 미워하는 것을 내가 배웠던 곳,   하지만 미워하는 것을 마음속에 부끄럽게 숨기면서,   때때로 나도 지주이기도 했던 곳.   때도 아직 덜 되어 타락한 내 넋에서   그렇게도 빨리 행복한 평온함이 날아가 버리고   어린애답지 않은 욕구와 불안의   괴로운 불길이 빨리도 심장을 불살랐던 곳...   화려하고 놀라운 날들이라는 떠들썩한 이름으로   알려진 청춘의 날들의 여러 추억이   내 가슴을 원한과 우울로 가득 채우고 나서   성장을 하고 내 앞을 지나간다...   여기에 어둡고 캄캄한 뜰이 있다... 길게 뻗친 나뭇길 속의 나뭇가지 사이로    누구의 모습, 병적으로 슬픈 모습이 번뜩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 당신께서 울고 계신지, 어머님!   누가 당신의 인생을 파멸시켰는지... 오, 알고 있어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한평생 음울한 무식장이에게 맡겨져   덧없는 희망에 당신께서는 의지하지 않으셨나요--   운명에 거슬러 일어서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시면서도   당신께서는 자기의 운명을 노예의 침묵 속에서 견디어내셨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당신의 넋은 무감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의젓하고 의연하고 아름다우셨다,   그래서 참고 견뎌내실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당신의 임종의 속삭임은 가해자에게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도 목소리 없는 이 인고의 어머니와 함께   무서운 운명의 슬픔이나 치욕을 나누어 가졌던   너도 또한 이제 없다, 내 넋의 누이여!   농노 출신의 정부들과 사냥개지기들의 집에서   치욕에 의하여 내몰린 너는 네 운명을 맡겼다.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은 자에게...   하지만 제 어머니의 슬픈 운명을   이 세상에서 되풀이하고 난 뒤   너는 무덤 속에 누웠다   싸늘하고 엄격한 미소를 띠고   잘못을 뉘우치고 울음을 터뜨렸던 망나니 자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을  만큼의.   여기에 잿빛의 낡은 집이 있다...   지금은 비어 있고 황량하다--   여인들도 개들도 광대들도 노예들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나는 기억하고 있다--여기서는 무엇인가가 모든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여기서는 어린애고 어른이고 슬프게 심장이 아팠었다.   나는 유모에게로 달려가곤 했다...아, 유모여! 몇 차례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었던가,   가슴이 답답할 때.   그녀의 이름을 들을 적마다 감동하여   내가 그녀에게 대하여 경건을 느낀 것이 오래 전의 일이었던가?...   그녀의 무의미하고 유해한 선량함의   많지 않은 특색이 내 기억에 되살아나면   내 가슴은 새로운 적의와 증오로 가득 찬다   아니다! 내 반역의 거친 청춘 속에는   넋에 위로가 되는 추억 따위는 없다.   그러나 초년부터 내 인생을 속박하고 나서   물리칠 수 없는 저주로 나를 내리눌렀던 모든 것--   모든 것의 근원이 여기에, 내가 태어난 고을에 있다!...   둘레에 혐오의 시선을 던지면서   기쁘게 나는 본다, 배어 눕혀진 어두운 침엽수의 숲   괴로운 여름의 고열의 방패와 시원함,   그리고 밭도 불태워져 버리고 가축이 게으름 피우며 졸고 있다,   말라붙은 개천 위에 목을 늘어뜨린 채,   또 텅 빈 음산한 집이 비스듬히 쓰러져가고 있다,   거기서는 술잔 소리와 광희의 목소리에   짓눌린 고통의 메아리 없는 영원한 먼 우르렁거림이 반향하며   모든 사람들을 짓눌러던 자 혼자만이   자유로이 숨을 쉬고 있기도 하고 행동하기도 하고 살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네끄라소프(Nikolai Alekseevich Nekrasov:1821__78)는 몰락한 귀족의  집안에서 출생해서 일찍부터 자기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40년대 초기에는  당대의 러시아문단의 대부인 벨린스끼의 그룹에 가담하고, 처음에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수완만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곧 벨린스끼에게 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게 되어 일류 시인으로서 문단에 나서게 되었다.   19세기 중엽의 '참회하는 귀족'의 대변자로서 문단에 나타난 그는 인간  생활의 고뇌를 노래하면서 자기 계급에 대한 불만과 학대받는 민중에 대한  동정심으로 넘치고 있었다. 특히 농노제도의 압제에 허덕이는 농노에 대하여  깊은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생활이며 미술상의  관념같은 것은 문제로 삼지 않고, 이른바 인상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비극적인 장시 '러시아의 여인들', 농노제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러시아에서는 누가 행복한가' 등을 위시해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의 시는  귀족적이면서도 민중의 일상어를 훌륭하게 구사함으로써 지금까지도 널리  일반 대중들의 애호를 받고 있다.     부닌     샛별   '성 소피아'사원 뜰엔 비둘기가 날고 수도승이 흥얼거리고 있었다.   '에레크세움'은 말없이 서 있고   폐허가 된 박물관엔 호머식 싯귀의 시들이   싸늘히 식은 채로 염증을 내고 있었다.   거대한 스핑크스는 슬픔에 싸여 사막 위에 웅크리고 있고   사방에서 동떨어진 이스라엘은 비탄에 젖어   빛 바랜 녹슨 율법책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탐욕스런 베들레헴을 포기했다.   여기 천국 같은 레바논. 새벽은 진홍빛으로 타오르고   눈 덮인 산은 차라리 은덩어리,   동굴에선 짐승의 무리가   비탈 아래로 나와 헤매고 있구나.   아벨의 세계여!   동심처럼 순결한 신앙의 날들이여!   '안티레바론'의 벗겨진 산등성이 뒤에서   샛별이 꺼질 듯 비추고 있다.   *부닌(Ivan Alektseevich Bunin:1870__1953)은 모스크바 근교의  귀족출신으로 시에서 출발하여 후에 소설을 많이 썼다. 17세 경부터 시를 쓴  그는 21세 때 '시집(1891)'을 내어 농촌과 자연을 주로 노래했고 31세 되던  1901년에 시집'낙엽'을 발간해 푸쉬킨상을 받았다. 후에 소설로 전향하고  10월 혁명 후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193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의 상징주의 물결에 크게 휩쓸리지 않고 자연의 세계를 개척하여 전원의  아름다움과 폐허의 슬픔 등을 주로 노래했다.     블로끄     머리말   너는 들판으로 떠나버렸다. 돌아옴이 없이.   하지만 너의 이름은 거룩해지리라!   다시 저녁노을의 붉은 창은   나에게 날을 내밀었다.   오직 너의 황금의 퉁소에만   액일에 입술을 대리라.   모든 기도가 사라졌다면   짓눌린 나는 들판에서 자리라.   네가 황금의 곤룡포로 걸치고 지나가더라도   나는 이에 눈을 뜨지 못하리라.   이 꿈나라에서 한숨을 놓게 해다오,   붙잡은 길에 입맞춤을 하게 해다오.   오, 녹슨 넋을 쫓아내 버려라!   나를 영원히 잠들게 하라,   너, 바다와 육지를   가느다란 손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받치고 있는 너.   *블로끄(Aleksand Blok:1880__1921)는 러시아 상징주의 최대의 시인이며,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시'에 나타난 미묘한 순결에서부터 강력한 표현의  풍부함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숙한 기법은 발전해 갔다. 집시 여인의 사랑에  대한 도취, 조국의 정신적 운명, 그리고 시인의 예술에 대한 고통스러운 제한  등이 그의 시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1907__16년 사이 발표된 세 권의  시집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마지막 걸작 "열 두 사람"은 혁명에 대한 그의  짧았던 열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아흐마또바     이별   저녁 때의 비스듬한 길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어린 목소리로   "잊지 말아요"속삭이던 사람   오늘은 벌써 불어 예는 바람뿐   목동의 소리와   해맑은 샘가의   훤칠한 잣나무뿐   *아흐마또바(Anna Akmatova:1888__)의 본명은 안나 안드레예브나  고렌꼬이다. 오데사에서 태어나 뻬쎄르부르그 근교에서 자랐다. 두 번째 시집  "장미원"으로 명성을 얻은 그녀는 초기에는 친근한 구어적인 문체를 즐겼으나  점점 고전적인 엄숙함으로 흘러갔으며, 이것은 시집 "서기"에서 더욱  분명하다. 그리고선 그녀는 18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소련에서 가끔 발표된  시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중과 대전 후에 씌어졌으며 1943년 무렵에 씌어진  그의 뛰어난 연작시 "주인공 없는 시"는 1960년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데카당스 시인으로 비판당한 그녀는 지금 레닌그라드에 살고 있으며,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러시아시인이다.     파스테르나크    행복   저녁의 소나기는 씌어졌다.   정원에 의하여. 결론은 이렇다--   행복은 우리들을 만나게 할 것이다.   구름 떼 같은 그런 괴로움에.   틀림없이 폭풍 같은 행복은   악천후를 씻어 버린 여기저기 한길의     {{ }} 얼굴을 맞대고 있는   양지꽃의 환희 같은 그런 것이다.   거기서는 세계가 갇혀 있다, 카인처럼.   거기서는 변경의 따스함에 의하여   스탬프가 찍히고 잊혀지고 헐뜯기고 있다.   그리고 나뭇잎에 의하여 천둥은 비웃음을 받고 있다.   그리고 하늘의 높이에 의하여, 물방울은 딸꾹질에 의하여.   또 명료함에 의하여, 하물며   조그만 숲이 무수함에 있어서랴--   여러 개의 체가 전면적인 하나의 체로 합류된 것이다.   일단의 잎 위.   용해된 꽃봉오리의 대양.   상공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휘몰아치는 숭배의 밑바닥   덤불의 더미는 짜내어지지 않고 있다.   호색적인 솔잣새도 새장에 온통   인동덩굴이 별을 홑뿌리듯   그처럼 열정적으로 모이를 튀기지는 않는다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1890__1960)는 모스크바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에 첫 시집을  냈는데 이 시집은 상징주의의 경향이 농후하여 릴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혁명 이후에 작품활동이 왕성하였으나 스탈린 집권 이후 그들의 정치 노선이  생리적으로 맞지 않아 소극적인 활동을 보였다. 소설 '의사 지바고'는  본국에서 출판 금지되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당국의 압력으로 사퇴하여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마야코프스키    결론   사랑은 씻겨지는 것이 아니니   말다툼에도   검토도 끝났다   조정도 끝났다   점검도 끝났다   이제야말로 엄숙하게 서툰 싯구를 만들고   맹세하오   나는 사랑하오   진심으로 사랑하오!   *마야코프스키(Vladimir V. Mayakovskii:1893__1930)는 20세기 최대의  시인으로서 그의 시는 세계의 현대시에 강렬한 영향을 끼쳐 주었다. 장시로  '전쟁과 평화'(1915__1916)가 있다. 그의 명성에 질투한 스탈린에 의해  살해되었다.     예세닌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아직도 살아 계십니까, 늙으신 어머님?   저도 살아 있어요. 문안을 드립니다, 문안을!   당신의 오두막집 위에   그 말 못할 저녁 빛이 흐르옵기를.   저는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불안을 숨기시고   저를 두고 몹시 애태우셨다고,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신다고,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당신께서는 저녁의 푸른 어스름 속에서   자주 똑같은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마치 누군가가 술집의 싸움 속에서   제 심장 밑에 핀란드 나이프를 내리꽂은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다만 괴로운 환상일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지독한 대주가는 아닙니다--   당신을 뵙지 않고 죽어버릴 만큼의.   예나 다름없이 정겨운 저는   다만 몽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끝없는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우리의 나지막한 집으로 돌아갈 날을.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어린 가지들이 뻗을 때   봄답게 우리 흰 뜰이.   저를 이제 새벽에   8년 전처럼 깨우지만 마세요.   사라진 몽상을 일깨우지는 마십시오,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물결 일게 하지 마십시오--   너무나 이른 상실과 피로를   저는 인생에서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도움이요, 기쁨입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말 못할 빛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불안을 잊으십시오,   저를 그토록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지 마십시오,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예세닌(Sergey Esenin:1895__1925)은 라자니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새로운 신비적 그리스도교의 혁명을 동일시하여 혁명을 환영했으나  농촌의 근대화를 보고 점점 환상에서 깨어나 옛 러시아의 상실을 음율적이고  향수적인 시로서 슬픔을 노래한다. 그의 시의 또 다른 주제는 모스크바  선술집에서의 보헤미안들의 생활이다. 이사도라 덩컨과의 짧고 불행했던 결혼  이후 그는 점점 술과 정신쇠약에 빠진다. 결국 레닌그라드 호텔에서 손목의  혈관을 절단한 뒤 그 피로 유시를 남긴 후 목매어 자살했다.      단테     신곡   '프란체스카, 당신의 수난은   나로 하여금 슬프고 가슴   아프게 하여 눈물을 금할 길 없나이다.   말씀 좀 해 주셔요.   달콤한 사랑의 탄식을   지니고 계실 때 숨겨진 그 연정이   어떤 일로 어떠한 방법으로   표면화되는 것을 허용하셨는지.'   그녀는 나에게 말하나니   '이 비운 속에서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같이 더욱 뼈아픈 일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대의 스승께서도   이 점 이해하고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랑의 첫 뿌리를   그대 그리 알려고 애원하오니   흐느끼며 이야기하는 이같이   나 그대에게 말하겠어요.   어느 날 우리 둘은 아무 의도없이   란치롯또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지요   우리는 단 둘이었고 아무   의심도 받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서로 눈이 마주치고   그때마다 서로 얼굴을 붉혔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가 그 애인의   미소짓는 입술에 그의 입을   대는 그 구절에 이르러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 후 내 곁을 떠날 수 없게 된 그이,   그의 입술이 경련을 하면서   나의 입과 마주쳤나이다.   가로옷 또는 바로 그 책과   그 책을 쓴 이였으니,   그날은 더 이상 책읽기를   계속할 수 없었나이다.'   이렇게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한 혼은 흐느끼고 있었으니   그 애처로움에 나는 마치 죽음을   앞에 둔 이 모양 눈물을   흘리며 마치 시체와 같이   거기에 쓰러졌노라.   *이탈리아의 시성인 단테(Alghieri Dante:1265__1321)의 대표작. '신곡'은  '지옥편' '정죄편' '천국편'으로 나뉘어 각 33장씩으로 되었고 서장을 포함해  100장으로 된 장편 서사시다. 여기 소개된 부분은 '지옥편'의 5장에서 부정한  사랑을 범하여 영원히 벌을 받고 있는 바오로와 프란체스카의 슬픈 사랑의  시말을 이야기하며 참회하는 내용으로 된 이 부분에서 단테의 도덕관을  짐작할 수 있다. 나와 프란체스카의 대화 형식으로 된 이 부분은 '신곡'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말해진다.   현재까지 '신곡'의 의미는 각인각색 여러 가지로 정의되고 있으나 가장  정확하다고 믿어지는 것은 단테가 시에 의하여 이룬 '보복'인 것이라고 하는  정의일 것이다.   그는 전통있는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생활로 전락되고,  탁월한 지배를 희망하면서 식객의 지위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었고,  교회의 도덕적 개혁을 희망하면서도 보니파키우스 8세의 희생물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게도 안되고 피렌체는 그가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이 일체의  굴욕과 오산을 씻기 위하여 그는 시에 의해 '보복'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죠반니 빠삐니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미리 행해진 최후의  심판'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페트라르카     라우라에게 바치는 시   맑고 신선하고 달콤한 물이   흐르는 냇물가에   유일하게 나에게 여자라고 보이는   그녀는 아름다운 그녀의   몸을 쉬고 있으니   그녀가 즐겁게 거기   아름다운 나무에 기대는 모습,   또는 잔디와 꽃밭이   그녀의 치마와 황홀한 앞가슴에   의하여 가볍게 덮이기도 하는 모습을   나는 슬픈 추억으로 기억하노라.   아름다운 사랑의 두 눈이   나의 가슴의 문을 열어 준   성스럽고 조용한 그곳.   자 들어 주세요, 나의   슬픔에 가득찬 연가를.   하늘이 도우셔서   만일 내가 이 사랑으로 인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주여 불쌍한 나의 육체를   이곳에 묻히게 하시고   육체의 옷을 벗은 내 혼은   그의 갈 곳, 하늘로 데려가 주소서,   죽음의 관문을 지날 때   내 이 마지막 희망을 지닌다면   죽음의 두려움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리라.   나의 가련한 육체가   휴식할 수 있고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이곳 이외의 곳에 갇히게 된다면,   내 지친 혼도 그 육체를   떠나 버리기 어려울 것이니.   *페트라르카(Franesco Petrarca:1304__1374)는 토스카나 주아레초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 등에서 법학을 배웠으나 문학에 정진하였다. 미녀  라우라와의 사랑을 노래하여 애정시의 본보기를 보였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시를 썼고 귀국하여 로마원로원으로부터 계관을 받았다. 그의  '깐쪼니에레'와 '속어단편시집'에 실린 라우라에 대한 애정시는 14세기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시다. 그가 쓴 소네트는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 후대  시인들이 많이 모방하여 페트라르카 소네트라 불린다.   그의 작품이 보이는 미묘한 감수성과 문체의 우아성에 덧붙여서 다소  염세적이라고 할 우울한 그림자는 분명히 그가 단테에 비교하여 한층 근대적  감각의 소유자였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후세에 단테의 추종자가 거의 없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추종자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레오파르디     고독한 새   낡은 교회의 종탑 위에   고독한 새 한 마리   해질 때까지 넓은 광야를 향해   끝없이 노래하고 있나니   그 노래소리 온 마을에   즐겁게 울려 퍼지도다.   아름다운 봄은   대기를 밝게 하고   대지를 충족시키니   이를 찬미하는 이의   마음 흐뭇하게 하노라.   들에선 양떼와 소들의   지껄이는 소리 들리고   하늘엔 만족스런 듯이   새들이 자유를 구가하면서   하늘을 누비며, 새들에게   가장 좋은 계절을 이리   즐거워하고 있노라.   생각에 가득 찬 듯한 한 마리 새,   너는 이 광경을 모두 부면서도,   친구도 찾지 않고, 날 생각도 않고   즐거움을 마다하는구나.   다만 노래부르는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계절과   너의 젊은 시절을 보내는구나.   아 너의 그 외로운 모습,   어찌 나의 고독함과   그리 닮았느뇨!   젊은 시절의 흥겨운 동반자인   즐거움과 웃음도, 젊은이의   형제인 사랑도,   늙은 후의 후회도 나에겐   또 나의 젊은 시절을,   나 자신을 그 누구가 이해하리오?   그렇게까지 된다면   아 나는 후회 속에 나를 보낼 것이며,   위로의 희망도 없이   지난날의 추억 속에서만   삶을 지탱해 나갈 것이로다.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1798__1832)마르께주 레가나띠의 명문  출신으로 소년시대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그리스 라틴의 고전문학과  히브리어를 배웠고, 1817년 조국의 정치적, 지적쇠퇴를 한탄하여 단편시  '이탈리아에 바침'을 발표하여 어린 천재로 알려졌으나 병으로 약하여져  세상을 비관하는 그의 경향은 그의 시의 특징이 되었다.   1822년 로마에 유학하여 고대 문학을 연구한 후 볼로냐, 피렌체로  전전하다가 나폴리에 안착하여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문체는 간소하고  명백하여 고전적 색채가 강하며, 대표 작품으론 '노래집' '교훈적 소품집'  '편지' 등을 남기고 나폴리에서 누이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죽었다.     다눈치오     숲에 내리는 비   조용해 주오.   숲속에 이르니   이제 여기엔   인간의 목소리 들리지 않고,   다만 새로운 소리,   물방울소리와 나뭇잎   소리만 저 멀리서   들려오나니.   들으세요.   흩어진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구려.   여름 더위에   찌들어진 상록수   나뭇가지에,   소나무 솔잎에   비가 내린다.   성스러운 이 나무들에   찬란한 노란 꽃송이 위에,   모든 풀 위에   비가 내린다.   우리의 즐거운 얼굴에,   가리지 않고 있는 우리들 손에   우리의 가벼운 옷에,   아무 관심이 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항상   멀리 도피하고 있노라.   내 고향 땅이건만 나는   혼자이며 이방인으로   이 봄을 지내는도다.   이 마을의 축제날,   해는 져서 저녁이 다가오니,   사람들은 축연을 열게 되고   조용한 대기를 뚫고   종소리와 축포소리 울리며   그 소리는 집에서 집으로   멀리까지 전해지는구나.   모든 이들은 예복을 입고   집을 나서 거리로 쏟아지니   젊은 남녀는 서로서로   쳐다보며 즐거워하더라.   나는 홀로 이 마음을   떠나면서 모든 유희와 즐거움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따가운 태양빛에 노출된   나의 얼굴에 따가움을 느끼면서,   저 먼 산너머 해가 지고,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니,   마치 축복된 젊은 시절도   저 태양과 같이 저물 날이   있으리라 느껴지도다.   너, 외로운 새야,   하늘이 너에게 준   생명의 끝날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너는 너의 외로운 지난날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모든 동물의 욕망은 그러하지 않건만.   나 만일 늙기 전에 죽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없게 되어,   나의 늙은 눈이 다른 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게 될 때   이 세상은 바로 공허이며,   앞날은 더욱 지루하고   참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고독을 찾아 헤매이는   이 나의 심정을   새롭게 된 마음이 간직하는   새로운 생각들에,   어제는 애르미오네, 너를   오늘은 나를 놀라게 한    그 짧은 이야기 위에   비가 내린다.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1863__1938)는 페스카라에서 태어나  로마대학을 졸업한 천재시인. 이교적이며 신비적인 작품을 쓴 그는 후기로  가면서 탐미적, 감각적 경향을 보였다. 1차대전시 애국운동을 전개하여  파시스트 정부로부터 후작의 칭호를 받고 아카데미 회장이 되었으나  파시즘과는 맞지를 않아서 만년에는 은퇴하여 북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     콰지모도     아무도 없으니   나 죽은이들은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와 같건만,   그러나 죽음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그 아이를 떼어 놓기 위해   가까이 다가서나니,   죽음은 그 아이를   다른 어린이들로부터,   나무들로부터   모든 벌레로부터   슬픔을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떼어 놓으려 하노라.   그는 별다른 지혜와 재주   없기에, 그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고   주여 그대 옆에 가   그 아이 울 수 있게   그를 인도하여 줄 이는   여기 아무도 없노라.   *콰지모도(Salvatore Quasmodo: 1901__1968)는 시칠리아에서 국철  역장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의 공과대학에 다니며 문학에 관심을 두었다.  토목기사로 근무하며 이탈리아 전역을 전전하다가 몬탈레와 교우했다. 첫  시집을 낸 후 사직하고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며 시작에 열중하였다.  시칠리아에 대한 향수와 시칠리아의 화산 폭발에 의한 폐허와 죽음 그리고  신비의 세계를 주된 소재로 한 시를 쓴 그는 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전쟁에  대한 혐오가 드러나며 살인 무기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 시인과 민중과의  대화는 필수적이라 하여 사회시운동을 제창하였다. 1959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공고라     단시     소녀는 울고 있었다.   우는 것이 당연하였다.   무정한 님의 모습을 너무 오래 볼 수 없었다.   소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버림받았다.      버림받을 나이조차 있을 것 같지 않게 버림받았다.   배신한 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울고 있는 소녀를,   달님이 발견하고   햇님이 버리고 갔다.   언제나 정염에 정염을 낳게 하고   기억에 기억을 낳게 하고   고통에 고통을 낳게 하면서   소녀를 버리고 갔다.   울어라 예쁜 소녀야.   우는 것이 당연하단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얘야, 제발 울음을 그쳐다오.   지레 내가 살지 못하겠다.'   소녀는 대답하였다.   '아니, 울음을 그칠 수 없어요.   울게 하는 사연은 하도 많은데   눈은 단지 둘뿐이에요.   어머니, 무분별한 짓으로   어머니의 속을 썩여 드려요.   이 기회에 눈물이   제 울음을 자꾸 재촉합니다.   그 허구 많은 세월 중   그 어느 때   활 쏘는 신   사랑의 화살을 쏘았더랬어요.   어머니, 전 이제는    노래 안 부를래요,   만약에 노래를 부르면   제 노래는 그만 애가 되고 말 거예요.   그이가 가버렸어요,   모든 것을 가지고 가버렸어요,   제게 침묵을 남겨 놓은 채   목소리를 가지고 가버렸어요.'   울어라, 예쁜 소녀야,   우는 것이 당연하단다.   *공고라(Luis de Gongora:1561__1672)는 신학을 공부하여 성직자가  되었으나 투우를 구경하고 시를 썼다가 견책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서정시로 스페인 전통적 형식에 따라 매혹적인 시를 썼다. 그는 과다한  수식으로 후세 스페인 문학에 악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이같은 과잉된 수식을  중시하는 방식을 그의 이름을 빌어 공고리즘이라 한다.     에스프론세다     첫송이 장미   눈부시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첫송이 장미   꽃동산의 꽃 중의 꽃   휘영청 뻗은 잔가지 끝에 피어나   달콤한 향기를 뿌리고 있다.   귀찮을 만큼 햇빛은 따사로와   시리우스 별의 불꽃이 되어 펄럭이면   꽃잎은 시들고 성급한 바람이   꽃잎을 뜯고 도망쳐 버린다.   내 행복 또한 한 때는   사랑의 날개에 비쳐지고 아름다운 구름은   영광과 환희를 잉태하고 있었으나   아아 이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으로 바뀌어   내 희망인 아름다운 꽃은   꽃잎조차 흩어져 바람 속에 펄럭인다.   *요제 드 에스프론세다(Jose de Espronci da:1803__1842)는 스페인  낭만파의 대표적 시인. 18세 때 조국을 떠나서 유럽각지를 편력하였다.   서사시 '악마 현세'(1804__41)속에 수록되어 있는 '테레사에게'는 평생의  연인을 노래한 시로서 스페인 서정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캄포아모르     두 가지 즐거움   1   그 날 그 밤이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내게서 피하면서 말했습니다.   "내 옆으로 다가오시나요?   아아 당신이 정말 두려워요"   2   그리고 그날밤은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바싹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왜 옆에서 피하시나요?   아아 당신이 없으면 두려워요"   *레몽 데 캄포아모르(Ramon de Campoamor:1817__1901)는 스페인의  시인이다. 처음에는 약학을 배웠으나 시에 매혹되어 시인이 되었다.   사상을 중시하고 철학적이며 낭만적인 시는 주목을 끌었고,  에피그람(풍자)풍의 시에 뛰어났다.     베케르     카스타에게   네 한숨은 꽃잎의 한숨   네 소리는 백조의 노래   네 눈빛은 태양의 빛남   네 살결은 장미의 살갗   사랑을 버린 내 마음에   너는 생명과 희망을 주었고   사막에 자라는 꽃송이 같이   내 생명의 광야에 살고 있는 너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Gusstavo Adolfo Bequer:1836__1870)는  스페인의 후기 낭만파를 대표하는 시인. 생전 한 권의 시집도 간행하지  못했고 34세로 죽었으나 그의 영향은 막중하다.     마차도     여행   '소녀야, 난 이제 바다로 간다.'   '저를 함께 데리고 가시지 않으면 전 선장님을 잊겠어요.'   선장은 배 갑판에서 자고 있었다.   그녀를 꿈꾸며 자고 있었다.   저를 함께 데리고 가시지 않으면!   그가 바다에서 돌아올 때   푸른빛 앵무새를 가져 왔다.   전 선장님을 잊겠어요!   그는 다시 바다를 건넜다.   그 푸른빛 앵무새를 가지고.   전 이미 선장님을 잊었어요!   *마차도(Antonio Machado Ruiz:1875__1939)는 20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 스페인 중부 지방 가스띠야를 배경으로 한 그의  시는 지나친 묘사가 없고 담담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가스띠야의  들"이 있다.     히메네스     십자가의 아침   신은 파래라. 피리와 복이 이미 봄의 십자가를 예고하고 있을 때   장미여, 사랑의 장미여,   초원의 태양으로 물든 푸르름 사이에서 오래 살진저   로우즈메리를 따러 들로 가세나.   가세나, 가세나,   로우즈메리를 따러   사랑을 따러 들로 가세나...   나는 그녀에게 물었노라.   '내가 그대를 사랑해도 괜찮아?'   그녀는 정열의 찬란한 빛을 띠면서   대답하였노라.   '봄의 십자가가 꽃이 필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온 정성을 다 바쳐 사랑하겠어요.'   로우즈메리를 따러 들로 가세나   가세나, 가세나,   로우즈메리를 따러   사랑을 따러 들로 가세나.   '이미 봄의 십자가가 꽃이 피었노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십자가가 이미 꽃이 피었노라!'   그녀는 대답하기를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 빛에 물들인 아침은 이미 지나갔어라!   로우즈메리를 따러 들로 가세나.   가세나, 가세나   로우즈메리를 따러   사랑을 따러   들로 가세나.   우리의 깃발이 피리와 북소리에 기뻐 날뛰네.   나비는 꿈과 더불어 여기 있나니...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려고 하네!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on Jimenez:1881__1958)는 스페인의 시인.  소년 시대에 세빌랴로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갔으나, 베케르의 시를 대하게  되고서부터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16년에 세노비아 캄블피와 결혼하여 신혼 여행 차 미국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그의 시는 일체의 수식을 배재한 '벌거숭이 시'를  지향하게 되었다.   1956년 노벨 문학상 수상.     로르카     부정한 유부녀     --리디아 카블레라와 그 꼬마 깜둥이 딸에게--   그래서 나는 여자를 강에 데리고 갔다.   진짜 숫처녀인 줄 믿었었는데   그런데 남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산티아고의 밤에 있은 일이었고   완전히 합의를 본 뒤의 일이었다.   촛불의 꺼지고   쓰르라미들이 등불을 켰다.   마지막 모서리에서   여자의 잠든 유방에 손을 대자   재빨리 나를 위해 열려졌다.   마치 히야신드의 잔가지처럼.   나의 귓가에서   여자의 페티코트의 풀이 울고 있었다.   마치 열 자루의 칼로   한 폭 비단이라도 찢기나 한 것처럼.   은빛 전혀 비쳐들지 않는 숲 속에서   나무들의 모습이 크게 되었다.   그리고 강 건너 저 먼 곳에서는   개들의 지평선이 짖고 있었다.   가시떨기를 치우고   등심초와 산사나무 사이를 피하여   여자의 머리털 풀밭 아래서   나는 흙탕 위를 오목하게 만들었다.   나는 넥타이를 풀었다.   여자는 옷을 벗어 던졌다.   나는 권총 달린 허리띠를   여자의 넉 장의 옷을 벗었다.   나르드나무도 조갯살도   이렇듯 부드러운 살결일 수는 없다.   달빛을 받은 수정도   이렇듯 아름답게 빛날 수는 없다.   갑작스레 습격당한 물고기처럼   여자의 허벅지가 내 아래서 도망치고 있었다.   반은 불길이 되어 타오르고   반은 싸느다랗게 얼어서.   그 날 밤에 나는   재갈도 먹이지 않고 투구를 쓰지 않고   진주조개의 젊은 망아지를 몰아   더할 나위 없는 쾌적한 길을 달리게 하였다.   여자가 내게 무엇이라 하였는지   나는 남자로서 말하고 싶지 않다.   분별의 빛이   나로 하여금 아주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입맞춤과 모래로 더러워진 여자를   강에서 데리고 돌아왔다.   백합화의 칼이   바람에 불려 잘려지고 있었다.   나는 나답게 행동하였다.   늠름한 집시가 그렇게 하듯이   밀짚 색깔 비단천으로 만든   큼직한 재봉 상자를 보내 주었으나   여자에게 반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아무렴 내가 강으로 데리고 갈 때   버젓이 남편이 있으면서도   숫처녀라고 우긴 여자인데 마음이 끌리겠는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1898__1936)는  스페인의 그라나다시 근교 농장주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원래는 가르시아  로르카라 해야 옳거나 그대로 로르카라 부르고 있다.   음악에 소질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일찍부터 시와 연극에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철학, 문학, 법률을 배웠다.   1919년에 마드리드로 가서 1928년까지 보냈다. 자유로운 분위기인 '학생  기숙사'에 들어가 문학자와 예술가들과 친교를 가졌고 시와 연극에 주로  전념하였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집시의 로망세 모음'은 1924년부터 27년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1928년에 간행되어 크나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1929년부터 30년까지 미국에 머물면서 기계 문명 속에서의 비인간화의  공포를 느껴 '뉴욕의 시인'이라는 일련의 시를 썼다. 1935년의 '익나시오  산체스 메히아스에 대한 통곡'은 친구인 투우사의 죽음을 애도한 유명한  시이다.   스페인 시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신변의 위험을 느껴 고향인 그라나다로  돌아갔다. 그러나 1936년 7월에 그는 파시스트 쪽에 체포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알베르티     바다의 밭   바다의 밭에서 채소를 농사짓는니   너와 함께라면 나는   그 얼마나 행복스러우랴!   연어가 끄는 수레에 타고   사랑하는 이여 네가 농사지은 것을   팔러 다니는 그 즐거움!   "미역, 미역 사시오   싱싱한 미역 사시오!"   *라파엘 알베르티(Rafael Alberti:1902__)는 스페인의 시인이며 극작가로  처녀 시집 '땅의 뱃사공(1924)'은 히메네스의 격찬을 받고 국민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프로딩     온종일   온종일 사랑노래를   노래하고 티티새 소리 들리고   히드풀과 월귤나무는   그 노래를 사랑하였다.   그 사랑의 볼에 맞추어   방울풀이 고요히 울고   별풀의 눈은 빛나며   산딸기의 뺨은 붉게 되었다.   그러자 날개짓소리가 들리며   솔개가 가수의 가슴에   발톱으로 할퀴어 사랑의 노래는    영원히 죽고 말았다.   *규스타프 프로딩(Gustaf Froding:1860__1911)은 근대 스웨덴의 시성으로  일컬어진다.   처녀 시집 '기타와 손풍금'은 향토의 농민 생활을 제대로 한 시와 명상적인  시로 되어 있다.     뵈른손     나는 생각하기를   나는 생각하기를 위대해져야겠다 해서   우선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리하여 나와 모든 것을 잊었다.   여행 떠날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때 나는 한 소녀의 눈동자를 보았더니   먼 나라는 작아지면서   그녀와 함께 평화로이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처럼 여겨졌다.   나는 생각하기를 위대해져야겠다 해서   우선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리하여 정신의 크나큰 모임에로   젊은 힘은 높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그녀는 말없이 가르치기를   하느님이 주는 최대의 것은   유명해지거나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 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위대해져야겠다 해서   우선 고향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향이 냉정함을 알고 있었고   내가 오해받고 소외되어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내가 발견한 것은   만나는 사람의 눈마다 사랑이 있다는 것   모두가 기다린 것은 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새로워지게 되었다.   *뵈른스트예른 뵈른손(Bjrnstjerne Bjrnson:1832__1910)은 입센과 나란히  평가되는 노르웨이의 세계적 문호이다.   소설 '양지 언덕의 소녀'로 신문학의 기수 자리를 굳혔고, 뒤이어 '아르네'와  '명랑한 소년'을 발표하여 청춘 문학을 확립하였다.   시작품은 숫자가 많지 않으나 소설에다 많은 자작시를 삽입하여 민요풍의  리드미칼하고 소박한 시풍으로 많은 가작을 남겼다.   190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외베르랑     그리니에게 보내는 편지     내 생명의 기쁨, 내 그리움의 여인   너를 만나지 못해 쓸쓸하구나!   여기서는 해 지는 것이 무척 더디어   좀처럼 해서 날이 가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몇 번이고 생각해 본다.   너는 내 무릎에 안겨 잠잤다.   내 어깨에는 네 머리가 기대졌다.   그때 나는 마음으로 고요히 노래하며 밤을 지샜다!   나는 너와 같은 꿈을 꾸었고, 매일 함께 식사했다.   지금에는 둘이 같은 괴로움을 맛보고 있다!   예전에는--가을이 오면--   이런 덧없는 위로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즈음에는 운이 좋은 때에는   안마당에서 서로의 모습을 흘낏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이--봄이 오면--하고 생각했었다.!   지금에는 만날 수 있는 것은 오직 매일 밤뿐   꿈이 놓아 주는 다리를 통해서뿐이다!   이 슬픔의 집에서는   별다른 사건은 많지 않다   이쪽에서 무엇을 알릴 수가 있으랴?   우리는 모래 위에 집고, 그것은 재로 돌아간다.   오직 봄을 향해, 평화를 향해, 더욱이 전진하는   꿈이 있을 뿐이요 그리움이 있을 뿐   방을 꾸미리라 집을 지으리라   어느 날엔가는 형무소에서 나갈 수 있으리라!   바다 기슭, 물결 철썩이는 샛강 근처   언덕 위에 양지 바른 집이   인동덩굴에 반쯤 묻혀 있다--   너도 보이느냐?   꽃 핀 단풍의 초록빛 나무 그늘에 안마당이 있다   그러나 방은 빛나듯 환하고 넓으며   선생의 책상이 놓여 있다!   보트는 자가용 자리에 매어져 있다!   자, 만족스러운가!   나라가 해방되고   피투성이 되었던 사람들이   쇠사슬을 풀고 일어서게 되는   그 날을 생각하면 즐겁구나!     그때 나는 해안과 산줄기를 멀리 바라보면서   빛나는 농장과 산길을 가리키며 말하련다   보아라, 이것이 네 토지다!   모두 다 네것이다!   *아르눌프 외베르랑(Arnulf verland:1889__1968)은 노르웨이의 시인으로서  20세기 노르웨이 문학의 대표적 존재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기의 시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고독을 비통하게  노래하였다. 그는 입센 등 북구의 작가와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았다.   사회에 대해서는 항상 날카로운 비판으로써 노래했고, 평화를 사랑한  휴머니스트였다.   제 2차 대전 중 나치스 독일의 침략에 즈음하여 애국적인 저항시를  비합법적으로 유포하여 저항 운동을 지원하였다.   그가 나치스에게 체포되어 수용소 안에서 쓴 시는 '우리는 모든 것을 살아  나아간다(1945)'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 역시 수용소 안에서 쓴 작품이다. 원래 제목은 '메라 가에서  그리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메라가는 수용소가 있는 거리 이름이고,  그리니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외베르랑은 건전한 사랑의 시를 많이 남겼다.     요르겐센     열 한 시     --엘레나에게   너는 해 지고   저녁 어두움 드리울 때 왔다.   하지만 두려워하지도 않고   나와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너는 알지 못했다.   네가 방황하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네가 알고 있던 것은 단지   내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너는 성애낀 창 겉에서   네 장소를 발견하였다.   나는 일찍이 혼자서 앉아 있었다--   이제 우리는 둘이서 거기 앉았다   그리고 별들이 하늘에 켜지면   너는 볼 것이다.   빛나는 별들 전체를   우리 집 위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는 듣는다   열 한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를   그리고 나는 안다 네가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갈 결심이라는 사실을   *요하네스 요르겐센(Johnnes Jrgensen:1866__1956)은 덴마크의 펜 섬에서  출생하였다.   코펜하겐 대학 재학 중에 급진적인 문예 브란덴의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시인으로서 출발하였다.   이윽고 니체의 철학과 프랑스 상징과 시인의 영향을 받아 상징주의적 잡지  '탑'을 동인들과 함께 발간하여 덴마크 시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라쿠르     너와의 한 때   바람 거세게 부는 지상에서의 너와 지낸 한 때   대지의 회색진 대지를 때리는 싸락눈과   검푸른 자취를 남기며 지나가는 피욜드와   바다새를 태우고 천천히 흔들리는 파도와   그리고 침묵, 그리고 네게라면 나는 언어없이 나를 열 수가 있노라......   뿌리의 말없음이 대지 앞에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듯   *폴 라쿠르(Paul La Cour:1902__1956)는 덴마크의 대표적 시인으로  릴케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인 시풍을 확립하였다.     에미네쿠스     호수   숲 속에 있는 푸른 호수에는   노란색 수련꽃이 가득히 떠 있고   하얀 파문의 리듬에 따라    고요히 보오트는 흔들리고 있다.   호수 기슭을 걸으면서   나는 귀 기울이고 기다린다.   갈대 숲 사이에서 그녀가 나타나   고요히 내 가슴에 기대 주기를.   우리는 보트를 타고   물의 속삭임 소리에 황홀해진다.   어느새 손에서 노는 놓여지고   키가 움직이는 대로 배는 떠다닌다.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며   우리의 보트는 물에 떠다닌다.   갈대를 지나는 바람은 조용히 불고   호수의 물결은 희미하게 살랑거린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고......나만 홀로   헛된 한숨을 내쉴 뿐이다.   수련꽃 가득 떠 있는   숲 속의 푸른 호수가에서.   *미하이 에미네스쿠(Mihai Eminesou:1850__1889)는 루마니아의 시인.  도서관 직원과 신문 기자 등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시작에 몰두하였다. 과로와  정신적 피로가 겹쳐 발광하여 정신 병원에서 죽었다.   염세적인 시와 사회 반항의 시를 많이 썼고, 신진 작가 동맹 기관지인 '문학  담화'에 그 대부분의 작품이 게재되었다.     엔드레     홀로 해변에서   해변, 황혼, 호텔의 작은 방.   그이는 가고 말았다, 다시 만나지 못하리.   그이는 가고 말았다, 다시 만나지 못하리.   소파에 남겨진 한 송이 꽃   나는 끌어안는다, 낡아빠진 소파를.   나는 끌어안는다, 낡아빠진 소파를.   주위에 맴도는 그이가 남긴 향기.   파도 소리 들린다, 무심한 바다의 즐거운 노래.   파도 소리 들린다, 무심한 바다의 즐거운 노래.   멀리서 반짝이는 등대의 빛.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바다는 계속 노래한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바다는 계속 노래한다.   바다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느새 졸고 있다, 낡은 소파에서.   어느새 졸고 있다, 낡은 소파에서.   입맞춤 때 불처럼 타오르던 그이의 모습.   바다는 계속 노래한다,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바다는 계속 노래한다,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아디 엔드레(Ady Endre:187801919)는 헝가리에 프랑스 상징시를  소개하였고, 시단에 새 시대를 연 20세기 헝가리 시단의 제 1인자이다.   동부 헝가리 지주의 집에서 태어나 청년 시대를 파리에서 보냈고,  보들레르와 베를렌에게 사사하였다.   귀국한 뒤 '신시집'을 발표하여 서구파 작가의 중심이 되었고, 시의 개념과  시형의 혁신에 힘썼으며,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네루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키스와 침대   빵을 나누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기도 하고   덧없는 것이기도 한 사랑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하여   자유를 원하는 사랑을   찾아오는 멋진 사랑을   떠나가는 멋진 사랑을   *얀 네루다(1834__1891)는 체코슬로바키아 근대시의 아버지로  저널리스트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소년 시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시는 우주적인  곳까지 승화되었고 예언자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발라     슬픔   나는 당신의 소중한 꽃이었습니다.   나는 저녁에 뚫어질 듯이 바라보며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눈에 키스했습니다   당신은 언덕 위에서 노래했습니다.   '너는 사랑하는 것 이상이다'라고   그 가락이 틀렸음을 내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뱀 같은 마음을 내 어찌 알았겠습니까   좋아요 어서 가셔요!   나는 내 어두운 마음을 밤의 숲에 던졌습니다.   오오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모든 나무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일찍이 내 행복의 새였던 그 이름을 말입니다.   *카트리 발라(Katri Vala:1901__1940)는 핀란드의 여류 시인으로서,  가난과 병고의 역경 속에서 인생에 대한 정열과 불굴의 정신으로 뛰어난  서정시를 썼다.     다리오     미아 내 것   미아 네 이름   멋지다   미아 태양빛   미아 장미와 불꽃   내 영혼에    향기를 보낸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   오오 미아 오오 미아   네 여성과   내 남성을 융합시켜   너는 두 개의 동상을 만든다   쓸쓸한 너 쓸쓸한 나   생명 있는 한   미아 내 것   *루벤 다리오(Ruben Dario:1897__1916)는 니카라과의 시인. 세관에  근무하기도 하고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면서 시작을 계속하여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시 성립에 공헌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살면서 날카로운 감각과 우아한 선율 그리고  치밀한 문체로 인기를 차지했다.   모더니즘을 통해 유럽 시단에 라틴 아메리카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아름다운 표현력과 감각적인 음향을 통해서, 마치피아노의  음률처럼 인간의 혼을 흔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생명과 희망의 노래"가  있다.     가을의 시   나의 생각이 당신 쪽으로 갈 때 향기가 납니다.   당신의 시선은 하도 감미로워서 심오해집니다.   당신의 벗은 발 밑에는 아직도 흰 거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입술 속에서 당신은 세계의 기쁨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일시적인 사랑은 짧은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쁨과 고통에 대해 똑같은 한계를 제공합니다.   한 시간 전에 나는 눈 위에 그 어떤 이름을 새겼습니다.   일 분 전에 나는 나의 사랑을 모래 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노란 잎들은 포플라나무 숲에 떨어집니다.   많은 사랑의 쌍들이 배회하는 이곳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가을의 잔에는 모호한 술이 담겨 있습니다.   봄의 여신이여, 바로 그 잔 속에 당신의 장미꽃 잎들이 떨어집니다.     미스트랄     발라드    그이가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을 보았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부드러웠고   길은 여느 때처럼 고요한데   그이가 가는 것을 보았다   이 불쌍한 눈이며   꽃밭을 지나가며   그이는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신사꽃이 피었다   노래가 지나간다   꽃밭을 지나가며   그이는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해안에서 그이는 그 사람에게 입맞추었다.   레몬의 달이   물결 사이에서 회살지었다   바다는 내 피로   붉게 물드는 일 없이   그이는 영원히   그 사람 곁에 있다.   감미로운 하늘이 있다.   (신은 괴로움을 주신다)   그이는 영원히 그 사람 곁에 있다   *가므리엘라 미스트랄(Gabriela Mistral:1889__1957)은 칠레의 여류  시인이며 외교관이다. 본명은 루시라고도이.   국민학교 교사의 딸로 태어나 시를 쓰는 한편 교사와 외교관으로서  활약하였다.   사랑으로 해서 하느작거리는 순박한 영혼의 속삭임과 영원한 생명의 찬가를  노래하여 '사랑의 시인'이라는 칭호로 불리웠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젊은  시절에 실연을 당하고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다.   미스트랄의 시의 특색은 열렬한 휴머니즘과 아름다운 서정성이다.  1945년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주요 시집으로 '황폐(1922)'가 있다.     네루다     여자의 육체   여자의 육체여 흰 언덕이여 흰 허벅지여   하늘이 준 네 모습은 이 세상과도 비슷하다   건장한 내 농부인 육체는 그 괭이로   대지의 깊이에서 자식을 뛰어 오르게 한다.   나는 늪처럼 고독했다 새들은 내게서 도망쳤고   밤은 무서운 힘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 나는 너를 무기처럼 단련하였고   이제 너는 내 활의 화살이 되어 나를 섬긴다   하지만 복수의 때가 지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미끄러운 살결과 이끼와 유방이 있는 탐욕의 육체여   아아 항아리 같은 유방! 아아 얼빠진 듯한 그 눈!   아아 볼두덩뼈의 장미! 네 야릇한 슬픔의 소리!   여자의 육체여 나는 네 매력의 포로가 된다.   오오 목마른 끝없는 욕망, 종착 지점없는 길이여!   어두컴컴한 강바닥이여 거기 영원한 목마름이 흐르고   피로가 흐르고 끝없는 고뇌가 계속되는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1904__1973)는 칠레의 시인.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로 있으면서 시를 발표하여 문명을 떨쳤는데 의식의  심연에 빛을 조명한 쉬르레알리즘 시인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외교관으로 부임한 스페인에서 터진 내란의 비참성은 시인으로 하여금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1971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1924)등이 있다.     생고르     내 너를 데려왔다     --카람을 위해서   내 너를 데려왔다 곡식의 마을 밤의 입구까지   나는 네 미소의 황금 수수께끼 앞에 할 말이 없다.   네 얼굴에 짧은 황혼이 신 같은 변덕을 떨구었다.   표범보다 음흉한 조상 이래의 고뇌가 나를 감싸고   정신이 그것을 낮의 지평선 밖에 떨치지 못할 때   나는 빛이 숨는 언덕 정상에서 네 허리의 천과   네 나체가 태양이 지듯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영원히 밤인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길인가?   나는 대지의 어머니인 동굴의 어두움에서 울며   나는 잠들리라 내 눈물의 침묵 속에서   네 입술의 젖빛 새벽이 내 이마에 닿기까지는.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Leopold Sedar Senghor:1906__)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시인이며 정치가.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고 세네갈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신생 독립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시집으로 '그림자의 노래'(1945), '검은 희생물(1948)' '이디오피아  사람'(1956) 등이 있다.     타고르     바닷가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은 그림처럼 고요하고, 물결은 쉴 새 없이 넘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질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바다로 떠보내는 아이,   모두들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헤엄칠 줄도 모르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진주 캐고 상인들은 배 타고 오가지만,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질 뿐입니다.   그들은 보물에도 욕심이 없고, 고기잡이 할 줄도 모른답니다.   바다는 깔깔대며 부숴지고, 암초는 흰 이를 드러 내어 웃습니다.   죽음을 지닌 파도도 자장가 부르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암초는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하늘은 폭풍 일고, 물 위에 배는 엎어지며 죽음이 배 위에 있지만,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터입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ndranath Tagore:1861__1941)는 인도의  시성이며 소설가로 11세 때부터 시를 발표하여 사랑과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를 발표하였다. 시집 '기탄잘리(1909)'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1913년 동양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타고르의 시는 동양적 예지의 세계를 영적인 필법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정평이 있다. 바라문교의 베다경에 나타난 범아 일여(우주의 중심 생명인  브라만과 개인의 중심 생명인 아트만과의 일치를 믿는 사상)를 신비주의적인  필치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이 시는 1929년에 타고르가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  나라의 동아일보기자가 방문을 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여  특별히 기고한 것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이다. @ff     중국, 일본편 @ff     굴원     회사   (1)   만물이 생동하는 초여름이여,   초목도 빽빽히 우거졌구나!   아픈 가슴 끝없는 슬픔이여,   허둥지둥 강남 땅으로 간다네.   쳐다만 봐도 어질어질,   무척이나 고요하고 소리 없구나.   답답하고 우울한 심정,   시름 겨워 못내 괴롭구나.   정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분을 삼키고 스스로 참는다네.   (2)   네모꼴을 깎아 동그라미를 만드는데도   일정한 법도는 바꾸지 못하는 법.   근본이나 초지를 고치는 것,   군자가 얕보는 거라네.   먹줄로 선명히 줄 그은,   옛날의 설계는 변경치 못하고   충정이 깊고 성질이 바른 것,   대인이 기리는 거라네.   교수라도 실지로 자르지 않으면,   누가 그 칫수의 바름을 알겠는가?   까만 무늬라도 어둠에 놓이면,   청맹과니는 불분명하다고 말하네.   이루라도 실눈을 뜨면,   소경은 못보는 줄로 여기네.   흰색을 바꾸어 검정이라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하는구나.   봉황은 어리 속에 있는데,   닭과 집오리는 훨훨 춤추네.   옥과 돌을 함께 섞어놓고,   하나의 평미레로 재려하네.   저 도당들의 비천함이여,   아이고, 나의 지닌 값을 모르는구나.   (3)   무거운 짐을 많이도 실어,   바퀴가 빠지고 아니 움직이네.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지만,   길이 막히니 보일 데 모르겠구나.   마을 개가 떼지어 짖는 건   이상한 사람을 짖는 거라네.   영웅과 호걸을 비방하는 건   본래가 용렬한 짓이지.   무늬와 바탕은 안으로 갖춰져,   중인들은 나의 이채로움을 모르고   재목과 원목은 산처럼 쌓여도,   나의 소유인 것을 모른다네.   사랑과 정의가 겹치고,   근신과 온후의 덕이 많아도--   중화님은 만날 수 없거니,1)   누가 나의 거동을 이해하겠는가?   옛적에도 성군과 현신은 동시에 나오지 않았지만,   어찌 그 무슨 까닭인지 알겠는가?   탕과 우는 태고적 이야기2)   아득하여 생각할 수도 없나니.   (4)   원한과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스스로 참으니   시름겨워도 변치 않으리니,   나의 뜻, 후세의 본보기 되어지이다.   길을 나아가 북녘에서 묵으니,   해는 어둑어둑 어두워지고   시름을 풀고 서러움을 달래어,   하나의 큰일로써 마감하겠네.   (5)   끝노래에 이르기를--   넘실넘실하는 원수와 상수여,3)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는구나!   기다란 길은 깊이 가려서,   아득한 끝머리 사라지는구나!   두터운 바탕과 결곡한 마음,   견줄데 없이 우뚝하지만--   백락이 이미 죽었으니4)   천리마를 어떻게 품평하겠는가!   만민은 한 세상 태어나,   각기 제 자리가 있거든--   마음을 잡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상심을 덧드려 서럽게 울며,   길게 한숨을 쉬는구나!   세상은 혼탁하여 나를 아니 알아주며,   사람들 마음은 일깨울 수도 없구나.   죽음은 물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애석히 여기지 말아지이다.   분명히 세상의 군자에게 알리노니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련다네.   역주 1)중화님...순임금의 아들   2)'탕, 우'...은나라 시조 탕왕, 하나라 시조 우왕.   3)'원수, 상수'...모두 호남성 경내를 흘러 동정호로 빠지는 강물. 원수는  동정호의 서쪽으로 들어가고, 상수는 동정호의 남쪽으로 들어감.   4)백락...고대에 말을 잘 보던 사람. 천리마를 알아보는 재주를 가졌음.   *굴원(B.C. 343?__277?)은 전국시대 때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평, 자는  원이었다. 초나라 왕족의 출신으로 회왕의 좌도가 되어 넓은 견문과 풍부한  지식으로 내정외교에 밝아 회왕의 신임을 얻었으나 다른 중신들의 미움을  사서 모함에 빠져 왕의 버림을 받았다. 올바른 도로 살다가 사악한 무리에  쫓겨난 굴원은 세상을 한탄하며 '이소'를 썼다. 후에 회왕이 모략에 빠져  객사하고 경양왕이 위에 오르고 아우 자란이 영윤(재상)이 되었을 때, 굴원을  시기하여 대부들을 시켜 모함하자 경양왕이 노하여 굴원을 양자강의 남쪽으로  쫓아 버렸다. 이에 굴원은 시를 읊으며 강가를 헤매다가 상강의 지류인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가장 길게 잡으면 위에 소개한 대로 된다. 그가 죽은 날로 전해지는 5월  5일에는 초나라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회사'는 그가 강물에 투신하기 전에 남긴 절명시로 전해지고 있다.     도연명     귀전원거   1   젊어서 세속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성격이 본래 언덕과 산을 사랑했다.   잘못 올가미에 빠져   내처 30년이 지났다.   조롱의 새도 옛날의 숲을 그리워한다.   연못의 고기도 이전의 늪을 생각한다.   남쪽 들의 황무지를 개간하자,   고집을 세우고 전원으로 돌아온다.   마당은 천여 평인데,   초가는 8,9간이다.   버들, 느릅나무는 뒤 처마를 그늘 지우고,   오얏, 복사나무는 마루 앞에 늘어서 있다.   가물가물 촌락은 먼데,   하늘하늘 마을의 연기.   개는 골목길 안에서 짖고,   닭은 뽕나무 위에서 운다.   집안에 번거로움이 없으니,   빈방에 한가로움이 넘친다.   오랫동안 새장 속에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구나!   2   들판 밖에는 인사 치레가 적으며,   골목 안에는 거마 왕래가 드물다.   대낮에도 가시나무 사립을 걸어두니   빈방에는 번잡스런 생각이 끊어진다.   때로는 후미진 길을 따라   풀을 헤치며 서로 내왕도 하지만,   만나야 허튼 소리는 없고   다만 뽕나무, 삼이 자라는 얘기   뽕나무, 삼은 날마다 자라나고   내 땅은 날마다 넓어지지만,   늘 두렵기는 서리와 싸락눈이 와서   잡초와 함께 시들까 하는 것이다.   3   콩을 남산 밑에 심었더니.   풀만 무성하고 콩모종은 드물다.   새벽에 일어나 김을 매고   달빛 속에 호미 메고 돌아온다.   길은 좁은데 초목만 크게 자라   저녁 이슬에 내 옷이 젖는다.   옷이 젖는 거야 아깝지 않지,   다만 소망만 어그러지지 말아라.   4   오래 산과 진펄을 떠나긴 했지만   광막한 숲과 들은 즐거운 곳이다.   아이놈들 데리고 떨기나무 헤치며   황폐한 촌락을 거닐어 본다.   무덤 사이에서 오락가락,   예전 집터에서 서성서성.   우물과 부뚜막이 있었던 자리,   뽕나무와 삼이 썩은 그루터기.   나뭇군을 찾아 물어본다.   '이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갔나요?'   나뭇군이 나에게 대답한다.   '죽어버리고 남은 사람이 없읍죠!'   한 세대면 세상이 바뀐다고,   이 말은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인생이란 환상과 같은 것,   끝내 공허로 돌아가고 만다.   5   언짢은 마음, 홀로 막대를 짚고   꾸불텅꾸불텅 떨기나무 사이로 온다   산골 물은 맑고도 얕아,   나의 발을 씻을 수 있도다.   세로 익은 술을 걸러다오,   닭 마리로 이웃을 부르겠다.   해가 지니 방안이 어둡지만   가시나무로 촛불을 대신한다.   즐거울 땐 짧은 밤이 안타깝다.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른다.   *도연명(365?__427)은 이백, 두보가 나오기 전 중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이름과 탄생 연대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먼저 이름에 대해서는,  '도연명은 자가 원량이다. 또는 이름이 연명, 자가 원량이라고도 한다'라는  설도 있다. 탄생 연대에 대해서도 십여년을 앞당기기도, 늦추기도 하는 여러  설이 있다. 호는 오류선생, 시호는 정절이다.   도연명의 일생에는 불분명한 점이 너무 많다. 도연명의 증조부는 진나라의  대사마(국방장관)이었고, 외조부는 정서대장군이었으나, 도연명은 아마  소지주였던 듯 어려운 살림이었으며, 겨우 작은 벼슬을 잠깐 하다가 오래도록  은둔생활을 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일생 또한 잘 알려지지 아니한 듯하다.   도연명 시의 첫째 테마는 전원생활에의 동경이다. 노동을 노래한 시인은  적지 않겠지만, 도연명이 살았던 봉건시대에 스스로 몸을 놀려 노동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노래한 시인은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활시인이었다는  점, 그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준 도연명  시의 생명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도연명의 시의 언어는 평이하고 그 표현은  담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그의 시가 일상생활을 직접 노래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시의 언어가 평이하다고 해서 내용도 평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시는 난해한 부분이 많다. 그 난해성은, 사회정치에 대한  풍자와 이른바 철리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음주   (1)   영고성쇠는 일정한 것 아니라,   서로서로 돌아가게 마련.   소생이 오이 밭에 선 모습,   어찌 동릉의 시절과 같을까?   추위 더위는 자리를 바꾼다.   사람의 길도 매양 이와 같다.   달관한 사람은 그 요결을 알아,   마침내 다시 아니 회의한다.   문득 한 단지의 술과 더불어   이 밤을 즐겁게 지내는 거다.   (2)   길이 없어진지 천 년 가까우니,   사람마다 재 속을 아니 보인다.   술이 있어도 마시려 아니하고,   다만 세속적인 명성만 돌보는구나.   내 몸을 귀중히 하는 까닭은   한평생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렇지만 한평생은 얼마나 되는가?   번갯불에 놀라듯 빠른 것을!   백년이라지만 거침없이 흐르는 세월   이것을 간직하여 무엇을 이루려는가?  (3)   마을 안에 엮어놓은 오두막집--   그래도 거마의 번거로움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가요?'   '마음이 멀면 거리도 떨어진다오.'   국화를 동녘 울밑에서 따드니,   아련히 보이는 남산.   산기운은 저녁이 좋구나.   새들도 무리를 지어 돌아오누나.   이 가운데 있는 참뜻--   설명하려니 이미 말을 잊었다.   (4)   가을 국화는 고운 빛--   이슬 젖은 그 꽃봉을 따다가   근심을 잊는다는 술에 띄우면,   내, 세상 버린 뜻 멀어만 진다.   첫잔은 비록 자작이었어도   잔이 끝나면 절로 기울어지는 항아리.   해가 지면 활동을 쉬는 때다.   새도 숲으로 향하면서 운다.   동녘 처마 밑에서 심신은 해방되어,   잠깐 다시 누려보는 이 생명.   (5)   늘 한집에 사는 두 나그네--   그러나 행동은 영 딴판이다.   한 양반은 언제나 취해 있고,   한 사람은 일년 내내 술을 안 마신다.   취했느니 안 마시느니, 서로 비웃지만,   얘기는 각각 통하지 아니한다.   꼬장꼬장, 참 우둔하구나.   건들건들, 참 총명한 듯.   거나한 나그네에게 이르고 싶다--   해가 떨어지면 촛불을 밝혀야지.   (6)   친구들이 나의 멋을 사서,   항아리를 들고 함께 찾아 온다.   풀을 깔고 솔 밑에 앉으니,   두어 잔에 벌써 또 취한다.   어른들 말씀도 어지러워지고,   잔 돌리는 차례도 없어진다.   내가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몸이 귀한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둥실둥실 머물 곳을 헤맨다.   술 가운데야말로 깊은 맛 있거늘!     사령운     석벽정사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기후,   산과 호수에는 청신한 광휘.   청신한 광휘, 사람을 즐겁게 한다.   놀러나온 이, 돌아갈 것을 잊는다.   골을 나서니 해는 아직 이르던데,   배에 오르니 날은 이미 저물었다.   수풀에는 어두움이 깔리었다.   하늘에는 저녁놀이 걷히었다.   함께 빛나는 마름과 연,   서로 기대는 부들과 피.   옷자락 날리며 남쪽 길을 걸어가,   기쁜 마음으로 동쪽 문에 눕는다.   생각이 담박하면 만물이 절로 가벼워진다.   마음이 만족하면 진리가 어긋나지 않는다.   섭생을 꾀하는 이에게 이르노니,   이러한 도리를 따라 행해보시라.   *사령운(385__433)은 산수를 좋아하고 산수를 시로 그린 시인이다. 산수를  모티브로 한 시인으로 도연명과 병칭되지만, 도연명의 시가 산수에 대한  주관적인 이미지를 읊은데 대해서 사령운의 시는 산수를 객관적으로 리얼하게  그린 것이다. 산수시는 중국 시에 있어 커다란 흐름을 이루었지만 도연명의  시가 정통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왕발      산중   큰 강은 슬픔에 막혔거늘    만리 밖에서 돌아갈 생각--   더구나 높은 바람 이는 저녁이니,   산과 산에 누런 잎이 날리니.      산방의 밤   거문고를 안고 방문을 열어놓고   술잔을 잡고 정인을 대한다.   숲 속의 못가, 달밤의 꽃 아래--   또 다른 하나의 봄나라.    *왕발(650__676)은 찬란한 당시의 선구자의 하나였다. 육조의 탐미적인  유풍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그의 익부체의 짧은 시는 소박한 가운데  시인의 진실한 감정을 잘 나타낸 걸작들이다.     진자앙     감우   난초와 두약은 봄 여름에,   파릇파릇 또 푸릇푸릇.   외진 숲에 홀로 선 빛깔,   빨간 꽃술, 자줏빛 줄기.   느릿느릿 다 떨어진 봄이여,    산들산들 이는 가을 바람.   흔들려 다 떨어진 봄이여,   꽃의 뜻은 필경 어찌 되었나!   *진자앙(656__698)은 초당을 휩쓸던 육조의 기교주의를 배격하고, 개인의  생명과 감정을 시에 부여하여 성당의 개화를 가져오게 한 선구적인 시인이다.     고적      봉구현   내 본래 맹저들판의 고기잡이 나뭇군,   한평생을 스스로 한가롭고 멋지게 지내며,   가다금 풀밭 진펄에서 마구 노래 불렀거니,    어찌 벼슬아치가 되어 풍진에 끌려들었을까?   작은 고을이라 할 일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관청의 온갖 일은 모두 규정이 있는 법.   상관을 마주하다 보면 마음이 괴롭고,   백성을 채찍하다 보면 가슴이 쓰리다.   집으로 돌아와 처자에게 하소연하니   온 집안이 떠나가라 웃으며 세상은 그렇단다.   살림살이는 남쪽의 밭을 일구기로 하고,   세태인정은 동으로 흐르는 물에 부치자.   꿈 속의 옛동산은 어디에 있을까?   천자님 명령을 받은 몸이라 잠간 망설인다.   이제야 느껴진다, 매복의 공연함이!1)   다시금 생각난다, 도잠의 귀거래가!2)   *고적(707__765)은 국경지대의 풍물과 전쟁을 시의 소재로 많이 취급 또  훌륭한 작품은 남긴 시인이다.    역주1)매복...한나라 때의 학자. 와망이 정권을 잡자, 처자를 버리고  구강으로 갔음.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졌는데, 그 뒤 성명을 바꾸고 오시의  문졸이 되어 있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있음.   2)도장...즉 도연명. 그의 유명한 귀거래사는 관직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전원의 자유로 돌아가는 선언이었음.     잠삼     주마천행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주마천이 '눈의 바다' 가상이로 흐르는 것을!   망망한 모래 벌판이 하늘 위로 사라지는 것을!   윤대의 구월, 밤에 울부짖는 바람,   강에는 온통 깨진 돌, 보릿자루만한 크기.   바람 따라 여기저기 돌들이 마구 뒹군다.   흉노 땅에 풀이 누래지고 말이 마침 살찌니,   금산 서쪽에 연기가 오르고 티끌이 날린다.   한나라 대장은 서방 원정을 나선다.   장군은 갑옷을 밤에도 벗지 않고,   한밤에 행군하니 창이 서로 튕긴다.   바람은 칼끝처럼 얼굴을 찢는다.   말 털에 눈이 붙고 땀으로 김이 서리니,    오화말 연전말 오줌이 얼어 붙는다.   천막 안에서 격문을 기초하니 벼룻물이 언다.   되놈 기병은 말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해서,   백병전에 감회 가까이 달려들지도 못하겠지.   우리 군사는 서문에서 개선행진을 기다리리.   *잠삼(715__776)의 시는 국경지대를 무대로 한 상무적이고 잠성적인  꿋꿋한 기풍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러한 시가 나온 것은 그가 당나라 때의  일선지방이었던 서역에 오래 부임했던 영향인 것 같다.       왕유     송별   산속에서 배웅을 끝내고,   저녁 어스름에 사립을 닫는다.   봄 풀은 명년에도 푸르겠지만,   왕손은 돌아올까, 아니올까?   *왕유(701__761)는 한 마디로 자연시인이었다. 도연명의 전원과 사령운의  산수와의 장점을 합친 것으로 중국의 자연은 그에 이르러 처음으로 새로운  입김--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당나라 사람의 다이내믹한 입김을 쐬었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한 점경으로서 융합된 인간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왕유는 화가로서의 지위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시에는 그림이 있고 그의  그림에는 시가 있다'라고 소식이 말한 것은 그의 시와 그림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왕유는 두보와 같은 시대를 살았으며 같이 안사의 난리를 겪었으나 사회  민중들의 고통이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육조의 정통을 이은  궁정시인으로 상류계급 살롱의 쾌락을 노래했다. 궁정시인과 자연시인은  그에게 있어 모순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기조를 이루는 것은 쾌락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은 그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점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인  답을 얻게 된다.      잡시   1   집은 맹진 강가에 있다오,   문은 맹진 나루를 맞보고.   언제나 강남 배가 오거니,   집에 부쳐온 편지가 있는가요?   2   그대는 고향에서 왔으니,   고향 소식을 알겠구료.   오던 날 고운 창 앞에    찬 매화는 꽃이 달렸던가요?   3   이미 찬 매화는 피었다오,   그리고 새 소리도 들려오고.   수심하면서 봄 풀을 보거니,   옥계를 향해 자랄까 두렵다오.     소년행   1   신풍의 좋은 술은 한 말에 만 닢.   함양의 협객들에는 젊은이도 많다.   만나자 의기 상통하니 술을 마시리,   높은 다락 수양버들 가에 말을 매어놓고.   2   벼슬 얻어 한나라 섬기니 우림랑,   처음으로 표기장군 따라 어양에서 싸운다.   주가 알겠자, 국경으로 향하는 괴로움을!   죽는다 해도 협객의 아름다운 이름은 들으리!   3    혼자서 두 사람 뮈의 쇠뇌를 당긴다.   천 겹 되놈의 기병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   황금 안장에 깐깐하게 앉아 흰 궁깃을 고르어,   펄렁펄렁 다섯 선우를 쏘아 죽인다.1)   역주 1)다섯 선우'... 한나라 때에는 흉노의 임금 다섯이 유명했음. 즉,  도기선우.호한선우.호갈선우.차리선우.오적선우임.     청계   황화천에 들어섰다는 것이,   푸른 시냇물만 뒤쫓아간다.   산을 따라서 만 번은 돌았는데,   길은 재촉해도 백 리가 못된다.   소리는 시끄럽다. 어지러운 돌 틈.   빛깔은 조용하다, 깊은 솔숲 사이.   출렁출렁, 마름 노랑어리연꽃 뜬다.   맑디맑아, 어린갈대 큰갈대 비친다.   내 마음 전부터 한가로웠거늘   맑은 시내도 이처럼 담담하니,   바라건데, 바위 위에 머물러   낚시 드리우고 여생을 보내어지이다.     맹호연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가며   북궐에 상서는 그만 울리고,   남산의 고향집으로 돌아가자.   재주 없어 명군께서 버리셨고,   병이 많아 친구까지 멀어졌다.   센털은 노년을 재촉하고   불빛은 세모를 몰아친다.   시름이 그지없어 잠 못이루니,   소나무 달밤에 빈 들창.   *맹호연(689__740)은 자연시로서 당시 왕유와 병칭되던 시인이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왕유는 귀족적인 은사로서 부귀공명을 다  맛본 뒤에 산수의 품에 귀의한 사람, 그의 심경과 작품의 분위기는 안정되고  평담한 것이다. 그러나 맹호연은 마흔 살까지 오랫동안 산수 속에 야인으로  지냈지만 부귀공명에 대한 야심이 점점 자라났으니 그의 심경과 작품의  분위기는 왕유처럼 안정되고 평담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마흔 살에 서울로  가서 진사시험을 쳤으나 실패, 크게 낙심하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이것은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자연시이지만  왕유와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될 뿐이다.     이백     촉도난   어허야아! 위태롭구나, 높을시고--   촉나라 길은 어렵다,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도 어렵다.   잠총과 어부와의1)   개국은 아득하다.   그 뒤로 4만 8천 년--   진나라 변경과의 교섭이 없었다.   서쪽 태백산 너머로 새는 날아서   아미산 꼭대기로 빠져올 수나 있었을까?   땅이 꺼지고 산이 무너져 장사가 죽더니,   하늘에 닿은 사다리와 돌로 쌓은 잔도가 차츰 놓였다.   위로는 햇님의 수레도 돌아가는 봉우리가 있고,   아래로는 세찬 물결이 거꾸로 흐르는 소용돌이가 있다.   노란 두루미의 날개로도 지나가지 못하고,   원숭이의 재주로도 기어오르기는 어렵다.   청니고개는 서리서리--2)   백 걸음에 아홉 번은 바위를 돈다.   삼성을 잡고 정성을 지나며 어깨로 숨쉰다.3)   손으로 가슴을 쓸며 앉아서 길게 탄식한다.   묻노니, 그대는 서방 여행에서 언제나 돌아오려느뇨?   무섭게 깎아지른 길 더위 잡을 수도 없다오.   보이느니, 고목에서 울부짖는 슬픈 새.   숫놈이 날면 암놈도 좇아 수풀 사이로 맴돈다.   또 들리느니, 달 밤 빈 산 시름겨운 소쩍새 울음.   촉나라 길은 어렵다,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도 어렵다.   얘기만 들어도 홍안에 주름이 생기리라.   잇닿은 산봉우리는 하늘과 한 자 사이도 못된다.   마른 소나무는 절벽에 거꾸로 걸려 있다.   여울물 튀고 폭포수 떨어져 시끄러운 소리--   땅에 부딪고 돌을 굴려 골짜기마다 천둥이다.   그 험하기 이와 같소.   아아, 그대 먼 길손이여, 어이하려 왔느뇨?   검각은 가파롭고 우뚝하구나4)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도 꿰뚫지 못한다.   지키는 사람이 친한 이가 아니면,   이리나 승냥이로 바뀔지도 모른다.   아침엔 사나운 범을 피하고   저녁엔 기다란 뱀을 피한다.   이빨을 갈아 피를 빨아먹고   삼대를 배듯 사람을 죽인다.   금성은 즐겁다고들 말하지만5)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 감만 못하다.   촉나라 길은 어렵다,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도 어렵다.   몸을 돌려 서녘을 바라보며 길게 한탄한다.   역주 1)'잠종과 어부'...모두 전설상의 촉나라 임금임.   2)청니...고개 이름. 섬서성 약양현의 서북에 있음. 당나라 때, 섬서성에서  사천성으로 통하는 요로임.   3)'삼성, 정성'...각각 28숙의 하나.   4)검각...사천성 검각현의 북쪽에 있는 잔도, 일명 검문관. 촉나라의 산천은  험하기 그지없지만 검각은 그중에서도 가장 험한 곳임.    5)금성...성도의 별명. 이 곳은 사천성의 중심지로 중국 굴지의 도회지임.  옛날에 비단을 짜는 정부의 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금관성 또는 '금성'이라고  불리워진 것임. 사천성은 비단의 특산지임. 또는 이 곳이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함.   *이백(701__762, 자 태백)은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중국 시인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굴원. 도연명 이후의 위대한  시인으로서, 그의 친구 두보와 함께 중국시의 황금기인 당시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태백이 노던 달아'의 동요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근한 이백은,  중국에서는 물론 동양의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양에서도 널리 소개되고  인기도 높다. 그의 시는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백은 가히 세계적인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백의 먼 조상은, 아마 감숙성에서 살았는데 수나라 말경에 가족 중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있었으므로 서역으로 솔가하여 거기서 백년 가량 지내다가  그의 아버지 대 사천성으로 옮겨온 듯하다. 이백은 청소년기를 사천청에서  보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열다섯 살 때 벌써 사부를 지었다.  또 검술도 익혀서 협객들과 휩싸여 아미산 등지로 놀러다니며 칼싸움도 하여  직접 몇 사람을 찌르기도 했다. 또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도사와 함께  은거생활도 했다.   이백은 스물 다섯 살 때, 칼을 차고 넓은 세상을 찾아 사천분지를 떠났다.  이 뒤 마흔 두 살 때까지 계속되는 유랑에서 그의 발자취는 중원천지를  누빈다. 운몽(호북성)에서는 원임 재상 혀어사의 손녀와 결혼했으며,  병주(산서성)에서는 곽자의를 만났으며--나중에 장군이 된 곽자의는 당시  병졸로서 문죄당하고 있었는데 이백이 구해준 것임--조래산(산동성)의  죽계에서는 친구 다섯과 함께 은거생활을 했으며--세상에서는  죽계육일이라고 불렀음--양주(강소성)에서는 1년도 못되어 30여만금을  뿌렸다. 마흔 살에는 도사 오균과 친교를 맺어 함께 승현(절강성)에서 살았다.   마흔 두 살에 이백은 오균의 천거로 장안에 들어가서 벼슬을 얻었다. 현종  이륭기의 우대를 받아, 3년 간의 장안 생활은 무척 풍류로운 것이었다.  황제가 몸소 국에 간을 맞춰주고, 양귀비가 벼루를 들어주고, 고력사가 신을  벗겨주었다. '청평조노래'를 지을 때의 광경은 이러한 득의의 생활의  최고조였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상을 품고 낭만적인 생활을 하는 이백에게  구속이 심한 관리생활은 맞지 않았다. 그는 참소를 받아 마침내 장안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마흔 네 살에 시작한 표류는 다시 중원을 누볐지만, 실의와 가난의  연속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낙척한 시인은 향수에도 젖고 처자도 생각났다.  이 방랑의 시인도 현실인생의 맛을 조금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조금만 생겨도 술을 찾는 그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쉰 다섯 살에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났다. 현종 이륭기는 사천지방으로 피난  갔고 숙종 이형이 새로 등극했다. 현종 이륭기의 열 여섯 째 왕자인 영왕  이린이 이때 딴 뜻을 품었다가 숙종 이형의 군사에게 패했다. 영왕 이린의  막료였던 이백에게도 죽음이 기다렸다. 다행히 전에 도와준 곽자의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야랑에의 귀양으로 감형되었다. 귀양 가는 도중  무산에서 사면을 받아서 이백은 안휘로 돌아왔다. 그는 부근의 산천을  감상하면서 시작에 몰두하는 조용한 삶을 누리다가 예순 두 살에 당도에서  이승을 하직했다.     장진주   그대 못보았는가 하늘에서   나린 황하의 물이   바다에 쏟아져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함을   그대 못 보았는가 명경 속에 백발을 슬퍼하는 대갓집 주인을   아침에 청사같던 머리가 저녁에 흰눈이 되었다네   인생은 득의양양 환락을 다 할지니   황금 술잔 빈 채로 달 앞에 놓지 마라   하늘에서 날 만드니 필시 쓸모가 있음이요   천금을 탕진해도 다시 되돌아 오느니   야 삶고 소 잡아 한바탕 즐기세 한 번 마셨다면 의당히 삼백 잔이로다   잠선생, 단구님이여!   술잔 울리니 놓지 마시오   그대에게 노래 한 곡 올리리다   그대 귀 기울여들어 주구려   음악과 성찬 귀할 것 없지만   다만 길이 추하고 깨지 않기 바라오   고래로 성현들은 하녀같이 외로웠고    오직 술꾼만 이름 남기었네   옛날 조식이 평락관에 잔치할새   말술 만 잔 들고 마냥 즐겼노라    주인이 인색하단 소리할까   당장 술사다 그대 잔 채우리   오화만 천금의 털옷을    아이시켜 술과 바꾸어   오화만 천금의 털옷을   아이시켜 술과 바꾸어   그대와 함께 마시고 만고의 수심 삭이리.     장간행1)   머리가 이마를 처음 덮었을 때,   저는 꽃을 꺾어 문앞에서 장난쳤지요.   당신은 죽마를 타고 오셔서는   침상을 돌면서 청매를 주셨지요.2)   같이 장간 동네에 살며   둘 다 어려서 싸움을 몰랐지요.   열넷에 당신 아내 되었지만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지요.   고개를 숙여 바람벽만 보며,   불러도 불러도 돌아보지 못했지요.   열다섯에 비로소 환한 얼굴 되어   평생을 함께 살자는 소망이 굳었어요.   언제나 미생의 믿음이 있었거니,3)   어찌 망부석의 전설을 알았겠어요?4)   열여섯에 당신은 멀리 떠나셨으니,   구당협, 하고도 염여퇴.5)   오월에는 닥뜨릴 수가 없다고요,   원숭이 울음 하늘에 슬프다고요.   문앞에 새겨진 전날의 발자국,   하나 하나 푸른 이끼 돋았어요.   이끼 깊어 쓸어버리지 못하겠어요.   낙엽은 가을 바람에 일찍 날리고요.   팔월에 나비가 날아와,   동산 풀밭에 쌍쌍이 노는군요.   이걸 보고 저의 마음 아파,   시름겨워 홍안이 시드는군요.   언젠가 삼파를 내려오실 때엔6)   미리 집으로 편지를 하셔요.   멀다 하지 않고 마중 나가리니   곧바로 장풍사까지 나가리니.7)   역주 1)원제는 장간행. 장간은 지금 남경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동네의 이름.   2)청매...꿀에 저린 매실.   3)미생...옛날 '미생'이란 남자는 다리 밑에서 한 여자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여자가 오기 전에 갑자기 강물이 불어났다. 미생은 약속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신용을 잃는 것이라고 여겨, 다리의 기둥을 끌어안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했다 함.   4)망부석...먼 길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화석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또는 그 위에서 기다렸다는 돌. 중국의 각지에는 망부석, 망부산이라는  곳이 많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 박제상의 아내가 서서 기다리던  바위가 있음.    5)구당협, 염여퇴...구당협은 양자강의 유명한 세 협곡중의 하나. 사천성  봉절현에 있음. 염여퇴는 구당협에 있는 거북 모양의 큰 바위.   6)삼파...파군, 파동, 파서의 총칭. 지금 사천성의 동부지방을 가리킴.   7)장풍사...지금 안휘성 안경 부근의 양자강 연안에 있음.   *이백의 작품에 있어 최대의 특색은 그 웅휘한 기상에 있다. 이것은 그의  천재와 그의 개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작시에 있어 자잘한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았고 대구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장시건 단시건, 마치  조금도 힘을 안 들이고 애도 안 쓰며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 내려간 것  같지만, 그것은 그의 인상과 감정을 정확하고 훌륭히 표현해낸 것이다.   이백의 이러한 낭만적 태도는 자연 당시 이전 수 백년간 가중되어 온  시가에 대한 여러 가지 구속을 달가와 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시는 모두  천 여 수가 되지만 율시는 백수가 못된다. 이백은 악부의 정신과 언어에서  가장 놀라운 천재를 발휘하고 있다. 그의 시집 가운데 '악부'는 140여 편이  있으며, 율시, 고시 등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이 '악부'의 변형이다.   이백의 천재는 절구에서도 최고의 수준을 이루고 있다. 그의 절구는 신비한  운치가 있고 깊은 맛이 있으며 기세가 있는 것이다.     소년행   오릉의 젊은이는 금시의 동쪽에서1)   은안백마를 타고 봄바람 속을 건넌다.   낙화를 다 밟고는 어디에서 노는가?   웃으며 오랑캐 계집의 주점을 든다.   역주 1)'오릉...금시'...오릉은 장안의 북쪽 위수 너머에 있는 한나라 다섯  황제의 능묘. 미 부근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음. 금시는 장안의 서쪽에 있는  시장. 외국 상인이 많고 외국의 진기한 상품도 있으며, 서민들이 잡다하게  들끓는 번화한 곳임.     파주문월   푸른 하늘에 달님이 있은 지 그 얼마런가?   나는 지금 잔을 멈추고 물어보노라.   사람은 달님을 더위 잡을 수 없건만,   달님은 오히려 사람을 따라 걷노라.   신선 궁궐 높이 걸린 저 하얀 거울,   파란 안개 걷힌 다음 저 맑은 빛깔.   저녁에 바다 위에서 솟구치는 건 누구나 보겠지만,   새벽에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건 아무도 모르리라.   토끼는 가을 봄 없이 영약을 찧고,   상아는 이웃 없이 외롭게 사오1)   지금 사람은 옛날 달님 보지 못했으되,   지금 달님은 옛날 사람 비추어 왔노라.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흐르는 물,   모두들 이처럼 달님을 쳐다봤겠지.   원컨대, 노래 부르며 술 마실 때,   달빛이여, 길이길이 황금 단지를 비추소서.   역주 1)상아...중국 고대 신화 중의 선녀, 원래 하나라 때 명궁인 예의  아내였는데 예가 서왕모(선녀)에게서 얻어온 불사약을 남편 몰래 훔쳐 먹고  달나라로 올라가 거기서 산다고 함.     월하독작   꽃 사이 한 병 술,   친구 없이 혼자 든다.   술잔 들어 달님을 청하니,   그림자랑 세 사람이 된다.   달님은 마실 줄도 모르고,   그림자는 흉내만 내는구나.   잠깐 달님이랑 그림자랑 함께   즐기자, 이 몸이 가기 전에   내 노래에 달님은 서성거리고,   내 춤에 그림자는 흐늘거린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겁지만,   취한 다음엔 각각 흩어지리.   영원히 맺은 답답한 우정,   우리의 기약은 아득한 은하수.     정야사   침상에 기대어 달을 보니   서리가 내린 듯이 하얗구나   머리 들어 산마루 달을 보다가   머리를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추포가   백발이 삼천자나 자란 것은   시름 때문에 그런 것인가   거울 속의 흰서리는   어디에서 얻어온 것인가.     자견   술을 대하니 해 지는 줄도 몰랐네   꽃잎이 옷깃에 떨어지는데   취하여 달빛을 밟고 걷는데   새는 깃을 찾고 사람도 내왕이 없네.     아미산월가   아미산의 반달이 가을에   그림자만 평강을 따라 흐르네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을 가는데   그대를 못만나고 유주로 간다     산중대작   둘이서 대작하는데 산꽃이 피네   한잔 한잔 또 한잔을 마시다 보니   나는 취하여 잠이 오니 자네는 가게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오게     망여산폭포   향로봉은 햇살에 보라빛 안개 서리고   폭포를 바라보니 장천이 걸려 있네   물줄기가 곧바로 삼천 길을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가?     산중문답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새하곡   오랑캐가 가을을 틈타 침입하니   정벌하는 군사들이 도성을 떠났다   장군은 병부를 나누어 가졌고   병사들은 사막 땅에 엎드려 사네   달은 활 그림자 따라 움직이고   서리는 칼에 스쳐 꽃잎처럼 흩어진다   옥문과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젊은 부인은 탄식하지 말아라     등금릉봉황대   봉황대 위에서 봉황이 놀더니   봉은 가고 집은 비어 강물만 흐른다   도나라 궁터에는 잡초만 덮였고   진나라 귀인들은 무덤으로 남아 있다   삼산은 맑고 구름 속에 솟아 있고   진수와 회수는 백로주를 감싸 흐른다   뜬구름에 해가 가려   장안이 보이지 않고 시름만 솟아난다.     자야오가   장안 하늘에 달은 밝은데.   집집이 나는 다듬이 소리 요란도 하네.   가을 바람이 불어 멎지를 않으니,   이는 모두가 옥관을 넘나드는 정일세   오랑캐를 평정할 날이 언제일까.   원정이 끝나야 님께서 돌아오시지.     강상음   목란을 걸친 사당 나무배에 옥퉁소 황금피리악사 양편에 앉았다   미주를 술통에 가득 담아 기생을 태운 배는 물결 따라 떠난다   선인도 기다리다 황학을 타고 갔지만 물가의 길손은 거리낌 없이 백구 따라  논다   굴원의 시문은 일월처럼 빛나고   초왕이 세운 수각은 언덕으로 남아 있다   흥이 나서 글씨를 쓰면 오악도 흔들리고   시가 되어 한바탕 웃으면 창주도 업신여겨진다.   공명과 부귀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면 한수도 동남에서 서북으로 역류할  것이다.     두보     병거   수레들은 덜컹덜컹, 말들은 히힝히힝.   병사들은 제각기 활과 살을 허리에 찼다.   부모와 처자가 따라가며 배웅하니,   일어나는 먼지에 함양다리 안보인다.   옷자락에 매달려 발구르며 길을 막고 통곡한다.   통곡하는 소리는 곧장 구름 위에 닿는다.   길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의 대답은 짧게,   '점고가 잦습니다'   열 다섯부터 북녘의 황하를 지키던 사람,   마흔이 되자 서녘의 둔전을 짓는다.   갈 때에 이장이 머리를 싸매어주더니,   머리 세어 돌아와 또 수자리를 산다.   국경에는 피가 흘러 바닷물 되었는데도,   무황의 국경 개척은 그칠 줄 모른다.   그대는 듣지 못하는가? 한나라 산동  2백 고을의   동네마다 마을마다 가시나무 자라는 마을!   기운 센 에미네가 호미와 쟁기를 잡지만,   모종이 밭이랑에 자라나 동서를 가릴 수 없다고.   더구나 진나라 군사는 괴로운 싸움도 견딘다고   개나 닭과 다름없이 마구 몰아댄다.   '어르신네가 물어주시기는 하지만,   졸병이 감히 한을 풀겠습니까?'   '또한 지난 겨울처럼   관서의 병졸을 쉬게 않는다면,   나라에서 세금을 재촉한대도   세금을 어디서 내겠습니까?'   '정말, 아들 낳는 것 나쁘고   딸 낳는 것 좋음을 알겠습니다.'   딸을 낳으면, 하기사, 이웃에 시집이나 보내지만,   아들을 낳으면 잡초처럼 흙에 묻히고 말지.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청해의 끝을!   예로부터 백골을 추려주는 이 없이,   새 귀신은 원망하고 묵은 귀신은 통곡하니,   날 흐리고 비 뿌리면 들리는 소리 훌쩍훌쩍.   *두보(712__770)는 중국 최고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친구 이백과 함께  이두로 병칭되고 있다.   인생에의 성실--이야말로 두보의 문학을 그 근원에서 성립시키는 원동력인  것이었다. 중국문학의 전통인 '인간은 인간세계에 있는 한, 인간에 대해  성실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휴우머니즘의 정신은, 이 시인 안에서 다른  어떠한 시인에서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확언하면  공자로부터 시작되는 중국 휴우머니즘의 전통은 이 시인의 문학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결정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두보가 후세 사람들로부터 시성의  이름을 얻은 것은, 단지 그 표현, 기교의 완벽함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북정   우리 황제 즉위하신 2년 가을1)   윤팔월 하고도 초승에,   나, 두자는 북으로 나아가   아스라이 가족을 찾아본다.   아아, 어려운 시기를 당하여   조정과 민간에 한가한 날 드문데,   안스럽게도 나만 은총을 입어   집에 돌아가는 것 허락받는다.   대궐 아래에서 하직 여쭙고도   떨리는 마음, 오래도록 못나온다.   내 비록 습유의 자질 모자라나2)   황제께 잘못 있으실까 두렵다.   황제께서는 참으로 중흥의 주인,   나라 일에 진실로 애를 쓰시지만,   동쪽 오랑캐의 반란 이니 그치니   이것이 나는 심히 분통스럽다.   눈물 뿌리며 행재로 돌아보니4)   가는 길이 오히려 어질어질.   하늘과 땅, 모두 상처투성이니   근심 걱정, 언제 끝날 것인가?   느릿느릿 논틀밭틀을 넘어선다.   연기 오르는 집 드물어 쓸쓸하다.   만나느니 상처받은 사람인데   신음하면서 또한 피를 흘린다.   고개를 봉상으로 돌리니,   깃발들은 저녁 빛에 보일락말락.   앞으로 차가운 산을 거푸 오르니   말에 물먹일 동굴도 여러 곳.5)   빈주의 들은 움푹 꺼졌는데6)   경수는 그 속에서 세차게 흐른다.   사나운 범이 내 앞에 서서   절벽이 갈라져라 울부짖는다.   국화는 이제 가을 꽃이 피어 있고,   바위에는 옛날 수레자국 나 있다.   푸른 하늘에 두근거리는 마음,   골짜기의 꽃에도 반가워 한다.   산의 열매는 대개 하찮은 것이지만,   다닥다닥 상수리가 많이도 열렸다.   단사처럼 빨간 놈도 있고,   옷칠처럼 까만 놈도 있고,   그것은 비와 이슬이 스며들어   달게도 익었고, 쓰게도 익었다.   멀리 복사꽃 피는 고장을 생각하니   더욱 한탄스럽다, 서투른 처세가.   높고 낮은 부주의 산,   바위와 골짜기는 숨었다 나왔다--   나는 이미 강가를 걷지만,   머습은 아직 나무꾼에 가려 있다.   올빼미는 누런 뽕나무에서 울부짖고,   들쥐는 어지러운 구멍에서 인사한다.   밤이 깊어 전쟁터를 지나가니,   차가운 달이 백골을 비춘다.   동관 지키던 백만 대군--   지난번에 그처럼 갑자기 흩어졌으니,   마침내 진나라 백성의 절반을   죽여서 저승의 귀신을 만들었구나!   더구나 나는 오랑캐의 티끌에 묻혔다가,   돌아와 보니 모두 희끗희끗한 머리.   해를 넘겨 초가집에 다다르니,   아내와 자식의 옷은 누더기.   솔바람에 감도는 통곡의 소리,   슬퍼서 샘물과 함께 목이 멘다.   평소에 귀여움 받던 사내아이는   얼굴빛이 눈보다 더 흰데   아빠를 보자 돌아서서 운다.   때묻은 발에는 버선도 없다.   침상 앞의 두 계집아이는   기운 옷이 겨우 무릎을 가린다.   바다 그림은 물결이 동강나 있으니   옛날의 수가 옮겨진 까닭.   천오와 보라빛 봉황새는7)   짧은 저고리 위에 곤두 서있다.   노부는 속이 언짢아져서8)   게우고 싸면서 며칠이나 몸져 눕는다.   어찌 자루 속에 비단이 없어   너희들 추위를 못 막아줄 것인가!   분곽과 눈썹먹을 보퉁이에서 꺼내어   요와 이불 위에 슬쩍 펼쳐놓는다.   수척한 아내 얼굴에 다시 생기가 나고   어리숙한 계집아이는 머리를 빗는다.   어미를 본따서 못하는 짓 없어   아침 단장이라고 마구 찍어바른다.   분 바르고 곤지 찍은 얼굴,   요란도 하구나, 널따란 눈썹.   살아와서 어린 것들을 대하고 보니   배고픔과 목마름을 거의 잊겠다.   묻는 말에 다투어 수염을 꺼두르지만   어느 누가 화내고 호통칠 것인가?   적굴에 잡혀서 근심하던 때 생각하고   시끄러움도 달게 받는다.   새로 돌아온 것만도 즐거운 일,   생활의 법도야 말할 수 있나?   황제께서는 아직도 피난살이,   어느 날에나 전란이 끝날까?   새로운 광명, 하늘에 그득하고   요사한 기운, 점차 사라져간다.   스산한 하늬바람 속에서   고생하는 회홀의 군사들.   그 황제는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그 습속은 치돌에 뛰어난다고.   보내 온 병사는 5천 명,   거기에다 군마는 1만 필.   이 무리들은 젊은이를 귀히 여기니,   사방에서 과감한 행동에 탄복한다.   싸움에서는 매처럼 날아올라    적을 무찌르니 살보다 빠르다.   황제께서는 우두커니 바라시지만   세상의 의논은 새로운 근심.   이수, 낙수는 쉽사리 들어올 것이고9)   서경은 공격할 것도 없다.10)   우리 군사는 제발 깊이 들어가   정예를 모아서 함께 쳤으면 좋겠다.   이 싸움으로 청주, 서주를 열고    다시 항산, 갈석산을 겨냥해야지.   서리와 이슬 내리는 가을,   하늘과 땅에 넘치는 정기.   이 해에는 오랑캐를 쳐부수자,   이 달에는 오랑캐를 사로잡자.   오랑캐의 운명이 오랠 수 있나?   황제의 계통은 끊이지 아니하리!   생각하면 낭패하던 당초에,   옛날에 없던 일이 생겼다.   간신은 필경 소금에 절여졌고,   그 도당도 따라서 흩어졌다.   하나라, 은나라는 멸망을 앞두고도   스스로 말희, 달기를 벌하지 못했다.   주나라, 한나라가 다시 일어선 것은   선왕, 광무제가 명철했기 때문.   훌륭하도다, 진장군이여!11)   군사를 이끌고 충성을 다한 사람.   그대 아니면 우리는 죽었고,   그대 때문에 나라는 살았다.   치량한 대동전이지만,12)   적막한 백수문이지만13)   도성의 민중들, 비취 깃발 맞으니,   상서로운 기운은 황금 대궐 향한다.   능묘에는 진실로 신령이 있다.   쓸고 닦는 예법 소홀히 말라.   빛나도다, 태종의 위업이여!   세우신 나라 끝없이 뻗어난다.   역주 1)숙종의 지덕 2년, 즉 서기 757년임.    2)습유...황제에게 간언을 드리는 벼슬, 좌습유, 우습유가 있었는데, 두보는  당시 좌습유였음.   3)동쪽 오랑캐...안경서를 가리킴. 이 해 정월에 안경서는 그의 양부  안록산을 죽이고 낙양에서 칭제하고 있었음.   4)행재...황제가 임시로 머무는 곳.   5)'말에 물 먹일 동굴'...만리장성에는 여러 곳에 동굴이 있어 말 먹일 물이  있었음.   6)빈주...빈주는 분지로 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 경수가 흐름.   7)천오...바다의 신. 사람 얼굴을 했으며, 머리가 여덟, 다리가 여덟, 꼬리가  여덟인데 모두 푸르고 누런 빛이라 함.   8)'노부'...두보의 자칭   9)'이수와 낙수'...낙양을 가리킴. 그 곁에 이수, 낙수의 두 강이 흐름.   10)서경...장안임.   11)진장군...좌룡무대장군 진현례임. 금위의 6군을 이끌고 현종 이륭기의  피란 길을 따르다가 군사들의 분격을 대표하여 양국총과 양귀비의 처벌을  요청했음. 이 거사로 말미암아 간신과 요사스러운 계집이 제거되었으며,  이로서 민심을 수습하고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하여 그 공적을 두보가  찬양한 것임.   12)대동전...장안의 남내에 있는 홍경궁안의 한 궁전.   13)백수문...장안의 금원에 있는 한나라 고궁인 미앙궁의 한문. 원래는  백호문.   *두보는 낙양 부근의 공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20세에 집을 떠나 십여년간 남쪽으로 양자강 하류지방과 북쪽으로  황하유역까지 방랑생활을 보냈다. 그 동안에 과거를 쳤으나 낙방되었다.   이 동안 그는 이백, 고적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서로 시를 교환했다. 두보는  30세가 넘어 오랫동안의 방랑생활을 청산, 수도 장안에 정착했다. 이후 빈곤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관리가 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이 기간에 그의 시는 특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두보는 40세 때, 처음으로  벼슬을 얻었지만 가난한 생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44세 때에는 섬서성이  봉선에 기탁시켜 놓은 가족 가운데 어린 아들이 아사하고 말았다. 이때  시인의 눈에는 큰난리가 막 일어나려고 하는 전야의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일반민중의 빈곤, 고통과 군주귀족의 황음, 사치의 극렬한 대조가  예리하게 반영되었다. 여기서 그의 작품은 민중의 편에 서서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해(755)에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났다. 8년간 계속된 난리통에 두보는  모진 고생을 했으며 잔혹한 현상을 목격했다. 동시에 그의 사회시의 소재도  이로써 풍부하게 되었다.   두보는 48세 때, 사천성의 성도에 이르렀다. 성도는 물산이 풍부한  곳이었고 그의 친구들이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으므로 두보의 생활은 겨우  기를 펴게 되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완화계에 초당(지금은 그의 기념관이  되었음)을 짓고 두보는 한가한 날을 보내었다. 심경도 평담해지고 작품에는  조용한 기풍이 나타났다. 그러나 2년이 채 못되어 이 지방에 반란이 일어나  잠시 피난했다. 뒤에 반란이 진압되자 일단 돌아왔으나 도움주던 친구가  없어져서 의지할 곳을 잃었다.   54세 때, 두보는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났다. 양자강을 따라 나가다가  기주에서 2년쯤 머물며 회고적인 율시를 많이 지었다. 57세 때에는 무협을  빠져서 남호성의 여러 고을을 지나 뇌양에 이르러, 거기에서 이 세상을  하직했으니 이때 나이는 59세였다.   지금 전해지는 두보의 시는 모두 1,450수 되는데, 구중에 1,040수 가량이  율시와 절구, 나머지 410수가 고시다. 시사를 다룬 전기의 작품들은 대개  고시의 자유로운 형식을 채택한 사실적인 것이 많지만, 회고적인 심경을 그린  후기의 작품들은 대개 율시의 까다로운 형식을 채택한 기교적인 것이 많다.   두보 이전의 율시는 단순한 언어적 유희에 빠진 것이 많았지만, 두보는 그  어려운 법칙성을 거꾸로 이용, 치밀한 구성 속에 빈틈없이 다듬어진 언어로  인생의 중대한 일과 복잡한 감정을 담는 시형으로 충실케 하고 완성시켰다.  율시는 두보에 의하여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보의 시의  위대하고 진정한 가치는 오로지 전기의 사회 시, 주로 고시에 있는 것이다.    강촌   1   서녘에 구름 봉우리 붉다.   햇발이 평지에 떨어진다.   사립문에 참새떼 재잘거릴 때,   나그네는 천리에서 돌아온다.   아내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놀랐다가 다시 눈물을 닦는다.   난세에 떠돌던 몸이   살아 돌아온 것 우연하다.   담 머리에는 이웃 사람이 가득,   감탄하고 또 한숨 짓는다.   밤 깊어 다시 촛불 키니   마주 앉은 것이 꿈인 듯하다.   2   늘그막에 구차스런 목숨,   집에 와도 즐거움 적다.   귀염둥이는 무릎에서 맴돌다   무서워 다시 떨어진다.   전날 바람쐬기 좋아서   거닐었던 못가의 나무에,   쓸쓸한 북풍이 세차니   나는 온갖 시름에 잠긴다.   조와 기장 거두었던 말을 듣고,   벌써 술 향내가 코에 스민다.   이제는 만족히 술잔을 기울여   늙은 날을 안위할 수 있겠지.   3   뭇 닭이 마구 울어댄다.   손님이 와서 닭이 날뛴다.   닭을 쫓아 나무에 올리니까   들린다, 사립문 흔드는 소리.   부로들 너덧 사람이 찾아와   나의 먼 여행을 위문한다.   손에 손에 든 예물은   탁주병에 또 청주병.   술맛이 떫다는 겸사,   기장밭을 갈 놈이 없었다고.   전쟁이 끝나지 않아   애들은 모두 동쪽으로 갔다고.     노인네를 위하여 노래 부르리.   가난 속의 예물 받기 안스럽다.   노래 끝내고 길게 탄식하니   방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무가별   적막하다, 천보의 뒷날--1)   밭과 집은 오직 쑥대밭.   우리 동네 백 가구가 넘었는데   성상 어지러워 동서로 흩어졌다.   산 사람은 소식이 없고   죽은 이는 흙이 되었다.    천한 놈은 패전하였으므로   돌아와 옛길을 찾는다.   오랜만에 보니 빈 거리에   설핏한 햇살, 쓸쓸한 기분.   오직 여우와 너구리만 으르렁거리며,   털을 세워 나를 보고 성낸다.   사방에 이웃이라고 있을까?   늙은 과부 한두 사람뿐!   잘 새도 옛 가지를 그리고,   어찌 누추한 곳이라고 마다할까?   바야흐로 봄이라 혼자 호미를 메고,   해질녘에는 또한 밭에 물을 댄다.   고을의 관리, 내 온 것 알고    불러다가 군고 치는 연습을 시킨다.   비록 내 고장의 부역이라 하라,   돌아봐야 가족이라곤 없다.   가까이 가도 단지 한 몸뿐,   멀리 가도 끝내 떠돌이 신세.   고향이 벌써 몽땅 없어졌으니   멀리나 가깝거나 매한가지지.   길이 애통한 것은 병든 어미를    5년이나 시궁창에 버렸었던 일.   나를 낳고도 효도를 못 받았으니   종신토록 둘이 슬퍼서 운다.   인생에 집 없는 이별 당하니   어찌 사람이라 할 것인가?  *역주 1)천보...당나라 현종의 연호.     추홍   이슬이 내려 단풍잎이 떨어지니   무산과 무협에는 가을빛이 쓸쓸하구나   강에 파도는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고   변방에 이는 구름은 천지에 덮여 있다.   국화를 바라보니 다시 전날처럼 눈물이 나고   배를 저어가니 고향 생각이 이어진다   겨울 옷을 곳곳에서 마련하고 있는지   백제성 부근에 다듬이소리 요란하다     촉상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으리오.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빽빽하다   뜰에 비치는 풀은 봄 기운이 감돌고   잎 속에 숨은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곱는나.   두 황제를 섬긴 노신의 충성스런 마음이라   군사를 출동시켜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적시게 한다.     동악양루   예전에 동정호의 이름을 들었는데   이제야 악양루에 올라왔도다.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남쪽에 펼쳐 있고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는 것 같네   고향의 벗은 소식 한 자 없고   늙어 병든 몸이 외로이 배를 타고 떠돈다.   싸움은 고향 쪽에 그치지 않고 있으니   기둥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고 있네     등고   바람 부는 쓸쓸한 가을에 원숭이는 울고   물 맑은 흰 모래 위에 갈매기 난다.   사방의 나무에서는 잎이 우수수 지고   끝없는 강물은 굽이쳐 흐르네   고향을 떠나 이 슬픈 가을 나그네 신세되어   병든 몸을 이끌고 이곳에 올랐네   고생도 한스러운데 머리털마저 희어지니   늙은 몸 탁주잔도 들지 못하겠네     원결     춘릉행   전쟁하는 나라에는 세금도 많은데   절실한 책임은 관리에게 지워지니,   관리는 고을에 임하여, 다투어   법과 처벌을 시행하게 된다.   세금 바치기 근심되지 않을까만.   세금 거두기 또한 비참하구나.   작은 고을이 난리를 겪어   살아남은 사람도 실로 고달프다.   큰 마을에 열 집도 없고,   아침에는 풀 뿌리 씹으며,   저녁에는 나무 껍질 먹는다.   말을 하자니 숨이 끊어질 듯,   마음은 바빠도 걸음이 더디다.   재촉하기도 차마 안타까운데   더구나 이들을 채찍해야 한다.   파발말이 전하는 다급한 명령,   뒤축을 밟으며 오고 간다.   도무지 관대한 은혜란 없고   다만 기일을 재촉할 뿐이다.   아들 딸을 팔게 할까?   그러면 난동이 일어나겠구나.   집안을 샅샅이 뒤지게 할까?   그런데 살아나갈 양식도 없도다.   저 길거리의 말을 들어보아라.   원망과 한탄을 누가 알겠나?   '지난 겨울에 산적이 와서   죽이고 빼앗아 남은 게 없다.   높으신 나라가 우리를 위무하고   은혜를 베풀어주길 바랬건만,   어찌하여 거듭 몰아치면서 목숨을 잇게도 아니하는가?'   민중을 편케 하라는 천자님의   부절을 나는 지니고 있으니,1)   고을이 갑자기 난리라도 난다면   죄는 누가 뒤집어쓰게 될까?   연기시키는 것은 명령에 어긋나니   책망을 들어도 마땅한 일이다.   옛사람이 일렀으되, 분수를 지키어   화복에 마음이 변하지 말라고,   다시 일렀으되, 관직을 지키어   세상사에 마음이 동하지 말라고.   약한 자를 돕는 것만이   올바른 나의 본분이다.   누가 국풍을 채집하는가?2)   나는 이 말씀을 바치고 싶다.   역주 1)부절...관리의 임명장을 가리킴.   2)국풍...지방의 민중이 읊은 시가, 민요. '시경'의 국풍에서 나온 것임.   *원결(723__772)의 시재는 두보에 미치지 못했으나, 민중의 편에 서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 시의 정신에서는 그와 같은 길을 걸은 시인이다. 두  사람은 비록 직접 사귄 적은 없었던 듯 하지만 두보는 그의 시를 읽고 크게  감탄하고 회답하는 시를 지었다.     장적     이부   십년 동안 시집살이   여자 행실 잘못 없는데,   박명하군요, 자식 낳지 못하면   쫓겨난다는 옛날의 법.   처음엔 해로동혈 말씀하시더니   오늘에 일이 어긋나는군요.   당신이 마침내 버리시니,   어떻게 오래도록 머물겠어요?   시부모님 계시는 큰방에 올라,   무릎 꿇고 하직인사 여쭈었어요.   시부모님은 저를 보시고,   이별을 다시 망설이더군요.   옛날 팔찌는 돌려주시고,   혼인 예복은 남겨두셨어요.   어르신네는 저를 어루만지시고,   길 모퉁이에서 울어주셨어요.   옛날 처음 며느리 적   당신이 가난하였을 때.   주야로 길쌈을 하느라,   눈썹 그릴 틈도 없었지요.   애써서 황금을 쌓아,   기아에 떠는 당신을 건졌었지요.   낙양에다 저택을 사고,   한단에서 시비를 샀었지요.   낭군이 용마를 타시니,   출입에 빛이 났었지요.   장차 부자집 며느리가 되어   영원히 자손에 의탁하려 했더니,   어찌 알았겠어요, 집을 쫓겨나   혼자 수레 타고 돌아갈 줄!   자식이 있다고 영화롭지는 않지만   자식이 없으면 비참해지는 것이어요.   사람 중에 계집은 되지 말아요,   계집 되기 참으로 어려워요!   *장적(765__830)은 사회시를 두보에서 이어받아 백거이로 이어준 중요한  시인이다. 그는 두보를 몹시 흠모하여 전설에 의하면, '두보의 시집을 불태워  그 재에 꿀과 기름을 섞어 마신다면 나의 간장도 바뀌어 지겠지'라고 했다고.  또 백거이는 그의 시를 읽고 몹시 감탄했다고도 한다. 그는 시란 풍월이  아니라 현실의 직시며 유희가 아니라 진지한 것이라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며,  이를 작품에 성공적으로 반영시킨 시인이다.     백거이     장한가1)   한나라 황제는 경국지색을 사모하셨건만,2)   용상에 오르신지 오래도록 찾아내지 못하셨다.   양씨 댁 아가씨 이제다 자랐건만,3)   규중에 깊숙이 있으니 아는 사람 없었다.   하늘이 내린 아름다움만은 스스로도 못버리는 법   하루 아침 뽑혀서 천자님 곁에 모셨다.   눈동자 굴러 살짝 웃으면 온갖 미태 생겨나니   육궁의 미녀들은 모두 빛을 잃었다.4)   봄 추위에 내리신 화청궁 욕실의 목욕.5)   온천 물은 희고 매끄러운 살결에 부드러웠다.   몸종의 부축으로 일어나니 힘없이 요염한 자태,   비로소 새로이 천자님의 사랑을 받을 때.   구름같은 머리칼, 꽃다운 얼굴, 황금 비녀,   부용꽃 방장에서 따뜻하게 봄밤을 지냈다.   봄밤은 너무나 짧구나, 해가 이미 높이 올랐구나.   이때부터 황제께서는 조회에 나오지 않으셨다.   비위를 맞추고 잔치에 모시느라 틈이 없으니,   봄에는 봄놀이 따르고 밤에는 밤을 독차지했다.   후궁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3천 명--   3천 몫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황금의 궁전에서 화장 마치고 기다리는 밤,   백옥의 누각에서 잔치 끝나면 피어나는 봄.   언니들과 오빠들도 모두 제후의 서열--   놀랍구나, 대문에도 후광이 비쳤다.   드디어 세상이 부모들로 하여금 아들 낳기보다는   딸 낳기가 더 귀중하다고 여기게 했다.   여산의 이궁은 높아라, 구름 속에 뾰족한데,6)   신선의 음악은 바람 따라 곳곳에 들렸다.   느린 가락, 조용한 춤에 엉겨드는 피리와 거문고--   황제는 온종일 보시고도 싫증을 모르셨다.   어양의 북소리 대지를 울리며 다가오니,7)   서역의 곡조는 놀라서 깨어졌다.   구중궁궐에 연기와 티끌이 일어나니,   수천의 수레와 말은 서남쪽으로 갔다.   비취 깃발은 흔들흔들 가다가 서다가,   서쪽으로 도정의 문을 나서기 백 리 남짓,   6군이 꿈쩍 않으니 어찌할 수 없구나,8)   곱다란 아미 숙이고 말 앞에서 죽었구나!9)   꽃비녀 땅에 버려졌건만 집는 사람 없었다.   비취 깃털, 공작 비녀, 또 옥비녀도.   황제는 얼굴 가리고 구해주지 못하셨다.   돌아보는 얼굴엔 피눈물이 섞여서 흘렀다.   누런 먼지 흩날리고 바람은 썰렁썰렁,   높다란 잔도로 굽이굽이, 검문과에 올랐다.   아미산 밑에는 다니는 사람 드물고,   빛 잃은 깃발에 햇볕도 바랬다.   서촉의 강물은 초록색, 서촉의 산은 감청색.   황제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생각에 젖은 빛깔.   밤비에 들리는 방울, 애가 끊어질 소리.   천하의 정세가 일변하니 어가가 돌아섰다.   여기에 이르러 머뭇머뭇 나가지 못하니,11)   마외역 언덕 밑 진흙 속에   그 얼굴 간데 없고 죽은 곳만 허무하구나!   황제와 신하는 서로 보며 모두 옷을 적셨다.12)   동쪽으로 도성의 문을 바라보며 힘없이 나갔다.   돌아오니 연못과 동산은 옛날과 같구나.   태액지의 부용꽃, 미앙궁의 버들잎.13)   이를 보고 어떻게 눈물 아니 흘릴까?   봄 바람에 복사 꽃 피는 날,    가을 비에 오동 잎 지는 때.   서궁과 남내에 가을 풀 우거졌다.   낙엽은 섬돌에 가득한데 단풍도 쓸지 않았구나.   이원의 제자, 하얀 머리 새롭다.   초방의 아감, 푸른 눈썹 늙었다.15)   저녁 전각에 반디 나니 생각은 쓸쓸하구나.   외로운 등잔을 돋우느라 잠 못 이루는구나.   종소리는 느릿느릿, 이제 밤이 길다.   은하수는 반짝반짝, 겨우 날이 샌다.   싸늘한 원앙 기와, 서리꽃 겹쳐 있다.   차가운 비취 이불, 누구와 함께 잘까?   아득하구나 삶과 죽음, 이별이 해를 넘기는데,   혼백은 아직 꿈에도 돌아오지 아니했다.   임공의 도사로 문안에 돌아온 나그네16)   정신력을 기울이면 혼백을 모셔올 수 있다고.   천자님 뒤척뒤척 잠 못이루시는 상사에 감동하여   드디어 방사로 하여금 은근하게 찾도록 시켰다.17)   공중으로 솟아 대기를 타니 번개처럼 빠르구나.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들어가 두루 찾았다.   위로는 벽락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18)   그 어디도 모두 망망할 뿐,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들리기를, 바다 신선의 산이 있단다.   그곳은 아른아른 허공 가운데 있단다.   영롱한 누각에 오색 구름이 일어나는데,   그 가운데 얌전한 선녀들이 많다고.   가운데 한 사람 이름이 태진이라니,19)   눈같은 살갗, 꽃다운 모습이라니, 기연가 미연가?   황금 대권 서쪽 별당의 백옥 대문을 두드려,   마중나온 소옥이를 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20)   한나라 황제의 사신이란 전갈을 듣자,   꽃무늬 흐드러진 방장 속에서 꿈은 놀라 깨었다.   옷깃을 여미며 베개를 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진주 발 은 병풍을 하나하나 열고 나왔다.   구름 같은 머리칼 반 남아 쳐졌으니 새로 잠을 깼구나.   화관을 매만지지도 못하고 지대 아래 내렸구나.   바람에 선녀의 소맷자락 팔랑팔랑 나부끼니   그대로 '무지기와 깃옷'의 무용같구나.   옥같은 얼굴 쓸쓸한데 눈물은 줄줄--   봄비에 젖은 배꽃 한 가지.   정다운 눈길은 멀리 황제께 예를 올린다.   '이별한 뒤 음성과 용모 모두 망망하옵나이다.   소양전에서의 은애는 끊어졌사옵나니,   봉래궁에서의 일월만 지루하옵나이다.   고개를 돌려 문득 인환의 거리 내려다 보았사오나,   장안은 아니보이옵고 티끌과 안개만 있사옵나이다.'   오직 옛 물건만 깊은 정표가 되리라고,   자개 상자와 황금 비녀를 부치겠단다.   비녀 한 가닥, 상자 한쪽을 남겼는데,   비녀는 황금을 떼내고, 상자는 자개를 갈라낸 것.   다만 마음이 황금이나 자개처럼 굳기만 하노라,   하늘 위의 세상에서 만날 길 있으리니.   떠날 마당에 은근히 거듭 전갈하였으니,   거기에는 두 사람만 아는 맹세가 있었다.   '칠월 하고도 칠석, 장생전에서   아무도 없는 야반에 속삭이셨다오.'   '천상에선 비익조 되어지이다.21)   지상에선 연리지 되어지이다.'22)   장구한 천지 끊일 때 있겠지만,   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   역주 1)당나라 현종의 애인 양귀비에 대한 못 잊을 사랑의 한을 읊은 노래.  모두 120구의 장편서사시. 그 구상은 사후의 세계에까지 펼쳐지는 로맨틱한  작품임.   2)한나라 무제를 말하나 실은 당나라 현종을 가리킴. 백거이는 당나라 때  사람이었기에 근신하는 뜻에서 말한 것임.   3)'양씨 댁은 촉주의 사호 양현염의 집을 말함. 아가씨 이름은 옥환, 처음엔  현종의 아들인 소왕의 비, 뒤에 고력사의 눈에 띄어 궁중에 뽑혀 들어갔음.   4)천자의 후궁으로 지어진 여섯 궁전. 모두 후, 비, 빈을 가리킴.   5)화청궁...장안의 동쪽 근교 여산에 황제가 피한하기 위하여 지은 온천의  이궁. 처음엔 온천궁이라고 불렀다가 현종 때 화청궁으로 개명했음.   6)여산의 이궁...즉 화청궁.   7)서기 755년 동짓달, 안록산이 어양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가리킴.   8)'황제의 근위병 6개 부대. 꿈쩍 않으니'라 함은, 동란의 책임을 황제의  측근, 즉 양귀비와 양국충에 있다고 아우성 치며 군사들이 반항의 기세를  올린 것을 말함.   9)곱다란 아미...양귀비를 가리킴.   10)천하의 정세가 일변...반란군의 괴수 안록산이 그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된 뒤 757년 구월에 장안은 관군에 의하여 수복되었음.   11)여기...양귀비가 목매달아 죽은 곳.   12)현종은 장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외역에 이르러 제사를 지냈는데, 관을  열어보니 향낭이 그대로 있었다고, 현종은 이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함.   13)태액지...장안의 대명궁 안에 있는 못. 미앙궁은 금원 안에 있던 궁,  한나라 때 만든 것임.   14)이원...현종이 제위하고 있던 옛날 몸소 양성한 가무단의 이름.   15)초방...미앙궁 안에 있던 황후의 방. 산초를 벽에 섞어 바른 것임. 아감은  궁녀들의 감독관.   16)임공...사천성 동래현의 옛이름. 도사는 신선도를 수련하는 사람.   17)방사...역시 신선도의 수련자, 앞의 도사의 조수인 듯.   18)벽락...도가에서 '하늘'을 일컫는 말. '황천'은 지하의 세계를 가리킴.   19)태진...양귀비의 이름. 양귀비는 처음 수왕의 비였는데, 현종의 애인으로  신분이 바뀔 때, 일시 여도사가 되었으며 이 때 태진이라고 이름을 고쳤었음.  여기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양귀비가 죽어서 선녀가 된 것으로 한 것임.   20)모두 양귀비의 시녀.   21)비익조...자웅이 각각 하나의 눈, 하나의 날개를 갖고 있으므로 둘이  함께 되어야 난다는 상상의 새.   22)연리지...밑둥은 두 그루인데 가지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상상의 나무.  '비익조'와 '연리지'는 모두 남녀의 깊은 사랑을 상징하는 것임.   *백거이(772__846)는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노래를 부른  민중의 시인이다.   백거이가 태어난 시기는 중국 시문학의 절정인 성당이 막 지나간 시기이니,  이백이 죽은 지 10년, 두보가 죽은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백거이의 집안은 대대로 관리였다. 그러나 겨우 지방관 정도의 낮은 계층일  뿐 결코 명문은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을 맛보았으나 열심히  공부했다. 젊어서 진사로 급제 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형부상서(법무장관)의  직함을 얻고 75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라고 하겠다.   백거이는 수다한 시가를 지어 당시의 정치의 난맥이나 사회의 혼미를  지적하고 민중의 가난한 살림을 호소했다. 그것은 민중의 괴로움을 무시한  권력자들의 횡포, 타락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인데 다만 단순한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주장에 근거를 둔 행위였다.   그는 첫째, 문학은 최고의 의의와 가치를 가진 것, 결코 유희적인  심심파적거리가 아니라고 보았다. 문학의 사명은 현실의 정치를 자세히  살피어 민중의 불만을 건설적으로 반영시키는데 있다고 했다. 둘째, 중국의  문학은 시대를 내려오는 동안 이러한 중요한 사명을 망각하고 탐미적이고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보았다. 그는 사령운, 도연명의 산수,  전원문학은 무용한 것이고, 이백도 중시하지 않고, 다만 두보, 장적의  사회시만 높이 평가했다. 즉 그의 이러한 평가는 문학사상의 입장에 기반을  두었지 예술적 가치를 표준으로 삼지는 않았다. 셋째, 과거의 문학에 대해서  이처럼 불만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문학을 개혁하려고 결심했다.  문학의 첫째 의의는 사회적이고 실용적인 효능을 달하는데 있는 것이므로  문학의 수사적인 아름다움은 젖혀 놓고 내용의 충실성을 요구했으며,  결론적으로 문장이나 시가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추어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에 따라 그는 풍유시를 172수나 지었다.     매화   장안의 봄 저무는데,   시끌시끌 거마가 지나간다.   모란이 필 때라면서,   서로들 꽃을 사간다.   정해진 값 따로 없고,   꽃의 수에 따라 다르다.   불붙는 빨간 꽃송이들,   자잘한 하얀 꽃다발들.   위에는 포장으로 가려주고,   옆에는 울짱으로 지켜준다.   물 뿌리고 흙 돋우니,   옮겨왔어도 빛깔은 그대로다.   집집마다 유행을 이루고,   사람마다 마냥 열중한다.   어떤 시골 노인이   꽃 가게에 와보더니,   고개 숙여 장탄식한다.   이 탄식은 아무도 모르리--   한 떨기 고운 꽃은,   열 가구 몫의 세금.     원진     직부사   직부는 어찌 그리 바쁜가!   누에는 세 잠 자고 늙으려 한다.   누에의 여신은 일찍이 명주실을 만들었지만,   금년 명주실 세금은 일찍도 거두는구나!   일찍이 거두는 것 관리들의 잘못이 아니니,   작년에 나라에서는 전쟁을 치르었기 때문.   병졸은 전투가 심해 창칼의 상처를 싸매었고,   장군은 공훈이 높아 비단 장막으로 바꾸었고.   실을 켜서 비단을 짜는 일에 힘을 쓰지만,   물레를 고치고 베틀을 만지다보니 짜기가 어렵다.   동쪽 집의 머리가 센 두 여자,   꿩의 깃털 무늬 깨치다가 시집도 못갔다.   치마 끝에 휘청휘청 휘늘어진 실,   그 위에서 거미는 교묘하게 오고 간다.   부럽구나, 저 벌레 하늘을 꾸밀 줄 알아   허공에다 비단 그물을 짤 수 있으니!   *원진(779__831)은 백거이와 문학관을 같이 했으며, 그들의 우정도 끝까지  한결같았으므로 원백이라 변칭되는 시인이다. 그들의 시론은, 시란 평이한  표현이라야 한다는 것, 시란 사회를 개선시키는 도구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시를 정립하기 위한 의식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작품에 있어 원진은 백거이보다 못했으며, 시가 평이하기는 하나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구절도 더러 있다.     한유     산석   산의 돌은 울목줄목, 길이 좁다.   황혼에 절에 다다르니 박쥐가 난다.   전당에 올라 섬돌에 앉으니 비가 흡족한 듯,   파초 이파리 커다랗고 치자꽃 탐스럽다.   스님은 옛벽의 불화가 좋다고 말하면서,   불을 가져와 비추는데, 그림이 희한하다.   평상을 펴고 자리를 깔고 국과 밥을 놓는다.   악식이지만 또한 내 시장한 배를 불려준다.   밤이 깊어 조용히 누우니 온갖 벌레 잠잠한데,   맑은 달 고개로 올라와 빛이 방문으로 들어온다.   날이 밝아 홀로 떠나니 길이 없다.   들락들락 오르락내리락 안개구름 속을 다 지나간다.   산은 다홍, 개울은 초록, 그 찬란한 빛깔--   가끔 보이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열 아름이 넘는다.   물가에서 맨발로 개울의 돌을 밟으니,   물소리는 철썩철썩, 바람이 옷에 분다.   인생은 이러하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어찌 옹색하게 남아, 고삐를 잡히는가?   아아, 아아. 나를 따르는 아이들아,   어이하여 늙도록 다시 돌아가지 않겠는가?   *한유(768__824)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유학자로서 산문개혁자로서  유명하다. 그가 주축이 되어 전개한 새로운 고문운동은 유종원의 작품을  뒷받침으로 훌륭히 성공하였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유의 시는 비록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걸작이라고 떠받들었지만, 그것은  유학자로서 그의 비중에 기울어진 평가였다. 그의 시는 천재와 기백이  뛰어나지만 감정이 결핍되고 괴벽한 것이 많았다.     유종원     강설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 사람 자취 끊어졌다.   외로운 배에 탄 삿갓 쓴 늙은이가   혼자서 낚시질하는데 강에는 눈이 나린다.   *유종원(773__819)장안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자후다. 한유와 더불어 고문의  대가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이다. 정치가로서 시인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이하     머리 빗는 여인   서시가 새벽꿈을 꾸는 생초방장은 차갑다1)   향기로운 낭자는 느슨한데, 흐려진 연지.   고패가 삐걱삐걱 돌아가면서 울리는 소리에   놀라서 깨어난 부용꽃, 잠은 실컷 잤다.   쌍란 경대를 열어젖히니 가을 물빛.   낭자 풀고 거울을 보려고 사아 침상에 선다.   한 타래 향그로운 실, 땅에 흩어진 구름.   옥비녀 떨어진 곳, 소리 없이 반지르르.   하얀 손이 다시 틀어올리는 까마귀 빛깔,   새카맣고 매끄러워 칠보 비녀를 꽂기 어렵다.   봄바람 하늘하늘 불어와 나른한 몸을 괴롭힌다.   열여덟 낭자는 너무 많아라, 기운이 없다.   화장을 마치고 보니, 살짝 기울어진 낭자.   구름 치맛자락이 끌리는 모래톱의 기러기 걸음.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섬돌을 내려서서 혼자 앵도꽃을 꺾는구나!   역주 1)서시...춘추시대 월나라의 미녀. 미녀의 대명사로 쓰임.   *이하(791__817)는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시인이다. 이렇게 짧은 동안에  불꽃처럼 모든 것을 연소시키고 간 시인은 중국 시사에서도 극히 드문 예다.   이하는 귀재라고 불렀다. 귀재란 우리말에서 쓰는 것과는 달리 유령이나  요괴같은 초자연의 사물에 의하여 귀기 서린 신비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이상감각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하에게만 씌어지는 특수한  단어이다.   서양의 학자는 이하의 시를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에 대비하기도 한다.  중국문학은 원래 몽환적인 이미지의 창조를 장기로 살고 있지 아니하며, 시는  대부분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촉발된 경험을 테에마로 하는 것인데, 이하는  이점 특이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하는 또한 아름답고 이상한 문자로 염정적이고 향락적인 시도 많이 썼다.  당시가 이백, 두보에서 최고 수준을 이룩하자 후세의 시인들은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러한 이하의 시의 생성은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다.     신현곡   서산에 해가 지고 동산이 어두울 때,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신령님의 말은 구름을 밟는다.   거문고소리 피리소리 어우러지는 가운데,   무당의 꽃무늬 치마는 스르르 가을을 걸어본다.   계수나무 이파리 바람에 쓸리고, 그 열매 떨어지고,   파란 너구리 피를 토하고, 애처러운 여우 죽는다.   벽화속 찬란한 규룡의 황금빛 꼬리를,   우공이 집어타고 가을 호수로 들어간다.1)   백년 묵은 올빼미는 고목나무 도깨비가 되었으니,   웃음소리, 푸른 불, 동주리에 사위스럽다.   역주 1)우공...비의 신령.     가을이 오다   오동나무 바람에 놀란 남아의 마음은 괴롭다.   희미한 등잔불, 베짱이가 쓸쓸히 베를 짜는구나.   누군가, 대쪽으로 엮은 이 시집을 읽어주어   화충에게 좀먹혀 가루가 되게 하지 않을 이가?   생각에 끌려, 오늘 밤, 창자가 꼿꼿하게 되리!   비가 차가운데, 향그로운 넋이여, 서생을 조상하소라!   가을 무덤에서 귀신은 포조의 시를 읊는다.   한 맺힌 피는 천년동안 흙 속에서 푸르리!     안문태수행1)   검은 구름에 눌리는 성, 성이 무너질 듯하다.   해를 향한 갑옷의 광채, 황금 비늘이 번득인다.   뿔피리 소리는 하늘에, 가을 빛 속에 가득하구나.   국경 요새의 연지는 밤에 보라빛으로 엉긴다.2)   반이나 감긴 붉은 깃발은 역수가에 처진다.3)   된서리 맞은 북소리는 추워서 울리지 않는다.   황금대를 쌓고 부르신 은혜에 보답하고자,4)   옥룡을 들고 나가 님을 위해 죽으리라.5)   역주 1)안문은 지금 산시성 대현의 서북에 있던 옛지면. 거기에는 중국의  북방을 수비하는 중요한 요새가 있었음. 이하의 시는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작품은 한 개인의 배후에 퍼지는 중당이라는 괴로운  시대상까지 느끼게 하는 걸작이라고 하겠음. 이 시는 또한 이하가 당시  낙양의 국자감(국립대학)제주(총장)였던 한유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제시하여  단박에 인정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음.   2)연지...여자가 입술이나 손톱에 바르는 화장품. 연지는 흉노 땅의  연지산이 특산지임. '국경 요새의 연지'는 요새에 뿌린 피를 가리킴.   3)역수...하북성 중부를 흐르는 강. 지리적인 뜻에서 보다는 형가의  얘기에서 끌어온 것인 듯함. 전국시대의 형가는 역수가에서, '바람은  썰렁썰렁, 역수는 차갑도다/장사는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아니하리'라는 시를  읊고 적지로 떠났음.   4)황금대...전국시대 연나라의 소왕이 고대를 쌓아 그 위에 황금을 쌓아  두고 천하의 인재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음.   5)옥룡...검을 가리킴.     두목     산행   멀리 한산의 돌길을 오르는데   구름이 피어나는 곳에 인가가 있다   수레를 멈추고 단풍을 바라보니   서리 맞은 잎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     청명   청명절에 비가 부슬거리니   길 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들뜬다   술집이 어느 곳에 있는가   목동이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킨다.   *두목(803__852)은 협서성 만년사람으로 자는 목지이며 두보의 시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라고도 한다. 만당의 대표적 시인인 그는 여러 관직을  거치며 시에 몰두했다. 그의 시는 화려한 시어를 선택하여 유미적 성향이  강하다.     이상은     금슬1)   남아 있는 금슬은 부질없다, 쉰 줄이.   줄마다 괘마다 생각난다, 꽃답던 시절이.   장생의 새벽 꿈, 나비 때문에 헤맸거늘!2)   망제의 봄 마음, 소쩍새에게 맡겼거늘!3)   창해에 달빛도 밝은데, 눈물로 이룩된 진주야.4)   남전에 해도 따뜻한데, 연기로 사라진 구슬아.5)   이 마음 이제 추억이라 그런 것은 아니지.   이미 그 당시에도 망연자실했던 것이지.   역주 1)이것은 오동나무로 된 그 동채에 비단결 같은 무늬가 있는 현악기.   2)장생...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주.   3)망제...촉나라의 전설적인 임금.   4)창해...가공적인 신선 세계의 푸른 바다.   5)남전...구슬의 명산지인 푸른 산.   *이상은(812__858)은 만당의 유미문학을 대성시킨 시인이다. 당시는 그  찬란한 전성기였던 성당을 지나 중당에 들어와서는 백거이로 대표되는 평이한  시, 한유를 중심으로 하는 난삽한 시의 두 갈래로 흐르다가, 만당에  이르러서는 유미주의로 흘렀다. 시의 격조는 일반적으로 극히 섬세화되고, 그  내용은 낭만적이고 때로 퇴폐적인 색채가 농후하게 된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치적이었던 성당의 시인에게는 정면으로 대처되지 않았던 인간의 비정치적  측면, 예컨대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강한 관심이 나타났다. 형식적으로는  절구와 율시가 당시 시의 정수로서 의식되었고 시인들은 화려한 표현, 그리고  정교한 대구에 그 재능을 걸었다. 이들 시인 가운데 두목은 절구에, 이상은은  율시에 가장 뛰어났다.   이상은의 시는 난해한 것으로 유명하다. 금나라 문호 원호문도 일찍이 그의  시에 주석이 없는 것을 한탄했을 정도다.   그는 너무나 많은 전고를 썼으며 또 그 전고도 괴상한 것이 많았다.  중국시에 있어 전고는 대개 '논어', '장자', '사기', '한서' 등에 나타나는  어휘나 인물의 사적이 보통이지만 그는 어떠한 패사나 소설도 가리지 않았다.  당나라 문화가 붕괴하는 시기에 태어난 이상은은 기성 가치를 믿지 않았다.  그는 권위 있는 경전이나 통속적인 소설을 평등하게 보았으며 이러한 눈은 또  현실의 세계와 환영의 세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유교, 불교, 도교에  대해서도 일관한 것이었다.     곡강   평시에 지나가던 비취색 연은 이제 아니 보이고,   자야에 구슬픈 귀신의 노래만 들려올 뿐이다.   황금의 어가도 경성의 자색은 들리지 못한다.   백옥의 전각도 하원의 물결만 그대로 가른다.   죽어도 화정 생각, 두루미 울음을 듣고파 한 사람.   늙어도 왕실 염려, 낙타의 동상을 한숨 짓던 사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혀 마음이 아파도,   봄을 여윈 슬픔에 견준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상아   운모 병풍에 짙어지는 촛불 그림자,   은하수 점점 기울고 새벽 별 사라진다.   상아는 영약 훔친 일을 후회하겠지.   파란 바다 하늘 위에서 상심하겠지.     교아시   곤사는 우리 집 개구장이   예쁘고 똑똑하기 짝이 없구나.   배두렁이 차고 돌도 안되었을 때,   여섯하고 일곱도 벌써 알았다.   네 살 땐 이름을 알았고,   배, 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친구들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단혈의 봉황이구나.   재기와 용모를 숭상한 옛날이라면   유품이 그냥 제일일 거요.'   '아닐세, 신선의 자질일세.'   '아니네, 귀인의 풍골이네.'   어찌 이처럼 다투어 말할까?   늙고 병든 나를 위로하는 거겠지!   새봄 화창한 계절에,   놀이 동무는 모두 사촌들.   집을 돌고 또 수풀로 내달아,   솥의 물이 끓듯 왁자지껄.   대문에 점잖은 손님이 오면,   아차할 새에 먼저 뛰어나간다.   손님이 무얼 갖고 싶으냐고 물어도,   생각은 간절하지만 말은 못한다.   돌아가면 손님 얼굴 흉내낸다.   열어놓고 아비 홀을 집어든다.   장비같은 수염이라고 놀린다.   등애처럼 더듬는다고 웃는다.   날랜 매의 깃털같이 쭈뼛하게,   굳센 말의 숨길처럼 헌걸차게,   푸른 왕대를 꺾어서    말 타고 마구 덤빈다.   갑자기 또 참군을 흉내내어   목소리를 꾸며서 부른다.   다시 또 사등롱 곁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밤 예불을 올린다.   채찍을 들어 거미 줄을 건다.   머리를 숙여 꽃의 꿀을 빤다.   가벼운 호랑나비와 경주한다.   재빠른 버들가지에 안 뒤진다.   섬돌 앞에서 누나와 만나,   쌍륙치더니 꽤나 잃은 모양   몰래 가서 화장대 만지고,   황금 문고리를 잡아뗀다.   끌어안으면 몸을 뒤채고   성을 내어도 막무가내.   몸을 굽혀 창의 그물을 잡아당긴다.   침을 뱉아 거문고의 칠을 닦아 본다.   어떤 때 붓글씨 쓰는 곁에 오면,   꼿꼿이 서서 무릎도 안 움직인다.   장정의 비단으로 옷을 짓자고 한다.   두루마리의 옥도 갖고 싶다고 한다.   아비더러 춘승을 써달라고 조른다,   춘승은 봄날에 좋다고 하면서.   파초 이파리는 종이처럼 말리었구나.   목련 꽃봉오리는 붓처럼 내밀었구나.   아비는 옛날에 글공부를 좋아하여   고생하면서 저술에 힘을 썼단다.   초췌한 가운데 마흔을 바라보는데,   이, 벼룩을 겁낼 살도 없단다.   얘야, 제발 아비를 흉내내어   글공부로 과거 볼 생각은 말아라.   양저가 전했다는 사마법이면,   장량이 배웠다는 황석술이면,   임금님의 스승도 될 수가 있단다.   다시 자질구레한 것은 몰라도 된단다.   더구나 지금은 서쪽과 북쪽에서   오랑캐가 마구 날뛰고 있지만,   전쟁도 평화도 이루지 못하고   고질처럼 키워가기만 한단다.   얘야, 하루 바삐 크게 자라서,   새끼를 찾아 범의 굴로 들어가라.   마땅히 만호 벼슬을 할 것이지,   하나의 경전만 지키고 있지 말아라.     매미   본래 높기 때문에 배부르기는 어려워,   공연히 불평불만으로 우느라고 애쓴다.   새벽엔 이따금 단절된 듯한데,   나무는 퍼렇게 무정할 뿐이다.   하찮은 관리는 목우인같이 떠내려 가고,   고향의 논밭은 황무지처럼 거칠어졌다.   그대가 엄중하게 깨우쳐주었으니,   나도 역시 온 집안이 맑다.     매요신     전가어   누가 말했던가, 농가는 즐겁다고?   봄의 세금을 가을에도 못채우는데!   촌의 아전은 나의 문을 두드려,   낮과 밤으로 몹시도 들볶아댄다.   한여름에 홍수가 지더니,   탁류가 집보다도 높았다.   흙탕물이 망쳐버린 나의 채소,   메뚜기가 먹어치운 나의 곡식.   지난달에 내려온 조서--   주민등록 다시 하란다고.   장정 셋에서 하나를 뽑아   심하게 활쏘기를 시킨다.   고을의 공문은 이제 더욱 엄하니,   늙은 아전은 채찍을 들고   어린이와 늙은이도 잡아들인다.   다만 남긴 것은 절름발이, 장님뿐.   농촌에서야 감히 원망이나 할까?   아비와 자식이 각각 슬피 운다.   들의 일을 어떻게 할텐가?   화살 사느라 송아지를 팔았는데!     시름의 기운은 장마비 되고,   빈 솥, 항아리에는 죽도 없다.   장님, 절름발이는 밭을 못간다.   늦거나 이르거나 죽을 운명!   내가 듣고 참으로 부끄러운 것은   헛되이 나라의 녹을 탐낸 것이다.   오히려 '돌아갈까나' 읊으며   나무하러 깊은 산골로 향할까?   *매요신(1002__1060)은 송나라 초기의 시단에 청신하고 평범한 시를 내  놓은 시인이다. 당시 많은 시인들은 만당의 이상은을 추종, 시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에만 주력하다가 정작 내용을 소홀히 한, 이른바 서곤체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달의를 모토로 하는 매요신 등에 의하여 송시의  독특한 세계가 열렸다.     소식     자유와 작별하며1)   숲도 아니 마셨거늘 어찌 취해서 건들거리나?   이 마음 벌써 돌아가는 말을 좇아 떠났구나?   돌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집안만을 생각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으로써 적막한 가슴을 달래나?   산에 올라 고개를 돌린, 언덕이 가려서   다만 검은 모자만 보이다 말다 하는구나!   된 추위에 너의 외투가 얇은 것을 염려하면서,   홀로 야윈 말을 타고 새벽달을 밟는구나!   나그네는 노래하누나, 집에 있는 사람 즐겁다고.   머슴은 내가 지나치게 슬피 탄식한다는 눈치구나.   역시 인생에는 이별이 있는 법이라 함을 안다만,   다만 세월이 너무나도 빠르게 흐르는구나!   찬 등불 밑에 함께 지내던 옛날을 기억하지만,   밤 비 쓸쓸한 소리는 어느 때나 함께 듣겠나?   네가 이 뜻은 잊어서 아니된다 함을 안다면,   부디 높은 벼슬에 애써 매달리지 말아주려무나.   역주 1)자유는 소식의 아우 소칠의 자.   *소식(1035__1101)은 송시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시인이다. 아버지 소순,  아우 소철과 함께 부자 세 사람이 모두 문학자로서, 세상에서는 삼소라고  이름났다.   소식의 시는 재기에 내어맡겨, 기괴, 분방, 웅장한 것이었다. 소식은  구양수와 더불어 문학의 복고를 주장했지만, 가장 낭만적이고 정열적이며,  자유를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는 로자, 장자, 도연명을 사랑하고 불경, 도경을  즐겨 읽었으며, 스님, 도사와 교유하고 첩을 얻고 기생을 사귀었으며, 술에  취하고 크게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인생, 예술에 대해서 깊이 이해했던  시인이었다. 다만 모든 면에 있어 극단을 피하는 중용의 태도를 지켜, 고된  인생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었다.     자유의 시에 화답하며   인생이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은가?   응당 기러기나 눈이나 진흙을 밟는 것과 같겠지.   진흙 위에는 우연하게 발톱자국 나겠지만,   날아간 기러기가 다시 동쪽이나 서쪽이니 따지겠는가?   늙은 스님은 벌써 죽어서 새로운 탑이 이루어졌다.   무너진 바람벽에는 옛날의 제시를 찾을 길이 없다.   지난날 험한 산골길이 아직 기억에 남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고달프고 굼뜬 당나귀는 울었었지.     서호의 아침 해   아침 해는 손님을 맞아서 겹친 언덕에 곱다.   저녁 비는 사람을 붙잡아 술 나라로 이끈다.   이 뜻은 그대로 좋은데, 그대는 아직 못하는가?   한 잔은 마땅히 수선왕에게 권할 것이다.   물 빛깔은 반짝반짝, 날이 맑아 마침 아름답다.   산 색깔은 뿌유스름, 비가 와도 또한 뛰어난다.   서호를 가져다가 서시에게 견준다면,   엷은 치장 짙은 단장 모두 서로 어울린다.     해회사에 묵으며   남녀를 타고 사흘이나 산속을 간다.   산속은 실로 아름답지만 넓은 평지 드물다.   아래로는 땅속으로, 위로는 하늘로 던져지며,   실같은 길, 언제나 원숭이들과 경쟁한다.   겹친 누각과 답답하게 골짜기에서 만났을 때,   두 다리는 시큰시큰 빈 속은 쪼르륵거린다.   북으로 나는 듯한 다리를 건너니 걸음마다 삐걱삐걱.   담장은 백 걸음, 마치 옛성과 같다.   큰 종을 옆으로 치니 천의 손가락이 마중나온다.   높다란 방에 손을 인도하고, 밤에 빗장도 안 건다.   삼목에 옷칠한 목욕탕, 강물이 넘친다.   애초에 없던 대, 씻으니 더욱 가볍다.   침상에 쓰러지니 코고는 소리 사방이 놀란다.   둥둥, 오경의 북소리에 하늘 아니 밝는다.   아침 죽 먹으라는 목탁소리 맑게도 울리더니,   사람 소리 아니 들리고 신발소리만 들린다.     교외에서 봄을 맞으며   동풍은 아직 동문으로 들어가려 아니하니,   말을 달려 다시 지난해의 촌락을 찾는다.   사람은 가을 기러기처럼 신실하게 찾아오지만,   삶이란 봄날의 꿈과 같이 흔적없이 사라지도다.   강성의 허연 탁주, 텁텁한 석 잔에.   야로의 검은 얼굴, 따뜻한 웃음.   이미 해마다 이 모임을 갖자고 기약했거늘,   고인이여, 초혼을 노래할 필요가 없다.     황정견     청명   좋은 명절 청명에 복사 오얏 웃는데,   발 사이 거친 무덤은 시름겨울 뿐.   천둥에 놀란 누리, 용사가 꿈틀한다.   비가 흡족한 들판, 초목이 부드럽다.   제사 나머지 빌어먹고 처첩에게 뽐내던 사람.   불에 타서 죽을지언정 공후를 마다하던 선비.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천년, 누가 알아줄까?   눈에 가득한 쑥대밭, 같은 하나의 둔덕인데!   *황정견(1045__1105,호는 산곡도인)은 소식과 함께 송시의 대표이며,  중국문학사에서 최초의 자각적인 시파인 강서파의 비조이다.    황정견의 시는 종래 그 난해성이 많이 거론되어왔다. 그와 거의 동시대에  이미 주석이 시도되었다. 주정적, 직관적인 당시에 대하여 그의 시는  주지적이고 시종일관 냉정한 작풍을 견지하고 있다.      쾌각루에 올라   미련한 자식처럼 관청 일 끝내버리고,   쾌각에서 동서로 맑은 저녁 하늘 바라본다.   낙엽 진 천의 산, 하늘은 너르고,   맑은 강 한 가닥, 달은 또렷하다.   붉은 현은 이미 고운 님 때문에 끊었지만,   검은 눈은 잠깐 좋은 술로 해서 돌려진다.   만리 밖으로 돌아가는 배, 피리를 불자.   이 마음 나하고 갈매기가 맹세했거늘!     육유     산남행   내 산남으로 다니기 이미 사흘--   동아줄같은 한길은 동서로 뻗어 나가고,   펀한 냇물과 기름진 들은 끝이 없는데,   보리밭은 푸르고 뽕나무는 우거져 있다.   함곡관, 진나라에 가까운 고장, 기풍도 씩씩하구나.   그네뛰기 공차기에 모두 편을 가르는구나.   구름에 이어진 거여목의 들, 말굽소리도 힘차구나.   양편에 줄지은 버드나무 길, 수레소리도 드높구나.   옛날부터 전해오는 뚜렷한 흥망의 자취,   눈에 보이는 산천은 오히려 전과 같다.   한신장군의 단상에는 찬 구름이 낮고,   제갈 승상의 사당에는 봄 해가 저문다.   나라는 반백년 동안 중원을 잃었다.   장강, 회수로 군사를 내어야 무찌르기 쉽지 않다.   반드시 북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올 날이 있으리니,   오히려 관중을 가지고 근거지를 삼아야 하리.   *육유(1125__1210)는 애국시인이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난 다음 해 북송은  비극적으로 멸망하고, 임안으로 천도한 남송은 일시적인 소강상태를 이루었다.  당시 재상 진회는 화친파였으므로, 주전론자들을 많이 파면했다. 그의  아버지도 파면당한 관원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주변에는 주전파의  비분강개하는 선비가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그는 애국시인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서정시인이었다. 인생과 자연을 놓고 미세한 현상에  눈길을 돌려 섬세한 붓으로 그려내는 송시의 특징은 그의 시에서도 증명된다.  다만 청년 시절의 불운했던 혼인 관계, 국가의 굴욕적인 상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이 그를 격앙으로 치닫게 한 듯하다.     한중에서 묵으며   구름 위 잔도로, 병풍같은 산으로, 달포나 여행했더니,   말굽이 이제 한중을 밟는 것이 기쁘구나.   진옹으로 이어진 땅, 내와 언덕도 훌륭하다.   형양으로 내리는 물, 낮과 밤으로 흘러간다.   오랑캐 잔당은 비실비실, 별 수 없건만--   외로운 신하만 말똥말똥, 잠 못 이룬다.   좋은 기회가 훗날의 희한될까 두려운데,   대산관 끝에는 또 하나의 가을.     검문의 가랑비   옷에는 길 먼지 또 술 자국.   하염없는 나그네, 이르는 곳마다 넋을 잃는다.   이 몸에는 시인이 합당한 것인가?   가랑비 속에 나귀 타고 검문으로 들어간다.     원호문     기양   1   기병돌격대의 연이은 지영, 새도 날지 못한다.   북풍은 휘익휘익, 눈이 오실 듯 찌푸린 날씨.   삼진의 요새는 예나 이제나 한결같거늘,   천리의 소문이 옳은지 그른지 말해다오.   날뛰는 고래 무리에 인해가 말라버렸고,   게다가 뱀과 개에게 철산이 에워싸였다.   막다른 길에서 원서망은 뾰족한 수가 없구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양, 눈물이 옷에 가득하다.   2   백이 지세에 풀이 퍼지지 못한다.   십년 전쟁에 진나라 서울 어둡다.   서쪽으로 바라보는 기양, 소식이 없는데--   동쪽으로 흘러가는 롱수, 곡성이 들린다.    들의 덩굴은 정이 있어서 흰 뼈를 휘감지만,   지는 햇살은 무슨 뜻으로 빈 성을 비추는가?   누굴 따라 자세히 푸른 하늘에 물어 보겠는가?   어이하여 치우 놈에게 다섯 가지 병기를 주셨냐고!   3   아홉 마리 호랑이가 눈을 뜨고 지키는 진나라가   비겁한 초나라와 제나라처럼 밥상의 고기가 되었다.   우공의 토지 등급에 육해로 꼽혔거늘!   한 대의 영토 분계는 천산에 닿았거늘!   북풍은 펄럭펄럭, 날라리 소리가 슬프다.   위수는 썰렁썰렁, 전사자의 뼈가 시리다.   서른 여섯 봉우리는 장검처럼 버텼는데,   신선의 손바닥은 안타깝게도 한가롭기만 하구나.   *원호문(1190__1257)은 난세의 시인이었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몽고의 폭풍이 중국을 덮칠 때 중국 문화의 정통으로 자처했던 그는 이  비극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원호문은 순수한 한인은 아니었다. 그의 먼 조상은 탁발씨였다. 탁발씨는  만주 선비족의 한 부족으로서 남북조 시대에 북위 나라를 세웠는데,  한화정책에 따라 원씨로 성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섬긴 왕조는 같은  만주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였다. 그러나 그가 받고, 잇고, 물린 문화는  한민족의 문화였다. 그는 이 정통문화의 계승자로서 금나라를 봤기에 다른  이민족인 몽고에게 멸망당하는 금나라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는 애국시를 지은  것이다.      외가남사   빽빽이 우거진 예덕과 오동에 저녁 연기 흔들리니,   마당에 가득한 바람과 이슬로 가을 벌써 느끼겠다.   눈에 익은 언덕이 골짜기로 바뀌었구나.   시름 속의 석양에 매미가 기승스럽구나.   고향 떠난 양반도 돌아온 오늘이 있는가?   전처럼 절간 창앞의 평상을 빌어 잠든다.     고계     청구자가   *강가에 청구가 있다. 나는 그 남쪽으로 이사하고, 그 이름을 따서 스스로  청구자, 즉 '청구선생'이라고 호를 지었다. 한가한 생활이라 할 일도 없어,  종일토록 고심하면서 시가를 읊조렸다. 그 사이에 지은 것이 '청구자가'.  시가에 비쳤다는 비웃음을 풀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청구 선생은    깨끗한 모습,   본래는 오운각 아래의 신선이었다.   어느 해에 인간세상에 귀양왔을까?   타인에게는 성명도 알리지 않는다.   짚신은 신지만 여행하기 싫어하고    호미는 메지만 밭갈이에 게으르다.   장검이 있지만 마구 녹슬고,   도서가 있지만 마구 뒹군다.   오두미 벌기 위해 허리 굽히려 아니하고,   칠십썽 따기 위해 혀를 놀리려 아니한다.   다만 시구 찾는 것만 좋아하여,   스스로 읊조리고 스스로 화답한다.   새끼로 허리 매고 밭둑 사이에서 지팽이 끄니,   이웃 사람은 알지 못하고 비웃기만 한다.   노나라의 곧은 선비구나,    초나라의 미친 양반이지, 지껄이는 소리.   청구 선생은 듣고도 개의치 않는다.   읊조리는 소리 입 밖으로 끊임없이 '으어으어'.   아침에 읊조리면 주림이 잊혀지고,   저녁에 읊조리면 불평이 가셔진다.   그가 고심하면서 읊조릴 때에는    건들건들 술에 만취한 듯--   머리칼 빗을 틈도 없고,   집안일 돌볼 새도 없고.   아이가 울어도 가여운 줄 모르고,   손님이 찾아도 맞이할 줄 모르고.   안회의 가난을 근심치 아니하고,   의돈의 풍족을 바라지 아니하고,   화려한 갓끈을 탐내지 아니하고.   청룡과 백호가 고전하여도 참견치 아니하고,   햇님과 달님이 줄달음쳐도 아랑곳 아니하고.   물가에 혼자 앉으며   숲속을 혼자 거닐며,   원기를 끊어 가지니   원정을 찾아 가지니,   자연의 만물은 비밀을 숨기지 못한다.   우주의 궁극까지 마음의 칼을 날리니,   그대로 그 무형의 정신을 음성으로 바꾼다.   미세함은 매어단 이를 가를 듯,   웅장함은 바다 고래를 잡을 듯,   청정함은 신선 이슬을 마신 듯,    험준함은 가파른 산을 밀친 듯.   번쩍번쩍 맑은 하늘에 구름이 열리고,   부쩍부쩍 일었던 땅에서 풀이 솟는다.   하늘의 뿌리에 높이 오르고 달의 동굴을 더듬는다.   서각의 햇불로 우저를 비추니 온갖 괴물이 나타난다.   멋진 서정은 갑자기 귀신과 만나고,   고운 서경은 언제나 강산과 다툰다.   별과 무지개는 빛다발을 보태고,   연기와 안개는 꽃다움을 키운다.   소악에 어울리는 그 음향,   대갱에 견줄만한 그 묘미.   인간 세상에 나의 즐거움 따로 없다.   스스로 쇠북과 경쇠 되어 울리고 싶을 뿐!   강변 초가집에 비바람이 개일 때,   문을 닫고 실컷 자니 시가 처음 이뤄진다.   타구를 두드리며 소리 높이 노래한다,   속인의 귀가 놀랄까 돌보지도 아니하고.   군산노부를 불러 신선들이 가지고 놀던 기다란 피리를 들고 오라고 하여   내 이 노래에 맞춰 맑은 달밤에 불게 하고싶지만,   두렵구나, 삽시간에 물결이 일어나   날짐승, 길짐승이 놀라고 산이 무너질 것이.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노하사   하얀 두루미를 마중보내시리.   지상세계에서 못된 장난 치지 못하도록,   다시금 비패를 채워 백옥경으로 소환시키리.   *고계(1366__1374)는 원나라 말기의 난세에 태어난 시인이다. 그의  시국관은, 소위 태평성대는 너무 짜여진 질서 때문에 천재가 활약 못하고  난세에서만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큰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기는 난세에 태어났지만 그러한 기량이 없어 시만 쓴다고 했다. 그는  난세에 오히려 자유로웠던 시인이라고 하겠다.     오위업     원원곡1)   정호에서 천자님이 인간세상을 버리신 그 날2)   적을 무찌르고 서울을 수복하려 옥관을 떠났다.3)   통곡하는 6군은 모두들 상복을 입었는데,   끓어오르는 분노는 오로지 미인 때문이었다.4)   미인의 기구한 팔자는 나의 관심이 아니다.   역적은 천벌을 받아 싸지, 스스로 술독에 빠졌다.5)   번개처럼 쓸었다 황건적을, 눌렀다 흑산적을.6)   천자와 부모 영전에 곡하고 미인을 다시 만났다.7)   만난 것은, 생각하면, 처음 전두의 집--8)   귀족의 저택에 노래와 춤이 꽃처럼 피었었지.   척리에서 공후를 키는 몸에도 허락되었었지,9)   장군이 맞아주는 수레를 기다릴 기회가.   고향은 본래 고소성의 완화리--   원원이는 아명, 비단 옷이 예뻤다.   오나라 왕 부차의 동산에서 놀던 꿈,   궁녀의 부축으로 들어가면 왕도 일어나셨고,   전생에는 연밥을 따언 서시임에 틀림이 없다.   문 앞에는 온통 횡당의 물10)   횡당에서 한 쌍의 노를 나는 듯이 저어,   어느 곳 호족에게 억지로 끌려갔나?   이 경우에 어찌 박명치 않으리라고 알았으리.   이 시간엔 다만 눈물이 옷자락을 적시었으리.   하늘을 채울 기세로 궁정까지 들어갔건만    밝은 눈동자 하얀 이, 반기는 사람없었다.   후궁에서 빼어다가 좋은 집에 숨기고   새 노래 가르치니, 손님들은 탄복했다.   손님들이 잔을 돌리는 사이에 붉은 해 저무는데,   한 곡조 애달픈 연, 누굴 향해 호소하나?   허여멀쑥한 귀족, 가장 젊은 양반이   이 꽃가지 꺾으려고 고개 자주 돌렸다.   한시바삐 팔팔한 새를 조롱에서 꺼내자.   은하수에서 기다린다면 어느 때 건너가랴?   원통하구나. 출전명령이 죽어라고 재촉이니.   괴로게 남긴 약속이 사람을 그르쳤다.    약속한 정은 깊었건만 만나기는 어려웠다.   하루 아침에 장안을 메운 역적의 무리.   가련하다, 시름겨운 여인이여, 다락 끝 버드나무에서   하늘 가로 흩날리는 버들가지의 운명을 느꼈다.   두루두루 록주를 찾아 안채를 에워쌌고,11)   억지로 강수를 불러 난간에서 끌어냈다.12)   만약 장사가 온전한 병력으로 승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인을 말에 태워 돌아오게 했으랴?   가인이 말 타고 온다는 전갈이 차례로 전달되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졌지만 놀란 넋은 진정되었다.   촛불을 켜고 맞이한 곳은 전쟁터,   눈물로 화장이 지워져 얼룩진 얼굴.   피리 불며 북 치며 진천으로 쳐들어 갔으니,   금우도 위에는 천 대나 되는 병거.   야곡 구름 깊은 곳에다 누각을 지었고,   산관 달 기우는 곳에서 경대를 열었다.   전해온 소식이 수향에 퍼졌다.   오구목 빨간 단풍이 서리 맞기 열 번.   노래 가르친 선생은 무사함을 어여삐 여겼다.   비단 빨던 여자들은 옛동무를 무척 그리워하였다.   옛날엔 같은 둥지에서 진흙을 머금던 제비,   이제는 높은 가지에 날아올라 봉황새가 되었구나.   술잔을 앞에 놓고 늙음을 슬퍼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 사위는 제후가 되어 거드럭거리는구나.   그 당시에는 오로지 명성도 귀찮았다.   귀인, 외척, 명사, 호족이 다투어 불렀으니.   '구슬 한 섬'에 시름은 만 섬,   국경의 산을 떠도느라 수척해진 몸.   미친 바람이 낙화를 날린다고 애꿎은 원망--   문득 가없는 봄빛이 하늘과 땅에 찾아왔다.   일찍이 듣거니와, 절세미인이 있었기에   오히려 주랑은 명망을 얻었다고.13)   아내가 어찌 천하대사에 상관 있으랴!   영웅이 너무 다정다감한 것이 아니랴!   온 집안의 허연 뼈는 황토가 되었다.   한 시대의 붉은 꽃은 청사에 빛나리.   그대는 보지 못했나, 관와궁이 처음 낙성될 때 원앙새가 잠들었음을?14)   월나라 아가씨는 꽃처럼 봐도봐도 싫증이 안 난다.15)   향초를 따는 오솔길에 먼지 일고 새가 지저귄다.   음향 나막신의 회랑에 사람 죽고 이끼가 푸르다.   우조 노래 궁조 가락은 만리의 수심.   구슬의 가곡 비취의 무용은 옛날의 양주.   그대 위에 달리 부르리, 오나라 궁전의 악곡을.   한수는 낮밤 없이 동남으로 흐른다.   역주 1)명나라 장군 오삼계가 그의 애첩 진원원 때문에 조국을 팔아넘긴  것을 풍자한 시.   2)명나라 의종이 매산에서 자살한 것을 가리킴.   3)옥관...감숙성 돈황현 서쪽에 있는 관문, 일명 옥문관. 이 구절은 오삼계가  청나라 군사와 대치하고 있던 산해관을 떠나 이자성을 치러 북경으로 회군한  것을 가리킴.   4)미인...진원원을 말함. 통곡하는 이하의 이 두 구절은 그 풍자가 너무나  통렬하여, 오삼계는 황금을 시인에게 보내어 삭제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함.   5)역적...이자성을 가리킴.   6)황건적은 후환 말엽에 장각을 괴수로 하여 수십만의 세력을 가졌던 비적.  흑산적 역시 후한 말염의 비적. 여기서는 이자성을 가리킴.   7)부모...이자성이 북경을 함락시켰을 때, 오삼계의 아비도 포박, 뒤에  살해되었음.   8)전두...전한의 무안후 전분과 위기후 두영으로 여기서는 황후 주씨의  아버지를 가리킴.   9)척리...한나라 때 황제의 친척이 살았던 동리, 장안에 있었음.   10)횡당...저수지 이름. 소주 서남쪽에 있음.   11)녹주...미녀의 이름. 진나라 석숭의 애첩으로, 요염하고 피리를 잘  불었음.   12)강수...미녀의 이름. 위나라 문제의 한 편지에 '지금 춤을 잘 추는  사람으로는 강수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며'라는 구절이 있음.   13)주랑...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주유를 가리킴.   14)관와궁...오나라 왕 부차가 서시를 위해 세운 궁전 이름.   15)'월나라 아가씨'...원나라 왕 구천이 부차에게 진상한 여자, 즉 서시.   *오위엄(1609__1671)은 망국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 천 여수는 모두  멸망한 명나라를 조상하는 사시다. 그는 소주부근 태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물 세 살에 진사가 되었으며 벼슬은 동궁강독관, 국자감사업(국립대학교  부총장)까지 되었다. 그의 나이 서른 여섯 살에 명나라가 망하자 그는  고향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청나라가 들어서고 나서, 오위업은 망국의 슬픔을 시에 침잠시키며  북고조의 많은 장편시를 썼다. 그는 10년 동안 절개를 지키다가 1653년 그의  나이 마흔 다섯 살 때 청나라 조정의 강압에 굴복,  국자감제주(국립대학교총장)에 취임했다. 2년이 채 못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훼절은 그로 하여금 평생토록 회한에 빠지게 했다. 그뒤로는 소주의  등위산에 있는 매화나무 숲에서 은거하다가, 예순 세 살의 나이로 죽었다.  유언에서 그는 다만 '시인 오매촌의 무덤'이라는 묘비를 세워달라고 했다.     황준헌     감회   세상의 학자들 시서를 암송하며,   언제나 자기들 재주를 자만한다.   고개 젖히고 상고시대 역사를 설명하고,   손바닥치며 천하국가 정치를 해설한다.   처음에는 삼대의 훌륭함을 얘기하고,   나중에는 백세의 기다림을 얘기한다.   중간에는 오늘의 어지러움을 얘기하면서,   눈물 콧물 흘리며 통곡하는 것이다.   차전법의 도변을 모사하노라   못이 박힌다, 백 장이 넘으니.   정전법의 지도를 입수하고선   땅에 그린다, 한 번 해보려고.   고인이 어찌 우리를 속이랴?   예와 이제와의 형세가 다른데 어쩌랴?   학자님들아 문밖을 나서지 않았거든,   당세의 일을 논하지 말라.   시대를 파악하려면 현재를 알아야 하고,   진실에 통달하려면 세태를 겪어야 한다.   위대하여라, 천고의 현인들이여.   그들만이 시대병을 고칠 수 있었다.   가의의 정치사회 안정책이여.   강통의 외래민족 추방론이여.   *황준헌(1818__1905)은 청나라 말엽의 대시인일 뿐 아니라. 중국 고전시  최후의 위대한 시인이다. 일찍이 서양을 둘러본 그는 반봉건, 반식민지,  후진국의 상태에 있는 조국을 부흥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했고,  시로서도 강렬한 우국의 충정을 노래했다.     유대백     원   나의 금강석 마음으로    백 알하고도 여덟 알 염주를 만들고   거기다가 가냘픈 순금의 정실을 꿰어   당신의 하얀 목에 걸겠습니다.   당신의 불타는 가슴에 드리울 때   당신은 당신의 오른 손으로 어루만질 것입니다.   당신이 가다가   나를 사랑한다고 싶을 땐   염주를 만지세요.   하루종일 중얼거리세요.   하루종일 헤아리세요.   그럴 때 당신은 어느덧   내 초조로운 가슴 속에 자라날 것입니다.   *유대백(18801934)은 질강성 태생으로 호는 백옥이다. 원세계에 반대하여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상해에 돌아와 교수생활을 하며 시를 썼다. 그 자신은  전통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신시 운동에 준 영향은 매우 크다.     호적     한 번 웃음   한 십여년 전   그가 나를 향해 한 번 웃었다.   나는 그때 무언지 모르고   다만 그의 웃음을 얄밉게만 여겼었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오직 그의 웃음만 남아 있을 뿐...   그를 잊으랴 잊을 수 없을 뿐더러   오래면 오랠수록 더욱 그립네...   그로 더불어 많은 정시 지어졌고   그로 더불어 여러 환경 그려보았다.   어떤 이는 읽은 후 상심하고   어떤 이는 읽은 후 기뻐하였다.   기쁨이랑 상심이랑   기실은 오로지 한 번의 웃음뿐.   웃은 그 사람 다신 영영 못볼지 모르나   그 웃음은 하 어여뻣기 심히 고마울 뿐.   *호적(1891__1962)은 안휘성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코넬과  컬럼비아대학에서 유학하여 듀이에게 실용주의를 배웠다. 문학혁명의 추진자  중 하나였으며 귀국 후 북경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이 운동을 추진했다.  주로 중국의 고전을 정리하는데 치중하여 전통 사상에 대한 평가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전후 북경 대학장을 거쳐 중공수립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대만으로 귀국하여 사망했다.     안사이 히도시     꽃과 마음   서글픈 밤의   어느 거리의 모퉁이에서   사랑의 빛깔에 물들며   꽃집에는 꽃송이가 가득히   화려한 이야기처럼   슬기로운   가슴을 앓으며 꽃을 찾는   그 꽃을 웃음 지으며   님에게 바치면   더욱 보람된 일   그러나 그보다도   드리고픈 꽃을 찾지 아니하고   애정을 버리고   꽃을 보고만 있는 것은   한결 거룩하여라.   꽃집에서는 나의 이 말도   가지각색이러라   번화한 꽃송이처럼   밤거리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나의 마음은 외로워지네.   슬픔 속에서    무엇이든 보고만 있는   마음뿐이런가.   *으레 꽃 하면 남에게 바치려고 하며 또한 그러기 위해서 가지를 꺾어  버리곤 한다. 어찌보면 잔인한 일이다. 이 시인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꽃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꺾어진 꽃을 주려고 하지만 그보다는 드리고 싶은  그 꽃을 바라보고만 있는 그 마음속에서 한결 그윽한 애정을 찾으려 한다.     미요시 도요이찌로오     애정   어스름 달밤에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대 머리의 흑진주빛 환상을   가냘픔과 황홀한   맑고 순결한   순교자의 고민과 사랑을   질투와 적개심과   욕정의 가면의 무리에서   나는 너를 찾아내었다.   KINU여   화려한 저택도 빛나는 황금도   지도는 물론 훌륭한 의상도 없다.   나는   순수한 사랑밖에 가진 것이 없네.   허나 나는 뽐내어 보노라   메말라 흩날리는 사막을   독초마저 자라지 않는   붉게 타는 꿈길만이   묵묵히 바치는 마음만이   학대에 줄인 사나이나   사랑을 잃어버린 배우들의   서글픈 흐느낌의 저 바다 속에   나는 천년의 빛을 보았다.   불가사의한 태초의 빛을   그리고 너는 반사한다.   환희와 고통을   희망과 낙담이   고요히 잠든 이름 모를 항구를   넋을 달래주는 여인의 가슴   아득한 바다의 키스를   어두운 도회의 빌딩 사이에 번지네.   그대의 신비스런 눈동자 속에   그대의 내의보다 더 가까이   그대에게 있으리   KINU이여   꽃송이 속에 빠져서 하염없는 나비여   창백한 나의 이마에   서글픈 권력을 바다에 빠지는 태양 속에서   나는 사랑하리   가냘프게 오들오들 떨면서   사랑과 숙명의 비애를   술속에 담그어 견디어가네.   *현대는 불안하다 하면서 방황하고 무엇인가 한줄기 희망을 가져 보려고  발버둥치는 순교자와 같은 젊은 시인들의 몸부림을 이 시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 데카당에 가까운 분노도 있고 술속에 파묻히는 허무함도 있으나 한줄기  비젼을 가져보려고 고민하는 시정신을 사랑의 이름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루야마 가오루     가버린 님   누워 앓던 그이는 살며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네.   아무말도 없이   가느다란 가지끝마저   흔들리지도 않네.   가신 님을 보내고 돌아와 보는   서글픔에 겨워서   그림자만이 맴도네.   머리 빗   비녀   리본   의상, 향불로 태우니   한 송이 꽃이 호올로   두근거리고만 있네.   바람이 불어와   앉았다   섰다가   나가 버리네.   햇볕이 드리우고   몸을 구부리며   부서지듯 꺾이운 채   사라져가네.   나를 사랑하듯이   나에게 사랑을 받듯이   *연기처럼 죽어가 버린 애인을 연상하면서도 현재의 서글픈 심정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듯이 나에게 사랑을 받듯이 사라져  간다고 표현한 마지막 싯구는 일품중에 일품이다.     오까자끼 세이이찌로오     벚꽃   벚꽃이 피었네.   벚꽃은 아름다워.   나의 꽃은 여인처럼.   허나 벚꽃은 과자처럼 먹을 수는 없어요.   여기에 벚꽃의 서글픈 사연이 있습니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 옛부터 내려오는   얼마나 서글픈 논리인가요.   오늘 나는 아침부터 아니 한시간쯤   뻔질나게 만발한 벚꽃나무 밑을 헤매어    다녔습니다.   바람이 불면 펄펄 떨어지는 꽃잎   바람이 불면 꽃잎이 하늘거렸습니다.   보리밭이 크게 물결치며 흔들리고   피곤한 나는 주저앉은 채   거리의 굴뚝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바라보며   나와 함께 거리서 일하고 있는   그리운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마음속 깊이 그녀를 귀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의 영원히 맺을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지으며 벚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연인과 같은 아름다운 벚꽃을   밥이 될 수 없는 이 꽃을   나의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어준 슬기로운 이 꿈을.   *벚꽃의 가냘픈 모습을 통하여 사랑의 슬픈 숙명을 노래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어딘지 가난한 삶의 어두운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감상적이면서도 생활시 같은 독특한 정서를 물씬 풍겨 주기도 한다.     다까무라 고우따로오     알몸과 심장   헤아릴 수 없는   육체의 정욕   밀물처럼 무서운 힘.   아직도 타오르는 불꽃   화룡은 심장처럼 뛰네.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   깊은 밤에   사랑의 축연을 벌려   적막한 하늘의   환희를 외치네.   우리는   이상한 힘에 눌리어   끝없는 꿈속에 잠기네   속삭이는 장미빛 탄식은   별빛에 반사되어   우리들의 생명을   무한히 창조해 내고 있네.   겨울에 잠기는   요람의 마도   겨울에 싹트는   땅 속 깊은 속에서 움터오는   모든 것이 타오르는 것은   사랑의 맥박과 더불어 뛰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황홀한 전류를 울리네.   우리들의 살결은   눈부신 생기   우리들의 심장은   사랑의 기쁨에 몸부림치며   우리들의 머리칼은   형광등처럼 빛나고   우리들의 손가락은   화려한 생명을 얻어   온몸을 더듬어 오르네.   희열에 떠는   아름다운사랑은   갑자기   우리들의 머리 위에   그 모습을 비치네.   빛에 싸이고   행복에 싸이고   모든 차별도 없어져   독초와 감초는 똑 같은 맛   참을 수 없는 아픔에 몸을 비틀며   극심한 법열은   이상한 미로를 비추어 주네.   우리는 눈 속에   따뜻하게 싸여서   천연의 사랑 속에 녹히어   끝없는 지상의 사랑을 탐내며   아득히   우리들의 생명을 찬양하네.   *이 시는 사랑의 아픔다움에 도취되는 탐미주의와는 달리 사랑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적인 낭만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사랑을 하나의 인격으로 승화시켜 고고하리만큼 특히 '휴머니티'를  사랑 속에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네   누가 기다리고 있네   나를 기다리고 있네, 나를   누군지 모르나 기다리고 있네   어디선지   비에 함빡 젖은 채, 나를   끝없는 비소리도 조급하련만   정말 누구일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말   아니   창백한 비속에서   가냘프게 떨며   한숨을 내쉬는 숲속에서   어두운 풀잎 사이에서   훌쩍 훌쩍 울면서   비에 함빡 젖은 채   내 이름을 부르고 있네.   젊은 여인이   눈이 커다란 여인이   산발이 된 머리를 부여안고   부르고 있네. 나를   아아, 가겠노라 가겠노라   설령 책망을 당하더라도   내가 갈 때까지 참아다오   미스테리아스의 남미의 꽃   그로키시니아의 꽃잎 저 안 속에서   엷은 보라빛 의상의 분장실에서   그래 그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며   저녁의 레스토랑에서   무서운 주인 마담의 눈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네, 마드모아젤이   기다리고 있네, 나를   그러나 이렇게 비가 내리면   먹구름이 광무를 추네   멀고 더 머언   혹은 이 세상이 아닌 더 먼 곳에서   기다리고 있네   기다리고 있네.   비는 내리고   창백한 비는 내리고   그런데 누군가 기다리고 있네   나를 기다리고 있네, 나를   누군지 모르나 기다리고 있네   어디선가   비에 함빡 젖은 채   나를     노무라 히데오     기도   하느님 혹시 제가   고요한 그림자와 밝은 노래   두 개를 모두 알고 있고   정다운 소녀를   사랑해 버린다면   나는 정말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정다운 소녀가 고요한 눈동자로   나를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사랑을 받고 있는 듯 생각합니다.   그런데 금잔디 위에서   그 소녀가 밝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나는 날지 못하는 나비처럼   미소지은 소녀의 눈동자에서   버림을 받은 느낌입니다.   내가 그렇게 정다운 소녀나 동생들과   식탁을 에워싸고 있을 때   단 하나의 조그마한 행복은   나의 마음 속에 안겨집니다.   하느님 만약 나의 나날이   어떠한 차거운 눈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내가 그저 홀로   고요히 지나게 되고   소녀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나의 슬픔과 정다움 때문에   싸여 있도록   *희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불안에서 오듯이 이 시인도 소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몹시 불안한데서 출발되고 있다. 소녀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버림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연약한 인테리의 가냘픈  사랑의 고백 같은 푸념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유가와 노부오     깊은 밤에   저녁노을이 어느 먼 곳에서   타버리고 있었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어둠이   당신의 육체처럼   나의 품안으로 쓰러져 오네.   불을 꺼 주세요 당신은 말하였네.   나는 당신의 입술을 누르며   그 손의 검은 빛깔에 움찔해지네.   서글픔이 고문하듯이   깊어져 가는데   심장이 쿵쿵 울리네.   세계의 깊은 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아래서   당신은 지그시 눈썹을 아물며   죽은 척하고 있네.   나는 한발로 스립퍼를 끌고서   잠시 방안을 산보하네.   '불을 켜주세요'하고 당신은 말하였네.   나는 모르네   나는 그저 어두컴컴한 속에서   앉아 있을 뿐   내가 샛별이라면   내가 순교자의 맑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면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없듯이   당신은 나를 믿지 않네.   묵묵하게 있으니   더러움을 타지 않는 미소가   가슴 깊이에서 차차   볼 위로 상기되는 것을 느껴지네.   *이 시인은 여인의 육체 하나에서도 밤의 섭리를 찾고 인간의 성실한  깊이를 찾으려는 데서 불안을 극복하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까모도 료오     연인   종달새가 풀숲의 조그마한 집에   다사롭게 잠이 드노라면   시골 밤의 밭 이랑에는   나만 홀로   오늘밤도 나만 홀로   커다란 숨을 내 쉬며   서 있네.   먹빛 하늘과 어두운 언덕은   점점 가까이 다가서서   곤히 잠이 들었네.   어두운 언덕 위에는   하얀 우유빛 오솔길이   커다란 유방의 곡선처럼   그 높은 곳에   까만 점이 하나   그것이 사랑하는 여인의   모든 것을 차지하였네.   한낮에도 어두운   아늑한 숲속에서   숲속에는   아스무레 빛나는 것이 있네.   그것은 어둠 속의 자작나무라네.   언덕 위를 날으는   작은 새들이   어젯밤   이 자작나무에 부딪쳐   사랑의 상처를 입었다네.   연인은 사랑하는 새들   가슴에 안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쓰다듬어 주었다네.   *님이 오시지 않는 어두운 밤에 기다리다 지쳐서 오솔길이 우유빛처럼  보이고 그것에 잇달아 유방이 그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환상적인  시새움을 느끼는 이 시인의 연애관은 아주 섬세하면서 예민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또오 세이     사과밭의 6월   사과밭은 눈처럼 하아얀   사과꽃이 만발한   6월.   인기척이 없는 곳에   한가한 거미가 줄을 치고.   연꽃이 무성한 감제풀에 무릎을 묻는다.   나는 이처럼 날씬하게 길어져서   신기한 육체와   뜨거운 정감의 사나이가 되어,   지난 봄에는 어쩐지   저 볼처럼 꽃만 보아도 눈물 지우네.   아아 열네살의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윤기 빛나는 열여덟살의 처녀는   밤사이 눈물로 부풀은 눈동자를   차갑도록 바라보면서   사과밭을 하직했다네.   새벽녘에   아아 호올로.   희미하고 하얀 꽃이 하늘을 덮고   안개도 짙은 6월의 낮이 깊어지면,   나는 불현듯 이 보라빛 육체가 지겨워   사과밭을 찾아와 탄식하며 고민을 하네.   아아 잡을 수 없어 그대로 가버렸네   나의 말을 이제는 느끼지 못하는 그 모습.   너무나 너무나 가까이 못하던 눈동자에.   이 꽃이 떨어지면   이제는 꿈처럼 사라져간 6월은 흘러가고,   그리고 앞으로 나날은   그저 미친 듯이 나를 에워싸고   녹음으로 녹음으로 계절은 깊어만 갈 뿐.   *5월을 노래하는 시인은 많았어도 6월의 시정을 표현한 시는 별로 없었다.  이 시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중간계절을 하얀 사과꽃의 아름다움처럼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인의 고독과 허무와 그리고 방황하는 정신적인 행로가 애절하게  표현되어 시적인 냄새를 풍겨주고 있다.     나가세 기요꼬     속삭여요 살며시   속삭여요 부드러운 말로   기쁘게 해주어요 따사로운 소리로.   아무것도 모르는 이 마음을   받아 주어요.   아아 님에게는 누구보다도   네가 있다는 것을   스스러운 미소로   속삭여 주어요.   그러면 나는   우쭐대며 거만할 줄 아세요?   아니예요 저는   부드러운 넝쿨 풀잎처럼   그것을 감싸쥐고   그 힘으로 일어서겠어요.   좀더 좀더 부드럽게 해주어요.   좀더 좀더 아름답게   다소곳한 소녀가 되겠어요.   아아 저는   너무도 거칠은 황무지에서 태어났어요.   굶주린 마음에   하나만이라도 갖고픈 것은   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기쁨이에요.   아침 이슬이나   하늬바람 정도라도   님이 그것을 알아주시온다면   저의 눈동자는   싱싱한 젊음을 보일거예요.   너무도 기뻐서 눈물 가득히   동공을 적시며 있겠어요.   눈가림한 초랭이를 이끌 듯이   아아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사랑의 길로 이끌어 주세요.   *아침 이슬이나 하늬바람 정도라도 님이 그것을 알아준다면 하고 외롭고  희미한 바래움이지만 여기에 소녀의 절실한 정감을 한결 더하게 하고 있는데  끝까지 호소하는 그 자태가 가냘프면서도 아름답기만 하다.     사사자와 요시아끼     국화   님의 품안에서   천년의 여운을 간직하고   조용히 피어 있네.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   근엄한 향기를 풍기네   또다시 피어어린   정적 속에 서 있는 고귀한   청초한 자태   운도 부드럽게 밖으로 흐르네.   기도하듯이 바라보는 소년의 손에   고요한 시간이   고귀하게 물들어 흘러넘치네.   천년 간직한    사랑의 향기   *현실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국화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 시인은 이  국화 속에서 자아를 찾으며 그것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지없이 조용한  자세와 더할나위 없는 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조용한 것과 성실한  정신이 국화를 통해서 사랑으로 승화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마 히로시     그대의 눈물   그대여   사랑의 괴로움에   처참해진 마음에도   아직은 남아 있겠지.   그대의 굳게 닫혀진 마음속 깊은   따사로운 심장을 열어   바람에 날리워라.   그대의 눈물이 있는   그 언저리에   바람을 날리워라   사라져간 봄날의 풍경 속에   슬픈 빛깔을 씻어주는   바람을 날리워라.   그대의 뜨거운   눈썹 사이에는   뜨거운 눈물   고요히   흐려지는 그 모습   상수리나무, 밤의 잎새만 살아   괴로움만 살아   줄지은 잔나무에   새로운 움은 피어나고   아픈 마음이 녹색으로 물드네.   아아,    그대의 눈동자 속에   사랑의 빛깔을   그대의 마음 그 깊은 속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정염으로 적시네.   그대의 눈동자   사랑과 사랑 사이에 움튼   나뭇가지에 하늘이 비치고   사랑의 넋의 영원한 신비를 속삭여 주고 있네.   수많은 탄식   시간은 흘러서   아픔을 넘고   녹색 언덕의 푸름을 넘고   지금은 잠시   그대의 맑은 눈동자를 더듬네.   떨어진 눈물방울   무엇으로 담아둘 것인가.   눈물을 간직하려는   사랑의 원색   아아, 울음을 위한 싸움   그대의 넋은 거기서 움트고   사랑에 떨며 고통을 받는   이 어진 풍경   수많은 눈물들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네.   새로운 사랑을 노래하는   새로운 정황이   청순한 마음의 문턱에서   고민의 씨앗을 헤이고 있네.   그리고   애인들의 넋이 울음으로 변하여   아득히 사라져간   이별의 풍경 속에서   그대가 울고 있는   사랑의 새싹을 밟고   나 홀로 걸어가네.   *이 시인은 전후파 시인으로서 '모더니즘'의 선구를 걷고 있지만 불안과  회의와 반항 속에서도 '앙드레, 지이드' 같은 순박한 '휴머니티'를 간절히 찾고  있다.     후지시마 우다이     석양의 소녀   님의 그림자도 없네   검은 모래    모래 언덕의 바닷가   아득한 석양의 훈풍에   휘날리며   사랑의 노래 부르며   해변을 따라 걸어오고 있네.   아리따운 소녀의 자태   그 노래소리는   검은 모래로    저녁노을의 파도    사라졌다가 다시 들리네.   바람 속에 휘말렸다가   다시 들리네   황혼이 비치는 구름 속에   피어 번지네.   그 소리를    그 노래를    그 누가 듣는가   황량한    이 해변   나는 새도 없고   한 척의 배도 없네.   그저    저녁 노을이 비치는    검은 모래로   울려퍼지는 파도   또 파도   아득히 보이는 해안선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어두운 해심에   땅거미가 내리네.   저녁노을이 내리는 바다   밀물 따라 부는 바람    소금냄새도 그득히   휘날리는   그 검은 머리에   보라빛으로 물들인   점점이 보이는 뭍   노랑 나비가 춤을 추네.   어둠 속에 거세어진 파도   불꽃처럼 부서지며   소용돌이 치네   휘몰아치는 물보라는 사랑의 화분처럼   울려 퍼지는 바람 속에   눈처럼 휘날리며   불의 바다와   해맑은 서녘 하늘    저물어 가는 석양으로   퍼졌다가 몰리는    은빛 안개   진홍빛에 그을려   죽음처럼 엎드려   다가오는   검은 산맥의 그림자   오! 님의 그림자이려나   머언 수평선의   남빛 저 건너에서   죽음처럼 살며시   빛을 빨아들이네.   악마의 무리처럼   난잡하게 타오르며   엷은 연지빛 날개를 펴고   부둥켜 안고 뒹구는   구름의 모습   속삭임도 없이    몽롱하게 무너져   드디어    온 하늘로 퍼져나가네.   바람   바람    바람이 휘몰아 오는 저녁노을에   그 빛난 눈동자   지금 해변을 거닐고 있네.   그 눈동자는   그 소리는   맑게 개인   가을의 하늘   그 가을 하늘에서    들리는 듯   그 소리를    그 노래를   누가 듣는가.   바람의 바다   님은 오시지 않네   바람아 불어라   바다야 울려 퍼져라   그 눈동자   나의 가슴에    영원토록    불어 주어라.   꽃피는 꿈일랑   사랑의 환각일랑   사라짐이 없는 행복을   무너지면, 미끄러지는    그 발 끝을 적시는 파도   그 맨발에   와 닿는 파도   모래를 밟고   멀어져 가는   발걸음이 하얗게 빛나네.   드디어 바람은 더욱 더 거세어지고   노래소리는 사라지네   멀어져 간 그 자태   멀어져 간 저녁노을을 받으며   검은 모래의   모래 언덕의 그늘은   ...시간은 흐르네   물거품 휘몰아대는   잿빛 바람의 저 건너로   태양은 님처럼 사라져 가네.   웬일인지   부서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만   님의 소리   쏟아지듯 날으는   구름의 날개소리   어두운 해심의 저쪽   다가오는 미지의 밀물소리   혈기 창백해진 바다는   점점 모래를 삼켜가네   사랑하는 님은 그림자도 없네.   *이 시는 일종의 풍경시 비슷한 작품인데 소녀의 심상을 자연상에 일치시킨  서정어린 대화는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무라노 시로우     여인의 방   창문이   책갈피처럼   방긋이 열려 있네   여인은 어디 가고   경대 앞에   반짝이는 커다란 머리핀   방구석에는   까만 칠제의 악보대나   이끼가 낀 악궁이   어즈러히 널려 있네.   무언지 방안에서   나를 꾸짖는 듯한   인상으로 가득찬 것이   이 눈에   번득 비치어 오네.   *이 시인은 아주 서정적인 감정과 즉물적인 수법을 일치시킨 일본  '모더니즘'운동의 제일인자격인 시인이다. 무언지 꾸짖는 듯한 인상이 가득한  방안의 분위기는 그의 독특한 '리리시즘'을 나타내고 있다.     다무라 류우이찌     다시 만나면   어디서 만나 뵈었던가는   어디서   어디서 만나 뵈었던가요   죽음과 사이가 좋은 벗들   나의 오랜 벗들이!   이 도시의 한낮에   그림자와 그림자는   잿빛 문깐으로 사라져 버렸네.   우리들의 괴로운 추억도   도시의 커다란 환영 속에   사라져 버렸네.   그대는 추억을 잃어버린    나의 미소   나는   어디서   그대에게 속삭였던 일이 있었네.   '괴로움은 웃음짓고 있네'   나에게는 사화산이 보인다   나에게는 섹시한 도시의 유리창이 보인다   나에게는 태양이 없는 질서가 보인다   나의 손바닥에서    메말라 죽은   농원의 오후   나의 이빨로   산산조각이 난 영원한 여름   나의 젖망울 밑에서 졸고 있는 지구    어두운 부분   어디서 만나 보았던가   나는 열일곱살의 애띤 소년이었다.   나는    도시의 뒤안길을   휘돌아 다녔다.   소나기!   나의 어깨를 두들기는 그림자   '여보 지구는 여전히 그대로 있네!'   *옛일을 더듬으면서 그것이 현실이 아닌 죽고 난 뒤의 회상처럼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며 헤매이는데도 어딘지 가냘프지도 않고 센치멘탈하지도 않은  현대인의 주지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시정이 있다.     에마 아끼고     서글픈 약속   우리들은   정답게    바다 저쪽에   가자고 했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기를 빠져 나가자고    약속하였네.   당신은 언제나   빠리.   나는 상아해안이 좋아   희망봉이 좋아   남미가 좋다고 말했네.   아아   그 약속을!   약속만을 해 놓고서   악마는 우리들을 갈라 놓았네   이제 당신은   돌아오지 않네   돌처럼 차겁게 가로 누워서   이젠 나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네.   *사랑의 약속이 덧없게도 허물어지고 마는 어느 여인의 서글프고 쓸쓸한  심정을 통하여 고독한 심상을 노래하고 있다.     쓰보다 하나꼬     젊은 시절의 추억   그이는    한 올의 머리카락을   달라고 하셨네.   나는 숲 속의 요정처럼   옛날의 공주처럼   어깨와 무릎으로    흘러 내리는   아름다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네.   아낌없이   한 줌의 머리칼을   잘라서 드렸네   그리고   잘라진 곳은    리봉으로 매어 두었네.   나는    어처구니 없는   수줍기만 한   비구니와 같은 소녀   정답고 부드러운   조용한 젊은이   식을 올릴 때까지   손가락을 건드리지 않고   키스도 하지 못했던   겁 많은 우리를    그이는    윤기 빛나는 나의 검은 머리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지 모르네.   지금    나의 그 검은 머리는   아이들에게 말리어   늦가을처럼   그럴 때면   빨간 무늬가 들은    상자를 열고서   한줌의 싱싱한 머리카락을   향긋한 젊음을   실컷 마셔나 보네.   그리고 그이는   조용히   담배연기를    내 뿜고만 계시네.   *옛날 결혼하기 전에 연애하던 시절이 아주 소박하고 순진했던 사랑의  자태를 추억하면서 오늘은 어린이에게 매어 달려 메말라져 가고있는 쓸쓸한  고독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께나까 이꾸     심장처럼 빨갛게   그 소녀는   참새처럼    소리를 내며   골목길을 재롱재롱   걸어오는 버릇이 있네.   그럴 때마다    나의 창문은    재빠르게 감전이 되어   심장처럼 떨리기만 하네.   그 소녀는   매일 아침   내가 이불 속에 누워 있을 때   일하러 나가곤 하네.   그 소녀가   돌아올 때면    그 때가 아침이라네.   밤마다    물을 주는 가을 해당화   그 소녀의 이층의 창가에   가을 해당화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녀의 연정   그 소녀가   스무살이 되어가드시   파릇파릇    자라나는    가을 해당화   아침에,   소녀에게 보내는 길다란 사연   처음으로 써 보는 연애편지를   돌아오면 보겠지.   나의 마음을   보고 나면   얼굴을 붉히겠지.   나의 사랑을    저녁 노을이    땅거미 속에 삼켜지면   찬 바람에 청초해진   꽃송이처럼   빙긋이 웃음 짓고   나를 보겠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나   소녀처럼   빙긋이    웃어나 보자.   오늘밤에   달은 떠오르지 않아도   나의 편지를 가슴에 안고   슬기로운 사연을    외면하지 않겠지.   내일도   소녀는   가을 해당화에 물을 주겠지.   그 언제보다도   오래오래   물을 주겠지   그리고   나를 보겠지   그러면    물먹는 해당화에   일곱가지 빛깔의 둥근 무지개   꿈 속에    선녀인 듯   나를 보겠지   그 소녀가   넘치도록 물을 주길래   가을 해당화는   덧없이 꽃을 만발하여   소녀의 미소처럼   너무도 꽃이 만발 하기에.   *가을 해당화의 청초한 '이미지'는 소녀를 대하는 애정의 속삭임처럼 흐뭇한  정감을 풍겨주고 있다.   이 시인의 소녀에 향하는 목소리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기  마음 속에 간직된 소녀의 영상 속에 향하고 있는 시인 자신에게 보내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ff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 글쓴이 : 정중규 | 원글보기     
847    [스크랩] 보들레르 대표시 댓글:  조회:233  추천:0  2019-03-16
  - 차례 -   아름다움 상승 이상 향수병 고백 등대 음악 마돈나에게 달의 슬픔 아름다움에의 찬가 아름다운 배 나의 프란시스까에의 찬가 언제나 이대로 불운 무덤 유령 정담 전생 못난 중 아름다움에의 찬가 우울 우울2 우울3 우울4 허무의 맛 파이프 이밤에 시계 저녁의 해조 가을의 노래 가을 소네트 즐거운 주검 증오의 통 흐린하늘 환상적인 판화 서글프고 방황하는 공감되는 공포 고뇌의 연금술 사후의 회한 독 노대 공덕 송장 돈에 팔리는 시신 부엉이 고양이 머리털 거녀 지옥의 동쥐앙 병든 시신 길가는 집시 오후의 노래 이방의 향기 신천옹 환영 후회 막급 시지나 집념 홀린 사나이 심연에서 부르짖었다 교만의 벌 결투 가면 만물 조응 살아있는 횃불 흡혈귀 춤추는 뱀 여행에의 권유 건질수 없는 것 축복 그녀는 온통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 착한개 ~~~~~~~~~~~~~~~~~~~~~~~~~~~~~~~~~~~~~~~~~~~~~~~~~~~~~~~~~~~ 아름다움 나는 아름답다 오, 인간이여! 돌의 꿈과도 같이. 그리고 누구나번갈아 상처 받는 내 가슴은, 물질처럼 말없는 영원한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어 주려고 만들어진 것. 나는 흡사 수수께끼의 스핑크스, 창공에 군림한다. 나는 눈(雪)의 마음을 백조의 흰 빛에 결합한다. 나는 선(線)을 옮겨 놓는 움직임을 미워한다. 그리고 나는 아예 울지 않는다, 아예 웃지도 않는다. 가장 의젓한 기념상에서 빌어 온 듯한 내 존대한 몸가짐 앞에서, 시인들은 준엄한 탐구 속에 평생을 탕진하리. 왜냐하면, 이 유순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한결 미화하는 맑은 거울 가졌으니. 그것은 나의 눈, 영원히 반짝이는 커다란 눈! ~~~~~~~~~~~~~~~~~~~~~~~~~~~~~~~~~~~~~~~~~~~~~~~~~~~~~~~~~ 상승 연못위로, 계곡위로 山, 숲, 구름, 바다위로, 太陽넘고, 에테르氣層을 넘어 머얼리 星圈의 경계를 넘고 넘어 내 精神이여, 그대 날쌔게 움직여 , 파도속에 넋잃은 名 水永手인양, 깊고 가없는 공간을 形言못 할 雄健한 환락으로 즐거이 헤쳐 나가는 고야 이 病든 毒氣속에 멀리 멀리 날아가, 上層의 氣流속에 너를 淨化하고, 마셔라, 순수무구의 神酒인 양, 투명한 空間 가득 찬 맑은 불을. 안개 낀 生存을 짓누르는 괴로움과 광대한 슬픔일랑 뒤에 두고 억센 날개로 밝고 淸明한 들을 향해 솟구쳐 내 닫는 자 행복할거나. 그의 理念, 종달새처럼, 아침녘에 天空으로 자유로이 飛翔하는 者, -- 삶 위를 감돌며 힘 안들이고 꽃들과 말없는 事物들의 말을 깨닫는 者, 幸福할거나. ~~~~~~~~~~~~~~~~~~~~~~~~~~~~~~~~~~~~~~~~~~~~~~~~~~~~~~~~~ 이상 천박한 세기가 낳은 썩어 빠진 산물인, 그림 장식 둘러싸인 저 미인도 아니요, 긴 구두 신은 발도, 까스타네뜨 끼운 손가락도 아니리, 나 같은 사람의 마음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위황병 시인 가바르니에게나 맡기어 두자, 병원에나 드나드는 수다스런 그 미인들의 무리는. 그 파리한 장미꽃들 중에는 내 새빨간 이상을 닮은 꽃은 찾아 낼 수 없을 것이니. 심연처럼 깊숙한 이 마음에 필요한 것은, 그대로다, 맥베스 부인이여, 죄악 겁내지 않는 굳센 넋, 폭풍우의 풍토에 꽃핀 에실르의 꿈이여, 그렇쟎으면 너, 우람한 [밤], 미켈란젤로의 딸이여, [거인]들 입에 길들여진 그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조용히 비트는 너로다. ~~~~~~~~~~~~~~~~~~~~~~~~~~~~~~~~~~~~~~~~~~~~~~~~~~~~~~~~~~~~~~~ 향수병 어떤 물건도 꿰뚫고 나오는 강렬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도 뚫으리라. 동양서 건너온 손궤, 상을 찡그리고 삐걱삐걱 소리지르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곰팡 냄새 코를 찌르는 먼지 낀 컴컴한 옷장을 열면, 옛 추억 간직한 낡은 향수병 눈에 띄는 수 있어 옛 사라의 넋 생생하게 되살아 거기서 용솟음친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거기 온갖 생각이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 오른다, 하늘색으로 물들고, 장미빛으로 칠해지고, 금빛으로 장식되어. 거나한 추억 이제 흐린 공중에 펄럭거린다. 눈울 감는다. 현기증이 녹아 떨어진 넋을 움켜잡고 두 손으로 밀어뜨린다, 인간의 장로 어두어진 심연 쪽으로. 그리고 천년 묵은 심연가로 쓰러뜨린다. 거기에, 스스로 수의를 찢는 라사로 모양, 썩고 음산한 그리운 옛사랑의 닮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련한 낡은 향수병 모양, 늙고, 먼지가 끼고, 꾀죄죄하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서, 으슥한 옷장 구석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독기여! 네 힘과 독성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한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생살권자(生殺權者)여! ~~~~~~~~~~~~~~~~~~~~~~~~~~~~~~~~~~~~~~~~~~~~~~~~~~~~~~~~~~~~~ 고백 한 번, 꼭 한 번, 사랑스럽고 정다운 사람이여, 당신의 미끈한 팔이 내 팔에 기대었다(내 넋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그 추억은 스러지지 않는다). 밤은 이슥하였다. 새 메달과 같이 보름달은 하늘에 걸리고, 장엄한 밤은 강물처럼 잠든 파리 위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집들을 따라, 대문 아래로,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빠져 나갔다, 귀를 쫑그리고, 또는 정다운 사람의 혼백처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별안간, 휘멀건 달빛 아래 피어난 허물 없는 친밀감 속에, 쾌활한 소리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풍부한 악기, 당신 입에서, 빛나는 아침 군악 소리 울리듯 명랑하고 즐거운 당신 입에서, 구슬픈 가락,야릇한 가락, 비틀거리며 새어나왔다, 마치 가족들이 부끌워서, 세인의 눈을 피하려고, 남 몰래 오랫동안 굴 속에 숨겨 두었던, 허약하고 험상궂고, 음산하고, 꾀죄한 계집애같이. 가엾은 천사여, 당신 목소린 가락 높이 노래 불렀다, [이승에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무리 정신 써서 꾸며 보아도, 언제나, 사람이 이기심은 드러나는 법. 미인 노릇 하기란 힘이 드는 일, 억지 웃음 지으며 흥겨워하는 어리석고 쌀쌀한 무희의 진부한 일과 같은 것. 사람들 마음 위에 집을 세움은 바보짓거리, 사랑도 아름다움도 모조리 깨져버린다, 마침내는 [망각]이 치룽 속에 집어던져 [영원]의 손에 돌려줄 때까지는!] 나는 때때로 회상하였다 , 그 황홀한 달을, 그 적막, 그 울민을, 그리고 가슴 속이 고해실에서 속삭인 그 무서운 고백을. ~~~~~~~~~~~~~~~~~~~~~~~~~~~~~~~~~~~~~~~~~~~~~~~~~~~~~~~~~~~~~~~ 등대 루벤스, 잊음의 강, 게으름의 뜰, 사랑이란 엄두도 못할 싱싱한 살의 베개, 그러나 거기엔 삶이 끊임없이 흘러들고 용솟음친다,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에 밀물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침침하고 그윽한 거울, 거기 사랑스런 천사들, 신비에 싸인 상냥한 미소지으며, 그들의 나라를 닫는 빙하와 소나무 숲 그늘에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소리 가득찬 음산한 병원, 장식이라곤 단 하나의 커다란 십자가상, 눈믈 섞인 기도가 오물에서 풍기고, 겨울 햇빛 한 주리 쏜살처럼 스친다. 미켈란젤로, 흐릿란 곳, 보아하니 헤라클레스의 무리 그리스도의 무리와 어룰리고, 억센 유령들 벌떡 일어나 땅거미의 어둠 속에 손가락 뻗쳐 저희들의 수의를 짓찟는다. 권투가의 노여움도, 목신의 뻔뻔함도, 온갖 천인들의 미를 잘도 그러모을 수 있어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너그러운 마음, 노랗게 허약한 사나이, 쀠제, 그대는 죄수들의 우울한 제왕. 와또, 이것은 사육제, 숱한 신사 숙녀들이, 나비처럼, 찬란하게 이리저리 거닐고, 상데리아 불빛 아래 산뜻한 배경은 소용돌이치는 무도장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찬 악몽, 마녀의 잔치판에 삶아지는 태아며, 거울들여다보는 노파와, 마귀를 홀리려고 양말 치켜올리는 빨가숭이의 아가씨들과. 들라크루아, 악천사 넘나드는 피의 호수, 거기에 전나무 숲 언제나 푸른 그늘 던지고, 음침한 하늘 아래, 야릇한 군악 소리, 웨버의 가쁜 한숨인 양 흘러 간다. 이 모든 저주와 요설과 한탄, 황홀과 외침과 눈물과 찬송가, 그것은 수천의 미로에서 되울려 오는 메아리 소리, 마침내 죽어가야 할 인간에의 거룩한 아편! 그것은 수천의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고함소리, 수천의 메가폰 통해 전달되는 명령의 소리, 그것은 수천의 성 위에 밝혀진 등대불, 깊은 숲 속 헤매는 사냥꾼들의 부르짖음! 왜냐하면 주여, 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존엄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증거, 이 뜨거운 흐느낌은 내게로 흘러내려 그대의 영원의 강 언덕에 스러져 갈 것이니! ~~~~~~~~~~~~~~~~~~~~~~~~~~~~~~~~~~~~~~~~~~~~~~~~~~~~~~~~~~~~ 음악 음악은 흔히 나를 바다처럼 사로잡는다! 파리한 내 별을 향하여, 안개낀 궁륭 아래 또는 아득한 구중천에, 나는 돛을 올린다. 바람 품은 돛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허파를 부풀리고, 나는 기어오른다, 밤이 가리워 주는 겹치고 겹친 물결의 등을. 나는 느낀다, 괴로와하는 배의 온갖 정열이 내 속에 떨고 있음을. 순풍과태풍, 그리고 그 진동이 가이 없는 바다 위에 나를 흔들어 준다. 또 때로는 잔잔한 바다, 그것은 내 절망의 커다란 거울! ~~~~~~~~~~~~~~~~~~~~~~~~~~~~~~~~~~~~~~~~~~~~~~~~~~~~~~~~~~~~~~~ 마돈나에게 스페인 취미의 봉납물(奉納物) [마돈나], 내 임이여, 나 그대 위해 세우리 내 고뇌의 안쪽 깊숙이 지하의 제단을, 그리고 내 가슴 속 가장 으슥한 구석에, 이승의 욕망과 비웃는 눈길 멀리 떠나, 하늘색 금빛으로 온통 단장한 벽감을 파서, 희한한 그대의 [성상]을 세우리. 수정의 운(韻) 솜씨 좋게 별처럼 아로새긴 순금의 그물, 냉다듬은 [싯귀] 가지고, 그대의 머리를 위해 커다란 [관]을 만들어 바치리. 그리고, 오, 불사신 아닌 [마돈나]여, 내 [질투]를 가지고 그대에게 [외투]를 마르재어 드리리, 새암으로 안감을 넣은, 딱딱하고, 묵직한, 미개인식 [외투]를, 파수막처럼 그대 매력을 그 속에 가두어 두도록, [진주] 아닌 내 [눈물] 모두 모아 수를 놓아서! 그대 [옷]으론 떨며 물결치는 내 [욕망]을 입히리, 내 [욕망]은 솟아올랐다 내려갔다, 봉우리에선 간들거리고, 골짜기에선 쉬며, 그대의 하얀 장미빛 온 몸을 입맞춤으로 싼다. 나는 내 [존경]을 가지고, 거룩한 그대의 발 밑에 밟힐 고운 미단 [신]을 그대에게 지어 올리리. 그것은 부드러운 포옹 속에 그대의 발을 감싸 주고, 변통 없는 거푸집처럼 그대의 발 모양을 간직하리. 내 온갖 정성 어린 기술을 가지고도 그대 [발판]으로 [은달(銀月)]을 새기지 못하며는, 내 오장육부 깨무는 [뱀]을 그대 발꿈치 아래 갖다 놓으리, 그대 짓밟고 비웃도록, 제도의 은혜 넘쳐 흐르는 승리의 [여왕]이여, 증오와 독액이 온 몸에 가득친 저 괴물을. 그대는 보리라, 나의 온갖 [생각들]이, 꽃으로 장식된 [동정(童貞) 여왕]의 제단 앞에 느어선 [촛불]처럼, 파랗게 칠한 천장을 별처럼 비추면서, 불타는 눈으로 언제나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나는 몸과 마음 다하여 그대를 사랑하고 숭배하기에, 모든 ㄳ이 [안식향]과, [훈향], 그리고 [유향]과 [몰약]이 되고, 새하얀 눈 봉위 그대르 향해, 폭풍우 실은 내 [정신]은 [아지랭이]되어 끊임없이 솟아오르리.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 [마리아]의 구실을 다 갖추어 주고 , 사랑에 잔인을 뒤섞기 위해, 오 서글픈 쾌락이여! 한많은 [사형 집행리] 나는, 일곱 가지 [중죄] 가지고 서슬 푸른 일곱 자루의 [칼]을 만들어, 사정 없는 요술자처럼, 그대의 사랑 가장 깊숙한 곳을 과녘 삼아, 팔딱거리는 그대 [염통]에 모조리 꽂으리라, 흐느끼는 그대 [염통]에, 피흐르는 그대 [염통]에! ~~~~~~~~~~~~~~~~~~~~~~~~~~~~~~~~~~~~~~~~~~~~~~~~~~~~~~~~~~~~~~ 달의 슬픔 오늘 저녁 하염 없이 달은 꿈꾼다, 포개 놓은 보료 위에, 잠들기 전에, 가냘픈 손 기신 없이 젖가슴 언저리를 어루만지는 미인의 모습을 하고, 사태지는 보드라운 비단결 위에, 숨져가듯 멍청하게 등을 기대고, 꽃피듯이 푸른 하늘 솟아오르는 하얀 그림자를 둘러다 본다. 시름없이 지쳐서, 땅덩이 위에, 슬그머니 눈물을 흘러 보내면, 잠과는 원수진 가엾은 시인, 단백석 조각처럼 영롱하게 반작이는 파리한 달의 눈물 손 안에 길어, 해의 눈 못 미치는 가슴 속에 간직한다. ~~~~~~~~~~~~~~~~~~~~~~~~~~~~~~~~~~~~~~~~~~~~~~~~~~~~~~~~~~~~~ 아름다운 배 나에게 이야기하자, 오 요염한 여인이여! 네 젊음 치장하는 가지가지의 아름다움으.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울린 네 아름다움 너에게 그려 보이자. 펑퍼짐한 치맛자락 바람에 펄럭이며 걸어 나갈 때, 너는 흡사 난바다로 나가는 아름다운 배, 나른하고 느슨한 즐거운 리듬을 타고 갸우뚱거리면서 돛 달고 간다. 포동포동한 굵다란 목, 오동통한 어깨 위에, 네 머리는 거들거린다, 야릇한 귀염 풍기며.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도 양양하게 너는 길을 간다, 의젓한 아이. 너에게 이야기하자, 오 요염한 여인이여! 네 젊음 치장하는 가지가지의 아름다움을. 어린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울린 네 아름다움 너에게 그려 보이자. 물결 무늬 옷을 밀고 불쑥 솟은 젓가슴, 자랑스런 네 젓가슴은 아름다운 찬장이여, 둥그스름한 윤나는 그 널판은 방패처럼 번갯불 받아 번득거린다. 장미색 젖꼭지 내세우고 도전하는 방패여! 달콤한 비밀 간직한 찬장, 술과 향료와 음료, 가지가지의 맛좋은 것 가득차 있어,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 꿈나라로 실어 갈 찬양이여! 펑퍼짐한 치맛자락 바람에 펄럭이며 걸어 나갈 때, 너는 흡사 난바다로 나가는 아름다운 배, 나른하고 느슨한 즐거운 리듬을 타고 갸우뚱거리면서 돛 달고 간다. 조촐한 네 다리는 차고 가는 치맛자락 아래서 아른거리고 어슴푸레한 욕망 출썩거리고 부추긴다. 깊숙한 단지 속에 검은 마약을 휘저어 반죽하는 두 마녀와 같이. 나어린 장사쯤 깔볼 만도 한 네 팔은 살가죽 번득이는 왕뱀의 검질긴 적수, 애인의 모습 가슴팍에 새기려듯이, 아귀차게 껴안도록 만들어진 것. 포동포동한 굵다란 목, 오동통한 어깨 위에, 네 머리는 거들거린다, 야릇한 귀염 풍기며.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도 양양하게 너는 길을 간다, 의젓한 아이. ~~~~~~~~~~~~~~~~~~~~~~~~~~~~~~~~~~~~~~~~~~~~~~~~~~~~~~~~~~~~~~ 아름다움에의 찬가 그대 구천에서 왔는가, 나락에서 왔는가,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고도 신성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함께 퍼부으니, 그대는 가히 술에도 견줄 수 있도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서광을 간직하고, 소낙비 내리는 저녁 모양 향기를 풍긴다. 그대의 입맞춤은 미약, 그대의 입은 술단지, 영웅을 맥빠비게 하고 어린이를 씩씩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심연에서 솟아났는가, 별에서 내려 왔는가? 홀린 [운명]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를 따른다. 그대는 마구 기쁨과 슬픔은 흩뿌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주검을 비웃으며 그위를 걸어간다. 그대 보석 중에는 역시 [공포]가 매력 적지 않고, 살인은, 그대의 가장 값비싼 패물 속에서,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 아리따이 춤춘다. 눈 어린 하루살이 그대 촛불에 날아가, 바작바작 타면서도 말한다, [이 횃불에 영광 있으라!] 정부의 몸에 몸 기대고 몸 헐떡이는 사나이는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자와도 같도다.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 오[아름다움]이여! 끔찍하고도 무서운 숫된 괴물이여! 그대의 눈과 미소, 그리고 발이 나에게 내 그리는 알지 못한 [무한]의 문을 열어만 준다면? 악마한테서 왔건 하느님한태서 왔건 무슨 상관? 천사든 사이렌이든 무슨 상관,ㅡ빌로오드의 눈을 가진 선녀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단 하나의 여왕이여! 그대, 세계의 추악, 시간의 중압을 덜어만 준다면! ~~~~~~~~~~~~~~~~~~~~~~~~~~~~~~~~~~~~~~~~~~~~~~~~~~~~~~~~~~~~~~ 나의 프란시스까에의 찬가 새로운 줄로 그대를 노래하리, 오 내 마음의 고독 속에 살랑 살랑 나부기는 어린 나무여. 그대 꽃다발을 몸에 감아라, 온갖 죄악 씻어 주는, 오 조촐한 여인이여! 자비로운 [망각의 강]물처럼, 몸에 자력 감도는 그대의 입맞춤 마시련다. 궂은 정열의 폭풍 모든 길에 휘몰아칠 때, 그대는 나타났다, 여신이여! 고통스런 파선을 당했을 때 발견한 구원의 별과도 같이...... 이 마음 그대 제단에 바치리! 적에 넘치는 연못이여, 다문 입술을 열어다오! 그대는 추한 것은 불사르고, 거친 것은 골라 놓고, 약한 것은 굳히었다! 굶주릴 땐 나의 숙소, 어두울 땐 나의 등불,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다오, 나에게 힘을 북돋워다오, 기분좋은 향료로 향긋한 다사로운 목욕이여! 내 허리 둘레에 빛나라, 오 성수에 적신 순결의 갑옷이여. 보석을 아로새긴 잔, 짭짤한 빵, 맛좋은 음식, 오, 신의 술, 프란시스까여! ~~~~~~~~~~~~~~~~~~~~~~~~~~~~~~~~~~~~~~~~~~~~~~~~~~~~~~~~~~~~~ 언제나 이대로 [저 불거진 검은 바위 위로 바닷물 치밀어 오듯 그 야릇한 슬픔 어디서 당신에게 밀려 오는가?] 이렇게 당신은 말하였지. ㅡ 우리 마음이 한 번 추수가 끝난 뒤에는, 삶은 괴로움.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그것은 명백한 고통, 아무런 신비도 없고, 당신의 기쁨처럼 누구 눈에도 빤한 것. 그러니 더 묻지 마오, 호기심 많은 미인이여! 당신 목소린 부드럽지만, 입을 다무오! 입을 다무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언제나 즐거운 여인이여! 어린애 같은 웃음 짓는 입이여! [죽음]은 [삶]보다도 더 자주 미묘한 줄로 우리들을 붙잡는다. 아 제발 내마음 허망에 취해, 아름다운 꿈결처럼 당신의 고운 눈 속에 잠겨, 그 눈썹 그늘 아래 길이 잠자게 하여 다오! ~~~~~~~~~~~~~~~~~~~~~~~~~~~~~~~~~~~~~~~~~~~~~~~~~~~~~~~~~~~~ 불운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기에는, 시지프스여,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리 일에 골몰하여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다. 이름난 묘지에서 멀리 떨어져, 호젓하고 외딴 무덤을 향해, 내 가슴은 사뭇 장송곡 친다, 은은히 울리는 북과도 같이. 숱한 보석은 잠잔다, 어둠과 잊음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測深器)도 안 닿는 곳에. 숱한 꽃들은 한슬이 풍긴다, 비밀처럼 달콤한 향기, 저 그윽한 적막 속에서. ~~~~~~~~~~~~~~~~~~~~~~~~~~~~~~~~~~~~~~~~~~~~~~~~~~~~~~~~~~~~~~~~ 무덤 어둡고 답답한 밤에 어떤 착한 예수꾼이, 자비심에서, 어느 옛 폐허의 그늘 아래 뽐내던 그대 몸을 묻어 준다면, 하늘의 아련한 별들 졸리는 눈꺼풀 감고, 거미가 거기에 줄치고, 독사가 새끼칠 무렵, 일년내 그대는 들으리, 벌받은 그대의 머리 위에, 늑대의 구슬픈 울음소리, 굶주린 마녀의 울부짖음, 음란한 영감의 장난, 엉큼한 도독의 음모. ~~~~~~~~~~~~~~~~~~~~~~~~~~~~~~~~~~~~~~~~~~~~~~~~~~~~~~~~~~~~~~~ 유령 들짐승의 눈을 가진 천사들처럼, 그대 규방에 되돌아 와서 검은 밤의 어둠을 타고 살그머니 그대 곁에 들어가리라. 그리고 나는, 갈색의 여인이여, 그대에게 주리라, 달빛과 같은 싸늘한 입맞춤을, 구멍 둘레를 기어다니는 뱀의 애무를. 희번한 아침 동녘에 트면, 내 자리 빈 것을 그대는 보리, 저녁까지 그것은 싸늘하리라. 남들이 애정으로 그러하듯이, 그대 목숨과 그대 젊음에, 나는 동포로써 군림하리라. ~~~~~~~~~~~~~~~~~~~~~~~~~~~~~~~~~~~~~~~~~~~~~~~~~~~~~~~~~~~~~~~ 정담 당신은 맑은 장미빛 아름다운 가을의 하늘! 그러나 슬픔은 내 가슴에 바닷물처럼 물밀어 오고, 썰물이 나갈 때에는. 샐쭉한 내 입술에 씁쓸한 진흙의 쓰라린 추억을 남긴다. 허탈한 내 가슴을 그대의 손이 더듬어 본들 소용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 손이 찾는 건 벌써 여자의 사나운 이빨과 손톱으로 헐어 빠진 곳. 내 심장 찾지 마오, 이미 짐승들이 먹어 버렸다. 내 가슴은 군중들에 짓밟혀 쇠잔한 궁전, 사람들 거기서 주정을 하고, 서로 죽이고, 머리칼으 움켜 잡는다! 향기는 감돈다, 당신의 벌거벗은 앞가슴 언저리에!...... 오 [아름다움]이여, 넋의 가혹한 채찍이여, 그대는 그러기를 바라겠지! 향연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그대 눈으로, 깡그리 태워 버려라, 짐승들 먹다 남긴 이 누더기! ~~~~~~~~~~~~~~~~~~~~~~~~~~~~~~~~~~~~~~~~~~~~~~~~~~~~~~~~~~~~~~ 전생 나는 오랜 동안 드넓은 회랑 아래 살아 왔도다. 바다의 태양은 수천의 불빛으로 그것을 물들이고, 곧고 장엄한 큰 기둥이 즐비하게 늘어서, 곧고 장엄한 큰 기둥이 즐비하게 늘어서, 저녁이면 그것은 흡사 현무암의 동굴이었다. 물결은 하늘의 그림자를 바다 위에 뛰놀게 하고,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내 눈에 비치는 석양 빛 속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섞어 주었다. 거기야말로 내가 살아 온 곳, 고요한 일락(逸樂) 속에, 창공과 파도와 찬란한 햇빛 가운데, 향기 듬뿍이 배어든 발가벗은 노예들에 둘러싸여서. 그들은 종려 잎새 부채삼아 내 이마를 식혀 주고, 내 가슴 괴롭히는 번뇌의 비밀을 깊이깊이 파고드는 것만이 그들의 일이었다. ~~~~~~~~~~~~~~~~~~~~~~~~~~~~~~~~~~~~~~~~~~~~~~~~~~~~~~~~~~~~~~~~ 못난 중 옛날의 승원은 그 널따란 벽을 거룩한 [진리]의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귻을 보고 사람들의 신앙심은 북돋워지고, 엄숙한 찬 바람도 누그러졌다. 그리스도가 뿌린 씨앗 꽃피던 그 시절엔, 지금은 그이름도 모를 한둘 아닌 명승이, 장례의 마당을 아뜰리에 삼아, 순박하게 [죽음]을 찬미하였다. ㅡ 내 넋도 하나의 무덤, 이 못난 중은, 허구한 세월, 거기서 헤매며 살고 있으나, 이 끔찍한 승원의 벽을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는다. 오, 게으른 중이여! 언제나 나는, 내 슬픈 비참으로 생생한 광경을 꾸미기 위해, 내 손에 일거리 주고 내 눈에 즐거움 줄 수 있을까? ~~~~~~~~~~~~~~~~~~~~~~~~~~~~~~~~~~~~~~~~~~~~~~~~~~~~~~~~~~~~~ 아름다움에의 찬가 그대 구천에서 왔는가, 나락에서 왔는가,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고도 신성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함께 퍼부으니, 그대는 가히 술에도 견줄 수 있도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서광을 간직하고, 소낙비 내리는 저녁 모양 향기를 풍긴다. 그대의 입맞춤은 미약, 그대의 입은 술단지, 영웅을 맥빠비게 하고 어린이를 씩씩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심연에서 솟아났는가, 별에서 내려 왔는가? 홀린 [운명]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를 따른다. 그대는 마구 기쁨과 슬픔은 흩뿌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주검을 비웃으며 그위를 걸어간다. 그대 보석 중에는 역시 [공포]가 매력 적지 않고, 살인은, 그대의 가장 값비싼 패물 속에서,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 아리따이 춤춘다. 눈 어린 하루살이 그대 촛불에 날아가, 바작바작 타면서도 말한다, [이 횃불에 영광 있으라!] 정부의 몸에 몸 기대고 몸 헐떡이는 사나이는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자와도 같도다.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 오[아름다움]이여! 끔찍하고도 무서운 숫된 괴물이여! 그대의 눈과 미소, 그리고 발이 나에게 내 그리는 알지 못한 [무한]의 문을 열어만 준다면? 악마한테서 왔건 하느님한태서 왔건 무슨 상관? 천사든 사이렌이든 무슨 상관,ㅡ빌로오드의 눈을 가진 선녀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단 하나의 여왕이여! 그대, 세계의 추악, 시간의 중압을 덜어만 준다면! ~~~~~~~~~~~~~~~~~~~~~~~~~~~~~~~~~~~~~~~~~~~~~~~~~~~~~~~~~~~~~~~ 우울 [장맛달]은 온 도시에 화를 내어 항아리째 주욱주욱 퍼붓는다, 이웃 묘지의 파리한 주민에겐 음산한 추위를, 안개낀 교외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내 고양인 마룻바닥에 깔고 잘 짚을 찾으며 옴오른 여윈 몸을 쉬지 않고 흔들고, 늙은 시인의 혼은 홈통 속을 헤매며 추위 타는 허깨비의 구슬픝 소리 지른다. 종소리는 울부짓고, 연기 나는 장작불은 파닥파닥 소리 질러 감기든 괘종에 반주하는데, 또 한편에선, 수종병 걸려 죽은 노파의 유산, 꼬리한 냄새 코를 찌르는 한 벌의 트럼프 속에, 멋쟁이 하트의 잭과 스페이드의 퀴인, 음침하게 지난 날의 사랑을 소곤거린다. ~~~~~~~~~~~~~~~~~~~~~~~~~~~~~~~~~~~~~~~~~~~~~~~~~~~~~~~~~~~~~~~ 우울2 나는 천년을 산 것보다도 더 많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 계산서에 시의 원고, 연애 편지에 소송 서류, 사랑의 노래, 게다가 또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털 등이 가득찬 서랍 달린 육중한 장롱보다도 내 슬픈 두뇌는 훨씬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 공동 묘지보다도 더 많은 주검을 간직하는 곳. - 나는 달마저 싫어하는 끔찍한 묘지, 기다란 구더기떼 회한처럼 우글거리고, 내 사랑하는 주검을 향해 언제나 끈덕지게 추격을 한다. 나는 시든 장미로 가득찬 낡은 도장방, 유행에 뒤떨어진 가지가지 물건들 흩어져 있고, 우수에 잠긴 파스텔 그림과 색 바랜 부셰의 그림만이 마개 빠진 [향수병]의 냄새를 맡고 있다. 절름절름 끌어 가는 세월보다도 지리한 것은 없다, 겹치고 겹친 눈 잦은 해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음울한 무관심의 열매인 권태 불멸의 모습 띠고 퍼져 가기에. - 이제부터 너는, 오! 물질이여, 어렴풋한 공포에 싸여, 안개 낀 사하라 사막 저 안쪽에 족고 있는 화강암에 지나지 않다. 무심한 세상 사람 아랑곳않고, 지도에서도 버림을 받고, 그 사나운 심사 오직 저무는 햇빛에만 노래 부르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다. ~~~~~~~~~~~~~~~~~~~~~~~~~~~~~~~~~~~~~~~~~~~~~~~~~~~~~~~~~~~~~~~~~ 우울3 나는 마치 비오는 나라의 임금, 부유는 하지만 무기력하고, 젊기는 하지만 늙어빠져서, 사부(師傅)의 조아림도 거들떠 보지 않고, 개에도 싫증나고 다른 짐승에도 싫증이 났다. 아무것도 그의 마음 즐겨 주지 못한다, 사냥감도, 매도, 노대 앞에 죽어 가는 백성마저도. 고임받은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런 노랫가락도 이 야멸찬 환자의 이맛살 펴지 못한다. 백합꽃 무늬 아로새겨진 그의 침대는 무덤으로 바뀌고, 군주라면 아무나 홀딱 반하는 화장계의 궁녀들 제 아무리 음란한 화장법을 찾아 보아도 이 젊은 해골에서 미소 하나 끌어 내지 못한다. 그에게 금덩이 만들어 주는 학자마저도 그 몸에서 썩은 독소를 뽑지 봇했고, 로마에서 전해 와, 권력자들이 만년에 그리웧는 저 피의 목욕으로도 이 마비된 송장은 데울 길 없었다. 거기엔 피 대신 푸른 [망각의 강] 물이 흐르고 있으니. ~~~~~~~~~~~~~~~~~~~~~~~~~~~~~~~~~~~~~~~~~~~~~~~~~~~~~~~~~~~~~ 우울4 나직한 하늘은 뚜껑처럼 무겁게 쳐져 허구한 권태에 신음하는 마음을 짓누르고, 둥그런 지평(地平) 한 아름에 껴안고 밤보다 음침한 검은 햇빛을 퍼붓는다. 땅 위는 축축한 토굴로 바뀌고, 우리의 [희망]은 박쥐와 같이, 겁 많은 날개로 담벽을 치고 썩은 천장에 대가리 부딪치며 날아서 간다.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빗발은 널따란 감옥 창살을 방불케 하고, 한 떼의 꾀죄죄한 말없는 거미들 우리 골 속에 와서 그물을 친다. 그때에 불현듯 종소리 요란스럽게 일어 하늘 향해 아우성친다, 줄기차고 꾸준하게 푸념을 하는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과 같이. - 그리고 북도 음악도 없는 기다란 영구차들은 내 넋 속에 천천히 줄지어 가고, [희망]은 패하여 울고, 포학스런[고뇌]는 숙여진 내 머리에 검은 기를 꽂는다. ~~~~~~~~~~~~~~~~~~~~~~~~~~~~~~~~~~~~~~~~~~~~~~~~~~~~~~~~~~~~~~~~ 허무의 맛 예전엔 싸움을 좋아하던 답답한 정신이여, [희망]은 네 정열을 박차로 부채질하였으나, 이젠 너를 걸터타려 하지 않는다! 스스럼 없이 드러누워라, 장애마다 비트적거리는 이 늙다리 말이여. 체념하여라 내 마음아, 짐승의 잠을 자거라. 지쳐빠진 패잔의 정신이여! 늙은 겁탈자 너에겐 사랑도 이제 아무 맛없고, 다툴 기운도 없다. 그럼 잘가라, 나팔의 노래도 피리의 한숨도! 쾌락이여, 이 토라진 침울한 마음 이젠 꾀지 말아라! 화려한 봄도 이미 향기를 잃었도다! 그리고 [시간]은 시시각각 나를 삼키어 간다, 그치쟎고 내리는 눈이 굳어진 몸을 묻어가듯이. 나는 하늘 높이서 둥근 땅덩이 내려다 보나 내 몸 가리울 한 채의 오막살이도 찾지 않는다. 눈사태여, 나도 또한 너와 함께 휩쓸어 가지 않으려나? ~~~~~~~~~~~~~~~~~~~~~~~~~~~~~~~~~~~~~~~~~~~~~~~~~~~~~~~~~~~~~~ 파이프 나는 작가의 파이프예요. 아비시니아 또는 카프라리아 여자와 같은 새카만 내 얼굴 들여다보면, 우리 주인 골초인 줄 당장 알지요. 주인 양반 고민이 막심하며는, 나는 뻐끔뻐끔 연기 쁨지요, 일하고 돌아오는 농부를 위해 저녁밥 준비하는 초가집처럼. 불타는 내 입에서 솟아오르는 한들거리는 푸른빛 그물 속에서 그이 넋을 껴안고 재워 주지요. 그리곤 세찬 향기 감돌게 하여 주인 마음 황홀케 하고 고달픈 머리 풀어 주지요. ~~~~~~~~~~~~~~~~~~~~~~~~~~~~~~~~~~~~~~~~~~~~~~~~~~~~~~~~~~~ 이밤에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리, 가엾고 외로운 넋이여. 내 전에 시든 가슴, 무엇을 말하리. 그 성스런 시선이 어느날 그대를 다시 환하게 한 너무나 아름답고, 지극히 어질고, 가장 사랑스런 그녀에게! ---그녀를 칭송함에 우리는 자랑으로 삼으리. 그녀의 유연함만한 것은 이 세상에 없으리라. 그녀의 정신에 싸인 육체는 천사의 향기를 지니고 그녀의 눈길은 우리를 광명으로 감싸주네. 어둠 속에서나 외로움 속에서나 거리에서나 군중 가운데서나 그녀의 환상은 햇불처럼 빈 하늘에서 너울거리네. 그 환상이 가끔씩 부탁하기를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오직 나를 위해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 천사요, 뮤즈이자 마돈나이나니!" ~~~~~~~~~~~~~~~~~~~~~~~~~~~~~~~~~~~~~~~~~~~~~~~~~~~~~~~~~~~ 시계 시계! 공포와 비정의 불길한 귀신, 그 손가락은 우리를 으르며 말한다, [잊지말라! 떨리는 [고뇌]의 화살은 두려움에 가득찬 네 가슴에 머지않아 과녁처럼 꽂히고, [즐거움]은 아른아른 지평선 저너머로 스러지리라, 마치 공기의 요정이 무대 안쪽으로 사라지듯이. 누구에게나 철철이 주어진 환락, 순간은 순간마다 네게서도 그것을 한 도막씩 집어 삼킨다. 한 시간에도 삼천 육백 번, [초(秒)]는 속삭인다, 잊지말라! 벌레 같은 목소리로 재빨리 [현재]는 말한다, 나는 [과거]다, 더러운 내 대롱으로 네 목숨을 빨아 올렸다! 리멤버! 수비앵.뚜아! 낭비자여! 에스또 메모르! (내 금속성 목청은 온갖 나라말을 다 한다.) 시시덕거리는 인생이여, 촌음(寸陰)은 모암(母岩), 금을 추려 내기 전에는 버리지 말라! 잊지말라!, [시간]은 욕심 많은 노름꾼, 속임수 안 쓰고도 번번이 이긴다는 걸! 그것은 철칙이로다. 낮은 줄어들고 밤은 늘어난다, 잊지말라! 심연은 항상 목이 마르고, 물시계엔 눌이 떨어진다. 미구에 시간이 울리리니, 그 때가 되면 거룩한 [우연]도, 아직 처녀인 네 아내, 존엄한 [절개]도, 그리고 [회한]마저도(오! 마지막 주막집이여!) 모든 것이 너에게 말하리, 뒈져라,비겁한 늙다리여! 때는 벌써 늦었다! 라고.] ~~~~~~~~~~~~~~~~~~~~~~~~~~~~~~~~~~~~~~~~~~~~~~~~~~~~~~~~~~~~~ 저녁의 해조 이제 한창 줄기 위에 하늘거리며 꽃마다 향로처럼 방향 풍기고,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을 돌고 돌아, 우울한 원무, 답답한 어지러움! 꽃마다 향로처럼 방향 풍기고, 비올롱은 흐느끼는 서러운 마음인가, 우울한 원무 답답한 어지러움! 하늘은 슬프고 아름다와, 대제단처럼. 비올롱은 흐느끼는 서러운 마음인가, 애틋하게 그리는 이 마음, 막막한 허무의 밤을 싫어하기에! 하늘은 슬프고 아름다와, 대제단처럼, 해는 스스로 엉기는 피 속에 잠기어 들고. 애틋하게 그리는 이 마음, 막막한 허무의 밤을 싫어하기에, 찬란한 과거의 유물 샅샅이 긁어 모은다! 해는 스스로 엉기는 피 속에 잠기어 들고...... 그대 추억은 내 가슴에 성체합처럼 번득인다! ~~~~~~~~~~~~~~~~~~~~~~~~~~~~~~~~~~~~~~~~~~~~~~~~~~~~~~~~~~~~~~ 가을의 노래 1 머쟎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라,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 여름철의 눈부신 햇빛이여! 나는 벌써 듣노라, 처량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에 떨어지는 나무 소리를. 노염과 미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강요된 고역, 이 모든 겨울이 이제 내 존재 속에 되돌아 오면, 내 심장은, 극지의 지옥 비추는 태양처럼, 한낱 얼어붙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리라. 나는 듣는다, 몸을 떨며, 장작개비 떨어지는 소리를. 교수대 세우는 소리인들 이토록 은은하지는 않으리라. 내 저이신은 지킬 줄 모르는 육중한 파성 망치에 허물어지는 탐과도 같도다. 이 단조로운 우릴 소리에 나는 뒤흔들리며 어디선가 급히 관에 못질하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누구를 위함일까? ㅡ 아,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이 왔구나! 저 신비로운 소리는 출발처럼 울린다. 2 나는 사랑하노라, 갸름한 당신 눈에 비치는 파르스름한 빛을, 정다운 미인이여, 하지만 오늘 내게는 모든 것이 슬프고,아무것도, 당신 사랑도, 규방도, 난로도, 바다 위에 반짝이는 내양만 못한다. 그렇지만 사랑해 다오, 다정한 사람이여! 어머니가 되어다오, 은혜 저버린 사람에게도, 심술궂은 사람에게도. 애인이여 또는 누이여, 빛나는 가을 날의 또는 저무는 해의 잠시의 다사로움 되어 다오. 덧없는 인생이여! 무덤은 기다린다, 허기진 무덤은! 아! 당신 무릎 위에 내 이마 올려 놓고, 따가운 흰 여름을 그리워하며, 만추의 따스한 노란 햇빛을 맛보게 하여 다오! ~~~~~~~~~~~~~~~~~~~~~~~~~~~~~~~~~~~~~~~~~~~~~~~~~~~~~~~~~~~~~~ 가을 소네트 그대의 수정처럼 맑은 눈은 나에게 말한다, [얄궂은 애인이여, 그대는 대관절 무얼 보고 나를 좋아 하는가?] ㅡ 잠자코 그저 귀엽기만 하여라! 태고적 짐승들의 순박함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성가신 내 마음은 그 끔찍한 비밀을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불꽃으로씌어진 그 서글픈 전설도, 그 고운 손 나를 흔들어 오래 오래 잠들게 하는 요람이여. 나는 정열을 미워한다, 그리고 정신은 나를 아프게 한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사랑하자. [사랑의 신]은 제 은신처에 몰래 숨어서 운명의 활을 당긴다. 나는 그의 무기를 안다, 그 낡은 병기고에 있는 것은, 죄악과 공포, 그리고 미친 지랄! ㅡ 오, 파리한 마르그리뜨 꽃이여! 나처럼 그대도 또한 가을의 해가 아닌가, 오, 나의 새하얀, 나의 쌀쌀한 마르그리뜨여! ~~~~~~~~~~~~~~~~~~~~~~~~~~~~~~~~~~~~~~~~~~~~~~~~~~~~~~~~~~~~~~~ 즐거운 주검 달팽이 들끓는 기름진 땅에 스스로 깊은 구멍을 파고, 내 낡은 뼈 한가로이 거기에 눕혀 망각 속에 잠들자, 물결 속에 상어와 같이. 나는 유언도 싫고 무덤도 싫다. 죽어서 남들의 눈물 빌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 불러 내 더러운 해골 빈틈 없이 쪼아 먹이자. 오 구더기! 귀도 없고 눈도 없는 검은 친구들이여, 보라, 자유롭고 즐거운 주검 너희들 찾아 왔다. 너희들 방탕한 철학자, 부패의 아들들이여, 자 거리낌 없이 내 송장 파들어 가고, 주검들 틈에 죽어 있는 넋없는 이 늙은 몸에 말하라, 아직도 무슨 고통 남아 있는가를 ~~~~~~~~~~~~~~~~~~~~~~~~~~~~~~~~~~~~~~~~~~~~~~~~~~~~~~~~~~~~ 증오의 통 [증오]는 파리한 다나이드의 물통 미쳐 날뛰는 [복수]가 붉고 억센 그팔로 죽은 사람의 피눈물을 큰 통에 길어 캄캄한 빈 통 속에 아무리 부어 넣은들 소용이 없다. [악마]는 그 깊은 통 밑바닥에 남몰래 구멍을 뚫어,
846    "낯설게 하기 자체가 하이퍼텍스트 " 댓글:  조회:146  추천:0  2019-03-15
낯설게 하기(하이퍼텍스트)와 분절  서설 지나 텅 빈다          오남구 창은 플라타너스 잎을 가만가만 비운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북서쪽에서 빌딩의 틈새로 소리가 흘러 조용한 흐름이 느껴져서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만져지는 감촉 매끄러운 동전 한 닢이 따뜻하다. 쨍그랑, 깡통에 한 닢의 소리 던져 넣는 손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서설이 지났다 첫 눈이라도 내릴까 올려다보는 빌딩 사이로 조각난 허공이 찬바람에 김을 불어 넣어 뿌옇다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서론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이미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슈클로브스키가 주장한 용어, 예술은 경험적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 "시의 효과는 언어를 삐딱하게, 어렵고 날카롭게 ,뒤틀린 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 문학성, 전경화, 문제점 을 차례로 풀어본다. 본론:"서설 지나 텅 빈다".작품을 통해 본 낯설게 하기 1)문학성: 문학을 언어의 특수한 예술 영역 지시적 언어로 본다면 . 이 작품은 화자가 충분히 언어를 손아귀에서 휘두르고 있으며 자유자제로 가지고 논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분절, 행갈이 자체를 파괴하고 있음도 우리는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혀 말이 안 되는 듯 그러면서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문장 전체가 링크되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가령 "뿌연 허공"이 지난 초겨울의 첫 눈을 떠오르게 하여(링크되어)두 마디가 그 마디 사이에는 상상하는 공간이 있고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면 과거 현재의 시점이 같이 있다. 이것을 하이퍼텍스트의 비선조적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2)전경화(foregrounding):티냐토프와 무카로브스키가 슈클로브스키의 낯설게 하기를 변용한 이론으로 작품은 여러 가지의 상호작용인데 그 가운데 지배적인 요소를 앞으로 내세워 체계화하는 것 (시에 따른 종속 관계의 재배치)이 작품에서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설 지나 텅 빈다"는 문장이 될 수 있겠다. "서설瑞雪"은 상서로운 눈으로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 지나 내리는 눈으로 경사스러운 길조의 눈으로도 봐도 무난할 것이다. 첫눈이 겨울의 시작 이라면 서설은 겨울이 끝나는 눈인 것이다. 즉 새로운 생성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내면을 우리는 읽어 낼 수가 있다. 잎이 다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에 서설이 내리고 봄을 준비하는 텅 빈 자리를 화자는 빌딩 사이로 난 조각난 허공(하늘을 )보면서 첫눈이라도 내릴까? 첫눈이 내리기를 바란다. (막내 딸 시집보내면서 쓴 작품 )무의식 적으로 화자는 지난겨울 아니 힘겹게 예까지 온(작품세계) 을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서설 지나 텅 빈다 " 이 한 문장이 전경화 되어 화자의 외로움 아니면 앞으로의 더 긴 고독한 여정을 말해 주고 있을지도……. 3)문제점: 감정적 요소의 경시(미학적 근거가 약함)가 자체를 다시 뒤집어 본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는 화자는 솔직한 개인감정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전혀 낯설게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학적 근거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마지막 세연에서 화자는 모든 것을 다 놔버린다. 손이 텅 비우고, 그 비운 손을 바람이 가만가만 불어 스쳐가고, 플라타나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이 표현은 불교의 윤회설을 통해 절대자처럼 이 화자는 초월적인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는 구도자 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론 :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만 한 날씨가 겨울을 다시 맞는 것 같은 뿌연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우울한 내면을 들어다보면서 그가 40여 년의 세월을 힘들게 걸어 온 여정을 함께 반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면했던 그의 외로운 작품 활동 투쟁의 결과는 지금에서야 빛을 바라고 글 좀 쓴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앞에서 치세우고 뒤에서 짓밟고 닮아 가고자 하는 심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배반하고…….나는 그의 작품을 더 알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의 "낯설기 하기의 텍스트"를 빠져 나온다. 아니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 그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겠다. 결론적으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이 이 작품에 다 녹아들어 있지는 않지만 하이퍼텍스트 글쓰기 자체가 낯설게 하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조건이 성립 된다고 본다. 그의 작품을 다루면서 작품이나 그분에 대한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의 앞날에 서광이 있기를 ……. 2 하이퍼텍스트 서론 : 무의미시 뒤집기, 즉 무의미 시는 화자의 관념이 내포해 있다. 본론 : 상대적 심상과 무의미시 1. 상대적 심상 1) allegory,`축자적 심상 가, 우언-(寓話) 즉 인격화한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 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ㄱ. fable-교훈을 내포한 짧은 이야기, 꾸며낸 이야기(거짓말),전설, 설화, 신화 ㄴ. parable-비유 담, 비유,(성경말씀) ㄷ. allegory a.사전적 의미 allegory -비유 우언 법, 우의소설, 비유 담, 상징 b.실재로 쓰고 있는 allegory-,처럼 몇 십 만자, 혹은 몇 만자적인 긴 소설을 얘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교재 "시론" 166p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병화의 의자에서 보여주는 의자 이미지가 allegory(회화)적인 반면 단지 회화성을 만을 강조 했다면 오히려 fable의 더 가까운 해석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fable-산문 혹은 짧은 시가 체로써 아주 짧음과 정갈 함을 강조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위의 사전적 의미로써의 세 가지를 통틀어 우언이라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나 차이점으로 본다면 parable은 (종교)적인 특색을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allegory 또한 서로 다른 부분으로 해석함이고자 한다.    2)축자적 심상 축자적(묘사)―서술 하거나 그림, 서술-사물의 생각이나 차례를 쫓아 서술하는 것 allegory(회화)―그림, 그럼 조병화의 의자는 축자적이며,allegory 라는 공통된 부분 즉 "회화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그럼 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의자는  allegory 보다는 fable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2. 탈 관념으로 가기위한 무의미 시 와 하이퍼텍스트(접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그"의 이름을 불러 준 명명행위를 통해 '그'의미가 '꽃'으로 확립 되었다. 고 생각하는 관점은 1연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표현과 대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면 사실 이러한 관점의 근거는 들뢰즈가 지시 작용이라 지칭한 전통적인 의미론 즉 실증주의적인 의미론을 따른 해석이 다고 [함종호]는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미 김춘수는 프랑스의 상징주의나 미국의 낭만주의로 부터 무의식의 세계를 모방해온 것이라고 본다면 김춘수의 작품세계를 초기 중기 말기로 봤을 때 '꽃'은 초기 시 세계와 중기 시 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로 봐야 할 것이며 '꽃'이라는 대상물을 통해서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관념을 그대로 노출 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아직은 무의미 시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이다. 김춘수의 말대로 불손함을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즉 완전한 의식이 없는 순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볼 때 무의미 시로 가기는 아직도 길이 멀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접으면서 단국대학교 국어교육전공 유경진 석사논문에서는 를 전후로 전기 시와 후기 시로 나누고 있기도 하다 이전의 시들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들인데 반해이후의 시들은 관념과 의미가 배제된 무의미 시로 하이데거와 릴케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그 존재탐구 방식을 설명한 논의와 후기시의 경우 전기시가 존재론적 탐구를 통해 추구해온 의미를 해체한다고 보면서 전기 시는"존재탐구의 시"라고 비교적 일관된 평가가 내려지지만 후기시의 논의는 천차 만별이여서 다음 기회가 온다면 계속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여지를 남겨 두면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또한 유강진은 (1959)을 끝으로 무의미 시 이전의 시가 청산되고 새로운 무의미 시로의 세계를 열기 위한 실험과 모색을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그 시가 바로 이라는 시 다. 나의 하나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비,비,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 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 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러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오남구吳南球의 [부드러움의 단상] 전문 비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상징화 시켜서 사진 찍듯 접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팔딱팔딱"이란 의성어만을 보더라도 생명이 느껴지고 싱싱한 생선이 살아 뛰는 모습이 그려 질 것이다. 이 빗줄기는 칼날이 되어 날을 세워 수평 수직으로 마구 제멋대로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직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 안에 시적 화자는 물론 보이는 모든 일상들이 빗길이 휘두르는 날 안에 똑 같이 갇혀있다. 결국 그 화자가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팔딱팔딱 수직으로 선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제풀에 겨워 결국은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따끔한 꾸짖음을 느낄 수 있다. 늘 자기 잘난 맛에 자기가 최고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방방 뛰는 사람들 ,위세 당당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시인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소리 죽여 시인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결론 두 작품을 통해서 무의 시와 하이퍼텍스트 시를 감상해 봤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단지 내 생각은 무의미시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로 가기위한 어떤 한 가교 역할을 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전혀 방향이 맞지 않거나 동떨어지지는 않고 공통된 부분을 통해서 업그레이드 된 시론이 하이퍼텍스트시라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는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길만을 고집하며 걸어온 그분들의 문학사적인 체면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험적인 시작 활동에 있어 무수한 번뇌, 유혹, 모든 것을 뿌리치고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오남구의[부드러움의 단상]에서 빗줄기를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비가 갠 허공 속에서 조각난 무지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화자의 이상은 아니 그의 외로운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칼날을 세울 만큼 그의 시 세계에 있어서는 강하고 꼿꼿한 분이지만 그의 심성은 제목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정이 많은 분이란 걸 밝혀둔다. 인생은 결코 부질없다는 것을 빗줄기를 통해 말해 주고 싶었을까? 어려운 작업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다 지쳐 힘들 때 오아시스 같은 시인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급히 길을 빠져 나온다.   3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서론 일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서술하면서 근대에서 탈현대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 모더니 즘까지를 서술, 분석 하면서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본론  1. 시대적 구분  1)근대 일반 적으로 고대, 중세와 더불어 역사 전개의 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가. 넓은 의미의 근대를 18세기 후-르네상스의 (이성 중심)세계관에서 원인이 경제적(자본의), 정치적(민주주의)라는 과정 즉 근대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나. 좁은 의미의 근대를 1920년 이후-실제로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15-16세기에 싹터서,17-18세기의 성장과정 거친 후 ,19세기 산업 혁명 시대에 꽃 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기 이후로 좁은 의미의 그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넓은 의미의 근대만큼은 르네상스 15세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다)다른 견해로 보는 근대 ㄱ. 제1기-19세기 산업혁명에서 완성되는 시기(자유 시장 경제  자본주의) ㄴ. 제2기-19세기 말 독점 자본주의 국가 경영에서 비롯된 시기(제국주의 자본주의) ㄷ. 제3기-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1940년대부터)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기술발전에     의 이루어진 시기(다국적 자본주의) 2)현대- 1930년 이후 (19세기말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3)탈현대-1980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오늘에 이르기 까지를 일컫는다. 2. 작품의 구분 (문예사조)  1) 아방가르드-아방가르드 운동이 넓게는 낭만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보들레르와 같은 세기말 사상을 계승한 반이성적, 해체적 예술 운동     2) 모더니즘- 고전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흄의 철학을 계승한 이성적, 구조 지향적 예술 운동  가. 미국 모더니즘 란 (신학에서 이미 중세부터 시작 )한바 있으나 영미의 문예 이론가들이 20세기에 들어 그들의 특별한 문학 사조 흄(T.E.hulme)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이미지즘, 네오클래식(주지주의.NEO-classic)`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영미의 모더니즘은 유럽의 문학 사조와는 다른 것이다.   나.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아방가르드라 부르는 문학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미래파, 표현주의 영미의 모더니즘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3) 포스트모더니즘-유럽의 아방가르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뒤늦게 미국으로 수입되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미학적으로 반영한 문예사조, 즉 미국 화된 아방가르드이기 때문이다.   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영미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측면에선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논       리   나. 아방가르드를 계승했다는 측면에선 -영미 모더니즘을 계승했다는 논리가 성립 될 수       있다.   다.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영미 문화적 패권주의자들의 논리를 좇아'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아방가르드까지 포함 시켜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본다. ㄱ.모더니니스트 시인    해방 전-정지용, 김광균, 김기림    해방 후 -박인환, 김경린 ㄴ.아방가르드 시인    해방 전-이상, 임화, 고한용(삼사문학)    해방 후- 조향, 김수영(초기),김춘수, 김구용, 이승훈, 오규원 ㄷ.포스트모더니스트    1980-황지우, 박남철, 김영승, 장정일, 김혜순 자생적 포스트 모더니니스트    21세기-문덕수, 이승훈, 오남구 3.작품 분석 1) 탈 관념의‘디지탈리즘시’ 쓰기 " 병치은유 깊은 밤, 내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몸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 선 키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속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가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吳南球의전문 짐승이 불을 키고, 빗소리가 몸속을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신경이 불을 키고 선미루나무가 있고. 짐승의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몇 칼로리 바람이 그리움 되어 미루나무 이파리를 흔든다고 문장 전체를 아주 멀리 병치 시켜서 말하고 있으므로 시적 묘미를 더해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화자는 깊은 밤중에 혼자서 빗소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갇혀 있는 몸속으로 빗소리가 흘러 짐승(이성)이 살아나 새파란 의식의 불을 키고 빗소리를 더 가까이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그 짐승은 때로 환하게 불을 키다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몇 칼로리의 그리움 바람으로 살아나 미루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깜빡깜빡 하다가도 그의 의식을 뭔가가 깨우고 있는 것이다. 때로 지쳐 안위하고 싶다가도 차가운 빗물을 통해 의식은 끝까지 살아 저 깊은 내면으로 부터 알 수 그리움이 그의 여정을 여전히 밟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미루나무가 비를 맞는 풍경과 바람에 이는 이파리들이 내 힘든 나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깝게 클로즈업되어 접사되고 있다. 결론 1.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의 문화론자들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자신들의 문학 사조,즉 이미니즘, 네오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 아방가르드까지도 포함시켜 부르기 시작,미국이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하면서 그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추종한 한국의 논자들까지 풀 수 없는 혼란의 개념 속에서 허우적이며 학계나 문단에서 '모더니즘'론이 끝없는 말장난과 공허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이른바'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도 후자가 전자를 계승하고 있다는 일면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입장이다. 예컨대1950년대에 등장하여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의 1세대라 불리는'뉴욕파'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초현실주의를 수입한 화가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지양, 극복하고 그 대신 아방가르드를 계승한 문예사도들인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모더니즘이란 단어 앞에 포스트란 접두사를 붙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3. 국문학을 배우면서 혼란스러운 것은 이렇다 하는 정설, 즉 결론을 내려 주지 못한 부분에 참으로 혼란을 느낀다. 이쪽으로 생각하면 그럴듯하고 저쪽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고 논문을 읽어 가면서도 어떤 사람들 것을 참고 해야 하나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든 논문이 그 앞사람들의 책을 참고하고 본인의 생각을 가미 한 거라 혼란스러움만 더 초래 할 뿐이다. *참고문헌 -오세영 외 지음 [한국현대 詩 사]민음사 *          오남구[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 4 즉물환타지 Ⅰ서론 융의 원형-인간의 정신 의식 속에 내재한 원형 적인 시적화자를 끄집어내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Shadow-무의식적인 자아의 어둡고 열등한 측면 악마적인 것을 얘기한다. 2. Soul (1) anima-남성의 무의식 내에 존재하는 여성적 측면 (2) animus -특히 여성의 억압된 남성적인 특성(적의, 악의, 악감, 적개심) 3 Persona-인간의 외적 인격이 외부세계와 맺은 자아양상(이성의 능력) 문학 작품의 내레이터(반드시 저자와 동일일 필요는 없다) 즉 가면 해넘이의 부신 해 하나가 서해의 수 천 수 만 물고기 떼의 물속에 빠지자 선명한 분계선을 긋는다. 일시에 선 아래 꿈의 물고기 떼가 눈에다 수 천 수 만 환희 불을 켜고서 동으로 동으로 흐른다. 선 위에서는 다만 파르르르......,화사한 물고기 떼의 노을 지느러미가 떨고 있다.       -오남구吳南球의 전문 오남구는 수평선은 의식의 분계선으로서 직관하는 시점이다. 해가지고 나서 동해로 향하는 물고기 떼는 판타지이며, 독자에게 사진을 찍듯이 염사 하여 내면의식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판타지는 시각에 의에 인식한 사물의 영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맹인은 촉각에 의해서,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한 사람과 빛을 보았던 사람이 서로 달랐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꾸게 되면 빛을 보지 목한 맹인은'캄캄한 허공' 빛을 본 사람은 '하얀 허공'속에서 서로에 대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손으로 잡으려고 한다고 그의 시집에서 말하고 있다. 꼭 즉물환타지라 일컫지 않는 시라 할지라도 모든 시에는 Persona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탈 관념화된 시는 더 그렇겠고 객관적 대상물을 통한 시는 모두 가면 또 다른 자아를 노래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시적 화자를 넘어가는 해 A 로 본다면 이 물고기 떼를 독자 혹은 사람들로 본다. 그 분계선은 중립을 지키는 A'해로 보고 싶다. 그 많은 독자 혹은 인간들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모습은 눈에다 불을 키고 수 천 수만의 물고기 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봤을 때 그 물고기 떼들은 다만 선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다. 시적 화자처럼 중립적이지도 ,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것이지도 못한다고 본다.   Ⅲ 결론 분명한 것은 감히 누구도 쉽게 쳐다 볼 수 없는 그의 시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면 되는 것이다. 라고 나 또한 감히 건방을 떨어본다. 그는 여러 시세계를 넘나들며 실험하고, 아파하고, 고통 받고, 상처받으며 오늘에 이르러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 이었음을 아는 이는 알고모르는 이는 모른다. 그의 책 "꽃의 문답법" 에 보면 서정주 시인과의 재미 난 얘기가 실려 있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 강조 하고 싶은 부분은 모든 시가 또 다른 Persona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싶다. 넓게는 어떤 시인이던 Shadow, Soul(anima, animus) 이런 심상들을 내포한 작품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작품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과 공간을 매 꾸어 본다. 5 패러디  Ⅰ 서론 시의 구성 원리를 리듬, 심상, 비유, 상징, 인유, 패러디로 봤을 때, 패러디는 맨 마지막에 시의 묘미를 한층 살려주는 인유와 혈연관계에 놓인 문학 장치라 본다.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시의 매력과 원리, 정의를 제시해 보기로 한다.  Ⅱ 본론 1. 패러디의 원리(원전) 환한 대낮 활활 옷을 벗고 뛴다. 키 큰 내가 뛴다. 키 작은 내가 뛴다. 적당한 내가 뛴다. 어우러졌다가 일렬로 서서 뛴다. 푸른 밀밭       -오남구吳南球전문 1)모방(인유) 이 화자는 밀밭을 인유하고 있다. 키가 작은 밀과 키가 큰 밀이 있다. 또 표준의 키를 가지고 밀이 있다. 그들과 결코 어울리지 못한 것 같지만 그들과 화자는 나란히 어우러져 더불어 크고 있는 것이다. 2)비판, 골계(모순) 이 화자는 키가 제일 작은 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표준인 밀과 키큰 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 일렬로 뛰고 있는 것이다.     3)변용(창조) 환한 대낮 그것도 활활 옷을 벗고 뛰는 모습에서 이 시의 최상의 부분으로 본다. 그는 결코 음습한 곳이 아닌 환한 대 낮에도 옷을 벗고 뛸 수 있는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연코 그는 실력 면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는 면을  읽어 낼 수가 있다. 결론 부분에서 더 얘기를 하기로 한다. 2. 정의 1)인유와 혈연관계 2)Parodia:다른 것에 반대 입장에서 불려 진 노래  Parodi :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 3)적대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지님 4)모방과 변용이 패러디의 기본 개념 5)고유한 문체를 저급하게 주제에 적용 6)풍자적 목적을 위한 채용 7)골계적인 것, 희극적인 것의 강조 *을 보면 원초적인 '나'가 생명력의 본질이 발동하여 통제와 질서로 부터 일탈하려는 무의식의 '질주'가 일어난다. 이 질주는 감정의 정화로써 관념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탈 관념된 알몸이 막 달리는 본질이다. 화자의 유년기는 아버지로 부터 '-하지마라' '-하라'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하고 길들이고 있었다. 내 속에 성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회 관념으로 자리한 '나의 아버지'는 순수 본질의 아버지와 함께 1975년에 쓴 은 질주하는 성장기의 이런 잠재한 의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적당한'내면의 질서가 '일렬로 서서 뛴다'. 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오남구吳南球                     3. 시의 매력 앞에 보여주는 정의 여러 가지 내용들은 시를 한층 돋보이게 혹은 잘 못 사용하면 저급 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몇 가지들은 시의 활력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의매력이 숨어 있기도 한다고 본다.    Ⅲ 결론 : 이 화자는 전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가장 키가 작은 밀에 속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화자에게 누가 되겠지만 외형적으로는 아주 외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다. 이 분의 작품으로 3학점 3학년 전공과목임에도 굳이 이분을 끝까지 고수 하는데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다. 이 화자를 만난 것은 학기 초에 들어가기 직전 이었다. 원고 청탁을 했었고 우연찮게 나와 절친한 분이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함께 하는 자리에서 별거 아니라고 내미는 시집을 받고, 또 범우사에서 출간한 "이상의 디지털리즘"이라는 이론 집을 받고나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 시피 읽고 또 읽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하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이론 집을 읽고 난 이후에 그의 시집 라는 시집을 대하고 보니 탁 무릎은 칠 수 밖에 없는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아 바로 이거 구나, 바로 이 분이구나 하는 나의 시에 대한 부끄러움과 절실함이 움트기 시작했다. 여태 내가 찾던 그런 시었으며 절로 재미가 나서 글이 쓰고 싶어져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은 내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틈을 주지 않았고 글 또한 만만찮은 그분 눈에 찰 리가 만무했다. 단지 희미한 희망의 실가 닥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도 그분은 기억하시지 못 하겠지만 기초가 탄탄하고 정시인은 오히려 서정적인 시 보다는 모던한 시가 더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 말끝을 놓칠 수 없는지라 틈만 나면 열심히 그분의 시론을 읽고 시를 읽고 나름대로 여기까지 오면서 감히 그분에게 도전이라면 한없이 건방진 거고 그 분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분의 시를 대하면서 우습게도 속된말로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잘 나간다는 분들의 시가 넋두리란 생각에 싱겁기까지 했다. 처음에 그분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내게 4년여 전에 인터넷상에서 내 글을 보고 프러포즈를 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과 함께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왜 선생님은 세상 밖으로 나오시지 않느냐고 동석한 시인이 말했지만 본래 시인이란 숨어서 글만 쓰는 거라는 말과 함께 정시인도 그러려면 아예 시 쓰기를 집어 치우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걸을라치면 내 어깨정도 밖에는 안 차는 그런 분이었지만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넓은 마음과 아버지 같은 다정다감한 마음 씀씀이와 다르게 그의 시 세계는 아주 매섭고 이성적인 번뜩임이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감히 그 분 앞에서 시라는 표현을 쓰지도 못 한다. 작은 밀(A) 큰 밀 (A')표준의 밀(C)라고 볼 때, 가장 큰 밀을 훨씬 웃자란 밀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고 그들과 더불어 일렬로 서서 뛰는 그분의 심상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얼마 남지 않는 학기지만 끝까지 이분의 작품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켜서도 아니고 그 분과 또 다른 친분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여태 방황하던 나이 시세계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한 얄팍한 내 지식이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늘 부족하고 배우는 입장임으로 많은 도움을 요 하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6   어조와 화자 Ⅰ 서론 시적 장치에 있어서 어느 한 쪽 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기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비평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해 본다. Ⅱ 본론: 어조와 화자 1)담화 양식으로서의 시 2)개성과 태도 3)풍자 4)어조창조와 시적 장치 5)어조와 시의 양식 이처럼 여러 단계를 통해서 우리는 시를 감상하고 평 할 수 있는 시적 장치'가 있다면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는 것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본다. 굳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읽은 다는 건 물론 독자의 몫이라 탓 할 것은 아니지만 배우는 입장에서 내 소신을 밝힐 뿐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어조 부분에서 그것도  전문을 통해 풍자만을 설명하고자 한다.     461120-10675**오진현吳鎭賢 2002년 12월 29일 57시로 살아 있음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뇌세포의 신경 체계가 잘 유지된다. 오늘 경운동 88번지에 도착할 시간 10분 남았 고. 잠깐 내 모습의 환영, 팔순 노구가 앞을 멈칫멈칫 가다 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이때 번쩍 뇌세포에 녹화된 화면이 켜진다. 2002년 12월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 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 란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 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띵……, 붉은 전등이 켜진다. 다시 '복제인간 아기탄생!'화면이 겹 친다. 몸이 떨린다. 쾅! 쾅! 쾅! 맥박이 가슴 친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 이 없다 인내천 인내천 소리치고 숨을 고르면서 경운동88번지로 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쏴아-, 싸늘한 바람, 번쩍,5번 출구의 표시등이 켜졌다. 침략으로 점멸하기 시작하는 신호, -5번 출 구,바뀐다.   시련의 점멸하는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며 내 신호 체 게가 경운동88번지로 간다.             -오남구吳南球 전문 개인적, 역사적, 민족적 심장이었던 상징적인 곳으로 나는 거의30 년 동안을 88번지를 향해가며 보고 느꼈다.깜박이며 바뀌어 가는데, 30여 년 전의 세월이 간단히 압축 표현된다. 시인의 시점은 민족 영욕의 역사를 보는 시점이다. 그 이름이 깜박이며 바뀌는 것은 지각없는 민족의식 때문이다.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랍문화원의 이름이 표기되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큰 문제이다. 침략 당하고 있는 민족의 상징이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이 시를 1.2.3연으로 봤을 때 1연에서 이 시인은 경운동88번지가 어떠한 장소였는지 보여 주고 있으며, 경운동88번지로 향해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팔순의 노구를 통해 문득 30여 년 전의 시간을 만난다. 1978년을 만난다. 그는 역사적인 굴욕을 보게 된다. 그 굴욕 앞에서 2002년 12월 24일 밤, “12월 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란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며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연에서 다시 깜박이가 켜지면서 '복제인간 아기탄생' 즉 시인의 진짜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30여년을 걸었던 경운동88번지의 탈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단하게 이 현실이 싫어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가도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익숙한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오는 시간동안 몸이 떨리고, 맥박이 가슴을 치며 숨이 가빠짐을 느낀다. 탈출구를 찾음과 동시에 쏴-바람을 통해서 혼미해졌던 정신에 다시 신호등이 들어 온 것이다. 신호등이 들어 왔음에도 화자는 머뭇거린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긴 하되 시련의 점멸을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화자의 귀향은 돌아오는 그 자리가 어쩐지 꺼림칙하고 화자가 안식할 수 있는 예전의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이국적인 즉 침략을 일삼든 민족의 상징인 아랍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Ⅲ 결론 여기서 분명하게 이 화자는 지금의 경제 식민지, 문화식민지, 종교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는 아득한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머뭇거렸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인 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각성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넓게는 자아와 또 다른 자아와의 담화가 들어있기도 하고 독백이 들어 있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이 들어 나있기도 하고 시적 장치에서 보여주는 논리적 가치와 심리적 가치도 함께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단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제각기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아이러니와 풍자 쪽으로 이글을 바라봄으로써 더욱 시적 가치와 매력을 느끼고 나온다.          7   어조와 화자 중에서 퍼소나 서론 : 퍼소나의 다섯 가지 분류와 그에 따른 "화자의 두 가지 주체"를 대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본론 1. 퍼소나 1)개성론과 몰개성론 2)시점 선택 3)시점의 유형(체험시, 배역시, 논증시) 4)객체와 자기풍자 5)화자의 두 가지 주체 (1)화자는 기호에 지나지 않음 (2)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각 외진 등산길도 호젓이 걸어 보았고요. 땅굴이며 기지촌 색시 굴이며......들여다보고 또 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어 보고 두 주먹으로 눈물만 훔치고 또 시골로 가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이 집도 가보고, 또 보고 끝내는 여치에게 찾아가고 골방 같은 데까지 누구 얼굴을 찾아 보았지요. 나는 5호라는 기호 위를 날아갑니다. 누구 이 얼굴 아십니까           -.1 이 시에 앞서 시詩는 어떠한 것이란 말인가? 빠져 어느 다방에 쪼그려 앉아 성냥개비 다섯 개를 가지고 망수()의 기호를 탁자위에 만들어보고 이 다섯 개의 성냥개비를 쓸어 모아 뿌렸다. 그리고 중얼 거린다. 열 번 백 번, 수 천 번을 뿌렷을 때에 이런 비슷한 모양도 저절로 나타 날 게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모양이 뿌려질 게야. 기상천외한 수많은 가치 있는 모양도 뿌리칠 게야. 우리는 이 모양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겠어 그는 여기서 '시의 발견'시를 쓰는 것만이 아닌 '발견 할 수도 있는 것'으로 못을 박는다. 이 발견은 곧 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영감을 얻어 디지털리즘에서 사진 찍듯이 시를 찍는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1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본인 스스로가 독자가 되어 또 다른 자아에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외지고 호젓한 등산로 길을 통해서 화자는 혼자 쓸쓸히 외길만을 위해 걸어 온 길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으며 질펀한 기지촌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 기지촌은 잘 난 시인 들이 득실거리는 현 글 판을 풍자 하고 있기도 하다. 함축적인 시인과 화자가 구별 되거나 일치 할 수도 있는 부분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자 역시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가 없는 글 판을 질퍽질벅 함께 걸어도 보고 들여다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며 두 눈을 훔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강역시 역시 오염됨을 인식한 그는 사계절이 뚜렷한 아직은 깨끗한 시골을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도 만나보고 골방 같은 데서 즉 화자의 또 다른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한 이 시적 화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공간을 훨훨 날아 있는 3차원 아니 그 이상의 세계를 찾아 5호라는 기호를 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시란 기호에 불과 한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 포스트모더니즘 시 쓰기 맥로한, 델리다를 이어 '하이퍼텍스트'까지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본론에서 말하고 있는 퍼소나의 조건을 모두 함축하고도 남은 작품이라 하겠다. 앞전에도 말했듯이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 인의 많은 제자들은 그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최근에 잘 나가는 시인들은 모두 이 분의 제자 인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시인은 외로운 것이다. 진정 이분만이 느끼는 제자가 없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쩜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우렁을 까먹다가 칵 씹히는 게 있어 보니 그 새끼가 벌써 그 우렁 안에서 집을 짓고 살아보지도 못 하고 함께 잡혀서 가족이 몰살당한 그 상황을 봤다. 어쩜 이 시인은 모던 시 쪽에 있어서는 어미 우렁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내리사랑은 해도치사랑은 어렵다고 한다.  얄팍한 내 지식이 정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8. 미적 거리 거리와 표현 기법 Ⅰ서론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서열화 시키는 걸 좋아한다. 인간-샘물-무기 물 무기물-샘물-인간 역이든 순차적이든 몇 가지 방법을 제시 해 보기로 한다. Ⅱ본론 1. 서열의 역전 2. 소외기법 3. 구조와 반구조 4. 환유 시와 비 유기적 형식 5. 불확실성과 새로운 서사 구조 1    시장 정육점 갈고리에 생고기와 나란히 걸린 가죽,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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