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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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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라이프 스페이스 댓글:  조회:2846  추천:10  2014-07-22
. 중편소설 .   라이프 스페이스 (Life space . 生活空間)     김혁     …양은 자그만 플라스틱함속에 갇혀있었다. 성냥감크기와 맞먹을 함이였다. 전자애완놀이감(电子宠物)이라 했다. 독실의 뙤창처럼 함에는 작은 형광막이 달려있었다. 그 아래 배렬된 팥알만한 버튼중에서 ON을 누르면 형광막속에 양 한마리가 (적절히 말하면 양의 형체가) 나타난다. 탄소연필의 굵직한 선으로 그려진듯한 양은 소학생의 도화책에 그려진 그것처럼 엉성함에 가까운 모양을 짓고있었다. 허나 그것을 애숭이의 원시적인 놀이감으로 치부해선(절대) 안되였다. 맴, 맴— 파렬음으로 울줄도 알았고 배고픔과 추위, 지어 밝음과 어둠에 대해 표현할줄도 알았다. 울음소리와 함께 hungry(배고프다)dark(어둡다)는 표시가 형광막의 웃모퉁이에 나오면 인차 버튼을 눌러 먹이를 주거나 물을 주어야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보채는 아이처럼 끝없이 울어댈것이고 소홀하면 “죽”어버릴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놀이감은 던져버리게 되는것이다. 시상에! 별 기뜩찬 물건 다 있네?  생일날, 남편이 전자오락물을 선물했을 때 색시는 거짓말 같은 놀이감의 공능에 대한 설명에 생게망게 눈확을 키웠다. 일본사람들이 발명한 오락제품, 양 말고도 개, 돼지, 캉가루, 말… 벼라별 형태가 다 있다고  했다. 허나 남편은 굳이 그녀에게 양을 골라주었다. 그녀가 양띠생이였던것이다.  색시는 놀이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놀이방법에 익숙해감에 따라 양(전장양)은 그녀의 손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양의 따스한 털을 만지듯이 형광막을 애틋하게 어루쓸기도 했고 모방음이지만 양의 단조롭게 풀이되는 울음소리에도 색시는 전률 같은 련민을 느끼군 했다. 경건한 신교자의 손에 마냥 들려있는 념주나 성경책처럼 전자양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잘 때에도 벗어둔 목걸이와 함께 머리맡에 꼭 놓아두군 했다. 밤에 몇번씩은 깨여나 형광막에 켜지는 파르슴한 야광불빛을 빌어 “잠자는 양”을 오래도록 지켜보기도 했다. 전자양을 지켜볼 때마다 색시는 고향의 앞뜰에서 어리쳐놀던 자기집 바둑이를 생각했다. 미채복(迷彩服)을 입은듯이 무의가 유난히도 선명하고 코가 마냥 개구장이 코처럼 축축한 바둑이였다. 바둑의 눈은 갈색 비슷한 색조를 머금고있었다. 모든 유순하고 귀염성스런 동물의 눈은 모두 그런 애련한 빛갈을 띄고있다고 색시는 생각했다. 바둑이는 작년 봄에 죽었다. 강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먹고 죽었다. 강의 웃목에 언젠부텀가 종이공장이 섰고 그때부터 강은 구질한 녀인네의 속곳을 빨아낸 물처럼 혼탁하게 변해버렸다. 그 물에서 부유하고있는 고기들은 이전의 고기들처럼 약삭빠르지 못했다. 그래서 손쉽게 잡을수 있었고 바둑이에게까지 생전부페가 차례졌는데… 온몸으로 경련하던 바둑이는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 솜뭉테기처럼 구겨박힌 바둑이를 안고 그녀는 몹시도 울었다. 양징맞게 생긴 발이 상할세라 버선까지 신겼던 바둑이였다. 버선을 신은 바둑이는 그녀를 따라 동네 마실돌이를 곧잘 다니군 했고 때가 늦어지면 그녀 봉당에 벗어둔 그녀의 신우에 누워자군 했다. 그런 바둑이를 무엇이 주살했는지 그녀는 그 영문을 쇠통 알길이 없었다. 바둑이도 이렇게 플라스틱함에 넣어 자기 신변에 꼭 간직할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색시는 생각해보았다. 꿈결에 바둑은 늘 그녀를 찾고 반기였는데 깨여나보면 그 애모쁜 생령은 전자양으로 화하여 색시의 숨결가까이에 있는것이였다. 색시는 정덩이가 큰 녀자였다. 원체 눈가에 입귀에 일신에 배여있는 정덩이가 요사이는 버거운 충만감으로 더 크게 팽만해오르고있었다. 가정이라는 신비한 궁정에 처음 들어선 색시는 하늘같은 충족감을 아름벌게 안고있는것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임신 석달이였다. 새록새록 달라지는 몸태와 마음가짐이 그녀를 더욱더 그녀답게 건신스럽게 만들었다. 바둑이가 다시금 꿈결을 찾아드는것도 전자양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것도 바로 이러한 몸과 마음의 변화로부터 비롯된것이였다. 원체 헐렁한 멋으로 입던 블라우스가 조붓해오르고 완벽하던 몸 맨두리가 자기의 그것 같지 않게 날로 삐여지고 무거워오르는것을 의식할 때면 색시는 경아와 행복감으로 반죽된 전률에 가슴을 할딱거렸고 그 가슴을 눅잦히려 들 때마다 전자양을 들여다보군 했다. 괜스레 먹이도 주고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 전자양은 분수를 지키련듯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런 양이 용용 귀여워 색시는 혼자 웃군 했다. 전자양은 색시의 유일한 벗이였다. 남편이 출근한 뒤면 혼자 집에 남아야 했다. 아직 가벼운 일쯤은 찾아할수 있다고 했지만 남편이 혼겁을 떨며 굳이 집에서 놀게 했다. 색시네 고향에서 녀인들은 만삭이 되여서도 밭일까지 거들군 했다. 허나 시가지 사람들은 그들과는 달랐고 원체 꼼꼼한 남편은 더욱 달랐다. 조금난 무거운 물건을 들어도 시한폭탄이라도 쥔듯 제지시켰고 찬물에 손을 넣어도 불덴 사람처럼 소리질렀다. 그런 남편이 색시는 감사했고 그로 해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에 따르는 고충은 남편 모르게 큰것이였다. 고향의 향정부 강당같이 널직한 집은 7층높이에 있었다. 일전 같으면 개암 뜯으러 산자락을 톱던 본때로 단숨에 치달아 오르련만 몸태가 변한 지금에 와서는 오르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러니 그녀는 날개죽지여물지 못한 새같이 언제나 보금자리를 지켜 죽치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어느 한번 례사롭게 층계를 내여갔다와서 남편에게 단단히 신책을 들었다. 얼음아가위꼬챙이(冰糖葫芦)를 파는 장사군령감의 사구려소리를 용케 가려듣고 아래를 향해 구명을 바라는 사람처럼 기다리라 목청 깨지게 소리질러놓고는 힘겹게 사들고 올라온 아가위를 바작바작 깨물어 단숨에 먹어치웠다. 남편이 볼가봐 꼬챙이들을 짧게 끊어 휴지통에 버렸는데 남편이 귀신같이 알아차렸던것이다. 층계를 내리다 넘어지면 어쩌냐? 격렬한 운동은 아이에게 불리하다! 게다가 불결한 한족령감태기가 “침을 발라” 만든 아가위를 먹고 병이 나면 어쩔려구? 하고 남편은 필요이상으로 야단을 떨쳤다. 그후로 모든 물건은 남편이 사올렸고 쓰레기도 남편이 내려버렸으며 그녀의 소풍도 남편의 배동과 부축임이 있어야 진행될수 있었다. 색시는 자기가 플라스틱함속에 갇힌 전자양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하고 자꾸만 갑갑했다. 허나 갑갑한 외로움보다 더 큰 고충이 하나 있었다. 집은 남편이 회사로부터 분여받은것이였다. 높고 크고 비싼 집이였다. 집값은 그녀가 듣고 기겁초풍할 정도로 비쌌다. 그만큼한 앳된 나이에 이만한 집을 쓰고 사는 젊은이들이 이 큰 도회지에서도 많지 않았다. 모두가 남편이 잘난 덕분이였다. 남편은 그냥 두고보아도 오나벽하게 좋은 집에 또 집값의 절반쯤을 내치고 장식을 했다. 응접실의 등을 바꾸어달고 베란다로 나가는쪽을 늄합금으로 격리시키고 침실의 벽을 새로운 색조로 칠하고 문변두리마다 나무로 둘레를 치고 주방의 천정을 낮게 드리우고 화장실의 멀쩡한 타일을 뜯어 새로 달고 … 침대며 쏘파며 책상이며 탁자며 옷장이며 경대며를 사들였다. 새집들이 하던 날 세상에! 하고 색시는 황홀감과 만족감에 전률했다. 허나 그 전률은 얼마 못가서 다른 전률로 변해버렸다. 별천지같은 집은 온통 황금빛의 냄새로 충일해오르고있었다. 그것은 멋의 냄새였고 풍요의 냄새였다. 허나 시각적으로 직결되는 냄새보다 치부에 선뜩 닿는 냄새가 있었다. 회벽의 냄새, 장식페인트의 냄새, 가죽쏘파의 냄새, 가구의 점착제 냄새… 그 냄새는 작렬하는 고추가루폭탄처럼 색시를 향해 던져졌다. 색시는 물밑에 가라앉은 사람처럼 학학대며 냄새의 수면우로 떠오르려 허둥거렸다. 냄새는 독즙을 바른 동침끝처럼 색시의 코속을 찔렀고 눈확을 찔렀다. 색시는 덴겁히 달려가 창을 벌컥 열어젖혔다. 하늘이라도 받아 마실듯 심호흡을 했다. 허나 텐넬을 나선 후각의 질주는 다시 다른 텐넬속으로 몰입되여갔다. 밖은 매연으로 꽉 차있었다. 매연은 유괴하는 악당처럼 큼직하고 바짝 마른 헝겊뭉치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검은 보자기로 그녀의 눈을 감쌌다. 울컥 욕지기가 치밀어올랐고 구정물이라고 받아마신듯한 이질감에 색시는 진저리를 쳤다. 창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창속에서 눈앞까지 박두해온 냄새의 독아가 다시 한번 새시를 단단히 그리고 집요히 물어떼였다. 첫날부터 색시는 기침하고 토하고 열이 올라 꼬박 밤을 지샜다. 그녀와는 달리 남편은 무사튼튼했다. 기동차가 앞을 스쳐도 휘발유냄새가 좋다며 코를 흡— 들이마시였다. 색시는 문을 열면 페부가 아프도록 찡한 향간의 싱싱한 공기, 앞뜨락이 미여지게 만개한 초록빛 소채의 냄새, 몇걸음에 닿을수 있는 앞강물의 물내음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하다못해 우사를 지날 때 맞혀오든 소똥의 냄새도 이에 비하면 외제향수와 같은 향유로 느껴질것이였다. 임신오조도 없이 무양히 지내던 색시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남편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에 갔대야 《우황청뇌환》 몇갑을 달랑 던져주었고 저마다 신체소질차이니 용빼는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러는 색시가 보기에 안쓰러워 호텔방을 잡아주었다. 에어콘이 있는 방에서 그녀는 물을 금시 갈아댄 어항의 고기처럼 새로운 률동을 찾았다. 애매한 돈을 일주일가량 휘뿌리다 색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남편이 통풍에 신경을 무척 쓴 덕분에 냄새의 무리는 많이 주자를 놓았다. 허나 잔여는 여전히 악당처럼 집요히 색시를 추적해왔다. 다시 열을 내며 토악질해대며 색시는 냄새에 불편해지는 심기를 바로 잡고 그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개살구에 체한 속을 삭이려 애쓰던 그때처럼 애쓰고 또 써서 들쉼날쉼이 능해진 수연초단자처럼 정상으로 환원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후로 색시는 늘 묵지근한 두통을 짐짝처럼 달고 다녔다. 꼭 그녀처럼 냄새의 중독하에 시달리는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다. 색시의 시아버님이였다. 색시의 남편은 우로 누님 셋을 둔 막내였고 그의 아버지는 마흔을 넘겨 아들을 보았다고 한다. 막내동인 남편이 이제는 삼십을 넘겼으니 그 나이가 어중간한 누님 두분은 불성사납게 (꼭 같은 페암으로) 일찍이 가고 세째누님과 둘이만 남은터였다. 집도 널직하고 아들도 이만하면 사회동량이니 부담없이 옵시사 하고 모셔온 아버지는 일흔에서도 몇고개 허위허위 넘어선 나이였다. 시아버지를 맨 처음 대하던 때 색시의 첫인상은 남편이 아버지와 도무지 닮은양이 없다는것이였다. 년로한 연고도 있었겠지만 남편같은 당당함과 박력과 그에 밑받침된 튼실함을 유전의 뿌리로 내렸을 시아버지에게서 도무지 체취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이 적은 로인이 이 세상 어디도 없었다. 다박솔 수염속에, 가려 보이잖는 입은 밥 자시는데만 사용되는거나 아니냐고 요행 합석한 어느 밥상에서 색시는 버릇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만큼 어려운 시아버님이였다. “사위사랑은 장모에게,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에게 있다”고들 하는데 색시는 이 가문의 문턱을 넘은 뒤로 시아버님과 말 몇마디조차 나누어보지 못했다. 남편이 잘해주어서 세상 부럼 없었지만 시아버지의 침묵으로 각인된 뒤모습을 볼 때마다 색시는 어려웠고 야속했다. 냄새의 세례를 이겨낸지 얼마 안되여 또 다른 골치거리가 그녀에게 생겨났다. 한밤중이면 색시는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군 하였다. 야밤에도 주책에 가깝게 쏘다니는 차량의 악지스런 소리에 이명(耳鸣) 비슷한 증세까지 생긴 그녀의 귀에 그 소리는 다른 농도와 줄기로 잡혀들었다. 랭동기의 작동소리는 아니였고 화장실에 켜둔 일광등이 내는 소리도 아니였고 (농가의 구석에서 울던 여치소리는 더구나 아니였다)… 하지만 분명 집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색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속옷바람으로 침실을 나섰다. 소리는 다른 한 침실, 시아버님의 방에서 나고있었다. 방은 불을 죽인 상태인데 소리는 실타래처럼 굴러나오고있었다. 목구멍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의 파장으로 때로는 궁글게 때로는 유연하게 이어지군 했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신음같기도 애원같기도 한 소리였다. 온 집안에서 굼닐고있는 화학품의 이질적인 냄새때문에 아버님도 그녀처럼 앓고있는지라 색시는 이튿날 두통약을 자시게 하고 그런대로 묵과해두었다. 허나 밤마다 그 소리의 파장은 멈출줄을 몰랐고 대신 잔잔한 흐느낌으로부터 높은 소리로 껑충 뛰여올랐다. 게다가 나중에는 새로운 내용물까지 보태여져 완정한 말마디까지 이루었다. 그 말마디는 대체로 한두가지뿐, 입속에 뭉그려 내뱉았지만 그 불투명한 갈파중에서 색시는 한마디만은 가려들을수 있었다. 소리는 저녁마다 어김없이 혹은 짐짓 그러는듯이 울렸고 때론 마디마디가 강약을 가미쳐주며 악청으로 변조되기까지 했다. 가자! 돌아를 가! 가자! 돌아를 가아! 그 소리에 저녁이면 색시는 잠 같은것을 아예 깨끗이 반납해야 했다. 놀라 남편의 품을 파고든적도 한두번 아니였다. 그런 경황도 모르고 남편은 이불자락을 잔뜩 구겨안은채 세상 모르고 잠의 나락에 빠져있었다. 아침, 색시가 아버님이 큰병에 든거나 아니냐고 걱정을 달고 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 시골서 상경하여 임자처럼 습관이 안돼서 그러는거… 남편은 그녀의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자기에게 잘해주는 남편의 일상에서 화락한 정의 소유자임을 느끼고있었으나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 정의 열도가 달랐다. 자기를 향한 잉걸불의 익어번짐이 아니라 타고 버린 콕스처럼 미열이였다. 부자간 역시 평소에 말의 나눔 같은것조차 적었고 부모가 자식에 대한 높음과 권위 같은것도 없었다. 그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서로를 다치지 않지만 또 서로를 바라볼수는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살아가고있었다. 집에는 늘 황량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남편이 효도에 등한시한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도 있었으나 남편의 문벌이나 인끔으로 봐선 그런 무지막지한 정도일수는 없었다. 자기보다 훨씬 조건이 월등한 집에 들어서서 자격지심에 그 무엇이든 생광스럽고 다르게 보이는 색시에게 있어서 도회지사람들의 정감표달방식은 자기들과는 달리 이런 식인가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있는 도회지 량반들이 마음의 무늬를 도무지 읽어낼수 없었다. 시아버지는 식사조차 따로 했다. 늘 저러셨어! 개다리소반에 놋그릇으로 혼자서 자시는것이 아버지의 본분이고 품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지금이 어느땐데… 소반도 없고 놋그릇도 없어. 색시와 함께 단둘의 식탁을 마련하고 안해입에 좋은 찬을 골라 넣어주며 옥시글거리는 식사가 좋은 모양, 남편은 명절을 제외하곤 시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이 안쓰러워 밥도 더 떠들고 입가심물도 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설라치면 외려 아버님이 성가스러운지 수저를 들다말고 며느리가 나가기를 기다리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고 색시는 아버님문방에 곽밥 조달하듯이 음식상을 차려만 올렸고 한겻이 지나보면 빈 그릇들이 싱크대우에 올려져있는것이였다. 간혹 아버님방을 떼고 들어서 보면 아버님은 늘 침대가 아니라 늘 베개나 쏘파방석 같은것을 안고있었다. 그것도 그저 안고있는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빼앗기기라도 할것 같이 부등부등 그러안고있었다. 얼굴은 협심증환자처럼 고통스러워보였다. 크게 아픈것으로 알았으나 그런게 아니였고 평소에 어쩌다 문을 열고 들어서보면 아버님은 여구하게 꼭 그런 모양을 하고있었다. 아빠트단지에도 로인활동실이 있으니 가서 화투장이라도 번지라고 권유했으나 령감님은 평생 놀음과는 강을 사이두고 살아왔다고 했다. 문구장에 구경이라도 가라고 권하고싶었으나 도시 가녁쪽에 있는 문구장으로 가려면 뻐스를 두세번 갈아타야 했다. 아버님이 어떻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견뎌나가는지 색시는 궁금했다. 시간의 형벌을 이겨내느라 아버님은 저렇게 힘들고 괴상한 동작을 반복하고있는걸가? 간식으로 빵이나 쥬스 같은것을 들여가도 아버님은 잡숫질 않았다. 혹간 시원한 사과배를 보면 숟가락으로 호비작여서는 힘들게 자시군 했다. 그리고 어느결에 숟가락은 싱크대에 올려져있고 로인님방의 문은 다시 견고한 성체의 문처럼 굳게 닫히군 했다. 화장실로 가다가 며느리와 맞띄게 되면 아버님은 웃음이라도 지어보려 했다. 허나 풍상에 할퀴여 화석화된 얼굴에서 그 흔한 웃음은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웃음 비슷한 근육조합을 만들어보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색시에게는 우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우는것 같은 웃음도 차차 사라지고 그저 잠시의 일별이 그것을 대체했다. 물건을 가득 집어넣은 호주머니처럼 처진 눈확을 치켜올리며 며느리를 쳐다보는 아버님의 목청에서는 침묵과 함께 응고된 가래침이 목젖의 울림으로 떨꺽 하는 예상외의 높은 소리를 내군 했다. 자시는것이 적어서 화장실출입마저 드물어갔고 로인님의 방문은 청태 돋은 동굴의 문처럼 깊이깊이 닫혀있었다. 그 문이 영원히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색시는 불안감과 함께 떠올린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새도 남편이 하는 모양으로 시아버님과 두서없이 애매한 거리를 만들고있었다. 시아버님 스스로가 재여 만들어낸 거리일수도 있지만 그 거리는 초점을 잘 맞추지 않는 망원렌즈의 부면(负面)으로 내다본것처럼 흐릿하고 불확실했다. 그러고보니 늘 색시곁에 있고 색시와 가장 도타운것은 그 전자양일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짓거리도 잠간사이, 양에게 “먹이”를 먹이고 “물”을 먹이고나면 색시는 심심하고 갑갑하고 울적해지는것이였다. 어느 한번 남편이 관상용 물고기를 사왔다. 둥근 어항을 사고 그속에 비닐로 만든 수초를 넣고 분경(盆景)같은 가짜 암석을 넣었다. 산소방출기도 어항에 부착해놓았다. 산소기는 수은대를 쳐든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기승스레 물방울을 뿜어올리고 있었다. 그 인공의 풀과 인공의 돌과 인공의 공기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안주를 했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것 같이 전신이 새까만 물고기였다. 캐씽구라미라고 하는 아열대의 물고기였다. 웃기는 놈들이야 암놈 숫놈이 꼭 붙어서 살지. 그러다 개중에 한놈이 죽게 되면 남은 놈은 따라서 죽는대. 우리처럼 잉꼬부부! 남편은 물고기네 세간을 들여앉히고나서 색시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의 기쁨과 무료를 위해 일껏 마련한것이였다. 임자 금붕어가 어떻게 우는지 알어? 남편은 아직도 무감각한 그녀의 흥심을 유발시키련듯 평소의 그같지 않게 얼굴을 우스꽝스레 변형시켜보았다. 금붕! 뿔루루루-금붕! 뿔루루루-하고 울지. 시상에! 색시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웃었다. 오래만에 웃어보는 큰 웃음이였다. 남편의 노력에 보응해주려는 뜻도 없지 않은 그런 웃음이였다. 창턱에다 물고기의 령지를 잡아주었다. 어항속은 진기한 호박(琥珀)속처럼 생동했다. 높은 창턱이라 창밖의 풍경과 겹쳐보면 어항은 꼭마치 마천루의 꼭대기로 부표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매연으로 자오록해지는 저녁께면 어항은 탁한 물밑에 버려진 수정구처럼 보였다. 캐씽구라미가 유연한 몸집을 격렬히 비틀 때면 외부로부터 덮씌워오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의 마지막 깨끗한 령지를 보호하려는 그런 상념의 몸놀림으로 보였다. 흑옥같은 물고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색시는 캐씽구라미는 왜 이렇게 새까말가? 깨끗한 섬지역에서? 도시에 이주해 살며 미연에 그을려 이렇게 된걸가? 하고 의문을 가져보았다. 전자양과 함께 그녀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었던 개씽구라미는 도회지에 이사온지 며칠 못가 죽고말았다. 수면우에 떠올라 탄성한계로 늘어졌는데 마냥 정열적으로 흔들던 기발같던 꼬리는 아래로 드리워져있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하나가 먼저 죽었는데 남편의 말처럼 다른 놈도 인차 따라 죽었다. 색시는 섬찍한 눈길로 어항을 들여다보았다. 바둑이가 죽었을 때와 못지 않는 충격이 예리한 쇠못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산소방출기는 무치한 흡독자처럼 꾸르륵꾸르륵 수연대의 소리를 계속 내고있었다. 수도물탓일거야. 수도물을 하루밤 재워 줘야 하는건데. 혹시 먹이때문인지도 몰라. 지금은 물고기 먹이도 가짜가 있으니깐… 남편은 캐씽구라미의 죽음을 두고 형사처럼 추리를 반복하고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수도물에 문제가 있는것 같았다. 이곳의 수도물에서는 늘 이상한 냄새가 났다. 장농에 넣어둔 장뇌환냄새 같은 … 식기에 담가두고보면 이튿날이면 노란 침전물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남편은 꼭꼭 7층을 달아내려 약수물을 받아오군 했다. 약수차는 아침마다 촌마을의 배달부처럼 어김없이 왔다. 간혹 시간때문에 받지 못할 때면 멋스레 포장한 트링크에 들어있는 순정수(纯净水)를 사왔다. 걸러내고 또 걸러냈다는 물은 깨끗하기는 했지만 자갈 삶은 물같이 무맛이였다. 그리고 색시는 분명 플라스틱용기의 뇌리치근한 냄새를 음미해낼수 있었다. 수도물때문에 곤경을 치른적도 있었다. 처음엔 배탈이 났는데 그쯤은 약과이고 수도물로 그곳을 씻었더니 염증을 앓았다. 결벽에 가까운 그녀와 마냥 양장을 고수하는 깔끔한 남편이 불결해서가 절대 아니였다. 그렇다면 캐씽구라미는 분명 물탓에 잘못된것이였다. 아니면? 남편은 다른 한쌍의 캐씽구라미를 모셔왔다. 물을 정성껏 갈고 먹이도 포장먹이가 아니라 늪이나 물웅뎅이에 사는 비싼 진홍빛 기생물을 사서 주었더니 별고없이 자랐다. 그렇게 탈없이 자라주는 물고기가 색시는 괜스레 감사하기만 했다.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차차 적어지자 색시는 다시 한번 어김없이 다가오는 계절처럼 선연한 무료를 느꼈다. 전자애완물의 버튼을 열싸게 누르고 캐씽구라미네 집—어항을 똑똑 노크도 해보고 하다가 색시는 어떤 물건에 눈길이 미치고 생각이 미쳤다. 방이 세개 딸린 집이라 그들 부부가 한칸, 시아버님이 한칸 차지하고 남은 한칸을 남편은 작업실로 만들었다. 그곳에 컴퓨터 한개가 놓여있었다. 남편은 어느 이름있는 컴퓨터공장의 위탁으로 컴퓨터대리판매부를 하나를 차리고있었다. 컴퓨터가 그렇게 잘 나가주어 남편은 성공한 실러리맨으로 떠올랐고 가정 역시 먹고 입는 걱정없이 잘 꾸며져가고있는것이엿다. 전에 색시는 컴퓨터를 본적 없었다. 컴퓨터를 보자 맨 처음으로 텔레비죤과 꼭 같은 물건이라 생각해두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컴퓨터를 배워주었다. 작동원리를 배워주었고 유희를 배워주었다. 컴퓨터에 재미를 붙일무렵, 남편은 그녀가 컴퓨터를 배울감이 아니고 또 컴퓨터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건강에 해롭다며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포기해버렸다. 그후로는 그저 컴퓨터의 먼지를 닦으면서 만져보았던 그녀였다. 색시는 어덴가 두려움이 동반된 심정으로 남편의 작업실로 들어섰다. 컴퓨터는 도고한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었다. 색시는 조심스레 백포를 벗겼다. 컴퓨터가 문지광같은 외눈으로 그를 지릅떠보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을 굽혀 힘들게 작업대밑에 달린 구멍에 프라그를 꽂아넣었다. 폭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작동버튼을 눌렀다. 팽—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가 밝아졌다. 비온뒤의 닭이 쏘다닌 흔적 같은 형상의 영어자모들이 모니터속에 오글오글 숨어있었다. 키보드를 눌렀다. 남편이 배워준 기억을 애써 살리며 유희실을 찾았다. 그녀는 무얼 찾는데서는 선수였다. 자기손 같지 않게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을 구명물처럼 키보드에 얹혀있었다. 드디여 유희실로 들어섰다. 시상에! 색시는 커다란 배에 두손을 얹고 성취감에 이몸이 모이도록 웃었다. 트럼프유희였다. 수자와 꽃의 색을 맞추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유희였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꽃을 서로 엇바꾸어 박아넣으면서 A로부터 K까지 맞추어내는 유희였다. 손때 오른 트럼프장을 침 발라가며 번져가는 번거로움이 생략되고 키보드만 가볍게 치면 트럼프장이 척 번져눕는 신선스런 컴퓨터유희였다. 검은 하트 8이 올라가고 붉은 다이아몬드 7이 올라가고 검은 스페이드 6이 올라가고 붉은 클로버 5가 올라가고… A, 2, 3, 4, 5, 6, 7, 8, 9, 10 , J ,Q, K 붉은 하트 검은 스페이트 검은 하트 붉은 스페이드… 붉은 클로버 검은 다아몬드 검은 클로버 붉은 다아몬드… 적목탑을 쌓고 허무는 아이처럼 무진한 재미에 탐해버렸다. 배속의 아이도 그때면 즐거운듯 꿈틀이며 어떤 정감의 반향을 보이고있었다. 눈이 아물아물해나고 어깨가 욱신욱신해나서야 색시는 직성이 풀이였다. 그러다 전자애완물처럼 캐씽구라미처럼 어느날 그것도 시들해졌고 색시는 다시 한번 죽음같이 깊은 적적함에 빠져들었다. 전자양은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은듯 어제도 저제도 그런 모습이였고 캐씽구라미는  “수연대”의 꾸르륵 소리속에 블루스를 추듯 짝지어 놀고 컴퓨터는 수녀처럼 백포를 뒤집어쓰고있다. 그리고 시아버님의 방문은 그냥 호전(好战)파 장군이 없는 성채처럼 굳게 닫힌채로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벅적지근하게 칼고함이라도 질렀으면 벽이 시원히 뚫릴것 같았다. 그러나 창을 열지 않는것은 이곳의 법도처럼 간주되여오고있었다. 해동이 되기 바쁘게 도시에는 집짓기공사가 성세호대하게 펼쳐지고있었다.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에서도 새집짓기가 한창이였다. 격렬한 전기드릴소리, 무언가 왕창왕창 깨물어 먹는듯한 콩크리트 믹서(搅拌机)의 소리, 거대한 트럭이나 뜨락또르, 견인차, 크레인의 동음소리…부르릉… 쾅쾅… 꺼르르르릉… 게다가 풀썩 분만해오르는 화약같은 먼지… 창만 열면 어쩌구려 복마전에 잘못 들어선 기분이였다. 그러나 그저 갑속에 (삐까번쩍 빛나는 호화주택이여도 어쩐지 갑속같은) 옥속에 수인처럼 갇혀 자질구레한 시간의 나락을 손톱 벗겨지게 한알한알 까먹고있는것만 같았다.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리길 색시는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노올자! 아무개야 노올자! 하던 동네의 주책에 가까운 마실돌이가 그렇게 그리울수 없었다. 옆집으로 서로 좋은 음식도 오가고 유쾌한 잡담도 오갔으면 좋으련만 이웃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한족집이였고 층계에서 간혹 마주쳐도 옷매장에 세워놓은 마네킹 같이 무표정으로 지나쳐버린다. 손잡이조차 없이 견고한, 불수강 열쇠로 뚜지고 힘껏 당겨야 하는 방범문(防盗门)이 쾅! 하고 닫히고나면 층계나 랑하는 그저 괴괴한 적막만이 감도는 사각(死角)지대이다. 딩동!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사람이 그리운 색시는 무거운 몸매를 재빨리 놀려 문가로 다가간다. 견고한 방범문 빗장을 성큼 빼여낸다. 문을 함부로 열어주면 안돼. 자물쇄걸이도 없는 임자네 그곳과 달라. 떼강도가 우왁! 덮칠는지고 모르니깐… 남편이 신신당부했지만 색시는 초인종소리만 울리면 본가집어머니를 반기는양 자빠질듯 달려가 문을 따군 했다. 그만큼 그녀는 사람의 냄새를 그리워했던것이다. 남편은 방범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사람을 확인하라했지만 색시는 어쩐지 그것이 싫었다. 방범문의 렌즈로 내다본 사람의 얼굴은 떡반죽을 심술껏 비탈아 당긴 모습이였다. 그런 형상이 색시는 싫었고 그런 불신의 확인이 색시는 싫었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남자가 서있다. 광고팜플렛을 강다짐처럼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의무를 다 래행한듯 층계를 계단을 건너뛰며 성큼성큼 내려간다. 그 광고지로 색시는 종이학을 접는다. 저도 모르게 죽은 바둑이 생각이 나 강아지를 접는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서있다. 쇠수세미를 불쑥 내밀며 사라고 한다. 박박 긁어댈 쇠가마도 없지만 입성이 꾀죄죄한 아낙네의 고충을 헤아려 하나 사든다. 2원50전인데 3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찾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는 텔레비죤에서 보아 너무나 잘알고있는 날씨에 대해 구태여 묻는다. 비가 오나요? 안오나요? 왜? 온다구 했는데… 딩동! 문을 따고보니 이번에는 낯모를 아가씨가 서있었다. 생리대를 들고 공장가격보다도 눅으니 사라고 한다. 필요없게 된 몸이지만 공장가격보다 눅다니 한박스 사둔다. 묻지도 않은 말을 아무 사람하고나 말한다. 난 이런걸 많이 써요. 생리통도 심했구요… 딩동! 문을 따고보니 키가 꺽두룩한 사내 하나가 식칼을 들고 서있다. 식칼장사이다. 그리고 벙어리이다. 으바바 으바바… 괴성을 질러대며 식칼로 콩크리트바닥을 마구 쫓는다. 콩크리트바닥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튕긴다. 식칼이 그렇게 단단하다는 뜻이다. 남편이 엄청난 액수로 한국산 주방도구 한세트를 사놓은것이 있지만 색시는 벙어리의 처경이 불쌍해 하나 사준다. 벙어리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빼들어보이고는 식칼이 든 방수포주머니를 절걱이며 층계를 내린다. 그러다 발을 겁디뎌 비명을 지른다. 타마디! 색시를 도적눈깔 해갖고 쳐다보다 구을듯이 층계를 내려간다. 시상에! 색시는 가짜벙어리 장사군임을 뒤미처 기수채고 조롱당한 느낌으로 자탄을 내지른다. 딩동! 문을 따고보니 반갑게도 시누이가 오셨다. 입덧이 날 때이니 몸보양을 잘해야 한다며 먹을것을 한구럭 사들고 왔다. 구운 통닭이였다. 미국식 작시법으로 만든것인데 캔더키프라이드닭이라고 했다. 기름기 있는 그런것이 전혀 입에 당기지 않았지만 감격해하며 받았다. 색시는 촌에서 명절 때면 팥을 두툼히 넣어 해먹던 시루떡이 무척 먹고싶었다. 곁에서 국먹어라 나물먹어라 하며 살뜰하게 돌봐줄 친지 하나 없는 색시였다. 시아버님에게 알릴가 하며 일어서는데 시누이가 막았다. 지나던 걸음에 들린터이니 조금 앉았다 일어서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괴춤에서 돈 300원을 내놓았다. 먹고싶은것을 사먹고 나머지가 있으면 아버지에게도 고기쪽으로 떠올리라는것이였다. 시누이는 늘 그랬다. 요행 와서는 친아버지 얼굴도 보지 않고 가버리기가 일쑤었다. 그러나 부양의 의무는 잊지 않으련듯 예정했던 부양비보다는 조금 넘쳐나게 달마다 어김없이 꼭꼭 가져왔다. 올캐가 애기설이하는 마당에 아버지를 그 기간이라고 내가 모셔야 하는건데… 시누이는 마냥 미안쩍은 기색이였지만 색시는 아량해주었다. 시누이는 살림이 궁한것은 물론 자기 남편보다 더 강하게 아버지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있는것을 색시는 감득할수가 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님은 딸이 온줄도 모르고있었고 시누이는 엉뎅이가 따뜻해질새도 없이 훌쩍 일어나 가버렸다. 문켠에서 발길을 멈추고 몸태가 삐여진 꼴을 보니 낙자없이 “주전자” 달린 놈일거야!라고 더닥을 했다. 색시는 시누이가 사온 닭구이를 가슴패기쪽으로 잘게 찢어들고 시아버님 방으로 들어갔다. 시아버님은 여전히 그 본새 그 모양이였다. 온수온돌인 바닥에 베개를 잔뜩 그러안고 잠들어있었다. 색시는 음식그릇을 시아버님곁에 놓아주고 소리를 죽여 문을 닫았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아직도 반천은 걸려야 했다. 전자양에게 먹이를 주고나서 컴퓨터에 마주 앉았다. 패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체중기에 넘쳐 꺼버렸다. 어항가까이에 가서 힘들게 들여다보았다. 죽지 마라, 죽지 마라!하고 캐씽구라미부부를 위해 건강을 빌었다. 용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켜고 VCD를 봤다. 몇번이고 되풀이해본 VCD원판중에서 요행 보지 않은듯한 새 영화를 골라냈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원판의 뒤명에 잠이 깔린 얼굴이 비쳐들었다. 한되박 쏟아놓은듯한 잠때문에 더 무료해보이는 얼굴이였다. SF영화였다. 과학자들이 몇억년전에 멸종된 공룡을 복제해내는 기괴한 스토리였다. 쥬라기니, DNA니 대사로 오가는 기술용어들은 쇠통 알아들을길 없었으나 영화로 재현한 공룡만은 볼만했다. 축축한 뒤뜨락의 담에 찰싹 붙어있던 벽호(壁虎)를 몇백배로 확대한 모양이였다. 오전자로 드디여 공룡을 배육해내고 무서운 공룡이 은행나무숲이 아닌 마천루속에서 적음감을 잃고 자기를 제조한 주인공을 잡아먹으려 할 때 남편이 돌아왔다. 영화얘기를 하자 남편이 그녀의 경탄을 가볍게 받았다. 재미 있었어? 놀랄것 없어. 이제 사람도 복제해낼수 있다는데 뭘… 시상에! 사아람두요??? 색시는 개구쟁이시절 강가에서 찰흙을 짓이겨 사람의 형체를 만들며 소굽에 빠져들던 일을 생각했다. 사내애들은 흙인형의 아래도리에 짐짓 과장된 성기를 달아붙이고 계집애들앞에 흔들며 훗훗거리군 했었다. 그래 정말 사람을 주물러 만들수 있단말인가? 무엇으로? 찰흙으로? 아니면? 남편이 말하던 인간복제에 관한 소식이 어느날 방송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1997년 2월 영국로슬린 연구소에서 성년양의 유전세포로 새끼면양을 성공적으로 복제해냈습네다. 그후 과학자들이 류사한 기술을 리용하여 소, 쥐 등 동물도 복제해냈습니다. 복제기술이 ㅅㅇ숙되여감에 따라 인류에 대한 복제도 완전 가망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구라파 19개 나라들에서는 인류복제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해나섰습네다. 공중들이 인류복제를 반대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네다. 첫째, 복제인의 신분을 확정하기 어려운바 그들과 피복제자지간의 관계가 현유의 륜리체계에 접수될수 없습네다. 둘째, 인류의 후대번식과정에서 더는 량성이 공동으로 참여하지 않게 되면 현유의 사회관계, 가정구조의 접수하기 어려운 거대한 충격을 조성하게 된겁네다. 셋째, 생물다양성으로 볼 때 유전자구조가 완저히 같은 복제인의 대량 출현으로 하여 신형의 질병이 널리 전파될수… 색시는 라지오를 꺼버리고말았다. 귀신씨나락 까는듯한 소리는 최면가의 주문같이 그녀의 무료함을 더해줄뿐이였다. 다시 낡은 레코트 풀듯이 전자양을 돌보고 붉은 클로버와 컴은 다이아몬드와 붉은 하트, 검은 다이아몬드를 병렬시키고 캐씽구라미를 들여다보고 아버님에게 점심식사를 만들어드리는 과정에 색시는 중대한 결정 하나를 내렸다. 오래만에 밖으로 나가보려는것이였다. 요령껏 건조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날로 참담해지는 심기를 조절해나가던 그녀의 인내에는 균렬이 생겼고 가출소녀같은 외곬 탈선으로 그 균렬어린 마음을 무마하고싶어졌던것이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집중영을 탈출하는 난민같은 긴장과 스릴과 쾌감 같은것이 그녀의 등을 자꾸만 밀어주는것이였다. 옷장에서 속박맞고있던 외출복을 꺼냈다. 초봄에 입을 때보다 퍽 줄어든상싶었다. 옷장에 달린 체경에서 거대한 배를 가진 녀인 하나가 색시를 마주보고있었다. 코언저리에 깔린 잠때문에 얼굴은 피곤하고 우울해보였다. 색시는 체경속의 녀인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허나 그 웃음은 그닥 명랑치 못했다. 웃음을 잘 만들지 못하던 시아버님 얼굴이 떠올랐고 명랑한 웃음을 되찾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일념에 그녀는 저으기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허나 남편의 지엄한 분부를 부적처럼 가슴에 갈물이한 그녀는 물구나무서는 사춘기때같은 복잡한 심정으로 거울앞에서 서성이다가 드디여 문을 나서고말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색시는 층계를 내렸다. 초여름 그리고 정오의 해살은 쨍 하고 소리낼것 같이 비추어왔다. 색시는 눈시울을 좁혔다. 소리가7층에서 듣던 때와는 더 가배된 실감으로 귀청을 때렸다. 집앞의 공지에서는 헬멧을 쓴 인부들이 점심도 잊은채 땀에 번들거리는 구리빛 팔뚝을 과시하며 공연히 오갔고 전장처럼 모래며 진흙산이 솟은 사이로 거대한 트럭이 모래를 멱차게 싣고 비근대며 들어서고있었다. 부르릉 엔징 우는 소리가 글러브를 낀 권투수의 강타처럼 색시의 가슴놀이와 퀴바퀴를 강타해왔다. 색시는 질색을 하며 공지를 빠져나왔다. 대로를 지나니 강의 지류처럼 합착된 어느 뒤안길에 장거리가 펼쳐져있었다. 푸른 빛으로 살아오른 야채들이 여름을 알려주는듯했다. 익은 음식가게에서 색시는 만두 두개를 사들었다. 먹고싶은 시루떡은 가게에 없었다. 식욕을 느끼며 한입 떼물었다. 들척지금한 팥고물냄새가 울컥 치밀었다. 까닭없이 그 냄새가 싫었다. 고물을 다 털어버리고 껍데기만 멋적게 대충 씹어넘겼다. 목이 말라 올랐다. 랭식가게로 다가가 랭동한 과일시롭 한컵을 요구했다. 얼음이 서걱이는 과일시롭은 찼다. 헌데 사카린냄새 같은것이 났다. 한컵을 채 비우지 못하고말았다. 이번에는 도마도 한개를 집어들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도마도는 푸른 기운이라곤 없이 저질립스틱이라고 바른것처럼 붉에 농익어있었다. 허나 씹고보면 즙액은 기대와는 달리 생고기 씹는 맛이였고 게다가 열기를 머금기까지 해서 데친것처럼 데시근했다. 돌아보니 집에서 멀리 나와있었다. 앉아 쉬고싶었으나 시끌벅적한 장거리에서 마땅한 자리를 찾을길 없었다. 장거리곁에 소극장 하나가 있었다. 색시네 고향으로 온돌공연대가 가끔 내려오군 했다. 마을사람들은 돈 대신 쌀 한되박씩 들고와서는 공연을 보군 했다. 그중에서 소품이 가장 재미있었다. 소품을 할 때면 색시와 마을사람들은 하느라지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 흐아흐아 서까래가 내려앉게 방성대소를 하군 했다. 그때 그 맛을 되살리며 다리도 쉬움결 색시는 극표 한장을 사들었다. 오늘은 《의자》라는 극이 공연되고있었다. 원체 극이 잘 나가지 않는 요즘 세월에 낮공연인지라 극장에는 관리자가 가련할 정도로 적었다. 애숭이 몇몇, 더운 날씨에도 밀착해앉은 련인 한쌍, 그리고 되게 할일없어보이는 나그네 한사람뿐이였다. 극장의 천정에서 선풍기가 날개를 헤아려볼수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 돌고있었다. 드디여 종소리가 울리고 불이 꺼지고 막이 열리였다. 구들장을 울리게끔 웃음을 선물하던 익살누성이소품 같은 그런 극이 아니였다. 캐씽구라미처럼 까만색으로 정장을 한 나그네 하나가 방에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또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그래도 모자란것 같아서… 시상에! 별 지랄같은 극도 다 있네… 삐걱이는 편치 못한 의자에 앉아서 관객들은 재미라곤 서캐꼬리만치도 없는 《의자》를 구경하고있었다. 불평을 쉬새없이 까내는 해바라기 껍질을 함께 휘뿌리면서, 나중에 방에 의자가 꼴똑 들어차고 정장의 주인공, 단 한사람밖에 없는 주인공이 설 자리가 없어 문턱에 올라섰다가 뒤로 나동그라짐과 함께 극은 끝났다. 박수도 갈채도 생화도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정채로운 위장면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돈지갑을 날치기당한 사람 같은 얼굴로 극장을 나서고있었다. 되게 할일없어보이고 생기라곤 없어보이던 나그네가 막이 이미 내린 무대쪽을 향해 하나 먹어라! 고 쑥떡감자를 먹이였다. 외국에서 들여온 극이라 했다. 공연안내팜플렛에는 관객들의 관람에 편리를 주게끔 극에 대한 해제가 첨가되여있었다. 물질적욕구로 팽창하는 오늘의 피페한 인문환경과 그로써 자초하는 인간 스스로의 파멸을 리얼하게 보여준 실험극… 색시는 놋요강 두드리는 소리같은 그 뜻을 다 알지 못했다. 그저 무대우에 놓여지는 의자들에서 그것보다 더 값진 집의 쏘파를 생각했고 그 쏘파거죽에서 풍겨오던 진저리쳐지는 냄새를 다시 떠올렸다. 쉰듯한 만두와 사카린냄새뿐인 시롭과 데친듯 물컹한 도마도와 공돈을 날린 극구경으로 색시의 긴긴 적막끝에 용기와 희망으로 뼈무른 외출이 막을 내렸다. 몸태의 변화때문이였던지 전에 없이 무픞이 접히는 피곤기가 몰려들었다. 스산한 랑패감으로 어깨를 추츠리며 7층까지 올랐다. 헐떡이며 문을 따던 색시는 전에 없는 풍경에 그만 그 자리에 무춤 멈춰서고말았다. 시아버님이 화장실문앞에 서있었다. 어데서 찾아냈는지 도라이바를 들고 문열쇠와 실랑이를 벌리고있었다. 갑작스레 들어선 며느리를 보고 시아버님도 흠칫 하던 일을 멈추었다. 시아버님은 항용 그러하듯이 내의바람에 맨발이였다. 둥근 내의깃으로 마른 목줄기가 겅충 드러나있었다. 내의 아래섶을 두손으로 사려쥐며 며느리의 표정을 살폈다. 떨꺽! 입에 고인 침덩이를 삼키는 소리가 요란했다. 치아의 구조로 원체 벌려졌는 입술을 어눌하게 놀려 오래만에 완정한 말마디를 만들어내였다. 잠글쇠가 … 짜부라졌더구나… 기래서 고치는 중이다… 무덤속에서 울려나오는것 같은 소리를 하고나서 아버님은 피하듯이 몸을 돌렸다. 막대기에 옷을 걸쳐놓은듯한 깡마른 몸매가 “성채”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색시가 문을 나설 때까지 화장실문 자물쇠는 아무런 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시아버님이 한 일이라고 추정할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로망에 드셨나? 색시는 저녁을 지을 생각도 없이 쏘파에 나동그라졌다. 매연이 카텐처럼 꺼수수 덮이는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어항속의 캐씽구라미들이 혼돈속의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은 여느때처럼 늦게 귀가했고 몸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미안하다, 많이 기다렸지. 과학기술대학서 우리 상점의 컴퓨털 스무대나 합동했지 않구 뭐냐. 인사턱으로 한잔 마셨어. 몹시 취한 모양 화장실로 가서 이발을 닦고 오면서도 남편은 자물쇠가 망가진것을 기수채지 못하고있었고 색시도 구태여 낮에 있은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맛없는 만두 시롭 도마도와 재미없는 《의자》에 대해 무척 말하고싶었지만 그저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들 안마까지 시켜주겠다 했지만 뿌리쳐버렸어. 솔직히 말해서… 남편은 색시의 벗은발을 어루만졌다. … 솔직히 말해서 우리 색시처럼 예쁘고 참한 녀자… 요즘 세월에 흔치 않아. 이제 당금 애엄마될 너에게 난, 난 미안한짓 안할거다. 안할거다… 색시는 남편의 야지랑스런 모습을 덤덤한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종래로 신입병사처럼 긴장과 정직으로 굳어져있던 남편에게서 풀린 모습을 보는 경우가 로전사의 방심한 오발탄처럼 날로 늘어갔다. 알콜의 사촉으로 남편의 정감은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있었다. 안해를 으스러져라 포옹하려다가 거대한 배때문에 곤난하게 되자 돌아가 뒤로 안해를 그러안았다. 헐렁한 옷속으로 쉽게 손을 집어넣어 원체 팽만했고 지금은 더 터질듯 위태롭게 부풀어오른 가슴을 희한하게 어루만졌다. 색시의 몸이 꿈틀했다. 오래동안 그 일을 잊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잡혀들었다. 색시는 모두가 퇴근해버린 컴퓨터상점의 영업실에서 남편과 맨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었다. 컴퓨터로 무언가 치고있던 남편이 홀연 곁에 곰상스레 앉아있는 그녀를 작업대우에 쓰러뜨렸다. 서른을 넘겨 자기보다 열한살 아래인 녀자를 사귄 남편은 분출해오르는 욕망의 염열에 헤덤볐고 남편될 사람의 사람됨에 반한 그녀는 별로 거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서투르게 그리고 격렬하게 그녀를 다루었다. 단단한 작업대에 놓인 등쪽이 아파왔다. 허나 그보다 더 극심한 아픔이 다른쪽으로 전해왔고 잠시후 이름할수 없는 충종감이 달군 인두처럼 그녀의 몸 구서구석을 지겼다. 그녀의 주체할길 없는 손은 머리우로 뻗어 컴퓨터의 키보드우에 놓여져있었다. 남자에게서 정열의 파장이 올 때마다 그녀의 손은 그 파장을 부여잡기라도할듯이 키보드판을 부서져라 움켜잡군 했다. 그 식지가 건반을 건드리는 바람에 모니터에 글자가 현시되였다. 그녀는 터져나오는 무아의 감미를 숙녀답게 깨물어 입속으로 삼켜버렸고 그 방치할수 없는 감미를 그녀 대신 컴퓨터가 말해주고있었다. 그녀도 전률했고 컴퓨터의 모니터도 전률했다. 그 느낌이 모니터에 하나하나 현상되여나갔다. !!! !!! !!! ! !! !! 그때의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하고 벅차던 감각이 다시 해조처럼 밀려와 색시더러 몸을 잊게 했다. 남편은 조심스럽고 힘들게 그녀를 범했다. 그런데… 바쁜 체위로 몸을 굽힌데서 그녀의 얼굴 가까이까지 닿은 남편의 머리칼에서 휘발유냄새가 났다. 그리고 담배냄새, 매연냄새도 조미료처럼 곁들여지고있었다. 향수냄새도 미약하나마 휘장뒤에 숨은 도적놈의 발구린내처럼 새여나오고있었다. 남편은 친구가 모터찌클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모터찌클에 앉아 며연이 담처럼 가로막는 거리를 술기운으로 뛰여넘고 해갈라왔을 남편… 혹여 어느 안마방에서 안해의 몸태때문에 못박는 욕망의 보상을 변형적으로 받고 왔을 남편(?). 원체 냄새에 심각한 알레르기를 갖고있는 그녀는 그 현념으로 얼룩진 냄새에 견디기 어려워했다. 남편은 어렵게 격정의 막바지에 올랐으나 그녀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냄새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격정은커녕 형벌같은 시간을 참고있었다. 남편이 기계처럼 생각되였다. 컴퓨터작업대우에서 컴퓨터와 한덩이가 되여 맨처음 그 일을 치렀을 때 그녀가 가진 생각이였다. 오늘 남편은 또 휘발유냄새까지 풍기고있지 않는가! 기계와의 STX! 시간과 환경이라는 담금질속에 쇠처럼 식어가고 딱딱해져가는 정감의 장도를 색시는 섬세한 후각으로 마음으로 읽어내고있었다. 미안해, 힘들었지… 남편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나서 이불속으로 기여들어갔고 인차 OFF가 눌러진 컴퓨터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색시만은 잠들기 어려워했다. 땀 흘리며 무대우로 의자를 나르고있는, 캐씽구라미처럼 까만 정장을 한, 아니 남편처럼 정장을 한 배우가 생각났다. 배우의 분장한 얼굴과 원체 허연 남편의 얼굴이 겹놓였다. 남편이 의자를 나르고있었다. 침실로 날라들이고있었다. 더 놓을 자리가 없어 색시는 문턱우로 올라섰다. 그런데 남편은 창문가로 다가오더니 그녀를 창밖으로 밀어던지고 그 자리에 의자를 놓는것이였다. 색시는 소스라쳐 놀라며 환각에서 깨여났다. 자기가 환각속에 섰던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창으로 누군가의 눈이 침실을 들여다보고있지 않는가. 7층높이인지라 카텐까지 달지 않고 방심해있는 그들을 눈을 지릅뜨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그것은 … 공룡의 눈이였다. 색시는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치며 꿈에서 깨였다. 더위에 열기로 가득찬 침실이였지만 살진 가슴패기로는 식은땀이 줄지어 내리고있었다. 시원한 약수를 마시고싶어 랭장고가 놓여진 주방으로 나갔다. 공교롭게도 시아버님이 어둠을 헤집으며 화장실로 가고있었다. 색시는 얼른 화장실 바깥벽에 달린 스위치를 눌러 화장실의 불을 켜주었다. 아버님은 여전히 아무말도 표정도 없었다. 떨꺽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키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색시는 망가진 화장실문 자물쇠를 생각하며 침실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아버님이 기거하고있는 칸의 방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그속으로부터 … 아버님이 나오고있었다. 화장실의 문도 때맞추어 열렸다. 내의바람에 겅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벌려진 입술로 아버님은 애써 웃음을 만들고있었다… 시상에! 색시는 푸른 입술을 덜덜 떨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청이 톱밥을 삼킨듯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색시는 온밤을 이렇게 깨고 잠들고 잠들고 깨고 하면서 연거번거 악몽에 시달렸다. 진짜로 현실상채를 확인했을 때 이번에는 아버님의 방으로부터 건조한 고성이 터져나오고있었다. 가자, 돌아를 가! 돌아를 가아!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더니 랭장고문부터 열어젖혔다. 맨 웃층에 있는 소고기며 돼지고기의 정육덩어리들을 끄집어내여 복도에 쓰레기상자맞잡이로 놓여진 종이박스에 던져버렸다. 당혹감에 두눈을 동그랗게 치뜨는 색시에게 경고하듯 어미(语尾)가 분명하게 남편은 말했다. 이제부터 고기먹지 마라. 돼지고기, 더우기 소고기 먹지 마! 무슨… 일인데요? 란리가 났어. 란리들이… 남편은 핸드폰가방속에서 석간지 한장을 끄집어내여 펼쳤다. 톱소식을 식지로 구멍낼듯이 그루박았다. 구라파에 번진 공포의 광우병 구라파는 온통 공황상태에 빠졌다. 광우병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영국으로서 현재까지 16만 1663건이 보고됐고 스위스에서 205건, 아일랜드에서 123건, 뽀르뚜갈 13건, 주로 구라파에서 발견됐지만 중동의 오만, 카나다, 포플랜드에서도 한두건씩 발생이 보고됐다. 영국정부는 460만마리가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다 도살하는데 최소 6년은 걸릴것이라고 밝혔다. 20세기는 생산성이라는 광기가 세계를 지배한 세기였다. 풀 먹고 사는 소에게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후사료”를 만들어 먹이였다. 그쪽이 방목보다 수익성이 높고 노력도 덜 들기때문이다. 그래서 몇천년동안, 풀만 먹고 살아온 초식동물이 양고기와 동물내장 같은 육류를 먹게 된것이다. 스크래프병에 걸린 양은 사료원료가 됐고 이를 먹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려 떼죽음을 당했다. 소가 미친것이 아니다. 인간의 문명상태계가 미쳐가고있다는 신호이다.  속보: 영국산 소고기 전면 금수 조치가 해제되기도전에 이번에는 벨기산 돼지고기가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에 오염됐다는 뉴스가 터졌다. 닭과 닭알도 함께 오염됐다는 소식이 뒤따랐다. 전세계적으로 벨지산 돼지고기 회수 소동이 벌어졌다… 시상에! 기럼 우리 이제부터 고기란거 못먹어요? 한동안은 먹지 말자. 설마 우리 여기까지 그런 병이 돌가요? 설마가 사람 죽인다구. 서양거라면 쓰레기두 입수해들이는 우리잖아. 절대루 먹으면 안돼. 더우기 임잔 이제 혼자 몸이 아닌데! 이거 진짜루 말세가 오는건감?? 남편은 침몰하는 배에 난 구멍을 혼자 막는 사람처럼 황황한 기색이였다. 그바람에 색시도 남편의 불안에 옮아들기 시작했고 은연중에 처참히 죽은 바둑이를 머리에 떠올렸다. 페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고 죽어간 바둑이처럼 영문없는 액사를 당할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눈도 코도 다 보이게 실감되여왔다. 이제부터 우리 뭘 먹구 산대요? 하, 고기말고도 먹을거야 많지, 그 있잖아… 남편이 홀연 말을 갑자질렀다. …여하튼 지방이 많은 고기는 몸에 좋지 않아. 지금 녀자들 밥 같은거 아예 먹지 않다싶이허구 살아가잖아. 다이어트 한답시구. 그렇다구 매일 과일로 하루 세끼를 에울순 없잖아요? 원체 흥감스러운데가 있고 벼룩을 보고도 비행기야! 과장을 잘하는 남편에게 색시는 자꾸만 의문덩이를 내들었다. 우리 녀자들이야 밥에 짠지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하루 건너 연회석인 당신 남정들은 어쩌겠어요? 고기 안먹구. 뭐, 그런대로 응부하지 뭐. 저녁식사는 콩나물국 하나만 달랑 놓고 했다. 그 며칠간 색시는 내내 음식공포증에 시달렸다. 텔레비죤이며 방송에서 광우병에 대해 련속보도를 했고 이곳 검역소들에서도 그 성향에 맞춰 자지방 육류에 대한 전면검사를 벌렸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기란 알고도 모를 일이였다. 색시는 원체 육류쪽에 식성이 없는 사람이였는데 목먹는다고 하니 외려 시원한 소갈비국 생각에 미칠것만 같았다. 콩나물국에 소고기다시다를 넣어 먹어보았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단단히 신칙을 들었다. 독품을 몰수하듯이 다시다를 들추어냈고 일본산의 그 양념도 정육덩이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복도의 쓰레기상자에 날라들었다. 남의걸 잘 들여오고 잘 배워내는게 일본이라고. 봐, 문자조차 우리걸 가져다 획을 뜯어 만드는 잔나비들인디. 이것저것 확대경을 들고 대하고, 지뢰구역에 들어선듯 조심하는 남편이 저러다가 다른 병을 앓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가 미치다니? 색시는 일전 동네에서 미친 남자 한사람을 보았었다. 시가지의 어느 한 고무공장에서 일하며 농사군딱지를 벗은듯 마른 호기를 부리던 사람이였는데 펄펄 끓는 력청(沥清)에 전신화상을 입으면서 미쳐났다. 그 사람은 고무만 보면 달려들어 이발로 물어뜯군 했다. 향정부마당에 놓인 자동차나 자전거 다이야를 보면 물고 늘어지군 했다. 모철, 논두렁에 벗어놓은 고무신을 물어뜯기도 했고 애들 고무지우개도 엿가락처럼 씹어대군 했다. 그렇다면 소는 어떻게 미쳐날가? 원체 대 큰 소의 이발이 송곳이로 버려지고 둥그런 발톱이 모가 나서 영화속의 공룡처럼 사람을 한입에 베여무는 환각에 사로잡히며 색시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캐씽구라미가 미쳐나 어향에서 뛰쳐나와 땅우에서 풀쩍풀쩍 뛰여다니는 환영도 떠올랐다. 컴퓨터도 병을 앓는다던데? 어떻게 앓을가? 열이 날가? 우리가 구토설사하는것처럼 부속품을 토해낼가? 아니면 암종양이 생기듯이 형광막이 부풀어오를가? … 애 낳을 준비로 집에 붙박혀 침대우에서 노량으로 뒹굴며 녀자는 질정없이 생각을 적었다가는 지우고 지우고는 다시 적고 하였다. 여하튼 일전에는 홍역이나 감기 같은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알약쯤으로 응부했는데 부르기조차 어려운 병들이 많이도 생겨나고있었다. 홍안병, 콘디롬마, 에이즈, 마천루종합증, 고소공포증, 자페증(自闭症), 컴퓨터천년충(千年虫), 광우병 등등등등… 이러한 절실한 우려에 시달리지 않고있을 사람이 있다면 단 한사람뿐 다름아닌 시아버님일것이다. 색시는 그런 시아버님이 오히려 부러워나기까지 했다. 허나 시아버님은 시아버님대로의 다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한번 진지상을 차려들고 아버님방에 들어섰다가 색시는 시아버님이 무엇으로 등을 긁고있는것을 보았다. 황황히 뒤로 감추긴 했지만 색시는 그것이 무언지 일견에 보아낼수가 있었다. 아무말없이 응접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살펴보았다. 낚시대처럼 뽑아올리던 안테나가 보이지 않았다. 두가닥중에서 한가닥을 끊여내였다. 아버님은 그 안테나로 등을 긁고있었다. 일전에 아버님에게 참대로 만든 등긁개를 사드렸었다. 손잡이에 “복”자까지 새겨진 정교하게 만들어진 등긁개였다. 등긁개를 잃어라도 버렸나? 허나 출입시에 색시는 분명 침대머리에 놓여있는 등긁개를 보았다. 다행이 유선텔레비가 들어온 집이여서 텔레비안테나는 담쌓고 남은 벽돌신세였다. 그렇다지… 실로 로망이 드신걸가? 아니면 가려운걸 보시니 목욕하고싶은걸가? 아버님, 목깡할 때가 되잖았어요? 남편에게 안테나 사건에 대해 대주지 않고 색시는 완곡하게 물었다. 화장실문 자물쇠에 대해서도 남편이 묻지 않자 입을 봉하고있은 그였다. 뭐? 목욕?? 남편이 놀라듯 응수해옸다. 그리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필요이상으로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시상에! 목깡 안하구 살아요?? 색시가 폭발하듯 소리질렀다. 그러고보니 새집들이후 아버님이 목욕한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의 빨래는 남편이 세탁소로 가져가군 했다. 색시가 하려 들면 남편이 부득부득 앗아냈다. 아버님의 더러워진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챙겨가는 남편의 행동에서 요행 효도의 흔적을 보았던 색시였다.  뭐 그런게 아니고… 헌데 당신 별거 다 신경쓰고 그래? 남편이 면풍든 사람처럼 어눌하게 입을 놀리며 확답을 갈무렸다. 자기쪽에서 증을 버럭 냈다. 아버님의 그 야릇한 증세는 등긁개로 대용된 안테나에만 그치지 않았다. 색시의 몸태가 변하기 시작하자 남편은 카세트테프 하나를 사주었다, 아침저녁으로 들으라고 했다. “태교(胎教)음악테프”였다.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다고 했다. 과연 고향의 여울물소리, 새소리를 듣는듯 맑은 곡조가 귀맛에 좋았다. 그런데 그 테프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님방에 들어서보니 시아버님이 몽땅 뽑아놓아 실타래처럼 엉켜진 테프를 주체할길 없어 당황해하고있는중이였다… 장식을 요란히 했고 맨웃층이여서 채광이 잘 들다보니 집은 늘 건조했다. 그래서 가습기(加湿器) 하나를 사놓았다. 보온병보다 조금 작은 가습기는 구석쪽에서 물안개를 퐁퐁 피워올리며 인공으로 딱딱해진 구석구석을 습윤하고 차분한 손길로 어루쓸어주고있었다. 자고나면 코와 입안이 늘 말라들군하는 색시에게서 가습기는 필수품이였다. 그 가습기가 보이지 않다가 령감님의 방에서 나왔다. 가습기의 부속품은 오간데 없고 그 플라스틱외각속에 아버님이 가래침을 뱉아낸 휴지덩이들이 골똑 차있었다. 염오와 반감이 상대가 년장자임을 알아볼 사이도 없이 욱- 치밀어올랐다. 색시는 처음으로 시아버님앞에서 불손하게 파동하는 정서를 엿보였다. 아버님은 아무런 항변도 없었다. 남의 집 창호지에 구멍을 내고 훈장앞에 불리워간 학생처럼 겅충 드러난 뒤덜미를 피나도록 긁고만 있었다. 그런 아버님이 색시는 불쌍해나기도 했다. 오죽 갑갑했으면 저런 방식으로 응어리진 적막을 해소하랴싶었다. 그래서 눈감아주었고 의연히 남편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그러한 관용은 기계에 대한 편집광(偏执狂)적인 로인의 증세를 더욱더 유발시켰다. 색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디스크는 령감님의 방에서 거울대용으로 사용되고있었다. 귀가 린색한 아버지를 위해 남편이 사준 보청기는 언녕 줄이 끊겼고 령감님은 그것이 뭐 박하사탕인듯이 입안에 놓고 달그락달그락 굴리군 했다, 그녀가 줄겨먹는 사과나 홍당무우즙을 짜내는 목즙기속에 감자가 들어있기도 했고 삼복염천의 에어콘에서 찬바람이던것이 금시 더운 열기로 변하여 확확 풍겨나오기도 했다. 요즘 들어 “성채”속의 주인은 “호전파장군”으로 둔갑하여 활동이 많아졌고 개구장이같은 못된 궁냥으로 다른 사람도 아닌 며늘아기를 괴롭히고있는것이였다. 아버님이 젊어서 손재간 피우셨나보죠? 라지오수리라든가 아니면 시계수리 같은… 색시는 아버님의 그 소재를 파악할길 없는 야릇한 행위— 기계에 대한 분수넘는 애착심리를 해제해보려고 남편에게 에둘러 물었다. 남편이 그 말을 듣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부지 일평생 가대기만 만져봤을뿐이야. 기계수리라니? 랭수 먹다 이발 부러질 소리… 그러던 남편의 기색이 심각한 빛으로 바뀌였다. 아부진 여태껏 시계조차 차보질 못했어. 우리 가문에 불효났지. 불효났어! 남편은 스스로의 애락한 감개에 빠져들었다. 묻지도 않은 말을 주근주근 터놓기 시작했다. 우리 고장은말이지, 임자네 고장보다말이지, 훨씬 깊은 산골이였다구… 적삼우로 부푼 색시의 배를 어루만지며 남편이 말을 이었다. 부끄런 말이지만 이곳의 대학에 붙어서야 난 처음 기차란걸 타봤어. 웃지 마! 그런 생둥이의 아버지나깐 이곳에 첨 온 아버지가 어떤 감수였겠나. 어디 생각해봐. 이건 “관청에 온 시골닭”도 아니구 뭐랄가? 아버질 닭에 비하긴 좀 그러긴 하지만두. 여하튼 눈알이 까집히고 정신이 홰홰 돌아갈 그런 세상별천지였을거야. 나까지도 첨엔 그랬는데… 아버진말이지. 이곳에 도무지 도무지 적응이 안돼하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몸살을 앓으셔. 그런데말이지 돌아가려 해도 이젠 다 끝난 장이야. 시내에 물을 대여주려고 우리 동리 골물을 터쳐 땜을 만들었어. 원체 쬐꼬만 동리인지라 물에 깝뿍 잠기고말았지. 그래서 아부지껜 이제말이지 고향이라는거 더는 없어… 남편은 컴퓨터키보드를 만져 모니터에 자기 생각을 현시하듯이 안해의 배를 만지며 감개를 풀어내고있었다. 전자회로가 끊어지는 소리 같은 한숨이 울렸고 색시의 가슴쪽에 손을 얹은채 남편은 OFF가 되여 잠에 곯아떨어졌다. 남편이 추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색시는 남편의 고향과 진배없는 자기네 고향을 더불어 그 애련에 합탁시켜보았다. 나서 자란 보금자리에 대한 애틋한 정의 공감을 진하게 느끼며 남편의 손우에 자기손을 얹었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너나 나나 내용물이 꼭 같은거라고… 그것과 자물쇠며 안테나며 테프며 가습기며 보청기며 에어콘이며 어떤 련관의 끈이 있는걸가? 현념은 줄창 속곳에 달라붙은 가시처럼 색시를 괴롭혔다. …시상에! 난 몰라!! 시아버님에 대한 색시의 시상에 류다른 관용과 인내는 남편과 고향담을 애틋하게 나눈 그 이튿날 문득 한계를 넘고 작렬했다. 색시로 말하면 해도 너무 한 일이 끝내 일고야말았다. 색시에게는 손목시계 하나가 있었다. 전자시계가 란무하고 시계를 차지 않는게 시체멋인 요즘세월에 구식이고 윤택조차 없는 식계를 색시는 굳이 고수했다. 남편이 비싼쪽으로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고 시계는 그녀 신체의 한부분이기라도 한듯이 그녀 몸에 단단히 달려있었다. 지나간 고담처럼 끝없이 주절거리는것 같은 시계는 늘 색시를 대신해 눈물겨운 이야기로 시간가는줄 모르게 해주고있었다. 손목시계는 색시의 언니것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색시에게는 언니는 유일한 살붙이였다. 치렁치렁한 외태머리를 왼쪽어깨에 곱게 드리우고 다니는 언니는 보기 드문 고전(古典)미인으로 남편이 괴여올리는 색시보다 많이 예뻤다.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색시보다 두살 이상이였지만 퍽 조숙했고 언니에 엄마 역도 더불어 맡아왔다. 그렇게 예쁘고 좋기만 하던 언니, 조실부모의 박명을 타고난터에 우리들이라고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하자던 언니는 지금의 색시나이만 할 때 먼저 갔다. 동생을 뿌리치고 먼저 갔다. 바둑이가 죽은 그 이듬해에 죽었다. 바둑이가 먹고 죽은 물고기가 살고있는 강을 오염시킨 그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다. 언니는 포장차간에서 일했는데 종이토리를 감는 기계에 머리택가 끌려들어가는 액사를 당했던것이다. 색시가 오늘이고 래일이고 한 본새로 단발을 고집하는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때 지금의 남편과 회사의 직원들이 공장에 판매를 왔었다. 언니를 잃고 하늘같은 슬픔에 잠긴 그녀를 보고 남편은 껴안아주고싶도록 련민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기대에서 종이가 만장처럼 나붓기는 차간을 배경으로 울고 섰는 그녀가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워보일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번의 판매에서 남편은 실패했다. 허나 수익은 컸다. 색시를 얻은것이였다. 어디서 어떻게 기대야 할지 막연했던 색시는 컴퓨터처럼 기민한 남편의 추구와 일점 오차 없는 미래에 대한 설계에 숫접게 그의 뒤를 묻어서고말았다. 손목시계는 언니가 공장에서 년종상금으로 탄것이였고 언니의 유일한 유품, 그들 가정의 제일 값지다는 기물이였다. 그런 애환과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있는 손목시계가 어느결인가 시아버님의 눈에 띄였고 호기심의 제물(祭物)로 되였던것이다. 시아버지의 그닥 깨끗하지 못한 요우에 먹다남은 물고기의 잔해처럼 널린 시계바늘, 시계태엽, 시계치륜들을 보고 색시는 치한으로부터 기습을 당한것처럼 비며을 질렀다. 아부지잇!— 저녁, 울었던 흔적이 력력한 색시에게서 사연을 접해들은 남편은 방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아버지는 면부근육기능을 상실한 사람처럼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불러놓고 그런 처치곤란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남편도 속수무책이였다. 시계 차고프면 차고프다 말씀이나 할것이지 기래요? 아부진 … 남편은 결김에 자기의 값비싼 손목시계를 벗어 아버지의 손에 콱 쥐여주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그것이 책망인지 안니면 불효에 대한 반성인지 남편자신도 알길이 없었다. 밤, 산산이 해체된 추억의 시계바늘을 맞추고 태엽을 다시 감으며 색시는 장밤을 울었다. 그 전자양조차 돌보지 않아 남편이 몸소 “먹이”를 주었다. 이튿날 남편은 회사에서 말미를 맡았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색시를 배동해 택시에 올랐다. 울음으로 밤샘을 하고난 색시는 남편을 두들겨 깨우고는 고향으로 가보고싶다고 했다. 맞아줄 이도 없는 고향이지만 그저 가보고싶다고 했다. 가봤대야 모기밖에 누가 우릴 더 반기겠어? 하는 남편에게 매달리며 죽은 바둑이가 보이고  죽은 언니가 보이는 꿈자리때문에 자기보담은 아이를 위해 고향으로 가서 방토를 해보겠다고 했다. 억지를 쓰며 간청해서 남편의 수긍을 받아냈다. 택시의 뒤좌석에 색시를 힘겹게 부축해 앉히며 남편은 그동안 색시를 너무 등한시했고 배동하여 외출 한번 못했다는 자책지감이 들어했다. 그러고보니 거금으로 삯낸 택시비지만 아깝지 않았다. 눅신한 열기에 엿물처럼 눌러붙은 아스팔트길로 택시는 느릿느릿 글러갔다. 앞에도 뒤에도 흘레하는 잠자리마냥 붙어선 장대한 물결의 차량들이 도시의 혈관속에서 뇌혈전환자마냥 행동의 자유를 잃고있었다. 도시에서는 경적이 금지됐으므로 운전기사들은 그저 차창밖으로 한쪽만이 검게 그을린 팔뚝을 저으며 불손한 어성들을 뜅겨냈다. 붉은등은 그들과 척지기라도 한듯이 피줄선 눈을 지릅뜨고있었고 땀을 뻘뻘 흘리는 교통감리들은 지휘봉을 몽둥이 삼아 질서를 지키지 않는 기사들의 정수리를 후려치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의 물결은 채바퀴를 새여나가는 모래알모양 차량사이를 비집고 흩어져나가고있었다. 어데를 봐도 차와 사람과 소음과 열기뿐이였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갈수 있다는 들큼한 상념에 조용히 하회를 기다리고있던 색시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뒤좌석의 구멍난 틈새로 해면을 호비작호비작 뜯고있었다. 오랜만에 정성껏 분을 두들긴 얼굴이 땀에 씻겼고 물이 빠진 강바닥의 돌처럼 자잘게 얼굴에 깔린 잠이 형체를 드러냈다. 기사가 기다림에 생중난 그들을 위문해주련듯 라지오를 틀었다. …오늘은 세계 인구날(人口日)입네다. 20세기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많고많은 대변혁이나 사건중에서 그 어느 문제도 인구폭발문제처럼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것이 없다는걸 쉽게 발견할수 있습네다. 지구의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자원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 많은 인구를 먹여살리는가 하는것이 오늘날 인류앞에 놓여진 중대한 난제입네다. 세계인구의 장성속도는 놀아울 정도로 빨라지고있습네다. 세계인구는 1804년에 10억에 달했지만 1920년에는 20억, 오늘에는 60억에 접근하고있습네다… 씨부랄! 새끼만 까고들 있었나? 운전기사가 방송을 들으며 걸죽한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러는 기사의 뒤통수를 향해 색시가 보얗게 눈을 흘겼다. …유엔의 추측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년후면 세계인구는 89억에 달할것이며… 아따, 기사아저씨이! 하필이면 교과서 읽는 소릴 듣고 앉았어요. 남편이 흥미 덜하다는듯 방송의 따분한 내용물에 반감을 표했다. 기사도 그 반감에 동감인양 방송을 바꿔 테프를 꽂았다. 중국 노래가 울려나왔다. 향간에서 류행되고있는 “자주 집으로 가봐요”라는 제명의 노래였다. 자주 집으로 가요 집으로 가봐요 어머니를 도와 그릇도 씻어드리고 아버지의 굽은 등을 도닥여도 줘요… 그 노래가 지금의 심기에 꼭 맞는듯 부부는 눈을 맞추었다. 색시가 곡조에 맞춰 노래가락을 흥얼거렸다. 도심에서 떠난 택시가 도시를 완연 벗어나 시교와 린접된 국도에 들어서기까지 꼬박 한시간을 잡았다. 그제야 색시는 속도를 느꼈고 택시에 앉은 자신들을 다시금 실감했다. 또 두어시간가량 달려 어느 고개마루에 오른 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다 왔어요? 남편의 어깨에 기대여 땀에 젖어 졸고있던 색시가 눈을 떴다. 그런데 남편도 그렇고 백미러에 비쳐진 기사의 눈고 그렇고 고개 아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눈길들은 분명 무언가 찾고있었다. 그 눈길과 색시의 눈도 합세하였다. 시상에! 순간 색시는 헛밟은것처럼 움찔했다.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번했다. 고개 아래에는 강이 있었고 그 강우에는 색시네 고향으로 통하는 유일한 경로인 다리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다리로 색시네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다. 허나 전쟁이라도 피하는것처럼 건너는 왔지만 건너가는 사람은 적었다. 색시도 남편을 따라 그 다리를 건너오면서 가는 목이 꺾이도록 뒤를 돌아보았었다. 그런데 그 다리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강에는 색시네 아빠트앞 공터처럼 헬멧을 쓴 인부들이 까맣게 널려 먹이를 나르는 개미떼처럼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강녘에 “다리확장공사시공중, 통행금지!”라고 씌여진 패말이 보였다. 씨부랄! 하고 기사가 맹랑한 소리를 냈고 람루한 기분으로 남편은 색시의 표정을 읽었다. 색시는 누가 다치면 울음을 터뜨릴것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고향으로 한번 가보려던 감몽은 그렇게 잠시 깨여졌고 다시 전자양과 캐씽구라미와 클로버 하트 다이몬드 스페이드와의 시틋한 상봉이 색시를 맞아주었다. 날은 환장할 정도로 더웠다. 찜통더위에 사람도 땀흘리고 하루종일 작동상태인 에어콘도 땀을 흘렸다. 색시는 무거운 배를 퍼더버리고 앉아 두손은 뒤로 바닥을 짚고 헐떡이기가 일쑤었다. 남편이 사다주며 백당부를 한 안태보(安胎宝)약이 손 펼치면 잡힐데 있었지만 색시는 약먹을 물 뜨러 가기조차 귀찮았다. 다행히 비가 올 기미가 보여 색시는 좋았다. 대줄기 작달비라도 한줄금 두들겨 내렸으면 내연기관처럼 달아오른 도시의 열기를 식혀낼수 있을것 같았다. 허나 소낙비 직전의 무더위는 발광에 가까웠다. 물속의 캐씽구라미조차 더위에 지쳐 금붕! 금붕! 울어대는것 같았다. 더위때문인지 아버님의 악동이 같은 해괘한 짓거리를 더는 볼수 없어 색시는 그나마 편했다. 종내 비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색시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목욕을 하고싶어졌다. 땀으로 끈적끈적한 몸뚱아리를 박박 씻고싶었고 더위는 포박되여 까닭없이 심술궂어지는 심기도 씻어내리고싶었다. 몸태때무에 변형이 된 옷을 힘들게 벗어내렸다. 욕조에 들어앉을수 없어 바닥에 타올을 깔고 앉았다. 자그만 화장실에도 열기는 밀도 짙게 재여있었다. 금방 받아낸 수도물이라도 금세 미적지근해지는것이였다. 소래에 물을 받아 어깨에 끼얹었다. 물은 가슴패기의 깊은 곬을 따라 흘렀고 완만하게 둥시런 배를 감싸고 흘러내렸다. 일전에는 남편과 둘어서 꼭꼭 “원앙욕”을 하군 했다. 욕조에 둘이 비집고 앉아 서로의 요긴한 부분을 샅샅이 만지며 목욕절반 장난반으로 롱탕질을 쳐댔다. 그에 생각이 미치자 빈 욕조를 바라고 색시는 혼자서 얼굴을 붉혔다. 이것이 마지막 목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해산 기일이 이제 며칠이 남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색시는 자기배같지 않은 만삭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남들처럼 임신무늬가 생기지 않은 배는 깨끗하고 풍요로워보였다. 그속에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아기가 보채지도 않고 점잖게 어머니와의 상봉을 마지막차처럼 기다리고있다고 생각하니 색시는 금세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오르는 행복에 켜워지는것이였다. 아가야 넌 어떤 얼굴로 나를 맞아주려나? 이때였다. 색시는 꽈르릉! 하는 천둥소리를 들었다. 드디여 비가 내리고있나보다. 그런데 천둥소리는 유난히도 가까이에서 들렸다. 화장실문이 열렸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사진기의 마스네슘섬광처럼 번쩍이는 번개불빛의 후광속에 화상실문가에는 … 시상에! 사람이 서있었다. 내의바람에 껑충한 목을 하고 치아의 구조때문에 입을 헤 벌린채로 맨발바람의 누군가가 허깨비처럼 서있었다. 시아버님이였다! 색시는 덴 가마에 올라선것처럼 악당치는 소리를 질렀다. 엉뎅이에 깔린 타올을 재빨리 끄집어내여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려 했으나 부풀어오를대로 오른 치부를 다 가릴수가 없었다. 그저 악몽의 문짝에 옷자락이 끼여 오도가도 못하는 심야의 녀인처럼 온몸으로 경악하며 악! 악! 하고 색시는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댔다. 오늘 보니 두상(头像)이 무지스럽게 커보이는 시아버지는 정지된 시계처럼 동공 하나 움직이지 않고 버캐를 허옇게 문 입술을 실룩이며 침 한번 삼켰다. 떠얼컥! 비좁은 화장실에서 그 소리는 쇠덩어리의 실추소리처럼 둔중하게 울렸다. 그러는 령감의 손에 어데서 찾아냈는지 망치 하나가 불끈 쥐여있었다. 떨어져 갓도는 단추알처럼 령감의 눈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확 살아오른 눈빛이 멈춘 그곳에 온수기가 달려있었다. 어떻게 화장실을 빠져나왔고 재빠르게 옷가지들을 꿰여입었는지 그 순간만은 색시의 뇌리속에 하얗게 지워지고 없었다. 화장실에서 천둥소리같은 질타성이 탕! 타아앙! 울려나옸다. 령감님이 망치를 들고 온수기를 사정없이 후려서 부서뜨리고있었다. 색시는 무거운 몸매의 사람 같지 않게 층계를 단숨에 달아내렸다. 독전(毒箭)같은 비가 그녀의 전신에 꽂혀들었다. 비물에 질척해진 공지를 가랭이에 흙탕꽃을 피워가며 색시는 첨벙첨벙 뛰여갔다. 대로곁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다. 구명선처럼 덮쳐가 헤덤비며 번호를 눌렀다. 틀려서 다시 눌렀다. 전화기를 꼭 잡은 다른 한손은 전기드릴을 잡은 인부의 손처럼 달달 떨리고있었다. 여보시요? 여보시요? 말씀하세요. 여보시요? 드디여 남편이 근무하는 회사가 걸렸고 받은 사람은 고맙게도 남편이였다. 어쩐지 눈물이 돋솟아올았다. 색시는 악에 받쳐 소리소리 질렀다. 못살아!- 집 가까이에 있는 다방에서 색시는 영 오지 않을것 같던 남편과 마주 앉았다. 창밖은 여전히 흐려있었고 암울한 날씨처럼 남편의 표정은 차마 보아내려갈수 없도록 험했다. 뜨거운 차 한잔이 다 들어가고 그만한 따스함이 두려움에 오갈든 가슴에 채워져서야 색시는 진정을 할수가 있었다. 머리칼에서는 아직도 비물이 뚤렁뚤렁 빈 차잔에 떨어져내렸다. 남편이 또 티슈를 집어 건네주었다. 남편은 처음 보는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아니, 담배필터를 씹고있었다. 그리고 차물을 랭수처럼 들이켰다. 차잎이 입가에 추레하게 달라붙었다. 울엄만 아부지보다 다섯살우였어… 남편이 긴긴 침묵때문에 가라앉은 목청을 가다듬고나서 한 말이였다. 색시는 아직도 피해의식이 가득찬 얼굴을 들어 남편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부진 아홉살에 엄마한테 장가들었지… 그런 남편을 색시는 제지시킬 힘조차 나지 않았다. …아부지와 엄만 진갑까지 함께 쇠였댔어. 점욕당한 자기처럼 흥분하지 않고 무관한 입담거리를 꺼내고있는 남편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만해욧!- 늦여름 땡볕에 오른 고추가 되여 색시는 힘을 모아 기성을 질렀다. 카운터에서 계산에 골몰하고있던 웨이터가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은 여전히 침착했다. 또 한개비의 담배를 꺼내들었다. 필터쪽을 떼내여 입에 넣고 지근지근 씹었다. 동강난 말을 서두르지 않고 붙여나갔다. …그런 부모를 둔 우리 형젠 무척 행복했었지.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을 주려고 우린 그분들을 이곳으로 모셔왔어. 물론 아버지와 어머닌 안오겠다고 버퉁겼어. 우린 강다짐으로 끌었어. 그것을 효도라 생각허구… 색시는 네 맘대로 지랄춤 춰바라는듯 잠자코 있었다. 들끓던 분노가 체념으로 잦아들고있었다. 남편이 얼굴을 들어 그런 색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흐려있었다. 허나 강했다. 엄만… 엄만 누님네 집에 들었어. 막내동인 내게 부접거리를 얹을수 없다면서말야. 내가 누님보다 드 크고 더 좋은 집을 쓰고있었지만. 그러던 엄만, 엄만… 잠언풍의 말투로 흐르던 남편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황사장(黄沙场)의 맞바람을 지나는듯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엄만… 이사짐을 푼 그날 저녁 죽었어. 목욕하다가 … 목욕하다가 온수기에 감전되여 죽은거야!… 아! 색시의 입에서 헛바람같은 경아성이 새여나왔다. 개천에서 나와 립신양명한 아들딸의 효성어린 지청구에 못이겨 돌맹이 하나 풀 한잎에 정한이 스민 고향을 떠났고 극락인지 아니면 염마전인지 쇠통 알길없는 도시에 겁먹은 눈길로 들어섰던 부모님, 한짝도 락오없이 짝지어 세파의 구름길을 헤쳐나는 홍안(鸿雁)같은 부모님들이였는데… 색시는 그제야 운무에 가렸던 시아버님의 그 광기에 가까운 집착의 근원을 리해할수가 있었다. 그 실어증(失语症)에 가까운 과묵과 두문불출의 자기학대에 대해 알것만같았다. 반세기 넘어 죽음같은 고해의 현애탄도 다 넘어왔는데 천륜지락이 당금 아지랑이처럼 펼쳐질무렵 어이없게 그렇게 가버린 누님같던 부인네의 죽음을 두고 도깨비 보물함처럼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는 철천지의 기계를 바라 두눈을 흡뜬 시아버님의 피로문 절망을 며느리는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불쌍한 아버님! 리해, 그리고 량해가 저 하늘의 천둥과 번개처럼 순간에 엇갈렸다. 꼭같은 비운이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흉터같이 속살깊이 남아있는 그녀였기에 가슴을 짓누르고있는 그러한 정감의 바위돌의 무게를 색시는 너무나 잘알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남편의 뒤를 묻어 다시 집에 들어섰다. 집은 폭풍우가 지나간 숲처럼 고요했다. 화장실문은 열린채로이고 추락해버린 비행기의 잔해처럼 온수기의 흉칙하게 찌그러진 외각과 튕겨난 파편이 욕조며 타일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어항에 부착된 산소방출기는 꾸르륵꾸르륵 흡독자같은 “수은대”의 소리를 그냥 내고있었고 그 극독을 받아 마시기라도 한듯 캐씽구라미가 꿈틀거리며 단말마적인 춤을 추고있었다. 남편이 아버님의 방을 노크했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순간 짧고 다급한 비명이 적요한 실내를 찢었다. 자멸을 시도한 시아버님은 구급을 들이댔으나 효험을 보지 못하고말았다. 집도(执刀)의사가 아버지의 배속에서 수술해낸것을 소반우에 받쳐들고 나왔다. 햐얀 가제우에 놓인 시아버지가 삼켰을 물건을 보는 순가 색시는 흑- 찬바람을 들이키고말았다. 전신의 신경들이 올올이 직립을 했다. 검붉은 피덩이에 반죽되여나온 그것은 남편이 언젠가 아버님에게 주었던 시계의 잔해였다. 바늘, 치륜, 태엽… 랑하의 벽에 등을 맞대고 섰던 색시는 손바닥으로 벽을 만지며 스르륵 미끌어져내렸다. 단단한 일격의 두통이 왔고 속이 메슥거려올랐다. 그것은 잠시, 복부를 척살(刺杀)하는것 같은 진통을 느껴 색시는 배를 부여잡았다. 사려문 어금이로 신음이 새여나왔고 신다리를 타고 뜨거운 압류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색시는 밀랍인형처럼 허실상몽으로 내내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내내 울었다.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올수 있다는것이 울고있는 색시에게마저도 이상했다. 그렇게 울고있는 자신의 처경이 불쌍해 다시 눈물이 장마의 힘을 받은 개천처럼 흘렀다. 세상이 그렇듯 참독할수가 없었다. 시상에! 어쩜 그럴수가! 아버님은 처참히 스스로를 보냈고 색시는 , 열달잉태의 고임(苦任)에 시달렸던 색시는 그만 죽은 아기를 낳았다. 병원의 간호장도 남편도 아기를 보고 혼겁을 했다. 색시자신도 그 아기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실성을 하고말았다. 아기는 공상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외계인같은 그런 끔찍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귀도 없고 코도 없고 눈은 외눈이였고 팔은 생략된채 고기의 지느러미같이 손만이 량어깨에 달려있는 … 장시간의 심리의 불온증세와 외부로부터 온 복사(辐射)같은 물질의 충격으로 빚어진 기형이라고 의사들은 분석했다. 꿈은 그렇게 동강이 났고 꿈은 잃은 색시는 거대한 상실감에 몸져누워버렸다. 일주일째나 색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전자병의 후유증처럼 색시가 받아안은 충격은 시간의 힘으로 떼칠수 없는것이였다. 맥을 버린 안해와 붕괴된 일상을 어떻게 환원시켰으면 좋을지 몰라 남편은 살이 패일 지경이였다. 장시간의 말미를 맡고 안해를 동무해주었다. 방급전에도 저녁찬거리를 장만하려 장으로 나갔고 안해의 잊혀진 식성을 자극할 음식물을 만들어내려고 해가 기울도록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남편마저 자리를 비운 집안은 죽음처럼 고요했고 호화스러운 부장품(附葬品)을 가득 채워놓은 관속과도 같았다. 어항의 산소방출기가 뿜어내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리군했으나 그것은 방창처럼 고요의 의미를 더 부여해줄뿐이였다. 홀연 어데선가 가냘픈 소리가 새여나왔다. 소리는 옷장속에서 새여나오고있었다… 맴, 매앰- 전자양의 울음소리였다. 그동안 전자양을 남편이 보살펴주었다. 그 전자양이 배고팠던지 아니면 목말랐던지 울어대고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 애련한 소리는 색시에게 있어서 지휘관의 부름과도 같은것이였다. 허나 더위 먹은 소 여물 반가운줄 모르듯 세상사가 귀찮아진 지금에 와서 그 소리는 역겹게만 들려왔다. 맴, 매앰- 전자양은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고있었다. 전자양이 꼭마치 아기들처럼 울었다. 색시는 시끄러웠고 체증기가 치밀어 올랐다. 앓고있던 사람 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옷장문을 왁살스럽게 열어젖혔다. 그 전자물건은 옷장에 걸린 색시의 옷호주머니속에서 울고있는것이였다. 색시는 그것을 끄집어내여 침실밖에 힘껏 뿌리쳤다. 침실문을 쾅- 닫아버렸다. 허나 전자양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있었다. 젖 달라 보채는 아이들처럼 악패듯 울었다. 색시는 드디여 분노했다. 비여진 령감님의 방에서 무언가 찾아들고 나왔다. 망치였다. 가증스런 그 전자물은 벼룩이처럼 쏘파밑에 굴러들어 울고있었다. 간신히 손을 집어넣어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 힘껏 짓쫗았다. 전자양이 튕겨나며 “뺑소니”를 쳤다. 색시는 무릎걸음으로 쫓아가 다시 한번 내리쫗았다. 파편쪼각이 얼굴에 튀였고 색시는 울컥 뿜겨나오는 피의 분수를 환영으로 보았고 처음으로 파괴의 호쾌한 쾌감을 맛보았다. 이번에는 작업실의 문을 발길로 차 열었다. 컴퓨터가 백포를 뒤집어쓰고 수녀처럼, 검은 수건을 쓴 마귀할멈처럼 내숭떨며 놓여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색시의 눈에 발광체가 그물거렸고 드러난 견갑골에는 팽팽한 긴장이 서려있었다. 색시는 망치를 두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작업대를 향해 한발두발 죄여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퍽 늦게서야 집에 들어섰다. 가까이가 아니라 물목이 구전한 중심 장거리에까지 다녀온것이였다. 각종 소채가 남편의 손에 들려진 구럭을 임신부의 배처럼 불려주고있었다. 그속에는 소갈비 한짝과 소고기의 정육덩어리도 들어있었다. 여보, 나 소고기 사왔어. 오래만에 소고기맛을 보는구만. 남편은 침실쪽을 향해 소리 높이 말했다. 외국에서도 소고기 수금령을 해제했으니 이제 시름놓고 고길 먹게 됐소. 그래도 푸른 검역도장이 찍힌걸 확인하고 사왔지. 안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요사이 그런 안해에게 버릇된 남편은 안해쪽을 방치해둔채 주방에 들어섰다. 제법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련듯 응접실로 나가 텔레비죤을 틀었다. 개시곡의 경쾌한 곡조가 한적하던 실내를 뒤흔들었다. 요란맞은 그림영화가 나왔고 이어 저녁뉴스가 나왔다. …환경검출소에서 어제 내린 비의 강우질을 검출한 결과 놀라운 소식이 발표되였습네다. 어제 우리 도시에는 산성비가 내렸던것입네다. 산성비는 건축물을 부식하고 생태계통을 파괴하며 인체건강에 커다란 해를 주고있습네다. 우리 도시는 이미 국가이산화류황동제지역에 들어섰습네다… 남편은 소식을 들으며 마늘을 까고 파를 썰고 갈비를 두드렸다. 남은 고기를 랭장고의 얼음층에 넣으려고 문을 열었던 남편은 그만 당혹감에 두눈을 올롱하니 치뜨고말았다. 랭장실에 아침까지 보이지 않던 물건이 들어있는것이였다. 소랭이에 음식물을 담아 들여놓았나 생각했던 남편은 그 실체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고말았다. 그것은 그 무슨 음식그릇 같은것이 아니라 … 어항이였다. 그채로 집어넣은 어항은 이미 돌결되여 있었다. 유리외각은 깨여져버리고 물이 어항처럼 반구체(半球体)를 이루고있었다. 남편은 유리쪼각에 손을 긁히면서 얼음을 끄집어내였다. 얼음은 고목에서 파낸 호박(琥珀)처럼 투명했다. 그리고 주방불빛에 투영되여 등롱처럼 반짝이고있었다. 그속에 물고기 두마리가 얼어붙어있었다. 상상도 못할 변고를 당한 물고기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있었다. 원체 눈꺼풀이 없는 고기의 눈이 더 커보였다. 박제된 공간에서 캐씽구라미는 공포에 잔뜩 질린 눈으로 역시 그런 눈을 하고있는 주인을 지켜보고있었다… □                                    "도라지" 2000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Don't say goodbye          
241    텍사스, 텍사스 댓글:  조회:2119  추천:12  2014-07-18
. 단편소설 .   텍사스, 텍사스   김 혁     “텍사스의 밤”이라 했다. “텍사스의 봄”, “불타는 텍사스”… 골목길에는 텍사스라는 상호를 넣은 네온싸인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안마시술소의 맹인 안마사의 손에 몸뚱아리를 맡긴채 박은 두눈을 느스름히 감았다. 래일이면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젠 빠이빠이다. 티켓은 이미 끊었고 박은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13년만의 귀향이다. 요즘은 방문취업비자가 만료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박과 같은 사람들이 30만을 웃도는데 년말부터 순차적으로 비자가 만료돼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아우성을 쳤고 어떡하나 돌아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했다. 하지만 박씨만은 그들과 달랐다. 하루빨리 돌아가고만 싶었다. 더는 이곳에서 알탕갈탕 살고 싶지 않았다.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이 십수년의 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나날들은 박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십여년전, 안해가 그보다도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을 했다. 너나가 출국이라는 좁은 외나무다리에 발을 올려놓기 시작하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방식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내 먼저 들어갈터니 인차 따라오세요” 속을 졸이면서 떠난 안해는 용케도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뒤를 따라선 박씨가 문제였다. 첫 출시도는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다. 다시 가짜비자를내서 감행했던 모험 역시 인천공항에서 들통나 가차없이 축객령을 당했다. 그러다 요행 세번째만에 남보다는어렵게 출국의 문을 열어 젖혔던 박씨였다. “왜 텍사스촌이라 부르지요? 텍사스라면 미국쪽이지 않습니까?” 박씨가 궁금한듯 안마사에게 물었다. 내내 웃음을 고수하고 있어 가면같아보이는 얼굴의 안마사가 말했다. “서부영화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어요. 요즘에는 잘 안보지만. 매일이고 비디오 가게를 찾아 클리튼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들을 빌려보곤 했지요. 그런 서부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총싸움도 하고 포카(카드 게임)도 치고 하는 술집 있잖아요. 그 술집들을 보면 형태가 아래 층에선 술을 팔고 윗층에선 여자를 데리고 자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이곳에서 처음영업소들이 들어섰을때 모두 그러한 형식들이였는데 그래서 영업소마다 서부의 이름을 따서 ‘텍사스" 달았다 그러네요.” “아, 네” “그리고 또 한국전쟁후 이런 영업소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미군들이였는데 그때는 미국에 대한 막역한 동경심때문에 이름이 붙은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은…” 그랬다. 막역한 동경심이였다. 서울에 가면 떼돈을 벌수 있다는 막역한 동경심으로 박씨네도 미련없이 고향을 버리고 서울행을 택했다. 그런데 한국에 나간 이후로 안해는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출국로무의 길을 열었던 박씨는 빚에 졸려 매일을 뜨거운 양철지붕에 맨발로 올라선 처경이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안해는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일자리 겨우 얻었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요! 하고 안해는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매주마다 전화를 쳐서 원망을 토하는 그를 바라고 안해쪽에서 고성이 터져 올랐다. “나 지금 서울에서 돈방석에 앉아있는게 아니야, 나도 힘들다고요!” 박씨는 깜짝 놀라 수화기를 멍청하니 들여다 보았다. 시골 무지렁이 안해였다. 요즘 세월에 보기드물게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고태에 절은 안해였다. 안해와 처음 사귀던 때, 반년이 지나도록 박씨는 그의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어느 한번, 술에 취한 박씨는 취기가 발동해 안해를 부득부득 그러 안다가 그만 비명을 흘리고 말았다. 안해가 그의 어깨박죽을 물었던것이다. “차암, 순수하기로 옛날 같으면 렬녀 될사람이야.” 웃어 넘겼지만 그때 물린 자리가 지금도 그의 어깨에 도도록한 흉터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마냥 조신스런 몸가짐으로 모기소리처럼 한 옥타브 낮게 속삭이던 안해가 그를 향해 소리소리 지르고 있는것이다. 그날 이후로 안해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친지들 눈에 박씨의 안해는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동정, 추측 혹은 조소 어린 눈길로 박씨를 끔찍하게 지켜보고있었다. 먼저 한국에 갔다온 고향사람들이 띄염띄염 안해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식당일에 절은지라 무릎병이 도져 오래동안 일을 못했다고했다. 또 누구는 고시원에서 청소원으로 일하다가 불이 나면서 대피하다가 다쳤다고도 했다. 하지만 캐물을라치면 누구나 근자에는 본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하기 바쁘게 박씨는 안해를 찾았다. 하지만 안해는 깨끗이 증발하고 없었다. 안해를 찾지도 못했는데 박씨의 발등에 불이 떨어 졌다. 건설현장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막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들에게 공사를 맡긴 원청업체가 공사대금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체임이 수천만원까지 불어났다. 서울에 있는 동포단체의 도움으로 민사소송 끝에 승소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어느새 종적을 감춘 뒤였다.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하며 벌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박씨는 체불도 못받은채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감탕밭길보다도 더 헤쳐나가기 어려운것은 안해를 찾는 길이였다. 휴일이면 욱신거리는 삭신을 춰세우며 안해를 찾으러 진동한동 뛰여다녔다.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다 찾아 물어도 안해는 이 세상 천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마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박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키곤 했다. 그러다 타향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교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간신히 몸을 춰 세웠다. 그리고 박씨는 귀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돈은 몇장 챙기지 못해도 어서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조촐한 곳이라도 따뜻한 고향의 온돌목에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뉘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 그동안 고생에 고생을 이어온 자신에 스스로 보상이라도 줄 양으로 좋은 안주에 술을엄청 마셨고 어쩌구려 취한 발길은 평소에는 엄두도 못내던 안마시술소 까지 찾아 든것이였다.   “이제 이곳도 당금 문을 닫게 된답니다.” 안마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왜요?”    “정부로부터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어요. 좋은 일이지요. 토지보상문제가 해결되면 봄쯤에는 아마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될겁니다. 30층 되는복합 아파트도 들어서고 랜드마크 건물들이 들어선다고 하던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티며 골목 업소들에선 간간이 영업을 하고 있지요.”    안마사가 한마디 꼬리를 달았다. “우리 안마술사들은 그래도 자격증 같은것이 있어 괜찮지만 여기서 일하던 그렇게 많은 안마사들은 이제어디로 갈런지.” 안마사가 탄식같은것을 내뿜었다. 그러면서 새삼스레 박에게 물었다.  “근육이 너무 뭉쳐 있네요. 한번 풀어 보시겠어요?” 느닷없이 안마사의 음성은 방금전보다 한옥타브 낮아져 있었다. “다른 안마를 받아 보시겠냐구요?” 그 은근한 물음에서 박씨는 어떤 핑크빛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 박이 웅얼거리며 답했다. 그동안 참고 견뎠던 정염이 다시 상기되여 아래배에 힘이 불끈 솟아 올랐다. “잠간만 기다리세요” 안마사가 맹인치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익숙하게 방을 더듬어 나갔다. 인차 문이 다시 열렸고 녀자가 들어왔다. 벽에 붙은 전신 거울로 녀자의 모습이 력력히 보였다. “미스 정입니다.” 화장기 진한 녀자는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다가왔다. 교태어린 코맹맹이 소리로 자아소개를 하고는 다짜고짜 상의를 벗었다. 묵직한 가슴을 흔들며 녀자가 엎드린 박의 등에 올라 탔다. 녀자의 손이 거침없이 박의 몸뚱아리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담대한 터치에 박은 일순 당황했으나 오랜만에 받아보는 녀자의 손길에 물먹은 솜이 되여버렸다. 박은 흐트러지는 숨을 애써 고르며 녀자의 손에 자기를 맡겼다. 뱀처럼 굼닐던 녀자의 손이 문뜩 멎었다. 녀자의 손은 박의 어깨에에 와 멎어 있었다. 녀자가 머리를 숙이며 박의 어깨를 들여다 보았다. 어깨에 난 상처를 찬히 들여다 보았다. 순간 녀자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희윱스레한 불빛을 빌어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녀자의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박은 놀랍게 볼수 있었다.  녀자가 얼굴을 싸쥐며 방을 뛰쳐 나갔다.  박은 그 무슨 의학용 표본마냥 박제라도 된듯 그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창밖에서는 “텍사스”라는 상호가 새겨진 네온싸인이 명멸하고 있었다.     “장백산” 2014년 2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40    [월드컵 別曲- 4]패자만가(敗者挽歌) 댓글:  조회:3363  추천:11  2014-07-16
월드컵 별곡(別曲)- 4 패자만가(敗者挽歌)   김 혁   그라운드를 누비며 왕자(王者)의 기염을 토하던 강호탐들의 줄에 줄을 이은 탈락은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이슈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챔피언인 에스빠냐팀은 이번 대회의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1차전 화란전에서 유례 없는 1-5 대패를 당하면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했던 칠레전마저 0-2로 패하면서 조별리그 2경기 만에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축구 종가”로 불리던 잉글랜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56년 만의 탈락, 그야 말로 축구 종가의 몰락이다. D조 이딸리아와 코스타리카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는 웃었지만 잉글랜드는 울었다. 2패를 당한 잉글랜드는 이딸리아가 승리해야만 16강 진출의 희망을 밝힐수 있었지만 코스타리카가 승리하면서 16강 탈락을 확정했다. 주최국인 브라질도 몰락했다. 독일전에서 1-7이라는 대참패에 이어 3-4위 전에서 자존심 회복을 꿈꿨지만 또 다시 0대3으로 화란에 무너진 브라질은 “축구제국”이라는 위상의 실추와함께 력대 최악의 경기로 월드컵을 마무리 지었다. 충격적인 참패에 주최국의 자호감을 머금었던 브라질 관중들은 허탈해하거나 울부짖었다. 한 중년 녀성은 경기 결과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월드컵이 막을 내리던 날, 브라질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남녀노소 모두 울었다. 팬들은 물론 선수들까지 모두가 망연자실, 넋 나간 표정이였다. 온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진 가운데 호세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슬프고 안타깝다"며 "브라질이여, 다시 털고 일어나자"고 허탈감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하여 나섰다. , 경기장에서의 희비가 엇갈린 승자와 패자의 형국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도식적인 경쟁구조속에서 결과에 따라 아퀴를 지어야 하는 경기장은 비정하고 잔혹하다. 당연 승자는 성공이요, 패자는 실패라고 본다. 우리는 흔히 승자에 환호하고 승자를 칭송하며 승자의 미덕을 배우려 한다. 리해와 위무가 수요되는 패자에 대해서는 외려 타매하고 조소하기가 일쑤다. 승자의 화단에 화려한 이름을 새긴 이들보다는 패자의 회한을 간직하고 눈물을 씹어삼키는 이들에게 더 눈길을 주어야  할턴데 세상사가 어디 그렇던가? 운명의 조화에, 더 강한 자에 가로막혀 꿈을 접어야 했던 패자는 사실 타매의 대상이 아니며 패배는 결코 수치로만 락인찍을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자세가 중요하다. 하여야만 다시금 새로운 승리를 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을뿐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세를 준비할수 있다. 한번 승자는 영원히 앞서고 한번 패자는 영원히 뒤쳐진다고 정해져 있지 않다. 다시 일어설수 있다, 할수 있다고 일심 하나 품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결국 승자이다. 우리앞에는 실패에 인내하면서 재기하여 의지의 인간상을 보여준 위인과 고사가 많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내려앉은 그늘속에 자포자기하지말고 그 무겁고 참담한 너울을 헤치려고 다시 몸을 솟구칠때 비로서 다시금 스포트라이트처럼 쏟아지는 찬란한 빛무리를 볼수 있을것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9    [월드컵 別曲- 3] 월드컵을 보며 로자를 생각하다 댓글:  조회:3356  추천:13  2014-07-15
월드컵 별곡(別曲)- 3   월드컵을 보며 로자(老子)를 생각하다   김 혁 25일, 16강 진출이 걸린 티켓을 두고 맞대결을 펼쳤던 이딸리아와 우루과이의 경기에서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어처구니가 벌어졌다. 팽팽하던 후반전 경기에서 우루과이 선수 수아레스가 그 무슨 독 오른 강아지처럼 상대 선수인 키엘리니의 어깨를 물어뜯었던것이다. 수아레스는 선제골이 들어가기 직전인 후반 33분 경 이딸리아 수비수인 키엘리니와 몸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키엘리니의 어깨를 이로 깨물었던것이다. 키엘리니의 어깨 살갗에 는 수아레스의 치렬이 명확하게 찍혔다.     수아레스의 렵기적인 행동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케 했다. 이를 팬들은 “핵이빨 사건”이라 부른다. 인터넷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패러디 영상들이 륙속 올라오고 있다. 패러디속에서 팬들은 수아레스에게 사나운 강아지에게 씌우는 입마개를 씌우기도 하고 수아레스의 이빨을 병따개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또 년말 총결산에서 수아레스는 월드컵 트로피 대신 이빨로 만든 금상을 수상한다. 월드컵이 마무리되고 총결하는 시점에서 이번 월드컵의 각종 사건사고의 톱은 단연 “핵 이빨”로 꼽혔다. 국제축구련맹은 수아레스에게 아홉차례의 경기출전 정지와 4개월 간 축구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고  벌금 10만 스위스프랑(인민페 약 600만원)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수아레스는 우라과이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 득점왕에도 오르는 등 전성기를 맞은 선수이다. 꼴을 넣는 감각이 “메시와 필적한다”는 격찬을 들을 만큼 유망주였고 부상 중인 상황에서도 놀라운 활약으로 우루과이를 16강에 올려놓았다. 그런 유망주가 화급한 성격과 기행으로 사랑하던 잔디밭에서 축객령을 받게 된것이다. 수아레스와 비견될만한 인물이 또 있다. 미국 전 프로복싱 우승자 마이크 타이슨이다. 1997년의 어느 한 경기에서 타이슨은 상대선수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력사에 남을 기행을 벌였다. 중징계와 여론의 타매속에 침체되였던 타이슨은 그후 수차례의 복귀전을 가졌으나 련전련패했다.   혹 동에 닿지않을 련상일는지는 모르지만 월드컵을 보면서 도가의 창시자인 로자(老子)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로자의 스승은 상용(商容)이란 사람이였다. 스승은  림종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 자리를 마련하고는 로자에게 하나의 과제를 던졌다. 상용은 로자에게 이가 다 빠진 합죽이를 벌리며 물었다. "내 입속을 보거라. 혀가 있느냐? 아니면 이발이 있느냐?" 이에 로자는 스승이 가르치고저하는바를 인차 느껴 알아냈다.    "스승님의 치아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 남아있는 것 아닙니까?" 상용이 머리를 끄덕였다. 로자는 이미 거친 세상에서 생존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던것이다. 로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 전역에 군웅이 할거해 천하를 얻기 위한 싸움이 치렬한 란세였다. 그런 혼란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아갈수 있는 처세술을 익히고 제시하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도덕경(道德經)을 쓴 로자였다. 무한경쟁이 과열화되고있는 세상을 살고있는 우리는 쇠도 씹어 먹을 만큼 강한 이빨을 가져야 생존할수 있는것으로 알고있고 또 그렇게 매일이고 자신을 추스리고 있다. 하지만 고사나 우리 신변의 에피소트에서도 보면 실제 그렇게  강용했던 이들이 외려 남보다 빨리 경쟁의 무대에서 사라진 경우도 많다. 이발과 혀의 고사가 던져주는 생존리치! 경쟁이 백열화되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잠간 곁가지를 쳐본 생각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8    닭울음소리 한 가닥 들을작시면 댓글:  조회:5570  추천:16  2014-07-14
. 잡문 .    닭울음소리 한 가닥 들을작시면   - 을유(乙酉)년 잡감   김 혁         이 세상 닭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싶었던 때가 있었다. 소학시절 《밤중에 우는 닭》이란 소책자를 보고서였다. 빈하중농들의 고열을 더 짜내기 위해 지주 놈이 신 새벽에 닭장으로 기여 들어 자는 닭을 들쑤시면서 닭울음소리를 내게 하다 들통이 났다는 아동이야기. 문화대혁명의 여파에 국민모두가 환혹(幻惑)에서 깨지 못한 풍토에서 그 이야기는 붉은 홍소병 이였던 나에게 닭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기자로 발탁되기 전까지 내가 하고있던 일이 양계장부란공이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적다.연길의 동광양계장에서 1년 남짓이 달걀을 깨웠었다. 밤잠을 바로 자지 못하면서 부란기 속의 달걀들이 열을 고루 받도록 반시간에 한번 꼴로 달걀을 번져놓는 따분한 짓거리, 몹시 힘들었던 나는 달걀이 깨나는 시간이 21 일 이여서 망정이지 인간처럼 열 달이 아님에 안도를 머금었었다. 그러나 그런 경력 때문에 닭과 나 사이는 여느 때보다도 그 누구보다 도타워 졌다. 지금도 혹시 슈퍼에서 들렸다가도 가금 알 매장에서 나는 달걀을 손에 올려놓은 채 멍청하니 회심의 미소를 짓기가 일쑤다.   올해는 닭의 해   닭이 사람들과 친해진 지는 약 5 천년쯤 된다고 한다. 닭은 야계(野鷄)가 원래 종자였다. 인도나 동남아지방에서 맨 처음 야생 멧닭을 잡아다 사육 개량한 것으로, 우리민족에게는 6,7세기에 들어온 것으로 문헌은 전하고 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도 꼬리 긴 닭이 등장하는데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러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이나 《후한서》《해동력사》에는 조선에서는 꼬리 긴 장미계(長尾鷄)를 키운다는 기록이 있으며 닭을 부를 때 《구구 라고 한다》고 씌여있다.  고대 인도사람들은 고구려를 《쿠쿠테 에스바라》라고 불렀던 바, 범어(梵語)로 쿠쿠테는 닭, 에스바라는 귀(貴)함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닭을 서조(瑞鳥)로 여겼다. 어둠 속에서 려명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천조이고, 태양의 상징으로도 인식되어 왔다.《주역》에서 봐도 그렇다. 닭은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려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에서도 《해 뜰 때면 천하의 닭들이 모두 따라서 운다》고 하여 닭이 새벽을 알리는 령물임을 밝히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곤 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시보용(時報用)으로 궁중에서 닭을 길렀고 또 먼길을 떠날 때 시간을 알기 위해 몸집이 작은 당닭을 갖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침계(枕鷄)라고 하는 아주 작은 닭이 있어서 속이 빈 베개 속에 이 닭을 넣고 자면 자명종처럼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려 준다고 했다.    닭이 벽사( 邪)의 능력을 갖는다는 속신(俗信)도 그에서 발상 된 것이다. 사람들은 동이 틀 때 횃돼에 올라가 새날이 옴을 예고하는 닭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이 끝나 밤을 지배하던 마귀나 유령도 물러간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액막이나 재앙 쫓기에 닭이 많이 등장했다. 새해를 맞은 가정에서는 닭이나 룡, 범을 그린 세화(歲畵)를 벽에 붙여 잡귀를 쫓고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 닭 머리를 문설주에 매달거나 닭 피를 집 주위에 뿌리기도 했다. 한편 복날 닭을 먹는 것도 삼복의 류행병을 막자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새벽에 닭의 울음이 열 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고 닭이 제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닭은 출세와 공명(功名)을 상징하는 그림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높이 걸었다. 닭이 이고 있는 볏은 관(冠)과도 흡사한데 관을 쓴다는 것은 바로 벼슬한다는 뜻, 그리고 수탉, 즉 공계(公鷄)의 公과 功의 음이, 울음 운다는 鳴과 名의 음이 같은 데에 착안해서 서로 련상시킨 것이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필요하다. 혼인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평생 의례인데 이때에 닭이 등장하는 것은 처자를 잘 보살피는 수탉의 도리와 알을 잘 낳고 병아리를 잘 키우는 암탉의 도리를 부부가 되는 이들에게 인지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본다.   닭은 사람과 늘 함께 하는 가축이므로 그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닭에 관한 속담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있다.     《소 닭 보듯 한다 》《닭 싸우듯 한다》《닭도 제 앞 모이는 긁어먹는다》《닭의 볏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외에도 닭대가리라는 말은 사려가 깊지 못하고 지혜가 얕은 사람을 비꼬는 말이요,닭 고집이라는 말은 하찮은 일에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가고 옴을 상징하는 닭의 울음소리는 인간에게 온갖 희비를 엇갈리게 하면서, 우리의 민속과 문학 작품에서 많이 형상화되고 있다.   닭아, 닭아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간단 말인가 !   고전소설 《심청전》에서  공량미 300석에 팔려 가는 심청이가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장면이다.    고기가 귀했던 옛날,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아도 지렁이 메뚜기 따위의 벌레와 갖가지 식물의 씨앗들을 주워 먹으며 자라서 살이 오지게 붙은 닭은 가난한 서민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고기 밑천이었다.약효도 우수하여 명나라의 본초학자 리시진은 《본초강목》에서 《중국사람들은 조선 닭이 좋다 하여 이를 구하러 조선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적었다. 《동의보감》에서는《닭고기는 허한 것을 보 하는데 매우 좋아서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처방에 많이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중  일미가 삼계탕이 아닌가 싶다. 우리 조상들은 지친 몸을 보 해주고 내장을 따뜻하게 하여 기운을 끌어올리는 좋은 음식인 삼계탕으로 삼복더위에 떨어진 원기를 되살렸다.    펄펄 끓는 뚝배기 속에 보얀 국물, 인삼과 찹쌀, 밤, 대추를 닭의 밑에 넣고 푹 고아 우러난 삼계탕,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는 어느 소설에서 삼계탕을 최고의 음식이라 극찬하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젓가락을 갖다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뼈에서 떨어져 나와 쫀득하고 하 얀 덩어리로 변한 찹쌀과 함께 수프 속에 녹아든다. 봄에 녹아 내리는 빙 산처럼...》   아무튼 닭은 약용으로나 고기 맛으로나 그 가치가 뛰여날 만큼 우리한테만 주어진 소중한 보물이다.    요즈음에 와서 시골이나 유원지 같은 곳에 토종닭으로 곰을 해주는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다. 연길에서도 북쪽으로 교외를 벗어나 대성이라는 촌마을에 이르면 닭곰을 해주는 집이 저 그만치 50여 집, 《닭 미식 촌》으로 불리고 있다.   닭에 대한 기문취담   세상에서 가장 알찬 사업은?    - 알(계란)장사  세상에서 가장 야한 닭은?      - 홀딱(닭) 닭은 닭인데 먹지 못하는 닭은? - 까닭                  세상에서 가장 급한 닭은?      - 후다닥(닭) 숨이 넘어가는 닭은?           - 꼴까닥(닭) 병아리가 제일 잘 먹는 약은?   - 삐약      딸애가 재밌다며 내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유머이다. 여느 짐승처럼 닭에 대한 기문과 취담은 많고도 많다.     닭에 대한 애착은 다만 우리 민족만이 있는 것 아닌 것 같다. 닭에 대한 끈끈한 인연을 가진 나라가 있다. 프랑스다.   프랑스 인은 원래 골 족이라고 하는 프랑크족의 한 부족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여기서 골(Gallus)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닭이라는 뜻이다. 중세 시대, 골의 닭은 종교적인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고 집정내각에서 사용한 식기와 국새(國璽)에서도 닭은 새겨져있었다. 그것은 희망과 믿음을 상징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집정하면서 닭은 홀대를 받았다. 그는 닭보다 독수리를 즐겼다.《닭에게 무슨 힘이 있겠소. 그런 작은 미물이 프랑스와 같은 제국을 상징할 수 없소.》이것이 나폴레옹님의 지론이다. 나폴레옹에게 멸시 당하던 닭은 제3공화국에 이르러 거의 공식적인 상징으로 되였다. 국민 근위대의 깃발과 의복 단추에도, 19세기말에 건설된 엘리제궁의 철책에도, 20프랑 짜리 금화에도 모두 닭의 모습이 주조 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는 4년간에 걸친 독일군의 점령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당시 닭의 용기를 빌어 항독운동에 나선 프랑스인의 담을 북돋기도 했다. 닭이 나치스의 독수리와 맞서 싸운 것이다.   근래에는 특히 스포츠 행사를 위시하여 해외에서 프랑스를 환기시킬 때 주로 사용된다.   일본과 우리 민족사이에도 닭을 두고 벌린 력사적인 암투가 있었다.    한일합방 직전에 조선에서는 일본에 보급되던 백색종자 닭을 들여와 민간에 나누어주고 기르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곧 나라가 일본의 마수에 떨어지자 뜻 있는 우국지사들은 《본디 흰 닭은 귀신으로 둔갑을 잘 한다》는 말을 퍼뜨렸다. 울긋불긋한 조선 닭을 기르던 사람들은 흰털의 일본 종을《왜 닭》이라고 부르며 일본 사람을 보듯이 싫어했다.     몇 해전 중앙TV에서 보았던 기사 하나가 떠오른다. 서북부 신강일대가 메뚜기 떼의 습격을 당했다. 하늘땅을 가맣게 메우며 덮친 메뚜기 떼는 평방 당 4,000마리나 되었다. 예산이 부족해 항공방제를 하지 못하게 되자 지혜로운 사람들은 닭을 풀었다. 1만 마리나 되는 닭 장군들이 메뚜기 소탕전에 나서 인간과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취담을 들어보면, 미국에서는 해마다 기발하고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연구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이라는 패러디 노벨상이 있다. 뉴욕의 과학유머잡지에서 선정하는《이그 노벨상》은 품위가 없이 천하다는 단어와 노벨이라는 단어를 합친 신조어.   이 잡지의 편집인은  《과학자들 가운데 노벨상을 결코 수상하지 못할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과학적 흥미를 유발하고 과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기에 이 상을 설립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올해의 《이그 노벨상》은 《닭은 멋진 외모의 남성과 녀성을 좋아한다》는 연구를 수행한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매그너스 연구팀이 차지했다.   이들이 닭들에게 많은 인물사진을 보여준 결과 닭은 건장하고 잘 생긴 남성과 긴 머리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잘 생긴 녀성만을 쫓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리상형을 보는 눈에서 사람과 닭이 비슷한 기호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이 연구팀의 연구결과.    닭과 함께 춤을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칭송된다.   머리에 있는 볏(冠)은 문(文)을 상징하고, 삼지창 같은 발은 내치기를 잘 한다 하여 무(武)로 여겼으며,적과 용감히 싸우므로 용(勇)이 있다고 하였고,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인다 하여 인(仁)이 있다 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 하였다. 게다가 우리 인간에게 알과 고기를 주니 그보다 더한 익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조상들의 생각이었다.    닭은 다른 가축에 비해 취소(就巢, 알을 품음)성이 강하다. 몸은 작지만 한꺼번에 20알 정도를 품어 부화시킬 수 있다. 알을 품으면 매우 열심인데 식음을 끊고 뜨거운 가슴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새매 따위의 육식 새들이 병아리를 낚아채려 들면 급하게 새끼들을 불러 품안으로 모으고 만약 병아리가 새들의 발톱에 걸려들면  어디에 그런 힘과 용기가 숨어 있었던지 날개를 푸드득 이며 크게 싸움을 벌인다.《암탉이 제 새끼를 품안에 모으듯 한다》는 말은 바로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닭의 그런 모성에 감격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라는 시를 지은 적 있다.   제 새끼를 건드리면/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를 닮았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사실 닭처럼 부지런한 동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모이를 쪼지 않고 멍하니 있는 닭을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알을 품을 때와 홰를 치며 울 때 정도만 빼 놓고는 하루 종일 먹이를 먹으러 고개를 조아리며 다닌다.    또한 수탉은 그 자부심과 사나움,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점을 닭싸움이라는 일종의 스포츠에 활용해왔다. 볏을 곤두세우고  상대에게 용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에서 닭의 강인함과  용맹성을 찾을 수 있다.   또 수탉이라는 이름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수탉은 남성이 갖춰야 할 조건인 가정을 지키려는 용기와 시간의 변화를 판단하는 현명함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리상적인 남성 상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생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닭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닭은 자연상태에서는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로서 농장이나 야생지, 모이통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흔히 《쫓기서렬》로 알려진 사회적 위계(位階)질서를 발전시킨다. 자기보다 우인 닭에게는 복종하고, 아래인 닭은 거느리는 것이다. 개개 닭들이 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는데, 많게는 90마리의 무리에서도 그 서렬이 유지된다고 한다. 닭은 한낱 흙 속을 헤집고 뒤져 벌레와 풀 따위를 알아서 찾아 먹는 놓아먹이는 새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와 바람과 별을 알았다. 이는 자연순환에 깊이 조률돼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들에 비추어 볼 때 혼란에 허둥대는 우리의 사회적 위계와 질서는 극히 중요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누구나 다음은 무슨 띠의 해인가 살피고 그 띠 동물에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 하려 한다. 새로운 띠 동물을 대하면서 그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올해에는 을유년 닭의 해, 우리모두 시간을 알리는 닭처럼 새끼를 품는 닭처럼 새매와 싸우는 닭처럼,자부심을 지니고 사랑을 알며 신의를 지키는 강인한 인간으로 자신을 가꾸어 봄이 어떨가!    불교에서는 닭을 깨달음의 주체를 지닌 동물로 여기고 있다. 닭울음소리에 귀기울인 서산대사의 일화가 그 일례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70의 나이로  승병을  모집하여 서울을 되찾는 데  공을 세운 승려.  큰 의문에 부닥쳐 울증(鬱症)에 빠져 있던 서산대사가 하루는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낮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울었다.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대사는 의문이 풀리면서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대사는  다음의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홀연히 본래의 내 집을 얻고 보니(忽得自家底)/모든 것이 다 이러할 뿐(頭頭只此爾) 천만금의 보배도(萬千金寶藏) 본래 한 장의 빈 종이일 뿐이로다. (元是一空紙) 이제 외마디 닭 울음소리 들을작시면 (今聽一聲鷄)/장부의 할일 모두 마쳤어라(丈夫能事畢)      대사의 이 시구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바라나니 을유년 닭 해를 맞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짧은 닭 울음이 깨달음의 기연(機緣)이 될진저.     - 원숭이해를 보내면서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7    [월드컵 別曲- 1] 자책꼴 댓글:  조회:3598  추천:13  2014-07-11
    수십년간의 기자생활중에 짧으나마 스포츠기자도 겸했던 리력이 있고하여 축구에 대해 꽤 즐기는 편이다. 하여 2006 독일월드컵때부터 월드컵때마다 빠치지않고 관련 칼럼 시리즈를 써왔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앞에서는 “로반문전농대부(魯班门前弄大斧)”라 즉, 대목수 로반의 문전에서 큰 도끼를 자랑할 어설픈 짓거리가 두려워 경기전반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나 예견 대신 월드컵을 둘러싼 사회이슈나 문화적 분위기에 대한 잡감들을 주로 써온것이다. “푸주간에서 앞에서 고기 먹는 시늉만 해도 낫다. (자기가 원하는것은 설사 이루지 못하더라도 생각만으로도 즐겁다는 뜻.)”는 궁냥으로 써오던 그런 잡감들을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미처 쓰지 못했다. 밀려있는 잡지사들의 소설원고 청탁건때문이였다. 하지만 컴퓨터의 메인 화면을 월드컵 경기일정표로 깔고 새벽잠에서 깨여나 눈시울 집어뜯어가며 경기들을 보노라니 환음이 절로 터져나오는 현란하기 그지없는 경기들과 경기장밖 이슈들은 나로하여금 월드컵 막바지이나마 또 다시 글로 적어내려갈 충동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신나는 월드컵 주제곡 "위아 원"의 신명나는 곡조에 맞추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과는 거리가 먼 잡감이라 스스로 “별곡”이라 시리즈의 부제를 칭해 둔다.     월드컵 별곡(別曲)- 1   자책꼴   김 혁   자책꼴, 축구경기에서 실수로 자기편에 공을 넣어 외려 상대편에게 점수를 주는 경우를 가리켜 말한다. 중국에서는 오룡구(乌龙球)라 별칭하기도 한다. “오룡구”는 성구 “자파오룡(自摆乌龙)”에서 비롯된 말이다. 옛날옛적에 수년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하늘 우러러 무릎꿇고 룡왕에게 비를 내려 줍시사 비손질을 하였다. 그러자 푸른 청룡이 나타나 비를 흠뿍 내려 주었다. 사람들이 감격해 마지 않는데 이번에는 검은 룡이 나타났다. 그런데 검은 룡은 비를 내리는 재간이없는지라 그저 하늘땅을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훼살을 주기만 했다.   “오룡구”는 자기편에 오히려 훼살을 주는 검은룡이라는 은유로 재해석된것이다. 짙어가는 여름의 열기와 더불어 시작된 2014브라질월드컵의 개막전은 어쩌구려 자책꼴로부터 시작되였다. 브라질과 크로찌아의 개막전에서 전반 11분에 브라질의 수비수 마르셀로가 자책꼴로 5만여 명 주최국의 홈장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다행이 브라질은 인차 한꼴 넣어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고 추가꼴도 넣어 최종  3대 1로 역전승을 거뒀다. 첫 경기서 하필이면 자책꼴로 주최국으로서의 실추될뻔한 체면을 돌려세운것이다. 력대 월드컵경기에서 자책꼴이 대회 첫 꼴이 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책꼴이 선수에게 주는 압력은 크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꼴롬비아 축구선수 안드레스 살다리아가 자책꼴을 넣었는데 며칠후 한 나이트클럽에서 축구팬에게 총격을 받아 살해되는 비극이 일기도 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유난히 자책꼴이 많이 나오고 있다. 16강전이 끝날때까지만도 무려 5개의 자책꼴이 나왔다. 이는 기존 월드컵에서 최다 자책골이 나온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기록 4개를 경신했다고한다. 마르셀로   여기서 실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실수는 어디로 튈지 예측이 어려운 축구공과도 같다. 땀동이를 쏟으며 정성을 다한다해도 자칫의 깨알같은 실수가 커다란 실패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살면서 이러저러한 대소실수를 저지를수 있다. 하지만 요즘 처럼 실리주의에만 얽매여 눈에 보이는것만 전부로 생각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실수는 용납못할 대죄로 치부되기가 일쑤다. 그렇다고 한순간의 실수를 자탄해 오금을 꺽어서는 안된다. 실수는 자아를 위축시킬수 있지만 반대로 그 실수를 볼수있게하는 눈과 확대된 경험을 준다. 실수를 정시하면서 일어설때야만 다시 그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되는것이다. 다 아는 격언과도 같이 “실수라는 나무에는 두 가지 열매가 달린다. 실패라는 쓰디쓴 열매와 성공이라는 빛 좋고 맛있는 과일이다.” 실수를 딛고 일어나 그 실패가 승패를 위한 변주곡 전주곡으로 되게 해야한다. 월드컵의 열기와 함께 인터넷에서 널리 불리고 있는 월드컵 응원곡인 “위아 더 원We Are The One”이라는 노래의 가사말이 바로 실수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위해 꼭 걸맞는 노래가 아닌가 한다.   실패해본 자만이 (오!) 역전의 맛을 아니   짓밟일 수록 (하!) 또 다시 일어나 잡초같이 넘어질순 있어도 쓰러질수는 없어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고개숙인 친구여 심장 뛰고있다면 뛰여라 뛰여라 뛰여라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6    판타지의 매력 댓글:  조회:1883  추천:11  2014-07-07
. 심사평 .   판타지의 매력   김 호 웅     김혁의 《불의 제전》은 판타지(fantagy) 소설이라 이를 순문학으로 볼수 있는지 쟁론할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상이 빈약하고 언어가 거칠고 메마른 오늘의 문단사정을 념두에 둘 때 현실에 안주할줄 모르는 김혁씨의 대담한 실험정신과 이 소설에서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 미끈하고 윤택한 언어구사력 및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특별히 주목된다.   《불의 제전》을 보면 적봉(赤峰)을 성산으로 우러르는 남하족(南河族)과 산북족(山北族)이 곡성(哭城)이라는 담을 사이 두고 은연중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남하족의 진(眞)이라는 화동(火童)의 눈물겨운 성장사와 그의 비장한 운명을 다루고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화신무(火神舞)에 열광하게 되고 산북족의 유(柔)라는 처녀애와 열연에 빠지기도 하며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가져다가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남하족의 금기(禁忌)를 어긴 죄로 두 눈을 잃게 되지만 불과 회신무에 대한 집념은 버릴수가 없다.  나중에 진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터져오르는 적봉의 용암속으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열반(涅槃)한다.   이 소설은 우선 불을 매개(媒介)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다. 상고시대 북방의 여러 부족과 삼한의 여러 나라가 봄, 가을에 있었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飮酒), 가무(歌舞)한 국가대회》도 불을 둘러싼 군중의 광희(狂喜)로 이어진 제의(祭儀)였다. 그리고 불은 우리민족의 경우 신화에서는 왕권, 영웅탄생, 정화(淨化) 등을 의미하고 우리 무속이나민속에서는 열정, 정화를 의미했으며 우리 풍습에서는 생명력과 복(福), 벽사(辟邪)를 의미하고 유교에서는 개화(改火), 불교에서는 자기 멸각(滅却)을 통한 승화를 의미하였으며 력사와 문학에서는 위기와 정열을 의미했다.   《불의 제전》에서는 불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멸각을 통한 승화의 의미에 포인트를 주고있다. 화신무에 열광하고 불속에서 열반하는 주인공 진의 형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것은 예술에 대한 집착, 열정적인 사랑, 만민을 위한 헌신성, 스승에대한 존경과 같은것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무지막지한 족장(族長)과 리해타산에 밝은 동료인 교(狡)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암시하는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대동세계를 이루는 길은 우리민족 전체가 불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재생해야 함을 암시하고있다.   이 소설은 작자의 해박한 지식, 환상적인 플롯, 장려한 언어구사와 깊이 있는 주제의 발굴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5    불의 제전(祭典) 댓글:  조회:2289  추천:19  2014-07-07
     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품      ... ...   모든 악장(樂章)은 끝났는데 그치지 않고 울리는 선률이여 착지(着地)할 수 없는 다리여 멈출 수 없는 팔이여   몸체에서 떨어져 나간 채 떠돌아다니는 팔 조약하는 자세로 뻗쳐있는 다리여...   모든 악장은 끝났는데 착지할 땅이 없어 허공에서 수직으로 거듭 꽂히기만 하는 다리 없는 토슈즈여            -  정한모의 《춤의 판타지아》에서                                                                       진, 불을 느끼다           진(眞)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엄동이면 홀쭉한 배로 눈빛이 매워져 부락까지 내려오는 늑대가 아니였다. 숲을 지나다 무심히 건드려도 사정없이 이마빼기를 쏘는 말벌이 아니였다. 부락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들것에 들려 나가게 하던 온 몸에 창이 생기는 병도 아니였다.    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불 이였다!    초동머리 적, 화덕 앞에서 장난 질 치다가 그만 이글거리는 화덕에 엎어졌다. 어머니가 재빨리 일으켜 세웠지만 얼굴 반 편이 불에 데이고 말았다. 지금은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로 남았지만 불이 주던 강렬한 인상의 아픔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력력히 찍혀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불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봄, 부락에서 화신제(火神祭)가 있은  날부터였다.    마을의 남쪽에 우뚝 치솟은 산, 적봉(赤峰)기슭에서 화신제 잔치가 펼쳐졌다.    매양 봄이 오면 부락에서는 불을 다시 지핀다. 족장과 부락의 년장자들이 적봉의 동혈(同穴)에 모신 불로부터 집집의 아궁이의 불까지 모두 꺼버리고 새로 불을 지핀다. 불도 일년 내내 같은 불을 계속해서 쓴다면 기운이 쇠진한다는 뜻에서 부락사람들은 새 불을 일으켜 새 봄을 맞이하곤 했다. 이 날이면 부락 사람들 모두가 떨쳐나 해가 떨어지도록 화당(火塘)에서 타오르는 불을 둘러싸고 광열의 춤을 추곤 했다.    그렇게 진이네 부락, 남하(南河) 사람들은 불을 숭배하는 족속 이였다.    그날 명절기분에 아침부터 붕- 떠있는 사람들을 묻어서 진은 화신제가 열리는 적봉기슭으로 나왔다. 화당은 여느 때보다 더 넓게 꾸며져 있었고 그 속에는 불 땀이 좋은 잘게 팬 장작들이 가득 무져있었다.    정오가 되었다. 화신제가 열리는 시간이다. 장대한 키 꼴을 가진 족장 굉(宏)이 마을 년장자들의 옹위하에 나타났다. 름름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서 굉이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족장을 따라 수 천명의 부락사람들이 무너지듯 무릎을 꺾었다. 족장의 입에서 격앙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이 땅을 굽어살피시는 천지신명이시여!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춥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배를 곯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불처럼 따뜻하게 하소서...    부락사람들이 따라서 족장의 말을 복창하였다.   -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하늘 우러러 비원(悲願)을 마치고 나서 족장이 무언가 머리 우에 받쳐 올렸다.    거울, 금박 칠을 올리고 테두리에 문양을 새긴, 양경(陽鏡)이라는 이름의 불을 지피는데 사용되는 거울 이였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올릴 때 그 번쩍이는 빛이 눈에 쏘여와 진은 눈시울을 좁혔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 화당의 장작개비에 대고 비추었다. 정오의 태양은 찬란했고 양경에서는 태양의 빛이 반사 되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모두들은 숨을 꺽 죽이고 양경을 지켜보았다. 수천 쌍의 눈이 오목거울이 실어낸 빛줄기가 몰 부어져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때,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 나지막한 북소리가 울렸다.   나지막하지만 사람들의 눈 귀를 순간에 앗아가는 북소리가 울렸다.    십 여명의 동자들이 저마다 손 북을 두다리며 동굴부터 나오고 있었다. 동자들은 저마다 머리에 빨간 천을 두르고 있었고 빨간 버선을 신고 있었다.    무용단의 춤추는 아이들 이였다. 화신제때면 춤을 추는 아이들을 부락에서는 화동(火童)이라고 불렀다. 부락에는 화신무용단(火神舞踊團)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화신무용단성원들은 족장 굉 다음으로 부락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 이였다.    화동들의 북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잦아지는 북소리와 더불어 동굴에서 짐승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화견(火犬)이였다.    불을 먹고사는 불개였다.    일신이 붉은 털로 덮여있는 개는 무용단에서 기르는 령물이였다.    개가 하늘을 바라고 컹컹 짖었다. 이어 동굴로부터 또 한 사람이 나왔다. 백발동안의 로인이였다. 유난히도 긴 눈섭을 가진 로인은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 있었다. 웃동은 벗고 있었는데 햇볕에 그을린 몸체는 검붉었다. 허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신은 동자들처럼 역시 빨간 버선 이였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명(明)이였다.    명은 무자(舞者)였다.    화신무용단을 거느리는 최고의 무용수였다. 무자는 부락에서 뛰여난 무용수에게 주는 급별 이였고 한 부락에 무자는 단 한 명뿐 이였다. 무자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칭호는 부여된다.   부락사람들의 응시 속에 무자는 두 팔을 량 쪽으로 뻗었다. 머리를 뒤로 젖혔다. 북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무동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소리와 함께 홀연, 새가 하늘로 솟아오르듯이 몸을 훌쩍 솟구며 무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훨훨! 훨! 훠어얼!   불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 불이여...      북소리가 높아져 갔다.    양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가 굵어져 갔다.    자작나무에서 실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가 거세여져 갔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북소리가 높아져 갔다.    양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줄기가 점점 굵어져 갔다.   자작나무에서 파란 실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는 절정에 치달아 있었다. 풋풋한 땀 냄새를 떨어뜨리며 춤에 몸을 내던지고있는 무자는 꼭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는 부락사람 모두를 흥분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드디여 자작나무에  불이 확! 댕겨졌다.    - 불이다아!    사람들이 환희에 넘쳐 괴음들을 질렀다. 우르르 화당을 둘러쌌다. 따스한 불의 기운에 눈을 느스름히 감으며 만족의 신음을 토했다.  족장이 양경을 거두며 껄껄 방성대소를 하였다.    그러나 무자의 춤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무자의 왕소금이 돋은 등어리가 화염처럼 꿈틀거렸다. 불을 둘러싸고 무자는 맴을 돌고 있었다. 불을 탐하는 한 마리 짐승처럼 불을 먹으려, 불을 먹으려.      북채에 달린 붉은 술이 춤사위에 맞추어 나 붓기고 있었다. 북소리도 끊기지 않고 있었다. 노래 소리도 끊기지 않고 있었다. 북소리 속에서 노래 소리 속에서 무자는 완연 타오르는 한 줄기 불이 되어있었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우리는 불 이여라     진이 철이 들어 처음 보는 화신무(火神舞)였다. 잔뜩 키워진 동공으로 햇빛과 불줄기와 사람들이 어우러져 열기로 출렁이는 춤 마당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진의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런 풍경인 것 같았다.    진은 단쇠가 물에 닿았을 때처럼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진의 작은 가슴은 금세 뜨거운 불씨 한 톨을 머금은 듯 했다. 그 불씨는 혈관을 타고 진의 사지로 뻗어 나갔으며 나중엔 명치끝에 모여 타올랐다. 그 불길은 진의 작은 육신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정체불명의 충동이 륵막쯤에서 솟구쳤다. 불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진은 저도 모르게 량팔을 펴들고 팔죽지를 길게 뻗쳤다. 무자의 춤사위를 모방하여 머리를 뒤로 젖혀버렸다. 정오의 대공에서 태양은 빛나고 있었고 진은 눈확 가득 넘쳐 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올라도 화신제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화신제는 홰불놀이로 이어졌다. 달이 뜨면 아이들이 각자 홰불을 들고 벌판에 모여든다. 밭 가운데 지경을 그어 놓고 홰불싸움을 벌린다. 어른들이 불 싸움이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못나가게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홰불을 더 크게 만들어 주면서 나가서 용감히 싸우라고 등을 떠민다. 예로부터 홰불싸움에 나가지 못하면 성인대접을 못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곧 홰불싸움은 일종의 성인식(成人式)이였다.    들은 불 천지였다. 함성이 일었고 서로 부딪는 홰불에서 불 찌가 꽃 살처럼 튀였다. 불이 무서웠던 진이 홰불을 들고 맨 앞에서 달린다. 어제 날 불이 무서웠던 진이 아니였다. 목청 깨져라 소리소리지르며 홰불을 휘두르는 진은 어느 결에 훌쩍 웃자라 있었다.    온 몸이 검댕이 투성이가 되어 들어서는 진을 보고 어머니가 놀란 눈매를 지었다.    - 홰불 놀이에 갔어요.   얼굴이 거멓게 그을린 진이 이발을 하얗게 빛내며 말했다. 어머니가 다가가 진을 껴안아 주었다. 그을음 냄새가 나는 진의 머리를 꼭 껴안아 주었다.   - 우리 진이 다 컸구나.    어머니는 화신제날이면 집집마다 먹는, 빨간 실고추를 넣어 해처럼 둥글게 부친 전(煎)으로 저녁상을 마련해 놓았다. 떡을 뜯다 말고 진이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나 힘이 실린 소리로 말했다.    - 오마니 나 춤 배우고 싶어.                                 진, 불을 찾아가다        적봉(赤峰)은 잠든 화산(休火山) 이였다.    그리고 불을 숭배하는 남하(南河)족 에게서 적봉은 성산(聖山)이였다.    역시 불을 숭배하는 건너 부락 산북(山北)족에게도 적봉은 성산 이였다.    남하족과 산북족은 본디 뿌리가 같은 족속 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지 왜서였던지 서로 창을 들이대고 화살을 쏘아대면서 반목했고 지금은 두 부락으로 나뉘여져 살고 있는 것이다.    두 부락사이에 지경으로 표시하는 돌 각담이 쌓여져 있다.    적봉의 화산 돌을 주어 쌓은 담 이였다.    담은, 어찌나 길었던지 그 길이를 재일 수 없었다.    모두들 남하 부락을 끼고 흐르는 강만큼 길 거라고 했다.    담은, 어찌나 높았던지 그 높이를 재기 어려웠다. 모두들 적봉의 반 높이는 될 거라고 했다.     그 담을 사람들은 《곡성(哭城)》이라 부른다. 두 부락에서 상잔의 변을 일으키면서 무수히 죽어간 령혼들이 그 담 부근에 묻혀 밤이면 음울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화신무용단은 적봉 기슭에 화산 석으로 지은 돌집에 있었다. 불춤을 배워주는 그곳을 가리켜 부락에서는《화택(火宅)》이라 하였다.   화신제를 치른 이튿날, 진은 화산 석으로 계단을 깐 산길을 치달아 《화택》으로 찾아갔다.    멀리서부터 북소리가 들려왔다. 《화택》의 볕바른 마당 복판에 석등(石燈)이 세워져있었고 그 등을 둘러싸고서 화동들이 맴을 돌며 춤 기량을 익히고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진의 앞을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 막았다. 불청객인 진을 바라고 컹컹 짖어 댔다. 개의 입에서 불똥이 튀였다. 화신제 날 보았던 불개였다. 온 몸통에 붉은 색 털이 뒤덮인 것이 인상적이다.    가락 맞게 울리던 북소리가 뚝 멎었다. 집 앞 평상(平床)에 앉아있던 무자 명이 몸을 일으켰다.      - 불독아!    명의 부름을 들은 개가 그의 발치에 가 공손하게 쪼그리고 앉았다.    긴 눈섭을 날리며 명은 진을 지켜보았다.       - 뭐냐 너?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 진이라고 하옵니다. 화동이 되곺슴다. 거두어 주십쇼.   명의 긴  눈섭이 움찔했다. 조금은 놀란 듯 한 얼굴로 진을 보았다.      - 너 누구의 문하(門下)였더냐?     - 아직 스승이 없슴다.     - 그럼 학당패(學堂牌)를 내보여라   《학당패》는 부락에서 학당을 나온 사람들에게 발급하는 징표였다.      - 패가 없슴다. 공부도 못한 놈임다.   큭큭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동들의 눈길이 일제히 진을 향해 쏠려 있다. 별 한심한 놈 다 보겠다는 눈길들 이였다.  명이 이마 살을 모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가라! 여긴 거지를 수용하는 곳도 활량이나 키우는 곳도 아니어늘.    명이 짧게 뱉고 나서《화택》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동들이 북채를 잡았고 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진이 성큼성큼 춤의 대오를 향해 다가갔다. 어느 화동의 손에서 북과 채를 앗아 냈다. 애들이 진에게서 북을 되 빼앗아 내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뜰에서 작지 않은 소요가 일었다. 덮쳐드는 애들에게서 잽싸게 빠져 나와 진이 성큼 평상 우에 뛰여올랐다.    - 아니 저 새끼가?!   스승만이 앉을 수 있는 평상 우에 흙발로 뛰여오르는 진을 보고 격노했으나 다음순간 애들은 그 자리에 주춤 서버리고 말았다.    북소리 울리며 진이 춤을 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평상을 무대로 삼아 진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화동들이 일제히 눈확을 키웠다. 그네들이 일년 사계절 배워도 익히지 못한 춤사위가 진에게서 그럴듯하게 지어 지고 있었다.    《화택》의 문이 삐걱 열렸다. 명이 다시 나왔다. 내심 놀라워하며  물었다.    - 어데서 배운 춤이냐?   숨을 고르며 진이 대답했다.   - 어제 무자님이 추는 모습을 보았더랬슴다.   명의 긴 눈섭이 다시 한번 움찔했다.       족장을 위시하여 마을의 장로 10명이 적봉의 동굴 속 석상(石卓)을 둘러싸고 모여 앉았다. 동굴에는 화신상(火神像)이 모셔져있었고 그 앞의 화당에는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장로들은 불씨가 모셔져 있는 동굴 속에 모이곤 했고 부락의 대소사는 모두 이들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부락의 운명을 손에 쥐고있는  터주대감들의 발치에 무자 명이 두 손을 모으고 서있다. 족장의 미심쩍은 눈길이 명의 얼굴에 가 머물렀다. 명이 다시 한번 간청했다.   - 크게 일 불은 불씨에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나 무자의 눈썰미를 믿어 주십시오.    족장이 크악! 큰소리로 가래침을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자. 투석(投石)을 시작하게나.    장로들이 부스럭거리며 저마다 옷소매 속에 무언가 꺼냈다. 돌멩이였다. 적봉에서 주어 온 붉은 돌멩이와 강에서 주어 온 흰 돌멩이였다. 붉은 돌멩이는 긍정을 표하고 흰 돌멩이는 부정을 표하는 뜻 이였다. 달라당! 달라당! 석상 우에 돌멩이를 놓는 소리가 동굴 속에서 공명이 되여 울렸다. 족장이 석상 우에 놓여진 돌멩이를 헤아리고 나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포했다.    - 학당패가 없는 진을 무용단에 받아들이는 문제 최종결재요. 백석(白石)이 4개, 홍석(紅石)이 6개, 채택되었소!    명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 올랐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명이 진에게 북 하나와 북채 하나를 넘겨주었다. 화동 하나가 다가와  북채 끝에 붉은 술을 달아 주었다. 명이 북채를 들어 보였다.    - 이곳에서 북채를 가리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몽척(夢尺)이라 한다. 이제 이걸 잡고 네 꿈을 펼쳐 보아라.   진은 북과 북채를 가슴에 꼭 품었다. 유난히 빛나는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고 스승의 머리우로 솟아있는 적봉을 쳐다보았다.    적봉은 소소리 높았다.   적봉이 품고 있는 들을 굽어보았다.    들은 무연하게 넓었다.    들에는 화경(火耕)이 시작 이였다. 화전농들이 놓은 불이 들을 메우며 번져 나가고 있었다. 불길은 봄을 맞아 놀란 듯 피여 난 들꽃처럼 온 벌판을 수놓고 있었다. 조무래기들이 떼를 지어 불을 쫓으며 연기를 쫓으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 불아. 쥐를 그을러라. 불아, 쥐를 그을러라   진은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짐승 한 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한껏 충일 된 가슴으로 그 아이들처럼 진도 목청 깨져라 소리 질렀다.    -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진, 불 앞에 맹세하다       - 내 몸을 움직여서 내 몸을 도구로써 연주할 수 있는 춤, 그것처럼 직접적이고 감동적인 예술이 어데 있겠느냐? 우리의 육체에 더하여 우리의 몸 속에 령혼도 담고 있으니 몸과 혼이 하나가 될 때까지 춤을 추어라.     스승의 급훈을 받으며 진은 장대한 래일에로 열린 길의 첫 자국을 떼였다.     진의 어머니가 화신제날에만 먹는, 마른 실고추를 넣은 전(煎)을 가득 부쳐 가지고 《화택》으로 찾아 왔다. 무자 명이 나와 어머니에게서 떡을 담은 그릇을 받았다.    - 애가 만나지 않겠답니다.    어머니가 머리를 후딱 쳐들었다. 놀란 눈매를 지어 졌다.    - 3년 후, 진짜 춤꾼으로 이름을 닦은 뒤 떳떳하게 어머님을 만나 갰대요. 참, 옹골찬 애를 두셨군요.    어머니가 옷소매로 뜨거워나는 눈시울을 찍어눌렀다.    - 알겠습니다. 애를 잘 부탁합니다. 어떡하나 애를 선생님 같은 큰 춤꾼으로 만들어 주십쇼.    어머니는 《화택》을 향해 눈길 한번 주고 나서 돌계단을 따라 산을 내렸다.    《화택》의 창문 틈으로 진은 어머니의 사라지는 뒤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묻어있는 떡 그릇을 든 채 배여 나온 물 멀기를 지우려 눈을 슴벅 이였다.    - 기다려 주십쇼 오마니.   누군가 그런 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낮에 진의 북채에 붉은 술을 달아 주던 화동이였다. 화동이 진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나 교(狡)라고 해.   진도 얼른 가슴에 손을 얹었다.    - 나 진.   며칠 후, 진은 새로 사귄 친구 교를 따라 적봉의 동굴을 찾았다. 산 중턱에 있는 동굴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좁고 가팔랐다. 그 계단을 두 사람은 헐씨금거리며 올랐다. 그들의 뒤를 녀자애 하나가 바싹 쫓아왔다. 그 뒤를 불독이도 따랐다.    _ 야 교! 교오~ 어델 가는 거냐? 새로 온 아이를 끌고?    무용단에서 함께 춤 하는 녀자애 염(艶)이였다. 부모한테 버림받고 길에서 걸식하는걸 무자 명이 불쌍해 데려다 밥 먹여 주며 춤꾼으로 키운 애였다. 염의 부름을 듣는 척도 않고  교는 진을 끌고 곧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화당에서는 언제 나와 같이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이 둘 이의 얼굴을 발갛게 비추었다. 불을 만난 불독이 화당을 헤집으며 한 입 베여 물었다. 따가워 흥흥거리며 불덩이를 삼켰다. 진과 교는 화신 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가 입을 열었다.    - 화신이시여 증명해 주옵시사. 나 교와..   교가 팔꿈치로 진을 건드렸다. 진이 바삐 말을 받았다.   - 나  진은...   - 춤에 생을 바치기로 일심을 먹었사옵니다.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말을 마치고 나서 교가 화당가에 흩어진 재를 모아 담고 굴 천정의 종유석(鐘乳石)을 타고 흘러내리는  락수를 받았다.    - 야, 니들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뒤미처 따라온 염이 그들의 짓거리를 지켜보며 물었다. 교가 재물을 삭힌 물을 단숨에 들이 마셨다. 진도 그의 본을 내여 재를 락수 물에 삭혀 단숨에 들이 마셨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구동성으로 서약했다.    -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 주시옵소서!   그제야 영문을 알아낸 염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머물렀다. 염도 그들 곁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슴언저리에 얹고 따라서 서약했다.     -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 주시옵소서!   진, 세상과 부딪치다     적봉,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산은 세월가도 벌거벗은 진솔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적봉, 그 넉넉한 산세의 품에 안겨 북소리의 주술을 타고 화동들은 서서히 자랐다.    적봉, 그 기슭에 자리잡은 《화택》에서 북소리는 가득했다.    초가집 지붕에 처마 물 떨어지는 소리와도 같고 멀리 물레방아 방앗공이 떨어지는 소리와도 같은 그 은은한 북소리가 매일같이 부락의 아침을 깨웠다.   춤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든 《화택》은 몽환이 뒤얽힌 또 하나의 세계였다. 거기에 박혀 고치에서 나오려는 작은 벌레처럼 날개를 털면서 진은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진에게서 삶의 즐거움이 묻어 났고 그 얼굴에는 분명 천상의 기쁨이 어려 있었다. 학당패가 없기에 마냥 말석의 위치가 차례 졌지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은 가슴이 들떴다. 그 와중에 초동머리를 겨우 면한 나이에 무용단에 입단했던 진이 어느새 코밑이 거뭇한 청장년으로 자라 있었다     뜰의 평상에 앉아 명이 진과 교와 염을 불렀다. 그들의 작고 느린 성장을 독려해 왔던 명에게 세 사람은 이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의 위치에 서있었다.     - 이제 너희들이 한번 익힌 기량을 펴 보일 때가 왔다.   남하족은 3년에 한번 꼴로 무용제를 펼치곤 했다. 다른 부락에서도 이 성대한 축제에 동참해 춤꾼들을 송파(送派)하곤 했다. 경색에서 방(枋)에 오른  이들을 부락에서 크게 장려했다. 부림 소 한 마리와 밭 세마지기를 상으로 내렸고 그 집안의 화세(火稅)를 3년간 면해주었다. 그보다도 이는 무용권내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화신무용단에서의 위치의 승격을 의미하는 것 이였다.    무용제는 남하족과 산북족을 가르는 지경인 곡성부근에서 거행 되였다. 행사는 사흘씩 열렸다. 이는 화신제날에 못지 않은 부락의 큰 행사였다. 부락사람들이 좋은 나들이옷들을 꺼내 입고 희희락락 모여들었다. 담 곁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었고 족장과 장로들, 그리고 무용계의 권위들이 나와 평을 맡았다. 역시 투석(投石)으로 평점을 했다.    진의 어머니는 무용제가 열리기 몇 일전부터 서둘렀다. 아들에게 줄 《천인병(千人餠)》을 빚었다. 한 집 한 집 다니며 쌀을 한줌씩 빌었다. 그렇게 빌린 쌀을 찧어 떡을 빚었다. 그 백명, 천명의 손을 거친 정성어린 떡을 먹고 진이 방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춤 경색이 열리는 장소까지  나가지 못했다. 아들의 성적에 념려되여서였다. 그저 무용제가 열리기 전날 《화택》으로 찾아가 명에게 《천인병》이 들었는 떡보자기를 넘겨줬을 뿐 이였다.      드디여 무용제가 열렸다. 수천의 깃털이 날아오르듯 명절의 장소는 노란 햇빛으로 가득 했다.    등장을 앞두고 진은 어지간히 긴장된 모습 이였다. 이는 3년간 해달을 이고 뛴 고심에 대한 한 차례의 검증 이였다. 학당패도 없는 몸으로 온갖 수모를 삼키며 뛴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였다. 혜안으로 발탁해 준  무자 명에 대한, 홀몸으로 아들의 양명을 바라며 지내온 어머니에 대한 보답의 시간이기도 했다.     진의 긴장을 보아내고 스승이 먼저 교를 내보냈다. 언제 보나 자신으로 넘쳐있는 교.   교는 홍석 8개, 백석 2개의 평점을 받았다.    - 잘했어!    명이 무대에서 내려온 교를 포옹해 주었다.    염을 올려 보냈다.    염은 홍석 6개 백석 4개의 평점을 받았다.    명이 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허나 염은 울상이 되어 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맨 나중에 진이 올랐다. 긴장의 너울을 뒤집어쓴 채 손아귀에 흥건한 땀을 쥐고 올랐던 진은 무대에 오르자,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짜장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머리 우에서 빛나 오르는 태양은 어머니가 빚어준 《천인병》처럼 둥글었다. 그 병을 잡으련 듯 진은 팔을 길게 뻗쳤다. 태양은 뜨거운 열기의 손을 펼쳐 진의 온 몸을 만져주고 있었다. 그 빛의 은혜에 보답하련 듯 진은 하늘을 우러르며 뛰고 솟고 굴렀다. 진이 팔다리를 저을 때마다 춤사위에 묻어 오르는 햇빛을 사람들은 보았다.   잘헌다아!!!   무대아래의 사람들이며 돌담에 가맣게 매달린 산북사람들마저도 갈채를 질렀다. 진의 춤사위를 면밀히 주시해보는 명의 긴 눈섭이 격동에 푸들푸들 뛰였다.    진은 홍석 9개 백석 1개의 평점을 받았다. 지금까지 제일 높은 평점 이였다. 화동들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진을 우르르 에워쌌고 환성을 지르며 진을 헹가래쳐 올렸다.    이튿날, 돌담에 경색 결과를 알리는 방이 나붙었다. 격전 뒤에 찾아드는 무기력 감으로 해가 적봉꼭대기에 오를 때까지 꼬박 내리 잠을 자고 난 진은 게 나른해서 방을 보러 갔다. 방 앞에 가맣게 모여 목을 빼들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시에 진을 향해 몰 부어졌다. 그 눈빛들을 축복처럼 받으며 진은 의기양양 돌담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다음순간, 진의 입으로 헛비명이 새여 나갔다.    -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방의 으뜸에 오른 사람은 진이 아니였다. 무용단 성원도 아닌, 집에서 사인무용도사를 모시고 있는 어느 응모자가 방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랑말을 타고 시중군을 거느리고 생색을 내며 춤 경색 장에 나타난 한 존재를 진은 머리에 떠올렸다. 그는 홍석 10개로 만점의 평점을 맡았다.     현기증으로 눈앞이 어지러워하고 있는 진을 향해 개가 뛰여왔다. 불독이 진을 바라고 다급하게 짖어 댔다. 진의 바지가랭이를 물어 당겼다. 불독이 그렇게 안달을 떠는 모습을 진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불길한 예감이 늦은 더듬이로 진의 머리 속을 후볐다. 진은 얼른 불독의 뒤를 따라나섰다.    불독은 진의 집으로 곧추 뛰여가고 있었다. 진이 헐레벌레 달려 이른 그곳에 집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큰 참화(慘禍)가 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의 집에 불이 났던 것 이였다. 《천인병》을 빚어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였던 어머니가 그만 아궁이 앞에서 잠에 떨어졌는데 튀여나온 불똥에 집이 타고 어머니는 불 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한 것 이였다.                                       진, 가르침을 받다     그해 여름을 진은 염병에 걸린 사람처럼 지냈다.    그해 여름을 진은 가슴이 내려앉는 현기증 속에서 보냈다.    그해 여름을 진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방에서 떨어진 렬패(劣敗)감에 사로잡혀 보냈다.    산다는 게 이처럼 불확실한 것 이였을까? 불운이 예고하고 닥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에게 닥친 불운은 너무나 급작스러웠고 엄청난 것 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춤 경색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의 백부가 부락에서 가장 큰 대호(大戶)였다. 돈으로 구워삶은 것이 뻔했다. 그 내놓고 거래되는 부정에 진은 경악을 금치 못해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진은 북채를 잡지 못했다. 불 앞에 나서지 못했다. 불이 무서웠다. 불은 이미 진의 생활 전체를 휘둘렀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육신을 사른 불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진은 다시 어제 날의 불을 무서워하던 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동인인 교와 염의 권고도 스승 명의 엄벌도 진을 북채를 잡지 못하게 했다. 손 끝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력감에 짓눌려 우두커니 누워있기만 했다.    세상의 외진 곳으로 달아나고만 싶었던 진은 홀로 적봉으로 오르는 계단을 톺았다. 화신 상이 모셔져 있는 그 동굴 속으로 향했다.     타닥타닥. 장작이 튀는 소리를 내며 언제 나처럼 화당에서 불이 이글거리고 있다. 불이 더운 숨을 내뱉는다. 빠져나가지 못한 연기들이 알큰한 냄새를 풍기며 동굴 안으로 퍼진다.  깊은 물에 잠기듯 어지러우면서도 아늑하다. 그 불의 기운에 진은 잠시 멍해지고 만다.    진은 화신상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화신상이라야 흙으로 빚어만든, 아이들 인형 에 다름없어 보이는 작은 토우(土偶)였다. 화당의 정 가운데 삼발이(三脚架)를 놓았는데 그 우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정좌한 형상인 토우를 모셨다. 푸짐한 불빛이 토우의 작은 몸에 금박을 입혔다.      - 불이 무섭더냐?   문뜩 동굴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메아리친다. 진이 움찔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토우가 눈을 번쩍 치뜨고 있다. 그리고 입술을 어눌하게 놀리며 묻는다.     - 참말로 불이 무섭더냐?   그 조화(造化)에 놀라 멍청해 있는 진에게 또 한번 물음은 날아왔다. 작은 토우의 목소리는 생각밖에 웅장하였다.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으므로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동굴을 맴돌았다. 진이 급기야 머리를 끄덕였다. 낯빛이 심한 어지러움으로 무눌져 심각한 혼돈에 자맥질하는 것 같다. 절실한 두려움으로 입을 열었다.   - 무섭습니다. 참말로. 무서워서 더는 가까이 하지 못하겠습니다. 더는 춤을 출 수 없을 거 같아요.    불구덩이의 불은 진한 선홍빛으로 물들어 진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색조 현란한 꽃잎 같은 불빛에 진은 눈이 아프다.  토우가 그런 진을 내려다보았다.    - 괴로움도 좋은 데 쓰면 약이 된다. 어머님을 여인 것은 어차피 한번은 거쳐야할 고통의 벼랑인 셈이다. 그러나 춤에서 락방한 것은 네가 아직 완숙치 못한 신을 신고 섣불리 길을 나선 결과다.    무엇이 되겠다고 규정하는 순간 세상은 그것이 욕망임을 안다. 네 이름자껍질에 너무 집착하지 말어라.    진은 미처 다 아지못한 표정으로 화신을 쳐다보았다.   - 저 불을 보아라. 보았느냐?   - 네 보았습니다.    화끈한 느낌이 드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 내리며 진은 답했다. 불의 화기에 살갗이 따끔거린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얼굴이 그 화기에 쓸려 쓰라리다.    토우가 입을 열었다.    - 우리가 신에게 불을 내려주기를 바랬더니 신은 불을 주었다. 불만 준 것이 아니라 죽음도 더불어 주었다.     불에는 청정(淸淨)한 불과 부정(不淨)한 불이 있다. 불은 락원에서도 빛나고 지옥에서도 탄다. 불이 따스하고 그 빛도 화려해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불에 닿는 것은 파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런 의미서 불은 감미로움이며 또 고통이다.   네 몸을 태우는 불은 결국은 네 자신의 손에서 인다. 큰불에도 꿈쩍 않고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내부에서 튕기는 불꽃에 끝내는 마음이 타서 무너지고 만다. 외부의 불보다 더 무서운 불은 언제나 너의 내부에 있다.   네 마음속의 부정한 불을 버려라.     진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말을 마친 토우는 눈을 내려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자신의 감성을 리성의 쇠도리깨로 내려친  화신의 말 마디마디가 선명한 울림으로 진의 가슴에 꽂혔다.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는 빛이 머리를 뚫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듯하다. 질러져 있던 쇠 빗장이 조금 열리려고 한다.    밤, 화택의 동자들은 아닌 밤의 북소리에 잠에서 깨였다. 진이 석등을 밝혀놓고 마당에서 뛰고 있었다.                                      진, 사랑에 눈뜨다        곡성부근에서는 간혹 장이 펼쳐지곤 했다. 칼자루를 잡은 이들에 의해 같은 족속끼리 서로 반목했지만 생계를 위해 암암리에 펼쳐지는 민간 적인 교역은 막아내는 수가 없었다.     돌담의 틈새로 서로 건너가고 서로 건너와서는 서로의 토산물을 바꾸곤 했다.    남하에서 나는 과일과 산북에서 나는 약재를 바꾸기도 했고 산북에서 구워 만든 도자기와 남하에서 결어만든 대바구니를 바꾸기도 했다. 바람이 잦다싶으면 두 부락 사람들이 슬렁슬렁 모여들었고 구석구석에 자잘한 생필품들로 난전이 펼쳐졌다.    이에 대해 부락의 족장들은 한눈은 감고 한눈은 뜨고 있다. 그러다가도 지나쳤다싶으면 문뜩  장터에 뛰여들어서는 재수 없이 걸려든 이들에게 벌금을 시키고 징벌로 태형(笞刑)을 가했다.    그날은 좋은 날씨였다. 날씨는 너무 맑아 해가  쨍그랑쨍그랑 명랑하게 소리내어 웃는 것처럼 보인다. 진은 교와 염과 함께 장으로 나갔다. 개가 킁킁대며 뒤를 따른다. 어데 가나 진의 뒤를 묻어 다니는 불독이다.      교는 떠오르는 일월이 새겨져있는 도자기를 사들었다. 선물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진은 북채에 달았던 붉은 술이 닳아져 패물 난전을 찾았다. 패물이 일매지게 늘여진 가게에서 붉은 술을 보아내고 값을 물었다.    - 그냥 넣으세요.   진은 눈을 치떴다. 패물가게의 주인은 진을 보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가게의 물품으로 보아 산북의 장사치였다. 섶을 깔끔하게 여민 옷매무새의 녀자는 산수화 속의 인물처럼 단아하고 고즈넉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진을 보고 녀자가 웃으며 말했다.    - 화신무 추는 걸 봤습니다. 저번 춤 경색 때...    - 춤 좋아해요?   진이 물었다.    - 예.  녀자가 아미를 숙이며 대답했다. 녀자의 볼에 홍조가 번졌다.    곁에서 불독이 어딘가를 바라고 컹컹 낮은 소리로 짖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산북종의 화견(火犬) 한 마리가 조금 떨어진 돌담 근처에 오줌을 지린다. 녀자가 손짓으로 개를 불렀다. 개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진이 귀엽게 개의 머리를 다독여 주었다. 반들반들한 코가 손바닥에 와 닿는다.    - 홍모(紅毛)얘요. 우리 개. 귀엽죠.    - 저, 저의 개는 불독인데요.   진도 자기 개 자랑을 했다.    - 전 유(柔)라고 합니다. 우린 건너 말서 살아요.   어느 사이 산북종과 남하종의 개는 서로 어울려 꼬랑이를 흔들며 목털을 비빈다. 그런 개들을 재미있게 지켜보다 녀자가 붉은 술을 진에게 내밀었다.    - 선물하지요. 이름난 화신무용단 춤꾼인데...   그런 그들을 한 쪽에서 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매초롬하여 지켜 보고있다. 그의 손에도 붉은 술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이때 개들이 다급하게 짖어댔다. 장터에서 급작스런 소요가 일었다. 누군가의 깨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올랐다.    - 포리(捕吏)가 온다아!    진은 얼핏 고개를 돌렸다. 대도를 차고 창을 꼬나든 남하의 포리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지면서 닭이 풍겨 올랐고 개들이 짖어댔다. 남하의 사람들은 가까이 숲 속으로 몸을 감추었고 산북의 사람들은 돌 각담을 넘느라 허둥대였다. 서로 찾고 부르는 사람, 넘어져 비명 지르는 사람, 포리들에게 잡혀 울부짖는 사람,.. 장거리는 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분만해 오르는 먼지 속에 진은 담을 넘지 못해 설레 발치는 녀자를 보았다. 산북의 그 녀자를 보았다. 무거운 패물이 가득 든 함을 껴안은 채 녀자는 담을 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그러다 밀쳐 넘어졌다. 패물들이 땅에 흩어져 널렸다. 포리들의 추상같은 호령을 등뒤로 하며 진은 달려가 흩어진 패물들을 주어 담아주었다. 그리고는 담 아래 넙죽 엎드렸다. 자기 등을 밟고 넘으라고 손짓해 보였다.    - 빨리 타요!   머뭇거리던 녀자는 포리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진의 등을 밟고 담으로 올랐다. 그리고 담 우에 선 채로 진을 내려다보았다. 녀자의 눈에 진한 감동이 어려있음을 진은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녀자는 청람색 치맛자락을 부풀리면서 담 저쪽으로 뛰여내렸다. 진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진의 목에 쇠사슬이 철렁 걸렸다.     장을 보다가 두수없이 걸린 사람들은 태형 20대의 엄벌을 받아야 했다. 산북의 장사치를 도왔다는 죄명에 진도 태형을 받았다. 그러나 화신무용단성원이고 무자 명의 간청이 있었기에 매는 10대로 줄었다. 하지만 엉덩이가 흐드러져 진은 근 며칠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자리에 엎드린 자세로 진은 벽에 걸린 북과 북채를 바라보았다. 경황 중에도 손에 꼭 품고 온 붉은 술이 북채에 달려 있었다. 장터에서 돌아온 뒤로 산북녀자의 붉은 도화 볼이  진의 눈에 어려 삼삼히 떠나지 않았다. 단지 일별만으로 그만두기엔 무언가 설명 못 할 미진함 같은 것이 진의 마음에 걸려 있었다. 발목을 잡아채는 듯한 끈끈한 느낌, 그것을 일컬어 인연이라 해야 할까.    유!  마음속에서 돋아 오르는 순(筍)같은 것을,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으로 감지하면서 진은 입속말로 녀자의 이름을 자그맣게 되뇌여보았다. 그날이후로 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태형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볼에는 붉은 화색이 돌았고, 가끔 떠오르는 입가의 부드러운 미소는 마음속의 희열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 진을 두고 교며 염이 이상한 듯 눈을 마주쳤다.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불독의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환청인 듯 싶어 창을 열고 보던 진이 경희에 차 소리질렀다.    - 홍모야!   어떻게 그 먼길을 달려왔던지 산북종의 홍모가 뜰에 나타나 짖고있다. 홍모의 목에 바구니가 걸려 있었고 바구니에 서찰 한 통이 담겨져 있었다.    적봉에 해 떨어지면 곡성 곁의 과수밭으로 오세요.  - 유   진은 흥분에 몸을 떨며 홍모를 그러안았다. 붉은 털을 어루만져 주었다.                                                                  진, 담을 넘다        밤, 진은 담을 넘었다.    밤, 진은 긴장과 흥분을 억누르며 곡성을 넘었다.    밤, 진은 야경순찰사들에게 잡히는 날이면 월경죄로 옥에 떨어 질 위험도 무릅쓰고 담을 넘었다.     담을 넘자 날카롭고 사나운 풀숲이 이어졌다. 바늘같이 메마른 풀 넝쿨들이 다리를 긁고 팔을 긁었다. 어느 결에 손등에 새빨간 핏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주술처럼 닥쳐온 사랑의 전갈은 그로 하여금 서슴지 않고 담을 넘고 숲을 가르게 했다.     오래 동안 방치해 둔 데서 무인지경인 곡성부근은 둘도 없는 옥토로 되였다. 두 부락의 과농(果農)들은 가만히 이곳에 숨어들어 과수밭을 일구었다. 점호를 앞둔 화동들처럼 종대로 나란히 렬을 지은 과수나무, 그 나무들이 천국의 풍경을 그리며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진은 유를 만났다.    - 오셨군요.     옷에 가득 봄밤 냄새를 묻히고 나타난 진을 유가 수태를 머금고 반겼다. 그 한마디는 천년의 행복보다 길고 아름다웠다. 어둠 속 이였지만 그 얼굴에서 피어오르는 온유함과 기쁨, 밝음을 진은 분명 보았다.    둘은 과수나무에 등을 붙이고 나란히 섰다. 유는 말없이 풍성한 머리다발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에 말렸다가 도르르 풀어지는 머리칼이 진에겐 싱싱한 이파리처럼 보였다. 얼핏 드러나는 어깨가 동그랗고 목선이 매끈하다. 그 모습에 진은 어질머리가 인다.    부끄러움을 잉태한 침묵이 과수밭에 흘렀다. 달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다행 이였다. 그렇지 않다면 유의 붉어진 볼과 진의 손 둘 바를 모르는 모습을 샅샅이 비출 것 이였다. 홀연 진의 발치에서 불덩이가 폴짝 뛰여올랐다. 어지간히 놀란 진이 그처럼 풀쩍 뛰였다. 유가 웃었다. 그 불덩이를 주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은 몸체에 가늘고 긴 다리를 가진 벌레였다. 벌레들은 더듬이 끝에 자그만 불을 켜 달고 있었다.    - 당랑이 얘요. 화당랑(火螳螂). 짝짓기 할 때면 정수리에 불을 켜들죠.    유가 알려 주었다. 그제야 진은 마을의 년장자들에게서 화당랑이라는 신기한 벌레에 대해  들은 생각이 났다. 화당랑은 산북에서만 나는 곤충인데 산북사람들은 화당랑을 잡아두었다가는 밥 지을 때 불을 지피면서 땔나무와 함께 아궁이에 집어넣는다고 했다. 유리 병 속에 가두어 놓고 그 불빛을 빌어 책을 읽기도 한다고 했다.    - 이 세상 당랑을 모조리 잡아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유가 문뜩 감개에 젖은 소리를 했고 그 소리에 진은 놀라하며 유를 쳐다보았다. 유가 이야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 무더웁던 유월, 산북사람들과 남하사람들은 서로에게 창부리를 들이대고 활촉을 겨누었다. 토포(土 )까지 제작해 가지고 서로에게 포탄을 퍼부으며 상잔에 혈안이 되었다. 포에 화약을 재워 넣고 화당랑을 집어넣으면서 사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화당랑을 잘못 떨군 바람에 화약통이 폭발하면서 유의 할아버지를 비롯한 몇 명이 비명에 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유에게서 화당랑은 보지 못한 할아버지를 죽인 원흉으로 생각 되였다. 밤만 되면 뜰에 뛰여드는 화당랑을 잡아서는 발로 짓이겨 죽였다고 한다.   - 다시 생각해보니 버러지에게 무슨 죄가 있겠어요. 모두다 한 혈통끼리 죽인다 살린다 원쑤를 만든 사람들의 탓이지요.    진은 사색 깊은 유의 얼굴을 새삼스레 지켜보았다. 손바닥에 쳐든 화당랑의 불빛이 유의 반 쪽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 절반 얼굴만으로도 유는 예뻤다.    - 이제는 화당랑과 친구가 됐는걸요.   유가 입술을 오므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은은한 휘파람소리가 과수밭에 메아리쳤고 다음순간 진은 희한한 광경에 입을 퀭하니 벌리고 말았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풀숲의 여기저기서 화당랑들이 폴짝 폴짝 뛰쳐나왔다. 저마다 정수리의 더듬이에 불을 켜들고 뛰여왔다. 뛰여 와서는 진과 유를 에워싸고 맴을 돌았다.     주위가 등롱을 켜든 것처럼 환해 졌다. 유의 청순한 얼굴이며 갈람한 몸매가 불빛에 드러났다. 길고 숱 많은 머리털이 흩어져 후광처럼 유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진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불에 데였던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가 력력히 돋아났다.    진은 유의 손을 당겨 잡았다. 진의 몸 속에 욕망의 열기가 서서히 고여 오고있었다. 여태껏 춤밖에 모르고 지내온 일심이 욕망의 건드림에 흔들렸다. 유가 수줍은 손을 뺄 듯 뺄 듯하다가 자기의 허리 전에 놓아주었다. 허리띠가 잡혀 졌다. 진이 떨리는 손으로 허리띠를 잡아 당겼다. 유가 핑그르르 맴을 돌았고 당랑의 날개 같은 옷이  스르르 벗겨져 내렸다. 유의 농익은 몸매가 드러났고 진은 넉을 잃고 바라보았다. 불빛 어린 유의 몸매는 뇌쇄(惱殺)적으로 아름다웠다. 작은 입술이 꽃잎처럼 뚜렷하다. 어깨가 좁다랗고 가슴은 높다. 엉덩이는 알밤같이 도드라졌다. 화당랑의 움직임과 함께 유의 몸매에는 수묵화 같은 그림자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 그림자들은 유의 볼에 머물렀다가는 뛰여서 목선 아래의 쇄골에 머물렀다가는 뛰여서 높은 가슴에 머물렀다. 묵직한 가슴아래 머무른 그림자가 아름다웠다. 풍요로운 배를 타고 내려 기름진 숲에까지 그림자는 머물렀다.    진이 유의 살갗에 손을 가져갔고  손길이 닿자 유는 진을 향해 전신이 무너져 내렸다. 진의 손과 혀 바닥은 불줄기가 되었다. 불줄기가 되어 유의 일신을 훑어 내렸다. 유가 신음을 흘렸다. 소리가 높아졌고 그 소리에 당랑들이 일제히 더듬이에 켜든 불을 죽였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서로의 불을 켜들었다. 두 사람의 몸 속에 내연하고있던 불들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밀어젖히며 받아 안으며 애욕의 춤사위를 벌렸다. 과수나무를 품은 산줄기도 이렁이렁 떠도는 것 같다.    적봉에 떠올랐던 달이 서천으로 콩알처럼 굴러 떨어질 때에야 진은 유와 갈라졌다. 진과 유의 사랑을 목격한 화당랑 하나가 손바닥에 놓여져 진의 밤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진은 경쾌한 몸짓으로 담을 넘었다.    이때 진과 멀지 않은 곳에서 그처럼 날렵하게 담을 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진, 스승을 잃다     대각소리가 울렸다. 투명한 고음으로 소리는 부락을 뒤흔들었다. 족장 굉이 두 볼을 팽팽히 살리며 대각을 불었고 그  소리에 부락 사람들이 바삐바삐 적봉 기슭에 모여들었다. 화신제를 빼고 보면 오랜만에 부락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족장과 10명의 장로들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저마다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살벌한 기운이 굼베굼베 적봉의 산발을 타고 서려 올랐다.     해가 뜨겁다. 등이 후끈 달아오른다. 불덩이를 담은 커다란 솥뚜껑이 등판에 얹혀 있는 것만 같다. 뙤약볕을 이고 어떤 불길한 예감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 앞에 포리들이 결박을 지운 사람 하나를 끌어냈다. 사람들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새여 올랐다. 끌려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을에서 가장 인끔 높은 무자- 명이였다.    사람들의 맨 앞에 줄지어 선 화신무용단 성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두려움에 지지름을 당하고 있었다. 무엇이 자기의 스승님을, 온 부락에 인끔 높은 무자를 오라를 지워 끌어낸 것인지 영문을 알길 없어 했다.    족장이 크악! 크악! 가래침을 돋구어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명은 화신무용단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사사로이 지경(地境)을 넘어 산북에 기여 들었다.  산북 무용단의 춤을 훔쳐보다가 산북 사람들에 의해 나포 되였고 다시 반송 되였다. 이에 본 부락에서는 부락의 명성을 더럽히고 두 부락지간에 결성된 상호불침입 조약을 깨뜨린 죄로 명에게 엄벌을 가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진은 그 누구보다 높뛰는 가슴을 느꼈다.    - 명! 너 자기의 죄를 시인하느냐?   명이 머리를 쳐들었다. 까랑까랑한 소리로 대답했다.    - 그게 왜서 죄인지 알 수 없구려. 난 그저 분단돼 있으며 맥(脈)을 달리 한 우리 춤의 파생된 부분들을 찾아 다시 화합의 춤 마당을 만들어 보려 했을 뿐이요. 한 무자의 소박한 꿈이 죄라면, 만약 그것도 죄라면 같은 피들을 갈라놓고 서로의 심장에 창을 박으며 피바다를 만든 어떤 사람들의 죄 값은 어떻게 치러야 하는 거요???   - 저런 발칙한 놈 봤나? 그런 망언도 서슴없이 하다니    명의 말은 예리한 비수가 되어 족장의 정곡을 찔렀고 장로들이 기겁을 하며 염소수염을 달달 떨었다. 족장이 씹어 뱉듯 말했다.    - 투석으로 결정합세다.    원로들이 부스럭거리며 돌멩이들을 내놓았다. 홍석, 백석, 백석, 홍석... 그 돌멩이들을 헤아려 보고 나서 족장이 소리 높여 심판결과를 선포했다.    - 월경죄에 상전모욕죄로 명에게 척목형(刺目刑)을 가한다.    좌중이 놀란 소리로 들끓었다.《척목형》이란 그 형벌의 참혹함으로 부락에서 오래 동안 끊겼던, 두 눈을 찔러 멀게 하는 극형(極刑)이였다. 사람들의 소요를 족장의 다음 말이 눌렀다.    - 허나, 그 동안 명이 화신무용단을 이끌고 부락에 공헌한 점을 헤아려 쌍목형( 目刑)은 면하고  단목형(單目刑)으로 실시한다.    《단목형》은 한쪽 눈만 찌르는 형벌이다. 포리들이 우르르 덮쳐들어 명을 말뚝에 비끄러매였고 형구(刑具)들을 날라 왔다.    - 선생님!!!   무동들이 부르짖으며 뛰쳐나가려 했다. 그런 화신무용단성원들을 포리들이 창으로 윽박질러 뒤로 물러서게 했다.    포리들이 명의 이마를 쇠사슬로 감아 말뚝에 단단히 비끄러 매였고 그중 하나가 화로에 시뻘겋게 달군 부저가락을 들고 명을 향해 다가갔다. 명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지릅뜬 눈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찌르륵거리는 부저가락을 지켜보았다. 땀으로 얼룩진 명의 얼굴은 검붉은 색이 심하게 번져 부패한 나무 잎 같다. 연기를 내뿜는 듯한 긴 숨을 토하고 나서 어금니에 힘을 주며 말했다.   - 왼 눈의 시력이 약하니 오른 눈을 보존해 주소.      상체가 우람하고 목이 굵고 짧은 포리가 볼따구니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나서 발로 명의 허벅지를 밟았다. 눈께 까지 흘러 내려 온 명의 긴 눈섭을 걷어올렸다. 몇 번이고 견주다가 명의 왼 눈을 푹- 들이찔렀다.    피를 문 비명이 울렸다. 사람들 속에서 염이 혼절해 넘어 갔다.     교와 진 그리고 염이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하늘에 별은 얼음 조각인 양 차갑게 빛났다. 주위는 너무나 조용해서 별이 흐르는 소리도 들릴듯하다. 왼쪽 눈에 안대(眼帶)를 댄 명은 평상에 앉아 자기가 아껴온 제자들을 굽어보았다. 끔찍한 시달림의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 스승의 하나밖에 없는 눈은 이제 고요하다.    - 교, 받거라   명이 북채를 들어 교에게 넘겨주었다. 스승의 북채였다. 손때가 올라 반질반질한, 끝머리에 명이라는 스승의 함자가 새겨진 북채였다.    - 이제 화신무용단의 중임을 네가 맡아보거라.    교가 놀란 듯 스승을 쳐다보았다.    - 나 원체 너희들을 나를 초월한 절세의 춤꾼으로 키워 보려 꿈꾸어 왔는데... 지금의 이 모양 이 심기로는 안 되겠다. 조용히 나의 마음, 나의 리론을 정리해 볼 터이니 일 후 무용단의 대소사를 네가 챙겨 주렴아.       스승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몸으로 《화택》을 나섰다. 창백한 별 빛을 발끝으로 차며 산을 내렸다. 진이 뒤를 따랐다. 산 기슭아래  길이 나설 때까지 스승을 바랬다.    -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진의 등을 밀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 진정한 춤꾼으로 된다는 것은 결코 록록한 일이 아니어늘 진아,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춤에 전력하거라.    아스라한 적봉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 명은 길을 떠났다. 옷자락을 떨치며 떠나는 스승의 뒤 모습을 지켜보다 진은 무릎 꺾어 큰절을 올렸다.     《화택》쪽에서 불독이 짖어 대는 소리가 들린다.     진은 또 한번 적봉의 동굴 속 화신 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왜 하필이면 우리의 스승입니까? 왜 스승께서 당치않은 죄로 소중한 신체까지 바쳐야 합니까? 왜 동족을 짓밟고 올라선 사람들이 외려 정의로운 자로 둔갑해서 예술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문죄를 해야 합니까? 가르쳐 주십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진의 눈에 붉은 기운이 몰려들었고 목소리는 갱엿이라도 걸린 듯 메여 있었다. 호소하듯 떨리는 소리로 말하는 진을 지켜보며 토우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 너에게 뿔 황소를 재낄만한 대력사(大力士) 같은 힘이라도 있느냐?   그 뜻 모를 질문에 진이 어리둥절해져 머리를 저었다.    - 없삽니다.   - 너에게 만전옥답을 가진 대호(大戶)처럼 금붙이라도 있느냐?   - 없삽니다.   - 너에게 남에게 죄를 내리는 족장과 같은 권세라도 있느냐?   - 없삽니다.    - 그렇다면 거대한 뿌리를 가진 이 력사의 왜곡 앞에서 네가 할 일이란 대체 뭐 갰느냐?    진이 대답을 못했다. 토우가 말에 력점을 찍었다.    - 춤(舞)이다.    진이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그 한마디를 주고 나서 흙 인형은 눈을 내려 감고 있다. 진, 사랑을 잃다         명이 떠난 뒤에도 《화택》에서 북소리는 울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어제 날 같은 중후함과 신명을  잃고 있었다. 스승의 당부를 받은 교는 화신무용단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모두들은 중심을 지탱해주던 철심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힘에 부쳤던지 교 역시 무용단 일에 더는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처럼 닭이 첫 홰를  침과 함께 일어나 북소리를 울리는 사람은 그저 진밖에 없었다. 스승이 형(刑)을 받던 정경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라 진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스승처럼 역시 담을 넘은 자기의 행적을 누가 엿본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스승의 상처받은 신상이나 자기의 파격적인 사랑에 대한 괘념이  들 때면 진은 북채를 잡았고 춤을 추곤 했다. 춤이 사념과 번뇌를 벗게 해주는 명약 이였다. 그만큼 진은 이제 춤의 진미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다.      거미줄이 서리고 먼지에 묻혀 있던 곡성 곁 과수밭의 막사는 진과 유로 말하면 천국의 루각임에 다름없었다. 밤이면  타는 목마름으로 화급하게 담을 넘었고 막사로 가서 유를 만났다. 이제 진과 유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유는 진의 반려였고 춤의  동력 이였으며 생활의 전부였다. 그들은 부락사이의 반목의 물결이 밀어낸 금기의 가장자리에서 만난 사람들 이였다.    - 언제면  우리가 남들 앞에서 떳떳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그날이 올까요?     유의 말소리가 낮게 막사에  깔렸다. 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유가 여느 때보다 감상에 젖은 소리를 했다. 모호한 슬픔, 그리고 약간의 불안기 같은 것이 유의 엷은 눈꺼풀을  스쳐 감을 진은 본다.    - 창천(蒼天)에도 눈이 있다면 우리들의 사랑을 갈라놓지 않을 거요.   깊은 밤  소반에 정안수 한 그릇을 떠놓고 달보고 절하며 가약을 맺었던 둘 이였다. 함께 있다는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유는 진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  눈은 언제 나처럼 사랑이 담겨져 그윽하다. 그러던 유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 이상해요.   -  뭐가?   - 오늘따라 당랑이 불을 켜지 않아요? 왠지?   유의 예감은 적중했다. 말을 마치기 바쁘게 막사 밖에서  《홍모》가 다급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 발 구름소리와 함께  막사의 문설주에 걸친 가마니때기가 훌떡 젖혀지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밝은 홰불 빛이 밀려들었다. 그 엄청난 광량(光量)에 둘은 흠칫 몸을 떨었다.      진과 유는 가지런히 옥사의 대청에 꿇리여 앉았다.     매처럼 좁고 빛나는 눈길을 가진  산북의 족장이 포교(捕校)의 동반을 받으며 나타났다. 매 눈으로 두 사람을 한동안 쏘아보았다. 그 눈길이 참기 어려운 고문 이였다. 드디여  침묵을 깨며 족장이 포리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 남하 놈팽일 10대 치고 풀어줘라.    포리들이  어리둥절해서 족장을 쳐다보았다.   - 젊은 놈들이 혈기가 끓어올라 붙어먹은 짓이고 또 여태 두 부락사이에서 처음 있은 일이라  형을 가볍게 내렸다. 그저 이 이후로 더는 남의 부락 녀자를 넘보는 발칙한 짓을 안 저지르겠다는 다짐장만 쓰면 없는 일로 묵과하겠다. 그리 알고  대답을 올려라.    - 어서 족장 님의 너그러운 관용에 감사를 올리지 않고  뭘 해?   포교가 곁에서  윽박질렀다. 진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 사랑에는 지경(地境)이 없습니다. 우린 잘못한 것이 없어요.    - 이런 간뎅이가 부었나? 봐줬더니만 새 이불홑청에다 오줌싸려 드는구나.    포교와 포리들이 흘금거리며  저희들 족장의 눈치를 보았다. 시퍼렇게 돌아서는 족장의 눈에 퍼런 번개가 친다.    - 그래 다짐 안 하겠느냐?    진은 유를 건너보았다. 유도 진을 지켜보고 있다. 둘은 서로의 눈빛에서 힘을 얻었다. 진이 이를 사려 물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포교가 몸을 으스스 떨었다.    - 넨장, 환장하겠어.   족장이 포교를 불러 귀가에 무어라고  속닥거렸다. 포교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어 포교가 두 사람을 향해 호령했다.    - 그렇다면 산북의 법대로 산북사람을  단죄하겠다는 족장 님의 분부 시다.    진과 유가 머리를 쳐들었다.    - 너희가 이 벌을 이겨낸다면 하늘의  뜻으로 알고 내 허락해 주리다.    족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족장의 눈에서 서슬 퍼런 랭기가 흘렀고 그 눈빛에 대청의  사람들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 불기와 지짐이라고 들어 봤느냐?   대령해 선 포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표정들이 크나큰 경악에 어려 일그러진다.    그 형벌에 대해 진은 어른들에게서 귀동냥해 들은 적 있었다.《불기와  지짐》이란 유부남과 간통한 녀자나 풍류방(風流房)의 기녀, 그리고 남들에게 저주를 퍼부은 무당 년들에 가하는 잔학한 형벌 이였다. 발가벗겨 매여  달고 치부와 온 몸의 곳곳을 달군 기와 장으로 뜸질하는 형벌이다.    진이 주체할 길 없이 높아진 소리로 반문했다.   - 저 녀자에게 무슨 죄가 있나이까? 남의 유부남을 빼았앗나이까? 뒤 골목에서 몸을 팔았나이까? 아니면 온 마을에 마마가  돌라고 저주라도 했나이까?   유가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눈으로 족장을 직시했다.   -  망극하나이다. 족장 님께서 그런 형벌로라도 저희들의 사랑에 허락을 주신다면 소녀는 달갑게 받겠나이다.    - 안돼. 유!   진이 다급히 소리 질렀다.     - 후회 안 하겠느냐?   족장이 더욱 빛깔이 깊어진  매 눈을 치뜨며 유를 보았다. 살갗 깊숙이 박히는 그 시선을 받아내며 유가 한층 나직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사랑을 위한  일이 온데 무슨 후회가 있겠사옵니까.     포리들이 쩔그럭거리며 형틀을 챙겼다. 유는 포리들에게 잡혀 몸부림치며 안  된다고 소리소리지르는 진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진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몸을 돌렸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순백의 몸뚱이를 빛내며  차가운 형틀 우에 누웠다. 포리들이 어리친 눈길로 족장을 쳐다보았다. 족장의 볼이 불끈 경련하고 있었다.   벌겋게 단 기와  장들이 차례순으로 유의 여린 살갗 우에 놓여졌다.    치직- 살 타는 냄새가 대청에 퍼졌고 그와 함께 노란 연기가 피여 올랐다.  기와 장에 살갗이 척척 묻어 났다. 그러나 대청의 사람들은 녀자의 비명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유! 유!!  유!!!   부르짖으며 진은 눈을 지 질러 감았다. 눈앞에서 수십 마리 나방 떼가 어른거린다. 눈을 감아도 한 장 한 장의  기와장이 유의 몸에 놓여지는 형상이 선명히도 떠올랐다. 때마다 진은 자기도 달군 기와장에 대인 듯 몸을 꿈틀거렸다.   랭혹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족장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옥사를 박차고 나갔다. 말에 올라탔다. 말등자를 바로 밟지 못해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부하들이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말고삐를 당기려다 말고 족장이 감탄인지 욕설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로 내뱉었다.     - 지독헌 년      과수밭,  진은 유를 업어다  뉘였다. 맹금(猛禽)의 부리에 걸려든 듯 유는 온 몸이 찢겨져  있었다. 우박을 맞은 꽃잎처럼 유는 지치러 들어 있었다. 만개한 꽃 같은 커다란 화흔(火痕)이 온 등판에 번져나가 있었다. 유의 몸에 약초를  짓찧어 붙여주는 진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지어 내렸다. 눈물에 약초를 반죽해 진은 유의 온몸에 붙여 주었다. 《홍모》가 끙끙대며 혀를 내밀어  주인의 덟어진 얼굴을 핥는다.    - 진...  언제 깨여났던지 의식이 돌아온 유가 진을 불렀다. 힘겹게 돌아누운  그녀의 퀭한 눈 그늘이 섬뜩하도록 어둡게 느껴졌다. 가까스로 눈망울을 크게 열고 유는 진을 쳐다본다. 진이 눈물을 훔쳐내며 다급히 유의 머리  전에 엎드렸다.     - 진, 날 꼭 안아주세요.    그 나지막한 소리를 귀 울림같이 들으며 진이 유를  껴안았다. 상처자리가 아파 유가 이마 살을 모았다. 진의 품속에서 그녀는 작은 공 벌레처럼 꼬부라졌다. 그런 유를 두고 진은 어쩔 바를  몰라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면 유의 몸이 유리잔처럼 깨여져버릴 것만 같았다.    진의 품에 안겨 유는 진을 올려다보았다. 상처  입은 산짐승의 눈처럼 개개한 눈동자로 진을 쳐다보았다. 입가에 반월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처량하게 웃었다.   - 진, 날 잊지  말아줘요.     유의 눈 기운이 혼혼해 졌다. 그리고 몸이 점점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졌다. 진이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가슴을 문지르고 팔을 문지르며 손끝에서부터 발끝으로 번져 나가는 퍼런 빛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유의 몸은 점점 차갑게 식어만 갔다. 진의 어깨에  둘려졌던 유의 팔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 안돼! 날 버리지마 유. 죽지마 유! 안돼. 죽지마.    진은  눈물의 폭포를 쏟아내며 유를 불렀다.    - 날 버리면 안돼 유, 족장이 우리 사랑을 허락했는데. 하늘이 우리 사랑을  허락했는데. 죽으면 안돼 유! 유!!   과수밭에 어스름이 내린다. 막사주위에서 화당랑들이 뛰여와 더듬이에 불을 켜들었다. 불  화환이 되어 막사 주위에서 빙글빙글 맴을 돌고 있었다.                                             진, 스승을 찾아가다      두 부락을 가른 곡성의 거대한 몸체가 묵묵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우직한 선머슴 같은 성채의 무릎  아래에서 부락사람들은 갈라져 살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청태처럼 까실까실 앉은 돌 각담은 이젠  슬픔 짙은 빛깔로 음울하게 서 있을  뿐이다.    진은 매일이고 곡성 곁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진은 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진은 멀리 산북의 밋밋한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진 과수밭을 점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 과수밭에, 밤이면 화당랑이 저마다  더듬이에 등롱을 켜들던 그 천국의 풍경 같은 과수밭에 이제 사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꿈의 자락에 이끌리듯 밖으로 나와 담장 곁에  붙어선 그 눈빛에는 항상 애수와 여한이 안개처럼 젖어 있다. 그는 이 몇 달 동안 마치 다른 시간의 경계를 지나 온 것처럼 단정하던 얼굴빛을  잃어버렸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잡초처럼 어지러웠고 얼굴에는 어두운 골이 깊게 파여 있었다.    은밀하게 빚었던 사랑에 대한  향수를 이루지 못한 채 유는 갔다.    스스로 그어 돋우어진 상처를 운명인 양 받아들이며 유는 갔다.    하늘이  준 만큼 사랑이며 목숨을 건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고 덧없음을 진에게 깨쳐주며 유는 갔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먼 곳의 향기를 묻혀 놓는다. 과수밭에는 하얀 꽃이 백사지 같이 피여 있다. 두 부락의 사람들은 곡성지경에 남북과(南北果)라는 과일을  심었다. 도작(盜作)하는 과수농들이 가만히 산북종과 남하종을 접종하여 배육해 낸 과일, 과육이 많고 그렇게 달콤했다. 가을이면 달디단 과즙의  향이 백 리 밖까지 내달렸다. 가만히 재배하지만 두 부락의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과일 이였다.    접목 되여 꽃 피우고  열매를 다는 과일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어울려 꽃을 피우려 했는데, 풍성한 결실을 맺으려 했는데...    - 차라리  꿈이였더면은 … 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다 슬픔에 사무쳐 눈을 감았다.    그 사이 불독이 새끼를 낳았다. 산북의 《홍모》와의  사랑의 결정 이였다.    미물도 저렇게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는데...   새끼 개의 함함한 털을 쓰다듬으며 감개에  젖어 진은 또 다시 눈물을 쏟았다.    심산(心散)하기 그지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진은 구명(求命)처럼 한 사람을 머리에  떠올렸다.      호수 위로 어둠이 성깃성깃 내리고 있다. 어둠 살이 묻어나는 호수는 극도로 붓을 아낀 수묵화 같았다. 스승 명은  깊은 산 속 호수 가에 기거하고 있었다. 속세를 떠나 깊게 은둔해 있었다.    오래 동안 보지 못했던 스승은 많이 늙어 있었다.  탈색시킨 광목 같이 노리끼리하게 파리해진 얼굴 군데군데에 앉은 검버섯, 들뜬 잇몸, 허나 하나밖에 없는 눈빛만은 귀기가 어릴 정도로 형형하게  살아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은 목 울대가 조여들고 콧등이 시큰해 난다.      호수가의 너누룩한 돌에  정좌하여 스승은 반듯한 수면을 지켜보고 있다. 독락(獨樂)하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 스승님.  진이 가까이 다가가며 불렀지만 스승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다. 진도 스승을 불러놓고는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래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없어 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스승을 찾았던 진은 스승의 골몰한 모습에 말을 삼키고 스승의 눈길을 쫓았다.   호수의 복판에서 불이 피여 오르고 있었다. 파란 불길이 피여 오르고 있다. 오래 된 못에 침전된 가스로 생기는 불 이였다.  미약한 바람에도 불길은 춤꾼의 허리처럼 흔들거렸다. 스승이 몸을 스르륵 일으켰다. 강물 한가운데 떠서 삿대 없이 스스로 흘러가는 뗏목처럼 스승이  몸을 움직였다. 진을 방임한 채 혼자처럼 스승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스승의 춤사위가 이전보다 많이 바뀌어있음을 진은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추며 명이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가 수면 우에 어린다. 저음의 피리소리 같다.  - 물의 흐름을 찬이 보아라.    물은 맑고 깨끗한 심상을 지녔다. 물은 풍요한 덕성을 지니고 있어서 세상  모든 것을 부드럽게 만져준다. 불의 흐름이 강한데 비해 물의 흐름은 유연하다.    불의 열정을 지니되 물처럼 행동할 것을  바란다. 불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일소해 버린 다면 물은 세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새로운 창조를 기약할 수 있다. 거친 불 뒤의 물은  새로운 재생을 말해 준다.    불춤을 추는 우리가 물로 만나자는 의미는 불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열기를 더 크게  살리기 위함이다. 탁하고 어지러운 것이 사그러진 후의 순결한 재생을 위함이다.    네가 물의 흐름을 모를 때 불의  타오름도 다 리해할 수 없을 거다. 이것이 내가 산북의 춤과 우리 춤에서 더듬어 낸 전부다 ....   스승의 낯설면서도 익숙한  춤사위에서 진은 그 전하고자 하는 춤의 언질을 뒤미처 받아 안았다.  세상을 버리려는 듯, 세상을 안으려는 듯한 그 무아의 몸짓에서  한낱 애욕의 틈바구니에 보잘것없이 서있는 자신을 보았다.   호수에 꽃은 없었지만 진은 분명 향기를 맡았다. 시린 상처가 피워  올리는 향기였다.                                진, 동인들을 보내다             밤  늦도록 진은 석등이 타오르는 뜰에서 하나 하나의  춤사위에 땀 벌창이 된 몸을 싣고 있다.    오랜만에 스승을 뵈였다. 회한과 미련으로 삶의 갈피마다 어찌할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인간적 약점으로 부대끼면서 그런 드팀없는 스승을 대하는 진은 눈가에 슬몃 부끄러운 눈물이 맺혔다. 마음자리 마디마디에 접붙여진 스승의 말을  떠올려 보노라니 자기를 떠밀어온 모든 감정과 책무, 삶을 속박했던 육신의 욕망, 그리고 그 주기에서조차 벗어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북채를  잡았고 새로운 춤사위에 자신을 잡아넣었다. 스승의 언질을 들으면서 진은 단전(丹田)에서부터 올라오는 새로운 기(氣)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진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북채를 잡게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진저리치도록 가슴아프게, 때로는 너무 서글프다 못해 더러 유쾌한 느낌을  주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그는 춤에 자기를 바쳤다.      춤을 추면서 한편 진은 교를 기다리고 있다.  불독이 진의 곁에서 불안하게 서성거린다. 한나절부터 불독의 새끼가 보이지 않았다. 불독을 따라 새끼를 찾아 나섰던 진은 어느 개울가에서 개의  목에 걸어주었던 액세서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개의 털을 발견했다. 언뜻 짐작이 가는 쪽이 있었고 진은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눈곱이 잔뜩 끼고  진득한 콧물이 흐르는 개, 새끼 잃고 주눅들어 처량해하는 불독이  가여워 턱과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자 개는 진의 팔에 얼굴을 비벼댔다.    문뜩 노래 소리가 들렸고 돌계단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교였다. 턱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가 올라 오고있다. 교는 몹시 취해 있었다. 늘 불쾌하게  취해있는  교의 그런 모습이 진의 속을  울컥 뒤집었다. 뜰에 섰는 진을 발견하자 교의 눈빛이 잠깐 굳었다.    - 왜? 너도 한잔 할려나?   교가 주기가 력력한 눈으로 앞을 막는 진을 쳐다보았다. 괴춤에 달린 술 조롱박을 내밀었다. 그  조롱박을 진이 밀쳤다. 교의 몸에서 풍기는 썩은 과일 같은 술 냄새를 참으며 진이 물었다.     - 개를 어찌한  거니?   - 몰라   시치미를 따며 지나치려는 교의 손목을 진이 감쳐 잡았다.    - 말해봐.  개를 어찌한 거냐구? 불독의 새끼를.    교가 몸을 가누며 진을 쳐다보았다. 입 귀에 야비한 웃음을 물고 자기의 배를  가리켰다.   - 이 속에 들었다. 왜?   진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 개고기  냄새를 맡으면 하늘의 신선도 내려온대.    - 뭐야?   짐작한 바였지만 그의 입으로 사실을 확인한 진은 격노를  참지 못했다. 교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 질렀다. 교가 석등 앞에 뒹굴었다. 그런 교의 멱살을 끄잡아 진이 일으켰다.    - 너  왜 이러고 있어? 선생님의 당부도 잊었어? 지금 넌 이 무용단의 유일한 책임이야.    요즈음 교의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교는 완연 딴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춤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반면, 제멋대로 《화택》을 뛰쳐나갔다는 밤늦어야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얼마 전에는 무용단 애들을 끌고 족장이 첩을 맞아들이는 잔치로 가서 춤을 추어주었다. 그때 함께 가자고 잡아끄는 교를 진은 단호히  밀쳤다.    - 우리는 신을 노래하는 무용단성원이지 족장의 노리개가 아니다.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적봉의 나래 부러진 매로  살지언정 속세의 나래 성한 닭으로 살지 말라던 그 말씀이.    하지만 교는 몇몇 애들을 끌고 기어이 잔치에 참석했다. 오늘도  족장의 생일이라 보신용으로 개를 잡아 바친 것 이였다. 일전에 장에서 산 일월이 새겨져있는 도자기도 교는 족장에게 선물했다. 그렇게 권세  자들에게 비굴과 아첨을 보이는 교에게 진은 릉멸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인에 대한 굳은 믿음에 균렬이 생기고있음을 진은 느낀다.   진이 《화택》으로 들어가 벽에 걸린 북채를 벗겨들고 나왔다. 스승 명이 교에게 넘겨준 북채였다.    -  선생님의 믿음에 미안하지도 않아? 남들 앞에 본을 보여 줘야 할 네가 왜 이러는 거냐? 왜?   일심으로 춤의 길을 걷자고  맹세하던, 그렇게도 양양하던 꿈 몰이의 초반이 생각나 진이 교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 혼자서 잘난 척  말어.   교가 손사래를 쳤다.    - 나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밥되는 거 없고 돈 되는 거 없는  춤에 명줄을 달고 싶지 않다구.    교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 이 숨막히는 곳에 나를 가둬놓고  안주하며 난 세상에 춤만이 최고라 믿어왔어. 헌데, 헌데 모두가 허상 이였어.      그 말에 자제에도  불구하고 진의 언성이 높아졌다. 북채를 쳐들며 말했다.   - 이 몽척(夢尺)에 미안하지 않아? 그래 신 앞에서 다짐한  초지(初志)를 버리겠단 말이냐? 꿈을 이루려고 맹세했던 우리가 아니였나?   교가 웃겨 하는 표정을 감추려하지도 않았다.   - 맹세? 뭘 맹세해? 무자가 된답시고? 무자가 되는 길이 뭔지 너 알어? 난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자, 그 표준의 금을  긋는 사람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이야. 너도 봤지. 춤 경색에서 춤을 잘 춰도 못 춰도 평점은 그 사람들이 내린다구. 이게 현실이야. 이 세상에  진정한 무자(舞者)란 없어.     교가 물지 똥 같은 랭소를 피식 흘리며 진의 손에서 북채를 앗아냈다. 석등의  불 집에 던져 넣었다.    - 너 미쳤냐?   진이 덴겁해 불 집에 손을 넣어 북채를 끄집어 내였다. 불붙는  북채를 훅훅 불어 불을 껐다. 타다가 반 남아  남은 북채를 들여다보며 혼자 말처럼 말했다.    - 무릎이  부스러지더라도 나는 이 길을 갈 생각이다. 달리 다른 길을 알지 못하므로.    교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도  아집 강하고 딱 부러진 진의 성격에 질려 버렸음이 확실했다. 술이 조금 깨인 듯한 눈으로 진을 보다 말했다.    - 나 이곳을  떠날 거야.      며칠 안 되여 교는 과연 《화택》을 떠났다. 밤중에 슬그머니 떠나버렸다. 산을 내린 교는  엉뚱한 방향에서 출세 줄을 탔다. 부락의 곡창지기라는 작은 벼슬을 가졌다. 북채를 들었던 손에 쌀 담는 되를 들었다.    교의  떠남에 유감을 보이던 염도 뒤미처 떠났다. 응집된 환상이 깨어진 뒤에 동인들은 자아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간다.   염은 결혼을  했다. 상대는 부락의 대부호의 조카였다. 무용경색에서 돈 많은 삼촌 때문에 방에 올랐던 그 조랑말 타고 으스대던 사람, 지금은 그도  산북장사치들과의 밀수거래로 부락에서 손에 꼽는 부호로 되었다.    사인교가 화택에 까지 와서 염을 맞아갔다. 떠나면서 염은  진에게  무언가 남겨 주었었다. 북채에  다는 붉은 술 이였다.    - 지난 봄, 장거리서 산 거야. 원체  일찍 주려 했었는데...   염은 뒤 말을 흐렸다.    - 춤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못난 우릴 닮지  말고.     염이 사인교에 올랐다.   - 잘 살아 봐. 행복해야 돼.    조금 서글픈  마음을 감추며 진이 조용히 축복해 주었다. 자기를 향해 짓는 그 미소 속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힘이 느껴져서 염은 좀 무안해졌다.   사인교가 《화택》을 떠났다. 사인교의 뒤를 따라가며 불독이 컹컹 짖어 댔다. 진은 사인교를 둘러싸고 장구 치고 나팔을 불며  내려가는 혼례대오를 지켜보았다.      - 저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뭘까. 세상은 얼마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필요로 하는 걸까. 세상 것 가운데 욕망과 황금과 치환할 수 없는 것이 정녕 있는 걸까.     《화택》의 뜰에서 진은  초겨울 빈 들판에 홀로 꽂힌 허수아비인 양 오래도록 서있었다. 뿌리를 보이면 죽는다는 모종(苗種)을 옮기듯 반 도막남은 북채를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서있었다. 그러다 진이 그 누구의 지령을 받은 사람처럼 북채를 쳐들었다. 휘둘렀고 북소리를  따라 몸을 솟구었다.  마치 자신을 소진(消盡)시키듯 격렬한 춤을 추었다.   사인교가 멀리 굽이를 돌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햇빛이 완전히 사월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적봉에 달이 뜰 때까지 북소리는 끊기지  아니하였다.                                   진, 금기를 범하다     비의 계절 이였다.    비의 오지랖 넓은 손길에 세상 천지 젖지 않은 것이라곤 아무도 없다.   비는 벌창해진 성미로 산 홍수를 몰아왔다. 홍수는 적봉기슭의 《화택》을 무너뜨렸고 부락 사람들의 가옥이며 전답을 밀어  버렸다.    초미(焦眉)의 문제는 부락에서 불씨가 하나 둘 꺼진 것 이였다. 무심했던 사람들은 급기야 당황해 졌다. 불씨를  얻으러 백방으로 애썼다. 그러나 저장해둔 발화목(發火木)들이 비에 눅눅해진지라 나무를 비벼대도, 화도(火刀)를 극성스레 쳐대도 불을 일으켜 내는  수가 없었다. 족장이 총애하는 교를 불러 화신무도 추게 하면서 화신에게 치성을 드렸지만 종시 불을 일으켜내는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며칠째 취연(炊煙)을 볼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밤이면 집집마다 켜들던 호롱불을 볼 수 없었다.     마을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석등이 꺼진 《화택》의 뜰에서 진은 비에 갇힌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대줄기 비를 맞으며 진은 산을 내렸다. 곡성을 넘었고 무언가를 짊어지고 다시 넘어 왔다.    그의 등에 진 것은 불을 저장하는  장화통(藏火筒)이였다. 진은 담 곁의 높은 산 더기에 잠간 멈추어 서서 비안개에 뽀얗게 가려진 산북의 산을 바라보았다. 물빛 알갱이들이 허공  속을 내리긋는 게 보였다. 과수밭가에 묻고 온 유가 이 찬비에 떨고있을 것을 생각하니 목이 메였다. 한편 남하의 곤궁을 헤아려 불씨를 선선히  넘겨준 산북 사람들이 고마웠다.      적봉 동굴 속의 화신을 모신 화당에 다시 불이 피여 올랐다. 집집의  창문마다 불빛이 송이송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굴뚝에는 연기가 피여 오르기 시작했다. 기쁨과 감격에 들뜬 마을사람들이 삶은 음식을 들고 《화택》에  찾아왔다. 불씨를 얻어준 진을 에워싸고 춤 마당을 펼쳤다. 진의 춤사위에는 전에 없는 활력이 묻어 있었다. 그들과 어우러지면서 자신이 만들고  있는 춤에 대한 보람을 진은 피부로 느낀다.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성이 나 흘러 넘치던 비가 조금씩 줄기 시작했고 드디여 멎었다. 그리고 하늘 깊숙이 스민 붉은 빛이  서서히 부락의 상공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누군가 적봉을 가리키며 깨지는 소리를  질렀다. 적봉의 산정에서 놀라웁게도 검은 실연기가 피여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적봉은 연기를 뿜고 있었고 달빛인지 별빛인지 모를 박명(薄明)에  서려있다. 수상쩍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산을 쳐다보며 말세가 오려나고 부락사람들은 저마다 불안에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  경악의 불길에 기름을 부으며 대각 소리가 울렸다. 족장 굉이 두 볼을 팽팽히 살리며 대각을 불었고 그 소리에 부락 사람들이 바삐바삐 적봉기슭의  《화택》에 모여들었다. 족장을 위시하여 10명의 장로들이 앞에 나섰다. 누구의 이마에나 음습하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사람들은 읽을 수  있었다. 살벌한 기운이 축축한 대기 속에서 굼닐었다.    포리들이 결박을 지운 사람을 끌어냈다. 진이였다.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훔쳤고 또 사사로이 불씨를 나누어주었다는 것이 죄였다. 불씨는 매년 초봄, 부락에서 화신제를 연 뒤 부락의  권위인물이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한낱 춤꾼이 족장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불씨를 나누어주었으니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죄장이 들 씌워진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진이 일전에 지경을 넘어 산북의 녀자와 사랑을 나눈 일까지 들고 나왔다.    족장이  크악! 크악! 가래침을 돋구어 뱉고 나서 입을 열었다.    - 진은 이웃 산북에 넘어가 불씨를 훔쳤다. 이는 두 부락사이의  적대감정을 극화시키는 도화선으로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락의 허락도 없이 아무사람에게나 나누어주었다. 여러분이 그의 죄를 낱낱이 까밝혀 문죄하기  바란다.    진은 연막 낀 눈으로 족장과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그 동안 홍수에 밀린 《화택》을 수건하고 넘어진 석등도 세우며  밤을 패였던 진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피로해 보였다.     장로 하나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 진이 비록 불을 훔쳐왔다지만 일방적으로 그를 문죄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진은 마을사람들이 불을 지피지 못해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는  정경을 보고 그들을 구하자는 일념에 그 후과를 알면서도 월경했던 것이옵니다.       또 한 사람이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었다.   - 아시다시피 적봉이 이상한 기운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한낱 춤쟁이가 망동한데서 산신을 노엽힌  결과라고 봅니다. 그를 중죄로 다스려 신의 감정을 무마시키는 것이 도리인가 봅니다.    - 잠깐요. 상기의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진은 화신무용단의 맥을 이어나갈 인재입니다. 그런 그에게 중형을 내리면 우리 남하족은 하나의 출중한 춤꾼을 잃게 될 겁니다. 족장 님께서  명찰하시옵소서.      진은 함구무언 머리를 숙이고만 있었다. 숙인 머리통 속의 새하얀 속살과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촘촘히 밴 땀을 보이고 있다. 그의 반발은 무력하고 막막했다. 그의 정당성의 전개를 허용할 만한 어떤 종류의 빌미도 족장은 만들어  주질 않았다. 그런 족장의 태도는 진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족장이 길어지는 변론을 무참히 끊어 버렸다.     -  투석으로 결정하세나.    장로들이 부스럭거리며 저마다 옷소매 속에서 돌멩이를 꺼내들었다. 사람들 저마다 숨을 꺽 죽이고 돌멩이를  지켜보았다. 홍석은 문죄(問罪). 백석은 사면(赦免)이였다.    홍석이 다섯 개 백석이 다섯 개가 나왔다.     투표를 다시 했다.    역시 홍석 다섯 개 백석 다섯 개가 나왔다.    - 문죄와 사면으로 의견이 각이 한데  공정을 위해 몇 사람 더 선발해 아퀴를 짓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장로하나가 제안했다. 마을에서 신분 있다는 몇  사람을 불러냈다. 그 사이에 교와 염도 끼여 있었다.    투석이 다시 되었다. 염이 선 참으로 백석을 던졌다. 그런데 교가  머뭇하고 있었다.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교가 침을 소리나게 삼키고 나서 꼭 움켜 쥔 손을 펼쳤다.     홍석이였다.    염이 당혹한 눈길로 교를 쳐다보았다. 교는 염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비껴보고 있었다. 그들은 형제인  것이다. 한 무용단에서 예술의 비상을 위한 둥지를 틀었고 매일이고 나래 치는 련습을 하면서 고통과 영욕을 같이 나누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속에 족장이 소리 높여 심판결과를 알렸다.    - 결과가  나왔다. 홍석이 15개, 백석이 13개. 명의 전철을 밟은 진을 쌍목형으로 문죄한다.     - 안되오. 진이 우리에게  불씨를 주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벌을 내리다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었다. 두꺼운 겹 주름이 뒤룩뒤룩 덮인 시푸르뎅뎅한  얼굴로 족장이 사람들을 흘려보았다. 그리고 손짓으로 포리들을 불렀다. 족장에게 사람들의 반대의 소리는 쥐가 벽을 갉아대는 소리쯤으로 들렸다.  포리들이 형틀이며 화로, 부저가락 등으로 형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두 번씩이나 중복되는 잔혹한 행태에 몸서리를 쳤다. 포리들이 진을  말뚝으로 끌어갔다. 말뚝에 머리를 얽동이려 하였다.    - 잠깐만   진이 소리질렀다.    - 청구 하나가 있나이다.    - 뭐냐?    족장이며 모두들의 눈길이 진에게 쏠려 졌다.   - 마지막으로 화신무를 한번 추고 싶습니다.    족장이 턱짓을 했다. 포리들이 결박을 풀어 주었다. 염이  눈물을 삼키며 북과 북채를 찾아 주었다. 아스라한 절망이 감돌던 진의 눈이 호수 같은 온정을 찾아 있었다. 북채, 반도막이 난 그 북채를 진이  추켜들었다.    북 소리가 울렸다. 습기를 먹은 북이 좀 틀린 듯 하나 더 웅숭깊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의 골수를  쪼개고 들어갈 정도로 처량했다. 진이 덫에 치인 짐승처럼 몸을 흔들었다. 마음속 가득 찬 공포와 울화를 털어 내련 듯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춤에는 애절한 인내와 맵싸한 고통이 배여 들어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슬픈 사연을 흐느껴 하소연하기도 하고 벅찬 가슴을 감싸며 하늘을 우러러  열락(悅樂)의 몸짓을 짓기도 한다. 진은 마지막 춤으로 응어리진 정한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둘러선 사람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한정어(限定語)가 가슴을 찔러서다.    평상 우에서 진이 춤을 마무리했다. 하나의 청동 조각처럼 굳어져 춤의 마지막  소절을 마쳤다. 진은 호흡을 고르며 눈을 들어 사위를 둘러보았다. 포악을 떠는 족장이며 형구를 갖추며 채비를 하고있는 포리들이며, 속수무책의  련민으로 쳐다보는 마을사람들이며,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염이며, 슬그머니 돌아서 사람들 틈바구니를 빠져가고 있는 교의 뒤 잔등이며,  끙끙대며 젖은 털을 혀로 핥는 불독이며, 아아 하게 솟은 적봉이며. 멀리 길게 누웠는 곡성이며...를 동공 속에 낱낱이 새겨 두었다.   - 시간이 되었다.    족장의 포효가 울렸고 포리들이 진에게 결박을 지우려 평상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진이  들린 사람처럼 간간하게 웃었다. 하늘 우러러 대갈일성(大喝一聲)을 지르며 두  손가락을 곧추 세워 자신의 눈을 힘껏 들이찔렀다.                                       진, 불과 만나다         토우 앞에, 진은 꿇어앉았다. 무릎은 으깨져 피투성이였다. 더듬으며 넘어지며 찾아온  화신이 모셔졌는 동굴, 피범벅이 된 얼굴에 화당의 온기가 끼쳐왔다. 아직도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도는 통증에 정신이 가물가물해  졌다. 진은 화신이 모셔졌을 곳을 짐작으로 확인해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 했다. 피를 뚝, 뚝 흘리는 듯한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앉았다.   흙 인형이 입을 열었다.    - 고통스럽느냐?   - 예,    터진 입술을  혀로 적시면서 진은 꺼져 가는 소리로 말했다. 용암으로 지져놓아 움푹 패인 듯한 몸과 마음의 깊은 고통을 술회할 길 없어 몸부림하는 그의 텅 빈  눈확으로 눈물이 배여 나왔고 그것은 이내 묽은 피물이 되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 고통에서 해탈 할 방책을 대줄  가?   - 대주옵소서.     화신이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 춤을 버려라.   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부림하는 그의 손에 옷 속에 품은 반도막의 북채가 만져졌다.    - 버릴 수  있겠느냐.   진이 말이 없자 토우가 다시 한번 물었다. 북채를 뿌지직 소리나게 잡으며 진이 또박또박 말했다.    - 못, 못 버리겠삽니다.    그런 진을 지켜보다 토우가 감개를 토했다.   - 업연소치(業緣所致)라. 모든 것은  업에 의해 이루어진다더니, 너무나도 질긴 업장이로구나.    진에게 들붙은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신은 입을 다물어 버렸고 이윽고  눈도 감아버렸다.     적봉의 산정에서 피여 오르던  실연기가 굵어져 갔다.    적봉 우를 까맣게 뒤덮으며, 괴이쩍은 울음을  울며 새들이 날아갔다.    적봉으로부터 화산재가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화산재는 부락을 무채색의 전경으로  만들었다. 하늘은 재빛 모포를 뒤집어 쓴 듯 하다. 산도 집도 사람도 온통 재 빛이었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도 먹물 이였다. 재가 날리는 바람  속에는 온통 녹슨 쇠붙이 냄새와도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그와 함께 마을사람들은 산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뢰소리를 방불케 하는 그 소리는 산 속 깊이로부터 울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날짐승들의 불안한 소리에 뒤섞여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있었다.    북소리였다. 북 소리는 적봉아래의 《화택》으로부터 울려오고 있었다. 《화택》은 화산재가 뒤섞인 재 빛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소리는 운무를 비집으며 집요히 울려나오고 있었다.    - 천렬지화(天裂之火)가 닥치려나 보다.   머리에 화산재가 한 켜나 앉은 족장이 몸을 으스스 떨었다.    드디여 어느 아침, 꽈르릉!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적봉의 꼭대기로부터 화염이 뿜겨 나왔다. 잠자고 있던 적봉이 몸을 틀며 용트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은 삽시에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남부녀대하고 집과 가축을 버린 채 사람들은 천방지축 마을을 뜨기 시작했다. 산의 골을 타고 진 붉은 용암이 터져 내렸다.  용암은 홍수처럼  골을 이루며 흘러 내렸다. 흘러내려 가옥들을 태웠고 나무와 풀을 핥았으며 곡성을 밀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우성이며  불을 피해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 난장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쪽을  마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진이였다. 적봉으로 난 돌계단을 톺아 더듬이며 비칠이며 진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불안한 듯 주위를 경계하며 불독이  사납게 짖어댔다. 날카로운 이빨이 불빛 속에서 번뜩인다. 불독이 진의 바지가랭이를 물어 당겼으나 주인의 확고한 발길을 돌려내는 수가 없다.  주인의 용의를 알아 개는 이젠  주인의 앞에 나섰다. 앞에서 향도를 해주었다.   용암이 터져 오르는 굉음에 귀때기가  잘려나갈 듯 했다. 날리는 화산재에 목이 메였다. 회오리를 만들며 불어온 불의 열기가 진의 얼굴을 할퀸다. 머리칼을 불불이 세운다. 그러나 진은  손톱 세우고 덤벼드는 불의 열기를 맞받아 앞으로  걸어간다. 어릴 적 불에 데였던 진의 왼편 이마 전에 동전잎 만한 흉터가 력력히  돋아난다. 북과 북채를 가슴 앞에 꼭 그러안은 채 진은 오로지 돌계단으로 오르고 있다. 그 길이 진에게는 자기가 념원하는 궁극에로 통한  회랑(回廊)을 걸어가는 것과도 같게 생각 되였다. 그는 지금 화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벌창해진  용암이 계단을 핥으며 흘러 내렸다. 불붙는 소리가 우우 귀가에 들려 왔다. 가까워지는 불을 느껴 진이 사력을 다해 북을 두다렸다. 불의 춤을  추었다. 불의 노래를 불렀다.       훨훨! 훨! 훠어얼! 불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  불이여     캐갱! 앞에서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삼키며 길을 안내하던 불독이 비명을 질렀다. 처연하게 짖으며 용암에 묻혔다 순식간에 하얀  뼈의 몸뚱이만 남았고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그 뼈마저 용암이 녹여버렸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 이여라 네가 불 이여라   진의 옷에 불이 붙었다.  진의 머리칼이며 눈섭에 불이 붙었다.  진의 손에 든 북이며 북채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불의  찬가는 끊기지 아니하고 있었다.  진은 불 속으로, 그 죽음 같은 황홀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진은 한 몸을 던져 어떤  경계(經界)의 우주 속으로 뛰여들고 있었다.  진은 마침내 불과 한 몸이 되어 열반(涅槃)하고있었다.   훨훨! 훨! 훠어얼! 우리는 불로 만나리라 숯이 된 뼈 하나로 세상 불타는 것들을 노래하리라 ...  ... ...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4    톱스타의 열애설과 “만추” 댓글:  조회:2887  추천:12  2014-07-03
. 서점가 산책 .   톱스타의 열애설과 “만추”   김혁     영화 “색계”로 알려진 톱스타 탕유가 열애설과 함께 결혼소식을 전했다. 탕유의 회사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그녀가 한국 김태용 감독과 올 가을께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팬들로 말하면 메가톤급 소식이였다.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은 탕유의 결혼 소식을 메인에 걸었는데 여기에 누리군들의 2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이들의 결혼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탕유의 또 다른 대표적 영화인 “만추”를 통해 인연을 맺은 김태용 감독과 탕유는 영화 작업 이후에도 좋은 친구로 지내왔으며 2013년 가을, 광고 촬영을 위해 탕유가 내한 했을때 “남재녀모”의 련인으로 발전한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절강성 온주시에서 태여난 탕유는 2004년 북경미스유니버스 (环球小姐)선발에서 5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6년 리안 감독의 영화 “색계”의 녀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유명 배우의 반렬에 올랐다.  2007년 영국에서 희극 연기를 단기로 공부했으며 2008년 향항 정부의 "우수인재입경계획"을 통과하여 향항 신분증을 얻었다.  2011년, 영화 “만추”로 “백상예술대상”, “올해의 영화상” 및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각각 세번의 녀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중국 녀배우가 되었다.   여기서 “만추”는 한국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영화로써 한국의 몇세대의 애정관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미 4번이나 리메이크돼 영사막에 올랐다.     영화 "만추" 포스터       이제는 련인이 된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중국의 탕유와 한국의 현빈이라는 글로벌 스타들의 호흡으로다시 리메이크 되여 화제를 모았었다. 현빈, 탕유 모두 훌륭했지만 김태용 감독의 연출은 가히 독보적이였다.그러한 감독이였기에 14억 중국인의 련인인 탕유와 현실판 애정동화를 구축할수 있은듯 하다.   중국에서 “만추”는 할리우드와 중국영화의 공세속에서도 개봉 3주차에 상영회수가 무려 1,600회에 달해 중국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중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만추” 돌풍을 일으켰다.     소설 "만추" 중국판 표지   영화 “만추(晚秋)”는 지난해 중문소설로도 번역, 출간되였다.   조화출판사 출간으로 된 소설은 살인죄로 복역중인 모범녀죄수가 특별휴가중 범죄자 년하남을 만나 이룰수없는 사랑에 빠지는 비극적 로맨스물이다.   소설에는 영화속 정채로운 장면들이 사진으로 수록됐다. 때문에 글속에 담겨 있는 섬세한 감정 표현은 물론 글만으로 느낄수 없는 수려한 풍경과 세련된 영상미까지 한꺼번에 보여준다.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도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만추”, 늦은 가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계절 언제라도 감동을 줄수 있는 작품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탕유가 직접 부른 영화 '만추' OST  (삼각버튼을 누르세요)
233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 댓글:  조회:2056  추천:10  2014-06-30
    . 평론 .   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한영남     중편소설 는 수필식 구조에 편승하여 력사의 편린들을 호불호, 잘잘못에는 함구한채 그냥 쏟아놓고있다. 여기서 수필식 구조라고 하는것은 전반 소설이 하나의 완정한 이야기인것이 아니라 파편적이고 력사시대적이라는데 그 리유가 있다. 환언하면 시공을 자유로이 뛰여넘으며 오로지 강이라는 하나의 줄에만 의지하여 전반 소설구도가 짜여졌다는것이다. 도합 일곱개의 소제목으로 된 소설은 그 개개가 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우리 민족의 한 횡단면들을 그대로 려과없이 보여주고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서로 련관이 없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 겪었다는데서, 또 그것이 다 강을 둘러싸고 진행된 이야기라는데서 일정한 련관이 있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간단히 읽어보자. , 여기서 등장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물론 배달겨레요 꼭뒤에 붉은 술 달린 벙거지를 쓴 사병들은 청군이다. 그들은 한창 "월강죄"를 범한 불법도강자를 처형하고있다. 한반도에서 간도땅으로 슬금슬금 이주해오기 시작하던 무렵의 이야기이다. , 쑹가라는 당지 지주와 이주소작농 김씨네 일가의 이야기. 쑹가는 소작료를 내지 못하는 김씨를 닥달하다못해 쌀이며 소금까지 덤으로 얹어주며 그 딸을 달라고 뻔뻔스레 요구한다. 아버지보다 열살이나 더 많은 되놈지주에게 팔려가느니 차라리 강에 뛰여드는 길을 택한 김씨네 맏딸, 이는 당시 간도땅에서 결코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고 마을의 리훈장 아들한테 구원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리고 그 리훈장의 아들은 그런 그녀를 이끌고 봉천(서간도)으로 결연히 떠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랑의 도피행각-난질가는것과는 전혀 별개의 장면이다. 그것은 희망이요 당시 어찌할수 없었던, 돈 없고 빽 없던 약한 자들의 유일한 선택이 아니였을가. , 일본놈들과 괴뢰군들의 련합토벌속에서 싸우는 동북항일련군 전사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있다. 재봉틀을 마련해가지고 돌아오다가 적들의 포위에 든 녀전사와 꼬마전사, 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마침내 녀전사가 적들을 유인하고 꼬마전사는 재봉틀을 보호하기 위해 숨고 적을 유인하며 싸우던 녀전사는 총탄마저 떨어지자 서슴치 않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 해방을 맞아 땅의 주인이 된 사람들, 그러나 그 땅을 건설하기 위한 템포는 한시도 늦출수 없는 법. 나라에서는 국비류학생들을 파견한다. 거기에 김군은 합격되고 서로 사모하던 리양은 락방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의 인연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니 김군은 모스크바에서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고향대표단의 통역으로 따라온 리양을 만나게 된다. 김군은 속삭이듯 말한다. "기다려주오. 나 이제 고향에 돌아가리다" , 문혁이와 문화는 모주석께서 장강을 헤염쳐건넌 10주년을 맞아 수영내기를 한다. 그들은 홍기하라 이름이 바뀐 강에서 두번이나 겨루어보았으나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마침내 세번째로 도전해나선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그만큼 체력이 따르지 못하는 나이였다. 끝내는 그들은 표표히 흐르는 홍기하속에 사라져버리고 비보를 접한 교원과 부모들은 강안을 미친 사람들처럼 헤맨다. 당시의 력사를 재현함에 있어서 비극만큼 확실한것은 없는 듯 하다. , 중한수교의 물꼬가 트이면서 끈이 닿지 못해 한국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밀입국이라는 비정상루트를 통해 한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 "코리안드림"의 또 하나의 풍경선이다. 항해도중에 폭풍을 만나 목숨을 잃거나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표류하는 일도 비일비재였지만 그들의 모험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역시 지난 세기 90년대말 라는 장편르포를 펴낸적 있는 김작가로서는 대단히 익숙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에게는 풍부한 자료들이 있었고 그런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언젠가는 소설화하겠다고 했던적이 한두번이 아닌걸로 기억한다. 이번에 맛보기처럼 보여준 는 그래서 더구나 리얼하게 다가오고 작가의 필봉에 의해 우리에게는 보다 실감나는 현실로 체감되고있다. , 주인공 나는 라는 박사론문이 통과되고 일가족의 배려로 시성 타고르의 고향인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인도에서 나는 갠지스강을 보러 가고 가이드 리따는 단순한 호기심때문에 이것저것 묻는다. 가이드 리따가 나의 고향에 있는 강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내 고향을 떠올리며 먹먹해진다. 그리고 나는 강의 흐름에 눈과 마음을 맡긴채 꿈꾸듯이 말한다. "그 강의 이름은 두만강이랍니다!" 다른 강을 보면서 고향의 강을 떠올리고 고향의 강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조선족임을 자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 글이 기행문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다시 각인시켜주고있다. 그리고 전혀 본 소설과 상관없을듯 보이는 이 은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고향을 그리게 되고 자신의 뿌리와 피를 잊을수 없다는 지극히 간단한 도리를 묻어두고있다. 그래서 두만강이라는 말이 주인공의 입에서 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꿈에서 깬듯 무릎을 치게 되는것이다.   문예리론가들은 력사철학적인 사상으로 현실을 깨우치는것이 문학이라고 설파하고있다. 당연한것은 력사속에서 오늘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해결책을 찾고저 하는 작업은 문인들 모두가 여지껏 꾸준히 해왔고 그래서 맥맥히 이어져오던 중요한 제재요 소재였다는것이다. 특히 중국조선족이라면, 중국조선족의 력사를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거창한 해석이 필요없이 쉽게 한두가지씩 말할수 있는 력사의 파편들을 김작가는 전형화 내지 소설화시켜서 강이라는 긴 줄에 꿰서 우리앞에 밀어주고있다. 일단 그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이기에 가능한것이고 보다는 중편이기에 가능했을것이다. 독자들은 중편소설 라는 강을 마주하고 여러 강들에서 들려오는 세월의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거기에서는 우리 겨레가 세기를 뛰여넘어 겪어왔던 거의 모든 애환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넘실댄다. 요컨대 두만강에서는 간도땅으로의 이주가 시작되던 시기의 험악상을, 해란강에서는 이주해온 초기의 현지인들과의 갈등을, 송화강에서는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뒤엎기 위해 분연히 총을 들고 일제와 그 주구들과 피뿌리며 싸운 투쟁사를, 볼가강에서는 건국후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다투어 쏘련으로, 조선으로 류학을 가던 사회상을, 홍기하에서는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을 언급하면서 우리 민족도 어쩔수 없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황해에서는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조선족들이 겪었던 피눈물나는 로무송출 내지 밀입국 사건의 진면모를, 갠지스강에서는 요즘 한결 자유로워진 출국으로 이루어진 인도기행에서 받아안은 감수를 묘파하면서 수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민족의 아픔과 설음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력사에 대한 반영은 여러가지 류형으로 분류되는데 일상적 반영, 학문적 반영, 미학적 반영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김작가의 상기 중편은 그 미학적 반영을 충분히 하고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저명한 문예리론가인 게오르크 루카치의 말을 빈다면 "소설이란 문학형식은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의미있는 예술형식으로 이런 형식은 일체의 가치가 무너지고 형이상학적 지향이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력사적 상황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와 총체성을 추구하려는 현대 인간의 의식과 동경을 형상화하고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 중편소설은 오히려 소제목 하나하나가 장편으로, 그래서 전반 소설은 대하소설로 흘러야 하는것이 아닐가라는 로파심때문이다. 어쨌거나 흩어진듯 엄밀한 구성을 이루고있는 이런 소설적구조는 참신한 느낌을 주며 앞으로 이런 실험은 간단없이 진행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혁선생의 글은 언제나 볼만하다. 특히 이번 중편은 고요하기만 하던 우리 문단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것으로 예상된다. 굳이 대명사가 필요없는 김혁선생의 새로운 작품과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도라지" 2012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2    가람이여, 어허널널 가람이여! 댓글:  조회:3213  추천:13  2014-06-30
. 중편소설 .   가람이여, 어허널널 가람이여!   김 혁   가람: 1, (伽藍),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을 가리켜 말함. 2, 떡갈나무의 방언 3, 고유어로서 강이라는 순 우리말.   두만강, 1885년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강가 너부죽한 청바위에 뺨을 붙이고 엎드리였다. 팔을 뒤로 꺽이여 오라를 지고 무릎을 꿀리여 앉은것이다. 실피줄이 도드라진 눈을 지릅뜨고 얼음장판에 넘어져 허둥대는 소처럼 막무가내로 거센 코김만 내뿜고 있다. 그 사형수를 울바자 치듯 둘러싸고 꼭뒤에 붉은 술 달린 벙거지를 쓴 사병들이 살벌하게 창을 꼬나들고 서있다. 상체가 우람하고 목이 굵고 짧은 도부수(刀斧手)가 앞으로 나섰다. 볼따구니와 턱이 온통 수염으로 덮히고 눈이 왕방울 같은 도부수는 흐느적거리는 륙자배기 걸음걸이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푸짐한 먹이라도 만난 큰 짐승처럼 사형수를 한겻이나 노려보다가 등뒤에 짊어진 대도를 쓱 뽑아들었다. 도부수의 손에 들린 선들선들한 큰 칼을 본 사형수는 진작 혼백이 구중천으로 날아올라 두 눈을 까집었다. 도부수가 큰 대접을 바위돌우에 놓고 술 항아리를 기울여 대접에 술을 부었다. 술 한 대접을 단숨에 들이켰다. 또 한 대접 부어서는 술 한 모금 입에 물었다. 푸! 하고 칼에 술을 내뿜었다. 그리고는 옷소매로 쓱 닦아내렸다. 상오(上午)의 박명(薄明)아래에서도 칼은 위협적으로 빛났다. 도부수가 웃통을 벗어젖혔다. 한 가슴 부르르한 다복솔 같은 털과 나무밑둥이 처럼 실팍한 두 팔을 드러낸채 도부수는 칼을 뿌지직 움켜잡았다. 사형수의 상투는 흐트러져 파랗게 질린 얼굴을 뒤덮고있다. 꺼수수 풀린 짚단 같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퀭한 섬 그늘 같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부수가 칼로 사형수의 정맥이 두드러진 목줄기를 견주었다.     칼 아래 놓인 목숨의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월강죄”로 단두대에 오른 강 건너 사람이였다.      이 10여년간 조선땅 북녘에는 가뭄이 계속되였다. 해마다 해동머리부터 가물은 어김없이 시작되였는데 여름이 다 가도록 천하의 자린고비보다 더 린색한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군했다. 전대미문의 왕가물이 잦으니 흉작(凶作)이 겹칠수밖에 없었다. 바늘 끝도 안 들어가게 척박한 땅에서 아무리 아등바등 손톱을 박으며 일해도 씨를 뿌린만큼 거둘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충재(虫灾)도 겹쳤다. 가뭄과 벌레떼는 악마구리의 날개처럼 함경도의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흥 등 6진을 꺼수수 덮었다. 게다가 관리배들의 부패와 학정은 가뭄이나 벌레보다 무서웠다. 천재와 인재에 연거번거 지지름을 당한 굶주린 사람들은 풀 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집집마다 굶어 죽고 벌레가 묻어 나른 병에 병들어 죽은 사람들이 나왔다. 길가에는 임자없는 시체가 나뒹굴기도 했지만 란장속에 거두어 들일 여력마저 없어 했다. 기사년(饥死年)이란 이때 나온 말이였다.      살길이 꽉 막혀버리고만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들이 막무가내로 선택한 길은 두만강을 건너는것이였다. 두만강을 건너  만주땅으로 도둑농사를 가곤했다. 한편 강건너 청나라 통치자들은 장백산 이북의 천리땅을 만족의 발상지라하여 "룡흥지지(龙兴之地)"라 이름했다. 그리고는 엄한 봉금책(封禁策)을 실시했다. 만족을 내놓고 타민족이 만주에 가까이 하는것을 불허했다. 이렇게 "봉금령"이 내려진후 만주땅은 수백년간 내리 잠을 잤다. 방치된 그곳은 숲이 울창하고 땅도 비옥해 그야말로 천부지토(天府之土)로 되여있었다. 어찌나 땅이 비옥한지 농사가 절로 되였다. 잡풀이 우거진 땅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든후 씨를 뿌려두면 비옥한 땅에서 곡식은 소리치며 자랐다. 그대로 두었다가 가을에 가서 추수해오면 되였다. 이로소 강을 건너는것은 북녘 사람들의 유일한 삶의 길이 되고말았다. 그러나 이 길마저 순순히 열리는것은 아니였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월강하다 잡힌 자들을 "월강죄(越江罪)"라하여 막중한 범죄로 다스렸고 마구 목을 쳤다.    강안에는 가만히 월강하는 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포막들이 몇 구간에 하나씩 섰고 “월강죄”로 목을 친 사람들의 수급을 걸어놓고 효시하는 장면을 언제든지 볼수 있었다. 수급들이 버드나무 가지에 추녀끝에 메주 달리듯 걸려 데룽거렸다. 그저 가난이 죄였다. 죽어서도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지릅뜬 눈을 한 그 머리들은 한을 담고 강 건너 고향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처자들은 강을 건넌 남정 때문에 내내 속을 졸여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불렀다.   월편에 나붓기는 갈대잎가지는 애타는 내 가슴을 불러야 보건만 이 몸이 건너면 월강죄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 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 이 몸이 건너면 월강죄란다.   "월강곡"이라는 노래였다. 강안 사람들이고 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부를줄 알았다. 강가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울한 노래소리는 사람들의 골수를 쪼개고 들어갈 정도로 처량했다. 하지만 “월강곡”의 처연한 곡조속에서도 남정들은 그냥 강을 건넜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다. 앉아서 굶어 죽으면 어떻고 월강하다 잡혀 죽으면 어떠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인데 강부터 건너고 보자” 사형까지 불사하는 가혹한 “월강죄”가 위세를 부렸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사람들은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며 강을 건너고 있는것이였다. 밑바닥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굶주림에 대해서 거의 동물적인 두려움을 갖기 마련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생존이란 바로 굶주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것에 다름이 아니였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또 다른 두려움을 불러왔다.   도부수의 칼이 하늘높이 솟았다. 바로 그때였다. 강 저쪽 얕은 여울목으로 말 몇 필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다급히 강물을 박차고 있는 말발굽아래서 튕겨오른 물방울이 꽃살을 피웠다. 말 잔등에 앉은 사람들이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거리가 멀어서 무슨 소리인지 가려 들을수가 없었다. 도부수의 칼이 허공에서 일순 멈추었다. 그러자 사병들중 우두머리인듯한 자가 귀찮다는듯 손을 목 울대뼈 아래로 그었다. 그러면서 이 새로 짧게 내뱉었다. - 베여라! 꺼억! 도부수가 술 트림 한번 했다. 윙! 칼이 허공에서 울었다. 피의 분수가 솟아 올랐다. 몸퉁이가 철썩 넘어졌고 머리통이 넌출 끊긴 호박처럼 떨어져 내려 모래사장에데구르르 굴렀다. 말 탄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말이 강안에 닿기 바쁘게 굴러 떨어질듯이 내려 달려온 사람이 그 참상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탁 쳤다. - 뉘시오? 사병들속에서 맨드라미처럼 키 큰 우두머리가 나서며 거만하게 따져 물었다.   - 나 종성부사요. 길림장군 명안께서 "월강죄인불가진살(越江罪人不可塵杀)"이라는 령을 내렸는데 왜 아직도 함부로 형을 행하고있소? 봉금하고 목을 쳐도 월강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길림장군 명안과 오대징은 강을 건너 와 두만강지역에서 이미 다수를 차지한 조선인들을 다 내쫗을수 없고 개간한 토지를 황무지로 만들수도 없다면서 “봉금령”을 페지할것을 조정에 상주했다. 결국 청나라는 아라사(俄罗斯)의 침략에 시달리는 등 복잡한 정세속에서 조선이주민을 리용하여 두만강지역을 개간할 타산으로 1885년에 드디여 “봉금령”을 페지하는 령을 내린것이였다. “봉금령”이 페지된지 며칠 안되여 두만강일대를 순찰하던 종성부사는 아직도 강 저쪽에서 “월강죄”로 조선사람을 주살한다는 소문을 듣고 순찰일행을 거느리고 이렇게 강건너 사형장에 까지 득달같이 뛰여온것이였다. - 죽은 자는 뉘더냐? 종성부사가 따져 물었다. “강 건너 사는 김씨성의 포수라 아뢰오.” 형을 집행하던 자가 알려주었다. -       봉금해제가 내리기전에 이미 형이 내린 자라 그냥 목을 쳤을뿐이오.    우두머리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뇌까리고는 무리를 향해 손을 저었다. 사형수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절그렁대며 쟁기들을 거두었다. 우두머리가 조소의 눈길을 흘리며 마차에 올랐고 회자수들은 표연하게 강기슭을 떠나버렸다. 강안에는 일순 정적이 깃들었다. 목에서 떨어져나간 머리와 싸늘히 식어가는 몸뚱이만이 마치도 커다란 감탄부호마냥 모래사장에 뉘여져 있을뿐이였다. 휘꿍! 휘꿍! 강 저쪽에서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포목찢는 소리로 울어댔다. 새소리에는 축축한 물냄새가 묻어났다. 새 소리에 잠간 귀를 기울이다 종성부사가 사무쳐 하늘을 우러렀다. - 새와 같은 미물들도 마음대로 오가는데 그 새를 잡는 사람이 외려 “월강죄”라 이름지어 멸화(灭祸)를 자초하는구나. 조화(弔花)라도 단듯 희끗희끗 수술머리를 떠인 갈대들이 강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강기슭에 뒹구는 잘려진 머리통은 눈을 감지못하고 있었다. 지릅뜬 두눈 가득 한을 담은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란강, 1919년   뒤산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솔바람 소리와 산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섰다가 검은 무명치마를 거꾸로 뒤집어 쓰고 처녀는 강에 풍덩 뛰여들었다. 청국인 쑹(宋)”가네 지팡(地方)살이를 하는 김씨네 맏딸이였다.    아침에 아버지가 그녀를 “쑹”가네 집에 보내야겠다고 끝내 그 한마디를 신음처럼 내뱉았고 오후 나절에 그녀는 값없는 목숨을 버릴양으로 강물에 뛰여든것이다. 솥가마, 풍로, 냄비, 숟갈, 쪽박 따위로 살림 나부랭이라고 꾸려가지고 김씨네 일가가 눈물의 강을 건너 이곳에 이른지도 어언 10년세월을 넘겼다.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시간이였지만 아직도 이주민들에게는 생소한 산천이요, 생소한 사람들이였다. 가난에 겨죽만 먹다가 남부녀대하고 "돈 소리가 절렁절렁 난다”는 강 건너 짚신이 닳도록  걸어서 이곳 북간도땅으로 찾아 들었는데 여기서도 그들을 맞아 준것은 여전히 지팡살이였다. “지팡살이”, 이 곳에서 머슴살이를 달리 하는 말이다. 들어오던 해는 듣던 소문대로 풍년이였으나 늦게 들어와서 적게 맡은 땅 조차 가꾸지 못했고 이듬해에는 흉년이였다. 그 이듬해로 미뤘더니 이듬해에도 흉년이 졌다. 송씨성을 가진 “지팡”에게서 소작료를 꿀수밖에 없었다. 김씨네 일가족은 등이 휘고 손톱이 벗겨지도록 일했다. 정수리가 익어 번지는 여름 불볕을 이고 밭에 나가 삯김을 매고 꼴을 베였다. 삯방아 찧었고 길쌈도 했다. 그렇게 죽을만큼 일했건만 “하루밤에 고손까지 본다”는 바퀴벌레처럼 빚짐은 늘어만 갔다. “쑹”가는 걸핏하면 서슬이 퍼래져서 빚재촉을 해댔다. 그 소작료를 못갚아 매일이고 아버지는 말가웃(一斗半)이나 되게 한숨을 내쉬군 했다. 빚때문에 설명절에 아버지는 “쑹”가에게 철떡 철떡 목이 돌아가도록 줄 따귀를 맞았다. - 초우, 빠피야! (扒皮啊. 네미럴, 껍질 벗겨 죽일라!) 기다란 장죽을 꽁무니에 찌르고 피발이 올올한 눈을 딜딜 굴리는 “쑹”가의 악청이 귀청을 징징 칠때면 온 집안 사람들은 공벌레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오소소 몸을 떨군 했다.   그러던 며칠전 “쑹”가가 김씨네 집에 나타났다.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없는 문설주에 매단 가마니때기를 헤치며 나타난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쑹”가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가 몸을 흠칫 떨었다. 까만 서까래가 드러난 수수깡 천정에는 그을은 거미줄이 흐늘흐늘 드리우고, 빈대 죽인 자리로 얼룩진 흙벽을 둘러보며 “쑹”가가 찍-하고 이새로 침을 뱉았다. 구름깔개(참나무를 밀어서 결은 자리)를 깔아 놓은 구들에 걸터앉으며 장죽을 꺼내 물었다. 김씨가 얼른 부시돌을 쳐 담배를 붙여올렸다. “쑹”가는 아무말도 없이 느스름히 눈을 감고 담배를 빨았다. 살찐 쥐가 텃세를 하듯 거만이 하늘을 찔렀다. 연기가 작은 집안을 운무처럼 감쌌고 그속에 최면된듯 앉아 그녀는 짤막한 기침을 겁기처럼 나지막하게 내뱉았다. 이윽고 “쑹”가의 거적눈이 들려지더니 그녀를 얼핏 곁눈질해보았다. 그 눈길이 “쑹”가네 집 대문에 채필(彩笔)로 그려 붙인 삼국풍진도(三国風尘图)속 장비의 부릅뜬 눈길과도 같아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비릿한 눈길이 그녀에게는 참기 어려운 고문이였다. 담배연기를 입가로 흘리며 ”쑹가”가 아버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왠지 평소에귀때기를 자를듯 높던 목소리가 이날 따라 낮고 은근하다. "뽀미(苞米) 얼씨찐(20斤), 쑈미(小米) 얼씨찐(20斤), 얜(盐) 시찐(10斤) … 쩌머양(怎么样)? 꾸냥(姑娘)이 워디(我) 줬소?" 때국으로 번질거리는 소매 끝동이로 코물을 훔치면서 “쑹”가가 삭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누릿하고 퀴퀴한 더운 입김이 후끈 낯을 스치자 김씨가 몸을 떨었다. “안되우, 쑹띠팡(宋地方), 이것만은 안되우다.” 뒤미처 아버지의 입에서 비명이 새여나갔다. “쑹”가의 낯빛이 와락 굳어졌다. 띵띵하게 살 오른 뺨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쑹”가가 입에서 장죽을 빼였다. 크악! 크악! 가래를 돋구어 퉤!하고 내뱉었다. 장죽을 신바닥에 대고 탁탁 털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쑹”가의 발목에 아버지가 매달렸다. “올 가슬까지만 참아주. 올 가슬엔 내 꼭 갚으리다. 쑹디팡, 쑹디팡!” “쑹”가를 그 무슨 석가모니불처럼 불러 젖히며 아버지는 또 한번 간곡한 애원을 했다. 그런 아버지를  “쑹”가가 내려다 보았다. “쑹”가의 살 오른 뺨이 성난 두꺼비 배처럼 불떡불떡 하고있었고 눈빛이 뱀의 그것처럼 파란 린불을 달고 번들거렸다. “쑹”가가 장죽으로 아버지의 코를 삿대질했다. "초우! 빠피야!” 그 악악거리는 소리가 그릇이 깨여져 서걱거리는 사금파리의 소리처럼 머리발이 쭈뼛 서게했다.  모진 욕설로 입가심을 하고 “쑹”가가 돌아가자 아파서 누덕이불을 머리우까지 뒤집어 쓰며 쓰고 누워 숨소리 한번 없던 어머니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눈물 없는 울음을 우는 그녀를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할듯 품에 허겁지겁 껴안았다. 그녀의 뺨을 두손으로 자꾸만 어루쓸었다. “애고 우리 딸, 애고 우리 딸, 이 일을 어쩌면 좋뉘! 애고 불쌍한… 애고…” 가슴이 꺽꺽 막혀 그 몇마디만 어머니는 복창하다싶이 했다. 모진 짐승이라도 만난듯 겁기에 질려 그녀의 곁에 꼭 붙어 앉았던 피죽도 못 얻어먹은 깡마른 녀동생들의 입매도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이어 울음의 끈 주머니를 풀어헤친 지어미를 따라 동생들도 울음을 터뜨렸고 온 집안이 삽시에 울음바다로 되였다. 아버지는 문가에 말뚝처럼 붙박혀 서있다. 노상 이주민들과 악착스럽게 으르렁 으르렁하는 “쑹”가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런 못된 요구를 넌짓이 내미는 “쑹”가앞에서 머리가 띵하고 속이 뉘엿거리여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고이 기른 내 딸내미를 뙤놈에게 내주라고? 마른 벼락이 내릴것 같아서 내사 죽으면 그양 굶어죽었지 차마 아이 된다.” 아버지가 가슴에 구멍이라도 낼듯 탕탕 두드렸다. 그랬던 아버지가 마른 벼락도 체념한듯 그녀를 “쑹”가에게 주기로 한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아버지가 오죽하랴 싶었지만 그녀야말로 “마른 벼락”을 맞은 기분이였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열살이나 더 많은, 두꺼운 겹주름이 뒤룩뒤룩 덮은 시푸르뎅뎅한 얼굴에 삭은 톱니처럼 듬성한 누런 이발을 가진, 말마디마다 추임새처럼 가래침 한 번에 “빠피야” 한 번을 넣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악귀의 대명사로 불리는, 되놈에게 어찌 이팔의 잉어처럼 싱싱한 몸을 내준단말인가? 생각만 해도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아 앓는 목소리를 내며 뒤걸음질치다 그녀는 도망치듯 강가로 나와버렸다. 강녘에서 그녀는 해종일 하신(河神)에게 제물로 시집가는 볼모처럼 눈물을 흘렸고 궁여지책으로 나중에는 강물에 몸을 던진것이였다.   … 강 저쪽에는 해라는 총각이 살았고 강 이쪽에는 란이라는 처녀가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하루, 강에 살던 도깨비가 나타나 마을사람들이 거둔 낟알을 깡그리 빼앗아 갔답니다. 해와 란이는 마을사람들을 이끌어 도깨비와 맞섰습니다. 해가 휘두른 장검에 목이 떨어진 도깨비의 머리가 다시 붙으려는 순간 란이가 치마폭에 담아온 매운 재를 확 뿌리자 도깨비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졌습니다. 도깨비를 물리치고 해와 란이는 잔치를 치르고 잘 살았고 그때로부터 그 처녀총각의 이름을 달아 강 이름을 해란강이라 하였답니다. 야학에서 총각선생님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지척에 들려 오는듯하여 그녀는 눈을 떴다. 정말로 야학 총각선생이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이름을 다급히 불러젖히고 있었다. 그러는 총각선생의 일신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엉?!” 강에서 건져 올린 그녀가 드디여 정신을 수습하자 야학선생이 따져 물었다. 둥그런 도수안경속의 의문스런 눈길이 그녀를 향해 찔러왔고 한 켠에 쪼그리고 앉은채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치마자락을 쥐여 짜며 그녀는 축축한 사연을 말리듯 신뢰하는 총각선생에게 털어놓았다. 맹금(猛禽)의 부리에 찢긴 듯한 처연한 모습으로 옹송그리고 앉아 말하는 그녀에게서 그치지 않은 울음이 아직도 딸국질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하소연을 들은 총각선생의 눈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하였다. "허 그러게 뙤놈 (胡人)이라지! 그놈들께 인륜(人倫)이 있겠소? 없소! 딱각발이 왜놈들이나 청국 띠팡들은 꼭 같이 우리 껍질 벗기려 드는 악귀들이오." 강 기슭에는 정적이 흘렀다. 물소리와 산비둘기 같은 소리로 흐느끼는 낮은 울음소리만 깔려 있을뿐이였다. “갑시다!” 이윽고 총각선생이 한마디 내뱉았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사이에 깊이 고개를 묻고있던 그녀가 놀라며 후딱 머리를 쳐들었다.  “나와 함께 갑시다. 나도 뙤놈들이 득실거리는데다 왜놈들마저 득세하고있는 이 곳을 뜨기로 맘 먹은지 오래되오.” “어디루요?” “봉천으루 갑시다. 그 쪽은 서간도로 부른다오. 여기 북간도처럼 살길 찾아 강 건너온 사람들이 많은 곳이오. 물론 나를 믿어만 준다면 말이요.”    다소 격앙된 소리로 말하고있는 총각선생의 도수안경속 눈에는 붉은 기운이 몰려있었다. 이른 봄, 일본의 침탈에 항거해 조선 각지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여파를 타고 이곳 북간도에서도 일제를 규탄하는 대규모적인 집회가 일었다. 3만여명이 룡드레촌에 운집해 들어 “일제를 타도하자”, “조선독립을 성원한다”는 구호를 목청높이 웨쳤다. 집회는 일제의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당장에서 10여명이 흉탄에 쓰러졌다. 그 집회에 용약 가담했던 총각선생도 일제의 용의선상에 그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래서 당장 이곳을 뜨기로 마음먹었던 총각선생이였다. 처녀는 단정한 총각의 얼굴을 부신듯이 곁눈질해보았다. 하얀 피부. 깎은 듯한 용모. 얼굴에 어쩌면 여드름 자국 같은것도 하나 없다. 쭈뼛거리는 그녀에게 총각선생이 손을 내밀었다. 보는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끼끗한 용모를 가졌던 그 훤칠한 총각은 처녀의 아버지 김씨네와 같은 해에 이곳까지 당도한 리훈장의 아들이였다. “배워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량반이 되고 잘살 수가 있다.” 푸른빛이 돌만큼 하얗게 맑은 무명두루마기를 입은 리훈장이 마을에 야학을 차려놓고 권학(劝学)을 부르짖었다.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띠팡들의 종살이에서 벗어날수 있고 왜놈들의 총칼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교편을 물려받은 아들도 따라서 향학(向学)을 부르짖었다. 온 마을에서는 총각선생에 대한 찬사들이 침이 마르도록 입안에서  바퀴 굴렀다. 마을처녀들 너나의 선망의 대상이였던 총각선생이 지척에서 내미는 따스한 손길앞에서 처녀는 일렁이는 눈물 보가 터질것만 같았다. - 정말요? 저 같은 종살이집 딸년하구? 허탈한듯 무릎을 쓸면서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총각선생은 잠간 강에 눈길을 주었다. -       이 강의 전설이 생각나누만. 악귀의 손에서 강을 지켜낸 해와 란의 전설이. 그들처럼 운명에 맞섭시다. 우리도 한번 해와 란이 되여 보는거요. 총각선생은 시선을 돌려 그녀의 자두알처럼 동그란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시선이였다. 생존때문에 남의 집 지팡살이로 짐승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나날들이, 차별 당하며 가슴 조렸던 날들이, 체한것처럼 명치끝에 얹혀 있던 울분들이 그 온유한 빛의 시선에 순간에 몽땅 녹아내리는것만 같다. 순간 강기슭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의 몸 전체로 따뜻한 해볕이 골고루 쏟아졌다. 그 따사로운 해살이 그의 갈비뼈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그의 몸안에 가득한 물기를 말려주는것 같았다. 보자기처럼 들씌워졌던 깜깜한 어둠속에서 그녀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이 가리키는 길이 어떤 길이든 처녀는 지금 어딘지 떠나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그 앞길에 무언가 신기루처럼 어른거리기는것이 보이는상 싶었다. 그보다도 그 길을 향도하는 사람에게서 어떤 아련한 마음의 균형을 느꼈다. 그만큼 낮은 땅에서 높은 차별 받으면서도 따뜻한 정(情)을 바라 살아가고 있었던 그녀였다. 가슴이 높뛰는 현기증속에서 구휼(救恤)같은 그 손길을 처녀는 수줍게 받았다. 이른봄, 눈석이물이 흘러내리는 강은 아직 차갑다. 하지만 다시 보니 강의 몸매는 결코 거칠지 않았다. 따스한 여름을 앞둔 봄빛이 은연중 고여있는 탓이리라. 복숭아빛 뺨을 붉히며 눈을 내리 깔고 총각에게 손을 맡긴채 처녀는 강기슭을 타고 걸었다. 과즙(果汁)처럼 청량한 강바람이 뺨을 어루만진다. 바람에는 푸르고 정결한 해란강의 숨결이 어려 있다. 강은 봄양기에 태질하듯 수줍게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흘러 간다.   송화강, 1937년   탕! 총성이 울렸다. 되알진 총소리는 지척에서 울렸다. 녀전사는 관목림사이로 강쪽을 내다보았다. 누렁옷을 입은 일본병사들과 검정옷을 입은 지방 괴뢰군들이 뒤섞여 수림을 향해 달려오고있었다. 촉각을 세우고 냄새를 맡으며 그들의 뒤를 바싹 쫓고 있는 자들은 얼핏 보아도 수십명은 잘 되였다. 두릿두릿 동정을 살피며 다가오던 놈들이 드디여 그들을 발견하고 사격을 시작한것이다. - 놈들! 이를 사려 물며 녀전사는 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앞장섰던 괴뢰군 한 놈이 넉장거리로 나가 거꾸러졌다. 그 기세에 총성이 잠간 멎는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이어 우박처럼 총탄이 날아들었다. 녀전사와 꼬마병사는 관목림숲에 납작 엎드렸다. 총소리에 귀때기가 잘려갈듯 했고 총탄에 잘린 나무잎들이 꺼수수 날리고 흙먼지가 자오록이 피여 올랐다. -       우린 포위당했어. 소총을 들어 또 한방 먹이면서 녀전사가 부르짖었다. 이제 겨우 열입곱살 난 꼬마전사도 소총을 들어 놈들을 겨누어 한방 쏘았다. 그러나 비발처럼 날아드는 탄환의 세례에 두 사람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다시 그 자리에 엎드렸다. 큰 덧저고리를 입고 무릎아래로는 가뜬하게 행전을 치고 청렬한 내음의 솔향기가 그득한 숲을 누비던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의 두명의 전사가 밀영에서 나와 민가로 내려갔다 오다가 그만 놈들의 포위망에 든 것이였다. 녀전사가 등에 짊어졌던 묵직한 보짐을 풀어 내렸다. 그 보짐을 꼬마전사에게 넘겨주었다. - 이걸 꼭 껴안고 여기서 꼼짝말고 있어. 내가 놈들을 저쪽으로 유인해 갈테니. 꼬마전사가 보짐을 무겁게 받아 안았다. 보짐에 싸인 그것은 재봉틀이였다. 30대의 녀전사는 항일련군 피복공장의 주요 책임자였다. 조선을 삼키고 이어 중국 동북에 발톱을 뻗치기 시작한 일제에 항거해 일떠난 동북항일련군에는 공동의 적 일제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으로 동참한 조선인 전사들이 많았고 녀전사들도 적지않았다. 일정한 규모로 성장한 항일대오였지만 부대에는 재봉틀이 겨우 다섯대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수천명 항일련군 전사들의 옷을 짓기에는 힘에 부쳤다. 거의 전부를 수작업으로 대체했다. 때문에 피복공장의 전사들은 고된 임무에 시달려야 했다. 재봉틀 한대라도 더 있어도 그들의 많은 일손을 덜 것이였다. 그러던중 얼마전 현성으로 이사를 온 한 가족이 재봉틀을 갖추고 있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 그들은 위험도 무릅쓰고 산을 내린것이였다. 일견에도 꽤 유족하게 살고있는 그 집을 설복하여 재봉틀을 사가지고 밀영에 돌아가던중 마을에 도사리고있던 밀정의 밀고로 그만 일본놈과 괴뢰군들에게 뒤를 밟히고 만것이였다. - 누님! 꼬마가 녀전사의 옷소매를 부여잡았다. 분명 경황에 질린 눈길이였지만 꼬마전사는 사내답게 말했다. -       내가 나설게요. 누님이 이 마선을 지고 가세요. - 안돼! 이곳 지형은 내가 더 잘 아니깐. 지금은 이 마선을 잘 보존해 돌아가는것도 중요한 임무야. 녀전사가 꼬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 꼬마의 군복 어깨솔기가 따져 있는 것이 보였다. -       이제 내가 돌아가서 잘 기워줄 테니 그런만큼 이 마선을 보존해야 돼. 탕! 탕! 나무등거리를 마구 쫗던 딱따구리가 날카로운 부리로 귀속이라도 쪼아대듯 총성이 고막을 흔들어 댔다. -       그래도 제가 갈게요. 피복공장에 누님이 없으면 안돼요. 꼬마가 부득부득 우겼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섬광처럼 부딪혔다. 구겨진 군복우로 솟은 꼬마전사의 야윈 목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다시 한번 단호히 부르짖었다. - 이건 명령이야! 꼬마는 비로소 녀전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앙 다문 입술,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풍진을 고스란히 담아 강파르고 거칠었다. 그리고 눈빛은 깊고 강했다. 꼬마전사의 어깨죽지를 툭 쳐주고나서 녀전사는 관목림을 뛰쳐나갔다. 도담하게 달려오는 놈들의 무리를 향해 마주섰다. 총을 들어 탕탕 련발로 사격을 가했다. 닭이 풍겨대듯  뛰여오던 놈들의 대오가 흐트러졌다. 그러는 사이 녀전사는 강줄기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대에서 너나가 존경하는 누님이였다. 어려서 길쌈 잘하는 어머니 손에서 자라서 옷짓는데 막힘이 없었다. 손재주가 있어 일찍이 재봉기술을 익힌 어머니는 어렵사리 재봉틀을 마련하여 장터에다가 조그맣게 양복점을 차렸었다. 사실 양복점이라는 거창한 명칭과는 거리가 멀었고 번듯한 새 옷을 만드는것보다는 수선이나 짜깁기 따위가 전문이였다. 그런데 그 재봉틀을 고향에 까지 발톱을 뻗친 일본주둔군부대에 빼앗겼다. 그 횡포를 막아 나서다가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류치장에 갇혔고 감옥에서 받은 혹형이 빌미가 되여 류치장을 나와 며칠만에 죽고 말았다. 마을에 잠입해온 항일련군 녀전사의 고동의 연설에 그녀는 벌창해진 눈석이 물처럼 흘러내리던 서러운 눈물을 닦았다. - 여러분! 놈들은 우리 민족의 금수강산을 빼앗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총검으로 우리의 부모와 형제들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왜놈들은 우리의 고향을 빼앗고 우리의 피땀을 짜내고 등가죽을 벗기고 뼈를 갉아먹는 원쑤입니다. 그런 왜놈들의 총칼아래 평생 우마와 같은 생활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눈물과 한탄만으로는 빼앗긴 고향을 찾을수 없고 복된 생활을 찾을수 없습니다. 일제를, 반드시 극악한 저 일제를 쳐부셔야 우리는 진정 복된 살림을 누릴수 있을겁니다. 여러분! 단발머리 녀전사의 목소리,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신탁(神托)처럼 들렸다. 또한 그 소리는 그의 내면에서 용암처럼 다져져 언젠가 뿜어만 내고 싶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홀어머니와 작별하고 분연히 항일대오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작은 체구였지만 강의한 의지와 불타는 정력을 지닌 녀성이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미지의 힘을 마른 체구안에 감춰놓은 합격된 녀전사였다.   가혹한 전쟁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여 그녀는 항일련군의 정치부주임과 결혼하여 딸아이 하나를 보았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채 돌이 잡히기도 전 일제의 소탕전과 맞서다 희생되고 말았다. 몇해전의 이른 봄, 일본관동군의 “춘기 대소탕”이 시작되였다. 씨를 말리려드는 적들의 소탕을 피하여 부대는 신속히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와 여덟명의 녀전사들 앞에 가혹한 선택이 주어졌다.  부대의 대의를 위해 아이들을 당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나라는 명령이 내려졌던것이다. 그녀의 아이는 북간도에서 지주놈팽이의 강제혼인을 피해 총각선생과 함께 도망쳐 왔다는 한 조선인 녀인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소탕이 끝나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때 마을은 이미 일제의 대토벌에 불타버리고 쑥밭이 되여있었다. 그녀는 물론 여덟명의 녀전사들도 끝내는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아이를 잃고 그녀의 가슴에 선명한 피금이 그어졌다. 곰실거리며 재롱떨던 애의 모습이, 맡기고 떠나는 그녀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부득부득 움켜쥐고 세상이 떠나갈듯 울어대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살점을 잊고 있다는 생각에, 남편을 잃고 그 아이를 버리고도 자신이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곤 했다. 하지만 더 큰 책무와 사명감이 그의 그런 질정없이 떠오르는 잡념을 지우게 했다. 눈물을 닦고 그녀는 다시 총가목을 부여잡았고 송화강반을 누비며 놈들과의 처절한 사투에 뛰여들었다. 겨울로 가는 날씨는 사뭇 차가웠고 강바람은 세찼다. 힘이 풀리는 무릎을 닦아세우며 녀전사는 오로지 강줄기를 따라 달리고 달렸다. 소총을 들어 맞불질하며 한무리의 악귀들을 자기쪽으로 유인해갔다. 꼬마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서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름드리 자작나무, 활철나무, 떡갈나무들의 우듬지가 하늘을 가리웠고 꼬마와 재봉틀을 꽁꽁 가리워주고 있었다. 놈들은 각일각 죄여왔다. 씨부렁이는 왜놈들의 말소리와 군화소리, 헐떡이는 숨소리마저 들리는듯 했다. 놈들에게 쫓겨 녀전사는 강가 산언덕으로 치달아 올랐다. 강녘에는 커다란 화강암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황량했지만 그래서 아름다웠다. - 산채로 잡아라! 놈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면서 그녀를 생포하려고 하였다. 벼랑끝까지 몰린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다. 절컥! 격침이 빈 소리를 냈다. 탄약이 떨어진것이다. 그녀는 지체없이 총을 거꾸로 들어 바위에 대고 짓찧었다. 총신이 도끼날에 패인 장작개비처럼 너덜너덜 조각이 났다. 놈들에게 쟁기 하나 남겨주지 않으려는것이였다. - 산채로 잡아랏! - 투항하면 목숨은 보존케 해주마 놈들의 위협과 권유의 너스레와 음산한 웃음소리가 강량안에 가득히 명멸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서서 바람에 새집이 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발아래 강을 내려다보았다. 넓은 들을 가로지르며 산개하는 푸른빛으로 흐르고 있는 강, 그 언저리에 들락날락 솟은 산 봉우리, 산자락에 자리잡은 초가집들… 가녁에서 어슬렁이며 이리떼가 으르렁대고 있지만 강산은 왜 이리도 아름다울가! 바람 한줄기 불어 그녀의 숱 많은 머리카락에 먼 곳의 익숙한 향기를 묻혀 놓는다. 바늘땀으로 뚫어진 양말을 호던 어머니가 인자하게 웃는다. 딸애의 하얀 손이 나비의 날개짓처럼 나풀거린다. 새로 누빈 솜옷을 입은 전사들의 기쁨 어린 얼굴이 저마다 씩씩하다. 쏟아지는 정오의 해살을 온 몸에 받으며 푸짐한 빛속에 그녀는 뻗쳐 서었다. 여유롭기까지 한 초연함에 그의 턱밑까지 닥쳐왔던 일본병정들이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그 초연함은 놈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악마구리 끓듯 극악스레 소리소리 지르며 다가오는 놈들을 지켜보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검푸른 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   볼가강, 1956년   유람선이 볼가강을 누빈다. 풍요로운 쏘련대지의 젖줄로 령토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며 누빈다는 강, 또한 고난과 착취의 강으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던 풍운의 그 강을 오늘은 대형 유람선이 여유있게 누빈다.   강으로는 강기슭의 산봉우리와 나무들이 천국의 풍경을 그리며 어우러져 흐르고 가담가담 보이는 선창작에서 흘러나오는 유람객들의 웃음소리가 습윤한 강의 대기를 후르르 휘젓는다. 류학생 김군은 기발과 꽃과 표어로 단장된 배의 란간을 두손으로 잡고 섰다. 배전에 이는 물이랑처럼 그의 가슴은 감개의 소용돌이로 설레고 있었다. 불과 몇해전만해도 김군은 자신이 조선족의 첫 류학생이 되여 쏘련으로 오게 되라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향에서 3,40년대 혹간 일본으로 류학을 갔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 그렇듯 큰 고통을 안겨준 일제가 광분했던 시기 적국의 나라로 류학을 갔다는것은 지금와서 보면 그 무슨 광채로운 일로 치부되지 않았다. 하기에 사회주의 강국인 쏘련에로 선발된 그야말로 고향의 진정한 첫 류학생이라 할수 있었다. 1954년 봄, 세상에 건국의 고고성을 지른지 얼마 안되여 항미원조의 전장으로 달려나가 발톱까지 무장한 미제와 싸워 이기는 등 거창한 대사를 거쳤던 중국은 거구를 떨치고 일어나 사회주의 강국에로의 활보를 꿈꾸고있었다. 사회주의 기치를 떠메고 나아갈 동량들을 배양할 취지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시험을 쳐서 쏘련으로 나가는 류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금방 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여 이 땅의 조선민족이 자치권리를 부여받고 또 자체의 민족대학을 일떠세웠던 고향의 조선족학생들에게도 선발기회는 주어졌다. 학교에서는 각 학과에서 한,두사람씩 뽑아 이 시험에 참가시키기로 했다. 잘만하면 우리 민족대학에서도 쏘련류학생이 나올수 있다며 사생들은 모두다 흥분해 마지 않았다. 재학생들중에서 조문학교의 연구생이였던 김군과 리양이 추천되는 영광을 지녔다. 젊음에 향상심도 있으니 노력만 기울이면 선발 될 가능성도 있을거다고 학교측은 면려의 손길을 그들의 어깨에 얹어 주었다. 명작선독과에서 쏘련작품에 대해 겨우 몇편 정도 읽은것이 전부인 김군은 처음에는 몹시 주저했다. 변강의 오지인 이 곳에서 사회주의 강대국으로서 모두들에게 천당처럼 여겨지는 쏘련으로, 레닌, 스딸린과 고리끼가 있는 그곳으로 류학을 간다는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였던것이다. 선생들의 적극적인 권장에 힘 입어서였지만 김군이 “촌닭이 장안에 날아들기로” 도담하게 류학생 시험에 응하게 된데는 하나의 또 다른 리유가 있었다. 그 리유라면 은근한 배심에서였다. 그는 이번에 함께 추천된 리양을 은근히 사모하고 있었다. 리양도 싫은 얼굴이 아니여서 학교의 가까운 동학들게게는 그들 사이가 그 무슨 큰 비밀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를 알고 리양의 부친이 극구 반대해 나섰다. 아직은 두 사람 다 학업에 연찬해야 할 시기라며 반대표를 든것이였다. 사실 이는 리양의 아버지의 핑계였다. 연구생들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학업을 계속 연찬해나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반대의 리유는 결국 평생 훈장 가족이였던 그의 집에서 농민 출신인 김군의 집에 대해 탐탁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였다. 리양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뛰여난 성적을 보이고있는 김군에 대해 모른는바가 아니였지만 피일차일 응낙은 주지 않고 미루고 있었다. 이에 한번 자기의 실력으로 가문의 영광을 떨쳐보리라는 심산에다 또 밑져야 본전이라고 한번 겨루어보는것도 괜찮겠다는 복잡한 생각으로 김군은 류학생 선발에 응시하게 된것이였다. 두 사람의 명단은 인차 교육부에 올려 보내졌고 정치심사, 신체검사등 잡다한 절차를 거쳤다. 두 사람다 신체는 무사튼튼했다. 까다로운 정치심사에서도 무난히 합격되였다. 두 가족 모두 토지개혁때 빈농으로 획분되였고 또 가문에 항일에 몸바친 렬사도 있으니 문제될것이 없었다. 정치심사, 신체검사의 관문을 넘어 난생처음 북경으로 가서 선발시험을 치렀다. 중국어문, 쏘련공산당사, 중국문학과 문학개론, 쏘련문학등등으로 수많은 과목들… 그동안 학업의 로적가리를 쌓아올린 그들의 노력여하에 대한 대점검이였다. 어쩐지 신심이 없었다. 같이 간 리양 역시 꼭 같이 풀기 죽은 모습이였다. 중국어수준이 낮아 어떤 시험문제도 잘 알아보지도 못했다는것이였다. 학교교정의 라일락이 꽃술이 피던 무렵, 드디여 소식이 왔다. 그런데 학교에서국가교육부에서 내려보낸 쏘련류학생명단을 공포하였는데 그속에 리양의 이름은 없었다. 리양은 그만 락방하고 만것이다. 리양은 퍼그나 상심해 했다. 리양의 아버지의 상심은 더구나 컸다. 결국 김군에게만이 유일하게 쏘련의 일류대학인 모스크바대학에 가서 4년간 쏘련문학을 연구할 티켓이 주어졌다. 리양은 그만이라도 합격된것에 축하를 보낸다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학교에서는 이젠 류학생인 김군에게 양복 한벌을 맞추어 주었고 특제한 가죽트렁크도 내주었다. 옷깃이 가슬가슬해진 낡은 면직 중산복을 벗고 난생처음으로 양복을 입어 보았다. 처음 입어보는 양복이라 넥타이도 한참 배워서야 맬 줄 알았다. 옷이 날개라고 양복차림에 구두까지 받쳐 신고보니 제법 대처에 사는 신사같았다. 체경속의 낯설은 자기의 모습을 지켜보며 꿈처럼 여기던 쏘련류학이 이제는 정말 실현된다고 생각하니 김군은 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한편 은근한 생각이 다시 한번 머리를 쳐들었다. 이제 떳떳한 쏘련 류학생이 되였으니 다시한번 리양의 아버지를 찾아 두사람 사이를 두고 청을 드려볼 생각이였다. 중앙철도부에서는 류학생들을 위하여 전용렬차를 내주었다. 전용렬차에 앉아 쏘련으로 향발하는 류학생수가 1,000명이 넘었다. 오래지 않아 중국에서도 경제건설의 고조가 일어날것이니 인재준비를 위하여 국가에서는 수천명의 청년들을 쏘련이나 동구라파 사회주의국가에 보내기로 한것이다. 출발을 앞둔 역에서 렬차의 차창을 열어젖힌 그의 눈길은 붐비는 사람들속에서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리양이였다. 하지만 출발신호가 울려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가 칙칙소리와 함께 김을 뿜으며 역구를 떠날때에야 역사의 기둥 저 켠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왔다. 조신스럽게 나섰지만 그녀의 모습은 김군의 눈길에 대번에 잡혀들었다. 그녀는 남들과 동그마니 떨어진곳에서 조용히 손을 저었다. 높뛰는 가슴을 부여안은 새 중국의 첫 류학생들을 싣고 전용렬차는 북경에서 발차했다. 모스크바까지 대여 가려면 꼬박 일주일은 걸려야 한다고 했다. 만주리 건너편의 오뜨뽀르라고 하는 국경도시를 지나서 렬차는 너넓은 씨비리평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달렸다. 풍경 좋은 바이깔호며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 하얀 봇나무수림, 그속에 아담하게 깃든 통나무 목조건물들, 그리고 이따금씩 나타나는 꼴호즈(집단농장) … 무연한 씨비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거느리고 기차는 달리고 달렸다. 일주일간의 기나긴 려행을 마치고 렬차는 드디여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대학은 모스크바 서남쪽, 산자락으로 모스크바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있었다. 옛날, 왕공귀족들이 별장을 지어놓고 수렵을 했다고 하는 곳이였다. 10월혁명 당시 모스크바로 진격해 온 볼쉐위크 전사들이 이 언덕에 대포들을 걸어놓고 백파세력의 대본영인 크레믈리궁전을 겨누었고 궁전안에 웅크리고있던 백파들은 혼비백산하여 곧 손을 들었다. 이로소 “10월 혁명”은 승리했고 모스크바는 쉽게 인민의 손에 넘어올수 있었다고 한다. 1775년에 로씨야의 위대한 과학자이며 시인인 미하일 로모노쏘브의 창의에 의해 세워진 모스크바대학은 쏘련에는 력사가 가장 오랜 종합대학이였다. 학생수가 2만이 훨씬 넘었는데 그중 외국류학생도 3,000명이나 되였다. 대부분이 중국이나 조선 그리고 동구라파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온 학생들이였고 아프리카나 인도같은 나라들에서 온 피부색 다른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쏘련과 가장 친한 나라여서 류학생수도 많았다. 모스크바대학에는 근 400여명의 중국류학생이 있었다.   배의 이물쪽에서 그녀가 다가왔다. 김군은 그녀와 이렇게 만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류학온지 2년만에 볼가강의 유람선우에서 꿈같은 해후상봉을 했다. 굵고 풍성한 쌍 머리태에 생기 넘치는 뿌듯한 얼굴의 리양이였다. 많은 사람들중에서도 그녀의 온몸이 고스란히 김군의 눈꺼풀안으로 들어왔다. 며칠전부터 모스크바를 무대로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축전은 말 그대로 세계청년들의 명절로 되여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이 성회에 운집해 들었다. 중국에서도 수백명의 예술단과 운동선수등 청년대표들로 조직된 방대한 대표단이 축전에 참가했다. 그중에는 반갑게도 김군의 고향에서 온 가무단의 조선족 배우 몇 명도 끼여 있었다. 모스크바주재 중국대사관에서는 모스크바에서 류학생들속에서 중국 대표단을 위해 봉사할 봉사인원과 통역을 뽑았는데 마침 방학이라 김군도 자원봉사로 이 축전에 참가했다. 그러다 여기서 조선족배우들을 위한 통역으로 함게 쏘련으로 날아온 리양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쏘련과 연변의 대표들사이에서 거침없이 통역하고 있는 그녀를 김군은 한켠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드디여 김군의 시선과 맞부딤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삽시에 호동그래졌다. 그것은 잠시 해바라기처럼 그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여올랐다. 타향에서 그리던 련인을 만난 그녀의 얼굴에도 분명 천상의 기쁨이 어려 있었다. 김군은 지난 가을, 학교강당에서 류학생들과 함께 쏘련혁명승리를 기념행사에 모처럼 방문 온 모택동주석에게서 영접을 받고 그의 손을 잡았을때처럼 또 한번 가슴이 크게 벌렁거림을 느꼈다. 그동안 그녀를 향한 사념은 비 온뒤의 제비쑥처럼 매일이고 소리치며 자라 이제는 주체할수 없을만큼 아름벌게 자라올랐는데 이곳 볼가강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것이였다. -       강이 크지요. 다가와 김군과 나란히 배의 란간을 짚고 서며 그녀가 말했다. 귀전에 와 닿는 목소리가 사각거리는 풀잎처럼 달콤했다. 예기치 않은 그녀의 등장이 아직도 놀라웠고 현실감을 붙잡기 위해 김군은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일정에 돌아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상쾌한 물방울처럼 톡톡 튀고있었다. - 쏘련의 강들도 아름다고 넓지만 고향의 강이 나름 생각 날때도 많지. 저 강기슭에 황소가 풀 뜯고 강변에서는 아줌마들이 방치질하며 빨래질 하는 그런 몽상에 사로잡힐때도 있다오. 그녀에게 들붙은 시선이 거둬지지 않아 하며 김군은 대답했다. 강기슭으로 야금공장, 전차공장, 뜨락또르 공장의 건물들이 흘러 지났다. - 정말 이곳에도 조선인들이 있다오. 우즈베크나 까자흐스딴에 적지 않게 살고있지. 조선인 꼴호즈(집단농장)도 여러개 되오. 30년대에 원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되여 온 사람들이라고 하오. 강을 건너 이주해온 우리 조선족과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지. 저번에 한반 친구들과 함께 조선인 꼴호즈에 놀러갔었는데 글쎄 거기에는 아직도 상투를 틀고있는 조선 로인이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곳에서 나는 잠시 시간과 공간 감각을 잃어버렸지. 마치 고향에 돌아오기라도 한듯한 착각에 빠졌더랬소. 그들도 벼농사를 짓고있었소. 우리들 처럼.,, 다행이 이곳은 땅이 흔하고 또 여름에는 해빛이 잘 들기때문에 벼가 제법 잘된다오. 더군다나 우리 민족은 워낙 근면하고 일을 잘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주는 로력훈장같은것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데. “레닌기치”라고하는 조선말신문도 자체로 발행하고. 이 신문은 조선인생활을 주로 보도하는 신문이라오. 독립군의 홍범도장군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홍범도장군만은 쏘련의 조선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구만. 홍범도에 관한 연극도 만들어 공연한적 있다오. 내가 홍범도 장군이 왜놈들과 섬멸전을 펼친 옛 간도땅에서 왔다고 하니 모두들 반가워 포옹하고 키스하고 야단법석이더구만. 술은 어찌도 권하는지 꼴호즈에 있는 며칠동안 내내 술독에 빠져 살았다오. 둘의 웃음소리가 배우에서 얽혔다.  -       학위론문은 거의 끝나가요? - 아직도 통과해야할 과목들이 많소. 맑스주의철학, 문학리론, 로씨야문학에다가 외국어 과목까지. 외국어는 로어로 대체할수 있다고하는데 류학생 시험치면서 로어를 죽기내기로 배웠으니 조금 시름은 덜었고… -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겠네요. 원체 책읽기 좋아하잖아요 오빠는… - 그래. 그중에서도 숄로호브의 소설이 가장 인상에 남소. “뿌리우다”신문에 실린”인간의 운명”이 라는 소설이지. 숄로호브는 지금 쏘련에서 명망이 가장 높은 작가요. 전쟁시기 안드레이 쏘꼴로브라는 한 병사가 겪은 불운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요. 모스크바방송국에서도 여러 번 소설을 랑독하였는데 듣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 부모세대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소. 가난에 쫓겨 강을 건넜고 강을 건너서는 청나라 사람들의 수탈에 시달리고 또 왜놈들과 맞서 총을 들었던 우리 부모님들, 그들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한다면 숄로호브에 못잖을 우리식 “인간의 운명”이 되지 않을가하는… 강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달변을 토하는 김군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녀는 선망 가득한 눈길로 그의 말을 씨토하나 빠짐없이 경청하고있었다. 그녀의 수즙은듯한 손이 김군의 손우에 놓였다. 하지만 김군은 감전된 사람처럼 손을 움직일수가 없다. - 이제 이곳에서 까츄사, 또냐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있으려니 고향의 개나리처녀를 잊고 있겠지요? 그녀가 도발적으로 물었다. 그녀의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묻어났다. 그녀는 차분한가 싶으면 열정적이고 도발적이다 싶으면 순정적이였다. 롱반진반으로 말하며 픽하고 웃는 그 입매가 싱그러웠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배전의 강물을 굽어보는 목선이 티없이 고왔다. 김군이 머리를 저었다. 아무말도 없이 양복 호주머니에 꽂았던 만년필을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       쏘련까지 온 사람한테 좋은 기념선물을 주어야 하겠는데 미처 마련할 시간이 없네. 김군이 그녀의 조붓한 앞섶에 만년필을 꽂아주었다. -       하지만 내게는 나름 소중한 물건이요. 이 만년필로 난 류학생 시험에 입시되였거든. 그녀의 사랑에 달뜬 높은 가슴이 감동에 오르내렸다.   배의 저켠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와와 웃었다. 유람선 한쪽에서 세계각지에서 모여온 젊은 배우들이 오락마당을 펼쳐지고있었다. 주최측인 쏘련의 배우들이 지방민요 “볼가강 배 끄는 인부들의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둘은 손을 잡고 맑고 고아한 성가같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줄을 단단히 묶어라 태양을 향해 노래를 부르세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볼가강은 어머니의 강 넓고도 깊구나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아이다다   노래소리에 귀를 빌려주고있는 그녀의 하얀 손에 힘이 들었는 손을 덧놓으며 김군은 속삭이듯 말했다. - 기다려주오. 나 이제 고향에 돌아가리다.     홍기하, 1976년        아이 둘이 강기슭에 섰다. 강기슭에 표어판처럼 꼿꼿이 서서 뿔 난 짐승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둘 다 웃동은 벗어내치고 있고 아래도리는 국방색 팬티 바람이다. 금방 강을 헤염처 넘어온 아이들의 머리칼은 찰싹 붙어있고 몸에서 물이 이랑을 지어 또랑또랑 흘러내리고 있다. 아이들은 힘에 부친듯 헐떡이고 있지만 눈빛만은 아직도 서로에게 호적수이며 강적이다. 그 뒤에 국방색 모자를 눌러 쓴 한 아이가 기 죽은 모습으로 서있다. - 문혁아, 문화야 이제 그만해라. 아이가 말리려 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혀아래 소리였고 아이는 두 꼬마맹장의 만용에 기죽은 모습이다. -       안돼! 둘은 이구동성으로 삑하고 소리 질렀다. -       오늘이 어떤 날인데 문혁이라는 애가 물이랑 흐르는 얼굴을 쓱 훔치며 까랑까랑한 소리로 말했다. -       주석님께서 장강을 헤염쳐 건넌 십주년 되는 날이 아니더냐! -       그래 주석님께서 장강을 헤엄쳐 건넌 십주년 되는 날이지! 문화라는 애가 앵무새처럼 그 말을 꼭 같이 복창했다. 10전의 여름, 모택동주석께서 73세의 고령에 바다처럼 넓은 장강을 가로질러 헤염쳐 건넜다. 아이들의 부모가 모두가 주문해 읽고있는 “인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모택동주석은 30리 구간을 1시간5분 만에 헤염쳐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모주석은 장강을 혀염쳐 건넌 소감으로 “수조가두 유영”이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는 색맹처럼 오로지 단 하나의 붉은 색조에만 사로잡혔던 당시의 전국인민들에게서 인심을 격동시키는 거대한 고무와 힘이 아닐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모주석의 장강횡단을 기념하는 수영대회가 열리곤했다. 이날, 변강오지의 이곳에서도 “모주석의 장강도하 10주년을경축”하는 수영대회는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붉은 인파가 백지에 엎질러진 잉크처럼 강기슭에 번져나가고있었다. 강기슭 방파제에는 붉은 기가 밀집하게 꽂혀져 있었고 강기슭의 버드나무가지마다는 붉은 꽃으로 단장되여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불러왔던 푸근한 이름의 고향의 강을 붉은기의 강이라 하여 “홍기하(紅旗河)”라고 고쳐 불렀다. 북소리, 징소리 요란하고 강가 버드나무에 처맨 확성기에서 혁명가곡이 귀가 멍멍하게 울려나오는 가운데 열기 띤 구호소리가 목청 깨져라 터져오르는 강기슭은 시끌벅적했다. 일전의 무양하던 강은 고요를 잃었다. 둥챵! 둥챵! 둥둥챵! 둥챵! 둥챵! 둥둥챵!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좋다네! 좋다네! 정말 좋다네!” “모주석의 무산계급혁명로선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자!-” 붉은 기발, 붉은 꽃, 붉은 표어, 붉은 얼굴들… 강가는 온통 붉은 빛의 물결로 장관이였고 구호소리와 노래소리로 랑자하였다. 같은 노래, 같은 구호가 낡은 축음기 풀듯 싫증 모르고 반복되고있었다. 밭에서도 농민들이 일하다 말고 둘러앉아 전간(田间)경축회의를 열고있었다. 논두렁마다에도 붉은기가 꽂혀있었다. - 붉은해 솟았네 천리변강 비추네. 모두들은 뒤질세라 쉼 모르고 혁명가곡을 련창으로 불렀고 만세! 만세! 하고 목줄기에 지렁이가 서도록 사력을 다해 구호를 웨치고있었다. 혼잡한 악음에 귀때기가 잘려나갈듯 얼얼해났지만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려 하지 않았다. 혁명적 행동에서 남한테 뒤지지 않고 최고의 열성을 보이려 들었다. 한 여름의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뜨겁디 뜨거운 해빛이 정수리에 날카로운 동침을 꽂고있었다. 그 지나친 열기속에서 아이들의 작은 가슴들이 손풍금의 바람통같이 펄럭이였고 얼굴은 처음 홍주를 맛보았을 때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강의 무법자인 한떼의 송사리새끼들처럼 그 “붉은 물결”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최면된 무리같은 어른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아이들도 터무니없이 즐거워 하고있었다. 모주석께서 당년에 위용을 떨쳤던 무한에서는 이날을 맞아 5천여명이 장강을 가로지르는 수영 경기를 펼쳤다고 했다. 그중에는 200여명의 소학생들로 조직된 수영대오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을 고려하여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수영은 조직하지 않았다. 이에 수영이 끝난 저녁나절에 아이들이 강을 찾았고 급기야 두 아이가 홍기하를 건너는 내기를 펼친것이였다. 수영실력이 괜찮은 두 아이였지만 두번이나 홍기하를 건너왔음에도 속도가 어금버금 비슷했고 드디여 내기는 서로에 대한 질시와 타매로 이어졌다. 두손을 허리춤에 척 올려붙인 문화라는 아이가 물었다. -       그럼 너 위대한 수령 모주석의 광휘롭고 호매로운 “수조가두 (水调歌头) 수영(游泳)을 외울줄 아니? -       아, 알지. -       그럼 한번 외워봐라 - 자, 장강물을 마시고… 문혁이가 어물댔다. -       너 모르는구나. 어디 한번 들어봐라. 금방 장강물을 마셨는데 또 무창어를 맛보누나 만리장강을 가로 건너서 눈 들어 초나라 하늘 바라보네. 문화가 얼음에 박밀듯 모주석의 시사를 일점불차없이 외웠다. 도도록한 정수리를 한 문혁이라는 애의 얼굴이 홍주를 마신것 처럼 달아올랐다. 더듬이다가 급기야 독설을 내뿜었다. -       잘 외면 뭣하냐? 반혁명분자의 새끼가? -       너 뭐래? 누가 반혁명이냐? -       니 애비는 마우재들 쏘련땅에 류학갔다 온 검은 학술권위가 아니냐! -       그럼 니 애빈 뭐냐? 격노한듯 이번에는 문화라는 애가 더듬거렸다. - 니 애빈 그물에서 빠진 우경기회주의분자다! 설전은 독한 욕설로 번져졌고 나중에 두 아이는 서로의 머리칼을 부여잡고 모래톱에서 뒹굴었다. 애들보다 키 하나는 작아 초라니 같아뵈는 “국방색 모자”는 피짚먹다 눈 찔린 망아지처럼 커다란 눈을 슴벅거리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 쌈하지마, 쌈하지마! 힘으로 하지 말고 말로 하라!(不要武斗要文斗)고 모주석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냐! 그러니 쌈하지마 이윽고 얼굴에 생채기 하나씩 훈장처럼 달고 두 아이는 다시 강가에 섰다. 붉은 저녁노을이 들고 있는 강은 흡사 현성의 광장에서 펄럭이는 혁명구호가 새겨진 붉은 프랑카드를 방불케 했다. 온 하루의 여름열기와 사람열기에 달아오른 강이 헐떡이며 뿜어내는 희뿌연 공기, 달착지근한 단내 같은것이 울컥 아이들의 코속을 파고 들었고 붉은 색을 본 송아지와 같은 숨가쁜 충동이 아이들의 머리속을 파고들었다. 한동안 강을 지켜보다 한 애가 콱 박아두듯 한 마디 했다. - 다시 하자 -       그래 다시 하자 두 아이는 그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또 한번 첨벙 강에 뛰여 들었다. 아이들이 강을 누비는 속도는 눈에 띄이게 늦어졌다. 이제 완연 힘에 부친것이였다. 가까스로 강심에 까지 이르자 두 아이는 그만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흡사 “홍위병” 형님누나들이 “충성무”를 추듯 두손이 허공에서 단말마적으로 허우적거렸다. 두 아이의 모습은 현성의 담벽에 붙어 비바람속에 바래지고있는 구호속의 느낌표처럼 희미해지다가 나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기슭에 섰던 “궁방색 모자”는 다급한 뇨의(尿意)같은것을 느꼈다.  강물에 빨려드는 친구들을 보며 그저 강심을 바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뒤미처 집쪽을 향해 어른들을 부르려 허둥지둥 달려갔다. 문혁아~ 문화야~ 비보를 듣고 달려온 교원과 부모들이 강안을 미친 사람들처럼 헤맸다. 피를 내뿜는듯한 절규가 강기슭에서 터져올랐다. 하지만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다.  방파제에 꽂혀진 붉은기만이 바람에 펄럭이고 일뿐. 붉게 피멍 든 강은 아무 말도 없다.   황해, 1996년   해양 외사수사대의 형사 10명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새벽이였다.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얼굴들이다.     낮게 드리워진 운무속에서 수평선은 거무스름할뿐 선명하지 않다. 뿌연 아침 안개를 헤치며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이 선창에 켜든 불빛 몇 가닥만이 가물가물 부서지는것이 보였다. 제보를 받은 문제의 화물선은 항구에 대기중이다.     화물이 다 내려오기를 기다려  형사들은 급히 화물선에 뛰여올랐다. 후레시를비추며 배의 고물쪽 이물쪽 이곳 저곳을 뒤졌다. 곤충의 더듬이질처럼 긴 형광봉을 들고 배의 이곳저곳을 쑤셔대고 있다. 배 밑창으로 내려가서 냄새나는 그곳까지 전부 뒤졌지만 밀입국자들은 없다.     형사들은 긴 한숨을 내쉰다. 이번에도 허탕을 쳤나보네하는 눈길들이다.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이 더 섞여있다. 그러잖아도 불황에다 갑갑한 정치. 경제가 풀리지 않는 일로 우울할 일이 많은데… - 분명 제보는 들어 왔는데... 수사대 로반장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몇해전부터 조그만 목선에 목숨을 건 밀입국이 서남해안에서 시작되였다. 10톤 안팎의 목선이나 정기화물선을 리용하고있는 밀입국자들 대부분은 “코리안 드림”을 쫓아 나선 중국조선족들이다. 항해도중에 폭풍을 만나 목숨을 잃거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표류하는 일도 비일비재였지만 이들의 모험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있다. 밀입국은 지난 94년에 처음 적발되였다. 당시는 한해에 4건정도 밀입국자는 9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 96년엔 벌써 18건, 7백67명으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때문에 로반장네와 같은 수사대들은 밀입국자들에 대한 감시망이 어수룩하지 않냐는 여론의 질타에 시달리기도 했다. 목숨을 건 항해길에 오른 밀입국자들의 경로를 살펴보면 중국 단동의 압록강에서 출발하여 공해상으로 빠져나오면 선명(船名) 미상의 고기잡이 어선단 등에 끼여있다가 한국에서 나온 배를 바꿔 타거나 야간이나 기상악화를 기다려 한국 령해로 잠입한다. 위해, 대련항 쪽으로 나오는 등 경로도 여러 갈래이다. 밀입국자들은 주로 중국의 길림성, 료녕성, 흑룡강성에 사는 조선족들이다. 이 가운데는 농민들뿐만아니라 교원, 회사원등 계층들까지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 경과를 보면 밀입국자들은 모집책들의 안내로 일단 해안가와 린접한 도시의 려관등에 집단 투숙해서는 통보를 기다린다. 밀입국 모집책, 브로커들을 당지에서는 중국말로 “사두(蛇头)”라 부른다. “사두”에게 주는 사례비는 통상 1인당 인민페로 5만원이다. 한국 해양경찰청은 이런 밀입국 알선조직이 100개는 넘을것으로 보고있다. 이렇게 일, 여덟명으로 이루어진 알선책이 이제는 점조직 형태로 발전하고있고 전에는 10톤급 소형 목선을 리용했는데 요즘은 중형으로 바뀌였고 또 한 척당 밀입자수도 20여명에서 80명으로 늘어나고있다. 예상항로에 경비정을 증가배치하고 취약시간대에 지어 함정 및 헬기를 리용해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 수단이 점점 창궐해져 바다속 바위틈에 숨어 웅크린 낙지 발판을 떼내듯 두절하기가 쉽지 않다. 밀입국 과정을 로반장은 검거 된 밀입국자들에게서 상세하게 들은적 있다. 그야말로 스릴러 영화의 한장면 같다. 밀입국자들은 야음을 타서 알선책들이 지점해 준 배의 밑창에 웅크리고 들어 앉는다. 각자 깡통 하나씩 배부 받는다. 그 작은 깡통을 급한 배설을 해결하기 위한 화장실격으로 사용한다고한다. 배가 출항하면 빛을 감추기 위해 손전등을 끈다. 새까만 어둠이다. 내내 이 어둠으로 가야 한다. 배밑창에서 나는 매캐한 기름냄새, 비릿하게 삭은 생선냄새가 코를 찌르고 털털거리는 배의 발동기 소리가 귀전에 대고 돌리듯 고막을 때린다. 좁은 밑창에서 처음 보는 남녀일지라도 코 닿을듯 비비고 앉는데 마주보는 눈동자는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캄캄한 어둠만 있을 뿐이다. 장소가 비좁으니 드러누워 잘 수도 없고 그냥 두 무릎속에 머리를 파묻고 자야한다. 시간의 흐름을 알수가 없다. 낮인지 밤인지도 알수없는 배 밑창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발동기소리, 파도소리와 너나의 긴장으로 헐떡이는 숨소리뿐이다. 그러다 닫혀진 천장을 두드리는 신호가 세번정도 울리면, 굳게 닫힌 천정문이 열린다. 음식을 담은 바구니가 내려오고 밥속에 깨소금을 섞은 주먹밥을 배급받는다. 네번 두드리는 신호가 울리면 검문경비정이 지나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이기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긴장과 공포에 서려 높뛰는 심장소리마저 서로 가려들을듯 하다. 거개가 평소 바다를 멀리한 사람들이라 흔들리는 배 밑창에서 멀미에 시달린다. 한사람, 두사람 토악질을 해대고 그 악취속에 욕지거리와 한탄소리가 절로 터져오른다. 밤이 되면 배 밑창 뚜껑을 열어 공기를 좀 마시게 하면서 날이 좋으면 항해를 하고, 날이 나쁘면 이름도 모르는 어느 섬 주변에서 풍랑을 피하면서 며칠간을 헤맨 끝에 끝내 뭍에 다다른다.   해상밀입국자를 상대하고 있는 로반장이지만 어느 때부터 그들에 대해 농도와 줄기가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시골 사는 동생이 국제장가를 들어 조선족 처녀를 색시로 데려 왔다. 함경북도 억양이 센 투박스러운 말투이나 늘 선한 얼굴로 때묻지 않은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서 로반장은 중국조선족에 대해 차츰 알게 되였다. 왜 본토의 총각들 떼여놓고 한국으로 시집오냐? 왜 하필이면 도둑 삵괭이같은밀입국이냐?고 어느 한번 동생네 집에서 술 한잔 걸치고 로반장은 외사과 성원 답지않게 철없는 물음을 그녀에게 따져 물은적 있다. 그렇게 묻는 취기 오른 그의 낯빛이 심한 혼돈으로 무눌져 심각한 어지러움에 자맥질하는것 같았다. 그만큼 부모님을 떠나 자식을 떼놓고, 련인을 버리고 위장결혼, 밀입국에 환장하다싶이 된 서로 다른 이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혔던 바다 저쪽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조선족 제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형언하기 어려운 눈길을 들어 푸른 제복의 시형을 얼핏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또 얼굴을 숙인다. 남의 집 장독대를 깨고 훈장앞에 끌려나온 초등생 같이 두려움과 어줍음이 혼반된 시르죽은 눈길이다. 결국 말 한마디 안 했지만 많은 말을 품은 그 그늘진 눈길이 처연하다 못해 가슴 한자락을 아련하게 했다. 밀입국의 경우, 한국의 높은 고용임금과 그에 따른 조선족들의 코리안 드림에 대한 기대, 한국내 영세 중소기업체들의 저임금 외국인 고용 선호등이 그 주되는 원인이라는것을 로반장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가족의 일원에 까지 다가온 조선족, 그들의 고뇌와 아픔을 껴안기 까지는 한국사회에서 아직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여야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허탕을 친 형사들이 하나 둘 허탈하게 갑판우의 로반장곁으로 몰려드는데 수사대의 나이 지긋한 형사가 로반장의 귀에 대고 수군댔다. - 저 기름탱크에서 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요.    늙은 형사와 함께 기름저장탱크로 다가갔다. 탱크에 올라가 철제덮개를 열어젖혔다. 비린내가 귀뺨을 후려치듯 훅 끼쳐 올라온다. 탱크안은 깊은 우물속 같이 깜깜했다. 그런데 그 칙칙한 어둠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것이 있었다. 쌍으로 대칭이 되여 무수히 반짝이는 그것은 직감적으로 사람의 눈이였다. 탱크속에 후레시를 들이 비추었다. - 여깄다아!  늙은 형사가 감때사납게 소리 질렀다. 형사들이 우르르 기름탱크로 몰려왔다. 달팽이처럼 작게 웅크린채 탱크밑바닥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밀입국자들은 강렬한 조명에 로출되자 가엾게 몸을 떨었다. 불빛아래 그 얼굴들이 꼭 두억시니의 그것 같다고 로반장은 일순 생각했다. 밀입국자들이 갑판으로 끌어 올려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 스물… 흙에서 파낸 넝쿨에 열매가 달려 나오듯이 련줄로 끌려 나온다. 겨우 10여평방가량 되는 물탱크에 20여명을 잠복시켰다. 알선자들은 해경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탱크에 밀입국자들을 상자 포개듯 밀어 넣고 문을 닫고 그물을 씌워 위장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저마다 옷차림은 두껍고 칙칙했고 꼭 같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불안한 시선을 연신 좌우로 날려보내고 있다. 며칠이나 들까부는 바다에서 시달려 왔던지 얼굴은 탈색시킨 광목같이 누리끼리하고 파리해진 입술들은 까칠하다 못해 허물같은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저마다 잠을 그 동안 못잔듯 눈자위가 움푹 꺼져 있어 무덤에나 누워 있으면 딱 알맞을 송장 꼴을 해 가지고 나온다. 가차없이 끌려나 온 밀입국자들이 점호를 앞둔 학생들처럼 이렬 종대로 나란히 갑판에 섰는 가운데 그들중에서 간간이 흐느낌 소리가 새여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그 자리에다 드러눕더니 상처 입은 짐승처럼 사지를 축 늘어뜨린채 고통스럽게 울기 시작하였다. -       일어나요! 일어나! 자제에도 불구하고 형사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로반장은 형사들을 휘동하여 밀입국자들에게 형광조끼를 입히고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련행하기 위해 경광등을 매단 차에 실었다. 실의에 빠진 탓일까! 형사의 손아귀에 딸려가는 그 커다란 덩치들이 맥없이 밀려났다. 이들은 이제 외국인 보호소에 수용한뒤 벌금을 부과하고 려권과 려비를 줘서 돌려보낸다. 다시는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공항등에 입국금지 조치를 내린다. 한국인 선장도 수갑을 채워 차로 떠밀었다. -       돈 얼마 받았어? 수갑 채우던 형사가 체증기에 넘쳐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선장은 예상했다는듯 입을 꼭 다문채 누구의 물음에도 쌩한 침묵으로만 맞선다. 그런 선장의 밀랍처럼 딱딱한 얼굴에도 역시 피곤과 졸음기같은것이 는적는적 묻어났다. 아무리 어깃장을 놓아도 현재 밀입국을 알선하거나 밀입국자를 고용할 경우 고용기간에 따라 범칙금 500만원부터 5년이하 징역을 감수해야 한다. 갑자기 이물쪽에서 비명소리가 터져올랐다. 늙은 형사가 다시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 엉! 무엇이? 로반장은 서둘러 달려갔다.   밀입국자의 시신 하나가 맨 나중에 끌려져 나왔다. 시신은 갑판우에 방수포로 몸이 덮여 그 무슨 커다란 어물처럼 놓였다.  사인은 보이는 바와 같이 간단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수십명이 뒤엉켜 오랜 시간 배를 탄 탓에 너나가 불편을 호소했고 그러다 그중 한명이 질식해 숨진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밀입국하려던 그의 꿈은 망망대해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시신곁에 함께 온 친지인듯한 녀자가 다리를 뻗고 목놓아 울고있었다. 아뜩한 절망의 충격을 털어 내지 못해 그저 목청 다 짜내 울고만 있다. 비명인지 욕설인지 분명치 않은 소리를 넋두리처럼 내뱉고있다. 경찰차에 실린 이들이 차창을 통해 이 광경을 내다보고 있다. 우두망찰해 넋을 놓고 휑- 하니 풀린 눈빛을 허공에 두고 있는 이도 있다. 초점이 풀어진, 탁하게 충혈 된 눈, 거의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텅 빈 짐승의 눈을 들여다보는것 같아서 로반장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 아주 돌아버렸어요. 돈에 환장을 한 거지요” 짜증이 섞인 소리였지만 형사들의 목소리에는 윤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새벽부터 단잠에서 깨여 투덜거리며 당장에 요절이라도 낼듯 달려왔지만 형사들도 눈앞의 참극에 그만 아연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일전 전남 여수에서도 중국 절강성 녕파항에서 20톤급 어선을 타고 밀입국을 기도했던 밀입국자들 중 25명이나 운반어선에서 질식사하는 참사가 일었었다.  로반장은 허탈하다는듯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끈끈한 느낌이 드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 내렸다. 가슴에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차에 오르다말고 로반장은 세상을 삼켜버릴것처럼 성이 나 흘러 넘치는 항구 앞바다를 바라보았다. 중국 조선족들에게 한국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밀입국은 중국 조선족내에서 번져가고 있는 “코리안 드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모든것은 한국에만 가면 한 밑천 잡는다는 허황된 기대감 때문이였다. 한국에서 2∼3년간 일을 하면 중국에서 평생동안 일해야 벌수 있는 거액을 만질수 있다는 유혹에 전답을 팔고 빚을 내여 비싼 알선비용을 대면서까지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그 부에 대한 성급한 집착때문에 조선족이 같은 조선족 또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몇 년간 조선족 사기 피해자가 1만7,000여명에 이르고 피해액이 600억여원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한탕심리에 이끌린 허황된 꿈, 부에 대한 집착으로 현실 탈출을 위한 처절한 위험한 활극, 이 활극은 언제 가면 끝날것인가? 항구에 들어서는 배를 보고 갈매기떼가 날아들었다. 마치 물풀이 흔들리듯 나래짓하며 날아드는 갈매기들. 그 새떼들의 질서없는 군무에서 로반장은 소리없는 아우성을 보았다. 새들은 다른 새들을 추월하려고 퍼드득 거리며 허공에 온통 어지러운 부호를 수놓는다. 무리지어 내려서는 불안한듯 주위를 경계하며 항구에 널린 먹이를 쪼아댔고 그러다 다른 먹이를 찾아 다시 푸드득 날아오른다. 한차례 큰 비를 뿌릴것처럼 날씨가 끄무레해진다. 안개가 밀렵꾼처럼 밀려와 항구를 둘러싸고 있다. 바다는 끝간데가 보이지 않도록 사방으로 펼쳐져 있고 그 우로 재빛 하늘이 오래된 비극을 연기하는 극장가의 스크린처럼 묵직하게 걸려 있다…   갠지스 강, 2010년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가이드가 두손을 합장하고 아침인사를 했다. 나도 겨우 한 마디 배운 인도어로 화답을 했다. - 나마스떼! 아침 5시로 모닝콜을 맞추었는데 가이드가 먼저 와 초인종을 울려주었다. 갠지스 강의 일출과 순례행사를 보기 위해 강행되는 려행기간의 피로도 무릅쓰고 일찍 일어난것이였다.   굳이 인도로 려행을 오려 작심한것은 한국의 유명대에서 공부하던 내가 박사론문의 테마를 잡으면서 부터였다. 나의 론문테마가 “한룡운과 타고르의 시문학 비교”였던것이다. 사력을 다해 공부에 전념한끝에 드디여 거짓말처럼 박사론문이 통과되였다. 이 몇주일간 우리 일가족은 숫제 명절분위기였다. 한국의 유명대 류학에 입시된후로 우리 가족은 나로하여 또 한번 기쁨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가문에서 훈장을 한 이도 있고 항일에 투신한 렬사도 있지만 박사가 나기는 처음이라고 모두들은 온 세상을 얻기라도한듯 기뻐마지않고 있었다. 출국열에 환혹돼 밀입국을 하다 친지가 비명횡사한 아픔도 있는 이 가족에서 나의 립신양명은 그 무엇보다 가문의 영광을 떨친것으로 그 박사모의 값어치는 무거운것이였다. 고향의 신문매체에서도 전화, 메일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조선족 하면 한국에서 노가다나 아저씨나 식당아줌마로 칭하던 시대가 나와 같은 젊은 엘리트 세대들의 출현으로 이제 끝난다고 여론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일가족이 나에 대한 장려턱으로 마련한 려행코스에서 나는 단연 인도를 선택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연구테마로 삼고있는 동안 그의 깊은 학문에 매료되였었다. 더욱이 20년대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써서 일제의 마수아래 놓여진 우리 민족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문학과 생에 대한 애착이 컸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예언가적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무한한 격려를 주었던 시구를 노트에 적었고 시를 외워 문학도들의 모임에서 읊조리기도 했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종로구 대학로에 세워진 타고르 흉상앞을 지나면서 꼭 한번 인도행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뼈물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이가 문학의 중심 이미지로 삼게 되였다는 갠지스 강을 보고싶었다. 나는 흡사 누구의 부름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서둘러 신비의 국도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디라 간디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갠지스 강이 흐르는 도시 바라나시로 날아 왔다. 지글지글 끓는 해가 정수리 가까이에 걸려 온 세상이 한껏 예열해 둔 가마솥 같은 바라나시. 불더위에 혼겁하기는 했지만 가장 인도다운 도시, 진짜 인도와 인도사람을 볼수있는 도시가 바로 바라나시라고 했다. 이곳은 년간 100만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아드는 유명한 힌두교 성지였다. 중국 운남성 곤명에서 인도로 류학 온 중국인 학생이 공항에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그녀는 아르바이트 삼아 중국인 유람객들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고있었다. 아버지가 곤명에서 특색 음식점을 차렸는데 인도의 카레음식을 특별 메뉴로 개발했고 거기에서 인도에 대해 흥취를 느꼈다고 했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얼굴이 가무스레하여 인도녀자들을 사뭇 닮은 그녀의 인도명은 “리따”였다. 아버지세대가 즐겨보았던 인도영화 “류랑자”에서 나오는 녀주인공의 이름을 본땄다고 했다. 리따는 물이라는 뜻, 인도사람들이 녀자애에게 즐겨 붙이는 이름으로 거리에서 리따!하고 부르면 누군가는 꼭 뒤돌아 볼 지경으로 넘쳐난다고 했다. 그녀 “리따”는 바라나시에서 두번째로 좋다는 라딧선 호텔에 나더러 려장을 풀게 했다. 이곳에서 갠지스 강까지는 아주 가깝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와 릭샤에 올랐다. “릭샤”란 자전거에 련결된 2인승 수레, 인력거 비슷한것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는 벌써 인파로 흘러 넘쳐난다. 인구 강국임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이. 바라나시는 인구가 400만 되는 도시로 인도에서 인구밀도가 기장 높다고 한다.    - 여기서 북동쪽으로 200킬로메터가량 더 가면 히말라야산의 줄기도 볼수 있답니다. “리따”가 가이드답게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 흔들리는 릭샤에서 혼돈을 경험하고있었다. 여기저기서 자동차, 오토바이의 경적 소리가 란무하고 차가 역주행하며 달려 와 식겁하기도 하는데 무리지어 나타난 소떼들 때문에 릭샤가 급정거를 하기도 한다. 릭샤를 타기전 왜 “리따”가 마스크를 내주었는지 이제야 리해가 간다. 오래된 아스팔트길은 여기저기 깨져 흙먼지가 날렸다. 고향 시골마을의 비포장 농로에 다름 아니다. 매연과 흙먼지 둘러쓸것을 미리 알고 차근한 가이드가 마스크를 준비해둔것이였다. 소뿐만 아니라 돼지도 어그적 거리며 느림보로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골목 에서 마음대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들과 소가 실례한 변도 보였다. - 이곳 사람들은 소를 신성시 한답니다. 소똥을 말려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소는 없어서는 안될 가족의 일원이였습니다. 나는 어제날 고향 시가지의 모습과 비슷한 광경을 둘러보며 동감을 표했다. 길이 고르지 않은 탓에 젊은 기사는  많이 힘들어했다. 그렇게 20분간 가량 달려 드디여 갠지스 강에 도착했다. 릭샤에 앉아 허깨비처럼 흔들리운지라 수레에서 내리니 발이 허공을 밟은듯 휘청거렸다. 기사분이 헉헉거리며 팁은 1딸라씩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리따”가 1인당 1딸라씩 팁으로 줘야한다고 귀뜸을 했었다. 릭샤를 타는 동안 힘들어하는 기사분을 보면서 팁을 더 드려야겠구나 생각했던 차라 두 사람분에 1딸라를 더 얹어서 3딸라를 주었다. - 쑥그리아 (고맙습니다)” 두손을 합장하며 기사는 많이 고마워 했다.   나름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강가는 인산인해였다. 비수기였는데도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갠지스 강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진다는 힌두교 종교의식 “아르띠 뿌자”를 보러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강기슭을 메우고있었다. 강기슭에 축조된 힌두사원들에도 사람들은 넘쳐날듯 했다. 강가에는 체육장의 좌석처럼 가트가 주욱 펼쳐져 있었는데 앞서 온 사람들로 비빌틈이 없었다. 약삭빠른 “리따”덕분에 겨우 가트에서 빈자리를 찾아내여 다행히 엉덩이를 붙일수 있었다. 이곳 말로 계단을 “가트” 라고 부른다. 힌두교 사원에서는 갠지스강을 따라 길다란 강둑과 가트를 만들고 그 강가에서 신을 향해 드리는 최고의 경배라는 “아르띠 뿌자”를 거행한다. 힌두사원의 스피커에서 랑랑한 랑독소리가 울려나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절에서 스님이 불경을 읽는것과 비슷한 억양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설법이라고 “리따”가 알려주었다. 이어 스피카에서는 신을 향한 최고의 경배의 마음을 담은 노래라는 “아르티송”이 흘러나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든 사제들이 갠지스강과 련결되는 가트에 서서 아르티송에 맞춰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것이 보였다. - “아르띠”는 불을 뜻하고 “뿌자”는 힌두교의 제식을 뜻합니다. “리따”가 또 알려주었다. 신과 대화를 하며 음악에 맞춰 불을 돌리며 행하는 사제들의 몸 동작과 음악, 그 분위기가 성스러운 종교 의식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경쾌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인도인들에게 종교는 “삶” 그 자체인것 처럼. 사제들의 주위에는 인도각지에서 모인 순례자들이 빼곡하게 서서 경건한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담은 나무잎 배를 강물에 띄운다. 꽃과 양초와 각자의 소원들을 실은 나무잎 배들이 넘실거리는 강물에 실려 저 멀리로 동동 떠간다. “소원의 배”를 만들어 파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빨갛고 노란 꽃과 작은 초를 큰 나무잎에 담아 놓고는 사달라며 끈질기게 청구한다. 그 청구에 못이겨 나도 그 “배” 한척 사들었다. 가이드가 어느새 짜이(인도차) 한잔을 사들고 와 건네 주었다. 인도인들처럼 뜨거운 짜이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지만 차는 마실만 했다. 성지순례지라 이곳은 고기는 물론 술도 안되는 절대 채식(菜食)의 도시였다. 가트에 앉아 짜이를 훌훌 불며 마셨다. 홍차와 우유, 인도식 향신료가 재료이고 설탕이 많이 들어가 엄청 달달한 맛이였다.     짜이를 마시며 발아래로 흐르고있는 갠지스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성스러운 물이 흐른다는 인도인들의 어머니 강 갠지스. 힌두교 신자인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갠지스강은 성산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발원한다. 인도의 생명과도 같은 강이며 힌두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강이다. 힌두어로 강 기슭라는 뜻으로 불렸는데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을때 영어식 발음인 갠지스라고 불리게 되였다고한다. 몇달간의 우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 지역에서도 갠지스강은 유일하게 마르지 않는 강이다. 장장 2천여키로메터를 유피주와 비하르주를 가로지르며 달려 뱅골만으로 흘러드는 강은 전세계적으로는 의례적으로 강 자체가 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다. 유명세를 떨치는 이름임에도 갠지스 강은 사실 완전 흙탕물이다. 물살이 아주 거친데다가 아침나절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여서인지 너무 차가워서 손이 시릴 정도였다. 하지만 서슴없이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강 절반을 덮다시피하고 있었다. 웃통을 다 벗고 아예 강으로 들어앉아 목욕을 하는 남자들, 가트에서 내려와 손만 담구고 강물을 찍어 바르고 있는 베일 쓴 녀자들,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나와 강물에 얼굴을 씻기는 어머니들… 그들은 흙탕물도 찬 물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 이 강에 몸을 적시는것 자체가 신을 만나는것이라 생각한답니다. 인도사람들은… “리따”가 곁에서 내레이션처럼 그냥 해설을 붙여주었다.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한다. 뿐만아니라 죽어서도 자신의 골회가 이 강에 뿌려지기를 소원한다. 이 갠지스강을 그냥 강물로 생각하지 않고 “생명의 물”, “성스러운 물”로 여기기때문이다. 흔히 목욕이 몸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라면 갠지스강에서 인도인들의 목욕은 마음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였다. 플라스틱 통에 강물을 담는 사람들도 보였다. 성수라 하여 물통에 갠지스강의 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가 가족끼리 마시고 집 앞에 그 강물을 뿌리면 자신의 집앞에도 갠지스강이 흐른다고 믿는다고 한다. 배탈이 날까 념려되기도 했지만 그 열심한 모습에 저도모르게 숙연한 마음 한귀퉁이에서 일었다. 가트 저쪽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여 올랐다. - 저쪽은 화장을 하는 곳입니다. 난데없는 웬 연기냐하고 뜨악해 하는 나의 표정을 보아내고 “리따”가 알려주었다. 화장하는곳은 망자의 가족외에 외인이 출입할수 없다고 했다. 우리민족의 장례관습과는 달리 렴(殮)이나 입관을 하지 않은 상태로 시신을 강녘 땅바닥에 그냥 뉘여 놓고 유족들이 절을 하고 입을 맞춘다. 모두와의 작별 인사가 끝나면 강옆에 단을 쌓고 화장을 한다. 시신은 화장하기전에 먼저 강물에 한번 적시고 준비한 나무를 태워 화장을 시작한다고했다. 부자는 향나무로, 일반인은 일반 나무를 사용하는데 한줌 재가 될때까지 완벽히 태울 많은 량의 나무를 준비하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적은 량의 나무밖에 준비하지 못해 시신을 미처 다 태우지 못하고 강에 던져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 비싼 화장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는 빈민들은 시신을 그대로 갠지스에 수장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햐얀 연기가 갠지스의 한 자락을 휘덮고 시신은 재로 변해간다. 가족들은 가트에 조용히 앉아 친인이 재로 사그러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그리고는 햐얀 뼈가루를 두 손으로 움켜 강물에 휘뿌린다. 죽은 후에 뼈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극락세계를 갈수 있다고 믿고있는 힌두교인들이다. 화장한 재를 갠지스강에 뿌리면 일생에서 지은 죄가 모두 정화되여 다음 생에서도 편하게 살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망자를 보낸다. 그래서 인도의 최고의 효자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을 갠지스 강으로 모셔와 갠지스 강 물로 목욕을 시키고 돌아가시면 화장하여 이 강에 그 재를 뿌려주는 자녀라고 한다. 땅의 품을 떠난 망자의 운명은 이제 신의 것이다. 이렇게 힌두교의 삶은 태여나 갠지스강에서 세례를 받는데서 시작해 숨을 거둔 뒤에 화장돼 이 강에 뿌려지는것으로 끝난다. 갠지스강은 또 한 사람의 력사를 넓은 품에 품어 주었고 장례의식은 마친 사람들이 렬을 지어 내 곁을 스쳐지났다. 슬픔과 아픔을 신에게 맡겨보낸 그 얼굴들은 체념처럼 맑고 평온했다. 사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것을 가트 저쪽에서 피여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며 생각했다. 누구는 목욕을 하고,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빨래를 하고, 누구는 그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고, 누구는 소원을 빌고, 누구는 물건을 팔고, 누구는 친인을 불태우는 의식을 하고 있는 곳. 인도인들은 이렇게 이 신의 강에서 대대로 살아가고있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튀여나온것처럼 유난히 커다랗고 둥근 아침해가 갠지스강 상류쪽에서 떠올랐다. 아침의 온유한 해살에 강은 금세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내내 자리를 뜰념을 앉고 빈 짜이잔을 손에 든채 나는 가트에 점도록 앉아 있었다. 달디단 짜이같은 감흥이 온몸을 뜨겁게 훑어내렸다. 강에 몸을 적시지 않아도 몸 구석구석이 깨끗해 지고 머리속이 명징해지는 느낌이였다. 강은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기억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런 풍경인 것 같았다. 망막에 들어오는 타국의 낯설은 풍경을 나는 낯설지 않게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갠지스 강에 와서야 삶이 버거워 보이는 이곳 사람들이 행복속에 여유있게 살고있음을 알것 같았다. 그들은 강의 규칙과 리듬에 자신의 리듬을 맞추면서 살고있었다. 계속 흐르고 흘러야만하는 힘든 삶, 하지만 지금보다 나은 래세를 바라고 강과 함께 흐르고있는것이였다.    나를 이 땅에 존재할수 있게 해준 그 시초를 만날수 있는 곳. 갠지스강. 이곳 사람들에게 갠지스강은 그냥 흐름만이 있는 강이 아니라 력사가 흐르고 그 력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그런 불멸의 공간이였다. - 김선생네 고향에도 강은 있겠지요? 역시 어떤 정서에 젖어드는듯 떠오르는 해를 빤히 쳐다보다가 “리따”가 감상적으로 물었다. 인도에 까지 오면서도 연변에는 못 가봤다는 “리따”는 인도의 갠지스 강까지 찾아 든 조선족인 나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있었다. -       물론이지요. 나는 감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채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 어떤 강이죠? 강의 이름은 어떻게 부르나요? 고향의 강을 떠올리니 저도모르게 코잔등이 매콤해진다. 나의 뇌리속에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였는 산과 들, 그 들의 둘레를 감싸며 산줄기의 아래도리를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세상 그 어느 강보다도 유순한 강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대를 지나온 강의 궤적이 눈물겨웁다. 나는 타향의 강가에서 그제야 고향의 강이 여태까지 연출해낸 풍경의 언어를 다시금 읽어 내려갔다. 고향잃은 이주민들이 허위단심 넘은 눈물의 강, 우리 족속의 얼을 말살하려 혈안이 된 일제에 맞서 피로 적신 강, 자치권리를 부여받고 기름지게 가꿔 가던 강, 또 다시 변혁의 바람에 물줄기가 마르려는 강, 하지만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성스러운 강… 강의 풍경은 흘러와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 진풍경속에 녹아있던 강의 실체, 우리 족속의 삶의 위상이 차츰 내 가슴속에서 큰 물이랑을 만들며 출렁이기 시작한다. 루루 수천년을 흐르다 흐르다 신이 되여버렸다는 갠지스강, 어쩌면 고향의 강은 이와 꼭 닮지 아니한가! 강의 흐름에 눈과 마음을 맡긴채 나는 꿈꾸듯이 말했다. -       그 강의 이름은 두만강이랍니다! … …     "도라지" 2012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1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댓글:  조회:2321  추천:12  2014-06-27
. 평론 .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김혁의 중편소설 “뼈”를 두고   장하도       1. 문제제기  《연변문학》 지난 5호에 실린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당대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진지한 작가적사고와 깊은 사명감에 의한 주제의식으로 잘 그려낸, 심각한 사회적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갈수록 많은 문제점을 산출하고있는 요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대담한 표현수단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김혁의 이번 작품을 진지하게 의론하는것은 작가뿐만아니라 조선족소설의 전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주 가치 있는 작업이 아닐가 생각한다.  아래에 구조적인 측면에서부터 착수하여 “뼈”에 내재된 작가의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해보자.   2. “랭면”―음식에서 령혼까지  중편소설 “뼈”는 관속에 누운 “뼈”에 관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즉 이 소설은 제목과 함께 작품의 시작부터 “뼈”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것임을 암시하고있는데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주된 이야기는 “뼈”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뼈”의 이야기는 여러개의 작은 이야기로 무어져있고 요일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일종의 순차적이면서도 단계적인 구조를 취하고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는 랭면집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먹는 랭면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눈물을 쏟아내지만 어이없게도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의 트렁크가 도적맞힌다. 어렵게 도적을 잡기는 했으나 트렁크속에 든 “뼈”는 경찰의 의심을 잔뜩 자아내는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의 “뼈”였던것이다.   ...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있었는데 그 비닐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 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랭면이 조선족의 대표음식중 하나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귀국해서 랭면부터 찾고 랭면을 먹으면서 눈물을 쏟는다는것은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 아직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랭면집은 주인공이 민족적인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소로 되는데 이러한 사건의 발단과 함께 랭면집이 헐리고 공터만 남았다는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장소나 기회마저 상실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랭면은 단순한 음식문화뿐만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이어진 령혼의 존재감과도 직결된다 하겠다.   3. “묘소”―사람마저 매몰되다  원래 “묘소”란 죽은자를 묻는 장소이다. 그곳에 묻힌 사람은 산자에 의해 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문화적인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묘소”가 헐리고 두번다시 매몰된다면 어떤 상황이겠는가?  중편소설 “뼈”에서 주인공이 부모님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찾아간 고향은 사람들이 거의다 떠나고난 텅 빈 마을이다. 원래 백여호가 넘던 동네에는 겨우 여섯호만 남아있고 그마저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이다. 게다가 도시의 수원을 위한 저수지확장공사때문에 마을 전체가 수몰지(水没地)로 물에 잠기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묘소조차 임자를 잃게 되였는데 이처럼 묘소의 부재는 곧 그 마을의 력사와 뿌리가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조막령감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와닿는 가시와 같은 충격을 준다.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늙은)한 어시고 이쁜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 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수근이와 병태 등 몇몇이서만 조용히 이장을 하는 모습은 조막령감이 말하는 그 옛날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 집 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줬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 마을이 피페 그 자체로 화하고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도 그전의 사람들이 아닌데 설상가상으로 마을마저 수몰지가 되여 묘소까지 위태롭게 된 고향, 고향은 말 그대로 황페하고 버려진 삶의 공간이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삶의 자취라 하겠다.   4. “명월”―이지러진 사랑  주인공 수근이가 이장에 이어 찾고싶은 사람은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전처와 아들이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전처는 “사윈 초승달 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보였다”. 한마디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월”이 아니라 난데없는 초승달을 마주하게 된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초승달은 그가 일하는 명태가공소의 한족인 경리와 새살림을 꾸린터였다.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고 초승달이 민족을 달리하는 가정을 꾸렸다는 사건은 주인공의 전처의 일이라 해도 민족적인 삶의 피페화뿐만아니라 이질화가 가속화되고있는 현실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좀더 잘살아보려고 외국에 가는것이라고 한다. 그것때문에 “가짜리혼”을 하면서까지 모험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 처참한것이였다. 조선족들의 경우 이런 일들은 이제 비일비재하다싶이 되여 거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타민족들한테는 충격 그 자체일수 밖에 없다. “명월”의 두번째남편의 아래와 같은 말은 그래서 우리의 정곡을 따끔하게 찌른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중략)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婆) 메이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당연히 경리의 말은 수근이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고 부상을 입은 옆구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독자라면 민족적인 삶의 위기나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자책감 비슷한것을 느낄것이다.   5. “스케트보드”―아이마저 잃다  주인공 수근이는 전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하나뿐인 아들애 욱이와 상봉한다. 하지만 오래된 나날을 두고 부자간에는 이름 못할 차디찬 강물이 벽처럼 가로막혀있고 이들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요구에 의해 세트로 사준 스케트보드는 아이를 순식간에 학교앞에서 사라지게 만들뿐이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 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했다. 수근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팔을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의 감회가 얼마나 컸으랴마는, 그것도 돈벌이하느라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자책감 또한 얼마나 컸으랴마는 아들애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깊고깊은 상처자욱으로 남았고 그 자욱을 메우기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흔히 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아들은 남성으로서의 초기 모델을 형성하는데 그 모델의 성격여하는 곧바로 장차 아들애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그러한 모델을 상실한 아들애가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아들과의 그러한 소통장애는 주인공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는데 있다. 즉 주인공의 삶의 미래적인 추이는 아들과의 그러한 장애때문에 매우 암울하게 비쳐진다는것이다.   6. 수장의 뒤끝은 상실  부모를 수장한 주인공은 다시 기약 없는 출국길에 올랐다가 아들 욱이가 크게 다쳤다는 련락을 받게 된다. 그가 사준 스케트보드를 타다가 아들이 크게 골절상을 입은것이다. 아버지가 어쩌다 사준 선물때문에 아들의 생명이 위험할번했다는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는 아래의 한 단락에서 찾아볼수 있다. 코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부모님의 유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이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어렵지만 어쩔수 없는 한국행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발을 굳게 묶어두는 아들의 부상은 바로 주인공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삶의 의미와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하나의 장치였을것이다.  또한 마감을 장식하는 “월요일: 상실”이라는 부분은 그렇기때문에 뿌리를 잃고 헤매이는 수많은 조선족들의 현재적인 삶의 이모저모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사색을 엿보이게 한다.  지금의 시대광장 동쪽에 위치한 랭면집―복무청사가 사라지고 텅 빈 공터만이 남았다는것은 랭면에 담그다싶이 했던 마음들이 모조리 공터에 버려졌음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즉 랭면집의 부재는 이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특수한 삶의 경험과 더불어 랭면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던 수근이네들―우리의 삶의 공간이 일시적이나마 사라졌음을 상징하며 뿌리를 잃어가는 우리의 삶의 모순된 현장을 상징적으로 꼬집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우리한테 마땅히 있어야 할 “뼈”가 도대체 어떤것이여야 하는지를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여러가지 소설적장치로 잘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앞으로 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을 기대해마지않는다.   “연변문학” 2013년 10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30    댓글:  조회:2427  추천:43  2014-06-27
  . 중편소설 .     뼈 - “중국조선족테마소설” 계렬   김 혁         수요일: 랭면과 도적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그윽한 육수물에 반쯤 담겨진 찰진 국수발, 그우에  소고기 육편, 닭고기 완자, 절반 베인 삶은 달걀, 사과배 조각으로 곱게 고명을 얹은 국수가 나왔다. 국수는 그 무슨 음식이 아니라 한점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그 국수를 수근은 멀거니 내려다 보았다. 임금님전에 올리는 수라상을 먼저 점검하는 내시처럼 조심스레 면발을 입에 넣었고 잣과 깨가 동동 뜨는 육수물 한모금 떠서 맛보았다.  쫄깃했고 시원달콤했다.  몇해만에 먹어보는 고향 랭면인가! 입안 그득 고여드는 흥그러운 이 맛… 국수 한 그릇이 순간에 굽이 났다. 멸치를 우려 양파를 넣고 계란을 풀어 만든 육수물에 부추와 호박나물을 잔뜩 넣은 물국수며, 썬 김치와 참기름, 고추장으로 비빔한 비빔국수도 고향의 랭면맛보다 못했다. 또 한그릇 주문했다. 풍성한 면발을 다시 한번 허겁지겁 입에 넣던 수근은 국수발을 입에 가득 문 채 그만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먹고픈 국수를 마음대로 먹던 나날들과 국수를 함께 먹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수근은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야 만것이다. 눈물의 육수를 밑굽까지 비우고 수근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명세를 떨쳐 온 랭면집이 신축공사중이여서 림시 개설한 분점임에도 화장실에까지 사람들로 붐비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작심하고 랭면만 먹으러 모여 온듯했다. 하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철이라 그럴법도 했다.  수근이네 마을 사람들도 한때는 시내행차를 하면 남정네고 아낙네고 할것없이 랭면부를 찾아서는 기어이 랭면 한그릇씩 맛보군 했다. 랭면 맛보기는 시골사람들이 시내구경에서의 그무슨 통과의례처럼 되여 있었다.    화장실에 걸린 대형 거울앞에서 저마다 포장수저에 딸려 온 이쑤시개를 꼬나든 사람들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이발청소를 하고 옷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그들처럼 화장실 거울앞에 마주서던 수근은 홀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짧은 비명을 흘리며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금방 앉았던 자리, 국수 두 그릇을 허겁지겁 비웠던 그 식탁곁에 놓았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쥐색 바탕에 긴 손잡이와 바퀴달린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흥분할때나 급할때면 저도모르게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트렁크, 여게 놨던 트, 트렁트를 못봤나요? 급한나머지 수근은 말까지 더듬었다. 지진이라도 인듯 비명을 동반한 수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입에 문 국수발을 끊치도 못한채 곁자리의 아낙이 머리를 저었다. 선머슴아이의 서투른 빗질처럼 주위를 마구 훑던 수근의 눈길이 랭면집의 창문밖을 향했다.  랭면부 맞은켠의 뻐스정류소에서 막 떠나려는 공공뻐스가 보였다. 또 한번 기급한 비명을 지르면서 수근은 랭면부를 뛰쳐나갔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죽기살기로 뻐스를 쫓아갔다. 금방 출발한 뻐스라 속도를 내지않았기에 수근은 단박에 뻐스를 추월할수 있었다. 뻐스앞에서 두손을 쫘악 벌리며 차를 가로막았다. 끼익! 쇠갈기소리를 내며 뻐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에게서 앙칼진 욕설이 터져나왔다. 뻐스문을 원쑤처럼 쿵쾅 두드려대는 얼나간 사람같은 그에게 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기사는 욕설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뻐스기사가 퍼붓는 욕설에도 술렁이는 차객들의 소리에도 개의치않고 수근은 땀냄새와 열기로 랑자한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가 대번에 쥐색 트렁크를 끌고있는 20대의 남자를 짚어냈다. 깡마른 몸에 메밀눈을 한 그 남자의 멱살을 와락 잡아쥐면서 감때 사납게 웨쳤다.  도둑이야! 이 놈이 내 가방을 훔쳤소.  도적으로 지명된 사내가 몸부림치며 항변했다. 그런데 사내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말은 하지않고 가을밭 참새라도 쫓는듯 으아! 으아!하고 새된 고음을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다.  아마 벙어리인가보오.  설마 벙어리가 그런짓 했을까! 한편의 단막극이라도 보듯 호기심에 흥미를 동반한 눈길들이 수근이와 도적사이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출소로 갑시다! 운전사량반 파출소로 가주시오! 수근이가 운전석쪽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처럼 웨쳤다. 그 소리에 차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가뜩이나 더워서 귀찮은 날씨에 재수없는 일에 휘말려 시간을 빼앗긴다며 불평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서로 확인해 보면 될거 아니오. 맞추는 사람이 임자고 못맞추는 사람이 도적인게 확실하지.  기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와 제안했다. 사람들중에서 중년남자 하나가 원주필을 뽑아 내밀었다. 벙어리가 말을 못하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기 오른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수근이는 자기 왼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억울하다는듯한 표정만 짓고있던 벙어리가 손짓발짓 해가며 차에서 내리겠다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는 그의 손목을 중년남자의 우악진 손이 단단히 감쳐쥐였다. 마지못해 벙어리가 그 중년사내의 손에 뭔가 적었다.  기사가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벙어리가 쓴것은 “의복”이라는 두 글자였다.  원주필을 받아들고 수근이도 적었다. 힘주어 커다랗게 적었다.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를 헤아려 보던 중년사내의 두눈이 휘둥그래 졌다. 땀에 흥건한 사내의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는 한 글자였다. 그 글자를 운전기사며 차객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의 눈동자 역시 순간에 영화감독의 큐!사인을 받은 어설픈 엑스트라의 과장된 연기처럼 일제히 휘둥그래졌다. 땀에 젖어 글자의 획들이 이니셜 대문자처럼 굵어진 글자가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에 넘쳐날듯 씌여져 있었다. 뼈. 당신 정신 온전한 사람 맞소? 정신을 한국에 두고 왔나? 선진국 가서 11년이나 구을다왔다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되오?  아니 무슨 사람이 벌건 대낮에 사람 뼈덩이를 싸들고 시내 복판을 활주하는가 말이요? 엉! 파출소에서 수근은 당직 경찰에게 보리쌀 닦이듯 하고있었다. 경찰들이 우루루 모여들어 못볼 괴물이라도 보듯 수근이를 지켜보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리며 무어라 적당한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해 했다. 벙어리 도적과 어딘가 심상치않는 도적맞힌 사람을 싣고 뻐스는 부근의 파출소로 왔다. 경찰들이 대번에 그 벙어리 도적을 알아보았다. 전과범인데 그 말고도 무리를 지어 소매치기를 다니는 벙어리도적들이 더 있어 수사망을 펼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데 도적맞혔다는 물건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여는 순간 담당 경찰은 매일 흉악범을 상대로 하는 경찰답지않게 초풍할지경으로 놀라했다.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 있었는데 그 비닐 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 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내 아부지 어무니 뼙니다.  수근이가 서둘러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부모님의 산소가 모셔져있는 산소의 이장통지를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다고 했다. 왕복티켓을 끊었는데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러 화장하려다가 그 뼈를 하마트면 도적맞힐뻔했다는것이다.  묘를 이장하고 뼈를 화장할려면 민정국 사무소의 증명서류가 있어얀다는것도 모르오? 이 사람이 이거 크게 경을 칠 사람이구만. 별의별 사건을 다 겪지만 이런 해괴한 일은 처음이라는듯 담당경찰은 부아통이 터져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수근은 파출소에서 놓여 나왔다. 수근의 신분증이며 려권 그리고 연고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등 신상명세며 장황한 설명, 그리고 뼈들의 오래 된 상태를 보아 상황파악은 되였다. 반양머리에 흙빛 피부, 황소처럼 둥글고 구순한 눈길을 한 그의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온몸에서는 진솔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더욱이 수근이네 고향의 묘지 이장통지도 신문사에 물어 확인했다. 그제야 경찰은 수근이를 믿는 눈치였다.  온 오후를 닥달질 당하고 나니 울컥 야속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법도 했다. 백주에 다른 물건도 아닌 사람의 뼈를 들고 시가지 곳곳을 쏘다녔으니 오해를 살만도 했다.  고향마을으로 가는 마지막 뻐스가 있으려나 생각하며 트렁크를 달달 끌고 어스름이 내리는 도로변을 따라 수근은 뻐스역으로 향했다. 그런 수근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건드렸다. 누구냐고 돌아서는 순간 코잔등에 주먹 하나가 날아 들었다.  두손으로 코를 부여잡는데 이번에는 옆구리에 발길이 날아들었다. 얼굴이며 잔등에도 주먹과 발길질의 란타가 날아들었다. 한 두사람이 아니였다. 느닷없는 타작매에 수근은 도로변 하수구에 뒹굴었다. 폭행을 감행한 괴한들은 재빨리 어둠에 스며들듯 도망쳐버렸다.  수근은 몸부림치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는 수백개의 불나방이 날아다니는듯하고 코에서는 뜨거운것이 쏟아져 내렸다.  괜찮아요? 채소구럭을 든 할머니 하나가 다가와 코피를 쏟고있는 그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속에 쑤셔넣으며 경황속에서도 수근은 트렁크를 찾았다. 다행이 트렁크는 있었다. 트렁크도 온하루 불운함에 치대고있는 주인장처럼 길녘에 뒹굴고 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도로변의 화단에 걸터앉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수습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것같았다. 시가지에 벙어리도적떼들이 출몰한다던 파출소 경찰의 말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그들이라고 수근은 단정했다. 무작정 구타를 날리는 그들은 한결같이 수근이가 한낮 뻐스우에서 들었던 그 벙어리도적과도 같은 으아으아하는 특유의 괴음을 지르고 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수선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고향가는 막차를 놓칠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던 수근이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 송곳으로 쑤시는듯한 통증이 왔다. 트렁크의 손잡이에 의지한채 수근은 아픔을 삭이느라 몸부림쳤다. 아마 뼈라도 다친 모양이다.   화요일: 수몰지(水沒地)의 사람들   오랜만에 귀국한 수근은 바로 고향마을을 찾았다. 부모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직도 마을에서 맨 마지막 사람으로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팔순의 조막령감을 등에 업고 고향의 뒤산으로 올랐다.  뒤로는 11년만에 만나는 소꿉친구 병태가 다리를 잘숙잘숙 절며 따라섰다. 어쩌면 이제 겨우 40대중반의 나이에 풍을 맞아 손이 곱아들고 다리를 끌었다. 그런 성찮은 몸으로도 병태는 친구를 돕겠다며 기어이 따라 나선것이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향사람들도 모두 마을을 떠나버렸다. 백여호를 웃돌던 동네에 겨우 여섯호가 남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 마을 원주민이라고는 병태와 그의 할아버지뿐이였다.  말(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벵신(병신) 꼬라지된 나와 꼬부랗게 늙은 우리 할배밖에 없다. 못생긴 낭기(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병태는 십여년만에 나타난 친구를 향해 씁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름이 찾아든 얼굴에서 세월여류(岁月如流)를 확인하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지난 한밤을 간소한 술상이라도 벌려놓고 잔에 잔을 비우며 얘기 꼭지를 거듭 틀었다. 수근의 등에 업힌 조막령감은 다름아닌 병태의 할아버지다. 그 뒤로 쟁기를 챙겨들고 마을의 장씨성을 가진 한족나그네가 묻어 섰다. 병태가 “장보톨”이라 칭하는 그는 수근이가 한국으로 로무를 나간뒤 마을에 들어온데서 처음 보는 사람이다. 묘 이장을 위해 하루삯 300원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나섰다. 이장을 전문 하는 사람을 찾아 쓸려니 천원돈 아니면 안한다고 배포를 부렸다. 요즘 세월에 이장과 같은 장례절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적었고 또 일 자체가 부정타는 일이라며 “겨울 딸기”격으로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년로한 병태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선것이다. 난장이를 겨우 면한듯 작고 왜소해서 조막령감이라 불리는 병태할아버지는 마을의 년장자격이다. 왜정때 글도 읽었고 마을에서 회계노릇도 오래 해오면서 일찍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던 몸이였다. 그러니 이장도 할줄 안다고 했다. 더우기 수근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몸소 참가했던 령감이였다.  이장도 이장이려거니와 수근은 부모의 묘소를 어디에 모셨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근이가 네살적엔가 세상떴으니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형님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쩌면 수근이가 한국으로 나간지 두달만에 갑작스레 세상떴다.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도 금방 출국한 몸이라 돌아와 장례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수근이였다.  마른 사과처럼 쪼글쪼글 늙은 조막령감은 이제 죽기전에 고향의 뒤산에 한번 오르고 싶다며 뜨락에도 겨우 나서던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중풍에 쓰러졌던 몸이다. 병태네 가족병력사에서 풍이 래력이다. 아버지도 풍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산수의 나이를 넘긴 몸이지만 많은 차도를 보여 다행이였다. 마을의 고샅길을 가로질러 뒤산으로 올랐다. 산은 옆구리를 조금 틔워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온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지질한 잡목과 잡풀이 발에 채였다.처음에 업고보니 령감은 바짝 여위여 빈 벼가마니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팔막진 산길을 업고 오르려니 점점 더해지는 무게가 수근의 등짝을 압박해 왔다.  게다가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정수리가 잉걸불을 인듯 뜨거웠다. 직수굿이 입 다물고 걷는데 땀이 등판을 적셨다. 그렇다고 몸이 온전치 못한 병태와 바꿀수도 없는 일이였다. 도시의 수원(水源)과 발전(发电)을 위한 저수지 확장공사를 하면서 묘지는 물론 수근이네 마을 전체는 이제 수몰지(收沒地)로 물에 잠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의 분골을 두만강에 뿌리기로 수근은 마음먹었다. 원체 마을 뒤산에는 묘들이 수십 기가 있었지만 고향을 뜨면서 이장해 나가고 또 방치해두어 찾는이가 거의 없는 마을묘지는 버려진거나 다름없었다.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헐레벌레 찾아왔는데 그 묘소들을 이장할 시간이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다.  산자락에서는 벌써 불도젤이며 포크레인들이 부릉부릉 쇠이빨을 맹렬하게 갈아대듯 굉음을 울리며 작업이 시작이다. 무쇠팔로 나무들을 중둥을 쳐 쓰러뜨리고 바위돌을 밀어내고 흙을 깎아낸다. 거대한 쇠스랑에 찍혀 청청한 솔이 흰뼈를 드러내며 툭툭 분질러지고 있었다. 불도젤은 납작 엎드렸으나 미처 몸을 다 숨기지 못한 임자없는 봉분들을 마구 밀어제끼고 있다.  불도젤이며 포크레인, 트럭들이 뿜어내는 성마른 소음과 매콤한 연기가 산마루의 새소리와 풀냄새를 뒤덮어버리고 있었다. 산이 낮아지고 숲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저)기 조(저)쪽 같아 뵈는데… 조기 늘근(늙은) 솔낭기 지(제) 혼자 서있는데, 응, 조기 조쪽으로 가보지무… 내 짐작이 틀림없을게다 조막령감의 조막손이 느릅나무, 가문비나무, 사시나무숲을 지나 홀로 허허롭게 섰는 늙은 소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산등성이의 확 트인 양지 바른 곳, 그 곳에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봉분이 하나보였다. 비석도 상석도 없고 묵은 풀이 우묵한 봉분은 조금 내려앉아 보였다. 무덤앞에 령감을 내려놓자 령감이 조그많고 험한 손으로 봉분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맞따! 이 뫼짜리(자리) 맞따. 여기서 조기 렬사비 아래쪽으로 꼳꼬지(곧게) 내려다 봐라. 과수밭 아래쪽 조기가 딸내미 셋이 몽땅 싸이판 나간 양봉재(쟁이) 강서방네 집이고 강서방네 곁집이 쏘련 나갔다 죽은 박서방네 집, 그 집 곁이 바루 수근이 너네 집이 아니고 뭐냐. 령감의 조막손이 가리키며 확인하는 산자락아래에 수근의 집 그리고 강서방네 집, 박서방네 집은 꿈 꾼듯이 사라지고 없다. 살던이들이 죽거나 떠나버린데서 언녕 주저앉아 오간데 형체조차 없고 빈 집터에는 쑥부쟁이, 능쟁이같은 잡초의 춤만이 무성하다. 그 거뭇한 빈자리들이 수근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용하게 찾아낸 오래된 봉분앞에 신문 몇장을 펴고 고량주와 명태포, 사과배 그리고 소시지나 과자들로 간략하게나마 제상을 차렸다. 조막령감이 시키는대로 배워가며 례를 치렀다. 종이컵에 술을 부어 무덤에 올렸다. 무릎꿇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아부지 어무이! 더 좋은데 모실려고 집을 허무니  놀라지 맙소! 따른 술을 봉분우에 끼얹었다. 묘주위를 돌며 세번 크게 웨쳤다. 파묘(破墓)! 파묘! 파묘! 그제야 드디여 봉분에 삽을 박았다. 시간이 오래된 봉분이다. 아버지는 40여년전에 어머니도 11년전에 돌아가신지라 봉분은 풀뿌리로 얽혀 무척 단단했다. 곡괭이를 꽂고 앞뒤로 몇번씩 흔들어야 겨우 촘촘하게 쩔은 떼장을 한 뼘씩 벗겨낼수 있었다. 겉흙을 한꺼풀 벗겨내고 삽날을 힘들게 박아넣으면서 수근은 일이 쉽지않음을 알아챘다. 흙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들도 심심찮게 나왔다.    굳은 흙이 삽날끝을 구부러뜨리자 “장보톨”은 씨부렁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상한 날끝을 두드려 폈다.  철겅철겅 삽질소리가 황량한 산의 정적을 깼다. 쟁기소리와 더불어 조근조근 조막령감의 이야기도 끼여들었다.  -원래는 이 축축한 땅에 내 먼저 묻힌 조상량반들께 때맞춰 공양을 드려야 그게사람 된 도리가 아니겠냐? 그리구 저 고향땅에서 쌀이고 풀이고 그만큼 뜯어먹고 훑어먹었음 묌(몸)이라두 죽어 저 땅에 묻혀 비료(거름)돼서 그 값이라도 하는게 옳이 된 도리지.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 (늙은) 한 어시고 이뿐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이 한가슴 가득한 울기(鬱气)를 토해내며 짐짐하게 짓무른 눈꼬리로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자기에게 채문하고 확답을 구하는듯한 그 눈길에 수근은 눈길을 돌렸다. 고개를 수긋하고 그저 부지런히 일에만 몰두했다.  한국에서 일에 절은 몸이라지만 삼복염천에 땅을 파자니 쉽지가 않았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건 물론 허리가 아프고 오랜 막일에서 얻은 관절통에 손목 인대가 끊어질듯 했다.  “장보톨”도 힘겨웠던지 중국말로 무어라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곡괭이질을 해댄다.  수근은 한숨 쉬고 하자며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병태에게 뿌려주었다.  이거 한국담배꾸마 병태가 담배 한개비를 할아버지 입에 물려주었다.  남조선 골련(권연)이라니 어디 한대 먹어보자.  한국꺼라해서 다 조은건 아니겠지우. 담배하문 그래도 여기 화건종 담배가 최곱지 장보톨”에게도 권했다. “장보톨”은 담배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불을 붙여물고는 그늘을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엄지와 검지로 끝을 잡고 필터밑까지 알뜰히 태워댔다. 금방 붙여 물었던 담배의 불똥을 끊어내며 이번에는 병태가 그로서의 울기를 뿜어댔다.  그쪽은 뭐 달도 여기보다 더 크다 그러덤둥? 더 밝다 그러덤둥? 그래서 다 말벌에 쐰 사람처럼 달아나 거기로 가버린담둥?  담배연기가 몽환처럼 묘소주위에 굼닐었다.  신코에 속흙을 잔뜩 묻힌채 삽자루에 손을 걸치고 수근은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농익고 꽉찬 여름이 들에서 일렁이고 있다. 풍성한 여름은 왔건만 마을은 텅 비여 보였다. 대부분 밭은 중국사람들에게 헐값으로 양도해 버렸고 더 많이는 버려졌다. 논의 한 가운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압선 송전탑이 우뚝우뚝 마을을 침노(侵擄)한 괴물처럼 서있다. 집과 집의 노란 이영들끼리 접붙어 있던 다정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모두가 떠나버려 주저앉았거나 주저앉으려는 집들은 괴물에 쫓겨 비여진 흉가를 방불케했다. 왕년에 정답기만 하던 마을길도 형언하기 어렵게 더러웠다. 길복판에 말똥이며 버려진 농기계의 내연기관 부속품이 뒹굴었고 죽어서 털인형처럼 된 강아지 시체도 보였다. 뒤산 자락에는 과수밭이 펼쳐졌는데 과수에 경험이 적은 외지사람들이 되는대로 다루었던지 사과배가 불다 만 풍선처럼 조그많게 달려 있다.  원체 곡창이라 불리던 마을이였다. 과수가 잘되고 자식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향의 풍경은 장수가 맞지않아 버려진 낡은 화투장같이 진부하고 초라했다. 그 진부한 풍경도 이제 물에 수장되여 말끔히 사라져버릴 판이다.  선조들이 이 곳에 터를 마련하면서 심은 벼와 사과배나무, 그 척박하던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픈 간절한 념원과 종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던 나날들에 대한 기원을 망가뜨린건 수근이만이 아니였다.  과수밭 언덕배기에 세워진 렬사비가 유독 눈을 찌른다. 비바람에 지워지고 오래동안 먹을 넣지않아 비명이며 렬사들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지고 하얀 몸체만 남았다. 항일에 몸을 던져 마을을 지켰던 사람들의 기념비는 이제는 괴괴한 무덤같은 마을을 위해 세워진 커다란 비석처럼 보인다.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며 넋놓고 섰는 수근이를 보고 병태가 말했다.   뭘 볼게 있다고 자꾸만 내려다 보고 그러냐. 없다, 싹 다 가버리고 아무도 없어. 그래도 수근이 니는 지금 이렇게 면례(이장)라도 하니 다 꽃이라 생각해라. 이제 말(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모님 효도해 묻을 곳도 없다.  후유, 처박혔다 물밑에서 밖으로 솟아나온 사람처럼 수근은 거칠게 한모금 한숨을 내뿜었다.  두자 반 정도 파 내려가자 흙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드디여 관이 드러났다. 관널은 아직도 형태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홍송으로 만든 관은 십여년 잘가고 백송으로 잘 만들어진 관은 50년까지도 간다고 조막령감이 말했다. 관덮개사이에 삽날을 끼워넣고 힘주어 제꼈다. 덮개가 부서졌다. 관덮개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열렸다. 벌건 황토속에 허연 뼈들이 드러났고 시지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왔꼬나. 뻬(뼈), 뻬 나왔다아!" 조막령감이 울음같은  환성을 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지라 육탈이 된 뼈는 비교적 완정하게 남아있었다. 색깔이 누렇고 새까맣게 변색한 뼈들이 수근이를 올려보고 있었다. 좌남우녀로 합장한다니 왼켠의 더 시커멓게 삭은 유골이 아버지, 오른켠의 아직도 흰빛을 잃지않고 있는 유골이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수근의 눈시울이 자우룩히 젖어들었다. 조막령감이 일렀다. 호미깽이 가져왔냐? 이제부턴 광차이(삽) 치우고 호미깽이로 긁어라. 살살 긁어얀다. “장보톨”을 묘혈에서 내보내고 수근은 혼자서 유골을 수습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조심 바닥을 긁었다. 수근이 니 아부지 상새날때(세상뜰때) 니들 지끔 나이보다도 더 아랠땐데  니 아부지가 하필이문 해토머리에 상새났거든. 뫼짜리를 잡겠는데 땅이 안 풀려서 쇠처럼 땅땅한게 당최 팔수 있어야지. 그래서 막 빵포(남포)질 해서 언땅 파헤치고 그랬지.  그래도 그때는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집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주는데 제사 한번 제대로 했지.  령감은 망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꺼내들었다.  수근이 호미로 굵은 흙알갱이를 헤치고 흙속에서 뽑아낸 뼈들을 몽당비자루로 흙을 말끔히 털어내고는 또 술로 씻어 신문지우에 하나 하나 펴놓았다. 에궁, 귀하신 뻬를 모시는데 신문찌라니. 요짐(즈음)은 참 벱(법)도 업는 세월이다.  처음부터 소나무아래 잔디둔덕을 등판 삼아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서 조막령감은 끝간데없이 잔소리를 했다. 그만큼 수근이가 서툴렀던것도 사실이다.  원체는 한지(韩紙) 나 삼베를 페(펴) 재이문 하다못해 봇낭기 껍질이라두 쫘악 벳겨서 그우에다가 뻬를 올려 놓는게 벱인데  담배때문에 기침이 터져나와 멈추었다가 그것도 잠간, 령감의 사설은 계속되였다.  수근이 급히 오다보니 한지를 살 새가 없어 그랬소꼬마. 또 요쌔는 어디가서 베천같은거 구할데두 없구. 그래두 서울에서 이렇게 한번 온다는게 간단치 않스꼬마, 남들은 뫼를 막 밀어버려두 모르는체 하는 판인데… 병태가 친구랍시고 수근이 편을 들었다. 하지만 조막령감은 유감천만을 감추지못해 했다. 원체는 한지에 뻬를 모셔 놓는고 말고도 죽은 사람 명정(銘旌)도 쓰는게 벱이다. 이장도 장례인데 명정을 써야지. 칠성판에 뻬를 다 주어놓고 마지막에 뻬에 명정을 덮어 내가는게지.  글고(그리고) 옛날엔 멜레(면례)하기 하루전에 미리 파묘할 뫼짜리에 가서 술과 과실을 차려놓코 멜레한다는 축문을 외운다. 요쌔는 뉘기두 축문같은거 쓸줄을 모르지만.  하기사(물론) 옛날 벱이 너무 다사(번잡)한것도 탈이겠지만 또 낡았다고 그 벱을 넘 안지케(켜)도 탈 난다. 낡았다고 함부로 막 던지고 그러는데 사실 낡은 겔(것일)수록 금처럼 빛이 더 난다는 고 간단한 도리를 요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요쌔 젊은이들은 너무 벱을 모르는게 탈이다. 하기사 사람이라 생겨 먹은것은 몽땅 혼궁기(구멍) 열렸는지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매삼질(안절부절 못하다) 해대니. 집안 꼴, 동네 꼴이 초상난 집처럼 저 줏쌀(꼴)이지… 축문에다 쓰는 그게 무슨 뜻임둥? 곁에서 삽에 묻은 흙을 모난돌로 긁어내며 잔일일망정 도와주던 병태가 물었다.  꼬치꼬치 묻긴 어째 묻냐? 네가 후날 멜레라도 하겠다는게냐? 이 말(마을) 당장 물에 잠길건데… 하면서도 조막령감은 오늘의 제주(祭主)인 수근에게는 이장절차를 소상하게 계수(继受)해 주었다.  유세차(维岁次) 감소고우(敢昭告于)… 그 축문이 무너 뜻인고 하니 오늘 뫼를 열어 옮겨 갈게니 토지신 아바이 좀 도와줍쏘사!하는 그런 말이지  수근은 밭은 기침소리에 뒤섞인 조막령감의 민속특강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우로 쏟아지는 령감의지청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뼈들을 열심히 줏고있었다. 호미로 긁고 비질을 하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유골에 묻은 흙과 달라붙는 벌레들을 제거하고 뼈조각들을 퍼즐이라도 맞추듯 빠치지않고 맞추었다.  이장 하재코(하지않고) 불에 태워 날릴게면 뻬를 한데 막 모아놔도 일(상관)없다. 다시 매장을 하게꺼든 손가락뻬 발가락뻬 한 도막이래두 섞지말구 순서있게 맞춰야지. 뿌서졌거나 토막이 난 뻬는 흩어지지 않게스리 가는 낭기 가지에 실로 묶어둬야고… 조막령감이 그렇게 말했지만 수근은 뼈 한조각 흘릴세라 낱낱이 주어 맞추어놓았다.  뼈를 들어내는 수근의 손이 저으기 떨렸다. 하나씩 들어낼 때마다 흙바닥에 숨 죽여있던 오래된 먼지와 냄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나같이 해빛을 싣고 바람에 실려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것은 선친들이 흘린 삶의 비늘이였고 숨결이였다.  하긴 그렇키도 하다. 세상 어데없는 길지를 골라 왕릉 부럽잖케 꾸메(며)본들 어쩌겠노? 썩어 문드러진 묌이 이승에 구불러 댕기는 개똥보다 못하이 다시 생각해 봄(보면) 후날 이러케 멜레고 뭐고 하누라 애 먹지 말고 뻬를 싹 태워서 날레(려) 보내는것도 옳타. 뫼짜리 만들어 논들 또 어쩌겠냐. 선산을 모시긴 고사하고(커녕) 싹 다 달아나 버려 한식이나 추석이 돼도 흙 덮어줄 사람, 풀 베줄 사람도 없는데.  앙가슴에 걸린 기침을 삭이느라 쌔근거리며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다 줏고 이제 어머니가 남았다.  어마이 내 왔소꼬마, 수근이 인제사 왔소꼬마 중얼거리며 수근은 두개골을 두손에 받쳐들고 찬히 뜯어보았다.  마을 목재가공소에서 함부로 기계를 만지다가 사고로 요절한 형님때문에 수근이는 늦둥이로 이 세상에 올수 있었다. 하지만 늦자식을 본 기쁨도 잠시, 아버지도 가슴에 묻었던 자식을 잊지못한듯 인차 뒤따라 갔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명도 모른채 어느 날 숨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형님은 물론 아버지의 형상은 수근에게 있어서 어디에 흘렸던지 떠오르지않는 가족사진앨범처럼 흐릿한 기억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슬픔보다는 죽은 아버지때문에 잘 차려진 제밥이 더 신나고 탐난 철부지 나이였던 수근이였다.  모두들은 형님보다도 수근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등그런 턱뼈 부근이 어머니의 턱선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햇감자색의 얼굴에 얼굴모양도 감자처럼 둥글은 감자장을 잘 끓여주던 어머니, 한국으로 떠나는 그의 손을 잡고 꼭 떠나야만 하겠냐며 눈시울을 확 붉히던 어머니, 미처 제사에도 오지 못해 제주 한잔 올리지못한 불효를 떠올리니 속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한낮의 열기를 받아 안은 두개골은 따듯했다. 두 손으로 보듬은 그 두개골에 낯을 붙이고 수근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무이, 어무이… 철 모르고 울어대는 뻐꾹의 소리같이 울음소리가 느닷없었고 그 느닷없는 오열은 깊었다. 병태가 묘혈속으로 손을 뻗쳐 수근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놔 둬라, 실컷 울게 놔 둬… 울고나면 명치끝에 박혔던 어열이 쑥 빠져 시원할게다. 그렇게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도 축축히 젖어있다.  령감이 백태가 낀 눈동자를 조막손으로 훔치더니 간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로회한 안면근을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성튼 몸이 북망산이 웬 말이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가도가도 끝도 없네 한이 없네 인생살이 너도가고 나도 가고 저승에서 반기세나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여가는 오래된 김치처럼 삭아 있었다. 느지럭 느지럭한 소리가 여름 새벽 달팽이 기여가듯 하면서 나오다가 후렴구에 가서는 소(沼)를 만난 폭포처럼 빨라진다, 시름 한숨과 설음이 한 움큼 담긴 상여가는 수근의 울음과 함께 했다.  내 어릴적에 말(마을)서 죽은 사람 상디(상여) 나갈때 하던 소리(곡)인데 원래는 이 보다 더 길다. 오랜만에 할라이(려니) 가사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네. 령감이 이 하나 없는 합죽한 입을 벌리며 처량하게 웃었다.  노래의 울림에 붙들려있던 수근은 눈물을 닦고 묘혈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은 한지나 삼베가 아닐망정  신문지 넉장우에 나란히, 고히 모셔졌다.     목요일: 명태포 그리고 사랑   병태가 가물가물 알려준 회사는 시가지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명태포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이름은 유한회사라고 달았지만 실은 페교된 학교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철제대문우에 떠인 간판이 제법 컸다. 제품의 자호와 가공소의 전화번호가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다랗게 씌여져있다.  회사의 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은듯 했다. 마당에는 제품 운수용으로 쓰이는듯한,차체에 제품 자호를 새긴 봉고차가 주차되여 있고 건물벽에는 제품의 자호가 새겨진 포장박스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는 술안주로 명태포가 류행이였다. 생맥주에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였다. 옛적에는 골목길의 작은 잡화점들에서 생맥주와 명태포를 곁들어 팔았는데 그 맛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와 다방, 차집, 까페, 지어 레스토랑에서 까지도 아직도 명태포는 맥주안주 일순위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명태포 가공소들의 운영경기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왠지 명태로 국을 끓여먹지 포를 뜨는 경우가 적었다. 그래서 주말에 간혹 한잔으로 일독을 풀때면 고향의 명태포생각이 간절해지곤했다. 그 수요를 헤아려 가리봉동의 어느 연변에서 온 사람이 차린 식당에서 명태포를 들여다 팔고 있다지만 그곳까지 찾아가 비싼쪽으로 찾아 먹을 게제가 못되여 그동안 고향의 맛을 잊고 살아온 수근이였다.  통증이 호주머니속 이물질처럼 그냥 의식되는 옆구리를 지긋이 누르고 수근은 이곳까지 찾아왔다.  고향에서만 볼수있는 고약딱지 “호골고”를 옆구리에 붙혔다. 애초에 한국으로 보따리장사를 나갔던 사람들은 우환청심환이며 “호골고”따위를 들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런 약은 지금 출국뿐만아니라 시중에서도 판매가 금지되여있었다. 병태가 집구석에 고히 감추어두었던 그렇게 효험있는 고약을 찾아내 붙여 주었지만 통증은 막을수 없었다. 아마 뼈를 다친것 같으니 한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라고 병태가 권했다. 하지만 수근은 그럴 기분이 없었고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저 운나쁘게 당한 자신을 원망할뿐이였다. 한국에서 일하다 다쳐도 웬만한 상처는 견디며 악착같이 일해 온 그 관습이 못 견딜 아픔을 견디게 해주고있었다.  마치 듬성듬성한 징검다리를 건너듯 수근은 조심스럽게 회사마당으로 들어섰다. 가공소라고 패말이 달린 곳에서 인기척이 났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유리창너머로 들여다본 가공소안의 풍경은 분주했다. 작업대에 마주앉아 수십명의 녀공들이 마른 명태의 대가리며 지느러미며 꼬리들을 가위로 자르고 비닐 포장지에 담고 있다. 머리에 위생모자를 얹고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팔에 토시를 두른채 가위며 손칼로 명태의 몸퉁이를 분리하는 녀공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쭈볏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가공소의 문을 노크했다. 노크소리가 낮았던지 동정이 없다. 다시 한번 힘주어 노크를 했다. 이번에야 들었던지 녀공 하나가 나왔다.  혹시 여기 명월이라고 있습니까? 과수마을에서 온… 그말에 일본새대로 나왔던 녀자가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스크속 녀자의 안면 근육이 얇게 일그러졌다. 녀자가 휘청거리는듯 벽에 어깨를 기대며 섰다. 다가오는 정오의 해빛을 수직으로 받아서였던지 녀자는 몹시 지친듯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다듬다가 만 마른 명태가 그대로 쥐여져 있었다. 야윈 몸체에 비해 손마디가 부은 듯 굵어보였다. 녀자가 위생모자를 쓴 이마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수근은 놀랍게 지켜보았다.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를 헤치며 녀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수근의 입으로 헛바람같은 비명이 새여나왔다. 눈앞에 선 녀공이 다름아닌 수근이가 찾고저하는 명월이, 바로 그의 전처 명월이였다. 꼭 11년만에 보는 명월이는 보름달같던 어제의 얼굴을 잃고 있었다. 사위인 초승달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 보였다. 더우기 푹꺼지고 언저리가 거뭇해진 우묵눈이 그 어떤 고충을 보여주는듯 했다.  명월은 아무말도 없이 우묵눈을 들어 수근이를 쳐다만 보았다. 눈동자는 깊었다. 그것은 마른 우물처럼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녀자의 말없는 입술이 움찔움찔 울음을 품고있었다. 그 눈길의 고문이 두려워 수근이는 다급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들애를 한번 보고싶다고 했다. 혀아래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욱이, 우리 욱이를 한번만 보고싶어서…  순간 녀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솟아올랐고 손이 수근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욱이?  그 드센 손길에 수근은 볼을 감싼채 어정쩡해 있었다. 명태로 후려갈긴지라 수근의 뺨에 벌거죽죽한 얼룩이 지나갔다. 명월의 안면이 우그러지더기 급기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명월이는 무너지듯 그자리에 쭈그리고 앉더니 두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톱질하듯 어깨를 들썩이며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서러운 울음에 한마디만 잘라내 복창하싶이 담아냈다.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어?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냐고, 당신이… 깊은 오열이였다. 그 오열이 너무 깊어서 수근은 그녀를 달래지도 못했다  울음소리에 녀공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일부는 명월이를 달래고 일부는 수근이를 에워쌌다.  누굽니까? 당신? 녀공들이 세괃게 따져 물었다. 불량배 보듯한 수십쌍의 눈길들이 수근의 전신을 더듬었다. 그녀들의 눈길에 어려있는 적의에 수근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밝힐지 몰라 땀을 흘렸다. 내가 저 울고있는 녀자의 전남편이요.하고 밝히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때 녀공들의 틈새를 비집고 남정네 하나가 나왔다.  됐쏘. 쭝우(中午) 다 됐쏘, 모두 들가서 밥이 먹쏘. 거쿨진 몸매에 목소리가 우렁찬, 매우 적극적인 인상을 한 그 남자의 말에 모두가 수근이를 에워쌌던 울바자를 풀었다. 녀공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명월이도 가공소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는 그녀의 어깨가 아직도 딸국질하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 여기 책임이 맡은 경리라 했쏘. 어째 밍웨(明月) 찾았쏘? 밍웨 찾아 무슨 일이 있어 했쏘?  웃자란 보리밭처럼 무성한 구레나룻 사이에서 내비치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한족남자는 조선말을 제법 구사하고 있었다.  수근은 뭐라고 운두를 뗄지 여전히 머뭇거렸다. 옷깃을 매만지며 머뭇거리는데 호주머니속 담배가 만지워 졌다. 담배를 꺼내 경리라는 그 사람에게 권했다. 남자가 머리를 젓더니 호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냈다. 벌건 포장지의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 수근에게 권했다. 수근이 그 담배를 받아 들었다. 쩔꺽하고 라이터가 코앞에 다가왔다. 불을 붙여 몇모금 련이어 빨았다. 그러다 독한 담배연기에 수근이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봉고차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유난히도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는 용건이 뭐냐고 자꾸 따져 물었고 하필이면 이 한족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수근은 허둥거렸다. 자신이 뱉어낸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묽어지고 희박해지더니 정오의 해살속으로 사라지는것을 수근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 십년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나날들은 수근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애초에는 안해 명월이가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지금보다는 더 광분에 넘쳐, 출국이라는 좁은 소로에서 농약먹은 송사리떼처럼 몸부림쳤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출국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그런데 리혼수속까지 하면서 감행했던 출국은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고 대신 크게 기대를 안했던 수근이 쪽이 먼저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내라도 먼저 들어갈께 인차 따라오오. 하면서 먼저 나갔지만 안해는 또 한번의 출국시도에서 가짜 비자가 들통나 인천공항에서 발목 묶였고 그렇게 문전에도 못가 닿고 여러번의 축객령을 받고나니 종시 출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근이는 수근이 대로 한국에서의 고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막상 서울땅을 밟고나면 무릎아래 지페장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려니 했지만 막상 무릎팍만 멍들고 깨졌을뿐 그들의 앞길에는 가시밭길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무지개 꽃밭만은 아니였다오!  아까 명월이의 울음섞인 타매에 이렇게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말을 수근은 꿀꺽 삼켰었다. 친지들 눈에 수근은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수근이를 마치 비극의 원흉이기나 한듯이 끔찍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서울에서의 나날은 수근에게서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두 얼굴의 시간대였다.  11 년 여를 보낸 꽉 막혀 있던 세월.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던 극한의 나날들이여다.  애초 일을 시작했을무렵에는 고된 일은 그런대로 견딜수 있었지만 참기 어려운건 동족지간에도 꺼리낌없이 행해지는 몰리해와 멸시였다. 공사장에서 사장님은 물론 다같이 노가다에 혹사하는 같은 직종일지라도 한국이들은 고국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온 그들에게 “똥포”놈들이라 폭언을 퍼부었다.  마흔살 되도록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욕설을 삼태기로 퍼부으면서도 사장님은 나의 욕이 니들 시골닭들에게는 인생에서 비타민이 될거야!라고 비죽거리며 말했다. 그 비굴과 모멸의 “비타민”을 매일처럼 삼키며 오로지 고향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일했다. 불도가니속에서 세멘트포대를 숙명처럼 짐져나르고 벽돌과 타일을 희망처럼 쌓고 붙혔다.  그러던 어느날, 십여층 높이에 결어 만든 비계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려 타일을 붙이던 중국에서 온 로무자 둘이 추락사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이 일자“비타민”사장이 그날밤으로 잠적해 버렸다.   동포모임과 서울의 교회들에서 적극 나서 해결하려 했지만 시간만 끌다가 미해결, 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몰지각한 한국 사장님들에 의해 로임체불은 그후로도 여러번 되풀이 되였다.    왜 유독 나만 바라고 번개치고 소낙비는 쏟아지냐! 개탄하며 수근은 술독에 자맥질해 들었다. 막판 뒤집기로 목돈 한번 뽑아볼양으로 여기저기서 꾸어대여 스크린 경마도박에 붙었다가 그만 감당못할 천문수자같은 빚에 깔렸다. 빚재촉을 피해 강원도 치악산자락에까지 숨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알콜중독 기미를 보였고 교회에서 꾸리는 자선단체에서 하루이틀 연명하다가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리고 다시 일에 열심을 보인것도 겨우 몇해전, 그렇게 걸채이고, 넘어지고, 기고, 일어나기까지 십여년 세월이 경마장의 종자말처럼 눈깜짝 할사이에 눈앞에서 달려지나갔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로무의 길을 열었던 집에서는 통화할때마다 빚에 졸려 울상이였지만 그 동안 수근은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만 기다려! 일자리 바꿨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봐! 하고 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들들 볶던 소리는 나중에는 원망으로 번졌고 절규로 이어졌다. 매번 전화저쪽에서 찌르륵거리는 교신음에 섞여 터져나오는 안해의 목갈린 절규가 무서웠고 귀찮아져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러다 종내는 가짜 리혼이 진짜 리혼이 되여버렸다. 안해와 련계가 끊긴지 7년째 되던 해, 로무차로 한국에 나온 고향사람에게서 안해가 개가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것이다. 비록 련계를 끊은건 그 자기쪽이였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수근은 자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얼빠져 버렸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켰다.  어쩌면 잡을 만한 지푸라기 한 오라기도 없이 끝 모를 절망의 물너울에서 허우적거렸던 나날들, 그 나날들을 누가 알아줄가!  그렇게 입밖에 내기조차 싫었던 그동안의 힘겨운 나날에 대해 수근은 처음보는 한족사내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하고싶지않은 이야기였지만 변명처럼 하고나니 외려 속이 후련했다.  수근의 말을 들어주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말도 없이 가공소로 들어갔다. 이어 다시 나온 그의 손에 고량주 한병과 명태포 두개가 쥐여져 있었다. 사내가 건네는 명태포를 받아들었다. 부욱 찍어 입에 넣었다. 구수했고 들척지근했다. 역시 고향의 음식은 설명으로는 불가한 그런 맛이 있었다. 사내가 유리컵에 술을 반쯤 부어 수근에게 권했다.  코생이 많이 했쏘.  수근은 그 반컵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명태포를 안주로 수근은 연신 잔을 비웠다. 몇잔을 더 거치자 독한 술에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을 한번 쓸어내리며 한족사내가 수근이를 찬히 지켜보았다.  내 한마디 말이 하까? 스스로 컵에 술을 부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한족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우리 중국말 속담에 “급하면 따뜻한 두부는 먹을수 없다”는 말이 있쏘. 당신들은 어째 누구나 다 그리 쪼우지(着急)해 했쏘?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해쏘? 써울(首尔)이다 르을번(日本)이다 가고 그리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波) 메이라, 푸무 쓰(死)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우리 중국말 속담에  “새는 먹이에 죽고 사람은 돈에 죽는다”는 말이 있쏘.  요즘부터 산이 밭이 카이파(开发)하면서 보상이 많이 해주는데 조선족들이 눅거리해서 밭이 다 넘겨주구 이제 와서 땅 치며 후회해쏘. 후회 한들 소용없다 해쏘. 완라(晩了). 세상에는 후회약이라는거 없다 해쏘.  난 당신들이 “호로박에 무슨 약이 담갔는지(葫芦里装什么药)?” 부즈또(不知道)해쏘. 정말 부즈또 해쏘…  수근이는 술때문에 아닌 다른 갈증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할말이 몽땅 증발된것 같았다. 한족사내의 일장 훈화를 들으며 수근은 아무런 항변도 할수없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도 호로박에 무슨 약을 담그어 왔는지 담그려는지 알수 없을때가 있었다. 고된 로무에 혹사하는 와중에 자신도 시시때때 생각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에 명쾌한 확답을 줄수 없어 했다. 눈앞의 리익에만 근시안이 충혈되여 아예 답 같은것을 생각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말도 못하고 수근은 그저 명태포만 체념처럼 울근울근 씹어 댔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밍웨는 지금 헌씽푸(很幸福), 헌씽푸하니까 근심이 아니해도 됐쏘.  수근이 멍하니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런 수근의 눈길을 마주보며 사내가 말했고 그 입에서 튀여나온 말의 파편이 수근의 귀속을 아프게 관통했다. 밍웨는 지금 내 로우퍼(老波)니까!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잠간동안이나마 수근은 아득해질수 밖에 없었다. 금방 마신 소주의 취기가 그제서야 뭉게뭉게 올라왔다.    톱니바퀴처럼 세상은 여전히 이가 물려 돌아가는데 자신을 감고 도는 피대줄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다.  왠지 아주 오래 전에 앓았던 치통처럼 불쑥 치밀어 오른 통증이 수근의 가슴을 훒었고 부지중 비명을 흘리며 수근은 고약딱지를 잔뜩 붙인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금요일: 스케트 보드   조붓한 수로를 비집는 물고기떼처럼 교문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학교 문앞은 삽시에 시끌벅적해 졌다. 갑작스레 비좁아진 학교 앞길로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곡예를 하듯 서로 비켜갔다. 교문을 나선 아이들은 곧장 학교 근처에 올망졸망 들어앉은 문방구에 들어가거나 김밥집, 운남 쌀국수집, 오징어 꼬치집으로 들어갔다. 더러는 핫도그나 오징어 꼬치, 붕어빵을 입에 물고 길거리에서 먹는 아이들도 있다. 교문곁에서 수근은 수위아저씨마냥 두눈을 지릅뜨고 많은 수효의 아이들을 낱낱이 헤아렸다. 수근은 지금 오전내내 아들애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중간체조 시간에 아이를 잠간 만났었다.  아침 첫뻐스로 시가지로 나와 명태가공소의 한족경리가 일러준대로 학교를 찾았고 학교수위에게 애의 이름과 반급을 댔다. 수위가 안된다고 잡아뗐다. 한국에서 십여년만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고 간곡히 요청을 들었다. 그의 간청이 통했던지 수위는 지금은 수업중이니 기다리라고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꼬박 기다려 중간체조시간이 되였다. 수위가 반급 선생에게 일렀고 반급 녀선생이 아이 하나를 렬을 지은 아이들속에서 점명해 내더니 교문쪽을 향해 어깨를 떠밀었다. 아이가 쭈볏거리며 다가왔다.  니가 욱이구나. 아이를 반기는 수근의 목소리가 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졌다. 누가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가려볼수 있을만큼 아이는 수근을 판박이로 꼭 떼닮고 있었다. 반양머리에 얼굴 구멍새가 큼직큼직했다. 게다가 피부도 수근이를 닮아 옻칠을 한것처럼 검었다. 네살때 두고 떠난 녀석은 가을 맨드라미처럼 키도 훌쩍 자라 수근이의 머리높이를 넘었다. 턱아래 울대뼈가 도발적으로 도드라졌고 코밑도 제법 감실했다.  어쩌면 애비없이도 잘 자라준 아들이 고마웠고 한편 그동안 아비로서 빈자리를 보여준 자괴감으로 수근은 숙제못하고 선생앞에 불리워 나간 학생처럼 어깨가 숙어졌다.     안해의 이름은 달이고 아들의 이름은 욱(旭)이, 솟는 해였다. 하지만 그 달과 해의 궤적에 수근은 자신의 행보를 맞추지 못했다. 누구져? 애가 이마살을 모으며 물어왔다. 내가, 내가 니 애비다. 부끄러워 뱉을수도, 그렇다고 넘길수도 없는 수박씨의 딱딱한 감촉처럼  입안에 따글따글 굴러다니던 말을 수근은 한 옥타브 낮은 소리로 내뱉았다. 급기야 말까지 더듬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을때 아이의 주먹이 자기 이마로 올라갔다. 어쩌면 제수체어도 수근이와 꼭 같았다.  아이는 이마를 자근자근 두드리며 휴일의 단맛을 깨뜨리며 함부로 남의 집 초인종을 울리고 낡은 신문 있소?하고 묻는 페품수거꾼을 보듯이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명월이가 집에 돌아가 얘기하지 않았던지 아이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등장이 놀라웠고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것인지하는 뜨악한 기색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이마에 주먹을 얹은채 아무말도 못했다. 굳게 닫힌 입매로 인해 둘의 분위기는 어정쩡했다. 아이가 불현듯 몸을 휙 돌렸다.  체조해야죠. 체조시간인데… 아이는 한마디 뱉고는 체조대오를 향해 뛰여갔다.  중간체조가 끝났지만 아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나지않았다. 그래서 수근은 점심시간까지 꼬박 교문앞에서 기다린것이다. 아이들속에서도 훌쩍 큰 키로 맨드라미 홀씨처럼 홀홀히 떠가는 아이를 수근은 보았다. 수근이 다급히 달려가 애의 애의 손을 잡았다. 정오의 해볕이 머물러 반짝이던 애의 얼굴이 금세 흐려졌다.  왜요? 여기서 뭘하세요? 아직도 가지 않고? 애가 짜증을 드러내며 물었다. 널 기다렸다! 애가 또 왜요?고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애의 어투는 감격어린 느낌표가 아니라 도전적인 물음표뿐이였다. 아들애를 만나면 하고픈, 생각해둔 말이 많았지만 막상에 애가 반문하자 순간에 잊어져 그저 점심이라도 맛있는 쪽으로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 친구들과 먹을건데요. 아들은 한켠에서 기다리고있는 애들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말을 뱉기와 바쁘게 몸을 돌리는 아들의 손을 수근이 다시 한번 잡았다. 애가 손을 뿌리쳤다. 그 뿌리침이 생각보다 드세여 수근은 잠간동안 멍해졌다.  애의 거부는 드세였고 그 눈에서 적의같은것이 번쩍이는것을 수근은 놀라웁게 볼수 있었다. 손을 빼려고 몸을 틀려는 애의 손을 수근이가 부득부득 잡았다. 그 무슨 몸싸움이라도 하듯 빨판처럼 잡은 그 손을 잡아떼던 애가 몸부림을 멈추었다. 막무가내라는듯 한 표정이 애의 볼에 머물렀다. 입술을 욱신거리며 씹어대던 애가 물음 하나 꺼내들었다. 점심은 됐고… 나 뭘 하나 사줄수 있어요? 그말이 수근에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수근이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사줄게! 하나가 아니라 열개라도 말해봐. 사고픈게 뭔데 아들애가 학교앞 광장에서 놀고있는 애들쪽을 가리켰다.  챙 모자에 통 넓은 바지 차림의 애들 몇몇이 로라스케이트인지 발구인지 같은것을 밟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애들은 얼음강판을 지치듯 날렵하게 맴을 돌거나 비상하는 새처럼 훌쩍 몸을 날리며 반공중에 뜨기도 했다.  나도 저런거 하나 사줘요. 스케트 보드(滑板)요.  학교부근에 대형체육용품전문점도 있었다. 애의 뒤를 묻어 그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애는 단박에 스케트 보드 매장으로 다가갔다. 요즘 애들중에서 스케트 보드놀이가 가장 류행이라고했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 수근이가 매장의 광고판에서 하늘향해 날고 있는 진짜 사람만한 크기의 스케트보드맨을 보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는 듣는둥 마는둥 온통 스케트 보드에 정신 팔려 있었다. 요즘 이런거 류행인데 부모가 한국 간 애들은 사고 못 간 애들은 못사요. 이거 꽤 비싸거든요. 애가 동문서답을 했다.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안 사줄래요? 아니 뭐 그런뜻이 아니고… 수근은 급히 지갑을 꺼냈다. 애가 원하는것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털었다.  출국한 부모가 한국서 돈 잘 부쳐주는 애들은 수입제 쪽으로 사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그저 국산제를 사요. 아이가 여러가지 가격대의 보드를 들고 점원보다 더 상세하게 그 성능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 알둥말둥한 보드에 대한 설명보다 출국한 부모와 출국하지 못한 부모로 등급이 지어지는 아이들의 판단방식에 놀라웠다. 가격이 저렴한 국산이 아니라 수입산쪽으로 사주었고 애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차마 입을 떼지못하는 보드 헬멧, 보드 의복, 장갑까지 세트로 큰 돈을 깨서 사주었다. 팔꿈치며 무릎보호대를 사는것도 잊지않았다.  아들애에게 난생 처음 뭔가 사주는 아버지였다. 수백,수천이 아니라 그동안 벌어온 뼈돈 모두를 통째로 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수근은 껌값 내주듯이 선뜻 아들애에게 내줄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가 맞긴 맞나 보네요. 이렇게 사달라는 걸 다 사주는걸 보니.  그제야 아들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벗겨져 있었지만 잇달아 내뱉는 말은 맹랑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나 니애비 맞다! 조심스레 그말을 뱉으면서 또다시 커다란 회한에 사로잡혀 수근은 아들애를 껴안으려 했다. 아들애가 몸을 훌쩍 피했다. 선물을 아름벌게 안고 체육용품전문점을 나서던 아들애의 입에서 또 한번 물음이 흘러나왔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반양머리우에 헬멧을 얹은 애는 락하산을 타고 핼리곱터에서 날아내려 현상범 앞에 총부리를 겨눈 특공전사같은 모습으로 수근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는 보드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가 카메라줌으로 끌어당긴듯 순식간에 다시 수근이 앞으로 돌아와 물었다.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 했다. 수근이가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 팔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 새로 산 스케트 보드는 애의 발에 접착테프로 붙인듯 했다. 눈앞이 현란하도록 몇가지 묘기를 보이고나서 애는 학교앞 골목길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욱아! 수근은 터져나오는 부름소리를 입안에서 갈무리했다. 아들애가 련속 던진 몇개의 물음덩이가 돌팔매처럼 그의 신상 곳곳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물음들에 신빙성있는 확답을 주지못하는 자신이 놀라웠고 스스로 야속하기까지 했다. 가슴 한복판으로 쏴르르르, 한 줄기 찬 바람이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서울의 어느 재한조선족 모임이 꾸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향의 이장통지뉴스를 보고 수근은귀향을 생각했다. 여태껏 고향을 잊고있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출처불명의 다금침이 수근이를 흔들어댔다. 망설임은 드디여 결심으로 굳어지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번졌다. 그래서 강산도 한번 돌아눕는다는 10여년만에 잊고있던 고향으로 왔다.  하지만 고향이란 가슴에 품고있을때는 따뜻하지만 실제 대하는 순간 그 온기가 식어갔다. 그 온도는 시간의 길이와 정비례하나 싶었다. 더불어 살과 웃음과 땀을 나눈 인물과 풍경들이 알량하고 뜨악하게 인멸되고 개조된것이 탓일가? 아니면 돈에만 매여 그 따뜻함을 잊고 찬피로 살아 온 무심함이 탓일가? 주먹을 이마에 올린채 수근은 학교앞에서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길우에 당혹에 잠긴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었다.     토요일: 수장(水葬)   온 몸을 끌어당길듯 잠잠하게 하지만 두터운 몸짓으로 유영하는 저 푸른 강줄기,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그 강은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있다.  고향산의 아래도리를 완만하게 감싸안으며 흐르는 강은 무심한 세월의 속내를 알아버린듯 무심하게 떠났다가 잠간 돌아온 사람에게도 젖은 몸을 오롯이 내맡긴채 무심한척 흐르고있다.  수근은 강녘의 너누룩한 돌바위를 마주하고 앉았다. 화장터에 가서 2차화장을 하련다면 인차 뼈들을 화장해 준다지만 이틀채 찾은 화장터는 천국행의 티켓을 먼저 끊은 망자들로 초만원이였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그렇게 많은 죽음에 대해 장의관 홀에 서서 수근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아마 월요일쯤 돼야 순번이 차례질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래일 일요일이면 수근이가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장의사에게 매달리며 사정이야기를 거듭했지만 무가내였다. 세멘트독이 오른 손바닥을 맞부비며 초조함에 몸을 떨던 수근은 드디여 하나의 용단을 내렸다. 그리고 출국을 하루 앞두고 고향의 강으로, 두만강가로 나온것이다. 우선 물을 끼얹어 너누룩한 바위를 깨끗이 닦았다.  이 며칠을 분신처럼 함께 했던 트렁크를 열었다. 뼈들을 꺼내 깨끗해진 바위우에 하나 하나 올려 놓았다. 뼈들은 은근히 깊어가는 오전나절의 해빛에 옥양목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 뼈들을 한겻이나 지켜보다 수근은 손아귀에 품을만한 돌멩이 하나 골라들었다. 들숨 한번 긋고나서 수근은 돌멩이로 뼈들을 짓찧기 시작했다.  어떤 제물을 빻는 사람처럼 열심히 뼈들을 가루내였다.  강가에는 조화(弔花)라도 단듯 하얀 억새꽃들의 춤이 무성하다. 가끔 물새의 울음소리가 강가의 고요에 작은 구멍을 낼뿐 강가는 적연했다. 물새소리에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어있다. 그 소리때문이였던지 수근은 당금 울음이 터질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껴 왼손으로 하다보니 오전나절을 수근은 강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심히 육탈된 뼈를 빻았고 축축한 슬픔을 널어 말렸다.  가루가 된 그 뼈들을 손아귀에 담았다. 한웅큼 모래나 자갈돌보다 묵직한, 허망한 질감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그 뼈가루를 지켜보노라니 가슴이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쓰라림은 뼈를 다친 옆구리의 통증보다 더 진한 아픔으로 수근이의 전신을 휩쓸었다.  짜디짠 눈물을 촛농처럼 뜨겁게 흘리며 한 웅큼 가득 움켜쥔 손을 스르르 풀었다.  뼈의 조각들이 별찌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추억과 허무로 화석질이 된 덩어리들을 한 웅큼 한 웅큼 물에 흘려 보냈다.  물살에 휩쓸리는 뼈의 파편들은 직사하는 해볓을 받아 물속에서 조가비처럼 빛났다. 그 뼈들이, 빛쪼가리들이 물살에 빨려드는것을 수근은 낱낱이 지켜보았다.  수천, 수만개의 물비늘이 산란하게 시야를 어지럽히며 흘러가고있는 그 와중에도 수근의 눈길은 침점하면서 물과 한몸이 되는 뼈들의 마지막 길을 뒤쫓고 있다.     잊어버린것들, 잃어버린것들, 버림받은것들, 상처 받은것들, 용서를 바라는것들… 세상만사 모든것들이 저 강물처럼 흘러간다.  수근의 마음속에 응어리졌던것들이 강물의 흐름에 실려 뭉텅 뭉텅 흘러갔다.  옆구리를 잡고 수근은 몸을 일으켰다. 물새 한마리가 강가까지 나와 물에 부리를 박다말고 푸르르 갈대속으로 도망쳐갔다. 강의 흐름을 쫓던 눈길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시근시근한 눈을 씀벅거렸다. 하늘 모퉁이를 나풀나풀하게 장식한 하얀 깃털구름을 바람이 밀어내고 있었다. 구름은 비좁은 마을길을 빠져나가는 상여처럼 느릿느릿 떠가고 있었다.  며칠전 조막령감이 부르던 상여가가 생각났다. 사무치던 그 가사말이 또렷이 생각 나 수근은 나지막이 상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일요일: 뼈와 뼈끼리   공항 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씨줄이 마르건만 오늘도 공항에는 여전히 고향을 뜨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그들의 얼굴마다는 그 어떤 기대감, 불안감으로 혼효(混淆)되여 설레임의 파장이 홍조처럼 머물고 있었다. 수근이도 떠날 시간이 되였다. 그날 이장을 마치고 텅빈 묘혈을 내려다 보면서 수근은 이장하는것은 죽음을 수습하는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두니 또 한번 떠나는 자신에 대해 용서가 되는듯 했다.   병태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불편한 몸으로 나오지 말라고 만류해도 이제 보고 언제 또 보려나 하면서 소경 매질하듯 후둘거리며 굳이 나왔다.  텅 빈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몸으로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가는것을 혼자서 지켜보았을 친구가 수근은 안쓰럽기만 했다. 수근은 맨 웃쪽 단추를 잃어버리고 실밥만 남아 깃이 벌어진 친구의 와이셔츠 앞섶을 자꾸만 여며주었다. 명월이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네 어머니의 병간수를 도맡아 했고 세상뜬 다음 장례도 명월이가 혼자 손으로 다 치렀다. 물론 욱이도 명월이 혼자 힘으로 키운거지. 궁여지책으로 한족남자에게 얹혔다만 잘 살고있으니 그나마 잘 된 일이 아니겠냐.  친구의 위안의 말에 오히려 수삽해 나는 기분을 주체할수 없어 수근은 말머리를 돌렸다  확장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감? 그 저수지…  기성 사실로 다가왔지만 이제 곧 물에 잠길 마을이 수근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나는 이대로 또 떠난다만 넌 어쩔거니 하는 괘념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걱정이 가시지않은 눈길로 수근은 친구를 지켜보았다.  괜찮타, 우리집 논이 그대로 있어 개발이 시작되면 꽤 보상받을거니 그 돈으로 흥떵거리며 잘 살거다. 모른다 수근이 니보다 내가 더 잘 살지도.  그래 제발 잘 살아라. 친구야. 그러지뭐, 그 돈으로 좋은약도 쓰고 그래그래. 시내가까이 자그만 집도 한채 마련하고 그래그래 몽달귀신이 되기전 늦으막 이 몸이 처녀장가갈지도 모르지 그래그래. 세상물정 밝으신 우리 조막할배 모시고 오래오래 살거다 그래그래 두사람은 짛고 박고 말장난을 주고받았다. 서로 자꾸만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지만 스스로 듣기에도 어딘가 시원치 않았다. 때지난 구닥다리 유모어같은 말에 서로가 객적은 웃음을 짓고말았다.  갑자기 병태의 핸드폰이 울며 두사람의 석연찮은 리별을 깨뜨렸다. 핸드폰을 받는 병태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핸드폰을 다급히 수근에게 넘기며 병태가 말했다.  어떡하니 수근아? 욱이가 크게 다쳤대. 골과병원의 병실에 아이는 링게를 꽂은채 누워 있었다. 목에 깁스를 하고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공항에서 헐레벌레 달려 온 수근이를 명월이가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근이는 고향에 있는동안 련계를 위해 가공소 경리에게 남긴 병태의 전화로 아들애의 부상소식을 접한것이다.  수근은 병상으로 덮치듯 다가가 아이를 들여다 보았다. 링게를 맞으며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듯 잠결에도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이 떠나는 날 아니던가요? 아무말도 없었지만 침대가에 걸터앉은 명월이의 표정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요. 어딜 다쳤는데? 명월은 말없이 엑스레이 필림과 처방지를 내밀었다. 목뼈와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목뼈에 금이 가고 갈비 석대가 골절되였다고 적혀 있었다.  타지말라는 보드인지 뭔지 하는거 기예 타다가 저렇게 된거죠. 명월이가 원망조로 말했다. 수근은 잠시나마 정신이 아득해 질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처음 사준 선물때문에 아이가 크게 락상(落伤)을 당한것이다.  아이를 마주한채 두 사람은 그렇게 침대를 사이두고 앉아 있었다. 명월이는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신의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견고한 침묵이 어색해 수근은 엑스레이 필림을 쳐들고 다시 들여다 보았다.  필림에는 앙상한 겨울나무와도 같은 뼈들이 목판화처럼 각인되여 있었다. 그 겨울나무사이로 명월의 얼굴이 보였다. 필림너머로 본 명월의 얼굴은 흑백으로 바래져 있었다. 수근은 새삼 색바랜 어제를 돌이켜 보았다.  그때는 가난했으되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로를 껴안고 보듬으며 더 나은 래일을 깊이깊이 희구(希求)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제는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지칫지칫 가공소를 나서면서 수근은 저도모르게 뒤를 돌아다 보았다.그냥 그렇게 돌아나오기엔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끈끈한 느낌때문이였다.     명월이가 마당에 나와있었다 수근이를 눈바램하는 명월이는 벽에 기대여 상체의 자세를 놓아버린 모습이였다. 그 모습은  슬픔같은 물컹거리는것들을 딛고 있는듯 휘청이여 보였다.  모든 파탄 나버린 관계들의 복원과 재가동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제는 과거형을 쓰게 된,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지어야 하는 전처라는 관계에 새삼스런 서글픔이 느껴졌다.  어제는 함께 키워왔으나 이제는 너무도 멀리 사라져버린 꿈과 그것의 실현 불가능에 대한 인식때문에 수근은 갑작스레 고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떠나버린 고향을 다시 찾는다는것은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또한 도전이였다. 어차피 그곳에 남겨놓은 막연한 시간과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만나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 가 있든 고향의 비릿한 살 냄새가 그를 괴롭게 했다. 도무지 정이 다시  붙을것 같지 않던 가난한 고향은 그 냄새로 인해 때때로 그리웠다.  그래서 역마살을 달래듯 고향으로 돌아왔고 회귀성 어류처럼 그 옛날 자신이 걸었던 삶을 되짚어서 나가며 그 망각속 깊이에 묻었던 추억의 뼈를 기어이 파내여 뼈를 줏고 뼈를 나르고 뼈를 다시 영영 수장(水葬)했는지도 모른다.   명월의 가르마에 벌써 새치가 희끗희끗하다. 수근은 다만 지난한 삶의 마지막 고샅에 선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빌고 빌었다. 아이가 뒤척이더니 잠에서 깨였다. 몽롱한듯 수근이를 쳐다보던 아이가 비죽비죽 울기시작했다.  아파? 아이의 땀방울이 돋은 이마전을 쓸어주며 수근이가 물었다. 아이가 더욱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울면서 말했다. 다 당신때문이야. 당신때문… 수근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깁스를 하여 미동도 할수 없는 몸이지만 아이의 얼굴표정만은 살아 있었다. 그 표정이 보여주는 아이의 원망은 깊었다. 그렇게 자식에게 미움을 주고 원망을 키운 자신의 어제가 통감되였다.  미안하다. 이 애비가 미안하다. 어눌하게, 그렇게 수근은 말했다. 이 일주일간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 말이였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모자랐지만 또 그말밖에 할말이 따로 없어 이 생애 다 해야할 말을 미리 당겨다 쓰듯 그 말만을 복창에 복창을 거듭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콧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이장도 끝내 부모님의 육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은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몸을 숙이자 가슴이 구겨진 은박지같이 조여 왔고 통증이 송곳처럼 옆구리를 쑤셨다.  아픔을 참으며 수근은 아이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옆구리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형언길없는 아픔이 수근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몸 한 귀퉁이가 이지러지는것 같은 통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쌌다. 하지만 놓칠세라 수근은 아이를 꼭 보듬어 안았다. 뼈아픈 사람들끼리 뼈 아픈 몸을 껴안고 뼈 아픈 울음을 울었다.   월요일: 상 실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떠난지 11년이 되여 고향생각에 멀미하는 사람을 고향역에까지 실어다 주었다.  아직 스모그에 오염되지 않은 고향의 공기를 수근은 걸탐스레 들이마셨다. 공항에서 44선뻐스를 타고 장도뻐스역으로 향하던 수근은 생각을 고쳐 신문사역에서 내렸다. 허위단심 달려온 고향, 겨불내나는 가슴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이다. 바로 랭면이였다. 그저 복무청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 하나, 알뜰한 상표가 없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랭면이라는 대명사로 자리매김 된 그 청사의 랭면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복무청사 랭면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수근은 건너마을의 만월처럼 둥근 얼굴의 처녀와 첫 대면도 랭면집에서 가졌었다. 첫 대면에서 두 사람은 렴치를 내려놓고 국수그릇을 깡그리 비웠다. 어쩌면 식성도 맞았다.  아이를 배였을때 남들은 시쿤것이 먹고싶다했지만 그녀는 시원한 랭면이 먹고푸다고 했다. 그래서 무거운 배를 안고 뻐스를 타고 와서 곱배기로 먹었던 그들이였다.   한국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 날 랭면을 먹었다. 이제 이렇게 맛나는 고향의 음식을 언제면 먹어보랴는 심정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수근은 왠지 참을수 없는 공복을 느꼈다. 기내식을 먹었지만 왠지 소리치며 달려드는 공복감을 달랠수 없었다. 고향에 당금 닿게 된다는 달 뜬 상념에 고향의 음식이 못견디게 그리워 졌다. 타향에서 내내 마음의 공복을 키운 탓이리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첫 일과를 무엇부터 시작할가 생각이 많았던 그는 이제야 행동반경을 구한듯 랭면집으로 찾아나선것이였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 밟아 온 자기 냄새를 맡듯 수근은 익숙한듯 낯설은 이 시가지를 기억으로 헤맸다.  트렁크를 끌면서 묻고 찾고한끝에 도심의 광장에까지 대여 왔다.  광장 동쪽켠에 오래 된 랭면집이 있었다. 광장에서 동녘을 향한 순간 수근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수근은 망창한 기색으로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수근이가 찾고저 하는 랭면집이 보이지 않았다. 랭면집으로 이름높던 그 건물이 오간데 없었다.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듯 건물은 사라져 보이지않고 아픈 몸체의 내장에 생긴 공동(空洞)처럼 텅 빈 공터만이 그를 맞아주었다. 공터는 새로운 기초를 다지느라 성마른 기계들의 소음만이 무성할뿐이였다.  수근은 공터를 마주하고 얼음기둥처럼 그렇게 서버렸다…     “연변문학” 2013년 5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9    절단 댓글:  조회:2580  추천:11  2014-06-18
。 微电影 。 절 단   (미니시나리오)   김 혁 ... 황소 한 마리  지름뜬눈으로 관중을 본다  털부숭이 나그네 지릅뜬 눈으로 소를 본다  붉은 춘추내의를 입은 털부숭이 나그네가 고함 지른다  소가 영각한다  피의 분수  소가 쓰러 진다  소의 가죽을 벗긴다  소의 네 각을 뜯는다  소고기를 달구지에 싣고 시장으로 간다  소의 가죽을 피혁공장에 가져다 바친다   피혁공장차간에서 기계손이 소의 가죽을 절단한다  가죽을 붙힌다  드디여 형태를 이루는 빨간 소가죽구두  와중에 자막이 나타난다 "절 단" 빨간 소가죽구두를 신은 여자의 발이 어데론가 분주히 걸어간다.  정형미용원 간판이 클로즈업된다  수술대에 누운 여자  의사가 여자의 코를 절단한다  실리콘을 붙힌다  미용원에서 나오는 소가죽구두를 신은 발  클로즈업되는 여자의 코.  흰 가제가 붙여져 있다.   빨간 소가죽구두를 신은 발이 아스팔트길을 벗어난다  황토길에 오른다  오솔길에 오른다  사과배밭이 펼쳐 진다  사과배 가지를 절단하는 늙은이의 손  절단한 사과배가지를 배나무가지에 붙인다.  여자가 사과배나무아래 서서 전지를 하고있는 로인을 올려다 본다  여자의 코를 말없이 지켜보는 수염발 흰 로인  로인의 손에서 전지가위가 떨어져 나간다.  나무아래로 떨어져 꽂히는 가위 가위를 뽑아드는 손,  남자의 손이다  30대중반의 털부숭이 남자 가위를 로인에게 넘겨준다  남자, 여자의 얼굴에 자기얼굴을 가까이 들이 댄다  여자의 코를 유심히 들여다 본다  그러는 남자를 여자 콱 밀쳐 버린다.  남자 헤실헤실 웃는다 여자 과수원 곁의 막사로 들어가 버린다  여자 트렁크를 들고 나온다.  로인은 나무우에서 남자는 나무아래서 그런 여자를 지켜본다  과수밭을 되돌아보는 녀자의 눈  눈물이 고여 있다  다시 로인의 손에서 떨어져 내리는 가위  남자의 발등에 꽂힌다  남자는 아무런 감각도 없이 떠나는 여자를 지켜본다. 과수나무아래   로인과 털부숭이 남자가 술을 마신다  남자가 못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운다.  그러는 남자에게 로인이 술을 권한다  남자 울면서 받아 마신다  남자의 발에 그냥 가위가 꽂혀 있다. 털부숭이 나그네가 고함 지른다  피의 분수  소가 쓰러 진다  너부러지는 소를 보며 야릇하게 웃는 나그네  발에는 그냥 가위가 꽂혀 있다.  나그네 소의 목에서 박아넣은 칼을 뽑아낸다  발에서 가위를 뽑아든다  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나서 가위가 꽂힌 왼쪽 발을 들여다 본다  가위로 그 발을 찌른다  한번!   두 번!  세 번!  나그네가 발목을 떼여낸다  클로즈업되는 발  의족이다.   나그네 의족을 집어 팽개친다  한쪽 발로 절뚝이며 어데론가 걸어간다.  쓰러진 소  나 뒹구는 의족  소의 목에서 피가 슴배여 나온다  의족에서 피가 슴배여 나온다? 비가 내린다  비가 피를 씻어 내린다  비가 내린다  비속에 배가 떠있다  배는 넘실이는 파도에 실려 밤길을 헤친다  배의 선창밑에 한떼의 사람들이 불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 속에 코에 가제를 붙힌 얼굴도 보인다.  이때 밝혀지는 불빛  두리모자를 쓴 나그네의 얼굴 하나가 선창 입구에 나타난다.  나그네가 메가폰을 들고 무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선창속이 삽시에 수라장이 된다  순라선의 조명빛속에 하나 둘 련행되여가는 밀입국자들  홀연 코에 가제를 붙힌 여자가 경찰의 손에서 벗어나려 시악을 쓴다  경찰의 팔뚝을 문다  경찰이 비명지르는 사이 갑판 한쪽으로 도망간다.  총소리가 울린다.  여자가 다리를 붙들고 갑판우에 쓰러진다   병원  코에 가제를 붙힌 여자가 누워 있다.  침대곁에 클로즈업되는 빨간 소가죽 구두  한 짝 뿐이다. 과수원   로인이 과수를 절단하고 있다.  사과나무가지를 베여 배나무에 붙힌다  과수나무아래에 선 여자의 발  로인을 쳐다본다  로인도 여자를 내려다 본다  로인의 손에서 떨어져 내리는 가위  여자의 발에 꽂힌다  여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창백한 얼굴로 로인을 쳐다본다  사과배꽃이 하얗게 지천으로 피여있다. 황소 한 마리  지릅뜬눈으로 관중을 본다  다섯 살 동이 사내애가 지릅뜬 눈으로 소를 본다  붉은 춘추내의를 입은 사내애가 고함 지른다  소가 영각한다  피의 분수  소가 쓰러 진다  소의 가죽을 벗긴다  소의 네 각을 뜯는다  소고기를 달구지에 싣고 시장으로 간다  소의 가죽을 피혁공장에 가져다 바친다  소를 실은 달구지뒤에 사내애가 앉아 있다. 피혁공장차간에서 기계손이 소의 가죽을 절단한다  가죽을 붙힌다  드디여 형태를 이루는 아동용 구두 새 구두를 신은 아이의 발이 어데론가 분주히 걸어간다.  그 곁에 힘겹게 애을 따라가는 남자의 발 하나, 여자의 발 하나 네 개의 발이 발이 아스팔트길을 벗어난다  황토길에 오른다  오솔길에 오른다  과수원이 펼쳐진다  로인이 과일을 따고 있다.  세사람 그런 로인을 지켜본다  클로즈업되는 사과배 로인을 도와 사과배를 딴다.  사과배를 달구지에 싣고 간다   과일즙 공장  기계손이 사과배의 껍질을 벗긴다.  기계손이 사과배를 썬다  드디여 유리용기에 담겨져 완성품이 된 과일즙  종이 박스에 담는다  점착제로 박스의 뚜껑을 붙힌다.  와중에 제작 배우와 감독 시나리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오른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8    불량소년 댓글:  조회:2269  추천:15  2014-06-18
  . 시나리오 .     불량소년   김 혁 시놉시스- 고등학교 애 하나가 살인하고 경찰서에 자수한다. 죽인 사람은 자기 아버지다. 그의 친구들인《비디오공주》,《연변잭슨》,《뚱뚱컴》이 하나하나 경찰서로 찾아와 검문에 응한다.  그 과정에 성장기 한 소년의 마음의 여정을 따라 흔들리고있는 중국조선족공동체의 현황이 여실하게 펼쳐진다.  주인공 국영이는 어머니가 한국으로 품팔이를 떠나고 아버지와 함께 살고있는 고등학교 애이다. 그의 친구들인《비디오공주》,《연변잭슨》,《뚱뚱컴》모두가 아버지가 한국으로 노무를 나간 편부모 자녀들이다. 아침마다 간식용으로 요구르트를 챙겨주기도 하며 아버지가 자상하게 대해주나, 그는 어머니가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한국 가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고깝게 대한다. 하여 아버지가 아침마다 주는 요구르트를 넝마 줍는 거지에게 주어버린다. 아버지는 매일이고 비디오를 빌려 한국드라마만 본다.  자전거를 사달라는 그에게 구두쇠인 아버지는 중고품을 사준다.  아버지에 대한 국영의 불만은 점차 쌓여만 간다.  국영에게는 드라마나 요리 만들기에 집착을 보이는 아버지보다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세대주다운 아버지를 보기가 소원이다. 그 와중에 친구 《연변잭슨》은 중국학교로 전학 가고, 국영의 가정교사였던 《뚱뚱컴》의 할아버지는 조선족학교가 폐교된 뒤 울화의 술만 마시다가 쓰러진다. 국영의 꿈속의 연인이었던 안마 원 집 누나는 영업이 잘 안되어 한국으로 시집간다. 국영의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은 작문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이다. 입상자들은 한국방문을 갈 수 있고 그러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 친구들은 입상하나 그는 등수에 들지도 못한다. 울며 집으로 들어서던 그는 뜻밖에도 자기의 여자친구인 《비디오공주》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다. 밤, 국영은 요리를 즐겨하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프라이팬으로 잠든 아버지의 머리를 강타한다. 아버지를 헛간으로 숨기던 그는 뒤늦게 야 헛간에서 아버지가 사놓은 새 자전거를 발견한다.  국영이는 새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로 가서 자수한다. 구치소에서 국영이는 뭘 먹고싶으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한다.  국영이 눈물을 머금고 달기도  시기도 한 요구르트를 마신다.   등장인물-    국영- 주인공, 초중(고등학교) 3학년 학생, 어머니가 한국으로 노무를 떠난 편부모 학생  아버지- 국영의 아버지, 실업자 《비디오공주》- 주인공의 급우, 공부여가에 어머니의 비디오방일을 거들어 주고있음 《연변잭슨》- 주인공의 급우, 부모가 모두 한국으로 나가고 이모의 집에 얹혀 삼.                《지붕우의 미아(迷兒)》댄스 팀 팀장 《뚱뚱컴》- 주인공의 급우, 비만으로 고민하다 체념해버린 애.               주특기- 컴퓨터 다루기.  누나- 족발안마 원 안마사, 국영이네가 세주는 방에 족발안마 원을 차리고 있음 《뚱뚱컴》의 할아버지-  모 향촌 학교 원 교장  外《비디오공주》의 어머니 《연변잭슨》의 이모  댄스 친구들, 경찰, 넝마 줏는 영감     #1 파출소 취조실- (국영 철제의자에 앉아있다.  나이 지긋한 경찰이 들어선다. 국영 자세를 바로 한다.  경찰 의자를 끌어당겨 마주앉는다. ) 경찰: 왜 그랬냐? (국영이 경찰을 바라본다. 아무대답도 없다.) 경찰: (다시 묻는다) 왜 그랬냐? 국영: (마지못해) 그저요 경찰: (소리를 높인다) 왜 그랬냐고? 주인공: 그저요 (경찰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를 켠다. 라이터의 불이 일지 않는다. 경찰 라이터를 내던지더니 와락 달려들어 국영의 뺨을 친다. 한 대 한 대 치면서 말을 뱉는다.)  경찰: 내가 경찰생활 13년에 네 같은 놈 첨 본다. 우리 파출소에 규정이 있지. 범인을 함부로 구타 못한다는. 허지만... 매 한 대에 내 노임 한 장씩 날아나도 니같은 지아빌 죽이고도 뻔뻔한 후레놈 새끼 가만둘 수 없다. 가만둘 수 없어! (국영 부어오른 얼굴로 경찰을 쳐다본다 타이핑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신상명세가 자막으로 뜬다.) 별호: 《장국영》 성별: 남 연령: 16세 ××학교 초중 3학년 1반 범죄경위: 살인 (국영의  눈동자에 눈물이 괴어오른다.  국영의 흐릿한 시각 속에 화면이 바뀐다. ) #2 주방, 아침- (라디오 뉴스소리가 들린다  가스레인지에 불이 확 인다 칼 도마 위에서 식칼이 춤을 춘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전기밥솥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주걱으로 밥을 푼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수저를 챙겨 놓는다 익숙한 솜씨로 일을 마치고 일껏 마련한 아침상을 바라보는 사람, 아버지이다.) #3 침실- (침실의 벽에 붙어있는 홍콩스타 장국영의 사진 국영이가 마구 엎드린 채 아직도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아버지 들어와서 두드려 깨운다) 아버지: 국영아, 국영아! 해가 한발 떴다. 또 지각하곤 이 애비 탓하지 마라. (국영이 마지못해 일어난다.) #4 주방- (아침상에 마주앉아 풍성한 아침상을 시들하게 지켜본다.) #5  집 앞, 아침,-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는 국영 아버지가 따라나오며 무언가 쥐여준다.  요구르트이다.) 국영:(귀찮아하며)싫어요 아버지: 넣어둬, 세 번째 수업시간 끝날 참이면 얼시덩 먹어라. 몸에 좋으니깐. #6 거리- (달려가는 자전거  국영이 달리다가 호주머니에서 요구르트를 꺼낸다.) #7 길 녘의  쓰레기통- 국영이 팬더 모양의 쓰레기통 위에 요구르트 두 개를 가지런히 놓는다.  다시 자전거를 몰고 달려간다.  클로즈업되는 요구르트.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위로 자막이 뜬다) #8 파출소 취조실. (단아한 용모의 여학생이 앉아 있다.) 여학생: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머뭇거리다가) 걘 좋은 애였어요.  (여학생 말머리를 흐리며 흐느낀다.  타이핑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신상명세가 자막으로 뜬다.) 별호: 《비디오공주》 성별: 여 연령: 16세 ××학교 초중 3학년 1반 #9 비디오방, 낮- (《비디오공주》 대여 점에 앉아 비디오를 되감는다.  국영이 손에 테이프를 들고 들어선다.) 《비디오 공주》: 벌써 다 봤냐? 국영: (심드렁하게) 응. 《비디오 공주》: (비디오를 넘겨받으며) 뒤 부분 그냥 볼래 국영: (역시 심드렁하게) 응. 《비디오 공주》: 근데 넌 취미가 독특하다. 다른 남자애들은 비디오라면 성룡의 쿵후편 같은걸 보는데... 여자들처럼 《겨울연가》가 뭐니. (몸을 일으키며) 참, 나 일등 재밌는 걸 추천해 줄게 (선반에서 테이프를 꺼내어 내민다) 《반지의 제왕》 3이 나왔다.  국영: (머리를 젓는다) 그냥 보던 쪽으로 줘. (임대료를 낸다) 《비디오 공주》: (국영의 손을 밀친다) 그냥 넣어둬 동창끼리  국영: (매장 안쪽에 돈을 뿌려 던진다. 비디오방을 나서다 말고 문가에서) 사실 이 비디오 내가 보는 거 아냐.  《비디오 공주》: 누가 보는 건데? 국영: 울 아부지 #10 족도관 (足道館) 앞-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가던 국영 집 부근의《족도관》앞에 멈춰 선다.  안마사가 하얀 수건 수십 장을 빨래 대에 널고 있다.  빨래 대에 브래지어도 한 장 걸려 있다. 국영 멍한 눈길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안마사 돌아서다 국영이와 눈이 마주친다. 국영이 덴겁해 눈길을 돌리며 길 가는체 한다.  안마사 빨래를 널고 나서 《족도관》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해바라기 씨를 한 줌  움켜쥐고 깐다.) #11 건물 모퉁이- (국영이 건물모퉁이에 숨어 안마사의 모습을 넋 놓고 훔쳐본다.) #12 국영의 집- (아버지 비디오를 본다. 드라마《겨울연가》 보면서 아버지 눈물을 흘린다  국영이 자기 방에서 나온다. 아버지 급히 눈가를 훔친다.) 국영: (아니꼬운 어조로) 아부지, 비디오 이제 그만 보세요. 아버지: 왜? 국영: 하필이면 때 지난 《겨울연가》애요.  아버지: 네들은 몰른다. 얼매 잘 맨든 영환지. 남조선 사람들 영화 하난 정말 잘 맹근단 말이. 국영: 그럼 이제 다시 나에게 비디오 심부름 같은 거 시키지 말아요. 아버지: 그야 비디오방 네 같은 반 애네 집에서 하는 거니 그런 거지 뭐. 그 뭐더라 《비디오공주》인지 하는 애.  국영: 볼려면 이제 주제 좀 바꿔요. 남들이 웃어요. (아버지 그냥 본다. 국영 리모콘으로 비디오를 꺼 버린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방문을 소리나게 쾅 닫아 버린다.)  아버지: 허! 그 눔 참  (다시 켜놓고 본다.) #13 파출소- (귀에 헤드폰을 꽂은 애가 앉아 있다.  내레이션으로 곡이 흐르고 애가 곡에 맞추어 머리를 흔든다. 경찰이 들어오고 애가 덴겁해 헤드폰을 뺀다.)  남자애: 걘 나쁜 애가 아니었어요.  (타이핑 소리와 함께 신상명세가 자막으로 뜬다.) 별호: 《연변잭슨》 성별: 남 연령: 16세 ××학교 초중 3학년 1반 #14 옥상- (노래 소리 시끄러운 가운데  국영이 《연변잭슨》등 과 함께 댄스를 추고 있다.  곡이 끝나자 애들이 그 자리에 난간에 기대어 캔 콜라를 마신다.  《연변잭슨》: 이대로 하면 이번 학기 댄스콩클 등수 먹을 것 같다. (국영을 가리키며)국영이  브라보! 진보가 빨라. 국영: (시뚝해 하며) 내가 누구니? 장국영이 아니니. 이름만 봐도 음악세포 있는 거 알리 잖냐. 댄스친구1: 그래서 니 이름이 국영이냐? 너네 아부지가 국영회사서 짤리고서 국영회사 이름 달아 지었다던데 (일동 웃는다. 국영이 금세 시무룩해진다.) 친구2: 그래도 국영이네는 한국서 돈 부쳐보내는 엄마 땜에 이곳서 족발안마집도 차려놓구 돈 잘 버는 아버지에 호사 땡! 이다! 《잭슨》:  씨베, 또 족발안마냐. 한 집 건너 안마 원인데 댄스 친구1: 이곳 사람들 술집 말고 뭘 차릴 줄 아는 거 있냐? 한국 가서 떼돈 벌어 갖고 돌아와선 차린다는 게 술집이요 사우나 그리구 다방이지.  《연변잭슨》: 국영아 니 엄마 나간지 얼마 됐더라? 국영: 6년째다 《연변잭슨》:(댄스친구 1을 보고) 넌? 니 엄만 더 오래되지? 댄스친구 1: 비슷해 7년 댄스친구2: 울 엄만 어떻고. 니들 엄마 서울이면 울 엄만 대구다. (다른 친구를 돌아보며)정말 니 엄마도 대구 쪽이었지.  댄스친구3: 그래 아부지구 엄마구 한꺼번에 나갔지. 아버지는 배타고 엄마는 대구에서 일자리 찾구.  댄스친구 1: : 대구 나가는 판이야 대구! 어른들은.  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나갔어. 내가 유치원 대반 다닐 적에 나갔다. 어쩌지? 이제 부모가 어떻게 생겨 먹었던지 가물가물 잊어질까 하는데. 고아가 따로 있냐? 이런 게 바로 고아지. 댄스친구 3: 그래. 나도 전화로 아는 엄만 그저 목소리만 익숙해. 이제 그만 와달라고 전화로 애걸해도 안 와. 몇 해만 더 기다려라. 엄마가 떼돈 벌어 가지고 가서 그때 우리 잘살자 그러면서 댄스친구 1: 떼돈 벌어오면 또 어쩔 건데. 있어야할 때 없는 엄마가 그때가면 소용없을지도 모르는데 《연변잭슨》: 씨베, 여하튼 부모들 우리들과 마음의 번지수가 달라 댄스친구 1: 그래. 알고도 모를게 우리 부모 맘이야. 세모 돌인지? 네모 돌인지? 《연변잭슨》: 우리 부모들 모두가 정오 표를 내야 돼 국영:(혼잣말처럼) 그러고 보니 우린 다리 부러진 노루 한자리에 모인 거구나 댄스친구 1: 그러게 우리팀장이 팀 이름도 근사하게 지었지.《지붕우의 미아(迷兒)》 《연변잭슨》: (으스대며) 나야 뭐 춤 빼고 춤밖에 아는 거 있냐. 재미없어 모든 게. 그저 댄스 하나만 빼고. 그 왼 씨베, 아무런 맛도 없네 댄스친구 3: 근데 다른 팀은 어떤 쪽으로 준비한대? 댄스친구 2: 또 사랑 아니면 리별이겠지. 국영: 우리가 선제한 것도 그저 그렇잖아 결국 사랑이지 댄스친구 1: 야 근데 니들 그 《분노한 메주》팀 얘기 들어 봤냐? 댄스친구 3: 무슨 얘기?? 댄스친구 1: 《분노한 메주》팀 팀장하고 한 팀 애 좋아하는 거 댄스친구 3: 그 새침데기 같은 애하고  댄스친구 1: 그래 댄스친구 2: 하필이면 그 애하고 좋아 한다냐. 팀 이름처럼 꼭 메주 같은 넘 하구 댄스친구 1: 문제는 그게 아니고 댄스친구 2: 그게 아니고 뭔데? 댄스친구 1: 극 비밀인데 니들만이 알어. 나가서 말하면 절대 안돼 국영: 뭔데? 신비한척하며 그러니? 댄스친구 1: 고 새침데기가... 일동: 고 새침데기가? 댄스친구 1: 메주의 애기를 밴 거야! 일동: 얼씨구! 우와~ 그게 정말이야? 사실이야? 진짜야? 국영: 어른들 말에 얌전한 개  골로 빠진다더니 댄스친구 2: 확실해. 둘이 셋방까지 맡고 살았다는 정보가 있어. 《연변잭슨》: 좆나게 한심한 넘들. 걔가 몇 살인데? 울하고 동갑 아니야? 댄스친구 1: 울보다 한 살 더 많을까? 국영: 걔들 부몬 뭘 한다냐? 애들한테 관심도 없다냐? 댄스친구 1: 부모 같은 소리하고 있어. 출국한지 언젠데  댄스친구 3: 어휴 이제 어쩐 다냐? 걔들은? 댄스친구 1: 학교 그만 뒀잖아. 원인은 그거야. 《연변잭슨》: 가도 한참 갔구나. 좆나게 너무 갔어  댄스친구 1: 간 거야 그 애들 부모지 기실은 《연변잭슨》: 됐다. 씨베, 남 말 그만해. 걔들도 우리하고 같은 처지야. 사실 난 걔들이 부러워. 국영: 야 팀장 넌 또 왜 이래?  《연변잭슨》: 나도 걔들처럼 세집 나와버렸음 좋겠다.  댄스친구 1: 왜? 너 이모 잘 해주잖아.  《연변잭슨》: 잘 해는 준다만 아무리 잘한들 부모만큼만 하겠냐. 명색이 교원이랍시고 말끝마다 그저 훈계야. 훈계. 소리가 사이렌이애요 사이렌.   기실 이모네 쓰고 사는 집 울 엄마 부쳐보낸 돈으로 산 집이야. 그 덕에 불때는 집 스팀 집으로 바꾸고 신세 고쳤지. 그래도 날 은근히 시끄러워하는 눈치가 보이데.    내가 엄마하고 삼촌 사이에서 비빔밥처럼 비비 우며 살아야할 리유가 뭐야? 엉? 집 들어가기가 씨베, 정말 싫어. 아예 pc방 전세 내고 거기서 살가보다. 씨베, 나하고 함께 셋방 맡을 여자앤 없냐? 댄스친구 1: 큭큭, 셋방 집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떤 앨 또 미혼모 만들어 볼려고 국영: 됐다. 시시껄렁한 소리 그만하고 본제로 돌아가 댄스친구 2: 그래. 다른 팀 보다 더 나은 곡 선제하자 그게 화제였지. 《연변잭슨》: 여하튼 좆나게 신나거나 새로운 것이 보이는 쪽으로. 씨베, 사랑은 이젠 신물나. 그렇찮아도 귀찮아 죽겠는데 사랑이요 리별이요 이런 노랜 관두자. 관둬 국영: 이별은 더 싫은 거구 댄스친구 1: 그래. 지금 사람들 머리 싸매고 덤벼야 하는 주제는 싫어해 국영: 그럼 사랑이나 이별 주제를 빼고 어떤 주제로 춤을 만들어 보겠니 댄스친구 3: 이건  어떠냐?   지금도 이해할수 없는 얘기로   넌 핑계를 대고 있어 댄스친구 1: 아이고 증조구식이잖아 댄스친구 3: 아냐 가사를 바꿔 하는 거야. 출국만 하면 우리 자식들은 감감 잊어버리는 우리 아버지 엄마들께 하는 노래야. 노래 말에서 《너》라는 단어를 《엄마》로 바꿔 불러봐 - 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엄마가 지금 나 라면은   웃을 수 있니  혼자 남는 법을 내게 가르쳐 준다며  농담처럼 진담인 듯 건넨 그 한마디  이렇게 쉽게 날 떠날 줄은 몰랐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내게   슬픈 사랑을 가르쳐준다며  엄마는 핑계를 대고 있어 (애들이 공감하며 따라 부른다. 옥상에서 춤 무대가 벌어진다.  문득 춤이 둑 멎는다. 옥상입구에서 실팍한 여인이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그들을 노려 보고 있다. 애들이 일제히 《연변잭슨》을 바라본다. 《연변잭슨》: (낮은 소리로) 귀막아 이제 사이렌이 울린다.  이모: (째지는 소리로) 이 놈들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15 족도관 (足道館) 앞, 낮-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가던 국영 또《족도관》앞에 와 멈춰 선다.  노출이 대담한 옷을 입은 안마사가 수건을 빨래 대에 널고 있다.  국영 멍한 눈길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안마사 빨래를 널고 나서《족도관》앞 층계에 쪼그리고 앉는다. 해바라기 씨를 한 줌  움켜쥐고 깐다.  안마사의 눈과 집 건물 모퉁이에 숨어 훔쳐보던 국영이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국영이 덴겁해 도망친다.) #16 꿈 - 《족도관》앞 미모의 안마사 누나가 해바라기 씨를 까고 있다. 해바라기 씨를 땅에 버린다.  주문을 외운다. 해바라기가 집 높이처럼 자라나고 지붕 갓처럼 큰 해바라기 꽃이 핀다.   해바라기 꽃대를 돌며 안마사 누나가 관능적인 춤을 춘다 국영이 해바라기 꽃술 위에 누워 춤을 감상한다.  #17 파출소- (몸집이 실팍한 애가 앉아 있다.)  남자애: 걔가 그런 일을 치다니요. 걘 좋은 애였는데요   (타이핑 소리와 함께 신상명세가 자막으로 뜬다.) 별호: 《뚱뚱컴》 성별: 남 연령: 16세 ××학교 초중 3학년 1반 #18 《뚱뚱컴》의 집- (《뚱뚱컴》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아 있고 곁에 국영이 서있다. 초콜릿 파이를 먹으며 컴퓨터를 다룬다.  백두산 그림이 나오고 국영이와 중년여인의 사진이 나온다.) 국영: 울 엄마야. 미인이셔.    엄마가 부쳐준 돈으로 백두산 유람 갔었는데 웬일인지 천지를 못 봤어. 그후도 작문에서 대상 따먹고 또 집체로 갔는데 역시 못 봤지. 날씨가 유독 잘 해주지 않는 거야. 모두들 뜻깊게 천지 앞에서 가족 사진 남긴다던데... (《뚱뚱컴》포토샵으로 그림을 합성한다. 국영이 곁에서 초콜릿 파이 포장지를 찢어 넘겨준다. 맑게 개인 백두산 천지 앞에 국영과 어머니의 모습이 합성된다.)  국영: (흥분하며)《뚱뚱컴》 너 정말 천재야. 연변의 빌게이츠다. 저녁 내 한턱 쏘마. 양고기 뀀 사 줄게. #19 국영의 집- (국영의 컴퓨터 화면에 백두산 천지 가의 합성사진이 깔려있다. ) #20 주방- (술상이 차려져 있고 영감 한 분과 국영의 아버지가 대작하고 있다. ) 아버지: (술을 권하며) 김교장님, 우리 애 부탁합니다.  영감: (곁에서 국영과 놀고 있는 《뚱뚱컴》을 보며) 교장은 무슨, 그냥 뚱뚱이 할배라 불러주오. 학교 다 폐교되고 교장자리 말아먹은 지 몇 해 잘 되우다 . 영감: (아버지에게 술을 권하며) 성 쌓고 남은 돌한테 애를 맡겨서 감사하오, 자 한잔 받으시오.   아버지: (미안쩍게) 난 원래 술 담배라면 꼼짝 못합니다. (요구르트 병을 들어 보인다) 이것으로... (국영이를 부른다) 국영아, 네 와서 한잔 붓으려무나. 김교장이 네 가정교사 맡아주셨는데 (국영이 술을 따른다. ) #21 골목길- (아버지와 국영이 곤드레만드레 취한 영감을 어깨를 부축하여 바랜다. ) 아버지: (바래고 돌아서며) 촌 학교지만두 수학 올림픽에 애들 몇이나 키워보내신 선생이시다. 다 좋은데 술에 넘 착착해 가지고.  국영: 그러잖아도 학교 내는 돈이 많은데 이젠 돈 잔뜩 주고 가정교사까지 청하니... 아버지: 네 엄마 뜻이다. 그러게 공불 착실하게 해얀다. #22 주방-  (아버지 술상을 치운다) 국영: (주방 문가에서 멈칫거리며) 아버지 아버지: 왜? 국영: 저, 나 자전거 사고 싶어 아버지: 너 자전거 있잖냐. 아직두 탈만한 거 국영: 그런 증조구식 말고요. 지금 애들 다 타는 거. 아버지: 빨리 자라. 밤이 늦었다.  국영: (볼멘 소리로) 사줘요? 안 사줘요? 아버지:  이따가 보자 #23 뜰, 아침-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는 국영 아버지가 따라나오며 무언가 쥐여준다. 요구르트이다.) 국영:(귀찮아하며)싫어요 아버지: 넣어둬라, 세 번째 수업시간 끝나문 얼시덩 먹어라. 몸에 좋다는데 #24 거리- (달려가는 자전거  국영이 달리다가 멈춰서 호주머니에서 요구르트를 꺼낸다. 길 녘의 팬더 모양의 쓰레기통 위에 요구르트 두 개를 가지런히 놓는다.  넝마주이를 하던 영감 하나가 냉큼 요구르트를 가져간다.) #25 파출소- 《비디오 공주》: 걔가 아버지를 좀 싫어하는 눈치가 좀 보이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비디오만 본다고 좀 신경 쓰는 거 같았어요. #26 골목길, 밤- (비디오방에 네온사인 간판이 불 밝혀져 있다. 국영이 비디오 테이프를 든 채 창문으로 비디오방을 들여다본다.  《비디오 공주》홀로 앉아 책을 본다. 국영이 얼른 들어간다.) #27 비디오방 - 《비디오 공주》: (들어서는 국영을 보고 웃으며) 다 봤어? 재밌대? 국영: 몰라  《비디오 공주》: 뒷부분 그냥 본대? 국영: 응. 세 번째 다시 본다. 중독이야. 씨-  아낙네들처럼. (《비디오 공주》웃는다. ) 국영: 근데 넌 왜 그냥 혼자냐? 엄만 어데 가고? 《비디오 공주》: 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 하루종일 앉아 있으려니 오죽 답답하겠니 그래서 내가 좀 도우려는 거야.  국영: 아버지가 한국 가서 잘 벌잖아. 그만 두라 해. 요즘 비디오방들 잘 되는 거 같지도 않은데  《비디오 공주》: 엄마 맘이야. 아버지가 한국서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펄쩍하니 앉아 돈 깍지만 기다리겠냐며 그냥 하셔. 좀 힘들긴 해도 엄마 몫은 나와.  국영: 누구나 다 우리 아부지보다는 나아.  《비디오 공주》: 니 아버지가 어때서? 너한테 잘해 주잖아?  국영: 니들은 몰라! (비디오 방 둘러보며) 혼자서 무섭잖냐. 이제 밤마다 내가 와서 동무해  줄까? 《비디오 공주》: 걱정 붙들어 매셔. 난 괜찮으니 너나 잘하세요.  (국영 비디오를 빌려들고 임대 값을 치른다.) 《비디오 공주》: 됐다, 그냥 가져다 봐 국영: 이거 내가 보는 거 아니다, 그러니 울 아버지 돈이야. 《비디오 공주》: (웃으며) 참, 한 집안에서 뭐 네 돈 내 돈 있니 국영: 그래. 사실 울 엄마 돈이지. 울 아부진 한 게 없으니까 (《비디오 공주》의 어머니 비디오방에 들어선다.)  어머니: (국영이를 보고) 국영이 왔구나. 이젠 우리 집 단골이네.  (어머니 국영에게 테잎 하나를 건넨다. ) 국영: 먼데요? 어머니: 새 영화다. 아버지 가져다 보이셔. 보너스야. 뭐더라 《천국의 계단》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다. 국영: 아이고 이렇게 곁에서 구제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부지가 종일 비디오만 먹고사는 거지.  어머니: (웃으며) 난 그런 분들이 좋아. 그런 분들이 계셔야 우리 비디오방도 먹고 살 것 아니냐. 근데 국영아. 너 왜 자꾸 아버질 흉볼 가하고 그래? 그럼 못쓴다. 아버지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거야.  (국영 아무 말도 없다. 머리를 숙여 보이고 나서 비디오방을 나간다.) #28 족도관 앞, 낮- (국영이 또《족도관》부근에 멈춰 선다.  안마사가 수건을 빨래 대에 널고 있다.  국영 멍한 눈길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안마사 빨래를 널고 나서 《족도관》 앞 층계에 쪼그리고 앉는다. 해바라기 씨를 한 줌  움켜쥐고 깐다.  안마사의 눈과 집 건물 모퉁이에 숨어 훔쳐보던 국영이의 눈이 서로 마주친다. 국영이 덴겁해 도망친다.) #29 골목길- 안마사: (날래게 쫓아온다) 서랏! 서! 너  거기 못서? (국영이 멈춰 선다) 안마사: (국영의 팔뚝을 부여잡는다. 헐떡이며) 너였지? 국영: (떨떠름해서) 뭐? 뭐 가요? 안마사: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가자 니 부모한테 가 국영: (그냥 오리무중에 빠져) 왜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안마사: 가자 일단 니 부모들 앞에 가서 얘기해 (등뒤에 국영의 아버지가 나타난다.)  아버지: 내가 걔 부모요. 무슨 일인데 안마사: (깜짝 놀라며) 어머 주인님, (국영이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그럼 얘가 주인님 자제 분이셨어요? #30 족도관 응접실- (안마사 아버지와 국영에게 음료를 권한다.) 안마사: (어쩔 바를 모르며) 빨래들이 자꾸 잃어지는 바람에 아버지: 그럼 우리 앨 여자들 빤쓰나 훔치는 그런 나쁜 놈으로 안 모양이구만 안마사: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애가 날 보자 달아나기에...  아버지: (몸을 일으키며) 남의 귀한 자식 억울하게 몰지 말고 셋방 값이나 날래 무오. 보름이나 밀렸네 (국영이를 향해) 가자! 안마사: (국영이를 보고 낮은 소리로) 미안해! (국영이 빙그레 웃는다) #31 국영의 방, 밤- (《뚱뚱컴》의 할아버지 국영이의 공부를 지도하고 있다. 영감: 작문 짓기에 취미 있는 걸 보매 너 문학가가 소망이냐? 국영: 아뇨 그냥 써 보는 거예요. 나 대상 몇 번 먹었다구요. 이번에도 꼭 등수 들어야겠는데... 영감: 너무 상에 집착해도 못 쓰느니라. 국영: 대상이나 우수상타면 수상자들은 한국 갈 수 있대요. 그러면, 그러면 어머니를 불 수 있잖아요! (영감 사색에 잠긴다) #32 응접실-   (아버지가 영감 앞에 봉투 하나를 내민다.) 영감: 먼데? 아버지: 약소하지만두 약주 사 드십쇼. 우리 국영이 잘 해주시는데 영감: (돋보기를 벗으며) 내가 돈보고 이런 줄 아나.  아버지: (그냥 내민다.) 그래두... 영감: 우리 며느리가 시골에 혼자 있다고 모셔 왔소만은 솔직히 이 딱딱한 시내 사람들 속에서 내 얼마나 갑갑하겠소. 그래서 재미로 하는 거네.  아버지: (머뭇거리다가) 그럼 오늘저녁엔 이만하시고 약주나 한 잔 드시죠 영감: (화색을 띠며) 음 그건 괜찮아! #33 주방- (영감 거나하게 취해 있고 아버지 곁에서 요구르트를 만지작거리며 응수해 주고 있다.)  영감: (취기 어린 어조로) 50년 교령을 가진 학교였다우. 내가 마지막 교장이었지.   운동장 둘레에 백양나무 우거지고 하-얀 곱돌(滑石)이 박힌 화단에 백일홍이 곱게 피던 정말 정이 붙는 학교였는데... 아버지: 시골마다 있던 학교들이 이젠 옛말로 사라지는구먼요. 영감: (악청 지르며) 경신년 토벌 때 일본 놈들이 불질러 폐허로 만든 것을 다시 복구해 냈던 학교였어.  영감: (후둘 거리며 한 잔 비운다.) 그렇게 일본 놈들의 탄압 속에서도 식을 줄 몰랐던 우리 교육열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엉?  (영감 또 한잔 따르는데 국영의 아버지 말린다.) 아버지: 과하심다. 교장님. 오늘은 이만 하지요 영감: 교장? 학교도 지켜 못 낸 몸이 무슨 교장? 그냥 뚱뚱이 할배라 불러주오. 속이 타 들어가는데 이 눔 술이라도 마셔야지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 홀연 교가를 부른다)      구름이 흘러가는 언덕아래   두 겹 창문 아담한 작은 기와집   겨레의 얼을 키우는 우리네 모교... (《뚱뚱컴》이 들어온다. 할아버지를 당긴다.)  《뚱뚱컴》: (볼멘 소리로) 그만 마셔요. 몸도 좋지 않으면서 (국영의 아버지를 보고) 울 엄마가  이젠 술 좀 권하지 말래요. #34 골목길- (국영이와 《뚱뚱컴》이 할아버지를 부축해 모셔드리고 있다.  영감: (혀 굽은 소리로) ... 백양나무 우거지고 하-얀 곱돌이 박힌 화단에 백일홍이 곱게 피던 정말 정이 붙는 학교였는데.. #35 환몽- 학교마당에서 애들이 일매지게 줄 서서 할아버지의 훈시를 듣고 있다. 홀연 애들이 요술처럼 하나둘 사라진다. 할아버지의 격앙 높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성영화에서처럼 입만 뻐끔 인다. #36 파출소- 《연변잭슨》: ...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주지 않는다고 화내는 거 본적 있긴 한데요... #37 학교 대문 앞, 늦은 밤- (밤 복습을 끝낸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고 있다.  국영이와 《비디오 공주》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급우들이 둘의 다정한 모습에 휘파람을 불며 지나간다.  웃으며 자전거를 끌고 가던 국영이 문뜩 멈춰 선다. 뒤를 돌아다본다.   국영이의 아버지가 구석 쪽에 자전거를 끌고 서있다.  《비디오 공주》 급히 먼저 가버린다. ) 국영: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오지 말라는데 왜 또 왔어요? 유치원 애인가 뭐 아버지: 그래두 밤이 깊어지면 위험해  국영: 뭐가 위험해요? 아버지: 빨리 가자, 내 맛있는걸 잔뜩 만들어 놨다. 우리 아들 영양보충 단단히 시켜야지.    #38 밤거리-  (국영이 혼자서 자전거를 빨리 타고 간다. 아버지 힘겹게 따라온다. ) 아버지: 누가 쫓냐. 좀 천천히 타라. 넘어질라. 국영: (그런 아버지를 보다가)  아부지. 우리 내기해요. 누가 더 빨리 타나. 내가 이기면 자전거 사 줘야 해요.  아버지: (생각하는 듯 하다) 좋아. 대신 내가 이기면 올 기말고시  10등 안에 등수 드는 걸 약속해라.  국영: 좋아요! #39 네거리-  (두 사람 필사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국영이 조금 앞서 가는 듯 하나 아버지 겨우 따라 잡는다.  슬로모션으로 달리는 자전거.  밤 깊어 조용한 가로등 밝은 거리에서 두 사람의 웃음이 구은다. ) #40 꿈 - 국영이 아버지를 앞지르고 자전거를 탄다. 오토바이를 앞지른다. 승용차를 앞지른다. 모두들 국영이를 놀랍게 지켜본다.  새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가는 국영이.   멋진 자전거는 바퀴가 네 개이다. #41 국영의 집, 아침, -  (뜰에 자전거 한 대가 놓여져 있다.)  국영 : (버럭 소리지른다.) 누가 남이 타던 중고품 사 달랬어요? 아버지: (걸레로 꼼꼼히 닦으며) 이거 새것과 마찬가지야.  국영: 지금 자전거 뭐가 비싸다고 그래요? 똥값이에요. 똥 값! 남들 우리 집 돈 많은 줄을 아는데 중고품이나 타고 다니니 내 체면이 막 구겨지잖아요.  아버지: (사색이 되어) 돈이란 거 아껴 써 낭패 없다. 하물며 어떻게 모은 돈인데. 니 엄마가 외국 가서 피땀으로 번 뼈 돈 아니냐!  (국영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끌고 간다. 아버지가 따라오며 싫다고 뿌리치는 그의 호주머니에 요구르트를 넣어 준다. ) #42 거리- (국영 달리다가 멈춰서 호주머니에서 요구르트를 꺼낸다. 길 녘의 팬더 모양의 쓰레기통 위에 요구르트 두 개를 가지런히 놓는다.  넝마주이를 하던 영감이 또 요구르트를 가져간다.) #43  옥상, 한낮- (애들이 댄스에 열기를 올리고 있다.  댄스가 끝나자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운다.) 국영: (《연변잭슨》을 보고)나도 한 대 주라 《연변잭슨》: 희한하네. 오늘은 어찌 된 일이냐. 이제 기저귀 갈았니?  (국영 서투르게 담배를 붙여 피운다.)  《연변잭슨》: (국영이를 보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국영: (연신 기침을 하다가 담배를 땅에 힘껏 메쳐 던진다.) 나 원 열 받아서  《연변잭슨》: 무슨 일이냐 말해라. 우리 《지붕 우의 미아》끼리 뭐 못할 말이라도 있냐  국영: 있잖아 울 아부지,  자전거 사달라니까 글쎄 남들이 실컷 주물고 난 중고품을 사 준거야.  《연변잭슨》: 니들 집 나라구제명단에 오를 집도 아니고 왜 그런 다냐?  댄스친구 1: 혹시 저 앞거리서 넝마 줍는 영감태기 걸 되 산 거 아닌감? 국영: 몰라. 알고도 모를 사람 우리 울 아부지야.  댄스친구 1: 니 아버지 비디오 임대료 값 체불해서 그러잖냐? (애들 허리 까부라지게 웃는다. 국영이 댄스친구1을 못마땅하게 쏘아본다. ) 《연변잭슨》: 됐다. 스톱! 마지막 소절 한번 맞춰 보자. 씨베, 우리 이모 또 사이렌 울리기 전에  (요란한 곡조가 울리고 애들 다시 춤동작을 맞춘다. 댄스친구1 자꾸 국영이를 보며 웃는다. 국영이 참지 못하고  녀석한테 달려들어 한 매 친다. 댄스친구 1 반격하고 둘이 멱을 잡고 땅에 뒹군다. 애들이 말리고 옥상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44 밤, 국영이네 집 마당- (얼굴에 생채기가 난 국영이 과일칼을 들고 나온다.  자전거 바퀴를 찌른다.  씨근덕거리며 미친 듯이 찌른다.  드디어 자전거 바퀴가 터지며 피시식~ 김이 새나간다. 국영이 이를 앙다물고 자전거를 지켜본다.)  #45 아침, 국영이네 집 마당- 아버지가 자전거를 손질해 놓았다.  국영이 타지 않고 절뚝이며 간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밀고 쫓아온다. #46 거리- 국영이 택시를 불러 탄다.  아버지 멈춰 선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지켜본다.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낸다.  요구르트이다.  그 요구르트를 내려다보며 한 숨 짓는다. #47 오후, 족도관 앞- (안마사《족도관》앞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 씨를  깐다.  아직도 얼굴에 생채기 난 국영이 다리를 절뚝이며 나타난다.  안마사 지나가는 국영이를 손짓으로 부른다. 국영이 멈칫하며 다가간다.  안마사 웃으며 해바라기 씨 한줌 내민다. 국영 어색하게 받는다. 곁에 앉으라고 한다. 국영 부자연스레 층계에 앉는다.) 안마사: 저번엔 미안했어 국영: 괜찮아요 안마사: (국영이를 지켜보며) 아버지를 꼭 떼 닮았네 국영: (부끄러워하며 해바라기 씨만 까다가) 아뇨 엄말 닮았어요. 안마사: 꼭 아버질 닮은 상인데  눈도 그렇고 입도 그렇고  국영: 아뇨 엄말 닮았대두요. 안마사: 왜 아버질 닮았다면 싫어? 국영: (아무 말도 없다가) 잘돼요? 족도관 안마사: (한 숨을 쉬며) 잘 될 리가 있겠냐? 지천에 널린 게 안마 방인데. 셋 값도 안 나온다. 그래서 니 아부지가 성화다 .어린년이 겁 모르고 투자해 놓고 자기 깨지고 남 부서뜨린다고  (국영 동정의 눈길로 안마사를 쳐다보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숙여 버린다.) 안마사: 얼굴이 왜 그래? 싸웠어? 국영: (머리 숙이며) 아뇨 안마사: 싸웠지? 응? 자 내 발목 볼까? 심하게 절던데 자, 날 따라와 (국영의 손을 잡아끈다) #48 족도관- 안마사: (싫다는 국영의 발목을 잡고 안마해 주며) 내 손이 약손이야. 이 짓하고 밥 먹는데...   (숙인 안마사의 패인 옷깃 사이로 가슴의 윤곽이 보인다.)  국영: (덴겁해 눈길을 돌리며 묻는다) 어떻게 해요? 안마사: 뭘? 국영: 장사 잘 안돼서  안마사: 글쎄다. 나야 남보다 가방 끈이 짧지, 인물도 평범하지, 하니깐... 국영: 아뇨 예쁜데요 안마사: 하니깐 나중에 이래저래 안 되면 한국으로 시집가는 수밖에 (고개 들어) 나 예뻐? 국영: (머리를 끄덕인다) 예! 안마사: (웃으며) 이만한 용모면 한국 영감태기가 날 데려갈 것 같애? (국영 아무 말도 안 한다.  족도관 간판에 드리운 갓 등이 작은 불빛을 쏘고있다.) #49 비디오방- (족도관의 네온사인이 비디오방 네온사인으로 변한다. 국영 비디오방에 들어선다.《비디오 공주》 홀로 비디오를 보고 있다.)  국영: 또 혼자냐 《비디오 공주》: 응, 엄만 친척집에 가셨어. 외삼촌이 낼 한국으로 떠난대(국영이를 보고) 《천국의 계단》 다 봤대?  국영; 몰라 나 이제 그런 시시껄렁한 심부름 안 해.  《비디오 공주》: 아이고 그럼 우리 단골 한 분 잃게 되겠네 국영: (TV화면을 보며) 혼자 뭘 보냐?  《비디오 공주》: 응 한국 영화야 《클래식》 국영: 요즘 감독들은 왜 이런 영화만 만들고 이래? 좋은 세월에 하필이면 사람들에게서 눈물 짜내야 시름 놓아요. 누구한테 눈물 빚이라도 졌나? 《비디오 공주》: 넌 그래 울지 않고 사냐?  국영; 그래. 남자는 피를 흘리지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어느 이름난 사람이 말했던 거 같애 《비디오 공주》: 난 잘 울어 국영: 여자니깐.  《비디오 공주》: (리모콘으로 비디오를 끈다. 정서가 하락되어) 나 아빠 노무 떠날 때 엄청 울었다.  국영; 난 엄마가 떠날 때  울지 않았어.  《비디오 공주》: 어쩜 사람이 그렇게 독하니? 국영: 독한 게 아니고 그때 엄청 어려놔서 뭐가 뭔지 몰랐던 거지. 여하튼 나 울음 같은 거 몰라. 아부지가 죽어도 울 것 같지 않아. 《비디오 공주》: 애두 참, 못됐다.  국영: (멈칫거리다가 신비한 기색으로) 야, 그거 있냐? 《비디오 공주》: 뭐? 국영: (목청을 한껏 낮추며) 그런 비디오. 《비디오 공주》: 그런 비디오라니 뭐? 국영: 그거 몰라? 야한 비디오 《비디오 공주》: (국영의 어깨를 때리며) 미쳤어,  미쳤어! 야가 오늘은 왜 이래? 국영: 비디오방들에선 다 그런 거 몇 개쯤은 감추어놓고 단골들 빌려준다던데  《비디오 공주》: 우리 집엔 그런 거 없어요. 그런데 있다면 너 볼려구? 국영: 응 볼려구 《비디오 공주》: 참 못됐다. 그러지마 남들이 욕해. 엄마가 곁에 없으니 애를 버렸다고  (국영 금세 시무룩해진다.)  《비디오 공주》: (다시 비디오를 켠다) 영화감상수준 좀 높여라. 이 영화 봐. 참 좋은 영화야. 진짜 참사랑이란 뭔지 알려주는 그런 영화야.  (둘이는 비디오를 본다. 화면에 키스장면이 나온다. 《비디오 공주》덴겁해 비디오를 끈다. ) 《비디오 공주》: (얼굴이 빨개지며) 이젠 늦었으니 문 닫아야겠어. 너도 집에 가  (《비디오 공주》가게를 정리하고 국영이 거들어 준다. 서투르게 쌓은 비디오 테이프가 와르르 무너지며 비디오 테이프 사태가 진다.  국영과 《비디오 공주》쪼그리고 앉아 줍는다. 서로의 호흡을 느낀다. 국영이《비디오 공주》 의 얼굴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비디오 공주》마다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다. 둘 이는 서투르게 입을 맞춘다.  클로즈업되는 비디오방 벽에 붙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 #50 꿈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포스터. 포스터 속 포옹한 인물이 국영이와 《비디오 공주》로 바뀐다. #51 아침, 국영이네 집 앞- (아버지 국영의 호주머니에 요구르트를 넣어 준다.) #52 거리- (국영 달리다가 멈춰서 호주머니에서 요구르트를 꺼낸다.  팬더 모양의 쓰레기통 곁에 넝마주이를 하던 영감이 서있다.  국영 꺼냈던 요구르트를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영감 시무룩해져 국영이를 쳐다본다.  국영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53 교실, 점심시간- (애들이 왁작 떠들며 도시락을 먹는다. 국영이 의 옆을 지나치는 척 하며 《비디오 공주》의 책상에 요구르트를 놓아준다. ) #54 주방- (아버지 프라이팬을 닦다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런 아버지를 국영이 지켜본다.) 아버지: 프라이팬이 넘 낡아서 이제 음식 못해 내겠구나 (회심에 잠겨) 하긴 니 엄마가 쓰다가 두고 간 거니깐. 니 엄마가 간지도 이제 몇 해째냐?  (아버지 프라이팬을 구석 쪽에 소중히 간직한다.)  아버지: (국영이를 보며) 가자, 오늘은 밖에 나가 한번 먹자 국영: (눈을 둥그렇게 뜨며) 외식요? 아이고 아부지가 웬일이세요? 깍쟁이 넘버원 울 아부지가.  아버지: (그냥 회심에 잠겨)  엄마가 돈 부쳐왔어.  국영: 한 달에 한번, 목구멍 때 벗기는 날이군요. #55  양고기 꼬치 집, 밤- (빈 양고기 꼬치대가 수북히 놓여있다. 국영이 콜라를 마시고 아버지 요구르트를 마신다.) 아버지: (빨대를 지근지근 씹다가) 니 엄마가 한국에 일하러 나가게 된 건 다 이 요구르트 때문이란 거 넌 아냐?.  (국영 머리를 후딱 쳐든다.)  아버지: (양고기를 구우며) 지금은 이렇게 백수가 됐지만 이전엔 아버지가 번 돈으로 먹고 살만했어. 그런데 아버지가 남한테 이자 돈을 놓았거든. 엄마가 그렇게 반대했지만두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쫄딱 망해 뿌린거야. 그 사람 뭐 하던 사람이였냐면 (요구르트 병을 쳐든다) 이런 걸 만들던 사람이였다!   그 사람이 이자는커녕 본전도 물기 어려워 대신 요구르트를 대용으로 갚겠다고 했어. 온 집안에 요구르트 박스가 꽉 찼댔다. 그러다 안 되니 야밤도주로 달아나 버렸지. 우린 요구르트에 전 재산을 날려 버렸던거야.      #56 추억-  (요구르트 박스로 꽉 찬  방에 아버지 멍하니 앉아있다. 어린 국영이가 그 곁을 엉금엉금 기여 다닌다.)    아버지의 내레이션: 난 원쑤처럼 요구르트를 먹어댔다. 멀쩡하던 우리 집을 풍지박산 낸 그 사람의 즙액을 빨아먹는다 생각하고 말이야. #57 플랫폼- (플랫폼은 노무송출을 나가는 사람들을 바래느라 눈물바다가 펼쳐져 있다. 국영의 어머니도 노무송출 대열에 끼어 있다.  아버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국영이를 안고 어머니를 바랜다 국영이 요구르트를 먹느라 여념 없다.  기차가 멀리 떠나버리고 아버지의 눈 귀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그냥 철모르고 먹어대는 국영의 입에서 요구르트를 떼 낸다. 땅바닥에 메쳐버린다.  그제야 국영이 울음을 터뜨린다. ) #58 다시 양고기 꼬치 집- 아버지: 근데 한국 나가서 엄마가 또 요구르트 만드는데서 일한대. 운명이지 운명이야.  (국영이 아버지를 지켜본다.) #59 비 내리는 옥상- (비속에 《연변잭슨》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 그 모습을 애들이 지켜보고 있다) 댄스친구1: (《연변잭슨》 의 귀에서 헤드폰을 빼내며) 됐다 그만해라 무슨 일인지 말해야 알 거 아니냐. 비오는데 다 불러놓고 《연변잭슨》씨베, 나더러 전학하래 국영: 누가? 《연변잭슨》: 울 이모가 댄스친구: 어디로 전학하는데? 《연변잭슨》: 돈만 대면 좋은 학교 어디라도 갈 순 있지만 문제는... 댄스친구 2: 문제는? 《연변잭슨》: 이모가, 그 《사이렌 이모》가 나더러 중국학교 가라는 거야.  댄스친구 1: 왜 그런 다니? 네 이모는 국영: 요즘에야 중국학교 가는 애들 푸술하지 않냐? 뭐 이상한 일이 아니지 댄스친구 2: 요즘 중국학교 가는 바람 불잖아 중국어 확실히 배워둬야 장래 사회에 나가서도 길이 열린다는 거야. 댄스 친구 3: 우리 반에도 중국학교 간 애 몇이 잘 된다.  《연변잭슨》: 니들도 나 중국말 못하는 거 알지. 씨베, 한어 하면 음조 다 틀리는 거 댄스친구 1: 그래 완전히 음치지 음치 《연변잭슨》: (울상이 되어) 씨베. 나 춤 빼고 아는 거 춤밖에 없는데... 댄스친구 1: 무슨 방법 없을까? 《연변잭슨》:방법이라니? 댄스친구 1: 니 이모 말려내는 법 《연변잭슨》:  누가 이겨요? 그 어거지 대왕을? 매일이고 집에 불난 것처럼 난리 칠걸. 씨베, (악청을 지른다) 전학수속 까지 다 해 논거야 이미! (모두들 말을 잃는다) 《연변잭슨》: (울상이 되어) 어쩌냐? 난? 우리 《지붕우의 미아》는 또 어쩌고?  (애들의 어깨를 하나 씩 부여잡으며 묻는다) 나 없이도 해 낼 수 있어 응? 해 낼 수 있어 응? (애들이 머리를 떨군다.) 댄스친구 1: (입 속으로 웅얼거리며) 니가 없이야  우리 팀 대가리 떨어진 파리지.  (《연변잭슨》애들을 둘러보다 다시 헤드폰을 귀에 꽂는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연변잭슨》: (격렬하게 춤추며) 와라 이리와! 나와 춤 한번 춰 바! 씨베, 마지막으로 추는 거야 와라 이리 와라! (애들이 하나둘 다가간다. 《연변잭슨》의  정서에 옮아 비속에 춤을 추기 시작한다.) #60 환몽- 《지붕우의 미아》들이 비속에서 춤을 추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물이 발목을 덮고 종아리를 덮고 나중에 애들이 손 만 내놓은 채 허우적거린다. #61 국영의 집, 낮- (아버지가 눈물을 훔치며 .드라마를 보고 있다. 드라마가 끝나자 비디오 테이프를 절반 빼고는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이 났던지 몸을 일으켜 국영의 방으로 들어간다) #62 학교대문 앞 골목- (국영이 자전거를 끌고 교문을 나서는데 댄스친구 1 자전거를 끌고 다가온다. 댄스친구 1 국영을 향해 손을 내민다. 국영 의뭉스런 눈길로 바라본다.) 댄스친구 1: 우리다 사회서 말하는 《편(偏)부모 자녀》 아니냐.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이젠 《잭슨》도 곁에 없는데... (국영 그 손을 잡는다. 둘이 나란히 걷는다.) 댄스친구 1: 《연변잭슨》이 간지도 이젠 한 달이 넘었구나.  국영: (한 숨을 쉬며) 한달 반이야. 댄스친구 1: 걔가 없으니 우리가 정말로 미아가 됐구나. (이때 한 무리의 애들이 다가온다 댄스친구 1: (긴장해 하며 낮은 소리로) 걔들이야. 《메주 팀》 《메주 팀》팀장 : (국영이를 부른다) 야, 일로 와봐  (국영이 마지못해 다가간다. 댄스친구 1 그 사이에 줄행랑을 놓는다) 《메주 팀》팀장 : 너 댄스하는 애 맞지. (발로 자전거를 툭툭 건드린다) 거 뭐라 더라  뭐《지붕우의 미아》? 지붕우의 에미없는 넘들은 아니고. 하기야 요즘세월에 니같은 넘들이 쌔고 버렸지.     니들이 우리 팀 꺾어볼려고 아주 난리가 났다면서. 근데 그 짹슨인지 찍슨인지 하는 놈은 안보이네. 그놈 중국학교 갔다면서 웃기는 넘, 이제 제  랩도 우리말 랩은 못하겠구나.  (국영이 흘겨본다) 《메주 팀》팀장 : 이 놈 봐라 너 봤냐? (국영의 머리를 툭툭 친다) 눈  깔아. 너 눈 못 깔아? (국영이 그냥 노려보자 《메주 팀》팀장 자전거를 넘어뜨린다.) 이 새끼 아주 교양 덜 된 놈이로구나. 애들아 얠 《체조》 좀 시켜줘라 (떼거리들이 모여들어 국영이를 에워싸고 발길질한다.)  #63 국영의 방- (아버지 서투르게 컴퓨터를 켠다. 화면이 밝아지며 국영이와 어머니가 천지가 에서 웃고 있는 합성 사진이 드러난다.  아버지 그 사진을 멍하니 지켜본다. 문득 국영이 들어선다.) 국영: (짜증나는 목소리로) 뭐해요? 내 방에서 아버지: (와뜰 놀라며) 너, 너 어째 벌써 왔냐?  국영: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그저요. (침대 위에 아버지를 등지고 누워 버린다. ) 아버지: 어째 벌써 왔냐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국영: (이불을 머리위로 덮어쓰며) 그저요. 아버지: (침대 곁에 앉으며) 너 어데 아푸냐? 배냐? 머리냐? 병원 갈까? 아님 뭐 먹고픈 거라도 없냐? 아부지 해줄께. 국영: (짜증나 버럭 소리 지른다) 아버지가 싫어 그래요. 나가요! 나가! (아버지 멍해졌다가 아무 말도 없이 방을 나간다. 국영이 이불을 젖히고 멍든 눈을 어루만진다. 컴퓨터를 말끄러미 지켜본다. 메인화면의 합성사진이 보인다. 국영이 소리 없이 운다.) #64 환몽(幻夢) - 컴퓨터 합성사진 속의 어머니가 나온다. 침대 곁으로 다가가 국영이를 보듬어 안는다. 안고 쓰다듬어준다. 국영이 울면서 어머니에게 몸을 맡긴다. #65 족도관 앞 낮- (손 하나 빨래 대에 널린 여자의 속곳을 훔친다 급급히 품에 쑤셔 넣고 종종 걸음을 놓는다. 다름 아닌 댄스친구 1이다  이때 족도관에서 안마사가 나오다 의심쩍은 눈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본다.)  안마사: 여봐요. 게 좀 서요 (댄스친구 1 급기야 줄행랑을 놓는다. 안마사 소리치며 뒤를 쫓는다. 골목길에서 댄스친구 1 분리 수거함 뒤에 숨는다. 안마사 스쳐 지난다. 댄스친구 1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일어선다) #66 골목길- (댄스친구 1 안도의 숨을 쉬며 다른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주먹하나 날아온다. 국영이다.) 국영: (댄스친구 1의 품에서 브래지어 하나를 뒤져낸다) 치사한 새끼 (국영의 주먹에 뒹구는 댄스친구 1. 한참 후, 둘이 벽에 기대여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국영: 너 왜 그렇게 살아? 응? 댄스친구: (입 귀를 실룩거리다가) 솔직하게 말할게 너 제발 다른 데 가서 말하지 마라.    나 할아버지하구 함께 있다. 엄마고 누나고 이모고 다 나가버렸어. 남은 거란 할아버지하고 나. 쇠통 남자 꼬라지들뿐이야. 여자들이 곁에 있으면 좋겠어 국영: (그의 뒤통수를 또 한번 후려친다) 그렇다고 여자 옷 훔치나? 엑 못 봐줄 새끼! 나도 아부지하고 살아. 남들도 다 네 같으면 여자속옷 공장서 횡재하겠다 새까! (이때 골목길 저쪽에서 안마사 다가온다. 국영이 급히 브래지어를 감춘다) 안마사: (댄스친구 1 유심히 뜯어보며) 너였지 방금? 국영: (앞에 나서며) 왜 그래요 누나?  안마사: (옆구리에 손을 지르며) 놓쳤어. 변태새끼 놈 거이 잡다가 (다시 댄스친구 2를 뜯어본다) 국영: (능청스레) 얜 나하고 함께 있었는데요 뭘, 우리 같은 댄스 팀이래요. 얘가 보기엔 좀 그렇게 보여두 전혀 그렇지 않은 애라고요 안마사: 내 못살아 영업 방 하나 차렸는데 영업은 안되고 , 별 치사한 변태새끼들 땜에 속곳조차 남은 게 없고. (푸념 질하며 사라진다) 1 댄스친구: 감사해! 국영: (뒤통수를 후려치며)감사는 무슨, 이제 밤이 되면 다시 가서 걸어 놔 #67 옥상- (《비디오 공주》와 국영이 옥상에 서있다.) 《비디오 공주》: 주제가 뭐니? 이렇게 옥상에 불러놓고 국영: 너 내 친구 맞지? 《비디오 공주》: (머리를 까딱인다.)  국영; 그럼 내 요구 한번 들어 주라 《비디오 공주》: 뭔데 설마 저번처럼 그런 테이프 빌려달란 건 아니겠지 국영: 나 심각하다.  《비디오 공주》: 말해봐! 국영: 이번 작문 콩클 너 참가하지 마라.  《비디오 공주》: 무슨 소리야. 선생님 이미 명단에 뽑았는데 국영: 그럼 등수 들지 말라. 대충 응부해.  《비디오 공주》: 왜?  국영: 우리 반에 작문 실력 나와 맞짱 뜰 사람 너 밖에 없어. 좋아한다면서 친구 위해 한번 희생해 주라. 《비디오 공주》: 뭐야? 뭐가 뭔지 쇠통 모르겠어. #68 파출소- 《뚱뚱컴》: 걔 아버진 걔를 위해서 전문 요리를 배웠대요.    그런데 걘 그런 아버지 모습을 싫어했어요. 사실 그렇게 매일 밥상 가꿔주는 아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69 슈퍼- (국영의 아버지 식기 매장에서 프라이팬을 들고 유심히 고른다. 남자가 식기를 깐깐히 고르는 모습에 판매원 조용히 웃는다. 프라이팬을 사들고 돌아서다 자전거매장 코너를 본다.  아버지 자전거들을 한동안 지켜본다.) #70 주방, 저녁- (아버지와 국영이  식사를 한다.)  아버지: 오늘 만든 채가 더 맛있을 거다. 국영; 왜요? 아버지: (프라이팬을 쳐들어 보이며 희열에 넘쳐) 오늘 아버지가 새 프라이팬 샀거든, 맘먹고  산 거다. 국영: (혼자소시로) 못 말려 (국영의 밥그릇에 연신 채를 집어준다) 많이 먹어라. 엄마 없다고 때를 제대로 못 갖춰먹는 애들이 젤 불쌍해 보여. (국영이 슬며시 아버지가 집어준 채를 다시 내려놓는다.) 아버지:(머뭇거리다가) 국영아, 저 컴퓨터 국영: 뭐요?  아버지: 컴퓨터에 깐 그림... 국영: 《뚱뚱컴》이 만들어준 겁니다. 아버지: 참 잘 맹글었다. 국영: 걔 울 반서 《컴도사》예요. 걸 알고 걔 아버지가 한국에서 돈 부쳐줘서 컴도 젤 좋은 거로 샀어요. 아버지: 잘 맹글었다. 심통 맹글었어. (심각한 얼굴빛으로)그런데... 그런데 그 사진에 왜 나는 없냐? #71 음향매점- (국영이와 《비디오 공주》 영화테이프들을 고른다.  국영 곁에서 거들어 쇼핑바구니를 들어준다.  국영 호주머니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권한다.) 《비디오 공주》: (받다가)  근데 너한텐 어떻게 매일 요구르트가 있니? 국영: 널 주려고 내가 그냥 산다.  《비디오 공주》: 피, 거짓말 《비디오 공주》: (국영이가 또 한 병 꺼내 권하는데 떠밀며.) 너도 마셔 국영: 안 마셔  《비디오 공주》: 마셔 몸에 좋대두 국영: 사실 우리아버지가 매일 두 병씩 넣어준다. 난 싫지만두.  《비디오 공주》: 어머 자상하셔라. 그러니까 중뿔난 내가 아니고 네가 마셔야는 거야. 마셔 국영: (마지못해 한 모금 마시다가) 이런 들큼한걸 왜 마시니? 꼭 우리 아부지 같애. 《비디오 공주》: (이상한 기색으로) 뭐가 니 아버지 같은데 국영: 이 요구르트 맛이 울 아부지 닮은 데 있단 말이다. 콜라처럼 쏘는 맛도 없고, 녹차처럼 개운한 맛도 없고, 어쩐지 맛이 간 거 같애 시쿨기만 한... .  《비디오 공주》: 얘가 왜 이래? 얼마나 좋은 아버진데 국영; 난 아부지가 싫다 《비디오 공주》: 왜? 국영; 엄만 아부지 땜에 한 국가서 고생고생 하시는 거야. 무능한 아부지 땜에  (《비디오 공주》테이프를 살펴보다가 머리를 들어 심각한 낯빛으로 국영을 쳐다본다.)  국영: (화제를 돌리며) 작문 콩클 눈앞이구나. 이번 콩클서도 한방 확실히 쏴 야는 건데 《비디오 공주》: (걱정스레 쳐다보며) 이전처럼 차분하게 해봐. 너 잘 할거야 너 될 수 있어. #72 비디오방 문 앞, 낮- (《비디오 공주》의 어머니가 비디오방 앞에서 위를 쳐다본다 국영의 아버지가 걸상에 올라서서 비디오방의 네온사인간판을 살펴보고 있다. 《비디오 공주》의 어머니 콜라를 들고 나와 권한다. 아버지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일을 재우친다. 아버지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비디오 공주》의 어머니손수건을 권한다. 아버지 쑥스러워하면 땀을 닦는다. 국영이와 《비디오 공주》나란히 자전거를 밀고 나타난다.) 국영: 아버지 계서 뭐해요? 아버지: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누나. 고쳐 볼려구 《비디오 공주》: (낮은 소리로) 얼마니 좋니 아버지가 곁에 계셔서 국영: (까닭 없이 볼 부어 하며) 쳇! #73 족도관 앞, 낮- (아버지와 안마사 문 앞에 말없이 서있다. 두 사람 다 흐린 기색이다. 안마사가 불안해서 연신 해바라기 씨를 깐다.) 아버지: 이번 주까지 세 값 못 내면 나도 방법 없소. 자릴 내야지 안마사: (해바라기 씨를 권하며)한 달만 더 참아주면 안되겠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버지: (밀치며) 그걸 누가 믿어? 난 당할 만큼 당한 사람이라고.  안마사: 야 넘 딱딱하시다. 겨우 한번 밀린걸 가지고 그래요. 나도 사정이 딱해서. 아버지: 나도 사정이 있소. 애 엄마가 한국서 번 돈으로  겨우 셋방 집 하나 맡고 세주는데 것 마저 잘 못하니 애 엄마께 부끄럽소.  안마사: 잘 될 거예요. 모두  아버지: (돌아서다 말고) 알아두오 이 집 위치가 좋아서 영업하려는 사람 줄지어 서있다는 걸. (건물 모퉁이에서 국영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74 국영이네 집, 밤- (《뚱뚱컴》의 할아버지 국영의 공부하는 모습 지켜보고 있다.) 영감: 낼 작문경색 한다지 국영: 네  영감: 등수에 들 자신 있냐 국영: 네, 나 작문 하나만은 잘해요. 대상은 장담 못해도 우수상쯤은 따먹을 거 같아요. 영감: 짜식! (대견하게 어깨를 두드려 준다.) 좋아! (아버지 들어온다) 아버지: 이제 그만하시죠. 약주나 좀 드시고... (영감 머리를 젓는다.) 아버지: 아니 한잔만 드십시다. 처음이네요. 술 마다하는 모습 영감: (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왠지 속이 더부룩한 것 이 좋잖네. 그만 가서 좀 누우려네 (나가다가 국영이를 돌아보며) 낼 작문 잘 쳐라! #75 작문콩쿠르 경색 장- 국영이 열심히 답안지를 쓰고 있다.  《비디오 공주》도 댄스친구 1도 보인다. 국영이《비디오 공주》를 보고 V 자세로 손가락을 펴든다. #76 밤, 국영이네 집- (아버지 드라마를 보고 있다. 국영이 방에서 나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간다) 국영: 아버지, 나 좀 할말이... 아버지: (드라마에 빠져 눈 굽을 훔치며) 가만 긴요한 대목이다. 좀 있다 보자  (《뚱뚱컴》이 홀연 들이닥친다.) 《뚱뚱컴》: (울며)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쓰러졌어요. 엄만 집에 없고...   #77 《뚱뚱컴》의 집- 《뚱뚱컴》의 할아버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다.  국영의 아버지 들쳐업으려나 무거워 쩔쩔 맨다 국영 아버지를 와락 밀치고 자기가 업는다. #78 비 내리는 골목길- 아버지가 거리에서 택시를 부른다 국영이 할아버지를 업어 택시에 눕힌다. 멀리 비디오방의 네온사인간판 꺼져있다. #79 《뚱뚱컴》의 방- (《뚱뚱컴》할아버지 컴퓨터의 화면에서 웃고 있다.  《뚱뚱컴》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고 국영이 뒤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다.  《뚱뚱컴》 초콜릿 파이를 씹다가 울음 터뜨린다. ) #80 족도관 문 앞, 낮- (인부들이 족도관의 간판을 내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국영이 놀란 기색으로 다가간다.) 국영: 왜 이래요? 인부: 왜긴? 영업 그만뒀지.  국영: 네에? 이곳 사람들은요? 인부: (귀찮아하며) 몰라 #81 국영이네 집- (아버지 드라마를 보고 있다) 국영: 아버지 족도관 문닫았어요? 아버지: (드라마에 빠져) 쪼끔만, 요긴한 대목이다. (국영이 리모콘을 들어 TV를 꺼버린다. 아버지 빼앗아 다시 켠다. 국영이 또 한번 끈다.) 아버지: (목청 높인다) 얘가 왜 이래? 안 하던 버릇하면서 국영: 족도관 문닫았어요? 문 닫았는 가고요? 아버지: 응 국영: 왜요? 아버지: 왜긴? 장사가 안돼 그랬겠지 (아버지 다시 TV를 켠다) 국영: (리모콘으로 또 한번 TV를 끈다.) 아버지가 쫓았죠? (성을 내려던 아버지 놀란 기색을 짓는다. 국영의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국영: (울며) 아버지가 쫓은 거야. 씨- 분명 아버지가 쫓은 거 맞죠? #82 족도관 앞- (간판을 철수해 버린 집 앞에 국영이 멍하니 서있다.)  #83 환몽- (무연한 해바라기 밭. 국영이 밭으로 달려간다. 국영: 누나- 누나- 밭 복판에 누나가 서있다. 국영 달려가 누나의 손을 잡는다.  누나가 아니라 한 구의 허수아비이다.) #83 교정 게시판 앞- (애들이 몰려 작문콩클 경색 결과를 본다 국영 애들을 밀치며 게시판 앞에 다가간다.  국영의 얼굴이 잔뜩 흐려진다.) #84 옥상- (옥상에서 국영이 건물아래를 내려다 보고있다. 그 곁에 《비디오 공주》가 서있다) 국영: 내 이름이 뭐니? 《비디오 공주》: (어리둥절해) 왜 그래?  국영: 내 이름이 뭐냐고 《비디오 공주》: 니 이름 국영이지  국영: 그래 내 별명이 장국영, (난간을 잡고 훌쩍 몸을 기울이며) 나 지금 장국영이처럼 뛰어내리고 싶어! (《비디오 공주》덴겁해 잡아당긴다.) 국영: (울부짖는다) 왜? 왜? 결과가 이런 거야? 《비디오 공주》: 무슨 로봇이라고 번마다 장원하겠니. 됐다 그만해. 국영: (야비하게) 넌 니가 등수에 드니깐 배부른 타령하는 거지. 《비디오 공주》: 얘가 무슨 소릴 해. 난 네가 입상하길 얼마나 바랐는데. 됐어 다음이 또 있잖아 국영: 다음? 다음이 언젠데? 또 한해 기다려야 잖아. 《비디오 공주》: 상이 네게서 그렇게 중요해? 국영: (이를 물며) 중요해! 니들은 상 타는 거 그저 명예쯤으로 생각하지만 난 아니야.  《비디오 공주》: 그래 뭔데? 국영: 입상하면 수상자들 한국방문 갈 수 있잖냐.  나 그걸 노린 거야. 그걸 노린 거라고. (주저앉으며 머리를 싸쥔다) 입상하면 한국 갈 수 있잖아. 한국 가서 엄말 볼 수 있잖냐구.  (울음을 터뜨린다.) 《비디오 공주》 어쩔 바를 모르는데 국영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국영: (야비하게 웃으며) 근데 너 왜 입상했어? 왜 입상했냐구?  너 지금 날 웃는 거지? 이 꼬라지 웃는 거지.? 정말 우리 팀서 댄스 추는 그 호박골 새끼도 상 하나 먹었더라 그 골빈 새끼도 다 등수 타는데 내가 왜 못타? 내가 왜? 옳다! 니들 짜고 든 거지. 짜고 들어 날 골탕먹이는 거지  《비디오 공주》: 야, 진정해! 나 상 탔다지만 겨우 가작상이야; 사실 나도 우수상 타고 싶었어. 대상 타고 싶었다고. 그런 마음 누가 없겠니. 나도 대상 타고... 한국 가서 아버질 만나고 싶었다고. (말머리를 잇지 못 하고 흐느낀다) (국영이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멍한 눈길로 《비디오 공주》를 지켜본다.) #85 국영의 집- (옥상에서 내려 온 국영이 문을 와락 열어 젖히며 들어선다.  응접실을 들여다보던 국영이 그 자리에 굳어진다. 응접실에서 아버지와 《비디오 공주》의 어머니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다. 일그러지는 국영의 얼굴) #86 주방-  (아버지 밥상을 차려놓고 홀로 앉아 있다. 국영의 방으로 다가간다. 문을 노크한다.) 아버지: 국영아, 국영아 그만 나와 밥 먹어라. 밥은 먹고 봐야지. #87 국영의 방- (국영이 컴퓨터 화면의 어머니와의 합성사진을 지운다. 차가운 표정으로 앉은 국영이 아버지의 부름이 들려오나 응대조차 앉는다.)  #88 주방- (응답이 없으니 아버지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다가 프라이팬을 닦는다. 열심히 닦는다. ) #89 응접실, 늦은 밤-  (국영이 방에서 나온다.  TV가 켜진 대로이다. 비디오가 끝나 빈 화면이 씩 소리를 내며 지글거린다.  아버지가 소파에 꼬부라진 채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아버지의 못나게 잠자는 모습을 지켜본다 국영의 눈에 발광체가 어린다.) #90 주방- (국영이 무언가 찾는다. 식칼을 찾아든다. 다시 내려놓고 과일칼을 찾아 든다. 다시 내려놓는다. 국영 금방 닦아놓은 반짝반짝 빛나는 프라이팬을 본다.  국영이 그 프라이팬을 거머쥔다.) #91 응접실- (아버지 그냥 잠에 곯아져 있다.  국영이 이를 악물고 나서 프라이팬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후려친다. 아버지 소리 없이 꼬꾸라진다.  국영이 광분하며 연이어 후려친다.) #92 국영이네 집 뜰- 문을 빠끔히 연 국영이 머리를 내 밀고 사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버지의 시체를 끌고 나온다 헛간으로 끌고 들어간다. #93 헛간- 국영이 허둥거리며 옷가지로 시체를 덮는다.  얼굴에 튄 핏자국을 닦으며 돌아서던 국영이 무언가 발견하고 돌아선다.  헛간 구석으로 다가간다. 국영이의 눈동자가 커진다  반짝이며 실체를 드러내는 그 것은 자전거이다. 국영이가 그처럼 바라던 새 자전거이다.  #94 밤거리- (국영이가 새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95 밤, 파출소의 뜰- (국영이가 멈춰 선 곳은 파출소이다. 국영이 파출소 옥상 위에 걸린 휘장을 쳐다보다가 뜰로 들어간다. 국영이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의 뜰을 맴돈다.  파출소의 당직경찰 창으로 내다본다. 경찰: 뭐야 저 사람? 국영이 그냥 맴을 돈다. 경찰 뜰로 뛰쳐나온다.) 경찰: 야! 넌 뭐야? 이 곳을 니들 집 마당으로 알어? 국영이 듣는 척도 않고 그냥 맴을 돈다.  경찰: 이런 미친 새끼봤냐 (경찰 붙잡으려 한다. 국영이 속도를 내여 맴을 돈다.  경찰과 국영이 쫓거니 잡거니 파출소 뜰에서 각축전을 벌린다.) #96 구치소 면회실- (《뚱뚱컴》면회를 와있다) 《뚱뚱컴》: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국영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 말도 없다.  《뚱뚱컴》: 뭐 딱 요구하는 거 없냐구? 국영이 머리를 쳐든다. #97 구치소 면회실- (댄스 친구1 면회를 와있다.) 댄스친구12: (말머리를 찾다가) 나 한국 간다. (국영이를 훔쳐보며) 미안해! 나 작문 딱히 잘 쓸려 한 건 아닌데 운이 좋았나봐 #98 구치소 면회실- (《연변잭슨》 면회를 와 있다.) 《연변잭슨》: (아무 말도 없는 국영에게 중국말로 묻는다) 워이썬머??? #99 구치소 면회실- (《비디오 공주》면회를 와 있다. 국영이 앞에 요구르트 한 두름을 내놓는다.) 《비디오 공주》: 왜 하필이면 요구르트 생각이 났어? 좋아하지 않더니 (국영 아무 말도 없이 요구르트포장을 찢는다.) 《비디오 공주》: 다 가져. 다 가져다 마셔. 다 마신 다음 내 또 가져다줄게. (말을 잇지 못하고 운다.) (국영이 요구르트를 한 개만 달랑 든 채 몸을 일으킨다.) #100 감방- (감방 구석에 국영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요구르트를 들여다 보다 빨대를 꽂아 마신다. 요구르트가 굽이 나고 빨대에서 끄르륵 소리가 난다. 국영이 눈에 눈물이 그득한 채 빨대를 그냥 입에 물고 있다.) #101 밤거리- (아버지와 국영이 밤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슬로모션으로 달리는 자전거.  가로등 빛이 찬란한 거리에서 부자간 웃음을 흘리며 어디론가 가고 또 가고 있다. 자막으로 스텝진영의 이름이 올라간다.) #102 《뚱뚱컴》의 방- 《뚱뚱컴》이 초콜릿 파이를 씹으며 컴퓨터 합성을 하고 있다 화면에 드러나는 합성사진 백두산 천지 가에서 국영이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웃고있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7    고양이 똥 커피 댓글:  조회:2481  추천:12  2014-06-18
. 미니 소설 .   고양이 똥 커피   김 혁     주문한 커피가 들어 왔다. 너구리를 닮은 짐승의 꼬리를 한 손으로 치켜들고 다른 한 손은 커피잔으로 배설물을 받고 있는 상표가 붙었는 커피 포장함에는 “Luwak”이라는 영문자모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 루왁이야. 허사장이 흥감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이 루왁커피 한잔에 얼마 하는지 알어? 허사장이 좌석의 유일한 녀편집을 향해 물었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총편님은요? 이 커피 한잔에 얼마 하실것 같아요? 허사장이 이번에는 주필을 보고 물었다. 문예지 주필도 맹랑한 기색으로 머리를 저었다. 오늘의 주인공 김작가가 한번 맞춰 보시지? 물음의 바통은 집요하게 나에게 까지 넘겨져 왔다. 나도 그만 시무룩하게 웃고 말았다. 모두들 그저 허사장의 입만을 지켜보았다. 조도(照度)가 낮은 레스토랑의 주홍빛 불빛아래 허사장의 얼굴이 흥감스럽게 번들거렸다. 올백 머리의 이 사장님의 협찬으로 궁핍한 문학지의 올해 상이 요행 개최되였고 그 상의 대상을 바로 내가 수상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축하주까지 마셨는데 사장이 2차를 가자고 또 부득부득 끌어서 함께 한 자리였다. 허사장이 손가락 다섯개를 좌악 폈다. 손가락에 낀 세개의 알반지가 유표하게 번뜩이였다. 50원이요? 아니 500원이야! 우와! 한잔에 500원이면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 커피값만해도 5천원은 나가겠네요. 좌석에서 감탄들이 자지러 졌다. 나는 그만 떨꺽하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내가 받은 대상의 금액이 5천원이다. 불현듯 세계에서 제일비싸다는 이 커피를 들이민 사장의 심사가 뇌꼴스러워 났다.  루왁이 뭘로 만든 커피인지 알아? 허사장이 또 물음을 물어 왔다. 년세가 한참 위인 주필이 동석했음에도 자연스레 반말이 튀여 나온다. 녀편집이 머리를 저었다. 머리에 지른 나비모양의 장식핀이 떨어질듯 위태롭다. 그냥 머리만 저어대는 품이 웬지 바보스러운 구석이 보였다. 평소에는 예쁘고 순발력있는 편집으로 알았는데… 고양이 똥이야 네 고양이 똥이요 그래 고양이 똥이지 호동그래진 편집의 눈길을 보고 허사장이 재미나다는듯 흐억흐억 웃었다. 내력있는 커피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그 제조과정에 대해 본적 있었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하기로서니 어찌 짐승의 똥을 먹을 생각을 했을가하고 기어이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커피 포장지에 그려진 그 동물 이름은 “긴 꼬리 사향고양이”였다. 인도네시아 커피 농장에서 이놈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따 먹고 사는데 소화 안 된 씨가 배설물에 섞여 나온다. 농장사람이 우연히 커피 씨앗을 골라 정제하여 볶아냈더니 특유한 향의 커피가 나왔고 이를 상품화한 한것이 바로 세상에 이름 떨친 “루왁”커피였다. 무슨 고양이 똥으로 만든 커피가 1kg에 미화 1천불이나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루왁”의 독특한 향과 맛이 사향고양이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에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특유의 맛을 내는것으로 설명했다. 꽃속의 꿀 성분이 꿀벌 위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꿀이 되는것과 같은 원리라는것이다.     엄청난 고가이지만 정작 사람들이 이 해괴한 커피를 찾는것은 그 엄청난 가격때문이라 했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과시욕이 이 커피를 엄청난 가격임에도 찾게 만든다는것이다. 뽀이가 직접 와서 커피를 끓여 주었다. 커피메이커에서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면서 룸안에는 야릇한 향기가 자욱하다.   하지만 사장의 내내 흥감스럽고 상스러운 말과 몸짓들이  향기로운 커피의 향을 밀어내며 룸의 기운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질감이 한 가슴 가득했지만 협찬자의 흥을 깨는것도 례의가 아닌것 같아 나는 없는 화제를 만들려 했다. 고양이를 좋아한 작가들이 적지않습니다. 그래요. 좋지요. 고양이 한켠에서 졸고있던 주필이 몽롱하게 말꼬리를 잡는다. 잡지사를 위해 협찬 한푼이라도 받아오려 자신의 여직 지켜왔던 체통을 죽여가면서 목덜미를 낮추는 늙은 주필님이시다. 헤밍웨이도 마크트웬도 모두 고양이를 좋아했답니다. 디켄즈도 애묘인이였지요. 나는 기왕 고양이똥 커피를 마시는 자리라 고양이로 화제를 만들려 했다. 이쁜 편집님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않을라나? 그 용모가 아까우이. 문학이 뭐 밥을 먹여주나?” 녀편집과 이죽거리던 허사장이 마지못해 나를 향해 응수했다. 디켄즈가 뭔데? 그것도 커피인감? 얼마짜리 커피인데? 에이 롱담도 심하시다 주필이 안면근육을 애써 동원해가며 웃었다. 디켄즈가 누군지 내가 알턱이 있나?” 디켄즈를 몰라요? 대단한 영국작가인데 녀편집도 참지못하고 한마디 했다. 몰라 허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난 무슨 커피 상표인줄 알았지. 그리고 마크 트웬은 또 누구고? 그것도 커피인가? 허사장이 흐억흐억하고  또 그 축축한 웃음소리를 냈다. 주필은 입 한번 다시고나서 다시 가수(假睡)상태로 들어 갔고 나는 나대로 단절된 대화를 이으려고 애썼다. 왜서였던지 나는 디켄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시대의 빈곤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의 속물근성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했던 디켄즈였다. 디켄즈는 밥 딜런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웠는데 사랑하던 고양이 밥이 죽자 장신구에 고양이의 이름을 새겨 책상우에 놓아두었답니다. 뭐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푸하하” 사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런 감수성으로 디켄즈는 “두도시의 이야기”와 같은 대표작을 써냈답니다. 흐억흐억,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 웃긴다 웃겨… 디켄즈는 영국에서 쉑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한 작가로… 고양이 이름이 밥이라니 흐억흐억, 밥이 먹구 싶네. 배고파 히히히. 드디여 커피가 다 끓었다. 김작가 한번 맛보시지 나는 시음(試飮)을 하듯이 커피를 한모금 입에 물었다. 나름 커피 매니아였지만 루왁만은 처음 마셔보는 나였다. 이때 사장이 커피를 입에 넣고 숭늉이라도 마시듯 훌룰훌룩 입가심을 했다. 드디여 내 안쪽에 억눌려 있던 이질감들이 토사물처럼 터져 나왔다. 우왁!하고 나는 그만 1킬로에 1천불을 한다는 루왁커피를 입으로 내뿜고 말았다.     “장백산” 2014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6    민족교육계몽의 타종(打鐘)꾼 댓글:  조회:3323  추천:10  2014-06-16
소설가 김혁의 인물만필 시리즈 (2)   민족교육계몽의 타종(打鐘)꾼 - 김 약 연 … 땡. 땡. 땡.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는 부채살처럼 펼쳐져 명동의 벌판에 가득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 소리에 외양간에서 소가 음메! 울었고 홰대우에 앉았던 닭들이 푸드득 깃을 쳤다.    모난 계명의 소리는 잠자는 마을을 깨우고 있었다. 규암 김약연은 교회 옆 느티나무에 얹은 종각아래에서 종을 치고 있다. 깊은 눈매에 형형한 눈빛, 하늘 향해 쳐들 린 카이저 콧수염, 하얗게 빛나며 휘날리는 두루마기… 종소리의 은은한 여운 속에 김약연은 독락(独乐)하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 없는 미소를 머금고 마을을 지켜보고 있다. ... ... 나의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북간도지역에 이주민들의 “리상촌”을 건설하고 민족교육계몽의 종소리를 높게 울린 이가 있으니 바로 규암(圭巖) 김약연이다.   명동촌과 명동학교를 말하기에 앞서 이주민들을 휘동하여 언땅에 개간의 보습을 박고 지탑을 잡은 김약연에 대해 말하지 않을수 없다.   1899년 2월 18일, 종성출신들인 성암  문병규 학자를 선두로 남평 문씨 가문의 40명, 규암 김약연 학자의 전주 김씨 가문 31명, 김약연의 스승인 남도천 학자 가문 7명과 회령 출신인 소암 김하규 학자의 김해 김씨 가문의 63명— 도합 141명이 두만강을 넘고 있었다. 철판처럼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고향을 등진 자의 한숨처럼 늘 찬 오랑캐령을 넘어 그들이 다다른 곳은중국의 간도 화룡현 지신사 (오늘의 룡정시 지신진 명동촌)에 들어섰다. 인적 하나 없고 오직 외로운 비둘기떼의 구슬픈 소리만이 맞아주는 “부걸라자”에 이른 이들은 수백 정보의황무지를 사들이고 서둘러 개척의 날을 박았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다시 “명동”이라고지었다. 이렇게 드디어 바람 세찬 간도땅에도 명동이 일어 섰다. 서울의 명동처럼 화려하지 않은 황량한 벌판. 하지만 동쪽, 즉 조선을 밝힌다”(明東)는 그 이름대로 개척민들이 운집한 이곳에서 조선인들의 공동체인 명동촌은 명실공히 이주민들이 선망하는 “간도 제1촌”으로 되였다. 장대한 이주대오를 이끌고 낯설고 물 설은 고장에 이른 개척단의 선두주자로 는 당년 32세,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던 김약연이였다. 김약연은 1868년 10월 24일 조선 함경북도 회령 동촌행관에서 태여났다. 김약연은 회령에서도 인끔높은 유가적 가풍의 집안에서 자랐다. 그는 어려서 유학 경전에 통달했다. 17세에 벌써 맹자를 만독하여 거유(巨儒)의 칭호를 얻은 유학자였다. 김약연, 문병규, 남도천, 김하규 이들 네 학자는 모두 고향땅인 종성과 회령일대에서 서재를 꾸리던 훈장들로 알려진다. 명동일대에 이주한 후 문병규, 남도천 두 학자는 환갑이 넘어 서재에서 손을 뗐으나 김하규는 대사동에 소암재를,  남도천의 아들 남위언은 중영촌에 함한재를 각기 서재를 설치하고 학동들을 받아들이였다. 김약연도1901년 4월에 장재촌에 "규암재”라 일컫는 서당을 꾸렸다. 자신의 호를 딴 서당이였다. 주로 한학을 전수하는 구식교육이었으나 이것이 북간도 한인들의 첫 배움터로서 교육사상 아주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김약연의 "규암재"뜨락에 모인 명동사람들   리상설의 "서전서숙"이 일제의 간섭과 탄압으로 폐숙 (废塾)되자 김약연의 사촌동생인 김학연을 비롯한 "서전서숙" 출신의 일부 선생과 학생들이 명동에 오게 되였다. 김약연은 그들과 협상한 결과 작은 서당을 그만두고신학교육을 실시하는 새로운 서숙을 차리기로 했다. 김약연 등은 규암재를 토대로 몇 개 서재를 합쳐 사립 명동서숙을 세우고 페교 된 룡정 서전서숙의 정신을 이어 받았다. 그리하여 "명동서숙"이 1908년 4월 27일에 창립, 초대숙장으로는 김약연이 맡게 되였다. "명동서숙"은 창립된 첫해부터 잘 꾸려져 이듬해 4월에 현대 멋이 물씬 풍기는 명동학교로 개창 되였다.  2010년 복원된 명동학교의 모습   1910년에는 3년제 중학부가 증설되였다. 1911년 3월 김약연은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명동학교에 녀학부를 세웠다. 이것 역시 중국조선족 이주사에서 처음으로 있은 녀성교육으로 된다. 김약연은 마을 학교의 교장직을 맡고있지만 사실상 마을의 터주대감격이였다. 그 인물됨이 아주 커서 마을사람들의 깊은 존경을 받고있었다. 관후장자의 풍모를 지닌 풍채가 당당했을뿐만아니라 매사에 너그러웠고 환했고 정이 넘쳤다. 김약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모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은 또 솔선수범하는 그의 삶 때문이였다. 그는 명동학교 교장일을 보면서도 친히 학교에서 교수를 담당하였고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학전(学田)의 밭갈이, 기음, 수확과 탈곡을 하였으며 교사의 수건 심지어 방구들을 고치고 까래를 결는 등 궂을 일도 가리지 않으면서 이신작칙의 본을 보였다. 그의 휘동하에 학교와 마을의 질서는 정연하고 옳바르게 잡혀나가게 되였다. 당시 명동학교의 학과목을 보면 소학부에 국어, 성경, 산수, 력사, 지리, 체조 등 13개 과목이고 중학부에 국어, 수신, 력사, 지지(地志), 신한독립사, 사범교육학 등 23개 과목이였다. 김약연은 학과목의 중심을 조선민족의 말과 글을 가르치고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지리를 가르치는데 두고 학생들에게 민족자부심과 반일의식을 키워주기에 힘썼다. 후에 일제침략자들이 사립학교들에서 조선어와 조선력사, 조선지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던 시기에도 김약연은 여전히 조선어와 조선국문, 조선력사와 조선지리, 조선노래를 의연히 가르치게 하였다. 김약연은 학교운영에 힘쓰는 한편 민중교육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명동학교를 둘러싸고 명동촌,장재촌, 신동촌 등 6개 마을에 야학을 꾸리고 문화를 널리 보급하며 반일계몽운동을 활발히 벌리였다. 규암이 조직한 명동학교는 갈수록 생기를 띠고 명성이 높아져 뜻있는 청년들은 연변 각지와 남북만, 조선,로씨야의 연해주 등지에서 륙속 모여 들었다. 명동학교는 일약 조선국내의 오산학교와 쌍벽을 이룬 독립지사 양성기관으로 발돋움했다. 1914년 5월 28일자 “신한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간도에 있는 명동예수교학교는 설립한 지 4년에 교무가 날로 진흥하며 학생 수가 더욱 증가하여 150여 명에 달하였으므로 장차 학교를 크게 건축하고 교육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는 중이라 하더라”    명동학교 제17회 졸업사진  (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김약연, 가운데 줄 맨 오른쪽이 시인 윤동주)   1919년 3월 13일 룡정을 중심으로 한 북간도 각지에서3만여 명 조선인들이 운집해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한 “해란강반의 봄 우뢰”로 불리는 만세시위운동이 일었다. "3.13"시위는 일제와 일제의 사촉을 받아 출동한 만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되였다. 탄압으로 희생된19명 시위자들 가운데는 3대독자이고 16세밖에 안되는 명동학교 중학부학생  김홍식도 들어있었다. 당시 “전러한족중앙총회(全露韩族中央总会. 그 뒤 국민의회로 개칭)”에 초청되여 갔던 김약연은 비보를 전해 듣고 로씨야에서 부랴부랴 귀로에 올랐다. 명동에 온뒤 김약연은 독립운동을 구체화 하기 위해 간도독립운동 기성총회를 발족시켰으며 리동휘, 구춘선, 황병길이 조직한 독립무장대오를 지원할 군자금 모금 운동을 벌였다. 1920년 2월 김약연은 중국 민국관청에 체포되였다. 그후로 김약연은 국자가 감옥에서 2년동안 연금되여 지냈다 .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부대와  김좌진 부대 그리고 1920년 1월 3일 명동과 불과 10여리 리 떨어진 동량리어구에서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조선 회령으로부터 룡정으로 보내는 일화 15만원을"철혈광복단"에서 탈취한 의거에는 명동학교 출신이거나 명동과 관련된 독립군 용사들이 적지 않았다. 명동촌은 당연히 일제의 눈에 든 가시”로 되였다. 일제는 명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더욱 엄밀히 감시하였다. 1920년 10월 북간도지역을 피바다로 만든 "경신년 대토벌"이 일제에 의해 일어났다. 당시 일제는 갑자기 명동에 덮쳐 들어 명동학교에 불을 질러 명동사람들이 터를 닦고 세운 명동학교를 재더미로 만들었다. 1922년 가을, 민국관청에서 석방되여 명동에 돌아온 김약연은 또다시 명동학교의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그러나 1924년 갑자년 특대 흉년이 덮쳐왔다. 명동학교는 운영난에 시달렸고 왕년의 생기를 잃어갔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명동을 지켜내려는 김약연의 노력은 외롭고 처절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중학부가 취소되고 중학부의 교원들과 일부 학생들이 룡정의 여러 중학교로 옮겨지자 명동학교도 교회에서 경영하는, 남녀공학학교로 바뀌었다. 1928년 환갑연의 김약연은 명동을 떠났다. 솔가하여 룡정으로 떠났다. 명동촌은 김약연이 퇴장하면서 일약 빛을 잃었다. 명동은 마을의 지탑을 잡고 향도의 종소리를 울리던 옛 주인을 잃었다. 하지만 그 주인이 창설한 명동학교는 력사의 갈피에 그 존재를 또렷이 적었다. 명동학교가 창설되여서부터 중학부가 1925년에 페지 될 때까지 18년간 학교는 무려 1천명의 애국청년들을양성하여 졸업시켰다. 이 졸업생들은 모두가 항일투쟁에 나섰거나 민족교육사업 그리고 문학가와 저명한 예술가로 청사에 길이 빛날 업적들을 쌓았다. 그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읊조렸던 윤동주는 김약연의 누이동생의 아들이자 명동학교 학생으로서 김약연이 가르친 제자였다. 그리고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라운규, “통일의 아버지”  문익환,조선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 등 기라성 같은 명사들이 이곳에서 자라면서 신앙을 물려받았고, 근대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키웠다. 김약연의 룡정자택 옛터를 확인한 필자   1938년 2월에 김약연은 다시 룡정으로 돌아왔다. 은진학교 리사장, 기독교 목사의 신분으로 룡정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던 규암 김약연은 1942년 10월 24일 병환으로 룡정자택에서 영면했다. 향년 75세였다. 선종(善終)하면서 애통해 울던 가족과 제자들이 유언을 부탁하자 이런 한 마디를 남기셨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이는 김약연이 숨을 거두며 하신 마지막 포효였다. 윤동주 생가 정원에 세워진 김약연 송덕비    룡정을 찾는 유람객들이면 의례 들려보는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 그 생가와 불과 몇십보 떨어진 더기에 위치한 명동교회 바로 그 동쪽켠에 낮다란 4각정자를 씌운 “김약연 공덕비(金跃淵功德碑)”가 서있다. 1942년 그이가 안식에 든 후 간도조선인사회 유지들과 명동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공덕비는 윗머리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광복 후 토지개혁 당시 김약연 일가가 당지에서 지주로 치부되여 청산을 맞게 되면서 이 비석도 버려졌다. 비석은 한때 마을 앞 개울의 징검다리로 씌었다고 한다. 1980년 대 마을 사람들은 흙속에 묻힌 이 비석을 찾아서 원 자리에 복구를 했다. 김약연 선생의 묘소는 선생의 생가와 “규암재”가 있던 장재촌의 뒤산기슭에 고이 모셔져 있다. 장채촌 뒤산의 김약연 묘소를 찾은 필자    당년 명동의 화신으로, 이름난 독립운동가, 교육가로서 북간도 조선인 사회를 밀고 나가는 수령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었던 김약연, 그의 일생은 솔선수범하는 삶, 높은 인격, 남다른 지도력,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앞장서서 그 시대의 아픔을 건져 올려 치료하고 구제하려고 몸을 바쳐 온 일생이였다.     “중국민족” 2014년 2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225    지리멸렬한 진혼곡을 다시 울리며 댓글:  조회:2380  추천:12  2014-06-12
지리멸렬한 진혼곡을 다시 울리며 -  "마마꽃, 응달에 피다" 중판본을 내면서         첫 장편이 발표된지 꼭 10년만에 중판본을 펴낸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나의 창작생애에 나름 중요한 작품이다. 나의 자서전적 요소를 띄였고 우리 문단의 장편분야에서 흔치않은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했으며 또 중국조선족문화의 발상지이자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인 룡정을 무대로 했다는 의미에서 애초의 나의 창작성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시간의 검증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십년간 도합 네부의 장편을 펴냈고 또 인물전기와 력사기행등으로 거의 한해에 한부 꼴로 자칭 "중후한"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첫 장편의 습작이 내게 준 그 엑스터시의 과정을 내내 잊을수 없다.   순수문학지인 “도라지”잡지에 1998년경에 발표한 중편소설 “설태를 내보여라, 어제라는 거울에”를 다시 장편화한 작품은 발표되여서 독자와 평단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제5회 연변작가협회 계약작가 선정작품으로 되였고 “도라지”문학상에 이어 “장백산”문학상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진달래”문예상을 거듭 수상했다. 또 이 작품에 대한 평문도 적지 않게 나와 그중 한 편은 이 작품에 대한 론문으로 석사학위를  따냈고 한편은 한국방송대학 평론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2012년에는 55회짜리 라디오 소설로 제작, 방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초판본이 수상자들에 대한 특혜로 출간해준 작품이기에 그 출간수량이 극히 적어 서점가에도 오르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들어는 보았지만 읽지는 못했다. 작가자신에게 차려진 책자의 수는 더구나 적어 대부분 문우들에게 증정하지조차 못한 면괴스러움을 내내 안고있다. 그리하여 이번에 새롭게 중판본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2005년에 출간된 초판본의 표지     현대 중국인들에게 문화대혁명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암흑기다. 부모가 자식을, 안해가 남편을, 학생이 선생을 단죄대에 올리고 주먹질하고 침을 뱉어야 했던 이념 과잉시대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혁에 아버지를 잃고 이름자조차에 그 시대의 각인을 자자(刺字)처럼 아프게 받아야했던 문혁시기 태생의 필자로서는 이 제재를 간과할수 없었다.   물질풍요의 전성기를 누리고있는 요즘에는 어쩌구려 문혁이라는 말조차도 쉽게 꺼내지 않는다. 수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10년간 아비지옥(阿鼻地獄), 규환지옥(叫喚地獄)의 맨 밑바닥에 내쳐져 지옥의 불에 인두질 당하고 릉모(凌侮)를 당했지만 요즘은 아무도 거기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상처의 넓이와 깊이에 비해 남아있는 기록은 우리 문단에서는 한심할 정도로 미미하다. 흥건하던 상처의 아픔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고 흉터가 아물어가자 사람들은 그 상처를 잊었다. 또 하필이면 그 아픈 상처를 들쑤셔야하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허나 력사란 달력처럼 찢어 웅그려 던지면 그만인 일회용의 망각이 아니다. 그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전제이다. 우리의 현재를 규정짓고 미래와 직결되는 그 지리멸렬한 과거에 대해 어찌 일신의 향락에 마취되여 잊을수가 있을가? 물질의 풍요에 꺼둘리고 노곤해져 모두들은 일종의 카르텔(동일 업종의 사람들이 리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안일한 형태)같은 침묵과 회피의 완충지대에서 안일만을 즐기고있다. 이렇게 침중한 과거에 대한 평이와 미온적인 태도가 주는 좌시와 부재가 이 내가 펴낼 작품이 많음에도 기어이 십년전 작품을 뒤적여 다시 중판본을 내는 리유이다.   첫 장편이라 설익은 작품일망정 이 작품이 시대라는 이름의 호랑이 등에 본의아니게 올라타 추썩임을 당해야만 했던 젊은 청춘들, 세상의 폭력과 반인륜적 관습, 그 형극의 틈바구니에서도 유토피아로의 열망과 생존 본능으로 몸부림한 모든 문혁경력자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읽혀지기를 원한다.   2014년 5월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4    악플러들의 초상화 댓글:  조회:5500  추천:20  2014-06-09
칼럼 시리즈    악플 유감(有感)- 3   악플러들의 초상화 김 혁      “악플러”란 다른 네티즌의 글에 악의적인 욕설이나 비방의 악성 리플을 다는 네티즌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이다. “악플족”이라고도 부르며 축구류망들을 가리키는 “훌리건”과 합성해 “인터넷 훌리건”이라고도 하고 네티즌과 훌리건을 합쳐서 “네티건”이라고도 부른다.   악플을 지속적으로 다는 악플러들의 비루한 행각은 자신의 상태나 욕구를 알리고자 하는 과시욕과 사람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변형된 심리의 발현이다. 그 행각들을 보면 흔히 스트레스 해소에서 시작되여 감정표출, 그리고 이목집중, 중독, 공격으로 이어진다.   사회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퇴근후 집에 돌아와 쓰게 되는 악플로 인해 풀었다는 실제 악플러들의 진언이 있다.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답답한 감정을 욕설이 담긴 공격성 댓글로 해소하려고 하는 비뚤어진 생각에서 악플달기를 시작한것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때문에 사소한 자극에도 흥분하면서 악플을 달면서 비로소 가련한 자신에 대한 위무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이는 왜곡된 사회심리적 행동이다. 이런 부류는 흔히 내면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   성격, 질투, 일상에서의 마찰등의 원인으로 자신이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악플을 다는 경우가 그중에서도 비교적 많다. 이들은 악플을 통해 그 상대를 파괴시켰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화난 모습을 련상하거나 확인하며 위안을 얻는다. 상대방이 자극을 받고 크게 흥분할수록 쾌감을 느낀다. 인기가 많고 영향력이 큰 사람을 공격할수록 자신의 위치 역시 높아지고 그와 동급이 된다고 착각한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도 단순히 사람들의 이목 집중을 즐기는 사람들이 악플을 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쓴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라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더 튀고 조금더 자극적인 내용을 써야하기에 과장, 기만과 요언으로 가득찬 악플을 선택하게 되는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의 론리를 펼치는 글에 대한 반박을 하기 위해 악플을 쓰는 경우도 아주 많다. 모든 글에는 반대의 의견이 있을수 있으며 건전하고 건설적인 론쟁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악플은 그 도를 넘어서 내용을 무시한채 글쓴이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얼룩진 댓글을 말한다. 이들은 흔히 자신의 생각과 가치만 옳다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독선가” 류형이다. 때문에 이들과 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설득과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말살과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반대의견에 경청할 내심한 귀가 이들에게는 갖추어져 있지않다. 그러니 그저 자신의 생각과 가치가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헐뜯기에만 급급해 하는것이다.   이제는 우리들의 싸이트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악플러”들과 마주칠수 있다. 그들은 상대가 녀성이던 어린 아이던 로인장이던 사회명류던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문인으로서 정말로 참괴를 머금을수밖에 없는것은 우리의 싸이트들에서 다른 코너에 비해 문학코너에서 그 증세가 심각하다는것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이어져 온 오프라인에서의 “문인상경”이 온라인에서도 여전히 이어져나가고 있으며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해 더 광증증세를 보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인들지간의 훈훈한 덕담과 교류는 오간데 없고, 문인들에게서 가장 큰 희사인 신작이 발표되거나 신간이 출간되고 상을 수상하면 축복대신 외려 악플러들의 공격을 받는다. 문학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오늘날 “동병상련”의 처지인 문인들끼리 외려 자기가 골라낼수 있는 가장 극악한 말들만 골라내여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길질하고 인신모욕을 퍼붓는다. 신간이 나왔거나 상을 수상한 사람들끼리 축하의 기쁨대신 “이제 또 인터넷에서 한바탕 난리겠구만”하고 고소(苦笑)를 머금는 이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남의 희사때마다 기쁨을 동조할 대신 외려 훼살부터 지으려는 이 작태, 참말로 어처구니 그 자체다. 지어 가슴아픈 지인의 타계소식에, 불치병의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이에 대해서까지도 악착같이, 극악하게 달리는 “흡혈 거마리”같은 악플들을 보고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한적이 있다. 입으로는 유식한 말마디를 내뿜고 원고지에는 아름다은 말마디만을 적어내릴 이들이 인터넷 저켠 배후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지 그야말로 호러영화의 한장면처럼 등짝에 소름이 돋도록 서늘해 짐을 금할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당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하지만 언어로 인한 폭력은 약도 없고 때로 회복하기 힘든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동료, 지인들에게서 오는 상처일때는 그 마음의 상처는 배가가 된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악플들을 보면서 단순히 넘어갈 문제가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두말할것도 없이 악플은 표현의 자유라기보단 리성적 판단을 못하고 감정에 치우친 배출이라고 볼수 있다. 다는 이들은 일시적인 감정의 표출로 혹은 유희의 감정으로 손쉽게 달겠지만 그 악플을 받은자의 고통은 상상할수 없을만큼 크기 때문이다. “악플러”들은 자신의 본능에만 사로잡혀 과대망상적이며 비륜리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나 량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무고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들의 인생을 부숴버린다 그러한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이 인터넷에 넘쳐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들이 해외에서는 비일비재로 생겨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전체 악플의 절반가량을 5%에 불과한 소수의 악플러가 채운다는 한 연구조사 결과가 있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좋은 댓글이나 혹은 그저그런 댓글을 단다는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이 그 “소수”가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 소수“악풀러”들의 출현은 인터넷 세상과 우리 사회가 낳은 병리현상이다. 실제 카나다 연구진에 의해 악플러들은 사디즘(상대방에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 등 정신 이상 성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악플러들은 사디즘, 이상인격,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의 성향을 가질 확률이 남들보다 높다”고 연구진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악플러들은 뚜렷한 목적도 없이 기만적이고 파괴적이며 분렬적인 행동을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인터넷공간에서 불신과 싸움만을 부추기는 이 극소수의 “악플러”는 인터넷의 “종양”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의 류형에 대해 면밀히 분석해 내고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적극적인 차단을 통해 고립시켜 버려야 한다. 두절시켜버려야 한다. 추방시켜버려야 한다. 비루하고 단순한 욕망에 꺼둘린 그들의 행각이 어사망파(鱼死网破), 나아가 우리가 함께 합승하고 있는 배가 침몰하는 비극의 형국을 초래할수 있을터이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악플을 달고 있을 “악플러”들, 낭떠러지로 향한 키보드의 질주를 멈추기를 권고하고 싶다. 하루 아침에 인터넷 공간에 깊숙히 파급되여 있는 그 “종양”을 도려 낼수 없듯이 이 유감과 참담으로 가득한 작은 글에도 악플은 반드시 달리리라는 무가내를 금치못하면서 말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3    인터넷 마녀사냥 댓글:  조회:11813  추천:13  2014-06-06
악플 유감(有感)- 2   인터넷 마녀사냥 김 혁   지난 중세기적에 유럽에서는 “마녀사냥”이라는 사람을 겨냥한 사냥과 살육이 집단적 광기의 추썩임을 당하며 유럽 전역을 무대로 일었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되여 16세기 말∼17세기에 광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유럽 사회는 마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종교집단은 이단자들을 색출, 제거하는 목적으로 재판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희생자 수가 적었지만 점점 광기에 휩싸이게 되면서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라는 죄목을 뒤집어썼다. 일방적인 지명뒤에 마녀라는 락인이 찍힌 녀성들은 죄임쇠로 손가락을 으스러뜨리기,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살을 지지기, 몸에 바위덩어리를 매달아 관절에서 뼈를 빼버리기등 이루다 말할수없는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뒤이어 화형이라는 극형으로 처형되였다.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마녀사냥”은 18세기이후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그 광란은 20세기에도 “매카시즘”이라는 형태로 계속됐다. 1950년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는 반대파 정치인들은 물론 예술계와 언론계의 인사들까지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하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낳았는데 이를 “매카시즘”이라고 한다. 영화계와 방송계의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검은 명단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력을 망쳤으며 옥살이를 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채를린등 당대력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많은 유명인사들도 매카시즘의 쇠사슬에 목죄임을 당했다. 많은 사람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고있었으나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경력위조, 음주추태로 정치판에서 수세에 몰린 매카시가 자신의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만든 막수유(莫須有)의 황당극이였다. 그후 매카시는 상원외교관계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그가 말한 공산주의자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진술할수 없었다. 그 한사람의 세치 혀끝에 의해 유명 엘리트들이 련줄로 억울한 루명을 쓰고 험지에서 허덕이였으니 이는 또 한차례의 현세의 “마녀사냥”이였다.   요즘들어 “네카시즘”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인터넷과 매카시즘을 합성한 말, 다수의 네티즌들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사회의 공적으로 삼고 매장시켜 버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쉽게 극단적이게 되고 도덕성이 실추되는 인터넷공간의 악행을 고발하는 신조어이다. 같은 맥락으로 “인터넷 마녀사냥”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바로 이와 류사한 집단심리가 현재 우리 인터넷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인터넷 마녀사냥들의 공통된 특징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삼아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 사실의 진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전파시키거나 악성댓글을 다는것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현대판 마녀사냥이라 할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녀사냥은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의 시대에 하필이면 발생되였다. 점점 수위를 넘고있는 악플행위도 우리가 인터넷에 어섯눈을 뜨고 그 문화를 수용, 활용하고있는 시점에서 기염을 보이고있으니 이런 온라인 세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수 있어야 할것이다.   우리는 이미 저 끔찍한 10년 대동란이라는 아비규환의 세월을 겪어 왔다. 그것이 인터넷에서도 자행되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광분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다시금 살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2    악플이라는 독버섯 댓글:  조회:5047  추천:20  2014-06-06
칼럼 시리즈    악플 유감(有感)- 1   악플이라는 독버섯 김 혁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아직도 걸음마 타기의 양상을 보이고있다고 해야 겠다. 개혁개방의 물결에 편승하여 일찍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힌 이들로부터 인터넷을 활용, 우리로 말하면 어딘가 생경스럽던 인터넷문화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변강의 오지에 운집해 살던 우리는 지금껏 상상할수 없었던 엄청난 량의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류통시킬수 있게 되였다. 또 “출국리산가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올정도로 “리산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인터넷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친지들을 손쉽게 실시간으로 련결해주는 매개물로 되였다. 그로부터 인터넷은 우리들에게 점차 익숙한, 떨어질수 없는 옛말속의 “백보상(百寶箱)”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애초의 메일을 통한 가족끼리의 문안으로부터 그후 블로그, 까페, 미니홈, 트위터등을 통해 해외견문이나, 리향자의 처경, 문화차이로부터 오는 갈등에 대한 소견등등을 일기처럼 때때로 적던데로부터 취향이 맞는 이들끼리 정보를 교류하고 친목을 다지기위한 까페를 꾸미고 나중에는 일정한 규모의 사이트를 만들기까지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에 힘입은 빠른 전파성의 특징으로 인터넷은 어느새 우리의 생활에 깊숙히 들어왔고 서로지간의 새로운 소통의 공간이 되였다. 하지만 창문을 열먼 “꽃향기와 더불어 파리도 날아 들어오듯이” 그 공간에 각종 혼잡한 내음이 섞여들기 시작했고 불협화음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일 매시각 업데이트되는 각종 정보와 사유의 만개로 인터넷 화원은 백화만발한듯 하지만 아직 성숙되지 못한 인터넷 문화의 토양에 하나의 독버섯도 끼여서 현란한 색조로 사람들의 신심을 현혹(眩惑)시키고 있다. 바로 악플이라는 독버섯이다. “악플”. 나쁠 악(惡) 자와 리플(reply) 즉 화답이라는 글자 중의 “플” 자를 합성한 신조어로서 다른 사람이 게시판에 올린 글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을 담아서 올린 댓글을 의미한다.   우리의 인터넷기술은 아직 해외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조선족의 많은 블로그와 사이트들은 해외의 서버(근거리 통신망 등을 통해서 다른 복수의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으로부터 공용되는 각종 자원을 제공하는 장치)를 차용품처럼 빌려쓰고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서름한 와중에 우리의 인터넷마당은 그 뒤틀린 춤사위를 엿보이기 시작하고있다. 댓글에서 놀이하며 다는 댓글들이 진지한 고민을 거친 댓글들을 량적으로 압도하고 있다. 그보다도 악성 댓글, 명예훼손 등이 거친 춤사위를 보이며 우리의 인터넷공간은 어쩌면 제어장치를 아직 달지않은 폭주자동차 꼴이 돼 버렸다. 조선족의 몇몇 사이트들에서 악플이라는 독버섯처은 엄연히 자라고 있으며 그 수위가 도를 넘었고있다.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고 좋은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건전한 댓글문화를 우리의 사이트들에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신과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오수(汚水)를 와락 퍼붓고 나아가 칼보다 강한 말의 “흉기”를 무차별 휘두른다. 따라서 인터넷 문화의 폐해성을 두고 사회 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에서의 악플 과연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가? 인터넷에 심취해 일찍부터 주제별로 블로그와 까페도 적지 않게 꾸려나가고있는 필자는 악플의 위해에 대해 무지근하게 계속되는 치통(齒痛)처럼 겪어왔었다. 몇기에 나뉘여 악플에 대한 유감록 몇편을 적어 본다. 물론 악플에 대해 론한 이 글이 악플달기의 애호를 갖고 있는 이들의 “아취(雅趣)”를 건드렸기에 가장 극악한 악플의 세례를 받을것을 감내하면서 말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21    련꽃밥 댓글:  조회:2797  추천:19  2014-05-31
《길림신문》 제1회《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수상작품 . 단편소설 .   련꽃밥   김 혁       택시가 한참 달려서야 나는 사진기의 건전지가 다 떨어져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마을을 찾아서 사진 한장 남기려 했는데 건전지가 다 떨어지다니… 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충전을 깜박한데다가 연도에서 좋은 풍경들을 보고 마구 눌러댄터에 사진기의 건전지가 수명을 다한것이다. “이 걸로 찍어요. 아빠” 이마살을 모으는 나에게 아들애가 사진기를 내밀었다. 플로라이드 사진기다. 장난감이지만 제법 인회되여 나올수 있는, 즉석사진기였다. 귀국해서 아들애한테 세상 그 무엇도 다 사줄테니 뭐가 갖고싶은가 하니 플로라이드 사진기라했다. 촬영쪽에 애호가 있는 나를 닮긴닮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녀석의 반급 애 하나가 역시 그 아비가  외국에서 돌아오면서 사온것이 플로라이드 사진기였던것이다. 그자리에서 인화되여 툭 떨어져 나오는 사진에 녀석들은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돌생일을 쇠자 일주일도 못되여 출국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보는 나의 아들이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놀란듯 망울진 눈동자에 외겹눈꺼풀가지 녀석은 나를 꼭 빼닮았다. 그동안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운명하자 처가편 이모의 집에서 지냈고 그네들이 모두 출국하자 또 학교에서 꾸리는 단친가족숙소로 전전하면서 지내온 불쌍한 녀석, 애련한 녀석은 공항에서 두눈을 끄먹거리며 선뜻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아홉살배기로서는 무언가를 빨리 알아버린듯한 울울한 그 눈동자가 나를 슬프게 했다. 그 눈동자를 보며 나는 아들애에게 뭔가 보상을 주리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6장밖에 찍지 못하는 플로라이드의 사진기도 필림이 겨우 한장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들애의 초동머리를 만져주었다. “련화마을로 가는 뻐스, 취소한지 오랩니더” 련화마을로 간다는 말에 모두가 머리를 저었고 그러다 어렵게 설복해 차머리를 돌린 택시 기사가 말했다. “왜겠어요? 이제 그 마을도 페촌이 됐는걸요 뭘” 백미러로 당혹이 서려드는 나의 얼굴을 힐긋 쳐다보며 기사가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십년이 가까운 아홉해가 지났으니 고향은 많이 달라질법도 했다. 한때는 제법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 마을앞의 커다란 자연 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마을이였다. 어쩌면 내 안해의 이름도 련화였다. 고향마을에는 녀자고보면 태반은 련화라는 이름을 달고있었다. 그래서 “작은 련화”, “큰 련화”, “앞집 련화” ,”뒤집 련화”, 지어 “못생긴 련화”, “애꾸눈 련화”로 구분하기까지 했다. 모두다 련꽃처럼 예쁘게 꽃피고 번성하게 열매맺기를 팔자소관에 새겨넣은 결과였다. 련꽃같은 안해와 나는 함께 출국의 길에 올랐다. 밀입국으로 허위단심 오른 길이 어쩌면 생각밖에 무난히 틔였다. 나는 해산물 류통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싣고 나르는 일을 했다. 추운 랭동창고에서 일했지만 한 묶음에 수십킬로나 되는 랭동어물을 짐져 나르려니 땀이 등줄기를 적셨다. 그리고 어깨 부들기가 까져 피가 배여 나왔다. 촌에서 나서 자랐다지만 향의 문화소에서 책상물림으로 일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였다. “이궁, 이럭케 하구 밥을 얻어 먹울수 있겠슴둥?” 사장님이 개그 프로에서 마냥 비하의 상대로 삼는 연변방언을 흉내내며 무거운 짐을 지고 행사장의 풍선아치처럼 허둥대는 나의 엉뎅이를 발로 찼다. 어깨의 피가 딱지로 앉고 다시 멍으로 자리잡을때에야 나는 간신히 일에 적응할수 있었다. 안해는 초밥집에서 일했다. 해종일 빙빙 돌아가는 회전초밥집의 식탁에서 밀밀 밀려나오는 크고작은 그릇씻기를 멀미나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한번 안해의 얼굴이 매스컴을 탔다.  불량제품을 고발하는TV프로에서 바퀴벌레가 기여다니는 초밥집의 위생상태를 몰카로 찍어 고발한것이였다. 구청에서 벌금을 부과했고 초밥집 체인점 사장의  얼굴까지TV에 나왔다. 그런대로 사장님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하지만 그 뒤에 멍하니 섰는 안해의 얼굴은 력력히 그대로 나왔다. 그 와중에 안해의 불법체류자신분도 드런났고 안해는 강제송환조치를 당했다. 혼자 서울에 나 역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드러날가 전전긍긍했다. 그 약점을 옴켜쥔 악덕업주에게서 연거번겨 로임체불을 당하했다. 그 성화를 피해 경남의 한 치벽지에까지 내려갔다. 그곳에서 한우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했다. 고향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으므로 다른 업종에 비해 이 일이 그나마 내게는 쉬웠다. 인차 안해는 재입국했다. 불법체류자로 송환되였던 안해는 이번에는 위장결혼이라는 험로를 택했다. 그런데 당시 인민페6만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위장결혼을 허락했던 남자가 출국이 성사되자 정식 결혼을 제안했다. 지지리 늙도록 결혼의 관문을 넘지못했던 그 로총각은 한사코 안해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 횡포와 공갈을 못이겨 결국 안해는 그에게 눌러앉고 말았다. 자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보호를 받을수없는 위법의 선택을 했으니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였다. 역시 스스로 덫에 오르는 이 길을 알면서 묵인했던 나자신도 그 누구를 탓할수 없었다. 앙다물다 부러진 이발을 자기배속에 삼킬수밖에 없었다. 안해는 그 남자와 쌍둥이 남자애까지 낳았다고 했다. 역시 출국해 타지에서 앞갈망뒤갈망하고 있던 련화마을사람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건초더미에 쇠스랑이를 꽂아 넣은채 나는 그 자리에 못박혀 버리고 말았다. “왜 그래 김씨?” 농장 주인이 다가와 물었다. “눈에 티가 들었슴다.” 나는 고개를 탈며 눈가로 흠씬이 배여나온 이슬 멀기를 지웠다.   안해는 련화마을에서 첫손에 꼽히는 예쁜 녀자였다. 마을 문화관에서 일하며 그림솜씨에 사진찍는 재주도 갖고있는 나에게 안해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 마을앞 련못가가 우리들의 밀회장소였다. 저녁놀이 지는 련못가에 그녀를 세우고 찍은 “황금 련못”이라는 사진작품은 진에서 조직한 향촌문화경색대회에서 금상까지 받았다. 금상으로 “갈매기”표 사진기를 상금으로 받아안았다. “이제 우리 행복한 나날들을 낱낱이 기록합시다” 상으로 받은 사진기를 그녀앞에 자랑했고 그녀는 옥석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레 사진기를 만지며 기뻐마지 않아했다. 그날 밤, 련꽃잎이 늠실이는 련못가에서 안해는 벙그는 꽃잎같은 몸을 나를 향해 열었다. 귀국해 그동안 친척집에 맡겨둔 짐들을 찾다가 그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은 겉봉에 “향선진사업자라”는 글발이 새겨진 낡은 노트의 갈피에 꽃혀 있었다.  사진은 색이 바래지려하고있었다. 하지만 사진속 련꽃은 아직 아름다웠고 녀인의 미소도 아직 채 바래여지지 않고있었다. 사진속 련못을 지켜보노라니 또 다른 련못이 늠실거리며 나의 동공에 나의 뇌리에 차올랐다. 한우농장 주인은 서울에 계시는 아버지를 늘 외웠다. 산수(傘壽)의 년세인 아버지는 유명한 동양화 화가라 했다. 여태 서울에서 예술활동을 하던 아버지가 이제 거동이 불편해지자 굳이 번화한 도시에서 모셔오려 했고 로인장을 위해 마당에 특별히 련못을 만들기로 했다. 로인장이 련꽃을 많이 그렸다고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도 련꽃이 린근에서 알아주는 특산이여서 해마다 련꽃축제까지 열리고 있었다. 들에 촉촉하고 따뜻한 기운이 돌자 주인장은 뜨락에 련못공사를 시작했고 공사에 나도 동참했다. 주인장이 로프줄을 늘여 못의 륜곽선을 표시했다. 그 선을 따라 석회가루를 뿌려 원하는 련못의 형태를 표시했다. 포크레인까지 동원되여 굉음으로 동네를 깨우며 마당의 언땅을 노크했다. 포크레인의 큰 손이 벌레들이 사는 땅속을 짚어내려가자 깊고 어두운 세계가 층층이 드러났다. 기계가 갈수 있는 마지막 깊이에서 주황빛 진흙바닥이 드러났다. 거기서부터 공기는 시린 기운을 뿜었다. “련못을 만들려면 일조량이 좋은 곳이 적당하지.” 그 무슨 비법을 계수해주듯이 주인장이 련못공사를 벌리고있는 우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위에 해볕을 가리는 나무나 집채들이 있는곳은 피해야지, 나무가 우거지며는 잎이 련못에 떨어져 썩어들면서 수중의 산소 부족과 물을 오염시키게 되는거요. 될수록 깊이 파야 돼. 련못의 깊이가 낮으면 련못 전체가 얼어 버릴수 있다고” 부친을 위한 련못을 만들기위해 공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것 같았다. 포크레인이 딱지를 뗀 구덩이속에 들어가 여럿이서 쟁기를 들고 파고 다져서는 땅을 편평하게 고른뒤 비닐 시트지를 깔았다. 강화유리섬유로 만들어 진것이라는 시트지는 내구성이 강하고 동파의 념려가 없어 저온에 강하며 쉬이 썩지 않는다고 했다. 시트지 위에 세멘트를 입혔고 마르기를 기다려 방수제를 발랐다. 주인장이 아침마다 강으로 나가 하나 둘 정선하듯 주어 온 무늬결 고운 호박돌로 련못 테두리를 쌓고 세멘트로 발라 주었다. 련꽃 종근을 가득 싣고와 못에 심었다. 날이 한결 풀리자 못에 고기들을 넣어주었다. “흔히들 못에 붕어를 넣지만 피라미도 괜찮지. 갈겨니도 좋아, 피라미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라미에 비하면 눈이 크고 검지. 몸 량측에는 검은 자주색 세로 띠가 있다네, 저기 보이지 저 놈” 주인장이 련못속을 굼니는 붕어, 피라미, 갈겨니를 짚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벌거숭이가 되여 무법자처럼 뛰놀던 고향마을의 강을 떠올렸다. 그렇게 인공련못을 만드는데 옹근 봄과 여름을 보냈다. 농장마을 언덕우의 산수유나무잎새가 한결 푸르러 지자 련못에 수련의 둥근잎이 둥둥 뜨기 시작했다. 둥근 잎사이로 물고기들이 물을 굽어보는 이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수면에 호화롭게 떠올랐다. 그리고 드디여 련못에서 분홍빛 수련이 꽃을 피웠다. 꽃잎속에 금빛 수술이 화려한 수련은 귀태가 나고 제법 운치가 있었다. 잠못드는 밤이면 나는 풀벌레들의 울음이 가득한 련못으로 나가곤했다. 벌레울음소리속에 나는 밤사이 수련이 몇 송이나 벙글었는지 헤여보군했다. 어느 비 오는 밤, 나는 또 잠못 이루고 련못가로 나왔다. 이제 막 피어나는 련꽃이 송얼송얼 비를 맞고 있다. 툭 또르르르.. 꽃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은빛으로 달려와 꽃받침에 모였다가 련잎에 떨어진다, 또르르 또르르 비방울은 굴러 련잎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비물이 고여 무거워지면 련잎은 스스로 머리를 숙여 자신을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지 않고서는 다시 채울 수 없음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비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채워만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련꽃은 피였는데 완상(玩赏)할 이가 따로 없구만” 주인장이 다가와 우장도 없이 얼빠져 서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련못은 만들어졌지만 주인장의 부친 로화백은 고향에 오지 못했다. 련못에 꽃이 잎새를 펼치기에 앞서 그만 붓자루를 떨구며 눈을 감고 만것이다. “’련꽃은 눈으로 들여서 마음으로 느끼는 꽃이다.’고 련꽃을 좋아했던 선친은 말씀하셨네. “ 주인장도 나처럼 비오는 날 잠못이루고 감회에 젖어 련못가로 나온것이였다. “다가서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는 꽃이지만 또 많은 가르침을 주는 꽃이라 선친은 말씀하셨지” 역시 화가의 길을 걸었다 접었다는 환갑년의 주인장은 평소의 육두문자를 날리던 농장주답지 않게 깊은 화두를 꺼내들었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번뇌를 씻은 평정한 마음을 가질수 있다고 선친은 말하셨네. 련꽃은 비록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잎과 꽃은 오히려 더욱 정갈하지.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무한한 안락과 평화의 나래를 펼쳐준다는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 서울 최고의 화랑을 꿈꾸었던 내가 시골로 내려와 촌 무지렁이가 되여서 그리고 련꽃을 완상할줄 아는 이들을 보내고서야 이제야 늦게나마 느낀바라네.”  “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 내가 그 감흥에 물젖으며 답했다. “그럴테지,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것이 더 아름다울것이네” “이보게 연변 나그네, 이제 고향의 꽃을 완상하러 가시게. 더 늦기전에 말일세.” 그렇게 말하는 주인장은 우리들의 로임을 체불하는 악덕업주와는 달리 선친을 닮은 탁월한 예술인 같기도 하고 전설속 련못가에 칩거해 사는 철인(哲人)같기도 해 보였다. 힘든 나날, 련못의 풍경과 그 고즈넉한 시간, 그리고 순백의 꽃송이들로 텅 비였던 내 가슴은 그득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는개비(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보다는 작은 비)가 내렸고 는개비가 내린 며칠후 마을에서는 련꽃축제가 열렸다. 련이 마지막 꽃 입술을 뗄때는 반드시 는개비가 온다고 주인장이 말했다. 린근마을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련꽃체험을 즐기려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 왔다. 마을 회관마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마을의 농업경영인들과, 생활개선회, 마을부녀회원들의 주최로 련꽃의 잎, 줄기, 꽃, 열매를 사용해 각종 밥, 떡, 차, 죽, 짱아찌 등의 음식 만들기로 이어졌고 련꽃잎 미용팩 시연회도 개최했다.   날 찾아 오신 내님 어서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회관지붕에 달아 맨 스피카에서는 트로트의 녀왕 장윤정의 노래가 들려왔다.   사랑의 꽃씨를 뿌려 기쁨을 주고 서로 행복 나누면 라이라이라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라이라이라야/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마을은 숫제 명절기분이였다. 농장주인이 이날은 모든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나도 행사장으로 나갔다. 련꽃밥을 시식하는곳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나는 회장에서 나누어주는 일회용 식기를 들고 줄에 섰다. 련꽃잎을 따서 련잎으로 감사 쪄낸 련꽃밥은 “신장기능을 보강해주고 해독, 지혈, 설사에 효능이 있는것으로 알려져 최근 웰빙붐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거듭했다. 사람들은 줄지어 련꽃과도 같은 분홍빛 유니폼을 입고 “농장마을 련꽃축제”라는 띠를 가슴앞에 두른 도우미들이 퍼주는 련꽃밥을 식기에 받았다. “맛있게 드세요” 도우미가 방긋 웃으며 련꽃밥을 한주걱 봉고밥으로 퍼담아 주었다. 련꽃몽우리가 터지는듯한 은근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왠지 그 소리가 귀에 익었다. 흠칫 소리의 임자를 쳐다보았다. 그순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나의 놀라는 거동에 목소리의 임자도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밥주걱이 떨어져 나갔다. 둥근 련꽃을 담은 그 둥근 얼굴이 중등을 자른 연의 구근처럼 시르죽었다. 얼굴은 늦가을의 련꽃처럼 함북 일그러져 들었다. 그녀가 유니폼 자락으로 와락 얼굴을 감싸쥐였다.   어디서 무엇하다 이제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스피카에서 경쾌한 노래는 그냥 울리고 있었다.    마을회관앞에도 련못이 있었다. 련못의 지름은 어느 학교의 운동장만할지도 모르겠다. 그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반대편의 끝자락이 아드막히 느껴지는 정도의 크기이다. 그 끝에서 나는 회관쪽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안해는 련꽃씨처럼 작게 보였다. 행사장의 귀퉁이에 숨어서 바람에 쓸리는 련꽃잎처럼 비칠거리며 사라지는 안해의 뒤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모르게 련꽃밥을 한입 떠 입에 넣었다. 향긋한 향이 푹상 올라왔다. 한입 가득 환장하게 향기로운 실의를 머금고 울걱거리다 나는 그만 목이 꺽 메여 가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눈물의 련꽃밥을 먹던 그날 밤 나는 또 잠들지 못하고 련못가로 나왔다. 련잎들 사이로 올라온 분홍빛 꽃봉우리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는 손짓 같았다. 나는 그 손짓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드디여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렸던 나는 주체못하고 혀끝으로 터져오르는 탄음(彈音)을 금치 못해 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려 사람 하나없는 호젓한 마을에서 외로움에 부대끼면서도 련꽃잎은 만개해 있었다. 그동안 타향의 련못가에 앉아 처음에는 수련과 붕어며 피라미며를 보고 있지만 나중엔 련못 속에 비쳐진 구름이며 별이 보였고, 그 다음에는 얼굴 찌프린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안해의 둥근 얼굴과 얼굴조차 익히지 못한 아들애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기도 했다. 타향의 차거운 바람이 일어 련못속 풍경을 물살이 곧잘 헤살지군했다. 그리운 영상들은 오간데 없이 흐려지면 물살을 타고 외로움이 밀려 왔다. 그동안 나는 련못의 주인장보다 련못을 더 즐겨 찾았었다. 비록 내가 일군 련못이지만 사실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나는 이 련못의 주인이 아니였다. 주인일 수가 없는것이다. 그저 돈을 바라고 고향을 내쳐두고 온 나는 길떠난 나그네이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련못의 실제 주인은 그 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그들이였고 나는 다만 그 남의 련못에서 잠깐 완상을 흉내내는 어설픈 주인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여 나의 련못가에 이렇게 섰다. 고향의 련꽃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 껴안고 길을 나섰던 나는  손대면 톡 터질듯이 봉싯한 련봉오리를 점도록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버린 련꽃은 잘도 피여나고 있었다. 금수술 빛나는 해를 품고 강건한 련잎 중심에서 튼튼한 꽃대가 올라왔고 꽃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천연한 자태로 웃고 있었다.   두만강 홍련이라는 학명의 이 꽃은 일억 삼천 오백만년전에 벌써 이곳에 구근(球根)을 묻고 가지를 치고 꽃잎을 펼쳤다고 했다. 방석만한 련잎이 못을 가득 덮은 사이사이로 청초한 련꽃이 고개를 비죽 내밀어 세상을 둘러본다.    련잎은 새가 군무를 하듯 하늘 향해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로서 련꽃은 어디론가 날아가려는것 같기도 했고 금방 날아와 날개를 접으려는것 같기도 했다. 어떤것은 금방 피여있고 어떤것은 벌써 다 져서 련밥을 익혀가는것도 있었다. 이제 물속에서 얼굴은 내밀고 어른 손만한 봉오리를 쳐든것도 있었다. 그 여린 꽃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할가 싶었다.  두만강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련못은 향기로 흔들렸다. 련향이 천지에 그윽하다. 련꽃향은 몸으로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맡아보니 련꽃 향기만이 아니었다. 물냄새, 진달래꽃 냄새, 버드나무의 냄새, 이 냄새들은 련꽃향기에 섞이어 바람이 들깨워주는 기억에 따라 낯선듯하면서도 익숙한  향기가 되여 나의 코속을 마음속을 헤집었다. 이 환장할만큼 지극히도 친숙한 향기는 내 고향마을의 냄새였다. 련못에서는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터를 잡아 서식하고 있었다. 물방개와 소금쟁이 같은 곤충들이 그리고 마름과 개구리밥과 물달개비와 부레옥잠 같은 물살이 식물들이 련꽃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있다. 련잎이 수면을 촘촘히 덮은 못은 뭇 생명체들의 공동체적인 삶의 현장을 지키며 살고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것인가? 련못은 멀리 다른 곳의 련못에서 서성이며 못난 자신을 비추며 옹색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아들애가 련잎을 해빛 가리개로 쓰고 신바람 나게 달려 왔다. 고추잠자리가 놀라 푸드득 날개짓을 했고 청개구리도 풍덩 못에 뛰여든다. 아들애는 나에게 플로라이드 사진기를 내밀었다. 이 풍경을 놓칠수야 없지하고 나는 조촐한 사진기일망정 못을 향해 조리개를 맞추며 셔터를 눌렀다. 한여름 정오의 강렬한 해살이 련잎에 촘촘히 떨어져 내린다. 해살에 반사되는 눈부신 수면에서 련꽃은 더욱 소담스럽고 청초해 보였다. 어쩌면 저리 잡념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가. 툭!  사진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사진을 꼭 손아귀에 품었다. 그리고 가슴앞에 대였다. 빨리 인화되라고, 그리웠던 그 모습을 빨리 현시하라고. 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나고 있었다.    “길림신문” 2014년 3월 27일 ​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꽃 - 장윤정 ♬
220    억겁(億劫)의 꽃, 그 꽃잎을 세며 댓글:  조회:2541  추천:20  2014-05-31
억겁(億劫)의 꽃, 그 꽃잎을 세며 -김혁   할리우드의 영화거장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중에 《쥬라기공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기술로 1억년전 쥬라기시대에 지구를 제패하다가 사라진 공룡에 대한 완벽한 복원을 보며 감탄을 련발했었다.   공룡이 살던 그 시대 함께 공생했던 식물중에 우리 두만강 붉은 련꽃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그후의 일이였고 우리 신변에 공룡이 살던 1억년전의 꽃이 아직도 만개해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우리는 왜 사라진것에 대해 연연하면서 수억대의 돈을 퍼부어 컴퓨터기술을 극구 활용해 괴물을 복원해내면서도 여태껏 우리와 함께 해온 꽃에 대해서는 린색을 보이고 무관심을 보이고있는걸가? 그 꽃이 소담하게 어우러진 삶의 터전들을 버리고 홀홀히 떠나버리는걸가? 이러한 련상이 내가 이번 소설 《련꽃밥》을 쓰게 된 계기이다. 부침을 겪고있는 우리의 민족공동체, 텅 비여가는 삶의 터전과 그 터전에 홀로 남아서도, 억겁의 시련을 거치면서도 의연하게 피여있는 련꽃, 그 꽃에 대해 단지 완상(玩賞)의 여유로운 눈길로만 바라볼수 없었던것이였다. 련꽃은 깊고 더러운 곳일수록 더욱 크고 아름답게 피며 다른 종을 섞지 않는 영원한 순종의 꽃이라고 한다. 속세의 번거로움에 물들지 않는 꽃이라 하여 《군자화》로도 불린다. 련잎에 이슬이나 비방울이 앉으면 자신이 감당할만한 무게만큼 싣고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고개 숙여서 자신을 비울줄도 안다. 그래서 《비움의 꽃》이라고도 한다. 련꽃을 종자로 한 소설을 쓰면서 배우게 된 련꽃의 의미다. 그렇게 《군자화》의 자세로 글쓰기의 밭을 경운해나가려 한다. 세월이라는 꽃잎을 세고 또 세며 좀더 성숙된 완상의 눈길을 가지기 위해 고독과 갈증을 견디며 스스로의 계절을 만들어 글줄에 꽃씨를 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가는 일을 쉼 모르고 반복하고있다. 명리에 둔감하고 고독을 외려 달가워하는 많은 문학인들의 노력에 받들려 피페해진 문화풍토에서도 문학은 그 실추되고저 하는 가치를 멀미나게나마 이어나가고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또한 이러한 군자화의 자세들이 꽃줄기처럼 기조를 잇는다면 흔들리는 파고(波高)를 이겨내며 우리의 꽃을 만방에 향기 그윽하게 피워낼것임을 난 믿고싶다. 람루한 내 삶이 비쳐든 이야기들을 연거번거 수상작으로 뽑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9    피안교 (彼岸桥) 댓글:  조회:2993  추천:23  2012-02-03
 2011년 “연변일보” CJ문학상 수상작품  . 단편소설.   피안교 (彼岸桥)    김 혁       새로축조된다리를 바라보며그녀는고향의옛다리를떠올려보았다. 고향마을과 시가지를 련결해주는 하늘다리, 굵다란 동아줄에 의지해 그 무슨 작은 요정들이 건너는 동화속 다리인양 반공중에 걸려서는, 바람부는 날이면 단오날 그네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던 하늘다리… 그 다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십여리 길을 에돌아가야 했기에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그 다리에 몸을 싣곤 했다. 아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 공원으로 희귀동물을 보러 갔고 젊은이들은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비디오방으로 한국드라마를 보러갔고 로인네들도 그 다리를 건너 시가지의 장터로 장보러 갔다. 어느 날인가 결국 그녀도 그 다리를 건너가고 말았다. 아버지의 굳은 만류도 물리친 채 손잡고 하늘다리를 건너 비디오방을 다니며 사랑이 싹튼 남편과 함께 시가지의 학교로 전근해 갔다. 민영교원이라는 서러운 홀대의 딱지를 달지 언정 겨우 학생 몇몇에 우사를 방불케 하는 촌마을 학교가 아니라 시가지의 층수 높고 채광 좋은 교실에서 귀티나는 시가지애들을 상대로 교편을 잡고싶었다. 그리고 시가지의 학교에서 민영교원이라는 딱지를 겨우 벗은지 얼마 안되여 그녀는 이번에는 시가지의 큰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고향으로 향한것이 아니라 출국붐의 장대한 대오에 합류해 한국으로 날아갔다. 남편의 굳은 만류를 물리치고서였다. 그렇게 한국에서13년을 지냈고 겨울이 다가오는 처처(凄凄)한 계절. 그녀는 드디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가지로 들어오면서 기억속에 아련한 다리를 지나다 그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경아성이 튀여 나왔다. 어머, 다리가 변했네요. 예, 1억이나 부어서 다시 세웠답니다. 이제 때깔 많이 변했죠 이곳도… 택시기사는 분명 오랜만에 돌아오는 귀향객에게 관광안내원처럼 자상히 설명해 주었다. 쌍방향6차선도로, 숨통 트이게 훤한 다리로 차량이 마음껏 오가고 교두에 곁들인 부속광장에는 손으로 지구를 보듬는듯한 추상의 조형물이 솟아있는 운치있는 다리를 그녀는 차창밖으로 넋을 잃고 내다보았다. 타향의 품삯팔이에서 온몸 골골샅샅에 밴 채 응어리로 남아도는 피곤을 풀 사이도 없이 그녀는 다리부근에 음식가게 하나를 차리려고 돌아쳤다. 그동안 서울의 갈비집에서 일하면서 어깨넘어로 배웠던 재간으로 갈비집 하나를 차릴 예정이였다. 10년간 손톱 벗겨지게 일한 대가로 두둑해진 염낭사정으로는 가게 하나를 내고 운영하기에는 족했다. 가게를 내줄 건물주인에게 임대료를 내러 가다 그녀는 지금 강변도로에서 그만 용트림쳐 오르는 추억에 발길이 묶인것이였다. “10년이면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더니 이 자그만 시가지는 그새 많이 변했다. 불과 십여년 사이에 꽤 큰 도시로 변하고, 사람들은 터져날듯 많아지고 사람들의 생활도 뒤집힐듯 변해버렸다. 변한건 시가지뿐이 아니였다. 그녀의 신상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결혼생활이 결국 조종을 울린것이였다. 촌 마을 한 학교의 체육선생이였던 남편은 잘 생긴 얼굴, 큰 키에 적당히 단련된 몸을 갖고 있는 그녀의 첫사랑이였다. 그동안 “기러기 아빠”의 생활에 쭉줄린 나머지 안해더러 돌아오라고 전화에서 매일이고 닥닥질을 했던 남편은 10년채 되던 해에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결별을 선포했다. 남편의 결별선언을 듣고 뿔없는 소처럼 일하기만 했던 그녀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앓아 누었다. 서로 팽팽히 당겨대던 희망의 줄다리기 한쪽 끝을 남편이 홀연 놔버렸기때문에 그녀가 뒤로 자빠진건 당연했다.   귀향해서 맨 처음 한 일이 어쩌면 리혼수속이였다. 딸애의 부양권은 남편이 가졌다.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는 추석이나 설명절때만 걸려오는 전화속의 목소리로만 알아왔던 딸애도 아빠쪽을 원했다.그녀는 주저앉고 싶을 만큼 아득해졌다. 이런것인가? 이런것이였던가? 내가 바랬던것이? 그녀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잉어처럼 싱싱한 청춘에 고향을 떠나 이제 단물 빠진 껌처럼 질기고 뻣뻣해 보이는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마흔이 훌쩍 넘은 터수의 중년이였다. 그저 무양하게 곧게 뻗어 있는 다리라 믿었던 하늘다리에서 홀연 돌개바람을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발아래로는 아직도 건너야할 거대한 협곡이 밑도 끝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아가리를 벌린 채 존재하고 있었고 이제 그 다리를 어떻게 건너얄지 손잡아줄 사람도 없는 이 순간 아찔한 절망감과 당혹감으로 그녀는 그저 상실감의 동아줄만 부여잡은채 얼어붙고 말았다. 아이의 얼굴만은 한번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두살때 떠났으니 이제 열다섯살 된 딸애를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피자집에서 딸애와 만났다. 쭈볏거리며 자기앞으로 다가온 딸애의 어깨를 겹치고, 등허리를 부여잡고 다독였다. 자기 키를 넘게 훌쩍 웃자라버린 딸애를 의식하며, 어쩐지 자기 피붙이와도 서먹서먹해진 자신을 의식하며 그녀는 또 한번 눈물을 쏟으려 하고있었다. 아무말도 없이 피자의 가녁을 야금조금 뜯어먹는 딸애를 그녀는 자우룩이 젖어드는 눈으로 내내 지켜보았다.딸애는 꼭 처녀적 자기를 닮았다. 볼록한 이마에 초승달눈이며 가끔 코잔등을 찡그리는 모습까지도… 덩그마니 쌍꺼풀 진 딸애의 큰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그 눈은 남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고있었다. 상처입고 두려워 떠는 짐승의 눈이 저럴가. 불안함이라고도, 슬픔이라고도 할수 있는 그 눈동자의 떨림에 그녀는 마음이 저릿했다. 깨끗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손이 가지 않은 아이, 사랑의 손길 하나 결여된 어줍은 아이를 그녀는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피자 접시를 비우고나서 딸애는 몸을 일으켰다. 저녁자습을 나가야한다고 했다. 그런 딸애에게 그렇다할만한 위안의 말 한마디도 못해 주고 그녀는 그저 응 가봐!하고 응낙하고만 말았다. 그러다 딸애에게 주려고 지갑에서 챙겨왔던 돈다발이 그제야 생각나 딸애를 쫓아 나갔다. 어스름이 내리는 길거리에서 딸애는 어느새 어둠에 스며들고 없었다. 목덜미를 타고 체온을 낮추는 밤바람에 몸을 옹송그리고 그녀는 코잔등을 찡그린채 멍하니 피자집앞에 서버렸다. 가슴이 저린지, 쓰린지, 슬픈지, 그저 멍하게 얼빠져 있었다. 이런 꼴 바라고 내가 그렇게 긴 시간 타향에서 그렇게 독기 하나 품고 손 지문 지워지도록 돈을 벌어왔던가! 그녀는 화대를 채 못받고 손님을 쫓아나온 뒤안길의 녀자처럼 돈다발을 손에 든채 길녘에 서서 그만 서럽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길가는 사람들의 의뭉스런 눈길들이 그녀를 바라고 몰부어졌다.   이 십수년간 그녀는 붐비는 다리를 건너는 차량처럼 종착역이나 기착지 같은것을 생각할 사이도 없었다. 그저 다리를 꼭 지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향의 현실을 망각한채 머리속에서 홀로 축조되고있는 판타지속 다리를 겅중거리며 허위단심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그렇게 희망과 욕망의 이차선 다리우에 보잘것없이 서 있었다. 한국에 가서 맨처음 갈비집에서 일했다. 분필을 고누잡고 칠판에 판서하던 손으로 기름이 진득하게 달라붙어 번지는 하얀 그릇의 전두리를 행주로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세제를 듬뿍 풀어 씻고 또 씻었다.얼굴이 불판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온 몸이 땀에 젖어 몸에서 꿉꿉한 냄새가 날 정도로 일했다. 주인장아낙의 시푸르뎅뎅한 얼굴과 거칠고 천한 언사가 마음에 들지않았지만 그런 일자리라도 차려진것이 그녀에게는 감사한 일이였다. 일을 마치고 탕개풀려 마주한 식사시간, 주인장이 손님이 먹다남긴 갈비를 밥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먹어. 먹을만해. 코잔등을 찡그린채 잠간동안이나마 그녀는 아득해졌다. 그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주변 사람들, 그들은 호기심과 홀대를 가득 담은 두눈의 초점을 그네들 형용어로는 “옌벤”에서 왔다는, 툽상스러운 함경북도 말씨를 구사하고있는 어딘가 어리쳐 보이는 그녀에게 모으고 있었다. 절망과 락담에 물젖어 그 손님들이 뜯다만 갈비 한접시를 단숨에 다 먹어버렸고 그런 그를 가게주인은 그냥 괴물보듯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동물원 철창안쪽에서 먹이를 먹는 더러운 동물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월세를 맡은 자취방에 돌아왔다. 몸 하나 겨우 뉘일만한 작은 방에 관속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속에 일산화탄소가 들어차는것 같다. 햇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환기도 통풍도 되지 않아 늘 숨막히던 반지하 자취방. 그녀는 침침한 거기 에 처박혀, 조도(照度)낮은 알전구의 빛을 바라고 수선스레 날개를 터는 날벌레들과 함께 하며 고향의 물소리를 이명(耳鸣)으로 들었고 그 우에 가로놓인 하늘다리를 함께 건넜던 남편을, 그 다리가 있는 마을의 학교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던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전한 옆구리를 의식하곤 엉엉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취방밖에서는 길 잃은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강가 강변도로우로 어둠이 성깃성깃 내리고 있다. 주위의 가게들이 불빛을 토해내고 도로변의 가로등들이 초파일에 사찰을 찾는 신자들이 추켜든 제등(提灯)처럼 일제히 불을 밝혀 든다. 산개하는 그 불빛들에 도시는 은성(殷盛)한 빛무리의 향연이다. 리혼수속을 마치고 고향마을을 찾았다. 놀랍게도 하늘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삭풍에 떠는 하늘다리에 “위험! 사용금지”라는 패쪽이 달려 바람에 덜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앞에 점도록 서있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 하늘다리는 마을사람들의 희망의 유일한 통로였지만 이제 그 다리를 기억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세월동안 무수히 건넜을 다리. 오늘은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서는것일가! 전장에서 돌아온 귀환병처럼 그녀는 아버지 앞에 마주섰다. 어질러진 채로 가라앉아 있는 집, 그리고 그 안에 고향에 홀로남은 아버지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미이라처럼 수분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야 과연… 돌아오는가 보구나! 숨가쁜 기침에 감동을 섞어 아버지는 그녀를 맞아주었다.많은 말을 하려 했으나 기침이 아버지의 말을 끊어버렸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듯이 쿨룩거리는 기침은 선뜻하고 요란스러웠다. 싸락눈이 내려 앉은듯한 흰 머리칼, 시든 배추 겉잎같은 쭈글쭈글한 얼굴주름, 그리고 얼굴 곳곳에 앉은 검버섯, 꺾쇠인양 휘여진 허리… 하지만 숲속에 묻혀사는 산짐승의 눈처럼 눈동자는 청청하게 살아 있었다. 그 눈동자만이 당년의 마을학교 교장이였던 그이의 인끔높은 신분을 말해주는상 싶었다. 그녀의 코잔등이 찡그려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불효한 이 딸이 돈 많이 벌어왔으니 이제 옛말하며 삽시다! 하며 아버지를 만나 울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얼굴을 대하고 나니 주책없이 눈물이 앞서 번성거렸다. 그녀는 돋솟아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기침에 괴롭게 꿈틀이는 아버지의 등줄기를 두드려 주었다. 더 긴 안부를 생략한채 아버지는 서둘러 고향마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향의 학교는 이미 페교되다싶이 되였는데 아직 아이 네명이 남았다고 했다. 학교의 건물이 목공소로 변했고 교실 하나만 남았는데 귀청을 찢는 전기톱, 전기대패의 소리속에서도 애들은 공부를 계속했다고 했다. 이제 한 학기만 남으면 초중으로 갈 시간인데 마지막 한사람으로 남아 가르치던 선생도 한국으로 로무를 가버렸다고 했다. 부모가 출국해서 돈이라도 있는 애들은 그런대로 시가지 학교로 전학했지만 대책 구할길없는 할미나 이모에게 얹혀있는 불쌍한 애들은 이제 소학도 바로 마치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만다고 했다. 자신은 이제 애들을 가르칠 수준도 여력도 안되니 딸애더러 그 아이들을 마저 가르칠수 없겠냐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갈그랑대는 음성으로 아버지는 긴말을 단숨에 털어놓았다. 나… 당장 맛집 하나 차릴건데요. 우색(忧色)이 완연한 아버지의 얼굴을 걱정스레 보면서도 그녀는 할수무가내라는듯 자르듯 말했다. 아버지의 농도짙은 한숨이 방안의 먼지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그런 얼굴을 안쓰레 지켜보면서 그녀는 또 한분의 병색짙은 로인장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집 저집 문둥이처럼 옮겨다니면서 닥치는대로 일하다가 나중에 그녀는 중풍환자의 간호를 맡게 되였다. 중증환자에 대한 간호였지만 갈비집처럼 시시각각 들볶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품삯을 갈비집보다 훨씬 더 받아서 그게 좋았다. 풍맞고 쓰러져 때까치같이 마른 몸이 된 고래희의 할머니였다. 간호하기 쉬우라고 밀었던지 할머니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박박 밀어버린 두상의 표피를 내밀고 뾰족이 솟아오르는 백발, 잿빛 장막이 시야를 가린것처럼 혼혼한 기운의 눈, 풍에 들려 얼레빗처럼 우로 휘여져 올라간 슬픔을 자아내는 합죽한 입매… 이제 어떤 의사 표시도 자신의것이 될수 없는 몸, 병마의 망토자락에 들씌워진 로인은 한갓 사육 당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 컵을 머리맡에 놓고 퇴침을 베고 누워 틀이를 뺀데서 입가 주름이 묵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오그라든 입술로 우물거리며 할머니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복창했다.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서억가아모오니이부울… 물론 그녀는 그 전언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병이 쾌도를 보이고 발음이 말 배우는 아이들처럼 정확도를 잡아갈때야 그녀는 그 소리가 할머니가 부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간곡히 불러젖히는 소리였음을 깨달게 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실제로 비구니였다고 했다. 하지만 속세의 인연을 잊지못해 사찰에서 도망을 나왔고 남자를 만났고 자식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다 병으로 그 남자를, 익사(溺死)사고로 자식을 련이어 잃는 비운한 삶의 길을 걸으면서 다시 버렸던 불도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귀의의 마음을 먹었는데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녀는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뿌리를 보이면 죽는다는 묘종(苗种)을 옮기듯 조심스럽게 할멈을 간호했다. 할머니가 탕약을 드실 시간을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정성스레 손을 씻고 비뚤어져돌아간 입귀에 경건하게 약물을 흘려넣었다. 그녀의 정성이 하늘을 울렸던지 드디여 할머니가 몸을 추슬리고 일어섰다. 볼에는 건강한 화색이 돌았고 돌아선 입매의 부드러운 미소는 건강을 되찾은 기쁨과 마음속의 평화를 내비치고 있었다. 몸이 차도를 보이자 할머니는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구니 회관으로 나갔다. 꼭 몇해만이였다고 했다. 회관이라니 로인들이 화투나치고 신민요나 배우는 로인활동실처럼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회관을 꼭 사찰을 닮게 지었다. 소박하게 지은 비구니 회관은 영화의 한 장면을 스틸하기라도 한 듯이 절제돼 있고 담백했다. 열린 회관의 문사이로 탱화와 그앞에 설치된 불단이 보였다. 그런데 비구니 회관앞의 풍경에 그녀가 설둥한 기색을 지었다. 회관 정문앞 강도 내물도 없는곳에 나무다리 하나가 놓여져 있는것이 아닌가? 피안교다. 예? 피. 안. 교. 말사이에 휴지(休止)를 넣어 할머니는 한자한자 끊어 발음했다 사바 중생덜은 속진(俗尘)을 다 떨치지 못했응께 아무런 고통과 근심덜이 없는 열반 세계로 가려면 이 다리럴 건너야 한다. 피안은 깨달음의 열반세계이다. 이 피안굘 건너며 우리는 세속의 마음덜을 청정하게 씻어럴 버려얀다. 그렇게 때국이 앉은 마음덜을 씻어내고 닦아내면 그 안에 니가 보인다. 불교강론같은 할머니의 말에 알똥말똥해하는 그녀를 보다가 할머니가 또 말했다. 싸게(얼른) 돌아덜 가그라. 어디로요? 그녀가 다시한번 떨떠름해져 코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니 갈곳으로덜, 집 생각에 진종일 혼구녕 열린 사람모양 하는줄 알고덜 있응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그녀는 몸을 오소소 떨었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자장면 그릇에 씌운 랩을 벗겨내듯 그녀의 속마음의 연막을 벗겨낸것이였다. “청초는 년년록이나 왕손은 귀불귀(春草年年绿王孙归不归)니 우리 인생 늙어지며는 다시 젊어지지 못하느니라”. 긍께 싸게 돌아덜 가그라. 돌아덜 가서 쇠같은 남정 잘 받들고 토끼같은 딸내미 잘 키우고 아직 땅 널찍할때 뗏장 한장이라두 묵직한 쪽으로 떠서 조상님 묘자리에 덮어덜 드려라. 여그서 속아지 없는 사람들께 욕덜 보면서 알탕갈탕 돈 모아 나종에 할 도리가 그것이 아니드냐. 긍께 이제 더는 객지서 발바닥에덜 불나게 살지 말고 니 갈곳에덜 니 가얄곳에덜 싸게 돌아덜 가그라. 입으로 알싸한 독풀 냄새같은 탕약냄새를 흘리며 그녀의 손을 꼭잡고 할머니는 그 동안 묵혀두었던 그녀에 대한 괘념(掛念)들을 털어놓았다. 할머니의 곱아든 손에서 전해온 뜨거운 맥박이 고요하면서 강렬하게 고동치며 그녀의 몸을 장악해나갔다. 어쩌면 자신이 여직 건너온 다리는 허상의 다리였다. 그 수많은 허상을 헤치며 여기에 도달해 있다. 그런데 도착한 지점의 끝에서 되돌아보니 처음 출발했던 곳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자신의 중심을 지탱해주던 철심 하나가 쑥 빠져나가는듯한 상실감을 느껴 그녀는 진언을 바라는 신자의 눈매가 되여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며 섶을 깔끔하게 여민 옷매무새. 할머니는 옛날의 비구니로 돌아가 있었다. 절름이며 피안교를 넘어 맵싸한 향불 냄새가 새여나오는 회관으로 할머니는 들어갔다. 그러다 문앞에서 할머니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할머니는 웃고있었다. 비뜰어진 입귀를 쳐들며 명주실처럼 가늘게 웃고있다. 웃으며 할머니는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싸게 돌아덜 가그라!   … 밤안개에 젖어드는 다리는 이승의것 같지않게 신비스럽고 령묘해 보였다. 강변도로를 허청허청 걸으며 그녀는 다리가 그려내는 풍경의 언어를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어제를 떨치고 새로운 위용을 자랑하는 다리를 지켜보며 그녀는 강한 언질을 받았다. 그녀는 새롭게 건너야할 다리를 마주하고있었음을문뜩깨달았다. 자기가 왜 속살이 다 닳도록 고향을 향하는 연어의 처절한 회귀처럼 긴 시간을 에돌아 이곳으로 돌아왔는지를 알것만 같았다. 딸애의 초점잃은 눈길, 갈그렁이는 아버지의 목소리, 목공소의 톱질소리속에 이어지는 랑랑한 글소리… 그녀가 짓뭉기고 외면해온 시간의 흔적들이 다리아래의 강물과 더불어 아우성치며 지나가고 있었다.맛집 가게 하나 차리려는 욕심보다 더 지그시, 더 오래 뒤통수를 잡아끄는 힘의 정체가 무언지 이제야 알것같다. 다만 작은 힘이라도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를 만들어 주던 까막까치의 모습이 되여 고향에 버려진 애들을 돕고 싶었다. 그녀는 며칠전 금방 번호를 맞춘 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버튼을 눌러 몇번이나 찾았던 영업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합니다. 가게 그만둘려 합니다. 나지막하나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그녀는 끝내 이 한마디를 뱉고야 말았다. 조명장치가 돼있는 다리는 그 무슨 발광체처럼 온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진실한 색조의 모본단결처럼 그녀의 눈동자를, 그녀의 마음을 다잡아 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시켜왔던 방황의 아픈 시간들을 저 따스한 빛살아래 녹여버리고 온유함을 얻고 싶었다. 싸게 돌아덜 가거라! 어디선가 할머니의 말씀이 환청인듯 들려와 그녀는 다리에 오르기 앞서 잠간 뒤를 돌아봤다. 피. 안. 교…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언을 떠올려 보았다. 고개를 드니 대교의 운치를 보여주는 거대한 날개형의 조형물이 파란 불을 밝혀들고 있다. 이 밝은 빛은 아마도 어둠이 지치도록 아름다운 나래짓을 멈추지 않으리라! 바람에 새집이 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그녀는 어떤 장력(張力)에 끌리듯 다리로 다가갔다. 다리는 활짝 몸을 열어 그녀를 받아들였다.   - 끝-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8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 댓글:  조회:4427  추천:25  2012-01-17
수상소감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   김 혁   지난 겨울, 사무실 베란다에서 끊어진 연길교를 내려다 보다 문뜩 강한 언질을 받았습니다. 끊겨진 다리를 지켜보면서 그 다리를 건너야할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만들 령감의 빛을 받았습니다.   몇해전부터 저는 “중국조선족문제테마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중국조선족 공동체의 아픔과 그 피안을 더듬어 보고저하는 계렬소설들을 장편을 비롯하여 수십편을 창작, 발표하고 있습니다. 금번의 수상소설 “피안교”  역시 나의 그러한 사고와 창작 성향을 보여주는 계렬소설중의 한편이라 할수 있겠지요.   어쩌면 내 문학인생에서 처음이라는 낱말은 바로 “연변일보”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1993년 짧은 수필 한편으로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했고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문학상이였습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였군요. 그로부터 근20년이 흐른 오늘에 다시 어제날8년여 근무했던 “연변일보”로부터 받아안게 된 상, 문학에 대한 나름의 책무와 인과의 끈이 있었나 봅니다.   살면서 우리는 무양히 뻗어있던 다리우에 뚫려진 삶의 어이없는 허방을 발견할때가 있지요. 운명의 줄칼질에 제 앞에 놓인 다리도 문뜩 끊겨져 있습니다. 한두번도 아닌 잔인한 단절들이 너무나 동시다발적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멀미나게 흔들리는 공중다리를 지나는 느낌, 그러나 그 흔들림이야말로 그간의 내 문학적 소신을 지탱하게 해온 힘이였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고있습니다. 생경한 고통들은 끊임없이 나를 흔들고 괴롭혔지만 그 멀미나는 경험때문에, 나는 외려 문학이란 이 동아줄을 놓치지 않고 부드부득 잡아쥐였던것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허기진 짐승처럼 문학을 삼키며 힘을 얻고 삶을 지탱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무지 삶의 방편이 되여주지 않는 문학의 길, 하지만 어떻게 이 작심의 질주를 멈출수가 있을가요! 문학이란 삶이 지나는 끝이 보이지않는 다리이자, 그 와중에 자기안에 침전된 주체할수 없는 욕망과 오류를 추슬리는 행보이자, 그러다 나중엔 그 모든걸 뛰여넘는 도저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깨달음의 대안에로 이르는 길에 어차피 기나긴 다리, 위험한 다리, 끊어진 다리를 지나야하는건 문학인으로서는 의례 통과해야할 숙명의 과업같은것이 아닐가요!   그렇게 끊어진 다리를 수건하며 또 새로운 다리를 놓으며 문학이라는 궁극의 다리를 건너는 나의 “오체투지(五体投地)”의 행보는 계속 될것입니다. 젊음과 어제를 팔아 걸어 온 이 길을 진통속에서 마저 걸어갈것입니다. 멈추지 않을것이며 에돌아가지 않을것이며 더욱이 샛길로 빠지지 않을것입니다.   극히 짧은 편폭을 요구하는 신문소설의 특성상, 짧은 분량에 많은 말을 담으려 욕심을 보인 작품이지만 가려 뽑아준 평심위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떠벌이지 않고 조용히 작품을 써 온것에 대한 인정이라 생각해두니 고마움이 크네요.   겨울, 더 깊어지고 더 낮아지는 계절입니다. 오늘 저녁엔 조금 춥더라도 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여준 연길대교를 한번 노량으로 건너볼 생각입니다. 일심의 등롱 하나 켜들고 “피안교”를 건너는 문학신도의 심정으로…   감사합니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7    명작, 그 영원한 인류의 메시지 댓글:  조회:2755  추천:11  2011-06-29
. 대담 .     명작, 그 영원한 인류의 메시지    대담자   김혁&한춘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 한춘: 시인, 전 흑룡강신문사 문예부 주임       김혁:      한춘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요즘은 통신수단의 눈부신 발달로 이렇게 메일로 “변강의 오지” 연변에서 “동방의 빠리” 할빈에 있는 선생님과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않고 대화를 나눌수 있어 참 기쁘군요. 한춘: 반갑습니다. 김혁작가님. 김혁: 그런데 생님이 보내신 대담고가 저의 컴퓨터의 시스템이 구식이여서 파일이 열리지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외려 신식 시스템을 쓰시는군요. 오늘 저희들이 이야기하려는 화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각 TV채널들에서 드라마 “신판 수호전”을 방영하고 있는데 그 붐을 타서 90년대판 “옛 수호전”도 어떤 채널들에서 더불어 방영되고 있습니다. 신구 드라마를 비교하하면서 시청하노라니 느끼는바가 새롭습니다. 오늘은 불변하는 명작의 매력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가 합니다. 한춘: 네.마침 중국 항간에 도는 이런 말이 떠 오릅니다."나이들어서는'삼국(연의)'를 읽지 않고 어려서는'수호(전)'을 읽지 않는다(老不看三国,少不看水浒)" 말하자면 다 명작은 명작인데 부동한 년령에 따라 부동한 자세로 작품을 접수한다는것입니다.그러니 그것이 명작일진데는 명작으로서의 '매력'이 객관적으로 내재하고 있습니다.  명작이라 할때 응당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긍정하고 보편적으로 존중하고 보편적으로 선호한다는 공성을 띄고 있어 사람을 사로잡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언젠가 학생들과 이런 대담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조설근의 ”홍루몽” 원문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드시오."  손을 드는 학생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홍루몽”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30명 되는 학생들이 거의 다 손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여 그 내용을 알게 되었는가 물었습니다. 대답은 각기 달랐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만화책을 읽고 알게 되였다는 것, 영화를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에니메이션을 보고 알게 되였다는 것, 테레비 특강을 듣고 알게 되엇다는 것,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엇다는 등 그 도경은 각기 달랐습니다.그러나 한가지 공동한 점이 있으니 ”홍루몽”이 중국의 명작이고 보옥, 대옥, 보차의 삼각관계를 대충 알고 있습니다는 점입니다.말하자면 그들은 비록 작품 원문을 읽지 않았지만 ”홍루몽”이란 작품을 대체로 긍정하고 대체로 선호하며 대체로 숭상한다는 이 점입니다.  김혁: 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가치를 지닌 명작은 우리에게 영원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발표이후 오랜 시간 국계와 민족을 넘어 여러계층의 인류에 회자되는 명작들은 지난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물려주는 역할을 하고있지요.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의 물결속에 “옥석”을 가려내기는 쉽지않습니다. 여기서 널리 회자된 명작들을 찾아드는것이 바로 그 옥석을 가려내는 가장 보편적이고 쉬운 방법일겁니다. 그러고보면 명작들은 달리 “불로장생”을 구가하는게 아닙니다. 명작만이 가지고있는 매력은 우리 독자들 더욱이 우리 문학창작자들이고 보면 영원히 읽어가야 할, 연구해 나가야할 화두이겠지요. 한춘: 네 그런데 문제는 요즘의 아이들이 그 명작들을 소외하고 있다는 그점이지요. 학생들에게 다른 한 문제를 물어 보았습니다."곽경명(郭敬明)의 소설 ”꿈속에 지는 꽃잎 얼마이던가(夢里花落知多少)를 읽어본 사람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수풀처럼 손을 들더군요. 나는 이 책을 한 30페지쯤 읽고 더는 읽어내려가지 못했습니다. 작품의 재미는 20대 좌우 청춘남녀들의 구미에 맞는 그런 내용이었기에 일흔을 바라는 나의 독서취미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김혁:     곽경명은 어느 설문조사에서 로신, 파금(巴金), 로사(老舍), 가평오(贾平凹), 여추우(余秋雨)와 더불어 중국10대작가명단에 올라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20대작가이지요. 제 딸애도 곽경명의 팬 입니다. 곽경명이 주필을 맡고있는 잡지 “최소설(最小说)”을 창간호부터 소장해 두고 있습니다. 몇백만부가 나가는 신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잡지로 알고있습니다. “소설월보”나 “수확”, “망종”같은 80년대 베스트 잡지를 읽어온 저의 세대에게서는 신선한 충격으로 보이는 잡지였습니다. 다른건 제쳐놓고도 오늘의 세대와 오늘 독자층의 미감을 겨냥한 모던한 잡지로서 그 정교함의 극치를 달리는 디자인이 아주 인상적이였습니다. 그 잡지를 딸애네 또래들은 걸탐스레 읽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작을 읽으라고 몇권 굳이 추천하니 “그런 ‘구닥다리’를 꼭 읽어야 하나요? 하고 반문하더군요. 딸애또래들의 이런 반응을 보노라니 곽경명이 10대작가에 선정된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리던 비평가들의 론설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한 비평가의 남다른 분석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청소년들은 류행문화의 분위기속에서 성장하고있고 독자의 독서취미와 문화형성은 종합적인 형성과정이다. 례를 들면 류행가요, 네트워크 등은 청소년들의 문화형성에 거름을 주고있으며 문학은 단지 류행문화의 일부분일뿐이다.하기에 억지로 독자들에게 로사,파금의 작품을 읽게 하는것은 이제 더는 현실적인 독서방법이 아니다.”   이러한 론점으로 볼때 신세대들을 위한 그들만의 적성에 맞는 열독방식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춘: 그래서 저도 학생들에게 베스트셀러와 명작의 구별점을 화닥닥 팔리는 것과 오래 오래 줄곧 팔리는 것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사실 지금 신세대들이 책을 읽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취미에 따라 나름대로의 선택이 있을 따름입니다.그러나 명작은 어느 한 사람의 취미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은 다 문학감상과 예술감상에서 자기의 취미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의 내심 수요에 따라 좋아하는 어느한 풍격이라던가 어느 한 내용이라던가 혹은 어느 한 형식에 취미를 가질수있습니다.이런 취미는 타고 난 천성이며 천성이기 때문에 당당한 당위성과 합리성이 있습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취미의 각도와 시점과 층차와 차원이 각기 부동할 뿐입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표준과 대중적인 표준이란 두가지 표준이 있습니다.때로는 대중적 표준과 개인적 표준이 통일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때문에 한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 물어 본다면 백사람이면 백 하나의 답이 있을수 있습니다. 김혁: 이른바 명작이라 함은 “제목은 알지만 읽지는 않은 책”이라고들 요즘 독자들은 우수개로 말하더군요. 높은 명성에 비하여 실제로는 별로 읽혀지지 않는게 “명작”이라는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요즘들어 달라진 독자들의 “열독취미”대로 명작은 대저 두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는 “걸리버 려행기”,  “돈키호테” 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른바 “잘 읽혀지는 명작”이라 할수 있지요. 이 경우는 말하자면 대중성, 통속성이 두드러지면서 여러차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으로 만들어져 원래 텍스트를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읽은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이라 하겠지요. “제인에어”, “몽떼그리스도 백작”, “삼총사”같은 작품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의 고전명작 “춘향전”도 이러한 범주에 해당되겠죠. 다음 한가지는 숄로호브의 “고요한 돈강”, 또스또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까뮈의 “페스트”, 유고의 “93년”같은 작품들입니다. 누구나 작가와 작품의 줄거리와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는 있는듯하지만 막상 작품을 완정한 문학 텍스트로 읽지 못한 이들이 많지요. 책의 분량이나 문체의 표현, 구성방식이 독자들뿐아니라 전문 창작자들도 감내하기 어려운 작품의 경우가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문호 빅또르 유고의 “레미제 라블”같은 명작은 이런 두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되는듯 합니다. 한춘: 여기서 독자들의 시각을 헤아려 볼수 있겠지요. 로신이 ”홍루몽”을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독자의 감수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 경학자들이 읽으면 '점치기'로 볼것이요 도가들이 보면 남녀 상열지사로 볼것이며 문인들이 보면 사랑이야기로 볼것이며 혁명가들이 보면 청나라를 반대하는것으로 볼것이고 난봉꾼이 보면 대궐안의 스캔들이라 볼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명작이라 할 때 명작으로서의 기본 요소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명작은 명작으로서의 예술표준이 있다는 말입니다. 명작 예술 표준에도 여러가지 설법이 있겟지만 적어도 아래 세가지 요소가 내포되어 있을 때라야 비로서 명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고 봅니다. 첫째 독자의 기본 심성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 요소입니다. 이 매력요소란 과거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문학리론과는 좀 다른 견해일것입니다.모택동은 ”홍루몽”을 세번이나 읽었다면서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후에 두번 다시 읽으면서 홍루몽을 통해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력사를 읽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즉 작품의 심각한 철리, 사상, 시대성 등으로 그 작품의 매력을 평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령 철리나 사상이라 할때 이와같은 사상이나 철리는 다 우리 내심의 기본심성 본체에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존재한것입니다.공자나 로자, 장자, 그리고 맑스나 헤겔이나 칸드의 사상이 다 위대한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고금중외 대현인, 대사상가,대철학가의 사상과 철학이 세상만물을 보는 우리의 눈을 튀워줄 수는 있어도 인생의 기본 심성의 각성을 대치할수는 없는것입니다. 명작이라 할때 작품에서 제시하려는 사상을 자기가 체득한 인간 심성의 보편적인 감수로 전환시켜 표현함으로써 읽는이로 하여금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이 일생동안 가슴의 내부에서 번득이는 영원한 메아리로 남아 있게 합니다.즉 명작은 작자의 감수를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감수를 새롭게 살려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둘째 명작은 사람들에게 잠자고 있는 심층의식를 개우쳐 준다.인간심층의식이란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타고난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지칭한다. 이것은 지역성을 초월하여, 시간의 전후를 초월하여, 피부색이나 민족을 초월하여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전달하는 하늘의 메시지나 다름이 없다.예하면 궤테의 ”파우스트”는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으며 일단 그 희구가 실현되었던가 자기가 바라는 목적에 도달하면 그 즉시 파멸, 추락,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는 영원한 추구의 힘을 실어다 줍니다.이점은 인간 실존의 기본이라고도 말할수 있거니와 이와같은 시공간을 초월한 심층의식의 각성은 작품의 예술감화력, 즉 작품의 매력과 정비례가 됩니다.   셋째 명작은 남다른 독특한 작품 형식과 수사법으로 읽는 이의 신경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중국 근대소설의 초석을 쌓은 ”금병매(金甁梅)”는 역사이야기를 쓴 ”삼국연의”나, 영웅전기를 담은 ”수호전”이나. 판타지같은 ”서유기”와 달리 인정세태, 세상물정을 쓴 명작입니다.서문경이 갑부로 된 이야기로부터 그가 쇠락하는 과정을 통해 당시의 인정세태를 묘파하기 위하여 작자 란릉소소생(蘭陵笑笑生)은 그에 합당한 형식인 간결한 묘사(白描)법을 아주 능란하게 운용하였습니다. 로신은 ”중국소설사략”에서 ”금병매”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작자는 당시 인정세태와 세상물정을 통달하였으며 손금보듯 환하게 잘 알고 있다. 작자가 형용한 것을 보면 혹은 류창하게, 혹은 우회적으로 혹은 노골적인 폭로로, 혹은 함축적인 풍자, 때로는 여러가지 수법을 겸용하여 서로 어울리어 변화무쌍하게 하는 등 정말 무릎을 칠 정도다.’금병매’작자의 간결한 묘사법에 관한 한 평론가의 말을 들어보자,"한 인믈을 쓸때 그 말투로부터 시종 일관하게 그 인물의 기본 성격을 그려냈는바 간결한 묘사 몇 마디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여 주었다" 그 어떤 형식을 취했든, 그 어떤 수법을 취했던 작품의 표달방식과 전달형태에서 독특한 개성을 구비했을 때 독자들의 취미를 불러 일으킬수 있는 틀, 즉 형식이 있으며 이 형식이야 말로 읽은 사람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심어줄수 있습니다. 김혁: 네 때문에 비록 손쉽게 접하는 명작이라 해도 읽는자의 시각에 따라 틀릴수도 있겠지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실 “걸리버 려행기”는 그 극적인 스토리와 뛰여난 판타지성격으로 하여 어린 독자들에게도 매우 많이 읽혀지고 있지만 사실 “걸리버 려행기”는 뛰여난 정치소설, 걸출한 풍자소설로서 젊은 층들이 접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외설적인 대목도 들어 있어 베스트라는 쉬운 범주로는 묶을수 없습니다. “돈키호테” 역시 어눌한자의 코믹한 무용담으로 보이겠지만 상징성이 매우 높은 작품이지요. 또 서구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데서 그 작품이 가지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명작에 대한 번안, 개작작업은 그 추종자들에 의해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진행되고있는것이지요. 그중 중국, 한국 일본에서의 끊임없이 번안되고 드팀없는 사랑을 받는 “삼국지”를 일례로 들수 있겠지요. 한춘: 아시다싶이 중국, 한국, 일본은 이른바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으로서 고대로부터 상호간 문화교류가 활발하였습니다. 일찍 당나라시기 일본과 신라는 많은 유학생을 중국 장안으로 파견하였으며 당나라는 빈공과를 설치하여 이와같은 외국 유학생의 과거길을 열어주기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일본과 신라에서 많은 승려를 중국으로 파견하였으니 그중 일본 승려 원인(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취록한 장보고의 적산법화원과 신라방 사적이 유명합니다.즉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중국의 많은 문화가 일본과 한국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때 조선조 초기 선조(1568――1608제위)가 ”삼국지연의”를 읽었습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명나라를 다니는 사절단들이 중국의 소설을 행장에 몰래 넣어 들여 왔고 가장 처음 정음으로 소설을 지은 허균(1569――1618)의 중국문학소개를 보면 ”삼국지연의”,”수호전”, ”금병매”, ”서유기”등 중국의 명작이 이미 한국에 전파되였습니다.원래 유일하게 문화교류를 진행한 국가가 중국이며 이로서 중국문화에 경사되어 있는 상황에서 명나라 시기 아주 발달한 중국의 소설문학의 전래와 더불어 한국의 문인들이 중국 소설에 경도되는것은 가히 리해할만한 일입니다.이때로부터 ”삼국지연의”에 관한 내용이 한국 문인들에 의해 여러가지 형태로 재탕되었는데 시조에도 자주 나오고 서울 잡가에도 나오며 유명하기는 판소리 열두마당의 한 마당으로 자리를 굳혀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역사이야기로 남게 되였다.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에 물젖은 한국인들의 사유방식과도 갈라 놓을수 없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인쇄문화의 발달과 다매체의 활약에 힘입어 삼국지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열중하고 기타 여러 가지 형태의 삼국지 파생물이 소비자들의 구미를 한껏 돋우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번역의 경우, 한국에서는 일찍 월탄 박종화의 번역이 있었으며 이어 리문열, 황석영의 번역서와 중국 조선족 리동혁의 번역서가 줄줄 이어 나오면서 한국독서계의 장안화제로 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삼국연의란 명작 자체의 브랜드 자원을 빌린것도 있겠지만 전투장면의 세밀한 묘사, 대규모 전쟁의 용병술, 일대 일 교전의 충격,명책사, 명재상, 명장군 등 각 부동한 력사인물의 개성적인 성격과 그들의 운명 등이 가슴에 구멍이 나도록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놓고 볼때 문화적으로 수용성이 높고 적극적으로 외국 문화를 접수하는 전통이 있으며 한국의 고전 군담소설에서 삼국지와 같이 인기를 끌수 있는 작품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익숙하고 또 접수 수용에 거부감이 적은 중국의 삼국연의를 재탕에 재탕을 거듭하는 것은 선진문화에 대한 력동적인 문화력의 체현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김혁: 력동적인 문화력의 체현이라는 그 정평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방영되고있는 “신판 수호전”에 앞서 “신삼국연의”가 새로운 버전의 드라마가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화제가 끊기지않고 있지요. 총 95회라는 방대한 용량에 중국 최고의 연기자 군단과 거대한 투자가 결합되어 화려하고도 거대한 영상미와 숨 가쁜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려냈습니다. 여기서 진정 명작이라는 그 웅숭깊은 문화력의 력동을 보아낼수 있었습니다. 한춘: 이 현상은 마치 오월단오가 중국에서 유래되였다고 하더라도 오월단오에 담은 문화내역이 완전히 한국화되었고 또한 극대화 되어 강릉단오제가 세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여 유네스코에 기록된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중국에서 전파된 유교도 한국의 종묘제레 및 종묘제례악이 세계 무형문화로 지정되고  불교가 중국에서 전파되었지만 한국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여러 문화, 종교 령역에서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문화라는것은 류동하고 접목되고 파생하는 특징을 갖고 잇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나라나 다 자체의 국한성과 제한성과 빈 공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타국이나 타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접수, 수용, 개조, 활용하여 자체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것이 인류뮨화발전의 법칙입니다. 김혁: 장예모의 영화작품들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영화 “영웅”에서 그 복색차림이나 미술배경이 일본의 유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 擇 明) 의  영화 “란(亂)”을 많이 닮았다고 비평가들이 꼬집었는데 면바로 보았지요. 그 복장설계는 다름아닌 구로사와의 손녀가 맡았던거지요. 그만큼 구로사와의 영화를 보며 자라난 세대로서 장예모는 그 우수한 영상미를 수용하고 활용해 냈던거지요. 사실 구로사와 자신도 영화 “란”의 모티브는 쉑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따오지 않았습니까. 장예모의 경우 그의 영화 “붉은 등롱 높이 걸렸네”는 류항(刘恒)의 명작 “복희(伏羲伏羲)”를 개편한것이고 그 영화가 다시 무극으로 개편된적 있습니다. 또 이딸리아의 작곡가 푸치니의 세계적인 오페라 “투란도트(图兰朵)”도 장예모에 의해 새롭게 태여난적 있습니다. 조선족의 저명한 테너 김영철도 극중에서 한 인물을 맡은걸로 알고있는데요. 이렇게 명작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독자들과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 과정에서 서로 수용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새로운 명작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현대미감에 걸맞는 새로운 쟝르와 문체로 변화하여 새로운 독자와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거지요.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를 말하자면 그중 명작의 게임, 애니메이션의 개편현상도 일례로 들수가 있겠습니다. 한춘: 명작의 게임, 애니메이션으로 변화된것은 커뮤니케이선이 고도로 발달하고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가 그 진원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가령 “삼국지”를 놓고 볼때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이런 문화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김혁: 네.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왕국이란 호칭이 붙어 있는 나라이지요. 일본에서는 오래전 90년대초에 이미 “삼국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중국에서는 2009년전에야 삼국지를 애니메이션화 했는데 그것도 제작진을 살펴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계의 베테랑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한춘: 네 그것이 이제는 또 게임으로 변화되였고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에서 또 한차례의 고조를 이루었으며 지금 중국도 청소년들이 여기에 매몰되어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가 말하는 게임은 도박성 게임을 두고 하는 말인데 중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박에 빠지면 집을 저당잡히는것도 마다하지 않고 아편에 빠지면 안해까지 팔아 먹는다." 도박이 사람을 끄는 그 보이지 않는 마력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명작 게임같은것은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제력이 약한 그들에 끼치는 피해는 너무너무 엄청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오락형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란 태여나면서 즐거움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역시 한번 빨려 들어가면 다시 헤어나오기 어려운것은 번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를 선호하고 이를 좋아하고 이를 반기는 청소년들이 많아 시장전경은 언제나 밝다. 이것이 명작 게임이 시들지 않는 원인입니다. 에니메이션은 게임과는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내 손녀가 지금 1학년에 다니는데 학교 가기전까지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데로부터 지금은 테레비나 컴퓨터앞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글자도 한 2천자쯤은 읽을수 있는 형편이며 슈제트 발전변화도 가히 알수 있는 처지라 집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두시간을 할애하여 손녀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아동프로만 보는데 주로는 에미메이션을 봅니다. 일단 거기에 끌려 들어갔다하면 할매 할배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밥도 테레비 앞에서 독상을 차리고 먹습니다.아주 생동하고 기이한 인물 이미지 디자인, 그리고 층격을 주는 등장인물(등장물)의 엑션동작, 맑고 밝은 화면설계 등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끄는데는 너무도 충족합니다.  나는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손녀의 생활이 너무도 단조롭기에 테레비나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견문을 넓히고 상상력을 키운다는 뜻에서 출발한것입니다. 그리고 드문 드문 그 내용을 물어보면 제접 청산류수로 이야기의 맥을 제대로 이어 엮는다.말하자면 에니메이션은 아동들의 지력개발에 일정한 도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혁: 하기에 애니메이션제작이 요즘 영상 제작자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미식”으로 되여 있지요. 요즘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꼬마양과 승냥이(喜羊羊 与灰太狼)”라는 애니메이션은 그 간단한 캐릭터에 권선징악의 낡은 제재를 되풀이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7억여원의 수입흥행을 보았다고 합니다. 한춘: 그러나 여기에 역작용도 있을것입니다. 그 역작용은 적어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에니메이션을 보면서 테레비같은 시청에 취미를 붙이면 앞으로 독서취미를 잃게 될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김혁: 저희 세대까지도 흑백텔레비 그리고 컴퓨터는 아예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화환경을 지내왔습니다. 변변한 대중매체가 없어 어차피 도서에 친숙하게 되였지요. 그런 우리의 과거와 달리 다양한 매체에 로출된 요즘 세대가 독서에만 매여 있는다는게 사실 쉽지않은 일로 되여버렸습니다. 그만큼 인터넷, 모바일등 을 통한 다양하고 현대화한 기기들을 통해 새로운 독서방식이 새 세대들에게 널리 풍미되고있습니다. 한춘: 도서는 인류문명에서 지금까지 창조한 가장 최고, 최상의 문화자원입니다. 이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 하는것은 한 사람의 성장에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서취미는 어렸을 때부터 양성하여야 하는것이지 다 큰 다음에 새로 독서습관을 키운다는것은 가능성이 별로 많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만약 문학을 지망한다던가 인문과학에 취미를 붙였다면 몰라도 대체로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 에니메이션 등을 통해 이미 명작의 내용을 거의 다 알게 되면 앞으로 명작 본문을 읽을 욕망이 사라지게 될것입니다.결과 그는 명작의 매력이 어떤것인지 모르게 됩니다. 명쟉을 읽고 읽지 않는것은 한 사람의 문화품위와 관계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긴 컴퓨나 테레비가 없을 때도 명작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취미생활이 아주 다양해진 지금 작가지망생이 아니면 꼭 명작 원작을 읽어야 한다고 고집한다것 또한 고루한 생각일것입니다.  김혁: 네, 절주빠른 요즘의 현대생활에서 몇권 지어 수십권짜리 세계명작을 쌓아놓고 읽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봐야겠지요. 오래된 작품의 문장호흡이나 원작의 리듬이 요즘 사람들의 감각에 적절히 부응하기 어려운 등 여러가지 탓도 있을 것이구요. 때문에 명작을 번안함에서의 현대독자들의 새로워진 감수에 맞추기 위해 제작자들은 고심하고 있지요. 그 좋은 일레가 삼국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도 중국 방송국들은 삼국지를 드라마로 만들어왔지만, 이번 작품은 완연 다른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력사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삼국지”의 재래의 판본들은 전체적으로 류비를 높이 평가하는 반면 조조를 폄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러한 틀을 버리고, 삼국의 인물들을 상대적으로 공평하게 그려냈으며 “간웅” 조조를 시대의 영웅으로 발굴해 새롭게 력사의 무대에 올려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국지”하면 무조건 그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였던 “도원결의”는 이번 작품에서 아예 생략해 버렸습니다. 언어면에서도 기존의 작품들이 정통사극 형식을 따르면서 매우 “난해한” 용어들이 많았다면, 신작의 경우에는 신세대의 구미에 맞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웅장하고 스케일이 넘치는 화면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시도로 바쁜 절주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참조계의 “성찬”에 미뢰을 잃고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는 독자군에게 명작의 진미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지요. 서점가에서 보니 “자동차족(汽车族)”들에게 명작의 일독을 권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자동차족들의 CD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명작 고전들을CD로 제작하여 시리즈로 나오고있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시도라 볼수 있습니다. 명품차를 몰고 달리면서 “동으로 흐르는 강물/ 물거품이 영웅들의 시비성패 다 씻어가 버렸네”하고 “삼국지”를 경청하는 장면, 그야말로 현대인의 맛과 멋이 우러나는 쿨한 풍경이 아닌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 의해 온라인에서 절찬을 받으며 련재되고있는 “타임머신 삼국지”에서는 “보마”승용차를 몰고 동한말기로 돌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명작의 패러디 현상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가 합니다. 명작에 대한 패러디는 상업에 치우친 결과물일가요? 아니면 명작에 대한 비하일가요? 한춘:  명작의 페러디 현상을 단순한 모방작으로 국한시키는것이 아니라 넓게 파생작품으로 확대하여 볼때 할말이 많아집니다.  십수년 전 섬서성의 유명한 작가 가평오(贾平凹)가 장편소설 “페허의 도읍(廢都)”을 발표한 즉시 평단의 빛발같은 지탄을 받았다. “금병매”를  흉내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읽어보아도 그 지탄이 과분한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였다. 왕씨 노친이 서문경에거 금병매를 접근할때 술상에서 맘을 떠는 열가지 수작을 서술한 “금병매”와 “수호전”의 그 단락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서안일대의 인정세태를 반영한 작품으로는 수작이 틀림이 없다. 곽경명의 성공작(成名作) “꿈속에 지는 꽃 그 얼마이던가”는 완전히 도작이라는 볍원결론까지 나온 작품입니다. 비록 그가 도작한것은 명작은 아니지만 그가 도작하여 새로 쓴 작품은 베스트가 되였다. 곽경명은 도작이라는것을 승인하면서도 공개사과서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우겨 지금까지 나왔다. 이처럼 패러디 현상이 문단을 흐리는 일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 하는것은 이런 패러디가 아니라 파생작, 이를테면 명작을 견본으로 한 다른 예술쟝르의 개작, 예하면, 후속작(續作), 개작(아동판, 축소판), 드라마, 영화, 회곡, 만화, 에니메이션, 음악, 미술작품 등을 두고 몇마디 할 말이 있습니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떤 형식으로 파생되었던간 명작 원작은 이로서 괴멸됩니다는 점입니다. 즉 원작은 사라지고 개변된 작품만 살아있게 됩니다. 개변된 작품은 원작을 두번이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한다. 첫째는 예술형식의 개변이요, 두번째는 시대적 개변입니다. 부동한 예술 형식은 부동한 예술 언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원작에 충실한다하여도 원작 원유의 예술의 매력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한 시대에 부동한 해석이 있기 때문에 원작의 원유 예술의 지향과 멋과 맛과 향기를 변형없이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열기를 올리고 있는 드라마 “신편삼국연의”와 “신편수호전”, 그리고 얼마전에 구설이 많았던 “신편홍루몽”은 거대한 투자와 최고의 출연진, 최고의 연출 들이 동원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보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원작에 물든 사람을 끌기에는 택부족한 것입니다. “삼국연의”나 “수호전”은 그나마 전쟁장면이나 격투 장면이 있어 스토리가 재미있기 때문에 일정하게 안구를 흡인할수 있지만 “홍루몽”은  안구를 끌수 있는 장면을 만들 그런 ‘감’이 별로 없어 드라마의 매력은 전혀 볼품없이 됩니다. 예하면 림대옥의  ‘명작’, “홍루몽”의 주제시라고 할수 있는 “꽃을 묻으며 읊은 시(葬花詩)” 는 림대옥의 애절한 심경을 가장 핍진하게 전달하는 대목입니다. 소설을 읽는다면 이 대목에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림대옥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일차적인 시청각 예술로서 시청자의 시간적 음미여지를 주지 못한다. 때문에 림대옥의 인물성격을 요해하는데 일정한 장애를 설치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명작은 명작대로 하나의 문화자원으로 존재하고 자원은 그것을 활용할때라야 충분히 자원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문화자원의 가치는 시장가치와 예술가치가 있습니다. 한때 중국에서 “문화가 무대를 만들고 경제가 주역이 되어 출연한다”라는 말이 성행했고 각지의 관원들의 입말이 될 정도였다. 그때 나는 이 말에 어페가 있습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화도 하나의 산업이 되어 얼마든지 재부를 창출할수 있습니다는 일념이 선것입니다. 장이모오의 영화 한편의 입장권 요금이 2억원을 넘는것이 있습니다고 하니 그가 창조한 문화제품의 재부는 대단한것입니다. 명작의 여러가지 파생물은 문화자체가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일정한 예술가치와 시장가치를 잘 결합시키려는 한 도경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극(越剧)  “홍루몽”은 원작의 묘미를 다 살려내지는 못했지만 월극으로서의 예술미는 충분히 표현하였으며 또한 월극이 중국의 국수(國粹)나 다름없기 때문에 문화자원을 잘 활용한 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시장을 겨누고 명작을 리용하는것은  예술의 ‘매력’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것일뿐입니다. 지금 많은 명작 파생물에 돈냄새가 너무 나는것이 현실이며 이 또한 어쩔수 없는 시장경제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혁: 네 같은 생각입니다. 명작은 영화나 예술 작품에 무궁무진한 모티브를 제공해왔습니다. 원형 그대로가 아닌 쟝르와 국적, 세대간의 벽을 넘어 새롭게 재탄생된 명작들이 수두룩합니다. “서유기”의 경우를 보아도 그 패러디 작품들이 수두룩한데 그중 홍콩의 코믹영화의 선두주자 주성치가 패러디한 몇부는 이제 오승은판 서유기가 아닌 주성치판 서유기로 새로운 경전으로 자리매김되여있습니다. 영화에서 손오공은 시시때때 깝쳐대는 원숭이가 아니라 사랑의 순애보에 빠진 인물로, 당승은 진지한 승려가 아닌 수다스러운 아낙네로 나오고 대사도 지어 영어나 신조어로 란무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주제 그리고 제법 깔끔한 촬영화면, 공력들인 몬따쥬 구성으로 영화팬들의 환영을 받고있는것입니다. 그러데 문제는 시장경제에 매여 란발하는 차용이나 그 시장의 생리에 무릎꿇은 조야한 개편입니다. 어느 세계적인 피겨경기에서 명성에 대해 급급한 욕망으로 젊은 피겨선수가 히틀러의 복장을 하고 나치스의 행위를 패러디하다가 그자리에서 분노한 관중들과 심판들에 의해 쫓겨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또 고전의 굴지로 꼽히는 “홍루몽”도 “외설 홍루몽”이라는 아예 에로영화로 개편된 일례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 패턴의 정신적 진수가 아닌 겉면에 대한 모방에만 그치고 지어 왜곡한다면 그건 오래가지 못할뿐더러 독자들의 타매를 받게 되는거지요. 이처럼 다양한 가치의 혼돈세계에서 자맥질하고있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랄(moral)을 찾고 패턴(样式)을 찾는 과정에 명작을 패러디 하고 적극 번안하면서 그 무진한 매력속에서 자신의 생활에서의 답안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서 또 명작을 차용한 직장생활 지침서들도 수두룩히 쏟아져 나오고있지요. 한춘: 2003년 성군억(成君憶)이 “삼국연의로 본 경영관리(水煮三国)”란 책을 출판하여 한때 베스트가 되였습니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가장 환영받는 경영류 도서작자라는것을 대충 알고 있었고 또 “삼국연의”와 경영을 어떻게 비빔했는가가 궁금하여 해적판 한 권을 구입해 보았다. 제법 재미있게 썼다. 다른 경영류 도서를 읽지 않아 비교할수 없은 탓인지 인상이 괜찮았다.매마르고 까다롭고 추상적인 경영학, 시장학, 관리학의 이론을 삼국지의 인물에 담긴 이야기와 묘하게 빈죽하여 유모어적이고 해학적으로 '정숙'하게 썼다. 새롭고 기이하고 생동하고 재미있는것을 추구하는 독자들의 독서구미에는 맞을것 같았다.   2005년 여름 마침 성군억이가 할빈에 와서 서명판매활동을 가지게 되였다.그날 서명판매가 거의 끝날 때쯤 내가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책 한권을 사든 나는 그에게 기자인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있습니다니깐 시간이 없다면서 사절했습니다. 하긴 그는 중국 경영류 도서 1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니깐 지방신문의 기자쯤은 별로 눈에 차지 않았을것입니다. 이때 내가 한국의 출판계와 잘 아는 사이인데 이 책은 전에 이미 읽어보았고 시장전경이 괜찮아 보여 한국과 판권무역을 추진할 생각이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를 찾아 본 주요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의 눈에 반짝 정기가 돌았더군요.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후에 메일이 두세번 오고 갔는데 판권가격이 맞지 않아 판권 무역은 파탄 되였습니다. 그후에 도서시장을 보니 성군억의 '水煮'란 아이디를 빌려 후삼국이니 초한풍류니 춘추전국이니 잇달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복제품이 이처럼 줄지어 내려오는 현상은 력사를 설쩍 데쳐 낸것이 아니라 아예 폭삭 무르게 끓여 버리고 말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런 도서는 독서구미나 당기게 할수 있지 직장생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긴 부동한 직장인에게 부동한 역할이 있겠지만 이런 직장 지침서에 취급한 그 비결, 책략, 수양,인격, 품위 등은 어느 한두권의 책을 보아 형성되는것이 아니라 현실상생활중에서 터득하고 갈고 닦아야 하는것입니다. 경영관리는 과학입니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성실, 신뢰를 앞세웠을 때라야 그것이 장기적인 운영이 가능합니다. 일차적이고 일시적인 수작을 쓰는 한탕치기로는 그 성공을 보장받지 못할것입니다. 독서 취미가 았는 사람이라면 좀 문학적으로 다룬 책자를 선택해 재미로 읽고 유모감이나 해학담을 키우는것쯤은 바랄만 합니다. 전업 리론이 아닌 이야기식 이른바 '경영학'책은 실제 경영에 도움을 주지 못할것이라는게 나의 견해다.그래서 나는 경영, 관리 지침서는 이 한권으로 완전 졸업했습니다.    김혁: 요즘은 “시크릿(秘密)”이라는 지침서가 대세이군요. 인생을 뒤바꿀 마법 같은 비밀에 대해 탐구한다는 책인데 돈, 건강, 인간관계, 행복 등 인생의 모든 면에서 그 비밀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여러가지 판본으로 나와 있더군요.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지침서와 같은 논픽션(非虚构)서적들이 소설과 같은 픽션(非虚构)서적보다 더 잘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점마다 지침서 전문코너가 따로 비치되여있는거지요. 한춘: 인생지침서는 이와같은 실리적인 지침서와 좀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한때 베스터 1위에 올랐던 “누가 나의 치즈를 옮겼는가(谁动了我的奶酪)”는  인생의 생존 본질은 부단한 추구와 노력과 애로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도리를 설파하고 있는데 이는 가히 실천에 옮길수 있는 인생지침서다. 인생 지침서는 심심하면 이책 저책 둘쳐 읽는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끄는 인생지침서는 공자의 “론어”와 로자의 “도덕경”입니다.  남들은 이 책을 치국(治國)지침서로 읽는다는데 나는 수신(修身)지침서로 읽고 있습니다. 김혁: 네. 번안작품, 애니메이션, 지침서 여러가지 참조물을 통해 여러가지 문체로 명작을 다시 접해보는 그 감수의 농도와 줄기가 다릅니다. 요즘 저도 명작들을 다시한번 체계적으로 읽어보려고 독서계획을 다시 세우고있습니다. 바쁜 일정이지만 하루에 단 몇페지씩 읽더라도 오랜 시간을 잡고 죽- 다시 읽어내려가려 합니다. 사실 살면서 맞닥뜨린 불운한 운명때문에 희망이 저버려지는 순간순간에도 버릇처럼 되여버린 독서로 명작들을 다시금 읽으며 감동을 받고 아픔을 잊는 시간은 내 창작과 독서생애에 가장 값진 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만큼 문학도 시절 읽은 눈과 지금의 읽고있는 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제는 남이 읽으니 나도 읽는다는 식으로 멋모르고 닥치는 대로 읽었고 지어 학교와 선생들의 강요에 가까운 권장에 숙제하듯이 읽기까지 했던 명작들 을 다시 읽으면서 그 작품들의 갈피갈피에 면면에 녹아들어간 놀랄만한 현재성과 보편성을 나이들면서 하나씩 깨치는건 남다른 맛입니다. 10여년후, 지어 20여년후 다시 읽는 순간 나는 그전에 느꼈던 전혀다른 백설공주와 어린왕자와 달따냥과 에드몽 당떼스와 에스메랄다와 보바리와 그랑데와 쏘렐과 닥터 지바고를 만날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흥미진진 스토리를 쫓아가며 읽었다면 지금은 그 스토리를 있게한 력사와 사회배경을 읽게 되고 이전에는 주인공의 용모를 살폈다면 지금은 주인공의 내심 심경을 살피며 읽게됩니다. 그리하여 진지한 얼굴,  성숙된 얼굴로 명작과 다시금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전의 주인공사이의 해피엔딩에 대한 바람과 같은 설익은 질문이 아닌 전혀 다른 인생과 사랑과 종교와 민족에 관련된 대담을 건넬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명작”을 읽었다면 지금은 “명저”를 읽게되지요. 여기서 작(作)은 지을 작이지만 저(著)는 두드러질 저로도 읽히기도 합니다. 말장난같지만 그저 이름난 작품에서 빼여나고 두드러진 작품으로 그 진미를 알고 읽게 된거지요. 명작에 대한 진수를 인제야 깨쳐 알고 읽기시작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을수록 외려 생겨나는 지적 공허감, 그 공복의 꾸르럭대는 욕망의 소리 같은 허전한 부분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명작이 아닐가 생각해봅니다. 명작은 세계 문화권의 공동 문화자산이며 강물처럼 흘러온 인류문화의 원천 같은 것입니다. 인류의 유산가운데 그렇게 훌륭한 명작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복된 일인가요. 이러한 명작들이야말로 우리의 인성을 고매하게 만들고 정신적 생활을 풍요롭게 하여 삶의 조건을 바람직하게 꾸미는 자양분이 되겠지요. 읽지 않고서도 아는듯한 명작, 때로 아는체 했던 명작, 방대한 분량앞에서 읽을 기회를 놓친 명작, 과거 발달되지못한 참조계나 왜곡된 미디어로 잘못 접했던 명작. 그러나 삶을 충만하게 채우고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동서양의 명작들은 여전히 커다란 감동으로 서가의 한구석에서 크게 팔을 벌린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온라인으로라도 이렇게 좋은 말씀 듣게 되여, 아니 보게 되여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빨리 컴퓨터와 머리속에 시스템을 새로 깔도록 하지요. 한춘: 감사합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깔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안녕히.     "도라지" 2011년 2월호              
216    그 인물 그 시대와 만나는 프리즘 댓글:  조회:2613  추천:12  2011-06-29
   . 대담 . 그 인물 그 시대와 만나는 프리즘 - 조선족문단의 인물전기문학에 대해 진맥해 본다   대담자: 김혁/리혜선     김 혁 - 룡정에서 출생 연변작가협회 리사, 소설분과 주임, 연변일보 "종합신문" 편집부 주임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소설집 “천재 죽이기”. 장편실화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 등 다부 연변작가협회“김학철문학상”, 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연변조선족 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전국소수민족신문보도상. 한국재외동포재단 제1회 한민족 청년상  등 수차 수상 현재 홍색화가 한락연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련재중   리혜선- 연길시에서 출생. 1981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일보”사, “길림신문”사 기자, 편집부 부주임 력임. 연변작가협회 창작실 주임 중편소설집 “푸른잎은 떨어졌다”, 장편소설 “빨간 그림자”, 위인전기 “김학철의이야기”등 다부. “천지”문학상, 전국소수민족문학상, 연변조선족 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 수상. 현재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집필중   김혁: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리혜선: 네, 안녕하세요! 김혁: “정률성 평전은 마무리 돼 가는지요? 이 작품의 기획이 우리 문단 처음으로 전국중점지지작품으로 선정되면서 모두가 퍽 기대하고 있는데요. 리혜선: 네,“정률성 평전”은 아직도 한동안 집필해야 할것 같습니다. 우선 취재에 상당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정률성의 발자취를 따라 취재하고 자료를 구했지요. 그가 태여난 곳이 한국이다보니 한국 광주, 서울을 다니며 지인들을 찾아 취재하고 자료를 구했습니다. 중국은 상해, 남경, 서안, 연안, 태항산, 북경, 심양, 할빈 등지를 다니며 취재했습니다. 그의 가족 및 그의 동시대 지인들을 취재했답니다. 특히 그와 일을 함께 한 중국 일류의 음악가, 예술가, 그리고 그의 직접 상급이었던 중앙문화부 부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을 취재했지요. 그이가 사망된지 30여년이 되다보니 일차적인 자료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다행이 기성자료를 보완해줄수 있는 많은 일차적인 자료를 많이 찾을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리고 집필이지요. 정률성이 섭이, 신성해와 나란히 중국 100년 영웅모범인물에 선정된 그의 인생역정을 살펴보면서 그가 어찌하여 이런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는 어찌하여 한국 광주에서 태여나 중국 100년 3대음악가로 되었는지, 그의 인생의 기적이라 할만한 큰 그라프는 이미 그려져있습니다. 이를 글로 표현한다는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의 인생의 모든 대목에 그것을 안받침해줄만한 근거와 계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것은 정률성의 업적에 대한 단순한 찬양이 아닌 그의 인간적인 성격의 비약에 대한 증명이 되는거지요. 즉 그가 걸어온 마음의 려정을 그린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진전이 마음과 같이 빨리 진행되지는 못하는군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있습니다. 김혁씨도 화가 한락연 평전을 집필하고있는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김혁: 네. 일년여의 준비작업을 거쳐 올해부터 “예술세계”지에 련재중입니다. 나 자신이 룡정에서 태여난 문인으로서 고향의 위인에 대한 경모감을 안고 절박한 마음으로 일단 착수 했습니다. “중국의 피카소”로 지칭되는 저명한 화가이자 중국전역과 지어 유럽지역까지 아우른 사회활동가이며 또 국공통일전선사업에도 기여한 소장(少將)이자 비단의 길을 넘나든 고고학자이기도 한 그의 거대한 발자취를 내 작은 붓으로는 다루기가 내심 어렵네요. 련재를 하면서 계속 탁마를 하고있는데 아직도 여러 곳의 현지답사를 더 보완해야 하고 신고를 많이 치러야할 것 같습니다. 리혜선: 우리 문단에서 인물전기가각광받는풍토가일고있군요. 김혁: 네, 그렇습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이 쟝르에 대해 조선족 작가들도 주목을 돌리기 시작했고 따라서 우리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서들의 “봇물”이 터진듯 합니다. 시대와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들의 깊은 사상과 력동적인 몸짓을 남긴 걸물들의 인물전기가 문단과 출판계에서 인기를 누리고있는 요즘의 추세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일전에 신문기사로 다룬적 있습니다. 그중 수작(秀作)들을 몇편 추려 대략 꼽아보았습니다.  연변대 김호웅 교수와 김학철옹의 자제분인 김해양의 공저로 된 “김학철 평전”이 나왔습니다. 책은 한국의 최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 의해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초창기지도자의 한분인 “조룡호 전기” 도 나왔습니다. 안룡정의 집필로 된 전기는 조룡호의 항미원조시기로부터 자치주창립,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시기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많은 려정을 비교적 완정하게 기록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발전력사를 료해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평판을 받고있습니다. 김수영 저로 된 장편인물전기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 도 나왔습니다. 40만자에 달하는 작품은 중한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한 한 애국화교의 노력을 진실하고도 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변대학 전 총장 림만호 평전도 발간됐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여라”라는 부제로 역시 김호웅 교수가 집필한 평전에서는 연변대학교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대학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한 교육자의 삶이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자치주 부주장을 지냈던 최채에 대한 인물전기 “불멸의 영령”도 조한문으로 출간되였고 오장숙 평전 “내를 건너 고개 넘어”도 나왔습니다. 일전 안타깝게 타계하신 류연산 작가님의 작품들이지요. 앞선 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재구성하고 기술하면서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인물전기들은 근년래 침체화, 단일화 경향을 보이던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해 주고 있습니다. 리혜선: 네. 전기와 자서전, 회고록의 출판 역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요. 이는 우리 문학이 력사와 문학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시기 민족력사를 조명, 표현하는것으로 한걸음 성숙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혁: 우리 문단과 출판계에서의 “바람직한 흐름”이라 생각됩니다. 혹자는 “력사 자체가 인물사다”라고 단언합니다. 한 인물의 생애를 면밀히 추적해 그 시대와 사회를 조망해 보는데 인물전기의 특징이 있습니다. 남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통해 자아를 확립하게 하고 다른 형태의 예술에 소재를 제공한다는 점” 등으로 볼 때 평전이 가진 가치를 무시할수 없는거지요. 인물의 삶에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피와 땀이 슴배여 있고 숨결이 살아있는 인생의 면면은 지나간 시대를 오롯이 복원해 냅니다. 인물사가 그 자체로 력사인 리유입니다. “한 인물의 삶을 리해하는것만큼 그 리론과 시대를 잘 받아들이는 방법은 없을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혁기의 거대한 소용돌이속에서 독자들은  불황과 불안한 상황속에 믿고 따를만한 “롤 모델”을 책을 통해 찾아나서고 있는거지요. 우리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당착하게 되는 방황 혹은 고난앞에서 당혹감을 품고 앞서 떠났던 이들의 발자국을 더듬거리게 마련이지요. 급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때 올곧게 주어진 길을 걸어나간 이들의 삶을 더듬는것, 이것이 바로 독자들이 평전을 찾는 리유가 아닐가 봅니다. 실제로 격동의 력사를 치렬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찾으려 하는 거지요. 리혜선: 평전 출간이 증가하는것은 우리의 출판 시장의 다양화와 독서 수준이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볼수도 있겠지요. 김혁: 네 하지만 사실 저희는 어려서 인물전기를 읽을수 없는 동년을 지냈습니다. 어쩌구려 제가 처음 읽은 인물전이란 비판용으로 된 책자 “공가점의 둘째 주구- 맹자”였습니다. 그리고 상앙의 이야기”와 같은것도 있었구요. 련환화로 된 “베쮼의 이야기”가 그나마 인상적이였습니다. 그후 비교적 온정한평전을읽은건꾸바의혁명가체게바라의 평전이 처음이였습니다. 의대를 나왔지만 청진기가 아닌 총을 들고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를 돌며 무장 혁명 봉기에 헌신하면서 불꽃처럼 살다간 그의 평전을 작가출판사에서 출판한 화전(畵傳)으로 읽었습니다. 읽고나서 붉은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쓰고서 먼 곳을 응시하는 체게바라의 모습이 내내 가슴에 남아있었습니다. 이젠 하나의 아이콘으로 신화로 된 그의 삶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평전이라는 쟝르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졌더랫습니다. 그후로 우리 문단에는 왜 인물전기가 없을가 하는 아쉬움을 머금었었지요. 사실 우리문단에서도 90년대에 인물전기라는 쟝르에서 시도를 보였습니다. 김운룡의 “김구평전”이나 김송죽의 “설한”이나 허영길, 임철, 리송덕 공저로 된 “항일영웅 김광식”등이 그 사례입니다.   리혜선: 네 그중에는 로익장을 과시하는 김영금선생님의 작품도 있지요. 비록 어느 한 개인에 대한 평전은 아니지만 중국 최고의 조선족과학자들에 대한 인물전을 출판해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과 가슴 뿌듯한 긍지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김혁: 하지만 그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으면서 경제, 상업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에 대해 “추어올리기”, “자화자찬”식의 인물전들도 나와 독자들에게서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지어 외면당했던것도 사실입니다. 리혜선: 이 쟝르에서는 류연산선생이 선두주자로 달려왔다고 봐야겠지요. 우리 문단에서 류연산선생은 전기문학을 가장 먼저 쓰고 가장 많이 쓴 작가의 한사람입니다. 그에 의해 류자명평전, 심여추평전, 최채평전 등이 나왔고 모두 훌륭한 작품들입니다. 김혁: 네. 다년간 내용이 충실한 전기물들을 연줄로 량산해내여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출판계의 이슈를 빚었지요. 우리문단의 전기문학창작에서 많은 작가들과 함께 류연산작가는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류연산 작가는 인물연구의 지향으로서 하나의 좋은 본을 보이면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습니다. 리혜선: 류연산선생은 원시자료를 얻기 위해 두발로 뛰여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는 상기 작품들을 쓰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곳을 답사했습니다. 인물전기는 력사배경을 떠날 수 없습니다. 각 시기 민족력사에 대한 투철한 연구를 했고 그속에서 력사의 락인이 찍힌 력사인물을 발굴했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력사를 발굴했습니다. 때문에 그가 쓴 평전들은 하나의 력사서이고 인물의 마음의 려정의 기록입니다. 그는 인물전기문학집필에 있어 우리 민족사 보존의 차원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때문에 그의 전기를 읽노라면 저도몰래 가슴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김혁: 우리 민족사 보존의 차원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가 아동작품도 두루쓰면서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알게된 사실인데, 우리 민족의 수령 주덕해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집마다 위인전 같은 책자들을 두루 갖추고있지만 거개가 해외인물판이나 고대인물판이고 우리의 근현대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쟁쟁한 인물들이 바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손오공이나 해리포터는 알지만 주덕해, 정률성을 모르고 있는거지요. 이는 물론 작품의 공리성을 쫓아가며 이러한 훌륭한 쟝르를 홀대한 우리 작가들의 잘못도 크다고 봅니다. 제가 장편 “시인 윤동주”를 끝내기 바쁘게 서둘러 청소년용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를 집필하게 된것도 이러한 리유에서 입니다. 여기서 어린이용 인물전기도 주목해야 할 화제가 제기됩니다. 선배님도 김학철의 일대기를 다룬 어린이용 전기물을 출간한바 있지요? 리혜선: 네. 한국 웅진주니어 출판으로 나왔습니다. “김학철 이야기”는 “자유찾아 만리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청소년용 전기물입니다. 원산에서 태여난 철부지 소년이 조선의용군 분대장으로 성장하고 중국조선족 문단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눈감을때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극력 아이들의 눈에 맞추어 그려냈습니다. 광주학생운동, 조선의용군 창설, 중일전쟁과 문화대혁명 등 파란많은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자유를 억누르는 그 어떤 권력과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은 인간 승리의 신화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김혁: “김학철 이야기”는 윤정석아동문학상도수상했지요. 의용군 활동, 문화대혁명과 같은 중대한 력사사건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알리고 생생하게 보여준 전기물 저도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위인전만큼 효과적인것도 없다는 교원과 작가들과 부모들의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문단에서 우리 민족사와 민족의 위인을 다룬 인물전기가 거의 전무하다는 상황, 이면에 책임감을 가지고 필봉을 돌려여함을 환기시키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21세기를 사는 오늘의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만의 새로운 위인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TV, 인터넷, MP3과 같이 현대화한 참조계가 다양한 요즘 아이들에게 위인전은 때로 단조롭고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겁니다. 필요한것은, 그들과 가장 근접한 인물상을 다양한 출판방식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아이들이 위인전을 손에 들게 하는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직관적이고 생동한만화 형식의 삽화 등을 적극 활용해야지요. 저는 “주덕해의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한 출판사업에 종사해온 한 화가와 손잡았는데 동심에 꼭 걸맞을 정교한 그 삽화들은 어른인 제가 봐도 흐뭇합니다. 리혜선: 저의 작품도 한국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화가 강소희가 삽화를 그렸는데 “금상첨화”라 할가요. 참 동심에 걸맞는 좋은 삽화였습니다.   김혁: 우리의 평전출판, 특히 조선족인물에 대한 평전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로 봐야할것입니다. 우리 작가들의 줄기찬 노력이 아직도 소요(所要)됩니다. 그러자면 작가들지간의 창작의취나 비결과같은것도 서로 많이 교류해야 할 것 같구요. 리혜선: 네, 근간 평전집필에 정력을 몰부으면서 느낀바인데요. 평전을 씀에 있어 가장 중요한것은 원시자료발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률성 평전집필때문에 국내외의 많은 평전을 읽었습니다. 정률성과 관계되는 동시대 인물에 대한 평전도 많이 읽었지요. 그러다보니 이 책의 오류와 저 책의 오류도 발견하게 됩니다. 오류발생이 가장 큰 원인은 자료를 참고함에 있어 고증을 거치지 않고 베끼기를 하는것입니다. 한번 잘못 끼인 단추는 그 다음 단추도 잘못 끼이게 합니다. 원시자료발굴을 중시하지 않고 이 책에서 베끼고 저 책에서 베끼면 자칫 잘못 쓰여진 자료를 계속 인용하여 잘못된 평전을 쓰게 되는 오류를 범할수 있습니다. 특히는 인터넷자료들이 틀린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자료는 그 책의 자료를 인용하더라도 그것이 맞는지를 먼저 고증하고 인용하는게 좋을듯 합니다. 가장 좋기는 원시자료를 찾아 고증하는것이지요. 저는 이 점을 상당히 경계하고있습니다. 김혁: 동감입니다. 소설적 상상력과 구성력, 공인하는 필력만 갖췄다고 해서 모두 평전을 쓸수 있는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발품을 팔아가는 철저한 취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이미 공표(公表)된 문헌의 내용이나 제한된 범위의 사적 인터뷰를 근거로 삼고 섣뿌른 판단을 내리거나 이 책 저 책을 베껴서 짜깁기하는 식의 “책상머리 평전”은 결코 설득력을 얻을수 없게 됩니다. 오랜시간에 걸친 자료 조사와 많은 증언자들에 대한 인터뷰등을 바탕으로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내다보듯 거대하게 다양한 앵글의 포착속에 그 인물을 조망해야 합니다. 리혜선: 정률성 평전을 집필하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이미 나온 정률성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원시자료를 찾아 고증해보았는데 많은 오류를 발견하게 되였습니다. 가족의 증언도 고증을 거쳐보면 틀린것이 많습니다. 특수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여서 그들 자신이 알고있는 생일도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월은 기억을 풍화, 산화시킵니다. 시간에 대한 기억에는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해석해주는 당시 력사배경도 틀리게 되지요. 김혁: 때문에 산더미처럼 무져있는 기록의 무질서함속에서 있는 자료를 나름대로 총괄하고 해석하고 되씹기를 거듭하는 장인의 작업을 이어나가야 할것입니다. 단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 꼼꼼함과 성실함속에서 우리 인걸들의 삶이 제대로 그리고 더욱 립체적으로 두드러져 나올겁니다. 리혜선: 문제는 이러한 오차로 그 사건을 뒤받침해주는 인간관계, 계기도 틀리게 되는것입니다. 계기란 그 인물의 선택 및 성격을 좌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때문에 이것이 틀리면 인물의 마음의 려정이 잘못 그려지게 되고 평전은 의미를 상실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평전은 사실일뿐더러 고증을 거친 사실을 통한 그 인물의 마음의 려정에 대한 기록, 성격에 대한 부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혁: 맞습니다. 한 인물의 내면에 육박해 그 정신세계를 정확히 그리고 빈틈없이 포착해내야 하지요. 년대기적으로 삶의 행적을 좇아만 가는것이 아니라 삶의 미묘하고 섬세한 결을 좇아가는것이지요. 그 인물의 열정적인 삶을 개인사와 시대사를 넘나들며 정확하게 다루되 그에 관한 감상적인 대목은 걷어내고 삶의 실체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만큼 한 인물의 진면목, 그 마음의 번지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십분 중요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고 필재를 믿고 겉멋만 피우다보면 그 화려한 이미지는 동영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정지화면의 단면체로 남게 됩니다. 따라서 그 깊이도 결여되여 력동적인 령혼의 설계를 살핀 흔적은 볼수 없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의 인물전기창작은 그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거개가 탄생- 성장- 고난- 성취- 죽음으로 이어지는 영웅신화의 서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나서 어디서 자라고 어디서 죽는 지루하고 평면적인 일대기와 자료의 라렬로 그치곤 합니다. 영웅사관에 갇힌 학계의 좁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독자들을 얽매고 있지요. 인물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제 평전이 출판의 인기종목으로 자리를 굳히고 어느정도 독자들의 인가를 받고있는 이상, 그 장르적 성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왜 평전을 쓰는지, 좋은 평전과 그렇지 못한 평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문단에서의 평전쓰기는 아직까지는 글쓰기 형식에 대한 미개발, 그리고 인물에 대한 접근방식이 갖고 있는 서투룸때문에 아직도 한참 달려야할 것 같습니다. 리혜선: 평전을 집필함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인물들이 한국등 다른 곳에서 다루었거나 다루게 되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인물전기를 쓰는 측면이 다르다는 점을 파악하는것이 명지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혁: 네, 동감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틀에서 보던 인물의 서로 다른 평가가 가능하지요. 뿐만 아니라 전자가 구애된 주관적인 중심의 서술에서 놓친 다른 부분을 후자가 더 많은 편폭을 할애해 발굴해 낼수도 있지요. 저는 윤동주의생애를처음으로소설화하면서송우혜작가님의“윤동주평전”을 거듭 읽었습니다. 시인의 생의 순간순간에 현미경을 들이댔는데 그 일거수 일투족을 묘사하는 세밀성은 가히 압권이라 할수있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장악력, 작자의 상상력과 내러티브, 묘사가 생생한 인물전의 진수를 보여준 평전이였습니다.  윤동주라는 인물연구의 결정체요, 평전문학의 진수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저도 언감 윤동주평전을내보려기획하고있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픽션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내내 가졌습니다. 윤동주를이민작가의류형으로정하고“외계에서 들여다 본 윤동주”가 아닌, “고향에서 내다본 윤동주”로서의 시각의 차이를 바꾸고 윤동주가오래동안생활해온룡정지역이라는이유구한곳의지역특색의문화풍토를덧입히려하고생각합니다. 지금 새로운 자료수집과 수십차의 답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명년 2012년이 윤동주탄생 95주기가 되는데 저의 창작 스케줄과 그 기념일에 맞추어 그때가서 꼭 내놓으려 합니다. 리혜선: 여러가지 쟝르와 문체로 우리 민족의 인물들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려는 그 시도가 참 좋습니다.   김혁: 여러 출판사들에서 평전시리즈를 기획하고 있고 저도 그 기획에 동참한적 있습니다. 모두다 어떻게 시리즈를 내놓을가 고민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면 선배님은 조선족인물에 대한 조명은 어떤 류형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리혜선: 기사년대천입부터 계산하더라도 중국조선족력사가 현재 140년가량 되는것만큼 각 단계 인물에 대한 평전이 기록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조선족중에 신해혁명이 참가한 사람이 있고 북벌전쟁시기, 항일전쟁시기, 해방전쟁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후 현재까지 우수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단계별 조명이 필요할뿐더러 류형에 따른 조명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에게는 우수한 항일투사들이 있는가 하면 우수한 예술인, 문화인들이 있으며 또한 우수한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김혁: 이렇게 방대한 인물들을 시대별, 류형별로 그려내자면 우리 작가들이 각고의 노력이 소요돼야 할테지요. 요즘 같이 문학의 가치보다는 그 환금성이 부풀려지는 세월에 바보천치의 우수운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선 작가의 사명감이 안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류연산작가는 “최채 평전”의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있습니다. “나 혼자만의 향수를 우리 모두 공유해야 한다는 민족적의무감과 시대적 사명감에 떠밀려 모든 계획을 뒤로 미루고 최채선생의 삶의 행적을 좇기로 결심했다.” 만약 사명감이 가미되지 않았다면 류연산작가처럼 그렇게 초부하적인 창작에 매진할수도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량산해 낼수도 없었을겁니다. 그의 타계가 특히 안타까운것은 어쩌면 문학에서도 자기 령역을 공들여 지키는 이가 드문 시대가 되였다는 그 점때문입니다. 리혜선: 그렇지요. 바로 책임감입니다. 저 역시 우선 중국에서도 위인이지만 조선족으로 놓고 볼때에도 크나큰 자랑이고 존경하는 위인이기에 민족작가로서의 책임감으로 정률성의 집필에 착수하게 되였습니다. 중국조선족은 기타 여러민족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새중국의 창건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했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여러민족 문화력사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중국조선족의 민족정신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위대한 력사에 대해 우리의 문학은 반드시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2011년은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이고 신해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년초에저는정부에“홍색세월에 대한 기록과 문화강주건설”이라는 제언을 드렸습니다. 광의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어떠한 정당 또는 어느 한 차례 혁명 모두 사람의 력사입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인간의 가치와 권리를 위해 그를 저애하는 모든 반동세력에 대해 항쟁한 력사이지요. 위대한 력사에 대한 기록은 우리 문학의 사명이며 이는 또한 우리 문학의 정품창출의 물질적 자원이기도 합니다. 김혁: 이 력사적인 기념일을 맞아 타성의 작가들의 반응과 움직임이 크다고 들었는데요. 리혜선: 현재 중국작가협회를 비롯해 전국의 기타 작가협회들은 중국공산당 창건 90주년, 신해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활동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정신자원 및 물질자원을 찾아내고있습니다. 중국작가협회는 정강산 등에 대한 홍색취재답사활동을 조직했는데 이미 40명의 작가들이 중국작가협회에 중점작품지원을 신청한 상황입니다.    아시다싶이 주류문단에는 이미 장편소설 “장정”, “위만주국”, “해방전쟁”, 그리고 “항일전쟁”장편소설총서 등 거폭의 력사화면을 담은 대작들이 많이 나오고있습니다. 우리의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을 통해 인생의 철리와 실존의 고뇌를 표현할수 있고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줄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학은 또한 인류의 생존에 거대한 충격과 변화를 주었던 위대한 력사에 대한 기록을 통해 정신적인 자원을 개발하고 대중독자들의 공명을 이끌어내기도 하지요.   김혁: 우리작가들도 움직여야 하지 않을가요? 지난 한해 젊은 지성인들과 함께 력사문화동호회를 뭇고 연변지역을 수십차 답사했는데 아시다싶이 “산마다 진달래요 촌마다 진달래”인 연변지역에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홍색세월”의 발자취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작가들에게 사실상 거대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는거지요. 하지만 그 영광의 력사에 대해 미온(微溫)적인 우리의 작가들과 우리의 소재의 협소함이 안타깝습니다. 리혜선: 사실상 우리 연변작가협회 작가들중에도 거폭의 홍색력사화면을 작품에 담아내려 노력을 보이고있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항일투사이고 원로작가인 김학철에대한평전, 그리고 전기소설, 저항시인 윤동주에관한장편소설, 항일투사이고 우수한 지도자 “최채 전기”, 항일 투사 “심여추 평전”, 항일투사이고 과학자인 “류자명 평전” 등이 련재되고 있거나 국내외에서 출간됐습니다. 또 우리 작가들중에는 우리 민족 지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답사취재를 한 작가들도 있습니다. 례를 들면 2만5천리장정에 참가한 30여명 조선족홍군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중국인민해방군 포병창시인의 한명으로 된 “무정 전기”를 쓰기 위해 태항산, 연안 등을 취재한 작가가 있습니다. 또 2만5천리 장정에 참가하고 군위간부퇀 참모장으로 황하도강작전에서 대군의 도강을 엄호하고 희생된 양림에 대한 전기를 쓰기 위해 그 현장을 취재한 작가도 있습니다. 전한, 섭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30년대 중국의 영화“황제”로 인정되였던 김염,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작곡가 정률성 ,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 주덕해 등에 대한 평전을 준비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김혁: 이러한 력사의 대사변과 그속에서의 위대한 인들물의 삶을 들여다보는데는 그에 대한 애정 그리고 상당한 노력은 상당할듯 합니다. 한 사람의 령혼에 대한 깊이 있는 리해와 애정에서 읽는 이를 설득하는 감화력이 나옵니다. 또 이러한 애정으로 한사람 또 한사람의 평전이 쏟아져 나오게 될겁니다. 우리가 평전의 집필에서 우선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이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가요. 리혜선: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홍색력사에 작품을 통해 전국은 조선족을 이해하고 연변을 이해하고 조선족은 전국으로 나가고 세계로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작품활동은 한편으로는 중국조선족의 이미지를 창출해내게 되지요. 우리 문화의 무형의 자산이 우리 경제의 유형의 자산으로 전변되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김혁: 참 좋은 제언입니다. 이 벅찬 작업을 위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은 무엇일가요? 리혜선: 우선 홍색세월의 기억속으로 들어가 직접 취재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대어로 말한다면 “실제에 접근하고 생활에 접근하고 대중에 접근한다”라는 것이지요. 력사는 시간적으로 우리와 점점 더 멀어져가고있어 사장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절박감 때문에 책임감있는 작가들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김혁: 그렇지요. 전기문학작가들이면 저마다 느끼게 되는것이 바로 절박함 그것입니다. 한락연의 경우만 봐도 일찍 70년대에 주은래 총리마저 “한락연에 관한 책자가 왜 나오지 않고 있느냐. 참 애석하다”고 말한바 있지만 지금까지 완정한 전기와 평전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력사의 순간순간을 함께 했던 유명인물 그 증언자들이 세상떴거나 로쇠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력사의 증인들을 인간문화재들을 우리는 기록하고 그 값진 사료들을 정리하여 남겨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외면하고 쌓아온 휘황한 공적에 대해 무시하고 그것이 안타깝게 사장된다면 그건 우리 후배들, 그리고 현역작가들로서는 “불효”요 부끄러움이 아닐가요? 리혜선: 그럼요. 우리의 빛나는 력사는 력사학가들에 의해 학술서로는 일부 반영되여왔지만 우리의 문학작품에는 적게, 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동북항일련군의 피타는 투쟁은 이미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11개 군의 부대들에는 조선족장병들이 많이 활동했고 많은 군장, 사장들이 조선족지휘관들이였습니다.  또 예를 들면 북벌전쟁, 남창봉기, 광주봉기 등 대혁명시기의 큰 사변들에 조선족투사 200여명이 참가했고 대부분이 장열히 희생되습니다. 이 외에도 중국력사의 빛나는 한폐이지를 기록한 투사 양림, 무정, 리철부, 진광화, 석정, 김산, 주문빈, 예술가 한락연, 김염, 항일투사이고 초대주장인 주덕해 평전 등은 현재 일부는 집필에 착수했으나 대부분은 경제여건 때문에 집필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김혁: 정률성과 더불어 “백명영웅모범인물”에 선정된 “8녀투강”중의 조선족 인물 안순복과 리봉선도 아직도 그 빛나는 이름에 불구하고도 조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은 상태이지요.. 리혜선: 때문에 조건을 창조하여 작가들이 홍색세월의 기억속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산발적이고 개인적인 취재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모든 경제부담을 안고 취재하기에는 우리 작가들의 경제수준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적인 취재가 필요합니다. 김혁: 그렇지요. 창작자의 수고가 많이 드는 작업이지요. 한 인물의 생애 전체를 추적해야 하는만큼 상당한 시간과 발품 그리고 경제력이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를 봐도 한락연평전 집필을 위해 지난해 사비를 털어 한락연이 초기에 활동했던 할빈, 치치하르 등 동북지역을 답사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문인의 박봉으로는 전 중국을 무대로 활보한 그의 족적을 쫓아가기에는 정말로 힘에 부친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현재의 인물전기라는 쟝르에 투신하는 작가에 대한 창작지원금이 전혀 없거나 있다해도 그 시스템이 인물전기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또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창작성과에 편향되다보니 장시간을 소요하는 인물전기같은 쟝르는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거지요. 리혜선: 때문에 정품화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작가의 노력, 중점작품에 대한 연변작가협회의 조직, 정부의 경제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중국조선족기업인들의 사명감과 지지가 따라준다면 더욱 가능한 것이지요. 저의 경우 “정률성  평전” 등은 우리 자치주 선전부의 지지와 자치주정부 재정적인 지원 및 중국작가협회 등의 지원을 받아 연안, 태항산 등을 비롯해 취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집필진전이 비교적 순조롭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무런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작업을 해나가고있습니다. 경제여건때문에 작가의 고생은 이루 말할것 없지만 작품의 질에도 큰 차질이 빚어집니다. 그리고 조선족독서인구의 한계 때문에 우리의 작품은 시장의 순환에 들어가지 못하며 따라서 경제적인 리익으로 환원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소수민족지구 특수성 문제로 인해 홍색문화정품창출은 취재 뿐 아니라 출판, 번역의 환절에서도 반드시 국가재정 및 민간경제의 지원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김혁: 면면을 살핀 참 좋은 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우리 조선족문단에서 평전문학의 미래상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는지? 리혜선: 현재 우리의 평전문학은 중요한 기초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학은 금방 전기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수량이 아주 적고 상당 부분의 인물은 첫 평전이 됩니다. 금방 기초를 쌓기 시작하는 단계이지요. 인물들과의 거리가 시간적으로 많이 멀어진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때문에 많은 자료들이 사장돼있어 참으로 참다운 자세로 발굴에 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 작가가 처한 단계의 한계만큼이나 한계를 가지고있습니다. 현재 개혁개방, 글로벌사회로 나가고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발굴하는 인물들은 지금 단계 지금 작가들의 시각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력사단계에는 새로운 시각의 조명이 필요하며 새로운 자료들이 보충되게 되지요. 때문에 후세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라도 일단 자료수집에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지금의 작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포전인옥(抛磚引玉)하는 작업이 될수도 있겠지요. 민족위인전기 집필작업은 또한 우리 민족의 사상적인 기반을 다져주는 일로서 후세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알려 민족적 긍지감을 가지게 하고 이들에게 민족문화보존의 계주봉을 넘겨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조선족문단의 평전문학의 미래는 틀림없이 지금보다 훨씬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은 현역작가들의 지금의 노력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합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초작업을 우리가 하고있기 때문이지요. 김혁: 맞습니다. 우리의 이한 작업은 아직 도정(道程)우에 있습니다. 력사의 뒤안길에 스러져간 많은 삶들은 아직도 더 많은 연구와 조명을 필요로 하고있습니다. 다시한번 짚어보지만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변화의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합니다. 력사속에 박제화된 인물들을 피가 돌고 살냄새 나는 인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데 평전의 진정한 매력이 있습니다. 시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과 그 력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열은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气)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입니다. 우리 작가들이 한계를 극복하고 실천속에서 노력을 경주한다면 지식과 정보가 담긴 향기나는 평전들을 우리는 언제쯤 읽을수 있을겁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리혜선: 감사합니다!   “도라지” 2011년 1월호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5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의 창작 과정과 에피소드 댓글:  조회:3220  추천:26  2011-06-10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과”의 대담   -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의 창작 과정과 에피소드   P  D: 남 철 진행: 신금철 방송일: 2011-06-09 방송시간: [목]     신금철: 본 방송국 라지오소설 프로에서는 금년 4월 10일부터 6월 6일까지 58회에 걸쳐 라디오 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방송했습니다. 이 소설은 연변문학에 련재되였던 당시 독자들의 크나큰 흥미를 끌었고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년이 지난 오늘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오늘 문학살롱에서는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창작하신 저명한 청년작가 김혁 소설가를 모시고 이 소설의 창작을 둘러 싸고 이야기를 나누고저 합니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점은 우리문단에서 드물게 녀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장편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적인 의도는? 김혁: 우리가 감동하며 읽었던 명저들을 살펴보면 안나 까레니나. 보바리 부인, 나나, 제인 에어, 테스, 헤스터, 스칼렛 등으로 독자들중에 쟁쟁한 이름으로 남은  녀성주인공들의 운명을 다룬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허나 우리 문단에 아직 한 녀성의 운명을 주선으로 다룬 장편은 거의 없다싶이 되였다. 외유내강의 특유의 성정미를 가진 조선족녀성의 일상사와 그에서 관조해본 우리의 현사회, 이한 시점이 가져다주는 창작방식이 나에게 주는 흥미가 컸다. 그래서 어떤 녀인상(像)을 그리고싶었다. 안나 까레니나 같은, 제인 에어 같은, 빠리 노뜨르담 아래의 애스메랄다 같은, 아니면 더버빌 가의 테스 같은 그렇게 분명 기억될 녀인들을  쓰고싶었다.      어느날인가 무심코 내가 주물 해낸 소설 속 인물들을 머리에 하나 둘 떠올려 보다가 60 여 편이 되는 작품 중에 녀주인공이 겨우 한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집계에 스스로 놀란 적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녀성 주역을 내세워 그네들이 치렬하게 통과해온 삶을 직성 풀리게 쓰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중국문단을 살펴보면 중량급작가들도 독자들의 취미와 작품의 상업화를 위해 본격문학제재에 통속문학형식을 접목하여 좋은 본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 조선족작가들이 배울바이다. 중국문단의 번역서나 한국의 취미소설이 그렇게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여러 잡지들에 다투어 게재 되는데 반해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 문단에는 아직 련정이나 추리, 현념, 무협, 판타지을 비롯한 통속제재가 전무하다고 말할수 있다.   이에 비추어 우리 동포사회의 문제점이 편파적으로 처처에 깔려있어 글의 무게를 구축하지만 대중적 통속소설의 형태로 글을 이어나가면서 글의 중후감을 보장하는외 자칫하면 재미위주에 빠지기 쉬운 결함을 아름다운 언어구사와 신선한 결말이 주는 비극미로 보완하고자했다.   신금철:  이 소설은 운명이 기구하고 순박한 농촌녀성이 가난탈출을 위하여 도시에 진출하고 간난신고를 겪다가 결국에는 밀항배에서 죽어가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평론의 시각에서도 이 작품을 비애소설, 저층서사라고 했는데 작가가 작품의 구조를 이렇게 설치한 까닭은?   김혁: 저층서사(底層敍事)란 변혁기의 중국사회에 이미 표면화된 민생문제에 대한 관조를 나타내면서  빈부차이, 새로운 도시빈민층, 도시에 진출한 농민공 등 밑바닥인 생을 영위하는 계층의 궁핍한 삶과 정신실존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저층서사소설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시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분망한 소외된 계층을  주요 묘술대상으로 삼고  이 부류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 시대의 대사로 대할것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서 이를 통하여  시대의 일부 삐뚤어진 가치관념을 비판하고 아울러 개체생명의 독립과 존엄을 고양하고있다. 글에서 나는 산업화과정의 부산물로서의 시골녀성들이 고향을 떠나고 산업예비군으로 충당되며 그한 과정에 육체적파멸 정신적 파멸로 이어지는 도식과 현사회를 증언하는 녀인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한 인물에 집대성시켜 풀이하려 했다.   모든것이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되고 돈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세태의 횡포속에 수동적인 삶을 강요당하면서도 한 개체로 살아남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성상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좌절과 몰락에 대해 살펴보려 했다.    사회의 욕망구조와 남성중심의 문화권속에서 사회와 충돌하고 대립하는중에 랑자하게 락인되는 녀성들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저 하며 축복받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그네들이 어떻게 운명에 우롱당하고 내쳐지는가를 전경식으로 펼치고 그 고통스럽고 무원조한 존재를 형상화 하려 했다.   신금철: 박신애가 대표하는 인물군체는? 작가가 박신애를 통해 표현하려는 우리민족 내지 사회상은? 김혁: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여느 작품의 구상때보다 나의 창작충동을 특히 강렬하게 불러준 작품이다.   장시기의 기자생활에서 필자에게 가장 크게 안겨온 것은 농촌인구의 도시대거 진출과 그속에 선봉으로 나선 녀인들의 운명이다. 최근년래 땅을 버리고 도시로 진출하는 조선족수는 년년이 급증하는 수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핍박에 의해 월강이민해왔던 우리 중국조선족의 또 한번의 이민열조라 분석한다. 80년대말로부터 지금까지 산해관이남을 넘어선 조선족수는 2,30만이라 한다. 220만으로 헤아리는 중국조선족의 인구수효로 볼 때 이는 그야말로 놀라운 수치이다.   그중 맨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조선족녀인들이다. 짠지장사,음식장사로 나갔고 내지의 외국합자기업으로 나갔고 한국에 품팔이로 나갔다. 이들중 또 상당수는 유흥업소의 “3배동”아가씨들과 한국인현지처, 매춘녀들로 륜락된다. 북경시만해도 현재 유흥업소의 66프로는 조선족의 소유이며 적발된 조선족매춘녀의 수자만 해도 7천여명이라 한다. 따라서 섭외혼인으로 한국에 시집가는 조선족 녀인수도 90년초에는 해마다 1400명좌우로부터 중기에는 7600여명으로 요사이엔 만여명으로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전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나가있는 조선족수는 20만명, 그중에 녀성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대이동은 조선족사회의 경제, 문화 모든면에서 충격을 주고 있고 우리의 조선족사회는 전례없던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진통속의 삶을 형상화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하나의 미룰수없고 감이 큰 작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박신애라는 이 인물에 접근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할것은 박신애는 현대화건설의 물결속에서 도시에 진출한 수십만 조선족의 일원, 하나의 생명개체라는것이다.    또한 나는 조선족자치주의 수부에서 살며 이곳에 운집해드는 농촌 처녀들의 출현과 그들의 변해가는 삶의 양상을 본의 아니게 지켜볼때가 많았다.     내가 경영하던 자그만 식당에서 복무원으로 일하던 애가 있다. 시골에서 상경한 순박한 뜨내기였다. 경영부진으로 식당도 망가 먹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그 애를 노래방에서 보았다. 요염하게 치장하고 노래방 배동녀로 된 그 애는 나를 보자 난감한 기색이 되여 랑하끝 쪽으로 허겁지겁 도망을 가는 것 이였다.      70먹은 령감과 위장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간 먼 친척 녀자가 있다. 어떻거나 한국 가서 떼돈 벌어오겠다던 그녀가 한국에서 뜻밖의 사고로 비명에 갔다. 우리가 자주 다니는 단골다방에 겨우 신분등록증을 타고 카운터에 나선 여린 녀자애가 있었다. 그 다방이 파가 이주를 맞고 그만 두게 되자 다방마담과 우리와 정들었던 레지애가 난 어쩌면 좋아요? 하고 울먹이는 것 이였다. 이렇게 내가 90년초에 직접 경영하였던 식당과 책방에서 복무원으로 일했던 처녀애,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녀급으로 일하는 처녀들, 우리 이웃이나 친지들중에 너나가 엇비슷한 처녀애들의 출국과 일자리 찾기 ... 그네들의 다양하고 불운하기 그지없는 삶들이 곳곳에서 촉발되는 감개를 주었고 따라서 나더러 이 소설을 구상하고 익히게 했으며 강렬한 창작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인물들의 운명이 집대성되여 태여난 것이  바로 신애였다. 그들 저마다는 시골서 보내온 생감자처럼 풋풋하면서도 아린 이야기를 가지고있다. 그 참담한 동질성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을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운명의 진공(眞空)속에 살아가는 그네들의 몇 가지 모습이 몽타주되여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피 돌림이 같은 사촌누이같이 애정이 가는 그들의 비극적인 삶이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나군 했고  내 정감의 상온(常溫)을 뛰여 넘어 시시 때때 형벌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네들의 드라마 같은 삶을 쓰고싶었다.      그네들의 삶을 아슬아슬한 곡예의 줄타기에로 몰아간 오늘의 세태를 쓰고싶었다.      마을을 비우고 집을 비우고 사랑을 비우고 떠나간 우리의 녀인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 막중한 현실을 정시하고싶었다.     그리고 박신애의 주변의 인물들을 고찰해보면 광천수차 사기 양인철, 운수회사의 버스 사기 박털보, 김밥집 마담, 장아주머니, 고향친구 경자, 그다음 신애보다 후에 국자가에 들어온 효준, 림호, 그리고 상인 윤성원, 시인 안경준 등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신애와 마찬가지로  운명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다수이고 진정으로 신애를 사랑하는 사람, 도와주려는 사람은 소수임을 쉽게 보아낼수 있다. 이처럼 개혁개방후 중국 조선족의 삶이 길도 여러 갈래로 뻗었으며 삶의 양상도 다양해지였다.  박신애의 삶은 그중 한가지 부류 사람들의 삶의 양상일뿐이다. 박신애를 통해 격변기 조선족 공동체 사회의 여러 양상도 더불어 보여주려 했다. 박신애라는 인물을 통하여 나는  박신애처럼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이 현장을 림리하게 조명하려 했으며  그들에게 무한한 동정의 마음을 표했다.  개혁개방 30년래 우리 나라의 경제는 고속도로 발전하고 총체상에서 중국사람들의 삶의 질이 크게 세인을 놀래울 정도로 제고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또 일찍 사람들이 에측하지 못했던 많은 사회문제들이 생성된것은 사실이다. 그 하나의 문제가 바로 빈부차이의 확대와 도시와 농촌의 경제생활수준과 문화생할수준 차이의 확대,  새로운 도시빈민층의 생성,  도시에 진출한 농민들의 사회적보장문제의 미해결 등 문제이다.   게다가 중국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이 민족공동체는  천성적으로  자체의 문제가 수두룩한데 새로운 력사시기에 들어서면서 그것들이 총발로되는 양상을 보여주고있다. 조선족 농촌인구의 대량 도시진출과 조선족인구의 대량 해외진출에 의하여  연변을 중심으로 하는 집거지구의 조선족의 인구는 급속히 축소되고있으며 그 결과로  이미 조선족 민족사회는  문화적으로  해체되고있으며 급속히 동화되는 조짐을 보이고있으며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는 조선족인구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 많아지고있다는 절규도 어렵잖게 들을수 있다.   신금철: 이 작품은 당시 연변문학에 련재할때 독자층에서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했는데 그때의 에피소드는? 김혁: 이 소설은 “연변문학”지에 2003년 10월호부터 ~ 2005년 2월호까지 련재되였다. 나의 두번째 장편이다. 지금은 장편을 여러부 냈지만  그때는 상당히 실험단계에 내놓은 장편, 첫 장편을 마쳐 두달만에 연재를 시작한 장편이였다. 소설은 2008년에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합신문”지에 1년간 련재되였다. 일면 쓰면서 연재했기에 편집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애의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마지막 회를 접하고 편집자로부터 왜 죽였느냐고 엄숙한 질문이 올라왔다. 문우들은 이 작품을 읽은후 나를 킬러, 살인흉수라 부르기도 했다. 친구가 한번은 퇴근해 오니 안해가 눈이 퉁퉁 부어 있더란다. 영문을 캐 물으니 신애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장레식에는 안가냐고 물으니 안해가 신애는 근간에 읽고있는 작중인물이라고 대답한데서 파안대소를 했다고 한다. 모 시에서는 노래방 배동녀들이 이 작품을 사기 위해 서점에 찾아와 문의 한 현상까지 일었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2009년 나는 역시 한 녀인의 치렬한 삶을 다룬 “와늘”이라는 중편을 썼다. 역시 운명의 질곡에서 헤매다가 나중에 밀입국을 택했던 녀인, 하지만 밀입국 하던 배가 난파된 현념으로 마무리 했지만 나는 주역이 죽는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어쩌면 신애의 눈물겨운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또 한부의 녀성상을 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서점에서 10여명의 생면부지의 독자에게서 왜 책으로 출시되지 않느냐, 또 메일로도 질문을 받았고 나의 블로그에도 질문이 여러차 올라왔다. 독자들의 애대에 힘입어 요사이 책자로 출간하려 한다.   신금철: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라디오소설로 제작되여 58회에 걸쳐 방송됐다. 활자로 찍힌 평면적인 소설과 립체적인 드라마식 소설의 구별점을 작가자신으로는 어떻게 느껴보는가?   김혁: 사실 문인들중에서 ‘영화광’이로 통하고 있는 나는 이 작품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몬따쥬 수법을 시종 즐겨 썼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모두들 한부의 텔레비 드라마를 보는것 같다고들 했다. 사실 이 소설은 드라마로 각색되여 제작하려고 시도도 했던 작품이다. 한 유명 영화감독의 요청에 이 작품을 드라마로 각색했고 광전총국의 비준을 맡으려 중문으로 번역까지 해두 었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결국 자금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의 영화나 방송문학은 그 발전 전기에 문학과 기타 예술의 힘을 입어 자신의 본체 내함을 크게 풍부히 하였고 오늘 더욱이는 현대 고신 기술의 힘을 입어 질적인 비약을 가져 왔다. 눈앞을 현란하게 하는 촬영기교와 컴퓨터 조합은 영화의 서사적 전개에 커다란 활동공간을 가져다주었고 성우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그에 곁들인 음악과 자연의 소리에 대한 재현은 문학을 보는것이 아니라 듣는 쟝르로 립체적으로 거듭나게 했다. 텔레비나 컴퓨터 디브이디가 없었던 한때 휘황한 전주곡을 울렸던 방송문학은 지금 이전보다 많이 외면되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움의 쟝르로 남아있다. 요즘의 다양해진 문화참조계로 하여 수용자들 즉 독자나 청중들은 참조계들 사이의 애정 분배를 강요당하게 된다. 행복한 고민이다. 이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문학이며 예술은 변신해왔고 발전해왔다. 수용자가 원 하는 수요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이 작가의 생존방식이라고 믿는다. 모든 생산이 그러하듯이 문학과 예술도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가 최종목적으로 간주되는 세월이다. 아무리 자신이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하더라도 수요층이 없고 돈이 되지 않은 글은 작가 스스로 도태될 뿐 지속적인 재 공급이 불가능한 것이다. 인류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수요자들의 수요가 달라지면 공급자들은 여기에 부합해야만 하고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때문에 참조계의 바다속에서도 방송문학은 그 독일무이한 매력으로 그의 청중은 어디까지나 있으며 그 매력도 영원하리라 믿는다. 드라마의 꿈을 꾸다 무산되였던 작품, 그러한 아쉬움이 있는 작품인데 이번에 방송소설로 각색되여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 덜어주었다. 이 기회를 빌어연출과 청아한 목청의 성우들 그리고 전체 제작진에 감사를 드린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14    추천사 (4월 11일~ 4월 4월 18일) 댓글:  조회:2968  추천:34  2011-04-11
추 천 사        조선족 중견소설가 김혁선생이 집필한 인물전기”주덕해의 이야기”가 주덕해 탄신 100주년에 즈음하여 출간되였다.     중국조선민족의 정초자이며 민족의 탁월한 지도자인 주덕해의 일대기를 조명한 인물전기 “주덕해의 이야기”는  15만자에 달하는 편폭에 16개 장절로 구성, 주덕해의 인생로정을 따라 로씨야에서 탄생, 중국 화룡현 수동골에로의 이주, 소학교생활과 야학교생활, 혁명의 계몽스승을 따라 펼쳐온 초기항일활동, 혁명사업에 참가하기 위한 퇴혼, 흑룡강성 녕안, 서대림자, 밀산에서의 항일투쟁, 연안에서 조선의용군생활, 할빈에서 조선의용군 3지대와 함께 싸우던 시절, 건국직후와 연변지구위원회 서기 겸 연변전원공서 전원시절, 조선전쟁시기 특무색출작업,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연변의 건설,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던 과정, 서거와 연변인민들의 추모활동등을 섬세하게 다루었다.     평론가들은 이 위인전기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주덕해의 인생을 조명하였을뿐만아니라 항일투사이고 조선족대표자이며 인물인 주덕해의 진, 선, 미의 일체를 보여주고있다.” 이 인물전기의 출현으로 하여 새로운 전기문학, 더우기는 청소년을 위한 인물전기의 활약상을 감히 기대해 본다”고 정평하고 있다.   김혁소설가는 금방 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소설화하는 장편소설의 작업을 끝내기 바쁘게 자치주 주장에 대한 애대와 민족작가로서의 소명의식을 안고 창작에 매진하여 불과 석달도 못되는 짧은 시간에 이번 위인전기를 집필해 냈다.     저자는 “중국조선족의 정초를 닦아온 한 혁명가의 초상을 그리면서 나는 여태 창작해온 여느 쟝르나 문체보다는 다른 농도와 줄기의 중후한 기운을 느꼈다.”고 하면서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우리 위인들의 이야기를 펴내는 우리들 응분의 작업에 계속하여 필봉을 크게 기울일것을 약속했다.   재차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213    "주덕해의 이야기"의 청소년 위인전기적 의미 댓글:  조회:3110  추천:31  2011-04-09
“주덕해의 이야기”의 청소년 위인전기적 의미   리광일 (연변대학 조선-한국학 학원 교수)       요즘은 평전이 대세인것 같다. 문학작품내용이 많이 변했을뿐만아니라 형식도 많이 변했다. 조선족문단의 경우, 한때는 시작품이 각광을 받다가 후에는 소설중심으로 움직이더니 다음은 수필시대로 진입하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실화문학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로세대의 실화작품으로 김학철의 “항전별곡”을 들수 있고 차세대로는 류연산의 무게있는 실화작품 “혈연의 강”이 나타났다. 주목되는것은 “주덕해실화”가 창작된 점이다. 현재는 평전이 마구 쏟아지는 시기라고 보아도 무방할것 같다. 이미 “불멸의 영령-최채”(류연산) 등 평전이 나왔고 또한 집필, 편집, 출간 등 진행형으로 진척되고있다. 이런 평전은 모두 성인평전인데 반해 리혜선의 “김학철의 이야기”는 청소년 전기작품이지만 한국에서 출간된 점을 외면할수 없다.   이번에 출간된 김혁의 “주덕해의 이야기”는 청소년을 위한 중국조선족 위인전기라는 점과 연변에서 출간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금년은 주덕해 탄신 100돐이고 명년이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이라는 시점, 그리고 주덕해는 초대 당, 정 지도자이며 명실공히 조선족의 대표자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현재 청소년들이 “반지의 제왕”은 알고있지만 조선족의 위인인 주덕해를 알지 못하고있는 양상을 념두에 두면 청소년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가 지니는 의미는 간과될수 없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작품내용의 구조적특징이 뚜렷하다. 12만자에 달하는 편폭에 16개 부분의 내용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조선으로의 이주, 다시 중국 화룡현 수동골로의 이주, 소학교생활과 야학교생활, 수동골에서 야학선생님을 따라 진행하는 항일활동, 혁명사업에 참가하기 위한 파혼, 흑룡강성 녕안현일대에서의 항일투쟁, 서대림자에서의 항일투쟁, 밀산에서의 항일투쟁, 연안에서 조선의용군생활, 할빈에서 조선의용군 3지대 정위로 싸우던 시절, 건국직후와 연변지구위원회 서기 겸 연변전원공서 전원시절, 조선전쟁시기 특무색출작업,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연변의 건설(성립당시 명칭은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이다. 길림성인민위원회 제2085호통지에 근거하여 1956년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로 명칭을 변경),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던 과정, 서거와 뒤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였다. 보다싶이 16개 부분에서 해방전에 해당되는것은 10개 부분, 할빈에서 활동은 2개 부분, 연변에서 활동은 2개 부분, 박해를 받고 서거하는 부분은 2개 부분으로 되였다. 전반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해방전에 두었음을 알수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지도자인 주덕해의 해방후 업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해방전 그의 생애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작가는 많은 편폭을 해방전에 할애하였다. 청소년 위인전기라는 장르가 편폭의 제한이 있음으로 하여 잘 알려져 있는 해방후부분은 간략하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영화기법을 활용하여 긴축하면서도 역동감이 넘치게 처리하는 특징도 보여주었다. 이는 위인 주덕해의 생애와 청소년 전기라는 장르의 결합에 있어서 매우 과학적인 내용구조라고 인정하게 된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생애와 조선족이주사를 합일되게 처리했다는 특점이 있다. 기록문학으로서 전기작품은 흔히 따분하고 엄숙한 영웅사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청소년 전기라는 점에 주목하여 청소년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기록성보다는 이야기성에 중점을 두었다. 말하자면 기록문학의 영웅사적패턴을 떠나 재미와 함께 진한 감동이 내재한 기록문학이 필요한 이 시대의 수요에 부응한 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 작품은 주덕해 개인의 위인전이면서 동시에 조선족의 력사와 매우 흡사하다. 작품에 사용된 사진 30장, 그림 18장은 단지 주덕해 개인과 관련된것뿐만아니라 조선족이주사와 관련된 사진이 매우 큰 비례를 차지하였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조선족의 이주사이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사, 나아가 조선족의 정신사라고 인정할수 있다.   독립투쟁시기의 “15만원 탈취”사건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항일투쟁사에 빛나는 한페지이고 1930년 “5.30폭동”은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서 연변을 비롯한 전 동북에서 항일전쟁의 시작을 선고하였다. 이후 각지에 항일유격대가 우후죽순마냥 나타났고 1934년엔 동북인민혁명군으로, 1936년엔 동북항일련군으로 발전하였다. 1938년 무한에서 조선의용대가 성립되여 1942년 조선의용군으로 발전하며 8.15해방후 동북에 진출하여 건국까지 해방전쟁에 참가하였다. 이런 혁명투쟁과정은 이 작품에서도 직접, 간접으로 반영되였다. 동북항일련군 제1군은 료녕성에, 제2군은 연변에 있었고, 기타 부대들은 흑룡강성에서 활동하였다. 주덕해의 발자취에 근거하여 이 작품은 주로 흑룡강성에서 활동하는 항일부대에초점을 맞추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끄는 작중인물은 안순복이다. 1930년대 항일혁명투쟁사를 배우면서 목단강에 뛰여든 동북항일련군의 “8명 녀전사”를 알았지만 오랜동안 그속에 조선족이 2명 있었음을 몰랐고 수십년이 지난후인 2009년에 그가 정률성, 리봉선 등 조선족과 함께 “새 중국성립에 특출한 공헌을 한 100명 영웅모범인물”에 선정될줄을 몰랐다. 더우기 그가 주덕해와 함께 항일했음은 더욱 몰랐다. 이와 같이 작품은 주덕해와 관련된 주변인물들을 까근히 밝혀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이 작품이 단지 한 개인의 성장사가 아니고 한 집단의 발전사, 변화사임을 보여주었다.   작품에서 주덕해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묘사되였다. 긴박한 상황에서 급히 피신해야 하는 와중에도 그는 직접 약혼녀의 집에 찾아가 죄송한 마음으로 혼사를 물린다. 책임감있는 그의 성격을 볼수 있는 장면이고 아울러 한 인간의 일생을 망칠수 없다는 휴머니즘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뿐만아니라 적들의 진공으로 하여 피복공장의 녀전사들이 자기의 애를 한족백성집에 맡기는 부분도 감동적이다. 녀전사들의 찢어지는 마음도 독자들을 뭉클하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분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주덕해의 형상도 매우 주목적이다. 흔히 볼수 있는 원칙과 과단성만 지닌 지도자의 패턴을 벗어나 피와 살, 그리고 짙은 정감을 지닌 주덕해를 립체적으로 볼수 있었던 부분이다.   위인전기작품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여러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주목되는 부분은 콜롬보스와 노벨에 대한 전기작품작업에 대한 견해이다. 한국의 경우, 이들에 대한 위인전기작품창작에 부정적인 자세이다.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정면적인 업적에 반해 토착민을 수없이 학살한 부면적인 면이 외면될수 없으며, 노벨의 폭발약은 광산개발 등에 활용되는 산업개발의 업적도 있지만 무기에 사용되여 대량살상이라는 부면적인 면이 외면될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외국인보다는 본 민족의 위인전기작품을 창작해야 할 필요성이 더없이 증폭된 상황이기도 하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성립은 주덕해를 떠나서 운운할수 없다. 중앙의 민족정책의 실시와 더불어 성립되기도 하였지만 디아스포라서 조선족이 중국에서 정치적, 문화적, 민족적지위를 확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주덕해를 위시한 조선족혁명가,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자치주의 성립은 불가능했으리라는 비약적인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주덕해를 단지 당, 정 지도자, 혁명가로만 인식하는것은 객관적인 자세가 아니다. 연변대학을 비롯한 연변내 대학교성립에는 주덕해의 심혈이 슴배여있는바 그는 연변대학의 초대교장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아세아에서 두번째로 큰 과수원인 룡정과수농장 등 자치주성립초기 연변의 굵직한 사업은 주덕해를 떠나서 진척된것이 없다. 이런 그의 업적을 작품은 극화형식으로 처리하였음이 독자들의 주목과 상상을 불러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덕해의 이야기”는 조선족 청소년 전기문학에 있어서 획기적인 작업이다.   기록문학의 본격적인 작업은 류연산에 의해 시작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의 타계로 하여 기록문학이 주춤하지 않을가 하는 우려가 없는것도 아니다. 이 작품의 출현으로 하여 다시 새로운 기운을 보게 되며 특히 청소년 위인전기문학의 부흥을 감히 기대해보기도 한다.   주덕해가 심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험한 신체적, 정신적모욕을 주었던 문화대혁명 당시 일부 조선족“혁명가”들을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작가의 아량도 볼수 있다.   세기의 마지막순결을 지키려고 아집을 부리는 김혁의 이번 전기작품이 출현함은 이 시대에 새로운 기록문학의 붐이 일어남이 필요함을 제시하는것이 아닐가 한다. 작품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주덕해의 인생을 조명하였을뿐만아니라 항일투사이고 조선족대표자이며 위인인 주덕해의 진, 선, 미의 일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국의 아이돌그룹의 노래는 보는 노래이고 7080노래는 듣는 노래라고 한다. 김혁의 “주덕해의 이야기”는 눈으로 보는 작품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2011.4.8  
212    오! 류형(柳兄), 플로라이드 사진속의 류형! 댓글:  조회:4999  추천:30  2011-03-15
. 추모수필 .   오! 류형(柳兄), 플로라이드 사진속의 류형!     김 혁     경인년이 막 시작되던 어느 추운 아침, 매일의 일과처럼 컴퓨터에 마주앉아 메일함부터 열었다. 류연산 선배에게서 온 메일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열었고 다음순간 나는 얼음방망이에 맞기라도 한듯이 그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의 입으로는 부지중 주체못할 비명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동안 무사하오? 물론 무사치 못하리라 알고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도 시련을 주었소. 지난 11월 23일 연변대학 복지병원에 입원했소. 가볍게 치료하면 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27일 암 진단을 받았소. 28일 연변병원에서 다시 담도관 암으로 판정되였소. - 2010년 1월 3일 일요일.   선배에게 향한 새해문안으로 예쁜 엽서를 골라 축하메세지를 일껏 작성해 보내고 좋은 답복 기다렸는데 그 답멜의 내용은 지극히 충격적이고 가혹한것이였다. 그리고 그뒤로 일년하고 18일만에 류선배는 몸소 답사했던 “혈연의 강”을 거슬러 영원히 돌아로지 못할 강을 건너가고 말았다.   류선배의 이름을 맨처음 접한것은 문학도시절이였다. 당시 김훈등 나젊은 소설가들을 위시로 한 소설가들의 동인회가 발족되였는데 우리 문학도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망의 협회였고 기라성같은 회원들은 존경의 대상이였다. 동인회를 소개하는 “문학과 예술지”의 뒤 표지에서 처음 류선배의 모습을 보았다. “문학과 인생의 길을 연소하고 싶은 마음에 부모가 지어준 이름의 연(然)자를 사사로이 불타오를 연(燃)자로 고친 나”하고 문학과 인생에 대한 호언을 적은 자기소개서가 사뭇 인상적이였다.   선배와의 관계가 더욱 도타워진것은 95년경 연변일보 문예부 기자로 뛰던 시절 선배와 인터뷰를 가지면서부터였다. 그때 문예란에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라는 제명으로 류연산, 최홍일, 우광훈 세작가들을 묶어 인터뷰를 하게 되였다. 그때 나는 류선배가 우리민족의 력사를 소급하는 글들을 본격적으로 써보련다는 작가적 립지에 대해 알게되였고 그로부터 불과 몇해뒤에 그의 대표적인 기행문 “혈연의 강”이 세상에 나왔다.   그후 류선배가 편집을 맡았거나 기획한 “아리랑”문학상과 흑룡강신문사 “한얼”패 문학상을 내가 거듭 수상하면서 나는 류선배와 자연히 문학선후배의 도타운 관계로 우정을 쌓아갔다.   그동안 류선배의 작가생활은 가히 폭발적이였고 휘황했다. 작품을 발표하는 족족 이슈가 되였고 많은 애독자를 모았다. 잦은 발로 뛰고 방대한 자료를 추려낸 작품들은 어느것 하나 허투로 다루어진 작품이 없어 다작(多作)이지만 들쭉날쭉 없이 고른 성취를 보여주었다. 우수한 작품일수록 사회증언적 가치도 풍요하다는 문학사회학의 명제를 그의 작품들은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문학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져 문학을 미련없이 버리고 있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는 지금의 풍토에서 누구도 해낼수없는 함량이였고 무게였다.   나의 첫 작품집은 류선배에 의해 묶어져 나왔다. 1990년대 국문이 열리면서 온 사회는 출국붐에 들떠있었다. 그에 따른 불협화음과 진통도 컸다. 일부 몰지각한 일부 한국인들에 의해 중국전역에서 무려 3만여명이 3억이라는 막대한 사기피해를 당했다. 어느 하루 류선배가 나를 차집에 불렀다. 차집에는 류선배외에도 초면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몰골이 꾀죄죄한 그 사람들은 바로 사기피해의 덫에 치여 인생이 쑥밭이 된 불운한 피해자들이였다. 그들은 류선배의 작가라는 신분을 알고 그의 손목을 감쳐 붙들고 넋두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날 류선배는 나에게 특종기사감이라며 사기피해문제에 관한 글을 써볼 의향이 없냐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신이 수집해두었던 피해자들의 고소서와 배경자료들을 한 가방 가득 나에게 넘겨주었다. 글재주도 재주겠지만 민중의 대변인인 기자의 신분으로서의 내가 쓰는것이 가장 합당하다는것이였다. 류선배의 지지와 청탁에 등을 밀려 나는 이 엄청난 작업에 언감 필봉을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여동안 수십곳을 돌고 수백여명을 만나면서 한국인사기행각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추적해 보았고 드디여 “코리안드림”에 흔들리고있는 우리의 공동체 사회를 진맥하는 장편르포를 펴내게 되였다. 류선배의 진지한 청탁과 성원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장편기사를 채 마무리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라는 제명의 장편르포는 “청년생활”지에 1년간 련재되였고 그후 류선배의 기획, 편집으로 단행본으로 묶어져 나왔다. 당시 조선족사회의 최대열점을 건드린 이 장편르포는 그해 “청년생활”화연문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흑룡강신문사 “한얼”표 실화문학 대상을 몇해후에는 또 자치주 최고문예상인 “진달래” 문예상도 거듭 수상했다. 또한 이 르포집은 피폐한 오늘의 출판풍토에서 무려 5천여권이 팔리는 전후무후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두번째 작품집 “천재 죽이기” 역시 류선배에 의해 나왔다. 당시 류선배는 추락하고있는 문학의 가치와 위상에 대해 통탄해 했고 총서 “아리랑”의 명맥을 이어나가는데 고심하고있었다. 해마다 발간되는 “아리랑”의 몇부를 할애해서 작가들의 작품집을 찍어주는것이 어떠냐 하는 나의 제언에 류선배는 무등 기뻐하며 좋은 아이디어라고 거듭 칭찬해 주었다. 나의 이 제언은 인차 수납돠여 그후 많은 작가들의 작품집이 류선배에 의해 기획, 출판되였다. 그중 나의 중편소설집도 가장 나이 어린 작가로 그 계렬에서 출판되였다.   그 무렵 나는 여의치 못한 운명의 굴레에서 내내 신음하고있었다. 강보에 버려져 남의 집 수양아로 자랐고 박봉에 매달려 사는 청빈한 작가의 쭉줄린 신세라 혼인이 깨여져 버린데다 양모는 나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덜컥 출국해 버렸다. 그리고 출국하여 불과 3년이 못되여 양모는 나와의 일체 련락을 끊어버렸다. 나는 문자그대로 혈혈단신 무주고아가 되여 버렸다. 무정한 양모였지만 그동안의 길러준 정도 있고 또한 유일한 의탁이였기에 꼭 찾고싶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나가는 류선배에게 양모를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친척에게서 겨우 알아낸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류선배는 수소문하여 인천에서 나의 양모를 찾았고 어렵게 만났다.   귀국하여 류선배는 선참 나를 찾았다. 지금의 중앙소학교 부근의 “소수레” 다방. 류선배는 퍽 안쓰러운 기색으로 나를 지켜보다가 무겁게 말머리를 떼였다. 이제 양모는 나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절교를 표했다고 했다. 대신 양모에게 나대신 욕을 삼태기로 먹었다고 했다. 양모는 달랑 천원을 내게 넘겨주고 나와 절교해 버렸다. (그후 한국에서 10여년을 지내다 귀국해 불과 몇달만에 끝내 나를 만나주지 않고 내 가슴 가득 유감만 남긴채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내 신변에서는 류선배가 나의 양모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였다. 그날 의기소침한 나를 배동해 류선배는 밤늦게 까지 못마시는 술을 억병으로 술을 마셨고 나의 울음과 하소연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험난한 인생을 헤쳐나갈 용기를 내고 힘을 내라며 따라주던 그 따뜻한 술 한잔의 진미를 잊을수 없다.   일가친지 없는 내게는 오로지 문학이, 그리고 이 길에서 함께 하고있는 후배문학도들이, 내 삶의 의탁이자 의지였고 전부였다. 북대시장부근, 루항(陋巷) 의 맨끝에 자리잡은 월세 100원짜리 나의 세방집은 그 무렵 문학도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운집해드는 짜장 “문학 구락부”였다. 지금도 문학을 그 무엇보다도 우위에 놓고 일심으로 문학의 도정에서 열심히 달리고있는 시인 H며 소설가 L며 모두가 우리집에서 몇해동안 교우하며 지냈다. 모든 세상사를 문학인의 빈약한 홀로의 어깨로 짊어져야하는 무게와 무원조라는 그 처연함으로 오는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일상화가 돼버린 매일같은 음주는 나의 신체를 극도로 쇠약하게 만들었고 어느 날 나는 목욕하고 돌아오다  나는 그만 길가에 쓰러져버렸다. 병원으로 가야했는데 주사약 뗄 돈조차 없었다. 곁에 있는 문학을 빼고는 또 문학밖에 모르는 후배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나보다도 빈약했다. 랭기도는 세방집에 나를 눕혀놓고 어쩔바를 모르고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고 류선배가 들어섰다. L가 황급한 나머지 류선배에게 알린것이였다. 온 집안에 침구 하나밖에 없고 대신 바람벽을 에돌며 토담처럼 쌓여있는 책더미와 생기잃은 문학후배들의 부연 얼굴을 보며 류선배의 만감이 교차하는 큰 한숨을 지었다. 어서 병원에 가라고 독촉하며 200원의 현찰을 내놓았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펄펄 날리는 눈발속에서 한숨을 허연 입김으로 날리며 고개돌려 배웅하러 나온 우리들을 연신 돌아보던 류선배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려운 처경이였지만 문학은 나와 후배들에게 힘든 생활을 견디게해주는 버팀목이 되였다. 그해 나와 함께 했던 H와 L가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시부문상과 소설부문상을 동시에 유일하게 수상했고 Z가 연변일보 생활수기 상을 수상해 우리는 하늘 같은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잔혹한 운명은 오직 나만을 조준해 치명적인 직격탄을 날리는것만 같았다. 40대에 들어서던 첫해 어수룩한 일 어수룩한 사람들에 휘말려 일조일석에 번개를 맞고 나는 직장마저 떼우고 한지로 쫓겨나야 했다. 나의 생활의지로 꿈틀이던 력동적인 잔등에 사정없는 발길질을 해 천길나락에 처넣은 누군가가 아니라 뻔뻔한 등짝을 가진 나자신이 부끄러운것을, 누구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박복해 그렇게 되고만 내 인생인것을, 그누구도 아닌 다름 아닌 나 자신이 미숙하고 부끄러움투성이임을 깨치며 나는 사회와 담을 쌓고 몇해고 서재에만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자숙하며 다시 감사를 배우며 성찰의 눈을 벼리며 돌아온 길을 돌이켜보는 동안 나는 그 굽이에 류선배가 자주 서있었다는 생각을 뒤늦게 가지게 되였다. 그동안 대인기피증 증세까지 보였던 나를 류선배는 여러 번 불러주었고 때때로 메일을 보내여 위무와 격려를 그냥 주었다. 읽은 메일들을 금방금방 처리하는 결벽에 가까운 성미의 나였지만 그 고마운 메일편지만을 나는 보관함에 지금까지 그냥 저장해 두었다.   김혁선생 축하하오. 윤동주를 소설화하련다니 참으로 기쁘오. 누구도 하지못한 윤동주를 형상화하는 작업은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일이요. 이 작품이 꼭 성공되리라 믿고 당신의 창작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될 것이라 믿소. 6월 4일 한국에서 오는 길에 북경에 들려서 민족출판사하고 하나의 기획을 짜보았소. 조선족 인물 20명을 선정하여 평전(혹은 전기) 식으로 집필하는 것이오. 집필진으로 몇몇작가들을 잠정했소. 당신은 윤동주 외에 언젠가 말했던 석희만과 한락연 그리고 한 둘을 더 맡으면 좋겠소. 아주 어려우리라 믿소. 그런중에서도 많은 글을 써내는 당신이 자랑스럽소. 아마도 김혁이는 이승 보다 저승에서 더 빛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누만. 하지만 고진감래라고 오라지 않아 김혁이의 앞날에 탄탄대로가 열리리라고 믿소.   - 2008년 6월 19일 목요일   김혁선생 새해 건강하고 좋은 성취 기도드리오. 고난은 바울에게 있어서 성공의 디딤돌이였듯이 오늘날 당신은 시련을 겪고 그 시련속에 큰 작가로 성장하고있다고 생각하오. 당신의 문학적 성취는 력사적 평가를 받기에 충분함을 잊지 말고 힘을 내오. 가내 평안을!!! -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김혁선생 지난 달 29일 한국 갔다가 14일 돌아왔소. 한국 생활건강(암)연구소에 다녀왔소. 약방문과 식단을 받아왔소. 상해 중산병원에서 십이지장과 담낭을 떼여내고 위도 3분의 1을 제거했을때 나는 이미 모든 각오가 되여있었소.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소. 하나님께서 나한테 다른 작가들은 체험하지 못할 귀중한 생활을 마련해주셨음을 감사했소.   그리고 복지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병상수기를 썼소. 현재 2부까지 끝났는데 4부로 마감하려 하오. 세상에 암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수기가 그들한테 힘이 되고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오. 나는 수많은 분들이 나를 이처럼 아껴주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행복을 느꼈소. 세상은 사랑으로 넘치오. 수술을 하고 개복하면서 나는 모든것이 경이로움을 체험했소. 그리고 지금부터의 나의 삶은 모든 이들의 사랑으로 얻은것임을 실감하였소. 덤으로 얻은 여생을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하오. -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그 때때로 전해오는 메일 몇통이 나락에서 헤매고있는 나에게 전화 한통 주는데조차 린색한 다른 메마른 무관심의 인정들에 비해 얼마나 따뜻한 위무가 되였는지 모른다.   지난 여름, 악착같은 병마에 시달려 몰라보게 변한 선배를 만났다. 그런데 늦게 나타난 나의 손을 부여잡고 한 선배의 첫마디는 “몹시 어려울턴데 별 도움도 주지못하고…”였다. 당신의 육신이 병마에 한겹 한겹 뜯기여 가면서도 선배는 후배의 처경을 아파하고 계셨다. 나는 돋솟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고 환자앞에 못난 눈물을 보일가봐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제 선배는 저 하늘의 별이 되였다. 무기력하고 못난 이 후배가 남아서 할수있는 일이 선배의 안식을 기원하는것뿐이라는 무력감앞에서 허탈감과 막막함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잔혹한 내 운명이 처처에서 내 육신을 쓰러뜨릴때, 본능적으로 누구에게라도 제 감정을 엎지르고 싶은 마음이 북받칠때 찾곤했던 선배, 메일로나마 내 쓰라린 심경을, 내 기쁨과 고뇌를 때때로 전하고 싶었던 선배, 이제 그 메일을 쓸 자그만 안도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건가? 그 사람좋은 웃음도 그 소탈한 유머도 그 력동적인 모습도 이제는 못보고 못듣게 된걸가? 이제 우리는 그를 영영 잃은것인가! 선배에게로 향한 그렇게 쓰고 싶은 메일편지를 하늘 길 열고 보낸다. 나에게는 이제 영원(永遠)으로 통하는 이메일 주소가 하나 더 늘었다.   민족사를 제대로 정립하려는 그 막중한 책임과 제자리를 떠나 비틀어져있는 세상의 서툰 물정과 만취상태의 비틀거림같은 문단의 오류를 어쩌려고 이렇게 빨리 가시는것인지? 대신 할수없는 선배의 빈자리는 오래 우리를 불안하게 허탈하게 만들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타계가 특히 안타까운것은 어쩌면 문학에서도 자기 령역을 공들여 지키는이가 드문 시대가 되였다는 그 점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선배는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겨 놓았다. 그를 애도할수 있는 길은 다시 그를 읽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 싸인해 준 그 책들을 서가에서 꺼내 다시 책상 앞에 쌓아놓았다. 많이 함께 했지만 어쩌면 류선배와 남긴 사진은 거의 모두가 집체 합영이고 단둘이 찍은 사진은1996년경, 한국의 언론인들과 모인 자리에서 남긴 사진 한장뿐이였다. 그때 기자가 플로라이드(卽席寫眞機.  사진을 찍으면 그 자리에서 인화되여 바로 나오는 사진기.) 사진기로 우리 둘의 모습을 담았다.  즉석에서 나오는 그 사진에 나도 류선배도 무척 흥취를 보였다. 사진이 툭 떨어져 나오자 류선배는 사진을 손에 꼭 품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따뜻하면 사진이 빨리 인화되여 나온다는것이였다. 화선지에 묵향이 번져나가듯이 트럼프장만한 사진종이에는 우리 두 사람의 실루엣이 요술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그 단 한장뿐인 사진은 내가 간직했다. 세월이 흘러 사진이 누렇게 바래여지자 나는 덴겁히 스캐너 해 두었고 나의 블로그에도 올려 놓았다. 사진속의 우리는 조금 젊은 모습, 그리고 유난히도 형형한 눈빛으로 함께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지지리도 춥던 1월 24일 연길 북산에 있는 경도릉원 장의관에서 선배를 보냈다. 남들처럼 흥감스럽게 표나게 고인을 추모할 처경도 면목도 없는 나는 그냥 구석쪽에서 검은 마스크로 부끄러운 얼굴을 가린 위축된 모습으로 선배의 령정만 지켜보고섰다.   눈물 가득 고인 눈동자에 나는 선배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인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 뜨거운 손을 얹었다. 빨리 인화되라고, 낱낱이 그리고 뚜렷이 인화되라고. 플로라이드 기능처럼 우리의 가치나 인정이 일회용으로, 즉석용으로 그치고 있는 요즘 세월이지만 선배님의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민족에 대한 사랑, 올곧게 날이 선 그 정신은 내 가슴속에 또렷이 그리고 오래오래 각인되여 있을것이다.   류형! 오, 플로라이드 사진속의 류형!   “연변문학” 2011년 2월호        
211    신들리게 그리고 현묘하게 댓글:  조회:3404  추천:37  2011-02-10
. 단상 .   신들리게 그리고 현묘하게   김 혁     어느새 루항(陋港)의 맨 구석에 고독하게 죽치고 앉은 내 서재에도 신묘년의 해빛은 토끼꼬리처럼 짧게 하지만 앙증맞게 들어와 앉았다. 지난 한해는 걸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소설화하는 작업으로 한해를 담금질 했다. 고된 작업이였지만 권위문학지에 련재해 호평을 얻었고 한민족 모두가 애대하는 인걸의 생애를 처음으로 픽션화해서 마무리했다는 뻐근함으로 충실했던 한해였다. “하늘 우러러 부끄럼없는 시인”의 생애에 긴긴 각주(脚註)를 달고난 끝에는 “주마가편” 자치주 초대주장 주덕해의 생애를 아이들의 시각에 맞춘 청소년 위인전기의 집필에 달라붙었다. 이제 집필을 막 끝내 3월에 곧 출간되게 된다. 한해가 가고 오는 수선스러운 문턱에서 서둔 까닭은 올 3월이 우리의 “대부”격인 주덕해주장의 100주년 탄신일이고 그들이 판 우물을 마시고 있는 자치주의 한 일원으로서의 “우물 판 이들을 잊지말아야겠다”는 량지와 사명감때문이다. 근년들어 나의 창작의 필봉은 많이 바뀌였다. 픽션작품을 흥감스럽게 펴내던 나의 필봉은 요사이 논픽션으로 치우쳐 민족사에 자취를 남긴 걸물들의 일대기와 함께 하고 있다.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한 시대와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보면서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한다는 판단에서이다.   새해에 나의 필봉은 또 하나의 인물과 만난다. 저명한 화가이자 중국조선족의 첫 공산당원이며 반파쑈투사이자 고고학자인 한락연의 파란만장한 삶을 조명하는 평전의 집필에 착수, 이미 “예술세계”지 새해 첫 호부터 련재를 시작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문화대혁명 발발 45주년, 세상과 인간의 다중성을 랭철하게 들여다보게하는 그 란장의 년대를 해부하는 중단편소설 몇편도 내놓으려 한다. 올해는 토끼의 해, 전래동화에 많이 등장하는 토끼는 명석한 두뇌를 활용하여 앞을 미리 예견하며 자신의 행보를 미리 구상하는 치밀한 동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엽렵하게 사는 이들은 얼마나 될가? 늘 란마(乱麻)처럼 얽히고 설킨 관계속에 허둥대면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면서 살아갈뿐. 때문에 삶에는 모법답안이 없다. 그리고 문학창작에도 소위 걸작이나 모범작이 없다. 오직 진정성을 가지고 어떻게 쓰냐가 문제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세상의 조롱과 미혹에 시달리는 내게는 나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줄 그 무엇이 갈급하다.  바로 문학이다. 경쟁력과 생산성에 휘둘리우고 모든 가치가 환금성으로 계산되는 요즘 사회에서 작가들은 그 위상이 납작해 졌다. 힘들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남들의 시선에 나는 아직도 밥그릇도 못챙기는 헛똑똑이 어리석은 작가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치속에서 나는 어리석지 않다. 그리고 나는 끝끝내 지키고 싶고 지키고있는 나만의 세계속에서 누구보다 큰 부자이기때문이다. 그렇게 진정성을 가지고 큰 글을 쓰고 싶다. 시대에,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걸물들의 깊은 사상과 력동적인 몸짓을 적어내려가며 그렇게 령혼의 울림이 있는 호흡이 긴 글을 쓰고싶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닌 항상심(恒常心) 하나 가슴에 품고 길을 가련다. 토끼처럼 지혜론 시선으로 멀리를 보며 세상사를 섭렵하는 신풍이(神风耳)를 쫑긋이며 작은 보법이나마 부지런을 떨며 가련다.       신묘년 이 한해- 신들리게 그리고 현묘하게…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210    내 가슴속에 웅크린 코끼리를 만나러 댓글:  조회:3147  추천:38  2011-01-27
. 2005 연변문학"윤동주 문학상" 수상작품 "불의 제전" 창작 후기 .   내 가슴속에 웅크린 코끼리를 만나러  김 혁        (1)       판타지 작품 한편을 습작해보았다.  우리 작가와 독자들에게는 어딘가 낯설은, 이른바 판타지란 영상, 상상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우리의 경험 현실과는 다른 시공간에서 초자연적 존재들에 의해 펼쳐지는 초자연적사건을 다루는 일종의 가상소설(假想小說)과 같은 쟝르문학을 가리켜 말한다.  19세기말, 네즈비트라는 작가가 환상적인 아동문학작품을 발표하면서 마술적이야기라는 뜻에서 처음으로 판타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국에서는 썩 오래전에 판타지의 독자적인 뜻이 인정되여 문학의 최고형식이라 불리는 동화와 함께 문학적으로 성숙되여왔다. 20세기후반에는 특히 아동용 환상이야기를 전승문학으로부터 구별하는 쟝르로서 쓰이고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성인을 위한 동화인셈이다. 지금 세계는 판타지작품에 열광하고있다. 그 정상에 오른 작품은《해리 포터》와《반지의 제왕》이다.  《해리 포터》는 영국에서 출간된 이래 전 세계 46개 언어로 번역돼 1억 2천만권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세계 각종 상을 휩쓸었고, 영국 최고문학상인 웨트브레드상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셔머스 히니와 각축을 벌린끝에 한표차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작가인 30대의 아기엄마 조앤 K. 롤링은 명가의 덤에 올라 권위지가 선정한 세계저명인사 100명중 25위를 기록했고, 녀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을 수여받았다. 《해리 포터》의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어른용까지 출간됐을 정도다.  남아프리카의 작가 톨킨이 창작한《반지의 제왕》도 출간된후부터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지 않는것은 용서될수 있지만, 소설의 독자들이 을 읽지 않는것은 용서될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각종 영미문학 걸작 25위, 20세기 최고의 소설 4위, 100권의 책 4위 등의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미 전 세계 10억명 이상의 독자가 《반지의 제왕》을 읽었다. 딱히 영미권에 살고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판타지애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접할만한 시대를 초월한 명저이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은 여러가지로 다른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 두 작품 모두가 판타지작품이라는 점에서 판타지라는 쟝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시키고있다.  이러한 세계를 강타하는 붐에도 무감각한 우리 문단에 얼굴 붉히며 늦깎이로나마 한편 만들어보았다.  기실 판타지는 서방의 전용물만이 아닌것 같다. 중국의 고전들인 《서유기》, 《봉신연의》, 《료재지의》등은 그 지칭(指稱)이 다를뿐이지 같은 범주의 작품이라 본다.  첫 판타지를 만들면서 박래품에 대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으려 애썼다. 북유럽권의 판타지 베스트와  중국고전의 장점을 두루두루 따서 그리고 풍부한 유산인 우리의 민속풍토를 많이 차용해서 이 쟝르의 첫 습작에서 보이는 모자람의 틈새를 메우고 우리 특색의 판타지를 만들려 시도해보았다.     (2)          한비자(韓非子)에서 나오는 얘기인데… 옛날 중국에는 코끼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코끼리를 보고싶은 소망이 간절했지만 그게 어려워서 어디선가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다 보면서 코끼리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로서 사람들이 마음으로 상상하는 근거가 되는것은 모두 상(象)이라고 했고 상상(想象)이란 말은 이렇게 되여나오게 되였다고 한다.  때로는 환상이 실제보다 현실을 더 잘 드러낸다. 대개 상상이란 길잡이를 통해 전개되는 환상이야기는 세태를 과장하거나 현실에서는 있을법하지 않은 가상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세계는 우리의 직접적인 현실의 한 측면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보이고있는것이다. 창작이라는것이 그런것이 아닐는지. 결국은 내가 공상하고 상상하고 추상하는 이미지의 구현인것이다. 이러 저런 현답들이 많을테지만 결국은 이 상(象)이란 글자안에 담겨져있는게 아닐가싶다.  (3)   어느 한번, 문학도 몇몇이 나보고 선생님은 여러가지 쟝르를 다루고있는데 그중 한가지만 선택이 주어졌다면 무얼 택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나는 두말없이 동화를 쓰겠다고 대답한적 있다. 그리고 나의 문학을 정리해야 할 그때가 오면 모든 쟝르를 접고 동화창작에만 몰두할것이라고 했다.  뛰여난 상상으로 독자들에게 크나큰 즐거움과 황홀한 미감을 주는것이 바로 동화의 문예적특성과 우수성이다. 공상적이면서도 가능성을 지닌 미적표현을 통하여 인간 일반의 보편적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시에 가까운 산문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훌륭한 쟝르에 대한 애착이 점점 깊어진다.  문학의 원형이라 말하는 체험을 토대로 작가는 작품세계를 형성해간다. 그러나 상상의 활동을 통해서 작가의 그 체험이 비로소 보편적인 확대와 효력의 힘을 얻을수 있다고 볼 때, 이러한 표현방식이야말로 과학적인 개념과 대응되는 이른바 문학의 궁극적인 단위가 아닐가.  오늘도 내 무거운 머리통에 날개를 달아본다. 그리고 떠난다. 저 멀리서 귀를 흔들며 상아를  빛내이며 뚜벅뚜벅 거닐고있을, 내가 찾는 궁극의 령물― 《코끼리》를 만나러…    
209    향토작가 김창걸 댓글:  조회:3518  추천:28  2011-01-11
  . 인물 다큐 .   향토작가 김창걸   김 혁   스튜디오, 사회자: 중국 조선족문학은 조선족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스란히 그려낸 장엄한 화폭입니다. 100여년의 민족이주사와 함께 펼쳐진 그 화폭에는 우리 중국 조선족문학을 이루고 게으름없는 작품창작과 문학활동으로 중국 조선족문학사에 빛나는 페이지를 남긴 문인들의 얼굴이 비껴있습니다. 매양 그 화폭을 접하게 될때마다 우리는 일찍 자신의 심혈을 다바쳐 그 화폭에 일획을 그으신 문학의 거장들을 경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김창걸단편소설선집”을 들어보이며) 오늘 소개하게 될 조선족의 저명한 소설가 김창걸 선생님이 바로 그 중의 한분이십니다. 장재촌 풍경 (내레이션):    룡정시 지신진 장재촌은 김창걸선생의 고향이다. 장재촌은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많이 알려진 명동촌과는 삼합으로 가는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2리쯤 상거해 있다. 장재촌으로 가면 륙도하 기슭에 하얀 비석 하나가 유표하게 보인다. 바로”김창걸문학비”이다. 문학비는 룡정시문학예술계련합회, 연변대학조선언어학부, 한국한민족문화연구소에서 2000년 8월 3일에 김창걸선생에 대한 경모의 정을 담아 세웠다. 김창걸선생은 1936년 1943년사이에 단편소설 20여편을 발표했는데 그중 “암야”가 대표작이다. 대리석을 다듬어 세운 문학비 정면에는 “암야”의 한글귀가 새겨져있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의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쳐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무용장면, 암야의 대표적인 례문 랑독: …”인간의 칠십은 고래희인데 요렇게 살려고 태여를 낳는가?…” 어쩐지 노래를 불러도 신통치 않다. 어릴 때 김참사집 머슴 영돌이가 부르던 노래는 그렇게도 신이 나기에 따라다니며 졸라서 듣군 했는데 나는 아무리 그처럼 부르려 해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아마도 내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떴기때문인가보다. 만일에 지금이라도 고분이가 바구니를 끼고 나물캐러 와서 내 노래를 들어준다면 더 신이 날는지 모르지만 봄은 이름뿐이고 아직 풀싹도 돋아나지 않았으니 벌써 나물캐러 나설리 없다. 흥, 왜 하필 이때 이 땅에 가난뱅이로 태여났는가? 스물두살 먹도록 장가도 못가는 주제에 왜 사내로 태여는 났는가? 생각하면 모두다 귀찮다. 나는 베던 나무춤도 거둘 생각이 없이 일어서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옹지종기 쓰러지는듯한 오막살이들이 열댓집 늘어선 우리 마을에서는 최령감네 집만이 호기있게 뻗대는듯하다. 논이라고는 구경도 못하는 산골, 만주는 눈이 모자라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이라더니 하도 떨어질데가 없어 십년을 앉은자리에서 산골놈이 되고마는가! 생각하면 통분한 일이지만 고분이가 사는 동네이니 나는 떠나고싶지는 않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을 흘린다더니 참으로 그렇긴 하다. 남풍은 분명히 남풍이련만 오장륙부가 으스스 떨리고 눈에선 매운 눈물이 똑똑 떨어진다. 남의 눈을 도적하며 한가지 두가지 발등에 얹으며 베여놓은 나무춤이언만 삽시에 바람에 다 불려서 날려가고만다. 그러나 나는 한가지 두가지 흩어진 나무가지를 모으고싶지는 않다. 내 눈에는 분명 고분이가 보이지 않는가! 저 최령감네 집 울타리밑 우물에서 물동이를 이고 담모퉁이를 돌아서 가는것은 확실히 고분이가 아닌가. 자주저고리에 검정치마, 최령감네 울타리높이와 물동이 꼭대기가 거의 같지 않은가! 내가 일년내 두고두고 얼마나 눈여겨보았기에 빗보았을리 있는가. 그리고 삼단 같은 머리채도 바람에 하늘거리지 않는가! 그래도 처음엔 혹여나 잘못 보지나 않았을가 해서 오른손으로, 바늘로 쏘는듯한 매운 바람을 막으며 한참이나 서서 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가 그 물동이 임자는 고분이 집 찌그러진 부엌문을 열고 다리를 굽혀 키를 낮추어가지고 들어가지 않는가! 고분이와 나는 왜 빨쥐(박쥐)처럼 낮에는 꼼작못하고 밤에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박쥐의 신세도 될수 없는 운명이라면 모르겠으나 버젓하게 대낮에 서로 좋아하지 못하는것은 아무래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밤에만 만나서 좋아하는 고분이래도 나는 조금도 고분이를 잊을수 없다. 지금 잎나무는 벤다고 해도 고분이의 생각만이 머리에 간절하다. 고분이의 낯은 왜 웃을 때면 량쪽 볼에 쌍우물이 폭 패이는지, 그러니 나는 죽을듯이 미칠수밖에 없다. … … … … 스튜디오, 사회자: 학계는 김창걸선생에게 “연변땅을 토양으로 자라난 첫 향토작가이며 평생을 이 땅의 인민들과 운명을 같이 한 우리 문학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이다.”라고  큰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김창걸 문학비앞, 리광일: 김창걸선생님은 1911년 12월 생, 원적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26년 3월 룡정은진중학 입학했고 1927년초 대성중학 전학했다가1928년 가정난으로 중퇴하게 됩니다. 농사, 야학교원, 혁명활동을 하면서 조선 서울, 관북지방, 중국 북부지방, 쏘련 연해주 등지를 편답하였습니다.   1934년 귀향하여 소학교원, 회사사무원등 직을 지냈습니다. 1936년 처녀작으로 단편소설을 내놓습니다. 1943년 를 쓰기까지 8년 간 무려 20여편의 소설을 창작하였습니다. 1943년 등이 일본어판으로 바뀌자 를 쓰고 붓을 놓았습니다. 1949년 연변대학이 창립되자 조문학부에서 교단에 섰으며 1950년 소설을 쓰면서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1950년부터 선후로 연변문예연구회 문학부장, 연변문련 부주석직을 력임하셨습니다.   주요작품:으로는 해방전”무빈골전설”,”암야”등 수십편. 해방후 “새로운 마을”,”행복을 아는 사람들”등 수십편. “김창걸단편소설집”(해방전편) 이 있으며 번역작품으로는”시경”,”홍루몽”등과 공동편찬으로 “한조사전”,”조선어속담사전”등이 있습니다.   스튜디오, 사회자: 김창걸 선생님은 일찍 위만주국시기부터 룡정의 장재촌, 명동촌을 무대로 문학창작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조선이주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깃들어있습니다. 땅 없고 힘없고 돈 없고, 모든것이 없는 사람들, 있는것이란 서러움뿐이지만 그래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겹습니다. 단편소설「암야」를 보면 바로 가난이 청춘남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짓밟히는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창걸의 작품은 그렇게 비극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주인공 명손이는 결국 사랑하는 처녀 고분이를 데리고 ‘암야’를 헤치며 ‘광명’을 찾아 나아갑니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중국 조선족 이주민들의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때문입니다. 북경 호텔, 장춘식:   지금까지 김창걸의 작품을 론의할때 거의 모든 론자들이 “암야”를 김창걸의 대표작으로 꼽고있고 또 해방 전 조선족 소설창작의 가장 큰 성과작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갈등을 이룬 량대 세력이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으로 되여있다는 점, 즉 계급적 대립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나갔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양복쟁이신사보다도 보리마당질에 보리거스러미를 잔뜩 뒤집어쓴 내 얼굴이 고분이에게 더 좋은 것은 회박을 뒤집어쓴 거리계집보다도 보리방아 찧고 보리겨를 담뿍 쓰고 나온 고분이 얼굴이 나에게 더 어여쁘고 더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뾰죽구두 짜리에게 장가 못 갈 것이나 고분이가 양복쟁이한테 시집 못 갈 것이나 마찬가지 신세이긴 하다. 그러니 촌사람은 촌사람끼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가 늘 좋은 법이다.” 이는 이 작품의 주제를 분석할 때 흔히 인용되는 예문입니다. 작품의 주제의식을 형상적으로 잘 표현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작품에서는 그러한 갈등을 주인공인 명손이라는 시골 젊은이의 시점에서 고분이라는 처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과 관련시켜 전개시킴으로써 보다 리얼리티를 획득하고있다. 이러한 분석은 다수의 평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매매혼인이라는 사건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즉 고분이는 빚 때문에 외통눈이 남가가 아니면 나이 오십에 아들이 없어 소실로 고분이를 사려는 윤주사에게 팔려가야 할 운명입니다. 최령감네 빚을 변리까지 일백오십 원 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최령감은 딸을 팔아 부자가 되였기 때문에 그에게서 얻은 빚은 도무지 미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응, 네놈의 딸은 궁녀더냐, 선녀더냐, 대감집 규수더냐? 이놈아, 내 돈도 딸을 팔아 모은 돈이다. 네 자식만 딸이더냐? 나두 다리 저는 놈에게 후실루 딸을 줄 때에는 생각이 좋지 못했다. 내 딸은 썩은 호박새낀 줄 아느냐?” 이것이 최령감의 빚을 갚지 않으면 안된 이유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 민족 이주민들이 간도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얼마나 가슴아픈 대가를 치렀는지를 보여준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최령감은 자신의 지난날의 아픔을 또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전가(轉嫁)시키고자 합니다. 여기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간의 갈등이 다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밤이 밝으면 빛나는 대낮이 되듯이 나와 고분이와의 앞길에도 이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밝은 해발이 비쳐주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나는 어두운 이 밤길을 빨리하였다.” 이는 「암야의 결구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성호는 “특히 소설의 주인공 청년 남녀의 야간도주는 비록 그것이 소극적이고 자연발생적이기는 하지만, 그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부정(否定)하고 현실극복의 자세와 저항적 의지를 표명함에 있어서는 커다란 문학적 의의를 산생시킨다. 그리하여 작자는 야간도주를 하고 있는 그들의 앞길에 밝은 미래를 제시하였던 것이다.”고 평가하고있다. 대체적으로 정확한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정제된 묘사와 형상적인 인물표현으로 그리고 함경도사투리의 적절한 사용 등 측면에서도 “암야”는 해방후 우리 소설문학에 중요한 모범이 된 작품입니다.   장재촌 모습 (내레이션): 김창걸 선생은 조선족 문단에서 '향토작가'라고 불리고 있다. 그의 소설적 특징 이 바로 조선인의 인정 세태와 풍속 습관 등을 잘 그려내고 있기때문이다. 사회적 배경과 자연의 풍광을 묘사한 부분을 살펴보면 그의 향토 작가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선바위 앞에 드러누운 황무지속의 밭뙈기, 우비우비 파고 심은 곡식, 팔뚝 같은 강냉이 이삭, 베개 같은 감자들에 대한 묘사는 사회적 배경과 함께 땅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관심을 함께 잘 표현해내고 있는것이다. 사진속 김창걸의 모습 (내레이션) 김창걸 선생은 시종일관 사실주의적 창작방법에 충실하면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애정 그리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락관인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또한 당시 우리 민족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소재로 하였으며 동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작가적 안목과 함께 예술적 형상미를 지닌 작가로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스튜디오, 사회자: 지난 100여 년의 력사 속에서 중국 조선민족은 근면으로 자신들의 삶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랑할만한 우리 조선족문학도 이루어 냈습니다. 오늘날 중국 조선족문학은 그 지역적, 력사적 특수성으로 중국문단과, 한반도 문학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으며 그 의미가 더욱 새로워 지고있습니다. 따라서 김창걸 선생님과 같은 문학의 선각자들이 피워 올린 꽃은 오늘날에도 그 향기를 잃지 않고 더욱 큰 꽃망울로 더욱 짙은 향기로 만개될것입니다.   연변위성TV 종합문화프로 “두만강” 제3회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208    “불의 제전” 수상소감 댓글:  조회:3166  추천:37  2011-01-06
     
207    [소설가가 쓴 시- 6] 신묘년을 위한 소네트 댓글:  조회:2524  추천:34  2010-12-31
      신묘년을 위한 소네트   김혁   계수(桂树)아래 방아찧던 풍요로운 그 토끼가 거북이와의 경주하던 우담(寓谈)속 그 토끼가 신풍이(神风耳) 떠인 신묘한 그 토끼가 앙금앙금 온다 발면발면 온다 깡충깡충 온다   목차를 끝낸 병인년은 호랑이 얼룩진 옛말로 사라지고 신묘년의 꽉 찬 달이 새해의 들머리에 두둥실 방점을 찍는다     "종합신문" 2010년 1월 3일      
206    중국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댓글:  조회:3590  추천:25  2010-12-28
[한국 방송대문학상 평론부문 가작]   일상사로 끌어안은 문혁의 폭력   이새아 (방송대학 국문과 4학년)     1. 중국 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김혁은 조선족 문단 내에서 이미 중단편소설 70여 편, 장편소설 2편, 시, 수필 300여 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유명한 중견작가이다. 여기에서 잠깐 ‘조선족’, ‘조선족 작가’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조선족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담론들 ‘예를 들어 제2의 보모, 민족적인 동질성, 조선족을 이용한 여러 사기행각, 값싼 노동자로서 인식 등이 있겠다’는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사실 중국 조선족과 남한의 우리는 그동안 ‘한민족’이라는 민족적 동질감 내지는 공통된 모국어의 사용이라는 이유로 인해 서로를 하나의 테두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명분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시각에서 출발된 여러 담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오해와 상처를 남기는 결과만을 낳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김혁이라는 작가의 이름 앞에 우선 ‘중국 조선족 작가’ 라는 이름을 붙여 ‘중국’이라는 그의 국가적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이 작품을 논하려 한다. 작품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의 국가적 테두리는 중국이고 또한 그는 중국의 근현대사의 정치적 질곡을 직접 경험하며 성장한 대표적인 세대이다. 또한 그의 조선족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은 김형규가 논하였듯이 ‘대등한 관계로 대립하는 국가(국적)와 민족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합이라는 전체와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는 소수민족주의의 관계하는 것이기에’이 작품은 중국문학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조선족 작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작품에 더해질 수도 있는 동정적인 시선들을 거두어들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작품이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작가인 김혁 자신의 자전적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김찬혁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똥파리, 엄상철, 짜그배누님, 회충, 앵무새, 김표, 사마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각각의 독립된 장으로 나누어 형상화하였는데 그들 모두는 ‘불확실한 우물과 불확실한 룡에 대해 불확실한 꿈으로 더듬던(프롤로그 중에서) 그 해 1976년을 보내었던 성장기의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주인공 김찬혁의 성장기는 작가의 삶과 많은 부분 겹쳐있다. 주인공 김찬혁은 체육부장을 위시한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그의 출생의 내막을 추궁하게 된다. 나의 닦달질에 못 이겨 어머니는 눈물 흘리며 드디어 내가 입양아라는것을 시인했다. 신분이 나쁜 나의 친부모가 운동 때 배겨내지 못하고 금방 태어난 나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지금의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우물곁에 병원이 있었고 그 병원에서 겨우 4근 3냥, 버러지 새끼 같은 강보의 나를 넘겨받은 것이다. (37면) 실제로 작가 김혁의 친부모 역시 문화대혁명 당시 지주, 교사와 같은 지식인, 수정주의자 등 성분이 나쁜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그로인해 자신의 자식에게 그 화가 미칠까 두려워 현재의 부모에게 그를 맡겼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문혁이라는 역사적 현장에서 이러한 비극들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그것은 작가인 김혁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비극, 그래서 비극적일 수도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김혁은 작품의 마지막에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현재의 근황을 전하면서 이 소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주인공 김찬혁은 밀린 공부를 하다가 신문사의 기자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작가 김혁의 현 직업도 신문기자이다.) 그리고 김찬혁은 ‘우리들의 어제 무훈담을 장편으로 펴내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무훈담이 이 작품을 뜻함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어렵게 결혼을 했던 상철형님과 ‘짜그배누님’은 이혼을 했는데 그 후 ‘짜그배누님’은 ‘한국령감때기’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식탐이 유독 심했던 ‘회충’은 위암말기로 죽었다고 전한다. 김찬혁은 현재의 거리에서 한국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다 잡힌 누님을 만나기도 하고 잡총구에 화약을 넣다가 폭발해서 실명이 된 김표를 안마원에서 만나기도 한다. 또 모택동 어록을 모택동보다 더 정확하게 앵무새처럼 외워대던 ‘앵무새’가 교회의 집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모두‘운명의 어느 한 시간대에서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블랙홀에 잘못 빠져들어 중력을 상실해버린 아이들’이었다고 주인공은 작품의 말미에서 회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먼지가 쌓인 흘러간 역사의 상처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로 지금의 상처임을 작가는 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신의 구구절절한 일기장을 꺼내듯이 문혁이 일상에 가한 쓸쓸한 회상의 편린들을 엮어 보여준다. 그의 어조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 속에서 벌여지는 어이없는 삽화들은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50년대 이후 반 우파 투쟁, 정풍운동, 대약진 운동 등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이미 그들이 살아가던 곳이 어떻게 황폐화될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일상화된 폭력 앞에서 그들의 저항은 삶의 터전 전체를 잃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다만 이제야 꾸덕꾸덕해진 스스로의 상처 위에 앉은 딱지들을 매만지며 그 시간들을 관통해온 그들의 현재의 삶이 이젠 안녕하냐고, 그래서 지금은 과연 괜찮냐고 묻는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도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한 자신의 상처에 대한 들여다보기. 바로 이 소설은 그 물음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2. 상흔문학의 새로운 길, 문화대혁명의 일상성을 확보하다.   문화대혁명(이후‘문혁’이라고 지칭함)은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로 뽑힌다. 1966년부터 1976년, 10년 동안 지속된 문혁의 정치사적 시각의 논의는 차치하고 문혁으로 인한 개인의 일상사와 인권의 파괴 양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맹목적인 충동과 유치한 리념이 너나의 심심을 얽동이던 세월이었다. 어느 한번 학교에서 투쟁대회를 벌렸는데 반혁명학술권위를 타도하자!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타도하자! 고 선창을 받아웨치던 중 접수실의 령감이 주석대에 앉은 교도처주임에게 전화를 전달하느라 홍주임 전화!-하고 웨치자 다같이 홍주임 전화! 홍주임 전화! 하고 목청껏 받아웨치고는 뒤늦게야 소리죽여 킬킬거린적도 있었다.(중략) 하루가 멀다하게 벌어지는 투쟁대회와 비판대회에서 우리는 차츰 그 도에 넘는 격앙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문혁의 일반화된 풍경을 희화화한 예 중 가장 전형적인 모습의 하나이다. 모택동이 죽고 문혁을 일으킨 주범인 사인방(이것은 순전히 중국인들의 관점이다.)이 처형을 당하자 문혁은 형식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문혁 시기를 비판하거나 문혁의 상처를 드러낸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그 시기의 이러한 작품들을 중국 문학사에서는 상흔문학(傷痕文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의 상흔문학은 지난 과거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것이었지 무엇으로 인해 혹은 누구로 인해 중국인 전체가 그러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들을 제기할 수 없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는 그들의 삶이 여전히 문혁으로 인한 고통의 그림자에 의해 포획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조선족 상흔문학은 중앙에서 듣고 싶어 하는 신음의 양상의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상처의 치유를 포기하며 그들의 언어를 깊고 어두운 자신만의 방 안에 가두게 된다. 조선족 작가들과는 다르게 문혁이라는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확보한 중앙의 지식인들은 문혁을 회상하고 고발한다. 가령 다이호우잉의 바진의 이 대표적이다. 또한 홍콩이나 서방국가로 망명 아닌 망명을 해야 했던 지식인들의 소설과 회고록이 적지 않게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지식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지식인 중심의 문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위화의 은 상흔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데 그 의의가 높다. 그것은 중국 문학이 비로소 중국혁명, 대약진, 문혁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객관적 거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그 세월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투를 끌어안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화의 작품이 중국 현대 정치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고 있다면 김혁의 작품은 그 현대사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었던 문혁의 광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어 문혁의 일상이 체화된 작가의 몸으로 당시의 풍경들을 직접 재구해 내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즉 조리돌림을 당했던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빛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들과 그런 험난한 세월 속에서도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사진을 찾아 헤매던 동년의 자화상들의 조각조각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내어 문혁이라는 거대한 일상사를 그려내었다. 생존, 그 자체가 국가의 폭력 아래 놓여 있던 시대를 돌아보며 쓴 그의 소설이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영정사진과도 같아서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은 소설과 더불어 참담해 질런지도 모른다.   3. 문혁의 그물망에 갇혀 버린 일상사들   문혁의 여러 지침들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다. 즉, 그것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 이전에 이미 일상을 장악하고 쾌쾌한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 김찬혁은 당시가 ‘머리에 뿔이 나고 몸에 가시가 돋힌 꼬마맹장의 이미지를 선호하던 시대’였지만 그는 심약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뤼페어(생선의 일종)를 사려고 인공 늪에 갔다가 탯줄이 달려있는 채로 죽은 아기가 늪으로부터 건져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그가 본 최초의 죽음이었고 그 충격의 여파로 죽은 아기가 웃으며 다가오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즉, 그가 동년을 지나 받아들여야 했던 세상은 죽은 아이의 시체처럼 끔찍한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수많은 금기와 취약한 의료 시설 속에서 유기된 영아들이 많았고’ 한편에서는 국가가 쥐어준 죄명을 안고 억울하게 죽거나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죽인 가해자가 국가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상상의 영역이었고 당대의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가해자가 그들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젖어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내려진 여러 방침, 강령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즉, 일상의 모든 담론들은 문혁과 연관하여 논해지곤 하였다. 가령 빨리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꽹과리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 잰걸음으로 등장하는 본보기극(일종의 혁명극으로 문혁시기에 공연된 유일한 연극임)의 주인공’과 오버랩 된다.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충(忠)자가 새겨진 베개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마을엔 홍위병 처녀가 목매 죽은 집이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에돌아 다녔고 라디오에서는 혁명 가곡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산아제한 노래’나 혁명가만을 불렀다. 모 주석 어록책의 안표지는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공짜 목욕표를 잘 보관해두던 비밀 장소였고 의붓아버지는 신문의 최신동향(중앙정부의 지침)을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사안들에 대비하며 전전긍긍하였다. (그 시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세상을 똑같이 모방한다. 동네 건달패들은‘싸움’이라는 단어 대신‘혁명하자’고 말을 하고 제대로 싸움이 붙지 않으면 어른들의 말을 모방하여 “혁명은 수놓이도 아니고 손님접대도 아니라고 모어른(모택동을 말함)이 말했잖냐”라고 말하면서 싸움을 더욱 부추긴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최악의 욕들은 문혁을 통해 중앙이 축출해내고자 했던 부류를 칭하여‘지주새끼, 공인역적, 반혁명수정주의분자, 구멍에서 태어난 우파새끼들’등이었다. 그러한 모방에는 모방에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시던 말을 따라 아무 의미도 모른 채 타인에게 건넸던 ‘빨갱이 같은 놈’과 같은 맥락의 모방, 그것은 그들의 일상 전체에 만연된 일상화된 폭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혁 시기의 또 다른 일반적 풍경의 하나가 대자보와 선전화였다. 작가 역시 이점을 놓치고 있지 않는데 그의 시선은 서로를 비난했던 대자보의 내용에 있지 않다. 작가는 누구나 대자보를 써야했던 시대-공격의 대자보든, 반격의 대자보든, 혹은 자아비판의 대자보든 간에-를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유독 많았던’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대자보의 내용보다는 커다란 백지를 시원하게 하게 채워가던 그 필체들에 감탄한다. 모택동의 얼굴이 도배되다시피 하던 선전화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는 집구석에 숨어 가만히 동네사람들에게 화투장도 그려주군 했다. (중략)-그 작은 그림딱지가 나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흔상(감상:필자주)수준은 단눈에 호의나 적의를 가려볼수 있는 선전화에나 버릇되여있었다. 그러했던 우리에게 달이며 꽃이며 풀이며 새며 메돼지며 사슴이며가 변형되여 그려준 추상적이지만 보기 좋은 그 도안들은 하나의 신선한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호의나 적의만이 가득했던 선전화가 일상의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이 혁명의 일상 아래에서 아이들은 화투장의 그림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동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화투장이 혁명과 투쟁의 세월을 그럭저럭 견디어 내려는 어른들의 회피책이었다면 아이들에겐 선전화의 대칭점에서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해 주었던 매개체가 되는 것이었다. 또 다른 문혁의 풍경에는 말마디에 모 주석 어록과 정치구호를 끼워 넣는 것이 규범처럼 유행하였던 대화의 방식들이 있는데 작가는 이 장면은 매우 독립적으로 삽입시키고 있다.   손님 : 《인민을 위해 복무합시다.》동무, 사진을 찍으려는데… 형님 : 《우리의 임무는 인민을 위해 책임지는것입니다.》몇 촌을 찍겠슴둥? 손님 :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합시다.》3촌을 찍으려는데 값은 얼마요? 형님 : 《절약하면서 혁명합시다.》3촌에 60전이지만 2촌엔 40전입꾸마. 손님 : 《사회주의 풀을 요구할지언정 자본주의 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럼 2촌을 찍겠소. 형님 : 《기률을 강화하면 혁명은 곧 승리합니다.》날 따라옵소.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 같은 손님과 주인(형님)의 대화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주고받았을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음이 틀림없다. 정치구호를 외우는 부분에선 사람들이 자세를 곧게 하고 또박또박 이를 복창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 구호 뒤에 따라오던 일상의 대화들을 작가는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규율로 가득한 어조와 개인적인 방언의 어조 사이에 놓인 긴장감과 느슨함의 반복은 개인의 사적 공간 역시도 국가의 통제와 규율에 점령당해야만 했던 그들의 우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비틀어서 폭로한다. 또한 작가는 '짜그배누님'을 통해 문혁의 다른 풍경들을 끄집어낸다. ‘짜그배’란 뜻은 짝짝이란 뜻으로 당시 용정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쓰이던 말이다. 즉 ‘량친 가운데 어느 한 쪽이 타민족이면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을 짜그배새끼’라고 불렀다. 어쨌든 ‘짜그배누님’의 원래 이름은 최승미다. 그녀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시대적인 맥락이 자리잡고있다. 대약진 시절, ‘영국을 릉가하고 미국을 따라잡자(超英勝美)라는 구호 때문에 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초영(超英)이나 승미(勝美)였던 것이다.’이는 바로 문혁의 시발점인 일련의 중국 현대사가 아기의 이름조차도 그들의 부모가 원하고 추구하는 소망을 따라 짓는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 속에서 하나의 구호로 불렸음을 보여주며 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의 삶이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불행했던 현실들을 끊임없이 되뇌게 하는 태생적 상처의 표지가 되었다.   4. 문혁의 응달 속에서도 마마꽃은 피어나고   문혁 시기 투쟁의 대상들은 목에 흑판을 걸고 고깔모양의 모자를 쓴 채 비판을 당하였다. 이것은 문혁의 가장 전형화된 풍경이다. 아이들은 이런 문혁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한다. 김찬혁이 똥파리 무리의 성원이 되자 똥파리는 그동안 김찬혁을 괴롭힌 체육과대표를 잡아와서 어른들이 비판투쟁대회에서 하는 것처럼 목에 흑판을 걸어 놓는다. 김찬혁은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긴 하였지만 ‘금세 몸이 떨리고 딸꾹질이 터져 나온다.’그 시점에 언젠가 비판을 받으며 침세례를 받았던 늙은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슴속에 음각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폭의 경상’이었던 것이다. 어느 비판 대회에서 몇 명의‘검은 오류분자’들의 얼굴에 주인공 김찬혁은 침을 뱉는다. 심지어‘어린지라 키가 닿지 못해 퐁퐁 뛰면서 침을 뱉는다.’그러나 마지막에 앉은‘비누거품이 일 듯 온통 침투성이인 반혁명학술권위’(늙은 지식인, 교수: 필자)앞에서 김찬혁은‘목구멍을 추키며 혀를 굴리며 침을 만들려 애를 썼지만’침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눈길을‘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안경알 사이로’마주하게 된다.   나는 목구멍으로 짜내여 겨우 만들어냈던 침덩이를 꿀꺽 삼키고말았다.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나 사람들의 틈새에 몸을 숨겼다. 경황함을 떼칠 수 없어 허겁지겁 집을 향해 뛰여갔다. 두억시니같은 눈길이 계속 나를 쫓는듯해 뒤를 돌아다보며 허겁지겁 집으로 뛰여갔다. 저녁, 온통 침에 게발려진 비닐테안경의 얼굴이 꿈자리를 커다랗게 매우며 달려들었고 나는 식은땀 흘리며 비명지르며 꿈에 가위눌려 깨어났다.   그 시대는 모든 인민들에게 가해자와 피해자 중 무조건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되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가해자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마치 마마꽃을 앓았던 김찬혁의 몸에 깊게 패여진 마마꽃 자국처럼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몽과 같은 무의식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려고 하였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도록 부추김과 동시에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겐 자신들은 역사와의 공모자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역사에 의해 부추겨진 범죄의 주동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따라서 문혁의 열조에 들떠 있던 사람들 역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역사의 범죄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문혁이라는 거대한 집단적 폭력은 일상적 삶을 살아가던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종국에는 누구도 그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에서 집단적 희생양을 요구한 것이 되었다. 문혁은 이렇듯이 억압과 통제, 그리고 폭력의 시대였지만 그런 동란의 세월 속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문혁의 폭력이 그토록 가혹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본성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으로 들떠 있기도 하고 짝사랑의 감미로움에 젖기도 한다. 아이에서 청년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도 한다. 김혁의 이 소설은 문혁의 풍경 속에서 고통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의지와 서로를 보듬어 주던 따뜻한 손길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김찬혁이 어느 날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맨 몸을 바라보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는 처음으로 나의 벗은 몸매를 살펴보았다. 은밀한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았다. 귀퉁이에 혁명적구호가 새겨져 있는 체경 속에서 나는 혁명하려 하고 있는 한 남성을 보았다. 내 소중하면서도 흉물스레 느껴지던 부분에 눈밑의 봄싹 같은 것이 한 모숨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봄물이 팽팽히 차오르듯 일어서는, 동면에서 깬 뱀 대가리처럼 머리를 쳐드는 욕망의 다른 한 나를 보았다.   이렇듯 어른이 되어가는‘나’는 똥파리의 애인인 '짜그배누님'을 짝사랑한다. 나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짜그배누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찍힌 사진 한 장을 얻는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누님의 사진 필름을 발견한 나는 그 필름을 가지고 ‘혁명적열의로 격양된 사람들과는 역방향으로’걸어 대포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사랑의 열병으로 뜰뜬 ‘나’는 진달래꽃을 처음으로 의식한다.   나는 짜그배누님의 사진을 눈 가까이에 쳐들었다. (중략) 수줍음으로 단을 꺾고 잠복해있던 《포신》은 대번에 머리를 쳐들었다. 갈망에 넘친 그것은 튼실했고 뜨거웠다. 그 《포문》으로 나는 광분하는 도시를 겨누었다. 손을 천천히 그러다 잽싸게 움직이며 장탄을 했다. 조준경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욕망을 높은 산 위에서 광분하는 도시를 향해 분출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동물적 욕망이었고 어떤 세상의 광기도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이치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김표는 여자의 속옷이나 생리대를 훔치는 등 성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변태적 행태로 표출한다. 그는 본보기극보다 재미있다면서 여성의 나체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김표의 주접스런 행동에 화가 난 똥파리는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짜그배누님과 나, 김표만이 마주하게 되었다.   “녀자것이 그렇게 보고…싶던?”(중략) “찬혁아, 너 자리 좀 비워주겐?” 누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곰상스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짜그배누님’이 출입문의 문걸쇠를 안으로 잠갔다. (중략) 김표가 보는 앞에서 누님이 쑥색옷의 단추를 벗겨 내렸다. (중략)숨겨졌던 하나의 포만한 유방이 출렁 튕겨 나왔다. 김표가 덴겁히 눈을 아래로 내리 떨구었다. 김표가 손을 잡아채려 했으나 누님은 꼭 움켜잡아 자기의 가슴에 포개주었다. “그럼 어디 만져봐, 괜찮다. 니 맘대로 만져봐라, 그리고 다신 그런 치사한짓 하지 마, 응?”   눈귀로 송진 같은 눈물이 꾸역 배여 나왔다. 이어 그것은 벌창해진 보물로 되어 말라붙은 피딱지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것이 내게는 표어글발의 마지막 획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물감처럼 보였다. (중략)여지껏 천하의 죄를 혼자서 진 듯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맞아주고만 있던 김표가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김표는 곧 누님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당시 ‘홍색파였던 어머니와 캉다파였던 아버지가 파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여 떠났고 하나밖에 없던 누나는 지식청년이 되어 농촌으로 내려간 지 3년이 지난 시기’였다. 김표는 소리 내어 울면서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리를 짜그배누님의 따뜻한 젖가슴을 통해 위로받는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인간 스스로가 지닌 양심과 삶의 의지, 타인의 따뜻한 손길들로 인해 그 어두운 시기를 견디어 낼 수 있었다.   5. “마마꽃, 응달에 피다”, 그리고…   작가 김혁은 에필로그를 통해 그의 문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당혹과 불안으로 정신이 진붉은 폐유처럼 술렁대던 세월, 마마귀의 주술에 걸렸던지 이 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홍역을 앓는 것과도 같은 병력의 아픈 나날을 보내왔다. 아픔에 머리가 뜨거웠던 어른들은 그 시대를 람독했고 오독했었다. 우리는 어찌보면 란폭한 그 시대의 제물이었다.(중략) 넘어지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다시 넘어져 상처를 입었다. 방향감 없는 매진으로 점철된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소품의 련속들, 우리가 잃어버린 질서는 그 때 그 세계가 잃어버린 질서였다. 그때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지 육신에 생채기로 남은 단순간의 상처뿐이고 지금에 와서야 정신에 남긴 핵복사같은 영원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상처와 시대가 우리에게 준 상처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처의 아픔보다는 그 상처를 만들던 과정이 더 생각날 뿐이다. 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행될지 모르는 그러나 결국 넋을 놓은 채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폭력의 아픔과 함께 그것이 자행된 공간과 시간을 수많은 ‘소품’들로 전시해 놓았다. 바진이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혁의 박물관’을 김혁은 소소한 소품들로 채워 ‘문혁의 민속박물관’을 만들었다. 더욱, 그가, 고마운 것은, 그가 비록 ‘중국’조선족 작가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동시의 그의 모국어인‘마마꽃’을 잊지 않았다는 점. 그가 촘촘히 엮은 하나의 낯선 세상을 우리의 언어로 바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읽혀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05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댓글:  조회:3786  추천:25  2010-12-11
. 칼 럼 .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김 혁   * “문학창작과 민족정체성 지키기”세미나에서 발표한 문장   어떤 게으름뱅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가한다. 그는 게으르다 보니 직업도 가정도 없고 사는게 말이 아니였다. 자신의 뒤탈린 운명을 두고 궁여지책 점집을 찾아갔는데 점쟁이는 그의 전생이 나폴레옹이였다는 놀라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흥분한 게으름뱅이는 “전생의 나폴레옹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지”하는 늬우침과 생각과 결심을 뼈물러 먹고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생활태도를 바꾸기시작했다. 결과 괜찮은 회사에 특채되였고 승승장구로 과장자리에까지 오르게되였다. 그는 점쟁이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뀐것이 무척이나 고마워서 인사라도 드릴 요량으로 다시 그 점집에 찾아갔다. 그러나 점쟁이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시 점을 본뒤 “당신의 전생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였다, 전번의 점괘는 실수로 잘못 내려진것”이라고 새로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그는 커다란 실의에 빠졌고 다시 옛날의 게으름뱅이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 우담(寓談)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변할수 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나 역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진적이 있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처지를 알게된것은 사춘기때였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알게된 숙명적인 운명에 대한 락인으로부터 나 자신은 어데서 왔으며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질문과 방황은 그후의 나의 생활에 깊이 관여되였고 작품에도 깊이 반영되여 왔다. 어쩌면 창작초반의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해결점을 찾지못한채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90년대 중기에 출간된 나의 첫 소설집에서 근 10편되는 중편소설중 주인공은 모두가 근원적인 아픔을 지니고 맞닥뜨린 운명속에서 해결책을 찾지못하고 죽어나가는 인물들이였다. 이에 평단은 “문단에서는 결여되였으나 세계문단에서 이미 오래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비극미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 문단에서 보기드문 ‘한풀이’ 문학의 한 쟝르를 제시해주고있다”고 나름 “어루 만지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불운한 운명과 굽이굽이에서 닥쳐온 절망적인 처지를 회피하지도 숨기지도 않았고 그동안 작품의 소재로 무척이나 많이 활용해 온것 같다. 그만큼 나의 실의와 방황의 크기가 컸고 깊었던것이였기 때문이였다. 그 와중에 한 랭철한 비평가의 한편의 평문이 나의 정곡을 모나게 찔렀다.  “천부적인 재능과 수려한 문체로 개인의 유리파편우를 걷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아픔이라는 숙명의 칼날우를 걷는 것이 모든 문단의 바램”이라는 명징한 비판이였다. 진정 작품에서의 나의 추구와 나의 아픔의 양상이 변모되기 시작한것은 96년경 중국전역에서 벌어진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조선족 한국초청사기건을 논픽션으로 다루면서였다. 3만여명이 무려 3억이라는 거금을 사기당하고 자살자, 병사자가 속출하고 회사가 부도당하고 마을이 폐교되는 그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 수백명의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키높이 되는 고소서, 진정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육신밖의 아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아픔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사기를 치고 한국 사기군이 도망가버린 뒤 전 재산을 날리고 텅 비여버린 건물앞에서 괴물앞에 내동댕이 쳐진 먹이의 처지처럼 선지피와 같은 절규를 뿜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섞여, 또 한국 종로거리에서 원상복구를 촉구하며 13일간의 단식을 벌리다 들것에 들려온 피해자대표들이 위경통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전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울대뼈를 밀며 올라오는 덩어리 진 비명과 위장이 탈리는듯한 아픔을 온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드디여 나는 그들의 아픔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이다. 요즘같은 피페한 출판풍토에 5천여부의 발매량을 기록하고 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흑룡강신문” 한얼문학상 대상, 그리고 연변인민출판사 청년문학지의 상을 거듭수상한 그 작품으로부터 갓길에 섰던 나의 필봉은 새로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후로 나는 모든 쟝르를 동원해 중국조선족이라는 이 공동체의 아픔과 그 행보에 대해 기록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하에 변혁기 중국조선족의 고뇌를 다룬 작품들과 천입민족으로서의 그 력사의 행정을 다룬 작품들을 10여편 펴냈다.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자서전적 색채가 짙지만 역시 중국소수민족의 일환으로서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농도와 줄기가 다른 민족집단의 아픔을 다루었고 두번째 장편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에서는 도시로 외국으로의 진출 과정에서 조선족 녀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을 다루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 그 원인에 대해 짚어보고자 했다. 요즘들어 나는 또 우리민족의 우수한 인걸들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바치고 있다. 연변이 낳은 걸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하여 장편으로 련재를 마쳤고 중국조선족자치주의 전반 기반을 닦은 조선족의 “대부” 주덕해 초대주장에 대한 전기물의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조선족이 낳은 저명한 화가이며 반파쑈투사인 홍색화가 한락연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집필, 련재중에 있다. 이한 작업 역시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인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어제날과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 보면서 그 와중에 오늘의 변화하는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갖추기 위한 작가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문체적 창신의 발상에서였다.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새롭게 투영하여 만방에 그 위상을 표방하는 이러한 작업이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氣)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이라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정체성, 그것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변혁기의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가치관은 완숙하게 정립되여 있지 않고, 방황과 좌절과 곤혹을 거듭하고있는것이다. 근년래 지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대성질호하고 나름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 지고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며 그한 노력은 계속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잘못 리해하면 민족의 결집과 발전에 방해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긍정적이면서도 이 민족의 우수한(面面)을 많이 발굴하여요즘의 이지러지고 흔들리고있는 정체성을 대신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미래적인 지향을 가지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억지로 만들자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것을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변혁기를 거치면서 위기론이 거론되고있는 오늘날, 위축되기 이전의 건강한 우리의 정체성은 분명히 있다. 이주하여 동이땀을 흘리면서 이 바람 거치른 척박한 불모의 땅을 일국(一國) 황제의 수라상에도 그 결실이 오를수있는 정도의 곡창으로 가꾸었고 가장 처절하게 반일항쟁의 선두에 서서 붉고 흥건한 피를 산산야야에 휘뿌렸고 독보적인 교육과 예술의 무르익은 향연을 휘모리로 펼쳐 세간의 주목속에 중화인민공화국 56개 민족중의 떳떳한 일원으로, 그 선두주자로 부상한 우리 자랑스럽고 위대한 중국조선족이 아닌가!!! 그것을 더듬어내고 고수하는것이야말로 목전의 진통을 엎누르고 다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꼭 선결되여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엑스트라(配角)가 아닌 주인공이 되여 만들어 온 이 위대한 신화, 우리가 경유해 온 이 불멸의 력사는 지금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양상이요, 훌륭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부딪힐때 그 정체성을 파악을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때문에 요즘같이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위기론이 거론될때 그한 호성은 더 높은것이다. 나의 뿌리가 닭이였는지 아니면 독수리였는지, 나폴레옹이였던지 염황(炎黃)이였던지 아니면 단군이였던지를 알아야 선각의 현자이든 위계높은 장군이든 파워있는 리더이든 나올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만 현실에 안주해 보금자리를 지키든 울타리를 박차고 하늘높이 날아예든 할것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조화로움과 생성이 세계적인 화두로 되고있는 시점에서 자기를 잘 알아야 타인을 수용할수가 있고 자기 주체성이 있고 그우에 다른것을 리해하고 받아들일때에야만 발전이 이룩되고 그 발전이 빠를수 있는것이다. 민족의 생성과 현재와 미래를 우리의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은 경험적, 문헌적, 지식적, 예술적으로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때에만 우리의 현재의 처경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래일의 좌표를 구사하며 물결 세찬 강을 건너 온 우리의 “월강족속”들이 다시금 건너야 하는 숙명의 강에서 해일과 같은 시련속에서도 건전하게 항해할수 있을것이다. 민족공동체 전반에 위기론이 거론되는 요즘의 절체절명의 시점, “발등의 불”, “락미지액”의 시점에서도 안타깝게도 자기 중심주의의 독선이나 일말이라도 생산적이지 못한 당파의 파쟁(派爭)에 빠져있는 일부 작가들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유감스럽고 가소롭기만하다. 진정 위기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모색으로 자신이 스스로 얽동인 협애한 사유의 덫과 스스로 빠져든 “니전투구”의 감탕에서 벗어나 우리의 작가들이 “칼보다 강한 펜”으로 민족에 대해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면서 그에 대한 문학적인 성과물로 민족문학의 획을 그을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할때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조선족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인이라면 조속히 실천해야 할 그리고 조건없이 마땅히 리행해 나가야할 숙명의 과제가 아닐까!    갓길에 선 미아, 그리고 미아들, 이제 작은 감성의 펜에 흥건한 사상의 잉크를 재워들고 우리의 어제를 기록하고 나아 갈 탄탄대로를 찾는 작업에 그루를 박아 볼 볼 일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04    잊혀진 “영화황제” 댓글:  조회:3252  추천:35  2010-12-06
  . 칼럼.   잊혀진 “영화황제”      김 혁   1   아시아 영화권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곳은 향항, 북경, 대만이다. 그러나 이곳의 영화는 모두 그 뿌리를 1930년대의 상해영화에 두고있다. 1930년대의 상해는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동양의할리우드”로 불렸다. 바로 그 당시 상해 영화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약관의 나이에 “영화황제”로 등극한 한 조선인 청년이 있었다. 바로 김염이다.   김염(金焰본명은 김덕린)은 1910년 4월 7일 서울의 명문 의사집안에서 태여났다.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했던 아버지 김필순은 중국으로 망명했고 이어 일본인에게 독살 당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김염은 고모의 집에 의탁되였다. 고학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운동과 예술 분야에서 감출수없는 끼를 보였던 김염은 1927년 열일곱살때 친구들이 마련해준 차비7원을 갖고 상해로 향했다.     당시 세계에서 뉴욕과 시카고 다음으로 가장 번화한 금융 도시이자 무역 중심지였던 상해에서 무일푼으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던 김염은 1929년 손유 감독의 과감한 기용으로 드디여 꿈을 펼치게 되였다. 손유감독은 코날이 오뚝하고 눈매가 시원시원한 발군(拔郡)의 풍모를 금세 알아보고는 그를 무성영화 “풍류검객”에 주연으로 내세웠다. 영화속에서 펼치는 그의 개성적 연기, 준수한 외모와 건강미, 지성미는 당시 고정적인 매너리즘(틀)에 빠져있던 중국 영화계에 일대 충격을 안겨주며 새로운 영화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후로 김염은 ”일전매'(1931년) “도화읍혈기'(1932년) “모성지광'(1933년) 등에 주연으로 발탁된다. 내용은 대부분 중국 봉건시대의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그의 뛰여난 연기력과 용모를 연거번거 확인해 주었다. 1932년 그는 서생과 건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을 그려낸 영화 “야초한화(野草闲花)”로 스타덤에 올랐다. 김염과 그의 첫 부인 왕인미. 왕인미는 당시 유명 녀배우로서 영화 "어강곡(渔光曲)"에 출연, 이 영화는 중국영화사상 처음으로 외국에서 영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 "야초한화"의 한 장면, 김염의 상대역으로는 유명한 녀배우 완령옥이다.     영화 "대로"의 한 장면. 영화의 주제가도 김염이 직접 불렀다.     이후 그는 손유감독과 손잡고 대표적 항일영화경전인 “대로(大路1934년)”를 제작했고 조선침탈의 괴수 이또 히로부미 암살사건을 다룬 “애국혼'과 항일영화 “장공만리' 등에 출연하는 등 예술인으로서 반일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항일 영화인 “장지릉운'(1936년)은 일본이 향항을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필림을 찾아 없애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자신의 싸인을 담은 브로마이드(肖像)를 판매해 항일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출연작마다 대성공을 거둔 김염은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영화 황제”로 뽑혔고, 중국 영화계에서 유일한 이 계관을 쓴 사람으로 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중일 전쟁이 터지자 일본이 제안한 출연요구를 거절하고 향항으로 피신했고 1947년 녀배우 진이(秦怡)와 재혼했다.   1962년 은퇴할때까지 30여년간 총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김염은 중국 영화사에 커다란 궤적을 남겼다.   신중국이 성립된후 김염은 상해 영화제작소 부주임, 상해 시 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영화작가협회 리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여느 거장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리혼의 아픔에다 재혼한 진이와의 사이에 태여난 아들이 정신질환을 앓게되는 불행을 겪었으며 문화대혁명때는 농촌으로 하방되고 안해와 함께 수용소에 갖히는 비운을 경험했다. 장기간의 고역에서 얻은 폐기종 등의 합병증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김염은 1983년 12월 27일 73세로 상해에서 눈을 감았다. 현재 상해시내 용화렬사릉원 기념관에 그의 유골이 안치되여 있고 북경영화박물관에 기념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2   올해는 김염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영화사 100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영화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그이지만 그의 탄생100주년이라는 이 명기해야할 날자에 그에 대해 그에 그렇다할만한 기념행사도 관련이슈도 없다.   기억심리학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면서 새로운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가장 오래된 기억도 뇌조직속에서 시간과 함께 려행하면서 수시로 새로운 복사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오래된 일일수록 또렷이 기억나는 “망각의 역현상” 은 20살에 정점에 이른뒤 계속 하강한다고한다.   기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만드는 하나의 큰 요소가 바로 기억이라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심리학 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루이스 브뉘엘은 일찍 “기억은 우리들의 일관성이자 우리들의 리성이며, 우리들의 행동이며,우리들의 감정이다. 기억없이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한적있다. 그 누구나 과거의 기억과 망각들을 같이 끌어안고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제의 세대를 기억해둘 우리의 지금의 세대가 사라진후 이 세상에는 어떤 기억들이 기억되고 어떤 기억들이 망각될까? 우리 또한 다음세대들에게 아무런 기억도 없이 망각되지 않을가? 3   어딘가 쓸슬하기만 한 김염탄생 100주년에 김염연구회 발족식이 상해에서 조촐하게나마 열려 다행이라 하겠다.   학자 문인 기업가들로 결성된 이 연구회는  "영화황제의 명성에 맞지 않게 그에 대한 자료발굴 연구 및 기념모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한 점에 미루어 앞으로 김염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 및 발굴 홍보에 만전을 기할터”라고 설립취지를 밝혔다. 현존하는 89세 고령의 김염 부인 진이     “어떤 사실을 잊어버리는” 망각과 비슷한 단어는 “지워버린다”는 말 즉 삭제를 가리켜 말한다. 따라서 기억과 비슷한 말은 저장이다.    과거의 력사와 그 굴곡진 장하를 거슬로 온 인걸들, 그들의 력사의 공적을 새기며 그 보고를 후세에 남기는것은 그 나라 그 민족에게서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이며 또한 망각할수 없는, 망각해서는 안되는 그 기억들이 그 민족의 소급과 비전을 위한 받침돌이 된다.     수난많은 민족사와 중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우리민족의 걸출한 인걸- 김염, 그의 모습을 퇴색하지않는 한컷의 필림으로 가슴 골방깊이 저장하고싶다.   “종합신문” 2010년12월6일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김염 주연의 영화 "대로"의 주제곡  
203    도덕과 욕망 사이, 그 절박한 줄다리기 댓글:  조회:3628  추천:30  2010-11-11
도덕과 욕망 사이, 그 절박한 줄다리기 - 제3회 "김학철 문학상 수상작품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창작후기 김 혁   1   “톰소야의 모험”의 저자 마크 트웬, 집에 무려11마리의 고양이를 길렀던 그는 "고양이 꼬리를 잡고 있으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라고 고양이에 대한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이 소설이 바로 고양이의 꼬리를 잡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일탈적인 사랑과 가족제도 사이에서 오랜 방황을 거듭하다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식상한 이야기다. 70년대 까지도 조선족은 전통적인 유교사상에다 사회주의 금욕사상이 공고하게 녹아들어 있어 결혼관과 정조관이 아주 건전한 이미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리상화된 가족의 유지를 “도덕”이란 이름으로 보존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배우자가 아닌 타자와의 사랑은 “불륜”이란 락인이 찍힌 채 사회로부터 도덕적 리상주의를 거스르는 금지된 욕망으로 인식되여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불륜에 대한 이 시대의 태도는 엉거주춤해져 버렸다. 개혁개방을 맞아, 또 출국붐이 일면서부터 고유의 결혼관과 정조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중 피부에 실감되게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곧바로 리혼률의 급증과 가정의 파탄, 편부모나 부모 부재로 인한 비행소년소녀들의 급증이다. 이렇케 인간의 륜리적 가치가 금전으로 쾌락으로 이동되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마다에 닥쳐 온 우환을 우스꽝스럽기도, 사랑스럽기도, 때로는 안쓰럽기도 한 한 어눌한 사내의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보려 했다. 그 사내와 함께 한 고양이의 족적(足跡)과 함께 엮어 보려 했다. 그로서 가족의 문제, 순결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정체성찾기를 보여주려 했다.   2   요즘의 소설문단을 평단하는 자대는 그 기준을 잃은듯 하다. 진정 소설 만드는 사람이 몇손에 꼽기 바쁠 정도로 적어지고 그에 아우성인 문학지 편집들과 년말년시 상을 주면서도 어쩐지 탐탁치 못한 이른바 수작들, 이게 다 소설이냐? 악풀을 달면서도 자신은 쓰지도 해법도 내놓지 못하는 성숙치 못한 독자군… 게다가 우리의 작가들은 상업주의와 허명에 자기에게 걸맞던 쟝르를 버리거나, 문화권력에 치우치고 그와 제휴하면서 스스의 존립근거를 허물고 있다.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문학은 서두르지 않는 변화를 통한 오랜 숙성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하기에 이는 속도만 추구하는 요즘의 속성과 반대다. 요즘의 작가들은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 잽싸게 쓴 글로 재빨리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데다 나름의 독선에 빠져 남의 글을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숙성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 우리문단에서 좋은 소설 좋은 작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간혹 좋은 작품이 나와도 편협한 독선과 나르시즘에 빠진 창작자, 평론자들은 그것을 가려내지 못하니 좋은 작품이 소외당하고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쓰기를 좋아한다. 소설이라는 쟝르가 갖는 정직성을 좋아한다. 작가가 노력하는 만큼, 그리고 살아내는 만큼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기는 우직스러움과 정직함이 소설에 있고 그 정도에 깊이 들어 갈수록 자신을 청정하게 걸러낼수 있다고 믿고있다.   3   세상고에 시달리며 그 부조리를 밝혀보자 한동안 논픽션(非虚构) 쟝르에만 매달렸다가 오랜만에 집필한 허구가 가득한, 하지만 현실같은 소설. 소설을 끝낸 날이 바로 경칩이였다. 곧 다시 봄이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라고 갈파했던 어느 시인의 한 구절을 련상케 하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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