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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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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미정 댓글:  조회:3526  추천:19  2010-11-10
   김혁 문학 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201    추천사 (11.8~11.15 ) 댓글:  조회:2869  추천:28  2010-11-09
추 천 사     중국조선족 문단의 중견소설가 김혁선생이 “제3회 김학철 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족이 낳은 걸출한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첫 소설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한 시점에서의 수상, 또 한번의 이슈가 되고있다.  문학의 위상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문학인의 가치가 환금성으로 계산되는 부박한 시대, 10대로부터 시작해온 초심을 잃지않고 조용히 서재에 묻혀 량산의 작가로 거듭나며 문학의 참(真)을 찾고있는 김혁 소설가, 금주의 문인으로 추천한다.     문학닷컴 편집부    
200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댓글:  조회:3410  추천:46  2010-11-09
"제3회" 김학철문학상" 수상소감 .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김 혁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또 한번 해야하는 수상소감을 두고 무슨 말로 운을 떼야할가 생각하다 떠오른 첫마디입니다. 지난 80년대 중기 약관(弱冠) 20의 나이에 필재 하나를 인정받고 파격적으로 “길림신문사”의 기자로 발탁되여 연길로 상경한뒤 나는 선참 “백조”라는 문학협회를 발족시켰습니다.    그때 동명(同名)의 잡지를 만들며 저희 동인들은 창간호에 제자를 써달라고 김학철 현자(賢者)님에게 청탁을 들고저 “한인막고문(閑人莫叩門)”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현자님 자택의 문을 겁없이 노크한적있습니다. 금방 견고한 체재의 철쇄에서 풀려나와 빼앗긴 시간을 미봉하고자 창작에만 몰두하시고 계시던 현자님은 초라니 같아뵈는 문학도들을 기꺼이 맞아주셨고 왕붓을 허비하여 “백조의 동인 여러분들은 문학협회를 만드는 일보다 견지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라고 질박하면서도 의미깊은 제자를 써주셨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현자님은 학을 타고 먼 서편나라로 가셨고(架鶴西去) 당년의 앳된 문학동인들중에서는 오사모를 쓰고 꽤 큰 관리가 된 사람도 있고 금혁띠를 허리에 두른 수천만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고향을 버리고 해외로 가버린 사람도 있습니다만 오로지 저 혼자만이 남아서 아직도 어딘가 볼썽스러운 모습으로 문학에 매달려 있군요. 이 6년간 저는6차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고료와 상금으로도 배는 웬간히 굶지않을수가 있네요. 이렇게 문학은 제게서 밥그릇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부적이요, 또한 복잡한 세간을 뚫어보게하는 프리즘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그동안 커다란 실의에 빠져 4차례의 나를 위한 문학상시상식에도 불참했던 내가 오늘 다소 길고 다소 격앙된 멘트를 이렇게 쏟아내는것은 이번 상이 다름아닌 김학철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상이기때문입니다. 근 40십차되게 이러저러한 상을 수상했고 해외에서도 수차 수상을 했습니다만 우리 중국조선족이라는 족속이 가장 앙모(仰慕)하는 한 현자님의 이름으로 내려지는 상, 이 상이 그렇듯 우리말 권내의 작가에 대한 값진 인정이요 격려라는 그 중후함때문인가 봅니다. 그동안 오로지 서재에 자신을 가두고 고뇌와 침묵의 행간에서 세상과 순치되지 않는 나의 고달픈 운명과 조우하는 동안 나는 몇번이고 김학철 현자님과 다시금 만날수있었습니다. 김학철 문학의 요체는 진실, 혹은 진실한것에 대한 무구한 열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있습니다. 그 열정이 그의 문학에 거리낌없고 주저없는 상상력의 움직임을 용이하게 해주었고 그의 세대, 그의 민족에 다른 작가들에게 찾아볼수 없는 높은 형상의 틀을 부여해준것이라 생각됩다.   진실에 대한 추구라는 점에서 그동안 나는 김학철 현자에게서 은근히 많은 것을 배워왔고 배우고 공유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그 진실이 성숙되지못한 한 사회적 공동체의 루습에 왜곡되고 간헐적으로 이 문단에 수용될때 나와같은 불운하고 청빈한 작가들은 굴레에 매이는듯한 거북함과 아픔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이 어차피 한 시대를 꼭 겪어나가야만하는 한 개인 혹은 그 군체의 삶에 대한 간파요. 어쩔수없는 오열이라는 점에 나는 작가로서의 의무감을 느끼곤합니다.  그래서 신음하고 오열하고 파렬음을 지르고있는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어느 민족의 삶이든 모든 삶은 거대한 상처이며 문학은 그렇게 좌절하고 극복하였던 상처의 기록이며 어제날 선배들에 의해 이루어져왔고 후배들에 의해 오늘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같은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속 저의 허약한 개인은 이미 비대한 세상에 압도당해 무기력해 졌지만 눈물을 닦고 보다 명징해진 시선으로 우리들 삶의 속절없음을 펜으로 고루고 그 펜을 더욱더 날카롭게 벼리면서 한획 두획 세상이란 커다란 실루엣을 숙고된 필로 그려나갈것입니다. 내 소설속 희망 가득한 인물들과 동반해 세상의 거대한 토네이도(龍 券 風)속으로 걸어갈것입니다. 그 로정에서 다만 나의 작품이 빛에 가려진 지난한 어둠속 인간들과 력사의 의미를 제대로 잘 적어내릴수 있기를 여린 필로서는 원할따름입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문학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아픔과 상처와 노는 법을 일러주신 김학철 현자님, 그 앞서가는 눈으로 이끌어주신 현자님의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길이와 깊이의 사범(師範)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상이 어쩌면 이 비정한 세상에서 힘들게 버텨나가는 후배에게 얹어주는 현자님의 위로의 손길이라 생각하니 그 망자(亡者)의 손길이 현실의 손들보다 그렇게 따뜻하군요.   기왕 문학이라는 이 멀고도 험난한 길을 숙명으로 걷고 있지만 서럽거나 외롭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김학철 현자님은 지금 구천에서 한 문학도의 힘든 땀방울과 서러운 눈물방울을 하나하나 세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결코 자고하지않겠습니다. 하지만 또 결코 나약해지지 않겠습니다. 환멸도 조소도 해탈도 아닌, 다만 이제 시작이라는 긴장된 현실로 나 자신을 설득하고자 합니다.    문학인의 삶을 치렬하게 고고하게 지켜 오신 김학철 현자님의 그 문학 정신에 루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문학입니다!     2010년 11월 5일                                       
199    제3회《김학철문학상》시상식 연길서 성대히 댓글:  조회:2454  추천:20  2010-11-09
제3회《김학철문학상》시상식 연길서 성대히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0-11-05 22:40:44 ]   중국조선족문단의 거장 김학철선생의 투철한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된 《김학철문학상》은 올해로 제3회를 맞아 11월 5일 연변작가협회 주최,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의 후원으로 연길백산호텔에서 성대히 거행되였다.  이번 문학상 선정대상은 2008년부터 2009년 두해사이 조선문문학간행물에 발표된 중단편소설과 공식출판된 장편소설 등 12편(장편 3부, 중편소설 5부, 단편소설 4편)의 추천작품들이였다. 소설가 평론가들로 구성된 평심위원회에서는 진지한 심사를 거쳐 김혁의 중편소설《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와 구호준의 중편소설《사랑의 류통기간》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김혁의《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는 신선한 주제가 아닌 혼외사랑을 다루면서도 독특한 구조, 재치있는 세부묘사, 경쾌한 흐름과 절주로 된 기술, 감각적인 언어로 돋보였다. 동시에 가장 성공적인 점은 고양이란 상징물의 설정과 주인공의 고양이 버리기행각에서 그려지는 갈등과 곤혼, 지어는 절망과 공포의 도출이라고 심사평은 말한다. 구호준의 중편소설《사랑의 류통기간》역시 사랑의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서 구상이 신선하다는 점에 시선이 집중되였다. 《사랑의 류통기간》이란 물음을 내걸고 사랑의 본질에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는 점, 똑똑한것 같으나 얼뜨기인 지식인의 형상을 그려냈다는 면에서 그 신선도가 한결 긍정받았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수상작품 세미나발표를 가지고 수상작품의 문학성에 대한 심각한 분석을 곁들였으며 김학철선생의 아들 김해양씨가 아버지의 문학관에 대해 《문학이란 관록이나 명예사냥이 아니라 지구상의 60억 인구 모두가 개개인의 자유로운 삶으로 배부르게 먹을수 있는 권리를 위해 분투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하였다. 주당위선전부 채영춘부부장은《김학철선생의 존엄으로 만들어진 이 문학상은 그 의의가 크다.》고 강조하면서 문학인들로 하여금 김학철선생의 문학정신과 투쟁정신을 본받아 시대흐름의 선두에 서서 국민정신을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기를, 연변작가협회의 《김학철문학상》이 우리 민족 문학창작의 번영을 이끌어가는 활약소로 되기를 기원하였다.   제3회 김학철문학상시상식 성황리에 — 본지 김혁기자  수상 11월 5일,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에서 후원한 연변작가협회 《제3회 김학철문학상》시상식 및 수상작품 세미나가 연길백산호텔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김학철문학상》은 조선족 문학의 거장 고 김학철선생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고저 설립한 문학상으로서 올해부터는 연변작가협회에서 그 바톤을 이어받아 주최하게 되였다. 《김학철문학상》은 2005년에 설립되여 이번에 3회째로 진행되였다. 《제3회 김학철문학상》에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주요 조선문문학간행물에 발표된 중단편소설과 공식출판된 장편소설중  12편(장편소설 3편, 중단편소설 9편)이 추천되였다. 평심위원회의 엄선을 거쳐 김혁의 중편소설 《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와 구호준의 중편소설 《사랑의 류통기간》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였다. 평심위원회는 김혁의《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는 독특한 구조적장치, 재치있는 세부묘사, 서술의 경쾌한 흐름과 절주, 감각적인 언어의 활용으로 하여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였고 구호준의《사랑의 류통기간》은 구상이 신선하고 똑똑한듯 하면서도 바보같은 얼뜨기형지식인을 형상적으로 그려냈다는데서 수상작으로 인정되였다고  평가했다. 수상소감에서 김혁은 “문학은 나한테 있어서 밥그릇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부적이요, 또한 복잡한 세간을 뚫어보게 하는 프리즘이기도 하다.”고 감명깊게 말해 회의참가자들의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최홍일은 심사평에서  “ 김학철선생의 투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우리 문단의 소설작품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한것이 문학상평심의 취지인것만큼 작품성을 첫자리에 놓고 반복적인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은  최홍일, 리혜선, 김관웅, 우상렬, 조일남 등 소설가, 평론가 5명으로 구성되였다. 시상식이 끝난뒤 수상작품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연변대학 교수 우상렬과 연변문학 주필 조일남의 론문발표가 있었다. 《김학철문학상》은 조선족문단의 가장 권위적인 상이여 조선족문학이 나아갈 길을 리드하는 최고의 상이다. 시상식에는 리흥국 선전부 부장을 비롯한 지도자와 김학철옹의 가속 그리고 문학계의 인사들과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참석하였다. 김미란 기자  김혁, 구호준 제3회 \"김학철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에서 후원한 연변작가협회 제3회 \"김학철문학상\" 시상식 및 수상작품 세미나가 오늘 오전 9시 연길백산호텔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주요 조선문 문학간행물에 발표된 중단편소설과 공식 출판된 장편소설중  12편(장편소설 3편, 중단편소설 9편)의 후선작품이 평심위원회의 엄선을 거치게 되였으며  김혁의 중편소설 \"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와 구호준의 중편소설 \"사랑의 류통기간\"이 최종 연변작가협회 제3회  \"김학철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였다. 평심위원회는 김혁의 \"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는 독특한 구조적장치, 재치있는 세부묘사, 서술의 경쾌한 흐름과 절주, 감각적인 언어의 활용으로 하여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였고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은 구상이 신선하고 \"사랑의 류통기간\"이란 물음을 내걸고 사랑의 본질에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는데서, 똑똑한듯 하면서도 바보같은 얼뜨기형의 지식인을 그려냈다는데서 괜찮은 작품으로 인정되였다고  평가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최홍일은 심사평에서  \"김학철선생의 투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우리 문단의 소설작품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한것이 문학상평심의 취지인것만큼 작품성을 첫자리에 놓고 반복적인 토론을 진행하였으며 장편소설부문상은 후선작의 수준미달로 인하여 아쉽게 비게 되였습니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은  최홍일, 리혜선, 김관웅, 우상렬, 조일남 등 소설가, 평론가 5명으로 구성되였다. 시상식이 끝난뒤 수상작품 세미나를 개최,  이 세미나에서는 연변대학 교수 우상렬과 연변문학 주필 조일남의 발표가 있었다. 한편   \"김학철문학상\" 은 2005년에 설립되였으며 2년에 1차 소설가에게 주어지며, 2007년 5월에 첫 시상식을 가진바 있다.    조글로미디어 방호범 강청 기자 주당위상무위원이며 선전부부장인 리흥국이 김혁수상자에게 상패를 증정   제3회 김학철문학상시상식 성황리에 — 본지 김혁기자  수상 11월 5일,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에서 후원한 연변작가협회 《제3회 김학철문학상》시상식 및 수상작품 세미나가 연길백산호텔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김학철문학상》은 조선족 문학의 거장 고 김학철선생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고저 설립한 문학상으로서 올해부터는 연변작가협회에서 그 바톤을 이어받아 주최하게 되였다. 《김학철문학상》은 2005년에 설립되여 이번에 3회째로 진행되였다. 《제3회 김학철문학상》에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주요 조선문문학간행물에 발표된 중단편소설과 공식출판된 장편소설중  12편(장편소설 3편, 중단편소설 9편)이 추천되였다. 평심위원회의 엄선을 거쳐 김혁의 중편소설 《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와 구호준의 중편소설 《사랑의 류통기간》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였다. 평심위원회는 김혁의《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는 독특한 구조적장치, 재치있는 세부묘사, 서술의 경쾌한 흐름과 절주, 감각적인 언어의 활용으로 하여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하였고 구호준의《사랑의 류통기간》은 구상이 신선하고 똑똑한듯 하면서도 바보같은 얼뜨기형지식인을 형상적으로 그려냈다는데서 수상작으로 인정되였다고  평가했다. 수상소감에서 김혁은 “문학은 나한테 있어서 밥그릇이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부적이요, 또한 복잡한 세간을 뚫어보게 하는 프리즘이기도 하다.”고 감명깊게 말해 회의참가자들의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최홍일은 심사평에서  “ 김학철선생의 투철한 문학정신을 기리고 우리 문단의 소설작품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한것이 문학상평심의 취지인것만큼 작품성을 첫자리에 놓고 반복적인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번 문학상 심사위원은  최홍일, 리혜선, 김관웅, 우상렬, 조일남 등 소설가, 평론가 5명으로 구성되였다. 시상식이 끝난뒤 수상작품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연변대학 교수 우상렬과 연변문학 주필 조일남의 론문발표가 있었다. 《김학철문학상》은 조선족문단의 가장 권위적인 상이여 조선족문학이 나아갈 길을 리드하는 최고의 상이다. 시상식에는 리흥국 선전부 부장을 비롯한 지도자와 김학철옹의 가속 그리고 문학계의 인사들과 언론매체의 기자들이 참석하였다. 김미란 기자 \"종합신문\" 2010년 11월 8일 제3회 “김학철문학상” 시상식 개최 \"연변일보\" (2010-11-8 21:00:23) 연변작가협회 제3회 “김학철문학상” 시상식 및 수상작품세미나가 5일 연길 백산호텔에서 펼쳐졌다. 이번 행사는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하고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에서 후원했다. 주당위상무위원이며 선전부부장인 리흥국, 중앙민족대학 교수 문일환, 중국과학기술원 교수 장국성 등  지도일군들과 학자, 문인, 하객들이 이날 행사에 자리를 함께 했다. 제3회 “김학철문학상”은 2008년부터 2009년사이에 발표된 중편, 장편소설중에서 12편의 후보작을 추천받아 평의했다. 평의심사결과 김혁의 중편소설 “뜨거운 양철지붕우의 고양이”와 구호준의 중편소설 “사랑의 류통기간”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여 이날 상금과 함께 꽃다발을 받아안았다. 장편소설부문상은 후보작의 수준미달로 비워두기로 했다. 시상식에 이어 수상작품 세미나가 있었다. 연변대학 우상렬교수와 연변문학 조일남주필이 선후하여 세미나에서 발언했다. 리련화기자    관련사진 보기  
198    현대의 아이로니와 작가의 성찰 댓글:  조회:2859  추천:27  2010-10-31
 현대의 아이로니와  작가의 성찰 2008년 문학풍경 일별   장정일       김혁의 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2008년 겨울호)은 환상을 도입해 몽환과 진실의 융합을 시도한 색다른 아동소설로서 현실세계에서의 고민, 그 심각한 모순갈등을 태공의 환상세계에까지 확대시켜서 관조함으로써 아동들의 현실타개의 의지가 성인세계에 못지 않는, 혹은 그 이상의 절실함을 내재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소설속 주인공이 리혼한 부모와 함께 떠난 환상적인 그린별려행은 인류의 태공려행시대를 전제로 상정하고있고 따라서 그 행로에는 로보트승무원, 번역성능을 갖춘 헬메트, 스크린, 인터폰같은 고급한 기기와 용암기둥, 풍차, 계곡같은 기이한 경물과 편리한 호텔시설, 그리고 서쪽하늘 해돋이같은 기상천외한 경관이 있지만 뜻밖에도 태공의 그린별 원주민들도 가족리산의 슬픔에 잠겨있다.   지상에서 이룰수 없어보이는 리혼부모 재결합에 대한 간절한 념원을 ‘해가 서쪽에서 뜨는’ 별나라까지 찾아가서 성취해보고자 하는 주인공의 의지는 지구에 살든 태공에 살든 가족, 가족사랑은 어린이 마음의 고향이요, 인간 심령의 종착역임을 재삼 되새겨보게 한다.  (하략) "연변문학" / 2010년 제3호      
197    한국속 조선족의 삶을 그린 시집 “입국자들” 댓글:  조회:2587  추천:25  2010-10-31
  한국속 조선족의 삶을 그린 시집 “입국자들”   “먼 친척 중매로 한국으로 시집가는/ 조선족 처녀는 국제공항 대기실에 앉아/ 폭우 쏟아지는 바깥 내다본다” 한국 하종오(55) 시인의 새 시집 “입국자들”에서는 재한 조선족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4부로 구성돼 있는 시집은 이주로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을 형상화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다면적 조망을 시도해 보였다. 이주로동자들을 상투적으로 시혜의 대상으로 그리는것이 아니라 이들의 실제 삶에 바짝 다가가려는 하시인은 이들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인 고용주에게 당한 부당함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시집에서는 또 조선족뿐만 아니라 몽골. 필리핀 윁남, 타이 방글라데슈 등지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의 곤고한 삶도 한데 모아놓았다. 하종오 시인은 1975년 “현대문학” 등단하여 민족문학작가회의 리사직을 력임했다. 작품으로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등 십여부의 시집이 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09년 7월 13일   김혁 문학 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96    미디어와 메시지 댓글:  조회:2480  추천:17  2010-10-31
. 평론 .   미디어와 메시지   -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번 3대문학지들에 게재된 소설들중에서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은 단연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였다. 최근에 읽은 일련의 소설들중에서 이 작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빼여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문단에 흔치않은 포스터모더니즘계렬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포스터모더니즘에 대한 여러 해석들중에서 그 현학적인 허울을 벗겨버린다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특점들이 남아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첫째는 엄숙주의, 권위주의, 리상주의에 대한 배척, 둘째는 대중예술과 고금예술 사이의 경계불명, 셋째는 혼성모방(混成模仿), 넷째는 저자와 독자관계의 재정립 등이다. 은 이러한 포스터모더니즘의 특징들을 발판으로 세워진 소설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이다.   소설은 컴퓨터광인 주인공 가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을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으로 전경화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네티즌이 아니면 친인친척들로서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가까운 관계라고 하는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나 혈통적공간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심리적공간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라 자처하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심리라는 이 고상한(?) 단어는 벌써 가칙를 잃은지 오래다. 이 소설의 곳곳에서 우리는 정상적이고 단정한 (아니면 책벌레나 저능아와 같은?) 전통의 젊은 이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는 거의 동시에 세명의 녀성들과 아무런 부담없이 섹스를 즐길뿐만아니라 자기 이모의 장례식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아 땀을 흘리다가도 녀자친구의 애완견 장례에서는 소리내여 울고있는 특이한 별종이다. s2o라는 아이디를 가진 의 녀자친구는 몸의 가장 은밀한 곳에 까지 나비문신을 새기고 있는 기상천외한 인물일뿐만 아니라 방송국의 모 pd가 자기 가슴을 만지는것을 보고 남자친구가 은근히 화를 내자 제쪽에서 외려 하고 항의하면서 자기 가슴은 인공으로 만든 가짜이기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도 처음 만난와 아주 자연스레 침대에 오른다. 에게는 천사로만 보이던 도 몇번의 섹스를 나눈 뒤에는 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컴퓨터를 안고 튀여 버렸고 양말씻는 기계로나 보이던 빨래판 같던 도 결국은 나를 떠나 일본남자와 결혼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조나 도덕이니 량심이니 사랑이니 하는것들은 한낱 휴지쪼각에 불과하며 심지어 돈까지도 쓰레기에 다름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소설의 저자에게 하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저자는 소설속의 주인공의 말처럼 '왜 내 정신도 생리통이다'하고 소리지를지도 모른다. 현실속에서 리얼리터를 별로 얻을수 없는 이러한 플롯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것인가? 이것이 우리 독자들 몫인것이다. Pd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권위주의, 돈에 목이 매인 엄마로 상징되는 이른바 어른들의 리성주의, 교원으로 있는 이모의 훈계로 표현되는 소위 지성인들의 엄숙주의, 이러한 모든 기성질서에 대한 이들의 배척과 풍자는 상당히 의미있는것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담론을 통해 표현하는 의미, 이것은 전형적인 포스터모더니즘의 기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진실이 없는것은 절대 아니다. 은 의 컴퓨터를 훔치긴 했지만(?) 그 대가로 성실하게 섹스파트너역활을 했고 또 부족한 부분은 돈으로 남긴다. 은 비록 아이디에 미안한 쫀쫀한 놈이지만 녀자친구와의 의리(?)만은 무섭게 지키는 위인이다. 도 친구의 일하나만은 착실하게 도와주는 의녀(义女)이며 역시 성실하고 의협심이 많은 괜찮은 남자이다. 이것이 그들의 진실인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정조가 있고 그들의 사랑이 있고 그들의 도덕이 있는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설속에서 모두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추락하는 모든것은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것인가? 추락하는것은 모두 추락하는자의 몫인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핵이 있을수 있다. 이러한 의 넋두리같은 리유없는 반항을 우리가 왜 새겨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광란적인 환상체험을 우리가 왜 음미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의 선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러한 그들의 배척과 풍자가 바로 어른 세계의 반작용인탓이다. 이 점은 소설속에서도 여러번 제시되지만 특히 작품의 결말에서 잘 드러난다. 가 중고품으로 사온 컴퓨터는 이미 바이러스에 걸려 있다. 그것도 다른 바이러스가 아닌 바이러스다. 라는 영문문자만이 식욕과, 성욕, 물욕의 만족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욕구불만, 이제 그들에게 고픈것은 배가 아니라 머리인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나오니 그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바이러스가 있을가? 그런데도 어른들은 유치하게도 식품이나 돈으로 아이들의 바이러스를 치료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이 소설속에는 또 네수의 신세대 한국가요가 그대로 인용이 되여 있다. 짜깁기를 통한 혼성모방, 이러한 혼성모방을 통한 순수문학과 통속예술의 접목, 이러한 접목을 통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파괴, 이것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이다.   이외에도 지적하고 싶은것은 텍스트의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과 언어문제의 절묘한 조화, 의학에서의 하나의 치료과정을 방불케하기도 하고 또한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상징하는것 같기도 한 a로부터 z에 이르기까지의 서술단락, 독특한 개성과 아이러니한 상징성을 결부시켜 낯선 대상의 병치에 성공한 이름짓기 등은 모두 이 소설의 성공에 기여한바가 크다. 제한된 지면으로 하여 이러한 측면에 대해 상세히 다룰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특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것은 이 소설에서 보여준 김혁의 언어구사가 자유자제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정말 는 점이다.   일찍 카나다의 석학 맥 루안은 라는 경세의 절구를 남겨 우리에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상기시킨적이 있다. 매체가 전달하는것은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곧 매체 그 자체의 특질일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선견지명이 아닐수 없다. 과학은 매체를 변화시키고 매체는 사람을 변화 시킴으로써 우리 사회는 저모도르는 사이에 과학과 매체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여 버렸다. 그리하여 편지세대, 전화세대, 텔레비죤세대, 컴퓨터세대 하는 신조어까지 생겨 나게 되였다. 오늘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관능적이고 감각적이고 기능적이고 경박한가 하는것을 직시한다면 그것이 매체의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쉽게 간파할수 있을것이다. 편지로 사랑을 나눈는 련인과 전화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 그리고 인터넷 메일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은 같은 생각을 할수가 없는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매체의 변화에 줄곧 둔감한 반응을 보이던 우리 문단으로서는 김혁의 에 감사해야 할것 같다.   김혁은 인터넷을 가리켜 얻음이자 잃음이고 바램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제는 그 잃음의 정체와 바램의 대상을 낱낱이 환기해 볼때가 된것이다.   서영빈 (문학박사, 북경 경제무역대학 외국어학원 원장)
195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장편으로 다루기까지 댓글:  조회:2967  추천:17  2010-10-20
방송대담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장편으로 다루기까지       프로그램명: 연변 “아리랑” 방송 “FM88,좋은 세상”  방송날자:   2010년 9월23일 (목요일) 아침 8:00~8:40  래빈:, 김혁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위원장. 연변일보 “종합신문”편집장) 책임편집:   강순선 사회자: 박성국, 김설화 심열:         태장:김명신 총편: 김정길    주임: 김건호    담당PD: 강순선   박성국, 김설화; 반갑습니다. 우선 명절휴가에도 쉬지 못하시고 오늘 이렇게  생방송에 출연해 주신 김혁 작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혁: 네 반갑습니다. 김설화: 윤동주시인은 생전에 불후의 명시들을 많이 남기신 분이신데요. 선생님 께서는 어떻게 되여 “시인 윤동주”를 장편으로 다룰 생각을 갖게 되였는지 그 계기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 주시렵니까? 김혁: 연변이 낳은 이 걸출한 민족시인의 위상이 력사와 시간의 검증속에 큰 존재로 자리매김하면서 연변, 한국, 일본 나아가 아시아 전역에서 그의 고고한 삶에 대한 추모붐이 다시금 일고있습니다 . 한국에서는 그의 시를 문화재로 등재를 신청하고 새로이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고, 문화제가 폭넓게 열리고있습니다 . 지어 윤동주의 명시가 새겨진 핸드폰도 출시되여 팔리고있습니다. 가해국인 일본에서는 그의 시, 평전이 번역 출판되고 그의 시 읊기 활동이 해마다 펼쳐지고있으며 그의 생애를 그린 연극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얼마전에는 한국에 거주하고있는 스웨덴과 아일랜드 대사가 어느 모임에서 각각 자신이 좋아한다는 윤동주의 시를 랑독해 화제가 된적도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윤동주 관련 론문으로 석사, 박사가 된 사람도 50명이 넘구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론문도 수백편이 나왔습니다. 평전이나 위인전기물도 수십권 나왔구요. 이렇게 논픽션 작품은 많이 나왔는데 그에 비해 픽션작품 즉 소설과 같은 창작물은 전무한 실정이였습니다. 너무나 알려져있는 시인이였지만 그 높은 위상때문에서였을가요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작품화하려한 사례가 극히 적었습니다. 소설로는1992년경에 한국에서 한부가 나온줄로 알고있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방송드라마의 시나리오라고 볼수 있지요. 그 공백의 부분이 저에게 어딘가 사명감 띄 창작충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이 낳은 시인윤에 대한 경모의 마음으로 오래전에 벌써 윤동주 관련 까페(http://cafe.naver.com/dz.cafe)도 개설하면서 윤동주의 생애를 소설화하려는 작업을 한번 해보려고 오래전부터 뼈물러 먹었었다. 또 저는 순 룡정태생입니다. 룡정에서 태여나고 또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많은 시간을 룡정에서 보냈는데 이 요소가 의 창작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현재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있는 룡정중학을 졸업했구요. 윤동주의 가족이 명동에서 이사를 와서 거주한 영국더기 부근도 우리가 즐겨 봄소풍을 다니던 곳이였고 윤동주의 고향인 명동에도 학교 동창친구가 몇명이 있어 자주 놀러다니곤 했습니다. 사실 윤동주의 숨결은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곳곳에 어려있었습니다. 고향 연변에서는 그의 모교 명동학교를 복원하고 그의 동시비를 구축하고 문화제준비작업이 한창이지만 고향이라는 이 지리적으로 특수한 지역에서 그에 대한 추모와 연구작업은 아직도 미비한 편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성국: 선생님께서는 우리 연변문학계에서도 장편소설, 장편실화, 수필, 시, 칼럼 그리고 편찬 저서같은 여러 장르의 많은 작품을 내놓은 다산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데요. “시인 윤동주”를 장편으로 다룸에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에 맞띠운줄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점들이 어려웠는지요?    장편소설 윤동주가 련재되고있는 "연변문학" 표지     김혁: 참으로 힘든 작업이였습니다. 윤동주시인은 천고절창의 주옥같은 시들을 창작하여 우리한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기신 분이지만 그이의 생활경력은 오히려 알려진 부분이 극히 적습니다. 때문에 그 생활화폭수집이 아주 힘들었지요. 이곳에서 발표된 윤동주에 관련 론문 수십편을 거의 다 읽었고 한국에 가서도 윤동주에 관련된것이라면 평전으로부터 론문집, 지어 아이들을 위해 씌여진 윤동주 전기물까지도 시중에 있는것이라면 모조리 사들여 읽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인 문익환 평전, 문익환의 친지들의 회고록, 윤동주의 후배들이 남긴 일화, 추모문들도 세세히 읽었습니다. 관련된 론문, 평전들을 읽는 외 윤동주가 연변에서 생활했던 곳들, 명동과 같은 지역들을 돌아보았고 옛 은진중학 졸업생들을 찾아보면서 당시 시대상, 풍물, 일화들을 들어보고 자료집과 인터넷에 떠도는 그 년대의 귀중한 사진들도 모으고 스캐너 하여 들여다보면서 당시의 분위기를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친지와 많은 윤동주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윤동주시인의 녀동생인 윤혜원 녀사도 세번 정도 만났습니다. 이곳 연변문학지에서 세운 윤동주문학상과 같은 시상식 관련 행사를 위해 윤혜원 부부는 여러번 오스트랄리아에서 연변을 찾은적 있습니다. 그때마다 윤종주를 소설화하려는 의도를 표명하면서 그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윤동주를 연변에 처음 알린 오무라 마스오 교수와도 만났습니다. 1994년 제가 “연변일보” 문화기자로 뛰고있을 무렵 그분을 큰 편폭으로 취재한적 있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교수로서 윤동주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한분이지요. 그리고 “윤동주평전”의 일본어판 역자인 아이자와 가크씨와도 만났습니다. 번역가의 성함이 어쩌면 나와 이름이 꼭같은 혁, 윤동주라는 위인을 통한 인연이 참으로도 절묘했다 자료들을 읽고 관련 연구자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머리속에 작품의 륜곽을 세우고 내용을 채워 나갔습니다.   박성국: ”시인 윤동주” 장편소설은 모두 몇부작으로 현재 어느단계에까지 완 성되였는지요? 김혁: 연변작가협회에서는 몇년에 한번꼴로 벌려나가는 계약작가라는 좋은 창작제도가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기획을 세우고 스토리와 창작의도서를 제출하면 연변의 유명 대학가 교수, 평론가, 원로작가들로 평심단을 뭇고 제출된 많은 기획서중에서 가능성있는 작품을 엄선해 냅니다. 그리고 그후 일년간 선정된 작가의 작품에 창작기원금을 지원하게 되지오. 장편소설 는 이런 절차를 통해 선정되였습니다. 여태껏 계약작가제도가 7회에 이르고있는데 저는 제5회때 한부의 장편소설이 선정되였고 이번에 또 한번 선정되였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두번째로 작품이 선정된 사례입니다. 작품에 명분을 얹어준 연변작가협회에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잘 알려진 인물의 일생을 그리는 건 작가로서 부담감이 아주 컸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였습니다. 이때문에 창작생에 처음으로 창작 슬럼프에 빠져들 정도로 애초에 세웠던 창작계획에 맞추지 못하고 근 1년간 한 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부담감에 시달렸습니다. 그 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윤동주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통독했습니다. 또한 당시 당시의 국면의 더 깊게 료해하기 위하여 일본력사며 태평양전쟁에 관한 력서서적들도 대량 통독했습니다. 또 제가 원체 영화광이라 소장해둔 테잎과 cd가 많은데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큐, 영화와 드라마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 영상물들이 제게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였습니다. 그리고 “연변문학”월간지에 올해 1월호부터 시작하여 지금 10회째 연재 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련재하려 합니다. 련재하는 한편 탁마를 그냥 거치고있는데 세번째의 대 수정을 거치고 잇습니다. 연변문학의 련재는 편폭상 30만자 미만에 그치는데 완결본은 아마 자수로 45만자 정도로 나올것 같습니다. 꽤 큰 편폭입니다. 김설화: 책으로는 언제 출시되는지요? 김혁: 조건이 허락되면 명년 봄께에 국내외에서 책자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김설화: 평시 책을 즐겨 읽어 “독서광”으로 소문났다 들었습니다. 현재 읽고 계시는 책들은 주로 어떤 책들인지요? 김혁: 작가는 잡가라는 말이 있지요. 제가 읽고있는 책은 다양합니다. 소설뿐아니라 문학비평서, 종교, 철학, 영상학, 민속학등으로 신간이 출시되는대로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있습니다. 매일이고 사들이는 그렇게 많은 훌륭한 책들을 시간때문에 미처 다 읽어내지 못하는 한계가 안타깝습니다. 근래에는 중국조선족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관련 문헌자료집들을 대량 사들여 읽고있습니다. 휴일마다 연길시의 헌책가게들을 돌며 그중에서 오래전에 출판된 조선족 관련 책자들을 찾아내고 사들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그외 중국과 세계의 력사에 대한 서사성적인 작품들과 중국명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제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고있습니다. 요즘 금방 읽었고 읽고있는 책들은 조선의용군의 일화를 다룬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와 “闯关东”이라는 중국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중국근대사에서 화북지역인들의 동북에로의 이민을 엮고있습니다. 우리 민족 역시 이주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은데 중국작가들은 이러한 제재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 서술기법을 읽고싶었습니다. 그리고 또  요즘의 베스트셀러인 코엘료의 판타지 “연금술사”를 중문으로 읽었고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읽고있습니다. 요즘 붐을 이루고있는 판타지에 대한 리해와 추리소설가가 추리기법으로 풀이한 사회문제 등에 대한 흥미때문입니다. 박성국: 선생님은 문인들중에서 이름 짜한 영화 수집광이라고 들었는데 취미와 애호는 어떠하신지요? 김혁: 내가 열광적인 영화수집애호가라는 것은 문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가지에 있는 음향테이프 점들에서 나를 모르는 경영자들이 없을 정도로 나는 영화광입니다. 명작개편영화와 할리우드의 대작영화 중국 신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비디오테프와 VCD디스크로 대량 사들였다. 세계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부터 상업흥행작 “타이타닉 호”에 이르기까지, 4,50년대의 명감독 히치콕의  ”나비 꿈” 으로부터 당대 명감독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이르기까지 중국명감독 진개가의 “패왕별희”로부터 중국신세대감독의 신작”플랫폼”에 이르기까지 4천여부의 영화작품을 소장, 우리 집은 짜장 하나의 영화고(庫)와도 같습니다. 개봉영화,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경전영화. 그리고 신예감독들의 끼 넘치는 실험영화 지어 애들이 보는 애니메이션까지 모조리 사들여 봅니다. 영화CD에 대한 엄청난 지출때문에 집사람한테 자주 혼나기도 하지요 살아가면서 우리가 취하는 어떤 행위에 대한 보상은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중 적극적인 보상으로서는 어떤 가치의 획득이고 소극적인 보상으로서는 자기유지이다. 적극적인 보상을 립증하기 위해서는 자기유지를 해야 합니다. 이제 독서와 영화보기는 내 생리적인 행위에 가깝게 체질화된것 같습니다.  김설화: 현재 어떤 일에 주력하고 계신지요? 김혁: 네, 요즘 지기들과 함께 조선족력사문화 동호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중국조선족은 지금 여느때 보다 더 큰 부침을 겪고 있다.  도시,해외로의 대규모 인구이동과 그에 따른 인구의 마이나스 성장, 농촌마을과 교육단체들의 피폐, 언어의 동화등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론이 돌고있다. 이러한 고비에 매스컴과 문학단체에 몸담그고있는 소위 지성인으로서 민족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단순한 등산이나 낚시같은 건강과 유흥을 목적으로 한 단체와는 차별화 된 동호회- 조선족의 어제를 소급하고 현재를 진맥하기 위한 역사 동호회를 만들 구상을 하게 된것입니다. 동인들은 조선족 매스컴에 종사하는 기자, 소설가, 시인, 수필가 그리고 교직원들로 그 년령층은 30대초반에서 40대중반으로 무어졌습니다. 룡정에서 발족식을 가졌고 이미 몇차례의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김설화: 앞으로의 창작 계획은 어떠 하신지요? 김혁: 많은 창작스케줄을 잡고 있습니다. 위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쓴다는 부담감에서 해탈되여 요즘은 그동안 미루어 왔던 중단편 몇편을 써서 한번 직성을 풀고 그동안 잡지사 편집들의 청탁을 미루어 왔던데 대한 송구스런 마음에 보상을 주고싶습니다. 올해는 윤동주의 고향이기도 한 룡정 지명 기념 1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룡정이라는 이 조선민족의 자취가 깃들고 얼이 서린 이 곳의 생성과 현황에 대해 분석하는 장편르포를 집필하고있는데 역시 명년 상반년에 책자로 출판하려 합니다. 그리고 명년 3월 5일은 우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전반 기반을 닦으신 초대주장 주덕해 탄신 100주년을 맍는 날입니다. 그에 대한 경모의 심정으로 아이들의 시각으로 쓴 위인전기 주덕해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주덕해 탄신 100주년을 맞추어 3월 초에 책으로 출시할 예정입니다. 2011년은 또한 지난세기 60년대에 중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재난의 문화대혁명 발발 4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저는 일찍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로 이 전대미문의 재난에 대해 다룬적 있는데요. 이번에는 몇부의 중편을 조선족 권위 간행물들에 발표하는것으로 당시 시대상을 고발하고 문화대혁명이 남긴 핵폭발과도 같은 후유증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합니다. 작가로서 벅찬 계획이야 많이 세울수 있지요 문제는 이 많은 계획들을 하나하나 차근히 실행해나가는것입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우리 조선족의 어제를 소급하고 래일의 진로를 모색할 이러한 작품들을 계속해 한편 한편 써나가려고 합니다. 김설화;이번 창작을 통해 예전보다 윤동주시인에 대해 한층 더 깊은 료해로 감정을 깊이 하지 않았을가 싶은데요? 김혁: 윤동주는 이제 한민족의 걸출한 시인으로 온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으로 추앙되였습니다. 연변이나 한국 지어 윤동주가 숨진 가해국 일본에서 까지 추앙받는 시인으로 오늘날 윤동주의 위치가 매김되고 그 붐이 일고있는 것은 그의 천고절창처럼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인생을 살려고 앴던 그의 인격이 빛을 발하고 거기에 작가적인 추구와 종교인으로서의 두터운 신앙심이 얹혀져서였기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그의 시는 어떤 민족에게 한정된특수한 상황하에서 지어진것이지만 그의 의식은 창작당시의 상황을 훨씬 릉가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로 승화되여 있습니다   오늘 날 윤동주는 단 시인이라는 수식을 뛰여넘고 있습니다 . 윤동주는 어떠한 암울한 시대에서도 자포자기하거나 포기하지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고 그 느낌을 노래하면서 희망을 표출해 냈다. 이 처럼 시대를 넘어 민족문제를 가로질러 미래를 향한 근본적인 목표로 한 작품이기에 개인의 고뇌와 시대적 압박에 의해 생성된 시이지만 그것의 열매는 그 틀에 그치지않고 더 높고 더 높이 향기를 뿜고 있는것이다.  그러니 윤동주는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흔들리고 또 일제강점기라는 그 민족의 수난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굳건히 걸어나간 한 위대한 인간으로 우리들의 사표로, 아이콘으로 그 모습이 격상되였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윤동주의 삶과 그 작품은 시공간과 여러계층을 초월하여 현대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 생각됩니다. 그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않는 아이콘을 그려내는 벅찬 작업을 완수할수있게된데 대해, 그리고 그 작품이 시인의 타계와 조명붐에 편승할수 있어 뿌듯하다. 이제 시인의 고고한 삶과 정신은 이미 내 삶속에 한발자욱 깊게 들어와 있습니다 . 박성국, 김설화; 명절에도 귀중한 시간을 내여 좋은 말씀 들려주신 김혁작가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김혁: 좋은 방송프로에 긴 시간 할애해 주셔 감사합니다.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안치환 노래          
194    디아스포라의 화자 - 윤동주 (김혁) 댓글:  조회:2135  추천:27  2010-06-27
디아스포라의 화자(话者)-윤동주 김혁 (소설가, 장편소설 \"윤동주\"의 작자)     요즘들어 조선족이 오롯이 모여살고 있는 중국 변강의 오지인 용정시 지신향에서 옛 학교 한 채가 복원중이다. 그 복원소식에 조선족 각계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고 매체는 끓고있다. 그 학교가 바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의 모교인 명동학교이기때문이다. 명동학교의 복원소식과 더불어 시인 윤동주가 다시 한번 연변에서 회자되고 있다. 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걸출한 민족시인이며 연변은 윤동주 시인의 고향이다. 자신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별 헤는 밤”에서나 동시 “오줌싸개 지도”에서 읊조렸다 싶이 “북간도는 시인의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이며 “돈 벌러 만주로 떠난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기도 하다. 한민족이고 보면 너나가 즐겨부르는 “선구자”의 두 번째 구절에 나오는 용정의 “용두레우물가”에서 택시 기사에게 30원을 주거나 혹인 12인승 남짓한 소형버스를 타고 20분 가량만 달리면 윤동주 생가가 있는 마을 명동촌까지 다다를수 있다. 도로 밑으로 난 양지바르고 비교적 넓은 더기에 자리한 윤동주 생가는 명동촌으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에 있다. 실개천이 흐르는 들판 너머 멀리 아늑한 오봉산이 병풍처럼 휘두르고 있고 온종일 따사로운 햇볕을 받을 수 있는 양비바른 곳에 네 칸 방 기와집의 본채와 옆에 딸린 곳간 한 채가 있는 생가. 시인은 바로 이 함경도 풍이 짙은 농가에서 1917년이 저무는 마지막 날인 12월 30일 아버지 윤석영과 어머니 김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19세기 말 1885년을 전후로 조선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두만강 너머의 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로 민족이동을 시작했다. 몇해고 지속된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기근이 원인이였다. 척박한 땅, 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는 고향을 떠나 기름진 옥토가 방치되여있는 간도땅에서 잘 살아보자는 심사에서 쪽박차고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강제적 한일합방이후 식민지시대, 망국의 설움을 안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신의주와 간도일대의 동북3성을 아우르는 곳곳으로 수많은 민족이동이 시작되였다. 중국인들은 이들, 바로 지금의 조선족을 월강(越江) 혹은 과경(跨境)민족 즉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이라 칭한다. 류랑하는 유대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맥(脉)으로 봐도 무방할것이다. 윤동주의 증조부 윤재옥도 그 과경 이주민의 대렬에 끼인 한 사람이였다. 간도에 정착한뒤 부지런한 천성으로 볼모지를 다루어 윤동주의 가족은 명동마을에서는 인끔높은 가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윤동주네 가족이 자동촌 등 간도의 여러 곳을 경과하여 나중에 머무른 용정시 지신향 명동촌은 조선 회령으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삼합진을 지나 삼합진과 지신진 두개 진의 경계선으로 되여 있는 오랑캐령을 넘어 용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회령에서 북으로 40리, 명동촌에서 용정까지는 30리이다. 명동촌은 1899년, 유학자 출신 김약연을 비롯한 함북 종성의 다섯 가문 142명이 두만강을 건너와 이룬 마을, 명동이란 “조선을 밝게 하자”는 의미로서 10여개 부락을 합친 총칭이다. 그들은 단합된 공동체의 힘으로 “밝은 조선”을 건설할 인재를 육성하는데 모를 박았다. 집단적으로 토지를 사들여 제일 좋은 10분의 1의 토지를 학교밭으로 떼 놓고 서당을 차렸는데 그 서당이 바로 후일 간도의 명문으로 승격한 명동학교였다. 김약연은 후일 윤동주의 외삼촌으로 되였다. 간도 간민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명동마을 나아가 간도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약연은 연변 각지에 명동촌과 명동학교의 경험을 보급하면서 연변을 건실한 반일운동기지로, 각지 사립학교를 민족인재양성의 요람지로 건설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중 와룡동의 창동학원, 후동촌의 정동중학, 소영촌의 길동학교 등이 당시 연변지역의 명망높은 반일 학교로 되였다. 하지만 황무지를 개척하여 평화롭게 살던 이곳에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직후 1908년 일본의 마수가 뻗쳐들었다. 1907년 8월,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사람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연변에 침입하여 용정에 조선통감부간도파출소를 세우고 명동촌 주변인 종성대안에 헌병분견소를 설치했으며 1909년 9월 “간도협약”이 체결된후 용정, 투도구, 국자가, 배초구와 훈춘 등지에 영사관과 분관을 설치하고 조선인을 통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동촌 사람들은 더욱 단합하여 학교교육을 강화하여 반일인재양성에 힘썼다. 1919년 3월 13일 “3.1운동”의 불씨를 넘겨받아 용정에서도 3만여명이 모여 성세호대한 반일대집회와 시위를 벌렸다. 명동학교에서는 정동 등 학교와 함께 300여명의 충열대를 조직하여 시위운동의 앞장에 섰다. 시위에서 중일군경들의 탄압으로 13명이 희생되고 48명이 부상당하였다. 반일의사들의원쑤를 갚고 뜻을 이어가기 위해 최봉설, 임국정 등은 1920년 1월 4일 지신향 수성촌에서 조선은행 회령지행으로부터 용정출장소를 보내는 조선은행권 15만원을 탈취하였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지난해 유흥적인 오락물로 만들었던 영화 “놈놈놈”의 모티브가 되였던 15만원탈취사건이다. 이 사건은 윤동주의 고향과 불과 몇리 떨어진 곳에서 명동학교 졸업생이 동참한 가운데 일었다. 따라서 일제의 탄압은 가심해만 갔다. 1920년 일제는 2만여명의 병력을 출동하여 연변에 대한 토벌을 감행하여 3,400여명을 살해하고 5,000여명을 체포하였으며 3,000호의 민가와 36개의 학교를 소각하였다. “불령선인의 소굴”로 간주된 명동은 일제의 중심토벌지역이었다. 명동학교를 수색하여 학생 14명을 체로하고 “반일근거지”를 이유로 학교와 남부지방총회장 마씨의 집을 소각하고 돌아갔다. 일제의 토벌로 15년동안 민중의 힘을 합쳐 건설한 명동반일기지는 파괴되였다. 이렇듯 명동촌은 이향한 이주민들의 효시가 되었고 1910년대와 20년대초에 간도조선인들의 반일운동의 중심기지로 작용하였으며 민족독립운동에 마멸할수 없는 공적을 역사에 남긴 유서깊은 마을이다. 민족을 위해 육신을 불사른 선구자들이 운집해 들었던 명동에서 나서 자란 윤동주의 행적은 이곳 명동 소학교와 용정의 은진중학교, 평양의 숭실중학교, 다시 용정의 광명중학교, 그리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도지샤 대학으로 그 학구(学究)의 루트가 이어진다. 1945년 2월 16일 인본 규슈의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이른바 “사상범”으로 옥사하기까지 인생 28년을 살아오면서 생애의 많은 시간을 명동과 용정에서 보냈다. 1931년 명동소학을 졸업, 달라자의 현립1교에서 6학년 공부를 1년 수학, 1932년 은진중학 입학, 1935년 평양 숭실중학 1년 재학, 1938-1942년 연희전문 4년, 1942-1943년 일본 릿교대학, 도지샤대 영문과, 1943-1945년 후꼬오까 형무소 옥사. 이런 리력을 년도순에 따라 계산해보면 평양과 서울에서 5년, 일본에서 3년 하여 고국과 일본에서의 체류시간이 모두 8년간이나 된다. 히지만 연희전문 4년동안 여름과 겨울 두 방학에는 고향에 돌아왔었고 일본유학기간에도 고향에 다녀갔고 하니 이 8년중 시간적으로 대략 1년반 정도는 고향에서 보냈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렇게 추산해보면 윤동주는 생애의 절반이 넘는 15년을 지금 연변의 명동과 룡정에서 지냈다. 윤동주의 작가적입장이 이민자인것은 물론이려니와 대부분의 인생체험 역시 이민지에서의 삶이 되었기에 그의 다수 작품은 이민체험에서 비롯되였고 이민자의 정서를 담고있었다. 우선 “고향집-만주에서 부른”이라는 작품이 있다.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1936.1) 윤동주는 이민 2세가 될 것인데, 그런데 이 작품에서 화자는 고향이 “남쪽 하늘 저 밑”에  있는 따뜻한 곳이다. “내 어머니가 계신 곳”이다. 그리고 “나”는 “헌 짚신짝 끄을고”여기에 왔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 화자는 어미니가 계신 남쪽 하늘 저 따뜻한 고형집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온 이주민이다. 즉 시인은 두만강을 건너 온 이주민이라는 립장에서 향수를 토로하고 우리의 역사와 불행한 운명을 하소연하고 드러내고있는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정체성을 보전하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이주를 단행하였고 현재는 이민지에서 또다른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살려니 과거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고국땅의 고향집이 그리운 것이다. 동심이 짙게 드러난 “오줌싸개지도”역시 그러한 정체성 확인의 욕구를 잘 보여준다.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1936.초) 이 작품 역시 앞의 “고형집”과 비슷한 정서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적화자가 그 반대편인 고국의 고향땅에서 이민지인 만주땅을 떠올린다. 시에 따르면 아빠는 돈을 벌어 가정을 먹여살리기 위해 만주땅에 이민을 간 것이다. 화자의 공간적위치만 바뀌었을뿐 “고향집”과 같은 맥락이다. 시 “양지쪽”에서도 이러한 정서가 짙게 묻어나고 있다.   저쪽으로 황토 실은 이 땅 봄바람이 호인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나고 (중략)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1936.6.26)   “양지쪽”에서는 시인 스스로가 “황사”가 불고 “호인(胡人)들이 있는 중국땅에서 조선 조선인 이민자임을 전제하기 위기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 이민 2세의 정체성 인식을 드러낸 경우다. 그리고 유명한 “별헤는 밤”이 있다. 이 시는 윤동주가 연희전문 졸업을 몇달 앞둔 시기에 창작한 작품이다. “어머님/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라는 표현에서 볼 때 이 시의 화자는 북간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타향에 있다는 말이 된다. 년표를 살펴보면 윤동주는 서울에 있었던것으로 되어있다. 시에서 간간히 적어내린 “추억”과 “쓸쓸함” 그리고 “어머니”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별이 아슬히 멀듯이”,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고 북받치는 향수를 털어놓은다. 이 작품들의 경우 비록 향수의 정서는 여느 향수시와 별 다름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주민에게 있어서 고향의 의미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고향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고향에 대한 인식이 복잡한만큼 향수의 정서나 감정도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몸 담고 있는 강 건너쪽은 모국이고 조상의 고향이지만 그것을 고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국땅을 고향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주민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이 작품들은 조선인 이주민의 이증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윤동주의 시에서 보여지는 이주민들은 관념적 강 저쪽의 고향이나 실족전 강 이 쪽의 고향을 모두 상실한 이중의 이산자였다. 우리의 문학에서 이주민의 정체성인식을 보여준 시작품이 많지 못한 상황에서 이 작품들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이민자의 후예로부터 지금은 한반도에서 애대하는 시인으로 떠올랐지만 지난 세기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시인의 고향인 연변에서는 윤동주의 이름조차도 몰랐었다.  1985년 5월, 일본 와세다대학 오오무라교수가 연변대학 조문학부 교수들과 용정중학교 역사교원들의 도움으로 용정 동산의 그리스도공동묘지에서 윤동주시인의 묘소를 찾아냈고 그때로부터 연변에서의 윤동주연구가 전에없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2년에 용정중학교 대성중학에 윤동주시비를 경립했고 1994년 8월에는 용정시 지신진 명동촌에 윤동주시인의 생가가 뭔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윤동주의 이름을 딴 문학상 시상식활동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용정중학교에서는 사회지명인사들과 함께 해마다 시인의 추모모임을 가지고 시인의 탄생일이면 “윤동주 문학상”시상식을 열고 있으며 특히 연변협회 기관지 “연변문학”잡지사에서는 1999년부터 시인을 기리고 민족문학을 반전시키기 위하여 조선문단에서 권위적인 “윤동주문학상”을 세웠다. 연변인민출판사 “중학생”편집부에서도 “윤동주문학상”을 세우고 해마다 시상식을 가지곤 한다. 요즘들어 관광명소가 된 시인의 고향 명동촌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함경도 살림집의 원향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이었다. 가운데 부엌을 두고 서쪽엔 방을, 동쪽엔 외양간을 들인 이른바 양통형 구조의 집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시작된 개혁개방과 함께 산업화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이런 모습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세월의 때가 묻은 집들은 방치되거나 슬레이트지붕, 시멘트집으로 뜯어고쳐졌다. 근년들어 뒤머처 지성인들어 노력에 의해 명동은 파괴된 원향을 복원하고, 민족의 문화를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있다. 일존에 시작된 윤동주의 모교인 명동에 대한 복원이 바로 그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용정은 중국내 조선족 문화의 발상지이고, 명동촌은 조선족의 역사가 숨쉬는 곳”이라며 “이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연변의 지성인들은 다시 인식을 다듬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조상들의 살을 후대에 전하자는 구상엔 용정시와 연변자치주 정부도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백두산과 자치주 수부 연길, 옛 간도의 서울 용정을 함께 묶는 민족관광 벨트가 형성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고 중국과 한국의 양대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커다란 장점을 지닌 조선족의 디아스포라는 이제 수난으로 점철되었던 어젯날의 슬픔을 넘어 다시 세계에로 향하고 있다. 윤동주가 자란, 민족의 웅지(雄志)가 남아 꿈틀거리는 이 곳이 먼 훗날에는 중국, 조선, 한국, 러시아의 경제, 문화를 이어주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동북아시아의 빛나는 변두리로 부상할지도 모른다. 그때면 멀리 북간도의 하늘 아래 별을 헤였던 윤동주는 더는 외로운 화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시인 연구-윤동주편(이건청)/문학세계사 2000년 별의 노래-윤동주 삶과 시(김수복)/한림원 1995년 세월속의 룡정/연변인민출판사 2000년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개척/민족출판사 1999년 중국조선민족 인물전 /연변인민출판사 1992년 민족시인 윤동주50주기기념학술토론대회론문집/1995년 “어둠속에 빛나는 한줄기 빛-윤동주론”/김호웅 윤동주시의 이민문학적 성격/장춘식 윤동주 시의 공간의식 연구/김경훈  *본문은 \"윤동주 옥사 65주년 기념 윤동주시포럼\" (중국연길.2010.6.27)에서 발표됨.-편자주
193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작가초대석 댓글:  조회:2530  추천:25  2010-05-24
  연변인민방송국 “문학살롱” 작가초대석 - 윤동주의 생애를 소설화한 김혁소설가를 만나본다   사회자: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에 저희들은 저명한 청년작가이신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여러분과 40분간 함께 하겠습니다. 먼저 김혁선생님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룡정에서 출생한 김혁선생님은 스무살때인 1985년에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들>로 문단에 데뷔하여 선후로 길림신문사, 연변일보사 기자로 사업하면서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하셨습니다. 지금은 연변작가협회 소설창작위원회 주임직을 맡고 계십니다. 김혁선생님이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들 가운데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로는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실화문학집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다.> 등이 있습니다. 김혁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창작생애에서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 <연변일보>, <한얼패>, <아리랑>, <화림>, <진달래> 등으로 중국조선족 문학상을 거의 모두 석권하신 분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계몽사 해외특별상, 한국 재외동포재단 제1회 한민족청년상 등 해외상까지 타셨습니다. 오늘은 주로 최근에 창작하신 장편련재소설 <시인 윤동주>를 둘러싸고 얘기 나누려 합니다. 그럼 김혁선생님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혁: 안녕하세요? 사회자: 문학인들 치고 윤동주시인의 일생을 문학작품으로 창작해보려는 분들이 많았으리라 짐작이 가는데요, 끝내는 선생님께서 이 벅찬 작업을 완수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어떤 계기에서 창작하셨습니까? 김혁:  참으로 힘든 작업이였습니다.한국과 중국에서 윤동주 관련 론문으로 석사, 박사가 된 사람도 50명이 넘구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론문도 수백편이 나왔습니다. 평전이나 위윈전기물같은 논픽션도 수십권 나왔구요. 이렇게 논픽션 작품은 많이 나왔는데 그에 비해 픽션작품 즉 소설과 같은 창작물은 전무한 실정이였습니다. 너무나 알려져있는 시인이였지만 그 높은 위상때문에서였을가요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작품화하려한 사례가 극히 적었습니다. 소설로는1992년경에 한국에서 한부가 나온줄로 알고있습니다. <인간현대사>라는 어느 방송사의 프로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를 개작한 작품이였습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방송드라마의 시나리오라고 볼수 있지요. 그 공백의 부분이 저에게 어딘가 사명감 띄 창작충동을 주었습니다. 사회자: 선생님은 룡정에서 태여나셨고 또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많은 시간을 룡정에서 보냈는데 이 요소가 <시인 윤동주>의 창작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김혁: 저는 순 룡정태생입니다. 현재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있는 룡정중학을 졸업했구요. 윤동주의 가족이 명동에서 이사를 와서 거주한 영국더기 부근도 우리가 즐겨 봄소풍을 다니던 곳이였고 윤동주의 고향인 명동에도 학교 동창친구가 몇명이 있어 자주 놀러다니곤 했습니다.사실 윤동주의 숨결은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곳곳에 어려있었습니다. 사회자: 윤동주시인은 젊은 나이에 주옥같은 시를 창작하여 우리한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기신 분이지만 그분의 생활경력은 오히려 알려진 부분이 극히 적은걸로 알고있는데요, 그 생활화폭수집이 아주 힘들었으리라 사료됩니다. 김혁:  이곳에서 발표된 윤동주에 관련 론문 수십편을 거의 다 읽었고 한국에 가서도 윤동주에 관련된것이라면 평전으로부터 론문집, 지어 아이들을 위해 씌여진 윤동주 전기물까지도 시중에 있는것이라면 모조리 사들여 읽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와 관련된 인물들인 문익환 평전, 문익환의 친지들의 회고록, 윤동주의 후배들이 남긴 일화, 추모문들도 세세히 읽었습니다. 관련된 론문, 평전들을 읽는 외 윤동주가 연변에서 생활했던 곳들, 명동과 같은 지역들을 돌아보았고 옛 은진중학 졸업생들을 찾아보면서 당시 시대상, 풍물, 일화들을 들어보고 자료집과 인터넷에 떠도는 그 년대의 귀중한 사진들도 모으고 스캐너 하여 들여다보면서 당시의 분위기를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친지와 많은 윤동주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윤동주시인의 녀동생인 윤혜원 녀사도 세번 정도 만났습니다. 이곳 연변문학지에서 세운 윤동주문학상과 같은 시상식 관련 행사를 위해 윤혜원 부부는 여러번 오스트랄리아에서 연변을 찾은적 있습니다. 그때마다 윤종주를 소설화하려는 의도를 표명하면서 그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윤동주를 연변에 처음 알린 오무라 마스오 교수와도 만났습니다. 1994년 제가 “연변일보” 문화기자로 뛰고있을 무렵 그분을 큰 편폭으로 취재한적 있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 교수로서 윤동주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한분이지요. 그리고 “윤동주평전”의 일본어판 역자인 아이자와 가크씨와도 만났습니다. 자료들을 읽고 관련 연구자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머리속에 작품의 륜곽을 세우고 내용을 채워 나갔습니다.  사회자: 선생님은 <시인 윤동주>의 창작기획서로 연변작가협회 계약작가로 선출되였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합니다. 계약작가제란 어떤 제도인가요?  김혁:  연변작가협회에서는 몇년에 한번꼴로 벌려나가는 계약작가라는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기획을 세우고 스토리와 창작의도서를 제출하면 연변의 유명 대학가 교수, 평론가, 원로작가들로 평심단을 뭇고 제출된 많은 기획서중에서 가능성있는 작품을 엄선해 냅니다. 그리고 그후 일년간 선정된 작가의 작품에 창작기원금을 지원하게 되지오.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는 이런 절차를 통해 선정되였습니다. 여태껏 계약작가제도가 7회에 이르고있는데 저는 제5회때 한부의 장편소설이 선정되였고 이번에 또 한번 선정되였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두번째로 작품이 선정된 사례입니다. 작품에 명분을 얹어준 연변작가협회에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의 창작은 한마디로 고단한 작업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김혁:  잘 알려진 인물의 일생을 그리는 건 작가로서 부담감이 아주 크지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였습니다. 이때문에 창작생에 처음으로 창작 슬럼프에 빠져들 정도로 애초에 세웠던 창작계획에 맞추지 못하고 근 1년간 한 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부담감에 시달렸습니다.그 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윤동주 관련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통독했습니다. 또한 당시 당시의 국면의 더 깊게 료해하기 위하여 일본력사며 태평양전쟁에 관한 력서서적들도 대량 통독했습니다. 또 제가 원체 영화광이라 소장해둔 테잎과 cd가 많은데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큐, 영화와 드라마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 영상물들이 제게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였습니다. 사회자: 장편련재소설 <시인 윤동주>는 <연변문학> 2010년 1기부터 련재를 시작했는데요, 지금까지의 련재정황은 어떠했고 선생님은 이 작품의 폭을 어느만큼 정했습니까?  김혁: “시인 윤동주”는 련재가 아직 첫딱지를 뗀 상황입니다. “연변문학”월간지에 올해 1월호부터 시작하여 지금 4회째 연재 되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 련재하려 합니다. 자수로 45만자 정도입니다. 꽤 큰 편폭입니다. 사회자: 아마도 련재가 끝난다음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도 갖고 계시겠고 또 이는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점인데요, 어느때쯤 책을 출판할 예정입니까?  김혁: 조건이 허락되면 가을쯤에 국내외에서 책자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사회자: 문학작품창작은 우선 작가의 창작격정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계기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례하면 어떤 사건을 통한 인물에 대한 감동같은것이 그런 계기로 될수 있는데요, 선생님은 이 작품의 창작에 앞서 문학인으로서 윤동주시인에 대한 감동은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혁: 윤동주는 이제 한민족의 걸출한 시인으로 온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으로 추앙되였습니다. 연변이나 한국 지어 윤동주가 숨진 적국 일본에서 까지 추앙받는 시인으로 오늘날 윤동주의 위치가 매김되고 그 붐이 일고있는 것은 그의 천고절창처럼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인생을 살려고 앴던 그의 인격이 빛을 발하고 거기에 작가적인 추구와 종교인으로서의 두터운 신앙심이 얹혀져서였기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윤동주는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흔들리고 또 일제강점기라는 그 민족의 수난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굳건히 걸어나간 한 위대한 인간으로 우리들의 사표로, 아이콘으로 그 모습이 격상되였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윤동주의 삶과 그 작품은 시공간과 여러계층을 초월하여 현대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자: 잠간 윤동주시인의 시 몇편 감상하겠습니다. 먼저 저 유명한 서시입니다. 다음 작품입니다. <별 헤는 밤> 다음은 <자화상>입니다.  다음은 <새로운 길>입니다.  사회자: 요즘 문단의 화제로 되고있는 김혁선생님의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는 많은 독자들이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또한 이 작품외에도 독자들은 선생님의 창작에 대해서도 기대치가 크리라 생각되는데요, 선생님의 앞으로의 창작계획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많은 기대를 갖고 있는데요?  김혁: 써도 써도 끊없을 창작스케줄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위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쓴다는 부담감에서 해탈되여 요즘은 그동안 미루어 왔던 중단편 몇편을 써서 한번 직성을 풀고 그동안 잡지사 편집들의 청탁을 미루어 왔던데 대한 송구스런 마음에 보상을 주고싶습니다.그리고 올해는 윤동주의 고향이기도 한 룡정 지명 기념 1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룡정이라는 이 조선민족의 자취가 깃들고 얼이 서린 이 곳의 생성과 현황에 대해 분석하는 장편르포를 집필하여 역시 올해안에 책자로 출판하려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각으로 중국조선족 이민사를 다룬 아동장편소설도 몇해전에 시작했다가 <사인 윤동주>의 창작때문에 잠시 미루었는데요 이 역시 빨리 마무리 할가 합니다. 작가로서 벅찬 계획이야 많이 세울수 있지요 문제는 이 많은 계획들을 하나하나 차근히 실행해나가는것입니다.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우리 조선족의 어제를 소급하고 래일의 진로를 모색할 이러한 작품들을 꼭 한편 한편 써나가려고 합니다.  사회자: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에서 저희들은 저명한 청년작가인 김혁선생님을 모시고 장편련재소설 <시인 윤동주>를 화제로 말씀드렸습니다. 김혁작가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김혁: 긴 시간 할애해 주셔 감사합니다.    2010년 4월 15일 방송   
192    은둔하는 고독한 영혼 댓글:  조회:3589  추천:25  2010-05-13
은둔하는 고독한 영혼 - 소설가 김혁인상기   김촌       김혁은 우리 문단에서 특이한 존재다. 10대에 문단에 등단했고 아울러 신문계에 입사하여 여태껏 문학과 신문기자사업을 병행해 왔다. 인생리력도 그나이에 비해 파란많고 굴곡적이여서 그러한 담금질속에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과 빛깔을 지닌 개성파 작가로 문단에서 자리매김해 왔다. 남들이 모두 동쪽으로 갈때 홀로 서쪽으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남자, 마를줄 모르는 감성으로 팽배해 있고 웃음속에 울음을 감출줄 아는 남자. 그런 용기와 개성이 오늘의 “반골”기질을 가지고있고 각종 쟝르를 거침없이 구사하는 중견작가 김혁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경인년이 금방 걸음마를 뗀 정초의 어느날 나는 촬영기자와 함께 연길시 덕명호텔 부근에 위치한 김혁씨의 집문을 노크했다. 꽤 오래돼 보이는 건물, 값가는 기물은 별로 눈에 밟히지 않지만 그 대신집이 무너지게 겹겹이 둘러쌓인 책들이 유표하게 눈에 뜨인다. 높은 서가에 다 챙길수 없어 서가앞에까지 두겹세겹으로 거실 거의 중간까지 포진해있는 책이 저그만치7천여권이라고 한다. 수자도 대단하지만 문학저서뿐만이 아닌 력사, 종교, 철학, 영상학, 민속학등으로 갖가지 학과를 넘나드는 품종의 다양함이 충격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수십년간 수집한 수천장의 영화테잎과 CD가 별도로 서가를 매고 꽃혀 있고, 지금은 구경하기도 어려운 수십년전의 련환화도 천여권이 넘게 차곡차곡 잘 정리되여 있었다. 그의 줄기찬 문학적행보의 원류를 만나는 대목이다. 고금중외의 명작들이 그의 사유와 영감의 샘을 깊게 하고, 온라인과 영상 등 다양한 양식으로 접하는 콘텐츠가 그의 정신세계의 반경을 한껏 드넓혀주고 있었다. 그의 문학세계가 남달리 다양하고 높고 깊은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수 있게 했다. 변두리를 허물고 글로벌시대의 중심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가는 거대한 파워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 많은 책과 영화와 씨름하며 다져온 지적인 바탕,무서운 가능성을 지닌 미래형 작가의 존재를 육감으로 느끼며 나는 가슴이 뜨겁도록 흥그러운 전율을 느껴야 했다. 김혁의 간단한 프로필에서도 그의 오로지 문학으로만 점철된 생애를 력력히 보아낼수 있다. 문화대혁명이 일던해 용정에서 출생 1985년 단편소설 "피그미의 후손"과 "노아의 방주"등 작품을 발표하며 19세에 등단 20세에 파격적으로 신문사 기자로 발탁 되여 "길림신문", "연변일보" 등지에서 20년간 신문기자로 활약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연변일보[해란강]문학상, [장백산]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자치주 [진달래]문학상 한국재외동포재단 한민족 청년상 등 20여차 수차 수상 지금까지 “마마꽃, 응달에 피다”등 장편 3부 중편소설 “전재죽이기” 등 중단편소설 80여부, 시 300여수, 수필, 칼럼 200여편 명상 300여편 그리고 신문기사 천여편을 창작, 발표,간행했다.   “오늘로 오기까지 나는 정말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 왔다.”라고 말하는 담담하게 말하는 김혁씨. 그 담담한 어조에 비해 그의 삶의 길은 어쩌면 너무나 울퉁불퉁했다. 친부모의 버림으로 남의 집 양자로 자랐지만 다시 그 양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 혈육친지하나 없이 내내 홀로였고 혼인의 파국, 생활의 궁핍을 벗어보려 매달렸던 음식점, 서점, 신문사 등 사업의 잇달은 실패들로 오는 생활의 곤고, 때문에 오래동안 천문수자같은 거액의 부채에 시달렸고 게다가 사회의 부당한 대우 등으로 어려서부터40대가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무원조한 그에 대한 운명의  조롱과 학대는 오늘에도 계속되고있다. 세상살이의 올곧지 못함에 부대껴온 나날이였지만 그는 세상의 불쾌한 먼지와 소음의 기류를 덮어쓰고도 절망감의 정체와 아득바득 싸웠다. 그를 고통의 류황불에서 빠져 나오게 한 구원의 빛이 바로 문학이였다. 김혁은 “나에게서 극심한 고통과 거대한 불화를 해소할수 있는 방편은 오직 문학뿐”이라고말한다. 그의 블로그를 펼치면 메인화면에 “삶 자체는 오류의 련속이고 고통스럽지만 문학은 그 오류를 시정하고 그 고통을 덜어준다. 그 롱담같은 힘을 나는 믿는다”고 씌여있다. 그처럼 고통이 닥쳐오고 오래 될수록 그는 오로지 작품에 매달렸고 작품을 통해 낯선 인물들을 만나 현실에서 이룰수 없는 일들을 대신 이룰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다만 림시라도 웬만큼은 행복할수 있었다고한다. 하여 문학, 그 비실제적인 효응에 대한 매혹을 기르며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놓고 탐미해 들었다. 작품의 문학성보다는 환금성이 중요시되는 세월에 하필이면 이 세상 가장 열렬한 문학광으로 김혁은 등장했다. 소설, 시, 수필, 칼럼, 시나리오, 아동문학 등으로 각종 쟝르를 넘들며 끊임없이 수백, 수천편의 작품들을 량산했고 현학적인 표현이 넘치는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현실과 환상사이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자신의 작품세계의 령역을 만들었다. 온몸에 얼룩진 상처와 눈물자국... 그 눈물의 소진끝에 이룩해낸 문학세계, 누가 말했던가? 문학은 상처위에 핀 꽃이라고. 그가 유명한 독서광이고 영화광이라는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신간 잡지와 서적들을 미친 듯이 사 읽고 새로 개봉되는 영화 테잎들을 대량 소장하고는 보고 읽고, 읽고 본다. 그리고 쓴다. 그 피스톤의 작동 같은 따분한 동작이 여태껏 그가 소신을 잃지않고 해 온, 그리고 하고 있는 일상의 전부다. 일년사이에 4,5천원어치, 매달 박봉을 잘라 평균 3,4백원 어치의 책을 사다 읽는다. 사들여서는 허기 끝의 탐식처럼 읽는다. 어려서부터 길러 온 미친 듯한 독서 관습은 골수깊이 체질화되어 있다. 이 시가지에 있는 음향테프점에서 그를 모르는 주인장이 없을 정도로 그는 영화광이다. 개봉영화,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경전영화. 그리고 신예감독들의 끼 넘치는 실험영화 지어 애들이 보는 애니메이션까지 모조리 사들여 보면서 다양한 참조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가꾸어간다. 어느 음향점의 구석에서 남들이 내쳐둔 흑백의 경전을 찾아내도 그는 그 CD한 장에서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한다. 스스로의 무드를 만들고 그로서 생성되는 엔돌핀에 도취되여 그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씻김굿의 휘모리에 신들려 있다. 이 몇년간 문단에서는 그의 열절적이던 모습을 더는 찾아볼수가 없다. 그는 근 6년간이나 세상과 담을 쌓은채 두문불출하고있다. 오로지 창작과 독서만이 그의 일상이요 그의 전부이다. 그 속에 쌓여있는 7천여권의 책과 4천여부의 영화 테잎과 cd가 그의 전부다. 이 인고의 시간에 그는 오로지 창작에만 몰입하여 두부의 장편과 수백편의 칼럼과 명상을 펴냈고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자치주 진달래”문학상, 윤정석아동문학상 등 굵직한 상들을 따냈다. 지금 그는 시끌벅적한 곳을 피해 조용히 은둔하며 자신과의 어려운 싸움을 벌리고 있는것이다.   지금 우리의 문단에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김혁씨와 같은 이러한 은둔자들의 자세라고 생각된다. 예술적완성도를 위해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와 끈기, 오랜 시간동안의 잊혀짐을 감수하면서도 단 한편의 작품을 위해 생의 모든것을 거는 장인정신이 요청된다. 최근년간 그는 다시 잠시 떠났던 신문계로 돌아왔다. “중국조선족이라는 공동체는 지금 새로운 격변기의 갈림길에 서있다. 사회발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나타난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들은 참신한 분석과 연구를 수요한다. 따라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랭정과 온유와 절제의 쟝르가 더 절실하게 수요된다. 이런 현실은 다소 떠있고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虛构)을 보완하는 다큐(紀录)나 논픽션(非虛构)에서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시 떠났던 신문계로 돌아왔다”고 그는 근일의 행보에 대해 해석한다. 옛 기량을 살리며 맹활약하여 흔들리는 우리 공동체의 동태를 보여주는 신문기사들을 수백편써내고 그 진로를 진맥하는 칼럼 100편 가까이 펴냈다. 한편 이 몇해간 이라는 제명으로 조선족사회의 현황을 다룬 소설작품을 각 문학지에 련작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편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선족 력사를 소급하고 그 인물들을 만방에 알리기 위한 일환의 작업으로 항일로간부의 인물전기를 집필해냈고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금방 마무리 했다. 올해는 또 룡정 개척 110주년을 위한 장편기행문 집필에 이미 착수했다. 이후의 그의 모든 작품, 모든 쟝르와 문체는 모두 오로지 중국조선족의 운명과 비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것이라고 한다. “이 작업이 언제 끝날는지 기약할수 없다. 나의 필봉이 멈추지 않는한 우리 민족의 비전을 위한 한 문필가의 고뇌적인 동참작업은 그냥 될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혁의 서재에 커다랗게 걸고있는 편액속의 글은 “녕정지원 (寧靜致遠)”이다.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나오는 문구로 전문은 “담백이명지(淡泊以明志) 녕정이치원(宁静以致远)”이다. 담백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먼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깨끗하고 고요함을 유지하면서 또한 마음에 선입견을 두지 않아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먼곳에 이르는 경지의 선비의 옳바른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혁은 이 편액을 걸고 하루에도 몇번씩 바라보면서 진정한 문학인, 선비의 길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가(家)라면 이렇게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고절(高絶)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가!     "연변문학" 2010년 4월호            
191    문학의 참을 찾아서 댓글:  조회:3565  추천:29  2010-03-19
. 평론 . 문학의 참을 찾아서 ― 김혁의 소설 읽기 장춘식     0. 김혁, 누구인가? 1965 년 9월 9일 룡정 출생. 다섯살때 우리 글을 깨쳐 여섯살 소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장편서사시를 줄줄 외우며 선생님들을 놀래운 천재의 소년. 그런 그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가? 그런데 그때문에 조금 탈선했다고 강제퇴학을 당하지만 퇴학을 당한 두달후엔가 그의 작문이 콩클에 입선하여 상패와 상금으로 라지오를 받게 된다. 선생님들도 소년의 능력을 인정하여 재등교통지를 냈으나 김혁은 고리끼처럼 사회대학을 다닌다고 룡정과수농장의 주물공장 주물공으로 취직을 해버린다. 이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 이듬해에 연길시교의 닭을 깨우는 부란공장에 부란공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다음해에는 소설로 문단에 등단을 하며 또 그 다음해에는 고2 중퇴 학력으로 신문사기자에 등용된다. 그후 김혁은 중단편소설 70여편, 장편소설 2편, 시, 수필 300여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 문단의 중견으로 당당히 자리를 굳힌것이다. 《금방 사회인으로 들어선 19세의 소년으로서는 파란만장하고 화려하다 할만한 경력이였다. 바로 이러한 경력과 이제 쌓아가야 할 경력이 그의 소설의 심층구조를 이루고있음은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경력이 문학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김혁의 문학은 과연 어떤 문학일가? 1. 순수에의 집착 소설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우위에 립각한 대결을 벌이는것을 기본특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러한 대결은 서사적으로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갈등은 이야기의 기본적인 모습이기때문이다. 김혁의 다수 소설들, 특히 작가 개인의 경험적요소가 많이 드러나는 작품에서는 기본적인 대결이 순수의 상징 혹은 지향이나 정신적인 삶의 원칙 대 세속적인 삶 혹은 물질적인 욕구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진선미(^善美) 대 위악추(伪恶醜)의 대결이라 할수 있을것인데 이들 대결의 그룹들은 그러나 진, 차진(次차차진…차차위, 차위, 위… 식으로 차원이 다양하여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한 양상속에서 소설의 다양한 의미망이 이루어지는것이다. 정보의 다양성과 립체적묘사라는 시각에서 이는 김혁 소설의 장점이 된다고 할수 있다. 먼저 중편소설 《적(笛)》(도라지, 1994년 5호)의 경우 이러한 진선미와 위악추의 대결은 적(笛) 즉 피리로 대표되는 예술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김혁이 문단에 등단하여 거의 십년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만큼 성숙기에 이루어진 작품임을 알수 있다. 여기서 대결의 초점은 예술에의 몰입과 세속적인 욕구 사이의 갈등에 맞추어져있다. 엑스타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예술에 몰입한다. 김성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의 엑스타시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악사 피리로 령험을 찾아 무아의 경지에 거의 이르다가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단 여기서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표현은 약간의 어페가 있는것 같다. 왕의 부름을 거역하는 수단으로 왼손의 손가락을 돌로 짓이갠다는것은 피리 부는 예술가로서는 파멸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한 《악론》을 완성시키겠다는 결구부분의 의미로 보아서는 음악가로서의 파멸이라 보기는 어렵기때문이다. 작품에서 스승의 존재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순수의 상징물이다. 세 친구의 음악적재질을 발견하고 가르치면서 음악의 최고경지라 할수 있는 《악론(乐論)》을 편찬한다는 표현은 결국 어떤 상징적인 모티프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징된 순수, 즉 음악을 둘러싸고 세 제자들이 변화의 과정을 연출한다. 먼저 셋째가 순수를 포기한다. 하루동안 피리를 불며 음악에서의 퇴출을 위한 통과의례를 거쳐 현령이 되여 권력과 공명을 추구하며 이어 맏이도 같은 통과의례를 마치고 음악의 세계에서 퇴출하여 푸주간의 백정이라는 생계형의 삶을 선택한다. 이들 두 제자의 항복은 결국 세속적삶에의 귀의가 될것이다. 그만큼 순수를 지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다. 이것이 대결의 제1단계가 된다. 제2단계의 대결은 끝까지 순수, 예술의 경지를 고집하는 주인공 악사 즉 둘째제자의 신변 혹은 의식 내부에서 벌어진다. 먼저 자식이 우물에 빠져 죽고 이어 안해가 소금장수를 따라 도주하며 나중에는 애인인 《춘향루》의 녀인마저 자살하고만다. 주인공의 의지를 동요시킬만한 주변의 상황들이다. 비록 약간의 심적인 동요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 다 극복해낸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악사의 예술적추구는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될듯한 상황이 벌어진다. 임금이 악사를 궁중에 불러들이는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임금이 궁녀와의 섹스때 피리소리를 즐기기때문에 악사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것이다. 이때에야 악사는 순수와 세속적인 삶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타협마저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순수를 선택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돌로 까서 궁중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은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 쓴 《악론》을 완성시키고자 하는것이다. 작가가 인식하고있는 예술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섹스마저 음악의 경지와 률동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표현력은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있다. 중편소설 《바람과 은장도》나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 등 작품도 작품의 구조나 주인공의 성격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결구조는 비슷하다. 한결같이 순수와 세속적삶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바람과 은장도》에서는 장현수라는 인물이 춤으로 대표되는 순수에 집착한다. 무용선생 차수경에 대한 짝사랑은 그의 순수에의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그 순수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차수경이 예술을 배반한다. 따라서 차수경을 칼로 찌르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될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삶에서는 범죄가 되지만 순수에의 지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고상한 행위라 볼수도 있기때문이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은 순수에의 지향성을 포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에 천부를 지닌 방황은 사랑과 물욕이라는 세속적인 삶의 욕구에 항복하며 결국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던 술공장이 망하고 사랑의 욕구를 만족하고자 했던 기녀에게서 성욕외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하며 다시 자연의 유혹 즉 바다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음악의 신성함을 되찾으려 하나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죽은 인어가 되여버린다. 비록 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자아가 패하는 셈이지만 작가의 지향성은 여전히 순수에 맞춰져있다. 《꽃뱀》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현식과 현우라는 쌍둥이 형제는 순수와 세속이라는 두 상징성을 지닌다. 윤주라는 녀성이 먼저 현식을, 그리고 나중에는 현우를 사랑하게 된다는것은 세속에 의한 순수의 유린을 의미하겠고 현식의 파멸은 순수의 파멸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까 《적》에서 《바람과 은장도》,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에 이르기까지 비록 더러 순수가 파국을 맞기도 하지만 작가의 지향성에서는 항상 순수를 우위에 놓고있는 셈이다. 다만 작가는 순수가 유린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가끔은 망설이고있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의 고민과 현실인식이 절실하다는 말이 될것이다.   2. 새것에의 끊임없는 도전 김혁은 항상 고민하는 작가이며 동시에 항상 새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작가이다. 소설, 시, 수필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고 좀더 많은 정력을 쏟았다고 할수 있는 소설분야에서도 력사소설, 판타지소설, 황당소설, 초현실주의소설 등 여러 장르와 기법들을 두루 섭력한다. 중편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1995년 5호)는 그러한 김혁의 실험정신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의 파괴를 들어 이른바 쉐르알리즘 즉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을 파괴하였다면(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해체미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보는것이 옳다. 이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볼수 있는 리유는 환몽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주인공의 의식과 그런 주인공의 의식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의식때문이 아닐가 한다. 초현실주의대가로 알려진 리상의 시와 소설작품들을 군데군데 인용함으로써, 또한 장절의 번호를 거꾸로 달았다든지 주인공의 이름을 엉뚱하게도 남성이라는 의미의 영어 man으로 하였다든지 하는 파격적인 구성 등은 그러한 환몽과 현실의 간격을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작품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화시켰다고 볼수가 있다.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령역과 무의식적령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기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대적실재, 즉 초현실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리성의 세계와 簫蘭??있다고 보는것이다. 《사업에서는 빼여난데 대인관계나 사교술에서는 풋바지저고리로 정평이 나있》는 어느 회사 직원인 man. 그는 백과사전을 페이지, 줄까지 통채로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천재라는 말로 불릴만한 존재이다. 그런 그가 회사에서는 돌리우고 마누라에게는 눌리고 사회적으로는 외면당한다. 겨우 티브이 오락프로에 나와 시청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심심풀이로 리용되다가 결국 버려지는것이다. 여기서 대결의 주체는 정의이다. 앞에서 지적한 순수의 다른 형태가 될것이다. 그리고 보는바와 같이 대결의 결과는 주체의 파멸로 잠정 결론이 난다.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병든 우리 사회의 세태를 비판한 셈이다. 여기에는 사회 격변의 시대 가치오류 혹은 가치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적인 인식도 내재되여있다. 그런 허무주의는 천재가 가장 필요한 지식산업시대에 천재를 죽이는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데서도 알수 있지만 리상이라고 하는 20세기 중반 허무주의시인의 시작품들을 간간히 인용함으로써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초현실주의기법의 도입에는 허무주의적인 인식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단 작품에서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man에 대한 청소부아줌마의 관심에서는 작가의 긍정적인 인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주류사회의 외면에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순수 대 세속의 대결이라는 김혁 소설의 구조를 업데이트시키면서 외연 확대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찾을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눈에 띄이는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정신이다. 김혁이 추구하고있는 새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초현실주의라는 기법적인 시도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효과를 획득하고있는것이다. 은근히 드러나는 허무주의는 자제해야 하겠지만 서사적인 긴장감의 지속적인 유지와 동일 분량에 보다 많은 정보를 수용하면서 립체적이고 다각적인 주제의 표현에 성공했다는 점은 긍정해야 할바이다. 이것을 나는 항상 문학의 참(에 접근하고자 하는 김혁의 작가정신으로 보고싶다. 돌이켜보면 김혁의 문학행위는 그러한 문학의 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에 다름아닌것이다. 3. 자기를 넘으라 중편소설 《불의 제전》은 우리 문단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판타지기법을 도입하고있다. 의사결정(투석처리)이나 범죄자 처벌의 방법(刺目刑, 《불기와 지짐》등), 불에 관련된 사실과 금기들, 불을 먹는 개 불독, 그리고 작품에 자주 나오는 화당(火塘), 화택(火宅), 남하족(南河族), 북산족(北山族), 곡성(哭城), 족장(族長) 등의 낱말들은 조건적인 설정이면서 동시에 일부는 고대 부족사회에서만이 존재했던 개념들이다. 판타지이면서 다분히 신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설정이라 하겠다. 구태여 명칭을 붙인다면 판타지력사소설이라 부를수 있지 않을가 한다. 끊임없이 새것에 도전하며 문학의 참(에 다가가려는 또 다른 노력의 소산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대결구조에서는 다시 《적(笛)》의 그것에 돌아간다. 다만 이번에는 명(스승)과 진(제자) 즉 《적(笛)》에서의 스승과 제자가 대결의 공동주체가 되고 족장과 장로들이 대결의 객체가 되여 얼마간의 변화를 보이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춤 즉 예술을 중심으로 대결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부터 이웃부락 산북마을의 춤사위를 배우기 위해 담을 넘어갔다가 잡혀 척목형을 당하는 명, 무용경색에서 돈에 의한 부정심사때문에 우승을 빼앗기는 진과 같은 시각에 일어난 어머니의 죽음, 교, 염 등 화신무용단 무용수들의 리탈, 애인 유의 처형과 죽음 등 여러가지 시련들은 결국 순수와 세속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모든 고통과 분노를 이겨내고 불과 한몸이 되는, 그래서 인간에게 불을 주는 경지, 그것을 김혁은 예술의 극치라고 보는듯하다. 순수와 세속의 대결을 통한 순수에의 지향, 그것은 당연히 가치있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여러 작품을 통해 하나의 지향을 반복 풀어나간다는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제한 혹은 구속할 우려가 있다. 이 작품에서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낯설게 하기의 시도가 엿보이고 또 내용적으로도 곡성(哭城)을 사이에 둔, 원래는 같은 부족이였다가 력사적원인으로 분단된 두 부락의 관계설정, 부락민간의 교류와 비밀래왕에 반해 두 부락 통치자들의 정치적인 갈등 같은것을 통해 조선민족의 분단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것 등 작품의 의미확장을 위한 시도들이 보이지만 문제의식은 순수에의 지향,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며 소외시키는 현대사회 가치의식의 타락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여있다. 작가 김혁으로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더 들 경우 김혁 소설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주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또 다른 문제의식의 발견과 제시에 영향을 주게 되며 결국 사상의 페쇄를 야기시킬수도 있다. 비록 이 같은 주제의식의 집착이 작가 자신의 경력과 경험의 문제에서 비롯된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좀더 개방적인 시각으로 주제발굴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가 한다. 그래서 나는 김혁에게 자기를 넘으라는 충고를 주고싶기도 하다. 우리 문단의 중견이 되여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소설가로서 사회와 민족과 력사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 장춘식(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연변문학 2006년 8월호          
190    [소설가가 쓴 시- 5] 비속을 가다 댓글:  조회:2508  추천:38  2010-03-11
      비속을 가다  김 혁   동행도 없이 우장(雨装)도 없이 홀로 비속을 가다  비살이 주렴 드리운 불밝은 창의 려염집에 들려 잠간 비를 긋고 싶지만 우뢰로 잠들려는 라태를 깨우며 번개로 련민의 꼬리를 톱질하며 비속을 가다  저 낮은 처마밑에 높은 목을 꺾고서 숙명을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세찬 비의 탄주(彈奏)속을 홀로 가는 내가 결코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연변문학” 2010년 2월호                                                                                                                                               
189    인간화합의 무한한 가능성 댓글:  조회:2921  추천:24  2010-03-02
    인간화합의 무한한 가능성 - 김혁의 단편소설 "해가 서쪽에 뜬다면" 리혜선   제2회 윤정석아동문학상 산문부분 후보작에는 아동소설 "까마귀야 까마귀…", "진달래꽃이 피였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두만강의 아들", "운무의 저쪽", "대결", 동화 "팔자수염대통령과 맺은 계약", 수필 "봄은 어디에서 올가요?", "솔고개"가 올랐다. 상기 아동소설들은 주제 및 형식면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일부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지만 또한 나름대로 한계점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입선에서 탈락했으며 최종심사결과 김혁소설가의 아동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 당선되였다. 아동과학환상소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한 가족이 “그린 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고뇌를 안고 가족 화합을 시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스토리로 한 소설로서 착상이 특이하고 상상이 기발하다. 용이의 엄마와 아빠는 리혼을 하고 석달에 한번 꼴로 용이를 만난다. 용이의 엄마와 아버지는 서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몰라도"라는 말로 결별을 선언하였던것이다. 용이는 학교에서 있은 우주웅변행사에서 ““그린 별””관광 가족티켓을 상으로 타자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그린 별””로 엄마와 아버지의 관광을 유도한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순간 용이는 서쪽에서 뜨는 해를 마주한 아빠와 엄마에게 가족의 화합을 간절히 호소한다. 완정한 가정에 대한 용이의 간절한 소망과 굳은 의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한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아이의 순진한 마음으로 인간의 화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고있다. 작품은 과학환상적인 수법과 초현실적인 수법이 혼합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린 별”이라는 특이한 공간에서 가족의 화합을 위한 용이의 고심에 진실로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부차적인 인물로 부모를 리별한 “그린 별”의 리산가족인 그린3세의 고통을 그려내서 더욱 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품은 “그린 별”이라는 이 특수한 공간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들을 잘 활용했기때문에 묘사와 서술이 자연스럽고 대담해서 인류에게는 생소한 별나라와 별나라 외계인들이 독자들에게로 생생하게 다가오게 한다. 일부 허점이 보이고있다. 작자는 “그린 별”이란 이 특수한 환경의 신빙도를 강화하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일부 중요한 부분을 놓친 느낌이 든다. 례를 들면 용이가 안고있는 개인적인 고통과 부모를 리별한 그린3세의 고통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아버지와 엄마로 엇바뀌는 공간의 변화를 독자들의 시선에 보다 합리하게 펼쳐주지 못한 점 등이다.   리혜선 (소설가)  
188    리화림 녀사 댓글:  조회:3650  추천:30  2010-02-24
  .  칼럼 .   리화림 녀사 김 혁   30년대의 리화림   1 10대부터 문학에 심취되여 이러구러 량산하다보니 그에 따라 받아안은 문학상이20여차는 된다. 수상마다 사연이 있고 감회가 있겠지만 그중 잊을수없는 상이 화림신인문학상이다. 나는 1994년 아동중편소설 “거북구슬”로 제3차 화림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상을 잊을수없는건 나의 첫 중편이고 첫 력사소설이며 또 관행대로 그 상의 수상을 계기로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아동분과에 입회할수 있었기때문이다. (지금은 소설분과에 몸담그고 있지만 애초에 나는 아동분과로 작가협회에 입문, 후에 나의 직성에 맞는 쪽으로 분과를 바꾸었다) 리화림녀사를 만나본것은 연변일보사에 입사하여 문화부기자로 뛰던 1994년경이였다. 대련시조선족문화관에서 조선족민속절을 개최했는데 취재차로 대련에 갔다가 그이의 존안을 뵈였다. 민속절이 열리는 운동장의 가녁에 곤색옷에 하얀 운동모를 눌러쓴 가녀린 몸매의 한 로파가 앉아있었는데 역시 나처럼 화림문학상을 수상한 대련의 한 문학도가 그가 바로 리화림할머니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줍게 다가가 연변에서 왔으며 화림문학상의 수혜자라고 인사를 드렸다.. “연길에서 왔다고?” 반색하며 할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말그대로 신인때이라 어리뜩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할머니와 몇마디를 나누지 못했고 사진 한장도 남기지 못하고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존함이 나오면 당시 하얀 운동모, 안존한 얼굴의 로파가 떠오르군한다. 2 1932년 4월 29일 아침, 상해의 홍구(虹口)공원.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기념행사가 열리는 식장에 스프링 코트 차림의 남자와 세련된 양장 차림의 한 젊은 녀인이 도시락과 물통을 들고 들어섰다. 녀인은 남자가 공원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것을 확인한 다음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날 상해는 발칵 뒤집혔다. 스프링코트차림의 남자가 도시락 폭탄을 던져 상해주둔군 일본군 총사령관 시로가와 대장 등 일본인 수십명이 폭사하고 부상을 당한 거사가 발생한 것이다. 사건의 주인공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였다. 그날 윤봉길을 도와 삼엄한 검문검색을 통과한 양장을 한 27살의 녀인이 바로 리화림이였다. 1932년, “한인애국단”은 두차례 테러작전으로 일본침략괴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세인을 놀래웠는데 윤봉길 폭탄투척사건 이 일기 몇달전인 1월 8일에는 리봉창의사가 도꾜로 건너가서 일본천황 히로히도를 요격하여 혼비백산시킨바 있는데 당시 김구의 명을 받고 리봉창의사가 폭탄을 숨겨 운반한 그 특제 “훈도시”를 만들어준 사람 역시 리화림녀사였다. 원체 윤의사의 홍구공원 의거에는 리화림 녀사가 윤의사와 부부로 변장해 식장에 들어가기로 돼 있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사전에 공원내 지형을 살펴보고 거사 지점까지 잡아놓았다. 그러나 이 계획은 리녀사가 일본어를 잘 모르는 데다 두사람이 함께 행동하면 로출될 념려가 있다는 념려로 취소되고 결국 윤의사 혼자 거사하는것으로 결정됐다. 리화림 녀사는 홍구공원거사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직접 개입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항일사에 두고두고 전해질 두거사에 직접 참여한 력사의 증인으로 되였다.   윤봉길 의사  리봉창 의사 리화림은 1905년1월 6일, 평양에서 태여났다. 본명은 리춘실,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원학교에 다닐무렵, 평양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력사문학연구회에 들어가 사회주의사상을 익혔다. 열네살때 "3.1"운동에 참가했으며1927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 3월 압록강을 건너 중국 상해로 갔다. 상해에 도착한 리화림은 리동해라고 이름을 바꾸고 백범 김구가 이끄는 애국단에 자원했다. 리화림은 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조직의 부담을 덜기 위해 나물장사, 빨래, 수놓기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푼돈을 모아 활동경비로 썼다. 그러면서 밀정 처단, 연락활동 등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김구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비서로 늘 가까이서 일한데서 두 사람이 애인 사이란 소문이 날 정도였다. 테러단으로는 조선의 해방과 혁명을 이룰수 없다는 “고민”으로 계속 함께 싸우자는 김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혁명의 기지 광주로 떠났다. 1932년 늦가을, 리화림은 의열단의 추천을 받아 광주 중산(中山)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했다. 중산대학은 손중산이 세운 종합대학으로 본래 광동대학이였다가 손중산의 사후 그를 기리기 위해 중산 대학으로 이름을 바꾼 곳이다. 중산대학에는 조선인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그 중 대부분이 광주봉기에 참가할 정도로 혁명운동의 산실역할을 했다. 리화림은 법학부에서 2학기동안 공부한뒤 의학부로 옮겨 대학부속병원 견습간호사로 일하면서 의학공부에 메진했다. 한편 1935년 7월, 남경에서는 김원봉(金元鳳)이 의열단을 비롯한 5개 단체를 통합하여 민족혁명당을 창립했다. 김구의 애국단과 중국공산당 소속 조선인이 참여하지 않아 명실상부한 민족유일단은 못 되었지만, 중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여러 세력들을 통합한 민족혁명당의 의의는 매우 크다. 민족혁명당은 1942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과 함께 림시정부의 량대 축을 이룬다. 리화림은 1936년 1월 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남경으로 갔다. 남경에서 리화림은 민족혁명당 부녀대 부대장직을 맡아 주로 의료보건사업에 주력했다. 부녀대는 조선녀성의 조직화, 중국녀성들과의 통일전선결성을 목표로 항일선전활동을 폈다. 이때 리화림은 리집중과 가정을 이룬다. 중일전쟁이 한창인 1938년 10월 10일, 한구(韓口)에서 조선민족전선련맹의 무장부대로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였다. 조선민족전선 연맹은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 조선민족해방운동자연맹(김성숙 등), 조선혁명자연맹(유자명, 유림), 조선청년전위동맹이 련합한 좌파연합체다. 그 무렵 김구는 한국국민당(김구), 한국독립당(조소앙 등), 조선혁명당(지청천, 일명 이청천 등)등이 모인 우파연합체 광복단체연합회를 이끌고 있었다. 1939년 3월, 이회림은 조선의용대 본부가 옮겨가 있는 계림으로 가서 부녀대 부대장이 되였다. 당시 조선의용대는 300여명의 대원이 3개 지대와 부녀대, 3.1소년단으로 편성되여있었으며 부녀대의 주된 활동은 선전사업이였다. 조선의용대의 선전활동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던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적의 진지 바로 앞까지 접근해서 “염전반전(厭戰反戰)”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공작을 벌렸고 항일투쟁정서를 높이는 가극을 공연하기도했다. 이같은 선전활동에서 리화림과같은 녀성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다. 1940년 11월 열린 조선의용대확대간부회의는 국민당이 소극적으로 항일하는 형세하에 조선의용대는 팔로군의 항일근거지로 가야만 전도가 있다는 견해로 합치되여 화북지방으로 주전장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우선 20여명의 선발대가 락양으로 파견되었는데 리화림은 이 선발대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이때 리화림은 전신무장을 하고 일본군진지 앞에 몸을 숨긴 채 메가폰을 들고 일본군에게 선전하거나 삐라 같은 선전물을 적 진지 안에 뿌려넣는 등 무장선전전을 수행한며 락양으로 향했다. 1942년5월에 있은 반소탕전후 조선의용대의 활동중심지는 팔로군 129사단이 주둔중인 태항산(太行山)으로 옮겨졌다. 리화림은 조선인 간부들을 위한 훈련반에 들어가 중국혁명사, 중국공산당의 항일방침 등을 공부하고 부녀대 대장이 되였다. 그무렵 태항산 근거지의 생활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적들의 진절머리나는 소탕속에서 전사들은 군사훈련도 하고 정치문화학습도 하였다. 당시 의용군부녀대 대장 겸 의사로 있은 리화림도 사회과학원 간부양성반에서 반년동안 배우면서 전투생활을 하였다. 곡식이 제대로 나지 않는 산악지대여서 보통 강냉이가루에다 겨를 섞어 먹었는데 강냉이가루마저 없으면 겨만 먹어야 했다. 조선의용군은 전투가 없는 날이면 감자밭을 일구고 모택동의 대생산운동에 발맞춰 방직공장, 병원, 리발소, 상점 등을 차려서 직접 운영하는 자립활동을 했다. 태항산 기슭에는 돌미나리가 많았다. 리화림은 녀성대원들을 이끌고 돌미나리를 캐여 김치도 담그고 볶아서 반찬을 만들었고도토리를 주워다가 삶아서 가루를 내어 먹기도 했다. 하루는 나물을 캐면서 노래를 지어 동료 대원들에게 가르쳐주고 그 날 점심시간에 합창공연을 했다. 민요「도라지」에 맞춰 가사를 새로 지은 「미나리타령」이 그것이다.   미날,미날,돌미나리 태항산 골짜기의 돌미나리 한두 뿌리만 뜯어도 대바구니가 찰찰 넘치누나 에헤야 데헤야 좋구나 어여라 뜯어라 지화자자 캐어라 이것도 우리의 혁명이란다 대원들은 모두 이 노래를 좋아했다. 특히 “이것도 우리의 혁명이란다”하는 구절을 마음에 들어했는데 당시 대원들이 갖고 있던 “황무지 일구고 산나물 캐는 것이 혁명인가”하는 회의감을 떨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리화림은 1943년 봄부터 병원에서 일하다가 그해 조선의용군이 연안으로 이동하자 1944년 4월 연안으로가 다음해 1월 연안 의대에 입학하여 못다한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리화림은 연안에서 렬화충천하는 대생산운동에도 참가하고 군정대학 교장 수하에서 자료간사사업도 하였으며 조선의용군 무정총사령의 파견을 받고 중국의과대학에서 공부도 하였다. 공부와 생산로동을 병행하는 고된 생활이였지만 리화림은 근면과 열성으로 이를 감당해나갔다. 뿐만아니라 격주에 한번씩 현지 주민들에게 당 정책과 시사문제를 해결하고 보건위생상식을 가르쳤다. 서툰 중국어이긴했지만 주민들은 그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있어 했다. “일본놈들은 언제 투항하나요?”, “국공합작을 또 하나요?”에서부터 “감기는 왜 걸리나요?” 등등 벼라별 질문을 들이대도 리화림은 짜증내는 일이 없이 일일이 해설해 주군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뒤 조선의용군은 동북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그러나 리화림은 그대로 남아 의학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무정은 리화림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동무를 의대에 보낸건 앞으로의 우리 혁명사업에 전문훈련을 받은 의학자들이 필요하기때문이요. 지금 항일전쟁이 승리했지만 우리앞에는 더 간고하고 복잡한 혁명과업들이 나서고 있소. 동무는 절대 의학공부를 중도에 폐하지 말고 잘 배운다음 부대에 돌아오도록 하오. 그때 가서  내가 꼭 동무를 데려가겠으니 안심하오.” 1946년 11월 21일  리화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뛰여들었고 전후에는 새중국의 의료보건사업에 정력을 몰부었다.  1952년 와방점 후방병원 기술과 과장으로, 심양의사학교 부교장으로, 국가교통부 위생처 기술과장으로 일하였으며 1956년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는 연변위생학교 교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처 부처장, 위생국 부국장을 지냈다. 문화대혁명시기 박해를 받다가 1978년에 중앙조직부의 도움으로 억울한 루명을 벗고 연변자치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기관당위 상무위원으로 있었고 대련시정부시찰원, 대련시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84년에 리직휴양했다. 리직후 리화림은 소박한 가장집물에 1950년대부터 입어오던 옷을 입어가면서 아껴먹고 아껴써서 알뜰히 모은 로임 2만여원을 1985년 한번에 당비로 바쳤으며 1986년에는 아동작품작가들을 장려하도록 1만2천여원을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아동문학상기금회에 기부하였다. 스무살 꽃다운 처녀에서 아흔살 할머니가 되기까지 혁명가로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족적을 남겼던 리화림은1999년 2월 10일 14:30분에 대련에서 서거, 향년 95세였다. 리화림은 림종전에도 유언을 남겨 자기의 전재산인 5만원을 대련시조선족학교에 기부하였다. 3 일전 제9회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소설, 수필, 시,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20여부가 접수되였는데 최종 전정옥의 수필 “빛과 그림자”와 조옥자의 수필 “잊혀진 다듬이소리”가 선정, 산재지역에서 온 두 신인이 감격스럽게 상을 받아안았다. 리화림 녀사의 생전 숙원이 오늘도 이어져 빛을 발하는 장면이였다. 그동안 력사의 뒤안길에서 민족을 위해, 주의(主義)를 위해 위해 자신의 안일은 초개와 같이 여기며 산화(散花)해간 선렬들이 있다. 저 작열하는 태양보다 뜨거운 피로 강산을 물들이며 스러져간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어 오늘의 행복은 가능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우리의 공동체가 흔들림을 의식하고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조금씩 잊혀져만 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 조선족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선각자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업적을 알고 마음 깊이 되새기면서 민족의 번영과 발전에 전역을 경주해야 할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소중함에 대하여 다심금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종합신문" 2010- 2- 22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87    윤동주라는 아이콘 댓글:  조회:3702  추천:55  2010-01-28
  윤동주라는 아이콘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 련재를 시작하며       소설이 련재된  "연변문학" 지         조선족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1월호부터 윤동주의 생애를 그린 장편 “시인 윤동주”의 련재를 시작했다.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였다. 고향이 낳은 시인윤에 대한 경모의 마음으로 그동안 윤동주 관련 까페(http://cafe.naver.com/dz.cafe)도 개설하면서 윤동주의 생애를 소설화하려는 작업을 한번 해보려고 오래전부터 뼈물러 먹었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윤동주 관련 론문으로 석사, 박사가 된 사람만도 50여명 그에 대한 연구론문들이 수백편 쏟아져 나왔음에도 그의 인생을 그려낸 소설작품은 1992년에 한국에서 나온 “윤동주”가 겨우 한편 그것도 방송드라마를 각색한 드라마소설이였다. 그 공백이 나에게 어떤 사명감이 가미된 창작충동을 주었다.     나의 모교 용정중학(원 대성중학교)에 경립된 윤동주 시비 앞에서   윤동주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여사 부부와 함께   윤동주를 중국에 맨 처음 알린 일본 와세다 대학 오오무라 교수(가운데)와  필자(맨 오른쪽)   "윤동주 평전" 일본판 역자 아이자와 가쿠씨와       그 와중에 연변작가협회에서 이 작품의 기획을 제7회 연변작가협회계악작가작품으로 선정, 작품에 대한 명분을 더해주어 고마왔다. 막상 집필에 앞서 윤동주라는 걸출한 인물을 나의 졸필로 그려낼수 있을가하는 부담감에 창작 슬럼프에 시달렸다. 근 일년간 한글자도 적어내려가지 못했다. 반면 윤동주 관련 평전, 론문, 전기물과 력사서적 그리고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 문학작품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한국으로 출국해서도 윤동주관련 서적들을 모조리 사들고 왔는데 그렇게 수집하고 읽은 책이 저그만치 60여권은 되였다. 그동안 윤동주시인의 친녀동생인 윤혜원녀사를 두번 만나 장시간의 취재를 가졌고 “윤동주 평전”의 일본판 역자 아이자와 가크씨(번역가의 성함이 어쩌면 나와 이름이 꼭같은 혁, 윤동주라는 위인을 통한 인연이 참으로도 절묘했다)를 만나 창작에 수요되는 자료를 얻고 위인의 생애에 대한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연변일보” 문화부기자로 뛰던시절, 윤동주 생가의 복원과 윤동주 탄생 50주기 학술회를 취재했고 윤동주를 연변에 처음 알린 일본학자 오오무라교수님과도 여러번 만나 대담을 가졌고 명동학교의 복원, 일본과 한국에서 일고있는 윤동주 붐에 대한 취재 등 그동안 윤동주관련 신문기사도 적지않게 펴냈었다.    지금 윤동주의 시비가 경립되여있는 룡정중학(원 대성중학)이 나의 모교이고 , 윤동주일가가 룡정으로 이사와 거처를 잡은 영국더기에 소학시절 학교의 자류지가 있어 교직원들이 함께 추수를 다녔고, 윤동주의 친구 문익환이 례배를 다녔던 룡정 중앙교회 옛터가 내가 문학도시절 설익은 소설작품을 들고 선배들을 찾았던 룡정시 문화관자리이며, 아침마다 조깅을 했던 중심소학교가 원 서전서숙의 옛터였다. 이렇게 룡정에서 나서 자란 내게서 윤동주의 숨결은 어디나 서려있었다. 집필하는 동안 윤동주의 생가며 묘소들을 5,6차 다녀오면서 윤시인님의 자취를 다시 밟아보는등 이 동안은 매일이 시인의 혼령과 함께 해온 나날들이였다. 그렇게 근 2년간의 신고끝에 장편을 마무리했다. 45만자, 련재를 하면서도 계속 탁마를 하고있는데 적당한 기회에 국내외에서 책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민족시인”, “저항시인”, “민족시인” 등등으로 윤동주에게 붙는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그의 시는 어떤 민족에게 한정된특수한 상황하에서 지어진것이지만 그의 의식은 창작당시의 상황을 훨씬 릉가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로 승화되여 있다 그러므로 그가 적어내려간 메시지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과거”의 것이 되는것과 같은 유한한것이 아니라 무한성을 가진 언제나 “오늘”의 소리 그리고 “미래”의 소리로 남아있다. 그의 시가 시대를 넘어 인간의 마음에 강하게 인상과 감동받기를 계속하고 있기때문이다. 오늘날 윤동주는 단 시인이라는 수식을 뛰여넘고 있다. 윤동주는 어떠한 암울한 시대에서도 자포자기하거나 포기하지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고 그 느낌을 노래하면서 희망을 표출해 냈다. 이 처럼 시대를 넘어 민족문제를 가로질러 미래를 향한 근본적인 목표로 한 작품이기에 개인의 고뇌와 시대적 압박에 의해 생성된 시이지만 그것의 열매는 그 틀에 그치지않고 더 높고 더 높이 향기를 뿜고 있는것이다.    그 “위대함”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않는 아이콘을 그려내는 벅찬 작업을 완수할수있게된데 대해, 그리고 그 작품이 시인의 타계와 조명붐에 편승할수 있어 뿌듯하다. 이제 시인의 고고한 삶과 정신은 이미 내 삶속에 한발자욱 깊게 들어와 있다.     저자 김 혁          
186    조조가 온다 댓글:  조회:2942  추천:41  2010-01-21
  . 칼럼 .   조조가 온다 김 혁       1, 내 인생의 책 10권을 굳이 뽑으라면 그중에 단연 “삼국연의”가 있다. 있을뿐더러 그 순위가 세손가락안에 꼽힌다. 어릴적 상해미술출판사에서 손바닥 크기의 련환화로 된 “삼국연의”가 40권으로 출간되였는데 나는 한권한권 모조리 사들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세트로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한주일 혹은 보름에 한권씩 나온데서 그 책을 기다리는것이 어린 나에게서는 그야말로 “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도 무색할 지경으로 일일이 여삼추였다.” 그렇게 모은 책은 지금도 나의 서가에 색바랜채 깊숙히 꽂혀있다. 나는 “삼국연의”에 편집광(偏执狂)적으로 빠져든 매니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관련 서적만 나오면 모조리 사들이곤한다. 중앙TV”백가론단”프로에서 시리즈로 강연을 가졌고 책자로도 묶여져 나오면서 삼국열풍을 주도한 하문대학 교수 역중천(易中天)의 “품삼국(品三国)”은 물론 “정품(正品)삼국”, “삼국묘설(妙说)”, “삼국십강(十讲)”등 연구저서들이 서가의 전문코너를 만들정도로 수두룩하다. “삼국연의”를 각색한 드라마며 오우삼감독의 2부작 영화 “적벽”, 애니메이션으로 된 일본판 삼국지영화 지어 중국의 명창 선전방(单田芳)의 삼국연의 평서(评书)도 CD로 갖추어 놓았다. 뿐만아니라 삼국지관련 전문 블로그 “삼국지에 살고 삼국지에 죽다(http://blog.ohmynews.com/sgz333)”도 개설하여 운영하고있다. 일전에는 흑룡강민족출판사에 의해 “삼국연의”가 다시 완역되였는데 이미 중국판본, 한국판본, 연변인민출판사의 80년대 판본으로  갖추었음에도 또 한질을 사들이고 서로 대조하여 읽노라니 기락무궁(其乐无穷), 그 재미가 끝날길 바이없다. 한국의 리문렬, 장정일 등 소설가들이 현대인들의 취향에 걸맞게 삼국연의를 번안하여 재창작했는데 나 역시 그들처럼 언감 “삼국연의”를 한번 번안해보려는 막연하나마 거창한 꿈을 내내 가지고있다. 2, 그런 나와같은 “삼국연의” 매니아들을 흥분케하는 사건이 일었다. “삼국연의”의 주역 조조의 무덤이 발굴된것이다. 무덤은 하남성 안양(安阳)현 안풍(安丰)향 서고혈(西高穴)촌에서 발견, 하남성문물국은 발굴 작업을 하면서 력사, 고고, 고문학 방면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수십차례의 현장 검증과 토론을 거쳐 조조의 묘라는 결론을 얻었다.이번에 발굴된 무덤은 지하 15m에 위치한 갑자(甲字) 형태의 구조로 총 6개의 묘실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 면적이 740㎡에 이른다고 한다. 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 200여 점이 출토됐으며 특히 위 무왕이 사용하던 창, 돌베개 등의 명문(銘文)도 찾아냈다고한다. 진위논란이 일고있지만 삼국연의 매니아들에게는 하늘같은 기쁨을 선사했고 이에 편승해 전국 나아가 아시아지역에서 “삼국연의” 열풍이 다시 거세차게 일고있다. 3, "조조"하면 사람들은 거개가 간웅(奸雄)의 대명사로 알고 있다. 중국의 국수(国粹)인 경극에서도 조조는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역신(逆臣)의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실 조조만큼 력사적으로 오해를 받는 인물도 드물것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조조의 이미지는 삼국시대가 끝난후 1000여년도 지난 원말명초에 살았던 라관중이라는 글쟁이가 쓴 소설속에 나오는 조조이다. 재미있는 소설은 딱딱한 정사보다도 강한 흡인력을 지녔고 그리하여 어찌보면 동양 최고 영웅 이였던 조조는 악의 화신으로 우리들의 머리속에 각인되게 된것이다. “삼국연의” 매니아로서 깊이 읽을수록 느끼게되는것은 라관중의 소설도 력사에 바탕했지만 그 당시 정치 권력과 야합할수밖에 없은 일종의 정치 교과서였다는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뛰여난 경전이였기에  조조 또한 억울하게 너무나 오래동안 오명을 뒤집어 썼던것이다. 소설속 허구를 걷어내면 조조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조조는 결단력과 실행력이 뛰여난 인물로서 법령과 상벌을 엄격하게 집행했고 인재를 적극 등용했으며 겸손한 태도와 본받으려는 자세를 지닌 흠잡을데 없는 주군이였다. 이뿐만 아니다. 조조는 자신만의 안목을 키우고 자신감으로 도전하고 작은것은 버릴 줄 알며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을줄 알았다. 이러한 덕성때문에 전란이 분분한 삼국시대에 가장 먼저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를수 있었던것이다. “우정”과 “신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략”과 “처세술”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진리와 교훈을 안겨 주는 “삼국연의”는 오늘도 베스트셀러로 서점가에 넘쳐나고 잊혀졌던 영웅 조조도 다시 사람들사이에 회자(膾炙)되고있다. 이제라도 조조를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볼 일이다.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10- 1-18   김혁 문학블그: http://blog.naver.com/khk6699     모아민 드라마三國演義(삼국연의)주제곡
185    김혁의 판타지소설 "불의 제전" 댓글:  조회:2860  추천:66  2010-01-12
  판타지의 매력 김혁의 판타지소설 "불의 제전"  김 호 웅   김혁의 《불의 제전》은 판타지(fantagy) 소설이라 이를 순문학으로 볼수 있는지 쟁론할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상상이 빈약하고 언어가 거칠고 메마른 오늘의 문단사정을 념두에 둘 때 현실에 안주할줄 모르는 김혁씨의 대담한 실험정신과 이 소설에서 보여준 풍부한 상상력, 미끈하고 윤택한 언어구사력 및 우리 민족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특별히 주목된다.  《불의 제전》을 보면 적봉(赤峰)을 성산으로 우러르는 남하족(南河族)과 산북족(山北族)이 곡성(哭城)이라는 담을 사이 두고 은연중 갈등과 마찰을 빚어내고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남하족의 진(眞)이라는 화동(火童)의 눈물겨운 성장사와 그의 비장한 운명을 다루고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화신무(火神舞)에 열광하게 되고 산북족의 유(柔)라는 처녀애와 열연에 빠지기도 하며 월경(越境)하여 산북의 불씨를 가져다가 가가호호에 나누어주는 등 여러 가지 남하족의 금기(禁忌)를 어긴 죄로 두 눈을 잃게 되지만 불과 회신무에 대한 집념은 버릴수가 없다. 나중에 진은 미친듯이 춤을 추고 북을 두드리면서 터져오르는 적봉의 용암속으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열반(涅槃)한다. 이 소설은 우선 불을 매개(媒介)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다. 상고시대 북방의 여러 부족과 삼한의 여러 나라가 봄, 가을에 있었던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飮酒), 가무(歌舞)한 국가대회》도 불을 둘러싼 군중의 광희(狂喜)로 이어진 제의(祭儀)였다. 그리고 불은 우리민족의 경우 신화에서는 왕권, 영웅탄생, 정화(淨化) 등을 의미하고 우리 무속이나민속에서는 열정, 정화를 의미했으며 우리 풍습에서는 생명력과 복(福), 벽사(辟邪)를 의미하고 유교에서는 개화(改火), 불교에서는 자기 멸각(滅却)을 통한 승화를 의미하였으며 력사와 문학에서는 위기와 정열을 의미했다.  《불의 제전》에서는 불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있는데 그 중에서도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멸각을 통한 승화의 의미에 포인트를 주고있다. 화신무에 열광하고 불속에서 열반하는 주인공 진의 형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것은 예술에 대한 집착, 열정적인 사랑, 만민을 위한 헌신성, 스승에대한 존경과 같은것들이다. 이러한 덕목들은 무지막지한 족장(族長)과 리해타산에 밝은 동료인 교(狡)와의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암시하는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국토의 분단을 극복하고 대동세계를 이루는 길은 우리민족 전체가 불의 세례를 받아 스스로를 정화하거나 재생해야 함을 암시하고있다.  이 소설은 작자의 해박한 지식, 환상적인 플롯, 장려한 언어구사와 깊이 있는 주제의 발굴로 말미암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84    괴재(怪才) 이재(異才) 기재(奇才) 댓글:  조회:3554  추천:40  2010-01-06
  . 평론 .   괴재(怪才) 이재(異才) 기재(奇才) - 김혁과 그의 문학 김룡운   김혁 그는 누구인가?   김혁은 문학에 대한 끈질긴 투혼(投魂)으로 이미 중국조선족문단에서 모두가 공인하는 중견작가로서의 작가적 위상을 튼튼히 굳혔다. 그는 우선 다산작가로서 우리 문단에서 글을 가장 많이 발표한 사람중의 하나다. 19세에 처녀작 "피그미의 후손들"을 들고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천부적인 기량으로 지금까지 "적", "천재 죽이기", "조모의 전설" "타인의 시간" 등 중편소설 40여 편과 "겨울유흥장", "어떤 개의 순애보", "마담의 전성시대" 등 단편소설 30여 편과 300여수의 시 그리고 200여 편의 수필, 칼럼을 세상에 내 놓았다. 게다가 중편소설집 "천재 죽이기", 르포집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등 단행본들을 합치면 그 량은 엄청나다. 30대 작가로서 이만큼 한 량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2003년에는 한해만도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2부를 발표 한외에 중편4편과 단편 2편을 발표했다. 한해에 이런 엄청난 수확을 거둔 것은 우리 문단에서 전례 없던 일이다. 그는 다산 작가일 뿐더러 다 쟝르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을 주로 하면서 시 수필 칼럼 아동문학 등 각 령역에도 족적을 남기며 골고루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1여년의 기자 생활중에서 1000여편에 달하는 기사도 발표했다. 창작기법의 창신에서도 언제나 맨 앞장에서 달려 쉐르알리즘 소설도 썼고 황당파 소설도 썼고 환상적 리얼리즘소설도 썼고 력사소설도 썼고 과학환상 소설도 썼고 추리소설도 썼다. 풍성한 창작은 찬란한 계관들을 안아 왔는바 해란강 수필문학상 아리랑 시문학상 장백산 시문학상 도라지 소설문학상 흑룡강신문 실화상 흑룡강출판사 동심컴 아동문학상. 라지오문학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한민족청년상 문단의 주요 상들을 거의 모조리 휩쓸이 하기도 했다. 김혁은 이미 문단이 주목할만한 탑을 쌓아 왔다. 그 탑의 진모를 살펴보는 것은 본인의 금후의 창작은 물론이려니와 우리 문단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결코 무의미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김혁은 창작에서는 누구보다 집요하고 창작욕구는 누구보다 강렬하고 창작에너지는 누구보다 풍부하다. 그의 가슴에는 이 세상에 대해 할말이 너무나 많다. 그것들은 뜨거운 암장으로 작가의 가슴속에서 굼실이다가 종당에는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변모하여 뿜겨져 나온다. 그 들끓어 번지는 암장은 어떻게 생기는 것 일가? 암장이 이루는 엘리멘트(요소) 내지 모체는 어디에 있는 것 일가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그의 인생프로필에서 찾는다. 지금까지 밟아온 그의 삶의 그라프는 한마디로 아픔이요 상처다. 불운한 출생과 학구적인 대학을 나오지 못한 음영에 짓눌려 남보다 큰 성적가리를 쌓아올렸음에도 소외된 삶을 내내 살아 온 사람.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가치는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확인과 가치에 대한 확인 그리고 그로부터 자아실현을 완성하고저 글 속에 파묻혀 인생을 탐구하고 문학을 탐구한다. 그 와중에 그가 벗으로 사귄 것이 삶과 문학의 우상이였던 리상(李箱)이였고 번뇌와 고통을 힘과 용기와 신심으로 변화 시켜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였다. 상처와 아픔은 김혁 문학의 뿌리다. 누군가는 상처는 무궁한 문학적 자산이라고 하였다. 삶의 길우에는 복병(伏兵)같은 상처의 돌부리가 무수히 있어 우리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린다. 우리는 그 덫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풍경을 상처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혁은 자기의 인생 궤적우에 무수히 쓰러져 잇는 고통스런 시간의 쪼각들을 보면서 그 부서진 시간마다에 정성들이여 묘비를 세우고 묘비마다에 자기 나름대로의 비문을 써넣고 있다. 그 비문에서 이 구슬프고 고매한 가락을 뽑고 가 붉은 피를 토하고 가 네온사인이 드리운 거리를 방황하고 이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하여 망망한 인간세상에서 헤염치고 이 오욕의 껍질을 벗고 승천하고, 불협화음에 질식하여 의 비극이 펼쳐진다. 그러나 김혁은 결코 주어진 삶 앞에 꿇어앉지는 앉는다. 그는 가치의 혼돈에 방황하고 도전하고 대전하고 잇으며 그 와중에 진정한 생명가치를 찾고 참다운 인성의 탑을 세우려 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인식은 리얼리즘문학만으로는 체현할수 없는바 그의 문학은 포스터모더니즘 내지 쉐르알리즘 쪽으로 경로 하게 된다. 포스터모더니즘의 리론가 모르스 페캄은 에서 이라고 말하며 고 주장한다. 모르스 페캄의 이 말은 김혁의 작품을 리해 하는 고리가 된다. 혼돈과 질서를 바로잡는데 엤어서 파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파괴가 거대한 파워를 발산하고 일반에게 잘 리해되지 않을 때 괴재(怪才), 이재(異才) 라는 말을 듣게 되며 그 파괴가 문학 예술적으로 승화했을 때 기재(奇才)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편 또 해당시대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문학예술에서의 괴재 이재 기재란 해당시대의 사유와는 벗어나가면서 엉뚱한 사유로 엉뚱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 하겠다. 조선문학사에 나오는 김시습과 허균, 김립이 그렇지 않았던가. 중국문학사에서는 또 리백이 그렇지 않았던가. 오늘 이 짧은 글에서 김혁의 모든 작품들에 대해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는바 몇편의 대표작들을 골라 례문에 올려 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사뮬레이션(모의실험)이라고 볼 수있는 , , , , , , 등이 속한다.   새로운 창작기법의 부단한 추구   1,력사 소설- “적”(도라지 94년 5호)은 력사제재로 현실제재를 체현하고 있다는데서 기법 상에서 새로우며 력사이야기로 오늘의 구겨진 삶을 매질하고 있다는데서 현실적 의의를 가진다. 금전과 권력의 소외를 받아 온 작자의 작품에는 누구보다도 금전욕과 권세욕에 대한 비판이 짙게 깔려 있다. “적”은 시종 아련하고 연연한 언어외피로 먼 력사이야기를 기술하다가 급기야는 하나의 고결한 인덕의 인간을 우뚝 세워놓고 오늘의 비뚤어진 삶에 강타를 안긴다. 금전만능과 권세지상이라는 거창한 괴물이 소설 앞에서는 한 낱 하잘것없는 존재로 무릎을 꿇고 만다. “적”에서 작자는 옛 악공(樂工)의 예술에 대한 구도(求道)의 길을 펼쳐 보이는 작업을 통해 현실 속의 금전과 권세와 명예를 위해서는 추구도 버리고 그 어떤 비렬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구질구질한 인간들과 그들을 배태 한 세태에 대해 성찰, 질타하고 있다.   2,황당파 소설- 표현주의에 뿌리를 둔 황당파는 그 력사가 거의 80년이 됨으로 황당파소설이란 개념이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상과 늦게 대화를 나눈 중국조선족문단으로 볼때는 낯선 개념이 아닐수 없다. 김혁은 90년대 중기에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도라지 95년 4호)을 내놓아 우리의 소설문학에 신선한 활력소를 주입해 주었다. 카프카에 의해 고봉에 이른 황당파소설의 특징은 인간의 의화와 소인물의 고통, 공포의 정서를 다루며 황당한 정절과 진실한 세절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에 굳이 황당파소설이라고 이름 붙힐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러한 특징을 너무나 잘 체현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주인공 방황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전도유망한 음악의 길을 걷다가 황금전이라는 녀자의 재부에 환혹되여 예술의 길을 떠나 속세의 길을 걷게 된다. 세상을 음악의 곡조처럼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주인공에게 있어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상품경제시대는 물욕 명예욕 도전과 암투로 득실이는 가혹한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절망하고 방황하던 끝에 마침내 바다를 영원한 안식처로 정하고 몸을 던져 한 마리의 인어로 변한다. 작중인물들의 이름은 모두가 뚜렷한 상징성을 띄고 있다. 방황하는 예술가와 금전만능의 대표인물과 사회의 병페를 보아내는 대변인으로 나선 사색 깊은 기자를 방황(彷徨), 황금전(黃金錢), 철인(哲人) 등 이름으로 상징화 했다. 이야기는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황당한 이야기 속에 물질만능시대에서 생성된 갖가지 의식형태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엄숙하게 깔려 있다.   3,초현실주의 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95년 5호)는 우리 문단에서 보기 드문 쉐르알리즘소설이며 김혁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소설에는 리상의 소설과 시가 여러 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김혁은 리상을 문학에서의 우상으로 모신다. 리상은 전통문학에 대한 요 요 이다. 그처럼 김혁도 소설에서 우선 파괴와 반역을 앞세운다. 이 작품에서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 난다. 소설 소제목달기에서 처음으로 9자로부터 거꾸로 마지막 -1에 까지 이른다. 정상적 법규를 파괴함으로써 첫 시작부터 자기 소설이 쉐르알리즘 소설임을 선포한다. 후기 구조주의 대가 츠베탕 토도로프는 구조주의적 연구의 자기 파괴적 특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서 김혁은 토도로프와 포옹한다. 주인공의 이름도 이왕과는 달리 영어로 되어있다. 남자라는 man. 필자의 독단인지 몰라도 주인공 man에 대하여 지식과 덕성으로서 골똑 찬 으로서의 인간이 아닐가고 생각해 본다. 이는 아이니 컬하게 붙인 이름일 것이다. 소설은 환몽과 현실사이를 넘나드는 정절로 한 공무원이 겪고있는 불행한 삶을 남다르게 보여 준다. 사업에서도 실력가, 지식소유에서도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천재. 그러한 인간이 회사의 버림을 받고 녀편네의 버림을 받고 사회의 버림을 받는다. 천재로서의 응분의 대우를 받을 대신 모든 것을 다 잃고 이 시대 순결무구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작품은 무게있게 뼈아프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면 김혁은 쉐르알리즘 소설을 쓰고싶어 썼을가? 아니다. 천재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천재를 살리기 위하여 이 작품을 썻던 것이다. 를 읽은 사람들은 작품에는 작자의 자화상 성분이 다분히 들어있지 않았나 느껴본다. 이 소설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고 이 소설에서 김혁이 가장 빼여지게 완성하고있는 것은 정신적 가치에 가해오는 물질적 가치의 횡포를 질식과 단절을 상징하는 으로 예술적처리를 한데 있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라며 누구나 하는 리상의 시구가 나오는 장절에서 주인공이 장면에서 숨막히는 무가내를 느꼈을 것이다. 주인공은 세상의 몰리해 속에서 천재로부터 정신질환자로 추락해 간다. 작자는 인간가치의 훼멸을 붓끝에 꿰 달고 세상에 흔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비관적인 호소가 아니다. 비극을 통해 비극을 극복하고 지식본위시대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삶의 제스처가 작품의 맥락 속에 보인다. 초현실주의에서 현실의 맛을 진하게 씹어보는 멋, 이것 역시 그만의 독특한 심미향연이 아닐가!   4,사이버 소설- “병독”은 우리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선을 보인 사이버소설이다. 언제나 새것에 민감한 김혁은 을 들고나와 사회의 을 없애려 시도한다. 은 불확실성, 몬따쥬수법,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불명확한 경계, 놀이성, 무작위성, 탈경전(脫經典) 등에서 추구를 보였기에 포스터모더니즘 계렬에 놓고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종 꾀한 것은 사이버문학의 특징으로 되고있는 놀이성이고 무작위성이다. 그리고 몬따쥬수법이다. 하나 하나의 장면이 몬따쥬이며 놀이이며 작위가 없는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이 바이러스에 걸려 추락한다. 작품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채팅 하면서 남긴 아이디고 되어있다. 애인 격이던 , 마음으로 추구하던 , 청매죽마 , 딱친구 이들은 모두 주인공 의 곁을 떠나버린다. 돈 많은 남자와 붙어먹고 남의 컴을 어거지로 가져가고 일본남자에게 시집간다. 지어 애인의 애완견조차 죽어 버린다. 한마디로 떠오르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허무 속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들의 추락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병독은 표면으로는 컴퓨터에 있는 것 같으나 실질 상에서는 작품중의 매 인간의 머리에 잠복해 있다고 짚어 낸다. 신 세대들의 무작위한 놀이를 통해 기성세대들의 부박한 엄숙주의, 기성세대들이 세운 기존질서를 충격하고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격과 풍자는 기성세대는 병들어 있다. 그 병은 배고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배픔은 식욕, 성욕, 물욕으로부터 오는 욕구불만일뿐더러 주요하게는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 신세대들의 질서없고 자유자재적인 생활상, 그 놀이성 속에 큰 상징적 의미를 띄고 있다. 작자는 사이버소설의 특징을 능란하게 살려 작품사이에 류행가요를 끼워 이야기의 맥락을 이어나가는가 하면 소제목 짜기에서도 컴퓨터 키보드의 모든 영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에서 간과할수 없는 것은 신세대들만의 조야한 언어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언어관습으로만 볼 것 아니라 비뚤어진 기성질서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스트레스의 해소와 반발의 표현을 위한 재치 있는 구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사이버제재 소설에 무감각하다 할 수 있는 우리 문단에서 맨 처음 나온 사이버제재소설로서 은 이례적인 매력을 뿜고 있다.   5,공포 소설- 새로운 추구에서 지칠줄 모르는 김혁은 이번에는 또 조선족문단에서 맨 처음으로 되는 공포설 “산장” (도라지 2003년 1호)을 내놓았다. 공포계렬소설의 제1탄인 소설에 대한 창작담에서 김혁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공포라는 액자속에 담는 이러한 작업들에서 단 개인취미에서 발설된 렵기위주의 흥감질이 아니라 산업화에 동조한 피페해진 우리의 농촌풍경. 리흔붐이 사회에 끼치는 심각성, 문화대혁명이 남긴 원자병 같은 후유증, 경쟁사회에 일그러진 고단한 자아와의 만남, 불신 시대의 너나의 일그러진 심태 등 심각한 주제의 숨은 메시지를 작품의 분위기에 아우르는 군형적인 감각으로 도출해내 자칫하면 싸구려로 읽혀질 작품에 깊이 있는 울림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피력했다. 소설가란 이야기 군이다. 이야기를 통해 비희고락을 발설하는 인간이다. 그 이야기가 구수하면 진짜 이야기 군이고 미미하면 엉터리라고 힐난을 받는다. 필자는 “산장을” 읽으며 김혁은 진짜 이야기 군이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공포에 대한 탐구는 필요 적실하다. 사실 인간은 공포 속에서 사는 동물에 다름이 아니다. 공포 속에서 인간은 본질적 내함을 파헤치고 그로부터 현실 삶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는 작자의 의도는 기발하고 좋은 것이다. 그 시도가 창작개성이 무마되고 있는 우리 문학에 새로운 충격과 신선도를 알게 모르게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필자는 작품의 작은 허점을 아량하며 작품과 악수하고 싶다.   6, 대화체 소설- 마냥 열광적으로 생신 한 제재를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 꿈꾸기에 김혁의 작품에는 맨 처음이란 말이 많이 붙는다. 맨 처음으로 사이버소설을 썼는가 하면 맨 처음으로 공포소설을 썼고 이번에는 맨 처음으로 대화체 소설을 썼다. 중편소설 “화두”(장백산 2003년 3호)로 새로운 창작의 화두를 던졌다. 김혁은 담이 크다. 언감생심 서술이라고는 없이 순 말로만 된 대화소설을 썼다. 장난인가? 결코 아니다. 그는 문체의 이러한 창신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우환의식이 담긴 대화를 끊임없이 펼친다. 그리고 그 대화 밖에서 각 인물 저 저마다가 겪는 각 류형의 이야기들을 만난다. 작품에서 김혁은 포스터모더니스가 아니라 알짜배기 리얼리스트로 주제를 밀어 나간다. 하지만 기법의 생신함은 작품 전체에 시종 관통된다. 기법의 생신함으로 무거운 주제를 깊이있게 갈파한 것이다.    상술한 작품 외에도 생태환경에 대해 환기시킨 “라이프 스페이스” , 의인화적 색채를 보인 “어떤 개의 순애보”, 시나리오 특성을 채용한 “원죄”, 추리기법으로 이채를 보인 “요청”등등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으나 이미 임범송교수 전국권교수 윤윤진교수 김병활교수 등 분들이 세세한 평론을 가했음으로 이 작품들에 대한 평은 본문에 넣지 않았다. 김룡운 (평론가, "문학과 예술"지 편집)                  
183    [소설가가 쓴 시- 4] 庚寅年 호랑이 댓글:  조회:2489  추천:40  2010-01-05
    庚寅年 호랑이   김혁 詩     호랑이, 문짝에 붙어 수호신이 된 호랑이 할아버지 옛말에 신화가 된 호랑이   만곡된 등허리는 산맥을 업고 서늘한 시선은 호수를 머금다   절제된 고요로 정글에 숨어 매화꽃잎 발톱에 야망을 잠재우며 세상에 자신만만 도전을 거는 넘치는 기상 의로운 호랑이   굵어진 바람속에 긴 꼬리 흔들며 졸리는 눈빛속에 다가올 봄을 굴리며 새해의 일출을 바라 은빛 잠에서 깨여난 호랑이   기축년 저녁은 소잔등에 느릿느릿 실려가고 경인년 아침이 호랑이 포효에 성큼 다가 오다     "종합신문" 2010년 1월 4일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82    [소설가가 쓴 詩- 3] 밤 차 댓글:  조회:2679  추천:32  2009-12-11
  .  詩 . 밤 차/김 혁 내게는 대중없이 타고싶은 밤차가 있다 성에 꽃 수놓은 창가에서 겨울의 구도를 해명하며 몽롱한 리듬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싶은 밤차가 있다 낯모를 이쁜녀와 늙수그레한 할배와 따슨 화제로 언 마음 무마하며 어우러져 가고싶은 밤차가 있다 종착역에서 집 떠난 후조(候鳥)처럼 부리 붉게 울며 그려보는 밤차가 있다 낡은 고독과 헌 비애를 뒤로 뿌리며 풋풋한 인정의 그래프 그으며 창생(蒼生)의 순환곡(循環曲)처럼 오가며 타고픈 밤차가 있다 * 93년 "장백산 문학상" 수상작품   음악: 기차는 7시에 떠나네
181    [소설가가 쓴 詩- 2] 추억낚기 댓글:  조회:2190  추천:35  2009-12-11
    추억 낚기 - 영화 《타이타닉호》에 부쳐김 혁 꿈의 바닥에는 마침표 같은 사연하나 잠들어 있다 어제위로 떠가던 빙혼(冰魂)이 운명의 암초에 부딪쳐 멍에 빛 가슴으로 눈을 감는데 구조선도 보내지 못한 세월은 그저 추억을 건져 올리는 작업에 골몰해 있다 청태(青苔) 돋은 스크린 속에서...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180    [소설가가 쓴 詩- 1] 락 타 댓글:  조회:2324  추천:28  2009-12-10
駱 駝 김 혁 먼지꽃 피였는 야윈 길을 부서진 抒情으로 홀로 간다 신기루속 물냄새를 새김질하며 길이라는 話頭를 풀이하며 간다 驛馬煞 낀 인생이라지만 희망을 둘쳐업은 혹부리는 산처럼 높고 忍苦의 어진 눈망울은 砂金처럼 빛난다 그렇게 가다가다 가다보면 殘忍한 사막은 뒤로 허청 밀리고 푸른 민요 한자락 휘두른 몽고포 하나 성큼 다가온다 * 제8기 길림시조선족민속문화절 시화전 출품 작품       김혁 문학 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9    심금을 울리는 한편의 생명비가 댓글:  조회:3345  추천:33  2009-12-10
                                  심금을 울리는 한편의 생명비가                       - 김혁의 장편소설《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를 론함 최삼룡      김혁씨의 장편소설《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우선 전형적인 비애소설이다.  요즘 문학계에서는 그리 강조하지 않지만  소설학에는 오래전부터 비애소설이라는 쟝르가 있었다. 한자로 쓰면『悲哀小說』영어로는 『tragedy』 인생의 불행과  비참을 제재로 하여 독자들에게 비애감을 맛보게 하려는 소설을 비애소설이라고 하였다.  박신애라는 이름의 주인공, 초생달의 눈과 매력적인 덧이의 임자 20세의 그녀는 고향 공주촌을 떠나 국자가에 진출한후  몇년간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고 아글타글하다가 나중에 한국으로 밀입국하는 도적배에서  마지막 생명의 비곡을  울리고 짧고도 고된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혹자는 이러한 이야기는 중국조선족이라고 불리우는 이 민족공동체 내부에 요즘 들어 항다반사(恒茶飯事)여서 뭐 그리 놀랄바가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예사로운 일이라고 해도  한편의 소설, 아니 한편의 장편소설로 씌여졌을 때는 신변에서 이따금씩 들리는 골목소식과는 틀리는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창조주체에 의하여 창조된 한편의 문학작품이기때문이다.  다음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은 전형적인 「저층서사」소설이다.  저층서사(底層敍事)란 새 세기에 진입한 이래 중국사회에 이미 표면화된 민생문제에 대한 관조를 나타내면서  빈부차이, 새로운 도시빈민층, 도시에 진출한 농민공 등 밑바닥인 생을 영위하는 계층의 궁핍한 삶과 정신실존을 사실주의방법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저층서사소설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시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분망한 소외된 계층을  주요 묘술대상으로 삼고  이 부류 사람들의 처지를 우리 시대의 대사로 대할것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서 이를 통하여  시대의 일부 삐뚤어진 가치관념을 비판하고 아울러 개체생명의 독립과 존엄을 고양하고있다.   여기서도 혹자는 저층의 삶의 현장을 조명한 작품은 우리 문단에도 이미 적잖이 창출되였다고 하면서 뭐 대단한것이 없다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한부의 장편소설로서 우리 시대의 믿바닥인생을 영위하다 비명에 죽어가는 한 처녀의 짧고도 슲은 인생을 다룬 작품은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가 우리 문단에 첫 작품인줄 안다.   그러므로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라는 이 비애소설 내지 저층서사소설에 어떻게 접근하겠는가? 이 소설에 창조된 비극적 인물 박신애의 형상에 체현된 문화적내포는 어떠한가? 이 비애소설 혹은 저층서사 구경 어떻게 씌여졌는가?  김혁씨는 어째서 이 비애소설을 썼는가? 등등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진지한 해답이 요청된다.    1)《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에 접근하는 몇가지 전제.    박신애라는 녀자는 공주촌이라는 농촌으로부터 국자가가는 도시에 들어온 사람이다.  이로부터 우리의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요즘 우리 민족사회에  박신애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북경 어느 조선족학자의 통계에 근거하면 개혁개방 30년래 할빈으로부터 대련까지 동북의 철도연선 크고 작은 도시에 진출한  농민신분의 조선족인구가 40만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통계에 근거하면 북경에 진출한 조선족이 10만이 되고  산동반도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고 산동반도밖의 동남부연해도시에 진출한 조선족이 1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과는 관계가 없지만 한국에 진출한 조선족이 20만이 넘는다고 한다.(이 통계는 말그대로 불완전한 통계이다. 특히 이 통계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이 포함되였을수 있다.ㅡ필자 주)  그러므로 우리가 박신애라는 이 인물에 접근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할것은 박신애는 현대화건설의 물결속에서 도시에 진출한 100만 조선족의 일원, 하나의 생명개체라는것이다. 다시말하면 박신애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가 주는 제일 크고 제일 주요한 정보는 농촌을 떠나 도시에 진출한 조선족농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데 대한 정보이다.  물론 김혁씨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이전에도 이 제재를 취급한 문학작품이 있었으며 개중에는 성공적인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와 같이 장편소설의 쟝르로 이 제재를 취급한 작품은 없었으며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처럼 예술문학적으로 성숙한 작품은 많지 않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다음, 박신애는 농촌으로부터 도시에 진출한 20세의 녀성이다.  여기서 주제어는 녀성인데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녀성주의 혹은 녀권주의 문제가 제기된다.  영어로 「feminism」즉 페미니즘은 중국에서 처음에는 「녀권주의」로 번역되다가 다시 「녀성주의」로 번역되는 개념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녀성의 사회적 , 정치적, 법률적 권리의 확장을 제창하는 주의 혹은 운동이다.  주지하다싶이 오래동안 전통문화에서 녀성은 주체로 되지 못하였으며 주류담론에서 남성과 녀성의 권리는 사실상에서 불평등하였으며 남성은 초자연적인 지위에 처하여있고  녀성은 여전히 남성의 한부분으로밖에 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페미니즘이란 남권의 압박에서 녀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리론이며 운동이다.  문학창작에서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의 의식형태에 대한  청산이며 「녀성서사」의 발굴과 제창이며 남성문학과 다른 특색이 있는 녀성문학의 건설이다   페미니즘은 지난 세기 80년대로부터 중국문학계에 수용되기 시작하여 녀성의 독립자주와 물질, 정신상의 철저한 해방을 요구하는 녀성들의 시점에서 남권주의중심의 문학과 문화에 대하여 엄격한 해부와 비판을 진행함으로써 주국의 문학창작과 문학비평의 발전에 홀시할수 없는 공헌을 기여하고있다.  물론 성별로 보면 김혁씨의 작품활동을  「녀성사작」에 귀납할수 없지만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장편소설은 박신애라는 녀자의 비극적 운명을 반영하고있다는면에서는 이 소설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일부 페미니즘적시각이 요청되는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 박신애는 도시에 진출하여 성공한 인물이 아니고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비극적인물이라는데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작품을 한번 읽어본이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박신애가 국자가에 첫발을 들여놓아서부터 죽을 때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중에서 신애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하나도 없으며 ,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울러  신애의 인생은 십분 비참한 인생이며 신애는 철저하게 비극적인 인물이다. 소설학에 근거하면 박신애는  계속 하강선을 그으며 발전하는 운명선에서 죽음으로 내달리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한부의 장편소설은 신애의 꿈이 어떻게 박살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수 있으며 혹은 박신애라는 이 한떨기 생명의 꽃이 어떻게 시들어가고 죽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이 소설에 접근함에 있어서 비극에 대한 리해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2)《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의 주인공 박신애라는 녀자.   우에서 언급된바와 같이 박신애라는 이 녀자 참으로 운명이 기막히게 불행한 녀자이다.  원체 신애는 어려서 어머니가 그녀에 대한 부양을 포기하는 바람에 다병하고 유약한  이모의 손아래에서 자랐다.  이모에게서 듣기로는 어머니가 신애를 낳고 죽었다고 하지만 기실 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 신애를 밴 신애를 낳던참에 집에 버린채  야밤도주를 해버렸던것이다.  결국 신애는 일찍 남편을 잃고 네살  되는 아들을 키워가는 이모네 집에 얹혀서 엄마, 엄마라는 말 대신 이모, 이모 하면서 자랐다.  그러다가 갖 스무살이 되는 해 겨울 인구의 대이동이라고 불리우는 농민의 도시에로의 진출에 밀려 신애는 국자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박신애라는 국자가에 들어올 때 이 시골녀인의 꿈은 구경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도시에 들어와 공부를 하여 무슨 교원이 되거나 학자가 되려는 꿈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려는것이고 어떤 사람은 문학예술의 꿈을 실현하려 도시에 들어오지만 신애의 꿈은 너무나 소박하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소박하였다.  광천수차기사  인철이와 같이 처음으로 교회당에 갔을 때 하는 신애의 기도에서 우리는 그의 꿈이 무엇인가를 보아낼수 있다.  나더러 돈을 많이 벌게 해주옵소서. 김밥집 마담만큼은 못 되여도 나중에 그 절반만큼이라도 돈이 있게 해주옵소서. 앓지 말게 해주옵소서. 이제 귀찮은 감기 그만 하게 해주옵소서. 고향계신 호준오빠랑 이모랑 동생이랑 몰래 떠나 버린 나를 나쁜년이라 욕하지 말게 해석해주옵소서. 아무쪼록 그들이 무사하게 지내게 해주옵소서. 하루빨리 나도 경자처럼 시내물이 들게 해주옵소서. 그리고… 그리고 나에게도 다른 시내애들처럼 삐삐 호출기가 있게 해주옵소서 아멘!  사실 김밥집마담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상식으로 추측해도 그리 많지 않을것이라는것이 뻔한데 신애는 그 절반만큼이라도 벌게 하여달라고 기도하며 국자가에 들어온후 지금까지 아직 경자를 만나 보지 못하였지만 전에 환고향한 경자를 본 인상으로 경자만큼 도시에 물들게 하여달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소박한  꿈을 안고 국자가에 들어온 박신애는 임시 먹고 잘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특히 국자가의 지정학적위치의 우월성으로 녀자, 특히 젊은 녀자들이 임시로 입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는 도시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인생의 길에서  자기의 꿈을 이룩하려면 의식주문제의 해결뿐아니라 필연적으로 앞에 놓이는 「생물사슬」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례를 들면 최저한도의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뿐만아니라  영원히 독신으로 살수는 없고 결혼하여야 하고 자식을 낳아 독립인으로 키워야 하고  병이 나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혼자가 아닌 한 가정이 거주할 집을 마련하여야 한다.  분명한바 신애에게도 인생의 길에서  반드시「생물사슬」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는데 대한 정신적준비는 없었던것이다.  이를 우리는 국자가에 온 박신애의 모든 언행으로 증명할수 있다.  국자가에 진출한 그가  제일 처음 발을 붙인곳은 「오씨네 김밥집」이다.  같이 일하는 장아주머니도 좋았고 주인마담도 괜찮았고 여기서 성격이 쾌활한  광천수차기사 양인철과도 사귀고 같은 성씨의 털보아저씨 운수회사 박기사도 알게 되였다.  그러다가 김밥집이 파가이주를 당하게 되고 신애는 그 박기사의 소개로 운수회사에 차장으로 취직하게 된다.  간호사와 더불어 버스차장은 원래 박신애가 아주 선망하던 직업이였다.  과연 운수회사는 신애에게 새로운 생활을 약속하는것 같았고 신애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것 같았다.  김밥, 김국, 오징어볶음, 두부볶음, 철판소고기구이, 조기구이, 오이무침, 버섯무침…하고  료리메뉴를 외우기보다 더 품위있고 운치있는 노릇이라 신애는 느껴졌다. 음식점에서 접시나 나르던 시골애가 차장이 되어 도시를 거침없이 누비며 달린다는것은 그녀로 말하면 중요한 전환이기도 했다. 매양 출입문곁의 차장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스쳐가는 도시의 풍경을 새로나온 그림책 보듯 흥미에 절어 지켜보며 신애는 가슴 들먹히 괴여오르는 만족감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그리고 신애는 시시때때 그 어떤 냄새를 맡을수 있었다. 봄의 훈향속에 담담한 휘발유냄새에 섞여 신애만 맡을수 있는 그내음은 시골처녀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감득할수 있는 희망의 냄새였다.  그리하여 집채처럼 큰 버스를 신애는 신명을 바쳐 닦으면서  이렇게 큰 버스, 이렇게 멋진 버스, 도시의 네거리를 보란듯이 누비는 버스의 차장은 바로 나다! 라는 흥분에 버거움을 잊었고 맡겨지는 모든 일에서 남보다 열성을 보이며 점심에 운수회사 공공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그 자체에 대하여 무한한 행복감에 잠기기도 하며 푸른 제복과 두리모자를 감추어가지고 나와 버스차장 제복차림으로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붙여보냈던것이다.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은 단순한 시골처녀 신애는 운수회사의 버스차장이 되는것으로 자기의 꿈이 이룩된다는 착각의 늪에 빠져들어갔던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골처녀, 소박한 꿈의 소유자 박신애의 무의식에 깊숙히 간직된 소망을 잘  생각해볼것이 요청된다.  사실 변강의 시골농촌에서 스무살까지 향소재지를 중심으로 행동반경이 10리를 벗어나본적이 몇번 없는 그녀, 작품에서 딱히 밝혀진것은 아니지만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농촌처녀 신애에게도 농촌을 벗어나고 농업에서 해탈되고 농민이란 신분을 버리고 시민이 되려는 세기적인 숙망이 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앙금처럼 깔려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가장 심각한 의미에서 박신애의 꿈이였을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신애의 이러한 소망을 여지없이 박살내였다.  「왕제」라는 1호차장 그녀의 권세앞에서 신애는 끝내 운수회사에서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여야 하였다. 그녀는 이 운수회사의 차장중에서 왕질을 하는 녀자였는데  신애에게 한자(漢字)에서 죽음의 의미의 「死」와 통하는 「4」호선로 버스를 맡기고 목욕탕에서 남의 머리감는 비누도 빼앗아 쓰고 자기의 청소주번날에도 신애에게 강제로 소제를 시키고 신애에게 오는 표창신도 자기것으로 만들어 표양을 받는다.  다시 박기사의 도움으로 장거리차의 차장으로 자리를 바꾼다.  신애보다 1년 먼저 도시에 들어온 경자는 버스회사에서 신애의 곤혹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아직 시내 이곳저곳에 발이 익지 못한 촌바우, 눈에 띄는 변변한 옷도 없는 촌바우, 좋은 음식 먹어 못본 촌바우, 그런 촌바우에 존경심이 갈 사람이 있어. 업신보고 깔보기 마련이지. 나라도 그래. 먹기 좋은 떡부터 먹어치워야지. 이는 과정이다. 억울해도 참아야 돼. 네 눈에 먹기 좋은 다른 떡이 보일 때까지. 문제는 언제까지 남에게 만만한 떡으로 보이는가 하는거지"  경자가 신애의 현실상황을 놓고 장황설로 풀고있는 떡의 론리는 바로 권세자들앞에서 먹기 좋은 떡으로 되는 신애의 처지에 대한 가장 비근한 해석이지만 이에 대하여 신애는 납득되지 않았다. 신애로서는 아직 중국에서 권력의 힘이 얼마나 센가에 대하여 알수 없었던것이다. 자그마한 운수회사의 차장중의 우두머리도 이렇게 세력을  부리는데 진짜 권력을 잡은 권세자들의 세도야말로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사람 좋은  박기사가 술에 흠뻑 취하여 신애를  「기사의 집」에 불러내서 자기의 녀편네에 대한 불만을 하소연한다. 신애는 별수 없이 온밤 내내  술을 마시는  박기사와 응부하는데 갑자기 박기사의  마누라와 그가 휘동한 한떼의 녀성들이 들이닥쳐 신애를 사정없이 구타하고 몸에 구정물까지 쏟아버리고 머리까지 마구 잘라버린다.  이 사건은 버스회사에서 박기사와 신애사이의 "염문"으로 확대포장되여 사람들의 화제로 된다. 치욕을 받은 신애는 억울한 심정으로 버스회사를 떠난다.  그후 경자의 하숙집에서  신애는 어느 여름날 4호버스안에서  도적을 발견하고 소리쳐 도난에서 면하게 했던 그 미남ㅡ 윤승원이라고 부르는 신사를 만나게 된다. 「늑대」표양복을 입은 이 남자는 박신애와  버스안에서 맺은 인연이 있는외에 또 그 출중한 미모와 스타일로 언녕 박신애가 마음속으로 반해버린 남자였다.  신애는 기꺼이 그 남자가 경영하는  「유리구두」라는 자호를 건 신발쇼핑몰에 판매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래잖아  둘이는 애인관계를  맺게 되고 신애는 처녀의 정조를  윤승원에게 바치고 윤승원은  신애에게 유리구두 놀음감과 진짜 고급구두를 선물하고 또 신애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세방집을 잡아준다. 순진한 신애는 이 모든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결혼할 꿈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신애의 가슴에는 무지개가 솟고 신애의 육신은 행복감에 전률하고 신애의 심신속에서 희망의 나무는 창공을 향해 소리치며 자라나는것 같았다. 더욱이는      
178    친일인명사전 그리고 윤동주 댓글:  조회:2711  추천:38  2009-12-01
. 칼럼 . 친일인명사전 그리고 윤동주 김 혁 1 “친일인명사전”이 한국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 의해 발간됐다. 3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되여있고 수록된 친일파 명단만해도4389명이 된다고한다. 사전편찬위원회에서는 친일파의 정의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로 규정했다.   편찬자들은 친일파선정 원칙에서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그 사회적 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이어 “생계형 부일협력자는 뚜렷한 친일행적이 없으면 제외하되 권력과 부, 명예를 쫓는 출세형 협력자는 엄중하게 취급했다”고 밝혔다.  높은 위치의 정계인사들뿐아니라 문화예술계의 이름이 쟁쟁한 인사들도 대량 포함되여 세간을 경악케 하고있다. 한국 각계의 논란이 가열화되는 등 역풍이 거세지만 력사적 진실 규명을 위한 작업은 계속 되고있다.    2 지난세기 30,40년대는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정책에 우리 민족의 정기가 말살되고 민족문학사가 실종된 칠흑처럼 어두운 시대였다.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물자를 수탈하고, 징용령을 만들어 조선인을 군인, 보국대, 로무자, 위안부로 징발했다. 1938년에는 조선어교육을 폐지하고 아침마다 일장기를 향해 황국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단행해 조상이 준 이름을 일본식대로 뜯어고치게 했다. 그 마수는 문화예술계에도 미쳤다. 조선말로 된 유명 일간지며 문학지들을 폐간시켰고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 어용 문학단체를 만들어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선전하게 했다. 그러나 더욱 슬픈것은 민족의 수난기에 안일과 부귀를 위해 일제에 무릎 꿇은 문인들의 친일행위였다. 그동안 민족주의 작가로 주목받던 문단의 대표적 인사들이 대거 친일문학의 대렬에 끼여든것이다. 지울수없는 오명을 진 문학인들로는 신체시(新体诗) “바다에게서 소년에게”로 민족시의 전환점을 지었던 시인 최남선, “화사집”, “귀촉도”등  탐미적인 시편들로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것으로 평가되였던 시인 서정주,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던 “감자”, “운현궁의 봄”의 저자 소설가 김동인… 등등이다.   춘원 리광수    리광수의 창씨개명소식을 실은 일본신문   그 전형으로 개화계몽기부터 1920년대까지 언제나 민족주의적인 립장에서 앞장 섰던 “무정”, “흙”의 작가 리광수를 들수있다. 리광수는 온갖 친일 단체에 참여하여 그 뛰여난 문필가의 기량을 황국 신민화, 징병, 징용, 학병, 정신대 권고문 따위의 글을 써내는데 허비했다.남보다 앞서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가며 창씨개명을 했고 “조선인으로서의 본질과 껍데기까지 모조리 던져버리고 일본인으로 변종할”것을 공공연히 웨쳤다. 일본에까지 건너가 류학생들을 선하며 일본군에 입대하여 천황폐하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자고 선동했다.근시안적이고 삐뚤어진 그들의 행태는 우리의 민족문학사에 치명적인 얼룩을 남기고 말았다. 3 문단을 대표하고 민족의 지성을 상징한다는 이들이 하나같이 “텐노헤이카(天皇陛下)”를 칭송하고 “황군(皇军)”을 위해 비루한 붓을 들고있을때, 숭앙했던 문인들과 자기 학교의 교장마저 친일에 앞장설때 중국 동북변강의 오지인 룡정에서도 수십리 떨어진 작은 촌부락에서 태여난 한 문학청년이 괴로움에 찬 시편“참회록” (忏悔录)을 내놓았다. 윤동주, 식민지시기 스물네살의 문학청년이 령혼의 잉크를 재워 각혈처럼 지었던 그 시작(诗作)은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을 전률하게 만든다.  윤동주의 대표시 \"참회록\"의 육필원고   “참회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가 1942년 일본류학을 준비할 무렵에 쓴 시이다. 시인은 부끄러움을 담은 자기고백을 또박또박 원고지에 각인해 내려갔다. 지금까지 보존되여있는 원고의 하단 여백에는 도일(渡日), 시란? 문학, 생존, 생과 같은 시인의 고뇌를 짐작케 하는 절절한 락서들이 남아있다. “… 래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굴욕, 치욕, 릉멸, 방황, 그 어떤 말을 가져다 붙인다 해도 그때 그 시가 담고 있는 고뇌와 슬픔과 반성을 감당하기에는 모자란다. 그리고 2년후 일본 도지샤대에 수학하던 윤동주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여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이슬로 사라진다. 그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것은 일제가 전시에 수요되는 혈장을 얻기위해 생리식염수를 투여하는 생체실험을 한데서 기인된것이라고 한다.      윤동주가 체포되여 옥사한 후쿠오카 감옥  윤동주는 식민지체재에 동화될수도 저항할수도 없던 여리고 섬세한20대의 문학 청년이었다. 당시 그에게서 생의 출구는 막혀있고 현실은 랭혹하고 폭력적이며 미래는 어둡고 삶의 리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내면은 분열을 거듭했다. 윤동주는 “나약”했고 “감성적”이였지만 감정적이지는 않다. 그는 주변부 식민지의 생활과 속악한 삶의 행태에 수치심을 느꼈다. 의지할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떠돌던 그의 마음은 종국에는 때묻지않은 령혼의 시줄에 깃들었다.윤동주의 시를 떠받치고있는 정신적 바탕은 시대적 현실에 대해 방관자적 립장에 처해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고뇌라 할수 있다. 그의 시의 중심적인 심상을 이루고있는 “부끄러움”은 이 같은 자기 반성과 고뇌의 필연적인 결과인것이다. 물론 당시는 극한의 식민지 현실에서 그 누구도 정상적인 문학을 할수없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민족의 위기에 가장 먼저 민족문학의 전통과 자존을 지켜야할 문인들이 저항은 커녕 오히려 굴종과 어용과 변절로 민족문학사를 훼손한 친일행위에 민족사의 심각한 비극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한국의 지성인들이 사회의 압력과 역풍에도 친일인명사전을 굳이 간행한것도 바로 이러한 력사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여 민족 정통성의 확립과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한 취지여서였다. 력사의 갈피에 지울수없는 오점으로 남은 이러한 문인들의 행태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에 매달려 권력과 리념과 공리의 뒤꽁무니를  따라서 철새처럼 이동하는 문인들을 찾아볼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윤동주를 다시금 떠올려 보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윤동주, 그의 시를 읽을때마다 우리는 먹먹한 시대를 돌아보게 되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는것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민족과 언어를 빼앗겼던 정말 암울하고 힘들었던 식민지 시대에 자아와 민족이 부재한 력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초극하고자 윤동주는 참회와 헌신의 신앙적 결의로 마침내 도래할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확신하면서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영글어가는 겨울하늘의 별이 또렸하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고향의 시인이 읊었던 별의 밝음을 낱낱이 헤고 있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연변일보 周刊 “종합신문” 2009년 11월 30일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7    김혁의 중편소설 “박쥐...” 를 읽고 댓글:  조회:2208  추천:35  2009-11-27
김혁의 중편소설 \"박쥐...\"를 읽고   오상순       1990년대 소설의 흐름가운데서 가장 큰 흐름의 하나가 우리 민족 농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들의 운명 및 출로문제를 취급한 작품들이다.   조선족인구의 80프로를 차지하는 농민들, 자고로 농사를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땅에 모든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그들은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시장경제로 진입하자 땅에 의해서만 살아갈수 없게 되고 또 땅을 떠나서는 아무일도 해내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그들은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황하고 출로를 찾지못하여 갈팡질팡하고 좌절당하고 타락하기도 한다. 우리 작가들은 바로 이런 생존상황에 눈길을 돌려 개혁개방을 밎아하여 농민들이 겪는 갈등과 고민과 출로와 운명을 다각적으로 그리였다. 그 가운데서 가장 뚜렷한것은 부지런한 로동으로 참된 삶을 꾸리고 부요해질 대신 술과 놀음으로 허송세월하면서 무지와 몽매에서 깨여나지 못한 일부 농민들의 우매성과 렬근성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다.   김혁의 중편소설 “박쥐는 한낮이면 날지 못한다” (“도라지” 1998년 1월호)는 도시에 진출한 농민의 타락상을 보여주고있다.   성실한 농촌 젊은이 박무는 도시에 나가 삼륜차부가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당구치러 갔다가 그곳의 경영자이며 고리대금업자인 채홍이를 알게 된다. 얼마안되여 그는 채홍의 치마폭에 감겨들게 되며 그녀를 위해 변리돈 밪이에 나서게 된다. 주먹으로 바꿔와야하는 변리돈, 의리를 저버리고 바꿔오는 쾌락, 온몸을 다 내놓아 인격으로 바꿔온 부유함… 이렇게 박무는 채홍이가 달아준 날개를 가지고 “한낮”에 날게 된다. 그러나 대신 진정한 사랑, 친구와의 우정 인간의 정의를 잃게 된다.   나중에 박무는 사랑하는 녀인 오월이를 찾아갔다가 술에 취한채로 삭도에서 떨어져 한밤중에 “날아가고”만다.   미망하는 도시에 찾아와 “날아보겠다”고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는 박무의 형상은 중국의 산업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농촌의 피페화”, “도시의 란잡화”속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참모습의 보기로 되는것이다. 소설은 풍유와 상징의 수법으로 밤에는 자유롭게 날아예는 박쥐가 낮에는 날지못한다는 이 자연현상으로 주제에 각을 세워주고있다.     오상순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교수, 중국소수민족문학연구소 부소장)   
176    김혁의 시나리오 소설 “원죄” 댓글:  조회:3540  추천:45  2009-11-24
  . 평론 .   김혁의 시나리오 소설 “원죄”   최삼룡   “장백산”잡지는 2006년도에 “재해”(박선석)와 “음모와 사랑” (지오) 두편의 장편소설과 “원적” (김혁 2기), “타지마할” (양은희 2기), “등대불빛은 또 깜빡거렸다” (원종철 3기), “나의 파란 많은 인생” (김근환 5기), “바다낚시” (박상춘 6기)등 5편의 중편소설 그리고 11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중에는 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투시하는 작가들의 안목이 높아지고 민족언어를 구사하고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허구하고 형상을 창조하는 작가들의 기량이 늘어나고 또 문체가 다채로와지고 표달방식과 서사책략이 다양해지고있음을 과시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이제 필자는 본문에서 “장백산” 2006년도에 소설을 일별하면서 떠오른 소감을 적어보려 한다. 먼저 “장백산” 2006년도 중편소설중 “원죄”와 “타지마할” 그리고 “바다낚시”를 주목하게 된다. “원죄”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다루고있다. 현대사화학에서 세대차(代沟)란 바로 두 세대사이에 생기는 가치관념, 심리상태, 생활습관 등 방면의 화제로 되고있는 청년세대와 로년세대의 차이를 취급했을뿐만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부친살해모티플를 리용하여 주제사상을 심화시키고있다. 인간에 대한 탐구의 형식의 일종으로서 소설은 작가들에게 왕왕 특수한 사건, 특수한 모티프에 반복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한다. 부친살해모티프는 바로 작가들이 반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신화모티프의 일종이다. 파란의 인류학자 말리노프키(Malinowski 1884-1942)는 “미개사회의 성(性)과 억압”에서 부친살해 모티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있다. 프로이드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인류문화사의 최초의 중대한 사건에 대해 서술하고있다. 원시인의 무리는 모든 녀성을 혼자서 차지하려는 질투심 많고 거친 부(父)가 지배하고있었다. 그는 성장한 아들들을 무리에서 추방해버린다. 그러나 추방당한 아들들은 어느날 힘을 합해 아비를 살해한 다음 아비의 시체를 먹어치운다. 잡아먹힌 태초의 아비는 틀림없이 아들들에게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였을것이다. 이제 아들들은 아비를 먹어치움으로써 아비와 동일시될수 있었으며 아들들은 아비가 가졌던 힘과 권위의 일부를 얻게 되였다. 이 시원적이며 원초적인 사건을 이른바 부친살해모티프라고 하는데 프로이드는 이것이 “문화의 시작이며 그 이후로 영원히 인간을 불안케 하는 중대한 사건”일뿐만아니라 “사회적조직, 도덕적구속, 종교 등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잊을수 없는 범죄행위”라고 하였다. 여기까지 알고 이제 김혁의 “원죄”를 다시 읽어보면 이 작품은 제목으로부터 매개세부묘사에 이르기까지 부친살해모티프의 계시를 받고있음을 알수 있다. 작가 김혁은 결코 이 모티프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특점과 민족의 생존상황에 맞게 깊이가 있고 개성이 있는 현대소설을 창조하였다. 김혁은 또 이 작품에서 아주 개방적인 자세로 씨나리오문체를 차용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있으며 아울러 창조추체의 얼굴을 시종 나타내지 않고 목소리를 내내 내지 않음으로써 소설의 사상력도를 크게 하였다. 우리는 TV에 TV소설이 있는것처럼 문학에 씨나리오소설이 있는데 대하여 크게 이상해하거나 놀랠 필요가 없는바 작가의 대담한 문체실험을 지지해주어야 할것이다. “장백산” 2006년 소설을 놓고 조선족소설문학의 현주소를 생각해보자. 한 문학지가 해마다 장편소설 한편 내지 두편을 련재하고 중편 5편 내지 6편을 게재하고 단편 10여편을 게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설문학이 수량상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증거로 된다. “장백산”, “도라지”, “연변문학” 그리고 기타 잡지와 신문의 문예란에 발표되는 소설작품을 모두 헤아리면 200만인구의 소수민족에게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건국후 30년간에는 근근히 장편소설과 중편소설이 한두편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 수량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예술질상에서도 우리의 소설문학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고있음을 “장백산”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기껍게 보아낼수 있다. 창작방법으로부터 조감해보면 우리의 작가들은 기본상 사실주의 문학의 방법과 원칙을 견지하는 기초상에서 비사실주의 문학의 방법, 모더니즘, 포스터모더니즘에서 부단히 자신의 텍스트를 살찌울수 있는 자양분을 흡수하고있다. 이로하여 우리의 소설문학은 오늘에 이르러 내용이 전례없이 풍부해지고 형식이 매우 다채로워지고있다. “장백산” 2006녀도 소설작품중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혹은 포스터모니즘이라고 단정할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창작방법상에서 우리의 소설문학은 사실주의 문학의 제 원칙에 충실한다는 증거로 된다. 물론 사실주의도 순수한 개념이 아니며 사실주의 문학의 력사도 곡절이 없는 것이 아니며 또 우리 조선족작가들의 사실주의에 대한 리해와 창작실천도 내내 정확하고 성공적인 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에 와서 우리의 소설문학은 총체상에서 진정으로 사실주의 문학의 풍격을 갖추고있다고 결론할수 있다. 우리의 작가들이 동포들의 삶의 현장을 투시하는 안목이 상당히 높아지고 현실과 력사의 소용돌이속에서 소재를 찾고 큰소리를 치지 않고 헛소리를 치지 않고 생활을 분식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생존과 발전을 위하여 시장경제의 바다속에서 피흘리는 령혼의 모지름을 겪는 민족의 생존상황과 정신존재는 전통문화를 고양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여건에서 발로되는 민족렬근성을 무자비하게 고발하면서 자기의 문학작품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민족혼을 재주조하는데 필요한 정신적식량으로 되게 하기 위해 애쓰고있다. “장백산” 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또 우리의 작가들이 총체상에서 사실주의문학의 원칙을 숭상하면서도 개방적인 자세로 모더니즘, 포스터모더니즘에서 유익한 자양분을 흡수하고있으며 비소설류의 문학에서 유용한 방식와 기교를 배워다가 자신의 텍스트를 살찌우고있다는 것을 보아낼수 있다. “원죄”가 고대신화의 부친살해모티프의 영향을 받았을뿐더러 초현실주의문학에서 일부 기교를 배우고있으며 영화문학의 형식을 빌어서 쓰고있다는것과 “타지마할”이 인도의 고대건축에서 령감을 받고 상징주의문학에서 일부 기교를 재치있게 리용하고 또 실존주의문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것 그리고 “골회”는 포스터니즘의 핵심리념이라고 칭할수 있는 해체주의의 영향을 다분히 받고있다는 것 등등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바가 크다. 사실주의소설만 소설이고 소설이면 곧 사실주의소설이던 시대는 여기서도 언녕 끝이 났다. 이것은 우연하게 나타난 문학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작가들이 현대소설문학의 번영을 위해 장기간 애쓴 결과이며 우리의 소설문학이 발전도상에서 반드시 지나야 할 과정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작가들이 보다 개성적인 자세로 너무 전통적인 경전소설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인류문학보고의 여러방법, 류파, 사조의 작품들을 보다 넓게 공부하면서 자기의 문학작품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싶다. “장백산” 2006년도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족소설문학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개괄할수 있다. 우리의 작가들은 소설의 생명본체와 언어본체를 탐구하면서 또 사실주의문학의 방법과 원칙에 충실하면서 아울러 모더니즘포스터모더니즘에서 부단히 자양분을 흡수하였는바 그 결과로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와 민족의 생존상황에 대한 심각하고 폭넓은 조명 그리고 다채로운 형식에 대한 추구가 있는 당당하게 에술문학으로 평가할수 있는 성과작들을 적잖게 창출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작가들의 문학상상력은 높지 못하며 투철한 문학정신을 가지고 작품활동에 몰두하는 작가는 많지 못하다. 한 작가가 문학적상상력을 키우고 치렬한 문학정신을 갖추는 것은 일조일석에 되지 않는바 장기적이고 부단하고 또 꾸준한 노력의 결과일것이다. 하고싶은 말 많지만 편폭관계로 이만 줄인다.   최삼룡 (전 연변사회과학원 소장, 평론가) "장백산" 2007년 1월호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5    현실인식의 매개물로서의 공포 댓글:  조회:1840  추천:36  2009-11-24
  . 평론 .  현실인식의 매개물로서의 공포 - 김혁의 중편소설 “산장”을 읽고    이색적인 추구로 늘 독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 김혁씨가 이번에는 진짜 등골이 서늘해나는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공포소설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중편소설로 해괴한 귀신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다. 그것도 이번 소설 한평으로 마무리하는게 아니라 “일어서는 머리칼”이라는 계렬소설의 제1탄으로 준비한것이라고 한다. 문학지들에서 지면을 제공해주는한 우리는 한동안 어쩔수없이 이 피와 죽음과 귀신의 세계에서 공포와 전율을 체험하면서 지낼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작으로서의 이 소설의 파격실험이 고요한 우리 문단에 던져줄 충격과 파급효과를 상상한다면 문단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얼마간은 모두 이 소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것으로 확신한다.   이 소설을 접하면서 필자가 먼저 생각했던점은 저자가 왜 하필이면 공포라고 하는 이러한 이야기방식을 선택했을가 하는 점이였다. 다시 말하면 이 공포소설의 타당성여부나 성공여하를 떠나서 좀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감했을 때 왜 지금의 이 시점에서 공포라고 하는 방식이 새롭게 문제시되느냐 하는것이였다. 필자는 일단으 그 실마리를 공포의 대중성에서 찾을수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창작수기에도 나와있지만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공포계렬의 소설, 영화가 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있으며 또 최근에 있었던 한국의 공포영화 “녀고괴담”의 흥행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공포는 상당한 대중성을 지니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시무시한 사건과 인물들의 전경화가 인간의 심리에 내재되여있는 안전욕구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여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마적인 힘을 가지고있는게 바로 공포라고 하는 매개물이다. 소설이 갈수록 독자들을 잃어버리고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이러한 매개물을 우리가 여태껏 잠재워두고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기 까지 하다. 물론 공포가 대중성에 영합하기 위해서 폭력 에로티즘 잔인성과 결탁하여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을 안고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한 위험성 때문에 공포라는 이 매개물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우리 문단에 진정한 대중소설이 등장하기를 바란지 오래다.평론가들이 뭐라고 비평을 하든 상관없이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가슴을 조이며 읽을수 있는 대중소설(그것이 련애소설이든 무슨 소설이든)이 나타나 무미건조한 우리 소설의 관행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어주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김혁의 이번 시도가 이러한 대중성 획득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며 일단은 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으로 요즘 공포가 회자되고있는 리유를 살펴보면 매체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듯싶다. 문자매체에서 음성매체로, 음성매체에서 다시 영상매체로 그 중심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시청각적 효과가 극대화디면서 공포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열어준것이다. 듣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이야기를 눈과 귀를 통해, 그것도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생생한 모습과 음성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치 저공비행에서 느끼게 되는 스릴같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공포적 효과가 극대화될수있는 가능성이 제공됨에 따라 공포에 대한 탐험의 빈도도 잦아지고 수위도 높아지기 마련인것이다.   “산장”은 김혁의 소설중에서 가장 영화에 가까운 이야기하기방식으로 씌여진 소설이다. 소설속의 묘사가 그렇고 시점이 그렇고 언어가 그렇고 몽타주기법이 그렇다. 묘사는 화면을 위하여, 시점은 카메라의 렌즈를 위하여, 언어는 대사를 위하여 존재하는것이다. 이러한 소설 시학적장치들에서도 공포를 하나의 단순하 ㄴ이야기만이 아닌, 영상화된 시청각적 감각으로 상승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감지된다 김혁은 창작수기를 통해 영화와 소설의 영향이 컸었다고 이야기하고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영화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지 않았나 하고 짐작된다.   공포쟝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수없는 것이 귀신이다. 무속의 해석을 빌리면 귀신은 자연물이나 천체현상이 종교적 관념으로 숭앙되면서 나타난 자연신, 조상령혼 숭배에서 나온 조상신, 유가족이나 후손에 의해 가족신으로 모셔지지못한 원귀, 원령 ,객귀로 나뉠수 있다. 이들 가운데서 자연신은 수호신으로, 조상신과 원귀는 사령신으로 분류되며 조상신이 흰빛이 선의의 귀신이라면 떠도는 넋으로서의 객귀는 검은빛의 악의의 귀신이며 저주와 재양 질병의 원인으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있다. 공포쟝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귀신은 바로 이처럼 위로받지 못하는 원혼으로서의 객귀가 일반적이다. 현실의 불합리한 모순속에서 죽어서도 그 령혼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인간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인간세상의 어떤 거울이 아닐가 하는 의문이 가능하게 된다. 거울이 자기 반성의 매개물이 될수 있다면 귀신 역시 오늘의 우리 사회와 현실을 조명하는 하나의 매개물이 될수 있을것이다. 역설적으로 귀신은 현실 생활속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리론에서 강조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귀신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고발하고 비판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접근할 때 소설속의 “무지개산장”은 많은 상징성을 띠고있는것으로 분석될수 있다. 작게는 오늘날 물질만능의 애정관이 초래한 척박한 사랑이 될수도 있고 좀 크게는 시장경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조선족 농촌의 피페한 모습의 전경화로 치환될수도 있다. 번성했던 어제날의 “무지개산장”과 공포의 대상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오늘날의 “귀신산장”. 아름다운 저수지와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은 외로운 무덤, 치한으로만 보이던 필용이와 두려움없이 귀의 앞길을 막는 필용이, 소설속의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반전과 공포의 그물로 인간의 무의식속에 담긴 두려움과 불안을 끄집어내여 인정하기 싫은 현실로 우리 자신을 감싸게 한다. 현실세계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과 고민은 귀신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표출되며 그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다.   다른 공포소설과 마찬가지로 김혁의 소설에도 귀신외에 불길함이나 사악함을 의미하는 많은 상징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고양이, 어둠, 선혈, 관, 무덤, 외딴지역(산장) 등이 등장하여 소설의 공포적인 분위기를 더하여주며 동시에 그것들은 또한 소설시학적장치로도 작용한다.   이렇게 봤을 때 김혁의 이 소설은 단순한 귀신이야기가 아니라 귀신을 매개체로 한, 또는 공포를 매개물로 한 현실이야기가 된다. 대상과의 치환을 통해 드러낸 현실이야기, 귀신의 눈과 입을 통해 바라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공포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너와 나 일상의 이야기가 바로 “산장”인것이다   물론 김혁의 이 작품에서도 아쉬움은 느껴진다. 심리공포의 서사가 부족하다는점이 그중 대표적인것으로 지적될수 있을것이다. 저자가 공포의 효과성을 시각적묘사와 청각적묘사에 지나치게 집중시킨 나머지 인물들의 심리에서 심리에로 전이되는 그 공포의 과정이 소상하게 드러나지 않고있다. 김혁이 직접 패러디를 한적이 있는 리상의 그 유명한 시”오감도:시 제1호”만 보더라도 이러한 공포의 심리이전이 얼마나 더 공포감을 확대시키는지는 잘 드러나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이라고 할 때 공포의 묘미와 우세는 시청각 감각에 의한것보다는 심리적으로 눈덩이 굴리듯 갈수록 커져가기만 하는 그 불안한 심리라고 할수있다. 이러한 불안심리, 공포심리가 새로운 불안과 공포를 조작하고 생성한다는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줄 안다. 이러한 공포심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공포에 떨고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묘사하기보다 갑절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공포감을 전달해주리라 믿는다   다른 하나는 소설 첫부분부터 암시하고있는 공포분위기가 과연 소설에 효과적일가 하는 의문이다. 소설이 전지적인 시점을 구사하고있는 만큼 주인공들의 심리, 주변환경이 명랑하게 처리되고 다만 저자와 독자들만이 그 공포를 예감하고 확인하고 리해한다면 극적인 반전이나 대비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그 어느해보다도 추웠던 이 겨울에 “산장”으로 하여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던점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서영빈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도라지” 2003년 1월호 
174    생명, 그 노래는 레드 댓글:  조회:2871  추천:47  2009-11-12
  생명, 그 노래는 레드 (紅色) - 김혁 장편소설"마마꽃, 응달에 피다"가 말하는  성장과 그 허무를 두고 전경업       이렇게 독자들은 추락했다. 마치도 매의 발톱에 잡혔다 다시 천적(天敵)이 와글대는 황량한 벌판으로 떨어진 병아리 마냥 그 시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전날의 기억을 전생 마냥 아득히 잊고, 훗날의 희망을 내세 마냥 묘연하게 조차 상상할 여지도 없이 그 시대에 뛰어 들었다. "어둠에서 벗어나려 종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우리는 방황과 허무 속을 헤매던 우리의 어제 날 모습을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장백산" 2003년~ 2004년)에서 생생하게 재생해 볼 수 있으며 그 시대가 우리들의 신상에 접목한 세포핵이 확산하는 모습을 감지하고 시대와 개체 접전의 메커니즘으로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풍성한 쓸쓸함을 만끽한다. 작품은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충분히 띠고 있다. 타닥타닥, 회구(懷舊)를 담아 두드리는 키보드의 절주와 더불어 독자들은 작가가 마련한 "타임박스"를 타고 시간을 거슬러 붉은 색으로 란무했던 광란의 한 시대를 려행한다. 망각된 사회의 성장 작가가 분석하다시피 60년대로부터 70년대까지 해일처럼 중국의 대지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은 그 인류사상에서 전후무후한 특수한 성격으로 하여 여느 제재보다 풍부한 창작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시대에 대한 재확인은 때 지난 것이 아니며 력사를 소급하는 견지에서 볼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와 중후(重厚)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문화대혁명에 대해 반영한 글은 "상처문학"이라는 하나의 류파를 생성시킬 정도로 많이 나왔다. 분노가 만들어낸 그 류파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문단은 이미 높은 평점을 주었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허다한 이 제재의 작품들은 개인의 불우한 체험과 수난사로부터 주관적 색채가 너무 짙게 배여 있다. 청일 색으로 항의와 의분에 넘쳐 마치 "공소문"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력사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단순한 정감으로 대체 되여 나온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 제재의 도식화를 경향을 보였다 문화대혁명 박물관을 세우려 적극 추진했던 중국문단의 원로 파금 선생은 문화대혁명에 관한 진정 좋은 작품이 산출되려면 수난자뿐만이 아니라 그 2세 3세가 써야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오늘의 문화혁명제재의 열독자는 단 문화대혁명의 경력자뿐이 아니다. 때문에 오늘의 새로워지고 바뀌여진 심미관과 력사관으로 어제를 뒤돌아보는 작업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재래의 문화혁명제재를 다룬 동류소설과는 완연 다른 참신한 기법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하여 인권이 유린된 어두운 력사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인류의 고난에 대한 련민을 보였으며 그 특정된 환경 속에 인간의 변형된 심태의 궤적을 진맥하려 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한 무리 악동들의 지극히 비도덕적인 짓거리의 련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로지 하나의 "충성"으로 깃발을 휘날리며 노도같이 달렸던 시대, 그들은 한 무리 반역자들이었다. 목적이 없고, 질서가 없는 무의미한 시대를 일탈과 폭력으로 배반했다. 이들은 사회 주류와 유리된 한 무리이다. 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나" 김찬혁, 두상(頭狀)이 크고 그만큼 생각 많고 감성이 섬세한 "나"는 어느 날 가출하여 "망나니"무리로 이전하게 된다. "똥파리", "회충", "림표" 등 이상한 별호를 가진 부랑배들과 섞이게 되며 거기서 러시아와 조선족 혈통이 반반인 "짜그배 누님", 그리고 촬영을 사랑하는 "홍상청 형님"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귀신의 집"에서 사는 "마스크귀신"을 만나게 되고 또 현성의 악명 높은 "마가네 형제"와 "사마귀"무리를 만나게 되고 세력쟁투에서 실세한 "똥파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또 그 사이 사이에 사춘기의 안목으로 짜그배누님"에게 반하게되고, "짜그배누님"과 "똥파리", "상철형님" 사이의 삼각관계를 목격하게 되며 세상에 대해 희미하나마 눈을 뜨게 된다. 20세기 나치스의 폭행과 비견된다는 "문화대혁명" 너무나도 풍부한 내용으로 텅 빈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야 비었든지, 가득 찼든지 인간은 자라나기 마련이요, 생명은 각자 나름대로의 가장 의미 있고 자기에게 알 맞는 방식으로 자기의 생명진로를 계속하기 마련이다. 개성과 관용과 성장과 생명개체를 말살한 시대, "충성"이라는 하나의 모드로 분식된 세상에서도 개체의 생명은 끈질긴 삶의 힘으로 자기의 진로를 계속한다. "똥파리"무리나 "사마귀"무리들은 모두 이런저런 원인으로 주류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은 무리들이요, 유리된 무리들이다. 그들을 어른들 세계에서 관개(灌漑)된 뒤틀린 가치관을 주입 받았다. 그 변형된 가치관 때문에 그들은 한결같이 삐여져 나가며 지어 갖가지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해방군에 참가하지 못한 군대 콤플렉스를 가진 "똥파리"는 똥파리대로 싸움만 일삼고, 녀자의 사랑이 결여된 김표는 김표대로 남들의 정사를 훔쳐보고, 이붓아버지가 싫은 나는 "나"는 나대로 가정에서 뛰쳐나온다. 그들의 악취미는 서로 합세 되여 자전거도 훔치고 배우의 무용신도 훔치고, 정신질환자의 물건도 빼앗고 모주석저작 암기표병인 "앵무새"를 빈집에 가두어 넣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의 허무와 황당으로 점철된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인류력사에 전후무후했던 어두운 음영의 연대에 대해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한 인간의 성장은 사회가 그 인간을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진로를 계속하는 것이다. 사회가 포옹해 주든지, 사회가 배척하든지, 사회가 기시하든지 관계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젊고 개체적인 생명의 팽배하는 생리와 정감이 뒤틀린 세월 속에 내쳐짐으로 하여 비롯된 불안과 미쳐난 행위가 전반 소설에서 화자의 심리의 흐름으로 관통된다. 하나의 인간생명 개체는 사회라는 이 거대한 바위틈에 자라면서 환경에 따라 자기의 방식을 택하고 자기의 생명을 가장 적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의 첫 번째 이붓아버지가 악명 높은 "5.7간부학교"에 잡혀가 고역을 치른 빌미로 세상 뜸과 함께 새로운 이붓아버지가 "내"가 다니는 학교의 "공인선전대"로 들어오게 된다. 가장들로부터 드러나 보이는 사회직위의 불평등(공인선전대인 아버지와 "혁명위원회 주임"인 "체육과대표"의 아버지의 불평등과 계급차이), 그에 따른 학교아이들로부터 오는 조소, 이런 복잡한 가정, 사회 환경들은 자연 "나"를 "정 맞은 못처럼 고부라져" 사회의 한쪽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작중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그 당시 정치풍토에 뼈 속까지 물든 가장을 둔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런 환경으로 하여 아이들은 너나없이 "굽은 길"을 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5.7간부학교"에 가서 죽은 적수 "사마귀"가 거의 비슷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수용과 리해가 바로 이런 것들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이런 특이한 시대환경은 너무나도 메말랐고, 성장과정의 "나"와 나의 무리들, 그리고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문화의 사막에서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문화의 감로수가 없는 "사막"은 이들을 병적인 인간으로 탈변하게 했다. 포악하기 짝이 없는 성미를 가졌고 여태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똥파리"가 영화 "꽃 파는 처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변을 보다말고 얼굴을 싸쥐고 우는 장면이 바로 이런 상황을 생동하고도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요로운 사회와 문화의 영양이 수요되는 성장과정과 이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메마른 사회환경은 결국 허무하고 변형된 인간들과 그 세대를 배출하고 만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우리문단에서 흔치 않는 성장장편소설이다. 성장소설을 첫 장편의 텍스트로 잡은 김혁의 소설에서 우리는 작가의 남다른 감수성과 이 풍부한 령역의 선택이 여태껏 결여된 우리 문단의 둔감을 느껴볼 수가 있겠다. 작가는 소설의 앞머리에 단 "작가의 말"에서 "전대미문의 대 사변 속에서 사회의 정신적 폭력에 의해 결손 감을 갖고있는 아이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고 그들의 단순한 시각이 대사변속의 가치관과 부딪치며 나오는 변형된 일상사를 보여주면서 력사의 대사기와 진 모습을 도출하려 했다" 고 창작 의취를 밝혔다. 가독성 짙은 작품이 어찌 보면 그저 렵기적인 에피소드의 라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기저에는 성장기 소년의 심리의 궤적이 섬세히 깔려 있어 작품의 맥락을 통합시켜주고 련속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전대미문의 병적인 역사시기를 거쳐 성장한 이들은 결국 그 유전인자와도 같은 그 음영의 락인으로 하여 문화대혁명이 결속 된 뒤에도 여전히 자기의 낙인을 벗지 못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사진관의 일개 점원 이였던 "홍상청"은 그후 사진관의 경리가 되였고,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짜그배누님" 역시 개혁개방 후에는 자기에게 가장 잘 알 맞는 "국제혼인매파"가 되고, 사냥총을 가지고 놀다가 눈에 상처를 입어 시력을 상실한 "김표"는 여전히 자기 신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맹인안마사"로 되었던 것이다. 소설이 말하는 바, 인간은 사회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성장진로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에 처했던 사회환경은 결국 생명개체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역시 김혁 소설가가 성장소설에서 념두에 둔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진술방식과 인물형상부각에 대한 반란 많은 생동한 인물형상을 주조해 냈던 김혁은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인물형상 부각을 회피하고 있다. 회피가 아니라 소설자체의 발전추세에 따라 부각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작중의 인물이 작가의 의도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도록 방임하면서 다만 자기의 이야기와 정감을 계속 풀이해 나가기만 했던 것이다. 하여 작중인물들은 바로 우리 곁에 와 있게 되고, 살아 숨쉬게 되고, 원시생활의 자연으로 회귀하여 독립적인 "인간"으로 풍만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김혁은 이번 작품에서 작중인물들을 자기 사상표출의 도구로 삼지 않고, 그들을 하나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줌으로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하고 있으며, 또 그럼으로 매 하나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살아 숨쉬는 개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은 것이다. 작품에서는 작중인물의 외표에 대한 묘사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사건의 진술과 "나"의 감각, 다른 친구들의 감각과 표정에서 독자들은 자연 그 인물을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똥파리"의 경우, 그에 대한 묘사는 때 날파람 있게 싸우는 것을 제외하고 상세한 묘사가 거의 없는 듯 하다. 다만 늘 성냥개비로 이빨을 쑤시고 말마디에 마다 "똥" 자를 달아 욕설을 퍼붓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와 그 황당한 짓거리들의 속출로부터 독자들은 "똥파리"에 대해 눈앞에 마주서서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로서 "똥파리"는 작가가 자기의 의도를 대변하는 도구가 아닌, 문단에서 그 플롯을 찾기 어려운, 이채로운 반면인물로 나타난 것이다. 어찌 보면 김혁은 인물묘사를 거부하는 듯하다. 피뜩피뜩 스쳐지나가며 한 두 마디에 그치고 만다. 지어 소름이 끼치는 "귀신의 집"에 있는 "마스크귀신"에 대한 묘사도 별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사건 진술을 통하여 우리는 등꼴에 식은땀이 나도록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또 "실눈을 하고 웃었다"는 한 마디에서 그처럼 공포로 떨게하는 "마스크귀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에서 벗어난 마음, 사회가 만들어낸 귀신이 아닌 사람으로 어울리려는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고, 한마디 분식도 없지만 콩나물 바가지를 두고 가는 "마스크귀신" 어머니의 행동거지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삭막한 인정 때문에 목말랐고 아이들이 베푼 작은 인정에 감동하고, 감사해 하느냐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혁은 그 장편소설 "마마꽃 응달에 피다"에서 "이야기"라는,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을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천일야화 같은 흥미 있는 이야기의 흥건한 덩이들이 잘 제련된 언어와 화법 같은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명쾌하게 지속적으로 흐른다. 그 영화각본을 읽는 것 같은 도약적이고 절주 빠른 이야기 방식은 직관적이면서도 핍진하게 독자들을 동란과 미스터리의 30여년 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와 작품을 이야기만이 아닌 품격(品格)높은 소설작품으로, 이야기꾼만이 아닌 재치 있는 소설가로 격상시키고 있다. 김혁의 첫 장편이지만 우리는 다산작가로 많은 인물을 만들던 작자가 현학적으로 인물을 부각하려는 흔적을 볼 수 없다. 작중 인물들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라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품 속에서 자기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기의 성격발전을 하고 있다. 이런 "성장"과 발전은 지어 소설이 다 보고 난 다음에도 독자들의 생활과 머리 속에서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독자만 소설 속의 인물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의 인물 역시 독자와 함께 살아 숨쉬게 되고, 현실의 생활 속에서 자기의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스름이 보이는 족속의 락인 작품의 행간에서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우리 족속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고, 중국이라는 이 크나큰 땅덩이, 가렬처절한 역사와 파란만장한 수난사를 겪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선족들의 낙인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작가가 태여나 자라난 룡정의 풍경이 작품의 곳곳에서 극적인 사건들의 무대로 펼쳐진다. 룡정 지명기원우물, 해란강, 말발굽 산, 대포 산, 령수 탑, 그리고 그에 따른 유래와 전설들... 불확실한 연대가 배태한 불확실성을 가진 인물 역시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인물 형상들이다. 사춘기 "나"의 마음을 그처럼 얽어매고, 그를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3층에서 뛰어내리면서 "빨간 무용신"을 얻어주었던 "짜그배 누님", 어떤 사람들은 누님이 그의 어머니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러시아사람과 "바람을 피워" 난 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와 중국에서 함께 살다가 계선을 갈라 리혼을 한 한족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작자는 그 출신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이지 않고 있다. 작자는 이를 독자들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그럼으로 하여 독자들의 상상의 공간은 더 커지게 되고, "짜그배 누님"은 작자 의사 표달의 도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그보다 문제는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바로, 그 "짜그배 누님"의 신세가 바로 우리 조선족들의 운명의 축소판인데 있는 것이다. 근대 이민을 시작해서부터 우리의 이민 1, 2세들은 조선반도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나 당시 "만주"라고 불렸던 중국 동북으로 이주를 했다. 그 과정에 갖은 고통을 겪기도 했고 많은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우리의 고향이 조선인지, 아니면 중국인지, 러시아인지를 모르는 때도 있었다. 어쩌면 러시아 사람의 딸인지 중국사람의 딸인지를 모를 "짜그배누님"의 신세가 바로 이를 말해주는 듯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친어머니가 누구인지는 더구나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놀려주는 체육과대표의 입을 통해 자기가 "주어온"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던져버린 아기가 떠있는 늪에서 자기의 신상에 대해 어렴풋이 깨쳐 알게된 것이다. 소설은 특정된 년대에 내쳐진 우리 민족의 생존환경과 그 심태에 대해 잘 파악을 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된 대사변속에 처한 소수민족의 운명과 그 양태, 이는 작품의 폭을 확장시켰을 뿐더러 더 많은 독자 권을 포섭하고 있다. 하면서 작품은 우리만의 빛깔로 중국문단의 문화대혁명수작에 비해 농도와 줄기가 다르게 읽혀지게 될 것이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접하면 누구나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속도감 , 그리고 읽고 난 다음에도 재미나게 음미해보는 매력을 갖고 있다. 미풍이 초원을 스쳐 지나듯 약간의 손놀림으로 흐르는 인물과 환경에 대한 묘사, 그러면서도 거칠게 흐르지 않고 섬세한 감각과 확실한 전달을 주는 방식, 지나간 년대를 반영했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손쉽게 읽힐 수 있는 활달한 문체의 구성, 지나간 한 년대와 그 시대 인물군상의 특점에 꼭 걸 맞는 묘술(描述)들이 작품 전체에서 점진적으로 자유분방하게 개인의 소사(小事)로부터 사회의 대사를 아우르면서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주를 마쳐도 여음을 울리는 악기처럼 독자들의 머리 속에 머무는, 머물러서 떠나지 않는 작품, 여기서 작가의 작품을 다루는 높은 기교와 깊이를 감지할 수 있다.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여러모로 최근 몇 년간 우리 문단의 장편소설 중 수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경업 ("도라지"잡지사 사장, 길림시 문화관 부관장)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3    소재의 상사성이 묵인되는 리유 댓글:  조회:2160  추천:43  2009-11-12
  . 평론 . 소재의 상사성이 묵인되는 리유 김 운 일   우리 소설문학의 실황을 알아보고싶은 심산으로 2004년 《연변문학》(1월∼9월호)에 실린 소설들을 두루 읽어보았다. 장편소설련재와 짧은소설을 제외하고 도합 17편이였는데 중편소설 4편, 단편소설 13편이였다. 이만하면 2004년에 《연변문학》에서 지은 소설농사가 괜찮을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질적으로도 발전과 제고를 보여주고있을뿐더러 14명 작가 모두 중청년들이였으므로 우리 소설문학의 뒤심이 그리 비관할바가 아니여서 시름놓이기도 하다. 이런 소설작품을 열독하고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겼으나 필자의 주의력이 제일 쏠린것은 소재의 상사성으로부터 사색되는 몇가지 문제였다. 그러면 소재의 상사성에 대한 상항을 밝히겠다. 내가 본 17편의 소설작품가운데 한국나들이와 한국로무송출에 련관되는 소재의 작품이 7편이나 되였다. 그러니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무려 41%를 웃도는 셈이라는 얘기가 된다. 무엇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되였고 또 이런 현상이 묵인될 정도로 지당하게 되는 리유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창조자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작가마다 미학리상과 주장이 서로 다르기때문에 같거나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더라도 매개 작가가 창조한 예술형상이 과시하는 주제사상의미가 서로 다를수 있는 동시에 그 예술기법도 서로 다르게 나타날수 있다. 소재의 상사성과 주제사상적의미의 차이성이 표현된 작품들은 동서고금의 문학사에서 비일비재한 현상이였다. 우리 중국문학사에서만 보아도 다같은 북송말 송강농민봉기를 소재로 하였으나 시내암의 《수호전》과 유만춘의 《탕구지》는 질적으로 다른 작품이였으며 다같은 매화를 소재로 하였으나 모택동의 복산자 《매화를 읊노라》와 륙유의 복산자 《매화를 읊노라》에서 표현한 주제사상적의미의 차이로 하여 부동한 작품가치로 돋보이지 않았던가. 다음 문예창작심리학의 측면에서도 이런 현상이 산생되는 원인과 그 존재적리유의 타당성을 설명할수 있다. 한마디로 이런 현상은 작가의 창조적사상에 의한 독창성의 표현인것이다. 서로 다른 작가의 머리속에는 같거나 비슷한 표상이 있을수 있다. 상상은 이런 표상을 분해하고 종합하며 또 다른 표상과의 련관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상상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련상내용은 작가마다 서로 다를수 있다. 바로 이런 창조적상상에 의해 작가의 독창성이 생기며 그것이 작품의 가치로 과시된다. 따라서 비슷한 소재였더라도 서로 다른 작품이 될수 있는 원인과 리치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이런 소재들은 우리 조선족의 생사존망과 련관되는 많은 문제들을 파생시키고있는 시회적 중대한 소재범위에 속해있다. 원래 사회문제에 민감하고 자각성이 높은 우리 작가들이 이런 소재에 이목이 집중되고 필묵을 쏟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아래에 내가 본 작품중에서 비교적 훌륭한 단편소설 세편을 골라 비교분석하면서 소재의 상사성이 묵인될수 있는 타당성을 사실적으로 립증하겠다. 내가 골라잡은 작품은 박초란의 《꺽저기》(《연변문학》2004년 1월호), 허련순의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연변문학》 2004년 5월호), 김혁의 《장백산, 사라지다》(《연변문학》 2004년 7월호) 등이다. 이 세 작품은 모두 안해가 한국으로 돈벌러 간 이야기를 썼으니 얼핏 보면 그 소재가 어슷비슷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이야기의 세부내용과 이야기방식이 다를뿐만아니라 작품마다에서 표현된 주제사상적의미가 다르고 예술기법 또한 작가마다의 독창성을 표현하고있으므로 서로 다른 작품임이 분명한것이다. 김혁의 《장백산, 사라지다》는 또 다른 모습의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나》의 안해가 《조선족어린이》, 《한국방문공연의 일원》으로 한국에 갔다가 《귀향하는》 공항에서 《사라지고》 없어진후 《나》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일인칭시점에서 썼다. 이 작품의 뚜렷한 특점은 이야기중심을 《사라지다》에 집중시킨것이다. 안해가 한국에서 사라진것을 비롯하여 그의 처제도 련인을 버리고 사라지려고 하며 《나》의 집 보모아줌마도 로임이 많은 《청도》의 한국회사에로 사라져간다. 그런가 하면 《나》의 몽경속에 나타났던 라체녀인모델도 사라려버리고 족발안마원 《신선각》과 함께 《입술…두터운 녀자》도 사라졌으며 인터넷 챗팅친구도 사라져버린다. 이런 《사라짐》의 크라이막스가 바로 마술사의 요술로 《장백산대형구조물》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나》의 처제가 사라져없어지는것이다. 작가가 노린 작품주제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동화 《어부의 집》에서의 욕심쟁이 로파처럼 끝없는 물욕의 현혹과 유혹에 매료되여 계속 사라져버린다면 마술사의 요술에 민족의 상징인 장백산구조물이 사라지듯이 《도시화의 물결, 출국바람에 의해》 《우리 조선족공동체가 급속히 무너지리라》는 주제사상적의미를 표현한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특징의 하나로 에피소드 삽입으로 플롯을 구성한것이다. 그외 회고적서술, 서두와 결말의 조응, 의미심장한 결말의 여운 등 예술기법들은 아주 매력적이였다. 이를테면 서두에서 라체모델이 깜쪽같이 사라져 없어진 몽경의 묘사는 무대우에 있던 장백산대형구조물과 처제가 깜쪽같이 사라져 없어지는 결말과 서로 조응되여서 《사라지다》의 의미적상징성을 더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라져없어진것을 목격한 어린 딸애가 《이모, 이모!》하고 《질린 목소리로》 부르짖다 《황소울음을 터뜨렸다》로 작품의 매듭을 지은것은 마치 조선족미래에 대한 후대들의 애절한 갈구의 웨침소리가 귀전에 메아리치는것 같아 작품에 대한 음미의 여운을 남기게 하였다. 상술한바와 같이 이런 작품들은 취급된 소재가 상사하였더라도 자체의 독창성에 의한 부동한 작품가치를 과시해보인것으로 하여 우리 소설문학에서 어엿하게 제자리를 차지한것이다.   김운일/연변대학 조문학부 교수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2    하위문화에 근저를 둔 하얀 혼의 독백 댓글:  조회:2263  추천:39  2009-11-03
하위문화에 근저를 둔 하얀 혼의 독백 - 김혁의 중편소설 <<조모의 전설>>을 읽고   ◇ 윤윤진     얼마전까지만해도 퍼그나 시끌벅적하던 민족문화와 전통, 그리고 민족문화에 대한 찬미, 긍정, 반성, 비판 등등이 요즘은 좀 조용해 졌다. 민족문화의 이중성에 대한 론의도 요즘은 잠잡해진 상태이다. 하긴 그동안 무척이나 떠들어 댔으니 한단락을 맺고 머리를 식히며 랭정하게 사고할때도 되였다. 한낱 들뜬 분위기와 감성에 치우친 분석과 평가, 그리고 찬미, 긍정, 반성과 부정, 비판은 편견으로 흐르기 십상이기때문이다. 사실 모든 민족문화의 뿌리는 하위문화에 있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 래일로 변하면서 시체와 현실응수에 바쁜 상위문화에서 한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는다는것은 어찌보면 사본취말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몇년전에 중국의 <<뿌리찾기>>문학도 주로 하위층인가들을 묘사하면서 거기에서 민족문화의 근저를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중국을 300년간이나 지배하면서 상위문화는 그럴듯하게 다스렸으나 하위문화를 정복하지 못하였기에 동화는 커녕 오히려 자기 문화만 잃고만 만족(满族)의 경우는 시사하는바가 큰바 우리민족이 일제36년 강점기에도 동화되지않은 주요한 원인은 역시 민중속에 깊숙히 스며있는 하위문화때문이 아니였는가? 양복을 입고 일본어를 구사하며 시체에 따라 요지경으로 변화되는 상위문화를 따랐더라면 민족문화는 고사하고 민족이란 그 자체도 어떻게 되였겠는가고 걱정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중국의 조선족문화를 이중성으로 규정할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상위문화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 근저를 밭머리에서 담배쉼을 하는 농군이나 부엌에서 맴도는 아낙들에게 두었다 할때 결론은 달라졌을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위층의 몇몇이 중국어를 몇마디 하고 이민족복장을 걸쳤다해서 전체 문화를 이중성으로 규정하는데는 어디까지나 맹점이 있는것이다. 민족문화의 본고장은 민중이고 민족혼의 바탕은 하위문화이며 이른바 문화의 저력은 하위문화에서 온다. 그런 측면에서 말하면 김혁의 중편소설 <<조모의 전설>>은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작품은 우리 연변에서 심심찮게 만날수 있는 할머니, 쌍가매의 기구한 일생을 통하여 우리 중국조선족의 백년 이민사의 희로애락을 적고있는데 귀에 못박히게 들어온 이야기라 무심하게 보면 액자형구성 외에 별 볼일이 없는 글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심층에 깊숙히 들어가서 귀를 기울이노라면 <<조모의 전설>>에서 조용히 전해오는 언질을 들을수 있으며 민족문화파수군으로서의 하위문화의 저력을 깊이있게 느낄수 있다. 소설에는 <<사람끼리 잡아먹었다는 기사년>>에 괴나리보짐에 쪽박차고 한많은 두만강을 건너 <<천년 묵은 진펄에 갈대숲이 우거지고 야수가 출몰하는>> 산간벽지에 봇짐을 푸는 그날에 태여난 운명의 주인공 쌍가매할머니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어디로 보나 빼여난데가 없고 수수한 할머니, 그에게 차려진것은 <<물고기가 논코에 욱실거리고 꿩이 가마에 절로 날아들고 뜰에서 몽둥이로 노루를 때려잡는>> 살기좋은 고장이 아니였다. 하느님이 그에게 마련하여 놓은것은 리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와 거대한 수난, 그리고 이민족의 기시였는바 쌍가매할머니는 운명적으로 이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운명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주어진 생활을 끈기있게 영위해나가면서 운명이지만 운명이 아니게, 숙명이지만 숙명이 아니게 괴나리보짐과 쪽박에 실려온 빈약한 문화를 기반으로 개척의 모지락괭이를 박으면서 새로운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른바 <<룡의 전설>>은 이렇게 생겨난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모든 수난을 무언에 맡기면서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하위문화의 저력과 궁냥, 그리고 본질이 안받침되여 있는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쌍가매할머니는 리상적인 인물이 아니며 선각자는 더구나 아니다. 오히려 길거리에서 마구 뒹구는 작은 돌멩이나 만주땅 도처에서 볼수있는 민들레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으로서 세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면서 발로 차면 채이고 밟으면 밟히우는 따라지인생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자의가 아니게 이국땅에서 태여났고 또 핍박에 못이겨 이민족에게 시집갔으며 온갖 고충을 다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모든것을 받아들여 삭히고 해소할수있는 무형의 힘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중속에 깊이 스며있는 하위문화의 깊고 넓은 <<우물>>일지도 모른다. 이 <<우물>>은 민중속에 깊숙히 박혀있는바 그 깊이는 누구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깊고 넓은 <<우물>>이 있었기에 그는 풍진세상의 모진 세파를 조용히 기르며 말없이, 그러나 굳세게 생활을 영위해 나갈수 있었던것이다. 훈장네 손주를 선뜻 받아들이고 자기의 아들을 서슴없이 전장에 내보낼수 있는것도 바로 이러한 굳센 생활의 신조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우리 중국조선족의 력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의 하나가 렬사가 많다는 사실인데 그것도 쌍가매할머니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의 민중속에 헤아릴수 없이 깊은 이러한 문화기반과 갈라놓울수 없는것이다. 따라서 쌍가매할머니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않은 할머니가 되며 우리 민족의 대중문화풍토 역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내적 힘을 가지고있는것이다. 이것은 쌍가매할머니의 형상이 가지는 첫번째 의의이다. 쌍가매할머니의 형상이 가지는 다른 한 측면의 의의는 할머니가 생활가운데서 보여준 외유내강적인 성격이다. 앞에서 잠간 이야기 했지만 소설에서 할머니는 거의 숙명적으로 운명대로 한생을 살아온 보잘것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인하고 끊어질지언정 굽어들지 않는 굳센 성격적 측면이 있는바 바로 이러한 성격때문에 그는 그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기를 지킬수 있었고 더욱이는 자기의 문화를 지킬수 있었으며 또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갈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말하면 할머니는 차면 굴러가는 돌멩이가 아니라 짓밟히나 기어이 다시 일어서고야마는 풀이라 해야 할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문화의 저력은 바로 이리저리 부대끼다가도 세월에 따라 다시 재생하고 생기를 얻는 풀과 같은 할머니의 그러한 정신에 있다고 력설하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문화의 재생능력에 문한한 경모의 정을 보내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바로 할머니의 그러한 성격과 정신이 조모의 전설을 만들었고 룡의 전설을 만들었으며 그것이 다시 우리 문화를 키워 왔으며 오늘의 우리 문화 역시 거기에 터전을 두고 있다는것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구색이 잡힌 현성의 력사와 그 력사의 년륜에 새겨진 사람들의 전설을 소리에 담아 우물은 무겁고 웅숭깊은 유장한 소리로 세기의 오페라를 속울림으로 연주하고 있는것이다. 그 순간 지지리하고 조악한 삶을 밟아온 할머니의 섬약하나 끈질긴 아집과 그 와중에 기어코 전하고자하는 할머니네 세대의 상상력에 수렴되는 룡의 전설이 주는 언질을 나는 읽어낼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전설을 받아서 이어나가야겠다는 자긍심과 사명같은것에 사로잡혀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명감이 있는한 새로운 전설은 민중속에서 계속 만들어 질것이며 그러한 전설이 지켜주고있는한 우리 민족문화는 영원한 힘의 원천을 가질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사회의 최하층 인간들속에서 작품의 령감을 얻는 김혁이 <<조모의 전설>>에서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로서 망각속에 뒤흔들리고 있는 요즘의 가치관과 문화관에 대한 엄연한 경고이며 또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하위문화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으로서 하위문화의 저력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대하는 모든 지성인들에 대한 간곡한 부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그 미래를 관심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지나칠수 없는, 심사숙고하여야 할 중요한 문제로 되는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조모의 전설>>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으로서 대중속에 깊숙히 뿌리박고 있는 작가의 문화적선택을 깊이 느낄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김혁의 소설이 준 두번째 인상은 소설에 넘쳐흐르는 호기와 박력이였다. 조비는 <<글은 기를 기본으로 한다.(文以气为主) >>고 하였는데 김혁의 글에는 바로 김혁다운 <<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김혁의 소설을 읽고나면 언제나 힘을 얻게 되는데 그 원인의 하나가 바로 그의 글속에 호기와 박력에 따른 매력이 있고 힘이 있으며 패기가 있고 저력이 있기대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호기는 김혁소설의 일대 특징의 하나이다. 일전에 발표한 일련의 중편소설 <<바람과 은장도>>, <<미망하는 도시>>, <<적(笛)>>, <<꽃뱀>> 등등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사회 밑바닥인생을 살아가면서도 그어떤 생활리상을 잃지 않고 있는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들은 또 거개가 리상파멸의 운명을 면치 못하는 인간들이다.  (김혁이가 하층인간들의 사회밑바닥 생활만 일관하여 쓰는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을수 있는데 그 주요한원인은 사회배경과 가정배경때문에 자신의 뛰여난 재질을 마음대로 발휘할수 없고 억제된데서 기인된 심리적침적물, 즉 콤플렉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콤플렉스에서 생기는 문화심리이 지향성인데 그는 언제나 그러한 인간들을 동정하고 그러한 인간들속에서 미를 발견하며 더욱 중요한것은 그속에서 변하지않는 문화적저력을 찾고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편폭때문에 후일로 미루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호협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멸도 호기롭게 대하고 있다. <<조모의 전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바 이민족과의 억지혼사를 피하여 우물에 서슴없이 뛰여드는 쌍가매, 동네사람의 억울함을 보고 화승총을 들고 왕지팡이네 집으로 달려가는 박포수, 왜놈들의 횡포앞에서도 두렴없는 미소를 짓고있는 훈장의 아들, 그들의 행동에는 모두 그 어떤 김혁식의 호기가 있다. 그런 호기가 있음으로 쌍가매는 또 렬사의 후예를 흔연히 맡아서며 또 그런 호기로 사당패집 아들의 배신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준다. 따라서 소설은 근자에 우리 문단에서는 보기 드문 양강지미(杨刚之美), 즉 박력있는 남성미를 보여 주고있는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김혁의 이 소설은 함축성있게 평범한 인간의 평범한 일생을 통하여 평범하지않은 우리 민족의 이민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문화의 기반과 그 미래를 이야기 하고있다. 바로 그러하기에 소설은 슈제트가 충분히 전개되지 못한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하얀 혼을 지켜나가려는 하얀 혼의 독백으로 되여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 주는것이다. 윤윤진 (문학박사, 길림대학 교수)  문학 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71    \"詩人 윤동주\"에 대한 평심단 의견 댓글:  조회:2488  추천:49  2009-11-03
장편소설 <<詩人 윤동주>>에 대한 평심단 의견 1, 제출된 기획서들중에서  김혁소설가의 <<시인>>이 작가의도, 가치가 투철하다.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를 잘한 것 같다. 다만 쓰는 기교문제이다. 작가의 능력으로 보면 잘 쓸수있을 것 같다. 윤동주가 실제인물이기에 자료가 많아 쓰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쉽지 않다. 여태 윤동주에 관해 방송소설만 있고 분량, 질적으로 적으나 모자라며. 윤동주의 동년부분 실제와 다른부분이 많다고 했는데 실제로 력사사실 그대로 쓰면 너무 국한되며, 자서전체에 빠져 실화에 가깝게 접근한다면 우려된다. 하지만 작가의 재주로 극복할수 있을 것 같다. 2, 장편소설 <<시인>>의 준비가 충분하다. 제출한 기획서중에서 <<시인>>이 가장 기대된다. 윤동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윤동주를 통해 당시 력사에 대한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근심은 실화로 치울칠까봐 걱정된다. 윤동주를 통해 보는 그때의 력사상황을 잘 그려냈으면 좋겠다. 예술적으로 충분히 소설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려운 문제이다. 3,  김혁소설가의 장편 <<시인>>이 제출된 작품중 논리가 가장 정연하고 괜찮다. 송우혜의 <<윤동주평전>>이 있어서 윤동주에 대한 참신한 리해가 없으면 쓰기가 어렵다. 윤동주라는 시인을 윤동주로 말할것이 아니라 력사로 말하고 그 문화를 컨트롤할 능력이 있어야한다. 이에 걱정이다. 허와 실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든다. 윤동주는 가치성이 있다. 진짜 좋은 소설이 되면 대단히 좋은 상황이 된다. 그때의 상황을 리얼하게 재현할수 있겠는가. 암흑기의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시대를 같이 써야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때 최남선까지도 투항했던 그때의 사회 암흑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알아야 한다. 그때의 상황에서 윤동주는 감옥 옥사의 상황까지 갔다. 이 작자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4, 우리는 연변 태생인 이 걸출한 시인에 대해 써야할 의무가 있다. 한반도를 통틀어 그렇게 뛰어난 시인에 대한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난이도가 크다는 얘기다. 이 작품을 완성하려면 윤동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석박사 논문 50프로는 읽어야한다. 시인의 시작품은 완전히 파악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윤동주시인에게는 난해시가 많고 모더니티하기도 하다. 제출한  창작 기획서와 스토리를 보면 두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인물의 기본성격이 반드시 파악돼야 한다. 이 스토리에서 보면 윤동주가 남성화 돼 있는데 윤동주는 사실 여성화된 인물이다. 부끄러워 하고 참회하고. 성격설정이 기본성격과 맞지않는다고 본다. 둘째, 시인의 가장 중요한 사상을 홀시하지 않았나 본다. 외면은 아니했지만 윤동주는 가장 민족적이면서도 가장 기독교적이다. 이것이 감춰져 있다. 반드시 기독교를 잘 다뤄야 윤동주가 살아날수 있다. 셋째, 극본화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김혁소설가는 영화, 극본에 각별한 흥미가 있고 소설도 많이 극화돼 있다. 5, 장편 <<시인>>은 시만 라렬할 것 아니라 윤동주라는 인간을 잘 써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돌파가 있을수 있다. 그때 암흑기에 놓고 그 인간을 써야 한다. 문화함량이 적고 사실만 엮은 작품은 목적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윤동주는 기독교영향을 받으며 성실하게 자란 사람이다. 성격이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현실의 벽에 부딛쳤다. 윤동주는 고민이 많았다. 자아성찰을 하고 돌파구를 찾아 자기완성을 한 사람이다. 이런 지식분자다. 고민하면서 인간답게 살려고 애를 썼다. 송몽규를 만나는데 송몽규는 윤동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윤동주는 송몽규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송몽규를 따라가지는 않았다. <<시인>>이 인간으로 잘 부각돼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윤동주 사건에만 매우지 말고 시대적 분위기, 배경을 잘 그려야 성공한다.  연변작가협회 제7기 계약작가 평심위원단  조성일 (평론가, 전 연변작가협회 주석, 중국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회장)  한석윤 (동시인, 전 중국조선족소년보 사장,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회장) 김관웅 (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허련순 (소설가,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김경훈 (연변대학 교수, 평론 <<윤동주론>>의 저자)  서시/노래: 조영남
170    미디어와 메시지 댓글:  조회:2108  추천:39  2009-10-27
. 평론 . 미디어와 메시지  -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번 3대문학지들에 게재된 소설들중에서 필자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은 단연 김혁의 중편소설 \'병독\'이였다. 최근에 읽은 일련의 소설들중에서 이 작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빼여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문단에 흔치않은 포스터모더니즘계렬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포스터모더니즘에 대한 여러 해석들중에서 그 현학적인 허울을 벗겨버린다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특점들이 남아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첫째는 엄숙주의, 권위주의, 리상주의에 대한 배척, 둘째는 대중예술과 고금예술 사이의 경계불명, 셋째는 혼성모방(混成模仿), 넷째는 저자와 독자관계의 재정립 등이다. 은 이러한 포스터모더니즘의 특징들을 발판으로 세워진 소설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이다. 소설은 컴퓨터광인 주인공 가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을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으로 전경화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네티즌이 아니면 친인친척들로서 그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가까운 관계라고 하는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나 혈통적공간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심리적공간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라 자처하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심리라는 이 고상한(?) 단어는 벌써 가칙를 잃은지 오래다. 이 소설의 곳곳에서 우리는 정상적이고 단정한 (아니면 책벌레나 저능아와 같은?) 전통의 젊은 이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는 거의 동시에 세명의 녀성들과 아무런 부담없이 섹스를 즐길뿐만아니라 자기 이모의 장례식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아 땀을 흘리다가도 녀자친구의 애완견 장례에서는 소리내여 울고있는 특이한 별종이다. s2o라는 아이디를 가진 의 녀자친구는 몸의 가장 은밀한 곳에 까지 나비문신을 새기고 있는 기상천외한 인물일뿐만 아니라 방송국의 모 pd가 자기 가슴을 만지는것을 보고 남자친구가 은근히 화를 내자 제쪽에서 외려 하고 항의하면서 자기 가슴은 인공으로 만든 가짜이기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도 처음 만난와 아주 자연스레 침대에 오른다. 에게는 천사로만 보이던 도 몇번의 섹스를 나눈 뒤에는 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컴퓨터를 안고 튀여 버렸고 양말씻는 기계로나 보이던 빨래판 같던 도 결국은 나를 떠나 일본남자와 결혼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조나 도덕이니 량심이니 사랑이니 하는것들은 한낱 휴지쪼각에 불과하며 심지어 돈까지도 쓰레기에 다름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소설의 저자에게 하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저자는 소설속의 주인공의 말처럼 \'왜 내 정신도 생리통이다\'하고 소리지를지도 모른다. 현실속에서 리얼리터를 별로 얻을수 없는 이러한 플롯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것인가? 이것이 우리 독자들 몫인것이다. Pd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권위주의, 돈에 목이 매인 엄마로 상징되는 이른바 어른들의 리성주의, 교원으로 있는 이모의 훈계로 표현되는 소위 지성인들의 엄숙주의, 이러한 모든 기성질서에 대한 이들의 배척과 풍자는 상당히 의미있는것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무의미한 담론을 통해 표현하는 의미, 이것은 전형적인 포스터모더니즘의 기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진실이 없는것은 절대 아니다. 은 의 컴퓨터를 훔치긴 했지만(?) 그 대가로 성실하게 섹스파트너역활을 했고 또 부족한 부분은 돈으로 남긴다. 은 비록 아이디에 미안한 쫀쫀한 놈이지만 녀자친구와의 의리(?)만은 무섭게 지키는 위인이다. 도 친구의 일하나만은 착실하게 도와주는 의녀(义女)이며 역시 성실하고 의협심이 많은 괜찮은 남자이다. 이것이 그들의 진실인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정조가 있고 그들의 사랑이 있고 그들의 도덕이 있는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설속에서 모두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추락하는 모든것은 가치가 없고 무의미한것인가? 추락하는것은 모두 추락하는자의 몫인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핵이 있을수 있다. 이러한 의 넋두리같은 리유없는 반항을 우리가 왜 새겨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광란적인 환상체험을 우리가 왜 음미해야 하는가? 우리가 왜 의 선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러한 그들의 배척과 풍자가 바로 어른 세계의 반작용인탓이다. 이 점은 소설속에서도 여러번 제시되지만 특히 작품의 결말에서 잘 드러난다. 가 중고품으로 사온 컴퓨터는 이미 바이러스에 걸려 있다. 그것도 다른 바이러스가 아닌 바이러스다. 라는 영문문자만이 식욕과, 성욕, 물욕의 만족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욕구불만, 이제 그들에게 고픈것은 배가 아니라 머리인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나오니 그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바이러스가 있을가? 그런데도 어른들은 유치하게도 식품이나 돈으로 아이들의 바이러스를 치료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이 소설속에는 또 네수의 신세대 한국가요가 그대로 인용이 되여 있다. 짜깁기를 통한 혼성모방, 이러한 혼성모방을 통한 순수문학과 통속예술의 접목, 이러한 접목을 통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파괴, 이것 또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이다. 이외에도 지적하고 싶은것은 텍스트의 일인칭 초점화자 시점과 언어문제의 절묘한 조화, 의학에서의 하나의 치료과정을 방불케하기도 하고 또한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상징하는것 같기도 한 a로부터 z에 이르기까지의 서술단락, 독특한 개성과 아이러니한 상징성을 결부시켜 낯선 대상의 병치에 성공한 이름짓기 등은 모두 이 소설의 성공에 기여한바가 크다. 제한된 지면으로 하여 이러한 측면에 대해 상세히 다룰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특히 높이 평가하고 싶은것은 이 소설에서 보여준 김혁의 언어구사가 자유자제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정말 는 점이다. 일찍 카나다의 석학 맥 루안은 라는 경세의 절구를 남겨 우리에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상기시킨적이 있다. 매체가 전달하는것은 그 내용과는 전혀 다른, 곧 매체 그 자체의 특질일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선견지명이 아닐수 없다. 과학은 매체를 변화시키고 매체는 사람을 변화 시킴으로써 우리 사회는 저모도르는 사이에 과학과 매체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여 버렸다. 그리하여 편지세대, 전화세대, 텔레비죤세대, 컴퓨터세대 하는 신조어까지 생겨 나게 되였다. 오늘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관능적이고 감각적이고 기능적이고 경박한가 하는것을 직시한다면 그것이 매체의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쉽게 간파할수 있을것이다. 편지로 사랑을 나눈는 련인과 전화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 그리고 인터넷 메일로 사랑을 나누는 련인은 같은 생각을 할수가 없는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매체의 변화에 줄곧 둔감한 반응을 보이던 우리 문단으로서는 김혁의 에 감사해야 할것 같다. 김혁은 인터넷을 가리켜 얻음이자 잃음이고 바램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제는 그 잃음의 정체와 바램의 대상을 낱낱이 환기해 볼때가 된것이다. 서영빈 (문학박사, 북경 경제무역대학 외국어학원 원장)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69    줄어가는 천재와 가치선택의 곤혹 댓글:  조회:2380  추천:43  2009-10-20
  . 평론 . 줄어가는 천재와 가치선택의 곤혹- 김혁의 중편 \'천재 죽이기\'가 시사해주는것  물질적가치가 우위인 시대에 정신적 가치의 소유자들인 참된 지식인들은 흔히 소외를 받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이라든가 직위같은것들만 존중하는 사회에서도 참된 지식인들은 개밥속의 도토리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래서 권력중심의 봉건시대에 산 리백은 자기를 귀양은 신선이라고 하였고 금전중심의 자본주의시대에 산 보들레르는 자신을 배사람에게 잡혀 갑판에 묶여있는 바다새 신천옹(信天翁)이라고 비유했다. 이러한 비유가 아니더라도 이라는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순수한 지식인일수록, 천재일수록 돈이라든가 직위같은것들만을 존중하고있는 사회에서는 혼자 살아나가기 힘든 존재이며 세속에서는 십중팔구 바보취급을 당하게 된다. 하늘을 날던 긴 날개가 땅우에 걸어다닐 때에는 도리여 방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수 있다. 김혁의 \"천재죽이기\"는 바로 오늘의 권력본위, 금전본위의 시대에 한 천재적 두뇌를 가진 순수무궁한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 중국은 권력본위시대로부터 금전본위시대로 이행하는 과도적시기인 까닭에 권력과 금전이란 가치가 겨끔내기로 판을 치고있으며 많은 경우에는 이 량자가 흔히 제휴를 하고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속의 주인공man은 지식정보의 획득에는 천재이지만 금전의 획득에는 백치에 가까운 위인이다. 때문에 이 사회는 man의 머리속에 저장되여있는 지식은 필요로 하고 또 충분히 리용해 먹으면서도 모든 화려하고 풍선한 권력과 금력의 향연에서는 죄다 소외 시켜 버린다. 그래서 man은 남들처럼 남들이 몇번씩이나 한 돈많은 총경리한테 마누라마저 빼앗겨 자눙에는 페인으로 되여 버린다.지식과 금전세력간의 갈등은 man과 man의 사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표면상에서 볼때 man은 안해마저 빼앗겼으니 패배해도 너무나 처참하게 패배당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총경리가 라고 던진 질문에 라고 랭소한다. 텍스트에서 비록 작자는 여운으로 남겼지만 금전만능의 시대도 영원히 지속되지않으리라는 확신이 담겨있는것이다. 오늘날 정신적가치에 가해오는 물질적 가치의 횡포에 대한 man의 증오는 사실은 작가 가치관의 발로라 해야 할것이다. 물질에 편중하여 정신을 죽여 버리는 지금의 현실을 한마디로 반신불수적인 문명이요 반숙(半熟)의 덜 익은 문화라고 꼬집는 이 작품의 문화비판의 심도는 상당히 깊다고 볼수 있다. 소설중에는 주인공과 그의 라이벌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장면이 여러번 중복된다. 정신문화 또는 정신적가치의 상징인 man이 을 내였을때 물질적 가치 또는 물질문화으 상징인 >가 낸것은 였다는 이 묘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현실로 되고 있는 물질적가치의 횡포에 따른 정신적가치의 패배현상을 아주 상징적으로 잘 보여 주고있다. 하지만 물질적가치와 정신적 가치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승패를 가를것이 아니라 상보상생(相埔相成)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 할것이다. 아마 작자 역시 이를 바랐을것이며 이렇게 되여 주지않는 오늘 현실을 심각히 비판하고 꼬집으려는데 그 창작의 동기를 두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문예부흥시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말처럼 는 시대는 이미 우리 인류앞에 성큼 다가섰다. 이 지식본위시데의 론리를 역행하는 는 우리 사회에서 하루 빨리 종식돼야 한다는것이 아마도 이 작품의 여운일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man의 안해는 역시 상징성이 풍부한 인물형상이라고 할수있다. 즉 가치세계에서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갈보같은 존재이다. 돈의 품에 안겼다가도 지식의 품에도 안기며 또 여의치않으면 권력의 품에도 안기는 존재이다. 우리 지성인들속에서도 가치선택에서 지조없이 왔가갔다하기를 밥먹듯 하는 무행문인(无行文人)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오지않았는가. 또 이런 가치선택에서 갈보형인물보다 더 총명한 인물들이 있으니 이들은 권력, 돈, 지식 이 3대가치들을 죄다 자기의 애인이나 첩으로 동시에 기르고있다. 이런 교토삼굴(狡兔三窟)형의 지식인들이 또 우리눈에 적게 나타나는가. 이 작품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것이 실로 많다고 할수 있다. 김관웅(문학박사, 연변대학교수)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68    인물형상부각의 새로운 기법 댓글:  조회:1912  추천:41  2009-10-20
. 평론 . 인물형상부각의 새로운 기법- 김혁의 소설 \'어떤 개의 순애보\'가 보여준 기법추구   겨울철 소설들의 공동한 특점은 소설창작의 모든 분야에서 새것에 대한 추구, 새것에 대한 발굴, 새롭게 단장하는데 모를 박고 자유롭고도 창조성적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소설문학의 예술적매력은 창신에서 오고 우리 소설문학이 고속도로 발전하는 생명력도 창신에 있다는것을 이 번기 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였다. … 문학은 인간학이다. 문학의 묘사대상, 등장인물, 접수주체 모두가 인간이다. 인간학으로서의 소설문학도 인간을 쓰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형상화하는것이다.소설에서 부각되는 인간은 자기만이 갖는 얼굴, 자세, 목소리가 있는 개성화도니 인물로 되여야 한다. 개성화 된 인물을 부각하는 형상화수법과 기법은 생활의 론리대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러나 소설마다 자기의 기법이 있고 그것도 새로운것을 찾아 쓰고 있다. 이런 기법은 풍만한 인물형상부각에 이바지 된다. 이러한 미학원칙을 떠난 기법추구는 쓸모가 없다. 겨울철의 우리 소설들은 동물을 통하여 인물형상을 부각하는 새로운 기법을 발굴하고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것이 아니다. 18세기 박지원의 소설 에서 범을 등장시키고 범의 꾸중을 통하여 북곽선생에 의하여 대표되는 량반들을 , 으로 풍자하고 농민들의 형상을 부각한것이다. 그러나 우리 문단을 놓고 말하면 동물을 통하여 인물을 부각한 소설은 상대적으로 많지 못한것이다. 이 번기 에 발표된 김혁의 소설 \'어떤 개의 순애보\'는 우화와 소설의 결합을 시도한 우수한 작품으로서 기법이 새롭다. 작품에서는 인격화한 라는 개를 등장시키고 그의 시각에서 파산되는 우리 농촌경제, 문을 닫게되는 농촌학교, 도시로 진군하는 농촌녀성과 농촌총각들의 고통, 돈벌이로 외국에 나가면서 사기당하는 등 변화되는 생활을 그려내고있다. 이것은 개의 입을 빌어 이루어지는 우화식 서술이다. 여기에서 소설은 착중하여 개의 주인인 소학교 교원과 그의 아들의 형상을 성공적으로 부각하였다. 소설에서는 또한 개의 진실한 마음과 아름다운 행위, 사랑에 대한 추구와 그것의 비참한 끝장 등을 소설의 화자가 서술한다. 개는 인간의 생활을 서술하고 소설의 화자는 개의 생활을 서술하며 이렇게 서로 교차되는 서술은 소설과 우화를 결합할수 있었고 부동한 측면에서 인간을 쓰고 그와 비유된 개의 순애보를 쓸수 있었다. 특별히 지적하고싶은것은 개를 통하여 인간을 그려내는 그 기법이 자연스럽고 생활의 론리에 맞으며 개의 생활방식과 인간의 생활방식을 유기적으로 내재적으로 련계시킨면에서 새롭다는것이다. 임범송 (연변대학 중문학부 교수)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67    가을, 책에 추파(秋波)를 던지다 댓글:  조회:3151  추천:39  2009-10-09
  김혁 독서만필 (6)       가을, 책에 추파(秋波)를 던지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는데 바쁜 일상에 쫓기다보니 요즘들어 책읽기에 많이 게을러졌다.   거의 매일이고 사들인 책들을 한달에 한번 꼴로 블로그에 올리며 점검하려 했는데 7월분까지 정리하고 더 올리지 못했다. 반성의 채찍을 들며 그동안 적지않게 사들인 책들중에서 감명깊게 본 책 몇부 뽑아 독서지인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고저 한다.     『게 공선』(蟹工船)   게를 잡아 통졸임으로 가공하는 배안에서 혹사당하는 어업로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소설이다. 192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한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우심화되고있는 현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때문이다.       고바야시 다키지     저자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1903~1933) 는 우리가 어릴적 교과서에도 나왔던 작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쟁 후에 걸쳐 형성된 하나의 조류인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계급주의 작가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반대했으며 로동계급의 고통과 그 사회적 원인을 파헤치는 작품을 주로 썼다. 지하운동을 전개하다가 경찰에 체포여, 모진 고문끝에 29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인민문학출판사 출간으로 된 “게공선”은 앞면은 만화로 뒤면은 소설로 되여 있어 심각한 내용도 통속적으로 접할수 있어 좋았다.   “칼의 노래”     저자 김훈   한국지인에게 부탁해 이제야 구입했다. 로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즐겨 읽은 책이라 한다. 무엇보다도 작가 김훈이 신문기자 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라 책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나역시 20대초반분터 시작해 지금가지 작가에 신문기자라는 타이틀을 20년 가까이 가지고있으니   책은 불명의 명장 '이순신'에 대해 당대의 사건들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 표현해 내며 사회 안에서 개인이 가질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경절련휴에 완독할 예정이다.     “기차” 남해(南海)출판사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에 이어 내가 또 매료되기 시작한 일본 추리소설 작가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그러한 그의 방향성을 가장 잘 계승한 현대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다. 그래서 미야베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딸”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어깨를 겨룰 정도의 어마어마한 작가지만 처음에는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직해 평범하게 책을 즐겨 읽는 독자였다고한다. 처녀작도 고교 졸업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쓴 소설이였다고 한다. 그녀는 특별히 작가가 되기 위해서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직장 생활 중 문화센터나 시민교실에서 열리는 '소설 강좌'를 들은 것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싱겁기 그지없다. 이렇다 할 사건이나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 뛰여난 탐정이나 깜짝 놀랄 반전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평범함 속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사연을 탐색하는 능력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리소설의 녀왕 아가셔 크리스티이후 또 한분의 미스터리의 녀왕으로 당당히 버티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언제나 현실이 담겨 있다. 하기에 “기차”에도 '르포식' 추리소설,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평이 붙어있다. 엽기, 취미의 미스테리물을 기대하고 미야베의 소설을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진정 수준급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이제 추리라는 격식에 사회문제라는 깊이를 부여한 추리물도 손대야 할가보다. 중국은 불쾌해 中国不高兴 (강소인민출판사)       이 책은 최근 건국 60주년을 맞는 중국독자들에게서 부쩍 관심을 끌고있는 책이다. 출간 보름 만에 각종 포털사이트 책 코너의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책 표지에는 ‘나라를 위해 직언하고,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또 ‘큰 시대, 큰 목표와 우리의 내우외환’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책은 새로운 시대, 중국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왜 불쾌한가?’ ‘중국의 주장’ ‘작은 자비심을 내던지고 위대한 목표를 빚어내자’ 등 3부분으로 이뤄진 이번 책의 요지는 중국이 더 이상 잠자는 사자가 되지말고 큰 나라답게 세계를 이끌자는 것이다.   특별히 언론분야의 사업일군들에게 권장한다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66    버려진 자의 고뇌 댓글:  조회:3739  추천:51  2009-10-09
  . 칼럼 .   버려진 자의 고뇌 - 김혁의 소설집 출간에 부쳐    우리의 조선족문단에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30대의 젊은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혁, 문학의 거의 모든 쟝르를 섭렵하면서 기자라는 딱지까지 붙이고있는 사람, 소설에, 시에, 수필에, 르포에, 다큐멘터리에, 아동문학에... 문학이라는 궁전의 구석구석에까지 그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그가 소설창작집을 묶었다. 참으로 경축할만한 일이다.   문여기인(文如其人)이란 말이 있다. 김혁의 소설을 읽고나면 그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김혁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얼마만큼은 알고있다고 자부하고있는 나에게 있어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강렬한 느낌이 있다면 바로 그
165    나무 댓글:  조회:1895  추천:55  2009-09-24
    . 冥想 .  나 무 김 혁       나무로 룡마루를 이니 나무는 하늘이 되였고 나무로 바닥을 까니 나무는 땅이 되였다.    나무로 국자를 파니 나무는 식욕이 되였고 나무로 침대를 짜니 나무는 번식이 되였다.           나무로 쟁기를 맞추니 나무는 로동이 되였고 나무로 의자를 만드니 나무는 휴식이 되였다.          나무로 피리를 만드니 나무는 음악이 되였고 나무로 솟대를 만드니 나무는 주술이 되였다.          나무로 함을 만드니 나무는 용납(容納)이 되였고 나무로 액자를 맞추니 나무는 추억이 되였다.          나무로 자대를 끊으니 나무는 과학이 되였고 나무로 경당목(惊堂木)을 만드니 나무는 법률이 되였다.          나무로 표식을 하니 나무는 향도(向导)가 되였고 나무로 책상을 만드니 나무는 배움이 되였다.           나무로 울바자를 치니 나무는 거소가 되였고 나무로 문을 짜니 나무는 경계가 되였다.           나무로 몽둥이를 삼으니 나무는 폭력이 되였고 나무로 표창을 깎으니 나무는 전쟁이 되였다.           나무로 다리를 이으니 나무는 교류가 되였다고 나무로 배를 무으니 나무는 교통이 되였다.          나무로 송엽장을 삼으니 나무는 부상이 되였고 나무로 지팡이를 짚으니  나무는 로후가 되였다.         나무로 관을 짜니 나무는 안식이 되였고 나무로 비석을 세우니 나무는 기념이 되였다.          나무로 목탁을 만드니 나무는 종교가 되였고 목탁을 두드리 니 나무는 전언(真言)을 전한다     나무아미 타불~ 나는 나(我)무(無)이다.   나무,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격월간 문학지 “도라지” 2009년 4월호        
164    아직도 깨지 못한 천국의 꿈 댓글:  조회:2532  추천:46  2009-09-24
아직도 깨지 못한 천국의 꿈 _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서문 정판룡 (연변대학 전임 교장) 전 중국사람이 다 그런것처럼 중국조선족도 지금은 누구나 할것없이 돈을 벌려고 한다. 돈을 벌어야 우리도 남처럼 잘살수있으며 우리의 민족교육사업도 발전시킬 수있다. 지난날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괴나리보짐을 메고 두만강, 압록강을 넘어온 것도 잘살기 위한것이며 그뒤 수십년간 국내외의 적들과 피를 흘리며 싸운 것도 잘살기 위한것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잘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한국이나 세계각지에서 사는 우리 민족들과 비교해보아도 우리는 가장 못 사는 축에 속한다. 그러기에 가난이 한이 된 중국조선족들이 지금은 가난에서 해탈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이로하여 최근 생겨난 것이 ≪한국꿈≫, ≪한국열≫, ≪코리안드림≫등으로 불리우는 돈 벌러 한국으로 나가는 사회풍조이다. 한국은 조상의 나라이며 동족이 살고있어 돈 버는데 편리하고 중국과 한국지간의 로임소득차이로 중국보다 몇배를 벌수있는 가능성, 기술이 없어도 힘만있으면 벌수있다는 등으로 하여 중국에서 돈 못버는 조선족들은 누구나 한국에 가려 한다.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발달한 나라에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가기 위해 법까지 무시하고 불법체류, 밀입국, 위장결혼까지 하거나 또 이것을 리용하여 일부 한국과 중국의 협잡군들이 조선족을 상대로 사기협잡을 하여 엄중한 사회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일반현상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엄중한 사회문제이며 현상이 아닐수 없다. 지금까지 직접 사기당한 사람이 만여명이나 되며 사기금액이 인민페로 3억원을 초과하고 사기피해로 하여 죽은 사람이 근 백명이나 된다고 하는 ≪한국초청사기사건≫은 중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우리 동포들을 놀라게 한 큰 사건이다. 월수입이 불과 몇 백원도 안되는 중국에서 몇 만원이라는 돈을 사기당했으니 사기피해자들이 어떤 곤경에 빠졌으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할수 있다. 이리하여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 서로돕기≫운동을 선두로 한 피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민간차원에서의 모금활동이 전국적인 범위에서 벌어졌으며 미국 등 나라들의 우리 동포들도 구원의 손길을 피해자들에게 뻗쳤다. 그러나 이 사기피해사건은 사건자체의 성질이 복잡하고 국제성질을 띠고있다는데서 중국에서는 한동안 여론에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며 아는 사람도 많지 못했다. 그뒤 피해자 자신들 및 동정자들의 부단한 노력과 사건본신의 엄중성으로 하여 지난해부터는 정부에서까지 이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판되는 김혁의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는 작자가 당시 영향을 고려하여 우리 조선족의 요론에서도 감히 공개적으로 말을 못하던 사기사건의 진상을 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은 부동한 각도에서 한국초청사기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론의한 글들로 구성되였다. 그가 그 당시 이런 글을 쓴다는것은 상당한 정도의 담력과 용기가 수요되였다. 중국에 사는 우리 민족의 오늘의 운명에 대한 남다른 그의 관심과 피해자에 대한 깊은 동정심이 그로 하여금 그런 글들을 쓰게 한것같다. 내가 알기에 김혁은 ≪고중도 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18세에 처녀작 ≪피그미의 후손≫을 내여 사람들을 놀래게 했고 20세에 ≪길림신문≫기자로 발탁되였으며 지금은 벌써 200여편의 시, 소설, 수필을 발표했고 문학상만 해도 십여차나 받은 재능있는 문학인이다. 비록 공부는 크게 못했지만 천성적인 문학재능에다 근면과 노력을 가하니 빠른 시일내에 그처럼 많은 성과들을 내게 된것이다. ≪정규적인 체계교육을 받지 못한 저로서는 오직 분투만이 유일한 길이였습니다.≫고 언젠가 김혁씨는 말한적있다. 재간도 재간이려니와 사람은 분투목표가 있고 목표실현을 위한 끈질긴 노력만 한다면 꼭 성공한다는 것을 김혁의 인생도로에서도 알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초청사기사건의 진상과 피해자들의 참상과 그들이 겪고있는 고통에 대하여 잘 몰랐고 또 그에 대한 관방의 태도도 그리 명확하지 못할 때 작자 김혁씨는 과감히 일어나 맨 먼저 사기로 인한 피해자들을 동정하고 지지하고 나선 언론인가운데의 하나이다. 그는 사건의 진상과 피해자들의 참상을 재빨리 사회에 알리는것이 곧 언론으로서 피할수 없는 의무라고 인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근 1년가량 수백명에 달하는 불우한 피해자들과 접촉하면서 그들과 함께 숙식하고 그들과 함께 울고웃으며 그들의 뼈아픈 사연들을 수첩에 적고 색바랜 생활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그리고 그는 이것을 소재로 하여 ≪한국인 사기협잡행각에 대해 힘자라는 한 전방위적으로 추적해보고 그 피눈물 나는 진상을 펼쳐보이며 그 불운의 운명을 씻기 위해 땅동이를 쏟고있는 한국인들, 세계각지의 량지(良知)가 있는 동포들의 노력과 성원을 표방하고……<코리안드림>에 흔들리고있는 우리 사회를 진맥≫하는 그런 큰 글을 쓰려고 했다. 이렇게 쓴 글이 곧 1997년 ≪청년생활≫에 련재된 장편련재추적보도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이다. 김혁씨의 추적보도는 사기로 하여 곤경에 빠진 피해자들의 현황과 사기군들의 사기협잡행각을 사실 그대로 생동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곤경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한국 및 미국 등 나라의 우리 동포들의 뜨거운 동포애에 대하여 썼으며 사기피해를 당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른 자세에 대하여 쓰고있다. 수많은 조선족에게 큰 재난과 고통을 가져다준 전대미문의 한국초청사기사건은 아직도 철저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조선족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있다. 중국정부에서까지 이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는 있지만 사건자체가 복잡하고 관련되는 문제들이 많아 일부분의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았을뿐 다수는 보상도 받지 못하고있다. 더군다나 한국사기군들이 도처에서 사기행각을 할수있은것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한국에 나가려고 하는 조선족들의 이른바 ≪한국꿈≫때문인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꿈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있다는것이다. 1994년부터 만연되기 시작하여 우리 조선족사회에 엄중한 후과를 남긴 가짜초청사기사건 그리고 지어는 ≪페스카마호≫선상반란 사건까지 빚어내게 한 우리 로무자와 한국고용인간의 갈등, 뒤이어 불어닥친 ≪IMF한파≫등은 오직 한국에 가야만 돈을 번다는 꿈을 여지없이 부셔버리고 있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국이 아니면 다른 나라라도 나가야 벌수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있다. 그리하여 여전히 수만원의 ≪수속비≫를 내고 한국 혹은 외국에 나가는 초청장을 사는 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로 하여 국외로 나가지도 못하고 가산만 탕진하는 례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런 때에 김혁의 이 추적보도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가 단행본으로 출판된다는것은 자못 의의가 크다. 작자가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한것처럼 ≪요행수를 바라고 땀동이를 적게 흘리면서 일확천금을 바라는 성숙치 못한 심리와 운명을 남에게 걸고 동정과 행운만 바라는 꿈은 허황할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보다 충실하고 내용있는 삶, 풍요롭고 차원높은 삶을 영위하는데서의 전화위복(转祸为福)의 계기로 될수있는것이다.≫ 나는 이 책의 출판이 우리 조선족으로 하여금 최근년간에 발생한 수많은 불행한 사건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음으로써 하루빨리 한국꿈에서 깨여나 맑은 정신으로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1998년 김혁 작품집 출간기념회에서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63    어디선가 탱고소리 들려온다 댓글:  조회:2877  추천:51  2009-09-18
    . 수필 .   어디선가 탱고소리 들려온다       김 혁          영화 포스터     창작에 쫓겨 오전 내내 키보드를 두드려대다가 머리도 쉬울겸 영화테잎도 살겸 점심도 먹을겸 거리로 나갔다.   국제무역청사 앞에 이르러 연길에 하나뿐인 육교(天橋)에 올랐다. 그런데 나를 이상케 하는 것은 점심이 가까운 무렵 이였는데 륙교우에 사람하나 없이 나 홀로 뿐 이였다는 것이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서야 뒤미처 영문을 깨 달았다. 길 복판에 가설했던 가드레일을 철수하면서 사람들은 더는 육교를 건너는 번거로움이 없이 길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육교에 오르고 육교를 지나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보였다.     그리고 홀로 육교위를 걷노라니 하나의 영상이 머리에 그물거리며 떠올랐다.   쇄잔한 겨울 해살. 앙상한 철교의 아치. 보도에는 사람들이 묵묵히 오가고 있고.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가 껌을 씹으며(슬픔을 씹으며?) 가고 있다. 세느강 위를 달리는 기차, 교각 아래 한 중년의 남자가 량손으로 귀를 막은 채 괴로운 듯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기차의 기적 소리에 이내 파묻혀 버린다. 허탈하게 허공을 보고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랭소적이고 우울한 반면 천진하고 따스한 구석도 있는 남자...   요사이 후배들에 의해 갑절 떠올려 져있고 내 블로그의 조회수를 달구고 있는 영화 의 첫 장면이다. (성과 륜리의 타락이 특별히 새삼스런 일도 아닌 오늘날에 뭐 이렇게까지 야단스럽게 한 영화를 들먹이면서…)하고 생각하다가 나 자신도 그 무드에 젖어 들어 몇 마디 적어 보기로 한다. 사실 그 영화를 내가 후배에게 빌려 주었으니 내가 그 때아닌 열기의 조작자임이 틀림없다는 자괴(?)를 머금으면서...       출생에서 성장에 이르기까지 상처로 얼룩진 과거 때문에 마냥 우울한 중년 남자 폴. 외도를 하던 안해가 자살하고 폴은 자신이 지낼 세방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아파트에서 우연히 숙명의 녀인 잔느를 만난다. 두 사람은 격렬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정사만 나누고 인사도 없이 헤어진다. 그 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남자와 녀자. 남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녀자에게 소리친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아! 너도나도 이름이 없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작업을 하고있는 거야." 둘은 당연한 듯이 또 정사를 나눈다. 정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은 술을 마신다. 탱고 경연대회에 끼여들어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들은 미친 듯이 파격적인 춤을 추면서 심사위원들에게 엉덩이를 까 보인다. 남자는 녀자와의 진정한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남자의 슬픔을 리해할 수 없고 리해하고 싶지도 않은 녀자는 남자의 파행적인 행동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다. 남자는 집요하게도 녀자를 붙잡는다. 남자는 녀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너는 도망갔지만 나는 끝까지 너를 쫓아왔어. 너는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할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녀자는 마침내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남자는 녀자의 집 문 켠에 씹던 껌을 뱉어서 붙여놓고 웅크린 채 죽어간다. 남자의 죽음을 보면서 녀자는 중얼거린다. "난 저 사람을 몰라. 저 사람이 날 쫓아왔어. 저 사람은 모르는 사라난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 누군지 몰라…”     이런 파행적인 영화도 있다는것을 일찍 80년대 중국의 유일한 영화지였던 잡지에서 알았었다. 허나 영화에 대한 소개는 겨우 몇 줄에 고작해 그쳤고 당시의 우수꽝스러운 사회풍조에 의해 자본주의 나라에서만 나올 수 있는 퇴페적인 영화라고 정평이 되여 있었다. 그후 여러 영화잡지들에서 이 영화에 관한 무수한 평론들을 읽어왔지만 영화를 진짜 영상으로 접 한 것은 2000년 겨울, 참으로 늦기도 하고 참으로 빠르기도 하다고 할가? 왜냐면 조선족문단의 내 노라는 작가들과 한 자리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었는데 놀라웁게도 거의 모든 작가가 이 영화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다른 지역의 팬들은 믿을 수 있을가? 어떤 극단적인 예로 촌스런 우리 문단을 잣대질하려는 용의는 절대 없고.)   영화는 우울하면서도 보는 내내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소외된 현대인의 인간 관계를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를 통해 그려낸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대표작. 이딸리아에서는 개봉 후 며칠만에 상영금지가 되였다가 87년에 와서야 해금되었다. 시대가 변해도 국적이 달라도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되는 그런  영화다.   이야기 줄거리만으로 본다면 야한 포르노 영화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영화가 나온 지 25년 만에야 수입 개봉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선 X등급 판정을 받았고, 자유의 국도라 일컫는 미국에서도 극장 개봉 때는 성행위 묘사 장면 몇 군데를 삭제하고 별도의 'R' 등급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언제 공개 개봉될지 누구도 모른다. 지금의 풍토로서는 영원히 개봉되지 못할 듯? 그리고 우리는 아울러 해적판에서 이런 명작들을 접해야하는 팬으로서의 행복과 괴로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영화는 60년대 말, 파리 사람들의 마지막 절망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론가들은 해설하고 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은 아직도 좌적인 이데올로기의 철쇄에 억압된 우리들의 침묵, 그로서 저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파격의 충동과 이룰 수 없는 무가내의 꿈... 우리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을 그것을 영화가 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같이 금방 40대를 맞은 작가도 좋고 아직 섹스도 모르면서 남녀의 허무의 종국을 감동하며 말하는 신세대도 좋고...   영화의 성공의 주요요인은 주인공역을 열연한 말론 브란도에게 있다고 나는 단정한다. 말론 브랜드가 연기하는 미국인 남자 폴은 우울과 권태와 절망이 뒤섞인,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의 모든 것들에 대해 조롱하고 모욕도 서슴치 않는다. 면도날로 벽에 피를 뿌리며 자살한 안해와 그의 친구가 아내의 정부였다는 사실이 그를 그렇고 만들고 있다. 절망과 권태와 고통으로 우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폴은 젊은 녀자에게 자신의 가학적인 광기를 분출한다. 녀자가 자기의 이름을 묻자 "세상의 모든 이름들보다는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가 더 나아"라고 말한다. 폴의 그런 조롱은 탱고를 추는 댄스경연장에서의 행동에서 폭발한다. 심판관 앞에서 엉덩이를 내보임으로서, 자기만족의 세상에 안주하는 속물들을 통렬하게 조롱한 것이다.   영화는 말론 브론도의 이러한 일탈, 조롱, 광기의 장면들로 시종 점철되여 있다. 우리 팬들에게는 대부(代父)로 이름이 통하는 말론브란도! 그가 떠난지 얼마안되여 그의 영화에 대해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추억이라 해야 할가 아니면 아이러니라 해야 할가?   대통령도 아니고 전쟁영웅도 아닌 남자, 사생활도 지극히 복잡한 한 남자의 죽음에 세계가 아쉬움을 표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위대한 배우를 잃었다''며 애달픈 조문을 발표했고 〈타임〉지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배우로 그를 선정했다. 본능적 연기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그는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돈을 벌기 위해 영화에 출연할 뿐"이라고 자신을 폄하 했지만, 그래서 그의 위대한 연기력은 더욱 빛을 발하고 지독히 노력해도 안 되는 보통배우들을(속인들을?)  어리둥절하게 속상하게 했다.   그는 섹시한 외모와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카리스마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쉰 듯한 목소리, 들숨을 삼키는 듯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분노를 완벽히 드러냈다. 빠리에서 사는 미국 남자. 안해의  장례식을 앞두고 이름도 모르는 프랑스 처녀와 파괴적인 섹스에 탐닉하는 중년남자의 공허함은 말론 브랜도가 아니면 그토록 실감나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연기는 노력형이 아니라 동물적 본능에서 나온 즉흥적 연기다. 브란도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서 쩍하면 그의 어머니에게 매를 들이댔다고 한다. 말론 브란도의 웅성(雄性)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성미는 이러한 가정배경에서 나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는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매맞는 어머니에게 멋진 남자로 보이고 보호해주려고 노력하며 어려서부터 자신의 남성미를 극대화했던것이다. 한면 영화에서의 광기와 일탈의 몸짓역시 그런 가정배경이 있었기에 그렇듯 광분함에 가깝게 연기된것일것이다.   “연기는 부랑아의 삶”이라고 탄식한 말론 브란도에게서 그의 말을 빈다면 "섹스는 초콜렛을 먹거나 아스피린을 삼키는것만큼의 의미밖에 없다”고 한다. 그의 식탐과 녀탐은 심해서 미친 듯이 먹어댔고 천문수자 만큼 한 녀성 편력으로 만년에 양육권 분쟁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딸은 이복오빠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것에 충격을 받아 스물다섯 살 나이에 자살했으며 그의 아들 역시 살인범으로 옥살이를 했다.     "덜 미치려고 평생 노력했다"는 천재 배우 말론 브랜도. 이제 현란한 인간세상을 떠난 그는 하늘에서도 여전히 그 특유의 랭소적인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붉은 와인과 붉은 녀자의 입술을 되뇌여 보면서. 아직도 자기의 30여년전의 작품을 보면서 흥분하는 늙은 팬, 젊은 팬들을 굽어 보면서...   그와 역시 내가 좋아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녀주역 비비안 리와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아직 테잎을 구하지 못해 안타까웁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를톨루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로 중국관중들에게 알려진 감독이다.   베르톨루치는 "원래 나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의 륜곽이 잡혀갈 무렵 문득 내 자신이 고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이 영화의 성격에 대해 표방했다.     영화로 세상에 대한 그 모든 신념을 포기한 감독 베르톨루치는 종말론적 무정부주의자임이 틀림없다.   베르톨루치는 이 허무한 세계를 마치 돼지우리를 련상시키게 만든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물어보면서 돼지처럼 꿀꿀거리기도 한다.   기실 영화에서 잔느는 육체는 풍만하나 머리는 텅 빈 녀자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녀자는 젊은 남자가 있지만, 중년 남자의 흡인력(이를테면 오랜 경륜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데서 오는 신뢰감, 그리고 중년의 통찰력 등등)에 발이 묶여버린다.그녀는 중년 남자의 무뚝뚝한 매너, 가변적인 성격에 오히려 맘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하지만 심히 말해 그녀는 그저 거대한 유방에 기름진 치부를 가진 관능미 적인 갈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또 어느 한쪽을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육체라는 욕망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녀는 심지어 폴이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요구하는 그 새로운 의지에 대해서도 판단 못하고 거부한다. 그것의 두 사람의 응분의 귀소를 위한 추구의 몸부림임을 모른다. 때문에 그녀의 몸부림에는 단지 비릿한 욕망만이 배여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폴의 얻기 위해 버려야만 하는 반항적인 몸부림은 퍽 차원 높은 몸부림이라 해야겠다.   문명과 산업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성적인 억압을 주었고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을 감추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표출하지만 체제로부터 혹은 사회적 윤리와 자신이 설정한 가치관에 의해 제재 당하고 그로서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 현대인들이 감추고 살아가는 본능의 발톱을 상징과 은유로서 보여주는 수작이다. 샐러드를 신고 메니큐어도 바르고 다니는 게 요즘의 풍조지만 기실 누구도 진정한 욕망의 발톱만은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몇 번째였던지 또 다시 보았던 며칠 전, 늦은 밤에 친구를 불러내여 술을 마셨는데 술 주량이 큰 나로서는 이내 취했고 그 숙취의 원인이 영화가 내내 사로잡은 감정에 의해서 라는 것을 술이 깨여서야 깨달았다. 그만큼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란 존재의 외로운 숙명과 본원적 고독이 그 어느 영화보다 아프게 다가왔다.   폴은 안해가 생전에 같은 아파트에 자신의 정부를 두고 있었는지도, 왜 자살하게 되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여 그에게는 미칠 듯한 울분과 싸늘한 냉소와 허망한 욕정만이 남았다. 잔느를 만나 관계를 가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것은 너무도 허망하고 끔찍하리만큼 우울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참담하다. 때문에 영화에서 모든 것은 죽음으로 끝맺는다. 아마도 이보다 더 과격하고 절망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남자의 부서짐은 어느 영화에서도 달리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을 떠올리게 한다. 따위의 골치 아픈 평론가들의 분석은 빌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세대간의 단절, 한 시대, 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허망한 인식의 단절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저마다 외로운 사람들. 이제 어떻게 어디에 기대야 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또 기대서야 사는 사람들. 사람들은 왜 저마다 그렇게 복잡한 현실을 부여잡고 살고 있을까.   영화에서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즐긴다. 서로 외롭기 때문에 서로 기대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기대인 결과 주인공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모른 채 죽고 만다. 생물적 본능의 즐거움과 쾌락은 좌절한 삶에 처한 평범한 사람의 최대의 도피처가 된다. 하지만 삶의 공허함은 육체적인 욕망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남자와 전혀 모르던 연하 여자와의 동물적인 섹스는 그들의 불행한 결말을 애초부터 가늠 짓는 암시를 주게된다.    이처럼 씁쓸하면서 일탈적인 분위기가 영상 곳곳에 담겨 있었다. 그 분위기는 주인공이 씹던, 벽에 붙여 놓고 죽어간 껌에서도 더욱 확연히 나타난다.   씹고 난 껌이란 폐기물이다. 즉 서로 형태 다른 욕망을 씹고 있는 이 세상이 남기고있는 것은 황폐한 정신 페기물 밖에 없다는 은유다. (이 영화에 감동하는 우리의 후배들이 그 세대가 반죽하고있는 사색을 씹을가? 아니면 요즘의 병든 사회가 뱉어낸 정신적 페기물을 씹을가?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선택일터지만)   녀자와 남자, 혹은 인간들의 모든 관계, 진정한 소통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면 어떤 양태로 나타날가? 서로의 마음을 주는 대화로서? 그래도 안되면 서로를 갖게되는 섹스에서? 그래도 안되면 서로를 망가뜨리는 죽음에서? 남녀끼리 만나서 모든 것을 나누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완벽한 공존이라는 것은 기실 없다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마저도 이러한 소통과 단절은 쉽게 알린다. 이처럼 관계에서의 괴리와 소통의 부재, 죽음과 같은 고독과 끔찍한 허망함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왜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그리고 그 허무함에 대해 왜 뒤미처야 깨닫게 된걸가? 나는? 과연 나는 상대를(혹여 친구 혹여 동료 혹여 동인 혹여 안해 혹여 애인...)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만 적막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정말 그러한 것이라면 나는 폴처럼 어느 여자의 총구 앞에 흔연히 마주서고 싶다. 허무의 껌을 잇몸 아프게 씹으며, 그 씹다만 껌을 어느 골목길, 돌팔이 의사들의 양위치료 광고가 난무하는 벽에 붙여 놓고서...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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